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망가진 몸을 고치기 위해 귀농했다. 죽을 길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기 위해 산골에 들어왔다. 그 외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봤다. 결과는?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시들어가던 그의 구슬픈 신체가 완연히 회생했으니. 산골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 아름답고 기묘한 지구별과 이미 작별했을 거란다. 현명한 귀농이었다는 거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정도사’라 부른다. 이 사람, 정경교(62) 씨의 삶에는 색다른 게 있다. 누가 뭐래도 제멋대로 산다.
경교 씨는 오랫동안 대양을 누볐다. 바다에서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나나 골똘히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외항선 항해사. 이게 그의 직업이었다. 인생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마냥 돌고 도는 일이라는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배를 타고 지구를 36바퀴쯤 돌았다는 게 아닌가. 오만가지 경험을 했을 거다. 생사를 넘나들기를 밥 먹듯이 거듭했단다. 긴 항해 뒤 잠시 정박한 낯선 항구의 주점에서 이마에 총을 들이대는 건달들을 깡으로 해치우기도 했다. 그는 무술에 능란하다. 그러나 몸에 찾아온 병증은 무술로 때려눕힐 수 없다. 정 씨는 자신의 몸이 내지르는 화급한 비명을 듣고 배에서 내렸다.
“어느 날, 술 마시다 혼절했어요. 이러다가 바다 위에서 객사하겠구나, 두려운 생각이 엄습하더라고요. 온몸의 에너지가 모조리 고갈된 상태였던 겁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됐다는 거. 외항선원 생활이라는 게 원래 건강을 망치기 쉽습니다. 밤낮이 따로 없는 고된 업무, 늘 부족한 잠, 무절제한 음주, 극도의 스트레스 등등이 겹치다 보면 한계 상황에 이르게 마련이거든요.”
“시골에서 살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온 거죠?”
“귀농을 해서 오가피 농사를 짓자! 그런 결심을 했어요. 여기엔 이유가 있어요. 제가 배를 타면서도 건강 복구를 위해 이 약 저 약, 몸에 좋다는 걸 다양하게 먹었는데요, 오가피 효력이 가장 좋았어요. 공기 좋고 물 좋고, 자연환경 살아 있고, 그런 깨끗한 산촌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손수 오가피 농사를 지어 장복한다면 건강해지겠거니, 건강한 심신으로 나의 영원한 관심사이자 길동무인 무예 수련에 전념한다면 인생 자체가 달라지겠거니, 그런 확신과 구상이 있었던 겁니다.”
“계획대로 잘 흘러갔어요? 시련을 피할 수 없는 게 귀농인데. 심지어 고행길인데.”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뭘 하든 미쳐야 도달할 수 있다는 거! 제겐 스스로 선택한 일엔 완전히 미치는 버릇이 있어요. 귀농하자마자 모아뒀던 자금으로 집을 짓고 밭 200평을 사 오미자 농사를 시작했어요. 새벽마다 반드시 두어 시간 무술 수련을 했고요. 처자를 건사하기 위해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외항선 항해사가 배에서 내린 까닭
정 씨가 사는 마을은 진안군 덕태산 백운계곡 아래에 있다. 사시사철 등산객이 바글거리는 길목이다. 해서, 식당은 용케도 성황이었다지. 그러나 접었다. 돈벌이는 될망정 식당일에 발목 잡히기 싫어서였다. 때마침 이웃 마을에 빈집 매물이 나와 그걸 사들였다. 집이라 할 것도 없는 폐가였다. 풀덤불에 묻혀 쓰러져가는 방앗간이었으니까.
“건강이 빠른 속도로 좋아지자 본격적으로 무예 공부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러기엔 방앗간 자리가 적격이라 본 겁니다. 골격만 남기고 거의 다 털어낸 뒤 다락방이 있는 2층집으로 싹 개축을 했어요. 폐자재나 피죽을 구해 직접 지었어요. 엉성한 집이지만 무려 3년간 혼자 뚝딱거려 완성했지요.”
“어디서든 다시 보기 어려울 재미있는 집이에요. ‘영웅문’이라 쓴 간판도 걸어두셨네?”
“소림사의 무예 영웅들을 기리며 지은 당호입니다. 하하핫! 이전에 살았던 식당집도 홍콩 영화 ‘동방불패’에 나오는 무사의 집을 본떠 지었어요. 무림 고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동경. 어려서부터 제겐 그런 게 있었어요. 학창 시절부터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 다양한 무예를 섭렵했죠. 선원생활을 할 때도 틈틈이 중국의 전통무예를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습니다. 귀농 이후에는 드디어 본격 수련에 접어들었고요.”
“무술과 함께하는 삶의 꿈을 귀농으로 비로소 이룬 사람. 그게 정 선생이라는?”
“그렇죠. 비록 아직은 부족하지만 점점 심화되는 무술 수련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느낍니다. 어릴 적부터 제가 무협지를 끼고 살았어요. 흰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도인을 꿈꾸었어요. 동심으로 자라난 몽상이었지만 무예와 함께하는 지금의 생활은 제게 너무도 이상적입니다. 인생을 제법 깊게 바라보는 안목과 에너지도 생겼어요. 삶에는 우리가 경험하거나 상상한 것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신비하고 더 고귀한 경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결국 무술 공부가 제게 신세계를 열어준 셈이죠.”
무술과 함께하는 귀농인의 삶
정 씨의 산방 ‘영웅문’은 무협영화 세트장을 닮았다. 오잉! 대번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집 안팎에 온갖 무술 도구와 특이한 장식물과 총천연색 휘장들이 어지러이 혼재해 있어서다. 내 취향대로 이왕이면 재미있게, 이왕이면 익살스럽게 살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집이다. 인생이 어차피 쇼라면, 비극보다는 희극 쪽으로 생활을 몰아가겠다는 지향이 엿보인다.
