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죽기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죽기에 좋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좋은 죽음’을 정의하고 준비하는 나라들이 있다.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할 이들을 위해 해외의 웰다잉 문화를 소개한다.
영국 ‘당신의 1% 찾기’
영국의 국가 생애 말기 돌봄 프로젝트로 의사들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을 파악해 돌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 캠페인이다. 다잉 매터스, 닥터스 넷, 왕립일반의사협회와 기타 주요 단체들이 협력해 완화치료 등 생애 말기 돌봄 시스템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죽음 만찬’
미국에서는 만찬을 차려놓고 죽음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죽음을 맞는 공포를 완화하고 애도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하자는 의미다. 2015년에는 20여 개 나라로 퍼져 7만 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운동이 됐다.
일본 ‘풍선 우주 장례식’
화장이 전통 장례로 꼽히는 일본에서는 유골을 풍선에 담아 하늘로 보내는 ‘풍선 우주 장례식’이 등장했다. 헬륨가스를 채운 풍선이 40~50km 상층권으로 올라가 터지면 하늘에서 고인의 유골이 흩어진다. ‘벌룬공방’이라는 일본 기업이 시작한 것으로 2011년부터 300여 차례 장례식을 치렀다.
웰다잉 문화 확산 속 주목받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란
비대면으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프로필 옆 국화꽃
카카오톡 ‘추모 프로필’
카카오톡은 올해 ‘추모 프로필’ 기능을 오픈했다. 과거에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면, 카카오톡 계정이 ‘알 수 없음’으로 변경됐다. 이제 직계가족 요청 시 추모 프로필로 전환이 가능하다. 1대1 채팅방도 이용할 수 있다.
3D 추모관
보건복지부·한국장례문화진흥원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정부의 온라인 추모 서비스. 과거 2D에서 3D로 업그레이드됐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하면, 누구나 추모관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추모관을 미리 만들 수도 있어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AI 추모 서비스
프리드라이프·딥브레인AI ‘리메모리’
부모님의 건강한 모습을 AI 휴먼으로 구현해 평생 간직하는 서비스다. AI 휴먼 구현을 위해서는 사전에 약 7시간의 인터뷰와 촬영 시간이 필요하다. AI 휴먼은 청담동에 위치한 프라이빗 쇼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경남 진주시는 예로부터 인재 배출이 잦았던 고장이다. ‘영남 인물의 절반이 진주에서 나왔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특히 충신이 많았다. 고려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구국의 화신이라 일컬을 만한 이들의 비범한 행장이 이 고장에 잇따랐다. 그래 ‘충절의 고장’이다. 오늘날 충의(忠義)의 얼로 빛나는 진주의 각별한 역사성을 웅변하는 명소를 꼽자면? 단연 진주성이 아이콘이다. 임진왜란 때의 전사(戰史)와 의용의 서사를 고이 간직한 진주성을 둘러보지 않고 진주를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진주성은 진주시내 강변에 있다. 성의 남벽 아래로 남강이 굽이쳐 수려한 풍광을 빚어낸다. 강물과 벼랑이 지닌 전략적 가치에 착안해 성을 구축했다. 본래 내성과 외성으로 짜인 이중구조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내성보다 규모가 컸던 외성은 스러지고 내성만 남았다. 성곽의 길이는 1790m, 높이는 5~8m에 달한다. 삼국시대 때 토성(土城)으로 축조됐던 진주성이 석성(石城)으로 거듭난 건 고려 말 우왕 때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몇 차례 고쳐 지었다. 따라서 축성의 변천사와 기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된다.
공북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선다. 널찍하고 훤칠한 성내 공간 곳곳마다 잘 단장돼 생경한 기분을 자아낸다. 천년 고성이되 마치 신축한 것처럼 매우 미끈한 게 아닌가. 근래의 복원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걸 알 만하다. 한때는 고즈넉한 폐허와 잔해 사이에 간신히 존재했겠지만 고칠 것 고치고, 다듬을 것 다듬고, 보탤 것 보태어 회생했다. 복원사업 이전의 성내엔 민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그걸 다 철거해야 했다. 그러니 대대적인 복원사업이 필연이었겠다. 작업자들은 진주성의 본연과 본질에 부합하는 복원을 완수하기 위해 실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성내의 지형은 리듬이 있다. 평지와 경사지, 야트막한 언덕과 구릉지,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며 거대한 타원을 그리는 성곽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었다. 너른 잔디밭과 다양한 수목들이 초록을 뿜어 소풍과 산책을 즐길 만한 공원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진주성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곳집이다. 일쑤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곳이다. 수성(守城)과 승전을 꾀하기 위한 갖가지 구조물이 즐비한 곳이다. 전투 지휘소로 쓰인 서장대와 북장대, 포를 쏘았던 포루, 전공을 새긴 사적비와 순절의 넋을 기리는 사당 등이 있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까지 성내에 있어 답사객들의 호감을 산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으로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새겼다. 당시 장수는 진주목사였던 김시민 장군. 1592년 10월 김시민은 전라도와 이어지는 전략 요충이었던 진주를 삼키기 위해 쳐들어온 2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쳤다. 김시민이 거느린 병력은 관군과 의병을 합쳐 3800여 명에 불과했다지. 중과부적 상황이었지만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김시민의 명민한 지략이 작동해서였다. 이를테면 그는 성 밖에 주둔한 의병들에게 왜군을 교란할 수 있는 교묘한 작전을 전개하게 했다. 성내의 부녀자들에게 남자 옷을 입혀 군사가 많아 보이게 했다. 야간엔 악공들의 피리 소리로 왜군의 심리를 교란시켰다.
