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주어진 숙제를 다 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 같아요.” ‘최초의 대법관 출신 유튜버’로 유명한 박일환(71) 변호사는 40년 넘게 법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사이 직업에는 변화가 있었다. 판사에서 대법관을 거쳐 현재는 변호사 겸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삶에서 법조인이었던 시간이 아니었던 시간보다 더 긴데도 여전히 법을 사랑하는 그를 만나봤다.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 1978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98년 특허법원 부장판사, 2003~200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5년 제주지방법원장, 2005~2006년 서울서부지방법원장, 2006~2012년 대법원 대법관.
박일환 변호사가 법조인이 됐을 당시는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동네나 모교에 축하 현수막이 걸리던 때였다. 현재는 로스쿨도 생기고 많은 변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일환 변호사는 “장점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특허 담당 변호사, 등기 전문 변호사 등 전문 분야를 가진 변호사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짚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조인도 많아졌고, 중요한 법도 달라지고 있다. 박일환 변호사의 법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역사가 보인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법 공부를 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지녔기 때문일 터. 현재 박일환 변호사가 유튜버로 활동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법이라는 것이 지루할 틈이 없어요. 옛날에 있었던 사건은 없어지고 새로운 사건이 계속 나오니 공부를 계속해야 해요. 제가 젊었을 때는 약속어음 문제, 교통사고, 산재 사고 등이 대부분이었어요. 예전에는 교통사고와 절도 사건도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블랙박스와 CCTV가 있으니까 많이 줄었죠. 대신 층간 소음 같은 신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죠. 또 IT 관련 저작권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고요.”
법과 함께한 35년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인 박일환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그때는 1960년대니 직업이 별로 다양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유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 변호사는 스물세 살의 이른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대학 동기들 중에서 시험에 빨리 합격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회사가 많이 생겼는데 종합상사가 특히 인기였다. 동기들 대부분은 회사에 취직했고, 결국 법조인이 된 사람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일환 변호사는 연수를 받고 군법무관으로 근무한 뒤 1978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그때부터 판사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앞서 말했듯이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그리고 ‘이왕 법원에 온 것 방점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법관에 지원했다.
대법관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을 말한다.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특히 대법관은 청문회도 하는데, 박일환 변호사는 탈세·위장전입·표절 등 문제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더불어 현재 박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악플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최초의 대법관 출신 유튜버’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채널은 댓글 청정 구역을 유지하고 있다.
박일환 변호사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2009년부터 2011년에는 법원행정처장도 겸임했다. 그 시기를 회상하며 그는 “1년 365일 계속 일해야 한다. 판결문, 기록물 등 봐야 할 양이 매우 많다. 대법관들은 병이 많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대법관으로서 느낀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전해졌다.
현재 대법원은 상고허가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대법원에 사건이 과도하게 접수돼 적체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고심에서 다툴 가치가 있는 사건은 선별한다는 취지다. 박 변호사는 “사실 대법원에서는 심판만 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변론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아쉽다”면서 상고허가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이 1년에 2만 건 정도라고 해요.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10건 처리하기란 힘든 일이죠. 미국도 적체가 많아서 상고허가제를 도입했어요. 1년에 딱 100건 정도만 대법원에서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중요한 사건을 맡고 변론도 하게 되면 재판의 질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35년을 법조인으로 살면서 수많은 판결을 내린 박일환 변호사.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일까. 그의 대표적인 판결로는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한 것과 ‘초코파이’ 상표와 관련해 어느 회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이 꼽힌다. 또 하나 제주도지사 무죄 판결이 있는데, 박 변호사는 이를 언급했다.
“2007년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에게 무죄를 판결하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원칙’을 적용했죠. 요즘도 그 판결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정보를 수집할 때나 포렌식을 할 때 본인 확인 절차 없이 하면 위조가 가능하고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유튜버로 인생 제2막
박일환 변호사는 퇴직 후 약 1년의 짧은 휴식기를 갖고 2013년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 변호사가 됐다. 왜 변호사를 선택했냐고 묻자 “나이가 60세 넘었는데 새로운 걸 배워서 할 수도 없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불어 지금은 판사 때처럼 치열하게 일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2018년 박일환 변호사는 딸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명은 ‘차산선생법률상식’. 과거 할아버지가 지어준 호로, 한시에 나온 표현인데 ‘저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박일환 변호사가 친근하게 법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 쌓여가자 구독자 또한 점점 늘어났다. 2020년에는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해 실버 버튼을 받았다.
처음에는 영상 촬영을 어떻게 해야 좋은지 전혀 몰랐다. 무작정 휴대폰을 앞에 두고 영상 촬영을 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는 좋은 각도, 좋은 배경 등이 눈에 들어온다. 자막을 입히는 편집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딸이 맡아 하고 있다. 그는 “저도 딸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상부상조하는 셈이다. 딸과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면서 웃었다.
박일환 변호사는 자신의 딸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법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 일종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최신 이슈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조명하고 관련 법을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주제를 정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구독자 대부분은 20·30대로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제 유튜브에서 특히 많이 본 영상은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이에요. 실제로 회사에서 농담으로 퇴사한다고 했다가 퇴직 발령을 받은 사건을 다룬 것인데,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죠. 또 부모의 빚을 자식이 갚아야 하느냐, 인터넷상 명예훼손은 어디까지인가 등의 영상도 많이 보셨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고, 반응이 좋으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박일환 변호사는 60세가 넘어 70세인 현재까지도 일하고, 심지어 유튜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어쨌든 자기 직업에 전문성을 갖고 3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런 기회도 온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박 변호사는 은퇴 후 무료한 삶을 사는 지인들에게 유튜버 활동을 추천한다. 나름대로 신념도 있다. 유튜버 활동을 일종의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즐겁고 재밌게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하면 전문 유튜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 회사에 다닌 지인들을 보면 60세까지 일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보통 55세까지 일했죠. 그 사람들은 은퇴한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거든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 기간을 합쳐봤자 16년인데 그에 비하면 17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길어요. 그런데 앞으로 또 17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죠. 한 80%는 그냥 건강하게 살자를 최대 목표로 두고 살아요.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해서 수익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10%도 안 되죠.”
