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31일 사이에 취득한 주택을 2018년 4월 1일 이후 양도하여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로 신고·납부한 경우에는 양도소득세 및 관련 지방소득세를 국세청 및 관할 구청 등으로부터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세법 적용상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었는데, 2023년 12월 26일 기획재정부가 세법에 대한 해석을 명확히 내려줘서 환급이 가능해졌습니다. 아래의 요건에 해당되는지 꼭 확인해서, 잠자고 있는 환급금을 찾아가기 바랍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다주택자(2주택 이상 보유)인 개인이 2018년 4월 1일 이후 보유 중인 2개 이상의 주택 중 조정대상지역의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는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을 적용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배제하여 양도소득세를 신고·납부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양도소득세보다 양도소득세의 부담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양도소득세 중과세 제도
기본세율은 6~45%지만 중과세율은 기본세율에 10~30% 가산 적용합니다. 또한 장기보유특별공제는 기본적으로 양도차익의 2~80%를 차감하여 과세 대상 금액을 낮춰주는데, 중과세율 적용 시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배제하여 양도소득세를 많이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일정 요건 충족 시 양도소득세 중과세가 아닌 일반 양도소득세 납부
다주택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규정이 2018년 4월 1일부터 적용되었습니다. 이 세법 규정과는 별도로 2010년 12월 27일부터 이미 적용되고 있었던 소득세법 부칙 ‘제9270호’의 제14조는 2009년 3월 16일~2012년 12월 31일 기간에 취득한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는 다주택자인 경우에도 일반 양도소득세 기본세율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제도가 도입되었을지라도, 도입 시점에 2010년 소득세법 부칙(제9270호) 적용에 대한 별다른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부칙 규정은 효력이 있으며, 부칙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일반 양도소득세 기본세율이 적용됩니다.
양도소득세 중과세 제도를 도입할 때 많은 사람이 소득세법 부칙 제9270호 규정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동 부칙의 적용이 타당한지에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종전 기획재정부 유권해석(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852, 2018년 10월 10일)은 그럼에도 해당 소득세법 부칙을 적용하지 않고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이 적용되는 것으로 답변했으나, 최근 기획재정부 유권해석(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1422, 2023년 12월 26일)은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이 아닌 일반세율을 적용하라는 최종 답변이 나왔습니다.
한편 기획재정부 답변에 따라 소득세법 부칙 적용으로 양소득세 일반세율이 적용된다면, 장기보유특별공제까지 적용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획재정부 등의 해석은 아직 없습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까지 가능한지에 대해 기획재정부에 질의를 한 상태이며, 추후 답변이 나올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2018년 4월 1일 이후 다주택자인 개인이 조정대상지역 소재 주택을 양도하여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으로 많은 세금을 이미 신고·납부했다면, 기본세율 적용으로 재계산한 일반 양도소득세와의 차액을 국세청에 경정청구(환급 신청)하여 그 차액과 차액의 10%인 지방소득세까지 환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의 요건에 해당되는지 꼭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환급 가능 요건
다음의 요건 ①, ②를 모두 충족한다면 환급 가능할 것입니다.
① 2018년 4월 1일 이후 주택의 양도 시점에 개인인 다주택자(2주택 이상)로서, 조정대상지역(서울 등) 소재 주택을 양도하여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적용으로 양도소득세를 신고·납부하였을 것
② 그 양도한 주택이 과거 2009년 3월 16일~2012년 12월 31일 사이에 취득한 주택일 것
비사업용 토지 환급 가능
과거 부동산 투기 대응 목적으로 사업과 관련 없는 토지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세하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현재는 개인이 비사업용 토지를 양도하는 경우 기본세율에 10%를 가산한 중과세율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2009년 3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31일 사이에 취득한 비사업용 토지인 경우에는 중과세율이 아닌 기본세율을 적용하여 양도소득세를 신고·납부합니다.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으로 신고·납부한 경우에는 국세청에 경정청구하여 그 양도소득세의 차액과 차액에 대한 지방소득세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위장 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480만 명을 넘어선다.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위장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위장 점막이 염증으로 파인 상태를 말하는 위궤양은 40대 이후 중장년층에게 많이 발병하고 있다. 위궤양에 대한 궁금증을 강석형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위벽은 5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점막층은 위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이 손상돼 생긴 염증을 위염이라고 한다. 위궤양은 두 번째 층인 점막하층까지 손상이 진행돼 파인 듯한 형태의 상처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심할 경우 세 번째 층인 근육층까지 노출된다. 즉 위염이 심해지면 위궤양이 될 수 있다.
위궤양의 원인으로는 진통제 복용, 스트레스, 흡연 등이 꼽히는데, 주요 원인은 헬리코박터균(위 점막을 공격하는 세균) 감염이다. 특히 중장년층은 헬리코박터균 감염자가 많아 위궤양 발생 위험도 높다. 서울대학교 의대는 중년층의 70%, 노년층의 90% 이상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고 밝힌 바 있으며, 2018년 위궤양으로 진료받은 환자(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가운데 50대가 22만 5345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60대 19만 8730명, 40대 16만 7948명 순으로 나타났다.
위궤양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슴뼈 아래쪽의 타는 듯한 통증이다. 식욕 부진, 구토, 체중 감소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위염과 증상이 상당히 흡사해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질환의 구분이 가능하다. 위궤양 진단 방법으로는 위장조영술과 위내시경 검사가 있다. 그중 헬리코박터균 조직 검사가 가능한 위내시경 검사를 추천한다.
Q.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십이지장궤양은 젊은 층에서, 위궤양은 중장년층에서 발병률이 높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은 소화성 궤양으로 점막 손상을 유발하는 공격인자(위산 및 펩신)와 보호하는 방어인자(점액 및 중탄산염 분비, 점막 내 혈류, 점막세포의 재생 능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합니다. 십이지장궤양은 공격인자가, 위궤양은 방어인자가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젊은 층은 스트레스로 인한 위산 분비 등 공격인자 활성도가 높으며, 고령층은 노화나 약물 등으로 방어인자 능력이 감퇴되어, 연령에 따른 궤양의 호발 부위가 다른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위궤양은 주로 식후 통증이 나타나며, 십이지장궤양은 공복 시 통증이 주 증상으로 식후에 호전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Q. 노년층이 되면 약물 복용률이 높아지는데, 위궤양 발병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합니다.
