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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연구자 3인, “어른 필요 없는 유튜브 세대 젊은 꼰대 돼”
- 과거에는 나이가 곧 경험이고 지혜여서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었다. 5060세대가 ‘동네 어른’을 추억하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2024년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떨 때 어른이 되었다 느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담 참여자 강용수 작가·백종화 리더십 코치·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 진행 이연지·문혜진 기자 ◇강용수 작가(56세,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교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최근 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백종화 리더십 코치(45세, 그로플 대표) 18년 직장생활 후 회사 그로플을 설립,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업 CEO·임원·팀장 등의 리더십 코칭을 한다. ◇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67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다.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아 인지행동·스키마·마음챙김 치료 등을 하고 있다. 진행자 본지에서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어른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책임감 있는’이 꼽혔어요. 2014년 조사에서는 ‘윤리’가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2024년에는 ‘책임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강용수 책임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니체는 타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기대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주권적 개인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어떤 공동체를 아우르는 책임이라기보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백종화 사람마다 책임감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신뢰와 실력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점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될 때 잘해내기 위해 전문성을 끊임없이 확보하는 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희 그러니까 책임이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결과를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과거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부모가 되어 내 자식에게 결핍을 물려주려 하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의사결정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부모가 깨워주고 옷 입혀주고 밥 먹여서 정해준 학원에 보내고, 집에 오면 이 닦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좋든 싫든 올 텐데,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굉장히 불안해하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렵고 두려울 수밖에요. 백종화 조직에서도 의사결정 경험이 중요해요. 리더들이 결정해왔기 때문에 결정하지 않은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구성원들은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리더는 구성원 자신의 일인데 왜 책임지지 않느냐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거든요. 진행자 일상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의미네요. 그래서인지 설문조사에서도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보는 듯한 결과가 나왔어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느낄 것 같은 순간’을 물었을 때 2030은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를, 5060은 ‘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를 꼽았거든요. 최영희 나 혼자도 벅찬데 누구를 돌보겠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적 관계를 70년 넘게 연구한 것이 있는데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가 좋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사람이 고통받는다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고,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나누는 관계를 의미하는데요. 개인주의와는 반대라고 볼 수 있죠. 시대에 따라 우리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기준, 뭐랄까 도덕의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백종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도 있어요. 5060세대는 ‘우리’가 익숙해서 ‘우리 안에서 내가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2030세대는 우리 가족, 우리 회사가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회사라는 개념이라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행자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책·강연·영상 등으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고민에 대한 답도 찾고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비대면으로 어른을 찾는 셈이랄까요? 강용수 사실 제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어른을 찾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어른이라면 쓴소리도 좀 해야 하죠. 다만 남을 가르치려 하고 “내가 겪어봤는데 말이야”라며 나서는 게 아니라, 타인이 어른으로서 인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종화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모든 걸 배우잖아요. 어른한테 고민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지식과 경험이 온라인에 다 있으니까요. 세대 이슈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 이슈라고 봐야 해요. 모두가 똑똑해진 시대라 오히려 젊은 꼰대가 훨씬 많아요. “내가 아는 게 많으니까 내가 맞는데 왜 엉뚱한 소리 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죠. 그런데 SNS에서 보는 것들은 다 결과거든요. 성공한 모습만 보는 거잖아요. 최영희 옛날에는 사회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우리가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뭐 단점도 있고 그래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비치잖아요. 그러니 소위 신화적인 존재가 나오기 어렵죠. 이걸 다시 말한다면,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어른을 정의할 때 아주 완벽한 기준을 들이대는 접근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강용수 공감합니다. 완벽한 어른은 없어요. 고통과 실패를 보여주는 게 어른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려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경험이 오히려 성숙해지는 기회 같거든요. 쇼펜하우어 역시 40대에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외부에서 깨져보면서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패를 거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과정을 보는 게 중요한데, 요즘은 결과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최영희 멀리서 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 따르려고 할 게 아니라, 매일 만나서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죠.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가까이 있으면 학습이 쉬워요. 누군가를 흉내 내겠다는 게 내가 변화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거든요. 거창하진 않아도 나름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 인간다움이 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삼아야 하는 거죠. 삶은 고통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좌절들이 올 때 넘어졌다가도 잘 일어나는 것, 즉 회복 탄력성이 좋을수록 건강한 어른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결과 중심적인 사회이다 보니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서도 ‘가까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83.8%가 그렇다고 했거든요. 백종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어려움도, 고난도, 극복하는 것도 볼 수 있거든요. 어른이라면 그런 걸 보여주는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의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른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에게 배울 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어른, 나쁜 어른이 아니라 나와 맞는 어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최영희 그리스 신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해요. 세대 차이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요즘에는 20대도 10대를 이해 못 해요. 그러니 내가 옳고 내가 항상 중심이라는 생각을 깨야 합니다. 그냥 다른 거거든요. 백종화 맞아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려면 먼저 나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나다움이 먼저인 거죠. 리더십의 핵심 역시 ‘자기 인식’(Self Awareness)입니다. 강용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과정인데요.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개성이라고 봅니다. 부·명예와 같은 외부의 나다움이 있고, 건강·성격 같은 내부의 나다움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기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게 필요하죠. 그걸 알아가는 노력이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어른이 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네요. 다음으로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걸 훈련할 수 있을까요? 백종화 조직에서의 어른을 리더라고 본다면 리더는 태어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과거에는 태어났습니다.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 리더로 성장하는 거라, 그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 팀장, 매니저, 선배 어떤 역할이든 리더에 포함됩니다. 태어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더 다양한 영향력을 키울 필요가 있죠. 강용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면 남과의 차이도 알게 되죠.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도드라진 존재라고 해요. 내가 개성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의욕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가 고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죠. 쇼펜하우어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경험과 학습으로 새롭게 획득되는 성격이 있다고 봐요. 물론 유전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새로운 성격은 아주 어렵게 얻어진다고 합니다.(웃음)그래서 글쓰기, 책읽기 등을 좋은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죠. 최영희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의 모든 선택이나 행동의 결정이 무의식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무의식의 영역을 찾아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 깨달았다고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매일 다니는 산책길을 생각해볼까요. 기존에 있는 길을 걸어요. 그런데 지름길을 내려면 풀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요즘 효율적인 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습니다. 