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움직이며 우리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명성의 본질과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는 명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인간의 ‘명성’(名聲)과 각계의 ‘명사’(名士)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는 관련 이론·데이터 분석, 수양·실천 컨설팅 전략의 발굴 제시는 물론, 각계 명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학술적 통찰을 끌어냈다. 본지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입수해 창간 특집으로 독점 게재한다. 연구 결과물은 ‘셀럽시대’(한울엠플러스)란 책으로 오는 5월 출간될 예정이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사진을 보고 경탄하며 ‘칠리치즈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해요. 그런데 실제로 나오면 양념이 풍부하고 느끼한 그걸 다 먹어야 하냐는 부담감을 느껴요. 그때 ‘일반 감자튀김’을 시켰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후회하죠. 인간에게 명성이란 바로 이런 존재예요.”
‘그릿’(Grit, 2016)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21년 2월 28일 미국 팟캐스트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나와서 한 얘기다. ‘명성’은 자아실현 욕구를 지닌 인간의 본능이자 인생의 성공 가도에서 간절하게 그리는 꿈이다. 동시에 앤절라 더크워스의 말처럼 ‘약’과 ‘독’이란 양면성을 지녔다. 명성은 인생 경험과 성과의 소산이자 자신을 웃고 울게 만든 가치이기에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지닌 시니어들에게 더욱 친숙한 어휘다. 명성은 사회적으로 신뢰와 참여를 촉진하고, 정치적으로는 투표율과 지지를 견인하며, 경제적으로는 그 존재량이 희소해 ‘관심경제’는 물론 명성에 대한 선망, 추종, 숭배를 극소수에 집중시키는 ‘슈퍼스타 경제학’을 구성한다. 인터뷰에서 문인·철학자는 대체로 명성을 경계하고, 정치인·경제인·의료인은 능력과 신뢰에 바탕을 둔 적극 활용론을 강조했으며, 예술인·체육인은 조건부 활용론에 방점을 두었다.
명성은 ‘약’과 ‘독’ 양면성 지녀 경계해야
‘풀꽃 시인’ 나태주는 2015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은 바 있는 ‘풀꽃(1)’을 썼다. 시구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인데, 그는 이 시에 대한 폭넓은 사랑으로 ‘국민시인’으로 떠올랐다. 나태주 시인은 ‘명성’에 대해 “전적으로 남이 알아주고 평가해주는 고귀한 가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명성을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버리고 아첨하고, 반칙하며, 사술(詐術)을 부리며 아등바등하는 것은 거부했다. 심지어 신춘문예 당선이나 등단에 조급증을 갖거나 빨리 쓰려고 하는 문단 후배들까지 꾸짖었다.
그는 “명성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데다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혼을 망가뜨리기 쉬우므로 존엄과 품위가 가미되어 더 가치가 있는 ‘명예’를 중시한다. 명성은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져버리는 젊은이의 ‘화장’과 같고, 명예는 경륜 있는 노인들이 갖는 가슴속 숨겨진 ‘흉터’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잘 지워지지 않아 영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과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투영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날이 선 언어로 소통을 확대해왔다. 그는 명성을 절대 추구해서는 안 될 ‘노예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철학과 인문학의 견지에서 명성 추구는 주인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따라가야 하는 ‘노예의 전략’”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명성을 추구하는 삶은 자기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삶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을 좇는 것이기에 결국은 꼭두각시의 삶을 사는 것”이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부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정치인 정세균(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국내 헌정사 최초로 여야의 정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해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으로 통한다. 국회의원(6선), 장관(산업자원부),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일종의 세평(世評)이지만, 명예는 본인 성과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과 자부심의 척도다. 명성은 반드시 공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일에 열정을 발휘해 얻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한보청문회’(1997년)에서 한보의 로비 자금을 거절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밝혀져 일약 명사로 부상한 이후 지금껏 겪은 성찰을 집약한 것이다. 그는 “국민이 우러러보는 ‘정치인 명사’가 되려면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맡은 공직의 무게를 온전히 떠안으며 일하는 ‘책임의식’, 정성과 투명성을 기본으로 국민을 받드는 ‘신뢰성’, 매사 분별력을 발휘하며 신사 숙녀처럼 처신하는 ‘품격’이 몸에 배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정직해야 명성 쌓아”
‘카리스마 리더’ 김종인(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내로라하는 경세가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관·학의 풍부한 경험 축적은 물론 ‘차르’란 별칭,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란 비유가 말해주듯 강한 소신과 뚝심으로 진보에서 보수를 망라하는 정당을 모두 이끌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에게 목숨과 같고, 국민 앞에 서서 정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갖고 이를 드높여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국민에게 피해만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의 명성 축적과 유지의 기본 요소는 정직성, 일관성, 신뢰성인데,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정직”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정치적 경륜과 지략이 풍부해 ‘정치 9단’으로 불린다. 그는 “정치인은 오늘을 잘해서 내일을 사는 사람이다. 국민의 인정(認定)을 받아야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고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명성은 정치인에게 존재 자체이자 전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얻으려면 철두철미하게 지식을 쌓고, 국가 사회와 국민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미래 상황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등의 자기계발을 하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영향력, 기능, 효과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인 언론을 하늘같이 알고 받들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나는 신혼여행 이후로는 아내와 여행 한번 같이 못 갔을 정도로 정치 행위 그 자체를 즐기며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아예 동일시(同一視)하며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김세연 전 의원(청년정치학교 운영자, 3선 의원)은 ‘36살의 집권당 최연소 당선’이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계에 입문해 개혁보수와 우파혁신을 주창한 ‘청년정치 리더’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명성은 오직 정치인 본인의 의도나 의사와 무관하게 공직에 대한 열정적·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그 결과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외려 명성과 거리를 둘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위해 일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왜곡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는 정치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욕망이나 의도를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시적으로 위임된 권한과 권력을 사유물인 양 착각한 나머지 여의도 정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명성 지향’, ‘명예 지향’의 정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거부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관된 목표·방향성 갖고 혁신경영”
차석용 LG생활건강 전 대표이사 부회장은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조직, 제품, 서비스 혁신 분야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해 2022년 말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이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는 “기업과 CEO의 명성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소비자들의 명민한 감각과 반응으로 시시각각 정확하게 측정되는, 영예롭고도 두려운 양면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기업과 CEO는 소비자를 ‘진정한 보스’로 모시고 기업의 증진을 위해 분명하고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혁신경영에 몰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CEO로서 LG생활건강에서 강조한 기업과 제품의 명성 증진 전략은 정직, 진정성, 신뢰, 디테일(세심함과 정확함)이었다.
