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활기차게 보내고 싶은 중장년들이 매월 약 3만 명씩 모이는 곳이 있다. ‘중장년의 즐거운 놀이터’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기반 교육 플랫폼 큐리어스다.
‘전화 한 통만 주시면, 아들보다 친절하게 가르쳐드립니다.’ 큐리어스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김진수 큐리어스 대표는 ‘함께라는 가치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김대엽 CTO, 이다엘 COO와 미션드리븐을 공동 창업했다. 김진수 대표는 “중장년분들이야말로 크리에이터”라면서 “지식과 경험이라는 진주가 정말 많은데, 어떻게 목걸이로 꿰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진주를 잘 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화 한 통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다 도와드리는 휴먼터치로 중장년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큐리어스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약 3만 명의 ‘오백이’들
큐리어스를 찾는 이들의 90%는 40대 이상 중장년으로 50대가 가장 많으며, 월 방문자 수는 약 3만 명에 이른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고 있지 않지만 큐리어스를 경험한 사람들이 주변 지인들에게도 적극 소개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큐리어스를 좋아하는 팬덤도 생겼다. 큐리어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하는 약 1500명의 팬들은 ‘오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궁금하면 500원’이라는 농담을 하다가 부르게 된 애칭이다. 참여자들은 ‘오백이들 굿모닝’, ‘오늘도 굿모닝’이라는 뜻으로 매일 아침 ‘오모닝’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큐리어스 서비스는 크게 전자책과 어울림으로 나뉜다. 전자책은 PDF 형태의 전자책을 올리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콘텐츠 구성 방법부터 표지 디자인과 내지 템플릿까지 큐리어스 구성원들이 도와준다. 국어 교사, 교정교열 전문가, 블로그 인플루언서, 브랜딩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코치들도 있어 원하면 1:1 유료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해 아직 1년이 채 안 됐지만, 큐리어스에 올라온 전자책은 200여 건에 달한다.
어울림은 온오프라인 모임 플랫폼이다. 어울림에서 모임을 개설하는 이들은 ‘리더’라고 불린다. 중장년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모임 개설을 원하면 ‘전화 한 통만 거시라’고 한다. 본인도 잘 알지 못했던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상세페이지 구성부터 모임 개설까지 모든 것을 도와준다. 큐리어스에서 모임을 개설한 리더들은 300여 명, 이 중 수익 창출에 성공한 리더는 100여 명에 이른다. 현재 오픈되어 있는 모임은 1000여 개인데, 앞으로 열릴 모임도 1000여 개에 달한다. 큐리어스 플랫폼을 방문하는 사람은 월 약 3만 명으로 이 중 약 1만 명이 회원가입 후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큐리어스에서는 모임뿐 아니라 강의도 열린다. 배우고 싶어 하는 중장년들을 위해 유명 연사들을 초청해 매주 화요일 ‘궁금하면 500원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큐리어스의 가장 큰 특징은 ‘리텐션’이 높다는 것이다. 리텐션이란 소비자가 모임을 참여해본 뒤 다른 모임을 또 참여하는 것, 리더가 모임을 개설해보고 다른 모임을 또 개설하는 것을 말한다. 구매자 리텐션은 지난달 구매 후 다음 달에 또 구매하는 비율이 39%에 이르는데, 이는 유니콘 기업의 리텐션 수준이다.
앞으로 큐리어스는 ‘시니어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로 거듭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활성화된 시장으로, 고령화 시대 고령자들의 배움과 나눔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각광받고 있다. 이에 국내 시니어타운 등 고령자들이 거주하는 시설에서도 언제든 원하는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장점을 결합한 온라인 모임 문화센터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이 질문에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당당하지 못할까. 그렇다면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중장년의 나이에도 공부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의 어느 날, 남산 자락 아래에 있는 ‘감이당’을 찾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른들의 공부방 같은 곳이었다. 20대부터 80대까지, 전문직부터 프리랜서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수양의 시간을 쌓는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찾아와 공부하고, 식사를 해도 된다. 식당과 식사 공간이 있으며, 그날도 2030 청년들이 밥 짓는 냄새가 모락모락 났다.