A. 약물, 특히 진통소염제와 아스피린은 위궤양의 발병 원인 중 하나입니다. 노년층은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아스피린,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한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젊은 층에 비해 약물에 의해 유발된 위궤양 발병 빈도가 높습니다. 참고로 약물 유발 위궤양은 통증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위장관 출혈이 발생했을 때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위험이 따릅니다.
Q. 위궤양에 걸리면 위암에 걸릴 확률 또한 높아지나요?
A. 위궤양과 위암은 전혀 다른 병이지만, 유발인자가 겹칩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및 잘못된 식습관은 위궤양뿐 아니라 위암도 유발합니다. 위궤양 환자에게서 위암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위궤양과 위암은 육안적인 소견으로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꼭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위궤양은 재발 위험이 높아 2개월간 약물 치료를 받은 뒤 반드시 추적 위내시경 검사를 해야 합니다.
Q. 헬리코박터균을 무조건 치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A. 헬리코박터균은 소화성 궤양뿐 아니라 위암의 주된 유발 요인이므로 특정 금기 사항이 없다면 제균 치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 MALT 림프종,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이 있는 경우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치료 약제의 부작용 위험이 높아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결정해야 합니다. 이미 위축성 위염이 진행된 고령자는 제균 치료를 하더라도 위암 발생률을 낮추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Q. 위궤양 치료는 약물 복용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데, 수술적 치료는 어떠한 경우에 진행하나요?
A. 위궤양은 위산 분비 억제제로 대부분 호전되는데, 주로 양성자펌프억제제를 사용합니다. 약제의 발달로 수술적 치료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궤양 출혈이 내시경이나 혈관조영술로 지혈되지 않거나 깊은 궤양으로 인해 천공이 발생했을 때는 수술적 치료를 진행합니다. 또한 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입니다. 위궤양의 원인을 파악해 교정해야 하는데, 만약 흡연이 원인이라면 금연을 해야 합니다.
Q. 위궤양 예방에 도움 되는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나요?
A. 위궤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음식은 많지만, 대부분 그 효과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우유는 위산을 중화해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으나, 우유에 포함된 단백질과 칼슘이 위산 분비를 촉진해 오히려 궤양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특정 음식을 챙겨 먹기보다는 규칙적인 식습관을 통해 고르게 영양 섭취를 하고, 금연과 적절한 운동으로 전신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도움말 강석형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그의 손과 눈과 귀는 바삐 움직인다. 손목으로 주전자를 돌리며 커피를 내리고, 필터로 빠져나오는 커피 방울을 눈이 빠지게 지켜본다. 방울이 컵에 또르르 떨어져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박이추(74) 명장은 지금 커피와 대화 중이다. 커피 생각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가끔 꿈에서도 커피를 만난다.
“이런 제가 비정상이라거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맛있는 커피는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보헤미안박이추커피공장’에서 커피업계의 큰어른 박이추 명장을 만났다. ‘바리스타 1세대’ 1서 3박(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 가운데 유일하게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 드립커피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다. 박 명장은 어른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치며 “바리스타 1세대로 불리는데, 짐을 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부담이 아닌 숙제를 안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박이추 명장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본점에 출근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쉬는 까닭은 손목과 팔을 우려해서다. 하루에 300잔의 커피를 만든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도 하루 100여 잔을 손님에게 대접한다. 바리스타로 일한 지 4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커피가 탄생했을까. 그럼에도 명장은 아직 커피에 대해 다 깨우치지 못했노라고 겸손한 고백을 한다.
“몸, 마음, 커피가 하나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아직 맛있는 커피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족,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커피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야만 하죠. 내가 발전해야 커피 맛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 강릉, 그리고 울진
“커피를 배우지 않았다면 목장을 운영하고 있겠죠?” 갑자기 웬 목장이냐 하겠지만, 박이추 명장의 본래 꿈은 낙농인이었다. 재일교포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와 경기도 포천에서 2만 5000평의 목장을 일궜다. 이후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에서도 소를 키웠지만, 모두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시금 도시에 살고 싶어져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려면 기술 하나쯤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바로 커피 만드는 방법이다.
“외식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를 배우다가 우연히 커피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커피에 대한 마음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죠. 커피는 커피콩 수확, 로스팅, 핸드드립으로 내리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커피나무를 볼 때가 가장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연을 좋아하나 봅니다. 2018년 라오스에 6000평짜리 커피 농장을 세웠습니다. 보통 3000평에 2000~3000그루를 심는 편입니다. 코로나 후에 못 가봤는데 나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네요.”
1988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박이추 명장은 서울 혜화동에 ‘가베 보헤미안’을 열었다. 이후 고려대 인근인 안암동으로 옮겨 10년을 보냈다. 믹스커피가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던 1990년대. 박이추의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새롭고 고급스런 커피 맛이 입소문 나면서 카페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 카페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컸지만, 정작 커피 만드는 실력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손님을 만났지만, 서울에서 카페 할 때 만난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이었는데, 의사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한 달에 한 번은 저를 찾아왔죠. 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셨기에 커피 내리는 입장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던 박이추 명장은 이번에는 강원도로 내려갔다. 강원도 곳곳을 전전하던 그는 2004년 지금의 본점인 카페를 차리며 강릉에 정착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강릉까지 찾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더해 2009년 강릉 커피축제가 개최되면서 강릉은 현재 커피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사연으로 강릉 커피의 원조로 통하는 그는 “저는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는 서울에 두 곳(상암동·여의도), 강릉에 세 군데 있다. 연곡면의 본점, 사천면의 커피공장, 그리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커피를 배운 아들 박태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경포점. 이처럼 강릉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박 명장은 2025년 경상북도 울진군으로 옮겨갈 계획을 갖고 있다. 그곳도 그가 가면 커피로 유명해질지 모를 일이다.