이종천 ‘다나딸기농장’ 대표(충남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는 독보적인 반전의 귀농 성공신화를 쓴 ‘딸기왕’으로 농업계와 지역사회에서 명성이 높다. 이종천 대표는 “농민의 명성은 자신이 재배한 작물이 말해준다. 저에겐 풋풋하고 탐스러운 저 딸기가 그걸 상징한다. 온갖 정성, 노력, 풍상, 고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묘미는 자연과 함께 인생을 즐기며 향긋한 결과물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기 특구’이자 딸기 수출 전진기지인 충남 논산의 성공한 농업인이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위촉한 농업 후계자를 교육하는 현장의 교수로 활동하며 농촌의 미래를 가꾸는 데 헌신하고 있다. 건설사 임원 출신인 그는 퇴직하고 시작한 통신 서비스 사업의 실패 후 무작정 귀농해 8년간 딸기 농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재 비닐하우스 딸기 재배동 7개 동과 딸기 육묘장 2곳, 청년귀농장기교육장과 딸기현장실습교육장을 함께 운영하며 연 7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명성은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
서울 용산의 ‘메이플라워/술술상점 용산’ 정미희 대표는 최근 SNS에서 매우 뜨거운 유명인사다. MZ세대 CEO로서 뛰어난 외적 매력을 바탕으로 최근 10년간 미식 탐방, 새벽시장 장보기, 술 시음과 술집 탐방, 여행과 골프 체험기 같은 일상적 콘텐츠를 페이스북에 게시해 인기를 끌면서 ‘SNS 셀럽’으로 떠올랐다. SNS를 한 시대의 문화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정 대표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2022년 1월 20일 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명성은 불편함도 크지만, ‘존재감 미약한 편안함’보다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이란 나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사업보다 친교에 도움이 된다. 수상한 접근을 하는 ‘가짜 친구’도 많이 생기긴 하지만 일생을 함께할 친구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석 미래본병원 대표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서울 잠실)은 ‘경추·요추 부위 내시경 수술(수술 경력 9000건)의 명인’이다. 김 원장은 “의사의 명성은 환자를 사랑으로 극진히 돌봤는지에 대한 자화상 같은 척도다. 그것은 오직 환자와 직결되며, 환자를 떼놓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는 신뢰와 사랑을 토대로 사력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좋은 의사’, ‘훌륭한 의사’, ‘명예로운 의사’의 출발점도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의사가 명의(名醫)란 명성을 얻으려면 환자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공감 능력’과 ‘좋은 인품’, 환자를 제때 제대로 치료하는 ‘뛰어난 실력’,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와 자신감 표출’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주대 의대 출신으로 군의관 시절 선구적인 내시경술 수련과 아프간 의무부대 참전, 척추 전문 병원인 우리들병원 수련원장과 의무원장, 우리들의료재단 부이사장을 거쳤다. 그는 “높은 명성을 지닌 의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과 오만, 그리고 그것의 연쇄반응으로 나타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에게 명성은 삶의 기적과 고귀”
‘대장금 한류’의 주역 양미경 배우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을 맡아 드라마가 국내는 물론 동남아·중동 지역까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로 부상했다. 양미경 배우는 “‘명성’은 삶의 기적이며 고귀(高貴)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명성(名聲)은 이름이 소리가 나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선(善)함을 바탕으로 인고의 노력과 울림을 통해 영롱한 새벽이슬처럼 만들어진 것이기에 ‘명성은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연기를 통해 맑고 선한 성정, 곱고 단아한 이미지를 각인하는 독보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해온 명성과 관록에서 나온 통찰이다. 라마단(Ramadan) 기간에도 ‘대장금’을 시청할 정도로 경이적인 시청률(90%)을 나타낸 이란에서 2009년 5월 그를 ‘국빈’(國賓)으로 공식 초대했다. ‘대장금’이 2015년 홍콩에서 방영되었을 때 시민의 약 절반인 328만 명이 시청(최종회 최고 시청점유율 50%)해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팬들이 몰렸다. 그는 “‘대장금’ 출연 당시 홀연히 찾아온 에너지처럼 새로운 차원의 명성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강한, 삶에서 흔히 만날 수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였다”라고 술회했다.
‘골프 여신’ 최나연 프로는 우리나라 ‘여성 골퍼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라는 명성을 안겨준 원동력은 전적으로 태생적 자질인 강력한 도전정신과 성취욕이다. 나는 일관성과 꾸준함을 가장 잘 보여준 프로 골퍼로 골프사에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매력·저력’을 완비한 골퍼로 ‘롱 아이언 샷의 명수’이자 ‘골프계 최고 얼짱 스타’로 불렸다. 2004년 11월 데뷔 후 18년간 미국여자골프(LPGA) 최고의 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2012)은 물론 LPGA 대회에서만 우승 9회, 준우승 12회, 3위 7회의 저력을 보여준 뒤 2022년 말 전격 은퇴했다. 그는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집중력, 경험, 실력, 운(運)이란 4가지 요소가 경기 당일 어떻게 최적의 조합을 이뤄 경기력으로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를 잘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4가지 요소를 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스타 골퍼’들이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겸손한 성품, 끊임없는 실력 증진 노력, 선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3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명성,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어”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명성이란 사람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기자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은 이메일과 SNS를 통해 내가 쓴 기사에 대한 공감과 긍·부정의 평가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명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이 앞서 균형감각 유지에 대한 강박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32년 차 기자로서 ‘AP통신’ 기자 시절인 1999년 9월 30일 영구적으로 묻힐 뻔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특종 보도해 2000년 한국인 기자로는 처음으로 서구 언론계에서 ‘언론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받아 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 나를 만든 힘은 강한 성취욕과 성실성이다. 노근리 사건의 취재는 어떤 피해자가 쓴 논픽션 실록의 출판이 당시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 내용에 두려움을 느낀 출판사에 의해 거부되고, 한미 양국이 피해자들을 외면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다.
KBS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계에서 경쾌한 에너지와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춘 ‘MZ세대 아이콘 뉴스앵커’로 통한다. 그는 “나에게 명성은 방송사에서 일을 더 열심히, 더 잘하게 하는 동기부여 요인이자 원동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11월부터 공영방송 KBS의 ‘KBS 뉴스 9’(주말) 뉴스 진행을 맡고 있다.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프로그램을 봐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한테도 그것이 일할 때 항상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명사로 인정받을 만한 유능한 앵커가 되려면 첫째 기사를 보고 핵심을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깊게 질문하는 능력, 둘째 명쾌하고 유려한 전달력, 셋째 진행 능력과 같은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BTS, “기본적인 것, 결과에 따른 신뢰”
한편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한몸에 받은 피겨 스타 김연아는 언론 매체를 통해 명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11월 미국 패션 잡지 ‘페이퍼’(PAPER)와의 화보 인터뷰에서 글로벌 스타로 유명해지면서 점점 높아진 명성에 뒤따르는 부담감을 고백했다. ‘멤버들은 명성이 주는 부담감이 큰가?’란 질문에 대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저는 요즘 사명감으로 살고 있어요. ‘완벽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 결과에 따라오는 신뢰를 기억하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제이홉),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지민),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슈가), “여전히 우리는 무대 위에서 정말 잘하고 싶어요”(리더 RM)라고 각각 답했다.
김연아는 명성의 유무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운동선수가 갖는 명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19세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3년 전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때는 혼자 외롭게 싸웠다”라고 울먹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둬 명사가 된 후에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다 보니까 좀 불편한 건 피해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행복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내비쳤다.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 거대 담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긴다. 그의 과학 이야기에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그는 “내 삶은 우연과 우연의 중첩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과학을 전하는 원종우 작가 이야기다.