백종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결국 행동이거든요. 행동의 시작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기질과 후천적으로 받은 영향으로 생긴 성격인데요.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행동이 있고, 그것에 익숙해져요. 이를테면 평생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것과 같아요.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려면 어색하죠. 그런데 평생 하던 행동과 반대되는 어색한 행동을 훈련할 때부터 영향력이 달라집니다. 최영희 정신과 진단에 ‘성격장애’라는 게 있어요. 20여 년 전에는 치료가 안 된다고 했어요. 오늘날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스키마 치료도 그런 맥락인데요. 스키마는 자극과 반응 세트의 총합입니다. 백 코치님이 말한 익숙한 행동이라는 게 스키마 이론으로 보면 자극이 왔을 때 내가 하는 반응이 자동화된 거예요. 그대로 살아도 되는데, 그게 자신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를 위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명상 등으로 내 안에 있는 걸 끌어내는 훈련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훈련할 수 있어요. 내 성격은 나 외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백종화 어른이 된다는 것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정답을 고민하는 사이에 시대도 상황도 바뀔 거예요. 결국 기존에 하던 익숙한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됩니다.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해야 변화가 있잖아요. 어색하고 불편하고 실패하겠지만, 그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훈련하다 보면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 2024-04-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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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 “연령통합 사회, 청년도 노인도 하나의 어른”
- 노년에 접어들면 사회의 어른으로 기능하려는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순 없기에, 부담은 커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른’의 책임을 노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청년·장년·노년 등 우리 사회 성인들이 세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의 어른으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서로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년의 책임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살며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노인의 모습이 고령사회 존경받는 어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 본지는 우리 시대 어른의 표상을 논하고, 세대 간 존경심을 엿보기 위해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5060세대(500명)의 약 80%, 즉 대다수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10년 전 본지가 진행한 동명의 조사 결과보다 10%p 이상 높아진 수치로,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 셈이다. 평소 노년의 삶을 연구하고, 세대 간 교류를 고민해온 정순둘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경각심’을 드러낸 결과로 보여요. 갈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뭔가가 나타나서 문제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갖고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가령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제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각심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 높이는 갈등, 세대와 시대 이해해야 앞서 언급한 ‘노인 혐오’처럼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고 존경하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노시니어존’(노인 출입금지 구역)까지 생겨나며 자꾸만 세대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교수는 먼저 세대 갈등을 다루고 이해하려면 ‘생애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 세대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고려하는 과정이다. 한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만을 잣대로 삼았다간 자칫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5060세대도 20~30대를 살아왔지만, 현재 2030세대가 사는 세상은 당시와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아예 달라요. 1970년대 20대와 2020년대 20대를 비교할 순 없죠. 기성세대의 청년기와 다르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부모 세대만큼 풍족한 일자리 기회나 좋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5060세대보다 더 불행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르죠. 그런 데서 오는 좌절감,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해요. 역으로 현재의 5060세대는 고성장 시대 주역으로 살며 많은 것을 이뤘고 경제력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처럼 봉양을 받긴 어려운 처지잖아요. 게다가 유례없는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는 2030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쏟아지고, 나날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요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30세대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 세대 또한 사회 변화와 생애주기 간 속도가 어긋나는 괴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느려지는 상황입니다. 과거 20~30대라면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만, 요즘은 그 시점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장년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춰 ‘왜 아직도 취직을 못 했냐’, ‘나이가 몇인데 여태 결혼을 안 하냐’며 2030세대를 재촉하고 나무라곤 하죠. 즉 현재보다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살아왔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느린 기성세대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과거보다 느린 라이프사이클을 사는 젊은 세대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데서 오는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5060세대, 고령사회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현재의 5060세대가 겪는 고충은 또 있다. 그들이 본보기로 삼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윗세대보다 노후가 훨씬 늘어난 데다, 그로 인해 일자리, 여가, 관계 등 다방면에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듯, 그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앞서 말한 본지 조사에서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을 묻자,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25.8%, 복수 응답)를 꼽았다. 정 교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내비쳤다. “존경받는 어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해요. 그러한 존재가 없다면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현재 5060세대는 고령사회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고 하면 어쩐지 부담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그런 이들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냄으로써 어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년, 즉 스스로 액티브 에이징(Ative Aging)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건강한 존재로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게 노년의 역할이자 책임일 수 있죠. 긴 여생을 아무런 역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당사자도 힘들지만, 사회의 짐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력이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사회활동을 해야 여러 세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외나 고립도 예방한다고 봐요. 기왕이면 노년에는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헌 활동이면 더 좋고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평생 일자리와 고령 인력 활용이 이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령사회연령통합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교수는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연령통합은 곧 연령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는 거예요. 가령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고령자는 고용이 어렵다, 다 ‘나이’가 기준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결국 연령을 기준으로 삼던 제도들의 개혁이 필요해요. 이렇게 연령통합은 연령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연령의 다양성 측면도 있어요. 지금은 세대가 너무 끼리끼리 뭉치잖아요. 카페나 식당을 가도 ‘여긴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분위기면 들어서길 민망해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세대가 분리되기보다는 함께 섞여 지냈으면 하는 거죠. 제도적으로나마 세대 교류 공간을 확충해갈 수 있다고 봐요. 요즘은 아파트 몇 세대 기준으로 경로당을 짓잖아요. 그런 공간을 노인만이 아닌 아이들도 놀러 가고 청년들도 차 한잔하러 가는 동네 사랑방 같은 장소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주는 ‘노인’ 타이틀, 괘념치 말아야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10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노인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 있는 사회’를 목표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역할을 통해 정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65세라는 나이의 틀, 그로 인해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해요. 나이가 들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은 통상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모두를 아우르는 거잖아요.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젊은이, 누구는 늙은이 나누지 말고,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해요.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게 바뀌어야겠죠.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연령통합 사회’라고 봅니다.” 정 교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령통합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끝으로 오랜 세월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그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물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나이 제한이 있으니, 65세가 되면 저도 은퇴하겠죠. 제2의 인생에서 선택은 두 가지예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 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경험과 지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꼰대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노후의 좋은 모델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요. 한편으론 저 같은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교육이 있지만, 이 또한 세대를 분리한 교육이잖아요. 가령 어떤 분은 50세 넘어도 반도체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물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죠. 나이를 떠나 더 자유롭게 대학에서 제2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 2024-04-0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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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는 곧 만성질환, 안심하고 걸릴 수 있는 사회 돼야”