“강릉은 제게 특별한 곳이고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진으로 가려는 이유는 강릉이 싫어져서가 아니에요. 서울을 떠나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아닌 커피와 대화하고 싶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커피와 가까워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년이면 삼척~ 울진~포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다고 해서 조금 걱정입니다. 하하.”
행복을 주는 사람
대한민국은 어느새 커피 공화국이 됐다.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 세계 소비량(152잔)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박이추 명장은 “현대인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 전환도 됩니다.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저는 하루에 커피를 2~3잔 마십니다. 커피 마실 때도 물론 좋지만, 커피 생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로 행복을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제가 만든 커피로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또 행복 아니겠습니까?”
커피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커피 산업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커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손을 거치는 모든 커피에 애정을 쏟는 박이추 명장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지점이다.
“제게 커피를 배운 제자들도 커피를 돈으로만 볼 때가 있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커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마음이 급해져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카페를 열게 되죠. 커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카페를 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페 사장이기 이전에 바리스타로서 커피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위해서 커피를 만듭니다. 그저 주인공인 커피가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니까요.”
로봇 바리스타의 등장에 대해 박 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커피를 한땀 한땀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사람으로서 허무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AI가 우수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니 신기하다”면서 “맛은 사람만큼 안 날 수 있지만, 일손 해결 등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로봇 바리스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커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은 마음을 잘못 품은 것이기에 그 점을 질책한 것이라 해석된다.
박이추 명장은 커피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커피를 못 만드는 날은 아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앞으로도 커피를 인생의 친구로 두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명장은 어느 책에서 본 ‘맛있는 커피는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꾼다’는 문장을 언급하며, “나는 이 말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 말이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박 명장은 이미 증명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7월 미국 CNN은 ‘굿바이 어린이집, 헬로 요양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위기 문제를 보도했다. 당시의 기사 제목은 실상을 그대로 담았다. 어린이집·유치원 등 영유아 시설이 문을 닫은 그 자리에 요양원·주야간보호센터 등 노인 요양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한 초등학교 옆에 있는 학원 상가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아이들로 붐빌 것 같은 이곳에 ‘우리함께요양원 포유 수원점’(이하 ‘우리함께요양원’)이 있다. 갑작스런 요양원의 등장이 뜬금없다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이곳은 과거 정원 200명의 대형 유치원이었다.
과거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놀던 놀이터는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 됐고, 동요 대신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신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계단은 이제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고, 대신 그 옆에 생긴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이 됐다.
저출산·고령화로 타의 반 변신
매년 2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졸업식이 열린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원내의 마지막 졸업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했다. 출산률 0.78명 시대.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원장들은 직격타를 그대로 맞았다. 급격히 줄어든 원생 수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진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폐원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2018년 3만 9171개소에서 2022년 3만 923개소로 8248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유치원은 9021곳에서 8562곳으로 줄었다. 반대로 노인 복지시설은 2018년 7만 7395개에서 2022년 8만 9643개로 5년 사이 1만 2248개나 늘었다. 노인 복지시설은 요양원, 재가노인복지시설, 경로당, 노인복지관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바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손주가 다니던 유치원이 할머니의 노치원이 됐다’는 말은 통계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제출받은 ‘장기요양기관 전환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운영되던 곳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한 사례가 총 194건인 것으로 확인된다.
형태별로는 요양원 같은 입소시설 89곳, 주야간보호·방문요양센터 같은 재가시설이 105곳이다. 시도별로는 광역도 기준 경기도가 36곳으로 가장 많이 전환됐다. 이어 경상남도(25곳), 충청남도(20곳) 순이다. 광역시는 광주(17곳), 인천(15곳), 대전(9곳) 순으로 나타났다.
전환사례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22년(50건)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2023년은 9월 말 기준 전환사례 34건(17.7%)으로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의 건수가 이미 2020년과 2021년을 뛰어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바뀐 사례도 나왔다. 2021년 11월 충북 충주시, 2023년 8월 전북 정읍시에서는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됐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 실감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7년 말 735만 6000여 명에서 2022년 말 926만 7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고령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주·야간보호기관 약 3만 1000개소, 입소시설 약 1만 6000개소 등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 인구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질 좋은 공립 요양시설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영주 의원은 “최근 저출산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 장기요양시설 수요가 증가하면서, 어린이집 등의 요양시설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출생 아동이 급감하고 있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는 장기적으로 유치원 폐업과 노인 돌봄시설 수요를 조사하여 적정 규모의 전환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신속하게 업종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건축법상 건축물은 9개 시설군으로 나뉜다. 영유아 시설과 노인 요양시설은 모두 6군인 ‘교육 및 복지시설군’ 중 ‘노유자시설’에 속한다. 이에 따라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업종 전환을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입장에서는 돌봄 대상이 영유아에서 노인으로 바뀔 뿐 업무 자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노인 요양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조건은 의료면허 소지자(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등), 요양보호사 취득 후 경력 5년, 사회복지사 2급 또는 1급 중 하나 이상 부합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자격과 경력은 직접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대부분의 영유아 시설 원장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없더라도 그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폐원을 앞둔 원장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는 추세다.
“우리도 전환” 리모델링 문의 늘어
‘우리함께요양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곳을 운영하는 지인그룹의 김창환 대표는 20년 넘게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해왔다. 현재 노후 건물을 요양시설로 개발·운영하는 데 주목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 요양원을 세우면 성공하겠다고 판단했다. 유치원이 폐원한 지 2년 넘었는데 매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창환 대표는 “이곳 인근 아파트, 빌라 등을 합치면 1만 세대 이상 거주한다. 고령화 시대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 봤고, 요양시설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의 거부 반응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 요양원의 장점은 초등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서 정겹고 야외 텃밭과 휴식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면서 “보통은 영유아 시설 원장이 노인 요양시설로 사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80% 이상이다. 나머지는 나처럼 요양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장들의 컨설팅 문의가 많이 오는데, 요즘은 요양원보다 주야간보호센터를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인 요양시설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노인 요양시설은 설계 기준이 있어 리모델링을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 요양시설은 입소 어르신 1인당 연면적 23.6㎡(약 7.14평), 1인당 침실 면적 6.6㎡(약 2평)로 정해져 있다. 또한 지하층에는 부대시설 외에 침실을 둘 수 없다.
