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의 세계가 구름이 가는 속도만큼 잔잔히 흐른다.
북한산 신선한 공기가 김수영과 어우러지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수영에 대해 그저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 정도로만 밑줄을 치고 그대로 외운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김수영의 글을 읽어보니 자유라는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세련된 문장도 문장이지만 소재의 다양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우울한 시대를 희망차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진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든다. 그런 김수영을 기리는 문학관이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도봉구 한적한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시를 쓰며 살았던 그의 본가와 묘, 시비 등이 있는 도봉구에 2013년 11월 김수영 문학관이 문을 연 것이다.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김수영 문학관은 개관 이후 한 달에 1500명, 연간 1만8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도봉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화시설이 없던 동네에 사람들이 찾아들고 활력이 넘치는 곳을 만든 이가 시인 김수영이다.
김수영 문학관은 5층 건물에 1층과 2층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제1전시실(1층)은 김수영 연보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4·19혁명, 5·16 군사정변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경험하며 써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수영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영물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시를 낭독하고 녹음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외에 관람객이 참여해 만드는 시작 코너와 김수영에게 편지를 쓰는 공간으로 전시실을 알차게 구성했다. 무엇보다 김수영의 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꾸며놓은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원문 전시와 함께 활자화시킨 시를 서랍장 형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원문을 본 뒤 서랍을 열면 희미하게 보이던 원문의 모든 글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제2전시실은 김수영의 산문과 번역서, 일상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어느 한 집안의 벽면처럼 김수영의 어릴 적 모습에서부터 가족들과 찍은 사진 등 소소한 기록들이 펼쳐져 있다. 김수영의 서재도 이곳에 옮겨놓았다. 전시장에 소개된 글은 김수영이 서재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 편의 시나 산문이 완성되면 김수영 시인은 항상 아내 김현경을 찾았다. 그러면 집안 살림을 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던 일손을 멈추고 달려가야만 했다고 한다. 서재에 들어서면 김수영 시인은 빽빽하게 쓴 시의 초고를 건넸고, 그 시를 정리해서 원고지에 깨끗하게 정서하는 것이 김현경의 못이었다고 한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쓰는 작업을 마치면 ‘산고(産苦)’를 겪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재 오른쪽으로는 김수영이 살아생전 남긴 번역서 등을 전시해놓았다. 왼쪽으로는 시인의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아늑함을 더했다. 이외에도 3층은 구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과 아동열람실, 4층에 대강당, 5층은 휴게 공간이다.
김수영 유족이 함께하는 ‘김수영 문학관’
김수영 문학관은 도봉구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만 유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일하는 김은씨는 김수영 시인의 조카다. 수학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문학관의 명예관장이자 고모인 김수명(83)씨의 부름을 받고 문학관에 들어왔다. 김수명 명예관장은 김수영의 다섯째 동생이다. 문학관에 전시된 전시물 대부분을 기증했다. 40년 동안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김수영의 모든 육필원고 등을 싸들고 다닐 정도로 오빠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마침 취재를 갔던 날 김수명 명예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여든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찬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김수영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자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수영 시인의 시 세계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날씨가 풀려가고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문득 김수영 문학관을 찾아가보자. 자유 그 이상의 세상을 꿈꾸던 천상의 자유시인 김수영이 문학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관람 정보
휴관 매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40분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TEL 02-2091-5673
매서운 추위에 잎사귀들은 메말랐어도 마음은 따뜻하게 감성은 촉촉하게 보내고 싶다면 미술관 나들이를 추천한다. 전시에 따라 매력이 달라지는 게 미술관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전시물 외에도 즐길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눈 오는 날 방문한다면 미술관 통유리로 바라보는 풍경이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심 속 열린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서울관은 문화·예술인들이 사랑하는 거리 ‘삼청로’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가 사용하던 공간에 터를 잡아 2013년 11월 개관했다. 조선시대에는 소격서,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 등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과천관, 덕수궁관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서울관은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갤러리 공간 외에도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예술문화센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8개의 전시실을 비롯해 멀티프로젝트홀, 미디어랩, 디지털 도서관, 교육동, 세미나실 등을 운영한다. 한 번 방문하면 전시뿐만 아니라 영화, 공연, 교육 등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카페테리아, 푸드코트, 북카페, 아트존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이용할 수 있어 오랜 시간 머물러도 부담이 없고, 지루할 틈도 없다.
크게 전시동과 교육동으로 나뉘는데, 미술을 보고 느끼는 것에서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까지 골고루 만끽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동 지하 1층에는 서울박스와 전시마당을 중심으로 6개의 전시실과 멀티프로젝트홀, MMCA 필름앤비디오·미디어아트월 등이 마련돼 있다. ‘멀티프로젝트홀’은 퍼포먼스, 다원예술, 전시, 교육 등 여러 장르가 융·복합되는 현대미술의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공간이다. ‘MMCA 필름앤비디오’에서는 총 120여 석 규모로 예술영화와 실험영화를 비롯한 국제영화제 개최 작품들을 상영한다.