감이당을 설립한 이는 고전 평론가인 고미숙 작가다. 스스로를 ‘백수’라 부르는 그는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 공동체를 꾸렸다”고 말한다. 인문학 공부를 위해 감이당을 찾은 이들은 작가가 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도 되고,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외부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감이당의 학생이자 선생인 60대 오창희 작가, 50대 문성환 작가도 그러한 경우다. 오 작가는 벌써 10년, 문 작가는 20년 넘게 감이당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교감과 통찰의 중요성
감이당은 고전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인문의학연구소다.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생명과 우주’인데, 동양 사상에서는 이를 합쳐 ‘의역학’이라고 불렀다. 밝은 모습에 몰라봤지만, 오창희 작가는 20대 때부터 40년 넘게 류머티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오 작가는 “몸이 안 좋아서 ‘동의보감’을 배우러 왔다. 동양 고전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도 커졌다. 병이라는 것에 집착하던 것이 줄어드니 몸도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걷는 것도 힘든 시절이 있었는데, 현재는 감이당에서 탁구를 제일 잘 치는 사람이 됐단다.
감이당 수업에서는 ‘글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이라는 창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의보감’ 속 한 구절을 활용해도 좋고, 그날 수업에서 느낀 감정을 녹여 글을 쓰면 된다. 고미숙 작가는 “어떤 특별한 수행 체계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구도는 글쓰기”라고 평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간혹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부 중장년의 경우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피드백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대체로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문성환 작가는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도 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도 생긴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고미숙 작가는 어른의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감’과 ‘통찰’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세대, 또는 지금까지 몰랐던 사람들과 교감할 때 생명력이 올라가고 통찰이 늘어난다. 그래야 삶이 확장된다”라는 설명이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공부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문성환 작가는 “어른이 되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스승이 옆에 있을 때,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스승이 될 수 있을 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이 나를 어리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는 전자의 어른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오창희 작가 또한 인간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공부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성숙이란 어떤 사건을 더 큰 좌표 속에서 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어린아이고, 우주적 차원까지 넓어지면 성인이라고 하며, 이걸 아는 게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1960년생인 고미숙 작가는 60대가 되자 “인생의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느꼈단다. 그동안 성취와 단련의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세상에 보답하고 잘 죽는 것이 중요해진 때가 됐다고. 고 작가는 “나는 뭔가 결핍됐다,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다. 60대 이후에는 확실히 삶의 긍정이 생겨야 한다”라면서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지만, 진짜 좋은 어른이 될 것인가는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지혜와 통찰력을 더 길러야 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은퇴 후 소원해지는 인간관계에 실망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안부도 주고받고 종종 식사도 했던 사이인데, 회사를 나오니 연락도 만남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명함이 없다고 얕보나’, ‘내가 돈을 안 번다고 무시하나’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편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주변은 잠시 제쳐두고 나와의 관계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퇴직 이후의 삶이 길어지며, 노후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원활하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은퇴의 말’, ‘은퇴의 맛’ 등의 저서를 펴내며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을 만나온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자신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언급했다. 그는 “직장 생활로 생겨난 공적 관계망은 보통 퇴직 후 6개월 이내 소멸된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분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다. ‘그동안 나를 잘 따랐던 부하 직원들이 연락하겠지’ 같은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쌓이면 절망하게 된다. 점점 위축되고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도 버럭 하고 화를 내는 등 이른바 ‘앵그리 올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는 회피하고 멀리하게 마련인데, 결국 대인관계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들 좋아할까
한혜경 교수의 경험에 의하면 은퇴 후 화가 많아지고 이를 표출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다고. 겉으로는 타인을 향해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이는 결국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단다.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심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과의 관계가 평온하고 긍정적인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또한 순조로운 편이다. 한 교수는 “최근 뇌과학 분야 연구 중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처리와 타인에 대한 정보처리가 동일한 뇌 신경망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이 남도 좋게 보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한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와의 관계, 자기 내면과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타인과의 관계에도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능숙한 사람들은 웬만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회복탄력성 또한 높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소통이 어려운 이들은 사소한 일도 크게 힘들어하고, 회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교수는 “살다 보면 유난히 사람들이 미워지거나 괜히 무시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혹시 내가 나를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마치 거울처럼 누군가에게 갖는 나의 마음이 알고 보면 나를 향한 마음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인정중독에서 벗어나 ‘셀프 칭찬’ 필요해
경쟁과 성취를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잘 사는 삶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어느 대학과 직장을 다닐지, 얼마만큼의 집을 사고 무슨 차를 타야 할지 등 자신보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따르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한혜경 교수는 “이러한 삶이 계속되다 보면 인정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타인 때문에 상처받으며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30~40대에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50대 이후까지 이에 얽매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를 더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엔 차이가 존재한다. 그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잘난 척, 괜찮은 척이 아닌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을 때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도 실제 자신을 향한 칭찬에는 의구심을 갖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장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한 교수는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 매우 가치 있기에, 때때로 스스로를 칭찬해보는 시간도 마련해보길 권했다.
