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이달부터 식당에서 ‘잔술’ 판매가 가능해질 예정이다. 또한 주류 도매업자가 ‘무알코올’ 음료를 납품하는 것도 허용된다.
기획재정부는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류 판매업 면허 취소의 예외에 해당하는 주류의 단순 가공·조작의 범위를 규정하면서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누어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즉, 주류의 잔술 판매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와인, 막걸리, 위스키 등의 잔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1월 ‘잔에 담아 팔 수 있는 술’의 범위를 ‘칵테일과 맥주’에서 ‘주류’로 확대해 ‘주세법 기본통칙’ 개정안을 내놓음으로서 내부적인 기준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잔술 판매에 대한 규정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에 소주와 같은 주류도 '잔술'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안에는 주류를 냉각하거나 가열해 판매할 때 주류에 물료를 즉석에서 섞어 판매하는 경우를 허용한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또한 종합 주류 도매업자가 주류 제조자 등이 제조·판매하는 비알코올·무알코올 음료를 주류와 함께 음식점에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종합 주류 도매업자는 도수가 1% 이상인 주류만 유통할 수 있다. 현재는 음식점 업주가 무알코올 음료를 판매하려면 마트에서 직접 구매해 판매해야 한다.
앞으로는 음식점 업주가 주류 도매업자로부터 무알코올 음료를 받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제도의 운용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히면서 “입법 예고 기간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프놈펜 바타낙 골프리조트는 2019년 개장한 캄보디아 최고·최대의 골프리조트다. 이곳을 소유한 바타낙은 은행과 건설사, 맥주·음료 제조사를 가진 캄보디아 대기업으로 이곳을 통해 캄보디아 골프장의 수준을 아시아 최고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36홀 챔피언십 코스는 골프의 전설 닉 팔도가 설계했고, 관리는 미국의 골프 기업 트룬(Troon)이 맡고 있다. 동 코스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신성을 소개한다.
바타낙 골프리조트는 2022년 아시아·태평양 3위의 최고급 골프리조트로 선정되었다. 동 코스(East Course)는 2020년 월드골프어워즈에서 캄보디아의 골프 코스 1위를 수상했으며, 서 코스(West Course)는 2021년, 2022년 2년 연속 수상했다.
위치는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동남쪽으로 33km 떨어져 있으며, 프놈펜 도심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는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하우스가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골프장 내 호텔은 2024년에 완공된다고 한다.
캄보디아 문화유산에서 영감받아
동 코스(파72) 극적인 워터 해저드, 창의적인 벙커링, 다양한 형태의 토종 동물을 활용해 모든 수준의 골퍼에게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적인 골프 코스다. 시엠레아프의 바이욘 사원(the Bayon Temple at Siem Reap)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디자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거대한 종교 기념물인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과 앙코르와트를 포함한 다른 선사 시대 건축물의 축적 모형이 있다. 이 디자인은 문화, 레저, 골프의 독특한 조합을 제공한다.
페어웨이는 버뮤다 419, 그린은 버뮤다 티프이글을 식재했다. 더운 지역에 최적의 잔디다. 긴 코스여서 토너먼트에 사용된다. 6개의 티 박스를 갖추고 있어 모든 수준의 골퍼들이 즐기기에 매우 적합하다. 11~13번 홀은 코스의 아멘 홀(어려운 코스)이라 할 수 있다.
많은 홀에서 워터 해저드를 만나며, 페어웨이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홀이 많다. 특히 9번 홀과 18번 홀은 큰 호수로 마주 보는 레이아웃이 백미다. 곳곳에 자리한 벙커들은 매우 위협적이다. 특히 그린 주변은 어김없이 벙커들로 둘러싸여 있다. 검은색의 침목을 벙커 안의 지지대로 활용한 곳도 자주 보여 멋진 운치를 자아낸다. 골프 코스 안에 있는 화장실은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마치 호텔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페어웨이의 높낮이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그린의 고저 차는 매우 심해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그린 스피드가 9피트를 넘어 오르막과 내리막을 잘 살펴야 하며, 브레이크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파크랜드 타입의 코스 레이아웃으로 곳곳에서 코코넛트리와 팜트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3번 홀(파4) 챔피언 티 앞에 멋진 워터 데커레이션이 돋보인다. 일부 벙커들은 검은 침목으로 지지대를 받친 멋진 모습이 눈에 띈다. 곳곳에 깊고 큰 벙커들이 가득하며, 멀리 보이는 클럽하우스가 형태는 이미 완성되어 멋진 모습이 드러난다. 250야드 이상 장타자는 보이지 않는 오른쪽 워터 해저드를 경계해야 한다.
4번 홀 티 박스 옆에는 바이욘 페이스 축적 모형이 있다. 바이욘 페이스는 시엠레아프에 위치한 12세기 불교 사원인 바이욘의 가장 독특한 요소다. 각 탑의 네 개 면은 ‘신의 왕’(God-king)을 상징한다.
9번 홀(파5) 8번 홀과 큰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티 박스부터 그린까지 길고 큰 호수가 이어지는 화려한 뷰를 보여준다. 호수 중간에 있는 2층 건물인 파빌리온(Pavilion)은 앞뒤로 길게 물을 가르며 석재 다리가 멋지게 이어져 있다.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파티를 비롯해 식사, 위스키, 와인 등을 제공하는 멋진 장소다.
호수 중간 웅장한 파빌리온 명물
12번 홀(파3) 시그니처 홀이다. 티 박스 앞부터 그린 앞 10야드까지 큰 호수가 오른쪽으로 넓게 이어지면서 아름답고 광활하게 펼쳐진다.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한 클럽 더 잡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슬라이스는 곧 물속이 될 것이다.
14번 홀을 마치면 그린 뒤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축적 모형이 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11세기에 지어진 고대 크메르의 사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5번 홀부터 17번 홀까지는 스트레이트 레이아웃의 특징을 보인다.
17번 홀(파4) 페어웨이 오른쪽을 따라 길게 물이 이어지는 인덱스 1번 홀이다. 그린 앞 10~80야드 사이에 큰 호수를 이루며 물길이 있어 그린을 공략할 때 주의해야 한다. 그린과 워터 사이에 10야드 정도 공간밖에 없어 충분한 거리를 염두에 두고 마지막 샷을 해야 한다. 12번 홀에 버금가는 멋진 홀이다.
