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X세대, MZ세대 등 직장 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요즘, 세대 갈등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기업 문화를 흩트리고 업무 성과를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불러오곤 한다. 기업에서는 세대 간 화합과 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최근 각광받는 솔루션 중 하나가 ‘리버스 멘토링’이다. 단순히 나이와 직급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세대 간 고정관념이나 생활방식을 뒤집어보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금천구청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배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기존의 ‘멘토링’과 반대 개념인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역멘토링) 또한 멘토(시니어)와 멘티(주니어)의 역할을 바꿔봄으로써 세대 간 학습과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령화 흐름에 따라 리버스 멘토링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한 논문(‘기업 내 세대 교류의 가능성: 국내외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및 성공요소 사례연구’, 2021)에서는 “한국 사회가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리버스 멘토링이 노동 현장에서 고령 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단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측면뿐 아니라 일자리 다양성, 삶에 대한 가치관, 글로벌 감각 등 신세대의 감각과 관점을 접하고 배우는 측면까지 포괄한다. 이를 통해 기업 내 임직원과 각 세대가 서로 분리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적극적으로 통합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리버스 멘토링의 장점과 효과를 내다봤다.
시니어도 원하는 리버스 멘토링
이러한 이점들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도 인지하고 리버스 멘토링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채용 포털 ‘인크루트’가 2021년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및 X세대 등 기성세대 직장인의 92.4%가 ‘회사에 리버스 멘토링 제도가 도입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28.9%), ‘세대 간 소통할 수단이 필요해서’(25.3%)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의 시초로 알려진 건 글로벌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젊은 엔지니어에게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면서, 500명 넘는 고위 간부들에게 젊은 사원과 1대1로 팀을 이뤄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한 사례다. 이러한 일화가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을 통해 전파되며 IBM, 구찌,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수 기업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상당수 기업이 이러한 효과에 착안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도해나가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 나이와 연공서열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목표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공공기관 및 기업 등에서 조직 내 ‘리버스 멘토링’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그 예로 서울에서는 금천구와 강서구, 지방에서는 안양시·포천시·제천시 등이 있고, 한국해양공사·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경기주택도시공사 및 삼성생명·KB라이프생명·유진그룹·동양 등이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했다. 특히 정부 조직인 인사혁신처와 법제처는 조직 내 기관장을 포함한 국·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MZ세대 공무원들이 소통하는 ‘역으로 조언하기’(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난해 최초로 기관 간 리버스 멘토링을 위한 ‘거꾸로 학교’를 시행했다. 이는 후배 공무원이 다른 기관 선배 공무원의 멘토가 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형식적으로는 상하관계를 역전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솔직한 생각을 기성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타 기관 선후배 간 역멘토링을 진행함으로써 더욱 허물없는 교류를 꾀한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 톡톡히
올해 초 금천구는 국장급 공무원(4급)과 과장급 공무원(5급) 등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대 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해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앞서 금천구는 당해 행정혁신 과제 중 하나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종이 없는 회의’를 도입했다. 이에 주요 회의 자료를 종이에서 전자 문서로 대체하면서 태블릿 PC를 도입했는데, 이러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간부 공무원을 위한 적응 교육 차원에서 리버스 멘토링을 활용하게 됐단다.
프로그램을 기획‧담당한 금천구 기획예산과 조성익 주무관은 “종이 없는 회의를 실현하려면 태블릿 PC 사용이 필수였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는 데 조직 구성원, 특히 간부 공무원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다”며 리버스 멘토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태블릿 PC 사용에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거리낌 없는 신규 직원들(7급 이하 직원 7명)이 모였다. 이들 리버스 멘토끼리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운영 방안을 마련한 후,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실행했다.
조 주무관은 “태블릿 PC 사용 능력은 간부 공무원 간에도 개인 편차가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디지털 기기의 사용 방법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종이 없는 회의라는 정책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멘토-멘티 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며 “간부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리버스 멘토링이 긍정적 수단이 됐다. 아울러 상명하복 관계라는 관료제의 분위기를 탈피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리버스 멘토링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천구 멘토·멘티의 후일담 “리버스 멘토링 직접 해보니”
“당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6개월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새내기 어린 공무원이 간부급 공무원을 가르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에, 멘토링 전 긴장을 꽤나 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뭐하러 이런 걸 하냐’라는 분위기이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멘티로 나온 국장님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교육에 응해주셨습니다. 알려드리는 것 외의 기능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면서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셨습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완전히 뒤바뀐 위치에서 국장님들의 질문에 답해드린 경험이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국장님들이 적극적으로 태블릿 PC를 활용하려는 의지도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경직된 공직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많이 보았습니다. 시니어 멘티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 적극적인 참여가 뒤따른다면 오랜 시간 굳어졌던 체계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정은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추진해야 하므로, 역할과 기능상 경직성을 띠게 됩니다. 더욱이 공직사회는 연공서열로 이루어진 큰 조직이라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곤 합니다. 하지만 민간의 변화에 따라 행정에도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직사회에도 사회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우리 구에서는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행정 혁신을 일상적으로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중 한 사례가 ‘리버스 멘토링’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선배’의 지식이라도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후배’가 아는 것이 없다고 외면하기엔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중 값진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령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조직 구성원은 누구에게든 배우고 공유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겠습니다.”