나를 위한 삶, 건강한 자기중심성 갖기
은퇴 후 또는 자녀 출가 후에도 끊임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들이 있다. 가령 노후자금이 부족한데도 자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거나, 몸이 아프고 힘든데도 손주 육아를 돕는 등 자신보다는 자녀를 중심으로 노후를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 중에서도 자녀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지만, 결국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지속적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행복한 노후를 가꿔가기 어렵다.
한혜경 교수는 “초고령사회, 수명은 길어지고 1인 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어떻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누가 끝까지 나를 돌봐줄까’, ‘누가 내게 삶의 기쁨이 남아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꼭 해봐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돼야만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잘 지낼 수 있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자식이나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오래오래 유지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나를 위하고 사랑해줄 사람,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할 사람은 곧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로저스(C. Rogers)는 말년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내가 매우 아프지만 내 삶을 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 교수는 “로저스의 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나이 들수록 ‘건강한 자기중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건강한 자기중심성은 본인의 가치와 독특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태도다. 스스로를 홀대하고 혹사하는 건 짧고 굵게 살던 시대의 논리다. 100세 넘게 사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자기중심적인 삶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타인도 나를 그렇게 존중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역사 쓰기’로 회복하는 나와의 관계
교수 은퇴 후 현장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나의 역사 쓰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혜경 교수는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의 역사를 쓴다고 해서 유명인이 자서전을 내듯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나의 삶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고 목차를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은퇴 후에는 대인관계를 비롯해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해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 찬찬히 과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발견하게 된다.
한 교수는 “나의 역사 쓰기란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현역 시절 이력서에 보기 좋게 썼던 나의 모습과 달리,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보는 것이다. 퇴직 이후 인생 2막 또는 3막을 준비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 나를 헤아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과의 갈등 고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나의 역사 쓰기도 너무 말년에 했다가는, 과오를 발견하고도 ‘이제 와서 달라질까’, ‘너무 늦었구나’라며 개선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 절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의 역사를 꼭 한번 써보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 저 , '나의 역사 쓰기' 운영)
1
“각얼음을 연상시키는 액세서리로 무장한 아버님의 손.”
2
“삼천포에서 미용실을 하는 어머님의 손.”
3
“친할머니의 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지만 반지는 여전하다.”
4
“성북동 새이용원 이덕훈 이발사의 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다.”
5
“동양적인 패턴의 팔찌와 넥타이핀이 눈길을 끄는 어느 아버님의 손.”
6
“개량한복을 캐주얼하게 소화하신 어머님의 손. 옥으로 된 팔찌가 트렌디하다.”
김동현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 2019년 멋진 할아버지를 찍은 뒤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셔터를 누르고 있다.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저서로는 사진집 이 있다.
에디터 조형애 출처 김동현 사진작가 디자인 유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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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를 돌아본다면:
10대 때는 20대가 되고 싶었던 것 같고, 20대는 30대가, 30대는 40대가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40대가 지나면서 50대가 굉장히 기대됐던 것 같아요. 한순간도 제 자신이 부끄럽거나 재미없었던 적이 없어요. 그다음이 더 기대가 되고, 항상 기대를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50대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이 든 제가 좋아요.
에디터 조형애 취재 손효정, 문혜진 편집·디자인 유영현
어버이날 선물 예산을 다들 어느 정도로 잡고 있을까. 지난 어버이날을 앞두고 롯데멤버스가 20~60대 성인 1000명에게 물었다.
“얼마 계획하고 계세요?”
