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갓진 시골에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다. 귀농한 부부가 운영한다. 아내는 낙천적이고 남편은 신중한 성향의 소유자다. 이상적인 조합이다. 대략 큰 그림을 그려놓고 꿈을 좆아 달리려는 아내의 과속을 남편이 적절히 견제해 균형을 잡아가니까. 매사 협의 과정엔 충돌이 잦지만 결국은 중간 지점을 찾아 절충한단다. 귀농 가부 문제에서부터 부부의 주장이 엇갈렸다. 귀농 이후에도 의견이 상충하는 때가 많았다. 폐가에 가까웠던 농가 주택을 근사한 카페로 재생하면서도 자주 옥신각신했다. 아무려나 카페는 잘 돌아간다. 딱히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입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곳은 아닌 데다, 카페의 담백한 외관과 내부의 소박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손님들의 호감을 산다.
부부가 귀농한 지 올해로 6년째. 전에 살던 곳은 인천. 남편 이태호(46, 카페 ‘홍담’ 대표)는 IT 업계를 거쳐 다년간 자영업을 하다가 이곳 충남 홍성군 구성면 시골로 귀농했다. 귀농을 먼저 제안한 건 아내 우연희(41)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살맛나게 살아보자는 아내의 느닷없는 제안에 이태호는 아마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 같다. 부부 공히 시골 생활 경험이 없는 데다 귀농이 자칫 가시밭길을 걷는 고행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니, 시골 생활을 장난으로 아나?’ 아내의 귀농 제안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그랬다.(웃음)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고 소탈하게, 마음 편하게 살아보자는 게 아내의 목적이었다. 그건 여러모로 무모한 도전에 불과했다.”
아내의 생각을 꺾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는 얘기인가? 무모한 도전이 없는 인생은 따분할 수 있다.(웃음)
“여러 날을 숙고했다. 내가 싫다고 아내의 뜻을 묵살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 차분하게 생각해봤는데 시골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TV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남자들에겐 수렵 생활에 대한 로망이라는 게 다들 있지 않나? 결국 아내의 뜻을 따르게 됐다.”
사전 귀농 준비는 했나?
“이 대목에서도 아내와 이견이 있었다. 매사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아내는 ‘일단 그냥 내려가자, 내려가서 적응하면 된다, 귀농이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우리만큼은 다를 거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했다. 착각에 빠져 있었다.(웃음) 이런 아내의 주장까지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양재동에 있는 aT센터를 드나들며 관련 정보부터 수집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를 통해 귀농교육도 받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곳곳을 돌며 귀농 투어를 하기도 했다. 농업시설업자들을 통해 유용한 팁도 얻었다.”
충실한 사전 준비를 한 셈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을 테고.
“기본적인 방향 하나를 미리 확정할 수 있었다. 흔히 농토는 빌려 쓰고 대신 시설 설비에 자금을 투입하라는 얘기를 하지만, 이건 위험한 방법이라는 걸 현장 답사를 통해 알았다. 만약 농사에 실패할 경우 시설비를 몽땅 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 자금은 전적으로 토지 구입에 쓰고 시설은 지원금을 받아 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귀농지 선정에 나섰다.”
홍성군을 귀농지로 선택한 이유는?
“경상도나 전라도는 너무 멀어 일단 배제했다. 1년의 절반은 추운 겨울인 강원도도 제외했다. 경기도도 뺐다. 땅값이 너무 비싸니까. 결국 충청도로 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귀농할 당시 충북권은 예산 부족으로 귀농지원금이 적다고 해 충남권이 적합하다고 봤다. 해서 충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농교육을 받는 한편 토지를 물색, 마침내 이곳 홍성에 터를 잡게 됐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는 데는 아내도 동의했나?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랑이를 피할 길이 없었다.(웃음)”
나이 든 남편들은 흔히 말한다.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게 신상에 좋다고. 살아보니 아내의 머리가 더 현명한 걸 알겠더라, 그리 판단하는 거다.(웃음)
“난 아내를 존중한다. 하지만 삶터 문제는 워낙 중요한 대목이라 양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마을 한가운데 나온 매물을 사자고 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13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의 복판에 거주할 경우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신이 없어 반대했다. 본의 아니게 마을에 민폐를 끼칠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결국 아내가 양보해서 마을과 떨어진 이곳의 매물을 사게 되었다.”
뜻밖에 찾아온 많은 손님
부부가 구입한 터의 면적은 밭 600평을 포함해 약 800평. 60년 전에 지어져 낡다 못해 쓰러져가는 빈집 한 채가 딸린 터였다. 땅을 결정한 뒤 이태호는 일주일 만에 이사해 귀농 생활에 돌입했다. 가까이 있는 홍성읍내에 셋집을 얻어 임시 거처로 삼고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귀농 열차에 몸을 싣고 일단 질주하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신속하게, 거침없이 움직였다. 이사하자마자 즉각 집수리에 나서는 한편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게 아닌가. 다분히 충실했던 사전 준비에서 나온 추진력이었으리라.
농사 작목은 어떤 걸 선택했나?
“30여 종의 작물을 심었다. 600평에 불과한 작은 밭에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던 거다. 귀농 전 막연하게 생각한 건 고구마 농사였다. 소규모라도 고구마 한 가지를 잘 키워 생산하면 부부가 먹고살 만한 정도의 수익은 나오지 않을까, 대충 그런 구상을 했는데 귀농교육과 현장 답사를 통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그렇다면 고구마보다 유능한 작물을 찾아내야 했다. 과연 우리 밭의 토질에서 어떤 작물이 잘 자랄지 알아내기 위해 30여 종을 시험 재배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 블루베리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 블루베리 400주를 기르고 있다.”
집수리는 부부가 손수 했다지?
“비용도 줄이고, 우리의 취향에 맞는 집을 만들고 싶어 거의 모든 공정을 직접 처리했다. 워낙 낡은 집이라 기둥, 서까래, 흙벽 정도만 남기고 털어낸 뒤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옛날 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고치고 다듬었다.”
수리 과정에서 부부간 의견 충돌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많이 다퉜다.(웃음) 아내는 감성적 스타일로 개성을 살린 구조를 추구했다. 반면 난 실용성과 기능성 중심의 단순하고 깔끔한 공간을 원했다. 결국 절충점을 찾아갔지만 이견 조율하느라 우왕좌왕이 잦았다. 보수를 완료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카페로 개조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진행했나?
“아니다. 카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작지만 편안한 살림집을 만들되 부부 둘이 차를 마시며 기분 좋게 쉴 수 있는 공간도 꾸미자는 정도의 계획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도중에 바뀌었다. 집 고치기를 지켜보던 마을 이장님이 카페를 하면 괜찮을 거라는 조언을 해준 게 계기가 됐다. 시골 카페라도 운치를 돋운 분위기에 착한 서비스를 할 경우 가능성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카페를 통해 부진한 농업소득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 봤다.”
결과적으로 카페를 차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나?
“그렇다. 2019년에 오픈하자마자 뜻밖에도 손님이 많이 찾아왔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대형 카페들은 손실이 컸지만 우리는 무난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공간이라 강아지를 안고 오는 이들도 많다. 카페가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 과도한 인테리어는 자제했다.”
