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오금로에 위치한 책 복합문화공간 ‘서울책보고’에서 특별전시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이 열린다.
10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은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 등 출판사들이 펴낸 시집 가운데 서울책보고가 보유한 200여 권의 절판 시집을 전시·판매한다. 교육시집과 영화시집, 대학교 시 동아리에서 내놓은 동인지 등도 만날 수 있다.
서울책보고 참여 헌책방이 선별한 초판 시집과 시인 사인본 모음 코너도 마련된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창비 시선’, ‘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세계사 시인선’ 등에서 출간한 1970~2000년대 초판본이 전시·판매될 예정이다. 김광규, 나희덕 등 시인의 사인본도 접할 수 있다.
절판 시집 구매자에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시인 김명순·윤동주·랭보·에밀리 디킨슨 등의 띠지와 레트로 종이봉투를 증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책보고 홈페이지나 공식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서울책보고는 유휴공간이었던 신천유수지 내 물류창고를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조성한 책 문화공간이다. 2019년 3월 27일 개관 이후 3년 동안 400회 이상의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과서전(展):슬기로운 생활’, ‘잡지전(展):지나간 시간을 엿보다’, ‘7080 추억의 만화전(展)’, ‘근현대 여성 작가전(展)’ 등 공공 헌책방이 할 수 있는 특별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서울책보고가 헌책과 헌책 문화를 통해 시대의 흔적과 추억을 시민과 공유하는 특별기획전시는 계속 이어진다.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
과체중은 여러 가지를 문제를 가져온다. 너무 마른 상태도 좋지 않고 적당한 살집이 있어야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에 발표되어 관심을 끌었다. 나의 키(164.5cm)에 견주어 당시 몸무게 64.5kg은 표준 치를 넘었었다. 2개월 전(2016, 4, 28)에 서울시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근로자건강검진센터에서 간이 검진을 한 결과 건강 수치가 전반적으로 나빴다. 특히 공복혈당이 136, 당화혈색소가 7.2%로 당뇨라고 할 수 있는 수치였다. 체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표준 이상으로 높았다. 근력 양도 표준 이하였다. 담당 의사는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건강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 하여 4월 30일 국립암센터에서 혈당검사를 하였다. 담당 의사는 당뇨이니 당뇨약을 먹으라 하였으나 시간을 좀 갖고 관리하여 보겠다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2개월 기간을 가졌다. 의사는 수치가 낮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표정이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6월 30일 국립암센터에서 재차 건강 검진을 받았다. 당뇨 판정의 기준이 되는 당화혈색소가 6.2%로 표준 6.5% 이하로 정상화되었고 혈당수치도 107이었다. 체지방도 많이 줄고 몸무게도 현재 58.0kg로 2개월 전 64.5kg 비해 6.5kg로 줄어 표준 체중이 되었다. 담당 의사는 결과에 대해 놀라워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치의 변화가 없이 온다며 어떻게 하였는지 자세히 알려 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세히 내가 해왔던 경험을 알려주었다. 의사는 열심히 메모하였다.
체험담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은 건강 수치가 나빠진 원인을 나름으로 분석했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의와 그 준비를 위하여 많이 바쁘게 지냈다. 아침 산책으로 운동한다고 하였으나 사실 30분 내외였다. 그것도 평지 길을 일반 걸음으로 걸었다. 그리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주전부리로 과자류를 많이 먹었다. 함께 사는 둘째 아들 녀석이 과자를 좋아해 과자가 떨어지지 않는다. 귤 같은 것은 한꺼번에 여러 개를 먹곤 했다. 담배를 처음부터 피우지 않아서 주전부리를 남보다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 이러한 원인을 제거하고 당분을 줄이는 식사조절과 근력 양을 늘리는 운동을 늘리기로 하였다.