아주 옛날 혼인제도가 태동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혼인 관계 유지의 가치’와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남녀가 갖는 갈등은 여전했을 것이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해결 방법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유책주의’는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 사유가 명백한 경우 그 상대방에게만 재판상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파탄주의’는 부부 당사자의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혼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실, 즉 혼인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인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다.
결혼 생활의 책임, 해석 범위
‘가정의 평화와 남녀의 본질적 평등을 무시하고 축첩 행위를 하였을 뿐 아니라 내연녀에 대한 애정에만 사로잡혀 피청구인을 돌보지 않고 냉대한 결과 가정의 파탄을 초래한 청구인의 이혼청구는 이유 없다.’ 우리 대법원이 1965년 9월 21일 선고한 65므37 판결 사안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척한 최초의 선례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는 유책주의를 채택했고(엄밀히는 법을 유책주의로 해석했고), 이후 대법원 판례의 원칙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혼인 관계를 고의로 파기한 불법을 행한 사람에게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며, 그러한 사례를 용인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순결과 혼인 당사자의 정절을 기대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일본에는 이른바 ‘엎친 데 덮친 판결’로 알려진 1952년의 최고재판소 판결이 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부정행위를 저질러 그 여자가 임신했고, 이를 알게 된 처와 크게 다툰 끝에 집을 나와 그 여자와 동거하면서 처와 2년간 별거하던 중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최고재판소는 남편의 이혼청구를 불허하면서, ‘만일 이와 같은 청구가 인정된다면 처는 완전히 흔히 말하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법은 모름지기 이와 같이 부도덕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1987년 판례를 변경하여 적극적 파탄주의 요소를 도입,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되 신의칙을 적용하여 이를 적절히 제한하고 있다. 최고재판소는 부부의 별거가 양 당사자의 연령 및 동거 기간과 대비해 볼 때 상당히 장기간일 것, 부부 사이에 미성숙 자녀가 존재하지 않을 것,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에 의해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극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등 이혼청구를 용인하는 것이 현저히 사회정의에 반하는 특단의 사정이 존재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은 ‘혼인 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를 유일한 이혼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5년 이상 계속 별거한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독일 역시 이혼 원인은 오로지 ‘혼인 생활의 파탄’뿐이다. 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한 경우에는 혼인 생활의 파탄이 추정된다. 프랑스도 혼인 관계가 완전히 파탄된 경우 부부 일방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데, 2년 동안 별거했다면 혼인 관계가 파탄됐다고 본다. 미국은 2010년 10월 뉴욕주에서 무귀책이혼법이 발효됨으로써 모든 주가 무귀책이혼제도를 채택하게 되었다. 무귀책이혼제도란 일방이 상대방의 유책 행위를 증명할 필요 없이 혼인 생활의 파탄 또는 일정 기간의 별거 등을 이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결국 세계 주요 국가 대부분은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 제840조는 제1호 내지 제5호에서 재판상 이혼 원인이 되는 이혼 사유를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와 같이 개별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외에 제6호에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이혼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 민법도 문언상으로는 파탄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해석할 만한 조항이 있다.
한국 이혼제도의 현 상황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것인지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가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에 관한 결단을 제시할 만한 사건’이나 ‘사회적 이해 충돌과 갈등 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 등은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위의 유책 배우자 이혼청구 사건 사례를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하여 심리했다.
대법관 다수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아직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유책 배우자라 하더라도 상대방 배우자와 협의를 통해 이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도록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으로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이혼할 방도가 있다는 의미다. 둘째, 유책 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널리 인정하는 경우 유책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될 위험이 크다. 셋째, 파탄주의를 도입한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 넷째,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상 이혼청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여 파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부 공동생활이 파탄되어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때에는 혼인의 실체는 소멸했다고 보아야 하고, 외형적으로만 혼인이 유지된 부부로서 서로 대립 갈등하는 관계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자녀의 인격 형성과 정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부모 자녀 관계마저 파탄에 이르게 될 우려도 있다.
둘째, 다수 의견에 따르면 부부가 서로 승소하기 위해 상대방의 귀책 사유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부부관계는 더욱 적대적이 되고 갈등 해소, 이혼 후의 생활이나 자녀 양육과 복지 등에 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는 폐단이 있다.
셋째,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이혼도 가능하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혼 후 여성의 자립에 관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많이 개선되었으며, 재산분할청구권 및 면접교섭권 등 여성 배우자에 대한 보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넷째,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를 참작했음에도 혼인 관계의 파탄이 인정되는 경우에 다시 상대방 배우자의 주관적인 의사만을 가지고 형식에 불과한 혼인 관계를 해소하는 이혼청구가 불허되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앞으로의 방향은?