18번 홀(파5) 왼쪽의 큰 호수를 사이에 두고 9번 홀과 멋진 평행선을 달린다. 큰 호수는 그린 왼쪽까지 이어지는 장엄한 모습을 보이며, 그린 뒤로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한 멋진 클럽하우스가 우뚝 솟아 있다. 인상적인 마지막 홀의 위용을 보여준다. 호수 중간 건물인 파빌리온에서 찍은 멋진 사진들이 골프장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스터피스를 보는 듯했다. 동양적인 스펙터클함과 역동성을 잘 갖춘 코스다. 아시아 최고의 골프장으로, 골퍼들의 새로운 버킷 리스트 목록에 추가되기를 기대한다.
공기가 슬슬 눅진해지는 봄의 끝, 압구정의 한 사무실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뽀얀 빛깔의 전통주를 투명한 잔에 쪼르륵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을 머금은 인사와 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더워진 날씨 탓인지, 톡 쏘는 술의 시원함 덕인지 이지민 대표가 권한 ‘웰컴 드링크’는 특히 달큰했다.
이지민 대표는 전통주 안내서 역할을 하는 ‘대동여주(酒)도’를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네이버 카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술 이야기를 전한다. 영상제작자 남편과 홍보 영상도 만든다. 만화로 명주를 알리고,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와 더불어 곁들일 안주를 추천하는 등 콘텐츠도 다양하다. 특유의 감각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술을 재밌게 소개할 뿐 아니라 식음 분야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전문성도 잡았다.
특히 2016년 ‘우리술 릴레이 샷’을 기획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표창을 받았다. 셰프, 소믈리에, 방송인까지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이 전통주를 선보이고 마신 뒤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의 영상 캠페인으로, 당시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리셉션 만찬 때 세계 정상 건배주 등 굵직한 국가 행사에 자문을 맡기도 했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酒)
주류계에서 뾰족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도 처음엔 전통주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LG 와인사업부에 근무하던 시절, 전통주 유통 사업을 하던 동료의 권유로 우연히 양조장을 방문한 후 문득 깨달았단다. 우리술을 알려야겠다고 말이다. 명인들과 교감하고 좋은 우리술을 경험해보니 고유의 문화, 역사 등은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홍보나 마케팅이 취약해 어려움을 겪는 걸 보니 소명 의식이 생긴 것이다.
“명인이 운영하는 곳인데도 현장이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술에 얽힌 이야기나 만드는 과정을 엮어 홍보하면 술을 만드는 사람도, 사 마시는 사람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첨가물을 넣지 않고 순수하게 좋은 재료로만 빚은 전통주가 정말 많거든요. 희석식 소주, 감미료 탄 막걸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명주요. 레드·화이트·로즈와인, 위스키처럼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외국 술과 달리 우리술은 감, 사과, 달래, 비파, 무화과, 밤, 들국화 등 재료부터 정말 다채로워요. 어울리는 음식도 다 다르고요.”
‘우리술’ 권하는 사회
두 달을 고민한 끝에 2014년,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동여주도라는 문패를 달았다. 산천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좋은 술을 만들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양조장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는 취지와 부합해서다. 정보조차 없는 양조장이 대부분이라 초기에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며 명인들을 직접 만났다. 언론에 나온 기사와 직접 제작한 영상 등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신뢰를 쌓았다. 그 덕에 이 대표는 전통주 업계에서 떠오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이제 사무실 냉장고에는 홍보 명목으로 받은 각종 전통주가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하루빨리 우리 농산물로 만든 증류주로 회식하고, 퇴근 후 가족과 식사할 때 맥주가 아닌 막걸리를 곁들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국에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알코올 맛이 많이 나는 공장 술을 한데 섞어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기보다 음식과 술의 풍미를 살려 음미하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요. 음주법이 바뀌어야 우리술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거예요. 앞으로 국가 기관이나 지자체와 더 많이 협업할 예정이에요. 사람들이 꾸준히 우리 술이 ‘당기도록’ 잘 안내해야죠.”
“Within the budget?” 짧은 한 문장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영화 속 표현같이 비수 같았다. 깊숙이 새겨진 상처는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제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주변의 키득거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표현으로는 “자리까지 돌아오는 길이 멀어 보이고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평범했다면 나중에 술자리용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며 초심자의 실수로 넘겼겠지만, 그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의 기억은 그가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되고 기업 대표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한국 위스키 대부’라 불리는 사나이, 김일주(62)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의 이야기다.
“외국인 부사장과 처음 독대하는 자리였어요. 해외파 직원의 도움까지 받은 품의서를 들고 결재를 받으러 갔는데 덜덜 떨었죠. 그 짧은 한마디를 못 알아들은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자리에 돌아와서는 좀 진정하고 나서 회사 못 다니겠다고 뛰쳐나왔어요. 집같이 편안했던 영업부서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죠. 하지만 상사들의 집요한 설득 끝에 마케팅 부서에 눌러앉았는데, 결과적으로 제게 큰 도움이 됐죠.”
김일주 회장이 두산씨그램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백화양조에 입사해 베리나인골드 영업을 맡았던 그는, 1986년 패스포트의 큰 인기를 등에 업고 백화양조를 인수한 두산씨그램에서 영업직 업무를 계속했다.
최우수 영업사원의 고난
당시 두산씨그램에서는 명칭마저 생소했던 ‘마케팅’ 부서를 만들고 유학파 사원으로 채워 넣었는데, 시작은 좋지 않았다. 현장과 동떨어진 아이디어가 먹힐 리 없었고, 한국 정서와도 맞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선 ‘최우수 영업사원 김일주’를 마케팅 부서에 배치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때부터 그의 고난은 시작됐다.
“매일 쏘다니던 사람이 앉아만 있으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일부러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휴게실에 들러 줄담배를 피워댔죠. 그러다 적응되면서부터는 제대로 된 마케터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막 시작됐던 한국생산성본부 마케팅관리사 과정을 듣기도 했고, 우리 사회가 아직 마케팅에 대한 저변이 넓지 않아, 관련 서적 저자나 대학교수를 찾아다니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야 했어요. 당시 주요 기업 중 마케팅 부서가 있던 회사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를 괴롭혔던 영어 역시 정복 대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 테이프는 있는 대로 사 모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병철 생활영어’나 ‘잉글리시900’ 같은 것들을 닳도록 들었다. 집에 와서는 주한미군 방송인 AFKN만 틀어놓고 살았다. 아내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저 영어가 들리는 것이 숙제였다. 그는 “그렇게 꼬박 6년 정도 했더니 조금씩 들리더라”고 말했다.