시골 생활 만족도 80%
카페의 분위기는 뭐랄까, 영업집이라기보다 정겹게 꾸민 이웃집 사랑방처럼 편안하다. 천장에 노출된 서까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옛이야기들을 두런거린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다가온다. 카페 외벽은 온통 하얀 칠을 입혀 정갈하다. 귀농을 선창했던 이태호의 아내는 하얀 집의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즐기는 식의 낭만적인 시골 생활을 갈망했다지. 그 바람이 얼추 이루어졌다. 특히 안도할 만한 건 카페 수익을 통해 원만하게 가계를 꾸려나가게 됐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서사는 부를 축적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지어 부를 확장하긴 어렵다. 이태호 역시 농업소득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는데, 용케 카페 사업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는 더 달리고 싶다. 카페는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긴다.
“농사로, 특히 소농으로 돈을 벌기는 실로 어렵다. 우리는 카페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었지만 사실 시골 카페의 태생적인 성장 한계는 명확하다. 확장성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라 보나?
“일의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남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이들 대상의 방과 후 학습교사를 맡고 있다. 한편 지역의 청년 귀농인들을 모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 다양한 형태의 소득 창출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건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를 중점 사업으로 삼아 키워나가고자 한다.”
귀농 6년 차에 이르렀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나? 원했던 삶을 살고 있나?
“흠, 만족도 80%쯤? 도시에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가족 중심의 삶, 가족이 모태가 되는 삶을 목표로 삼았다. 그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귀농 이후 아이 둘을 얻었다. 4인 가족이 된 거다. 농사의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소박한 살림을 꾸려나가며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현 상황에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
모두가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세상이다. 돈에 관해선 어떤 생각을 하지?
“돈이 많아야 행복도 가능하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 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부부애, 가족애에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언사는 수굿하지만 생각엔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다. 온유한 품성이 느껴지지만 매사 치고 나가는 성향? 지난 귀농의 날들을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난 치열하게 살았다!”
이태호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실패 사례가 드물지 않다. 섣불리 뛰어드는 건 무모하다. 심사숙고하되 일단 귀농을 결정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라. 보수적인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들에서 주관하는 ‘6개월 미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초를 다지자.
•귀촌과 귀농이 융합된 형태의 시골살이를 모색하자. 소규모 농토를 통해 농업인 자격증을 획득하고 혜택을 받되, 라이프스타일은 귀촌의 방식을 취할 경우 한결 만족도가 높아진다.
•농사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자. 과도한 노동에 몸이 망가질 수 있다. 찾아보면 농외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가 많다.
•남편만의 단독 귀농은 필패의 지름길이다. 술과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반면 아내가 귀농을 주도해 함께 내려온 경우엔 99%가 정착에 성공하더라.
•부부가 함께 일하는 데 의미를 둘 경우 시골 카페도 권장할 만하다. 단 주변의 시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결정하라.
현재 일본 인구 중 80세 이상은 10명 중 1명이다. 65세 이상은 곧 3명 중 1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시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이 글에서는 정년퇴직 후 경험이 없는 분야인 수제 맥주 회사를 창업한 일본의 65세 쓰카코시 씨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전의 시작 : No Play No Error
37년간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60세에 교장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쓰카코시 토시노리(塚越敏典) 씨. 퇴직 후 첫 1년 동안은 미술관에서 주 4일 근무하며 생활했는데, 어느 날부터 평범한 일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단다.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도전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무언가 흔적을 남겼는가?’였다. 60년 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남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평생을 살아온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였다.
“저는 유키시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평생 교사로 근무하며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시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키시는 일본 술, 배, 토마토, 포도 등으로 유명해요. 일본 술은 오래된 경쟁 업체가 많아서 이 지역 과일을 활용한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친구의 권유로 참가한 양조 체험 투어에서 처음으로 맥주 제조를 접한 쓰카코시 씨는 자신이 만든 맥주를 지인들에게 시음해보게 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는 고향인 유키시에서 수제 맥주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역 활성화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쓰노미야시에 있는 맥주 공장에서 세 달 동안 양조법을 배운 뒤 2019년 수제 맥주 회사 ‘유키 맥주’를 창업했다.
지역 특산물 담은 유키 맥주
인구 약 5만 명의 유키시는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바라키현 서쪽의 작은 도시다. 유키시에서 쓰카코시 씨가 만드는 유키 맥주의 특징은 뭘까?
“과일의 특징을 살린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많아요. 예를 들어 배 원료를 사용한 맥주와 사과 원료를 사용한 맥주 등 계절에 따라 출시되는 제품도 있습니다. 우리의 대표 상품 브랜드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가장 인기 있는 I.P.A 맥주가 있어요. 인디아 페일 에일인데요. 홉 함량이 풍부해 쓴맛이 강하며 알코올 도수도 높습니다. 두 번째는 쓰무기 에일이라고 하는데, 유키시에서 유명한 유키 명주를 활용한 고유 맥주입니다.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만든 천인데, 고치를 만드는 누에는 뽕잎만 먹지요. 쓰무기 에일은 이 뽕나무 열매(오디) 원료를 사용해 오직 이곳에서만 생산됩니다. 세 번째 KISS ALE라는 맥주는 오야마시의 딸기 농장에서 재배한 스카이베리 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인기 있는 맥주입니다.”
새로운 도전에도 자금은 필요하기 마련이다. 매일 손익을 따지는 엄격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창업 자금은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활용했고,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에서 다수의 개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통해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목표 금액은 100만 엔이었지만 실제로는 175만 엔을 모았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가르쳐온 수많은 제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역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전의 어려움과 성취의 즐거움
경영 경험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제2의 커리어로 창업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려웠어요. 이전에도 항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지만, 사장으로서 직원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고용하고 직접 관리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일부 직원을 고용해봤는데,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들과의 협업을 종료해야 했습니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인사관리가 가장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듯이, 깊은 물 속은 들여다볼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은 좀처럼 알기 어렵다. 적합하지 않은 인재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이른바 ‘미스 매칭’을 겪는 기업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맥주 회사를 창업해 좋았던 점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쓰카코시 씨는 교직원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늘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학교에서 가르치던 경제나 세금 관련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해보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점도 좋단다. 이론보다 실무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했다.
유키 맥주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 12종은 각각 330ml 병당 600엔(약 5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맥주의 약 3배 가격이다. 아무래도 수제 맥주는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어떤 판매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특별한 전략은 없지만, 대기업 제품과 차별화되는 ‘수제 맥주’만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맛이 좋으면 반드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NS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어요. 아직 서툰 부분도 있지만요….”
지역에 기여하는 삶
유키 맥주는 지난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이 됐다. 개인사업자로 일할 때는 수익이 조금 나기도 했지만,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설비를 늘리고 창고를 만드는 등 투자를 해 대출 부담이 늘어난 상태다. 쓰카코시 씨는 매달 상환해야 할 대출금을 생각하면 잠을 이루기도 힘들 만큼 압박을 받지만,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니 잘 헤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쓰카코시 씨를 교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학부모와 제자들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면 교육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제자들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지금까지 유키 맥주를 4년 동안 운영해올 수 있었던 건 결국 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답하고자 쓰카코시 씨는 매일 아침 지역에서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한다. 쓰레기를 줍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마주칠 때면 “너희들 나중에 성인이 되면 반드시 유키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외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장직을 맡은 경험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것도 그가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정년 전에는 항상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요즘은 혼자서 종일 일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껴요. 늘 라디오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할 기회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잠시나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하루를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누가 저에게 부탁을 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예요.”