전원합의사건의 심리에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7명의 대법관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불허하는 입장(다수 의견)을, 6명의 대법관은 이를 허용하는 입장(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다수 의견에 따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불허하는 판결이 선고되었으나, 근소한 차이였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라도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종전보다 확장했다. 전부터 이미 허용되어온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 파탄 당시 현저했던 유책 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이다. 이와 같이 혼인 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유지했지만 자세히 보면 결이 사뭇 다르다. 다수 의견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취지이므로, 시대와 제도의 변화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은 상당히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간통죄만 하더라도 과거 구속까지 되는 범죄였다가 이제는 위헌으로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간통 고소를 위해 이혼소송을 제기해야만 했던 과거는 기억에서 희미하다. 이제 형사고소는 민사소송으로 대체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제 익숙해졌다.
시대 인식이나 사회적 평가는 변하기 마련이고, 이와 연동될 수밖에 없는 제도 역시 크든 작든 변화가 예정돼 있다.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기존 틀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부디 소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사단법인 올이 제1회 올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한다.
사단법인 올은 여성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올 라운드 테이블을 기획했다. 제1회 올라운드테이블은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교차성으로 더 많은 차별을 마주하는 이주여성인권 문제 중에서도 이주여성이 겪은 범죄 피해 문제에 집중했다.
올 라운드 테이블은 오는 3월 29일(금) 14:00~16:00 서울지방변호사회관(서울특별시 서초구 법원로1길 21) 5층 정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해당 행사에서는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가 ‘이주여성이 겪는 가정폭력 피해 현실과 지원 현장에서 본 법∙제도의 한계’, 권주희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센터장이 ‘상담 사례를 통해 접한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성희롱 범죄의 실태와 관련 법∙제도의 문제점’, 고지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변호사가 ‘이주여성 법률지원 사례의 특성 및 제언’으로 발표한다.
한편 사단법인 올은 젠더 및 인권과 관련된 법학연구 및 조사뿐만 아니라, 학술지, 연구서적 등의 발간, 젠더∙인권 분야의 공익 및 기획 소송의 발굴과 지원, 공공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 사업 등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법무법인 원이 2024 일·가정양립 법조문화상을 수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4년부터 법조계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화를 확산하고자 이에 기여한 법무법인을 발굴해 일·가정양립 법조문화상을 수여하고 있다. 법무법인 원은 남성 소속 변호사에게 12개월의 육아휴직 제도를 활용하도록 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법무법인 원은 △출산휴가(배우자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족돌봄휴가 등의 법정제도는 물론 △시차제 근무제 △근로시간 유연제도(자녀의 보육기관 등원을 위해 오전 10시 이전까지 출근할 수 있도록 함)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활용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왔다.
더불어 법무법인 원은 젠더 갈등과 성 평등 이슈와 관련한 교육, 심포지엄 등을 전개해왔다. 인사위원회와 인턴 프로그램 준비 위원회 등 사내 주요 위원회와 이사회를 꾸릴 때 성별 관련 없이 구성하고, 모든 변호사들의 의견을 동등하게 반영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김민후 법무법인(유한) 원 변호사(변호사시험 제5회)는 “육아가 생각 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고, 특히 임신과 출산을 거치는 여성 변호사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더 많은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기원 대표 변호사는 “아직 법조계에는 남성 육아 휴직이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와 ESG 경영에 따라 점차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법무법인 원은 앞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7일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경영진과 MZ세대 직원 간 직접적인 소통과 정서 공감을 위한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 ‘신구조화’를 운영했다. 이들은 MZ세대 신조어 및 놀이문화, MZ세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사용법, 챗 GPT 활용법 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세대 간 화합의 시간을 보냈다.
삼성생명의 경우 3명의 주니어 멘토와 1명의 임원 멘티가 한 팀을 이뤄 최신 트렌드를 경험하고 소통하는 ‘동감 프로젝트를’ 202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이는 리버스 멘토링의 일환으로, 경영진과 젊은 직원들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밖에도 한국해양진흥공사, 안양시, 성남교육지원청, KB라이프생명 등 수많은 지자체 기관 및 기업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을 운영 중이다.
멘토링(mentoring)이라 하면, 멘토(mentor)와 멘티(mentee)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때 경험과 연륜을 겸비한 연장자나 선배가 멘토가 되곤 한다. 이와 대조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역멘토링)의 경우 연소자나 후배 쪽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출간한 ‘트렌드 모니터 2023’에서도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리버스 멘토링’을 꼽았는데, 최근에는 세대 간 소통 및 조직원 융화를 위한 솔루션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트레드 모니터 2023’에 따르면 “역할이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이 가지는 특정한 지위나 범주, 그리고 그러한 범주 내 규정된 모든 행동거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를 ‘나이’에 맞게 규정하는 것이 그 어느 국가보다 강한 사회다”라며 “나이에 따른 역할이 있고, 이 역할에 맞는 욕망과 감정 같은 것들을 규범에 맞게 행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 세대에서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풀이된다.