박일환 변호사를 보면서 진짜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단지 똑똑해서,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법과 함께 한평생 살아왔지만 사실 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헌법에서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조항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목숨 내걸고 싸워라’, ‘충신이 되어라’라고 말하는데, 사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념이 인간보다 먼저일 수는 없는 거거든요. 저는 제 인생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죽을 때 편안하게 잘 죽는 일만 남았죠.”
보통 회사는 젊은 세대 채용을 선호한다. 그들의 트렌디함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 분야에서 베테랑인 고령자를 선호하는 회사도 있다.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시스템 감리 전문회사 ‘케이씨에이’(KCA)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베테랑이 많은 회사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 케이씨에이를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케이씨에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재직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 보인다. 전문가 분위기를 내뿜는 머리 희끗한 직원들은 각자의 일에 열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기준 케이씨에이 전 직원 378명 중 만 60세 이상 근로자는 94명이라고 한다.
올해 케이씨에이는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고령자친화기업 41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고령자친화기업은 만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를 5년간 의무 고용해야 한다. 대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41개 회사 중 케이씨에이는 단연 눈길을 끈다. 대부분 생산직이나 단순노무직이지만 케이씨에이는 IT 전문가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런데 왜 IT 회사인 케이씨에이는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것일까. 이는 케이씨에이가 정보시스템 감리에 특화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감리란 정보시스템이 잘 구축되었는지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조정·권고하는 업무다. 케이씨에이는 이외에도 IT 컨설팅, 정보 보호, PMO(사업위탁관리) 운영 지원 등의 사업을 한다.
사실 감리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보시스템 감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정보처리 분야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만 취득 요건을 갖춘다. 한 예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보처리기사로 7년은 일해야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감리사는 최소 30대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감리 업무는 IT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안정된 노후를 위해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케이씨에이도 60대가 주축이고 70대도 많이 재직 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를 은퇴하고 20년째 감리 일을 하는 80세(1943년생) 베테랑도 있다고. 현재 감리사로 일하는 김영빈(52) 씨는 “개발자로 20년 넘게 일했는데, 여기에 들어오니 막내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영빈 씨는 아내와 함께 재직 중이다. 김 씨는 과거 IT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아내에게 감리사 일을 권했다. 15년의 공백이 있던 터라 어려움은 많았지만 아내는 자격증을 취득해 먼저 일을 시작했고, 이후 김영빈 씨가 합류했다. 김 씨는 “우리 부부는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베테랑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보자.
◇“베테랑 노하우 사회에 보탬돼야”
- 백형충 상무
백형충 상무는 오직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1987년 일을 시작한 그는 금호아시아나의 IT 기업에서 임원까지 하고 은퇴했다. 현재 한국정보공학기술사회 회장이기도 하다.
백형충 상무는 2013년 10월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초반에는 감리를 했다. 더불어 전략산업본부에 속해 사업 전체 기획부터 수주 등의 일을 했다. 최근에는 솔루션사업본부에서 ICT사업 부문장을 맡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 추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백형충 상무는 2003년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IT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만 받고 수석 감리원이 됐다. 백 상무는 일찌감치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IT 업무가 무척 방대한데, 기술사는 전체 영역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1980, 1990년대에는 직급이 과장 이상 되면 일은 안 하고 결재만 했다. 내 미래의 모습이 저것일까 싶었다”면서 “자격증 취득으로 나 자신의 역량 개발과 함께 후배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형충 상무는 “제가 환갑 나이인데 주변에 보면 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30년 넘도록 업계에서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를 그냥 사장하면 안 된다. 국가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야 한다. 일하면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비전공자라고 비전문가 아냐”
- 김석범 수석
김석범 수석은 회사 내에서 ‘비전공자’로 유명하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비전공자인데 감리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다. 김 수석은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SK텔레콤에서 1995년부터 20년 넘게 일했다. 특히 그는 SK네트웍스서비스의 게임 서비스를 주도한 대단한 인물이다.
김석범 수석은 개발자들과 일하면서 개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배우고자 하는 갈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8년 은퇴 후 자바(Java)를 시작으로 개발을 공부하며 개발자를 꿈꿨다. 비전공자로서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정말 재미있었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왜 진작 IT 쪽 공부를 안 했을까 많이 후회했다. 내 업무에 접목했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났을 것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거나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개발자로 취업하기는 나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김석범 수석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그는 IT 업계에서 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2020년 감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김 수석은 “감리사는 기본적인 급여를 주고 업무도 안정적이다”라고 만족감을 표하면서도 “여기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현재도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조사, 수요 예측 모델 경험을 가지고 그 연장선에서 빅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다. 데이터 분야와 감리 직을 연결할 생각도 있고, 또 새롭게 꿈을 찾아갈 생각도 있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니어 직원 없었으면 회사 문 닫았을 것”
- ‘베테랑 중의 베테랑’ 문대원 대표
처음 케이씨에이에 취재 요청을 했을 때도,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직원들은 “문대원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대원(75) 대표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고, 대한민국 정보화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9∼2022년 판에 연속 등재되기도 했다. ‘마르퀴즈 후즈후’ 인명록은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전문가들의 전기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문대원 대표를 만나 정보시스템 감리라는 황무지 분야를 개척하고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문대원 대표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처에 들어갔다. 그다음에 총무처로 옮겨갔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 전산화를 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행정전산계획관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문대원 대표는 전산화 계획 업무를 맡았다. 우리나라 행정전산망의 기본 계획도 그가 세웠다.
