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30대, 40대, 50대의 나이와 관계없이 ‘어른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키덜트라 불리는 집단이 그 예다. 한국 사회 속 ‘어른’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그저 좋아하는 놀이를 소비하고 즐기며 삶의 활력을 찾는다. 과거에는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이제 어느 분야에 푹 빠진 ‘덕혈구’ 흐르는 덕후들의 세상이 됐다.
서울시 서초구 국제전자상가(국전) 9층은 여러 개의 가게가 구역을 나누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드래곤볼, 짱구, 포켓몬 등 온갖 캐릭터 모형(피규어)부터 게임기, 프라모델, 가챠(캡슐 뽑기), 코스프레 의상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9층의 한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A 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캐릭터 상품은 인기가 많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으로 치부됐던 것 같다”며 “자녀 혹은 손주에게 선물한다는 핑계를 대거나, 아내 몰래 조금씩 피규어를 모으고 있다고 이실직고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그래도 비교적 개인의 취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내가 50대 키덜트라 그런지 취향이 비슷한 동년배 고객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방방곡곡 ‘키덜트 명소’로 통하는 곳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 용산구의 레고(조립 블록) 매장에서 만난 47세 직장인 B 씨는 “퇴근길에 매장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건졌을 땐 조립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며 “회사 업무 부담이 커져 스트레스가 쌓이고,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애매한 위치가 돼 씁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블록을 조립하면서 머리를 비운다”고 말했다.
중년, 키덜트가 되다
키덜트는 추억 속 동심의 세계를 성인이 된 후에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소설, 패션, 장난감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뚜렷한 소비 성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키덜트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1990년대 추억의 만화 ‘포켓몬스터’를 좋아했던 아이가 자라 키덜트가 됐다고 하자. 어엿한 사회인이 된 후 경제활동을 하면서 포켓몬빵, 피카츄 열쇠고리 등 관련 상품들을 사 모으거나 직접 경험해보며 취미로 발전시켰을 테다. 성인이 된 후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구입했다가 얼떨결에 본인이 즐기는 경우도 있다.
50세 주부 C씨는 “딸이 포켓몬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에 빠져서 구해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시간 날 때마다 편의점을 돌아다닌다”며 “처음엔 스티커에 왜 그렇게 다들 진심일까 싶었는데, 계속 모으다 보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른이 돼 살다 보면 주변 사람과 조건에 머무르고, 갖고 있던 꿈도 타협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값싼 스티커에 즐거움을 느끼고 움직이는 나를 보면 ‘어릴 적 마음과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사회의 반작용
일부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마음껏 못 해본 게 한이 돼서’ 장난감이나 게임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심리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상에서 키덜트가 늘어나는 이유로 ‘비대면 시대에 따른 촉각의 불충족’을 꼽았다. 영화 ‘퍼펙트 센스’를 예로 들어보자. ‘퍼펙트 센스’는 어느 날 전 세계 곳곳에서 원인도 모른 채 감각이 하나씩 마비되는 이상 현상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순서대로 잃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감각을 잃는 순서의 의미다. 네 가지 감각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화는 끝을 맺지만, 김 교수는 “인간에게서 사라졌을 때 가장 괴로운 감각이자 원초적으로 가장 중요한 감각은 촉각”이라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면서 촉각은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감각이 됐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덕에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보고 듣는 간접경험의 창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직접 만지며 체험할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때문에 즉각적으로 만지며 놀 수 있는 상품이 주목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두둑한 지갑과 함께 돌아온 X세대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년이 된 X세대가 키덜트 문화 확산의 기폭제라고 말했다.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로, 현재 40대 전후 세대를 말한다. X세대 안에는 ‘영포티(Young Forty)’도 포함된다. 영포티는 나이에 비해 젊은 삶을 사는 40대를 지칭한다.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당시 국민의 3분의 2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의식했을 정도다. X세대는 경제·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특별히 없는 상태에서 성인이 됐기 때문에 에너지가 자기 내면으로 향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교수는 “결혼하고 아기를 안 낳아도 덜 이상하고, 이혼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게 지금 40대”라면서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희생하던 이전 40대와는 달리 트렌드에 밝고 자신을 위한 소비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영포티를 중심으로 키덜트 시장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치해 보이지만 꼭 필요해
여전히 키덜트가 ‘나이에 맞지 않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다.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추상적인 나를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을 원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생산적이지 않은 물건을 소비하고 놀이를 즐기며 일상생활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거나, 비슷한 디자인임에도 유명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옷을 더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생산적인 취미처럼 보이더라도, 즐기는 과정 자체가 생산적인 자기계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핀란드 투르쿠대 인문학부가 브라이스 인형(머리 스타일과 화장, 홍채 색, 의복 등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사람 형태 인형)을 갖고 노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자들은 인형 놀이를 매개로 새로운 취미 생활에 입문하거나 이전에 없던 능력을 기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했다. 인형에게 입힐 옷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이라는 새 취미를 갖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타인과 사회적 교류를 하는 셈이다.
이은희 교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취미 활동에 제약이 됐다고 꼬집었다. ‘40대면 직장에서는 부장 정도일 테고, 아이는 둘 정도 있어야지’, ‘60대면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살되, 점잖은 행동으로 젊은 세대의 본보기가 돼야 해’ 등의 잣대 말이다. 그는 키덜트 산업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키덜트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을 ‘사회·문화적 차이’로 봤다. “사회적 나이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타인의 즐길 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골프·여행·등산과 다를 바 없는 분야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의 힘은 아주 세다. 우리 모두가 흔히들 아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말고도 그 시절엔 각 지역의 특색이나 지역명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았나 싶다. 그중에 영주도 있었다. 영주라 하면 무조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이 따라붙었다. 강산이 무수히 바뀌고 세상은 달라졌어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장, 경북 영주다.