이는 국내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젊은 멘토와 함께 일할 때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언급하며, 리버스 멘토링과 같은 관계 형성이 시니어의 역량 개발에도 효과적이라 설명했다. AARP가 시니어에게 제안하는 리버스 멘토링 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서로의 경험과 가치가 평등하고 중요함을 인식하라. 나이를 떠나 겸허한 자세로 다가갈 것. 젊은 멘토의 도움을 받기 전 자신의 역량을 파악 후, 배울 점과 목표를 설정한다. 가령 영상 플랫폼에 대해 알고 싶다거나, 프레젠테이션 애니메이션 활용 기법 등 구체적일수록 좋다.
△ 자존심 내세우지 않기. 멘토가 자신보다 어리다고 해서 배우는 상황을 자존심 상해하다 보면 스스로의 역량을 과대포장하거나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멘토링 효과를 떨어뜨리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자.
△ 멘토링 장소와 시간을 분명히 해두자. 멘토링 시간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면, 젊은 멘토의 역할이나 위치가 애매해질 수 있다. 서로 합의 하에 멘토링 기간, 시간, 장소 등에 대해 미리 정하고, 정해진 내용에 따라 멘토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가르치고 싶은 게 있다면 겸손하게, 상대가 원할 때만. 아무래도 연륜이 부족한 젊은 멘토를 대하다 보면 선배로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젊은 멘토도 배움을 얻고자 하는 분위기라면 겸손하게 제안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삼가는 게 좋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멘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제3의 장소라는 표현이 있다. 집(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이 아닌 마음 편한 어떤 곳을 뜻한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없이 푹 쉬고 싶은 장소다. 모두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 편하게 교류를 촉진하는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말은 집과 직장이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에 있으나 직장에 있으나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과 직장이 있어야 제3의 장소도 의미가 있다. 집과 직장에서 뭔가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시간 후에 비로소 쉬고 싶다는 의미도 된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에게는 사치스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비슷한 말로 ‘워라밸’이 있다. 일(Work)과 라이프(Life)의 균형(Balance)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해 어떤 CEO들은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균형 타령이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워라밸은 제3의 장소처럼 일과 삶에서 모두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CEO들은 과연 행복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편으로는 워라밸 역시 일과 삶이 다 잘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말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일은 나의 삶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선 긋는 의미가 포함된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말이기도 하다.
다시 제3의 장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말은 미국 사회학자 올덴버그(Oldenburg)가 1989년에 쓴 책 ‘The Great Good Place’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영국의 선술집(Pub)이나 프랑스의 카페처럼 마음 편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제3의 장소라고 표현했다. 제3의 장소는 중립적이고, 누구나 평등하고, 대화 중심이고, 찾기 편하고, 단골이 있으며, 본인이 눈에 띄지 않고, 즐길 마음으로 찾는 공간이자, 또 하나의 우리 집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라는 8개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가볍게 모여 교류하며 쉬고 즐길 수 있으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사회적 위치나 입장을 신경 쓰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더 확장하면 1971년에 창업한 스타벅스도 제3의 장소가 된다. 자기 방이 있는데 굳이 카페에 가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커피값으로 잠시 나의 공간(부동산)을 임시로 사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어떻게 분석하든 카페에서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한다. 그러나 올덴버그가 제시한 개념을 카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적용해보면, 대화나 교류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완벽한 제3의 장소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로컬의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를 로컬과 연결시켜 연구하는 이시야마 노부타카(石山恒貴) 교수는 올덴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의 8개 특징이 유연하게 사람이 지역과 관계 맺을 때 나타나는 특징과 같다고 말한다. 지역의 공간과 장소 가운데 비영리단체의 공간, 독서회, 커뮤니티 모임 장소, 학습회 등이 제3의 장소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대화와 교류를 더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목적 교류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즉 지역이 도시 생활의 대안도 될 수 있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간 지역에서 청년 창업이 많이 일어났을 때, 초기에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등을 많이 보았다. 지역에는 소비자도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간은 한꺼번에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에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졌으니 새롭고 예쁘고 좋다며 모두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주민들은 공간이 너무 예쁘고 환해서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되나’ 하는 이질감만 들어서 모두의 공간은 아닌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갤러리 같은 곳에서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망설임을 느끼는 것처럼,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이 의외로 삶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초기의 청년 창업 공간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제3의 장소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들만의 공간’인 상태였다.
어느덧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의 모습도 조금 더 본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3의 장소 만들기에 대한 수요도 더욱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에서는 수도권이나 인근 대도시에서 끊임없이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누구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혹은 U·J·I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장소를 확보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한달살기를 하든 워케이션을 하든 귀농・귀촌을 하든 우리가 원하는 제1의 장소는 일단 안정된 주거 공간, 즉 집이다. 그러나 여전히 집과 직장 외에도 어울려 지낼 수 있고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제3의 장소도 필요하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제3의 장소나 워라밸이 아니라 집, 직장, 제3의 장소 간의 ‘균형’이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에 대응한다며 전개하는 정부의 지역소멸대응기금이나 수많은 지원사업에서 그런 본질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음세대 재단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비영리스타트업 성장지원사업’을 통해 지난해부터 육성된 7개 팀을 소개하는 행사인 ‘스테이지-알파’가 17일 서울 동락가에서 진행됐다. 행사에는 CSR, ESG 활동 중인 기업과 사회공헌 단체 담당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사업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는 비영리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9년 시작해 지금까지 총 26개 팀을 육성했다.