쓰카코시 씨는 유키 맥주가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란다. 손자가 성장해 자신의 사진을 공장 벽에 걸어두고 “이 사람이 창업자고 나는 3대째야”라고 말해주면 좋겠단다. 할머니·할아버지가 된 노년층이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장면이다. 내가 하던 일을 손자·손녀가 이어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결합해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꾸려나간다면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쓰카코시 씨는 수제 맥주 양조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전하고 있다. 맥주를 양조하며 느낀 창의적인 즐거움과 사회적인 만족감이 삶을 채워준다. 그는 노후에도 변화와 도전을 통해 뜻깊은 인생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노 플레이 노 에러!’ 아무것도 하지 않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가 존재했다는 걸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창업으로 회사를 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가치를 남길 수 있을 거예요. ‘예순이 지났는데, 앞으로 뭘 하겠어?’가 아니라 ‘앞으로 40년이나 남았네’라며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실천과 도전의 중요성’을 가르친 그는 현장에서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기를 자청했다. 정년퇴직 후에도 ‘노 플레이 노 에러’ 정신으로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을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며 사회에서 만족감을 찾아 기여하는 삶이 의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50~60대 샐러리맨이 정년퇴직 후에 1인 창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년 후 기존 기업에 재고용되는 경우 월급과 직위가 대폭 낮아지고 단순 업무로 인해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1인 창업을 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소규모로 시작하니 리스크를 줄이고 평생 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창업할 때 동료나 후배에게 함께 일하자고 권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신중해야 한다. 성공하면 이익 분배로 갈등이 생기고, 실패하면 책임을 떠넘기며 헤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년 후 창업은 혼자 개척해 나가는 것이 철칙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기에 쓰카코시 씨의 유키 맥주 창업기는 100세 시대에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이야기다. 정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하는 삶의 가치를 더 많은 분들이 나누기를 기대한다.
일본, 세계 최초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나라. 100세 이상 노인이 9만 2000명에 달하며, 최고령자 나이는 남자 111세, 여자 115세에 이른다. 인구 10명 중 1명이 80세 이상이다. 일본인들이 65세 정년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들의 삶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은 우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웃이지만, 고령화를 먼저 겪어본 선배이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 주변엔 은퇴 후의 삶을 휴식으로만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보람 있고 알차게 살아가는 일본 노인들의 삶을 신미화 교수와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70대와 80대 할머니들이 함께 작은 피자 가게를 운영하며 얻는 행복과 소중한 순간을 담은 이야기다. 이들은 작은 가게에서 끊임없이 웃으면서 함께 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을 찾는다. 어떤 목표나 성취보다는 서로의 존재와 관계 속에서 소중한 순간을 찾아가며 행복을 느낀다. 이번 취재를 통해 노년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시작은 지역 봉사활동으로부터
구름 한 점 없는 7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도쿄에서 전철을 3번 갈아탄 후 다시 택시를 타고 3시간 만에 도착한 곳에는 한적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 길가에 아담한 가게가 보였다. 간판에는 ‘바바(할머니)피자’라고 적혀있었다.
바바피자는 이름 그대로 73세부터 86세까지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피자 전문점이다. 피자 가게 앞 넓은 밭 이름도 BaBa(ばぁば)밭이다. 할머니들이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그 채소를 피자에 토핑으로 올린다.
2019년 6월 오픈한 바바피자는 매주 금·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연다. 할머니들은 오전 9시부터 개점 준비로 분주하다. 밭에서 직접 거둔 신선한 재료를 쓰고 인근 항구에서 잡히는 정어리와 대합을 넣어 만든 순수한 맛의 피자. 건강하고 활기찬 할머니 여섯 명(토키·86, 쿄오코·85, 미에코·77, 마츠에·75, 타카코·73, 야스에·73)이 운영하는 곳으로, 매스컴에 알려져 지금은 전국에서 손님들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가게다.
지바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산무시. 바바피자의 시작은 85세인 쿄오코 씨와 86세인 토키 씨가 50여 년 전에 지역 봉사단체인 부인회에서 만나 아는 사이가 되고부터다.
“남편을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큰아들까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냈죠. 혼자 살고 있던 제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마츠에 씨가 구급차를 불러주었고 함께 병원으로 가주었어요. 그때 위로해준 사람들이 여기 있는 다섯 명이랍니다”라며 미소 짓는 쿄오코 씨.
2년간 무보수였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쿄오코 씨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그라운드 골프를 시작했고, 마침 골프장에 설치돼 있던 화덕에 피자를 구워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줬더니 호평이었다. 부인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함께해온 여섯 명이 모여 가까운 구주쿠리 항구에서 잡은 신선한 대합과 정어리, 산무시 특산물인 파와 양파를 넣어 피자를 만들어 팔자고 의견을 모았다.
쿄오코 씨는 우연히 산무시가 관리하는 집 한 채가 비어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침 수도 시설도 화장실도 있어서 바로 신청해 무상으로 빌렸다. 워낙 오랜 세월 지역을 위해 봉사활동을 많이 한 할머니들이라 공무원들이 쉽게 승낙해주었다.
하지만 개점 초기 피자 반죽이 잘 늘어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가장 젊은 타카코 씨가 고생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반죽을 둥근 나무봉으로 얇게 밀어도 좀처럼 둥그렇게 되지 않고, 반죽도 찢어져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우연히 TV를 보니 피자 세계 챔피언 대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거기에서 반죽에다 가루를 대량으로 뿌리는 걸 보고 그걸 흉내내니까 잘 만들어졌죠.”
여섯 명이 모이니까 아이디어가 자꾸 나오더라며 말이 끊어질 새 없이 이어졌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우리 중에 병이 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각자 역할이 나누어져 있어서 쉴 수가 없어요. 우리 중에 제일 건강한 사람은 최고령자인 토키 씨예요.” 이야기를 듣던 야스에 씨가 처음으로 참견하며 말을 보탰다.
“토키 씨는 병원에서 청소하는 일을 매주 이틀씩 하고 있는데, 여기서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은 토키 씨뿐이에요. 우리 젊은 사람들은 혈압약이라든지 한 가지씩은 먹거든요.” 타카코 씨가 덧붙였다.
이들이 선택한 색다른 ‘창업’
“창업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죠?” 필자의 전공이 경영학이라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
“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어요. ‘당신은 얼마 낼 수 있죠?’라고 물었고, 각자 낼 수 있는 형편대로 20만 엔, 30만 엔 씩 내서 150만 엔(약 1350만 원)을 모았어요.” 쿄오코 씨가 대답했다.
“그러면 불공평하지 않나요?”
“우린 50년 이상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귄 사람들이라 각자 사정을 다 알아요. 저 집에는 올해 손자가 대학에 입학하니까 축하금이 들어갔다든지, 남편이 입원해서 돈을 써 버리고 없을 거라든지….”
출자금은 150만 엔이었고, 점포 인테리어는 가능하면 돈을 들이지 않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남은 목재를 받아와 만들었다.
“장사를 하려면 손해 보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죠. 꼭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게 저의 방침이에요.” 쿄오코 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처음 오픈했을 때는 매출이 오르지 않았고, 이듬해 코로나19가 시작되어 6개월 동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2년간 보수가 없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만두자고 하지 않았다. 그 후 우연히 지방신문에 소개되어 여섯 명의 할머니가 피자집을 운영한다는 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는 손님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이익금을 모아 각자 출자한 금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수익이 어느 정도 되나요?”
“1시간에 900엔(약 8100원) 정도.”
“하루 6시간, 금·토•일요일 계산하면 한달에 6만 5000엔 정도네요.”
“요즘 재료비도 오르고 공과금도 올라서 빠듯해요.”