지략뿐인가, 김시민은 개혁적 성향의 무장이라서 휘하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관행을 타파했으니 매사 솔선수범으로 군대의 사기를 북돋웠다. 신식 병기 동원에도 신경을 썼다. 이래저래 승전은 애당초 떼어놓은 당상 같은 것이었을지도. 하지만 김시민은 전투 막판에 왜군의 총탄을 맞고 순절했다. 그때 나이 38세였다. 그가 숨을 거두자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성내 백성들의 곡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던가. 비단 김시민을 애도하는 호곡뿐이었으랴. 대첩이 끝난 자리에선 죽은 자들을 끌어안은 산 자들의 오열이 터져 나왔으리라. ‘조선왕조실록’은 당시의 참혹한 정경을 적치여산(積置如山), 즉 ‘시체가 쌓인 모습이 산과 같다’고 기록했다.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사방 30리 안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해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진주성은 일종의 성지(聖地)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선인들의 역사가 선연한 게 아닌가. 전쟁에 따르게 마련인 지옥의 묵시록을 술회하는 성이라는 점에서는 반전(反戰) 메타포가 응축된 곳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전쟁이란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수시로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슬픈 숙명이지만.
다산 정약용이 극찬한 ‘진주검무’
진주성 남쪽 기슭, 성곽에 인접한 곳엔 촉석루(矗石樓)가 있다. 크고 당당하고 수려한 누각이다. 한때 국보로 지정됐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지정을 해제했다. 지금의 모습은 1960년의 보수작업을 통해 얻었다. 진주성 아래로 굽이치는 남강과, 저 멀리 산야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진주성 최고의 전망대다. 조선 선비들이 풍류와 사색을 즐겼던 영남 제일의 정자다. 전투 지휘소이기도 했다. 따라서 촉석루 역시 전쟁이라는 부조리극이 낳은 상처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촉석루 아래 강변에선 진주성대첩 즈음 한 여인이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 자결, 영원히 남을 충절의 화신이 됐다. 바로 논개다. 진주 관기(官妓)였던 그의 재능은 미색으로 향기를 뿜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음인가. 시대를 읽는 냉철한 눈까지 겸비했나? 그는 기꺼이 한 몸 바쳐 한 시대의 참화에 빛을 흩뿌렸다. 촉석루 아래 강변엔 논개가 왜장과 함께 투신한 바위 ‘의암’(義庵)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어느 날 촉석루에 유람을 왔다가 ‘일개 작은 여인이 왜적의 우두머리를 섬멸하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가?’로 시작되는 ‘진주의기사기’(晋州義妓祠記)를 썼다. 논개의 거룩한 행장을 기리는 글이다. 다산이 진주에 와서 탄복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진주에 전승돼 오늘날까지 맥이 이어지고 있는 ‘진주검무’를 보고 찬탄했던 것. 검무는 여성 무용수들이 무사 복장을 하고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이다. 촉석루에 앉아 이 춤을 감상한 다산은 참을 수 없는 흥에 겨웠나? 그는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 검무를 추는 미인에게 드림)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검무를 추는 여인의 매력적인 자태와 춤사위의 삼엄한 격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명편이다.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석학이었던 다산은 음악과 춤에도 조예가 깊었다. 음악과 악기를 연구해 ‘악서고존’(樂書孤存)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런 다산이 진주검무를 시로 써서 극찬했다.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초대 예능보유자는 ‘진주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인’ 고(故) 김수악이다. 김수악이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 목석도 들썩였단다. 춤으로 도가 튼 달인이었다. 진주검무의 맥은 오늘날 예능보유자 유영희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는 70대에 접어들었지만 예인다운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춤사위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고.
김길수 진주문화원장
“일제강점기 때 기생 단체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진주의 자연지리 가운데 빼어나기론 단연 남강이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굽이치는 남강의 폭은 넓고 물살은 유유해 아름답다. 예로부터 진주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온 생명의 젖줄이다. 진주의 보배에 해당하는 진주성이 남강가에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진주의 역사와 문화는 남강과 함께 흘러왔다. 그렇다면 진주의 문화답사 1번지는? 김길수 문화원장은 진주성과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를 꼽는다.
“진주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다. 그러나 진주성을 찬찬하게 답사하는 이는 드물어 아쉽다. 대체로 촉석루와 논개 유적인 의암만 훑어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진주성을 한 바퀴 도는 온전한 답사 방식을 채택하면 좋겠다. 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관람과 남강변에 조성된 성 밖 산책로를 통해서도 역사의 숨결을 음미할 수 있다.”
‘의기 논개’ 역시 진주의 대표 캐릭터다. 논개의 행장이 지역 정서에 미친 영향엔 어떤 게 있을까?
“일개 기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세계 역사상으로도 논개가 유일무이하다. 나라를 위하는 일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다는 걸 실천한 인물이 논개이자 논개 정신이다. 따라서 지역 정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3.1만세 운동 때 진주에선 기생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돼 국권 회복에 앞장섰다.”
‘진주검무’는 물론 가무악(歌舞樂)의 대가였던 고 김수악 선생의 예술은 현재 어떤 식으로 전수되고 있는지?
“김수악 선생이 양성한 제자들이 뒤를 잇고 있다. 진주에서 교방예술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는 셈이다. 우리 문화원은 선생의 제자들을 문화학교 강사로 영입해 강의를 맡기고 있다. 향후 ‘김수악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전통 민속이 흔히 현대의 풍속에 밀려 퇴색하고 있다. 반면 진주에선 ‘진주 소싸움’의 명맥이 이어져 흥미롭다.
“농업이 번성했던 과거부터 진주 사람들은 농한기에 소싸움을 즐겼다. 일설엔 진주가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이라 신라와 백제 편으로 나눠 소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도 있다. 한편 소싸움 무대로 적격인 남강 백사장이 있어 명맥 유지가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주요 문화원 사업을 소개해달라.
“외람된 얘기지만 진주문화원은 전국 문화원 중 으뜸이라 자부한다. 지역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식견과 애착을 토대로 인화단결을 꾀해온 결과라고 본다. 중점 사업은 진주의 ‘의로운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콘텐츠 개발이다. 지속적으로 순절 의병들을 발굴, 연구해왔다.”
타지의 문화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업을 추진한다지? 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순절 의병들을 찾아내고 조명하기 위해 의병 활동이 많았던 전라도의 여러 문화원들과 손잡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든 의병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문화원은 전국 각지의 문화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문화예술 교류사업을 하고 있다. 이건 앞으로 더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중장년기에 겪는 주요 증후군은 ‘상실(감)’이라고 한다.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관계 상실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각 대표 증상과 솔루션을 알아본다.