‘파토’(Pat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원종우 작가의 이력을 쭉 듣다 보면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철학도, 록 뮤지션, 대중음악 운동가, 칼럼니스트, 정치사회 논객, 음모론 전문가, 다큐멘터리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그를 수식하는 말이다.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런던 칼리지 오브 뮤직&미디어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이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 ‘딴지일보’ 편집장 및 논설위원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과학과 사람들’ 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데, 그의 답은 한결같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거대 담론을 농담처럼 던지는 과학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거대 담론이라 불릴 만한 과학 이야기를 농담을 섞어 쉽게 전달하는 팟캐스트다. 2019년 말 기준 누적 1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구독자 수는 약 9만 명, 유튜브 구독자 수는 약 8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에게 과학을 더 쉽게 알리고 싶었던 원종우 작가가 2013년 ‘과학과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시작한 채널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록 음악을 하던 그는 어떻게 과학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그의 과학 사랑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한 살 무렵, 당시로서는 거금인 4000원을 주고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라 불리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 ‘코스모스’를 샀다.
“당시에는 대중교양 과학 서적이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무리 똑똑하대도 그 책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요? 대신 예쁜 컬러의 우주 그림이 많았고, 1부는 스토리가 재밌었죠.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세상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할 즈음에는 대중 과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다루는 것 같은 ‘바닷속에서 상어를 만났을 때 건전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고치는 과학’ 같은 접근이었다. 과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셈인데, 원 작가는 반대로 바라봤다. 특히 인문학 대중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이 대중화될 때 두 가지 소비 방식이 있었어요. 수박 겉핥기처럼 가볍게 다루거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방식. 둘 다 좋은 소비는 아니죠. 쉬운 과학은 오히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거대 담론을 편하게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과학은 스토리지만 어떤 건 수학이고 어떤 건 실험이잖아요. 대중이 이걸 100%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그 안에서 딱 한 가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꼭 가져갔으면 했어요. 과학으로 인문학 이야기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팟캐스트에서 제가 지향했던 부분이에요. ‘자, 지금부터 내가 거대 담론을 말할 거긴 한데, 듣는 사람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시선으로 들었으면 해’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가 팟캐스트에서 다룬 상대성 이론 이야기만 모두 합해도 8시간 분량이다. 양자역학은 더 많은 분량의 오디오가 있다. 내용도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그는 그 안에 핵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면서 눈이 열려요.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요. 제가 과학을 통해 느꼈던 경외감, 놀라움, 충격, 그리고 세상을 일상적인 경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지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전문가의 입을 통해 거대 담론을 설명하면서 청중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중간에서 통역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교수가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면 ‘나는 바보인가’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제가 중간에서 ‘사실 몰라도 돼요’라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청중은 긴장을 풀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이해하는 사람도 생겨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시대
미디어 채널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다. 팟캐스트가 흥행한 이후 유튜브와 같이 개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대중을 상대하는 개인이 늘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 이상 통역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어려운 과학 이론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제가 연구자는 아니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한계를 느꼈어요. 이제는 대중 앞에 나서는 연구자도 늘었고요. 과거에는 연구자가 대중을 상대하면 ‘연구할 시간도 없으면서 한가하네’ 같은 안 좋은 시선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내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과학만큼이나 좋아하지만 한참이나 미뤄두었던 ‘픽션 쓰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다. 과학적 근거 위에 쌓아 올린 8개의 픽션이 실린 책이다. 각 픽션의 앞뒤에는 ‘앞설과 뒷설’을 달아 과학적 이해를 도왔다. 그는 픽션을 통해 생각해볼 지점을 남겼다. 영원히 죽지 않는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죽음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거나, 자의식이 없는 AI만이 지구에 남아 살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과학기술의 장점을 알지만, ‘인간에게 영생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이 정말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한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다가, 원 작가는 앞으로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0년을 산다는 게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120세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천천히 늙는다는 뜻이죠. 안티에이징의 연구 속도가 어마어마해요. 쥐 실험에서는 실제로 노화를 역전시키기까지 했어요. 쥐를 젊게 만든 거죠. 만약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우린 정말 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인류는 그런 기술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길게, 더 젊게 살 거예요. 좋게 말하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요. 문제는 그 시간의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죠. 그러니 그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수밖에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지 않을까.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Well-dying) 개념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게 웰다잉에 대해 묻자 특유의 유머가 나왔다. “웰다잉의 반대는 배드 리빙 앤드 다이(Bad Living & Die)일 텐데요. 안 좋게 오래 살다가 안 좋게 죽는 거죠.(웃음) 모두가 느끼는 공포일 텐데요. 웰다잉에 대해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고 멀리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 50대니까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남은 생을 생각할 때는, 현재가 아니라 20~30년 뒤의 세상을 생각해야 해요. 그때는 또 얼마나 기술이 발전해 있겠어요? 연금, 기본소득 같은 개념도 오늘의 관점이 아니라 문제가 닥칠 미래 시점에 어떤 기술, 과학 등이 주변에 있을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해요. 사회는 거기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한 AI나 로봇의 발전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노화를 눈치 보지 않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원 작가의 아버지는 올해 94세다. 지난해만 해도 정정했던 분인데, 올해 들어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자식들이 돌봄을 자처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의 돌봄만을 허락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이도 87세. 노노(老老) 케어다. 결국 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가 ‘남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한다.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수용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럴 때 AI, 로봇, 기계가 충실히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 앤 프랭크’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따분한 전원생활을 하는 프랭크에게 아들 헌터가 ‘VGC-60L’이라는 로봇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인간을 돕는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렸다.
“상상을 해볼까요.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어 3, 4시면 일어나죠. 아무리 가족이 나를 잘 챙겨도 새벽 3시에 밥을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로봇은 항상 곁에 있고 부르면 원하는 걸 해결해줘요. 그렇다고 뒷말을 할 걱정도 없고요. 내가 돌봄을 받는데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심지어 그냥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꺼버리면 돼요. 로봇의 내면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생긴다는 거죠.”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이런 과학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영생을 주는 기술이 나왔을 때 10억 원이 넘는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는 거예요. 소위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 개념이 단순히 건강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회를 낙관적으로 봐요. 유동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라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중간중간 에러가 생기지만, 인류는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끔 조직된 생명체입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인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죠. 인류는 공도동망(共倒同亡)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결국 기술은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겁니다.”
스스로 일궈놓은 나만의 세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정말 120세까지 살게 된다면, 50세에 은퇴해도 7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내야 한다. 살아온 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 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 작가는 ‘나만의 세계를 꼭 일구시라’ 당부했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나이가 120세여도 신체는 50세일 수 있죠. 그러면 그 사람은 50세의 능력치로 일하면 돼요. 노인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죠. 과학기술이 이런 성과를 낸다면 사회는 그에 맞춰 움직일 거예요. 노화로 인해 일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다만 그 기술이 적용될 때까지 우리는 늙어가잖아요. 이 시기를 살아갈 시니어들은 내가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시간을 살아갈 내가 일궈놓은 세계가 있어야 해요.”
뭐라도 좋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는 악기 연주를 적극 추천했다. 오랜 시간 기타를 연주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해보세요. 남이 알아주고 몰라주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악기는 손가락이 고장 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늘어요. 어제보다 낫고, 내일 되면 오늘보다 낫습니다. 마흔이 넘은 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칩니다. 그러니 좀 더디게 늘겠죠. ‘이걸 계속할까?’ 묻더라고요.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20년 뒤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라고요. 피아니스트 될 거 아니잖아요.(웃음) 무엇보다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 역시 음악을 다시 해 앨범도 내고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저 그 과정이 좋다고. 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곤 했지만 꿈이 궁금했다. 그의 꿈은 ‘세계 평화’다. 무언가를 꿈꿔야 한다면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가치’를 꿈꿨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오늘도 그는 농담처럼 거대 담론을 던진다.
