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논의가 중단된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낸 만큼 받는’ 새로운 연금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모수 개혁 안에는 구체적인 숫자가 언급되지 않은 데다, 곧 다가올 총선으로 인해 연금개혁 논의가 중단됐다.
이에 연금개혁이 지지부진 되고 결국 연금기금 고갈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KDI가 개혁안과 다른 신(新) 연금 기금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21일 KDI가 내놓은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은 미래세대를 위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되, 연금 수급 방식을 낸 만큼 받는 형태로 바꾼 새로운 연금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KDI가 제안한 ‘신연금’ 제도는 원금이 오롯이 보장되는 완전 적립식이다. 기존에 있던 연금은 ‘구연금’으로 분리해 운영하자는 것.
이는 현행 연금 제도의 구조상 보험료율로 약속된 연금 급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보고서를 통해 KDI가 제안한 방안은 △특정 시점에 구연금 제도 정지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은 일반재정으로 보충(미래세대에 부담 전가하지 않음) △기대수익비 1의 신연금 도입 △신연금 제도는 확정기여형(DC)으로 설계해 재정 안정성 담보 △신연금 소득재분배 기능은 동일 연령 내에서 소득 이전 가능한 CCDC형 도입 등이다.
보험료율 35%까지 올려도 기금은 소진된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안에서는 적립 기금의 고갈을 늦추는 방안을 주로 논의하고 있지만, 기금 소진을 늦춰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더욱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연금 제도는 기금이 소진된 후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우선 조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보고서는 “현 국민연금 제도에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큰 것에 기인한다”고 짚었다.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크다는 것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대비 사망 시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하는 지급액이 더 크다는 의미다. 기대수익비가 1이라면 낸 만큼 받는 게 된다.
이강구 KDI 연구위원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연금개혁 방식은 대표적으로 보혐료율을 인상해서 적립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는 방식으로, 기성세대는 기존대로 연금 급여를 받으면서 젊은 세대는 보험료를 높게 내야 해 세대 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운용 방식을 유지한다면, 보험료율을 현행의 두 배인 18%로 올려도 결국 2080년경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립금이 소진된 이후에는 매해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 급여를 충당하는 부과식으로 전환된다. 국민연금의 적립 기금 고갈 예상 연도는 2054년이다.
신승룡 KDI 연구위원은 “부과식에서는 기금이 소진되면 가장 우선하여 보험료율을 높여 연금 급여를 충당해 나가는 방식이 고려된다”면서 “보험료율이 35% 내외까지 올라간다는 것인데, OECD 최고 수준인 이탈리아의 33%를 능가하는 수준이면서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이때 기대수익비는 0.44로 “낸 돈의 44%밖에 받지 못하는 충격적인 숫자”라며 “이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기대수익비 1을 만족하는 완전적립식 ‘신연금’ 제도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DI는 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면 기대수익비를 1만큼도 보장할 수 없다고 본다. 저출산이 원인이다. 일차적으로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기에 기금 소진 시점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기금이 일단 고갈되고 나면 인구수가 적은 청년층이 인구수가 많은 고령층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기대수익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 연금은 ‘구연금’으로 운용하고, 기대수익비가 1인 신연금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낸 만큼 받는 연금, 실효성은?
KDI가 제안한 신연금제도는 합계출산율이 낮더라도 미래 세대가 기대수익비 1을 보장받을 수 있는 완전적립식이다. 개혁 시점부터 내는 보험료는 신연금의 연금 기금으로 적립하되, 개혁 시점 이전에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구연금으로 분리하자는 것.
구연금은 기존과 동일하게 기대수익비 1 이상을 지급하는 방식을 따르고, 기금 고갈 후 필요한 금액(미적립 충당금)은 정부의 일반재정으로 채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강구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을 당장 개혁할 경우 2024년 기준 재정부족분은 609조 원 수준이지만, 5년 뒤에 개혁이 이뤄진다면 부족분은 869조 원으로 늘어난다”면서 “609조 원이 굉장히 큰 규모이지만 개혁이 늦춰질수록 부담은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KDI 보고서는 연금을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한다면, 신연금 보험료율을 15.5%로 인상할 경우 40%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 경우 현재 60세인 1960년생의 기대수익비는 2 이상, 현재 50세인 1974년생의 기대수익비는 1.5 내외, 현재 18세인 2006년생 이후 세대의 기대수익비는 1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대수익비를 1 수준으로 유지하는 국민연금이 사적연금과 비교했을 때 굳이 가입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적연금은 개인이 투자처를 발굴할 수도 있기에 운용 방식에 따라 낸 것보다 더 받을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KDI는 이에 대해 “공적연금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적 저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에서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공적연금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만약 개인이 자율적으로 연금을 준비하는 것으로만 노후를 준비하라고 한다면, 일부 고령층의 노후 소득은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낮아지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국민연금과 같은 대규모 기금의 운용수익률이 사적보험 수익률에 비해 높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신승룡 KDI 연구위원은 “기금 수익률이 좋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기대수익비1=원금+이자+기금운용 수익) 나쁜 숫자는 아닐 것”이라며 설명했다. 