사회적 역할 상실 ‘슈퍼노인증후군’
은퇴 이후에도 현업에 있을 때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증상.
【솔루션】
1. 무리한 스케줄은 줄이고, 자신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하기.
2. 병원이나 센터를 찾는다면 배우자와 동반하기
가정에서의 역할 상실 ‘빈둥지증후군’
자녀가 취직·결혼 등으로 출가·독립하며 상실감과 외로움 등을 느끼는 증상
【솔루션】
1. 가정이 아닌 사회와 연결되는 역할을 찾자.
2. 갱년기와 맞물려 있다면 미리 관련 교육이나 상담을 받자
배우자와의 사별 ‘애도증후군’
사랑했던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증상
【솔루션】
1. 잘 운영되는 자조모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자
2. 배우자와 추후 찾아올 부재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
◇상실에 대처하는 중장년의 자세◇
상실 아닌 역할 변화로 인지하기
생애주기에 따라 예견되는 상실의 시점을 인지하고, 이에 따라 준비하자.
일·가정·개인 역할의 균형 맞추기
가정에서의 역할, 오롯이 개인의 역할 등을 일상에서 점검해보고 균형을 맞추자.
나는 누구인가? ‘자신’ 잃지 않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을 갖자.
퇴직 후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이 대부분 사라진다. 자녀가 출가하면 가정 내 부모의 역할도 줄어든다. 나이가 들며 겪는 사별(死別)은 모든 것을 잃은 듯 고통스럽다. 중장년기에 찾아오는 이러한 상실은 한편으론 예견된 아픔일 테다.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대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움말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체 건강 못지않게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들어 각종 ‘OO증후군’을 염려하는 이가 많아졌다. 익히 아는 ‘명절증후군’처럼 특정 시기에 벌어진 일로 신체적·정신적 증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가벼이 여겨 방치했다간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된다. 요즘은 온라인에 다양한 증후군 자가진단지가 올라와 있어, 의심 증상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신뢰할 만한 자료인지 점검이 필요하며, 진단 후 오히려 무력감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환자들이 오면 질환명을 말씀드리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고 덧붙인다. 특히 중장년이나 어르신의 경우 아직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아 더 조심스럽다. 자칫 질환명을 부각하면 ‘나는 병이 있는 사람이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등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며 “실제 의사들이 현장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증후군들도 있다. 이런 증후군은 아직 질병으로 고착될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떤 용어를 써서 질병화하기보다는 건강한 노년기를 위해 거치는 일시적인 상황, 도움을 받으면 호전될 증상, 나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 등으로 인식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임선진 과장은 중장년기에 겪는 증후군들의 주요 원인으로 ‘상실(감)’을 꼽았다.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관계 상실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불면증 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슈퍼노인증후군’, ‘빈둥지증후군’, ‘애도증후군’을 들 수 있다. 이들 증후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회적 역할 상실 → 슈퍼노인증후군
은퇴 이후에도 현업에 있을 때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증상. 주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은퇴와 나이 듦으로 인해 과거보다 역량 발휘를 못 하는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사회 낙오자로 여기며 괴로워한다. 또는 무리한 계획을 세워 일정을 소화하느라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일이 전부였고, 노는 건 사치였다.”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라면 공감할 얘기다. 그렇게 활동성과 생산성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를 살았던 이들은 은퇴 후에도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며 무언가를 바삐 해내고 있다는 만족과 안도를 느끼기도 한다. 다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활동 무대는 점차 줄어든다. 그렇게 의욕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고 좌절을 겪는다. 쉴 틈 없는 스케줄에 체력은 고갈되고 피로는 쌓여간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했다면 ‘슈퍼노인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일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려는 강박을 지닌 ‘슈퍼우먼증후군’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임선진 과장은 “슈퍼노인증후군의 경우 사회적 역할 상실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며 지나치게 과도한 스케줄을 만들어놓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억지로 뭔가를 해보려다 역부족임을 깨닫고 한계에 부딪히며 좌절 또는 번아웃증후군(탈진증후군)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체로 전문가를 찾아오는 증상자들을 보면 상당히 지친 상태가 많다고. 대개 불안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고, 피로감, 가슴 두근거림, 숨 가쁨 등을 나타낸다.
[솔루션] 우선 일상 계획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무리한 스케줄은 줄이고, 대신 차분히 자신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 등을 해보면 좋다. 병원이나 센터를 찾는다면 배우자와 동반하길 권한다. 대체로 직장 생활에 몰두해 지냈던 남성들이 퇴직 후 증상을 보이는데, 이전과 일상에 별 차이가 없는 주부 입장에서는 남편이 겪는 고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현재 중장년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티 내지 않으려 하기에 더욱이 속사정을 알기 어렵다. 부부가 그런 상황을 함께 나누고, 가정에서의 역할을 찾아나감으로써 사회 역할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
가정에서의 역할 상실→빈둥지증후군
자녀가 취직·결혼 등으로 출가·독립하며(둥지를 떠나며), 주 양육자였던 여성이 상실감과 외로움 등을 느끼는 증상이다. 갱년기와 맞물려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폐경기증후군’의 한 갈래로 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비롯해 목적 상실로 인한 무기력증, 자녀의 독립생활 및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등을 호소한다.
슈퍼노인증후군이 사회생활에 몰두한 남성에게 다발(多發)한다면, 빈둥지증후군은 전업주부였던 여성이 많이 겪는다. 전업주부는 남편에 비해 육아 비중이 많고, 이에 헌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 자녀의 출가쪾독립 등으로 육아에서 놓여나는 동시에 자신의 역할까지 상실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들의 경우 ‘엄마’(부모)라는 역할에서 정체성을 느끼기 때문에, 더 이상 양육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곤 한다.