“우린 다들 월•화•수요일 중에 이틀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요. 그러니까 모두들 연금을 받고 있지만, 연금은 쓰지 않고 그대로 저축해도 충분히 생활은 돼요.” 조용히 듣고 있던 미에코 씨가 말했다. 지금 목표는 가능한 한 가게를 오랫동안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70대들에게는 80대인 쿄오코 씨와 토키 씨가 목표랍니다. 저희의 롤모델이죠. 그러니까 두 분이 100세까지 일해주셔야 해요. 하하하.” 타카코 씨가 힘주어 말했다.
피자의 마지막 토핑은 ‘웃음’
“제가 오늘 아침 나오면서 남편한테 할머니 여섯 분이 경영하는 바바피자에 취재하러 간다고 하니까, ‘빨리 한국에 할아버지 여섯 명을 모아서 지지(할아버지)파스타를 만들어야겠네’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머 너무 좋아요! 하하하.”
“이 참에 한일 간 바바와 지지 교류회를 갖는 건 어떨까요?”
“대찬성이에요.”
“선도 보면 어떨까요?”라고 짓궂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당장 우리 바바부터 한국으로 갈게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아시죠?”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끊임없이 웃는다. 손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웃고, 주방에서 누군가 실수해도 웃는다. 돌이 굴러가도 깔깔거리는 소녀 같은 웃음을 피자의 마지막 토핑으로 선사한다.
가게에 테이블은 세 개지만 가까운 해수욕장에 들렀다가 오는 포장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와 오후 3시 문을 닫을 때까지 바빴다. 조금 한가한 틈을 찾아 정어리 피자와 대합 피자를 시켜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순수한 맛이었다.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양파와 파는 바닷물이 섞인 토양에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작은 일을 통해 얻는 행복감
“언제가 가장 행복하던가요?”라고 여섯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지금! 지금! 지금! 지금! 지금!”
모두가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왜죠?”라고 질문하니, 각자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잖아요.”
“3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잖아요? 그때부터 차를 마시면서 반성회를 가져요. ‘오늘 피자에 넣은 정어리는 조금 짠 것 같아. 다음번에는 소금을 적게 넣어야겠어’, ‘오늘 너무 바빠서 포장 손님이 나가실 때 서비스로 드리는 가지하고 피망을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다음번에는 좀 더 신경 써야겠어’라고요.”
“무엇보다 여기 오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다른 날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 빨리 금요일이 오길 기다려요.”
할머니들이 작은 일을 통해 하루하루 얻는 행복감. 이 행복은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돈, 명예, 권력, 성공, 성취감, 목표 달성 같은 것이 기준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찰나에 그치는 일과성에 불과하다.
할머니들이 찾은 행복은 여섯 명의 관계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매주 모여 함께 일하고 담소 나누면서, 때로는 고통도 공유하고 우정을 쌓아가면서, 달성해야 할 목표도 없이 오로지 자기들만의 행복한 낙원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에도 친구와 함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제 한번 그들의 피자집을 찾아가 보지 않겠어요?”
‘불멸의 가업승계 & 미래를 여는 신탁’과 ‘내 재산을 물려줄 때 자산승계 신탁’ 개정판이 오는 10일 출간된다.
우리은행 신탁ㆍ세금 전문가 신관식 차장(세무사)이 쓴 책으로 ‘불멸의 가업승계’에는 창업주를 위한 현실적인 가업 승계 방안을, ‘내 재산을 물려줄 때’에는 신탁을 통한 상속, 증여, 기부 방안을 담았다.
초판 출간 후 9개월 만에 다시 선보이는 개정증보판 ‘불멸의 가업승계’에는 새로운 주요 정보와 유의미한 가업 승계 컨설팅 경험을 담았다. 또한 가업 승계 세제지원 제도의 연혁과 구체적인 Q&A, 2024년부터 적용될 세법 개정 사항까지 반영했다.
특히 창업주 등이 사망한 뒤 가업을 물려주려고 할 때 가업상속공제와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 창업주 등이 살아있는 동안 후계자에게 주식을 물려주려고 할 때 증여세 과세특례와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 성년 자녀에게 창업자금을 증여할 때 과세특례와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 장애인 자녀 등의 독립과 지원을 위해 재산을 물려주려고 할 때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 가업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좋은 일에 쓰려고 할 때 공익신탁을 활용하는 방법 등이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다.
‘내 재산을 물려줄 때’ 개정판은 사람들이 상속, 증여, 기부 등의 자산 승계를 고민할 때 신탁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 책이다. 자산 승계 신탁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수록했다.
또한 유언대용신탁과 유언서의 장단점을 비교해주고, 유류분을 고려한 자산승계전략을 담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치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신탁을 통한 자산승계방안이 이뤄지고 있음을 안내하고, 재산 증여 후의 구체적인 신탁 사례까지 담았다.
더불어 창업자금, 결혼자금 증여시 신탁 활용 절세 방법, 장애인 신탁, 이벤트형 신탁, 공익 신탁, 유가족 신탁 등 자산 승계와 부의 이전에서 꼭 알아야할 세무상식ㆍ법률상식도 수록했다.
금융업에 몸담은 지 50년.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의 원칙을 전하고 노후 설계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76세인 지금도 현장에서 1년에 170번 이상의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산관리 방법을 전하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의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한국거래소에서 시작해 대우증권을 거쳐 현대투신운용사와 굿모닝투신운용사 대표직을 역임했다. 이후 미래에셋증권 그룹 부회장 겸 은퇴연구소장으로 9년을 일했다. 지금은 9년째 사회공헌 조직인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금융업에 첫발을 들일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은퇴 교육이나 노후 설계 교육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노후자산 관리에 대해 물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
노후 대비 자산관리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세 가지 자산을 잘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 가지 자산은 실물자산, 금융자산, 인적 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관리라고 하면 “몇 억이 있으면 노후가 충분하냐” 묻지만, 강창희 대표는 100세 시대에 이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자산관리라고 하면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는데,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자산관리에 포함됩니다. 절약도 자산관리라는 의미지요. 매달 받는 연금이 있는지,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는지, 인적 자원 관리를 잘해서 내 몸값을 높이고 있는지, 내 수준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노후에 얼마가 필요할지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시골에서 사는가 도시에서 사는가, 1인 가구인가 4인 가구인가, 어떤 취미를 즐기는가, 여행을 1년에 몇 번 갈 것인가 등 노후에 어떤 삶을 보낼 것인가에 따라 필요한 생활비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강창희 대표는 ‘몇 억이 있어야 노후가 준비됐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얼마를 준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생활수준을 어디에 맞출 건지가 중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것을 ‘경제적 자립’이라고 합니다. 노후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노후 대비 자산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퇴직연금을 굴리면서 자산관리의 기본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 노인의 72%가 자녀의 도움으로 수입을 충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4%가 자녀의 도움을 받습니다. 연금을 준비해서 30년 동안 매달 300만 원씩 받으면 12억 원 정도의 예산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돈이라고 생각 안 해요. 20~30대 직장생활 시작과 동시에 3층 연금이라고 하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3층 연금을 준비했다면 농지연금, 주택연금 등 공적·사적 연금으로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이 노후 대비 자산관리의 시작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소 생활비를 공적·사적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나라가 선진국이에요.”
부동산·금융자산 균형 찾아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은 대부분 실물자산, 그중에서도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65세 이상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80~90%에 이른다. 강창희 대표는 주택연금 등을 꼭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는 노인 대국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는 빈집이 넘쳐난다. 자식들은 부모의 집을 상속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돈을 얹어 집을 팔아야 할 처지까지 왔다. ‘아사히신문’은 지금의 부동산(不動産)은 부(負)동산이 됐다고 진단했다.
