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모임에 딱 맞는 술자리

입력 2025-12-20 06:00

[세대를 잇는 맛, K-푸드 '한식'] 한실과 우리 술 페어링

최근 한식의 깊은 맛과 우리 술의 풍미를 함께 즐기는 ‘푸드 페어링’ 문화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품격 있게 즐길 수 있고 입맛에 익숙한 한식과 은은한 우리 술의 조화는 건강과 기호를 모두 만족시킨다. 이번 연말, 가까운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우리 술과 한식의 정갈한 페어링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한식과 전통주의 세력 확장

바야흐로 한식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술, 우리 전통주 또한 맹활약하고 있다. 막걸리나 이를 여과한 맑은 청주(약주)는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저온에서 숙성한다. 향과 맛을 은근하게 끌어올리는 시간을 더해 더욱 고급스럽고 다양한 전통주를 만들고 있다.

전국에 수백 곳의 전문점, 보틀숍 등 전통주 전문 업장이 들어서고,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한식을 취급하는 외식 업장에서는 전통주 몇 종 정도는 갖추는 추세다.

해외에서는 어떨까? 국순당 등 규모 있는 전통주 양조장들은 전담팀을 두어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 소규모 양조장들의 전통주를 미국·홍콩·싱가포르 등 한식에 주목하는 국가에 유통하는 전문회사들도 속속 늘고 있다. 우리 전통주는 대부분 살균하지 않아 발효균이 살아 있는 ‘생주’다 보니 유통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현지에서 직접 전통주를 생산하는 전통주 양조장들도 있다. 미국 뉴욕의 ‘하나 막걸리’, 프랑스 파리의 ‘메종 드 막걸리’, 캐나다 퀘벡의 ‘건배 막걸리’, 영국 런던의 ‘오감 타파스바’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해진 우리 술, 깊어진 페어링

이렇게 한식과 전통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자, 이를 함께 즐기는 ‘푸드 페어링’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깊이만큼 중요한 것이 넓이다.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서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음식과 술의 다양성이다. 다양한 개체가 존재해야 다양한 조합도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소위 ‘먹고 살 만해지면서’ 한식의 다양성에 점진적인 발전이 있었다.

‘소맥’ 문화가 워낙 강하며, 파인다이닝에서 와인과 사케 등 수입 주류가 이미 중·고가로 자리 잡고 있어, 전통주는 상대적으로 운신 폭이 매우 좁았다. 하지만 2016년경부터 전통주가 주목받으면서 다양한 술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막걸리에 치중됐던 한식과 전통주의 페어링 일변도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요즘에는 약주, 증류식 소주, 한국 와인 등 다양한 주종과 이에 어울리는 한식의 페어링을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업장이 늘어나는 중이다.


연말 모임 빛내는 전통주 페어링

전통주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많은 전통주 전문점이 젊은 층 중심으로 운영해 퓨전·컨템퍼러리 안주가 유행하면서 전통 한식의 색이 흐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시니어들이 편하게 방문할 만한 곳은 더 드물다.

연말 모임에 어울리는 전통주 페어링 장소를 찾는 독자들을 위해, 우선 전통주 중에 가장 비중이 큰 막걸리·약주·증류식 소주를 각각 한 제품씩 선정했다. 이와 조화를 이루는 정통 한식 안주를 제공하는 전문점을 소개한다. 전통주와 한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선택지가 될 만한 곳이다.


누가 뭐래도 전통주 대표주자

막걸리


주종 해남막걸리 9도(전남 해남 삼산주조장)

안주 맡김차림상

장소 얼쑤비스트로(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19, 2층 203호)


막걸리는 전통주를 대표하는 주종이다. 전통주 시장의 9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이전부터 서민들의 술로 자리매김했다. 쌀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나는 다양한 전분질 재료를 활용해 빚는다. 대중적인 시판 막걸리는 대부분 ‘입국’이라는 일본에서 유래한 당화제와 효모를 사용했으나, 요즘은 과거 조상들이 사용했던 전통 누룩 또는 이를 개량한 누룩을 활용해 전통적이면서도 품질이 뛰어난 막걸리를 만든다.

2024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고도(알코올 도수 8도 이상) 탁주’ 부문 대상을 받은 전남 해남의 삼산주조장 ‘해남막걸리 9도’는 해남산 찹쌀과 멥쌀 그리고 전통 누룩만 사용해 한 달간 발효·숙성해 빚는다.



이 막걸리를 판매하는 ‘얼쑤비스트로’의 맡김차림상과의 페어링을 추천한다. 반가 음식을 공부하는 조성주 셰프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전통적인 한식 안주를 선보인다. 맡김차림상은 주인의 재량에 상차림을 맡기는 것으로, 오마카세라는 일본어가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걸 피하고자 우리 식으로 지은 용어다. 이번에 택한 저녁 맡김차림상은 인당 8만 9000원에 총 8개 코스를 낸다. 계절 죽–나물 등 한입거리–수란채–육전–갈치만두–고기구이–식사(밥, 국, 반찬)–아이스크림 코스가 일반적이다.