-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이죠.” 박건우 교수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치매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단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파킨슨병·소뇌위축증 분야의 권위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신경과 전문의를 모두 취득하고 치매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돌보고 있다. 치매 예방과 조기 발견,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가족 치유에 앞장선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의 가치’를 보존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박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신경·뇌·심리를 공부하는 의사들과 함께 고려대학교에 지혜과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인지장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노인의 가치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다. “2000년대 당시에도 지금처럼 노인 인구가 증가해 고령화사회가 된다, 연금도 건강보험 재정도 고갈된다, 이런 말이 계속 나왔어요. 환갑을 맞아 잔치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자체가 마치 사회에 재앙이 되는 것처럼 묘사돼요. 그러니 나이 들어 뭐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나이 드는 게 부끄러워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왜 건강하게 살려고 할까요? 나이 들어 건강한 내 자신이 사회에서 재앙이라니 모순 아니에요? 저는 의사인데 환자를 열심히 살려서 건강하게 만들었더니, 사회의 재앙을 양산하는 꼴이 된 거예요.” 과거에 우리는 왜 환갑을 축하했을까. 노인이 된다는 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박 교수는 수많은 인지장애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이 듦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노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 들면서 더 나아지는 능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포털 사이트에 묻지만, 예전에는 큰일이 생기면 동네 어른한테 물어봤어요. 어른에게 무언가 묻는다는 건, 그의 경험에 기반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물어보는 거거든요. 현대에 와서 속도나 효율을 중요시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결국 삶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옛 마을 어른의 그 경험을 우리는 ‘지혜’라고 정의하자 했죠.” 사람의 정신·인지 활동이 건강하게 지속되면 그 사람이 건강한 경험을 누적하게 되고,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사회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경험을 존경하는 사회가 된다면, 사회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려면 건강한 지혜가 필요하니까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성숙을 이끄는 여러 방법을 연구했다. 지혜과학연구소의 탄생 이유다. 지혜가 없어지는 병, 치매 박건우 교수는 치매를 ‘지혜가 없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운동 능력이나 정신 능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혜 능력이 사라져 어리석은 상태가 되는 것이 치매라고 봤다. 박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과 관계’라고 했다. “뇌는 자극이 들어왔을 때 반응하는 기관이에요. 집 안에 멍하게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한 일원이 되도록 지속시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결속력과 치매에 대한 내성이 강력해야 사회가 치매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의술의 발달은 심장·폐 등 신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뇌는 바꿀 수 없다. 따라서 박 교수는 뇌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를 오래 쓰면 치매나 인지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치매는 자극을 받았을 때 좀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죽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내가 알던 반응이 아니라고 해서 치매 노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치매라는 질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져요. 85세가 넘으면 3명 중 1명이 치매 환자가 됩니다. 그저 다르다고만 볼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치매 환자가 지혜를 유지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건우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했다. 치매 환자가 카페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도록 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돕는 일본 사례가 종종 언급되는데, 그는 이마저도 지역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힘들다고 봤다. “가족으로 묶인 관계가 혈연, 지역으로 묶인 관계가 지연인데, 가족은 해체되고 지역도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박 교수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것을 걱정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오래 함께 사는 게 참 중요합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데요. 치매뿐 아니라 어떤 질병이든 혼자 살 때 병의 진행이 더 빨라집니다.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가 엄청난 차이를 가져와요. 뇌세포도 그렇거든요. 여러 가지로 붙어 있어야 떨어지지 않는데 결속력이 약해지면 금방 끊어져요.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이 점차 약해지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점차 줄어들고 있죠.” 박건우 교수는 그래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휴먼 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질병이 있더라도 존엄성을 가지고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의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문자로 ‘선생님 약 주세요’라고 하는 게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그저 약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에요. 스러져가는 환자의 삶을 함께 가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찰하면서 주고받는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서로가 반응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아요.” 치매 환자는 기억을 점차 잃어가기에 언젠가는 깨어지는 관계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관계는 더 오래 가더라는 걸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다. 병원을 방문한 보호자들이 “다 못 알아보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알아보세요”라고 할 때,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이상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환자에게 주간보호센터라도 꼭 다니시라 당부한다. 기억이 잘린 사람 치매안심센터가 생기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치매라는 병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볼게요. 사고로 다리가 잘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어떨까요? 많이 다르겠죠. 우리는 다리가 잘린 사람의 걸음을 보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치매 환자는 기억이 잘린 사람이에요. 치매 환자에게는 ‘집이 어디세요?’라고 한마디 물어봐 주는 것이 절뚝거리는 사람을 부축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치매 환자의 행동을 정말 많이 바꿔요. 기억의 어느 한 부분을 찔러줌으로써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이 돌아오는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무섭고 이상하다고 치매 환자를 도우려 하지 않아요.” 박 교수는 치매에 걸려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120세까지 사는 시대가 되면 치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병이 된다고 했다. 에이즈가 과거에는 사망하는 병인 줄 알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만성병처럼 취급되듯, 치매 역시 이른 시일 내에 만성병이 될 거라고 본다.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만나면 경찰서에 꼭 인계해주세요. 치매안심센터에서 발부한 배회 인식표(보통 옷깃 안쪽에 붙어 있다)나 지문으로 환자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치매안심센터에 꼭 가보세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스스로 혹은 가족의 치매가 의심될 때 이를 숨기려 하지 말고 병원에 꼭 들르시길 당부합니다. 치매의 원인에 따라 치료되는 것도 있고,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것이 있고, 계속 나빠지는 것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면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병원에 가도 해주는 게 없다더라’며 진료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그는 요양 시설에서 생활하는 치매 환자들의 행동장애를 질병 증상 중 하나로 이해해주길 당부했다. 논란이 되는 치매 환자의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 “파킨슨 환자의 경우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증가하는 약물을 복용하는데, 이때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는 약을 잘 조절하면 됩니다. 치매 환자는 본능을 눌러주는 뇌피질의 능력이 점차 없어집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그대로 이야기하게 돼요. 욕을 하기도 하고 바지를 내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 환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인지는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치매 환자의 성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 같아요.”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 지혜과학연구소가 생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박 교수는 노인이 설 자리가 더욱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은 사회의 방향성을 어른이 아니라 AI에게 묻잖아요. 나이 든 사람들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판단하는데, 오히려 그런 AI나 로봇이 생산성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요즘 시대의 노인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장기를 겪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70대는 부모를 부양했던 세대다. 5060세대는 유례없는 부를 쌓았다. 박건우 교수는 노인이 될 세대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가 영향을 받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노인은 은퇴 후에 재산을 물려주고 빈털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이기에, 경제력마저 없어지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 취급할 걸 잘 알기에, 무조건 자식에게 부를 이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거라 본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인들이 지혜를 더 오래 유지하고,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우리는 120세를 사는 시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개척자 입장에서는 참 힘들지만, 언젠가는 라이프사이클이 120년인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시대가 올 거예요. 오래 사는 건 성공했고,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관건이죠. 건강한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젊은 세대라면 앞으로 4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 노인에 대한 가치관을 잘 갖춰야 해요.” 박건우 교수는 노인들이 가진 지혜를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전파하며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보통 사람보다 뇌가 빨리 늙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는 의사, 그들과 함께 늙어가며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걷는 의사, 환자와 좋은 관계를 주고받는 의사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 2024-03-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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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려한 산중 농원의 희로애락, “귀촌으로 밝은 내일 꿈꿔”
