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최근 고령자의 고립을 막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간호 혹은 케어 서비스가 아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손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학생들이 일상을 돕는 서비스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손주와 소통하며 디지털을 배운다.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직접 만나는 이들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들이 꽤 늘었다. 하루메쿠 생활방식 시니어 연구소(ハルメク 生きかた上手研究所)의 '시니어 여성과 손주의 관계에 관한 의식과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을 활용한 소통이 늘고 있다.
'직접 만난다'는 응답이 99.2%로 가장 많았지만 '전화'가 77.1%, 'LINE'과 '메일'이 57.5%, 'zoom 등의 온라인 통화'가 52.3%로 이어졌다.(복수응답)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LINE'과 '메일'은 10.5% 늘었고, '온라인 통화'도 20.5% 증가했다.
손주와 소통하면서 손주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시니어는 56.4%, 손주에게 배우는 시니어는 42.6%였다. 손주에게 배우는 내용으로는 최근 학교 교육과 지식(34.7%), 게임(30.5%), 애니메이션과 만화(30.5%), 스마트폰이나 PC 사용법(20.9%) 순이었다. 손주로부터 디지털 관련 정보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주가 없는 고령자는 어떨까? 손주의 역할을 하는 대학생이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플랫폼이 있다. 2020년 창업한 이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못토메이토’(もっとメイト)다.
손주 세대의 ‘친구 서비스’
베스트 파트너(best partner)라는 의미의 ‘못토메이토’는 2020년 ‘짝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주 뻘 되는 대학생들이 독거 고령자의 ‘친구’가 되어주는 서비스다. 못토메이토를 운영하는 미하루(MIHARU)의 아카기마도카(赤木円香) 대표는 고령자의 고독감을 해소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기존에 있는 가사 대행 혹은 간호 서비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해소하고 싶었단다.
못토메이토의 친구들은 고령자를 방문해 이야기 파트너, 스마트폰 강의, 외출 동행, 필요 서류 작성, 집안 정리, 쇼핑 지원, 온라인 예약 대행 등을 돕는다. 서비스 기본요금은 시간당 5500엔(약 5만 원)이다. 시간을 연장하면 추가 비용을 낸다. 비용이 적지 않지만, 재 신청률은 90%에 이른다.
못토메이토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면접 통과율은 17%에 불과하다고. 면접에 통과하고도 미하루가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행동지침 이해, 호스피탈리티 연수, 업무 연수를 마친 뒤 3회의 동행 연수를 마쳐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친구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은 견습생부터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직위를 부여받고, 수준에 따라 기본요금의 30~40%를 받아간다.
친구는 고객 진료기록 카드를 가지고 방문하는데, 카드에는 대화 소재 140여 개 문항이 적혀있고, 방문마다 3~4개의 문항 답변을 채워야 한다. 미하루는 이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고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령자의 고민과 가치관을 누적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미하루의 ‘못토메이토’는 닛케이에서 발간하는 잡지에서 ‘미래의 시장을 만드는 100대 기업’(2023)으로 선정됐다. 또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6000만 엔의 투자를 받았다.
간호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들은 ‘간호 인력’이 집으로 와 돌봄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마도카 대표가 미하루를 창업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나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고립되지 않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 못토메이토의 사명이다.
마도카 대표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 3600만 명 중 절반은 노화에 의해 신체 능력 저하를 느끼는 프레일(frail) 단계에 있지만, 핵가족화로 인해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들이 많다”면서 “간호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립하고 있기에 건강, 경제력, 거처, 자존심 네 가지를 유지하면서 고령자의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프레일 단계의 고령자 지원이 부족한 만큼 못토메이토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국 손주와 노인의 우정 '파파'
손주뻘인 대학생과 고령자를 매칭해 고령자를 돌보는 플랫폼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파파'(PaPa)라는 플랫폼이 2017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파파에서 노인과 매칭 된 대학생은 노인과 병원에 동행하거나, 가사를 돕거나, 디지털 기술을 가르쳐준다.