이후 1980년대, 당시에는 정보화를 총괄·조정하는 부처가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 산하에 전산망조정위원회를 만들었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파견 나왔다. 그중에 물론 문 대표도 있었다. 그는 정보화담당관으로 활약을 펼쳤다.
문대원 대표는 1990년대에는 한국전산원이라는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에서 일했다. 현재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문 대표는 감리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IMF를 맞았는데, 문대원 대표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인원을 감축하고 민간기업으로 업무를 이관했다. 이에 문대원 대표는 마음 맞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 감리회사를 차렸다. 그게 바로 케이씨에이다. 1999년 어려운 시기에 설립된 회사는 내실 성장을 이뤄 감리 대표회사로 자리 잡았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고 공공기관에서만 일한 사람인데 돈 버는 법을 알았겠어요? 그런데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처음에 감리본부 핵심 요원 10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직원이 300명 넘고요. 감리, IT 컨설팅, PMO 등 각 분야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매출도 300억이 넘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대원 대표는 회사가 성장한 것은 모두 직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특히 문 대표는 “50·60대 시니어분들이 회사의 주축이다. 감리사는 IT 분야의 최고 자격증이고 경력이 중요한데, 그분들의 노하우가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감리란 설계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보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도 중요한 업무입니다. 시니어분들이 경력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하신다는 거죠.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컨설팅이나 조언을 전문적으로 해주시죠. 저는 그래서 개발이나 코딩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40·50대부터 이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일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들은 70대까지도 거뜬하게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어 문대원 대표는 “시니어분들이 안 계셨으면 케이씨에이는 벌써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능력이라는 큰 자산을 가진 시니어들이 나이라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일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50대 후반에서 60대가 되면 다들 은퇴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국가나 사회적으로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시니어분들에게 일할 기회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제일 큰 보람이에요. 무엇보다 그분들이 있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화에 앞장선 문대원 대표. 그는 앞으로도 케이씨에이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갈 예정이다. 문 대표는 “목표는 대한민국 정보화에 기여하는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화 기업이 되고 싶다. 현재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고용노동부와 직업능력심사평가원은 ‘중장년 새출발 카운슬링’ 참여를 확대, 실시한다.
‘중장년 새출발 카운슬링’은 급변하는 노동시장 환경에서 중장년층이 주도적으로 직무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문 컨설팅 기관을 통해 일대일(1:1) 심층상담 방식으로 경력진단, 재취업 업종 상담, 희망 업종의 현직자 그룹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국민평생 직업능력 개발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운영되고 있다.
고용부는 기존에 지원 대상을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만 45~54세로 한정했으나, 퇴직 직전의 재직자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만 45세 이상 참여가 가능하도록 연령 상항을 폐지했다. 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 고용이 불안정한 중장년층도 참여가 가능해졌다.
상담 과정에서 참가자가 부담하던 비용(10%)도 앞으로는 80% 이상 출석률로 과정을 수료하면 전액 환급해준다. 퇴근 후 또는 주말만 가능했던 대면 상담 문턱을 낮추기 위해 줌(Zoom)과 스카이프(Skype) 등을 활용한 비대면 상담도 가능하게 했다.
한편 하반기 중장년 새출발 카운슬링 참여기관 심사 결과 잡모아, 지오코칭 등 7곳의 상담기관이 새로 참여한다. 신규 선정 기관을 포함한 총 17개의 전문 컨설팅 기관은 일대일 심층상담 방식으로 경력진단, 재취업 업종 상담, 희망 업종의 현직자 그룹 컨설팅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중 운영기관 중 한 곳으로 선정된 한국고용협회의 이수종 대표는 “그동안 중장년 전직지원 사업을 전사적으로 준비해왔다”며 “관내 유일 베스트직업훈련기관인 한국정보교육원과의 전략적인 MOU 체결 등을 통해 IT 및 디지털 전환을 특화하여 수준 높은 전직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동화 기술 도입이 50대 이상 사무직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3.62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직 고령 근로자의 경우 젊은 근로자보다 퇴직위험이 1.3배 높았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정종우 과장과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최근 ‘기술도입이 고령자 퇴직위험에 미치는 영향 연구’ 보고서를 발표, “기업의 새로운 기술 도입이 근로자의 퇴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기술 도입은 전반적으로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낮추지만, 50세 이상 사무직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2015~2017년 사업체 패널과 고용보험을 결합한 자료를 이용해 3033개(2015년 초 기준) 기업에 종사 중인 25~69세 근로자 96만2404명을 대상으로 기업별 기술 도입 후 3년간 근로자의 고용상황을 추적 조사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근로자들이 현재 근무하는 기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용상태를 유지하는지 알아보는 생존분석을 통해 기술이 근로자의 퇴직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생존분석은 근로자 성, 연령, 직종, 근속연수 등 특성과 산업, 규모 등 기업 특성을 통제한 상황에서 기술도입 시 근로자의 퇴직위험(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을 추정한 것이다.
분석 결과 자동화 기술 도입, IT 투자 확대, IT 관련 장비 구입 등 기술도입은 전반적으로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술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가 노동 수요 증대, 고용 유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50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 하락 폭이 젊은 근로자에 미치지 못해 기술이 고령 근로자에게 상대적으로 덜 우호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자동화 기술 도입으로 인해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은 0.88배로, 젊은 근로자는 0.77배로 낮아졌다. IT 관련 장비 구매 역시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0.51배로, 젊은 근로자의 퇴직위험은 0.45배로 낮췄다. 기술도입의 긍정적인 영향이 젊은 근로자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한편 직종에 따라 기술도입이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절대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화 기술 도입은 사무직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3.62배로 높였다. 젊은 근로자 대비 1.3배나 높은 것이다. 또 IT 관련 장비구입은 고령 근로자의 비자발적 퇴직위험을 1.48배 높였다. 젊은 근로자에게는 영향이 없었다.