신 연구원은 “개인이 직접 투자할 때 평균적으로 기대수익비1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보다 높았기 때문에, 국민연금(신연금) 수익률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신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가져가려면 급여 산정 방식을 현행 확정급여형(DB형)에서 확정기여형(DC)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DB형은 향후에 받을 보험료를 계산할 때 보험료를 낸 시점에 결정하지만, DC형은 연금을 받는 시점에 결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 변화에 지금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다만 DC형이 연금의 민영화를 촉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신승룡 연구위원은 “개인 계좌제가 아닌 코호트 계좌제로 연령군이나 코호트(그룹)의 계좌를 따로 두는 것을 제안한다”면서 “개인 계좌제와 달리 코호트 계좌제는 가입자가 연금 급여를 받다가 사망하고 나면 적립액은 생존자의 계좌로 이전돼 생존자의 급여를 높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DC형 신연금 구조라면 연령군에 적용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갖출 수도 있고, 보험료율 조정으로 소득대체율 조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DI는 보고서에서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모수 조정뿐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면서 “이번 제안으로 국민연금 구조 개혁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촉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구직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정년 연장은 취업 과정의 걸림돌로 느껴질 수 있다. 평균 수명 증가와 저출산・고령화, 은퇴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의 공백 등을 이유로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결국 청년층의 밥그릇을 뺏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뒤따르기도 한다.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법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취업을 원하는 청년에게 큰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한다. 청년들 역시 불안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 20대를 대상으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6명(63.9%)은 ‘정년 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말 정년 연장은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다양한 보고서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세대 갈등의 진실을 알아봤다.
Point 1 노동총량설의 모순
‘노동총량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정해진 수의 일자리를 고령자들이 차지할 때 남는 일자리가 줄어 다른 연령층의 실업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이는 고령자가 계속 일하면서 기업의 소득을 확대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했다. 고령자를 몇 년 더 고용한다고 해서 청년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단순히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했을 때 청년(15~29세)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2020년 보고서를 들어 정년 연장을 반대하기도 한다. 물론 OECD 기준 청년층은 15세에서 24세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5~19세가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고, 남성은 병역의무로 취업 나이가 더 늦기 때문에 분석 대상을 다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Point 2 중·고령층과 청년층의 다른 특성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청년 고용과 중·고령층 고용의 대체 관계’에 따르면, 고용 시장에서 청년층과 중·고령층은 서로 대신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층과 청년층의 일자리가 상호 보완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20대와 60대가 원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이 다를 뿐 아니라, 실제로 배치되는 직종과 업무에도 차이가 있어서다. 청년층은 보건사회복지 및 종교, 교육 전문가, 경영 및 회계 관련 사무직 등에서, 고령층은 농축산 숙련직, 운전 및 운송 관리직,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 가사 음식 및 판매 관련 단순 노무직 등에서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두 계층이 겹치는 직종은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 매장 판매직 정도다. 사업장에서 개인의 특성에 맞게 분업이 잘 이뤄지고 있다면, 중·고령층 일자리를 줄여도 이 자리를 청년층이 메운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2013년 법정 정년 연장이 사업체의 고용 규모에 미친 영향’ 논문에서는 한국의 정년 연장 법안이 주로 고령층 근로자와 대체 관계에 있는 중장년층 근로자의 고용을 감소시킨다고 말한다.
Point 3 취업 시장 속 줄어드는 청년 수
정년 연장을 지금부터 준비한다 해도 수많은 난제 탓에 실제 제도가 시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서 ‘인구 미래 공존’을 통해 시행 시기를 2028년경으로 추측한다. 2020년대 후반 정년 연장이 되었을 때 사회생활을 시작할 청년은 2000년 이후 출생아이다. 이들은 1990년대 출생 청년층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취업 경쟁률이 지금보다 완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이 시기가 청년 노동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년 연장의 적기’라 말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노동 시장에서 두 세대 간 대체성이 높지 않다고 언급했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과 사업장에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인식한다. 아직 노사정의 ‘임금 조정’에 대한 논의가 명확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정책이 유의미하려면 ‘고령자의 임금을 낮춰 근로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기업의 고용 부담은 줄이고, 청년의 채용에 피해가 없는 형태’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대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정년 연장의 청년층 일자리 효과’ 연구에서 “장년층의 임금을 낮춰 수용하면 기업의 부담과 청년층 고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고, 두 연령대가 부딪힐 이유도 없다”며 “임금 조정이 되지 않은 채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일자리 수요는 늘지 않는데 장년층을 계속 고용해야 하므로 청년층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올해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새해부터 여러 제도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2022년 소비자물가지수는 5.1%, 2023년에는 3.6% 올라 고물가가 이어졌는데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전망에 대해 “고금리 기조로 소비 부진이 이어지면서 민간 소비는 전년 1.9%와 유사한 1.8%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고금리, 고물가로 올해도 경제 전망이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전망입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민생과 경제 분야에 더 신경 쓰겠다면서 “물가도 더욱 안정시킬 것”을 약속했습니다. 정부의 의지를 담은 듯 새해에는 많은 제도가 달라지는데요. 그중에서도 생활에 도움이 될, 꼭 알아야 할 제도들을 모아봤습니다.