‘우리함께요양원’의 경우 유치원 시절 연면적이 1420㎡(약 430평) 규모였는데, 지하층만 660㎡(약 200평)에 이른다. 이에 따라 김창환 대표는 3층 상가 전용 130㎡(약 40평)를 추가로 매입해 정원 49명 수용이 가능한 요양원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요즘은 영유아 시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수도 많이 줄어 학원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 상가 학원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려온다”면서 이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계속되면 요양원의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노인 요양시설에는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도 이동이 편하도록 주 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엘리베이터 설치는 리모델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는 부분이다. 김 대표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인데 이곳은 도저히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외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이에 따라 대문부터 내부로 들어오는 동선이 유치원 때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창환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선택한 원장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한편, “어쨌거나 요양 사업을 시작하는 것인데, 복지 사업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고 자산이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단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시설 전환을 원하는 이들은 영유아 시설 원장으로 쌓은 경력과 돌봄의 지혜를 기반으로 노인을 대할 때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경영자를 할 것인지, 운영자를 할 것인지 정하고 비전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요양 사업을 시작하면 어르신을 섬겨야 하고 직원을 모셔야 합니다. 영유아 시설 교사들과 비교해보면 요양시설 재직자들은 연령대가 높은 편입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직원을 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1~2년 지나면 순환 구도가 만들어져 행복한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가 자녀가 나중에 부모의 뜻과 달리 행동할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선뜻 재산을 이전했다가 성급한 결정이었다며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을 잘 활용하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아들(A씨)이 아버지(B씨)의 어린 시절 유모였던 90대 노인을 내쫓으려다 패소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유모는 과거 투병 중인 모친을 대신해 B씨 5남매를 키우며 가사 노동을 했다. 나이가 들어 그 집에서 나온 뒤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치매마저 앓게 됐다. 안타깝게 여긴 B씨는 친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준 유모의 거처로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오피스텔은 아들 A씨 명의로 매수했는데, 유모가 사망하면 그에게 물려줄 목적이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이 전문직으로 일해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며, 유모에게 오피스텔을 비워주고 지금까지 밀린 임차료 약 1300만 원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B씨는 유모 편에 서서 아들의 청구에 대응하는 한편, 아들 명의로 오피스텔이 등기된 것이 무효라며 별도로 소를 제기해 아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시켰다. 기른 정을 소중히 여긴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준 불효자였던 셈이다.
부양의무와 증여
민법에 따르면 증여자에 대해 수증자(증여를 받은 자)가 부양의무가 있는 경우에, 그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자는 그 증여를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녀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부모와 증여계약을 체결한 자녀가 그 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모는 그러한 사정을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경우,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미 자녀 앞으로 부동산 등기를 이전했다면 증여를 해제하더라도 다시 등기를 돌려받을 수 없다. 결국 해당 증여의 해제는 그 증여계약의 이행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만 실효성이 있다.
불화를 예방하는 효도계약서 작성
이러한 난점을 방지하고 불화를 좀 더 현명하게 예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이른바 ‘효도계약서’ 작성이다. ‘효도계약’이라는 용어가 민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증여계약을 체결하면서, 자녀에게 효도나 충실한 부양 등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조건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흔히 ‘효도계약’이라 일컫는다.
case 01
C씨는 아들에게 2층 주택과 대지를 증여하면서 ‘본건 증여를 받은 부담으로 부모님과 동거하며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다. 아들은 위 부담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한 아버지의 계약 해제 기타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 해제의 경우 즉시 원상회복 의무를 이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증여를 받은 뒤 아들은 급속하게 건강이 악화된 어머니를 간병하지 않고, 주택 1층에 살면서도 2층에 사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오지 않는 등 부모를 충실하게 부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아들에게 증여받은 재산을 원상회복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증여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증여를 받는 상대방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증여계약은, 계약 당사자 일방이 아무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전형적인 증여계약과 달리 쌍무계약(당사자 쌍방 모두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그에 따라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도 계약 해제의 영향이 미친다. 즉 증여를 원인으로 이전등기까지 마친 부동산이더라도 그 부동산 등기를 원상회복시킬 수 있다.
효도계약서의 양식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취지가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부담을 명확하게 하려는 것인 만큼, 증여재산의 내용 외에도 자녀가 이행하려는 부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이 좋다. 부모에게 지원할 생활비 액수, 부모의 주거 및 생활환경에 대한 지원 방법, 정서적인 교류 방법과 횟수 등을 들 수 있겠다.
효도와 기여분
자녀의 효도는 상속재산 분할 사건에서 긍정적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민법은 기여분 제도를 두고 있다. 기여분 제도란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 그에 대해 상속재산 분할 시 유리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기여분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당사자가 기여분 청구를 해 그에 관한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부양의무가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수준의 동거·간호만으로는 법원에서 기여분이 인정되기 어렵다. 기여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여 행위가 있어야 한다. 자녀의 동거·간호를 이유로 대법원에서 기여분을 인정한 사례로는, 딸이 결혼 후에도 거의 30년간 계속 어머니를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모시면서 부양하고, 노약해진 어머니를 대신해 약 20년간 어머니의 유일한 수입원인 임대주택 수리 등 관리를 계속하였으며, 치료비를 계속 지불하면서 간호를 계속한 사안을 들 수 있다. 대법원은 다른 자녀들과 달리 해당 자녀가 어머니와 장기간 동거하면서 단순히 생계유지 수준을 넘어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생활수준으로 부양함으로써,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부양의무 이행의 범위를 넘는 특별한 부양을 하였다고 판단했다.