먼저 자주 하였던 주전부리를 끊었다. 예전에도 탄산음료는 마시지 않았다. 식사를 하루 2끼 정도로 줄였다. 다소 배고프다는 감으로 지냈다. 그리고 먹을 땐 많이 씹어 천천히 먹었다. 급히 먹으면 지방으로 쌓인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튀김류나 국수류는 되도록 삼갔다. 자주 먹었던 빵과 떡도 끊다시피 하였다. 집 주변에 높지는 않으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동산에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약간 힘이 들 정도인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며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걷었다. 아침 6시경에 집에서 출발한다. 물론 동산 꼭대기에 이르면 맨손체조를 10분 정도 하고 단전 호흡을 한다. 이때 복식호흡에 의한 발성 연습도 한다. 맨손체조도 하체 근력을 늘리는 방법을 동원한다. 다리 굽혀 펴기 등이 그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왔다. 강의나 약속 시각에 맞추기 위하여 일찍 집을 떠나야 할 경우는 더 일찍 일어나 동산을 돌고 온다. 그리고 집안에선 맨손 줄넘기를 종종 한다. 처음엔 100회를 시작으로 지금은 400회를 넘겨 한다. 400회 정도에 이르면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꾸준히 건강관리를 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끈기가 필요하다. 나도 더러 게을러짐을 느끼곤 해서다. 하루 이틀에 평생건강을 얻을 수는 없다. 작심삼일이어도 시작하지 않음에 비해 얻는 바가 있지 싶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내가 꾸준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다른 취미, 사진이 있어서다. 아침 걷기에 나설 때 꼭 카메라를 메고 나선다. 운동과 함께 사진을 찍는 재미를 곁들인다. 지속성이 더해진다. 어떻게 보면 일상의 재미에 덧칠하는 경우다. 사진을 찍는 시간 외에는 보폭을 늘리거나 속도를 빠르게 한다. 재미있는 일이 곁들여지기에 계속하여 관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건강의; 중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특히 당뇨는 그 합병증이 무섭다. 당 수치를 낮추는 운동을 비롯한 관리는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내가 여기에 신경을 더 쓰는 이유는 혈압약을 거의 20년 먹어오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체험담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걷기’가 유행이 됐다. 걷기 위해 떠나고, 걷기 위해 여러 장비들을 사 모은다. 가끔은 걷는 것의 의미보다 누구나 다 걸으니까 따라 걷기도 했다. 어느덧 유행이란 이름으로 걷기만큼이나 길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져 새단장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걷기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아름다운 걷기란 무엇일까. 길 위에서 걷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3월 1일, 때늦은 함박눈으로 겨울산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던 우면산 초입에서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이하 아도행) 회원들과 손성일(孫成一·45) 대표를 만났다. 아도행은 2008년 4월 포털사이트 카페 모임으로 시작해 걷는 길을 개척하고 복원하는 사단법인으로 발전했다. 회원수가 2만7000명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도행. 이들의 일정표는 거의 매일이 걷기 모임으로 빼곡하게 잡혀 있다. 국내 유명하다는 길은 물론이고 일본, 홍콩 등 걷기 좋은 길을 찾아다니고 있다. 3월에도 아도행 회원들은 7박 8일 일정으로 홍콩 걷기를 하고 돌아왔다.
아도행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단순한 걷기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도보길인 ‘삼남길’을 개척하고 복원하는 일을 한다. 이들이 외국 도보여행을 하는 이유도 좋은 곳을 걷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의 길에서 배워야 할 부분들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땅끝 해남에서 유럽의 땅끝 피스테라까지 미래 세대가 함께 걷는 길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아도행은 해남 땅끝부터 남태령까지 1만km 이상을 조사해 작년 5월, 7년 만에 600km에 달하는 삼남길 구간을 확정지었다.
느림 속에서 섬세함을 발견하다
아도행 회원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남녀 시니어들이다. 이들 대부분 걷기 모임에 들어오기 전까지 등산을 했고,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해 국내외 여러 곳을 돌아다닌 사람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가던 차창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다고 말했다. 걷기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섬세함이다. 차를 타고 지나쳤던 그 길에 발이 닿으니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고. 길 틈에 난 꽃, 예쁜 도자기 귀걸이를 파는 가게 등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유독 걷기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도 관심이 많단다. 걷다보면 서 있을 시간도 많다. 작은 꽃, 바람에 흩어진 구름을 찍기에 길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걷기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걷다 보면 꼭 좋은 길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전 구간이 예쁘다고 말하는 길도 꼭 다 예쁘지만은 않다. 꽃길, 숲길, 흙길, 때론 먼지투성이 길을 걷게 된다. 갑작스런 진흙탕을 밟을 수도 있다. 걷는 것이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다. 아도행 회원들은 속도를 내 걷거나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걷지 않는다. 이쯤 걸었으면 됐다 싶을 때 멈춰서도 된다고 말한다. 등산처럼 등정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말고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걷기를 권한다.