평균 33만 6000원
*어린이날 평균 선물 예산(12만 4800원)
(설문은 지난해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롯데멤버스 자체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을 통해 진행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연령대별 평균 예산은 30대가 36만 2800원으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 40대 35만 5200원, 50대 34만 1700원, 20대 30만 3200원, 60대 29만 7600원 순이었다. 선물은 역시 용돈(현금, 상품권 등)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어버이날 선물 예정 품목
1. 용돈(현금, 상품권 등) – 62.2%
2. 건강기능식품 – 10.2%
3. 의류 및 패션잡화 – 6.5%
4. 선물·용돈 없이 식사 혹은 함께 시간 보낼 예정 – 4%
5. 건강가전제품 – 3.7%
5. 여행·관광 – 3.7%
7. 디지털기기 – 1.9%
8. 화장품 및 이미용품 – 1.6%
8. 문화·공연티켓 – 1.6%
어버이날 선물 대상(중복응답 허용)은 부모님(82.3%), 배우자의 부모님(30.0%), 조부모님(6.6%) 등이었다. ‘선물 계획이 없거나 어버이날과 관련이 없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 중 8.7%으로 나타났다. 선물 전달 방법은 직접 만나 드리겠다는 응답(91.6%)이 대다수였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옥상훈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온라인 게임에서 통용되는 단어인 본캐와 부캐. ‘본캐’는 주로 사용하는 본래 캐릭터, ‘부캐’는 본캐 생성 이후 만든 부차 캐릭터를 말한다. 근래 유명인들이 기존과는 다른 활동명과 캐릭터로 대중의 인기를 끌며 ‘부캐 열풍’이 일기도 했다. AI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을 성공적으로 이끈 옥상훈(53)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그런 부캐가 있다. 바로 인스타그래머 ‘컵누들러’다. 아직 본캐만큼 왕성하진 않지만, 여러 가능성을 품고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캐를 일컬어 ‘히든캐’(숨겨진 캐릭터)라고도 부른다.
먼저 본캐 이야기부터 해보자. 본캐 타이틀은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얼핏 앞뒤 키워드만 떼어 보더라도 국내 굴지의 IT 기업인 네이버에서 특정 사업의 리더인 셈인데, 일단 본캐의 레벨도 심상찮게 느껴진다. 참고로 사스(SaaS)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네이버클라우드’다. 옥상훈 리더는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을 ‘BD’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도 본래 뜻과 그만의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흔히 업계에서 BD라고 하면 비즈니스 디벨로퍼(Business Developer)를 말합니다. 직역하면 사업 개발자인데, 대개 새로운 사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담당하죠. 그것도 맞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비즈니스 디자이너(Business Designer)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AI 생태계를 만들어 클라우드 사업을 키우고 파트너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같은 단어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본캐의 전환, 본업 모먼트 시작
옥상훈 리더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가 보면, 그때도 본캐와 부캐가 있었지 싶다. 한양대학교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물학이 전공임에도 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더랬다. 그러다 졸업할 즈음 IT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는데, 마침 관련 업계에서 개발자를 양산하던 분위기였다. 부캐도 쏠쏠히 키운 덕에 그는 IT 세계로 진입해 SI(System Integration)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부캐가 본캐로 전향된 것이다.
이후 본캐를 성장시키며 네이버와 인연을 맺었다. 2011년 입사 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관련 사업을 만들고 제휴 맺는 업무를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0여 년간 네이버 개발자센터 개편, 오픈 API 표준 제작,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 론칭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최근 그가 집중하는 사업은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이다. AI 기술을 적용해 어르신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억까지 해내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시작된 사업이에요. 당시 코로나 감염자에게 발열 여부 확인 전화를 사람이 일일이 했는데, 어느 순간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며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됐던 거죠. 처음에는 성남시와 협력해 전화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후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입하는 지자체가 더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자체 쪽에서 아이디어를 주시더군요. 발열 여부만이 아니라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로도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렇게 부산 해운대구랑 도모해 처음 케어콜을 선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초반 성적은 저조했다. 실제 사용자인 독거노인들이 보인 만족도는 50% 남짓이었다. 옥상훈 리더는 실패에 가까웠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나갔고, 생성형 AI와 하이퍼 클로바 기술 등을 적용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AI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나가며 발전을 이뤄온 것이다.