기여분의 인정 여부 및 그 내용은 기여의 시기와 방법, 정도, 전체 상속재산의 규모, 실질적 공평 등 일체의 사정을 고려해 결정된다. 기여분은 통상 일정한 비율(‘상속재산의 %’) 또는 일정한 금액(‘상속재산 중 원’)과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다. 기여자의 기여분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전체 상속재산에서 기여분을 제외한 재산을 기준으로 법정상속분에 맞추어 나눈 다음 기여자에게 다시 기여분을 가산한 몫을 주도록 분할함으로써 결국 기여자에게 더 많은 상속재산이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기여 행위를 한 자녀라면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필요가 있고, 증빙자료 역시 충분히 확보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당사자의 기여분 청구가 없다면, 설령 법원이 특별한 기여 행위가 있다고 보는 사안이더라도 직권으로 기여분을 정할 수 없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효도와 유류분반환청구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서도 자녀의 효도가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유류분 제도란 상속인들이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을 유류분으로 산정해 유류분을 침해하는 범위 내에서는 그 재산 처분의 효력을 부인함으로써 법정상속인에게 일정 비율의 재산을 보장해준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유언으로 재산을 처분하여 증여나 유증을 받은 사람이 특별수익을 얻더라도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다. 유류분 제도는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인의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보장 등을 목적으로 한다.
case 02
G씨는 어머니가 72세 남짓이던 1984년부터 107세 나이로 사망한 2018년까지 34년간 동거하며 부양했다. 그동안 어머니의 치료비로 약 1억 2000만 원을 지출했고, 아버지가 보증채무를 부담하여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자신의 돈으로 보증채무를 대신 변제했다. 반면 다른 자녀들은 그동안 어머니와의 교류를 사실상 단절했고,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G씨가 아버지의 채무를 대신 갚아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2005년에 피고에게 토지를 증여했다. 어머니 사망 후 다른 자녀들은 G씨를 상대로 토지 증여에 대해 유류분반환을 청구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를 받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고,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에 상속인의 위와 같은 특별한 부양 내지 기여에 대한 대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의 어머니에 대한 기여나 부양의 정도, 어머니의 의사 등을 고려할 때 어머니가 피고에게 토지를 증여한 것은 피고의 특별한 기여나 부양에 대한 대가의 의미로 봄이 타당하는 의미다.
오히려 증여받은 토지를 유류분반환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인 형평을 해치는 결과가 된다고 하면서 토지 지분의 반환을 청구한 원고들에 대해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따라서 특별한 기여나 부양을 한 자녀라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증여 등이 반환청구 대상인 특별수익에서 애초에 제외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효도는 여러 유형의 상속분쟁에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효도와 상속·증여는 가족 간의 사랑과 법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물론 효도나 가족 간의 사랑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이 이처럼 부양의무를 불이행하는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고, 부모님을 잘 부양하는 자녀에게 유리한 효과를 부여하는 것을 보면, 법은 ‘최소한의 도덕’으로서 가족 사이의 자연적 애정 관계, 원만한 유대 관계를 나름대로 세심하게 지지해주고 있는 셈이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가 암 환우를 돌보는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 교육생을 모집한다.
이번 교육은 3월 12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오후 3시 30분까지 6시간씩, 총 10주간 60시간 이론교육과 심화교육(14시간), 임상교육(30시간)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진행되며, 매 강의마다 호스피스 현장전문가들이 강연자로 나선다. 전 교육 과정 이수 후에는 임상에서 죽음 앞에 고통받는 환우들과 가족들에게 전인적 돌봄을 제공하는 호스피스전문 봉사자로 활약할 수 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는 설립 후 25년간 제56회까지 총 2334명의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를 배출했다. 현재 약 200여 명은 지역사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호스피스 현장에서 신체적 돌봄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심리적, 영적 돌봄으로 봉사하고 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 김환근 회장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워봉사자는 단순히 신체 보조를 하는 것을 넘어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을 영적으로 지지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며 “이번 자원봉사자 교육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인적 케어를 제공할 수 있는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 자원봉사자 교육(제58기)은 3월 5일까지 신청가능하며, 만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편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의원은 2015년, 2017년 보건복지부 선정 최우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 2018년 가정형 호스피스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됐다. 2023년에도 보건복지부 평가 최우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등급을 받았다.
“틀에 박힌 예술에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온 세상에 있다”던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백남준(1932~2006).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미디어아트의 등장으로 현실이 되었고, 여전히 전 세계 예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불어 백남준을 기억하는 중장년 세대와 오랜 팬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현시점에서 그는 어떤 소식으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있을까?
“왜 조국을 놔두고 외국에서만 활동합니까?”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외국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
“백 선생님은 왜 예술을 하십니까?”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백남준이 한국전쟁 발발 후 일본으로 출국해 독일, 미국 등 세계 곳곳을 떠돌다 34년 만인 1984년에 다시 고국을 찾았을 때 어느 기자와 나눈 대화다.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국력이나 국제적 위상이 지금보다 크게 부족했고, 문화 분야에서는 내세울 인물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극소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백남준은 특유의 파격적인 예술관으로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Topic 1 생애 최대작 ‘다다익선’, 보존·복원 사업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개관하면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Site-specific Art)으로 제작됐다. 1986년 제작에 돌입해 1988년 완성됐고, 매일 8시간가량 영상이 상영됐다. 2002년에는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모니터 및 각종 부품의 노후화로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다 결국 2018년 2월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보존·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모니터의 외형은 유지하되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로 제작·교체했으며, 후대 전승을 위해 전원·냉각설비를 교체하고 영상작품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등 이 과정을 기록한 약 600쪽의 백서를 지난해 12월 발간했다.