임 과장은 “자녀 양육에 올인했던 분일수록 빈둥지증후군을 겪을 확률이 높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도 많고, 일이 아니더라도 취미 생활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성이 늘어났다. 그러나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전업주부가 많고, 이렇다 할 취미나 문화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그 어느 세대보다 현재의 중장년이 빈둥지증후군을 더 많이 호소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솔루션] 그동안 양육과 가사를 위해 쏟았던 에너지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다. 슈퍼노인증후군이 사회적 역할에서 가정 내 역할로 전향하는 것과 반대로, 빈둥지증후군은 가정이 아닌 사회와 연결되는 역할을 찾아나서야 한다. 갱년기와 맞물려 있다면 심리적 증상은 배가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호르몬 감소가 일어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호르몬 치료를 병행한다. 가령 생리전증후군을 겪는 여성의 경우 시기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대처가 용이해진다. 이처럼 경년기 또한 언젠가 다가올 것임을 인지하고, 미리 관련 교육이나 상담을 받아보면 큰 도움이 된다.
배우자와의 사별→애도증후군
사랑했던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증상으로, 외상후애도증후군(외상성 애도)이라고도 한다. 주변인 중에서도 배우자의 죽음이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안긴다. 사별 후 수개월, 수년이 지났음에도 극도의 슬픔이 지속되거나, 눈물이 나고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배우자와의 사별은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일정 기간 슬픔을 달랜 뒤에도 일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애도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배우자가 아닌 친척쪾친구쪾지인에 의해서도 일어나며,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건강 문제 등으로 물리적 만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에는 독거노인이 늘면서 반려동물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는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e)도 생겨났다. 애도증후군은 가볍게는 경미한 불안감, 우울감, 상실감을 보이는데, 심한 경우 고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 식욕감퇴, 불면, 공황장애 등도 동반된다. 오랜 투병 생활 후 배우자를 떠나보낸 경우보다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사별했을 때 유발 가능성이 높다. 임 과장은 “애도증후군으로 인한 우울감이 심하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중장년기 상실로 인한 질환 중 위험도가 가장 높다”며 “생전 배우자와 관계가 돈독했거나, 가정에서 고인의 역할이 클수록 상실감이 더 크다. 특히 가부장적 중장년의 경우 아내가 가사를 도맡았다면 식사, 빨래, 청소 등을 스스로 해내지 못할 때 그 부재를 더 강하게 느낀다. 이러한 기능적인 문제가 더해져 여성보다는 남성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솔루션] 우울감 등 증세가 심하면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에 따라 보조적으로 수면제나 항불안제를 일시적으로 권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면, 약을 하나씩 줄여가며 정상적인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체로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품을 정리하거나 의식(의례) 등을 통해 사별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가장 좋은 건 잘 운영되는 자조모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일이다. 또 오롯이 배우자에게 기댔던 일이 있다면, 생전에 미리 역할을 나누고 익혀가며 추후 찾아올 부재 상황에 대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우세요.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입니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울고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을 흘린다는 게 부끄러워지기 마련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층인 중년은 더욱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는 부서를 이끄는 팀장이며, 가장인 경우가 많은 그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눈물을 삼킬 때가 많을 터다. 그런 그들이 반가워할 공간이 있다. 바로 ‘T.T존’이라는 곳이다.
특이한 이름의 T.T존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예상이 어렵다면, 걸그룹 트와이스의 노래 ‘TT’를 떠올리면 되겠다. ‘TT’는 눈물을 의미하며, T.T존은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T.T존은 전국에 딱 하나 있다. 경기도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안에 위치한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사람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할까? T.T존이 선택한 방법은 ‘영상 시청’이다. 방문자에게 맞춤형 동영상을 제공해 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정말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주르륵 흐를까? 눈물이 부끄러운 이 시대에 그곳에서는 왜 마음껏 울라고 말할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가득 안고 T.T존을 방문했다.
50분간 영상 시청…나도 모르게 눈물
T.T존 이용 방법은 이렇다. 사전에 방문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찾아가면 된다. T.T존을 찾아간 날, 취재를 위해서지만 기자도 체험을 신청한 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이곳을 찾을 경우, ‘너무 우울해 보이지는 않을까?’, ‘용기 낸 것이 잘한 일일까?’ 등의 걱정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걱정과 두려움은 금세 가라앉는다. T.T존이 있는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문을 활짝 열면, 상담사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T.T존 내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상담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눈다. 내담자가 어떤 고민 또는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지, T.T존에서 무엇을 치유 받고 싶은지 등을 상담사가 듣는 시간이다. 이와 함께 T.T존 사전 질문지도 작성한다. 질문지는 쉽고 간단하다. T.T존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눈물에 대한 평소 생각은 어떤지 등에 관해 묻는다.
사전 과정을 마친 후, 마침내 T.T존에 입성했다. 입장과 동시에 슬리퍼로 갈아 신으니 진짜 방(룸)에 들어온 듯이 편안하다. 조금 전까지 사무실 공간에 있었는데, 순간 이동한 느낌이다. 제일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텔레비전과 그 앞에 놓인 소파다. 누워도 될 정도의 크기이며, 그 위에 놓인 곰돌이 인형도 시선을 붙잡는다. 담요, 쿠션과 함께 필수품인 티슈도 준비되어 있다.
곳곳을 둘러보니 세심한 손길이 눈길을 끈다. 방음벽으로 되어 있는 것은 물론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을 주는 세면대도 한편에 마련돼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심리적 동요가 커질 상황을 대비해 깨지지 않는 거울을 걸어 놨다는 점이다. 전원 케이블 또한 최대한 보이지 않게 했으며, 응급 상황이 생기면 구급차를 바로 호출할 수 있는 비상벨도 설치해 놓았다.
시청 영상은 내담자의 상황과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 대학생, 신혼부부, 중년 남성 또는 여성, 노인 등으로 구분돼 있고, 맞춤형 영상을 제공한다. 러닝 타임은 50분 정도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자로 T.T존을 방문한 기자는 ‘중년 남성을 위한 영상’을 시청했다. 홍보용으로 제작된 영상으로, 러닝 타임은 10분 정도였다. 실제로는 기자가 시청한 10분 정도의 영상을 4~5편 보는 방식이라고 했다. 모든 영상은 저작권 허락을 거쳐 사용되고 있다.