“아무래도 대상자가 어르신이다 보니 AI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셨죠. 때문에 최대한 AI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덕분인지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로 조사했을 때는 90% 정도의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놀라운 성장이죠. 그런데 이런 피드백이 있더라고요. AI가 말귀도 알아듣고 공감해주는 건 좋은데, 이전 대화를 기억 못 하니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였죠. 결국 2022년에 기억하기 기능을 탑재해 출시했어요. AI가 질환이나 병원 이력 같은 걸 기억해주는 덕분에, 이제는 케어로봇처럼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쪽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아직은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으로 대상자가 한정되지만, 장차 누구나 자기 편의에 맞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전망합니다.”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최고의 궁합
본업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에도 그의 시선은 호시탐탐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촬영 소품으로 기자가 준비한 컵라면. 비닐봉지라는 베일에 가려진 컵라면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제 본캐는 접고 부캐 이야기를 해보자고 운을 떼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웃음) 좀 꺼내봐도 될까요? 이야, 다 새로 나온 것들이네요.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골라오셨어요?”
옥상훈 리더는 신기한 듯 물었지만, 방법은 간단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400여 가지 컵라면 리뷰가 올라와 있는데, 첫 사진은 늘 위에서 찍은 컵라면 뚜껑이다. 메인 페이지만 봐도 그가 어떤 컵라면들을 먹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리뷰도 간단명료하다. 면발, 맵기, 염도 등을 5점 만점으로 표기하고, 총평도 한두 줄 정도로 짤막하게 남긴다.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리한 방식이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컵라면 종류가 워낙 많아 특정 제품의 리뷰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맞습니다. 저도 늘 새로운 컵라면을 사려고 하는데, 가끔은 ‘이걸 내가 먹어봤던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오죽하면 아예 내가 컵라면 검색 엔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뭐 마음만 먹고 아직 시도는 못 해봤습니다.”
지금의 컵라면 리뷰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시점도 클로바 케어콜이 탄생한 시기와 맞물린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바깥에서 타인과 식사하는 일이 어려워진 터였다. 혼자 먹는 식사이니 간편하면서도 기왕이면 요리다운 메뉴였으면 했다.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게 컵라면이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컵라면을 잘 안 먹었어요.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 나름의 철학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항상 이야기하는 건 ‘컵라면은 요리’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저 인스턴트식품 정도로 치부하지만 저는 하나의 요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궁극의 맛을 잘 응축해서 편리성을 극대화한 형태잖아요. 물만 부으면 끝나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면발 상태나 수프, 건더기 맛도 다양하고 훌륭해졌어요. 또 컵라면끼리 조합해서 먹어보는 것도 흥미롭죠. 가령 짜장과 짬뽕, 크림소스와 매운소스처럼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아요. 또 이건 저만의 팁인데 짜장컵라면에 콜라를 한 숟갈 정도 넣어보세요. 단맛이 확 우러나서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거 말고도 팁은 무궁무진해요.”
컵라면 이야기라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는 옥상훈 리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컵라면 먹는 일도 줄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부캐의 장점 중 하나는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 아닐까. 본캐처럼 책임이나 강박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이따금씩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족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함은 덤이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컵라면을 찾았을 때예요. 라임 향 나는 컵라면이나 침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특별 제작한 컵라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도 잊을 수 없네요. 그렇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찾아가는 게 참 흥미로워요. 편의점을 가더라도 컵라면 코너부터 둘러보고, 해외나 낯선 지역에 가도 컵라면부터 확인하죠.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게 편의점이고 컵라면인데,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또 그런 경험을 기록해가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나름 잘 정리해놓은 거라 라면 회사에서 제안이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아직 깜깜 무소식이네요.(웃음)”
본캐를 성장시키는 힘, ‘통찰력’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부캐를 키워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은퇴 이후쯤이 될 테다. 아직은 본업에서 할 일이 많고,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키우려면 더 오래 현업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늘 선도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분야다 보니, 그에 따른 고충도 있으리라. 실제 그와 동년배인 50대 직장인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MZ세대의 문화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때때로 버거움을 느끼지만 독서와 학습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편이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그가 본업에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분야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가령 클로바 케어콜의 경우에도 지자체로 치면 100곳, 사용자로 치면 2만 명 정도 되는데요. 더 다양한 범위로 확장해서 사업적 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실 기술이라는 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과 도구이지, 어떤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기술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면 꽤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옥상훈 리더는 IT나 신기술 관련한 책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책도 고루 섭렵 중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국 ‘통찰력’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끝으로 그에게 다소 엉뚱한 말을 던져봤다. ‘자신의 인생과 컵라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윽고 우문현답이 나왔다. 그간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든 컵라면이든 결국 ‘맛’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숙성되고, 그것이 우러나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죠. 정말 괜찮은 컵라면은 물을 붓기 전에도 그 가치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뜯기 쉬운 포장, 친절한 설명글, 풍부한 건더기 등. 역시나 먹어보면 맛도 진국이죠. 반면에 별로인 컵라면은 겉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정말 대충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생도 마찬가지 같아요. 스스로가 만든 인생의 가치를 정성스럽게 담아내고, 잘 표현해야 하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너무 맛없어서 못 먹고 버린 컵라면이 딱 두 개 있는데요. 제 인생도 잘 가꿔서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고, 좀 먹을 만한 컵라면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1
“서병구 동서대학교 뮤지컬과 교수님. 만난 어르신 가운데 최고 멋쟁이!”