또는 영주 사과일까. 선비의 고장답게 사찰이나 서원은 당연하다. 추억의 풍경이 곳곳에 남겨져 있어 도심과 골목길에서 가슴 뭉클한 그리움도 솟는다. 그리고 무섬마을을 지키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둘러보면 어디서든 수백 년 혹은 수십 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영주 여행은 옛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해도 괜찮을 듯하다.
물 위에 뜬 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영주의 내성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너른 모래톱, 그 위로 S라인의 곡선이 길게 이어진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의 풍경이 무심하다.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마을이다. 물 수(水), 섬 도(島). 수도리의 물섬이 무섬이 되었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외나무다리 저편으로 수도교라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300년 넘도록 무섬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다리였다.
홍수라도 나면 다리는 강물에 잠겼고 휩쓸려 내려가,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다리를 다시 놓곤 했다.
폭 20~30cm, 높이 60cm, 총길이 150m. 폭이 좁아 걸을 때면 아슬아슬해서 장대에 의지하기도 했다.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폭이어서 예전에는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보이면 지레 모래톱에 앉아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은 외나무다리 중간의 몇 군데에 마주 오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비껴다리’가 놓여 있다. 걷다가 어질하거나 자칫 기우뚱하다가는 물에 빠질 듯한 두려움도 생긴다. 다리 위를 걷는 발끝만 보며 걷다가 강의 물결에 취하면 낭패다. 그래서 강 건너를 잇는 이 다리는 그 옛날엔 시집올 때 가마 한 번 타고, 죽어서야 상여 타고 한 번 지나간다는 애환이 서려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의 느린 시간 속에 잠겨 모래톱에 주저앉아 저편을 바라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이 노래가 절로 입안에 맴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운 외나무다리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TV 예능과 CF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무섬마을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시인 조지훈은 서울로 유학을 떠나면서 무섬에 남겨둔 아내와의 이별을 ‘별리’(別離)라는 시에 담았다.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알려진 김뢰진 가옥은 마을 첫머리쯤에 있었다.
무섬의 집들은 새롭게 조성된 한옥마을과는 달리 늘 그 자리에 있던 풍경이다. 한때 100여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50여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섬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다.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라고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만죽재(晩竹齋), 해우당(海愚堂)을 비롯해 지정문화재가 10곳이고, 100년 넘는 고택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울 밑에 선 봉숭아도, 풀숲 가득한 곳에 피어난 들꽃들도 물씬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수백 년 켜켜이 쌓인 깊은 역사가 그대로 전해지는 옛집들이 고스란히 무섬마을이었다.
마을이 어찌 이리도 조용할까. 발소리조차 민망하다. 걷다가 호박이 매달린 담장을 향해 셔터를 누르니, 마당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그게 뭐 볼 게 있기나 한가. 쓸데 있으면 그 호박 따가”란다. 그래도 되는지 싶어서 괜찮다고 하니 직접 두 개나 따주셔서 황송한 마음에 보물처럼 잘 모시고 왔다.
영주라 하면 부석사
유홍준 교수는 자연과 건축이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문화유산 부석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나타내지 못한다고,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조선 땅 최고의 명상로’라 칭송한 부석사 당간지주 인근 은행나무 산책로는 여전하고, 그 길 위에서 홀로 명상에 잠겨볼 만하다.
천년고찰 부석사의 하이라이트 무량수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그 앞으로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의 풍광에 넋을 잃어보는 것도 부석사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온통 경사진 경내를 돌기엔 다리가 뻐근하고 숨찰 때도 있다. 하지만 영주까지 와서 어찌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조건물 부석사에 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마음 내려놓고, 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던 곳이다.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세운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당시 향교나 서원은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국립인 반면 서원은 사립학교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한 소수서원의 역사와 향기가 물씬하다.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때맞추어 선비 복장으로 글을 읽는 이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한 그 뜰에 앉아 가만히 옛 선비들의 기운을 전해 받을 수도 있다. 선비교를 따라 너른 뜰을 지나면 선비촌으로 접어든다. 옛 선비정신과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래등 같은 양반님네 고택의 안마당과 대청마루, 담 너머로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배롱나무, 그리고 강학 시설과 저잣거리도 조성되어 있어 옛 선비마을의 풍취가 가득하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근대역사문화거리
현대 일상에서 찬찬히 되돌아보기 좋은 곳으로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영주 원도심에 가면 근대 생활 모습과 건축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근대 산업 시기의 양곡가공업을 짐작해볼 만한 풍국정미소, 문을 밀고 들어가니 여전히 동네 주민의 머리를 깎고 계시던 80년 전통의 영광이발소, 몇 걸음 건너편에 고딕 건축양식의 영주 제일교회가 붙어 있고, 근대 시기의 주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영주동 근대 한옥은 주변으로 풀밭이 무성하다.
또한 관사마을은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에 영주-안동 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철도 역무원들의 관사가 지어지면서 형성된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불리게 된 관사골은 반세기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칠이 벗겨지고 낡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식 목조 관사 주택의 전형인 5호와 7호 관사를 볼 수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집주인이 수리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집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신기해하던 집이었지만, 근대 건축이라고 지정만 되면 뭐하냐 넋두리 한다. 낡고 헐어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데 곤란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도시생활사적 가치가 크다지만 변화에 따른 관사골 주민들의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의 여건도 염두에 둘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낡은 지붕과 담벼락,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던 안마당의 텃밭에서 정 깊은 추억이 솟는다. 관사골 저편 언덕 위로 부용공원이 내려다보고 있다. 흑백 필름 같은 풍경 속에서도 현재와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계속된다.