사랑의 열매 이정윤 본부장은 “이 사업은 이미 활동 중인 기업이 대상이 아닌 최초 시작부터 싹을 틔우는 지원사업이란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자부심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는 양육자들의 육아우울감을 지원하고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한 ‘모모로’와 두 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제3문화 아동을 지원하는 ‘언브로큰 코리안’, 노인의 일과 학습, 연대를 끌어내기 위한 ‘유앤시니어 사회적협동조합’, 작은도서관을 잇고, 문화사업을 통해 생동감을 부여하는 ‘잇다 사회적협동조합’, 동네 청년의 느슨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채움’,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청소년을 육성해 지원하는 ‘청소년 직접행동’, 야외 놀이를 통해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이해, 존중을 유도하는 ‘플레이어스’가 참여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팀은 시니어로 구성된 유앤시니어 사회적협동조합. 신옥균, 권송자 두 공동대표는 직업상담과 양성평등, 폭력예방 등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강사 활동을 한 이력을 바탕으로 삼아 노년의 삶의 질 증진, 사회적 고립 극복 지역사회 발전 등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이들의 사업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은퇴 후 진로 탐색을 위한 시니어 커뮤니티 수립과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한 동네 거점 확보를 목표로 하는 황혼육아 커뮤니티 구성이다.
신옥균 대표는 “현재 100명 정도인 커뮤니티 회원을 더욱 확대해 500명 규모의 앙코르 인생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시니어 서로에게, 후배 시민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시니어 그룹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유니버설 디자인 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화장실·보행길을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다.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 때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인 구유리 홍익대학교 서비스 디자인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비스 디자인’이란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해 총체적인 과정과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을 말한다. 서비스 디자인의 주요 대상이 장애인·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라고 한다면,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될 수 있다.
구 교수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디자인 철학을 새롭게 깨우쳤다. 디자인이란 미적·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구 교수의 디자인 철학은 자연스럽게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연결됐다.
“저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학문이 아닌 철학으로 접근했어요. 그리고 그 철학에 접근하는 저의 스킬이 서비스 디자인이란 거죠. 제가 유니버설 디자인을 그냥 학문으로 접근했다면 형식적으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을 지키는 정답의 디자인, 전형적인 타입의 디자인을 했겠죠. 그런데 저는 사용자를 관찰하고 니즈에 맞게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제가 관심을 갖고 많이 만난 사용자가 유니버설 디자인에서 메이저 대상으로 바라보는 장애인과 노약자였던 거죠.”
유니버설 디자인을 말하다
구유리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하나 보여줬다. 담장 너머의 축구 경기를 보려고 하는데, 키가 작은 사람은 경기를 보기 힘든 상황.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담장을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더 나아가 아예 담을 없애고 펜스를 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구유리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형평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누군가는 노인에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노인이 겪는 불편함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다. 노인 입장에서 볼 때 형평성과 평등은 배려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니버설 디자인에 편견을 갖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손해 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심미적인 아름다움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구 교수는 “굉장히 좁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개념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길을 잘 못 찾는 사람도 있고, 정보 습득이 느린 사람도 있죠. 노인이 되면 그런 요소가 많아지고 눈에 두드러지는 거고요. 그래서 노인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다 보면 모두가 편리하고 포용성 넓은 디자인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고, 정의도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구유리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장애 시설뿐만 아니라 작은 변화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 교수가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 2020’에서 본상을 수상한 ‘스트레스프리 지하철을 위한 서비스 경험 디자인’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구유리 교수는 시민들이 겪는 지하철 스트레스를 조사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솔루션을 적용했다. 2·4·5호선이 모여 있어 복잡한 역사 내에 환승 구간 천장, 바닥, 벽면에 각 노선별 컬러로 화살표를 그렸다. 또한 혼잡 구간임을 알리는 스크린 도어 그림, 개찰구 근처의 ‘카드를 준비하라’는 메시지 등을 직관적으로 디자인해 시민들의 편의를 높였다. 실제로 디자인 적용 이후 시민들이 헤매는 시간이 65%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구유리 교수는 최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과 함께 두경부암 환자를 위한 도움 책을 만들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구 교수는 두경부암 환자들과 의사들을 직접 만나 통증, 수술 과정, 재활 과정까지 파악한 후 책을 만들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림을 활용하고 글을 줄였다. 또한 다양한 색으로 각 파트를 분리하고 집중도를 높였다.