혁신을 즐기는 그의 성향은 영업사원 시절부터 드러난다. 주류업계에서 그가 남긴 영업과 관련한 일화는 후배들에게 신화이자 교과서가 됐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이 아닌 업소를 직접 방문하고 제품을 소개하는 일도 그가 만든 문화다. 업주들 입장에선 ‘메이커’ 직원이 직접 술을 나르는 모습이 생경할 수밖에 없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는 큰 회사 직원이라는 신분 자체가 계급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인 일화는 도매상의 가능성만 보고 부도를 막아준 것이다. 보증에 필요한 금액은 3000만 원. 이 정도 금액이면 당시 강남 아파트 전세를 얻고도 중형차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월셋방을 살던 영업사원에게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친분 때문은 아니었어요. 탄탄한 영업망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회만 부여받으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큰 고객으로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부도 직전에 몰렸던 그 사람은 6개월 만에 그 돈을 다 갚았어요. 그리고 그 지역에서 아직도 명성을 갖고 활동하는 도매상으로 자리 잡았어요. 지금도 안부를 물으며 만나는 사이로 지내고 있죠.”
혁신이 만들어준 수식어, ‘대부’
그에게 ‘위스키 대부’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양주 ‘발렌타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여러 분야에서 자유화가 이뤄졌는데 수입 양주의 유통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존재감이 없었던 발렌타인은 김일주 회장이 브랜드 매니저를 맡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아시아에서는 생소했던 브랜드 발렌타인은 한국 내에서 급성장해, 한때 전 세계 판매량의 대부분을 한국이 차지했을 정도였다. 17년산은 75%, 21년산은 85%, 30년산은 90%가 한국에서 팔렸다. 21년산의 경우 지나치게 부담 주지 않는 접대용 선물의 표준처럼 여겨졌다. 17년산 500ml는 한국만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 2월 15일 진로발렌타인스라는 조인트벤처 기업이 탄생했고, 이 회사는 대표적 국산 양주 임페리얼까지 더하며 위스키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이 회사에서 김일주 회장은 외국인 사장과 부사장을 보좌하는 마케팅 임원을 맡았다.
김 회장의 손을 통해 명성을 얻은 또 다른 술로는 글렌피딕과 발베니가 있다. 2013년 외국계 회사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싱글 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국내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발베니가 업계에서 인기를 얻은 과정 역시 혁신에 대한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당시 업소의 바텐더들이 위스키나 싱글 몰트에 대한 설익은 지식을 설파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발베니의 전설적인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함께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6명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50명 넘는 바텐더들이 참여할 정도로 업계를 주목시켰다. 발베니의 지명도와 인기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사람 얻어야 세상 얻어”
김일주 회장이 진로발렌타인스 마케팅 임원으로 자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 회의에서 고성이 오갔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벌어진 대립이었다. 영어 욕설까지 난무했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데이비드 루카스와 견해차가 있어 거친 공방을 벌였다. 주제는 술의 입구에 장착해 혼입을 막는 장치 ‘키퍼’의 도입에 관한 것. 김 회장은 당시 가짜 양주가 판치던 주류업계의 악습을 깨고 임페리얼을 국내 1위로 올려놓기 위해 이 키퍼의 도입을 주장했고, 루카스 부사장은 비용을 이유로 반대했다. 일정 수량 이상의 판매량이 보장되어야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으니까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사장님은 결국 제 손을 들어주었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얼마 안 가 벌어졌어요. 사장님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데이비드 루카스가 사장이 되었죠. 견원지간처럼 싸움을 벌였던 사이라 ‘회사를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제게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변하면 나와 일을 하겠느냐’고 말이죠. 몇 가지 조언을 했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알았으니 네 말대로 당장 고객을 만나러 가자’고 하더군요. 그날로 저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고, 주류업계에서 푸른 눈의 영업사원은 유명세를 갖게 됐어요. 제가 루카스 사장을 존경하게 된 계기죠.”
루카스 사장과의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김 회장이 설립한 드링크인터내셔널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바탕에 있고, 현 루카스 고문의 국제적인 감각은 신제품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사례로 윤다훈 부회장이 있다. ‘세친구’의 주인공, 그 탤런트 윤다훈이 맞다. 현재는 드링크인터내셔널의 상근 부회장으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별도 소속사가 있지만,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한다. 김 회장과 그의 인연은 벌써 30년이 넘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났죠. 당시는 무명 배우여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단역이라도 맡게 되면 술자리에서 대사를 하며 연습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열정을 보고 언젠가는 대성할 거라 생각했죠. 윤 부회장에게 감탄한 것은 스타가 되고 나서였습니다. 술자리에서 술값 계산을 못 하게 하니 종업원 한명 한명에게 봉투에 용돈을 주고 가더라고요. 그런 겸손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다른 연예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줬어요. 그 인성에 반해서 지금은 제가 놓지 않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소중히 하기 위해 ‘손해 보듯 살자’는 구절을 가훈처럼 여긴다. 스스로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대하면 화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청첩장을 전해도 시간 손해, 돈 손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응하는 식이다. 물질적 손해보다는 사람을 아끼는 데 노력한다는 그의 철학은 그가 거쳐온 인생의 주요 기점마다 빛을 발했다.
“사람에 대해 노력하면 주변인들의 중심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소한 손해가 선한 영향력으로 되돌아오는 거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회사의 상품 판매가 급감했을 때도 이러한 태도는 리더십이 됐다. 회사 내부에서 인원 감축이나 임금 삭감 등의 대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충성심과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로 만들었다. 김 회장의 이런 태도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통해 회사의 판로가 열리자마자 직원을 열성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
그는 인생을 통해 얻은 경험들을 최근 한 편의 글로 정리했다.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것이다.