반짝이는 것은 늙지 않는다. 일을 향한 열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짝이는 이 역시 늙지 않는다. 춘삼월 여린 잎 같던 목소리는 푸르다 못해 영글었고, 소년은 단단한 어른이 되었지만 반짝이는 두 눈은 24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사람을 사랑하며 오래도록 푸른 청년(靑年)으로 남을 임형주(37)의 이야기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최연소’, 하나 덧댄다면 ‘최초’를 꼽겠다. 2003년 만 17세 나이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정사상 최연소 애국가 독창자가 됐다. 같은 해에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단독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국내 3대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여는 대기록은 10년 전에 세웠다. 데뷔 15주년에는 앨범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한 독창회를 열면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무대(대극장, M씨어터, S씨어터, 체임버홀)에 서본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음악가로서 세울 수 있는 기록은 전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두 살 소년이 상상 못한 숫자들
수집하듯 온갖 기록을 쓸어 담은 세월이 24년이다. 지금의 임형주는 데뷔 25주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 팝페라 테너지만, 1998년 데뷔 당시 열두 살 소년은 이 모든 기록적인 숫자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4년이 ‘꽃길만 걷는’ 시간이었을 것 같지만, 그는 스스로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평가한다. 선배가 없는 팝페라 장르에서 활동하는 건 흙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작업과도 같았다.
지쳤던 걸까. 언제부터인가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만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노래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명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뜬소문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로마시립예술대학 성악과 석좌교수, 미국 그래미상 심사위원, 음악평론가 임형주로 살았다. 대중과 멀어지면서 ‘세월호 추모곡 가수’, ‘애국가 소년’쯤으로 이미지가 축소됐다.
그러다 가수 임형주가 지난 5월 JTBC ‘뜨거운 씽어즈’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췄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예상 못 한 깜짝 등장이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은 다 차치하고 진정성을 전하는 노래가 최고의 노래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출연진의 도전을 응원한 그는 시니어 합창단과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겸손한 자세와 청아한 목소리가 갖는 힘은 여전했다. ‘뜨거운 씽어즈’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함께 부르는 장면의 유튜브 동영상은 두 달 만에 134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중의 관심이 전보다 덜하리라는 예상을 뒤엎은 수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수로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데뷔한 지 오래되다 보니 ‘왕년의 스타’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도 잘 출연하지 않았으니 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의 데뷔 무대이자 첫 방송 출연이었던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영상은 ‘온라인 탑골공원’(1990~2000년대에 유행한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계정을 총칭하는 신조어)에 게재됐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하지 않느냐며 너스레 떨지만, 대중의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있는 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 사랑을 위한 노래
그는 노래를 고를 때도 대중을 생각한다. 스스로 청중이 되어보고, ‘팝페라 테너’라는 정체성을 되새기며, 이 시대의 대중이 무얼 가장 원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고민한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곡들로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연인의 애정보다는 인류애에 가깝다.
“연인의 사랑을 다루는 가수는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를 다루었어요. 대중이 가장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인 팝을 통해서 인간애를 노래하죠. 사실 예술은 무한하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는 향유, 즐기는 데 있거든요. 저는 세상에 듣기 좋은 음악과 듣기 싫은 음악, 딱 두 가지 음악만 있다고 이야기해요. 예술가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죠.”
고고하고 우아한 음악을 한다는 생각에 괜히 으스대는 클래식 전공자들을 종종 봤다. 그 역시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싫었기에 팝페라 테너로 전향했다. 정치·경제만큼이나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그는 뿌듯한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전부터 ‘문화예술의 일상화’를 주장하던 입장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전하기 위함이다. 즐기기 위해선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콘텐츠가 일상에 스며들 자리는 없으니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며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감상은 물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고,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로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세계 유수의 작가와 작품명이 쏟아졌다. 최근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한 책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지난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도 그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타인을 돌보는 마음, 그 사랑이 있기에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다.” 인간애를 노래하는 가수다운 모습이다.
숲을 만드는 일을 꿈꾸다
올해로 서른일곱의 나이지만, 데뷔한 지 24년이 지났다. 인생의 3분의 2를 올곧이 음악에 바친 셈이다. 인간 임형주의 삶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지만 흘러간 과거가 아쉽지는 않다. ‘음악과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몇 시간 지나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앨범 제작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지만, 사람은 죽어도 앨범은 세상에 남아 있을 걸 생각하면 열심히 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굉장히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다른 음악가들보다 조금 이르게 은퇴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커리어상 최정상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지금이 제 목소리의 전성기임이 느껴지거든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뒤에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하려고 해요. 돌이켜보니 데뷔하던 때도 왠지 ‘나는 일찍 은퇴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네요.”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을 떠올리자니 가수 임형주를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태도다.
현역에서 은퇴한다 해도 문화예술계에 일조하려는 계획은 확고하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행사를 직접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가 꽃이자 나무라면, 가수로서 노래 부르는 것은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일이다. 예술감독은 행사에 쓰이는 모든 음악을 심고 가꾸며 배치한다.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개·폐막식이라는 하나의 숲을 만드는 작업이다.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줄 묘목을 가꿀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국내 대학에서 제안한 교수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팝페라’의 길을 걸을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행정가로도 활약하고 싶다. 인생 2막에 대한 계획을 늘어놓는 모습이 장래 희망이 너무 많아 고민인 어린아이를 닮았다.
바빠 나이 들 시간조차 없는 청년
차차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지만, 당장은 9월에 발매될 정규 앨범 8집 ‘Lost In Memory’를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번 앨범에는 1970~1980년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 대중가요를 담을 예정이다. 독립군 애국가나 ‘봉선화’, ‘사의 찬미’ 등 1920~1960년대 노래를 수록한 정규 7집 ‘Lost In Time’과 시대적으로 연결되는 앨범이다.