이명현은 별과 시, 소설을 사랑하는 전파 천문학자다.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한다. 현재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 프로젝트 ‘세티’의 한국 책임자(SETI KOREA 대표)와 메티 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더불어 어릴 적 자랐던 삼청동 옛집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고 과학 소통가로서 우주과학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이명현 천문학자가 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0년대 서울의 변두리, 답십리 골목길에서 딱지치기나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다. 해 질 무렵,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엄마의 부름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혼자 남아 밤하늘을 바라봤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이 퇴근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별에 매료돼 ‘별을 헤는 사람’이 됐다.
상반된 단어들의 별난 집합
“초등학교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어요. 최연소 회원이었죠. 그때만 해도 서울 밤하늘이 제법 어두웠어요. 인공 불빛이 덜했으니 어지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 은하수는 가끔, 안드로메다 은하는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도 다시 만나던 단골손님이었어요. 성운과 성단의 이름을 적은 노트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눈으로 찾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본 후 그림을 그리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의 세월은 문학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가을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로부터 이별을 알리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인생 첫 실연이었다. 편지에는 김소월의 ‘초혼’과 윤동주의 ‘서시’ 두 편이 적혀 있었다. 서럽게 울다가 두 시인의 시를 보았다. 그리움을 곱씹으며 구할 수 있는 모든 시집은 다 구해서 읽고 외웠다. 이별이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준 셈이다. 윤동주가 공부했던 숭실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가 참여했던 평양 숭실고 교지 ‘숭실활천’의 정신을 잇는 문학 동인회 ‘활천’을 만들었다. 그 이름으로 동인지도 발행했다. 대학교도 윤동주의 흔적이 남은 연세대학교로 갔다. 마침 같은 학교에 입학한 아내를 1학년 가을, 윤동주 시비 앞에서 다시 만났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가 된 후 전파 망원경을 통한 은하 연구의 중심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연구원 생활을 마쳤다. 귀국해서는 연세대학교 연구교수와 천문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이명현 인생의 화두인 별과 윤동주의 문학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2010년 11월 말, 일요일 밤이었어요. 김장철이라 배추를 나른 뒤였죠. 약간 숨이 찼지만 힘들진 않았는데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어요. 응급처치 덕에 살았지만 지금은 심장 근육의 일부만 뛰는 상태에요. 그때 현장 과학자로서는 은퇴했어요. 당시 연재 중이던 온라인 매체 ‘프레시안 북스’의 서평 연재 코너 빼고요. 격주로 진행했는데, 책을 한 권 읽고 글 쓰는 게 다였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 재활 훈련으로 여겼죠.”
‘과학의 문학’을 위한 책방
2018년에는 삼청동 뒷골목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원래 이 공간은 아버지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저자)가 1979년에 지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관리가 살던 단층 적산 가옥이 있었다. 이 명예교수가 2002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집을 새로 지어 옮겨간 후 삼청동 집은 지인이 오랫동안 비폭력대화센터로 운영해왔다. 그러다 센터가 이사하며 집이 비자 이 명예교수는 장남 이명현 천문학자에게 공간을 내줬다.
“갈다는 갈릴레오(Galileo)와 다윈(Darwin)의 앞글자를 합친 단어예요. ‘세상을 바꾼 과학을 만나는 곳’이란 뜻부터 ‘문화의 터전을 갈다’, ‘지식의 칼날을 갈다’, ‘딱딱한 과학을 부드럽게 갈다’, ‘지식의 판을 갈다’ 등 5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장대익 서울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상욱 경희대 교수 같은 친한 학자 10여 명과 아이디어를 모았죠. 이름을 지은 다음 뭘 할까 고민했어요. 다들 과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사람이고, 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터라 교양과학 책방을 열기로 했죠. 2층에는 저자의 방, 지하엔 북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어요.”
이명현 천문학자는 과학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 출발은 대학원생 때다. 연구실로 초등학생 꼬마 한 명이 들어와 다짜고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론에 입거한 증거를 나열해 친절히 얘기해줬지만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을 납득시켜달라고 보챘다. 아무리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천문학을 매개로 비전공자와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이후 다양한 강연을 통해 과학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꾸준히 전한다.
왜 과학, 책일까?
“대부분 과학책이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거리를 둬요. 과학책을 쉽게 읽고 싶다면 ‘느슨한 독서’를 추천합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적어 책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어요. 그만큼 정독, 완독, 반복 등이 중요했죠.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서 좋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와요. 첫 장부터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고,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세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등 비독서 행위를 활용하면 효율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흘려놓은 정보에 올라타는 거죠. 장으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는 책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는 것도 느슨한 독서 방법이에요.”
물론 영상, 팟캐스트 등의 미디어를 통해 과학을 접한다 해도 진입장벽은 높다. 그럼에도 느슨하게나마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 매체가 익숙한 시대에 살다 보니 현대인은 즉각적인 반응을 도출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복잡한 상황도 마주한다. 이명현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독서가 최적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정보 습득의 목적도 있지만,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어요. 사고력을 기르는 거예요. 많은 분야 중에서도 왜 하필 과학책일까요? 중세에는 신학, 천문, 지리, 음악이 핵심 교양이었죠. 그걸 알아야 사람들과 호흡하고, 시대를 풍성하게 누릴 권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과학이 핵심 교양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요. 심리학이나 행동과학 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과학으로 이해한 다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현대 인문학이에요. 인문학과 과학은 뗄 수 없는 관계죠. 핵심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익혀 우리 함께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의 팝 그룹 버글스는 1979년 자신의 노래로 라디오의 종말을 예고했다. 그 노랫말처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니어의 일상에 스며 있던 라디오는 설 자리를 잃어갔고,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래가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영상이 음성을 장악하고 있지만, 최근 각종 오디오 서비스가 떠오르며 생태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화제의 ‘클하’…듣는 SNS 열풍
올해 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콘텐츠의 부활 가능성을 시사한 대표적인 사례다. 회원가입만 하면 이용 가능한 기존 SNS와 달리 지인의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폐쇄성이 비판적 여론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희소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눈길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클럽하우스의 강점은 실시간, 쌍방향 음성 교류다.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목소리로만 소통이 이뤄진다. 앱에 접속해 방에 입장하면 라디오를 켠 듯 낯선 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라디오와 다른 점은 진행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방의 성격도 다양하다. 잡담이나 성대모사를 하는 재미 위주의 방부터 비슷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커리어 이야기를 나누는 곳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거물급 인사들의 연이은 가입으로 유명인과도 전화를 하듯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앱의 근본적인 열풍 원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이 연사로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 이용자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소통 방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클럽하우스는 이후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관심이 크게 줄었지만,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유사한 음성 서비스 출시 계획을 발표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TIP] 알아두면 쏠쏠한 클럽하우스 용어
① 초대장 클럽하우스의 가입 경로. 사전에 앱을 설치한 뒤 문자로 받은 초대 링크를 누르면 가입된다. 최초 가입 시 3장의 초대장이 제공되고, 활동량에 따라 개수가 늘어난다.