2
“타이다이(옷을 끈으로 묶은 다음 염색하는 방식) 청바지를 입고 계신 아버님.”
3
“인사동에서 만난 이상홍 아버님. 패션에는 나이가 없고 스타일만 존재한다…!”
4
“첼시 부츠 아버님. 목도리부터 부츠까지 이어지는 갈색 톤이 깔끔.”
5
“방한 부츠 아버님. 눈 내리는 추운 날씨도 끄떡없어 보였다.”
6
“민호근 아버님. 지팡이만 100여 개 있으신데, 스타일에 따라 바꿔 드신다고!”
7
“불꽃 반스 아버님. 패션만 보면 영락없는 젊은이다.”
8
“닥터마틴 워커 어머님.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아는 분!”
김동현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 2019년 멋진 할아버지를 찍은 뒤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셔터를 누르고 있다.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저서로는 사진집 이 있다.
에디터 조형애 출처 김동현 사진작가 디자인 유영현
●Exhibition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
일정 6월 2일까지 장소 대구미술관
전시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주제인 환경과 생태계 위기에 대해 살펴본다. 작가 13명의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누구의 숲이며, 누구의 세계인지 질문한다. 첫 번째 섹션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에서는 미래 환경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정주영 작가의 변화하는 기후·구름·우주, 김옥선 작가의 외래종 나무, 장한나 작가의 새로운 형태의 돌(New Rock 프로젝트) 작품을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 주제는 ‘잊혀진 얼굴, 봉합된 세계’로 문명의 발전 이면에 발생한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관한 태도에 주목했다. 강홍구, 김유정, 백정기, 송상희, 이샛별, 이해민선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 섹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에서는 권혜원, 정혜정, 아니카 이,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시선을 엿본다. 박보람 학예연구사는 “도시 문명, 환경, 생태계 문제에 대해 다채로운 관점을 담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반성적 감각을 회복하고 인류세 시대, 그 이후에 관한 공생, 생태적 감각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서화첩(글씨와 그림을 모아 만든 책)전이다. 문인, 화가, 서예가, 섬유예술가, 패션디자이너 등 60여 명의 정상급 예술가들이 서화첩 한 권에 프로필을 채웠다. 자화상, 좌우명, 애송시, 자전적 글 등 담긴 내용은 다양하다. 소설가 김채원은 언니 김지원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시기에 그린 우는 자화상을 서화첩에 넣었고, 부친을 여읜 서예가 김병기는 ‘아버지가 애송하던 한시를 통해 슬픔을 달랜다’는 발문과 함께 58쪽의 글을 썼다. 한편 작가의 방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김상옥의 방을 재현했다. 특별 전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를 재공개한다. 예약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관람 가능하다.