오감이 즐거운 복합예술문화센터
미술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트존(Art Zone)은 전시동 1층 570㎡ 규모로 3개의 존 5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구역(갤러리1)에서는 국내 작가와 그들의 작품, 특히 공예 분야의 유망 작가들 작품을 지속해서 전시한다. 제2구역(갤러리2·3)에서는 미술관에서 개발하는 문화상품과 도록, 디자인 아이디어 제품을, 제3구역(갤러리4·5)에서는 섬유·패션 상품 및 국내외 미술 전문서적 등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전시와 연계한 작가들의 실험적인 문화상품을 소개해 누구나 편하게 관람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미술 서적에 관심이 있다면 ‘디지털 도서관(2층)’에 들러보자. 미술관이 소장한 다양한 미술 분야 출판물, 단행본, 잡지 등 8000여 권을 열람할 수 있다. 도서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간은 통유리로 돼 있어 인근에 마주하고 있는 경복궁, 삼청동 등 미술관 외부 전경 등을 훤히 보여준다. ‘친환경 미술관’이라는 취지에 맞게 자연채광을 전시 및 내부 조명에 활용하기 때문에 유독 햇살이 잘 들어 따뜻하고 환하다. 특히 야외 전시물인 ‘연역적 오브제(김수자, 2016)’가 한가운데 놓인 잔디밭 인근 통유리에 알록달록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쏟아져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3층 교육동에서는 디지털아카이브와 멤버십라운지를 운영한다. 멤버십라운지는 국립현대미술관 특별회원(연간 10만원으로 가입 가능)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내부 전시실을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야외로 향하는 문을 발견하는데, 그럴 땐 잠시 바깥 공기를 쐬고 오는 것도 좋겠다.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을 걸으면 너른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는 종친부(宗親府)를 만나게 된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역대 제왕의 어보와 어진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했던 관청으로 미술관이 개관하던 당시 이전·복원한 것이다. 종친부가 있는 곳에 서서 미술관을 바라보면 저 멀리 경복궁 돌담길과 인왕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전통문화와 현대 예술의 조화가 오묘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이용시간 월·화·목·금·일 (10:00~18:00), 수·토(10:00~21:00) ✽야간개장(18:00~21:00 무료관람) 관람요금 통합입장권 4000원
어린 시절, 소설을 읽다 사랑에 빠져버린 첫 작품이 바로 다. 푸르른 무밭하며 실개천 돌다리길,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소나기처럼 온몸에 녹아들었다. 애잔하지만 환상적인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소설 . 의 작가 황순원의 따뜻함을 간직한 그곳에 찾아갔다.
황순원 문학관은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의 2009년 개관과 함께 문을 열었다. 경기도 양평군에 조성된 황순원 문학촌은 소설 를 소재로 문학 테마 공원으로 꾸며졌다. 황순원의 장편소설 을 주제로 한 ‘해와 달의 숲’과 단편소설 의 분위기를 빌린 ‘너와 나만의 길’, ‘고백의 길’, ‘소나기 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개관 이후 우리나라 문학관 중 유료입장객이 가장 많은 문학관으로도 꼽힐 만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윤초시네가 이사 간 곳에 황순원 문학관
그렇다면 왜 경기도 양평군에 황순원 문학관이 생긴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평양과 오산에서 짧게 보낸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후 한국전쟁 발발 전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와 서울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23년 6개월 동안 교수생활을 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양평에 적을 둔 적이 없다. 양평이 황순원 문학관의 최적지가 된 이유는 바로 소설 때문이다. 2000년 9월 14일, 세상을 떠나 고향도 연고도 없이 병천 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한 황순원. 경희대학교 제자들은 황순원 문학관을 짓기 위해 뜻을 모았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라는 내용과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가 만난 징검다리 등 소설의 배경과 닮은 곳이 바로 양평이었기에 문학관 자리로 낙점됐다.
황순원 부부, 문학촌 안에서 잠들다
문학관 개관과 함께 황순원의 유골은 이장돼왔다. 2014년 한국 나이 100세로 숨진 동갑내기 부인 양정길씨도 이곳에 함께 안장됐다. 두 사람은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자유연애로 만나 결혼했다. 평양에 살 때부터 교제한 사이로 알려졌는데 황순원은 숭의중학교, 부인 양정길씨는 숭의여중에서 문예반장을 했단다. 1935년 둘은 일본 유학 중에 결혼해 1938년 장남 황동규를 낳았다. 이후 차남 남규, 딸 선혜, 3남 진규를 차례로 얻어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장남인 황동규는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나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황순원 문단 데뷔는 소설이 아닌 시
황순원이 쓴 작품은 단편소설 104편, 중편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이다. 놀랍게 시도 104편이나 된다. 사실 황순원은 시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17세 때 문학잡지 에 ‘나의 꿈’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17세 소년의 꿈을 잘 드러냈다는 평을 들었다. 많은 독자가 그를 소설가로만 기억하지만 70세 이후로는 그는 다시 시의 세계로 돌아갔다. 간결하고 단단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순수와 서정미가 돋보이는 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황순원. 깔끔하고 잡문을 일절 쓰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성격과 등단 초기 시작(詩作)의 영향이 역작에 그대로 배인 것이다.