비자발적 퇴직은 근로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해고된 경우를 말하는데, IT 관련 장비 구매가 고령 근로자의 퇴직 위험만 높였다는 의미다. 정 과장은 “비자발적 퇴직은 사용자 측에서 해당 근로자를 더 고용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노동수요 측면에서 고령 근로자의 퇴직위험을 높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 과장은 “인구감소에 대비해 노동력 유지를 위한 정책 수립 시 기술 도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근로자 연령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기술 도입 시 고령자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원인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장수경제’(Longevity Economy)에 주목하고 있다. 장수경제 담론은 고령 인구 집단의 증가가 사회에 부담이 되기보다는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점과 기대를 담고 있다. 고령 인구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으로서 경제성장과 가치 창출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장수경제’(The Longevity Economy)의 저자 조지프 코글린 교수는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인들에게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화와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고령 소비자 집단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특징과 이들의 다양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수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고령자들은 자아실현과 창조적인 노후의 삶에 대한 욕구가 충만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2년 5월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약 90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를 차지한다. 한편 50대 인구는 약 860만 명으로, 10년 뒤에는 50대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평균수명 연장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경제 및 산업 구조에서 장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미흡한 실정으로, 이에 대비하기 위한 개인, 정부 및 기업의 혁신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니어 비즈니스도 디지털 전환 중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 등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은 최근 고령 세대를 위한 디지털 헬스 케어와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케어 서비스 개발에 대한 관심과 예산 증가를 가져왔다. 스마트홈 및 스마트시티 분야에서도 고령친화적 융합기술 기반 제품과 서비스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추세다.
정부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 기술혁신을 통한 초고령사회의 수요 대응 및 사회 시스템 지속가능성 확보를 정책과제에 포함시켰다. 고령친화사회로의 도약과 관련해 돌봄 인력의 부담을 경감하는 스마트 돌봄로봇 개발, 비대면 안심·건강관리 서비스, 고령자 자립생활 및 건강관리 제품·서비스 활성화, 치매·만성 질환 등의 건강·생활편의를 위한 고령친화 신기술 개발 지원, 고령친화 기술 R&D 활성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고령자 기술 수용성 향상 연구 추진, 리빙랩(Living Lab) 등을 통한 고령친화 제품·서비스 사용성 검증, 체험 기회 및 정보 제공 등이 주요 과제다.
장수경제의 성공열쇠는 GT
고령사회의 새로운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2003년 설립한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은 2018년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 한국지부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 GT)라는 생소한 단어를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만에서는 제론테크놀로지를 노인복지기술이라고 번역해 활용하고 있지만, ‘노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반응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노년학, 노년공학, 실버공학 등의 다양한 표기를 활용하고 있었다. 한편 영미권에서는 제론테크놀로지 대신 에이지테크(Age Tech)라는 표현이 더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은 노년학(Gerontolog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유럽에서 탄생한 용어인 제론테크놀로지를 읽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이 단어의 개념과 의미를 확산시키는 데 목표를 두기로 했다.
제론(Geron)은 그리스어로 노인을 뜻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엄밀하게 따지면 꼭 ‘노인’(The Aged)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고 ‘모든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The Aging)을 위한 기술이다. 제론테크놀로지는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모두가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자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기술이 노화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는 고령자들이 없도록 배려하며, 이들의 욕구가 반영된 기술 개발을 촉구하는 것이 제론테크놀로지의 관점이다. 이것은 코글린 교수가 이야기하는 장수경제의 핵심인 시니어 소비자에 대한 이해와 일맥상통한다.
스마트폰, 스마트 TV, 로봇청소기, 스마트 냉장고, 스마트 워치 등 우리 주변의 똑똑해진 전자제품 덕분에 일상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있다. 빅데이터 기반 건강관리, 금융, 쇼핑 서비스 덕분에 개인 맞춤 디지털 에이징 시대가 되었다. 반려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서비스 로봇들과 자율주행 기술 등의 발달 속에 살아가는 시니어의 미래는 걱정보다 기대가 더 큰 장수사회가 될 것이다. IT 강국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의 난제들을 장수경제와 시니어 비즈니스 관점에서 잘 극복해갈 것으로 기대한다.
박영란 교수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 부회장과 2022 제론테크놀로지 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스토어에서 앱 깔고 들어가서 로그인하면 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은 너무나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지만,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 한 문장은 마치 외국어와 같다. 조금 더 쉽게 모바일 서비스를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고령층은 스토어가 뭔지,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어디에 설치하라는 것인지, 로그인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 아날로그가 익숙한 이들에게 디지털은 마치 새로운 언어와도 같다. 그럼에도 고령화 시대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있기에, 이들의 디지털 편의를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은행들이 점포를 줄이는 대신 고령자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디자인을 반영한 고령층 전용 모바일 뱅킹 앱을 내놓는 이유다. UX 디자인은 ‘감성 중심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산업디자인 영역에서 강조되다가, 스마트폰이 급성장하면서 IT 업계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노년층의 육체적·심리적 상태에 대한 연구는 공간을 넘어 모바일로 연결되었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는 김현지 UX 콘텐츠 매니저와 ‘고령층을 위한 UX 디자인’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UX 디자인을 적용해 고령층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주거 공간을 만든다면,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고령층이 생활하기 적합한 주거 공간은 ‘누구나 살고 싶은 공간’입니다. 공간을 통해 세대를 인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에 베리어프리 디자인을 적용할 때는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장애물이 없도록 하는 데만 집중했어요. 사회적 약자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그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실제 고령층은 ‘고령자를 위해’ 고안된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특별 대접을 받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베리어프리 디자인은 이를 보완해 계속 진화했고, 이제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디자인이면서, 고령층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요.