●Book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김희진·앵글북스)
동년배보다 보통 20~30년 젊은 뇌를 가진 사람을 슈퍼에이저(Super-ager)라고 부른다. 그들은 젊은 사람만큼 뛰어난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가졌다. 저명한 치매 전문의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인간의 노화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소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신체를 어떻게,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가 나이 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습관이 기억력과 뇌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1부는 ‘이해하기’ 파트로 뇌의 구성과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한다. 여러 실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 하기’ 파트인 2부에서는 일상 점검을 비롯해 식단과 운동,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 수면과 약 복용법 등 올바른 생활 습관을 총 7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부록에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 효과를 본 다양한 방법과 저자도 실천하고 있는 작은 습관들을 상세히 담았다.
그러나 슈퍼에이저의 습관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뇌에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로 자신에게 맞고 큰 효과를 가져오는 행동 지침들을 선별해 30일 두뇌 관리 루틴을 세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문재인의 독서노트(문재인·평산책방)
문재인 전 대통령이 쓴 102권의 독후감을 ‘취임 이전’, ‘재임 시기’, ‘퇴임 이후’로 나누어 담았다. 일상을 포착한 40여 장의 사진도 함께 수록됐다.
◇밥묵자(꼰대희·21세기북스)
개그맨 김대희의 부캐인 ‘꼰대희’는 50대 후반 꼰대 아저씨를 콘셉트로 한다. 책은 인·의·예·지 네 파트로 나뉘어 있고, 세대 간 화합을 이끈다.
◇하이 애나, 나는 한국 할머니란다!(류관순·미다스북스)
워킹맘으로 살던 저자는 외동딸과 미국인 사위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덕분에 초보 할머니가 됐다. 손녀와 함께 성장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Stage
◇영웅
일정 5월 29일 ~ 8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김민영
출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 등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재현하며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은 애국심과 감동을 자아낸다. 2009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은 15주년 기념 공연으로 안중근 역에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캐스팅됐다. 특히 정성화는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출연하며 ‘영웅’과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다. 제작사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어느덧 15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라며 “한층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봄
일정 5월 8일 ~ 6월 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연출 이기쁨
출연 왕은숙, 문희경, 오성림, 예지원, 황석정, 유보영 등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꿈, 갱년기, 폐경, 은퇴 등에 대해 왁자지껄한 수다를 펼친다. 31회 공연이 더블 캐스트로 운영된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이 주축인 ‘다시 팀’과 내로라하는 여배우들로 구성된 ‘봄 팀’이다. 황석정은 ‘다시 팀’에, 뮤지컬에 첫 도전한 예지원은 ‘봄 팀’에 각각 합류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다시, 봄’을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50대 여배우들을 비추고, 객석은 중장년층 관객들이 차지했다. 뮤지컬 관객 저변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벤자민 버튼
일정 5월 11일 ~ 6월 30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조광화
출연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 등
뮤지컬 제작사 EMK가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단편 소설을 원안으로 한다. 극 중 타이틀 롤인 벤자민 버튼은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이 연기한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인물로 재즈 가수 블루와의 사랑을 쫓는다. 특히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한 심창민은 21년 만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다. 그는 “뮤지컬을 연습하며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어쩌면 누군가는 ‘복길이’ 이미지에 가둬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 이미지를 벗기 위해 김지영은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덧 데뷔 30년 차 배우가 됐는데, 이제는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학과 교수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으며, 삶을 관망하는 여유도 생겼다. 유명인과 일반 대중의 관계는 ‘인기’로 증명되는 터. 그는 “인기란 야속한 것 같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면서 양면성을 언급했다. 현재는 큰 인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들한테 인기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희귀병을 앓아 부모님 속을 썩였다고 생각하는 딸이기에 자식을 향한 애정이 더욱 특별하다.
‘전원일기’와 가족의 탄생
MBC ‘전원일기’와 복길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복길이 이미지 때문에 다른 역할을 못 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보고, 사이코패스 악역, 유흥업계 인물 등 갖은 역할에 도전해봤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복길이로 인해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나이 들고 보니 배우로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마운 작품이죠.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하면서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전원일기’는 결국 저의 학교였다고 생각해요.
SBS ‘토마토’에서 악역 연기를 펼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때가 전성기였을까요?
MBC에서 ‘그대 그리고 나’(1997년)로 신인상을 수상한 후라 자신감이 올라와 있었죠. 악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겠단 생각에 출연했고, 촬영도 재밌게 했죠. 광고도 그때 제일 많이 찍었어요. 그렇다고 그때를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번 진심을 다해 연기해서 작품 할 때가 늘 전성기라고 느껴요.