해남막걸리는 쌀의 단맛을 자연스럽게 잘 뽑아내면서도 감미료 등 첨가물이 없어 담백해 나물·육전 등의 한식 안주와 잘 어울린다. 특히 갈치를 살만 발라내고 안에 고기를 채운 갈치만두는 이 집의 대표 메뉴다. 갈치살의 매력적인 풍미를 막걸리가 잘 받쳐주어 환상적인 페어링이 된다.


깊은 맛과 향의 한국식 청주

약주


주종 청진주 16도(경기도 가평 전통주연구개발원)

안주 각색어포, 궁중떡볶이

장소 유록(서울시 중구 소공로 46, 1층 118호)


한약재가 들어간 술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약주는 한국식 청주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백세주 등 한약재가 들어가는 약주도 있으나 대부분 곡물로만 빚은 ‘순곡주’다. 막걸리를 빚어 이를 맑게 거른 술이며, 와인·사케 등과 비슷한 알코올 도수를 가진다. 곡물의 사용량이 많고 더 긴 숙성기간을 거치는 등 막걸리에 비해 고급술에 속한다. 양반가나 왕실에서 주로 빚어 마신 술로, 향과 맛이 섬세해 수준 높은 한식과의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전통주 교육·훈련기관으로 지정돼 많은 가양주인의 배움터이면서 양조장 면허를 내고 고급스러운 약주를 소량 생산 중인 전통주연구개발원(원장 이상균)의 청진주. 이를 판매하는 유록의 각색어포와 궁중떡볶이를 청진주와 페어링했다.



각색어포는 전복·새우·생선 등을 포를 떠 말리고 구워낸 한식 안주인데,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질뿐더러 그 색감이 매우 예쁘다. 약주는 식사를 곁들인 반주로도 좋지만 와인처럼 술을 중심으로 마시기에도 좋은데, 각색어포는 이때 즐기기에 적당하다. 다양한 해산물을 말린 응축된 맛과 이를 상승시키다가도 깔끔하게 씻어주는 맑은 술의 조화는 매력적이다.

궁중떡볶이는 상대적으로 묵직한 안주다. 떡을 중심으로 쇠고기와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다. 고추장 양념 범벅의 일반 떡볶이와 달리 간장으로 간을 해 재료의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청진주는 최소 100일 이상의 저온 숙성을 거쳐 담백하면서도 쌀의 미세한 단맛을 잘 살린 술이다. 풍부한 재료와 담백한 양념의 궁중떡볶이와 즐기기에 최적이다.


한 방울씩 귀하게 모은

증류식 소주


주종 진맥소주 40도(경북 안동 밀과노닐다)

안주 보쌈과 세 가지 김치

장소 락희옥 마포본점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70, 공덕더샵아파트 101동 1층)


소주라는 한 단어를 같이 쓰지만 희석식 소주가 주정에 물을 타고 조미한 저가의 술이라면, 증류식 소주는 막걸리 또는 약주를 끓여서 이슬을 받아내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고급 증류주다. 요즘 높은 도수의 술을 선호하지 않기에 낮은 도수의 증류주가 많지만, 본래 증류주는 위스키·코냑·바이주 등이 그렇듯 최소 40도는 넘어야 그 향과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경북 안동에서 직접 밀 농사를 지어 만드는 진맥소주는 22도, 40도, 53도의 다양한 밀소주를 출시한다. 주력은 40도. 얼음이나 물을 타지 않고 상온으로 마시는 게 증류주 음용의 정석이지만, 얼음을 최소한으로 넣고 잘 스월링(Swirling, 소용돌이치듯 흔듦)해 바로 맛보면 알코올 도수는 낮추되 향과 맛을 살릴 수 있다.



이에 어울리는 안주는 한식 주점의 원조로 꼽히는 락희옥의 시그니처 안주인 보쌈. 흔한 안주 같지만 이 집의 보쌈 고기는 물에 담가 삶지 않는다. 재료 자체의 수분만으로 시간을 들여 쪄내는 무수분 방식. 국산 돼지 오겹살 육즙의 맛과 향이 빠져나가는 걸 최소화하고 이를 농축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 세 종류의 김치를 함께 제공해 다양한 조합의 변주가 가능하다.

아무리 신선한 재료라 해도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는 있을 수 있는데, 이때 통밀을 사용한 밀소주인 진맥소주를 곁들인다. 한입 머금는 순간 불필요한 냄새를 깔끔하게 잡아준다. 쌀과는 또 다른 밀 향의 술과 보쌈의 녹진한 맛의 조합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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