“두경부암 환자는 노인이 많은데, 수술을 하면 말을 하기 힘들어지니까 의사소통이 더욱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의사와 환자가 의사소통이 필요한 부분을 시각화해서 만들었죠.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 중에서도 노인분들에게는 직관적인 이해, 정보의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적용했습니다. 이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마트 도시를 꿈꾸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비용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건물이나 시설을 만들려면 복잡한 계획 수립 과정을 거쳐야 하고, 공사 기간은 두 배로 길어진다. 구유리 교수는 “처음 도시계획을 할 때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면 비용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우리나라는 현재 무장애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유리 교수는 완성형 도시의 형태인 ‘스마트 시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 시티 시대가 열리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형의 유니버설 디자인이 중요해진다고 짚었다. 구 교수는 “디자이너에게는 어떤 서비스를 설계할 것이냐가 제2의 과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분들은 보통 이동성의 제약이 많죠. 그런데 단순히 턱이 없어진다고 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안전한 경로는 무엇인지, 그리고 만남의 장소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어야 하죠. 이렇게 무형의 서비스를 통해 유니버설 디자인에 접근하는 시도가 늘어날 거예요. 건축, 환경, 인프라, 서비스 등 모든 부분에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유리 교수는 지난해 국립재활원의 의뢰를 받아 미래 도시의 노인과 장애인의 삶을 설계한 바 있다. 구 교수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노인 4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 디자인했다. 많은 대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니즈를 반영했는데, 현재의 기술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스마트 글라스가 필요하다는 시나리오를 만들었죠. 스마트 글라스는 AR(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것인데, 길 안내도 해주고 위험한 상황도 감지해 알려주죠. 혼자서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도 알려주고요. 기술자분들이 보기에는 이미 기술이 나와 있으니 대단한 얘기가 아닐 거예요. 그런데 사용자는 뭐가 있는지, 나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니즈 파악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유리 교수는 디자이너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 그는 기술과 정책을 이어주는 동시에 그것들이 실현되고 상용화될 수 있도록 한다. 구 교수는 “완성도가 낮지 않고 설득이 가능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콘셉트만 존재한 채 정책화되지 않거나 공감받지 못하는 디자인은 사용자의 삶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서 “사회 서비스 정책과 사용자의 삶의 경험이 최대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정책적인 지원도 확산되고 있죠. 이 기회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단순히 무장애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의 니즈와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그 개념이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하나예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매우 포용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서울시 양육자 생활 실태 및 정책 수요 조사’(0~12세 자녀를 키우는 서울시민 2005명 대상)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84.7%가 돌봄 기관을 이용해도 추가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맞벌이 가구의 주요 돌봄 조력자(중복 응답)는 ‘조부모·기타 친족·이웃’(영유아기 56.9%, 초등기 41.7%)이 가장 많았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조부모’라는 의미다. 인생 2막을 손주 육아로 시작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각 가족, 그리고 조부모 사이에서 황혼육아는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돌봐요
성역할이 뚜렷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꾸리는 데 남녀 역할이 따로 없다.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전국 4490가구, 8358명 대상)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완화되고 있다.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에 동의하는 비율은 42.1%에서 29.9%로 떨어졌다.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에 대한 동의 비율은 17.4%로, 6년 전 2016년의 53.8%에 비해 큰 감소세다.
이러한 흐름은 조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 경기, 인천 거주 만 55세 이상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을 대상으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은 할아버지가 손주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전히 여성이 아이 돌봄 노동을 대부분 부담하고 있지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 스마트해진 조부모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돌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양육의 주체가 부모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발달 상태와 성향에 따른 맞춤형 육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부모 역시 관련 교육을 수강하거나 책, TV 등을 통해 ‘요즘 육아’를 공부하는 데 힘쓰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스마트폰 조작에 익숙해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라인을 통해 육아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추세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조사’에서도 유튜브나 SNS 등 온라인을 활용해 육아 정보를 얻는다는 조부모가 대부분(72.7%)이었다. 최근 인기 있는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TV 프로그램을 찾아본다는 이는 48.6%에 달했다. 잡지나 책 등 인쇄 매체를 이용한 정보 습득은 30.9%로 나타났다(복수 응답).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손주 돌봄은 부모와 조부모의 화합이 중요하다”며 “서로 양육관의 차이를 이해하고, 손주 육아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주의 ‘부모’가 아닌 ‘조부모’임을 잊지 않아야 하며 아이의 안전, 식사, 수면 등 최소한의 역할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손주 사랑도 통 크게!
현재 조부모가 된 베이비부머 세대는 구매력이 막강하다. 과거의 조부모 세대와 달리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스포츠 등 야외 활동을 즐긴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소비자 정책 동향에 따르면, 고령 소비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가구당 평균 387만 원으로 전체 소비자 월평균 소득의 약 66.5%에 이른다. 지출 역시 약 261만 원으로 평균 가구원 수를 감안할 때 전체 소비자의 82.4%에 이르는 수치다.