파파를 만든 대표 앤드류파커는 '고령자의 주변에 있고, 동료가 되어주는 존재'로서 대학생들이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서비스를 출시한 이유는 고령자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일본 매체들이 못토메이토를 조명한 것은 미국처럼 일본에도 이런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앤드류 파커 대표는 고령화가 많이 진전된 일본에서 기회를 봤다고 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는 만큼, 일본의 정부나 지자체 기관과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1945년 4월 1일 아이젠하워는 1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미국 위스콘신 주에 있는 파커 사로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케네스 파커. 회사 사장이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랬습니다. 만년필 선물은 잘 받았고, 유럽에서의 궁극적인 적대 행위의 종식(독일의 항복)에 공식적인 서명이 있다면 나는 그 만년필을 사용하겠다는 것. 이 두 사람은 1937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약 한 달 뒤 이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5월 7일 프랑스 상파냐 지방 랭스 아이젠하워 장군 사령관실에서 독일의 무조건 항복 조인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조인식에서 미국, 소련, 프랑스, 독일 4개국 대표가 서명을 했고,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이때 사용된 만년필은 세 자루였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명한 사람은 4명인데 만년필은 세 자루. 이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한 사람이 실수로 만년필을 가져오지 않은 것일까요. 관련 필름을 찾아봤습니다. 독일 대표는 탁자 중앙에 놓인 만년필을 잡아 다른 종이에 써본 후 서명을 합니다. 펜 끝이 살짝 보이고 클립은 화살클립입니다.
미국과 프랑스 대표 역시 같은 모양의 만년필을 잡았습니다. 소련 대표만 다른 만년필입니다. 화살클립에 펜촉이 살짝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미국 파커 사의 파커51입니다. 서명식이 끝나고 아이젠하워는 파커51 두 자루로 V자를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필름에서 본 것을 종합하면, 추측이지만 실상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조인식 전에 연합군 최고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각국 대표에게 만년필을 준비하지 말라는 연락을 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이 연락대로 했지만 소련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앞으로 있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예언처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 6월 5일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분할 점령되는, 나중에 동서(東西)로 45년간 분단되는 베를린조약 문서에 아이젠하워는 파커51로 서명합니다. 참고로 5월 7일 항복 조인식에서는 아이젠하워가 파커51만 제공하고 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파커51은 항복과 분단까지 이래저래 독일에 아픔을 준 만년필입니다.
파커51 어떻게 생겼을까요?
파커51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처음 출시되었고 197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펜촉의 대부분은 손잡이 속에 들어가 있고 펜 끝만 살짝 나와 있어 뚜껑을 열어놓아도 잘 마르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만년필의 최대 장점은 매우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생산된 1940년대 것들 중에는 아직 현역(現役)으로 있는 것이 많고 1948년 이후의 것들은 고장 난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이젠하워가 좋아했던 것은 물론 올해 94세인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아직까지 파커51을 사용하는데 자주색 몸체에 금색 뚜껑의 모델을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밖에 트루먼 대통령, 니미츠, 마크 클라크 장군이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만년필일까요? 이삼십 년 전이라면 몰라도 현재 1위는 정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몽블랑 사의 마이스터스튁 149입니다. 몽블랑 149는 1952년에 출시되었으니 파커51보다는 열한 살 적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어 현존 최장수 모델이면서 만년필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만년필입니다. 펜촉을 보면 파커51처럼 감싸져 있지 않고 시원하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이런 펜촉을 오픈 펜촉이라고도 하는데 몽블랑 149는 오픈 펜촉의 대표, 파커51은 감싸진 펜촉의 대표입니다. 앞에서 정반대라고 말씀드린 것이 이제는 이해되시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149가 51에게서 1위를 빼앗기도 했지만 1990년 독일의 통일 서명에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파커51이 독일을 나누었다면 독일의 몽블랑 149는 독일을 다시 이어준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만년필에는 만년필입니다.
재즈(jazz)라 발성하면, 뭔가를 예리하게 찢는 한 줄기 섬광이 연상된다. 어감부터가 고압전류를 뿜는다. 재즈의 선율은 비를 느끼게 한다. 비처럼 축축하고 감미롭고 애절하지 않던가. 어떤 정점에서는 복받쳐 흐느낀다. 서러워 휘청거리며 홍수처럼 범람한다. 희로애락의 음표로 엮어지는 인생을 닮았다. 재즈 뮤지션은 인생을 노래하되 고감도의 직관으로 자유롭게 선율을 빚어내는 예인이다.