Topic 2 백남준기념관의 존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역과 동묘앞역 사이에 있는 백남준기념관은 한때 폐관 위기에 놓였다. 백남준기념관은 서울시가 백남준이 18세까지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1960년대 한옥을 사들여 문화 전시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창신동 집은 백남준에게도 남다른 의미였던 듯하다. 훗날 그가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의 대담에서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한국을 떠나기 전 모두 흡수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말로 미루어보아 예술적 원천은 바로 창신동이었을 테다. 백남준은 2004년 마지막 작품 발표를 끝으로 활동을 마치며 “어려서 자란 창신동에 가고 싶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시립미술관은 열악한 전시 환경과 관람객 저조 등의 이유로 백남준기념관의 문을 닫기로 했다. 또한 백남준기념관이 그의 생가가 아닌 유년기 시절 거주지로 추정되는 일부 집터에 건립된 한옥을 개조한 것이라 건물 자체의 역사적 의미가 크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후 한겨레신문의 ‘[단독] 오세훈 시장 재개발 바람 속…백남준 옛 집터 기념관 문 닫는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여러 매체에서 기념관 폐쇄를 규탄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 요청 사항이 아닌 자체 추진 사업이고, 기념관이 위치한 구역은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후 “공간이 협소하고 항온·항습이 되지 않는 등 전시에 불리한 환경을 점차 개선할 예정”이라며 “백남준 관련 작품 전시 및 연구·교육을 더욱 심화해나가겠다”고 운영 방침을 발표했다.
Topic 3 최초 다큐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에 관한 최초의 영화가 그의 사후 17년을 맞은 2023년 개봉했다. 준비부터 제작까지 5년이 걸린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어맨다 킴이 해결되지 못한 저작권 문제를 다방면의 조사와 지난한 설득을 거쳐 탄생시켰다. 배우 스티븐 연이 총괄 프로듀서 및 내레이션을 맡았고, 영화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테마곡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백남준의 다양한 면면을 담아냈다. 백남준은 1974년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단어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될 세상을 내다보았고, 1984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통한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해 모든 예술가가 곧 채널이 되는 미래를 감지했다. 인터넷, 유튜브, SNS 그리고 크리에이터까지 현시대를 꿰뚫어본 백남준의 천재적인 모습은 동시대를 함께 산 예술가들, 그에게 깊이 영향을 받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봄이 오기 전 변덕스러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계절적 변화가 큰 시기일수록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요즘 같은 겨울철 자주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심혈관 질환을 꼽을 수 있다.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이 전신의 혈관을 수축시키면서 뇌졸중 등 증상을 유발하기 쉬운 탓이다. 따라서 고지혈증·고혈압 등 위험 요인을 갖고 있는 시니어라면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특히 최근 앞이 잠깐 보이지 않거나 원인 모를 어지럼증이 지속된 경우가 있다면 뇌졸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잠깐의 증상이 ‘미니 뇌졸중’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니 뇌졸중의 정확한 질환명은 ‘일과성 뇌허혈 발작 및 관련 증후군’으로, 뇌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뇌 조직 손상으로 인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를 말한다. 어지럼증, 팔다리 둔해짐, 언어장애, 시야장애, 두통 등 증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미니 뇌졸중 환자는 2018년 11만 5704명, 2022년 12만 1353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다발하는 경향을 보인다. 60대 비중이 32.4%로 가장 높았으며, 70대와 50대가 각각 28%, 16.6%로 그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미니 뇌졸중 증상이 본격적인 뇌졸중의 전조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증상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치료의 핵심은 골든타임 엄수와 후유증 관리다. 혈류가 막힌 빈도와 시간이 늘어날수록 회복이 어렵고 합병증도 심해지는 탓이다. 또한 적시에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하더라도 재활을 통해 후유증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좋은 예후를 보인다.
적절한 치료와 함께 한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을 ‘중풍’(中風)이라 칭하며 치료를 해왔다. 먼저 의식장애와 마비, 언어장애 등 증세 악화를 방지하는 데 집중한다. 우황청심원을 투여하고 입술 위의 ‘인중’과 정수리 부근의 ‘백회’,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등 혈자리에 침을 놓아 뇌혈류 증가를 촉진시킨다. 이후 환자의 체질과 상태에 맞는 한약 처방을 내린다.
특히 재활 단계에서는 공진단이 좋은 효과를 보인다. 황제의 보약이라고도 불리는 공진단은 허약 체질을 보강하고 기혈 흐름을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뇌세포를 재생시켜 정신적인 피로 해소는 물론 뇌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국제학술지 ‘영양소’(Nutrients)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공진단이 뇌신경 재생 관여 물질인 ‘시르투인1’(Sirtuin1)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르투인1이 활성화되면서 신경성장인자(NGF)와 뇌유래 신경영양인자(BDNF)의 발현이 증가하는 등 신경세포의 성장이 관찰됐다.
그러나 항상 치료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질환에 대한 예방이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혈액 속 노폐물을 배출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더불어 고단백∙저염식 식단으로 식습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철저한 자기 관리가 뇌졸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청룡의 해다. 김대환(60)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생애 또 한 번 청룡의 해를 맞았다. 서예가 취미인 그는 매년 초 휘호를 쓴다. 올해의 휘호는 세심자신(洗心自新). ‘마음을 닦아 새로워지다’라는 의미다. 잘 닦아낸 개인의 삶을 사회와 나누고 싶다는 소망도 담겼다. 그리고 그 소망을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이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봄 김대환 사무총장은 노사발전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퇴직 후 반년 만에 제7대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터에 복귀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국제협력관•근로기준정책관 등을 지내며 회갑 생의 절반은 ‘고용노동부’의 명함을 지니고 살았다. 덕분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의 업무가 낯설지는 않았다. 익숙함은 장기로 발휘하되, 늘 새로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나날 속 어느덧 한 해가 저물었다.
