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과 부산 지하철 안내방송, 1980~1990년대 외화 더빙,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봉미선. 수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성우 고(故) 강희선이 영면에 들었다. 향년 65세.
강희선 성우는 지난 4일 오전 2시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발인은 6일 오전 7시 40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으며, 장지는 용인공원 아너스톤이다.
고인은 지난 2021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 암이 간으로 전이돼 항암 치료를 이어왔다. 투병 중에도 녹음실을 지키며 성우 활동을 이어간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난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그는 “항암 치료만 47번 받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는 오늘이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며 “성우라는 제 직업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생인 강희선 성우는 1979년 TBC 성우극회 10기로 데뷔했다. 방송 통폐합 이후 KBS 15기 성우로 활동하며 40여 년 동안 한국 성우계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활약했다. KBS 성우극회장과 한국성우협회 수석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KBS 성우연기대상 최우수외화연기상, 2005년 KBS 성우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1980~1990년대 외화를 즐겨 본 중장년 세대에게 고인의 목소리는 더욱 친숙하다. 그는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 니콜 키드먼, 미셸 파이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한국어 더빙을 맡으며 외화 전성기를 대표하는 성우로 사랑받았다. 당시 TV를 통해 해외 영화를 접했던 시청자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작품의 감동을 더욱 깊게 만드는 존재였다.

외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빨간 머리 앤’, ‘베르사유의 장미’, ‘공각기동대’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으며, 특히 ‘짱구는 못말려’에서는 봉미선과 맹구를 연기하며 어린이부터 부모 세대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6년부터는 서울 지하철 1~8호선과 부산 지하철 1~4호선 안내방송을 맡으며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했다. 매일 반복해 들었던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출퇴근길을 비롯한 수많은 일상의 순간을 함께한 익숙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국성우협회는 “대한민국 성우 문화의 소중한 자산으로 길이 기릴 것”이라며 “고인의 예술혼과 깊은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평생을 목소리 예술에 바친 고인은 뛰어난 연기력과 성실한 작품 활동으로 대한민국 성우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추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안내방송 목소리로 서울시민들의 발걸음에 동행해주셨던 강희선 성우님께서 우리 곁을 떠났다”며 “투병 중이신 병실에서조차 지하철 안내방송을 녹음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동안 먹먹한 마음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이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가 들었던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여는 활기찬 신호였고, 누군가에게는 지친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서울시민을 향한 고인의 깊은 애정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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