황순원은 한국 근대소설의 대가다. 사람들은 그가 일필휘지하듯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공책을 열 권, 스무 권, 백 권 가까이 쓰면서 교정을 보고 글을 고쳐 완성했다. 교정도 절대 제자들한테 맡기지 않았다. 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그의 초고 공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글을 엄격하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황순원은 라는 수상집을 제외하고는 시와 소설만 썼다. 신문 기고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순원의 작품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4·19, 5·16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질곡을 작품 하나하나에 녹여낸 결과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제작돼 다양한 계층의 공감을 샀다.
서양화가 김환기는 황순원의 작품 , , 의 책 표지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가 표지 그림을 그려준 작가는 황순원이 유일하다.
소박한 일상이 엿보이는 황순원의 서재
황순원이 마지막까지 작업을 했던 서재를 문학관에 옮겨놓았다. 책상 뒤 병풍은 서예가 평보 서희환(1934∼1998)이 황순원 선생의 작품 제목을 써서 만들었다. 황순원의 문학전집 4권의 글씨도 그가 썼다. 황순원 선생의 제자 황재국(76)이 쓴 미도거진(味道居真)이라는 서예 작품도 눈에 띈다. 이 글에는 ‘도를 맛보게 하고 진실되게 가르쳐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란 뜻이 담겨 있는데 스승에게 고희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다. 경희대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갈 때마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입고 다녔던 트렌치코트와 베레모가 서재 왼편에 전시돼 있다. 살아생전에 쓰던 낡은 시계와 면도기 등도 전시돼 있는데 특히 면도기는 1934년부터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절제의 미학은 바로 군더더기 없는 그의 소박한 삶에서 비롯된 것임이 느껴진다.
☞관람 정보
관람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11월~2월), 오전 9시 30분~오후 6시(3월~10월)
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유치원생 무료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산 74(소나기마을길 24)
※가능한 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함.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희미한 여명(黎明)이 창문을 통해 침실로 스며들면서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늘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로 나가 50여 년 세월을 살다 보니 그 소리를 잊고 산 지 꽤나 오래되었다.
필자는 도회지의 어둠을 회색빛 어둠이라고 표현한다. 가로등 불빛, 집 안 곳곳의 스위치에서 꺼지지 않는 빛, 그리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박명(薄明).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완벽한 어둠’을 빼앗겼다. 가끔은 완벽한 어둠이 그리워진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도 느껴보고 싶다.
필자는 2014년 말에 정년퇴직했다. 헤아려보니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었다. 직장생활 43년 만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 세월 속에서 필자 인생 절반 이상은 훌쩍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깨알 같은 시간이었다. 텅 빈 세상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던 시간, 정녕 내 자신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정년퇴직 직전에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퇴직 후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자신을 되찾고 싶어 세 가지를 준비했다. 그 첫째는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만화책을 좋아했던 필자는 책 읽는 취미가 붙어 학급문고에 비치되어 있던 동화책들을 몽땅 읽어치웠다. 독서를 많이 해서였는지 작문(作文)에도 소질을 보여 교내외 백일장을 나가면 꼭 상을 타곤 했다. 퇴직 후 시간이 생기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그 간절함으로 2009년 11월에 수필가로 등단을 하고 2013년에는 두 권의 수필집까지 출간하게 됐다.
두 번째는 ‘서예’ 공부였다. 고향집 사랑방은 필자의 큰아버님께서 운영하시던 서당이었다. 어린 시절, 천자문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집에서 살았던 필자는 그 영향을 받아 서예에도 관심이 많았다. 퇴직하기 5년 전부터 강포 김상용 선생님을 만나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가던 2013년 11월 어느 날, 필자는 인사동에서 그동안 틈틈이 갈고 닦으며 쓴 서예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턱없이 부족한 필력(筆力)이었지만 까마득히 높은 선배 문우들과 함께하는 전시회가 좀 더 정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겁도 없이 명함을 내밀었다.
세 번째는 양지바른 고향 언덕 위에 소박한 집 한 채를 짓고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이번만큼은 필자 의지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고 정년퇴직을 하던 해에 고향 친구를 통해 우선 집을 지을 만한 조그마한 땅을 한 필지 사두었다.
퇴직 후 1년의 세월을 보내고 난 후, 필자는 세 번째 목표를 위해 큰 결정을 했다.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와버린 것이다. 우선 친구 집에 방을 하나 얻어 숙식을 하면서 공항 물류 단지 내에 있는 반도체 제조공장에 취직을 했다. 또 정신없이 살다 보니 고향에 내려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나마 연착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으로 내려오자 도시의 회색빛 어둠은 사라지고 완벽한 어둠이 침실을 점령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자연의 밤인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밤벌레 소리, 가끔씩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교교한 달빛이 필자를 설레게 한다. 잃어버렸던 감수성을 되찾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또 긴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매일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이 육십을 넘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으니 다소 늦은 감이야 없지 않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이제 세 번째 목표를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매일 향긋한 묵향(墨香)에 취해 나른한 오후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인생 1막에서 인생 2막으로의 변화에 대응해야 했다. 그리고 ‘용도변경’이라는 적극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활기찬 후반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용도변경’은 필자의 이름 ‘변용도’를 원용해 만든 단어다. 한자의 의미는 다르지만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도(用途)와 한글 표기는 같다. 필자는 이 단어로 가족을 위한 그동안의 헌신적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또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어두었던 꿈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47세의 조기퇴직, 금융위기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용도변경’된 삶을 통해 사진작가, 강사로 거듭나 현재는 인생이모작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손해보험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필자는 이후에도 보험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지금은 평생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스토리를 오늘 들려드리려고 한다.