“마이너스 동산 시대가 왔다는 거죠. 과거 수명이 짧았을 때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도 됐지만, 부모가 90세가 되면 자식도 60대입니다. 노인이 노인에게 집을 물려주는 셈이죠. 일본 경제가 한동안 침체된 이유 중 하나가 노노(老老) 상속입니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산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0이 넘어 집을 상속하는 것보다 주택연금으로 생활비를 받아 손주 학비에 보태주는 게 더 나을 수 있어요. 10억 원 가치의 집에 살아도 현금이 없으면 빈곤한 노인입니다.”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자식을 부양할 수도 없는 시대다. 강 대표는 오히려 나이 들수록 고층 아파트에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독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비싸고 평수 넓은 아파트보다 걸어서 장을 볼 수 있고, 문화시설이 가깝고, 병원이 가까운 작은 평수의 집으로 다운사이징하고, 차액은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는 것. 이제는 집을 자산의 관점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더불어 위험관리도 시작해야 한다. 노후 파산의 원인으로 꼽히는 다섯 가지 리스크는 은퇴 창업 리스크, 금융사기 리스크, 자녀 리스크, 건강 리스크, 황혼이혼 리스크다. 40대라면 건강관리가 우선이다. 중대 질병보험 등으로 의료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자녀 리스크 관리도 이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비, 자녀 결혼 비용을 어떻게 준비하고 쓸지 계획하고 자녀의 경제적 자립심도 키워줘야 한다. 강 대표는 자녀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없다면 증여를 서두르는 게 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평생 일할 각오를 하라
50대가 넘어서면 앞서 말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점차 금융자산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동산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부채가 많다면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될 수 있다.
“부채를 줄이고 어떻게든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반반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계자산의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것이죠. 다음으로 할 일은 퇴직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거예요.”
최소 연금이 준비되었다면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몸값을 올리라는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세 가지 자산 중 인적 자산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마틴스쿨은 2033년까지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시대이기도 하다.
“창직의 시대가 오는 겁니다. 기왕이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은 퇴직하고도 2~3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죠. 지금부터 퇴직 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얼마를 버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핵심입니다.”
미국에는 약 200만 개의 NPO(제3영역의 비영리단체)가 있다. NPO는 정부나 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노후가 준비된 미국 은퇴자들은 현역 시절 받았을 수입의 3분의 1만 받고 NPO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강 대표는 노후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도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76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후에는 3대 불안이 있습니다. 돈, 건강, 외로움이에요. 우리는 은퇴 후의 삶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은퇴 후 살아갈 시간을 ‘퇴직 후 12만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엄청나게 긴 후반 인생을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강창희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일할 능력이 있고 의향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
“지금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게 아니고,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준비해나가면 행복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금융사기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0·50대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2019년 약 3400억 원에 달했다. 60대 이상의 같은 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약 1760억 원이다. 2019년과 2020년 40대 이상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총 약 7700억 원에 이른다.
노후에 금융사기로 재산을 다 잃게 되면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심적 피해도 상당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는 금융 사기뿐 아니라 경제적 학대도 위험 요소다. 80대 부모의 연금을 독립하지 못한 50대 자녀가 가져가는 예도 있고, 요양원 원장이나 요양보호사가 치매에 걸린 고령자의 예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은퇴 후 준비 없이 창업했다가 받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폐업하면서 자산 압류에 처하는 사례도 있다. 대출 사기에 휘말려 압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여러 이유로 자산이 압류되면 노후 생활이 빈곤해지는 악순환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압류방지 방법들과 금융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알아두자.
◆압류방지통장
1. 국민연금 안심 통장
국민연금은 법적으로 압류를 못 하게 되어있지만, 국민연금을 받아서 일반 통장에 넣어두면 연금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다. 통장에 압류가 들어온다면 연금이라는 걸 소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게 국민연금 안심 통장이다. 분할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반환일시금을 입금할 수 있고 일반 자금은 입금할 수 없다. 한 번에 이체할 수 있는 금액은 최저 생계비 수준인 185만 원까지다. 출금할 때는 일반 통장과 같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2022년 6월 기준 안심 통장 가입자는 약 32만 명이다.
2. 행복지킴이통장
행복지킴이 통장은 수급자 전용 압류방지 통장이다.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수급금 등만 입금할 수 있다. 야외 육체노동이 많아 질병이 잦은 농민을 위한 정책보험 ‘농업인NH안전보험’의 보험금도 행복지킴이 통장으로 입금 가능하다.
주민센터에서 수급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은행에 방문해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면 된다. 이후 주민센터에 해당 통장을 수급금 입금계좌로 변경하면 된다. 농업인NH안전보험으로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고 싶다면 보험가입내역확인서나 보험증권을 챙겨야 한다.
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의 압류를 방지하는 실업급여 지킴이통장도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해당 통장을 행복지킴이통장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3. 주택연금 지킴이통장
주택연금을 받고 있다면 주택연금 지킴이통장으로 185만 원까지 압류를 방지할 수 있다. 185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다면 185만 원은 지킴이통장으로, 초과금액은 일반계좌로 나누어 지급해준다.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를 방문하거나 유선으로 ‘주택연금 전용계좌 이용 대상 확인서’를 발급한 뒤 주택연금을 받는 계좌의 은행 영업점에서 개설할 수 있다. 입금액은 한도가 있지만 잔액은 한도 없이 유지할 수 있고 출금 및 이체도 자유롭다.
4. 농지연금 지킴이통장
농민이라면 농지연금 전용 지킴이통장이 있다. 농지연금 제도는 고령 농가의 소득 안전망 확보를 위해 영농 경력이 5년 이상이고 만 65세 이상인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로 받는 연금이다. 농지연금 지킴이통장은 NH농협은행이나 지역 농·축협에서 가입할 수 있다.
농지연금 신규가입자는 압류방지통장 개설 후 농지연금에 가입하면서 해당 통장으로 연금 수급을 신청하면 되고, 기존 농지연금 가입자는 통장 개설 후 한국농어촌공사에 계좌 변경을 요청하면 된다. 안심통장과 마찬가지로 185만 원까지 입금할 수 있다.
5. 기타 압류 방지 통장
위 네 가지 통장 외에도 ▲실업급여 지킴이통장(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 ▲공무원연금 평생 안심통장(공무원 연금 수급자) ▲국방부 압류방지 통장(장병급여 안심통장) ▲희망지킴이통장(산재보상 수급자) ▲노란우산공제(자영업자·소상공인) ▲임금채권 전용통장(사업주 대신 국가가 지급하는 체불임금 압류방지) 등이 있다.
또한 퇴직금도 압류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퇴직연금 통장으로 잘 알려진 IRP 계좌를 활용하면 된다. 퇴직금을 일반 통장으로 받으면 압류 위험이 있지만 IRP 통장에 넣어둔 퇴직금은 압류할 수 없다.