남성진 씨와는 동료에서 남편이 된 케이스인데, 관계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전원일기’를 8년간 촬영하면서 정말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죠. 이후 남편의 고백으로 사귀었는데 연애 기간은 불과 6개월이었어요. 그중 5개월은 제가 중국에서 촬영했죠. 연애다운 연애를 한 적이 없는데 바로 결혼하려니 조금 무섭고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우정과 사랑을 구분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사람, 내 가족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사이가 깊어졌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부부간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저희 부부는 성격이 극과 극이라서 지금도 종종 싸워요. 남편이 화가 많고, 버럭하는 스타일이에요. 불 같은 성격이죠. 그래서 말다툼으로 번지는데, 다행히도 저희 둘 다 금세 잊어 버리곤 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 차가 커도 남편한테 ‘고쳐줬으면 좋겠어’, ‘맞춰줘’ 등의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지만, 내용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가 될 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려고 해요. 특히 아이 문제로 대화할 때는 아이의 생각을 가장 먼저 수렴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리죠.
얘기를 나눠보니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제 꿈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 네 삶이 너무 없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 옆에 많이 있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에는 편지나 메모를 남겨서 마음을 표현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죠.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같이 있는 시간이 줄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나와 놀아줄 시간이 있을까 싶어요.(웃음)
과거 방송에서 보니 아드님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하던데요. 3대 배우 가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모님, 조부모님한테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더라고요. 그 부담감은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시부모님이 배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남편은 평생 그 부담을 안고 살았죠. 우리 아이는 그 부담이 배로 커진 거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연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너의 색깔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인 배우 김용림 씨와의 고부 관계가 특히 주목받는데요.
굉장히 순탄한 고부 관계라고 생각해요. 같은 분야에 있으니까 잘 이해해주세요. 제가 종갓집 며느리인데 촬영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낼 때도 있고, 촬영이 늦어져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어머니께서 이해를 넘어 ‘얼마나 힘드니’라고 위로해주시죠. 그런데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어머니께서 섭섭했던 부분을 말씀하시면, 저도 속상한 점을 얘기하기도 하죠. 어느덧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20년 이나 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어떠신지 알겠더라고요. 전화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달려갑니다.(웃음)
삶과 인연을 소중하게
부모님에게는 어떤 딸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희귀병으로 몸이 약했으니까 늘 집안의 걱정거리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었어요.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몸도 안 좋은 애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겠죠. 그런 마음을 아니까 창피하지 않은 자식이 되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느 순간, 너무 우리 애만 챙기느라 부모님에게 신경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회가 남지 않게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희귀병 투병으로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겠어요.
등에 혈관이 엉겨 붙는 혈종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가족들이 저를 살려보겠다고 별걸 다 해봤는데,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유서를 써놓기도 했어요. 말로 전하지 못한 얘기들을 남겨놓기도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수술 후 완치돼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어진 삶이 감사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찌 보면 배우 활동이 체력이 강해진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50대가 되었는데, 중년 배우의 삶은 어떤가요?
20대 때는 작품을 한 번에 2~3개씩 하면서 바쁘게 보냈어요. 결혼 후인 30대, 40대 때 삶도 안정되고, 연기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5년 전쯤부터 선배로서 안주하고 싶지 않고,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려고 했죠. 선배님 또는 감독님이 부르면 예술 영화도 카메오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예술대학교 연기예술과 학과장을 맡은 지도 7년이 됐네요.
저는 선생님이라기보다 선배라고 생각해요. 먼저 연기한 사람으로서 습득한 기술을 알려주려고 하죠. 오히려 제가 열정을 수혈받고 있어요. 사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도 돌보면서, 학교 일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과의 연계성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지영에게 ‘관계’란 무엇일까요?
저는 소심하기도 하고, 관계에 예민한 편이에요. 지인들에게 마음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이제 용기 내서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모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관계도 성립되고, 많은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또 너무 애쓰지 않아야 재밌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Bravo Question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감사한 마음 아닐까요. 저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마음을 간과하느냐, 신경 쓰고 있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한데, 그 마음을 품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힘이 큰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한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쌓여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나하나 이루어온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