② 모더레이터 방을 만든 진행자로, 발언자를 정할 수 있다. 발언하고자 하는 이는 화면 우측 하단 손바닥 아이콘을 눌러 모더레이터에게 의사 표시를 하면 된다.
③ 박수 음소거 기능을 껐다 켰다 반복하는 것. 발언자의 말에 공감할 때 주로 쓰인다. 공식 기능은 아니지만, 유저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종의 리액션 문화다.
책·전시·드라마까지 목소리로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또 다른 분야는 오디오북 시장이다. 오디오북은 인공지능(AI), 성우 등의 음성으로 책을 낭독하는 서비스로, 이미 미국에서는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할 만큼 대중화돼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관련 플랫폼이 눈에 띄게 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지난해 동기 대비 180%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밀리의 서재’는 올해 2월 누적 회원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쏟아지는 영상의 홍수 속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강점은 ‘멀티태스킹’이다. 영상은 그 특성상 화면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반면, 오디오 콘텐츠는 운전·운동 등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다. 또 시니어의 경우 노안으로 인한 불편도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윌라는 회원 중 28%가 50대 이상으로, 중장년층의 이용이 활발하다. 윌라 관계자는 “나빠지는 시력으로 독서와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중장년층 분들이 많은데, 오디오북은 이런 문제를 보완해 다른 디지털 콘텐츠보다 호응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시 도슨트, 드라마 등도 오디오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또 자신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녹음하거나 라디오 채널을 개설하는 등 참여형 콘텐츠도 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19년 기준 220억 달러에 달했던 오디오 시장이 2030년 753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상의 시대에 오디오 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한 시점이다.
[TIP] 떠오르는 오디오북 플랫폼
① 윌라 오디오북 전권을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게 들려준다. 다만 텍스트를 볼 수 없어 오직 두 귀로만 즐겨야 한다. 비즈니스·패션·과학 등 분야별 매거진과 제휴를 맺어 오디오 매거진도 제작하고 있다.
② 밀리의 서재 10만 권의 전자책을 보유해 텍스트와 오디오를 함께 제공한다. 일부 콘텐츠는 배우 이병헌, 조정석, 한지민 등 유명인의 목소리로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③ 오디오클립 2만여 권의 오디오북과 4600여 개의 다양한 팟캐스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재혼황후’, ‘구르미 그린 달빛’ 등 자사의 유명 웹소설·웹툰을 음성으로 구현한 오디오 드라마로 차별을 꾀하고 있다. 대형 미술 전시의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최근 CNN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이 추리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더불어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소설을 발표한 이력이 주목받으며, 두 정치 거물이 ‘부부 소설가’로 거듭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되었다.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초강대국의 수장으로 세계를 호령한 그들의 인생 2막을 소개한다.
소설가 클린턴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패터슨과 공저한 소설을 출간했다. 제목은 ‘대통령이 사라졌다’. 세계 정계를 배경으로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미국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경험담을 녹여내 인기를 끌었다. 2018년 출간되어 300만 부 이상 팔렸다. 클린턴은 패터슨과 함께 두 번째 합작 소설 ‘대통령의 딸’도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이자 전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도 소설가로 등단한다. 힐러리는 추리소설 작가 루이즈 페니와 함께 첫 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테러의 나라)를 공동 집필 중이다. 장르는 정치 스릴러로, 재임 시절 경험담 등 자전적 요소가 다수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화가 부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전업 화가로 변신했다. 처음엔 고양이나 강아지, 정물화를 그리다 초상화에 빠져들었다. 상이용사, 이민자,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2014년 전시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보였다. 2019년 방한 당시에는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유족에게 선물했다.
부시는 “평생 미술관을 몰랐지만, 그림을 배운 이후 이제는 미술관에 서너 시간씩 머물며 화가의 붓 터치나 색감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안에 렘브란트가 갇혀 있다”는 농담도 종종 한다고 전해졌다.
팟캐스트 방송인 오바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음악 스트리밍ㆍ미디어 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의 팟캐스트 출연자로 나섰다.
오바마는 록 음악의 아이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출연했다. 스프링스틴은 오바마와 인연이 깊다. 오바마의 오랜 지지자로, 2008년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도전할 때부터 지지 공연을 하는 등 조력자 역할을 했다.
록의 대부와 전직 대통령은 결혼생활, 아빠의 삶, 인종 문제 등을 논하며 서로의 분야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바마의 이런 시도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차별화되는 행보다. 오바마는 회고록을 출간하고, ‘오바마 재단’을 설립해 젊은 리더 양성에도 힘썼다. 이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유사한 활동이나, 팟캐스트 같은 뉴미디어와의 협업은 다른 전임자와 차별화된 도전이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건배사를 외친다. 함께 외치며 안면을 익히고, 친목을 다지고, 우의를 키운다. 요즘은 연말연시도 아닌 데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행사와 회식이 줄어 건배사 외칠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끊임없이 새것은 나온다. 만들 건 만들어야 되나보다.
얼마 전까지 “나라도”를 선창하면 “잘하자”로 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라꼴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건배사일 것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정경심’이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석방된 이후에 나온 거 같은데, 말이 재미있다. “정, 정치 이야기(정경심 이야기?) 하지 말고, 경, 경제문제 따지지 말고, 심, 심각한 이야기 하지 말고” 이런 뜻이다. “정경심!” 하고 외치면 “아멘!”으로 받는다. “아, 멘트 좋다!” 그 말이다. “멘트 좋다!”는 “멘트 좋~고!”일 수도 있고, “멘트 쥑이네”일 수도 있고, “멘트 끝내준다”일 수도 있지.
모임에서건 카톡방에서건 정치나 종교 이야기 꺼내면 골 아파진다. 최근엔 ‘4·15 부정선거’ 주장을 퍼뜨리거나 윤미향 사건을 계기로 친일과 토착왜구를 시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서로 피곤하고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딴 이야기 하지 말자고 나온 게 ‘정경심’이다. 정말 필요한 건배사 아닌가. 애들 울거나 떼쓸 때 “뚝!” 하고 말리는 것 같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건배사는 원래 중·노년의 몫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거 말고도 할 일과 놀 거리가 많은데 굳이 건배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시니어들이 즐기는 건배사는 나이야 가라, 백두산(백 살까지 두 다리로 산에 가자),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 이기자(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 이런 것들이다. 늙기 싫고 병들어 아프기 싫은 마음이 담긴 건데,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진도가 늦는 걸 반성하라.
시니어들이 모이면 뒤풀이와 건배사까지 해야 모임이 끝난다. 코로나 이전 상황이겠지만 어떤 사람이 지하철 풍경을 써놓은 인터넷 글이 재미있다. “산악동호회 한 열댓 명 탔는데, 동호회 회장이 산만 타고 뒤풀이 빠짐. 어떤 아줌마가 회장에게 ‘위하여 해야지’라며 스피커폰으로 전화기 켜놓고 ‘위하여 좀 혀~’ 하자 그 사람이 ‘나 지금 지하철이라 힘들어’ 그랬더니 열댓 명이 몽땅 ‘지하철이라 힘들어~!’ 하고 소리침. ㅋㅋㅋ”
시니어들이 애용하는 건배사엔 ‘노발대발’도 있다. “노인이 발기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말인데, “노발!” 하고 외치면 “대발!”로 받는다. 노인은 발광하거나 발작하거나 발발거리며 (남의) 발목이나 걸지 말고 발기나 잘되면 제일 좋겠지. “노인이 발전해야…”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역시 발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에 이 건배사가 등장했다. 봉하마을 추도식이 끝난 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여권 인사들과 오찬을 할 때 “노발대발”을 외쳤다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그 노발대발이 아니라 “노무현 재단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뜻이었다. 본인이 주도한 건지 참석자들과 함께 외친 것뿐인데 그렇게 보도된 건지는 모르겠다. 노발대발 건배사는 같은 날 다른 지역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식에서도 나왔다. 여기서는 ‘노’가 ‘노무현 재단’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이었다고 한다.