47세에 용도 폐기되다
필자는 대학교 졸업 직전 고려화재해상보험에 입사해 20년을 다녔고 촉망받는 직장인이었다. 20년 전에는 임원으로서 부산·경남 본부장을 맡았고, 1977년 12월 말에 해임되었다. 회사에서 쓸모가 없는, 즉 용도가 없어진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필자는 이름에 빗대어 ‘용도폐기’되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금융위기(IMF)까지 닥쳐 재취업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밥벌이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창업을 해야 했다. 만화방으로 시작해 부대찌개 음식점까지 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월 40만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 조경관리사로 취업해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회사 마당을 쓰는 마당쇠 역할도 했다. 일당을 벌으려 MBC 드라마 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퇴직 후 10년간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 용도변경된 삶을 살기로 하다
필자의 나이 57세 때 두 친구를 갑자기 잃었다. 모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어느 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퇴직 후 잡다한 일을 하며 보낸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으나 세월만 쏜살같이 지나가고 내로라할 만한 성취는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두 친구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았다. 100세 장수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후반 인생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40, 50년이 될지도 모르는 노후의 긴 시간이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것은 내 인생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사는 삶이었고, 타인을 위한 용도, 즉 타(他) 용도로 사는 삶이었다. 뒤늦게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주인공으로 내 인생을 살아보자!” 필자는 먹고사느라 오래전에 접어둔 꿈을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은 꿈을 실현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사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은퇴하면 언덕배기에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꿈과 유사한 사진으로 바꾸었다. 붓 대신 카메라를 든 인생 2막의 길이었다.
60세에 늦깎이 사진작가가 되다
필자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자연과 함께하며 감성을 키웠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채화를 자주 그렸던 기억이 있다. 사진은 직장에서 홍보 업무와 사보편찬 업무를 담당할 때 흥미를 키웠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60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사진을 배울 용기를 가졌던 것 같다. 2010년 7월, 필자는 고양시 무료사진 교실에 참여했다. 환경은 열악했다. 초보자 솜씨에 카메라 장비 또한 콤팩트 카메라가 전부였다. 함께 공부한 다른 수강생의 고가 카메라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과 형편을 인정하고 사진 실력 향상에만 몰입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3개월 후부터 공인 사진작가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인 사진작가 인증을 받으려면 공모전에 출품해 입선이나 입상으로 일정 점수를 얻어야 했다. 이 목표를 이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일 년에 스물여덟 번 응모해 절반을 낙선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멈추지 않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1년 9월에 드디어 인증을 받아 공인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진을 배운 지 3년째 되던 해 국전에 입선했고 부산일보가 주최한 전국사진대전에 출품한 작품 ‘닭장’이 좋은 심사평으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주관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사진 부문에서 ‘몰입’이라는 작품이 우수상으로 뽑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는 사진을 통한 재능기부가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스스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게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었다.
40만장을 찍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2010년 7월부터 지금까지 6년 4개월을 매일같이 사진에 빠져 살았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는 무려 40만장에 이른다. 역산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0여 장을 찍어야 나오는 숫자다. 어느 날은 파파라치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에 도전해 좌절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 몰입하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24일에는 KBS 1TV 에 사진작가로 출연함으로써 삶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사)은퇴연금협회와 머니투데이 방송이 주최한 ‘The Senior 2016’에 사진 전시 초대를 받아 ‘카메라로 그린 수채화 10선’을 주제로 사진을 전시했다. 판매 목적이 아니었는데 작품 모두가 팔려나가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사진을 바탕으로 명강사에 도전장을 내밀다
카메라를 들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이 짧기만 하다. 이제 사진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되었고 카메라는 필자의 또 다른 친구다. 100세 장수시대가 두렵지 않다. 은퇴 전의 직업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뒤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참 잘 선택한 결과가 됐다. 이후 필자는 사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영역 확대를 꾀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한 여가관리의 모범적 사례가 되면서 그 경험을 배우려는 퇴직 예정자와 은퇴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62세에 또 다른 분야인 강사 활동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여가설계, 변화관리 강사로 활동을 넓혀나갔다. 이제는 사진작가로서의 활동보다 강사로서의 활동이 더 많아져 기업체와 국가 산하 인력개발원, 대학교의 평생교육원, 사회종합복지관 등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KBS 1TV , SBS라디오 러브에프엠의 프로그램에 3년간 고정 출연, 토마토TV와 머니투데이 방송에서 특강, 한국직업방송 로 출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을 기회로 전환하는 ‘용도변경’의 삶이 성공의 핵심
필자는 사진작가, 강사로서 삶의 보람을 만끽하면서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제2직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과거를 내려놓고 현실을 인정하며 몸집 줄이기(다운사이징)로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용도변경’의 생활 방식이 성공의 핵심 역할을 해줬다. 뱀이 고통을 참으면서 허물을 벗어야 살아갈 수 있듯 환경 변화에 대한 꾸준한 자기 변신, 즉 용도변경을 통한 2차 성장은 인생 2막의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라 생각하고 실천한 결과다.