고령자 세대에 새로 편입한 조부모들은 스스로가 활동적인 소비 주체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특유의 강력한 구매력으로 손주에게 지출을 아끼지 않는 모양새다. 장난감 시장의 ‘큰손’ 역시 조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옥션이 2018년 장난감·교육 완구·인형 등 어린이날 대표 선물 품목에 대한 연령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50~60대 구매량이 3년 전보다 품목별로 최대 2배 이상 증가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4월 한 달 동안 장난감 전체 품목에 대한 50~60대 구매량 또한 2015년 대비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대 구매 신장률이 74%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41%로 뒤를 이었다.
사랑하는 마음 못 따라가는 체력
자녀를 돕기 위해 손주를 맡아주는 일이 늘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질환, 이른바 ‘손주병’을 호소하는 조부모도 증가했다. 이미 한 번 육아를 경험했기 때문에 손주를 돌보는 데 능숙할 수는 있지만, 자녀를 기르던 당시와는 달리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있을 터. 황혼기에 접어드는 조부모는 육아 과정에서 아이를 안고 눕히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며 손목 부위의 힘줄과 신경에 자극을 받아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손목 스트레칭과 보호대 착용 등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더불어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안고 있는 자세는 척추에 부담이 된다. 허리를 숙이는 동작만으로도 척추뼈 사이의 디스크(추간판)에 평소보다 2.5배에 달하는 압력이 전달된다. 여기에 10kg 이상 되는 아이를 업고 있다면 하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인혁 부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무릎을 깨워주고, 연골에 좋은 음식 및 영양제를 챙기면 더욱 좋다”며 “한방에서는 연골 보호를 위한 약재로 모과를 쓰는데, 이는 무릎 연골 보호 및 뼈 건강, 근육통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고 조언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어떻게 군대를 갑니까?”
노기에 찬 여학생의 질문에 창구 직원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그에게는 그저 운수 나쁜 날이었으리라. 회사의 신입사원 입사원서를 접수하는 날. 당연히 남자들만 지원받고 있는데, 다짜고짜 여자가 찾아오다니. 결국 이날의 항의는 무위로 끝났지만, 그녀는 그 불공정의 억울함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평생의 연료가 된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회장은 당시 기업들이 남자 지원자만 받기 위해 내건 조건은 ‘군필’이었다고 설명했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될 때까지 악습은 계속됐죠. 여성들이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채’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나마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조건이 붙은 서약서를 써야 가능한 일이었죠. 그런 시대였어요.”
무작정 선택한 공무원의 길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들은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않았다. 금융권이나 교직 정도가 선호되는 직업이었고,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80학번이었던 이 회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공무원의 길에 도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꼭 경제적 능력을 갖고 싶었어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남성에게 종속적이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직업은 반드시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기 어려웠죠. 제 전공이 도시행정학이다 보니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모두 행정고시 공부를 하는 분위기였어요. 동기가 함께 공부하자고 권해서 자연스레 저도 시작하게 됐죠. 1학년 때 행시에 합격한 3학년 선배를 우러러본 적이 있는데, 자연스레 롤모델로 삼은 것 같아요.”
그녀는 당시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털어놓으며 웃었다. 선배에게 물어보니 ‘기안’을 잘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와 “그 기안이란 게 뭐냐”고 되물었던 기억도 있다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미지의 세계였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덤벼든 것은 아니다. 선택의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시험에 떨어지면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상황 인식은 그녀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은 자신감이 넘쳤죠. 따르고 배울 롤모델도 많았고, 떨어지더라도 취직할 곳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절박했어요. 그래서 붙고 나서도 ‘공무원이 되었다’는 성취감보다는 ‘직업을 가졌구나’란 기쁨이 더 컸을 정도니까요.”
기업에 찾아가 부당함을 항의했던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여성으로는 네 번째다.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선구자라는 뜻은 반대로 해석하면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처음 출발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였어요. 그곳에서 10년을 일했죠. 당시엔 부처들 중에서도 굉장히 관료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었어요. 여성 사무관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의 능력을 알아주는 부처로 가자고 과감한 선택을 했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공무원 조직은 기본적으로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곳이에요.”
그녀가 선택한 곳은 정무장관 제2실.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새로 설치된 기관으로 사회 문화에 관한 업무들, 그중에서도 여성과 아동, 청소년, 노인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 건의,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이 선택은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성 정책이라는 큰 사회적 책무와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무장관실은 10년 후인 1998년 대한민국 여성특별위원회로 개편되었고, 3년 후인 2001년 여성부로 개편된다. 지금의 여성가족부 전신이다.
“제가 느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욕이 컸죠. 당시만 해도 정시 퇴근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재택근무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육아휴직이란 단어조차 없었죠. 산후휴가제도가 있었지만 60일에 불과했어요. 보육 시설이나 어린이집은 꿈도 못 꾸고요.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다른 사람의 조력 없이는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거죠. 엄마와 직업인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는 것이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니 직장이나 사회 혹은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러한 생각은 유연근무제나 직장 보육시설 지원 등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개선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히 어린이집의 양적·질적 확대에 대한 정책은 공직 생활의 뿌듯한 성과 중 하나다.