T.T존 담당자가 안내를 마치고 나가자, 불이 꺼졌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평소 눈물이 많은 기자는 ‘일부러 울지는 말자. 정말 슬프면 울자’고 다짐하며 영상 시청에 몰두했다. 그래서 영상을 다 본 후에는 눈물이 나왔냐고? 결과부터 말하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감정이 많이 벅차올랐다. 아무래도 풀 영상이 아닌 짧은 영상을 시청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맞춤형 영상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30대의 미혼으로, 중년 남성의 이야기에 100% 공감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중년 남성을 위한 영상을 시청한 후 신혼부부를 위한 영상도 시청했는데, 동년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감 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맞는 연령대의 영상을 쭉 본다면 눈물이 충분히 흐를 수 있겠다.
눈물 치료에 대해 아시나요?
T.T존에서 영상 시청을 마친 후에는 다시 상담사와 이야기를 한다. 영상 치료로 해소된 부분이 있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상담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기적으로 T.T존을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사후 설문지도 작성한다. T.T존 이용 후기, 눈물 치료의 효과 등에 관해 묻는다.
또한 T.T존 이용자에게는 심신을 평온하게 도와주는 온열 안대, 도라지차 티백 등을 제공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는데, 일명 ‘눈물 리트머스지’다. 평상시 하품을 해서 나오는 눈물, 양파·마늘 등 자극을 받았을 때 반응하는 눈물, 정서적인 이유로 인한 눈물 등, 감정에 따라 리트머스지에 색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더욱이 맛도 다르다고 하는데, 슬플 때 흐르는 눈물은 산성 성분이 많은 신맛, 분노로 인한 눈물은 염류가 많은 짠맛이 난다고 한다.
T.T존은 이처럼 ‘눈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눈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웃음 치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눈물 치료는 들어본 적이 없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알고 보면 눈물의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하며, 의학적으로 입증된 자료도 많다. 외과전문의 이병욱 박사는 “눈물이 병든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임상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T.T존은 2019년 문을 열었다. 시민정책제안사업 당시 한 시민이 “중년 남성도 마음껏 울고 싶다”면서 울음방을 제안한 것이 채택됐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임하나 팀장은 “나이가 들수록 우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찾는 중장년분들도 처음에는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서 “어린 애들이 혼나면 울지 않나. 그러고 나면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이 감정적으로 올라왔던 것들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눈물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T.T존은 ‘울고 싶을 땐 울어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T.T존은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만들어졌다. 해외 선진 사례를 견학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워하우스(OUR HOUSE)’라는 곳을 방문했다. 스스로를 슬픔지원센터(Grief Support Center)라고 소개하는 곳이며, 사람들이 슬픔을 나누면서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본에는 루이카츠라는 민간단체가 있다. 단체의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 또한 일본 도쿄의 미쓰이 가든 요쓰야 호텔(Mitsui Garden Yotsuya hotel)에는 20~40대 여성이 마음껏 울 수 있는 ‘울음방’이 있다. 최루성 영화와 만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특별한 호텔 룸이다. 이 호텔의 축소판이 T.T존이라고 할 수 있다.
T.T존 이용자는 월 20명~30명 정도다. 중년 남성이 원했던 곳인 만큼, 실제로도 40대~50대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지난해 이용자 추이를 보면, 성별은 여성 69%, 남성 31%로 집계됐다. 연령별로 보면 40대가 24%, 50대가 12%로 가장 많이 방문했다. 즉, T.T존 이용자 1순위는 중년의 여성이라는 사실도 도출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중년 남성은 직장과 경제적 문제 등의 스트레스를, 중년 여성은 갱년기와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졌다. 임하나 팀장은 “여기 동탄 신도시는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이 많은 동네다. 서울에서 거주하다가 집값으로 인해서 여기까지 내려오신 분들이 많다”면서 “더욱이 중년 남성분들은 투자로 인한 손실, 퇴직 압박 등의 이유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고 말했다.
또한 임 팀장은 “자살율이 제일 높은 연령층도 40·50대의 남성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년 남성의 이용률이 가장 낮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T.T존이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다.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중년 여성분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종합해 보면, T.T존이 만들어진 이유도 중년 남성 때문이고, 가장 필요해 보이는 세대도 중년 남성이다. 마음껏 울고 싶은 중년 남성이 있다면, 하루 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T.T존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마음에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편, T.T존 맞은편에는 ‘메모리존’이라는 곳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애도의 공간인 이곳은 향초의 향기로 가득하다. 하늘에 있는 그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너무 큰 슬픔에 갖고 있을 수는 없지만 버릴 수는 없는 소중한 유품도 보관 가능하다. 매달 한 번씩 자살 유가족 모임도 갖는다.
이용 방법 : 예약 및 문의→시설 이용→사후 관리→평가
대상 : 화성시민 누구나(중학생 이상)
주소 : 경기도 화성시 동탄대로 8길 36
운영 시간 : 평일 09:00~18:00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그림과 아이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한 내레이션은 5·18 민주화운동, 노인, 장애라는 주제를 훑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입버릇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선 주는 데는 박한 세상,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시도가 빛날 수밖에. 영화 ‘양림동 소녀’가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제의 막이 내린 대한극장 한켠에서 임영희,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 아들은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선물했다. 그림으로나마 답답함을 풀고 세상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왼손으로 펜을 쥐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이사 왔을 때의 기억들이 한 장, 두 장 그림이 되어 쌓였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은 삐뚤빼뚤한 그림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왼손으로도 괜찮을까?” 자신 없어 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꾸준히 격려하고 설득했다.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감독 아들의 오랜 꿈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연주한 배경음악을 삽입했다. 딸은 영어 자막을 위한 번역을, 아버지는 영화 타이틀 로고 제작을 맡았다. 분류는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글자 그대로 ‘독립영화’인 30분 08초 분량의 ‘양림동 소녀’는 이렇게 탄생했다.