주거 공간은 어린이나 성인도 부주의하면 다칠 수 있는 곳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고령층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요. 아이를 위해 집 안 모서리마다 스펀지로 감싸두는 것처럼 사소한 장애물을 없애는 거죠. 문턱을 없애거나, 욕실과 거실의 단차를 없애거나,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재질 타일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요.
첨단 기술은 꼭 필요한 곳에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작은 제품만으로도 고령자의 삶의 패턴이나 건강을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은 고령자 주거 공간에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캐나다의 스타트업 ‘젠다카디언’(XandarKardian)은 레이더 기술로 사람을 99.9%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한 제품을 만들어요. 화재경보기처럼 생긴 박스형과 테이블에 둘 수 있는 스탠드형이 있는데요. 카메라나 마이크 없이 레이더만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도 가능합니다. 고령 1인 가구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가 느릴 수 있는데요. 고령자가 거주하는 공간에 센서를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해 데이터로 상태를 체크할 수 있습니다. 집 전체를 바꿀 수 없을 때는 이런 제품이 도움이 됩니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집 안 곳곳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는데요. 이 기술들이 이용자의 안전이나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설치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Q 키오스크나 모바일 앱이 늘어나면서,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을 위한 ‘단순한’ UX·UI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령층을 위한 모바일 UX 디자인을 할 때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한가요?
‘어포던스’(Affordance) 디자인으로 새로운 제품·기능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고령층이 새로운 기기나 모바일을 사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기능을 잘못 눌러 갖고 있던 정보나 자료가 사라지거나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 휴대폰을 바꿔도 아는 기능만 사용하게 됩니다. 기능이나 화면이 단순하다고 사용이 쉬운 건 아닙니다. 단순함보다는 ‘명확’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쉬운 명확한 디자인으로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죠.
‘어포던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이에요. 서비스나 시스템을 만들 때 사용자가 보기만 해도 직관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 대략 짐작해 사용하게끔 하는 디자인입니다. 어포던스 디자인이 잘 되어 있다면 처음 보는 제품·서비스여도 이전의 경험으로 추론해 사용할 수 있어요. 사람은 볼록 튀어나와 있는 버튼을 누르고 싶은 심리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컴퓨터 자판이 그 심리를 이용해 디자인된 제품이죠.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터치스크린보다 버튼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디지털에서 그 기능을 강조해야 할 때는, 누를 때마다 진동이 울리는 ‘햅틱 기능’을 강화해 버튼 누르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한 노화에 따른 신체적·심리적 변화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고령층이 자주 사용하는 기능만 넣거나, 폰트 사이즈를 키우는 등의 고려이지요. 다만 상품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마케팅하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고령층을 고려해 만든 앱이어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면, 단순한 기능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거든요.
Q 사용자 경험이 잘 반영된 UX 디자인 예시가 있을까요?
최근 2~3년 동안 사용한 앱 서비스 중에서 사용자 경험이 가장 좋았던 건 영국 핀테크 회사인 ‘리볼트’(Revolut)의 ‘리볼트 온라인 뱅킹’이에요. 한국의 토스를 떠올리면 되는데요.
모바일 뱅크 앱은 다른 어떤 앱보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3년 전 처음 이 계좌를 개설할 때 ‘한 페이지에 한 가지’(One Thing Per Page)로 디자인된 페이지가 최소 10개 이상은 되었던 것 같아요. 과정이 매우 명확했고, 매 페이지마다 제가 은행 계좌 개설을 제대로 해나가고 있다고 안심시켜주었습니다.
한 화면에 한 가지 행동만 집중하게 하는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특히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필요한 요소라는 걸 느꼈는데요. 노년의 신체적 변화를 고려한 원칙이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수용하기가 힘들어지거든요. 뇌에서 메시지를 전송하는 데 관여하는 화학물질이 줄어들고, 신경세포에서는 이런 화학적 메시지에 대한 수용체 일부가 손실되기 때문인데요. 신경세포가 줄어들면 다소 느린 반응을 하거나, 어떤 작업을 마치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능력, 단어를 상기하는 능력과 같은 정신 기능의 쇠퇴는 만 70세 이후 기억 용량이 줄어들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한 페이지에 한 가지’ 원칙을 모바일 앱 디자인에 적용하는 건 노화를 경험하는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이죠.
물론 이로 인해 전체 과정이 길어질 수 있어요. 두 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단계를 하나씩 보여주면 열 페이지가 되니까요. 이런 문제는 UX 디자인 설계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진행 바(Precessing Bar)를 통해 현재 내가 전체 단계 중 어느 단계를 진행하고 있는지 보여주거나, 질문이 몇 개 더 남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혹은 각 페이지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으로 화면을 이탈하려는 사용자를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글, 애플 같은 빅테크 회사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문적으로 쓰는 ‘UX 라이터’(UX Writer)의 역할이 무척 커지고 있어요.
김현지 디자이너가 전하는 시니어를 위한 모바일 UX 디자인 Tip
1. 시력을 고려한다
시력의 변화는 만 40세부터 시작된다. 나이 들수록 색채 시력이 떨어져 비슷한 색을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파란색 음영은 희미하게 보인다. 고령층이 쨍한 컬러를 좋아하는 이유다. 색상 대비 비유 검사가 필요하다. 중요한 아이콘의 색상은 푸른 계열을 피하고, 메시지 전달을 강조하고 싶다면 색상보다 폰트의 크기와 굵기를 사용하자.
2. 인지 변화를 반영한다
인지적 변화는 개인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지만 자연스럽게 퇴화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기억, 주의력, 의사결정을 고려해 디자인한다. 기억력·주의력이 약해지면 멀티태스킹이 어렵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한 화면에 여러 기능을 넣지 않아야 한다. 고령층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익숙한 디자인, 레이아웃, 색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신뢰가 필요한 서비스라면 전문가 의견을 노출해보자.