베풀고 나누면서 다 쓰고 가리라
필자의 오늘은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은혜로 이루어졌다. 이제 그 은혜에 보은할 할 때라 여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경험과 지혜를 베풀고 나누는 사회공헌을 위해 또 다른 용도변경, 즉 ‘공(公)용도’를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의 하나로 두 권의 책, 와 를 출간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가보지 않은 길도 많음을 느낀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며 도전을 멈추지 않으리라. 필자의 소소한 경험담이 같은 길을 가려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10월 14일부터 11월11일까지 서울역 1·4호선 환승 통로에서 서울역 일대의 역사를 그린 만화가 김광성(金光星·62)의 그림이 전시된다. 그의 그림을 보면 ‘참 따뜻하다, 정겹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수묵담채로 그려진 한국적인 특유의 색감도 그렇거니와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과 풍경들에서 오래전에 볼 수 있었던 서울의 옛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주제와 소재들로 밀도 높은 작품세계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김 작가의 그림은 파리 크리스티 옥션에서 거래될 정도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삶과 일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두 번째 만남인지라 준비해간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사동 통인가게 2층 찻집에서 내준 발효 생강차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대표작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앞으론 뭘 그리고 싶은가요?” 이런 질문은 ‘김광성’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이런 진부한 질문들을 의미 없이 던지는 것은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데 걸림돌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노트북을 덮었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광성 작가는 올해 62세다.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다소 늦은 36세 때였다. 당시 인기 만화잡지였던 이 그 전까지 대기업 직장인, 가게 사장님으로 살았던 그를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했다. 이후 26년간 펜을 놓지 않은 그는 자신의 경력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만화가들은 대부분 30년 경력을 넘겼을 테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또래이면서 활동하는 만화가가 적은 현실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30대 후반에 도전하게 된 만화가의 삶
“학생 때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명랑만화에서부터 극화만화까지 만화란 만화는 다 좋아했죠. 살던 데가 부산 외곽 시골이었는데 만화방이 생긴 게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김 작가의 아버지는 남사당 사물놀이 꼭두쇠였다. 아버지는 농기구를 예술적으로 만들고 돗자리나 가마니도 전부 손으로 만들곤 했다. 그 끼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 사회에 나와서 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죠. 학창시절 때 그림을 그리면 아버지께 혼쭐이 났어요. ‘그림 그리지 마라, 빌어처먹는다’라는 말씀이셨죠(웃음). 그래서 그림을 접어야 했어요.”
그러나 인연이라는 것은 의외로 끈질기다. 회사를 가니 유화반이 있었고, 그는 거기서 유화를 배우게 된다.
“회사 다닌 지 십 년째가 되니 사회 영향을 받아 회사에 변화가 생겼어요. 마침 저도 십 년 다녔으면 지긋지긋하게 했다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죠. 1986년에 아시안게임이 있었고 1988년에 올림픽이 있었죠. 그때 곳곳에서 무허가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어머니가 ‘넌 그림 실력이 있으니 간판집이나 해라’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괜찮겠다 싶어서 가게를 차려서 2년 동안 쏠쏠하니 재밌게 일했어요.”
간판집 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했던 만화를 을 통해 우연히 보게 됐다. 당시 만화계에는 신인들이 올라오던 시절이었고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가져와서 보는데, 만화 보느라 간판 제작일이 잘 안 됐어요(웃음).”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재료를 사서 허영만, 이현세 등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베껴봤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시장이 굉장히 활발했어요. 내가 거기에 끼어들면 색다른 작가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를 그렸죠. 그게 반응이 좀 좋았고, 그러면서 만화가로서의 삶이 시작됐어요.”
만화는 농사와 같다
이후 30여 년 가까이 만화가 생활을 했다. 이제 중견 만화가이자 인정받는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만화는 농사다’라고 말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농사를 지었어요. 만화도 농사처럼 뭔가 다져지고 공부하고 비축이 된 상태에서 나온다는 의미죠. 그림도 기초가 되어 있어야 표현을 하잖아요. 만화는 머리에서 먼저 그려야 해요. 머리에서 먼저 안 그려지면 아무것도 안 돼요. 그러기 위해선 머리에서 그릴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이 쌓여야 하죠.”