이 집이 완성된 건 2008년. 이후 10여 년간 그는 농사와 무술 수련, 오직 이 둘을 전공 삼아 정진했다. 몰입하면 성취하는 법. 무술의 진도가 질주처럼 빨라지고, 부실했던 몸은 근육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 옹골찬 몸으로 날고 솟으며 고도의 무술 품새를 수련해왔다. 시들어가던 건강을 복구하고, 단련된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일이 쉬울 리 있겠는가. 그는 어쩌면 독종이다. 들입다 공부만 파는 ‘범생이’를 닮았다. 또 어쩌면 수행자다. 그가 무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건 정신의 산정(山頂)인 것 같다. 이미 ‘신세계’라 일컬을 만한 한 경지를 슬쩍 봤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제가 한때 크리스천이었습니다만 영성이랄까, 영혼의 비밀이랄까, 그런 본질적인 차원을 실감으로 경험한 일이 좀 있었어요. 삶으로만 완료되지 않는 또 다른 세계, 그런 게 있다고 믿게 된 거죠. 그렇기에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됐고요. 무술 수련은 결국 도(道)를 찾는 공부이자 활인(活人)의 길입니다. 나 하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욕심에서 벗어나, 남들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공부이기도 하고요.”
정 씨에겐 따르는 제자들이 있다. ‘영웅문’ 마당에서 자주 함께 수련을 한다. 지역 문화행사에 초대받아 무술 시연도 한다. 방송 출연도 잦았단다. 때로는 ‘오가피 명인’으로, 때로는 ‘산골에 사는 괴짜 도사’ 명색으로. 한 TV 방송에서는 괴력을 과시했다. 한겨울 계곡 암벽에 꽝꽝하게 뒤엉긴 얼음장을 이야압! 하는 외마디 기합 하나로 산산이 부서뜨린 것. 생생한 현장 영상이라 무슨 속임수를 썼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범상치 않은 내공, 정 씨는 그 이색적인 기운이 자신의 내부에 축적되고 있다는 데에 스스로 놀란다. “어라, 이게 뭐지? 나 왜 이러지?” 그렇게 말이다. 아울러, 좋은 에너지를 얻었으니 좋은 쪽으로 승화시키자는 결론에 닿았다고 한다. 희한한 재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도사가 횡행하는 세상임을 잘 알기 때문이겠지.
‘태평농법’이 가능한 오가피 농사
무술이 정 씨의 정신적 동행이라면 오가피 농사는 단 하나뿐인 생계 수단이다. 유행가만 유행을 타지 않는다. 농작물도 유행을 탄다. 흥행에 롱런하는 작물은 없다. 오가피도 그중 하나. 이미 오래전부터 과잉 생산돼 흔히들 파내고 다른 작물로 전환했다. 실정이 그렇건만, 그는 그걸 왜 신주단지 모시듯 붙잡고 살지?
“일찍이 외항선을 탈 때부터 ‘필’이 꽂혀 귀농의 한 계기가 된 게 오가피입니다. 실제 농사를 지어 장복을 하면서부터는 더 신통방통했어요. 제 체질에 잘 맞는 탓일까,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약초는 없다고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에요. ‘본초강목’엔 오가피가 금은보화보다 낫다고 기록됐더라고요.”
“제아무리 유망한 약초라 해도 농부가 생산을 해서 소득을 올리기까진 힘든 과정의 연속이지 않겠어요? 농사 초보자에겐 더욱 가시밭길이었을 테고.”
“영농 교육도 받았어요. 이웃 농부들에게도 배웠고요. 근데 오가피 농사가 원래 타 작물에 비해 수월합니다. 병충해에 워낙 강해 농약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이른바 ‘태평농법’이 가능한 작물이라는 거. 풀만 어느 정도 잡아주면 알아서 잘 성장합니다.”
“재배 규모는? 수익성은?”
“현재 2만 평 정도로 규모가 늘었어요. 산지를 사 농장으로 개간하길 거듭했어요. 다른 약초들도 재배하지만 주된 작물은 단연 오가피예요. 오가피 열매를 수확해 진액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가공공장도 운영하고 있어요. 소득은 미흡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앞날의 전망은 긍정적이라는 거. 단기간에 떼돈을 벌어 생기는 폐단을 고려한다면, 한동안 좀 궁한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보고요.”
상처도 삶의 또 다른 이름
2만 평짜리 약초농장. 200평으로 시작한 농사가 크게 불었구나. 관에서 주관하는 영농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장기 저리 영농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도시에서보다 빨리 일어설 수도 있다는 게 정 씨의 판단이다. 그렇더라도 어차피 빚. 뭔가에 적당히 쫓기는 게 없는 인생엔 스릴과 탄력이 없다. 그러나 굶주린 멧돼지처럼 꽁무니를 사납게 들이받는 부채에 허구한 날을 허덕일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마침내 벌렁 나자빠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자빠지자고 참여한 게 인생은 아니겠고 말이다.
“모든 재능을 쏟아 농사를 지어야죠. 당장의 수익구조가 열악하더라도 집요한 공을 들여 미래의 희망이 보인다면 절반은 이미 성공한 거 아니겠어요? 그러자면 나만의 독창적인 농산물 생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해요. 저는 내심 최고의 오가피 생산 농민이라 자부합니다. 가령, 진액을 만들더라도 보통은 대여섯 시간을 달이지만 저는 이틀을 달여 진정한 농축액을 만들어요. 약효가 극대화되는 고품질 가공품을 생산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단골이 붙게 마련이에요.”
“도시에서 유능하게 잘 살았다는 사람이 귀농을 해 오히려 뒤죽박죽이 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더군요. 주변 귀농 농가들의 형편은 어때요?”
“농사란 몸을 최대치로 쓰는 직업이에요. 쉽지 않다는 거. 열심히 일했으나 건강부터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요. 가장 불행한 케이스죠. 반면, 농사를 통해 심신이 함께 건강해지는 사람들도 있어요. 과욕을 버리고, 농사일도 일종의 정신수련이라 여기는 게 상책이라 봅니다.”
“정신수련은 고상한 가치를 지니지만 정작 실천을 결여한 채 거룩한 폼만 잡다 끝나기 십상이죠. 어차피 담금질의 연속인 인생 자체가 이미 두말할 것 없는 수련일 테고요. 새삼 정신수련이 왜 필요하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인생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그래서 무예에 정진해요. 농사일에도 전념하지만 무예 다음이에요. 무예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라 믿으니까. 생활에 수련이라는 정신활동이 가세할 경우엔 삶의 질이 달라져요. ‘빛의 세계’라 할 만한 영성까지 갈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게 내면에 얼룩진 상처를 줄이는 최상의 처방이겠죠.”