노발대발은 노동자단체도 많이 쓴다. “노동자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또는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 이런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24일 노동계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만찬행사에서도 이 건배사가 나왔다. ‘노발대발’은 한국노총이 제작하는 노동 전문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이기도 하다. ‘노동자 편파방송’이라는 슬로건 아래, ‘갑에 치이고 삶에 지친 2천만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노발대발로 다른 말은 없을까? 인터넷 뒤져보니 이렇게 변형해서 외친 사람들도 있긴 있더라. “노가리만 풀지 말고/발바닥 불 나게 일해(뛰어)/대한민국/발전시키자”, “노력하고 노력하라/ 발바닥도 건강하게/ 대단한 성과와/ 발전을 위하여.” 그러나 좀 억지스럽고 어색한 건 사실이다.
노발대발은 원래 성이 나서 화를 내고 또 크게 낸다는 반복 표현이다. 다산 정약용의 ‘여름에 술을 대하다’[夏日對酒]라는 시에는 “자식 놈이 그제야 노발대발하면서”[兒乃勃發怒]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발발노(勃發怒)가 곧 노발대발이다. 활발(活潑)보다 활발발(活潑潑)이 더 생동하는 것처럼 노발대발보다 더 생생한 표현 같다. ‘勃’은 노할 발, 발끈할 발, 일어날 발 자다.
노발대발을 바꾸어 대발노발이라고 하면 어찌 될까? 대한민국이 발전해야 노(노무현 재단이든 노동자든 노숙자든 노래방이든 노인이든)가 발전한다는 뜻이 되겠지. 케네디가 취임연설에서 그랬잖아?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그가 처음 창안해낸 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길이 기억되는 역사적 명연설이다. 바로 그런 것.
하지만 즐겁자고 외치는 건배사를 가지고 이것저것 따질 거 있나? 코미디하자는데 왜 다큐를 찍느냐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끝~!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비몽사몽간에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부터 켜지는 않는가? 하지만 몸이 늘어지면서 오히려 더 피로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젠 TV 시청 대신 다른 아침 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른 아침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그저 흘려보내고만 있다면, 조용히 눈을 감고 아침을 여는 기분 좋은 음악과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사운드 힐링, 고요함 속에서 눈뜨기
현대인들은 각종 소음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에 따른 강렬하고 화려한 자극들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이럴 때 잠시라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알파파가 증가돼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집중력이 강화된다. 또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돼 우울증, 식욕 부진 등을 방지할 수 있다.
자연의 소리가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영국 브라이튼앤서섹스 의과대학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 후 뇌의 변화와 과제 수행 능력을 관찰한 결과, 인공적인 소리보다 자연의 소리를 들었을 때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변화를 보인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긍정적 효과가 높았는데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단 몇 분 들었는데도 몸에 변화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감소시켜준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고요한 아침, 자연의 소리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겨보고, 차분히 하루를 계획해보자. 이렇게 아침 시간을 활용한다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청각 명상은 청력이 약해지는 것을 늦춰주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더 효과적이다. 편한 자세로 앉아 범종이나 시계 등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불필요한 생각을 멈추는 게 청각 명상법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는 유튜브(YouTube)에서 ‘자연 소리’, ‘ASMR’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오디오클립’도 오디오북, 팟캐스트, 자연 ASMR 등 다양한 소리 콘텐츠를 제공한다. 앱을 설치하면 더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하는 아침, 이제는 좋은 소리와 함께 깨어나보자.
아침이 기다려지는 음악 서비스도 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새로운 음악과 이야기를 배달해주는 ‘오디티 스테이션’. 음악 편지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대중가요와 팝송부터 밴드 음악, 클래식, 최신 대중가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한다. 음악 편지를 받고 싶다면 ‘오디티 스테이션’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이메일만 작성하면 된다.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음악 편지도 보고 노래도 들을 수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추천 채널
월간 소리 풍경
우리 고유의 소리를 찾아 전국 각지를 여행하는 사운드 매거진이다. 소리와 함께 직접 촬영한 사진과 글을 통해 보고 듣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강릉 오죽헌의 대나무 숲 바람소리, 봄나물 뜯는 소리, 시원한 계곡물 소리 등 듣는 것만으로도 이른 아침 숲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현재 구독자가 8000명에 달하며, 매주 월요일 그달의 주제에 맞는 자연의 소리, 우리 고유의 소리를 들려준다.
[뮤직테라피] 소리에 음악을 입히다
스튜디오 톤즈(STUDIO TONES)가 운영하는 채널로 말 그대로 소리에 음악을 입힌 색다른 음악을 연재한다. 세수하는 소리, 밥 짓는 소리, 비·바람·파도 소리 등 일상과 자연의 소리에 멜로디를 입혀 매주 목요일에 한 곡씩 연재한다. 편안하고 감성적인 선율에 매료되어 6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구독 중이다. 자연(1, 2편), 일상(1, 2편), 아이, 반려동물, 비, 시간 등 총 8개 시리즈로 나뉜 100여 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듣고 싶은 소리가 있는가 하면 정말 피하고 싶은 소리도 있다. 바로 알람 소리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리라 매번 다짐하지만, 알람이 울릴 때면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곤 한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게 유난히 힘든 사람들을 위해 색다른 알람 앱을 소개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스마트 알람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 알람 앱 ‘좋은 아침입니다’는 알람 기능은 물론 수면 패턴까지 분석해준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매트리스의 진동을 감지해 깨어 있는 시간과 선잠, 깊은 잠 등을 기록한다. 자고 일어나면 수면 리포트로 잘 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수면 목표도 설정할 수 있고, 축적된 정보는 한 주 단위로 통계가 나온다. ‘알람 범위’ 설정 기능도 있어 최적의 시간에 기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상 시간을 오전 6시에 맞춘 후 알람 범위를 10분으로 설정하면 5시 50분에서 6시 사이에 알람이 울린다. 숙면에 도움을 주는 모닥불 타는 소리 등도 들려준다.
잘 잤니?
매일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 알람
매일 같은 알람 소리가 싫증나거나, 이미 익숙해져버린 알람 음악 때문에 기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앱이 있다. 바로 알람 앱 ‘잘잤니?’이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동그란 판을 LP판처럼 돌려서 알람이 울릴 시간과 요일을 설정하면 매일 다른 알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지난 알람 음악은 화면을 왼쪽으로 넘겨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다시 들을 수도 있다. 잠에서 깨며 다양한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오전 9시,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지하 1층 팬지배움방.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시니어 중에서 유독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한 여인, 바로 김정숙 씨다.