- 해발 800m 고지에 덩그러니 농장 하나 있다. 높고 외지고 고요한 곳이다. 속세가 아스라이 멀어지는 산간이다. 사위로 펼쳐지는 풍광은 콘테스트에서 뽑은 귀재처럼 잡티 없이 빼어나다. 손에 잡힐 듯 구름은 가깝고, 정적에 휩싸인 숲은 청신한 기운을 뿜는다. 환경이 이러니 사로잡힐 수밖에. 김영혜(58, 놀숲치유농원 대표)는 한동안 남편과 함께 귀농지 물색을 위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김천시 증산면 고지대의 수려한 풍광에 꽂혀 낙점하고 귀농했다. 순수한 자연과 함께 평온한 여생을 누리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귀농 전 김영혜는 부산에서 영어학원 강사 겸 원장으로 뛰었다. 잘나가는 학원이었다. 규모를 늘릴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은 다른 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겐 남편과 공유한 오래된 꿈이 있었다. 적당한 시점을 골라 산골로 들어가자는 소망을 지니고 살았던 것인데, 50대에 접어들 즈음 소망의 농도가 짙어져 더 미룰 수 없었다. 유한한 인생을 도시에서 미적거리며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더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산골로 들어가자!’ 부부는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산골의 자연과 동행하며 부부만의 유토피아를 일구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야말로 삶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라 본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은 귀농을 뜯어말렸다지. 그러나 그의 내심엔 이미 산골이 꽉 박혀 더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꿈을 이룰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고 봤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시골 생활을 시작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좋은 터를 찾아낸 것이다. 맨 처음 한 건 집짓기였다. 남편이 먼저 이곳에 들어와 1년여 동안 토목공사를 하고 건축을 완료했다. 남편은 건축 감리사다. 그래 모든 공사를 직접 주도했다. 공사를 마친 뒤인 2012년엔 나도 들어와 합류했다.” 귀농인들은 흔히 조언한다. 집을 짓기 전에 가령 셋집을 빌려 한동안 살면서 농촌과 농사의 물정을 미리 익혀두라고. 그게 차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우리는 아무런 사전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 상당히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웃음) 귀농교육도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받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나 농민사관학교 등을 통해 부지런히 공부했다. 하지만 ‘무작정 귀농’엔 어쩔 수 없는 누수가 발생하더라.” 귀농을 쉽게 생각했다? “그렇다. 철저한 준비를 해도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게 귀농인들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원했던 경관이 있는 곳에서 원했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원하는 이에게 이곳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도 날마다 바라보다 보면 질린다.(웃음) “처음엔 자연 풍경에 벅찬 만족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 맛본 행복감에 불과했다. 지금 돌아보면 초기엔 자주 우울했던 것 같다. 난 도시에서 매우 활동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아는 이 없지, 얘기할 사람 없지,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에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직 남편을 괴롭히는 게 일이었다.(웃음)” 남편은 구미시로 출퇴근해 산 절반, 하늘 절반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훤칠한 경관은 가히 압권이다. 외진 암자처럼 고즈넉해 은자를 선망하는 사람에겐 더 적격이리라. 세상의 아귀다툼과 소음이 침범 못 할 곳이니 마음 하나 온전히 다스리며 한 그루 나무처럼 조용히 살기에 적당한 장소다. 터를 고른 부부의 눈썰미가 평범치 않다. 김영혜는 남편과 함께 도시에서 오랫동안 명상 수련을 했다. 그 내공으로 삶터와 풍경을 보는 안목이 열렸나? 그러나 어디에 살든 돈 문제가 따개비처럼 들러붙는 법. 자연과 교제하며 명상이 있는 소박한 생활을 추구하더라도 경제가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하다. 그래 그는 농사로 소득을 얻기로 하고 귀농을 한 게 아닌가. 그런데 막연히 생각했던 농사라는 경기장에 걸린 허들이 한둘이 아닌 걸 그는 뒤늦게 알았다. “농사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농사에 문외한이라 재배 기술도 서툴렀다. 따라서 초기엔 수입이라는 게 아예 없었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있어 고민이 많았다. 무슨 수를 찾지 않으면 상황이 매우 나빠질 수 있어 불안했다. 그래 귀농 2년이 지날 즈음 남편이 구미시에 사무실을 내고 감리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곳에서 출퇴근하면서. 불가피한 대안이었다. 상황이 개선되면 곧바로 농사에 복귀하기로 했으나 남편은 지금도 구미로 출퇴근한다.(웃음)” 농사 작목은 어떤 걸 선택했나? “고추, 들깨, 두릅 등을 재배했지만 소소한 텃밭 농사 수준에 그쳤다. 주 작목은 오미자다. 현재도 오미자 농사를 계속하고 있다.” 오미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귀농교육을 통해 초심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오미자 농사라는 걸 알고 시작했다. 마침 집 뒤편에 야생 오미자밭이 있어 그걸 기반으로 삼았다. 오미자 농사는 초기 자본과 인력도 덜 든다. 오미자 넝쿨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망을 설치해주고, 풀을 잡기 위한 차광막이나 부직포를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배 기술을 숙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첫해 농사에선 거둔 게 없었다. 모종이 죽거나 순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고전했다. 이듬해엔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작황이 저조했다. 해결책은 재배 실력을 키우는 데 있다는 걸 깨닫고 멘토를 모셔 도움을 받았다. 순을 관리하는 요령, 효율적으로 물과 거름을 공급하는 방법 등 재배에 따른 모든 기법을 공부했다. 흙의 과학을 배우기도 했고, 토질 개선을 위해 토양검사도 했다.” 비로소 실력을 갖춘 농부 대열에 올라선 셈이었겠다. “프로 농부들에게 농법을 익히면서 작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미자 농사 3년 차부터 비로소 튼실하게 달린 결실을 거둘 수 있었으니까. 이후 10여 년 차에 이른 현재까지 고품질 오미자를 무난하게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연평균 매출이 얼마나 되기에? “500평 규모의 오미자밭에서 2000만 원 정도 올린다. 이건 재배 면적 대비 최대치 매출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수입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오미자 수익 외에 농장에서 발생하는 다른 소득은 없나? “민박업을 하고 있다. 힐링 또는 치유를 테마로 한 민박이다. 그런데 이 역시 아직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도시에 나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부족한 수익 구조를 보완하고 있다. 농장 수입으로만 따지면 지난 10여 년간 연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도시에서보다 생활비가 한결 덜 드는 게 시골 생활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던가? “귀촌의 경우엔 생활비 절감이 가능할 테지만, 귀농엔 이모저모 비용 지출이 많다. 이를테면 농사 장비와 시설 설치 등에 드는 재투자 자금이 필수적이다.” “끝까지 달려 꽃피어보고 싶다” 김영혜는 귀농 10여 년을 이렇게 결산한다.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 비록 농업소득은 아직 시원치 않지만 애초 원했던 삶의 토대를 구축했으며, 원했던 자연과의 동행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생태환경 속에 살고 있음에 안도하는 것 같다. 아쉬운 건 남편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직장을 두게 한 점이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이는 이상적인 분업의 형태다. 똘똘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는 부부가 함께 농장일 하나에 몰두할 수 있길 바란다. 귀농의 목적이 애초 거기에 있었으며, 그래야만 진정한 만족을 구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따라서 농업소득을 안정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파도에 시달리고서야 튼튼한 뱃사공으로 자란다. 시련이 성숙의 효모인 건 농사도 마찬가지. 그는 막연히 뛰어든 농사의 경험을 통해 한결 냉정한 눈을 얻었다. 지나온 날들을 점검해 한결 당차고 실속 있게 행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냈다. 바로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산물만이 아니라 농가가 보유한 경관과 문화까지 자원으로 삼아 심신의 교정이 필요한 이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요사이 등장한 신종 트렌드다. 그는 이미 치유농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치유농업에 필요한 여건을 더 보완할 참이지만 기본 틀은 잡혔다. 숙소, 심신단련실, 체험교육장이 있으며, 산책로와 숲속의 명상 공간도 구비했으니까. 부부가 오랫동안 해온 명상 수련 경력도 자산이다. 무엇보다 유능한 자산은 자연환경 그 자체라 할 수 있고.” 널찍한 농원 전역이 매우 정갈하다.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야 이런 모습이 나올까. 너무 과도한 근로에 얽매여 사는 건 아닌가? “일이 버거울 때도 있다. 풀을 뽑다가 연골이 찢어지기도 했다.(웃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시간을 낭비한 감이 있다. 사실 귀농 생활에 탄력이 붙은 건 5년 전부터다. 이제 도약할 시점이다. 나에겐 성취욕이라는 게 있다. 현재에 눌러앉는 성격이 아니다. 치유농업을 중심에 둔 개성적인 농원으로 키워나갈 참이다.” 이 농원은 매력적인 자연 풍경만으로도 호감을 준다. 치유농업을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할 계획인가? “해발고도가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는 약점이지만 오히려 장점으로 어필할 수도 있겠지. 관건은 홍보에 달려 있다고 보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귀농을 통해 뭔가 변한 건 없나? 내면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MBTI(성격 유형 검사)로 보니까 ‘사고형 인간’에서 ‘감정형 인간’으로 바뀌었더라. 이 깊은 산골에 들어온 건 외부와 심리적 거리를 두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귀농이 주는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외향성이 강화된 것 같다. 한번 뜻을 크게 펼쳐보고 싶다는 열망, 끝까지 달려 완전하게 활짝 꽃피어보고 싶다는 심리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나 할까.” 단지 일에 파묻히기만 하면 ‘노잼’이다. 방향이 뚜렷하고 행보엔 격한 구석이 있어야 생동한다. 그는 질주하고 싶은 것이다. 김영혜가 주는 귀농 Tip •사전에 귀농의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라. 대충 내려와서 대충 농사에 뛰어들었다간 쓴맛을 볼 수 있다. 농사 작목, 규모, 자금 능력, 유통 문제 등에 관한 구상은 물론 실행 방안을 미리 마련해두자. •귀농교육을 미리 충분히 받아도 현장에선 헤맬 수 있다. 하물며 사전 귀농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귀농이라면? 이건 귀농 필패 비결에 속한다.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고독해질 수 있다. 그러나 깊은 관계는 가능치 않다. 시골 정서와 도시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전제하면 소소한 상처 정도는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무엇보다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자. 몸 망가지기 쉬운 게 농사니까. 특히 풀 뽑기를 하다 관절염을 얻을 수 있다. 풀을 뽑을 땐 쪼그려 앉지 말고 퍼질러 앉아라. •자력으로 수준 높은 농사 기술을 터득하기 어렵다. 반드시 멘토를 만들어 도움을 청하자.