“며느리가 손주 돌잔치 때 편지를 써서 읽어주시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인생의 중요한 부분들을 정리하고 나니까 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정작 행사에서 낭독할 때는 눈물이 나서 혼났죠.(웃음)”
손주에게 전하는 건강의 중요성, 손해가 주는 기쁨, 노력의 필요성, 가족에 대한 사랑, 사내가 가져야 할 의리 등을 담은 글은 병풍으로 만들어져 집 안을 장식하고 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을 담은 ‘가보’가 된 셈이다. 손주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하고픈 김 회장의 사랑이 담겨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승부수 ‘골든블랑’
그는 현재 또 다른 혁신을 준비 중이다. 바로 정통 샴페인 ‘골든블랑’이 그것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업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혼술과 홈술이 늘면서 위스키 판매량은 줄고 와인이 대세가 됐다. MZ세대의 입맛은 가볍고 부담 적은 술을 원했다. 드링크인터내셔널도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남들처럼 적당한 제품을 수입해 적당히 판매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정통 샴페인이다.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행정구역처럼 아주 명확히 관리하죠. 그 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크레망이라 부르는데, 크레망을 만들 수 있는 지역도 정해져 있습니다. 단순히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한국의 브랜드로 제조하고 싶었죠. 그래서 프랑스 볼레로 샴페인 하우스와 계약을 맺고, 프랑스 샴페인협회의 공식 라이선스를 얻어 골든블랑을 탄생시켰습니다.”
럭셔리 샴페인 골든블랑은 가장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의미한다. 번쩍이는 황금색 병은 김 회장만의 컬러 마케팅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브랜드 뮤즈로 선택했는데,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김 회장은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면 페가수스는 붉은색 적토마가 됩니다. 이때 함께 ‘자! 달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라며 웃었다.
골든블랑은 그가 시장에 내놓았던 많은 제품 중 그에게 가장 특별하다. 코로나19라는 업계의 ‘전쟁통’에 낳아 기른 자식인 셈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힘든 업계 상황보다 더 힘들 국민에게 골든블랑이 위로가 되기를 기대했다.
“샴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기쁠 때 마시는 술입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어요. 하루빨리 대유행이 종식돼 함께 잔을 들고 축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골든블랑으로 말이죠.”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 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를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낭만’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을 때, 1순위로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면 바로 ‘최백호’가 아닐까? 한국의 대표적인 낭만 가객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곡 ‘낭만에 대하여’는 여전히 대중에게 각인되고 있다. 요새도 애창곡으로 주저 없이 이 노래를 꼽는 중년들이 많을 것이다. 가수 본인 역시 이 곡을 자신의 인생곡으로 꼽았다.
당시 그는 설거지하는 아내를 보며 어딘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곡을 썼다고 한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떠올린 가사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였다. 우연히 김수현 작가도 이 가사 한 줄에 반해서 그의 노래를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했는데, 그것이 선풍적인 인기의 촉매제가 됐다. 단 한 줄의 가사는 시작을 만들었고, 그 시작의 한 줄은 그에게 또 다른 인기를 안겨다줬다. 한마디로 낭만과 낭만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의 놀이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와 소주를 한잔 마셨는데, 괴로운 일이 있던 친구가 2차를 가자며 졸랐다. 2차는 젊은 시절의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맛있는 술을 음미하자고 했다. 술 대신 노래에 취하고 싶다는 친구는 “오늘의 기분은 낭만적인 노래로 잊고 싶어!”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 때문에 집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접고, 그날은 함께 근사한 음악을 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려다 그냥 비를 맞으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렸다. 고된 하루의 끝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 색소폰 소리로 달래고 있을 때, 새빨간 립스틱의 마담이 유혹적인 저음으로 “사장님 참 멋져요!”라고 속삭인다면 어떨까? 친구가 원하는 낭만은 그런 것일까? 겉은 구질구질해 보이는 50대 후반이어도 속은 아직도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낭만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종의 방파제다. 일상은 종종 무의미하고, 삶은 식은 돼지 간처럼 퍽퍽하다. 하지만 누구나 삶을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낭만을 이용한다. 본인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파악할 때 경험하는 감미로운 분위기와 기분이 바로 ‘낭만’이다. 객관적 논리에서 조금 벗어나 느끼고 싶은 대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만들 때 낭만을 느끼게 된다.
낭만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바로 ‘주인공 서사’다. 불만스러운 삶을 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서사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자기기만으로 현실감을 잃지 않을 만큼 부풀려진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삶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발적인 놀이’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빈틈을 채워주는 자신만의 놀이가 낭만이다. 자발적인 놀이는 재미와 더불어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놀이다. 또한 호기심, 창의력 등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노력할수록 낭만의 재미는 더욱 커진다.
삶은 놀이가 필요하다. 니체는 놀이에 열중하는 진지함을 발견할 때 비로소 성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낭만과 같은 자발적인 놀이는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기회를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낭만에 열중한다는 건 그만큼 삶을 잘 가꾸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가끔은 잊었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색소폰 연주자 에이스 캐논(Ace Cannon)의 ‘로라’(Laura)가 흘러나오는 다방에 자주 갔던 최백호의 경험이 담겨 있는 곡이다. 심금을 울리는 가사와 애절하고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당시 35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엔 40대 가수가 큰 히트를 기록하기 어려웠던 만큼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사실 이 곡은 발매 당시엔 인기가 없었다. 하루에 평균 한 장도 안 팔리던 앨범이었는데, 작가 김수현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출연한 장용이 이 곡을 부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최백호는 ‘낭만 전도사’란 별명이 생겼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의 끝자락 11월엔 겨울이 가까워서인지 벌써 코끝이 시려오는 듯하다. 추위도 피할 겸 안락한 호텔에서 다양한 레스토랑 메뉴와 객실 패키지를 즐겨보자.
가을밤이 즐거운 푸드 프로모션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가을을 맞아 다채로운 디너 프로모션을 선보인다(모두 오후 6시 이후 이용 가능). 호텔 최고층 ‘문 바’에서는 고소한 치즈 퐁뒤와 글렌피딕 위스키 18년산 1병 등으로 구성된 ‘치즈 퐁뒤와 위스키’를 내놓았다(12월 31일까지, 65만 원). 레스토랑 ‘페스타 바이 민구’에서는 다양한 치즈 메뉴를 맛보는 ‘치즈 버라이어티’가 마련됐다(12월 16일까지, 3만 원부터).