“지난 앨범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는 ‘잃어버린 추억’에 대해 다뤄보려고 해요.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에는 트로트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곡가 길옥윤, 박춘석, 이봉조와 그들의 뮤즈인 패티김, 혜은이, 정훈희나 이미자의 가요를 녹음하고 있어요. 패티김의 ‘이별’이나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정훈희의 ‘안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빠질 수 없죠.”
10월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신보와 같은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8집에 실린 노래 외에도 가을에 어울리는 추억의 팝송이나 연주곡을 함께 선보이려 한다고. 5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를 곁들일 예정이라, ‘사랑은 생명의 꽃’(패티김)처럼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곡을 듣다 보면 특히나 코끝이 찡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선 첫 베스트 앨범을 내려고 한다. 그의 모든 대표곡을 앨범 한 장에 담을 예정이고, 앨범 발매 기념 독창회 역시 진행하려 한다. 내년에 코로나19가 완화되면 국내나 해외 순회공연도 떠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전국 25개 도시를 돌아보고 싶어요. 숫자 맞추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TV 프로그램이나 매체 인터뷰 등 섭외 제안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해요. 순회공연을 돌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난 뒤겠지만, 내년은 인간 임형주이자 음악가 임형주로서 제 인생을 결산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바빠서 나이 들 시간이 없다”던 유명 배우의 발언이 떠올랐다. 임형주는 배움을 멈추고 안주하려 할 때 사람이 비로소 ‘늙는다’고 생각한다. 고로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잠을 설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받고 싶은 상이 남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라고 대답한다. 오래도록 푸르를 청년일 수밖에.
27일 오후 1시 30분 방송인 고(故) 송해의 49재 추모공연이 서울 종로구 모두의극장(허리우드극장 5층)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이상벽, 조영남, 현숙, 심형래 등 생전 고인을 따랐던 후배 문화예술인 12인이 한마음으로 준비해 그 의미를 더했다.
지난달 8일 갑작스러운 비보에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졌고, 49재가 열리는 현재까지도 종로 송해길 주변 상인과 시민들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생전 고인은 KBS1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문화 1번지 종로’의 부활을 알리는 극장식 추억의 쇼를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했고, 종로 거리에서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 축제를 여는 등 평소 종로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9년 본지와의 만남에서도 “송해길에 자주 나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맛있는 것도 즐기면서 사는 재미를 느끼시라”며 종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건강한 모습으로 길거리 담소도 마다치 않으며 시민들과 유대해온 그이기에 빈자리는 더욱 컸다.
이에 이번 추모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제공한 ㈜추억을파는극장 김은주 대표는 “송해 선생님은 생전 실버영화관 홍보대사로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후배를 양성하며 양질의 무대를 위해 힘써오셨다”며 “그게 종로를 찾는 어르신은 물론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셨다. 하늘에서도 분명 후배 문화예술인들이 준비한 무대를 흐뭇하게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이 더욱 뜻 깊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과거 고 이주일이 폐암으로 고통받던 본인의 모습을 공개하며 대한민국 흡연률 감소에 기여했듯, 고 송해의 죽음은 ‘어르신 낙상사고 예방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주최측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매주 월요일 ‘모두의 극장’을 무료로 대관하는 한편, 수익금 일부로 어르신 관객에게 미끄럼방지매트를 제공한다. 아울러 독거노인이 화장실 낙상사고로 고독사하지 않도록 관련 캠페인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한편 송해는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후 끝내 눈을 뜨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추모공연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오늘 오전 11시 30분부터 선착순으로 현장 접수한다(300명까지). 평소 송해를 따랐던 후배 문화예술인 이상벽, 조영남, 전원주, 최주봉, 김성환, 박일준, 현숙, 배일호, 조항조, 이용식, 심형래, 김은주((주)추억을파는극장 대표)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 관람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은 전액 기부 예정이다.
80, 90년대를 주름잡았지만, TV에서는 보이지 않아 근황이 궁금한 스타들이 있다. 특히 그들이 화려한 연예계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놀라움을 자아낸다. 젊은 시절 재능을 인정받으며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그들이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제 2의 인생으로 성공한 추억의 스타들을 꼽아봤다.
임상아 : 가수 → 가방 디자이너
지난 1996년에 나온 노래 '뮤지컬'은 현재도 많은 이들의 노래방 애창곡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임상아. 이국적인 외모의 그는 당시 뜨거운 인기를 얻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임상아는 돌연 데뷔 3년 만인 지난 1999년 연예계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연예계를 은퇴한 이유에 대해 "일의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지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답답했다"고 뒤늦게 털어놓은 바 있다.
임상아는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이에 그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뒤, 지난 200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방을 론칭했다. 가방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대까지 호가하며,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리한나, 앤 해서웨이, 비욘세, 브룩 쉴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가방을 찾는 주 고객으로,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민우 : 가수 → 자동차 영업
가수 김민우는 지난 1990년 '사랑일뿐이야'로 데뷔해 인기를 얻었다. 특히 '입영열차 안에서'는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그는 SBS '불타는 청춘' 섭외 요청 1순위였던 그리운 가수였다. 지난 2019년 김민우는 제작진의 약 2년 간의 섭외에 응답,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그의 근황이 화제였다. 연예계를 떠난 그는 자동차 영업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수에 대한 꿈은 항상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김민우는 '싱글대디'라는 사실을 밝혀 많은 응원을 받았다. 지난 2009년 6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지만 8년 만에 사별했고, 슬하의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것. 이후에도 김민우 부녀의 애틋한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그는 많은 응원을 받았다.