삼남길, 천년을 넘어 세대를 잇는 길을 만들다
3월 1일, 아도행 회원들은 서울 안 삼남길 표시작업을 위해 모였다. 남태령에서 남대문까지의 삼남길 서울 구간 내의 우면산 코스의 길 표시 작업이었다. 서울 구간에 처음으로 길 표시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각각 서울과 땅끝 해남으로 향하는 표시를 사람들 눈에 잘 보이는 나무나 전봇대에 그렸다. 아도행은 앞으로 서울 구간과 의주길을 완성하고 충청수영로와 통영별로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삼남(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을 모두 연결할 계획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땅을 지나 실크로드를 넘어 유럽까지 이어지는 길을 개척하고 관리 운영할 것이다.
단순히 걷는 것도 모자라 길을 만드는 사람들. 이쯤 되면 정말 걷기에 미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기 위해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삼남길은 과거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길을 복원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걷는 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 걸었다면 이제는 후세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길을 물려주고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너무 길이 많다는 게 문제라고. 걷는 게 유행이 되면서 이런저런 이름으로 붙여진 길들이 생겼다.
어떤 길은 이름이 8개가 되는 곳도 있다. 이름이 달라 다른 길로 알고 왔다가 같은 장소에 여러 번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유행이고 지역마다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언젠가는 합의하고 조율해 모두가 한곳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길이 만들어져야 할것이다.
손성일 대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도보
아도행의 손성일 대표는 자신을 도보 여행가 또는 로드플래너라고 지칭한다. 걷기에 발을 들이기 전 20여년 동안 등산에 미쳐 백두대간을 400회 이상 올랐다.
그러다 스페인 산티아고에 대한 책을 읽고 막연하게 한번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꾸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곳을 향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걸었다. 그곳을 걸으면서 꿈꾼 것이 한국에도 사람들이 천년의 시간을 흘러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스스로 걷기의 의미를 찾는 것을 넘어선 사람이다.
손 대표는 “산티아고도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60년 전부터, 일본의 경우 40여 년전 부터 걷기 열풍이 불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걷기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제 무릎이 안 좋아져서 산에서 내려와 걷기를 시작한 시니어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이므로 실버사업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걷기가 된 것이다. 손대표는 아스팔트,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숲길, 흙길을 걸으면서 치유하고 자연과 소통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걷기라고 강조한다.
산은 정상이라는 경계가 있지만 길은 경계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저 수평적으로 걷기. 자기 마음속으로 어디까지 갈지를 정하면 된다. 걷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편히 쉬었다 가도 그만인 것이 걷기의 매력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실제로 중요하다. 아도행 회원의 경우 70%가 여성이고, 60대 이상 시니어도 많다. 그래서 손 대표가 회원들과 같이 길을 만들 때 특히 여성에게 편한 길을 조성하고자 한다.
여성 화장실을 두 배 정도 만들어 달라고 지자체에 요청하고 있다. 여성들이 많이 걷고 또 걷기에 불편함이 없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한 길이 될 거라 믿는다. 아도행과 손 대표가 만들어가는 삼남길은 제주 올레보다 난이도가 높고 지리산 둘레길보다 난이도가 조금 낮다. 어차피 70%가 산인 나라에서 길을 만들다보니까 매번 평지만을 걸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기를 하면서 대단한 감정이나 꿈을 가지고 걷지는 않는다. 그저 걷는 것만 생각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뜻이다. 손 대표처럼 미래 세대와 함께할 길을 만들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음을 담아 나 자신을 만나는 것에 집중하지 않을까? 손 대표는 속도와 정확성에서 좀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고 했다. 걷는 길 위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평안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을까.
60대 전직 교사가 400차례나 헌혈을 해 화제다.
대한적십자사 충북혈액원은 전직 기술교사인 이상일(67ㆍ사진)씨가 지난 21일 청주시 상당구 헌혈의 집 성안길센터에서 400회째 헌혈을 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로써 지금까지 도내 400번째 헌혈자는 이씨를 포함해 3명으로 늘었다.
1994년 청주시 상당구 청석고등학교에서 제자와 함께 헌혈에 동참한 이씨는 이후 20년 동안 꾸준히 혈액나눔을 실천해왔다. 2009년 9월 30일 300회 헌혈 기록을 세웠으며 4년 5개월동안 100번의 헌혈을 더해 대기록을 세웠다.
그가 지금까지 헌혈한 혈액을 모두 합하면 16만㎖로, 1.5ℓ 페트병 100병이 넘는 양이다. 5년 전 교직생활은 그만 둔 이씨는 헌혈이 가능한 69세까지 계속 헌혈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