1. 대환 대출이 쉬워집니다.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을 받은 소비자라면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유리한 조건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대환대출 인프라가 확대됩니다. 대출비교플랫폼이나 금융회사 애플리케이션에서 대환대출을 신청하고 신규대출을 실행하면 즉시 대출 이동이 완료됩니다.
2. 결혼하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돈이 늘어납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저출산인데요. 혼인과 출산을 지원하고자 정부가 결혼하는 자녀에게 증여하는 재산의 세금 공제 폭을 늘렸습니다. 혼인신고일 전후 각 2년 혹은 자녀의 출생일부터 2년 이내에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는 재산이라면 최대 1억 원까지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공제됩니다. 단 기본공제 5000만 원과 별도 적용되기 때문에 혼인 공제와 출산 공제 통합 한도는 1억 원이라고 봐야 합니다.
3.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늘봄학교로 돌봄 선택지가 생깁니다.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적응 프로그램 무상 지원, 대학·기업·지자체 등 협력으로 양질 프로그램 확대, 기존 학교 운영과 분리된 늘봄학교 운영체계 구축이 이뤄집니다. 기존에 있던 방과후와 돌봄을 통합해 종합 교육프로그램인 늘봄학교를 본격 도입할 예정입니다.
4. 맞벌이 가구 아이 돌봄 서비스 지원이 확대됩니다.
맞벌이 가구의 양육 공백을 채우고, 양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이 돌봄 서비스 정부 지원 비율과 대상 가구를 확대합니다. 2023년에는 8만 5000여 가구에 지원했던 것을 올해에는 11만여 가구로 늘립니다. 정부지원 비율은 중위소득 150% 이하 미취학 아동의 경우 15%에서 20%로, 중위소득 120% 이하 취학 아동의 경우 20%에서 30%로, 2자녀 이상 다자녀가구의 경우 본인부담금의 10% 추가, 중위소득 1505 이하 청소년 (한)부모 가구의 경우 0~1세 자녀 돌봄 비용의 90%를 지원합니다.
5. 통신비 부담이 줄어듭니다.
요금제와 단말기 선택권이 확대될 예정입니다. 실제 사용하는 사용량에 가까운 요금제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인데요. 단말기 종류와 상관없이 요금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5G 단말기여도 LTE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고 반대로 LTE 단말기여도 5G 요금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이어졌던 5G 요금제의 경우 3만 원대 상품이 나올 예정입니다. 30GB의 소량 데이터 구간 요금제를 조금 더 세분화하고 30~80만 원 대 중저가 단말기도 출시됩니다.
6. 자영업자·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합니다.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장님들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제도입니다. 먼저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책이 이어지는데요. 제2금융권(상호금융기관,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에서 5% 초과 7% 미만의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면, 이미 냈던 이자 중 일부를 환급해줍니다. 올해 중으로 전기요금 특별지원제도가 신설되는데요. 에너지 요금 인상에 취약한 영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일부를 보전해줄 계획입니다.
7. 파주에서 서울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게 됩니다.
올해 3월부터 GTX-A의 수서~동탄 구간이 개통됩니다. 파주 운정에서부터 동탄으로 이어지는 노선인데요. 올해 말이면 파주 운정에서 서울역 구간이 개통될 예정으로, 출퇴근 소요 시간이 50분에서 20분으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8. 대중교통비 환급 지원제도 ‘K-패스’가 시작됩니다.
올해 5월부터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동 거리와 관계없이 이용 금액의 일정 비율을 최대 60회까지 환급해줍니다. 기존에 알뜰교통카드 이용자라면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등록하고, 이동 거리에 따라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지원받았는데요. 이제는 어디서 타고 내렸는지 기록하지 않고, 이동 거리를 측정하지 않아도 일반 20%, 청년 30%, 저소득층 53% 비율로 더 편하게 교통비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9. 농촌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농촌은 의료 인프라가 아무래도 부족한 지역이 많은데요. 양·한방 의료, 치과·안과 검진 등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촌 왕진 버스가 올해 3월부터 도입됩니다.
10.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미리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가정이 많은데요.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모든 동물병원은 올해부터 진료비를 사전에 알려야 합니다. 진찰·상담료, 입원비용, 5종 백신 접종 비용, 검사(X-ray, 전혈구) 등 총 11개 항목에 대해 게시해야 하는데요. 동물병원 내에 접수창구나 진료실에 책자나 인쇄물로 비치해야 하고, 벽보 부착 혹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합니다. 진료가 필요할 경우 가고자 하는 동물병원의 진료비용 등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되겠습니다.
11. 최저임금이 오릅니다.
시간당 962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2.5% 오릅니다. 하루에 8시간씩 주 5일 일하면 주휴수당을 포함해 매달 약 206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됩니다.
이 외에 달라지는 제도를 더 알고 싶다면 기획재정부 ‘2024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를 참고해보세요. 올해 달라지는 제도와 법규 사항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한 ‘2024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책자는 1월 초 지방자치단체, 공공 도서관, 점자 도서관 등에 배포되고, 온라인으로도 공개됩니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로봇 만드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였다. 로보케어는 그렇게 시작했다.