노트 대신 이면지를 엮어 만든 연습장에 꼼꼼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는다. 선생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도 척척 하며 수업을 즐기는 모습. 대학생 손녀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이지만, 처음엔 ‘ABC’부터 시작했단다. 60년 넘게 영어를 몰랐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영어를 알고 난 뒤 세상이 더 즐거워졌다는 김 씨다.
“5~6년 전에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었어요. 낮에는 간호 도우미가 와서 봐주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그 시간이 참 무료하더라고요. 평생교육 시대라고 하는데, 나도 뭔가를 배워야겠다 싶었죠. 학창 시절에는 아버지가 위암을 앓으셔서 철없이 공부 욕심을 낼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못 배워 아쉬웠던 마음도 채울 겸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처음 도전했을 때, 젊은 강사가 가르치는 수업을 듣고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 시니어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가 아니었기 때문. 다행히 그 후 현재의 선생님(박미령 강사)을 만났고, 한 걸음 한 걸음 영어를 배워온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수업시간 외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선생님에게 질문하는데, 늘 친절히 대답해주는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영어를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 간단한 것도 자꾸 잊어버리게 돼요. 그때마다 선생님이 괜찮다며 이해해주시고, 반복해서 가르쳐주셔서 고마웠죠. 요즘에는 길거리를 다녀도 곳곳에 영어가 널려 있잖아요. 가게 이름, 음식 메뉴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씩 읽을 수 있고 그 뜻을 알게 되니 일상이 더 즐거워졌어요. 완벽히는 몰라도 딸이랑 같이 자막 없는 미국 드라마도 볼 수 있고요. 아직 해외에 나가 실력 발휘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가서 멋지게 영어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요.”
지금보다 더 실력이 늘면 외국인 친구에게 편지도 써보고, 자신처럼 영어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싶다고 한다. 김 씨에게 언제쯤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겠느냐 묻자 손사래를 치며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나에게 마스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죠.(웃음) 어디까지나 ‘앎’의 과정 아닐까요? 내 체력이 뒷받침되는 한 무한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 끝은 없지만, 하나라도 했으니 여기까지 왔잖아요. 저도 육십 넘어 시작했어요. 너무 늦었다고 도전을 망설이지 마세요. I can do it, You can do it!”
Q&A로 보는 '시니어 외국어 배우기'
도움말 박미령 등촌ㆍ가양종합사회복지관 시니어 영어회화 강사(본지 동년기자 3기)
Q. 시니어 영어 수업에 찾아오는 분들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A. 대개 해외여행 가서 의사소통하기 위해 배우려 합니다.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한을 풀려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아예 처음 배우는 분들만 있는 건 아녜요. 언어는 습관인데, 한때 영어를 열심히 배웠어도 그동안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영어 세포를 되살리시곤 하죠.
Q. 수업은 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문법보다는 회화 위주이기 때문에, 먼저 입에서 익숙해지게끔 반복해서 말하도록 하고 있어요. ‘thank you’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thank you very much’ 이렇게 부사나 형용사 등을 하나씩 더해가죠. 나이 드신 분들은 한국식 영어 발음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잘못된 발음도 교정해드리고요. 영어 간판이나 뉴스나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일상 영어도 알려드리면 참 좋아하십니다.
Q. 일반 학생들과 시니어들을 가르칠 때 차이점이 있다면요?
젊은 사람들은 살짝 자극을 주면 더 하려고 하지만, 시니어들은 오히려 그런 자극에 마음을 다칠 수 있어요. 열심히 배우려고 왔다가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죠. 그래서 최대한 편안하게 배울 수 있도록 해드리는 편이에요. 가끔 지각하거나 숙제를 못했다고 미안스러워서 수업시간에 안 오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결석하셔도 괜찮다. 지각하면서도 오시는 건 더 훌륭한 거다”라고 말씀드리고, 숙제도 부담되니 최대한 적게 드리려고 해요.
Q. 늦깎이 학생들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나요?
젊은이들처럼 ‘공부가 하기 싫어서’ 포기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다만, 연세가 있는 분들은 갑자기 편찮으시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수업을 중단하시죠. 또, 자꾸 강의실 문만 나서면 까먹는다고 걱정하시는데 “제가 반복해서 가르쳐 드릴 거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때는 꼭 하실 수 있다”라고 응원해드리곤 해요. 젊은 사람도 영어는 계속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하루 하나씩이라도 꾸준히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는 게 좋습니다.
Q.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공부 방법은 무엇인가요?
10분씩만 공부하시라 권하고 싶어요. 공부하다가 재미있어서 더 하고 싶어도 절대로 더 하시지 말고, 10분 하시고 나면 책을 덮으세요. 대신 매일 하셔야 해요. 일주일에 1시간 몰아서 하는 것보다, 매일 10분씩 하는 게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드라마들 많이 보시잖아요. 잠깐 광고하는 틈에 10분 공부하셔요. 좀 더 하고 싶으시면 EBS 영어 방송을 보는 것도 추천해요. 유아부터 초등, 중등, 성인 등 단계별 프로그램이 잘 돼 있어요. 스마트폰에 익숙한 분이라면 팟캐스트 무료 영어 강의도 보시면 좋아요. 그중에서는 ‘일빵빵 입에 달고 사는 기초영어’를 권합니다. 영어 초급 단계의 분들에게 도움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
음악 듣기 딱 좋은 계절이다. 떨어지는 낙엽과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은 감수성을 자극한다.
괜스레 천천히 걷게 되고,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한참 주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익숙한 한 곡조를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친숙한 노랫가락은 애쓰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것 같은데, 정작 노래 한 곡 듣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요즘 음악 듣는 법은 복잡하다. 음악을 파일로 휴대폰에 넣으면 들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데, 이젠 그 방법도 아니란다.
그 흔했던 레코드점은 2015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LP가 테이프가 되고, CD에서 MP3로 듣는 미디어가 변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만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녹음하거나 재생하는 기술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당황스럽다. 언제부터인가 레코드점은 귀한 장소가 되더니, 서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애써 그곳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어쩐 일인지 신곡 CD 찾기가 쉽지 않다. 가수들이 이제 온라인에서 음원 판매에만 힘쓸 뿐 CD와 같은 미디어의 대량 제작은 꺼리기 때문이다. 지금 CD는 소수 열성 팬들의 차지다.
50대 동안(童顔) 가수로 불리는 이승환씨는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이제 음악은 소유하는 것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변모했다”고 정의 내렸다. 한 장 한 장 앨범을 사 모으고, 앨범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던 것은 안타깝게도 이젠 옛날 추억이 되어 버렸다는 선언이다. 미래 기술에 매달리는 기술자도, 판매에 목맨 장사치의 이야기가 아닌, 한때 LP 레코드와 CD로 수익을 얻던 현직 가수의 이런 이야기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요즘 음악 시장 ‘소비’의 축은 스트리밍이라는 기술이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보는 유사 기술은 ‘TV 다시보기’ 기술이다. 이는 마치 커다란 도서관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TV나 스마트폰으로 꺼내보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LP나 CD와 같은 별도의 미디어를 소유할 필요 없이, 돈을 지불한 회사에서 통신망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재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전용 앱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PC를 오디오와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
소유에서 소비로
중년들은 이런 음악의 ‘무소유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시대적 변화에 대해 前 편집장이자,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 중인 오승영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음악을 파일로 재생하는 방식은 관련업계에 종사하거나 스스로 관심을 갖고 다루어 온 경우가 아니라면 많이 낯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음악재생산업의 큰 축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관심을 갖고 크고 작은 재생 기기와 시스템을 접하려는 활동은 중요합니다. 현상 자체를 무시하면 스스로가 주류에서 멀어진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LP가 그랬듯이 CD재생 시스템도 주류의 자리를 넘겨줄 뿐, 별도의 노선을 통해 생존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병행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인켈과 태광, 삼성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다 이제는 오디오 팟캐스트를 운영 중인 윤종민 소장은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시니어들에게 음악을 듣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제품들의 인터페이스, 즉 조작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젊은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제조사들이 먼저 이러한 장벽을 제거한다면, 보다 쉽게 시니어들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하지만 윤 소장도 시니어들의 변화와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적응을 촉구한다.