상처. 애초에 삶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상처를 피할 길이 없다. 상처란 삶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 무기징역처럼 지겨운 상처를 정 씨는 무술 수련으로 쓱싹 해치우는 것 같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단다. 아내와의 이혼에서 얻은 번뇌가 그것.
“여자들에게 귀농생활은 너무도 힘들 수 있어요. 한평생 동고동락하자 했으나 견디질 못하더라고요. 아내가 떠난 뒤 제가 방황을 했다면 상처가 더 커졌겠죠. 그러나 보란 듯이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부끄러울 게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놈의 상처라는 건 영 사라지질 않아요. 끙.”
이혼도 참신한 해방일 수 있는 걸 왜 그러시나? 난 그리 생각하지만, 그는 먹먹한 표정으로 포옥 한숨을 몰아쉰다.
◇ 정경교 씨가 주는 귀농 Tip ◇
•초기의 과도한 투자는 금물이다. 5년쯤 농사 경험을 쌓아 안목이 트일 때 본격 투자를 해도 늦지 않다.
•집부터 먼저 잘 지으려 노력하지 마라. 처음엔 세를 얻어 살거나 극히 간소한 건축을 하자. 그렇게 살다 보면 자신의 취향과 마을 실정에 어울리는 집이 어떤 형태일까를 저절로 깨닫게 되니까.
•독립적인 사생활이 보장되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과 농촌 공동체의 관습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투철히 인식하자. 잘난 척하거나 매사 앞에 나서다가는 소외된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쌀가마니를 공깃돌처럼 다루고, 바윗덩이로 공차기를 했다는 기인. 축지법과 경공법으로 허공을 날다시피 한 무림 고수. 탄허 스님이 삼배(三拜)를 올렸다는 도인. 원혜상인이라고, 전설적 고수의 이름을 들어보셨는가? 162세 장생을 누렸다는 그의 기적이 믿어지는가? 뻥이라고? 증인이 있었다. 원혜상인의 수제자 박대양(2017년 작고). 그는 타오르는 존경심으로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술회했다. 박대양의 무공 역시 초절정 판타지 수준이었다지. 구름을 끌어당겨 마음먹은 대로 부렸다는 게 아닌가. 박대양은 전통무예 집단 기천문(氣天門)의 초대 문주(門主)였다.
현재의 기천문은 2대 문주 박사규(70)가 이끈다. 문주란 문파의 주인이니, 최고 지도자이자 최강 실력자다. 외양을 볼까? 단단한 몸피에 걸친 개량한복은 희어 눈부시다. 머리칼과 수염 역시 세월의 채색으로 허옇다. 전체적으로 허연 작풍이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도인 티를 느낄 수 없는 형용이다. 그렇다고 티 나는 게 없는 게 아니다. 눈매와 눈길에 공력이 서려 있다. 유난히 순하고 환하고 따뜻한 눈빛이지 않은가. 풍경을 바라보듯 가만히 바라보자니 심지어 동안이다. 도가 익으면 어린애 얼굴이 된다. 나는 그게 도인 티라 믿는다.
예로부터 신선이나 도인은 늙어 어린애가 된다 했다. ‘무(無)’를 공부하는 게 도 수련이기에 내공이 붙으면 내부에 아무것도 없게 된다. 세상에 올 때 붙이고 나왔던 천진이나 순진을 다시 내 것으로 삼게 되는 거다.
해서, 도인 영감님들이 모이면 소꿉놀이하는 어린애처럼 놀았다. 낄낄거리며 장난을 즐겼다. 티베트의 어떤 도인은 숨넘어가기 직전, 옷 안에 폭죽을 잔뜩 둘둘 말아 숨겨두었다. 화장 장작불이 붙자마자 폭죽이 사방으로 신나게 터졌고, 제자들은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다지. 박 문주의 동안과 눈빛에도 장난기가 설핏 비친다.
그나저나, 기천문은 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가. 불철주야 무예를 닦고, 기필코 도를 얻어 어디에 용하게 쓰자는 건가. 박 문주의 얘길 들어봐야겠다.
“기천이란 한마디로 몸을 단련해 지혜를 얻는 수행입니다. 몸으로, 몸짓으로 행하는 ‘반야심경’이자 ‘천부경’이라 할까. 유불선(儒佛禪)을 초월하는 공부라 해도 좋고. 우리 사부 박대양 진인의 전언에 따르면, ‘우주 밖에서 우주를 보는 눈을 얻는 공부’인 게고.”
“불가의 참선이 몸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천은 몸이라는 그릇 속에 고도의 정신을 담아내는 수행이라는 얘긴가요?”
“육신은 별것 아니라고,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을 닦으라고 선가(禪家)에선 가르치지만, 기천은 몸을 중시합니다. 몸이 어긋나면 마음도 덩달아 망가지는 게 아니던가. 활명(活命)이라, 존재의 기본인 몸의 생명력을 북돋워 도로 나아가는 게 기천의 지향이지요.”
“쉽게 말해, 몸으로 닦는 도(道)?”
“바로 그거! 그렇다면 기천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우리는 저 위대한 단군 할아버지를 기천의 시조로 봅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나는 권법, 고구려의 선맥(仙脈)으로 간주되는 조의선인(早衣仙人), 신라의 화랑도, 풍류도, 또는 현묘지도, 이 모든 고대의 수련법이 기천과 통하는 거라. 이 모두가 단군 할아버지를 백그라운드로 삼고 있고요.”
단돈 10만 원 쥐고 입산하다
박 문주에 따르면, 이 나라의 하늘엔 영기와 서기가 구름처럼 흐른다. 단군의 정신을 상속한 과거의 도인들, 역대 조사들, 혹은 영명한 조상들이 죽었으되 영영 시들지 않는 정기로 살아 움직인다는 거다. 기천은 그 상서로운 에너지를 몸 단련으로 내 안에 확 끌어당기는 수련이다.