빛나는 소녀 뒤엔 양림동이 있었다
영화는 온전히 어머니 임영희 씨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그림으로만 밀고 나갔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영화도 어머니의 그림으로 승부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대체로 오래 기억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제가 광주에서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영광스러운 한때로, 또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순간으로 죽는 날까지 품고 갈 수밖에 없죠.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된 장애인의 삶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들만 영화에 담았을 뿐이에요.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니 당연히 기억하는 거고요.” (임영희 감독)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임 감독이 생애 가장 주체적이던 시기의 배경이었다. 제목이 ‘진도 소녀’, ‘광주 소녀’가 아닌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생지인 진도는 옛 추억거리가 있고,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 온 것도 맞다. 하지만 문인의 꿈을 키우던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지역은 양림동이다. 남편을 만난 곳, 아들 오재형 감독이 태어난 곳 또한 양림동이다. 정체성을 결정지은 순간이 거리에 즐비하다. 그중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임 감독에게 물었다. ‘보프룩 까페’를 드나들던 20대 시절을 꼽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프룩 까페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 미국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프’, 폴란드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을 따온 별명이에요. 제가 지었죠. 실제 카페는 아니었고, 제가 20대 당시 동경하던 언니의 집이었어요.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저 여성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보프룩 까페에는 언제나 뜨거운 커피와 사과 한 조각이 있었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어요. 제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죠.” (임영희 감독)
그 밖에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옷을 만들어줬던 것 등. 떠올리면 즐거워지는 순간은 많다. 다만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이다.
임 감독은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밤중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이웃이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남편 오정묵 씨는 황석영 작가의 집 2층 거실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임 감독은 영광이라 표현한다. 난리통에 누구 하나 싸우거나 도둑질하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신성한 공동체’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약자를 통합시킨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의 기대대로 혹은 그 이상이다. ‘양림동 소녀’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 후 GV(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들과 갖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받았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2022년 제13회 광주 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김영우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심 심사위원은 “노인이라는 단어에 따라다니는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노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변화, 태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어르신이 직접 창작의 주체로 나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는 심사평을 대표로 전했다. 두 감독이 스스로 평가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손을 쓰지 못하세요. 그래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셔야 했죠. 그 때문인지 선이 삐뚤빼뚤한데, 보통의 경우 약점이 되는 부분이 어머니의 그림과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게 미술 전공자가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무엇보다 작화가 수준급이었고요. 덕분에 영화의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결정했죠.” (오재형 감독)
“요즘 세상은 약자를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 잘게 구분해 갈라내고 있죠. 그런데 ‘양림동 소녀’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어요. 어린이 임영희, 청소년 임영희, 여성 임영희, 노인 임영희, 장애인 임영희의 모습으로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인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대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네요.(웃음)” (임영희 감독)
귀여운 그림체와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는 목소리는 불행한 이 한 명 없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생존 기록에 가깝다. 이 부조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작자가 되면서 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던 어린 시절의 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옷을 지어줬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다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이 떠올라서’가 이유였다.
‘양림동 소녀’는 여성 인물이 사회의 갈등과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실제 증언,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비극적 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나이가 어리거나 심신 미약자라면 접하기 꺼려할 수 있다. 잔혹한 참상까지 담담하게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낸 영화 ‘양림동 소녀’는 그 지점을 비껴간다. 덕분에 더 여운이 남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 서사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한 차례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장애 극복으로 흐르면 편견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임 감독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자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점을 기뻐할 뿐이다.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들 오재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그의 어머니가 국가폭력, 장애의 관점에서 ‘생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림을 매개로 하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는 것. 말로 전해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상흔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금은 어머니의 생애가 앞으로 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대상 수상작 감독이라면 으레 가질 법한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두 감독 모두 고개를 저었다.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전남 순천시 ‘골목책방 서성이다’에서 영화 상영회 및 GV 행사를 소소히 가졌다. 아직 세상에 한 권뿐인 ‘양림동 소녀’ 그림책은 올해 안에 삽화 위주의 에세이로 정식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데 굳이 영화 상영 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오 감독은 다음 일정이 잡히거든 연락드리겠다며 웃었다.
임영희 감독은 누룽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조각내는 세상이지만, 누렇게 눌어붙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 감독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는 단 하나다. ‘내가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는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여성과 장애인, 공동체 문화를 위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섬초롱 꽃에/ 시원하고 달콤하게 왔어/ 고양이는 웃고/
까치는 종종거려/ 물 마시는 산/ 춤추는 빗방울/
나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양림동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임영희 감독이 낭독한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임 감독의 이야기가 수많은 마음을 아침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게 적실 수 있길 기원한다.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이날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발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진범이 따로 있는지, 배후에 누가 있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궁금증을 마음에 담은 관광객들은 아직도 이곳을 찾는다. 암살범인 오스왈드가 저격했던 딜리 플라자의 그 자리는 ‘6층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 현상을 관찰한 영국의 연구자들은 ‘다크 투어리즘’이란 개념을 착안해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형태의 여행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역사교훈 여행’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크 투어리즘이 주창된 초창기에는 위험한 장소를 탐사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체르노빌 같은 핵 재난 지역이나 국제적인 분쟁 지역 인근에 접근하는 형태까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익히고, 인간의 잔혹함이나 고통에 대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스릴과 모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몰리면서, 희생자들의 고통을 재밋거리로 희화화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내전으로 홍역을 앓은 시리아다. 인구의 절반이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난 이곳의 전흔을 일부 여행사들이 ‘볼거리’로 홍보했다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관광자원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지역의 관광자원을 살리는 가치 부여 과정, 즉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념관 등 관련 시설의 정비를 통해 ‘여순사건’을 정확히 알리면서 관광자원으로 삼은 여수시가 대표적이다. 여수시는 2021년부터 ‘여순사건 다크 투어리즘 및 남해안 명품 전망 공간 조성 등 관광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관광 상품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묻고 잊어버리려 애쓰기보다는 계속해서 애도하며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선영 홍익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장소는 철거해버리고 없애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이 더 옳다는 관념이 지배했지만,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고, 지속 가능한 관광 대상으로 만들어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 목적지의 보존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관광 수입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장소 복원과 유지 비용을 지원하거나,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을 높여서 장소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전파하고,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제주4·3평화공원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최근까지 일부 정치세력을 통해 왜곡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은 희생자 유족의 트라우마를 회복하고,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리는 중심지이자 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나타난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호기심을 더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다. 호찌민의 독립궁이나 메콩강의 구찌터널 등 그곳의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들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이나 우리나라 입장에선 패전의 기록인 셈이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승전의 기록이자 전리품으로 남아 있다. 승전국 입장에서 작성된 현장의 기록을 읽는 경험은 미국 관점의 역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경한 경험이 된다.