신관웅은 정작 ‘대부’니 ‘레전드’니, 화려한 수식에 불편하다. 내가 감히? 달갑지 않아 손사래를 친다. 재즈에 쏟은 게 많아 이룬 것 또한 많겠지만 아직은 멀었단다. 혹시나 사탕발림 췌사는 아닐까, 공연히 목에 힘줄 일 아니다, 조심조심 운신하며 내 길 가면 그만! 그런 투의 신중 모드로 풍문을 후루룩 귓전으로 넘긴다.
“재즈 불모지였던 국내의 기반을 열심히 닦은 성과는 좀 있겠지.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인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 예술가는 이걸 유념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남들의 덧없는 평판에 휘둘리는 일처럼 우스운 게 다시 있겠나. 게다가 난 여전히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한가?
“좋은 재즈 뮤지션은 마음먹은 대로 자유자재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도의 기량으로 연주한다.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보통은 이게 정말 힘들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같은 천재들은 연주 초년부터 독특한 자기 사운드를 노출했다. 그들의 경지를 무슨 수로 따라잡을까. 난 내가 다소 실망스럽다. 내 컬러를 확고하게 지니지 못한 핸디캡에.”
오르면 오를수록 태산? 이는 어쩌면 아티스트의 숙명이 아닐까?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있지만, 한계를 절감할 때면 가끔 신앙인의 기도를 생각한다.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거듭 미끄러지는 게 신앙이다. 그럼에도 한 발짝이나마 더 다가가려 노력하는 게 신앙이지. 재즈가 이와 닮았다. 이 점에서 온전히 투신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게 재즈의 세계라고 나는 믿는다.”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콘서트를 말해 달라.
“2015년에 있었던 ‘신관웅 재즈 50주년 헌정 콘서트’를 잊을 수 없다. 재즈 뮤지션 100여 명이 참여했는데 내가 모든 과정을 연출했다. 흥분과 전율을 느낀 무대였지.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도올 김용옥 선생은 헌정시를 통해 ‘재즈를 모르는 인간에겐 새로운 것이 없다’고 읊더라.”
공연 예술인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무대 공포증을 느낀다고 들었다. ‘이 순간 차라리 공연장이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어!’ 그런 가망성 없는 도피 충동에 사로잡힐 지경으로.
“긴장감을 피할 수는 없지.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면 곧바로 몰입된다. 가장 중요한 건 청중의 반응이지. 공연 성패의 근 50%는 청중의 열광 여부에 달려 있다. 환호가 터지면 신명이 올라 다이내믹한 음색을 내게 되거든. 그러나 재즈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드물다. 요즘은 코로나19로 공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지만, 이전에도 늘 관객이 적었다. 소수의 마니아들만 재즈를 즐길 뿐이거든. 이거 아나? ‘재즈 1세대’로 일컬어지는 내 또래 뮤지션들은 지독히도 배를 곯으며 연주활동을 했다는 거. 도무지 밥벌이가 되질 않더라고. 오죽하면 ‘재즈 악사는 악에 바친 사람들’이라는 우스개까지 나돌았겠는가.”