- 2024-01-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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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자 고용안정지원금 따라잡기
-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 사례집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곳에서 고령 인력은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많은 기업의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성장기를 함께해온 이들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따라서 기업의 발전을 위해 고령 인력의 남다른 내공과 노하우를 젊은 직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령 인력의 고용은 개별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요구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2025년에는 우리나라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고,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비하려면 고령 인력 활용이 불가피하다. 고령 인력의 입장에서도 기대수명이 점차 늘고 있는 데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활동적이고 안정된 삶을 원하기 때문에 근로 의지가 강하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정부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및 고령자 고용지원금을 통해 고령자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이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주에게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계속 고용된 근로자 1인당 월 30만 원씩 최대 2년간 총 720만 원을 지원한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의 지원 대상 사업주는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12조가 정하는 우선지원 대상 기업 및 중견기업이다. 중견기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 발급한 중견기업 확인서로 확인한다. 공공기관 등, 주점업, 사행시설 운영업, 무도장 운영업, 임금 체불 명단 공개 사업주, 보험료 체납 사업주, 중대 산업재해 발생 등으로 명단이 공표 중인 사업주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 대상 근로자는 계속고용 제도 시행일 이전부터 근무해온 근로자이면서 제도 시행일로부터 5년 이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다. 시행일 이후 입사한 자는 입사 때부터 변경된 제도(정년 연장 및 재고용)를 적용받으므로 지원할 수 없다. 재고용의 경우는 계속고용 제도 시행일로부터 5년 이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정년 다음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재고용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해당 사업주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지 않은 외국인(거주, 영주, 결혼이민자는 지원),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제16조의10에 따라 사업주가 신고한 월평균 보수가 110만 원 미만인 근로자는 제외된다. 단시간 근로자라도 정년이 적용되고, 고용보험 피보험자로 사업주가 신고한 월평균 보수가 110만 원 이상이라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우선 계속고용 제도 시행일 전부터 정년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야 한다. 정년이 없거나 정년을 폐지한 기업이 새로이 정년을 도입하는 경우는 정년이 없었던 때보다 고용이 연장된 것이 아니므로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계속고용 제도를 명시해야 한다. 계속고용 제도란 고령자고용법에 따른 정년을 운영 중인 사업주가 연장 또는 폐지하거나, 정년의 변경 없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계속해서 고용하거나 재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정년 연장의 경우 현 정년에서 1년 이상 연장해야 한다. 다만 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가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 60세로 정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업이 정년을 가령 57세로 정했어도 법에 따라 정년이 60세가 되는 것이므로 정년을 최소 61세 이상으로 연장하는 경우에만 지원된다. 재고용의 경우 정년퇴직자를 퇴직 후 6개월 이내에 재고용하는 것이다.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재고용 기간을 최소 1년 이상으로 하되 기간을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재고용 제도는 정년 이후에도 일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일부 근로자만 선별적으로 재고용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취업규칙 등에 노사 합의로 정한 재고용하지 않을 수 있는 기준(가령 건강상의 이유, 해당 직무가 폐지된 경우 등)을 명시하고 그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재고용한 경우에는 지원된다.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중 기업의 사정에 맞게 선택하여 운영하면 된다. 계속고용 제도는 취업규칙 등에 시행일을 명시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변경해야 한다. 즉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지방 관서에 취업규칙 변경 신고를 해야 하고, 10인 미만인 경우 인사규정, 운영규정 등에 명시하고 모든 근로자에게 공지해야 한다. 여기서 계속고용 제도의 시행일이란 노사 합의 등을 통해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시행하기로 명시한 날짜를 의미한다. 다만 시행일이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을 신고한 날보다 이전인 경우 취업규칙 등을 신고한 날부터 최대 30일 이내로 소급한 날을 시행일로 본다. 취업규칙 신고 의무가 없는 사업자의 경우 시행일을 명시한 규정을 기업 홈페이지, 전자메일, 인터넷 메신저 등의 방법으로 근로자들에게 공지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날이 계속고용 제도 시행일이 된다. 그리고 계속고용 제도 시행일이 속한 연도의 직전 연도를 기준으로 60세 이상 피보험자 비율이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 60세 이상 피보험자가 전체 피보험자의 30%를 초과한 사업장의 경우 이미 사실상 계속고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다만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이 증가했다면 다음에 소개할 ‘고령자 고용지원금’ 신청이 가능하다. 지원금은 분기 단위로 산정하며, 계속고용 제도 적용을 받아 재직 중인 피보험자 수에 월 지원금인 30만 원을 곱하여 산정된다. 다만 한도가 있는데, 해당 분기 매월 말 피보험자 수 평균의 30%에 90만 원을 곱한 금액을 상한으로 한다. 그리고 지원 대상 근로자별로 계속 고용된 날부터 각각 2년간 지원한다. 고령자 고용지원금 고령자 고용지원금이란 신청 분기 월평균 만 60세 이상 근로자 수가 직전 3년 평균보다 증가한 경우 증가 인원 1명당 분기에 30만 원을 최대 2년까지 지원(총 240만 원)하는 제도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과 마찬가지로 우선지원 대상 기업 및 중견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하며 공공기관 등, 주점업, 사행시설 운영업, 무도장 운영업, 임금 체불 명단 공개 사업주, 보험료 체납 사업주, 중대 산업재해 발생 등으로 명단이 공표 중인 사업주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 대상 근로자는 ① 매월 마지막 날 현재 만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② 매월 말 현재 해당 사업장에서 피보험자격 취득 기간이 1년 초과한 고령자여야 하며, ③ 매월 말 현재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취득 중인 근로자에 해당해야 한다. 해당 사업주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지 않은 외국인(거주, 영주, 결혼이민자는 지원), 임금이 최저임금법 제5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최저임금 미만인 사람은 제외된다. 고령자 고용지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사업 적용 기간과 고령자 수에 대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우선 고용보험 성립일로부터 지원금을 최초 신청(지급)한 분기 시작일의 바로 전날까지의 기간(이하 ‘사업 적용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한다. 가령 지원금 최초 신청 및 지급이 2023년 1분기인 경우 분기 시작일(1월 1일) 기준으로 바로 전날(2022년 12월 31일)까지의 사업 적용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분기별 매월 말 현재 고령자 수 월평균이 지원금을 최초로 신청한 분기 이전 사업 적용 기간별(1년~3년간) 매월 말 고령자 수 월평균보다 증가해야 한다. 사업 적용 기간별로 이전 고령자 수 산정 기간 및 대상이 다르다. 사업 적용 기간이 1년 이상 ~ 2년 미만인 경우 이전 1년을 산정 기간으로 하고, 산정 대상은 신청 분기 고령자 수와 동일 기준의 근로자 외에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1년을 초과하는 고령자가 포함된다. 사업 적용 기간이 2년 이상~4년 미만인 경우 사업 적용 기간 중 최초 1년을 제외한 기간을, 4년 이상인 경우 이전 3년을 산정 기간으로 하며, 두 경우 모두 산정 대상은 신청 분기 고령자 수와 동일 기준으로 산정한다. 만 60세 이상 근로자 수가 증가한 경우에 지원하는 것이므로 감원 방지 의무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분기별로 지원 대상 고령자 수에 30만 원을 곱한 금액으로 지원금이 산정된다. 다만 지원 한도가 있다. 월평균 피보험자 수가 10명을 초과하는 기업의 경우 지원금 신청 분기의 ① 고령자 수 증가 인원, ② 피보험자 수 월평균의 30%에 해당하는 인원, ③ 최대 30명 이내 중 가장 적은 인원을 지원한다. 월평균 피보험자 수가 10명 이하인 기업은 ① 고령자 수 증가 인원과 ② 지원 한도 3명 중 적은 인원을 지원한다. 지원금은 분기별로 신청 및 지급하며, 지원금의 지원 요건을 최초로 충족한 분기를 기준으로 2년간 지원한다. 지원금을 최초로 지급한 이후 특정 분기에 지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분기(기간)도 지급 기간 2년에는 포함된다. 고령자의 취업은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요구이자, 고령자와 기업이 ‘윈윈’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새해에는 독자가 운영하는 기업이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 사례로 소개되길 기대해본다.