“작년 봄 취임식 때 직원들과 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가 밝았네요. 취임 후 5개 지사, 13개 중장년내일센터, 6개 차별없는일터지원단을 방문해 직원 간담회를 열어 업무 현황을 들어봤어요. 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재단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봤죠. 결국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2011년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 시절 만들었던 ‘한 권으로 통하는 고용노동 정책’이 떠올랐어요. 지금까지 발행되는 책인데, 한 권으로 고용노동부의 정책과 제도를 살펴볼 수 있죠. 재단에도 그런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김 사무총장이 강조하는 소통과 협업의 대상은 본부 내 부서들을 비롯해 지사 및 유관기관, 고객까지 아우른다. 가령 사내에서 부서 단위로 함께 일할 때 다른 부서의 업무도 알아야만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하다.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은 전반적인 사내 업무를 한눈에 조망하는 일종의 참고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재단 직원들뿐만 아니라 유관기관이나 고객인 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재단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손쉽게 알리고, 찾는 발걸음도 늘릴 수 있다고 봐요. 지원책이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면 유명무실하잖아요. 또 직원 간 공감의 장 형성을 위해 직원 소식지 ‘공감레터 : 우리는…’도 매주 발간하고 있습니다. 나름 지난해에는 소통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보고, 올해는 협업 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평생현역 사회를 위한 일터 혁신 필요해
지난해 6월, 김 사무총장은 2022년 지역 단위 총괄 조직으로 신설된 5개 지사에 1~3급 직원 4명을 지사장으로 발령하며 기능 정상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중앙노동위원회,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해운조합 등과 업무 협약을 맺으며 사업 연계 및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관 간 협업 사업 중에는 ‘청춘문화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업으로 노사발전재단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뜻을 모아 전국 13개 중장년내일센터(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2023년 명칭 변경)에 청춘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청춘문화공간은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이 한 공간에서 고용과 문화 서비스를 동시에 누리게끔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여가·문화생활이 겸비돼야 활기찬 노후가 가능하다고 봐요. 때론 그런 여유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직업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죠. 과거보다는 일자리가 더 다양해졌고, 취미를 살려 소득을 얻을 기회도 많아졌잖아요. 퇴직 후 뭘 할지 고민이라면, 이런 강의를 통해 평생 일자리를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해보셔도 좋겠어요.”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 은퇴 이후에도 평생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이는 개인의 영역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고령 인력 활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고용과 노동에 관련한 현안을 다뤄온 김 사무총장 역시 같은 고민을 하던 터였다.
“OECD는 2018년 고령층 미취업 인구 중 25%가 취업하면 2050년에 1인당 GDP가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2023년 국내 고령층 미취업자 636만 명 중 3분의 1이 장래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고령층 취업자의 93%는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고요. 고령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퇴직한 중장년을 취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평생직장’보다는 ‘평생현역’이라는 맥락에서 중장년에 대한 지속적인 직업 능력 개발과 취업지원 시스템을 마련해나가야 해요. 기업에서도 고령층이 일하기 쉬운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 방식의 도입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터에도 고령화에 따른 혁신이 필요한 셈이죠.”
고령 인력이 지닌 가치, 허비하지 않아야
상당수 기업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근무 방식에 변화를 감행했다. 그러나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작업환경 및 고용문화 개선, 장년 고용안정 체계 및 평생학습 구축 등에 대한 일터혁신 컨설팅을 무료로 시행중이다. ‘재취업지원 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도 제작해 기업 상황에 맞게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결국 고령 인력 활용의 실마리는 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고견이다.
“고령 인력 활용에서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OECD에 따르면 고령자는 경험과 지식 활용뿐만 아니라 청년과의 기술 보완을 통해 팀 성과 및 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고령자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숙련된 인재’라고 인식하고, 다양한 연령의 노동력을 통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업의 성과를 제고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채용 시 연령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연령과 경험 및 전문성에 기반한 고용문화를 장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5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연령차별은 2018년 한 해에만 미국 경제에 8500억 달러의 손실을 발생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또한 그는 일본 고용정책 사례도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생애현역사회’를 기본 뱡향으로 한 고령자 고용정책이 이뤄지고 있어요. 정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기업이 고령자 고용연장을 위한 고용확보조치 노력의무 및 다양한 조성금 제도를 통해 아주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의무화했다는 겁니다. 그런 토대를 만든 덕분에 법정의무를 만들었을 때도 기업이나 노동자에게 부담 없이 작용할 수 있었던 거죠.”
아울러 김 사무총장은 일터혁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겠는데요. 일터혁신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서도 노사가 함께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근로자들이 중심이 되는 참여적 활동을 통해 조직과 제도, 문화와 관행을 바꾸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 재단의 서비스도 이용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개인의 인생이 사회의 쓸모가 되도록
김 사무총장 역시 재단에 몸담으며 우리 사회 고령 인력 활성화와 일터혁신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다. 아울러 임기를 다한 이후에도 ‘평생현역’으로의 삶을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펼쳐가고자 한다.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퇴임하고, 평소 찾던 속리산 법주사에 딸린 한 암자의 주지스님을 뵈러 갔어요. 당시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이제까지 공직에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 일했는데, 앞으로는 보너스 인생을 산다고 여기고 더욱더 본격적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 하시더군요. 일단 재단에 머물면서 그 소임에 최선을 다할 테고요. 그 경험까지 아울러서 제가 지닌 것들을 사회에 잘 전수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 수많은 중장년이 스스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바랐다. 과거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잘 돌보고 닦아나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면 생애 전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가 쌓아온 것들을 사회에 쓸모 있게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현재의 저로 예를 들면 지나온 60년의 삶과 더불어 앞으로의 여생도 녹아 있는 셈이죠. 그 삶은 나라는 개인뿐 아니라 가깝게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영향을 끼쳐요. 멀게는 지면을 통해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도 자그마한 생각을 던져줄 수 있고요.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나의 과거, 미래, 현재를 아우르는 완연한 삶을 잘 닦아나가야겠습니다.”