일본 식도락 여행과 여유로운 배스 타임
파크 하얏트 서울의 뮤직 바 ‘더 팀버 하우스’는 정통 일식으로 구성된 ‘기요미즈 디너 코스’ 프로모션을 운영한다. ‘맑은 물’을 뜻하는 ‘기요미즈’처럼 식재료 본연의 맛을 깔끔하게 살린 메뉴들로 풍성하게 준비했다(11월 30일까지, 디너 5코스 1인 10만 원). 같은 기간 프라이빗한 배스 타임을 즐길 수 있는 ‘어텀 앳 더 파크’도 함께 선보인다(38만5000원부터).
따끈한 물놀이와 달콤한 애프터눈 티
제주신화월드는 메리어트 리조트 1박과 모실 수영장 온수 물놀이를 비롯해 프리미엄 조식 2인, 치맥세트 등을 누리는 ‘풀사이드 피크닉 패키지’를 출시했다(12월 29일까지 예약, 23만 원부터). 같은 기간 운영하는 ‘라운지&코지’ 패키지는 랜딩 리조트 1박과 프리미엄 조식 2인, 랜딩라운지에서의 애프터눈 티 세트 2인 혜택을 제공한다(16만8000원부터).
주말에 즐기는 가을 브런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로비라운지에서는 대하, 가리비, 무화과 등 가을 식재료를 활용한 주말 브런치를 선보인다. 탁 트인 천장과 여유로운 테이블 배치로 안락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사과라임콤부차를 시작으로 가리비 애피타이저, 가을 열매 샐러드, 대하와 소고기 안심구이 등으로 구성된다(11월 29일까지, 1인 7만9000원).
가을을 담은 미식 한상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은 가을을 겨냥한 단품 세트인 ‘어텀스 테이블’을 내놓았다. 애피타이저, 메인 디시, 디저트 등 3가지 코스 메뉴로 런치와 디너 각각 운영한다. 런치에는 전복을 곁들인 해물 당면, 영양 비빔밥 정식 등을, 디너에는 송이버섯과 너비아니, 랍스터 테일 크림 등을 마련해 선택적으로 맛볼 수 있다(11월 30일까지, 런치 3만3000원, 디너 4만3000원).
우리의 전통주는 주정에 물과 조미료를 섞어 만든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주다. 몸에 부담을 덜 줄 뿐 아니라, 맛과 고상한 운치가 남다르다. 달콤한 감칠맛, 쓴 듯 아닌 듯 쌉싸름한 맛, 묵직하면서도 쾌청한 알싸한 맛….
프랑스 와인의 지역 고유 맛에 영향을 주는 테루아가 있듯 전국 팔도 고유의 특산 농산물로 지역의 맛을 보여주는 우리의 전통주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술의 빛깔, 맛, 향, 스토리, 그리고 곁들임 음식 등은 외국의 유명 술인 와인, 위스키, 사케 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에서 정부 차원의 전통주 지원 정책에 대한 요구가 이어져 우리 술의 가치를 더욱 높일 다양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의 전통주 제조업체들과 원료 공급 농민, 주류연구 전문학자, 유통업자들이 모여 만든 사단법인 한국전통주진흥협회는 장인들의 혼이 담긴 전통 명주의 역사와 맛,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다. 아울러 보다 과학적이고 정교한 테이스팅을 통한 세련된 맛 표현, 사실적이고 흥미로운 스토리 개발, 전통주에 어울리는 마리아주 개발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설날맞이로 달콤한 맛, 쌉싸름한 맛, 은은한 맛의 대표 주자인 전통 명주 3인방에 대해 알아본다. 이를 통해 한국 전통 명주의 역사를 알고 우리 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달콤한 맛 ‘감홍로’
제조원 농업회사법인(주)감홍로
유형 일반 증류주(용량 750ml, 375ml)
알코올 함량 40%
원재료 및 함량 쌀(국내산)70%, 조(수입산)30%, 정제수·용안육·계피·진피 ·정향·생강·감초·지초(자초)
Story
감미로운 맛, 황홀한 붉은 빛, 맑은 이슬의 의미를 담은 술. 감미롭고 붉은 빛, 강렬하고 독특한 향이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킨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이강주, 죽력고와 함께 조선 3대 증류주로 꼽을 만큼 명성이 높은 술이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감홍로로 유혹하고 ‘춘향전’에서는 춘향이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에게 이 술을 내어놓는다.
감홍로는 고려시대 때 평안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3대 명주 중 하나다. 6·25 전쟁으로 월남하기 전까지 평양에서 대대로 감홍로를 빚어온 가문의 주조 비법을 후손인 이기숙 명인이 섬세하게 복원했다.
누룩과 쌀로 빚은 술이 발효하면 1차 숙성시킨 후 두 번의 증류 과정을 거친 다음 한약재를 침출한다. 이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낸다. 도수가 높아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며 묵힐수록 풍미가 좋아진다. 색, 맛, 향이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 최고의 명주. 다른 음료수와도 잘 어울린다. 술에 약한 사람들이 칵테일을 만들어 마셔도 무리가 없는 격조 높은 술이다.
Taste
패션으로 치면 한복 두루마기에 걸친 모피 숄처럼 고급스럽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꽃향기와 계피향이 어우러지면서 내는 풍미가 일품이다. 한 모금 머금으면 혀끝에 살짝 감도는 단맛과 함께 스파이시한 향이 입안에 확 퍼진다. 높은 도수와 강렬한 향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목을 넘어간 후에도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안에 계속 머물며 여운을 남긴다. 섬세함과 중후함을 동반한 고급스러움이 가히 한국의 위스키라 불릴 만하다.
Food
맵고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지방이 적은 육포나 대구포도 감홍로의 맛과 향을 잘 살려주는 안주다. 스테이크, 숯불이나 그릴에 구운 돼지고기, 양꼬치구이 등 육류와도 즐길 수 있다. 해산물 샐러드, 신선한 허브로 마리네이드한 연어 등의 해물요리와도 궁합이 맞는다. 초콜릿, 블루치즈, 견과류와 함께 가볍게 마셔도 좋다.
