모진 고통 속에서도 딸을 지키고자 부단히 애쓴 엄마(‘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였으며,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무뚝뚝한 딸(‘수상한 그녀’)이기도 했다. 작품 속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실제 서영희의 성격과 맞닿아 있진 않았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무던한 성격을 지닌 그는 스스로를 행복한 이기주의자라고 말한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신데요. 촬영 외에 보내는 일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첫째 딸은 학교, 둘째 딸은 유치원에 보내죠. 요즘 새로운 드라마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스케줄 없는 날은 아이들을 보낸 후 여유를 즐겨요. 그때 늘 하는 고민은 혼자 집에서 빈둥거릴 것인가, 지인들을 만날 것인가예요. 누군가를 만나 맛있는 것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데, 급만남을 선호하는 편이죠. 약속을 잡는 순간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게 또 스트레스로 다가오더라고요. 남편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게 취미라면 취미인데, 아침에 ‘어제 얘기한 맛집 갈까?’ 하고 즉흥적으로 가요. 그런 게 저는 편하고 좋더라고요. 식사량도 많아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자는 주의라서 마음껏 먹어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수상한 그녀’*에서 3세대 중 낀 세대인 반지숙을 연기하면서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정말 많았죠. ‘수상한 그녀’ 영화가 나왔을 때(2014년)는 엄마가 되기 전이었어요. 당시 영화를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깊이를 이번에 연기하면서 많이 느꼈죠.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어떤 희생을 했을지, 잔소리에 담긴 진심은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과거에는 ‘주책이야’ 싶었던 것도 이제는 이해되는 거죠. 제 딸들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저를 더욱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KBS2에서 방영된 ‘수상한 그녀’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며, 할머니 오말순이 하루아침에 스무 살의 오두리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서영희는 오말순의 딸 반지숙을 연기했다. 재수생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며, 대기업 임원이다.
본인은 어떤 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부모님 속만 썩이는 딸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미대를 가려고 꽤 오랜 시간 준비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연 배우가 되겠다고 진로를 바꿨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우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반대하셨죠.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어머니는 결국 제 꿈을 지지해주셨어요. 제 진심을 읽으셨나 봐요. 그 덕분에 배우가 되어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항상 감사하죠.
인정받는 배우가 됐으니,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배우가 되어서도 걱정거리 안기는 딸인 것은 변함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는 ‘추격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 스릴러 작품에 많이 출연했잖아요. 엄마가 작품을 보고 ‘우리 딸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몰래 눈물짓고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결혼해서 가정 꾸리고 잘 살고 있으니, 그 부분은 효도한 셈일까요?
그게 제일 큰 효도라고 하잖아요. 그럼 엄마 서영희는 어떤 사람 같나요?
엄마로서 저는 아이들이 스트레스 안 받으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제가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아요. 또 무엇이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줬죠.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걱정이 들더라고요. 공부든 운동이든 그 시기에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못 했던 건 아닌가, 자유를 너무 준 게 실수는 아닐까 싶더라고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데, 나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단단해져야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거니까요.
임원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연기하면서 임원뿐만 아니라 회사원분들 모두 대단하다고 느꼈고, 존경심까지 들었어요. 배우는 수입도, 스케줄도 일정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한때는 정시 출퇴근하는 회사원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다달이 입금되는 돈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계획성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엄마가 된 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더라고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고, 일상의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세상을 살아가는 치열함은 어떤 직업이든 똑같다고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을까 불안해하면서 사는 것은 똑같다는 뜻이죠.
엄마로서 책임감이 강하신 게 느껴져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나요?
지금 삶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느끼는 아쉬운 지점이 있기는 하죠. 역할의 비중을 떠나 연기 몰입도에 차이가 생겼다고 느껴요. 과거에는 연기 고민만 했다면 지금은 생각할 게 많잖아요. 또 경력이 쌓이며 노하우가 생겨서 약간 게을러진 것도 있고요. 지금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래도 나쁘지 않게 연기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사람 욕심이 끝이 없으니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싶은 속상한 마음이 남는 거죠.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셨는데요.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인생작일까요?
대중에게 저라는 사람을 각인시켜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배우를 계속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는 배우의 삶을 계속 이어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현재까지 출연작 중에서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인생작 맞아요. 그런데 배우 인생 전체에서의 인생작은 아니길 바라고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중견 배우)처럼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거든요.
작품 속 이미지와 달리 성격이 밝은 것 같아요. 실제 성격과 비슷한 작품 속 캐릭터가 있었을까요?
저도 그렇고, 작품 속 캐릭터도 그렇고,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사람의 성격을 판단할 수 없잖아요. 저를 만난 적이 있는 분들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봤냐에 따라 저를 다르게 기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성격이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똑 부러지지 않고 실수도 많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저와 비슷한 캐릭터를 꼽아보자면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 드라마 ‘지운수대통’ 정도 생각나네요. 두 작품에서 모두 코믹 연기를 했는데, 정말 즐기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기가 있나요?
장르적으로는 로맨스물 출연을 희망해요. 죽을 것처럼 가슴 아픈 사랑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도 좋고요. 그리고 제가 연극으로 데뷔(1999년 ‘모스키토’)하기도 했고, 공연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늘 멋진 배우가 되어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기준점이 굉장히 높았는데, 주변에서 ‘그러다가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23년 연극 ‘분장실’ 출연 기회가 왔을 때 참여를 결심했죠.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정말 재밌고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무대에서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더 나아가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먼저 배우로서는 작품 속 저를 보고 대중들이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좋은 에너지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으로서 제 삶의 모토는 ‘잘 먹고 잘 살자’예요. 매년 한 해를 마무리 지을 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아, 나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삶을 마무리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행복 하나에 대해서만큼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행복을 우선시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죠.
Bravo Question -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수면 건강에 대한 생각 같아요. 어릴 때부터 밤 9시가 되면 잠이 왔어요. 수면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숙면을 취한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하루 8시간은 자려고 해요. 예민하면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자는데, 또 예민해지고… 이게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잠이 부족하면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등 모든 병이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전 건강하게 살기 위해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하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합니다.
(송민우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