- 2024-01-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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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로 나이 한계 극복…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려”
-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 허송세월의 정의다. 새해를 허송세월로 지내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일들로 꽉 찬 한 해를 바랄 테다. 윤정구(64)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이를 위해선 체험하는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기회의 신’으로도 불린다. 인생의 기회는 경험의 시간을 사는 가운데 맞이하는 선물과도 같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갖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Kronos)라 한다. 윤정구 교수가 언급한 카이로스(Kairos)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령 똑같은 10년이라도 허송세월로 보내는 이에게는 마치 100년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바삐 사는 이에게는 1년처럼 짧게 여겨질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크로노스)은 10년이더라도, 상대적 시간(카이로스)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즉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인사조직 전략, 조직경영 개발 등을 연구해온 윤 교수는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때, 현재 노동 현장에서 적용하는 시간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바뀌는데, 여전히 시간 개념은 산업화 시대 생산 노동자에게 적용했던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나지 못한 거죠. 아직은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인데요. 가령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회사에 약속한 일을 끝내는 데 4일이 걸렸다고 쳐요. 주 5일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채우지 않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는 목표를 달성한 거잖아요. 그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어요. 시간으로 산정한 임금이 책정되는데, 근로자가 애써 생산성을 늘리는 혁신을 감행할 이유가 있나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재택근무 등 일터에서의 논쟁 대부분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죠.” 기술의 민주화 시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일자리 이슈 중 하나는 ‘정년 연장’이다. 윤 교수는 카이로스의 개념에서 볼 때 은퇴 기준점을 ‘나이’로 책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지적했다. “양적인 시간으로 책정된 나이만 고려한 거예요. 개인의 경험이나 노력 등 질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카이로스 개념에서의 나이는 다를 수 있죠. 결국 회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자신의 인적 자원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창출하느냐가 관건이잖아요. 한때는 젊은 직원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생성형 AI나 로봇 등이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누구나 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코딩, 알고리즘 등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 자격증이 없어도 챗GPT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요. 이러한 기술의 민주화, 전문성의 민주화로 나이와 같은 태생적 요인이 인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었어요.”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일자리가 더욱 위협을 받으리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러한 시대 변화가 고령자에겐 기회라고 역설했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기회)처럼 말이다. “그동안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왔다면, 이제는 조직의 공유된 목적을 위해 기술과 인간이 협업하는 관계로 설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이와 무관하게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대안적 방법들이 마련될 수 있죠. 이때의 기술은 고령자에게 오히려 득이 됩니다. 고령 인력이 지닌 체력이나 모빌리티(기동성·유동성)의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니까요. 즉 정년을 따질 것 없이 기술과 잘 협력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가능하리라 예상해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렸다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부양비(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날로 증가하며, 2075년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고령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주요국을 웃도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급증하는 노인 부양비를 감당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윤 교수는 고령 인력 활용이 단초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그 아이들이 경제활동 인구로 성장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고령자 중 아직 활용되지 않은 인력을 동원하는 겁니다. 최근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정년퇴임을 했는데 일을 안 하거나, 정년퇴임을 준비하는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 GDP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예측했어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GDP의 14.7%가 성장한다고 나와요. 비교된 20여 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을 만큼(일본 8.6%, 미국 7.2%, 영국 4.8% 등) 월등히 높은 수치죠. 우리가 매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경제성장률이 2% 미만이잖아요. 고령 인력의 활용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당분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령 인력은 조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리더의 위치에 놓인 이가 상당수다. 저서 ‘진성 리더십’을 펴내고 대한리더십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윤 교수는 중장년·고령 리더들이 거버넌스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버넌스가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고 있어요. 가령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회사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리더는 그런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이것들을 이용해서 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증명해보라는 식이죠. 즉 회사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다는 취지인데, 이렇게 말해도 직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말해 그건 진정성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속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우선하면서 겉으로만 그 직원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죠. 말뿐인 독려라는 걸 직원들도 느낄 텐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밖에요.” 리더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기 힘든 건 직원에 대한 신뢰가 영글지 않은 탓도 있겠다. 신뢰라는 건 상호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윤 교수는 서로 간의 ‘신뢰 자본’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A라는 사람이 내게 100만 원을 빌려달라 했을 때 그 돈을 못 받을 걸 전제로 손해를 감수하고 빌려준다면, 신뢰 자본 100만 원이 생긴 셈이에요. 반대로 A도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면 둘 사이의 신뢰 자본은 200만 원이 되죠. 그렇게 신뢰라는 건 서로가 상처받을 개연성에 대해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손해를 전혀 안 보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생길 방법이 없어요. 그런 신뢰의 결여 때문에 요즘 젊은 조직원 중에는 공정성 같은 덕목을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서로가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죠. 결국 그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조직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긍휼감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긍휼감은 공감이나 연민을 넘어서는 행동 지향의 도덕적 정서인데요. 긍휼감을 가진 리더는 조직원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 함께 풀어가려 하죠. 이런 태도를 보였을 때 조직원들도 리더에게 진정성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 빙산의 밑동을 복원하는 시간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 윤 교수의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건강한 조직과 리더십, 지속 가능한 기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특히 기업의 근간이 되는 조직원들의 고통을 눈여겨보고자 한다. “조직에서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결과예요. 돌봄을 받지 못한 고통이 문제로 터져 나왔을 때, 많은 리더가 원인인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결과’만 봉합하려 하죠. 일단 그렇게 문제를 덮고 시작하기 때문에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고, 반복되는 거예요. 조직과 경영을 연구한 학자로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빙산의 형상에 비유해 설명을 이어갔다. 기업의 경우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즉 핵심 사업이나 수익을 키우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빙산의 윗동이 잘 성장하려면 이를 잘 지탱하는 수면 아래 밑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밑동에 비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조직원이다. “눈에 보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밑동을 이루는 조직원들의 고충이나 아픔에 대해 인정하고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종교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이런 밑동을 간과한다고 생각해요. 정년퇴임 후에는 잃어버린 밑동을 어떻게 복원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워가려 합니다.”
- 2024-01-1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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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참여 확대, 보람일자리 원동력” 서울시 성과공유회 개최
- 2023 서울시 보람일자리 성과공유회가 15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역대 최대 참여자가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의 한 해를 재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보람일자리는 연륜과 전문성을 지닌 중장년에게 지속적인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안정된 노후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공헌형 일자리 사업이다. 2015년 442명으로 시작한 사업은 2023년 5149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참여자 수와 규모가 증가해왔다. 특히 올해부터는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서울런4050’의 일환으로 생애전환기인 40대도 참여가 가능해졌다. 아울러 시대에 발맞춰 문화·예술·미디어, 환경 분야를 강화해 ‘중장년미디어활동가’, ‘도서관지원단’, ‘에너지컨설턴트사업단’ 등을 신설해 새로운 일자리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행사는 신규 사업 중 하나인 중장년미디어활동가 분야의 참여자였던 윤이다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다. 오프닝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아름다운 동행을 모티브로 한 ‘케이휠댄스프로젝트’ 팀의 공연이 펼쳐지며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후 장애인사업지원단 이지선 씨와 빗물관리지원단 김효 씨의 개회선언으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성과보고를 맡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이성수 사업운영본부장은 “서울시 보람일자리는 중장년이 자신의 경력을 발휘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사회적 소속감을 얻는 동시에 적정한 근로시간을 통해 여가 활동을 겸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중장년 시민들에게 최적화된 서울시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특히 올해 출산·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거나 가구 여건 등으로 정규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던 40대 여성들의 참여가 많았다. 보람일자리 경험을 발판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와나가겠다”고 밝혔다. 올해 서울런4050 시행으로 234명의 40대 참여자가 보람일자리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통계연구소 의뢰 조사 결과, 중장년 참여자들은 높은 만족도(86.8점)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참여자들과 함께 호흡했던 활동처(92.9점)와 최종 수혜자인 시민(95.3점)들의 만족도도 또한 상당히 높았다. 이날 행사에 축사를 위해 참석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참여자와 수혜자들의 반응과 만족도가 좋은 만큼, 계속되는 사업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함께해나가며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서울시 또한 지난 1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사업을 잘 챙겨나가겠다”고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축하했다. 이어진 ‘2023 보람일자리 유공자 표창’ 순서에서는 분야별 총 37명의 유공자가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이후 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 건강코디네이터, 소상공인온라인홍보마케팅 분야 참여자들이 단상에 올라 좌담 형태로 활동 우수사례를 나누는 것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한편 2023 보람일자리 사례집 ‘모두를 위한 내 꿈. 다시 뛰자, 보람일자리’를 통해 참여자 및 활동처, 수혜자들의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해당 사례집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홈페이지 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매거진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 온·온프라인 기사로도 확인 가능하다.