박 문주는 진도에서 모태를 박차고 나왔다. 한때 부를 누리기도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상을 해 동종 업자들의 선망을 살 만큼 표나게 이루고 모았다. 돈을 쓸 시간조차 없이 들어오는 돈을 세는 데에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다 IMF 때 와르르 무너졌다. 기천을 만난 건 사업을 하기 이전인 20대 때부터였다. 소싯적부터 태권도, 합기도, 복싱을 야무지게 배워 ‘맞짱’을 뜨면 누구나 고꾸라졌다. 나로다! 나랑 붙을 자, 게 없느냐! 그리 악악 외치며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다닌 시절이었다. 마침내 임자를 만났으니 그가 바로 박대양. 박대양이 서울 약수동에서 선무 도장을 운영할 때였다. 박사규는 이 박대양을 찾아가 한판 붙자 청했다. 박대양은 딱 한 수만 쓰겠다며 대결에 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결판이 났다. 제대로 힘 한번 써볼 겨를 없이 박사규가 허무하게 나가떨어진 것. ‘아이고, 사부로 모시겠소이다!’ 박사규는 냉큼 무릎을 꿇고 제자 되기를 청원했다. 그 기이한 인연은 발화해 박사규를 기천의 심해로 데려갔다.
박사규는 남대문에서 사업하던 시절에도 기천을 정신의 지주로 삼고 살았다. 사랑으로 섬기고 자랑으로 닦았다. 그러다가 절호의 찬스가 왔으니 사업 부도가 바로 그것. 그는 처자를 서울에 남기고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수중엔 단돈 10만 원뿐이었다지.
“알몸 하나로 이 산에 들어왔어요. 굴러 떨어지고서야 치고 오르는 법. 고행이 있고서야 길을 보는 법. 사업을 망해먹은 건 오히려 행운이었다고요. 하하핫!”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죠?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딛으라는 게송!”
“치열하지 않고서도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있던가? 묵언 3년, 육합(六合, 내공을 연마하는 수련) 고행
3년, 총 6년의 담금질 과정을 거치자 사부께서 비로소 기천의 정수를 귀띔하더라고. 원효의 ‘대승신기론’,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유마경’을 읽으라 하시며. 과연 그 안에 진리가 있었어요. 기천이 우주의 생성 원리까지를 깨닫게 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는 걸, 미래의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행법이라는 걸 관념으로가 아니고 온몸으로 느꼈어요.”
“입산하지 않고서는 도 공부가 어려운 거예요? 뒤에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홀연히 입산하셨나? 나 하나 좋아라고 닦는 게 도가 아닐 텐데.”
“예컨대 바다의 녹조를 가라앉힐 수 있는 건 무엇이던가? 태풍이 아니던가? 태풍이 바다를 한바탕 뒤집어야 본색을 되찾는 게 아니던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탁류처럼 뒤엉긴 삶을, 욕망을, 일체를 버리는 강단으로 한바탕 뒤집어엎어야 정화가 되는 겁니다. 게다가 계룡산은 예로부터 민족의 성산이자 수련의 장이었으니 마음이 흘러갈 수밖에. 태조 이성계도 이 산 국사봉에서 수련을 했어요.”
세상으로 향했던 눈을 감고, 입을 닥치고, 오직 계룡산을 스승 삼아 정진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게 도.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한 소식 환하게 한 도인이라 한다. 그러나 그는 몸 낮추기에 능하다. 겸양은 기천이 중시하는 덕목이다.
“남들은 도사라고들 하지만 정진에 끝이 있을까. 그저 수행자일 따름이지요. 명산엔 자고로 항상 지킴이가 있었어요. 그 면면한 전통을 잇는 지킴이, 옛 도인들이 갔던 길을 등불 하나 들고 현대인들에게 안내하는 심부름꾼, 그걸 본분으로 삼고 삽니다. 세상과 남에게 누가 되지는 말자, 죄짓지 말고, 매 맞을 짓 말자, 그걸 항상 숙제로 여기며.”
“선하고 깨끗한 삶은 평범한 모든 이들도 미덕으로 압니다. 수행자라면 뭔가 더 진전된 정신으로 거침없이 사는 분들 아닐까? 심중에 바위가 들어앉아 뭐에 휘둘리는 바 없이 자유자재한 존재이지 않을까? 죄짓지 않는 생활 관습은 기본일 테고요.”
“앎을 내려놓아라! 이놈아, 앎이 곧 장애이니라! 제자들에게 자주 일갈하는 소리가 그겁니다. 도란 특별한 게 아네요. 알량한 앎에 갇히지 않고, 무릇 모든 평범하고 단순한 것에 진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게 도라서.”
“눈이 있으나 없는 것과 같으니 단순한 진리를 무슨 수로 볼 수 있을까. 생활이란 삼엄한 것이라 먹고살기 위해 전전긍긍을 일삼다 파장을 보는 게 인생이기도 하죠.”
“그게 뭐지? 사람이 세상에 나온 이유, 그게 뭐지? 수행자는 그걸 생각하는 자라. 세 가지 사명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첫째, 전생에서 닦지 못한 걸 이생에서 한번 시원하게 닦으라는 사명, 둘째는 광구천하(匡救天下)라,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아 빛을 보태라는 사명, 셋째는 포덕천하(布德天下)라, 널리 덕을 베풀라는 사명! 기천문은 이 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수행 집단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늘 고요히 반성부터 합니다. 사명을 다할 만치 정진하는가, 그런 자성(自省)을.”
투철하게 깨달아 세상과 사람들의 빚이 되겠다! 요약하자면 그렇다. 현란할 것 없는 언설이다. 토 달 것 없이 공감되는 선의다. 그러나 말이다, 도라는 메뉴를 파는 사이비 도사가 횡행하는 세상이다. 누구나 입으로는 선의를 떠든다. 흔히들 시늉으로 설레어 세상에 협찬하는 척한다. 도와 속(俗)의 경계가 자명한 현세를 넌지시 묵시함인가. 45년을 닦은 수행자 입에서 ‘자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건 예사롭지 않다.
먹고 사는 정경엔 섭섭할 게 없다
배운 게 있으면 돌려줘야 계산이 맞다. 얻은 게 많으면 나눠야 한다. 그렇다면 박 문주는 무엇을 나누나? 이루어지는 것 없는 이 탁한 세상에 무엇을 실천으로 보태나? ‘어이, 사람들이여, 기천문에 오소! 여기에 세상을 건널 수 있는 뗏목이 있으니!’ 그는 그리 외치고 싶었다. 오랫동안 기천 행법을 알리는 일에 주력해왔다. 제자 양성에 공을 들였다. 그게 그가 세상에 가담하는 방식이다. 그걸 비즈니스로 여긴다면 아마도 협량이겠지. 박 문주의 먹고사는 정경엔 이미 섭섭할 게 없다. 하찮은 물욕을 하찮게 여기는 근기가 없다면 무늬만의 수행자이겠지.