쌉싸름한 맛 ‘진도 홍주·백주’
제조원 대대로 영농조합법인
유형 일반 증류주
용량 750ml, 375ml (진도백주 375ml)
알코올 함량 40%, 38% (진도백주 38%)
원재료 및 함량 쌀(국내산) 99%, 지초(국내산) 1%, 진도백주 쌀(국내산) 100%
Story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 풍경이로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이로 잘 알려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진도홍주의 맛에 반해 읊은 노래다. 지도 제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다 각지의 전통주를 접했을 터. 김정호 선생은 흥선대원군에게 완성된 대동여지도를 바칠 때 마치 붉은 눈물이 방울방울 모여 술을 이룬 것 같은 진도홍주를 함께 올렸다고 한다.
진도홍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지역 세도가들이나 살림이 넉넉한 민가에서 전통비법으로 빚어온 토속 명주다. 쌀이나 보리에 누룩을 넣어 숙성시킨 뒤 증류한 순곡 증류주. 마지막에 지초(芝草) 침출 과정을 거치면 붉은 빛을 띤다. 지초 뿌리에는 산삼 버금가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이 약초를 넣어 빚은 술은 음용뿐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효능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초 뿌리에서 우러난 붉은색이 황홀하다. 입술을 갖다 대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조선시대에는 ‘지초주’라 불렸는데, 임금에게 올리는 최고의 진상품으로 꼽힐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도는 한양에서 먼 남쪽 끄트머리에서도 뭍에서 떨어진 섬인지라 유배지로도 적지(適地)였다. 자연스레 귀양살이하러 온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가 지역사회에 스며들었다. 문장이나 글씨, 그림, 노래 등 수준 높은 문화에 술이 빠질 리 없었다. 시 한 수 읊으며 한 잔, 붓 한 획 긋고 한 잔, 노래 한 자락에 화답하며 또 한 잔. 이렇듯 유배지에서의 시름을 잊게 했던 술이 진도홍주 아니었을까.
진도백주에 붉은색을 띠게 해주는 지초를 침출하면 홍주가 된다. 백주는 국내산 쌀을 이용해 만든 밑술을 발효시킨 뒤 증류한 전통 소주다.
Taste
예상을 뒤엎는 맛.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깨끗하고 단아하고 견고한 느낌이다. 황홀한 비단노을 빛 아래 남성성이 숨어 있는 듯하다. 화끈하면서도 묵직한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단맛이 짧은 대신 향의 여운은 오래간다. 다시 말하면, 양면성을 지닌 개성이 분명한 독주. 스트레이트로 혹은 얼음을 채워 음미해도 좋지만 술에 약한 사람은 맥주나 탄산음료에 섞어 칵테일로 마셔도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좋아진다. 서가 한 귀퉁이에 놓아두고 가끔 한 모금씩 마시면 김정호 선생이 말한 “꽃구경할 때의 풍경”이 어른거릴지도 모른다.
진도백주는 알코올 함량이 38%. 꽤 높은 도수이지만 순곡주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이 살아 있어 마치 무엇을 그려도 되는 빈 도화지 같은 느낌이다. 목넘김이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끝 맛이 입에 맴돈다. 온더록스로 즐겨도 좋다. 화이트 스피릿(White Sprit)으로 활용하면 칵테일 맛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Food
육류, 생선과 두루 잘 어울린다. 다만 도수가 높고 향이 강해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이 좋다. 어란, 굴튀김, 진도 특산물인 구기자를 이용한 구기자갈비찜, 전복탕 등은 진도홍주에 잘 어울리는 최고의 안주. 큼직하게 썰어 노릇노릇하게 구운 두부스테이크, 쫄깃하고 담백한 문어숙회도 술맛을 돋운다. 기름진 중화요리를 곁들이면 부드럽고 알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호두, 아몬드, 대구포 등 가벼운 안주도 무난하다.
진도백주는 생선회나 전류, 산적, 쇠고기구이 등 다양한 한식 메뉴들과 잘 어울리며 육포나 땅콩 등 마른안주와 곁들여도 좋다. 매콤한 겨자 맛이 매력적인 냉채족발이나 샐러드도 궁합이 잘 맞는 안주다.
은은한 향 문배주 명작
제조원 문배주양조원
유형 증류식 소주 용량 750ml, 375ml
알코올 함량 25%, 40%
원재료 및 함량 조(국내산), 수수(국내산), 쌀(국내산), 효모, 정제수
Story
평안도 지방 전통주인 문배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임금에게 진상했던 술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문배주 기능 보유자 4대손인 이기춘 명인에 의해 재현돼 1986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90년도에 상품화됐다.
문배주에 사용되는 누룩은 밀, 술은 조와 수수를 이용한다. 수수와 조는 계약 재배를 통해 수매하고 있어 철저하게 품질이 관리된다. 순수 곡물로 만들어지는 술에서 문배나무의 과일 향이 은은히 풍긴다 해서 ‘문배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문배주는 빚어서 바로 마시지 않는다. 증류한 후 봉인해서 서늘한 곳에서 1년간 숙성시켜야 은은한 향과 깨끗한 맛을 자랑하는 명주로 완성된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빈을 대접하는 외교주로 쓰였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사용되는 등 품격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Taste
25% 부드럽고 편하다. 향긋하고 여리지만 강함도 느껴진다. 곡물로 만든 술인데도 싱그러운 과일 향이 느껴져 기분 좋은 취기가 가시질 않는다.
40% ‘문배주’라는 이름답게 한 입 머금으면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난다. 높은 도수이지만 정갈하고 깨끗하다. 강렬함도 느껴진다. 순곡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소함과 달콤함도 있다. 목을 넘긴 뒤에는 기분 좋은 풍미가 오래도록 남는다.
Food
리코타 치즈와 아몬드 등 견과류를 뿌린 샐러드와 즐기면 좋다.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를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민어 등 흰살생선에 달걀옷을 묻혀 고소하게 지져낸 전이나 지리 같은 깔끔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했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을 때 그랬고 국내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때 그랬었죠.
조직문화의 일환으로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밤 칵테일, 코리안 칵테일)나 소맥(소주 칵테일, 심플, 오로라, 레인보, 선라이즈 등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맥주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맛나게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몰라도 소주 칵테일은 되도록 멀리합니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올리는 장점은 있지만 술맛으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이죠.