로보케어는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1호 기술출자회사로 설립됐다. 세계 최초로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룹형 치매 예방 인지훈련 로봇 ‘실벗’을 개발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가치’를 위해 경도인지장애 어르신과 독거노인 돌봄이 가능한 가정용 로봇 ‘보미1’, ‘보미2’를 만들었다. 현재 로보케어의 로봇들은 2023년 8월 기준으로 전국에 324대가 보급되어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으로 사회에 가치를 남기다
“AI 스피커가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타고 가정 곳곳에 스며든 것처럼, 로봇도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부형 로보케어 로봇사업부 부장이 말했다. 로보케어가 개발한 로봇은 10여 가지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치매 인지훈련 교육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된 실벗, 보미1·2, 도리 등의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치매 인구는 세계적으로 3초에 1명씩 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약 18조 원이던 치매 관리 비용은 2050년이면 약 103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고령화 시대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치매를 로봇으로 예방하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 부장은 “헬스케어뿐 아니라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부터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 로봇 만드는 행위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길지 고민하고, 그 의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보케어는 단순히 로봇의 기술적 측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이 보미’라는 웹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로봇을 중심으로 이용자, 보호자, 관계기관을 통합 연결한 이유다. 스마트홈에 필수인 IoT(사물인터넷) 기기와도 연동 가능하고, 헬스케어 기기도 연결할 수 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하나로 엮는 셈이다. 현재 다양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며 유의미한 결과도 얻었다. 치매안심센터, 치매거점병원, 요양원, 노인종합복지관, 경로당, 지역주민센터, 실버타운, 개인 가정 등 로보케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로보케어의 로봇이 더 많은 어르신을 만나려면 상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로봇, 콘텐츠, 시스템 개발에 진심인 로보케어는 사람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양서비스의 미래는 정말 로봇에 있을까? 최근 요양서비스의 인프라 부족, 고령화로 인한 수요 증가 등으로 인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요양 분야는 지금 로봇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최근 이러한 로봇 도입의 성과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강남대학교 실버산업연구소는 20일 ‘100세 시대 노인과 로봇’이라는 주제로 2023 스마트 에이징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가 후원한 이 행사는 로봇, 요양, 복지, 헬스케어 등 실버산업분야 관계자 약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 장민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는 현재 활발하게 도입이 진행 중인 노인을 위한 로봇 기술의 동향을 소개했고,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노인반려로봇의 요양 현장 도입 현황과 쟁점들을, 노영희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교수는 돌봄로봇 도입을 위한 실증 연구 과정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공진용 나사렛대 재활의료공학과 교수는 요양 관련 기관이 로봇기술 도입을 위해 검토해 볼 만한 공적급여 지원 제도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근 교수는 “로봇이 돌봄 업무를 수행하면서, 노인의 정서적, 감정적 영역에 대처 가능할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로봇이 지나치게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지는 않는지 또는 로봇의 외형과 같은 지역마다 다른 정서적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강은경 노원시니어클럽 관장, 조준배 강남종합사회복지관장, 황재영 노인연구정보센터 소장,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류용효 컨셉맵연구소장이 참석해 각 산업 분야의 현황을 공유했다.
행사를 준비한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이번 행사는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각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는 노인을 위한 로봇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효과적인 디지털 포용기술 개발을 위한 노인 분야 현장 의견을 수렵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하고, “현재 노인을 위한 로봇기술 도입을 위한 다양한 산업적 시도는 있지만, 학문적 교류는 활발하지 않아 이를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투데이피엔씨와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이 손을 잡고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접근성을 개선해, 디지털 문해력 향상에 앞장서기로 뜻을 모았다. 양사는 지난 2일 협약 체결식을 이투데이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이투데이피엔씨는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발행으로 고령화 사회를 대변하는 전문매체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전자정보통신 제품과 서비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 표준과 연구방법론 등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대표적인 접근성 평가 기관이다. 지난해에는 한국지능정보화사회진흥원의 우선구매 대상 키오스크 분야 시험평가기관으로 공식 선정되기도 했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키오스크, 전자제품 분야를 시작으로 다양한 산업분야에 대한 고령자 접근성 평가 방식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고령친화 접근성 지수’ 개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키오스크 접근성 분야는 올 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모바일 앱과 함께 장애인 접근을 보장하는 의무가 신설됐고, 의무 미이행 시 인권위 진정을 거쳐 법무부 시정 명령, 과태료 부과 등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됐다. 키오스크 분야는 내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이성일 이사장은 “고령화로 인한 디지털 접근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시기에 양사의 협력은 큰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하고, “이 협약을 계기로 노인들이 편리하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향상시키는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孤獨)과 고립(孤立).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고독을 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간헐적 단절 상태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은 대체로 장기간 뜻하지 않게 사회와 차단된 처지다. 그런 점에서 ‘고독 위험’은 어색하지만, ‘고립 위험’은 말이 되는 듯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고독사’라는 단어도 실상은 ‘고립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립은 사회적 고립과 감정적(정서적) 고립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연결망 결여로 대인관계나 사회활동 참여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적 고립은 사회연결망이 구축됐고 일원으로 속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주관적 고립 상태다. 최근에는 가족·이웃 간 유대 약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으로 인해 사회적·감정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은 은퇴와 동시에 사회연결망이 사라지고,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뿐더러 자칫 고독사 위험에 놓이게 된다.