“기천 수련만 유일한 길인가? 그건 아니라. 기천문이 오직 구도자들의 전당인가? 그것도 아니라. 흔히들 달라이 라마에게서 정신을 구하고, 라즈니시를 애호하지만, 우리 민족의 전통 행법 안에 우리에게 맞는 수련 방법과 정신세계가 들어 있다는 것. 그게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이롭게 쓰여야 한다는 것. 제겐 그 사실들을 널리 알려야 할 소명이 있는 겁니다. 과욕을 부릴 일은 아니고요.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을 벌여놓은 것 같기도 하고.”
2003년 개천절, 남북한 인사들과 해외동포들이 평양 단군릉 앞에 모여 행사를 가졌다. 박사규는 당시 기천무(舞)를 공연해 갈채를 받았다. 기천 행법은 무예이자 춤이다. 기천의 예술적 성격을 직감한 많은 무용가가 박 문주에게 배우기도 했다. 김매자, 육완순, 이숙재 같은 무용계의 쟁쟁한 인사들이 기천의 정신과 춤사위를 수용했다.
인간의 능력이란 개발하면 상상 불허의 초경지에 이른다. 이쯤에서 궁금하지 아니한가? 박 문주가 보유한 그 뭔가 기똥찬 초능력이. 별 시답지 않는 걸 묻는다는 투로 정수리를 득득 긁으며 그가 예화를 들려준다. 내용은 이렇다. 그는 굳이 몸을 이동하지 않고서도 갈 곳을 가는 모양이다. 한번은 산에서 수련하던 제자들 앞에 박 문주가 턱 나타나 독려를 하더란다. 그러나 박 문주는 그 시간, 산 아래 거처에 머물렀을 뿐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본 게 스승의 심영(心影)이었음을 알고 경악했다. 아아, 스승께서 ‘심영’을 자유롭게 구사하시는구나!
“호흡을 멈추고 외공을 써 뜻한 장소에 심영을 보내는 일은 우스울 지경으로, 옛 도인들은 갖가지 초능력을 행했을 거라 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거든. 하지만 수행자는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해요. 평범 속에 도가 있다는 자각, 세상에 가급적 많은 수행자가 출현하길 바라는 기원, 그런 게 더 본분에 가깝습니다.”
“산에 앉아 모호한 관념이나 낡은 정신주의에 안주한 채 도통했다 자부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은 것 같아요. 진정한 선지식은 차라리 진흙탕 속세에 있는 게 아닐까?”
“과거와 달리 요즘은 산에 도인이 없습니다. 지지고 볶는 저자거리에, 질퍽질퍽한 세속에 차라리 도인이 많아요. 일테면, 피땀 흘려 번 재산을 사회에 쾌척하는 사람들, 또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그들이 도인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밭두렁 잡초를 뽑으며 어느 할머니가 하는 말씀, 야야, 미안하다 풀들아, 여기는 너희들이 살 자리가 아니구나! 그 할머니의 내공 역시 도에 가깝다 봅니다.”
“자연을 내 안에 들여놓아 매사 자연스럽게 사는 이라면 그 또한 고수죠. 스승 중에 큰 스승은 자연이고.”
어려운 문자를 쓴 게 없다. 나를 내세우는 폼도 없다. 시종일관 시원한 솔바람으로 방 안을 채운 사람. 도 타령도 이쯤이면 절창이다.
영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에서 브루스 리(Bruse Lee, 이소룡)가 선보인 절권도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제압하는 절권도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종학(50) 관장이다. 올해로 40여 년째, 인생의 반 이상을 무술과 함께했지만, 그는 아직 배우고 싶은 무술이 너무나도 많단다.
푹푹 찌는 한여름날 김종학 관장을 만나기 위해 양재동에 위치한 이소룡절권도 한국총본관을 찾아 나섰다.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도장은 시원하겠지’ 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큰 기대였을까, 도착한 도장에는 작은 선풍기 한 대만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에어컨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도장에선 한 번도 에어컨을 틀어본 적이 없다는 김종학 관장. 전기세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더위를 못 느껴서도 아니다. 운동하는 공간에선 마음껏 땀을 흘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도 하고 복싱도 할 만큼 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 한창 무술영화가 유행이었는데 우연히 영화 ‘취권’을 보게 됐죠. 공중을 날아다니고 상대를 한 방에 제압하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렇게 무술에 빠져서 시작한 게 우슈였어요.”
누구나 한 번쯤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적을 무찌르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우슈 수련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 날 돌연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진 거라곤 비행기 표와 한 장의 명함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그는 “대만으로 떠난 건 힘든 시절의 나에게는 한 줄기의 빛이자 유일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어요.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와중에 힘들어하던 몇몇 친구들이 나쁜 길로 빠지는 걸 보면서 제 정신줄을 잡아줄 무엇인가가 절실히 필요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뭘까, 뭘 하면 행복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운동이더라고요. 때마침 지인이 대만에 있는 분이라며 찾아가 보라고 명함을 한 장 주셨죠. 그길로 바로 대만으로 떠났어요.”
그의 마음을 끈 건 다름 아닌 절권도였다. 브루스 리가 창시한 무술인 절권도는 그가 실제로 배웠던 무술 중에서 실용적이라고 생각한 동작만 따로 모아 발전시킨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절권도는 미완성의 무술로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브루스 리가 죽기 전 그가 보여줬던 동작만 절권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정의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는 더 많은 무술을 배워서 절권도의 기술을 확장했을 거예요. 때문에 브루스 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절권도를 한다고 했을 때 ‘그게 절권도가 맞다, 아니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죠.”
김종학 관장은 우슈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전통 무예인 실랏(Silat), 필리핀의 전통 무술인 칼리(Kali) 등 다양한 무술을 훈련 중이다. 브루스 리가 배웠던 무술을 할 줄 알아야 그가 절권도를 만들고자 했던 진정한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술의 매력을 묻는 말에 그는 무술을 음식에 비유했다.