◆금융사기 예방 서비스
6. 지정인 알림서비스
카드 대출 금융사기가 걱정된다면 지정인 알림서비스를 신청하자. 고령자의 신용카드 대출 상품 이용 내역이 가족이나 사전 지정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안내된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고령자가 가입 가능하다. 대면으로 신규카드 발급할 때 가입할 수 있으며, 발급 후에 개별 가입도 가능하다. 다만 알림서비스에 가입할 때 알림을 받도록 지정한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만약 지정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알림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7. 대리청구인 지정
치매로 인해 보험금 수령이 걱정될 때는 대리청구인 지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 수익자가 치매, 의식 불명, 중대한 질병 등으로 직접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을 때를 위한 서비스다. 대리청구인이 대리로 보험금 신청을 할 수 있다. 대리청구인은 치매보험, 자동찿보험, 질병·상해보험 등 다양한 생명·손해보험에 적용된다. 치매보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할 때 원칙적으로 대리청구인을 지정하도록 되어있다. 다만 서비스 적용 가능 상품이나 지정대리청구인의 범위는 보험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또 대리청구인에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서 피보험자(보험 가입자)가 의사능력을 회복해 보험금을 다시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재지급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따라서 대리청구인은 믿을만한 사람으로 신중하게 지정하도록 하자.
8. 보이스피싱지킴이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지킴이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보이스피싱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내한다. 다양한 보이스피싱 사례들도 소개한다. 사전에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한편, 만약 피해가 있었다면 신고와 함께 해결 방법들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에서는 금융사기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은 무료로 들을 수 있으니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보고 사전에 금융사기 예방교육을 받아두는 것도 좋겠다.
노후 준비에서 최근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득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다. 과거에는 ‘노후에 모아둔 자산이 얼마여야 하는가’가 노후 대비 자산 준비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사망 전까지 끊기지 않고 현금 창출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50대 이상 퇴직자들이 퇴직 전 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재정관리’다. 또한 120세 시대에 중요한 자산으로 떠오르는 것은 ‘인적 자산’이다. 전문가들은 연금으로 최소생활을 준비하고,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나의 가치를 올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인적 자산 관리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퇴직자들이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의 노후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보자.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50대 이상 퇴직한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퇴직 전 미리 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가 되는 것’에 대해 조사했다. 응답자 중 37.5%가 미리 준비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으로 ‘재정관리’를 꼽았다. 특히 연금 준비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보였다. 응답자의 약 70%는 연금저축, 연금보험 등 개인연금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국민연금을 더 받을 수 있게 신경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연금 외에 ‘주식이나 펀드 투자’(27%)와 ‘의료비 관련 괜찮은 보장 보험’(21%)을 준비해뒀으면 좋았겠다고 후회했다.
이동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개인연금으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모습”이라면서 “투자를 통해 노후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은퇴 이후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재정관리 다음으로 준비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은 ‘퇴직 후 일자리 계획 및 준비’다. 응답자의 약 67%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부업을 준비하거나, 자격증 등을 미리 공부하거나, 재취업·창업 준비를 미리 시작할 걸 후회했다.
이어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묻자 ‘일자리로 소득 마련’을 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퇴직금·저축자금·투자자금 활용’이 뒤를 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소득 공백기를 대비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자 ‘재취업·창업 등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답변이 많았으며, ‘퇴직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고도 했다.
이동근 연구원은 “일의 목적에는 자아실현과 같은 가치 실현도 있겠지만, 이번 설문 조사는 다른 결과를 종합해볼 때 은퇴 직후 소득 공백기에 생활비를 마련할 소득원으로서 일자리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퇴직 후 소득 공백기에 일하거나 근로기간을 늘리겠다는 답변을 통해 노후 생활비에 일이 가지는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결국 퇴직 후에 중요한 것은 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후 연금으로 수입이 없을 때를 대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노후에 모아둔 자산이 얼마여야 하는가’가 노후 대비 자산 준비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사망 전까지 끊기지 않고 현금 창출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더불어 소득이 꾸준히 발생할 수 있도록 ‘일’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노후 대비 자산 준비’란 ‘얼마나 풍족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미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퇴직했더라도, 지금부터 나의 자산을 점검하고 현실에 맞는 자산 관리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네 번째 순서로 ‘공인중개사’에 대해 알아봤다.
◇ 공인중개사, 왜 유망할까?
공인중개사는 오래 전부터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로 실질적으로 노년기 대비에 좋은 일자리다. 국가전문자격인 ‘공인중개사’는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고, 한번 취득하면 갱신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도전하는 데 무리가 없어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도 시도해 볼 만하다.
-김경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장
40대 이상 중장년은 오랜 사회활동 경험을 통한 대인처세술, 폭넓은 대인관계, 복합적인 인지능력 등이 성공적인 공인중개사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 직업전환의 부담이 적으며 소자본으로도 개인·합동사무소 중개법인 등의 설립이 가능하다. 소득의 경우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단기간 내에 기존 업무와의 소득 격차를 최소화 또는 상향할 수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은퇴 후 20년 이상의 사회활동을 준비 할 수 있는 평생직업이다.
-KCI 한국자격증정보원 ‘공인중개사’ 소개란
부동산중개사로도 불리는 공인중개사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직업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을 열어 운영하는 이들을 보면 중장년이 상당수다. 눈으로도 쉽게 확인될 정도로 중장년의 수요가 높은 직업임을 알 수 있다. 공인중개사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기투자자본(인테리어, 집기 및 업무시설 등)이 비교적 적게 들고, 진입 장벽이 낮다고 알려져 제2직업으로 염두에 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는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 공장, 토지 등의 부동산에 대해 거래 당사자 간 매매, 교환, 임대차 등의 득실 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고 중개한다. 부동산 이용과 개발에 대한 상담이나, 주택과 상가 분양 대행, 경매 대상 부동산에 대한 권리 분석, 입찰대리 업무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때문에 실무에서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대인관계 능력, 협상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개 의뢰를 받은 부동산의 지변, 평수 등을 파악해 매입자와 예정자에게 시세, 재테크, 향후 전망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장 답사나 시장 조사 등도 진행한다. 부동산이나 금융 정책, 세무 및 법률 지식, 부동산 경기나 동향 등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이 요구돼, 지식을 습득하는 데 흥미가 있어야 적성에 맞는다.
아파트나 주택 등의 경우 봄, 가을 이사철 주말에 고객이 많은 편이다. 고객의 여건과 편의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근무 시간은 다소 유동적이다. 영업 차원에서 시장조사나 매물분석, 온라인을 통한 고객 상담 등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부동산 현장 방문 외에는 특별히 체력 소비가 되지 않고,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아 나이에 제한 없이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의 관심이 높게 나타난다.
◇ 공인중개사, 나도 될 수 있을까?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중개 일을 하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 공인중개사 시험(국토교통부 주관)에 합격증이 필요하다. 시험은 1차와 2차가 있는데, 둘 다 합격해야(매 과목 100점 만점 기준 40점 이상,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 자격증이 발급된다. 시험은 연 1회 시행되기 때문에, 시험 일정을 잘 숙지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인중개사 시험의 경우,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1차를 합격해야 2차 시험 응시가 가능한데, 두 시험을 하루에 동시에 치를 수도 있다. 다만, 1차 시험에 불합격했을 경우 2차 시험은 무효 처리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나 여건에 따라 단기간에 1·2차를 동시에 대비하기도 하고, 시간을 두고 두 해에 걸쳐 각각 준비하기도 한다. 시험 합격률은 20~30% 내외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이 전무 하다면 사이버대학 등 관련 대학이나 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된다.