고독과 고립, 뭐가 다를까?
누구나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잘 다루고 이겨내면 괜찮지만, 아닐 경우 고립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립은 어떻게 구분할까?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도움을 청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한다”며 “중장년기에 퇴직, 사별 등으로 일시적인 우울, 소외,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고립’ 상태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위기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로 정의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느냐,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느냐 등을 물었을 때 ‘없다’고 응답한 수치를 환산했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6.4%p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아졌다.
보고서의 원자료가 된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연령 대비 교류하는 사람 수는 반비례했다. 특히 ‘가족 또는 친척 이외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30대 13~19%, 40~60대 20~27%, 70대에는 38%까지 늘어나다가 80대에는 51%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묻는 항목을 살펴보면(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가) 이 또한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청할 사람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2022)에서는 평일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와 접촉 방식에 대해 파악했는데, 해당 조사에서도 고령자일수록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수치로는 40대(1.6%) 대비 65세 이상(4.7%)이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가족 또는 친척 대상에서도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가 1~2명 정도라 답했는데, 그중 대면 접촉은 3분의 1 미만이었다. 대체로 전화 통화로 접촉하는 상황이었고, SNS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극소수였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립?
사회적 고립을 말할 때 1인 가구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보면 2015년 이래 1인 노인 가구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1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는 36.4%였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 가구의 어려움울 묻는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외롭다’는 응답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했다.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외로움·고립감이 더 크다는 건 자연히 수긍이 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가족(또는 동거인)이 있으면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임선진 과장은 “가족이 곁에 있다면 사회적 고립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감정적 고립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자녀가 출가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주변인은 배우자가 된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걱정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장년은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 가능성이 적은 40~60대 중장년의 경우 배우자와 고민을 나누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하루 중 대화 시간 또한 1시간 미만인 부부가 과반수였다. 임 과장은 “감정적 고립을 호소하는 분들에겐 가능하면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립 대상자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왜 그런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해야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등을 설명해드린다”며 “자녀 세대와의 감정적 거리도 멀다. 특히 요즘 세대가 쓰는 약어나 은어 등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초반에는 소외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심해지고 마음의 벽이 생기면서 고립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 열고, 관심사 확장하기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이 꼭 가족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 상담사 등도 해당된다. 가령 종교가 있다면 교회나 절 등에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자체 프로그램도 활성화된 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비스가 빈약한 지역에 산다면 고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도 마련됐는데,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면 예후가 좋지 않다. 감정적 고립이 심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다른 질환이나 증상을 동반할(또는 동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못 해본 중장년이라면 주변인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 경계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는 성격적으로 의심이 많거나, 알코올 중독증이나 우울증, 조현병을 앓는 경우도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지만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도 지역사회나 이웃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워 고립되기도 한다”며 “내원하시는 분들에겐 필요하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의논해 지속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시도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립 탈출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장년이 고립되는 사례를 보면 이러하다. 퇴직 후 의기소침해져 친구들을 멀리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해져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자녀가 취업·결혼 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주변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사별 후 소외를 느껴 나가지 않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원인이 자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본인의 정체성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며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해나가면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내가 갖고 있는 질환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만약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은 누구인지, 기관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렇게 사회와 연결되고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통해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정부는 노인 주거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 주거 정책은 저소득층 중심이며, 고령자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한계가 지적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약 697만 명이 노년기에 진입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새로운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조성이 그 해답으로 꼽힌다.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2월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 중 ‘고령친화적 주거환경 조성’은 고령친화적 주택 공급 확대, 고령친화 커뮤니티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 고령자의 교통 복지 기반 구축, 총 3개의 추진 과제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고령친화 커뮤니티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은 베이비부머를 위한 주거 정책의 일환으로 ‘(가칭)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모형 개발 및 시범 조성 추진을 포함하고 있다.
K-CCRC는 Korean-version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로서, 베이비부머가 이주하여 지역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며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단지 모형을 말한다. 기존 거주지에서 계속 거주하는 의미의 AIP(Aging In Place)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 더 큰 차원의 공동체 속에서 거주하는 AIC의 개념을 담고 있다.
K-CCRC는 다섯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도권 대도시 베이비부머(베이비부머의 48.3%가 수도권 거주)가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 △이주한 베이비부머가 지역사회 및 지역의 자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지역의 다양한 세대 및 연령층과 교류하는 것 △ 지역에서도 의료·돌봄 등 복합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 받는 것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LH 산하 연구기관인 토지주택연구원은 2021년부터 후속 방안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해 ‘초고령사회 선제적 대응을 위한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조성에 관한 기초 연구’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전국적으로 산재한 시니어타운을 포함한 노인복지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과 웰플러스주택, 고령친화주택이 CCRC에 해당하지만, 순수하게 K-CCRC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생애활약마을 사업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소개했다. 도쿄권을 비롯한 각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가 그들의 희망에 따라 지방이나 지역의 도심지구나 중심 시가지에 이주하고, 지역 주민이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면서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보내며, 필요에 따라 의료·개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베이비부머 74.9% “K-CCRC 이주 의향 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지난 6월에는 ‘초고령사회 대응 K-CCRC(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의 정책 추진과 계획 모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행했다. 베이비부머 74.9%가 K-CCRC 이주 의향이 있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수도권 거주 베이비부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남녀 각 500명, 전기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와 후기 베이비부머(1965~1974년생) 각 500명, 거주 지역은 서울과 서울 외 수도권(비서울) 각 500명이 응답했다.