무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철이나 운동 또는 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실거리로 맥주만큼 당기는 술은 없을 거예요. 전통주인 막걸리도 좋지만 아무 때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할 수는 없죠. 빈대떡 등 부침류나, 도토리묵 같은 무침류, 그도 아니면 김치 몇 조각이라도 앞에 놓여 있어야 막걸리를 마실 기분이 납니다. 매콤하거나 걸쭉한 전통 먹거리와 어울리는 게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외래주인 맥주가 걸쭉한 안주나 한식차림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이 ‘맞다’, ‘안 맞다’를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선택할 안주가 많다면 술 먼저 정하고 안주를 고르는 것이 애주가들에게는 더 익숙하겠지요.
음식과의 어울림을 따지는 데는 와인이 맥주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하겠습니다. 술과 음식의 조화(매칭, matching)를 진지하게 따지는 프랑스인들이 그런 매칭(Vins et Mets)의 전통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맥주 종류도 많고 브랜드도 많아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미식가나 애주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만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한 판매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건 제가 아직 진정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의 매칭은 많이 마셔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술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리오!).
지금, 맥주전쟁이 한창입니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새로운 우리 맥주 브랜드에 온갖 수입 맥주들이 가세해 진열대가 현란할 정도입니다. 눈이 즐거울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매력을 한껏 높이는 동시에 맥주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볼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근래 ‘테라(Terra)’라는 국산 브랜드가 나와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7월 기준으로 출시 3개월 만에 1억 병이 나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Kloud)가 나와 한동안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지요. 이런 판에 수입 맥주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있으니 가히 ‘맥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맥주전쟁도 이따금 정치·외교의 바람을 타게 돼 있죠. 전장(戰場)을 들여다보면, 현해탄의 파고가 이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의 맥주시장이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수입 맥주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일본 맥주가 전달에 비해 45%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새 맥주 강국 벨기에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맥주가 2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 애호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갔다지만 열혈팬들은 여전히 27%의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다네요. 현해탄의 파고가 다시 낮아지면 옛 팬들이 되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맥주 브랜드의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지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벨기에 맥주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라거(lager)와는 다른 에일(ale)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기호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죠. 에일을 주로 하는 수제맥주(craft beer)에 대한 기호도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데 점유율은 아직 전체 5조 원 시장의 1.3%에 불과하다지요. 연평균 40%의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영국에 체류할 때 펍(pub)에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그냥 에일을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캠퍼스에도 맥주 카운터 같은 게 있는데 머그나 파인트에 받아와 잔디에 비스듬히 누워서 즐겨 마시던 불그스름한 에일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수제맥주는 브루어리(brewery), 즉 양조장과 판매장이 한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 양조장이 거느리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큰 도시에는 길에 수제맥주 간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길에 나가서 수제맥주집이 안 보이면 큰 식당이나 골프클럽 같은 데로 들어가 신선한 생맥주(draft beer)를 시켜 마실 수도 있지요. 생맥주는 병이나 캔이 아닌 캐스크(cask)에서 직접 받아내므로 양조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사치(?)가 있지요. 게다가 “맥주는 글라스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Bier muss im Glas wachsen)”는 말도 있으니 기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맥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맥주시장이 워낙 커서 우리나라 맥주의 점유율을 따져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빠르게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맥주를 생각하면 수출이 되기나 할까 싶군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맥주 수출은 2010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주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톤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판매액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데 해외에서 우리나라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향수에 젖은 동포들과 케이 컬처를 업고 늘어나는 한식당들이 아닐까 싶네요. 맥아(麥芽)나 홉(hop) 등 맥주 원재료에서 취약하긴 해도 머지않아 우리의 제조기술이 올라 훨씬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해야겠죠.
맥주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기원전 2500여 년쯤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 인부들이 맥주를 마시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맥주 제조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곡물이 비에 젖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는 순간 맥주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농경시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물 대신 에일 맥주를 늘 비치해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일은 발효 온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윗부분[上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것이고 라거는 발효 온도가 낮은 효모를 사용해 아랫부분[下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차이가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에일과 라거는 향미나 목넘김이 상당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1561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을 공포했는데 맥주는 물, 홉,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원료가 들어간 맥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밀맥주 제조는 면세 지역인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빌헬름 4세를 취향 면에서 맥주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령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 내 맥주 제조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지금도 어떤 독일 맥주 브랜드는 이 영(令)에 따라 주조했음을 밝히고 있죠).
독일과 경쟁이 될 만한 체코의 맥주가 뜨기 시작한 것은, 1842년 플젠(Plzen)에서 제조된 황금색의 필스너 라거가 나오면서입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투명 유리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장을 휩쓸다가 독일로 역수출된 것이 필스너인데 대표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원조 필스너란 뜻으로 체코의 자존심을 지키는 한 축이죠. 맥주의 본방을 독일로 치더라도 맥주 강국이 의외로 체코라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체코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3ℓ로 24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 다음은 오스트리아(106ℓ), 독일(104.2ℓ), 미국(74.8ℓ)의 순이고요.
스텔라 아르투아, 벨기에産
맥주에 대한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기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브랜드를 접하다 보면 기왕의 취향과 다른 맥주들을 찾게 되지요. 언젠가 브뤼셀에 들렀을 때 미술관 옆 큰 광장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던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생맥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양조장이 1366년에 세워졌다 하니 연도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 족하다고 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스텔라 아르투아를 멀리할 수 없답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Positano)에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던 페로니(Peroni)의 완벽한 블론드 빛깔과 가뿐한 그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에 가면 찾아서 마신답니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어느 광장에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맥줏집(Cervezaria)이 있는데 굳이 그 집을 찾아 헤밍웨이가 와서 앉곤 했다는, 창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트레야(Estrella) 생맥주를 주문해 마셔보기도 했죠.