최연제 : 가수 → 한의사
배우 선우용녀의 딸로 유명한 가수 최연제. 그는 지난 1993년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을 발표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연예계를 은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의학에 매진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미국 LA에서 불임 전문 한의사로 활동 중이다.
일과 함께 사랑도 찾았다. 최연제는 한 차례 아픔을 극복하고, 지난 2004년 미국 유명 은행의 부사장 케빈 고든과 재혼했다. 이후 남편, 아들과 미국의 대저택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호근 : 배우 → 무속인
누군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인해 직업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배우 정호근은 지난 2014년 말 갑자기 무속인이 됐다는 사실을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사극 전문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며 명품 조연으로 통해왔다. 그런 그가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무속인이 됐다니 놀랄 수 밖에.
그러나 정호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반응이다. 할머니도 무속인으로 집안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지난 2014년 11월 병을 앓은 후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 처음에 무속인인 정호근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현재 그는 인정받는 무속인으로 통하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정호근의 심야신당'은 많은 연예인의 출연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지연 : 가수 → 셰프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바람아 멈추어 다오' 등을 히트시킨 '80년대 하이틴' 가수 이지연. 그 역시 돌연 연예계를 은퇴하고 남편과 함께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이혼 소식과 함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근황을 알렸다. 미국 애틀란타 소재의 요리학교 '르 꼬동 블뢰'에 재학 중이었다.
이후 이지연은 미국 애틀란타 지역에서 바비큐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지난 2013년에는 애틀란타 지역, 2020년에는 조지아주 최고의 바비큐 레스토랑으로 각각 뽑히기도. 또한 동료 요리사인 8살 연하의 미국인 셰프와도 재혼해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미국에서 제2의 삶을 사는 그에게 많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5080음악에서 이제는 대중음악으로 인정받고 있는 트로트. 이와 같은 트로트 열풍은 지난 2019년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을 통해 시작됐다. 이어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유재석)이 불씨를 지폈고,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으로 그 열기가 이어졌다.
정말이지 '트로트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현재는 우후죽순 늘어난 오디션 프로그램과 사골 수준으로 나오는 오디션 출연자들로 인해 대중의 피로도가 높고 트로트 열풍도 한 풀 꺾인 기세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트로트가 믿고 쓰는 카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또?'라는 생각이 드는 것. 그렇다면 트로트는 왜 인기를 끌었고,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트로트의 성공에 대한 명과 암을 짚어봤다.
트로트의 이유있는 인기 이유
갑자기 트로트는 왜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시발점은 '미스트롯1'이었다. TV조선이 워낙 중장년층, 시니어들에게 인기 있는 채널이었는데, '미스트롯1'을 본 그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 시니어들의 눈에는 우리가 즐겨 듣던 추억의 노래를 젊은 가수들이 부르니 더욱 반갑고 흥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세대는 어른들의 노래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트로트를 들어보니 재밌고 중독성이 강해 트로트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트로트의 매력 요인은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직설적이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녹아있어 마음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SBS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하춘화는 "트로트는 전통가요다. 한국의 전통가요를 하는 가수들은 외롭게 비바람을 맞고 그 누구의 관심과 신경을 안 써줄 때도 그것을 꿋꿋이 지켜왔다"면서 "트로트는 어려울 때 더 많이 생각나고 위안을 주는 음악의 한 장르"라고 이유를 짚은 바 있다.
더 나아가 트로트가 오디션 프로의 인기를 넘어 열풍이 된 이유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도 있다. 시니어들은 팬덤을 형성했고, 젊은 세대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처럼 활동했다. 자신의 스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을 챙겨보다 보니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으로 인기가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쌓이는 피로도…결과는?
그러나 이와 같이 과열된 열풍에 대해 비단 좋은 시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사실 모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잘 된 것은 아니다. '미스트롯1'의 인기 이후 따라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양산됐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먼저 MBC에서는 '트로트의 민족', KBS2에서는 '트롯전국체전'이 각각 방영됐다. SBS에서는 현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는 '트롯신이 떴다'가 방송됐고, 비슷한 포맷의 MBN '헬로트로트'는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트로트의 인기로 시청률은 높았으나, 그 이후에 후광 효과는 이어지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대중의 피로도가 축적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올해 방송된 '미스트롯2'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송가인, 임영웅을 잇는 참가자가 나오지 않았고, 공정성으로 인해 잡음이 많았다. 그러면서 더욱 트로트 열풍은 식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관찰 예능', '외국인 예능' 등 그때마다 트렌드가 되는 것들이 있다. '트로트 오디션' 또한 그 노선을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시선이 많았다. 사실 앞서 말한대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스-미스터트롯'의 제작진도 최근 K-POP 가수를 뽑는 '내일은 국민가수'를 내놓은 것이 아닐까. 이와 함께 앞으로의 트로트 열풍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뽑은 가수들에게 달렸다고 보여진다.
이와 관련 한 트로트 가수는 최근 브라보마이라이프에 "많은 트로트 가수 후배들이 나오고, 트로트곡들도 재조명되어서 좋다. 그런데 현재는 대중들이 많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피곤해 하기 때문에 후배들의 인기가 거품이 될까 봐 우려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연에서 자기 노래가 아닌 인기 곡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가수로서 생명력이 오래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안타깝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옛날 노래가 히트를 치면 작곡가, 작사가는 저작권을 가져가기 때문에 좋지만, 가수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노래 한 곡이 인기를 얻으려면 여러 무대를 직접 돌면서 피 땀 흘려서 결과물을 얻는 것인데, 그 노력이 묻히는 것만 같다"고 솔직한 심경을 덧붙였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기회여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평소보다 특히 긴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보낼 방법이 있다. 지상파 3사의 다양한 특집과 특선 영화를 함께 시청하며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이에 자녀 또는 손주와 함께 TV를 시청하며 더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재밌는 볼거리를 소개한다.