응답자의 87.6%는 공동주택에 거주했으며, 거주 유형은 자가가 71.1%, 임대가 28.9%로 나타났다. 월평균 소득은 약 500만 원이었으며, 72.5%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였다. 자산 규모는 가구당 평균 자산 5.47억 원보다 훨씬 많은 평균 8.35억 원이다. 학력과 소득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의 중산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은퇴 후 또는 가까운 미래에 비수도권 지역에 K-CCRC가 조성된다면 이주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물음에 응답자의 74.9%가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은퇴 후 안정된 노후생활’ 22.6%, ‘고령자를 위한 여러 복지시설’ 21.2%, ‘안전한 고령친화 생활공간’ 18.6% 순으로 나타났다. 이주 시기는 은퇴 후 연금 수익이 보장되는 시점인 ‘노인연금수령 연령 65세 이후’가 55.9%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K-CCRC 이주 의향이 없는 25.1% 251명에게 이유를 묻자 36.3%가 ‘의료복지서비스 시설 여건’이라고 꼽았다. 그 뒤를 ‘일자리 마련 및 취업 지원 여건’ 15.9%, ‘대중교통 접근성 여건’ 13.5% 등이 이었다. 이러한 이주 저해 요인이 개선된다면 이주 의향이 없는 251명 중 22.7%인 약 57명은 이주하겠다고 답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K-CCRC의 방향을 도출했다. 먼저, 대상은 고령자뿐만 아니라 중장년, 청년, 아동 양육 가구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인구감소율과 고령화율이 높고, 고령친화 시설 공급률과 고령자 경제활동 및 일자리 지원율 그리고 의료 자원 공급률이 낮은 지역들이 적합하다. 입지는 지역사회와 연계 또는 교류에 용이한 도심 또는 도심 근교이어야 한다.
시설 구성은 독립주거, 돌봄주거, 돌봄시설, 돌봄병원, 주간돌봄센터(재가센터), 어린이돌봄센터(어린이집), 입주민지원센터로 이루어질 수 있다. 추가 시설로 고령자의 경제 활동을 위한 취업지원센터(민간 및 공공일자리), 지역사회 교류를 위한 여가·문화·체육시설, 생활편의시설 등이 포함되면 좋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시설들은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반드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체계 또는 사회관계망 내에서 작동하도록 입주민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초기의 계획대로 K-CCRC 조성을 통해 초고령사회와 지역 불균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7.5%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사회경제적 질병부담이 169조 원을 넘어섰으며, 이에 따라 기존 고령 인구 중심의 건강관리 사업을 40~50대까지 확대하는 등 맞춤형 관리 정책 마련 필요성이 제시됐다.
사회경제적 질병부담이란 특정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화폐 단위로 측정하는 지표를 말한다. 질병 치료에 지출되는 의료 비용뿐 아니라 교통비·간병비 등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데 소요되는 의료 비용, 금전적 가치로서의 지출은 발생하지 않지만 질병에 의한 사망과 생산 활동의 제한으로 인해 야기되는 시간 비용과 노동력 상실에 대한 기회 비용까지 포함해 의료비 외적 요인까지 함께 고려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4일 발간한 ‘보건복지 이슈 앤 포커스’에 게재된 ‘사회경제적 질병부담 추이와 지역 변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질병 비용은 총 169조 4930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1년 질병 비용(105조 5890억 원)에 비교하면 무려 63조 9040억 원(60.5%) 늘어났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전체 부담에서 사망으로 인한 부담이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는데, 질병 치료 등으로 인한 부담은 증가한다는 점이다. 2020년 질병 비용 중 74.6%는 의료 이용으로 인한 직접 비용, 25.4%는 생산성 손실로 인한 간접 비용 부담이었다. 이는 늘어나는 기대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기대 수명이 10년 전보다 3.3년(현재 83.5세) 늘어난 사실을 OECD 보건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별에 따른 질병부담은 남성이 53.2%로 여성(46.8%)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연평균 증가율은 남성이 4.5%, 여성이 6.5%로 여성의 사회경제적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에 따라서는 총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대 이상에서는 증가하였고, 50대 미만에서 감소했다. 총비용 기준으로는 50대(20.4%), 60대(19.9%), 40대(14.2%) 순으로 높았으나 의료 이용에 따른 직접비는 60대에서 높았고, 간접비에서는 경제 활동이 반영돼 50대, 40대, 6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시·군·구별 1인당 질병부담은 2011년 평균 232만 1573원에서 2020년 318만 8212원으로 연평균 3.6% 늘었다. 지역별 질병부담 편차는 2013~2018년 감소 추세를 보이다 2019~2020년 증가했는데, 교통비와 간병비 격차가 특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불균형 현상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수는 2019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저출산의 여파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 장애인 개발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 인구는 2019년 261만 명에서 2020년 263만 명, 2021년 264만 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만 65세 이상 등록 장애인 비율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0년 37.1%에서 2015년 42.3%, 2022년도엔 전체 등록 장애인 수의 과반이 넘는 52.8%까지 증가했다. 이 비율은 같은 시기 전체인구 고령화 비율인 18%보다 거의 3배나 높은 수치이다.