자격 취득 후에는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나 대학에서 위탁받아 시행하는 실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다면 부동산중개사사무실에 중개보조원으로 취업한 후 실무경험을 쌓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해도 된다. 중개보조원은 주로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부동산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꼭 부동산 관련 학력이나 전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 따르면 자격증 시험 준비나 취득 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협회) 관계자는 “이전에는 은퇴 후 창업 등을 목표로 한 중장년층이 시험 응시생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요즘은 개업공인중개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청년들의 응시율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창업의 목적 외에도 건설사 또는 분양사 등 관련 업계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 용도로 자격증을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 공인중개사, 도전을 꿈꾸고 있다면?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고, 진입 장벽은 낮은 만큼 제2직업으로 떠올려본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염두에 둘 부분이 있다. 먼저, 현재 공인중개사의 경우 과포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 수는 2023년 4월 30일 기준 11만 7786명이다. 통계청 집계에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는 2202만 2753명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당 수요 가구가 약 187명으로 계산된다.
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사무소당 가수요층을 300가구로 본다. 공인중개사는 자격 배출이 많고(2022년까지 52만 여 명),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개업공인중개사 수가 과포화 상태라 할 수 있다”며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 휴·폐업자 수가 1만 3217명에 이를 정도로 중개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최근 전세사기 등 불미스런 사회적 이슈에 따른 부담이나, 개업공인중개사끼리의 경쟁 구도와 갈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협회 관계자는 “타인의 거의 모든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을 거래하는 업종이므로 안전한 거래와 권리 이전에 신경 써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 윤리와 소명 의식도 필요하다” 며 “부동산 중개 업무는 다량의 정보 취득과 다양한 기법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동종 업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나만의 사무실 운영 및 홍보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전한 부동산 중개를 위해 타 중개사무소에서 일정 기간 소속공인중개사 등으로 활동하며 중개 기법을 익히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직업도 있어요!" 공인중개사 자격증 활용 직업 5選
[1] 부동산개발업자
· 유사 명칭: 부동산디벨로퍼(Developer), 부동산시행자, 부동산개발자
· 숙련 기간: 4~10년
· 하는 일: 사업 대상 부지의 입지여건, 주변수요 등을 분석해 적합한 부동산상품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용지구입, 인허가절차 진행, 자금마련, 건축, 마케팅, 분양, 입주, 정산, 사후관리까지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2] 부동산정비사업관리자
· 유사 명칭: 재건축정비사업자, 재개발정비사업자, 도시환경정비사업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사업시행자로부터 위탁을 받아, 조합설립 및 정비사업 동의, 조합설립인가 신청 등을 진행한다. 사업성검토 및 정비사업의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인가 신청, 분양 및 관리 처분계획 수립을 대행하거나 자문하기도 한다.
[3] 부동산경매인
· 유사 명칭: 부동산 경매사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법원 경매나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법인에 의해 시행되는 공매 등 부동산경매 시장에 나온 경매 물건에 대해 권리분석과 현장 확인 업무를 하고 의뢰인의 경매 참여를 지원한다.
[4] 부동산신탁관리원
· 유사 명칭: 부동산처분신탁관리원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부동산 소유주로부터 신탁청약을 접수하고, 신탁에 따른 내용을 설명한다. 신탁부동산에 대한 물건, 환경, 법적규제, 이용상황, 인근의 임대료 등을 조사하고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신탁부동산의 종합관리계획을 작성하고, 소유권이전 및 신탁등기를 한다.
[5] 부동산컨설턴트
· 유사 명칭: 주택상담원, 재건축상담원, 부동산상담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토지나 건물의 최적의 활용방안을 분석하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수집·분석한다. 부동산의 보유, 매매, 개발의 타당성을 검토하거나 개발 최적시설·최적규모를 판정, 투자수익성을 파악한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2020 한국직업사전'
같은 아이템이라도 어디에서 창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누구나 알만한 A급 상권 지역의 경우 그만큼 임대비용과 권리금이 매우 비싸다. 주로 역세권, 대학가, 오피스, 아파트 인근이 꼽힌다. 이런 상권은 권리금만 1억 원이 넘기도 한다. 창업자금이 넉넉지 않다면 직접 시장조사도 하고 주변 상권도 분석하려는 노력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도 PC나 모바일을 통해 상권 분석이 가능하다. 온라인 상권 분석을 위한 사이트 3곳을 소개한다.
◇ 소상공인마당 상권정보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 사업과 각종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소상공인마당’ 홈페이지에서는 다양한 상권 분석 툴을 제공한다. 홈페이지 접속 후 ‘상권정보’ 페이지로 들어가면 창업자가진단부터 상권분석, 시장분석, 상권현황 등을 무료로 확인 가능하다. 시장분석 메뉴에서는 커피, 치킨, 한식, 편의점 등 업종별 기간에 따른 ‘창업 기상도’를 한눈에 보여준다. 상권현황 및 분석 페이지에서는 지역과 업종을 입력하면 업소 현황, 매출지수, 배달지수, 임대료 현황, 창폐업률 현황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배달업이 성행하는 만큼 관련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배달지수’ 항목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
서울시에서 점포를 낼 계획이라면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가 유용하다. 일반점포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포함해 외식업, 서비스업, 소매업으로 나눠 확인 가능하다. 분기별 자료를 제공해 기간별 점포 추이도 가늠할 수 있다. 카테고리는 크게 ‘뜨는 상권’, ‘나는 사장’, ‘나도 곧 사장’으로 나뉜다. ‘뜨는 상권’에서는 행정동, 상권별로 점포수, 매출, 유동인구, 주거인구의 순위를 보여준다. 지도 화면 내에서 뜨는 동네와 점포수를 직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나는 사장’에서는 운영 중인 점포의 위치와 업종을 선택 후 보행권역 또는 반경 영역을 지정하면 주변 점포를 분석해준다. ‘나도 곧 사장’은 예비 창업자를 위한 메뉴로, 업종과 지역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점포당 3년 생존률’ 등의 세부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밖에 창업자 스스로 경영 환경 및 경영 센스를 측정하는 자가 진단 툴도 마련됐으니 확인해보면 좋다.
◇ SGIS 통계지리정보서비스
통계청 SGIS 통계지리정보서비스 홈페이지 내 ‘기업생태 분석지도’에서는 기업체의 활동, 비활동, 개업, 폐업 등의 생태지표를 통해 원하는 지역의 업종별 통계분석 정보를 제공한다. 주제별 선택에서 ‘노동과 경제’ 카테고리를 들어가면 ‘사업체수 분포 현황’, ‘도소매업 및 서비스업 현황’, ‘치킨점 1개당 인구수’, ‘커피전문점 변화’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해 기간별, 대상 유형별 통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업종통계지도’ 메뉴에서 ‘생활업종’을 선택하면 음식, 소매업, 생활서비스 등 실생활과 밀접한 71개 주요 업종에 대한 다양한 통계자료 조회가 가능하다. ‘공공데이터’ 쪽에서는 지하철 역 인근 유동인구와 버스정류장 인근 시설물 정보를 수록해 예상 점포 위치의 교통 접근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실패’일 것이다. 경제적 타격도 상당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타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이들이 있다. 지난해 창업진흥원 재도전 성공 패키지 우수 사례에 이름을 올린 중장년 재창업가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료 제공 및 도움 창업진흥원
[1] 경영 파트너와의 호흡으로 기술에 탄력 더하다, 새솔테크(주) 한준혁 대표
ㆍ회사설립 2021년 5월 13일 ㆍ매출액 6억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자율주행, V2X 보안 토탈 솔루션 공급
한준혁 대표는 새솔테크 창업 이전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했었다. 한때 유행하던 피처폰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주로 맡았는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관련 사업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시대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 채, 자금난까지 더해지며 결국 폐업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폐업 후 10여 년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프리랜서 생활도 하고, 직장도 몇 군데 다니며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Q. 폐업 이후 재창업 과정은 어땠나?