재즈의 요람, 클럽 ‘문 글로우’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재즈의 연원은 뚜렷하지 않다. 대체로 아프리카 흑인 음악을 원류로 변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초창기엔 미국의 홍등가나 술집에서 흐느적거리며 즐긴 섹시하고도 저속한 음악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루이 암스트롱 같은 걸출한 뮤지션들이 등장하면서 시대정신과 자유혼을 담은 깊고 서정적인 장르로 승화됐다. 직관에 의한 즉흥 연주, 영감과 열정의 분출, 도발과 절규, 관능미의 표현 등을 속성으로 지니는 재즈의 포용력은 놀랍다. 어떤 음악 장르나 경향을 만나더라도 거침없이 흡입, 다종다양한 가지를 쳐나갔다. 스윙재즈, 비밥재즈, 쿨재즈, 핫재즈, 록재즈, 프리재즈, 퓨전재즈 등등이 파생했던 것. 재즈의 근본정신은 물론, 포식처럼 거대한 융합작용까지 특이하고 복잡한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대중의 접근이 쉬우랴. 쉽고 편하게 재즈를 소화할 내장기관을 가진 사람들이 드문 건 요즘도 마찬가지. 신관웅은 얼마 전 요상하게도 겨우 대여섯 명의 관객을 앞에 둔 야외공연까지 경험했다. 재즈의 불황이 이렇게 만성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풍금을 장난감처럼 늘 끼고 놀았단다. 심각한 몰입이었다고 하니 순진한 어린 혼의 음악적 빙의? 대학에선 경영학을 배웠으나 시늉뿐, 젊은 그는 엑스트라 악사로 용산 미8군 무대에서 건반을 연주하며 주체하기 힘든 청춘의 열기를 다독였다. 그러다가 재즈를 만나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매혹을 느껴 재즈 피아니스트로 비상했다. 비상? 즐겁고 기꺼워 재고 따질 것 없는 재즈에의 투신이었으니 허공으로 첫 날갯짓을 하는 어린 새의 두려움 없는 비상과 닮았다. 그러나 삶이라는 허공의 기류는 차고 사나워 날갯죽지 부러지기 십상이다.
“재즈라는 신천지를 발견하고 기뻤다. 하지만 밥을 버는 일이 난감했지. 재즈 밴드를 만들어 미8군 무대에서 활동했으나 그것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었거든. 나이트클럽 같은 일반 무대에서도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러나 번번이 쫓겨났다. ‘하이고, 아저씨들의 연주 리듬으로는 도저히 춤을 맞춰 출 수가 없어요!’ 클럽 댄서들이 그렇게 따지며 대들었거든.(웃음)”
우리의 삶에서 친구는 중요한 존재다. 노후에는 더욱 그렇다. 늘그막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건강을 잃고 일찍 저세상으로 간 녀석과 병마에 시달리는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늘 함께할 수 있는 건강한 친구는 큰 자산이다.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를 지어줘도 아깝지 않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때 인기를 누렸던 어느 개그맨은 “친구가 중요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가야 하니까 그 친구의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주세요~”라고 말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생각할수록 의미가 있는 말이다.
‘세계가치조사’라는 연구기관에서 노후 행복의 요소로 다섯 가지를 발표했다. 가족관계, 돈, 일, 건강 그리고 친구다. 백세 시대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다. 노후생활비가 부족하거나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않아도 그렇고 소일거리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도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이럴 때 친구가 옆에 있어주면 위로가 된다.
미국 배우 트레이 파커(Trey Parker)는 “인생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족과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을 잃게 되면 당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친구를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구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친구가 적은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친구에게 보약 한 재를 지어줘서라도 오래 옆에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친구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배우자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부산 갈 때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이라는 질문에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도 있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면 순식간에 부산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가 1만여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석해냈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 즉 나와 4단계에 있는 사람까지 삶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친구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은 15% 더 높아지고 친구의 친구는 10%, 4단계에 있는 친구는 6%나 된다고 한다. 친구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기에 친구의 건강을 챙겨볼 필요성이 있다. “친구에게 보약 한 재 지어주세요!”라는 개그맨의 말이 삶의 교훈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지난 달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주제는 성 평등이었다. 깊이 들어가면 그리 유쾌할 수만은 없는 남녀의 차별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래도 시종일관 분위기가 밝았던 건 사회를 본 최광기 여사 덕인 것 같다. 본인의 이름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고 태어났을 당시 자매들의 출생신고가 아무렇게나 되었는데 딱 하나 아들을 낳자 그날로 출생신고를 하셨던 아버지를 예로 들며 태어나자마자 차별을 받았다고 고백해 청중을 웃겼다.
