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디지털 돌봄을 확대하고 있지만, 실제 장기요양 현장에서 관련 기술을 도입한 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은 디지털 돌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용 부담과 장기요양보험 제도 미비, 법적 책임 문제 등으로 기술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사회서비스 혁신 전략 연구: 디지털 기술 기반 사회 서비스 전략 연구’에서 실시한 ‘디지털 돌봄기술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돌봄기술 도입률은 시설급여기관 11%, 재가기관은 3.3%에 그쳤다. 정부가 돌봄로봇과 AI 돌봄을 미래 핵심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장기요양기관과 요양보호사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돌봄기술 활용 실태를 조사했다. 시설에서는 요양업무 지원이나 실내 이동 지원 기술 도입이 일부 이뤄졌지만 재가기관은 대부분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기관 규모가 작고 민간 비중이 높은 재가기관일수록 도입률이 더욱 낮았다.
“필요하지만 돈이 없다” 현장의 가장 큰 장벽은 비용
기술 도입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었다. 기관들은 돌봄로봇 기술 도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비용 부담(41.5%)을 꼽았다. 이어 정보 부족(22.2%), 재정지원 부족(15.1%)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현재 장기요양보험 체계에서 디지털 돌봄기기가 시설급여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기관들이 자체 예산으로 구매해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법적 책임도 현장의 부담으로 나타났다. 돌봄로봇이 오작동하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련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장비를 갖추고도 실제 활용하지 않는 사례가 확인됐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사람을 대신하기보다 요양보호사를 돕는 기술
주목할 점은 현장에서는 디지털 돌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등 제공인력의 86%는 ‘돌봄로봇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기대하는 역할은 ‘인력 대체’가 아니다. 응답자들은 신체 부담을 줄이고(66.4%), 돌봄 종사자와 어르신의 안전을 높이는 기술을 가장 원했다. 실제 우선적으로 필요한 기술도 이승·자세 변경 보조, 이동 지원, 안전 모니터링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디지털 돌봄기술의 정책 목표를 돌봄인력 부족 해결에 맞추기보다 요양보호사의 노동 부담을 줄이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반복적이고 신체 부담이 큰 업무를 기술이 보조하면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돌봄서비스 품질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
보고서는 현재 디지털 돌봄 정책이 기술 개발에는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 확산을 위한 제도는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진은 장기요양보험 급여체계 개선과 기관 평가 방식 개편, 돌봄기기 보급 모델 개발, 현장 실증 확대 등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개발자 중심이 아닌 요양보호사와 고령자가 직접 참여하는 리빙 랩을 확대하고 ‘로봇 관리 매니저’와 같은 전문 인력을 도입해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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