KBS
세대를 관통하는 국민가수 심수봉이 26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는다. KBS는 ‘2021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을 오는 9월 19일 일요일 오후 8시, 2TV를 통해 방송한다. 이 공연은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심수봉이 펼치는 26년 만의 단독 TV쇼다. 특히 방송에서 공개한 적 없는 심수봉의 2009년 발표곡 ‘아리랑’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어 9월 21일 화요일 오후 10시 10분에는 스페셜 편을 방송한다.
시간 여행 프로젝트 ‘옛날 TV 그땐 그랬지’는 KBS 영상 저장소에 보관돼 있던 오래된 방송 자료들을 공개하기 위해 개설된 유튜브 채널이다.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전설의 고향’,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 유명 드라마부터 ‘가족 오락관’, ‘쇼 특급’ 등 추억의 토크쇼까지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추석에는 코미디언 박준형, 김지혜 부부가 시간 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맡아 그때 그 시절을 소개할 예정이다. 1부 ‘식사연대기’는 9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 35분, 2부 ‘직장생활백서’는 9월 21일 화요일 오전 10시 35분 1TV에서 만날 수 있다.
추석 연휴 사흘 간 가수 이선희를 내내 만날 수 있다. 감성 로드 다큐멘터리 ‘한 번쯤 멈출 수밖에’는 이선희가 절친과 감성 여행을 떠나 노래와 함께 길목의 풍경을 담아낸다. 총 3부작으로 9월 20일 월요일~22일 수요일까지 오전 9시 40분, 1TV에서 방송한다.
이 외에도 KBS에서는 9월 19일(일) 오후 11시 30분 1TV- ‘미스터 주: 사라진 VIP’, 9월 20일(월) 오전 10시 40분 2TV - ‘광대들: 풍문조작단’, 9월 20일(월) 오후 9시 50분 2TV - ‘인피니트’ (국내 최초상영), 9월 20일(월) 밤 12시 10분 1TV - ‘해어화’, 9월 21일(화) 오전 10시 40분 2TV- ‘엑시트’, 9월 21일(화) 오후 8시 2TV - ‘도굴’, 9월 22일(수) 오전 11시 50분 2TV - ‘공작’, 9월 22일(수) 오후 2시 20분 1TV - ‘감쪽같은 그녀’ 등 다양한 영화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MBC
MBC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를 마련했다. 추석 당일인 9월 21일 화요일 오전 8시 20분에 ‘강변가요제’를 빛낸 신화들이 모여 환희와 감동의 순간을 재현할 ‘MBC 강변가요제:레전드’를 방송한다. 이날 방송될 ‘MBC 강변가요제:레전드’에는 1979년 제1회 강변가요제 금상 수상팀인 홍삼 트리오를 비롯해 박미경, 티삼스, 이상은, 이상우, 박선주, 육각수 등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대표 뮤지션 7팀과 딕펑스, 라붐, 라포엠, 손승연, 이소정, 정엽, 존 박 등 후배 뮤지션들이 출연해 세대와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음악 축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2일 수요일에서 23일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10분에는 실존 또는 가상 인물을 디지털화하는 기술인 ‘디지털 휴먼’ 기술과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해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 김종진, 드러머 고(故) 전태관, 고(故) 김현식이 함께 꾸미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홀로그램 콘서트 [Re:present]’를 방송한다.
특히 방송에서 '가리워진 길', '비처럼 음악처럼' 등 모든 음악 팬들의 마음을 울린 명곡들과 함께 가수 이적, 거미, 이무진 등 후배 가수들이 각각 무대에 올라 그들만의 목소리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명곡 향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추석 특선영화로 9월 19일(일) 오후 8시 25분 ‘아이’, 9월 21일(화) 오전 11시 55분 검객, 9월 21일(화) 오후 9시 10분 ‘담보’ 등을 방영한다.
SBS
골프 예능 ‘골프 혈전, 편먹고 공치리’는 2부작 추석 특집으로 ‘동상이몽’을 통해 눈길을 끈 연예계 대표 부부 소이현-인교진 부부와 장신영-강경준 부부가 출격한다.
인소 부부는 유현주 프로, 이승기와 강장 부부는 이경규, 이승엽과 각각 팀을 이뤄 치열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실력자로 소문난 부부 중 필드 위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지 기대해 볼 만하다. 해당 방송은 9월 18일 토요일 오후 6시, 9월 22일 수요일 오후 5시 50분에 시청할 수 있다.
9월 18일 토요일 오후 8시 55분에는 ‘펜트하우스 시즌 3’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펜트하우스-540일간의 이야기‘가 방송된다. 펜트하우스의 주요 배우들을 비롯해 펜트 키즈들이 총출동한 이번 스페셜 방송에서는 첫 대본 리딩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펜트하우스와 함께한 540일 동안의 다양한 이야기를 배우들의 시선으로 솔직 담백하게 풀어나간다.
특히 첫 만남부터 캐릭터에 대한 연구, 내가 뽑는 명장면 및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 제작 기간 동안 배우들의 희로애락을 소개한다. 또 배우들의 소감, 극 중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작별 의식, 그동안 펜트하우스를 사랑해 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까지 그 여운을 시청자와 함께 나눌 예정이다.
SBS는 추석 특선 영화로 ‘미나리’를 안방극장에 선사한다. 영화 미나리는 낯선 땅 미국 아칸소에서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이민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낯선 이국땅에서 서로를 보듬는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9월 20일 월요일 오후 8시 20분에 방송한다.