김 작가는 우리만화연대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만화연대는 만화인들의 모임으로 이론적으로 만화계 저변을 단단하게 다듬는 걸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에 대한 분석과 만화계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법 등을 제시하는 활동은 김 작가의 성향과 공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요즘 바라보는 만화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나마 우리 만화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있어서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형편이 좀 좋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수년 전부터 만화에 대한 효용가치가 달라졌어요. 만화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게 된 거죠.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만화가에 대한 대접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문제는 이제 신인, 기성 할 것 없이 양질의 작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거죠. 잘나가는 작가들은 에이플러스 주고 싶을 정도로 잘해요. 그런데 그런 작가들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 외의 친구들은 많이 분발해야 하는데, 최근 웹툰 업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 업체들은 작품을 달라고 성화죠. 그렇게 되면 작품성이 좀 떨어져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돼요. 작가들이 좀 더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작품들을 발표하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죠.”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밖에 없는 일
김 작가는 만화를 그릴 때, 그 안에서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받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잘 풀려나갈 때 느끼는 감동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대개 새벽 두세 시에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참 뿌듯해요. 화가를 꿈꿨던 시절도 있었는데,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 할 건가요?’라고 누가 물으면 그러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어요. 직업적으로도 매력이 있고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나도 한 역할을 하고 있구나 느끼게 되고 동시에 조심도 하게 됩니다. 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 작품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을 못 하잖아요. 그런데 시인 고은 선생의 글을 읽고 ‘맛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제 만화를 보고 맛이 있다고 하니 최고의 칭찬이죠.”
그는 아직도 자신이 청춘이라고 말한다. 그저 말로만 청춘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여전히 어린이 만화 제작 요청을 받는 활발한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면서 그는 나이를 계속 ‘거꾸로’ 먹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그릴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 만화가는 동방신기도 알아야 하고 걸그룹도 알아야 하고 아이들의 언어도 알아야 해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도 수시로 보게 되죠.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작품을 보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도태? 난 도태되고 싶어”
김 작가가 오랜 세월 만화계에서 일하면서 가져야 했던 작가적 태도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가 계속해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만화가 우월하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활동하는 게 필요하니까, 직업일 뿐이니까 한 거죠. 직업이라고 말하면 한쪽에서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그런데 요즘 사회학자들이 인생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잖아요. 사람들이 소위 새로운 무언가에 몰입해서 휩쓸려 다니는 게 보이니까요. 이건 개개인의 문제여서 스스로 뭔가를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좀 더 진지하게 감성이나 비전, 사유를 접하면 사유하고 감성이나 비전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겪은 반(反)문명론자로서의 사연(?)을 하나 소개했다.
“어떤 젊은이가 내게 핸드폰을 줬어요. 그런데 복잡해서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짜증을 내니까 그 젊은이가 ‘선생님, 그거 안 하면 도태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도태? 도태시켜. 난 도태되고 싶어’라고 말했죠(웃음).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다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몰라도 된다고 봐요.”
‘역시 아날로그적 도구로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백다운 발언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김 작가는 SNS 등 인터넷 활용은 물론 포토샵까지 다룰 줄 안다. 심지어 권당 200페이지짜리인 전 10권을 모두 포토샵으로 컬러링 작업까지 한 디지털 능력자다. 제대로 반(反)문명론자가 되려면 문명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일까.
틈만 나면 놀러 다니고 싶은 나이
100세 시대라는 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김 작가의 미래는 앞으로 적어도 30년은 남은 셈이다.
“요즘은 틈만 나면 놀러가려고 해요. 원래는 놀지 않고 일만 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돼요. 돈도 안 되는 걸 밤새면서 왜 그렇게 했나 싶고요.”
아직도 일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김 작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얘기일 수 있다.
“참 족쇄를 풀 수가 없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의무 같은 게 생겼어요. 그런데 의무가 무게를 가지면 참 골치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2년 동안은 일 안 한다고 도망 다녔어요. 나중에 박재동 작가가 잡으러 왔어요(웃음).”
김 작가에게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비구니 스님과 함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고 제주도에 가서 스킨스쿠버를 하고 유명산 밑에 가서 패러글라이딩도 해봤다.
“스킨스쿠버를 하면 세상이 확 차단돼요. 거기가 천국이에요. 물고기들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스님이 다음에는 바이크 면허 따서 할리데이비슨 타자고 하더라고요(웃음).”
나이가 들수록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청국장’이 아닐까 싶다. 쿰쿰한 냄새 때문에 꺼리다가도 그 참맛을 알고 나면 구수한 향에 밥 생각이 절로 난다. 청국장 특유의 맛뿐만 아니라 색다른 풍미까지 즐길 수 있는 ‘물꼬방’을 소개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느림으로 먹는 밥상 ‘물꼬방’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터를 잡은 물꼬방은 한적한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한옥이 돋보인다. 서울시 명륜동에 있던 오래된 한옥을 통째로 뜯어와 현재의 디귿자 형태로 재조립했다고 한다. 오랜 숙성을 거쳐야 맛이 더해지는 청국장처럼 세월의 흔적이 깃든 한옥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가게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왼쪽에 ‘청국장 발효실(소정희 맛 연구소)’이 있다.