△노사발전재단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전국에 13개 중장년내일센터를 운영한다. 중장년층의 생애경력설계, 재취업 및 창업 등 일자리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기초역량 증진 교육 ‘내일부스터’, 일대일 심층상담 방식으로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여 경력설계 컨설팅을 제공하는 ‘개인별 경력개발서비스’ 등 중장년 대상 체계적인 경력 관리를 지원한다. 만 40세 이상 중장년이라면 평생현역 활동을 위한 전직·재취업 지원, 산업별 특화서비스, 사업주지원 패키지, 청춘문화공간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언제나 청춘, 오늘도 젊음을 향해 질주하는 정찬(53)에게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연예계 대표 라이더’로 통하는 그는 바이크 라이딩뿐만 아니라 스킨스쿠버 다이빙, 사격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이것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마음속에서 꽃핀 철학이 몸과 마음 모두 단단한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찬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품 운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이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다. 간간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주요 배역을 연기한 것은 2019년 KBS 2TV 일일드라마 ‘왼손잡이 아내’가 마지막이다. 일이 없는 괴로움과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 과거 ‘한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불리며 청춘스타로 인기를 끈 시절도 있었으니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열심히 다잡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선물처럼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달 첫 방송된 KBS 2TV 일일드라마 ‘피도 눈물도 없이’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활동 기지개를 편 그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운 좋게도 데뷔 이후 계속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한 해에 세 작품을 한 적도 있었죠. 그래서 지난 고비의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염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끙끙거리면서 배앓이를 하는 그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아픔이라는 고비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픔의 감정에 휩싸이고 우울해집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다른 탈출구를 찾고, 공부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찾은 마음이 건강해지는 답은 감정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모든 것은 나한테서 시작되거든요.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황도 결국 내 판단일 뿐이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가지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찬은 다양한 아웃도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이것이 건강하게 천천히 늙어가는 ‘슬로 에이징’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미 생활이나 운동을 하다 보면 감정의 기복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의 유별난 취미 생활이 알려진 것은 2018년 국내 최초 실탄 예능 ‘방탄조끼단’을 통해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알고 보니 그의 밀덕 역사는 길었다. 1995년부터 BB건(BB탄 총)으로 즐기는 레저 스포츠인 에어소프트 게임을 즐겼다고.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아웃도어 취미 생활도 ‘질주’
“드라마 데뷔작인 1995년 MBC ‘TV 시티’에서 스턴트맨 영태 역을 맡았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안 배웠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촬영을 위해 배우게 된 거죠. 그런데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2002년에는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해서 계속 활동했어요. 저에게 수업을 받은 연예인 제자도 몇 명 있습니다. 저는 바다라는 존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휴지기 때도 다이빙 여행을 다녔는데요. 덕분에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찬의 대표적인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오토바이 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인 수준이다. 정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OB찬_일기’를 통해 라이더로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바이 리뷰를 하거나 오토바이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전해준다. 여기에 더해 이번 달에는 유튜브 채널 ‘임볼든’에서 그가 MC를 맡은 라이더 관련 토크쇼 콘텐츠‘정찬의 술레바퀴’가 공개된다.
“바이크 라이딩 취미는 30대 중반부터 갖게 됐어요. 이제는 대중들도 취미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존중해주고 좋게 봐주신다고 느낍니다. 물론 위험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바이크를 탈 때는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해야 합니다. 크게 한 번 사고를 당한 적이 있지만, 안전 장비를 하고 있었던 덕에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죠.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는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는데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병원에 갈 때 아이들을 스쿠터 뒤에 태우죠. 아이들 스스로 스쿠터 탈 때는 헬멧을 꼭 써야 하고, 반소매 옷은 안 된다는 걸 알고 딱 준비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줄 때도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어요. 아이들이 안전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취미 생활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도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실장·사장 등 고위 엘리트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방영 중인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YJ그룹 회장 윤이철 역을 맡고 있다. 액션 연기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는 언젠가 한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 속에서 제복을 입어본 적이 아예 없습니다.(웃음) 당연히 액션물도 좋고, 장르물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소비된 이미지가 있으니, 계속 그 이미지로 저를 불러주신다고 생각해요. 이번 ‘피도 눈물도 없이’도 회장님 역할이니까 그동안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티스트이고 허당스러운 캐릭터라는 거예요. 작가님께서 ‘젊었을 때 반짝이던 미남 배우가 와서 철없이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캐스팅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작품 출연에 신나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악역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 ‘퀸’, ‘오만과 편견’ 등에서 악역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이제 중년으로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은 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도 50대에 액션 영화에 도전했고, 60세가 넘어서 전성기를 맞았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늦깎이 아빠의 버킷리스트
정찬은 또 하나의 슬로 에이징 방법으로 ‘늦은 육아’를 꼽았다. 42세에 아빠가 됐다는 그는 “첫딸은 열 살이고 둘째인 아들은 아홉 살이다. 친구들의 자녀는 벌써 성인이다”라면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인지 젊게 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2015년 이혼한 정찬은 올해 8년 차 ‘싱글대디’다. 방송과 SNS에서 보이는 아버지로서 그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싱글대디로서 부족한 부분은 많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친구들이 아빠가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 그래요. 저 스스로도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들하고 장난도 잘 치지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분명하게 짚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감정이란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싱글대디에 대해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정찬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한 적도 있겠지만, 내색을 많이 안 한 것 같다. 주말마다 엄마를 자주 만나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혼 생각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취미를 즐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일상이 행복하다. 연애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육아가 또 다르고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정찬. 최근에는 드론 강사 자격증, 무인 헬리콥터 교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남았다. 첫 번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 두 번째는 손자·손녀를 품에 안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적으로 소화해야 할 역할을 ‘배우’와 ‘아빠’라고 꼽은 사람답다.
“당장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한 이력도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손자·손녀를 안아보는 게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적령기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결혼을 늦게 하겠죠.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요. 더욱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을 가능성도 있죠. 제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지만, 아프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오토바이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정찬은 인생 모토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은 제2의 탄생이다’라고 표현했다. 잘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도 거론된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법이다. 이를 몸소 입증한 정찬은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40~60대는 자신에 대해 심오하게 사색하고 고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사람들과 다툴 때 ‘내가 왜 그럴까’라고 원인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나를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죽음이라는 제2의 탄생이 다가올 때까지 한 발짝씩 계속 걸어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