한편 TV로는 SBS에서 최초 방송되는 영화 ‘미나리’는 93회 아카데미에서 여우 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배우 윤여정은 이 영화로 총 37개의 상을 받았다.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앞마을 냇터에 빨래하는 순이, 뒷마을 목동들 피리 소리.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 정든 내 고향 집이 그리워지네!” ‘그리운 고향’의 1절 가사인데, 시니어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곡은 1970년대 ‘노래의 전령사’로 불렸던 작곡가 전석환이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치 보이스’의 ‘Sloop John B’를 개사한 것이다.
사실 이 곡의 주인은 비치 보이스가 아니다.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의 민요를 편곡한 노래다. 노래의 내용은 주인공이 긴 여행을 마치고 ‘Sloop John B’라는 배를 타고 고향 바하마로 돌아가는데 항해 중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주인공의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엉망진창이 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 여행은 내 생애 최악의 여행이야! 난 집에 가고 싶어!”라는 하소연을 되풀이하며 노래를 마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검프가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같은 곡이 흘러나온다. “이건 최악의 여행이야! 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부분이 강조되며 겁에 질린 검프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하지만 그 최악의 여행이 검프에게 전혀 새로운 관계와 기회를 열어준다. 이처럼 노래도 반전 매력이 있다. 가사의 내용과 달리 비치 보이스의 화음은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12줄 기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시원하다.
일상의 소중함
코로나19로 꼼짝 못 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여름휴가에는 여행을 가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이 많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가족 여행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지난번 여행을 떠올리며 벌써 걱정되고 불안해서 약을 더 달라고 한다. 가족끼리 즐겁게 지내자고 떠나서,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좋겠지만, 막상 닥치면 잘 안 된다.
가족 여행의 목적은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을 쌓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독단적으로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함께’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계획도 같이 정해야 한다. 같이 가는 사람들의 의견을 최소한 하나씩은 반영해야 한다. 물론 각자의 취향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균형이 필요하다. 무조건 손주가 좋아하는 대로, 부모가 좋다는 대로 하는 여행은 다른 구성원에게 최악의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이때는 리더의 적절한 중재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중 가장 현명한 이가 리더를 맡아서 여행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획을 융통성 있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함께 즐겁게 여행을 하려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물론 지름길은 없다. 일단 인정과 칭찬이 들어간 언어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즐거움과 행복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한 걸음 물러나는 지혜 혹은 인내할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하얀 거짓말이 때론 필요하다. 여행의 리더는 독단적인 결정 대신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함께하는 사람들은 리더가 “좋지?”라고 물어보기 전에 먼저 좋다고 말해주는 게 좋다. 다만 반응을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싫다는 표시가 없는 무언의 긍정도 수긍하자.
비언어적인 소통도 중요하다. 계획을 이행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하는 구성원의 마음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다. 소중한 존재일수록 기대를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마음 상태가 되어야 성공적인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여행에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추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일수록 여행을 통해서 쌓는 소소한 추억의 즐거움과 휴식이 주는 재충전이 필요하다. 이번 여름엔 가까운 곳으로라도 잠시 떠나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집, 가족, 일터,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낀다. 떠나는 목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금 돌아온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것. 그것이 여행의 또 다른 매력 아닐까?
Sloop John B - The Beach Boys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치 보이스는 윌슨가의 형제와 사촌 형제들이 모여서 만든 5인조 밴드다. 당시 미국 서해안 젊은이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서프 음악(Surf Music)의 선두주자였다. 원래 그룹명은 ‘Pendletones’였으나, 첫 싱글 앨범 발표를 앞두고 당시 레코드 회사에서 서핑이라는 곡 주제에 맞게 이름을 ‘The Beach Boys’로 바꿔버렸다. 원곡은 섬나라 바하마의 낫소에 살던 선원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민요로, 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가 출간한 민요 모음집에 실리면서 알려졌다. 비치 보이스는 비틀스 타도(?)를 목표로 이 앨범을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최신 녹음 기술을 활용하고 편곡에도 굉장히 신경을 썼다.
TV, 라디오, 영화 등 어디선가 우연히 흘러나오는 옛 노래에 누구나 한 번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진한 향수를 경험한다. 한때 지겹도록 들었던 음악이 어느 순간 들리지 않고, 익숙한 멜로디가 가물가물해지는 나이가 되면 반가움은 더욱 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추억 여행이 고픈 시니어를 위해 그때 그 시절의 팝송을 실컷 들을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맘마미아! (Mamma Mia!, 2008)
지중해 코발트빛 바다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세 명의 소녀들. 이내 주인공 소피가 폭탄 발언을 한다. “아빠를 결혼식에 초대했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소피에게는 놀랄 일이다. 엄마 도나의 옛 일기장에 적힌 세 남자 중 누가 진짜 아빠인지 알 수 없기 때문. 소피의 충격 고백으로 소녀들의 수다는 뜨거워지고, 찬란한 풍광을 배경으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허니 허니, 하우 유 스릴 미~” 곧이어 장면이 전환되고, 도나의 ‘허니’일지 모를 세 남자가 섬으로 도착한다. 결혼식을 앞둔 소피가 엄마의 옛 연인을 섬으로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맘마미아’는 시니어의 추억을 똘똘 뭉쳐놓은 작품이다. 잊고 지낸 첫사랑이 생각나는 서사는 물론, ‘아이 해브 어 드림’ ‘댄싱퀸’ 등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는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가 젊은 시절의 추억을 선물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는 아바의 명곡,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등 할리우드 원로 배우의 퍼포먼스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지는 작품.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맘마미아!”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2. 예스터데이 (Yesterday, 2019)
나이‧국적 불문 전 세계가 사랑한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 어느 날 세상에서 비틀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비틀스를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비틀스의 명곡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면? 영화 ‘예스터데이’는 이 같은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명의 뮤지션 잭이 비틀스 없는 세상에서 스타가 될 기회를 맞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무명생활을 이어오던 잭이 작은 공연을 끝으로 꿈을 포기하려는 순간, 전 세계에 정전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잭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퇴원한 뒤 친구들 앞에서 퇴원 기념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어리둥절한 표정.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잭이 비틀스를 언급하자 친구는 말한다. “무슨 비틀즈를 말하는 거야. 곤충, 자동차?”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잭은 이날로 제2의 비틀스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린다. 영화는 ‘헤이 주드’ ‘렛 잇 비’ 등 20여 곡의 비틀스의 노래를 잭의 목소리로 재구성한다.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여전히 반가운 멜로디가 두 귀를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비틀스의, 비틀스를 위한, 비틀스에 의한 영화다.