등록 장애인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장애 유형은 청각 장애로 2010년 10.3%에서 2022년엔 16%로 5.7%가 증가했고, 신장 장애인이 2010년 2.3%에서 2022년 4%로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지체 장애인은 53.1%에서 44.3%로, 뇌병변장애는 10.4%에서 9.3%로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교통사고 등의 감소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지체 장애인은 줄고 있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청각 장애인 및 신장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책임자인 고든솔 부연구위원은 “의료 이용으로 인한 부담이 큰 고령층뿐 아니라 경제 및 사회 활동의 주 연령층이면서 고령층에 진입하기 이전의 연령대(40~50대)는 예방 정책의 필요도와 정책의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까지 고령 인구를 중심으로 시행돼 온 건강관리 사업의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 등으로 맞춤형 관리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고 부연구위원은 “또한 남성은 일반적으로 여성에 비해 전 연령에 걸쳐 사망 비용의 규모가 크고 건강 행태 관련 요인의 전반에서 관리 정도가 낮은 특성을 보이므로, 질환과 사망 예방을 목적으로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하도록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변이가 증가하고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2014년, 산림청 개청 이후 47년 만에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 탄생했다고 떠들썩했다. 외부 인사가 아니라 연구직 공무원이 국립수목원장 자리에 오른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수목원 역사를 그려온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의 이야기다.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 여학생이라고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혼자였다. 그저 막연하게 누구나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식물’이었을까.
내 삶은 ‘녹색 우주’
“대문 앞 가장 굵고 오래된, 집의 기둥 같은 단풍나무는 우리 아빠 나무, 동그랗고 아름다웠던 늘 푸른 사철나무는 우리 엄마 나무, 주목 나무는 동생 나무였어요. 저는 맏딸이라 꽃을 맡았어요. 황철쭉이었죠. 어머니가 꽃을 워낙 좋아하셔서 집 안에도 꽃이 많았고, 봄이면 매년 어머니랑 꽃씨를 심었어요.”
이 원장의 가족은 조그마한 정원 한편에 저마다의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 건 어릴 때부터 꽃과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가정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까. 대단한 목표를 가졌던 게 아니라 그저 남들과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식물이 좋아 선택한 전공이기에 이 원장은 식물 연구하는 일이 ‘우연이면서도 필연’이라 생각한다고.
그에게 지도교수는 식물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꽃’을 연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식물분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이후 1994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임업연구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왔다. 우리나라에 ‘국립수목원’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 원장은 식물 분류 및 수목원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식별이 쉬운 나무 도감’,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등 30여 권의 저서와, ‘한국산 조팝나무 속의 분류학적 연구’ 등 100여 편의 논문을 냈다.
1999년에는 임업연구원 중부임업시험장 수목원과가 산림청 국립수목원으로 신설되면서 광릉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수목원으로 승격했다. 이유미 원장은 수목원 발전의 흐름 속에서 희소멸종위기 식물 보전, 전국 생물 다양성 조사, 국가표준식물명 제정, 한반도 식물지 사업 등 다채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4년에는 국립수목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3년 동안 유용식물증식센터를 개원하고, DMZ 자생식물원을 열었다. ‘우리 식물 주권 바로잡기’로 소나무에도 붙어 있던 일본식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어 알렸다. 우리 특산식물 33종을 세계자연보전연맹의 권위 있는 보고서 ‘레드 리스트’에 국내 최초로 등재했고, 국내 자생식물 2945종을 망라한 ‘한국 관속식물 분포도’를 발간했다.
“돌아보면 참 놀라워요. 어쩌면 남들이 가는 길을 막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민간이 할 수 없지만, 꼭 필요한 일은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도감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그런 일을 찾다 보니 굵직하고 지평을 여는 일들이 된 것 같아요. 수목원이 발전해온 흐름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셈이죠.”
이유미 원장은 “내가 평생 몰두하는 일이 자연이라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했다. 자연을 보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매일 다르게 느껴졌단다. 무궁무진함이 담긴 자연과 식물이야말로 그에게는 ‘녹색 우주’라고 했다.
‘여성’이라는 타이틀과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던 이 원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여학생은 혼자라 희귀한 존재 취급을 받았다. 이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가 ‘최초’라는 말이 좀 많이 붙긴 했죠?(웃음) 남녀 차별이 많던 시절이었고, 필드를 다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선입견도 많았죠. 직업 특성상 ‘여직원 혼자 보내도 돼?’라는 말이 종종 나오니까요. 하지만 남자도 힘이 센 사람, 약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빨리 달리는 사람, 느리게 달리는 사람 정도의 차이를 두려고 하죠. 한창 연구할 때는 ‘여성’이라는 말이 따라다니지 않도록 ‘여성’을 지우고 ‘전문가’로서 일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또 그런 시간을 다 지내고 보니 오래 일하는 여자가 드문 모양이에요.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할 때는 ‘여성’을 지우려고 노력했는데, 기관장이 되니까 반대로 조직이나 사회 안에서 여성이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선배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더 고민하게 됐죠.”