“음식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무술도 마찬가지예요. 태권도, 우슈, 합기도 등 아주 많죠. 우리가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김치찌개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저에게 한 가지 무술만 하고 살아라? 그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음식 맛이 다 다르듯이 무술에도 각기 다른 멋이 있고, 그 나라의 문화가 깃들어 있어요. 이런 걸 이해하면서 배우는 게 큰 재미죠.”
절권도를 향한 열정
“테드 웡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그의 도장으로 찾아왔어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전 운 좋은 놈이었죠. 그의 눈에 띄었으니까요.”
대만에서 돌아온 그는 브루스 리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진 테드 웡(Ted Wong)을 찾아 홍콩으로 떠났다. 무작정 비행기 표를 사서 떠난 그의 모습에서 일찍 눈치 챘어야 했다. 그는 독한 남자였다. 테드 웡의 수업 첫날, 허리 디스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수업에 임했다. 테드 웡도 그 절실함을 알아봤는지 김 관장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사부가 개인적으로 누굴 초대한다는 게 매우 드문 일인데 절 데려오라고 하니 다른 제자가 질투가 났나봐요. 씩씩거리면서 ‘웡 사부가 너 오래’ 이러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라고요. 엄청난 영광이었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테드 웡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때 처음 한 질문이 “두유 노우 김치?”였어요.(웃음)”
한국인이 외국인을 만났을 때 피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이 ‘두유 노우 김치?, 두유 노우 지성팍?, 두유 노우 강남스타일?’이거늘….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질문은 효과가 있었다. 테드 웡은 김치를 잘 안다고, 이웃이 한국인이라 먹어본 적도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분위기가 좋은 틈을 타 김 관장이 테드 웡을 한국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테드 웡 사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OK!’ 하더라고요. 덕분에 2008년에 그를 모시고 한국에서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죠.”
이후에도 김 관장은 테드 웡의 집에서 개인수련을 하는 등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지난 2010년, 테드 웡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불과 며칠 전 김 관장과 통화할 때만 해도 ‘새로운 세미나를 준비 중이라 바쁘다’던 그였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김 관장에게 뜻하지 않은 이별이었다.
“수련도 수련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오래된 차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엄청 가파른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웡 사부는 항상 그 언덕을 올라가기 전에 차에게 ‘준비됐나?’라고 말하곤 했거든요. 마치 나이 든 자기 자신한테 물어보듯이요. 그 질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금은 그의 오래된 차도, 웡 사부도 볼 수 없게 되었네요.”
테드 웡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김 관장의 맨땅에 헤딩하기는 계속됐다. 그는 브루스 리가 생전에 절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사범 자격을 준 3인 중 한 명인 댄 이노산토(Dan Inosanto)를 찾아 LA로 향했다. 댄이 스톡턴으로 가면 스톡턴으로, 댈라스로 가면 댈라스로 그야말로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가서 수업을 들었다. 문득 이렇게까지 하면서 절권도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절권도가 궁금하면 유튜브나 비디오를 통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유튜브가 나의 사부가 될 순 없잖아요. 저에겐 절권도 ‘동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브루스 리에게 절권도를 배운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전 직접 사람을 만나서 배우는 데에 의미를 둔 거죠.”
내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갑자기 김 관장이 모형 칼을 손에 쥐더니 피해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칼에 맞았다. 실제 상황이라면 죽었거나 응급실에 실려 갔을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칼을 쥐어주더니 자신을 찔러보라고 했다. 칼을 휘두르는 동시에 칼을 뺏겼다.
“사람들이 스스로 방어할 생각도 안 하면서 약자라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자기를 보호할 방법은 알았으면 좋겠어요.”
김 관장은 스스로 보호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공격을 당했을 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엔 호신술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무술 하는 김종학”이라고 답했다.
“마치 등산 같은 거죠. 한 산에 오르면 거기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산도 가보는 것처럼, 이 무술, 저 무술 다 해보고 싶어요.”
1974년 개관한 한국민속촌은 저마다 한 번쯤은 가봤을 만한 국내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오히려 오래전 한 번 가봤다는 이유로 식상하게 여기거나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동안 민속촌은 늘 새롭게 단장하고 변화하고 있었다. 사극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는 초가집과 기와집이 즐비하던 모습만 떠올린다면 이번 기회에 민속촌의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설 연휴를 맞아 한복을 입고 나들이한다면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즐거운 전통과의 행복한 공존
개관 이래 40여 년 동안 꾸준히 즐거운 변화를 시도해온 한국민속촌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과거 조선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촌락’이다. 남부, 중부, 북부 및 도서 지방에 이르는 지방의 서민 가옥과 양반 가옥을 이건·복원해 조성했다. 추운 겨울 촌락의 몇몇 가옥을 지나다 보면 장작 타는 냄새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 손이 타지 않으면 집이 상하고 낡을 수 있어 불을 때고 온기를 더하는 것이다. 또 이맘때쯤이면 초가집의 지붕을 새로 얹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가옥들이 단순한 전시물처럼 남아 있는 게 아닌 따스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노력 덕분이다.
365일 연중무휴인 한국민속촌은 계절과 세시풍속에 따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곁들인 체험과 놀이를 제안한다. 겨울에는 대표적으로 ‘초가집 새 지붕 얹는 날’ 행사를 하는데 오래된 이엉(짚, 억새 등을 엮은 것)에서 서식하는 굼벵이를 직접 잡고, 굼벵이 레이스 경주를 펼치는 등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설날이 있는 1월에는 ‘설맞이 복잔치’가 열리는데 한 해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복떡나누기, 지신밟기, 부적찍기 등을 즐길 수 있다. 손주와 함께 간다면 눈썰매·전통얼음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매력만점 조선시대 캐릭터와 만나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한국민속촌 조선캐릭터 오디션’은 한국민속촌의 마스코트로 급부상한 조선캐릭터 아르바이트생을 선발하는 대회다. 모집 분야는 거지, 무사, 기생, 포졸뿐만 아니라 연약한 망나니, 꽃거지, 유학파 백정 등 이색적인 캐릭터까지 다양하다. 예전 민속촌의 풍경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이러한 조선캐릭터와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며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옛 지방 행정기관이었던 관아에 가면 허당사또와 포졸, 인턴포졸 캐릭터가 맞이한다. 관아 앞마당에는 곤장대가 놓여 있는데, 관광객을 눕게 하고 포졸과 사또가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조선시대 말투를 쓰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을 겸비한 캐릭터들과 곤장 체험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관아 앞에서는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꽃거지’를 만날 수 있는데 관광객이 건네는 간식 등을 먹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장난삼아 구걸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조선캐릭터와 대화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통예술공연은 물론 최신 놀이기구까지 즐기다
겨울철 민속촌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전통예술공연으로는 ‘농악놀이’와 ‘마상무예’가 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흥이 묻어나는 농악놀이는 수십 년간 호남우도 농악의 명맥을 지켜온 정인삼 선생이 공연을 이끌고 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농악놀이 공연이 끝나고 나면 바로 옆 공연장에서 마상무예가 펼쳐진다.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옆으로 눕는 등 아슬아슬하고 박진감 넘치는 기술과 궁술·검술 등을 선보인다. 같은 공간에서는 공연이 없는 시간에 마상무예단과 함께 기예를 펼쳤던 말들을 타볼 수 있는 승마 체험도 이루어진다. 이외에도 곳곳에 마련돼 있는 윷놀이, 투호놀이 등을 즐기거나 15가지 놀이기구(어트렉션)가 있는 ‘12지아(12 ZIA)’를 방문하면 어린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 더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2지아는 민속촌 고유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공간이다. 한껏 즐기다가 출출해지면 친환경 조미료로 옛 맛을 살린 전통순두부, 해물파전, 묵, 순대 등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장터에 들러보자. 민속촌의 푸근한 정취가 그 맛을 더한다.