- 2023-12-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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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소멸 대응책 "생활인구에서 답 찾아야"
- 지방 소멸 대응책으로 지역을 오가는 ‘생활인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진행된 ‘2023 제민천 포럼×재도전프로젝트’에서는 지역 소멸 대응 방안으로 생활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번 ‘2023 제민천 포럼×재도전프로젝트’는 중장년층과 지역의 관계성 및 관련 현안에 관한 토론의 장으로서 사업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열렸다.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성과와 시행착오 등을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서 주관하는 ‘2023 재도전프로젝트’는 중장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지역에 맞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지역 살이 재도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날 행사는 인구 감소, 지방 소멸, 중장년, 지역 살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발표를 진행한 1부 프로그램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 발표와 공주 지역 살이 프로그램을 체험해보는 2부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생활인구는 서울시가 2018년 제시한 새로운 인구 모델이다. 출퇴근, 관광, 의료, 등하교 등을 목적으로 지역을 찾는 인구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이날 행사에 모인 전문가들과 참가자들은 인구 감소시대에는 더 이상 지역 이주가 지방 소멸 대응책이 될 수 없으며, 지역에 생활권을 두는 생활인구를 늘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지방 소멸 대책 ‘생활인구’에 주목 기조 강연은 ‘인구감소라는 정해진 미래, 로컬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조영태 서울대학교 교수(인구정책연구센터장)가 맡았다. 조영태 교수는 “인구의 흐름은 정해진 미래이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대응하며 미래를 바꿔가야 한다”면서 “로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해진 미래를 바꾸려면 ‘인구’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며, 지역의 공간 구조가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는 데 목표를 두기보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하고 현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도시의 개발과 발전에 도시 설계 초점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도시의 공간을 재구조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주 인구뿐 아니라 지역을 오가는 생활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국토를 균형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로컬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생활인구를 고려한 공공정책과 지역에 필요한 것을 탐구해 바꿔나가는 민간기업(특히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영태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가 ‘시니어와 지역, 새로운 길 탐색’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이보람 대표는 “신중년들이야말로 지역에서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수도권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데는 많은 허들이 있지만, 지역에서 태어나 수도권으로 이주했던 신중년은 청년보다 지역에 대한 친밀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요즘 신중년은 자신을 위한 소비도 적극적으로 하지만, 자신을 위한 생활을 찾아본다. 건강이 중요한 은퇴 후 인생 3막을 보내기에 지역이 적합할 수 있다”면서 “지역은 넓고 할 일은 정말 많다”고 전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지역에서의 생활이나 비즈니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지역의 좋은 사례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윤정미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소멸 실태와 대응 정책’을 발표했다. 윤정미 연구위원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생활인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워케이션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재택근무를 경험하자 네이버와 같은 IT 기업을 시작으로 유통 회사들도 직원들의 워케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윤 연구위원은 워케이션 수요를 늘려 생활인구로 연결하려면 “아이가 있는 부모 근로자들의 자녀 동반 가능 워케이션을 고민할 필요가 있고, 지역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소개할 것인가도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찾는 인생 2막, 중장년 반응 뜨거워 이날 행사의 2부 프로그램에서는 이선영 씨앗 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의 완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와 권오상 주식회사 퍼즐랩 대표의 공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 발표, 노재정 협동조합 주인 이사장의 부여 재도전프로젝트 소개가 이어졌다. 완주와 공주 재도전프로젝트는 지역에 먼저 정착한 또래 중장년과의 만남과 현장 체험 등을 제공하고 참가자의 지역 살이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는 장으로 구성됐다. 중요한 점은 농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델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장년들의 가장 큰 수확은 ‘소속감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을 공감하는 또래가 생겼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지역에 또래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것. 이선영 대표는 “본인이 지역사회에 가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고 말했을 때 중장년의 경우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공감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지역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이 서로 만나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연대 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오상 대표는 “본인이 생활하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라면서 “행안부의 재도전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과 청년의 재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장년층의 지역 살이에 대한 관심과 몰입도가 무척 좋았다”면서 “도시에서 가지고 있는 본인의 커리어나 관계망,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을 도시에서 지역으로 이동해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고민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귀농귀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 이주를 고민하는 중장년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평가다. 권 대표는 “청년들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중장년들은 한 사람의 세계가 지역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면서 “여러 지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중장년의 세계와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현업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쌓았지만, 현재 업무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중장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팀으로 협력할 수 있는 중장년 △은퇴하고 나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지역에서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노재정 협동조합 주인 이사장은 곧 진행될 부여의 재도전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결국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역에 다녀간 사람들이 커뮤니티 자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로 지역의 혁신성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를 느끼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외부에서 오는 분들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2023-09-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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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과 폐섬유증 수술 후, 귀촌 통해 찾은 건강한 ‘새 인생’
-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 2023-08-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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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만 원을 쥐고 내려와 양봉으로 1억 매출 올리다