식물과 세상 연결하는 ‘플랫폼’
이유미 원장은 처음 국립수목원장을 맡을 때부터 수목원을 식물과 세상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었다.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온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식물 덕후들이 모이는 장을 보고 나니 더욱 확신을 얻게 됐다. 반려식물로 유명한 베고니아를 키우던 배 팀장에게 사계절전시온실의 작은 공간을 내주었더니, 온라인에서 식물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안 주임의 활약으로 약 300종의 베고니아 컬렉션을 만들더라는 것.
어느 날 열린 수목원 축제에서는 분야별 식물 덕후 40여 명이 모여 자신의 장을 열더니 그들의 팬들이 새로운 걸 보러 모여들었다. 말 그대로 반려식물 축제 마당이 열린 것. 이제는 식물 덕후들이 자발적으로 수목원 내에서 ‘반려식물 상담소’도 운영한다. 수목원을 식물과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꿈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광릉숲을 중심으로 한 국립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이렇게 세 개의 국립수목원이 있다. 각 수목원은 기능이 조금씩 다르다.
“식물을 보전하고, 전시하고, 교육하는 건 국립수목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죠. 다만 기능적으로는 조금씩 달라요.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은 기초 종에 관한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드볼트라는 야생식물 종자저장고가 있고,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훼손된 생태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합니다. 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수목원이죠. 축구장 90개만 한 면적의 논이었던 곳을 가꾸어나가는 거예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보니 정원·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어요.
연구원 시절부터 우리나라에도 국립수목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연구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막연하게 꿈꿨던 일들이 구체화되고 있어요. 훨씬 잘된 것들도 많고요. 수목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일들이죠. 보전도 처음 해보고, 기초 연구 틀도 만들고, 정원이라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수목원법이 제정되고, 도심형 수목원까지 왔죠. 이런 것들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20여 년 전부터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꿈꾸고 만들어온 그림에서 파생된 결과예요. 지금도 참 기적 같습니다.”
이유미 원장은 국립세종수목원에서 ‘도심형 국립수목원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열섬 현상, 미세먼지, 탄소 줄이기, 기온 낮추기 등 식물이 가장 필요한 곳은 역설적으로 도시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조금 더 가속화된 반려식물 트렌드가 이를 보여준다. 이 원장은 이제 공존과 생명 순환을 고민한다. 보기 좋게 개량된 야생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매해 버려진다. 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것. 그동안의 정원이 ‘식물 소비’였다면, 이제는 생명이 순환되도록 할 때다. 자연주의 정원이 유행한 배경이기도 한데, 그만큼 이제는 생물 다양성, 다른 생명과의 공존 등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한국식 정원은 자연을 들여온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야생에 있던 식물들이 공원에 들어와 매해 피고 지려면, 나비나 벌 같은 ‘폴리네이터’가 있어야 하거든요. 꽃을 피웠을 때 수분을 해주어야 할 친구들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꿀벌도 사라진다는 말이 종종 들리죠. 다양한 생명이 함께 깃들어 살아야 하는 거예요.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도록 만드는 과정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화가 되어야겠죠.”
야생의 식물이 우리 곁으로 오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반려식물로 유명한 식물은 대부분 외국 종이다. 정원과 관련해 화분 같은 소재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이유미 원장은 ‘홍지네고사리’, ‘파초일엽’ 등 우리나라 자생종이 반려식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실험적인 정원’이라는 뜻의 트라이얼 가든(Trial Garden)도 시도한다. 일명 케이테스트 베드(K-Test Bed) 사업이다. 자생식물이나 우리나라 꽃과 나무로 만든 신품종이 정원 소재로 적합한지 시험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민간 육종가들이 연구한 품종들이 꽃 농사로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정원식물 전시·품평회는 높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돼 수출까지 이어지려는 참이다.
19세기 영국에서 긴 항해 동안 운반되는 식물을 보관했던 상자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미니 온실처럼 현대식으로 개량해 특허도 냈다. 아직 판매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집 안에 온실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하나 내었다. 식물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드는 일이다.
이유미 원장은 “나무를 꼭 친구로 두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존재는 ‘나무’다. “수백 년씩 자라 속이 비어가고 굳어가는 나무들도 봄이면 어김없이 말랑말랑한 새싹을 내놓습니다. 그 새싹이 또 꽃을 피워요. 나이가 들수록 자아가 강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나무처럼 평생 말랑말랑한 느낌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늘 지나다니는 집 앞, 회사 앞에 어떤 나무가 서 있는지 아세요? 혹시 은행나무 꽃을 본 적 있으세요? 가을이 되어 온몸이 노랗게 물들고서야 ‘은행인가 보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나무 안에 삶도 위로도 나의 모든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 아래 멈추어 서서 한번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