지나친 엄숙주의 경계해야
특별한 장소를 찾는 만큼,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도 특별한 태도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여가활동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영 교수는 “당초 목적이 비극의 역사를 느끼고 다시 생각하기 위해 찾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보다는 진지하고 숙연해질 필요는 있지만, 말 그대로 관광의 한 과정이므로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중장년 세대에게 잡지는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웠다. ‘어깨동무’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보물섬’을 통해 꿈을 키웠다. 커서는 ‘스크린’이나 ‘키노’ 한 권쯤은 있어야 문화적 소양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전만큼이나 두꺼운 시사잡지는 현실을 알게 해줬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지령 100호를 맞이한 지금,
사회는 변화했고 잡지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 잡지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 백종운 한국잡지협회 회장이다.
잡지는 늘 우리 사회를 선도해왔다. 국내 최초의 잡지는 1908년 최남선이 발행한 월간지 ‘소년’이다. 당시 이 잡지는 청소년 계몽과 함께 항일 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발간됐다. 그 유명한 신체시(新體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소년’ 창간호를 통해 발표됐다. 실제로 이 잡지는 일제에 의해 발매 금지와 정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재조명되는 이 시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잡지협회도 지난해 새로운 문화적 선도를 위해 애썼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잡지협회는 풍성한 행사를 이어나갔고, 그 중심에는 백종운 한국잡지협회 회장이 있었다. 그는 2월 14일 열린 정기총회를 통해 회원들에게 다시 신임을 받고 2년의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2년보다 남은 2년이 중요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임기 동안 해온 일들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죠. 압도적 투표 결과가 아니어서, 더 노력하고 잘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도 잡지협회에도 특히 지난해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예기치 않은 여러 사건들로 활동에 굴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협회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협회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으니까요. 특히 ‘잡지가 있는 삶’이란 주제로 진행된 잡지주간 행사는 최초로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행사로 진행되기도 했고,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준비했는데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10월 29일 있었던 이태원 참사를 말한다. ‘근현대 잡지 특별전’의 개막 행사 다음 날이었고, 국립극장에서 제57회 잡지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기 3일 전에 사고가 터졌다. 이태원 참사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고, 협회 측도 애도의 마음을 담아 행사 일부를 축소해야 했다. 1년간 야심 차게 준비한 것들이 대중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아쉬웠던 점은 더 많았죠. 문체부의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에 잡지 분야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구체적인 예산 증액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우수콘텐츠 지원사업이나 해외진출 지원 등도 규모가 늘지 않았고요. 또 도서 구입이나 박물관 입장권 등은 소득공제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유독 잡지 구매비만 빠졌어요. 관련 법안이 몇 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입니다.”
백 회장은 지난해의 부족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기고, 마스크 제한 해제 등 행사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된 만큼 올해 행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독자들에게 우리 우수한 잡지들을 소개할 수 있는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탈서울’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방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만들어 잡지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잡지를 위한 플랫폼 시동 ‘눈앞’
미디어 환경은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언론 권력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고, 유튜브 채널 같은 1인 미디어, 그리고 배달음식처럼 기호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가운데 잡지는 여전히 밀려나는 위치에 서 있다. 빠른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에는 아직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잡지업계의 수장으로서 그는 “그래도 콘텐츠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잡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 환경 변화에 잡지사들이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던 잡지 콘텐츠가 온라인 등 변화된 플랫폼 환경에 적응했어야 하는데, 바뀌는 속도에 맞추지 못했죠. 또 새로운 미디어들이 잡지와 경쟁할 만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잡지업계를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백 회장은 아직도 잡지가 가진 가능성과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전문성’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100회 넘도록 중장년 대상의 전문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살아남은 잡지 대부분이 ‘전문지’ 이름표를 달고 뛰는 주자들인 만큼 콘텐츠의 질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릇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잡지 콘텐츠들은 오랜 기간 업계에서 활동해온 저력 있는 매체, 경험 많은 기자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을 전문잡지의 시대라고 표현할 만큼 각 잡지사들이 쌓아온 전문성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이러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이 독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사회적 낭비가 되고 말아요. 때문에 이 콘텐츠를 모두 담아 소비자에게 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을 온라인 유통과 연결해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것.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거대 포털이 지배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핵심은 수익에 있습니다. 수익이 각 잡지사에 배분될 수 있어야 질 높은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죠. 이런 수익 모델을 갖춘 잡지만의 플랫폼을 준비 중입니다. 고급 정보를 이 플랫폼에서만 만날 수 있다면 구독경제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큰 저항 없이 잡지 콘텐츠를 환영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 회장이 이런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그는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한국의 문화 콘텐츠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잡지업계에 대한 디지털 혁신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는 요원했다. 결국 협회는 스스로 자구책을 찾기로 결정했다.
“디지털 혁신 투자가 필요한데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민간기업과 손잡고 협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협회가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높은 초기 투자 비용 때문에 파트너를 물색했습니다. 적합한 상대를 만나 이야기가 잘 진행 중이니 조만간 결과물을 독자들 앞에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이 플랫폼은 잡지사들이 콘텐츠를 보내주면 온라인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유통을 담당하고, 또 구독이 늘면 부수적인 광고 수입도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또 잡지사 입장에선 지면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중장년에게 잡지는 ‘추억’
고령화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중장년 세대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콘텐츠는 많지 않다. 백 회장은 그중 ‘잡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장년층은 잡지가 익숙하고 잡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어요. 서점이나 지하철 가판대에서 손쉽게 잡지를 사고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죠. 하지만 이들이 잡지를 만날 가판대는 사라졌고, 서점도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같이 중장년을 타깃으로 한 잡지는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특정 세대를 겨냥하는 것은 잡지업계에서 자연스러운 트렌드지만, 중장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매체는 많지 않잖아요.”