국내산 유기농 콩들이 3중 가마솥(물꼬방에서 제작)을 거쳐 맛있는 청국장으로 탄생하는 공간이다. 그 앞 카운터에서는 카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데, 아름다운 아트라떼부터 고급 블랜딩 티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디저트는 야외 테라스에서 즐길 것을 권한다. 시원한 가을 하늘 아래 자연을 벗삼아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물꼬방은 계절에 따라 실내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통유리를 통해 펼쳐지는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자연을 병풍처럼 둘러싼 물꼬방은 그와 어울리는 친환경 먹거리를 지향한다. 음식에 쓰이는 소금이나 된장, 채소 등은 엄선된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다. 청국장은 다른 반찬보다도 함께 먹는 밥맛이 중요하다. 우렁이농법으로 농사지은 유기농 쌀을, 식당에 마련한 미니 도정기로 매일 아침 3분도 현미로 도정해 사용한다. 쌀눈이 살아 있어 영양가가 높고 맛도 좋아 이곳을 찾는 단골도 많다.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소금’이다. 8년 전, 신안 앞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간수 뺀 천일염은 물꼬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식재료 중 하나다. 좋은 재료에 주인장의 정갈한 손맛이 더해지니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겐 여러 메뉴를 풍부하게 맛볼 수 있는 물꼬방정식(1만8000원)을 추천한다. 직접 띄운 청국장찌개를 비롯해 일반 요거트와 달리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청국장 균주로 8시간 이상 발효한 청국장 요거트, 청국장 쌈, 유자청·청국장 요거트를 곁들인 토마토, 떡갈비, 더덕구이, 콩불고기, 버섯탕수육 등을 골고루 즐길 수 있다. 메뉴 구성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새로운 메뉴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인장 소정희씨는 “물꼬방은 단순히 밥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옥 지하에 있는 ‘아래 갤러리(Are gallery)’에 가보면 그녀의 말에 수긍이 간다. 단절된 현대인들의 삶에 소통의 물꼬를 트고 싶다는 주인장의 바람이 담겨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갤러리 입구에는 매달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을 마련했다. 안쪽 공간에서는 ‘젓가락의 변천사 기획전’을 열고 있다.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젓가락 유물뿐만 아니라, 3000년 젓가락의 역사와 다양한 재료로 만든 한국, 중국, 일본의 젓가락 변천사 등을 살펴볼 기회다.
전시실 내부를 가만히 둘러보면 커다란 장독이 눈에 띄는데 그 안에는 소금이 한가득 들어 있다. 현재 음식에 쓰이는, 8년 전 신안 앞바다에서 가져온 소금인데, 소금도 청국장처럼 발효 과정을 거치면 맛있어질 것 같아 넣어뒀단다. 원래는 식품저장고였던 공간을 갤러리로 바꾸면서 소금 장독도 옮기려 했으나 소금 알갱이가 서로 붙은 채 굳어 있어 퍼 담을 수도 없었고 무게도 상당해 장독 밑이 빠질 우려가 있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대로 오랜 시간 발효 과정을 거치면 훌륭한 식재료가 되거나, 젓가락처럼 유물이 될 테니 물꼬방의 보물이 될 소금임이 분명하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루성길 258 (031-544-1695)
‘느림으로 먹는 밥상’이라는 물꼬방의 콘셉트처럼 느릿하게 시간을 넉넉히 두고 찾아갈 것을 권한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바라보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hibition
1) 태양의 화가 반 고흐: 빛, 색채 그리고 영혼 전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apM CUEX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연출한 전시다. 고흐의 수작들을 디지털 영상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전시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인상파와의 교류, 대자연, 고흐의 방, 동양의 색채, 초상, 동생 테오와의 편지 등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와치아웃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채널과 1만 픽셀 이상의 초대형 화면의 이머시브(Immersive) 시네마 등을 마련했다.
2)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CHOI SUNU’S FAVORITE)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학자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그가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글과 함께 소개한다. 평생 한국의 미를 탐색하고 박물관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최순우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1층 통일신라실에서는 돌함과 뼈단지 등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를,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달마도 등을, 3층 조각·공예관에는 반가사유상, 달항아리 등 15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코디최 개인전 CODY CHOI Color Painting: Frustration is Beautiful
일정 10월 28일~11월 20일 장소 PKM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코디최(Cody Choi)의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 약 20 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준비를 위한 기금마련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서 활동하는 코디최는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현시대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과 간극에서 태어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 동시대 사회현상에 주목하며 회화·조각·설치 등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LA 아트센터 칼리지를 졸업한 코디최는 LA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국내외의 주요전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등 유럽에서 순회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2010),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 현대문화에 관한 전문비평서를 출간했다.
◇ Book
1) 초혼 (고은 저 · 창비)
고은 시인의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지무(自歌自舞)’ 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2) 보고 시픈 당신에게 (김광자 외 86명 공저 · 한빛비즈)
전국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엮었다.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애환 등이 돋보인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로 다시 정리했다.
◇ Movie
1)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 이야기
개봉 11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토비 존스 등
인도 빈민가의 한 수학 천재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영국 수학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숫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순수한 수학 천재 ‘라마누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그의 열정적인 천재성과 삶의 고뇌 등을 담았다. 라마누잔 역을 맡은 배우 데브 파텔이 해외 유수 언론에서 “실존 인물 라마누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는 등 작품성 못지않게 그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봉 11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나가이 아키라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130만부 이상 판매량을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다.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선한 스토리 전개로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인생의 행복을 선사한다.
◇ Stage
1) 연극 재공연, 이웃사촌들의 수상한 진실게임
일정 10월 27일~11월 20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곽지숙 등
지난 3월 초연돼 뜨겁게 주목받았던 극단 몽씨어터의 (작가 석지윤, 연출 이동선)가 11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재공연 된다. 연극 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그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폭소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웃 혹은 사람 간 의심이 한순간에 누구든지 싸이코패스로 몰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예작가 석지윤의 독특한 언어, 이동선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씁쓸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마주하게 한다.