“평생 갖고 있는 음반만 고집하겠다면 기존 시스템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미디어로의 전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갖고 있는 음반을 디지털화한다면 좀 더 편안한 음악감상과 소유 두 가지 모두를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도서관’을 나만의 도서관으로 만들어 집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이야기다. 요즘 유행하는 NAS(개인용 파일서버)가 이런 식이다. 일반인이 NAS를 구축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일단 구축해 놓으면 인터넷이 연결된 곳 어디서든 꺼내 들을 수 있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디지털로의 ‘복각’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영구적인 보존이다.
가 실시한 오디오점 만족도 조사에서 수년간 1위를 지켜냈던 금강전자 고태환 대표는 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잘 보존된 앨범 한 장은 미술품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화재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음악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는 중요합니다. 다만 진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변환되는 소리를 오롯이 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가 필요합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렇다면 앞으로의 음악감상은 어떤 모습일까? 오승영 평론가는 앞으로의 음악감상에 대해 이런 예상을 밝힌다.
“음악감상이라는 고유의 취미성은 대중화와 고급화가 동시에 진행될 거라 봅니다. 소프트웨어와 그 서비스 시스템, 재생 하드웨어 등이 결합된 음악 재생품질의 향상은 음악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기기들과 폭넓은 사용환경에서 청취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나 지하철에서도 고음질을 손실 없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네트워크와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강화해야 하겠지만, 오디오 마니아에 대해 스노비즘(속물근성)을 들이대던 대중적 시선도 스트리밍의 음질적 차이에 대한 자각을 통해 경계심이 완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원 전용 재생기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거실의 오디오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주자는 아스텔앤컨이다. 아스텔앤컨은 한때 MP3로 명성을 높였던 아이리버의 고급제품 라인이다. 이들은 고음질 음원재생기기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얻은 상태로, 최근에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하이파이(고음질 오디오) 오디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아이리버 제품기획담당 안지현 과장은 음악감상의 미래를 이렇게 예상한다.
“네트워크 기반의 음악감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향후에는 이보다 더 발전해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IOT(사물인터넷)와 연계되어 지금보다 더 편리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음악 패턴을 특정 알고리즘으로 파악해서 그날의 날씨 등과 연계한 음악을 조명이 켜지면서 들려주는 방법 등 실생활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다시 음악감상실로
그래도 음악듣기가 어렵다면 기존의 방식을 따르면 된다.
물론 집에 뱅앤올룹슨이나 매킨토시와 같은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그대로 감상하면 되지만, 여의치 않다면 음악감상실이 대안이다. 음악감상실은 최근 들어 되레 늘어나는 추세다. 음악감상실은 양평이나 파주, 성북동 등 중년들이 자주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데, 오디오 마니아들이 본격적으로 전업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리버도 이태원에 그룹 청취실과 루프탑 라운지 등을 갖춘 4층 규모의 음악감상 공간 스트라디움을 최근 오픈했는데, 유명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의 해설을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민 DJ로 사랑받았던 황인용씨가 개설한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는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유명하다.
“젊은 분들도 오시긴 하지만 아무래도 중년층이 많이 찾는 편입니다. 좋은 음질로 클래식을 감상하고자 하는 분들이 찾아 주십니다” 라고 관계자는 이야기한다. 역시 중년은 음악감상실에 익숙한 세대인 것이다.
요즘의 대중가요는 4분을 넘기는 게 거의 없다.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세대에게는 4분도 길다며 3분 10초 내외로 상품을 내놓는다. 작품이 아니다. 그러고는 음원의 순위를 고가에 거래하는 일들이 폭로되기도 한다.
커다란 스피커 앞에 자세를 고쳐 앉고, 음반 속지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던 세대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지금의 기술적 진보가, 아버지 사랑방의 독수리표 전축보다 나은 소리를 들려준다는 보장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음악듣기는 달라졌고, 그 변화는 진보에 대한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세상에서 더 나아진 음악감상을, 변화된 환경을 조금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LP 레코드를 디지털로 복각하는 방법
LP 레코드를 복각하는 것은 용도에 따라 그 방법이 다양하다. 전문적인 음질을 보장받고자 한다면 큰 비용의 지출을 각오해야 하지만, 기록을 위해 남기는 용도라면 낮은 가격으로도 가능하다.
1. 디지털 변환장치를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하는 방법
LP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ADC를 구매해서, 기존 오디오의 LP나 프리엠프에 연결하는 방법이다. ADC는 Analog-Digital Convert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주는 장치다. 고가의 턴테이블과 고성능의 ADC가 만나면 CD에 버금가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며, 대부분의 경우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2. 복각 전문 업체에 맡기는 방법
LP 복각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여러 업체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적인 기념 앨범이나 복각하고자 하는 앨범이 몇 장 되지 않을 때 추천한다. 시중에 4~5개 업체가 활동 중이며, 앨범 한 장 복각 가격은 5만원 내외.
3. USB 턴테이블을 구매해 활용하는 방법
직접 USB를 꼽아 MP3와 같은 컴퓨터용 파일을 만들어 주는 장치들이 시중에 많이 등장했다. 다만 대부분의 장비들이 전문적인 오디오 장비가 아니라, 아이디어 상품 수준이어서 음질이나 만듦새가 조악한 경우가 많다. 저가의 바늘(카트리지)은 LP 레코드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대신 기존 오디오와의 연결 없이 자체적으로 복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4. PC 사운드카드를 사용하는 방법
PC의 사운드카드를 활용한 방식. 사운드카드의 입력단자에 LP의 신호를 입력해 PC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MP3 파일 등을 제작할 수 있다. 수년 전 디지털 오디오의 저렴한 대안으로 선호되었으나, 최근에는 효용이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국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현황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은 통신사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각 통신사의 멤버십 서비스는 데이터 요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 이밖에도 애플과 삼성이 자사 기기에 갖춘 어플을 통해 음악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국내 포털에서 애플 뮤직으로 검색하면 등장하는 사이트는 아이폰 제조사 애플과는 무관하다.
1. 멜론 www.melon.com, SK텔레콤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2. 벅스 www.bugs.co.kr, SK텔레콤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3. 지니 www.genie.co.kr, KT올레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4. 엠넷 www.mnet.com, LGU+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5. 네이버뮤직 music.naver.com, PC 사용자에게 유리.
6. 그루버스 www.soribada.com, 고음질 MQS 스트리밍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