“현직에 있을 때 보육정책국장을 2년 6개월 역임했어요. 여성들이 안심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엄마 입장에선 아이들이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또 프로그램이 어린이집마다 제각각이면 그것도 엄마 입장에선 신경 쓰이죠. 그래서 표준보육과정을 만들어 어느 어린이집을 가도 아이들이 같은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또 어린이집의 통합 관리가 가능한 보육행정 전산망도 구축하고요. 보육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했죠. 제 스스로가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개선하고 정책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보람 있었어요.”
여성은 눈에 띄어야 살아
이 회장은 2013년 3월 여성가족부 차관에 오른다. 임명직인 장관을 제외하고,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에 발을 딛은 것이다. 이후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옮겨가면서 한 달간 장관직무대행까지 했다.
“차관으로 발탁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죠. 당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여성 관련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어요. 하지만 차관급 후보에 오를 만한 여성 고위 공무원이 많지 않았던 시기이고, 선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요. 다행히 각 부처에서 일 잘하는 유능한 여성을 발탁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차관에 오를 수 있었죠.”
남성 중심의 사회, 그것도 폐쇄적인 조직이라고 평가받는 정부 조직 안에서 그녀는 늘 개척자여야 했다. 따르고 배울 만한 롤모델도 없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아요. 승진할 수 있을까, 저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무관일 때는 서기관이 될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과장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식이었죠. 당시엔 여성이 극소수였고, 우리에겐 기회가 안 주어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차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그만큼 힘들었던 세월이지만, 열심히 하면 날 알아봐 주는 상사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회장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부당함이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을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태도다. 남들과 같은 방식이나 같은 정도의 노력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소수자가 인정받으려면 일반 다수자의 2배, 3배의 일을 해야 합니다. 똑같이 일하면 절대 인정 못 받아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해요. 소수자의 운명 같은 것이죠. 다른 접근 방식으로 일하고, 벌여놓은 일을 반드시 책임지는 식으로 일했어요. 회의 석상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했고요. 소수자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아요. 물론 그런 태도와 함께 성과도 인정받아야 하고요. 소수자의 숙명에 맞서 살았죠.”
바뀐 신분도 열정 막지 못해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후 이 회장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남들처럼 느긋하게 여행을 하거나 취미생활에 몰입할 법도 한데, 한가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무원 생활할 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데 매료된 상태라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글쓰기에도 집중해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연재하거나, 그간의 경험을 정리한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등을 집필했다. 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의 자서전에도 참여했다.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글솜씨를 인정받아 대필작가가 아닌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퇴직을 앞둔 후배들에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요. 퇴직 후 그 다음 날부터 일하라고 말하죠. 커리어를 중단하지 말고 이전과 똑같이 일하라고 당부합니다. 몇 달 쉬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에 익숙해지거든요. 퇴직 후의 인생을 만드는 것은 현직 시절의 삶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여성 정책에 대한 경험이나 양성평등에 대한 노력 등 당시의 가치관과 철학이 지금의 삶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세계여성이사협회도 마찬가지죠.”
세계여성이사협회는 전 세계 60개국 80여 지부에서 8500여 개 기업의 이사로 활동하는 3700여 명의 여성 이사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이며, 한국 지부는 2016년 9월에 창립됐다. 창립 당시에는 회원이 40여 명에 불과했다. 동의하는 여성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이 모임의 가입 조건인 상장기업이나 공기업의 등기이사 등과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여성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의 이사회에 여성이 참여하는 국내 비율이 3%가 안 됐어요. 일본도 9% 정도 되고 유럽 국가들은 30~40%나 되는데 우리는 매우 낮았죠. 그래서 우리도 법 개정을 추진했어요. 다양한 법 중에서도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서 여성의 비율 의무화를 시도했죠.”
그래서 은퇴 후 다시 국회를 찾았다. 사실 이 회장에게 국회는 그리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은 아니다. 국회는 여성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과장 때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다리를 꼬았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옷차림이 화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수시로 호출당하기도 예사였다. 다행히 그 경험은 법 개정의 돌파구가 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설득해 상장사 여성 이사 할당제 도입에 관한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다.
“세계 기업들 사이에선 ESG 경영, 즉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핵심 요소로 꼽아야 한다는 흐름이 있어요. 여성 이사 할당제는 이 지배구조의 다양성과 연관이 있죠. 글로벌 기업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조차 안 해요. 우리 기업들도 변해야 하는 시점이고, 저희의 노력이 우리 기업들의 체질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요.”
세계여성이사협회의 주도로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올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자산총액 2조 원이 넘는 기업은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즉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을 임원으로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NGO라는 민간인 자격으로 선봉장에 서서 공무원 못지않게 사회를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물론 이제 시작이죠. 상장기업 외에 공공기관의 이사회에도 여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되면 공공기관 역시 여성 임원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여성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시너지가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