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언맨’의 주연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버지인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다.
다우니 주니어는 8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5년 넘게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뉴욕 자택에서 별세했다”면서 “어젯밤 잠결에 평화롭게 돌아가셨다”고 소식을 알렸다.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미국 할리우드의 이단아로 불리는 감독이었다. 1960~70년대 반체제적이고, 급진적인 시각을 담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미국 뉴욕의 광고업계에서 근무하는 흑인의 삶을 그려낸 코미디 영화 ‘퍼트니 스워프’(1969)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생애를 서부극으로 풀어낸 ‘그리서스 팰리스’(1972) 같은 작품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퍼트니 스워프’는 2016년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문화적, 역사적, 미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선정됐다.
그는 아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 ‘파운드’를 통해 5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 제작을 집안일처럼 가족과 함께한 아버지 다우니 시니어 덕분에 아버지가 만든 영화 8편에 출연했다.
다우니 주니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가 “진정한 매버릭(maverick) 영화 제작자”였다는 헌사를 바쳤다. ‘매버릭’은 미국에서 개성이 강하고 신념이 뚜렷한 스타일의 인물을 묘사할 때 쓰이는 말이다.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별세 소식에 그의 아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동료 배우들이 애도를 표했다. 클라크 그렉과 기네스 팰트로, 제레미 레너 같은 다수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출연 배우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댓글을 남겼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팬들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명대사 ‘I love you 3000’(3000만큼 사랑해)를 변형해 “아버지도 3000만큼 사랑 받으셨을 것”이라는 댓글을 남기며 추모했다.
지루한 일상에 볼거리를 채워줄 넷플릭스 신작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번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넷플릭스 신작 가운데 시니어 취향을 저격할 드라마, 시트콤, 영화를 한 편씩 소개한다.
1.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2021)
1년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돌아왔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가 지난 17일 전파를 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20년 지기 의대 동기 5인방의 ‘케미’를 담은 작품이다. 시즌1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배우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폭발적인 공감을 일으켜 14.1%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아로하’, ‘밤이 깊었네’ 등 밴드 ‘미도와 파라솔’이 부른 노래는 드라마가 끝나고도 음원 차트 상위권을 지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 시즌 또한 지난 시즌에 이어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등 ‘99즈’가 더욱 단단해진 팀워크와 시너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녹음이 짙은 여름, 다시 만난 ‘99즈’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또 어떤 노래가 두 귀를 즐겁게 할까. 1회 본방사수를 아깝게 놓쳤다면 지금 넷플릭스에서 확인하자.
2.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2021)
시트콤 ‘남자 셋, 여자셋’ ‘논스톱’ 시리즈의 권익준 PD, ‘거침없이 하이킥’ 김정식 PD, ‘순풍산부인과’ ‘뉴논스톱’의 서은정 작가. 이들이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트콤계 ‘어벤저스’가 의기투합한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지구망)가 안방을 찾는다. ‘지구망’은 정답 없는 하루를 사는 국제 기숙사 학생의 사랑과 우정, 웃음을 담은 글로벌 청춘 시트콤이다.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누구보다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는 국제 기숙사 조교 세완, 잘생긴 얼굴로 여심을 흔드는 제이미, 허세 가득한 막둥이 쌤, K-드라마에 푹 빠진 민니 등 국적만큼 다양한 학생이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침체되었던 시트콤 시장에 전성기 시절을 추억하며 새로운 웃음을 기다려왔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코믹한 분장과 단체 댄스도 불사하는 젊음의 패기, 손주가 떠오르는 귀여운 캐릭터의 유쾌한 하루하루가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3. 아빠가 되는 중 (2021)
딸이 태어난 지 27시간 만에 아내가 떠났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딸을 만난 기쁨, 동시에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은 한순간에 아내를 잃은 맷이 딸 매디를 홀로 키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맷은 아내를 잃은 슬픔과 싸우며 매디를 돌본다. 밤낮없이 쉬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삶은 고단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맷도 성장한다. 매일 밤 잠든 딸에게 엄마를 대신해 한 번, 아빠의 몫으로 또 한 번, 두 번의 키스를 하는 맷.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디는 가족이 단출하다며 투정을 부린다.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 인생. 과연 맷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매튜 로젤린의 회고록 ‘투 키스 포 매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의 대가 케빈 하트의 살아있는 연기가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종종 알파벳 ‘N’이 붙은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의미하는 표시다. 본사의 순자본을 투자해 제작된 콘텐츠인 만큼 해외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시니어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새로운 모습으로 넷플릭스에 나타났다. 그것도 6개국 버전으로, 알파벳 ‘N’을 달고 말이다. 국내 원작을 세계판으로 확장해 넷플릭스에서 선보이는 것은 거의 최초다. 이 이례적인 협업의 배경은 무엇일까? 시리즈의 총연출을 맡은 진모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Q. ‘님아’ 6개국 버전이 탄생한 계기는?