빌라의 고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간다. 주민들은 벌어지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대책회의를 연다. 그런데 301호의 혼자 사는 남자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잡기 위한 평범한 이웃들의 위험하고 묘하게 웃긴 진실게임, 바로 연극이다.
2)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다
일정 11월 5일~1월 22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오종혁,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였던 시인 백석의 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시 노랫말로 표현했다.
3) 꿈과 희망을 위해 링 위에 서다
일정 11월 1일~1월 1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송창의, 신구, 김진태, 김지우 등
영화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시합 장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그려내며 2014년 토니어워드와 드라마데스크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상을 받았다.
4) 고모와 조카의 예측 불허 동거
일정 11월 22일~12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구태환 출연 하성광, 정영숙
세상을 곧 떠날 것 같다는 고모의 편지 하나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가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인생 첫 2인극 도전이라는 중견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5)인간의 죄의식과 예술가의 고뇌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김동수 출연 남명렬, 이명호, 박지일, 김병철, 손성호 등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정찬의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같은 해 11월 첫 공연한 이래로 상업성이 짙은 작품들이 주목받는 공연계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통의 밀도를 담아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 전시(Exhibition)
앤서니 브라운 전-행복한 미술관 (Anthony Browne Exhibition-Happy Museum)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부제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6월 개막 첫 주에 1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남녀노소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그림들과 더불어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행복한 도서관’ 코너도 마련돼 있다. 전시장에서 관람한 그림들을 책을 통해 다시 감상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다.
2016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THE EIGHT CLIMATE)’
일정 9월 2일~11월 6일 장소 광주 비엔날레전시관, 아시아문화전당, 무등현대미술관 등
‘제8기후대’라는 콘셉트로 열리는 전람회인 만큼 전시 공간마다 온도, 밀도, 분위기, 기압 등 다양한 기후 환경을 연출한다. 절제된 색과 요소들로 표현한 이번 공식 포스터에는 예술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방향성, 발전, 흐름, 변화하는 움직임, 목표를 향한 전진 등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통해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37개국 97팀(119명)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도서(Book)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11명 공저ㆍ서해문집)
여주대 ‘세종시대 문헌연구팀’의 심층해제문 중에서 ‘세종시대를 잘 드러내는 문헌’과 ‘세종을 만든 책’을 선별해 담았다. ‘1부-세종시대가 만든 책’, ‘2부-세종을 만든 책’으로 크게 분류해 등 12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헌별로 전문가들의 해제와 더불어 그 책이 세종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방법(오사카대학 쇼세키카 프로젝트ㆍ글항아리)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의심해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수학, 공학, 미학, 역사학, 법학, 화학, 경제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도넛의 구멍’이라는 개념에 대해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문과 탐구라는 영역을 더 흥미롭게 접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영화(Movie)
평범한 50대 주부가 찾은 인생의 행복
개봉 9월 29일 장르 드라마 감독 미아 한센 러브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만 콜린카, 에디뜨 스콥 등
2016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랑스 신예 감독 미아 한센 러브의 신작이다. 한 가정의 아내·엄마이자, 존경받는 교사로 평범하게 살던 50대 여성이 갑작스러운 남편의 고백 이후 불안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평온했던 일상이 파괴되며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주인공 역에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폭탄 달린 경성행 열차에 탄 두 남자
개봉 9월 7일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등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조선인 일본 경찰의 갈등과 우정을 그렸다. 김지운 감독은 과 에 이어 이번 영화로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김 감독과 네 번째 영화를 작업하는 배우 송강호가 조선인 일본 경찰 역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의 주인공 공유가 의열단의 리더를 맡아 미묘한 두 남자의 관계를 연기한다.
◇ 공연(Stage)
부를수록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
일정 9월 10일~10월 30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연출 이종훈
출연 고두심, 김영옥, 이홍렬, 이종원 등
1998년 세종문화회관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한 작품으로, 1990년대 대표 악극 중 하나다. 올해는 원작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과 세련된 무대 연출로 50일간 공연한다. 이전보다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간의 신파형 악극을 탈피하고, 우리 춤과 노래를 보강했다.
아름다운 초상화에 가려진 욕망
일정 9월 3일~10월 29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연출 이지나
출연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 홍서영 등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불멸의 아름다움을 얻고자 했던 도리안의 삶과 깨달음을 노래한다. 체코 프라하의 이국적 풍경에 몽환적인 색감이 어우러진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20년 전 사라진 그날의 사건
일정 11월 6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유준상, 지창욱, 오만석, 오종혁 등
고(故)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와 더불어 청와대 경호관이라는 인물을 통해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전개가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이다. 2013년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 유준상과 지창욱을 비롯해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감독, 신선호 안무 감독이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음악으로 만나는 서울
일정 9월 8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황준연 출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의 620년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관현악 연주회다. 북한산, 청계천 광통교 서화시장, 보신각, 전차 등 서울이 걸어 온 자취와 미래의 모습을 담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리고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오늘의 서울, 산과 들, 강이 어우러진 옛 한양의 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