3. 운동 제어 능력
나이 들면 ‘노인성 진전’으로 인해 손떨림 현상을 겪는다. 따라서 화면 아이콘이 너무 작거나 복잡하면 안 된다. 손가락 태핑이 다른 운동 능력보다 늦게 감소해 스마트폰 터치 인터페이스가 고령층에게 더 적합하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텍스트 보내기와 같은 수준의 과도한 손가락 태핑을 해야 하는 디자인은 금물이다.
김현지 UX 콘텐츠 매니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 요소와 공간 만족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테크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 프리랜서 여행 작가로도 일했다. 저서로는 ‘아이와 함께 런던’, ‘한 번쯤은 아일랜드’, ‘아일랜드 홀리데이’가 있다.
마네의 인상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처음 본 당대 사람들은 ‘예술이 아니다’,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대중은 그들을 ‘창시자’라 일컬었고, 작품들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저마다 산통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 모바일 아트로 미술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모바일 아티스트 정병길(69) 씨다.
어떠한 창조적 본능이나 이끌림 같았다. 정병길 씨가 그림을 그린 까닭 말이다. 학창 시절 다른 숙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림이나 공작(工作) 과제는 눈을 반짝이며 해냈다. 슥슥 휙휙 그렸다 하면 사생대회 1등은 떼놓은 당상. 뛰어난 실력에 담임선생님이 미대를 권유한 적도 있었다. 물론 뜻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엔 다른 꿈이 더 앞섰다. 우장춘 박사처럼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어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원하는 전공보다는 장학금을 주는 농협대학을 택했고, 곧장 밥벌이를 시작했다.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화실까지 마련해가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목표로 하는 꿈보다는 오래 지니고픈 로망이었기에 쉬이 접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여느 직장인처럼 인생 1막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
“농협 지점장까지 하다가 2010년에 은퇴했어요.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그만두고도 2~3년 더 일할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당장 몇 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눈 한번 질끈 감고 일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써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그것도 무명인이 문예활동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긴 게 큰 착오였죠.”
박수 받은 창직, 현실은 맨땅에 헤딩
정병길 씨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도 남달랐다. 당초 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해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은퇴 후 1년 동안 칩거하며 쓴 글을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2년 뒤엔 두 번째 책 ‘이젠 아빠를 부탁해’를 펴냈다.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그림으로는 ‘상하이아트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개인전도 열며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결국 홍보 문제다 싶더군요. 신문 광고도 몇 번 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죠. SNS를 배워 직접 홍보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관련 강의를 듣다 만난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이 모바일 미술 앱을 소개해줬습니다. 태블릿 PC에 떠듬떠듬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당시 강사에게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줬더니, 모바일 미술을 업(業)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게 창직의 신호탄이 된 셈이죠.”
‘모바일 미술’(아트)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그림 앱을 이용해 창작한 미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물감, 붓, 캔버스나 이젤 등이 필요 없고, 그 덕분에 별도로 화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이나 SNS상에 작품을 게시하거나, 출판물에 사용하기도 하고, 캔버스나 종이 등에 출력해 유화나 수채화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그런 모바일 미술이 정병길 씨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정보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입소문을 탄 장르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했다. “옳거니!” 창조적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렇게 개척자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모바일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선생님도 없었어요. 거의 독학으로 기법을 습득하고 펜업(삼성전자 그림 공유 서비스) 도움을 받았죠. 작품을 만들어 뭔가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 분야를 알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SNS에 강좌 정보를 올렸더니 수요가 꽤 있더군요. ‘그러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죠.”
그렇게 ‘모바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이를 개념화하고, 강좌와 전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시대가 발전하며 모바일 미술용 앱과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관련 툴(Tool)이나 출력 기술이 정교해지며 이 분야는 상승세를 탔다. 혹자는 찰나의 아이디어가 운때 맞았다 여길지라도, 이는 나름의 안목을 갖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얻은 선물과 같다. 그 성과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척자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미술계는 기득권의 장벽이 높고 굳건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예술 분야 개척자들을 보면, 대부분 목숨 걸어가며 단초를 마련하잖아요. 저는 아직 모바일 미술 때문에 목숨까지 건 적은 없지만, 돈은 참 많이 까먹었습니다.(웃음) 노후에 도움 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리스크가 될까봐 걱정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와닿더라고요.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전하긴 해도 뭔가 즐거움이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노후 리스크죠. 그래서 기왕 시작한 거 최대한 부딪혀보려 합니다.”
‘NFT, 줌’ 신기술과 만나는 모바일 아트
현재로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단 투자하며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모바일 아티스트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과제인 셈이다. 현재 작품을 판매하거나 저작권료로 얻는 소득은 높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과 직업을 알리는 강의를 통한 수입이 주가 된다. 여타 예술처럼 경매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평가받아 높은 금액이 책정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데다, 작품의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일반적인 경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지만,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그림 파일을 종이나 다른 소재에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미술의 가치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까?
“판화 역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잖아요. 대신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고, 찍는 순서대로 숫자 표기와 서명을 남기죠. 가령 판화 아래 1/10이라고 표기돼 있다면, 10개 찍은 작품 중 첫 번째 에디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판화의 개념으로 가치를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또 실크스크린 판화는 판면의 구멍에 잉크를 넣어 찍는데, 이 기법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작품이라도 툴을 이용해 색이나 요소를 수정하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쉽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을 접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근래 디지털 수집품 거래가 활발해지며, 이러한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구로 NFT가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모바일 미술 작품의 경우 파일 형태로 저장돼 NFT로의 변환이 용이하다. 정병길 씨 역시 이러한 장점을 살려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집중한 아이템은 바로 ‘줌’(Zoom,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주로 방과후교실이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모바일 미술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하고 기술을 익힌 그는 이제 줌에 관해서도 반전문가가 됐다. 최근 2년 사이 ‘줌을 알려줌’, ‘줌 활용을 알려줌’이라는 줌 활용서를 두 권이나 펴냈으니 말이다. 물론 줌 역시 모바일 미술과의 접점을 꾀하고 있는 그다.