그는 마지막으로 지령 100호를 맞이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대한 애정 담긴 응원도 잊지 않았다.
“100호 기념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뛰어넘어 고령화 사회의 상황을 담고 독자와 상생하는 매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장년 세대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함으로써 건강하고 품위 있는 고령화 사회에 기여하고 있어요. 노고에 감사드리고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지 약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상속 고민은 속 시원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재산을 물려줄 사람의 거주지에 따라 법이 다르고, 밟아야 할 절차가 복잡해서다. 아직 법률에서 전 세계 통합이 이루어지기는 요원한 듯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법률 가이드에서는 사례를 통해 해외 상속의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자.
case
“미국에 사는 54세의 Kate Song(케이트 송)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미국 유학 시절 어머니를 만나 결혼해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은 이a혼하셨고,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새 사람과 재혼해 아들도 태어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더군요. 그 아들은 저의 이복동생인 셈이죠. 행복하게 지내시는 듯했지만 최근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가 애도의 뜻을 표하고 계모, 이복동생과 상속에 관한 대화를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꽤 많은 부동산 자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다 평소 관계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분배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들은 받을 재산이 거의 없다며 아버지의 재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례는 피상속인의 이혼 전 자녀(전혼 자녀) 케이트 송 씨와 이혼 후 재혼 배우자, 그 자녀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난 경우다. 통상적으로 이들은 모두 상속인으로 인정되지만, 전혼 자녀는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돼 있지 않으면 재산을 받을 수 없다. 더불어 전혼 자녀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이 더욱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선 국제적인 문제에서는 어느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경우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법령에 따라 상속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국제사법상 상속은 고인의 국적에 따라 관할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 방법
계모와 이복동생이 아버지의 자세한 재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겠지만 다행히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상속인이라면 고인의 자산과 채무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24에서 제공하는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기관 방문 없이 국세(체납, 고지세액), 금융거래(은행 잔고, 대출, 보험, 주식 등), 국민연금(가입 여부), 지방세(체납, 고지세액), 자동차(소유 정보), 토지(소유 내역) 등 사망자의 재산 상황을 볼 수 있다. 서류를 구비하면 대리 신청도 가능하다.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처리 기한은 7~20일가량 소요된다. 금융감독원 역시 상속인이 사망자의 금융 재산 및 채무를 확인할 때 각 금융회사를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고자 상속인 금융거래정보 조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알고 보니 케이트 송 씨의 아버지는 서울시 강남구의 아파트 세 채와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계모, 이복동생과 협의를 마친 끝에 부동산을 한 채씩 나눠 갖기로 했다. 예금은 상속세 납부에 보태기로 한다. 그러나 송 씨는 한국에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인이 된 후 한국 방문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터라 아는 친척이나 친구도 없다.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할까?
고인의 재산을 내 명의로 가져오려면, 기본적으로 상속인 전원의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합의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인이나 해외 거주자는 인감이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다소 복잡하지만 방법은 있다.
먼저 예금 수령 또는 상속등기에 동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본인 확인을 위한 서명확인서와 신원 확인을 위한 거주확인서를 작성하고 여권 사본을 첨부한다. 대신 인감증명서를 대체할 공식 절차가 필요하다.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받아야 한다. 본인이 거주하는 국가가 미국, 일본 등 아포스티유 협약국이면 아포스티유를, 그렇지 않으면 영사인증(캐나다, 중국 등)을 받으면 된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영사관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영문으로 작성된 서류는 모두 한글 번역문을 제출해야 하지만, 한국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러한 서류는 반드시 원본이어야 하니 ‘Fedex’ 등 국제우편을 통해 원본을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준비해야 할 서류 적지 않아
케이트 송 씨가 어릴 적 아버지가 한국에 출생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가족관계증명서의 이름은 송지연이었다. 미국 여권 속 Kate Song이라는 이름과 다른데, 가족관계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한국 내 등록된 이름이 따로 있다면 동일인확인서(Certification of Identity)라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여권 이름과 한국 이름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동일인확인서도 함께 준비해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아파트를 내 명의로 상속등기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 부여까지 신청하면 상속등기를 포함한 모든 상속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외국인 토지취득신고까지 마치고, 상속세를 납부하면 마무리된다. 드디어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Kate Song 명의로 압구정 아파트 한 채의 등기를 끝냈다.
그러나 케이트 송 씨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매각 대금을 미국으로 가져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대료를 받기도 번거롭고, 임차인 관리 또한 쉽지 않아서다. 한국에 그대로 두자니 아깝고, 해외 거주자 신분으로는 투자도 녹록지 않다. 게다가 세금 신고와 납부의 번거로움까지. 이럴 때는 중개업체를 통해 부동산을 처분한다. 매수인과 계약을 마친 후에는 매도인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통해 처분위임장과 관련 서류를 준비하면 된다.
한국 비거주자인 케이트 송 씨는 상속으로 취득한 부동산의 매각 대금을 외국으로 송금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를 상속받았다는 점을 입증할 관련 서류를 외국환은행에 제출해야 한다.(외국환거래규정 제9-43조) 거주자란 상속 개시일 현재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을 말하며, 비거주자는 거주자가 아닌 자를 말한다. 주소는 거주 기간, 직업,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국내 소재 자산의 유무 등 생활 관계의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판단한다. 상속세, 양도소득세를 모두 완납했다는 세금완납증명서 역시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 재산을 상속받기 위한 절차는 결코 쉽지 않다. (여담이지만 쓰면서도 몇 번이나 주제를 바꾸어야 하나 고민이 컸다. 이를 모두 읽었다면 자녀들에게 문해력을 자랑할 법하다.) 실제로 진행할 때는 서류에 문제가 있을 경우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니, ‘가능하다’는 점만 알고 반드시 경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