- 농사 초심자로 귀농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행운의 여신이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력으로 물정을 익혀나갈 수밖에 없는 고독과, 갖가지 형태의 시련이 야기하는 고통을 통과의례처럼 겪으며 살아가기 십상이다. 대개 인생사가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겠지만 귀농 초기의 고생은 한결 농도가 짙다. 충북 옥천군 산골짝에 양봉장(양승원 자연벌꿀)을 두고 벌을 치는 김준환(59)의 경우는 다르다. 2020년에 귀농, 이제 만 3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제법 튼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커다란 시행착오나 흉작을 겪지 않은 채 순항했다. 첫해에 꿀을 팔아 올린 매출액은 4000만 원 정도였다. 작년 8월부터 올 6월까지의 매출은 1억여 원. 순소득은 매출의 50%란다. 이는 보기 드물게 좋은 실적이다. 김준환의 귀농 드라마는 막을 올릴 때부터 좀 특별했다. 단돈 1000만 원을 쥐고 귀농을 결행했으니까. 어떤 이들에겐 푼돈에 불과할 소액을 귀농 밑천으로 삼은 건 그게 김준환 부부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는 20세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귀농하기 전의 직업은 택배업이었다. 영업소를 세 곳에 둘 정도로 규모가 늘기도 했다. 그러나 귀농을 결심하면서 재산을 정리하고 보니 남은 게 겨우 1000만 원뿐. 이걸로 과연 귀농 생활이 가능할지, 무사할지, 밥은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을 테다. 그는 섬세한 숙고와 모색을 거듭했다. 매사 신중을 기하는 성격이라 하니 망설임이 많았으리라. 이렇게 김준환의 머리에 뒤엉긴 고민을 일격에 걷어낸 건 아내 양승원(49, 양승원 자연벌꿀 대표)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시나? 그냥 내려갑시다!” 아내의 간결하고 우렁찬 일갈에 김준환은 후다닥 고민을 접고 귀농의 돛을 올렸다. 두 사람은 동국대 사회학과 선후배 인연으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부부가 공유해온 취미는 여행, 또는 놀기였단다. “너무 적은 자금 사정 때문에 고려할 게 많아 고심하던 차에 아내의 적극적인 태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겁이 없다.(웃음) 나하고는 정반대 성향이지만, 사실 다행스럽고 고마운 기질이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부러워할 미덕의 소유자다.(웃음) 그런데 양봉을 작목으로 선택한 건 어떤 연유에서지? 양봉이 여느 농사보다 쉽기라도 하나? “결코 쉽지는 않다. 주로 서울에서 살았던 내가 양봉과 인연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내가 꿀의 달고 향긋한 맛을 원래 무척 좋아했다. 외국 여행을 할 경우 꿀을 구입해서 가져오는 취미가 있을 정도로. 양봉에 관심을 가진 건 매체에서 본 양봉 관련 기사에 흥미가 동하면서였다. 흥미가 생기자 공부를 하고 싶어지더라. 마침 광진구청에서 운영하는 양봉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수업을 들으며 이론을 배웠다. 이 시점에 귀농을 발상하게 됐다. 시골에 가서 양봉을 하며 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농사의 이론과 실제엔 괴리가 클 수 있다. 그래서 귀농 전에 현장의 실제 경험을 쌓아두는 게 똑똑한 귀농의 필요조건이라고들 한다. “현장 실습도 나름대로 충실하게 했다. 양봉계의 실력자인 한 어르신과 운 좋게도 인연이 돼 많은 걸 배웠다. 그는 진정한 고수다. 난 그의 봉장에서 일을 거들어주며 제자가 되길 자청했다. 알바로 조수 역할을 하며, 봉장에 눌러 살다시피 하며, 양봉 전체 과정의 기술을 습득했다. 이렇게 사전 경험을 쌓는 데 1년이 걸렸다.” 김준환은 준비의 품질 자체가 성패의 관건이라는 식으로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사실 귀농을 했으나 슬픈 결말에 이르는 농가들에서 발견되는 허점 중 가장 큰 건 준비 부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준비 없이 뛰어드는 귀농 방식도 드물지 않다. 당연한 준비를 당연하다는 듯 안 하고 경기장에 뛰어들다니. 이건 귀농 필패기에 가깝다. 김준환은 성실한 사전 준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기본 사례다.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귀농을 구사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지 않을 방안으로 삼은 게 아닌가. 문제는 아마도 턱없이 소박한 자금 사정에 있었을 텐데, 양봉에 미래를 걸고 경주마처럼 뜨겁게 달려보겠다는 작심을 하고 나선 마당에 걸릴 게 뭐람. 궁즉통(窮則通)! 없으면 없는 대로 살 길을 찾아내는 게 인간이라는 고등생물이다. 김준환 부부는 살림집과 봉장과 기자재 등 모든 걸 빌려 쓰는 것으로 주어진 조건에 적응했다. “옥천엔 연고가 없었지만 용케 봉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원래 어떤 이가 양봉을 하다 철수한 자리다. 주변 산자락에 아카시아 밀원이 있어 아주 좋은 입지다. 난 운 좋게도 이곳을 빌릴 수 있었다. 거처는 산 아래 월세 집을 얻어 해결했다. 벌통도 중고품을 샀다.” 벌들의 반란을 통제하는 기술력 양봉 운영엔 고정양봉과 이동양봉,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는 개화 시기에 맞춰 밀원을 찾아 이동해 꿀을 따는 이동양봉을 한다. 즉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은 한편 철따라 벌통을 트럭에 싣고 이동해 수차례 채밀을 해온다. “작년에는 외지 밀원 1차지에서 3차지까지 이동하며 10여 회 채밀을 했다. 이동양봉은 고정양봉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물론 노력과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된다. 적지 선정과 이동 중 봉군(蜂群)의 피해 차단 문제도 쉬운 게 아니다. 이동양봉이든 고정양봉이든 가장 어려운 건 몇 해 전부터 꿀벌들이 점차 사라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엔 벌들이 어디론가 한꺼번에 쑥쑥 빠져나가는 것처럼 완연히 줄어드는 걸 경험했다.” 꿀벌 개체수의 대량 감소, 이는 이미 전 지구적 이슈로 대두됐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 보나? “기후 변화, 서식지 파괴, 농약의 피해 등 추정만 할 뿐, 연구자들도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양봉인들은 예전에 비해 꿀벌 숫자가 3분의 1로 감소했다고 본다. 양봉 여건이 크게 악화된 거다.” 양봉에서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대목은 어떤 것일까? “보온시설이 필요한 월동 관리나 봄 벌 깨우기부터 쉽지 않은 과정이 잇따른다.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건 유밀기 때의 분봉열(分蜂熱)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분봉열이란 봉군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벌집 공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세로, 이럴 때 벌들은 꿀을 최대한 많이 먹고 탈출을 노린다. 새로운 여왕을 만들어 딴살림을 차리고 싶어 안달을 한다.” 벌들의 반란? 그걸 어떻게 통제하나? “적절한 시점에 선제적으로 미리 분봉을 해준다. 중요한 건 분봉열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타이밍을 놓쳐 신속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봉군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 수 있다. 진드기나 말벌의 공격으로 봉군이 크게 줄어들기도 한다. 특히 말벌은 무리 지어 날아와 벌들을 무참히 죽인다. 최악의 경우엔 하루 이틀 사이에 20여 개의 벌통을 공격, 그 안에 든 봉군을 전멸시키기도 한다. 무섭다.” 말벌 퇴치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유인액이나 잠자리채, 또는 끈끈이를 활용한다. 8월 하순부터 10월까지는 말벌을 잡는 게 일이다. 훼방꾼은 또 있다. 도봉(盜蜂), 즉 제 벌집이 아닌 다른 벌집에 침투해 꿀을 훔쳐 먹는 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도둑 벌들과 방어하는 벌들 간의 처절한 전투로 쌍방에 무수히 많은 주검이 발생한다. 일이 커지면 봉장이 망할 수도 있다. 난 초기에 도봉을 막아내지 못해 벌통 10개를 잃은 적이 있다. 경험 부족으로 빚어진 큰 실수였다. 이젠 벌의 동향만 보고도 도봉을 감지,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변수가 너무 많은 게 양봉 생존본능에서 추동된 벌들의 광적인 활극까지 듣자니 흥미롭다. 곤충이나 사람이나 영리한 머리를 무기로 때로 지지고 볶는 게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들고. 속 터질 변고를 겪은 김준환으로선 괴로워 머리칼을 움켜쥘 일이었겠다. 그는 귀농 전 1년여에 걸친 수련기를 보냈다. 그러고서도 난처한 상황을 면제받진 못했다. 김준환에 따르면, ‘변수, 그리고 경우의 수가 워낙 많은 게 양봉’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수에서 배운 게 곧 자산이 된다. 이제 노련미를 갖추었다. 날갯짓과 소리만으로 벌들의 요구와 계략까지 미리 알아챈다. 사소한 뉘앙스에서 문제 정황을 발견한다. 그러니 꿀의 품질인들 어련하랴. 그는 아주 좋은 자연벌꿀을 생산하노라 자부한다. 공인 기관의 검사를 통한 인증도 받았단다. 그렇다면 좋은 꿀이란 어떤 것일까? “봉군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게 관건이다. 스트레스 없는 생활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꿀을 다 빼낸 겨울철에 공급하는 먹이의 질도 중요하다. 흔히 겨울에 설탕물을 벌에게 먹이지만 우린 꿀과 화분을 제공한다. 벌통 안에서 시간을 두고 충분히 숙성된 꿀을 생산해 한결 나은 제품을 고객에게 선보이고자 노력한다.” 올 매출이 1억이다. 판로는 어떤 방식으로 확보하고 있나? “양봉 농가들이 흔히 판로를 못 찾아 고심한다. 연매출 1억을 올리는 농가가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판로를 찾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나의 경우 첫해엔 지인들이 사줘 매출을 올렸다. 귀농 이전에 맺은 좋은 인간관계, 이게 판매 루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극적 방식엔 한계가 있다. 우리는 SNS 마케팅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 부분은 아내가 전담한다. 현재 생산량의 절반이 온라인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꿀처럼 믿음이 안 가는 상품이 없다고 한다. 설탕물을 많이 섞은 가짜 꿀이 횡행한다고 투덜거리면서. “설탕물이 많이 들어간 꿀과 진짜 꿀을 외양이나 맛으로 구분하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양봉 농가의 제품을 구매하는 게 답인데, 이건 더 어려운 일일 거다. 그렇다면 생산자들이 정직한 꿀을 생산하는 게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진정한 꿀로 승부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당신은 벌의 생태에 관해 환하다. 이 고요한 산중에서 날마다 벌을 관찰하고, 사소한 징후에서 대세를 읽는 활동을 거듭하다 보면 가끔 인생에 대한 새삼스런 생각이 떠오르진 않나? “때로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난 사실 태평하고 게으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질주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벌들의 무서우리만치 놀라운 생존본능, 근면성, 집중력 등을 바라보노라면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벌처럼 열심히만 살아도 한결 좋은 인생이 될 거라고 자성을 해보는 거다.” 김준환은 지도를 펴놓고 새로운 길을 찾은 끝에 양봉에 입문해 순항하고 있다. 60세 문턱에서 찾은 등댓불? 그는 인생의 새봄을 맞이한 듯 의기양양하다. 서서히 양봉의 스케일을 확대해나갈 참이다. 김준환이 주는 귀농 Tip •양봉에 뜻을 두고 있다면 무엇보다 사전 준비를 충실히 하라. 이론과 실제를 미리 학습하지 않고 뛰어들 경우엔 리스크가 커진다. 매우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전 교육을 받고서도 돌발 상황에 당황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게 양봉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1년간의 실제 경험을 미리 쌓았지만 그것도 짧았다. •양봉의 장점은 초기 투자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봉장은 임대를 해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며, 살림집도 빌려 쓰면 큰돈 들어갈 게 별로 없다. 일정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뒤엔 상당히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양봉업자들이 많아 밀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걸 유념하자. •문제는 판로다. 좋은 꿀을 생산하고도 판로를 못 찾아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판로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2023-07-14 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