마지막 직장에서 자율주행 분야를 접했다. 기술적으로 노하우가 생기고 인적으로 네트워크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의 창업을 준비하게 됐다. 이전 사업에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다양한 지원 사업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 후회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법인 설립 전 개인사업자를 내자마자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포함해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봤다. 그렇게 얻게 된 경제적 지원 덕분에 본격적인 사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개발자 출신이라 경영적인 역량은 부족한 편이다. 사업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운영해 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성공 경험을 지닌 이재성 대표님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현재는 이 대표님이 경영총괄, 내가 개발 총괄을 맡고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중이다.
Q. 새솔테크(주)는 자율주행 V2X 보안기술 회사다. 이는 어떤 기술인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사이버 보안이 전제돼야 한다. 이에 대한 글로벌 규제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새솔테크(주)의 자율주행 V2X 보안기술은 인간의 생명 보호와 교통 효율화라는 큰 목표를 지닌다. 2021 하반기 ‘C-ITS 상호 호환성 시험행사’를 통해 국제보안규격 IEEE 1609.2 & SCMS 1.0(CAMP) 기반의 V2X 보안인증서 발행과 단말 탑재를 성공시키며 기술적으로 신뢰를 쌓았다. 앞으로 우리가 자부하는 기술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해 나갈 예정이다.
Q. 본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 한다면?
일단 혼자서는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즈니스란 너무 복잡해서 본인이 가진 기술 역량만으로는 사업체를 이끌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보완해줄 파트너와 함께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프런트엔드(Front-end)와 백엔드(Back-end) 기술을 모두 섭렵하라는 거다. 사업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다른 개발자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2] ㈜예성글로벌 김경태 대표,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무대 꿈꾸다
ㆍ회사설립 2018년 12월 18일 ㆍ매출액 19억 1000만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친환경 생활용품군과 첨단 소방용품군을 개발·생산·유통
만 18세에 기술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경태 대표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사직서를 냈다. 퇴직 후 10년은 아내와 디지털 도어록 대리점을 운영했다. 점차 디지털 도어록 보급률이 높아지며 역으로 고객이 줄었고, 그동안 터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문에 부착하는 소방용품인 자동폐쇄장치와 도어 클로저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사업은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고, 결국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Q.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이 폐업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기술력이 있으니 얼른 자체 제품을 출시해서 도어록 대리점 운영하듯 유통하면 되겠다는 다소 안일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품 개발이 늦어졌다. 투자금은 자꾸 늘어나는데 비용 회수가 안 되니까 힘들어지고 결국 문을 닫게 된 거다. 또, 엔지니어로서 기술력은 자신 있었는데 경영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경영이나 재무, 조직 관리 등의 지식과 노하우가 좀 더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후회를 많이 했다. 그래서 폐업 이후 6년 정도 회사에 다니면서 제품 개발과 동시에 경영도 공부했다. 또 이전 사업에서 오로지 대출로만 사업 자금을 확보했던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재도전을 준비하면서 각종 지원 제도를 꼼꼼히 알아봤고 이를 통해 일정 부분 사업 자금을 만들었다. 폐업을 통해 배운 교훈인 셈이다.
Q. 폐업 이후 재도전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나?
회사는 폐업했지만, 제품 개발에 대한 의지는 멈추지 않았고 인적 인프라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재창업을 결심하고 창업진흥원 재도전 성공 패키지 사업을 신청했다. 현재는 공압식 도어클로저와 방화문 자동폐쇄장치, 두 제품에 주력하고 있다. 공압 도어클로저는 특허 및 디자인 등록이 20여 건, 출원 13건, 해외특허출원(PCT)이 1건이다. 특허는 출원 신청 이후 평균 1년 반 정도 지나 공개되는데, 자체 기술을 보유하면 남들보다 1년 반 정도는 앞서간 셈이다. 도어클로저는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이고, 올 가을 쯤 출시를 앞두고 있다. 방화문 자동폐쇄장치는 지난해 9월에 글로벌 기업에 공급 계약을 체결해 연간 40억 원 이상 매출이 발생하게 됐다. 두 제품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관심이 높아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Q. 기술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술력, 아이템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술 창업인으로 제조업에 뛰어들고 싶다면 더더욱 그렇다. 독자적인 기술력이 없다면 창업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본인이 가진 기술, 만들고 싶은 제품이 없다면 차라리 기존에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사서 유통업을 하는 편이 나으니까. 또, 엔지니어 정체성을 지닌 대표라면 반드시 경영 관련 공부를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좋은 제도들이 많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경영을 너무 모르면 그 무지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3] 두 번의 폐업 후 세 번째 도전, 토미코리아 김성진 대표
ㆍ회사설립 2020년 10월 26일 ㆍ매출액 매출액 12억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고양이용품의 프리미엄 브랜드 묘우묘우 고양이 정수기
김성진 대표는 청년 시절 아파트 청소용역업체를 개업한 적이 있다. 그러다 트럭에서 떨어져 허리는 다치는 바람에 육체노동이 필요했던 해당 사업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지인 추천으로 차량용 방향제 사업을 시작해 월마트 입점까지 내다볼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이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안일했던 독점거래로 적자를 떠안게 된 것. 다시 직장인이 되어 성실히 빚을 정리해가며 반려동물용품 사업으로 재도약을 꿈꾼 김 대표다.
Q. 두 번의 폐업 후,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반려동물용품을 택한 이유는?
새로운 사업은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일로 하고 싶었다. 자동차 방향제 시장이 200억 원 정도였는데, 반려동물용품 시장은 6조 원에 육박하더라.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반려동물 인구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 바이어를 통해 강아지 패드를 수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드 머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돈이 될 만한 물품은 무엇이든 수입해서 판매했다. 그러던 중 자체 브랜드 묘우묘우를 만들어 OEM으로 생산한 고양이 관련 제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체적으로 기획과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담당한 고양이 정수기까지 이르렀다. 고양이 정수기 사업계획서로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에 응모해 지원금을 받아 곧바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2022년 1월에 브랜드 ‘묘우묘우’를 론칭했는데, 10년 후에는 고양이 정수기 하면 묘우묘우가 떠오르게 하고 싶다.
Q. 세 번째 창업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옥션 등 각종 온라인 마켓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이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아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컴퓨터라면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칠 정도의 실력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 무상 교육을 찾아다니며 온라인 마켓 관련 수업을 듣는데, 답답한 마음에 처음엔 그야말로 울면서 배웠다. 열심히 배운 덕에 이제는 온라인 스토어의 메커니즘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 포토샵으로 기본적인 일러스트 작업도 가능하다. 또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포함해 여기저기 정부 무상 교육을 찾아다니며 100시간 넘는 수업을 들었다. 컴퓨터는 물론 직원 관리 방법이나 세무회계, 노무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사업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회계, 영업, 경영, 디자인, 관리 모든 분야를 다 알고 있어야 한다.
Q. 현재의 성과가 있기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나?
2022년 기준 매출액이 12억 원 정도다. 중국, 일본으로 제품 수출도 하고 미국 아마존 입점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 현재는 감사한 마음이 큰데, 사실 젊은 시절에는 감사함을 잘 몰랐다. 한때 매출 20억을 달성해도 감사하기보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난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물건이 팔리는 것도, 이런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계속 해나가려 한다. 무엇보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다. 그러려면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용기만 있다면 몇 살이 됐든 도전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