에스트레야, 스페인 바르셀로나産
지금까지 유럽 맥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유럽 밖의 맥주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입량 2위를 자랑하는 미국산 맥주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밀러, 쿠어스 등. 미국 하면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죠. 오래전 뉴욕의 시(Shea) 스타디움에서 메츠와 양키스 게임을 보러 갔을 때 남들 하는 대로 종이컵에 든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사 마셨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인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 맥주 하면 도매금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광고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미켈롭(Michelob)이란 브랜드를 즐겨 마신 적도 있습니다.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를 타고 멋진 블론드의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는 장면이라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라거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와 홉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나 쌀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추면서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것도 미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맥주의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만 위스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써서 버본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으로 변화를 이뤄낸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국 중의 대국인 중국의 칭따오(Tsingtao, 청도) 맥주를 잠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공정한 일이겠죠. 사실 중국 식당에서는 칭따오 외에 다른 맥주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칭따오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에서 드러나게 눈에 띄는 맥주가 칭따오 아니겠습니까. 칭따오 맥주는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화요리에 얹혀서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칭따오 맥주는 19세기 말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산둥반도에서 독일 기술자들이 맥주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높은 기술 전승 혜택으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맥주 원료는 물, 맥아, 홉 그리고 효모인데 무엇보다 우선 물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나오겠지요. 아무리 물이 좋아도 좋은 맥아가 없고 좋은 홉이 나지 않는다면 훌륭한 맥주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홉은 덩굴식물의 꽃인데 종류에 따라 레몬이나 포도, 솔잎, 재스민 같은 다양한 아로마를 가미해주죠. 말하자면 맥주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데 홉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물은 정제해서 만들 수도 있다지만 좋은 맥아나 홉은 수입해 와야 합니다. 그러니 제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원가절감을 하다 보면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죠. 아무튼 우리 스스로 근사한 맥주를 만들 때까지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와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채워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관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 대사를 지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저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 국제교류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라산 자락의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는 등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어느 땅은 닿는 순간 전혀 다른 행성에 도달한 느낌이 든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슬란드야말로 이렇게 불러 마땅한 야생의 땅임에 틀림없다. 빙하에서 내려온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온종일 생명체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도로를 달리다가 잠시 멈춰 선 목장에서 꼬물꼬물 뛰어노는 양떼라도 만나게 되면 새삼 생명의 강인함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곳. 다시 차를 몰다가 시원하게 내리꽂는 폭포 옆으로 러브마크라도 날리듯 선명한 무지개를 보노라면 살아서 이곳에 닿은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행성을 여행하는 최적의 방법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최적의 방법은 자동차를 빌려 1번 링로드(ring road)를 따라 섬을 둥글게 한 바퀴 도는 것이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일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만으로도 수도 레이캬비크에 숙소를 두고 핵심 여행지가 몰려 있는, 이른바 골든 서클(golden circle)을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겨울엔 많은 눈 때문에 길이 끊기는 일이 잦지만 상대적으로 날씨가 온화한 7~8월에는 링로드 자동차 여행은 물론 다양한 버스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빙하가 떠다니는 요쿨살론(Jokulsarlon)과 간헐천 게이시르(Geysir), 황금폭포라는 의미를 지닌 굴포스(Gullfoss), 폭포 뒤를 트레킹할 수 있는 셀랴란드스포스(Seljalandsfoss),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스코가포스(Skogafoss)까지 남서쪽에 주요 명소가 집중되어 있다.
빙하가 떠다니는 신비로운 풍경 요쿨살론
겨울이면 온통 흰색 세상이 되는 아이슬란드는 여름엔 한 번도 세상에 내보인 적 없는 듯 순수한 모습을 드러낸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프로메테우스’, ‘왕좌의 게임’, ‘인터스텔라’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아이슬란드는 “지구의 심장부로 통하는 현관”,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연습 삼아 만들어본 곳”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신비함을 자아내는 나라다. 여름인데도 거친 바람과 낮은 온도는 패딩을 입고도 옷깃을 여미게 했다.
검은 모래 해변과 처음 보는 땅들, 붉은 첨탑의 교회들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하나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하얗다 못해 차라리 푸른빛이 도는 빙하들 사이로 샤프란색 승복을 입은 승려가 유유히 사라져간 요쿨살론은 꿈속인 듯 아련했다. 빙하에서의 의식 중 하나인, 위스키에 빙하 조각을 넣어 마시는 맛은 상상 그 이상으로 짜릿했다. 그래서일까? 영국 시인 위스턴 오든(Wystan Hugh Auden)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아이슬란드에 관심을 갖는다. 그 적은 수의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구수 10만의 힙한 수도, 레이캬비크
총인구 34만 명 중 약 10만 명이 모여 사는 레이캬비크는 예쁜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서점, 레코드 가게가 정갈하게 모여 있는 아티스틱하고 힙한 도시다.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도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레이캬비크조차 한산하기 짝이 없어서 이 나라 말에 ‘북적인다’라는 단어가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중세의 성처럼 우뚝 솟은 할그림스키르캬(Hallgrmskirkja) 교회는 레이캬비크의 상징으로 건축물도 아름답지만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형형색색의 집과 푸른 바다의 조화로움은 잠시나마 시력이 좋아진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쏘다닌 탓에 문득 시장기가 돌아 들어간 현지 음식점 카페 로키(Loki)에서 용기를 내어 이 나라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말린 생선포와 버터 바른 딱딱한 호밀빵, 삭힌 생선요리는 실패한 모험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도전해봤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배고픔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레이캬비크의 숙소들은 쾌적함을 자랑하는데
8명이 자는 게스트하우스마저 조용했다. 이곳에선 자는 사람 또는 책 읽는 사람뿐이어서 발걸음 소리가 안 들리도록 걸어야 했다. 교류를 원한다면 로비를 이용하라고 안내 문구가 있었다. 성수기인 여름엔 비싼 물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오므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천국에 온 듯한 온천 체험, 블루라군
아이슬란드에 왔다면 아무리 비싸도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신선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다는 야외 온천 블루라군이 그곳이다. 5000㎡에 달하는 이 거대한 야외 온천은 구름인 양 뽀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로 뒤덮여 있어 마치 천국에 온 듯한 환상을 일으키게 했다. 평소 인증 숏을 우습게 여기는 여행자들도 핸드폰과 카메라를 손에 들고 일생일대의 추억을 저장하느라 바쁘다.
발바닥에 닿는 하얀 진흙 실리카 머드는 천연 무기염이 풍부해 피부병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니 추위에 웅크렸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지구의 근원에서 올라오는 야생의 기운까지 듬뿍 받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검은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북극광 오로라까지 만난다면 행운은 당신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