딸만 셋이었는데도 지극한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 덕에 필자는 남녀차별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아들과 딸의 차별이 아주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밝게 꾸며진 콘서트홀은 왠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미국인이지만 이미 대한 미국인이라 불리는 '타일러'가 패널로 나와 특히 기대가 되었다. '타일러'는 요즘 모 방송의 '비정상회담' 원년 멤버로 나오고 '문제적 남자'라는 프로그램에서 대단한 뇌섹남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친정엄마와 필자는 타일러의 열성팬이다.
최광기 씨의 사회로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과 방송인 타일러, 개그맨 황영진, 좋은 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이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어린 시절의 고정관념이 남녀의 성차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남녀의 역할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남자아이에게 “남자가 울면 어떡하니?”라고 하고 여자아이에게는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라는 표현을 무의식으로 써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심결에 한 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각인되어 결국 성차별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는 설명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약간의 걱정이 생겼다. 며칠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세 살짜리 손자가 여섯 살짜리 손녀에게 용감한 포즈를 취하며 "누나는 내가 보호해줄 거야!"라고 했다. 아기가 한 그 말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마구 칭찬해주며 "그래, 누나는 여자니까 남자가 보호해줘야 해" 했는데 성 평등에 어긋나는 표현이었을까 우려가 됐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고정관념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평등으로 완성되는 나라다운 나라'의 주제로 진행된 토크쇼는 대한민국 남녀가 바라는 성 평등은 어떤 모습일지, 왜 지금 성 평등을 주장하는지에 대해 담론했다.
20~30세대 2000명에게 다시 태어나 성별을 바꾸고 싶은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남자는 37%, 여자는 무려 49.5%가 그렇다고 했다. 여자가 느끼는 성차별이 더 크다는 의미다. 정현백 장관은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호주제에서의 폐해와 똑똑한 여 제자가 취업할 때 받았던 불이익을 예로 들어 말해줬다. 그러나 새 정부도 여성 장관 기용 30% 공약을 지키는 등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바람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남녀의 역할을 정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해결책도 나왔다. 형광등은 꼭 남자가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키가 좀 더 큰 사람이 하면 된다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김지윤 소장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역할을 정해야지 성에 따라서 할 일이 정해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도 먼저 귀가한 사람이 식사 준비를 하면 되고 덜 피곤한 사람이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세계적으로도 성 평등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UN이 추진하는 연대운동인 ‘He for She’는 성 평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이다. '화이트 리본'은 사라 제시카 파커와 카메론 디아즈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45명의 남성이 성 평등을 실천하는 '성 평등 보이즈'라는 모임이 있다.
두 시간의 토크쇼가 마무리되면서 패널들에게 던져진 마지막 질문은 '내가 꿈꾸는 성 평등 대한민국은?'이었다. 정현백 장관은 '소통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민주 사회'라고 했고 김지윤 소장은 '누구나 원한다면 안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나라'라 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대한미국인 타일러는 '아직 멀었다'라고 따끔하게 현실을 꼬집었다.
글. 박종진 만년필동호회장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대한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완성된다는 뜻이다. 만년필도 이와 같다. 1800년대 후반 실용적인 만년필이 만들어졌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필요 없는 것은 사라지고 편리한 것은 추가돼 지금의 모습이 됐다. 이것은 재미있게도 발전하고 다듬어지는 우리의 인생(人生)과 비슷하다. 유년기,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발전기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청년기인 황금기가 있다. 그리고 황금기를 지나면서 만년필은 완성됐다.
발전기
실용적인 만년필의 시작은 1883년 뉴욕에서 보험을 하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46세에 발명했다. 실용적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것은 이전에도 만년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년필은 잉크를 저장 휴대하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17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이 남아 있고 1800년대가 되면 특허가 등록되는 등 갖고 다닐 만큼은 못 돼도 만년필은 있었다. 워터맨은 모세관현상(毛細管現象)을 이용했다. 뚜껑을 열자마자 쓸 수 있고 필기 도중 잉크가 쏟아질 일은 없어졌다.
만년필은 빠르게 발전했다. 휴대가 일반화됐고 체온(體溫)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데워진 공기는 펜촉에 남아 있는 잉크를 밀어 흘러나왔고 쓰려고 하면 손에 묻었다. 화살클립으로 유명한 파커사(社)의 창업자 조지 파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여러 발명가 중 하나였다.