2015년에 ‘님아’ 원작이 LA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타고, 현지에서 개봉했어요. 당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책임자가 영화를 봤나 봐요. 2017년 컨퍼런스 콜이 왔더라고요. 원작을 감명 깊게 보았다며 ‘님아’의 전 세계 버전을 만들고, 원작자로서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죠.
Q. 넷플릭스와 ‘K-다큐’의 협업이 이례적이다.
원작을 제작할 때도 해외 개봉을 염두에 뒀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의 관객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원작이 전 세계 버전으로 탄생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요즘 한류 열풍으로 국내 드라마나 영화가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되는 경우는 있지만, 다큐멘터리와 손잡은 선례는 드무니까요. 또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는 한 가지 소재를 시리즈화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일종의 금기랄까요? ‘우려먹네’ 하는 시선이 좀 있거든요. ‘어벤저스’는 아무리 우려먹어도 인기가 많은데 말이죠.(웃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원작을 교본 삼아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일은 흥미로운 시도였죠.
Q. 출연자 선정 기준이 있다면?
수십 년 동안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루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니어 부부가 기준이었어요. 이 기준을 바탕으로 각국 감독님들과 출연자를 결정하는데, 브라질 감독님께서 동성 커플을 제안하시더라고요. ‘부부’(夫婦) 콘셉트다 보니 여러 논의가 오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영어 제목은 ‘Six Stories of True Love’(6개의 진실한 사랑)이거든요. 성별을 넘어 오랜 시간 사랑한 ‘커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해 출연을 결정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니어 커플은?
스페인 편이 원작 부부와 다른 듯 닮은 구석이 많아서 기억에 남아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올리브 농사를 짓는 부부죠. 원작 부부처럼 고령에도 서로에게 헌신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러다 노화가 찾아오면서 각종 어려움을 맞이하고, 잘못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죠. 그 역경을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더라고요. 사랑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와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Q. 6개국 커플에 공통점이 있다면?
남편이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아요. 성격이 부드럽고 다정하죠. 흔히 말해 ‘지고 산다’고 하는데, 사실 이 말도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관점이에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식의 시혜적인 태도가 반영된 말이거든요. ‘님아’ 시리즈의 남편들은 지고 산다기보다 아내와의 관계가 그 자체로 평등해요. 동성 커플도 마찬가지죠. 평등한 소통과 적당한 유머가 오랜 세월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Q. 작품을 본 시니어 커플이 느꼈으면 하는 바는?
작품을 보며 배우자와 비교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를 요구하기보다는 ‘나는 상대방에게 그러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부처님, 예수님 같은 사람을 만나도 자신이 그 복을 받을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거든요. 무엇보다 작품 속 커플의 모습을 정답처럼 여기기보다는 참고할 만한 사랑의 교과서나 나침반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사랑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다큐멘터리 시리즈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장르 다큐멘터리 총괄제작 진모영
컨설팅 프로듀서 김선아 제공 넷플릭스
영화 포스터의 멘트와 스틸 컷이 기대를 하게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연일 내리는 장맛비와 열대야가 더해져 습한 더위가 이어지겠다고 말한다. 고온다습한 8월 한여름, 머릿속 복잡하게 엉킨 일들을 그저 우두커니 방치하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문득 122분짜리 프랑스 코미디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기분을 좀 가볍게 해줄까 하며 VOD 버튼을 눌렀다. 수영장을 배경으로 울퉁불퉁한 몸매의 남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서 있는 포스터를 보니 여름을 위한 영화 같다. 편안하게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터뜨릴 준비를 했다.
감독은 질 를르슈. 영화배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공동 연출한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보고 싶은 영화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그가 단독으로 각본과 연출을 맡아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기욤 카네는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논-픽션'에서도 봤는데 연달아 그의 연기를 감상하게 됐다.
경제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 직장에서 밀려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는 남자들이 어느 날 뭉친다. 수중발레팀 모집 공고에 신청하면서 오합지졸의 중년 남성들이 감히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회에 도전하며 겪는 이야기다. 배우들의 망가진 모습이 압권이다. 그 모습이 당사자처럼 느껴지는 것은 배우들의 높은 연기력 때문이 아닐런지. 그렇게 또 다른 어벤저스가 시작된다.