△ 한국민속촌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이용 시간: 연중무휴 (평일) 9:30~17:30 (주말) 9:30~18:00
이용 요금: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아동 8000원(만 65세 이상 아동요금 적용)
新중년들에게 공연은 쉼표여서 좋다. 때론 백마디의 말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지 않는가. 찌는 무더위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아니 즐거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우리들에게 ‘허기’를 채울 문화감성 충전을 울려보자.
부모님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자식들이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진한 감동을 나누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 뮤지컬, 퍼포먼스를 구성해봤다.
★4D와 태권도의 한판 넌버벌 퍼포먼스 ‘탈’
넌버벌 퍼포먼스 ‘탈’ 공연 첨단 3D 맵핑 기술도입하여 4D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눈을 가리고 날카로운 칼에 달린 사과를 격파하는 태권도의 고난이도의 기술과 무대전체에 도입된 3D 맵핑 영상에서 이에 맞춰 배경 이미지와 격파 효과 등을 제공하고 영상과 배우의 동작을 결합시켜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완벽한 조화로 하나의 4D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이번 4D 공연을 준비한 KTA (대한태권도협회) 와 SR그룹 최소리 총감독은 “4D 공연은 마치 영화의 액션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며, 관객들에게 지금 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넌버벌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전통무예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된 이유는 무예에서 운동종목으로 발전시킨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운동종목인 태권도의 기본 틀을 깨고 줄거리와 캐릭터 등의 극적인요소를 더하여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대한태권도협회 소속 태권도 국가대표시범단 40여 단원들의 무술합이 200단이 넘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태권도 4단은 흔히 볼 수 없는 높은 단수이지만 국가대표시범단에는 이러한 4단 이상의 고단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5~8단 이상의 고단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스토리의 주된 내용인 선과악의 대결을 파워풀한 태권도의 격투와 격파시범으로 표현하였고, 여기에 감동적인 스토리 , 애절한 사랑 그리고 리드미컬한 비보잉과 파워풀한 타악연주로 보는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피켜의 전설이 된 김연아 선수의 더블악셀과 같은 회전수를 가진 900도 돌려차기 기술은, 공중에서 두바퀴반을 회전한 후 정확한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해낸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외에도 눈을 가리고 칼 끝에 달린 사과를 정확히 격파하는 기술, 5미터 높이의 장애물 격파 고속 10회전 격파 등 한계를 넘어선 최고의 격파 기술을 자랑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넌버벌 퍼포먼스 ‘탈’을 통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태권도를 대중적인 생활체육으로 확고히 정착시키고, 이를 넘어 문화사업으로 까지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공연명 : 넌버벌퍼포먼스
공연장 : 올림픽공원 K-아트홀
공연기간 : 2014.06.28.~2014.08.31.
공연시간 : 평일 오후7시 / 토요일 오후3시,7시 / 일요일 오후3시 / 월공연없음
*6/28 오픈공연 오후7시 / 7/4 공연없음 / 7/5, 8/15 특별휴관일 공연없음
티켓가격 : VIP 50,000원 / 일반석 30,00원
주최,주관: (사)대한태권도협회 ㈜ SR그룹
★14억명을 열광시킨 뮤지컬 ‘비밥’
88일간 중국 28개 도시에서 한국 공연의 저력을 보여준 뮤지컬 비밥이 텐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7월 6일 입국했다. 비밥은 해외로 간 한국 공연 중 최장기간, 최다도시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에 걸맞게 비밥에 대한 중국 현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비밥팀의 숙소까지 찾아와 선물을 건네고 심지어 같은 호텔에 숙박을 하기도 하였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비밥이 성공리에 이번 투어를 끝낸 것은 한국 공연 업계에서도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비밥은 드라마, K-pop의 한류를 넘어선 공연 한류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또한 이번 공연의 열기는 현장을 찾은 매스컴의 반응과 현지 공연 관계자의 공연 초청으로 이어졌다. 비밥은 중국 최대 시청률을 자랑하는 CCTV의 성광대도의 오프닝을 장식하였고 스촨성, 복건성, 광저우 등의 공연 요청을 받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번 비밥 중국투어는 한국 공연 콘텐츠 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새로운 공연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비밥측은 이번 투어를 계기로 G2로 우뚝 성장한 중국 관광객들의 종로 비밥 전용관 유입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연명 맛있는 뮤지컬
공연장 시네코아 비밥 전용관 / 인천 비밥 전용관(인천중구문화회관)
공연일시 서울 2012.03.20 ~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최철기
연출 전준범
코미디연출 백원길
티켓가격 서울 VIP 6만원 / R석 5만원 / S석 4만원
러닝타임 75분
관람등급 36개월 이상
주최&제작 CJ E&M, ㈜페르소나
★모노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명품 연극 ‘염쟁이 유씨’
‘염쟁이 유씨’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자 하는 연극이다. 그러나 죽음을 무겁고 지루하게 다루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깨져버린다. 소박하고 진솔한 염쟁이의 삶을 유쾌하게 표현한 염쟁이 유씨는 2010-11시즌부터 새로운 연극역사를 쓰고 있는 1대 염쟁이 ‘유순웅’과 함께 깊이 있는 작품 분석·선 굵은 연기 2대 염쟁이 ‘임형택’, 그리고 2012~13시즌부터 3대 염쟁이 ‘신현종’ 3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올라 1인 15역을 도맡아 하는 연극이다.