“제 목적은 모바일 미술의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데, 그동안 시공간의 제약이 많았거든요. 특히 섬이나 농어촌에 사시는 어르신처럼, 문화 수혜 격차를 겪는 지역민에게 줌으로 모바일 미술을 전파하려고 해요. 또 그런 분들도 모바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줌 전시회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꼭 전에 없던 무언가를 해야만 창의적인 건 아니에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하느냐에 따라 창작과 창직이 가능하다고 봐요.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신기술과 잘 연결 지으면 누구든 저처럼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병길 씨는 2020년 설립한 모바일아티스트협동조합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고, 장차 자격증 발급 절차 등도 논의해볼 방침이다. 그런 그가 모바일 아티스트로서 갖는 최종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모바일 아티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어쩌면 자칫 거대한 포부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해 가수들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곳곳에 노래방이 즐비한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예술이 결국 거대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바일을 통해 손쉽게 미술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 가수처럼, 우리 모두 저마다 작은 예술가가 되는 거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 예술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롭게 표현해야 삶이 풍요로워져요. 많은 중장년이 모바일 아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20초 남짓한 짤막한 순간에도 무언가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을 무위(無爲)로 흘려보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또한 목표라 답한다. 어딜 가든 획 하나라도 긋고 오는 게 목표라고. 그 말을 들으니 수많은 획이 켜켜이 모여 언젠가 미술계에 큰 획을 긋게 될 정병길 씨의 모습이 더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는 시간. 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조급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아직 인생은 늦지 않았으니까.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놓은 작품만 1600점이 넘는다고 해요.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고 하고요. 그분의 삶은 제게도 큰 영감과 희망을 줍니다. 제가 힘을 얻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네요. 여러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술을 일컬어 실버테크(Silver Tech)라 한다. 과거엔 기술이 좋아도 사용자의 접근성이 떨어져 무용지물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친화력이 강한 시니어가 늘면서 실버테크도 더욱 각광받는 추세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화두인 만큼, 치매를 비롯한 질병의 진단 및 치료·예방에 쓰이는 다양한 기술을 살펴봤다.
Step 01. 진단테크
◇ 치매 진단 간단하게, 알츠가드
디지털 치료제 전문기업 ‘하이’의 ‘알츠가드’(Alzguard)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초기 치매 환자를 선별하는 경도인지장애 자가진단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도구로 소비자의 생리학적 데이터를 측정하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기술이 핵심이다.
기존의 바이오마커가 특정 혈액이나 소변, DNA를 측정하듯, 디지털 바이오마커는 IT 기기로 대상자의 디지털 정보를 수집해 질환을 선별한다. 먼저 사용자가 스마트폰 앱을 받은 뒤 7가지 영역의 인지 능력 검사를 진행하면, 목소리(보이스마커), 동공 움직임(아이트래커), 심박수 변화(HRV) 등을 분석해 진단을 내린다. 알츠가드의 경우 초기 치매 환자를 88% 정확도로 선별하는데, 사례가 축적될수록 인공지능을 통한 예측도는 더욱 높아진다. 현재 순도 높은 데이터를 위해 치매안심센터나 기업을 중심으로 보급 중이며, 차후 일반 소비자를 위한 공유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 치매 분석과 건강관리, 알츠윈
알츠하이머를 이겨내겠다는 뜻을 담은 ‘알츠윈’(Alzheimer+Win)은 디지털 헬스 케어 기업 세븐포인트원의 인공지능 비대면 치매 진단 솔루션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10여 년간 3차례, 총 2000여 명에 대한 임상 연구를 진행해 그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2021년 7월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알츠윈 기반 기술의 정확도는 일반 의료진에 의한 ‘MMSE’(간이 정신 상태 검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알츠윈은 인공지능 기술 기반으로 치매 초기에 저하되는 언어유창성 능력 등을 평가해 치매 위험 진단 시 지역치매안심센터나 의료기관과 연결해 선별검사와 치료를 신속하게 돕는다. 아울러 네이버와 합작해 ‘알츠윈 인지케어콜’을 개발,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지 건강관리까지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Step 02. 치료테크
◇ 톡으로 인지 기능 개선, 새미톡
경도인지장애로 손상된 인지 기능의 재활과 개선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다. 중장년에게 친숙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지 훈련과 더불어 인지 기능 저하 여부도 진단받을 수 있다. 별도의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 채널에서 ‘새미톡’을 검색 후 ‘채널 추가’ 버튼만 누르면 된다. 특별한 장치 없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활용함으로써 디지털 표적치료제의 장점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해당 서비스는 유료로 30일 9900원, 1년 5만 9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기업용 B2B 상품도 있다.
◇ 인지 훈련 로봇, 보미
현재 치매를 근본적으로 낫게 하는 약물은 없는 상태로,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로봇인지치료센터에서는 치매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로봇을 통한 인지중재치료를 제공한다. 센터에서 활용하는 일명 손자로봇 ‘보미’는 환자의 얼굴, 목소리, 동작을 인식하고, 로봇을 손자처럼 기르는 개념을 접목했다. 일상에서 필요한 인지 기능 향상을 돕는다.
실제 경도인지장애 단계 환자들이 보미를 활용한 5개 프로그램을 4주간 하루에 60분씩 이용했을 때 대조군보다 작업 기억력이 더욱 향상된 것이 입증됐다. 보미는 환자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밥을 주게끔 하고(미래 기억 훈련), 장 보러 가서 사야 할 물건을 기억하고 계산하며(기억력 및 계산 능력 훈련), 보미가 원하는 옷을 맞게 입혀주는(시공간 능력 훈련) 등의 행위를 통해 인지력 향상을 돕는다.