세기가 바뀌면서 문제는 해결되고 편리하게 스포이트 없이 잉크를 채울 수 있게 됐다. 1905년 처음 클립이 만년필에 장착돼 연필 모양이었던 만년필은 클립의 추가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황금기
1920년대 이후 만년필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전이 실용적인 만년필의 아버지인 워터맨사(社)의 독주(獨走)였다면 황금기는 워터맨, 셰퍼, 파커, 월의 4파전이었다. 먼저 치고 나온 것은 셰퍼였다. 바닥에 떨어져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두껍고 튼튼한 펜촉을 장착하고 ‘LIFE TIME’이란 이름으로 첫 구매자의 평생 동안 보증을 해주는 자신감 있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것은 즉시 성공했고 내구성은 업계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해 파커는 빨강과 검정의 두 가지색으로 대비, 눈에 확 들어오는 듀오폴드를 내놓는다.
기능의 추가는 아니었지만 컬러는 황금기 초반에 보증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1위였던 워터맨 역시 컬러의 공격에 움직이기 시작해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1924년 새로운 재질인 플라스틱이 상용화돼 컬러는 다양해지고 무게는 가벼워졌다. 1929년에는 위와 아래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유선형이 등장했다. 만년필의 전형(典型)으로 알고 있는 형태이다.
고무 튜브 안에 잉크를 채우던 방식이 1930년대 들어서자 구식(舊式)이 됐다. 요즘처럼 몸통 뒤의 꼭지를 돌려 잉크를 채우는 것도 이 시기를 전후로 독일과 미국에서 나왔다.
현대
1920년부터 시작해 1940년까지 약 20년간의 황금기는 보증(保證), 컬러, 플라스틱 재질, 유선형, 새로운 잉크 충전 방식 등 현대 만년필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대에 남은 것은 이것들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1941년 만년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만년필인 파커51이 출시됐다. 황금기에 나온 모든 것들이 적용됐고 어디 한 군데 허술한 곳이 없었다. 흔들어도 잉크가 튀지 않았고 전쟁터에 군인이 꽂고 나갈 만큼 튼튼했다.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후 두 자루의 파커51로 V를 만든 것은 꽤나 알려진 일화다.
황금기의 유산(遺産)은 파커51에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1952년 몽블랑사(社)에서 출시한 몽블랑149 역시 그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유선형의 몸체, 크고 화려한 펜촉, 새로운 잉크 충전 방식은 파커51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만년필은 1883년 실용적인 만년필의 시작이 약 30년의 발전기와 황금기의 20년을 지나 완성된다. 사람으로 치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쉰 살이다.
쉰 살은 쉰 이어(year) 고 시니어다.
수집과 동호회
동전 위에 있는 만년필은 “World’s smallest Pen”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만년필로 알려진 펜이다. 잉크를 넣어 사용할 수 있고 성냥개비보다 작아 길이는 약 41mm다.
때때로 Doll’s Pen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메리 왕비의 인형의 집에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 왕비는 영국 왕 조지5세의 아내로 당시 세계 최고의 수집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크리스마스에 자국의 군인에게 연필과 담배가 담긴 ‘Princess Mary Tin’을 보내기도 했다.
만약 이와 비슷한 만년필이 있는데 좀 더 알고 싶고 진위(眞僞)를 가려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호회를 찾아야 한다.
수집에만 열을 올리는 만년필의 동호회는 옛날이야기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비싼 만년필을 자랑한다면 이내 싸늘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 수도 있다.
새로운 만년필을 구하는 것은 탐험과 같다. 낭떠러지가 있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고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별 아래 둘러 앉아 맹수를 사냥한 전사의 성공담이 있는 것처럼 동호회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서랍 속에 만년필이 있다면 분명 그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알아봐 들려줄 수도 있고 내가 사냥꾼이 돼 이야기할 수도 있다. 모임은 그런 이야기로 차 한 잔을 두고 10시를 넘어 11시가 다 되도록 채워진다.
사물(事物)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