마땅한 일자리도 커리어도 없는 남자들이 모여 수중발레라는 스포츠에 도전해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생각만큼 안쓰럽지 않다. 물론 미숙하고 실수투성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웃음이 터지곤 했다. 종종 아릿한 마음으로 응원을 하게 되는 건 그들이 최선을 다하며 진지했기 때문이다. 도전 속에서 차츰 심리적 안정을 찾고 단단한 마음 근육이 생겨나는 모습은 기쁨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일반인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수중발레에 도전한 어리숙한 이 남자들은 훈련하고 충돌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리고 결국 높은 산을 넘어선다. 평범한 영웅들이 전하는 재미에 소소한 위로까지 얻는다.
훈련 중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찰지게 등짝을 후려치며 거칠게 야단을 치는 열혈 코치 아만다가 나올 때마다 빵빵 웃었다. 그게 통쾌함 때문인지 대리만족 때문인지 정말 상황이 재미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웃기니까 무조건 좋다. 게다가 지치지 않고 훈련하는 그들의 어리바리한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간간이 왜 저러지 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재미있는 영화로만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끔씩 나타나는 웃음 포인트,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응원하다가도 과연 어떤 결말일지 미리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모두들 예상하는 결과일 수는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옥신각신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거기에 가족 간의 사랑, 부부간 위기극복의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만만찮은 과정을 거치고 인생의 낙오자들이 어벤저스로 거듭나며 들판에서 일몰을 함께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 멋진 엔딩이다. 기분 좋게 뭉클하다. 혼자서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고단한 세상, 그 누구의 삶이든 모두 해피하기를 바라는 요즘의 내 마음이 너무 티 나나?
가끔 내리는 비가 성급하게 여름으로 치달으려는 대지를 달래주는 덕에 봄 날씨가 겨우 연명하고 있다. 화사한 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날에 걸맞은 싱그러운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다. 원제는 ‘Back to Burgundy’로 그저 와인의 명산지인 부르고뉴로 돌아왔다는 말인데 영화 수입사가 설명적인 제목을 덧붙이는 바람에 멋이 사라졌다.
역시 문화 장사꾼인 프랑스인답게 자신들의 장기인 와인과 아름다운 자연을 버무려 멋진 안구 정화 장면을 선사한다. 스토리도 일과 사랑 그리고 가족애를 결합해 매우 건전하다. 요즘 소재결핍에 시달려 만화에 의지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지친 전통적인 영화팬들에겐 이런 진부한 듯 보이는 소재가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프랑스 영화다운 자부심일 터이다.
자줏빛을 띤 붉은색을 뜻하는 영어 ‘버건디(burgundy)’는 부르고뉴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통칭하는데 이 지역은 가족 경영을 중심으로 하는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그중 한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자상하지만 고집스러운 아버지 밑에 삼 남매가 등장한다. 큰아들 장(피오 마르마이)은 10년 전 세계 일주를 핑계로 집을 나갔다. 둘째인 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은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잇고 있고 막내 제레미(프랑수아 시빌)는 결혼 후 처가 월드에 시달린다.
이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건 아버지의 죽음이다. 세 남매는 그사이 폭등한 땅값으로 엄청난 상속세가 나오는 데 반해 정작 와이너리의 수익성은 1% 내외로 쪼그라들어 있는 현실과 마주한다. 서로 다른 기억으로 상처를 간직한 세 남매는 눈앞에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뜻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최고의 와인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흔하다. 흔한 소재를 특별하게 살리는 힘은 디테일에 있다. 이 영화는 7년의 제작 기간과 1년의 촬영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만큼 프랑스 시골 마을의 사계가 충실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인간관계와 와인의 숙성과정을 병행시키며 사랑과 갈등을 밀도 있게 그린다. 이런 사실성이 설득력을 만들어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와인은 인생의 은유이다. 땅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옥신각신하면서도 세 남매는 누가 서툴게 잔가지를 쳐내는 꼴을 못 본다. 인간의 DNA는 이처럼 무섭다. 그저 포도알을 터뜨려 만든 술인데도 와인마다 향이 다르다. 셋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숙성이 오랠수록 향이 진하듯 그들도 서로의 다름을 사랑으로 성숙시킨다. 장의 혼잣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와인처럼 사랑도 시간이 필요하더라. 시간이 흐른다고 상하는 건 아니었어.”
우리말에 ‘삭다’와 ‘썩다’가 있다. 두 단어는 같은 뿌리이면서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와인은 오랜 시간 두어도 썩지 않고 삭아 뛰어난 향과 맛을 만든다. 사랑도 썩지 않고 곰삭아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려면 발효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발효가 일어나려면 긍정적인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필수적이다. 와인에서 배운 사랑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사회로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 관객들 반응이 대단하다. 어벤저스 류에 지친 관객들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와인의 얼룩은 천연섬유에 묻었을 때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의 가족애가 가슴에 오래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