Step 03. 예방테크
◇ 손쉬운 인지 훈련, 슈퍼브레인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 ‘로완’의 ‘슈퍼브레인’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후원으로 각계 전문가들에 의해 개발된 인지 훈련 프로그램이다. 인지 중재 치료에 기반 하여 경도인지장애환자, 경도·중증도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행위평가 신청 후 비급여 처방 및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 슈퍼브레인은 미국, 유럽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Finger 프로그램)을 한국 어르신 눈높이에 맞게 기획했다. 재미있고 친숙한 생활 속 콘텐츠를 한눈에 확인하고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AI 치매 중재 시스템을 통해 인지능력 변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시간 맞춤형 가이드를 제공한다. 최성혜 인하대학교 교수팀이 임상에서 인지 학습과 혈관 위험인자 관리, 운동, 영양, 동기 등 5개 영역에서 다중 중재 효과를 입증했다. 현재 재가형(인터넷 기반)과 기관형으로 구분해 50여 개 병·의원, 치매안심센터, 복지관 등을 통해 서비스 중이다. 아울러 지난해 LG유플러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치매 예방 관리를 위한 각종 디지털 콘텐츠 및 솔루션 사업도 확장할 계획이다.
◇ VR 기술로 우울증 개선, 센텐츠
가상현실과 의료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케어 솔루션 ‘센텐츠’는 9단계로 조정된 인지 자극 콘텐츠가 35주 과정으로 구성됐다. 기존 가상현실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은 회상요법을 접목해 개발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VR 회상요법’이란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노인의 기억 속 과거 환경을 구축해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경험하게 하는 방법인데, 이를 통해 우울증 및 치매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2018년 MIT 연구팀은 VR 회상요법이 노인의 정신 활동을 자극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인지 능력 등을 향상시킨다고 밝혔다. 센텐츠 사용자들은 머리에 VR 기기를 착용하고 고향, 계절, 풍경 등 50여 가지 스토리를 가상 경험함으로써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력을 증진할 수 있다. 현재 가정방문 요양 서비스 패키지에 포함하거나, 데이케이센터 등에 그룹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버테크 아이템
1) 스마트 기저귀
어르신이 사용하는 기저귀에 센서를 부착해 기저귀의 오염 정도를 파악하도록 설계됐다. 센서등과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기저귀를 언제 갈아야 하는지 알려줘 욕창이나 요로감염, 발진 등 2차 질병을 예방한다.
2) 꿈의 자전거
자전거 사이클을 이용해 가상현실을 주행하며 기억력 증진 및 근력 향상과 치매 지연에 도움을 주는 기기다. 실내에서 사용해 안전하고, 주행 방향이나 속도 등의 조정이 가능하며, 훈련 데이터를 관리해 환자의 재활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다.
3) 톡톡스틱
음성 안내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지팡이다. 넘어지거나 낙상할 경우 지팡이가 이를 감지해 내장된 스피커와 스마트폰을 통해 SOS 전송 및 음성 도움 기능을 제공한다. 또 사전 등록한 보호자에게 위치 전송이 가능해 실종 사고 등에도 대처할 수 있다.
4) 스마트 벨트
노인의 보행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다. 김광일 분당서울대 노인병내과 교수가 노인의 보행 속도 저하에 따른 근감소증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에 활용했다. 보행 속도 외 사용자의 허리둘레, 과식 및 활동 습관 등도 확인 가능하다.
스마트폰 활용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는 어르신이라면 누구나 일대일 밀착 과외를 받을 수 있다.
‘2021 서울서베이-스마트 도시 격차 분야’에서 2018년 고령층의 디지털 활용 수준은 61.9점, 2019년 65.8점, 2020년 70.2점으로 차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동화 기기가 확대됨에 따라 디지털 격차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디지털재단은 스마트폰 설정, 카카오톡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기차 예약 등에 난항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7월부터 9월까지 일대일 교육 ‘어디나지원단’을 무료로 진행한다. 어디나지원단은 ‘어르신 디지털 나들이 지원단’의 줄임말로, IT 역량을 보유한 어르신 100여 명으로 구성돼있다. 교육을 희망하는 55세 이상 서울시민은 ‘어디나지원단 콜센터’로 전화해 신청할 수 있다.
교육 장소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를 비롯해 은평종합재가센터, 노원구 상계중앙시장, 관악구 신한은행 디지털라운지 등이며 향후 더 확대될 예정이다.
재단은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사용을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15일 신한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서울시 내 고령층 방문객이 많은 신한은행 영업장에서도 어르신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에 방문한 어르신이라면 누구나 IT 강사에게 1:1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이 신한은행 영업점에 ‘어디나 지원단’ IT 강사를 파견해 1:1 디지털 금융 교육과 헬프데스크 운영을 지원한다. 교육 내용은 △은행 앱 △ATM기 △금융사기 예방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교육은 7월 중 고령층 방문 비중이 높은 서울 시내 신한은행 영업점 일부를 선정해 9월까지 시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신한은행은 재단과 고령층 디지털 금융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글로 보는 서비스 등을 추가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재단과 신한은행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 개발도 진행한다. ‘어디나 5분 클래스’ 디지털 금융 편을 신규 개발해 보다 많은 시민이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어디나 5분 클래스는 서울디지털재단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내 콘텐츠로, 디지털 강사들이 교육 활동을 하며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짧은 영상으로 구성했다. 서울디지털재단은 “최근 무인점포가 “어르신들이 주로 어려워하는 은행 앱 사용법을 알려주거나, 금융사기 관련 사례와 자료를 공유하는 등 금융 관련 콘텐츠를 신한은행과 함께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디지털재단은 2019년부터 4년째 ‘어디나지원단’ 어르신 디지털 교육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 25개 전 자치구의 복지관, 도서관 등에 파견돼 올해 ‘어르신 1만 명 이상 교육 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