3. 로켓맨 (Rocketman, 2019)
‘로켓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이름처럼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갈 듯한 4차원적인 의상에 알록달록한 안경을 쓰고, 피아노로 록을 하는 천재 뮤지션 엘튼 존이다. 영화 ‘로켓맨’은 그의 지나온 인생과 음악, 숨겨진 고뇌를 오롯이 담아낸다. 영화는 알코올 중독 상담에 참여한 존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된다. 대중이 기억하는 무대 위 화려한 모습보다는 부모의 무관심과 친구의 배신, 약물 중독 등 알려지지 않은 그의 어두운 개인사를 내밀하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형식을 취해 외로운 유년을 보낸 천재 소년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해나간다. 같은 감독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달리 음악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지만, ‘유어 송’ ‘크로커다일 록’ 등 적재적소에 흐르는 명곡들이 감정을 극대화하며 제 몫을 다한다. 감각적인 연출과 엘튼 존을 완벽 재현한 태런 에저튼의 열연도 재미를 더하는 포인트. 러닝타임 120분간 엘튼 존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는 듯한 생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얇은 옷차림으로 몸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봄바람처럼 살랑대는 음악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과거에는 음악 한 곡을 듣기 위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타이밍 맞춰 녹음해야 했지만, 요즘은 유튜브 하나만으로 그 시절 추억의 무대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흥겨운 리듬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나이를 잊은 듯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춤과 노래, 서사가 한데 어우러진 음악 영화도 흥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화 ‘더티 댄싱’의 베이비처럼 춤바람에 흠뻑 빠져볼 독자를 위해 춤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그리스 (Grease, 1978)
한때 할리우드 배우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라볼타가 당대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뮤지컬 영화 ‘그리스’는 시니어의 추억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단골손님이다. 영화는 1950년대 말, 여름방학 동안 해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대니(존 트라볼타)와 샌디(올리비아 뉴튼 존)가 방학이 끝난 후 고등학교에서 재회하며 시작된다. 하지만 여름날의 설렘도 잠시, 학교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흐른다. 학교 서클의 리더인 대니가 친구들 앞에서 허풍을 떨기 위해 반가운 마음을 애써 숨기고, ‘나쁜 남자’로 변신한 것. 달라진 대니의 태도에 상처받은 샌디는 톰과 친하게 지내고, 대니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 뒤에도 다소 예상 가능한 전개가 이어지지만, 그때마다 장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뮤지컬 넘버가 지루할 틈을 없앤다. 특히 ‘유아 디 원 댓 아이 원트’ 등 시니어에게 익숙한 로큰롤 멜로디는 롤러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1950년대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엿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2. 브링 잇 온 (Bring It On, 2000)
추억여행도 좋지만, 젊음의 열기와 10대의 상큼 발랄한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땐 ‘브링 잇 온’도 괜찮은 선택이다. 영화 ‘브링 잇 온’은 미국 고등학교 치어리더를 소재로 한 고전 하이틴 영화다. 치어리더 경연대회를 몇 주 앞두고, 5년 연속 우승한 최강 응원팀 ‘토로스’의 안무가 도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응원팀 ‘클로버스’와 경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장르 특성상 설정과 대사 등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회 우승을 향한 주인공들의 열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연습, 묘기에 가까운 고난도의 치어리딩을 보고 있으면 그저 시시한 하이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꿈을 향해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전해 받은 듯 불끈 기운이 솟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노래 ‘미키’에 맞춰 파워풀한 군무를 선보이는 치어리딩 장면이 영화의 명장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헤이 미키’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3. 스텝 업 (Step Up, 2006)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스텝 업’이 바로 그 원조 격이다. 2000년대 초반 불어 닥친 비보이 열풍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 ‘스텝 업’은 반항심 가득하지만 스트리트 댄스 하나는 끝내주게 잘 추는 타일러(채닝 테이텀)가 사고를 치고 근처 예술학교에서 사회봉사를 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최고의 춤꾼들이 모인 곳에서 타일러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노라(제나 드완)를 만나고, 다리 부상을 당한 그녀의 파트너를 대신해 함께 춤 연습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연습 과정에서 장르와 환경 등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지만 거듭되는 연습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춤으로 하나가 된다. 파워풀한 비보잉과 우아한 발레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색다른 무대로 보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여기에 청춘남녀의 짜릿한 로맨스까지 더해져 두근거림은 배가 된다. 스텝 업과 비슷한 짜임새를 갖춘 영화 ‘더티 댄싱’과 비교하며 봐도 좋다. 더티 댄싱은 열일곱 소녀가 댄스 강사를 만나 춤의 신세계에 눈을 뜨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