등장인물로는 염쟁이 유씨, 조직폭력단의 우두머리와 그의 부하들, 장례 전문 업체의 대표이사인 장사치, 유씨의 아버지와 아들, 기자, 어떤 부자와 그의 큰 아들, 작은 아들, 며느리, 막내딸, 기자 등으로 다양하다. 배우는 혼자서 이 모든 역을 신들린 듯 표현해낸다.
공연은 쉼 없이 계속 되며, 객석의 지휘자로 공연시간 90분을 관통하는 가슴 저린 감동과 놀라운 재미를 선사하는 세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의 향연을 비교 체험 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염쟁이 유씨’는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관객은 구경꾼으로서만이 아니라, 문상객으로 혹은 망자의 친지로 자연스럽게 극에 동참한다. 낯선 이웃의 죽음 앞에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던 우리네 삶의 미덕처럼, 망자를 위해 곡을 하고, 상주를 위해 상가집을 떠들썩하게 하던 모습이 연극 속에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전통의 장례문화를 소재로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을 통해 삶의 진정성과 소중함을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공연명
공연장 대학로 이랑씨어터
공연일시 서울 2014.04.09 ~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김인경
연출 위성신
출연 유순웅 임형택 신현종
티켓가격 3만원
러닝타임 90분
관람등급 만 8세 이상
주최&제작 한강아트컴퍼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코믹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웃겨 죽는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는 여타의 공연과는 다르게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낸 블랙코미디 소재의 연극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자살’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관객들을 참여시키며 한바탕 재미있는 소동극을 벌이게 된다.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었던 2000년 초반에,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보도내용이 방송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사이트의 존재였다. 온라인 세상에서 자살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실행에 옮길 회원들을 모집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과 배경에서부터 ‘죽여주는 이야기’의 서사는 시작이 된다. 타인의 비극과, 세상을 버리려고 하는 절박함을 돈을 받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방치되고 방관이 되어 천사가 된다.
어쩌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고 애써 무시하면서, 개인의 출세와 이익에만 집중하는 현대인들의 세태를 ‘죽여주는 이야기’ 공연을 통해서 엿볼 수 있지는 않을까.
무겁고 암울한 소재로 한 놀이를 관람 하고 되돌아가는 관객들은 ‘자살’과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보고 박장대소 하고 나서, 집으로 되돌아간다.
관객들은 과연 어떠한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가게 될까?
어쩌면 나의 비극에도, 타인들이 비웃을 수 있는 비인간적이고 불안한 관계의 허망함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열린 공연의 방식처럼, 가져가실 수 있는 메시지도 열려있는 공연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앙금은 슬프고 우울한 것이 될 것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연일 매진행진 중이며, 공연 기간도 코믹하게 ‘죽을 때까지’로 정해두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창작 뮤지컬
창작 뮤지컬 가 재정비를 거쳐 리뉴얼 오픈했다.
뮤지컬 는 송창식의 대표곡인 ‘담배가게 아가씨’를 모티브 삼은 작품이다.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2000년대 초반 그룹 ‘문차일드’로 활약했던 허정민이 배우로 전업한 후 뮤지컬 무대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한 작품으로, 2012년 초연 당시 소설가 이외수를 비롯한 많은 공연 관계자에게 관심을 받았다.
더불어 VIP시사회 당시에는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스타가 공연장을 찾아 화제를 낳기도 했던 창작 뮤지컬이다.
스토리는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온 유나 부녀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아현동 달동네에서 작은 담배가판대를 운영한다. 사건사고 없이 조용하던 동네는 유나의 미모 때문에 시끌해지고 평생 연애 한번 못한 현우는 유나의 외모에 반하게 된다. 현우뿐만 아니라 동네 모든 남자 사랑을 독차지하는 유나. 너도 나도 달려들어 유나에게 고백하지만 차이기 일쑤다.
앞서 ‘담배가게 아가씨`는 서울, 대구, 울산, 대전, 부산, 안산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명 창작 뮤지컬
공연장 대학로 소리아트홀 3관
공연일시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김재목
연출 김지환
음악감독 지현수
주최&제작 JJ글로벌, 극단 담씨
수원문화재단이 오는 5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화성행궁 상설한마당 개막공연’을 진행한다.
이번 개막공연이 재단이 연중 진행하는 ‘무예24기공연’, ‘장용영 수위의식’, ‘광장상설공연’, ‘토요상설공연’, ‘정조대왕 거둥행사’ 등의 시작을 앞두고 한자리서 펼치는 자리다.
개막식에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의 상징인 수원화성 행차가 담긴 ‘정조대왕 어가행렬’과 ‘군악대·의장대 퍼레이드’, 라퍼커션, 무동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가 선보인다.
특히 어가행렬이 화성행궁 광장에 도착하면 정조대왕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장용영수위의식’, 정조시대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 실전 무예인 ‘무예24기 시범공연’ 및 마상재를 펼쳐 보인다.
이번 공연은 현대적 감각의 무대를 연출한다. 쌈바퍼레이드 라퍼커션이 화성행궁 광장에서 전통적인 모습과 다이내믹한 모습이 그려져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마련했다.
또 수원 출신의 소프라노 이영숙, 미모의 실력파 퓨전 크로스오버 그룹 더 홀릭, Y-Kick 태권 마샬아츠 퍼포먼스, 드라마 ‘신돈’, 영화 ‘미인도’ 주제곡 OST 부른 국악인이자 대중가수인 이안 등이 출연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무대를 펼친다.
이와 함께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화성행궁 내에서는 왕, 왕비체험, 갑주체험, 떡메체험, 한지 만들기, 도자기 체험, 구슬공예, 장용영 갑주체험, 민속놀이(투호, 고리던지기 등) 등의 상설체험마당이 진행된다. 문의 (031) 290-3632
[기사제휴: 경기일보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