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 지나가는 사람, 카페, 빌딩, 심지어는 도시의 냄새에도 정보가 있다. 그 정보를 읽으며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의 이야기다.
“덕기성취(德器成就) 지능계발(智能啓發), 배재학당의 교육 이념과 이 건물이 세워진 해를 알 수 있죠.” 배재학당의 머릿돌을 짚으며 김시덕 박사가 말했다. 배재학당을 지나 시청 공원까지 함께 걸으며 그는 주요 건물들의 역사, 도로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줄줄 읊었다.
“구시청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은 거예요. 서울시 의회 건물은 옛날 경성부민관이라고 해서 경성부의 시민회관으로 쓰였던 건물이고요. 최근 숨겨져 있던 머릿돌이 발견돼 화제가 됐죠. 구시청처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머릿돌에는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서 대부분 누군가 부숴버렸기 때문에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김 박사에게 도시는 그 자체로 읽을거리가 된다. 우리가 책을 읽듯 그는 도시를 읽는다. 그는 간판, 문화주택, 시민 예술, 화분과 장독대, 공동주택, 아파트, 철도, 버스 정류장, 상업시설, 공공시설 등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정보가 담겨 있다 말한다. 도시문헌학자로서 도시를 읽고 기록하는 것, 그가 하는 일이다.
시층, 3문화 광장, 도시 화석
문헌학이 무엇인지 묻자 김 박사는 명함을 보여줬다. 영어, 한자, 한글, 숫자까지 네 개의 언어가 섞여 있고, 무게는 몇 그램이고, 어떤 종이를 썼고, 글자 간 간격은 어떠한지, 글씨체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해석하는 일이 문헌학이라고 했다. 이 방법을 도시에 적용한 것이 도시문헌학이다.
“여기도 3문화 광장이네요. 조선시대에 지어진 배재학당, 1950~60년대에 이곳이 오피스 중심지였다는 걸 보여주는 저 건물, 현대에 지어진 빌딩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세 가지 시대의 흔적이 섞여 보이는 걸 저는 시층(時層)이라고 해요.”
창밖을 내다보며 그가 말했다. 김시덕 박사와 인터뷰하기 위해 자리 잡은 카페는 17층에 위치해 시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도시를 읽고 있었다. 도시문헌학자란 이처럼 도시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사회상까지 분석한다.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나 독재 시대의 역사를 건너뛰고 도시를 봐요. 저는 개항 이후 100년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미, 부산, 광주 등 대부분의 현대 핵심 도시들이 최근 100년 사이에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시간을 빼고 이야기하려고 하죠. 그러니 앞뒤가 안 맞는 해석들이 나옵니다.”
도시를 읽으려면 시대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그는 도시를 볼 때 시층, 3문화 광장, 도시 화석, 크게 세 가지 개념 도구를 사용한다. 그가 말하는 시층은 한 장소에 축적된 시간의 층을 말한다. 강남은 현대에 개발된 지역이어서 조선시대나 식민지 시대가 없고 초기 196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의 시층을 관찰할 수 있다. 3문화 광장은 멕시코시티의 3문화 광장(아스텍 유적, 16세기 산티아고 성당, 현대 외무부 건물이 공존하는 곳)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우리나라 역사 특성상 동대문처럼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근대, 현대 등 다양한 시점에 지어진 건물들이 한 번에 보이는 곳이 꽤 있다. 도시 화석은 배재학당처럼 도시의 옛 흔적을 간직한 것을 말한다. 그의 도시 기록서인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에서는 버스 정류장도 도시 화석이라고 말한다.
김시덕 박사는 일본 문학 중 전쟁사를 전공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답사기에는 늘 국제 정세가 함께 언급된다. 마치 지난 100년을 없는 셈 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북한의 위협이 없다는 전제로 도시를 본다. 하지만 그는 일산신도시와 분당신도시의 집값이 두 배 차이 나는 이유를 볼 때 북한의 위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박사는 국제 정세가 한국 도시의 운명을 결정해왔다 말한다.
답사는 본능 같은 것
김시덕 박사가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한 건 2017년이다. 답사를 즐기게 된 계기를 묻자 “본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도시 걷는 걸 좋아했다고. 답사의 기본은 대중교통이다.
“한국 도시는 차 위주로 만든 도시가 아니거든요. 걸어야 한다는 전제로 만든 도시예요.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다면 주변 버스 정류장 두 정거장 전쯤부터 걸어봐야 해요. 그래야 길의 높낮이도 보고, 사람들 유동량도 보고, 주변 공장이나 축사 냄새도 맡죠. 대부분의 지방 도시는 100년 전에 만든 신작로라는 길을 중심으로 면사무소나 시청이 놓여 있어요. 그런데 차로 고속도로만 타고 돌아다니면 옛 사람들이 다니며 만들어진,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구조를 하나도 보지 않고 통과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동산을 사기 전 지역 탐방하는 걸 뜻하는 ‘임장’을 할 때도 사고자 하는 부동산 주변을 꼭 걸어봐야 한다. 그러니까 아파트든 상가든 뭔가를 사고자 한다면 도시의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 원하는 단어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뜻이 바로 나오지만, 종이 사전으로 단어를 찾으면 앞뒤 단어도 함께 보여 맥락까지 이해하게 된다. 검색이 편리하듯 차를 타면 편하지만 월요일 출퇴근 시간대의 도시 냄새나 교통량 등을 알지 못할 테고, 그렇게 부동산을 구매하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도시의 맥락은 도로 안내판, 머릿돌, 간판에도 있다. 최근 김 박사는 공장지대나 택지 개발 예정지인 농산어촌을 둘러보고 있다. 앞으로 사라질 것들의 맥락을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을지로에서 간판 떼어서 보존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 순간 맥락이 없어져요.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들은 대부분 도굴된 겁니다. 이건 고고학에서 쓰는 개념인데요. 예를 들어 금동향로가 있는데 그게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출처를 모르면 가치가 달라져요.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가가 많은 정보를 담고 있거든요. 마치 책을 볼 때 글자만 읽는 것과 책의 질감, 무게, 잉크 종류 등을 보는 것의 정보량이 다른 것과 같죠.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간판을 떼어두면 왜 만들어졌는지, 누가 사용했는지, 어떤 사진이 같이 걸려 있었는지 등의 정보가 사라지기 때문에 원래 가진 정보의 10분의 1밖에 볼 수 없죠. 그래서 현장에 남아 있을 때 보려고 합니다.”
3대 메가시티와 6개 소권역
김시덕 박사는 ‘서울 선언’을 비롯해 ‘갈등 도시’, ‘대서울의 길’ 등 ‘서울 선언’ 시리즈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등을 집필했다. 가장 최근에 낸 ‘한국 도시의 미래’에서는 3대 메가시티와 6개 소권역을 주요 지역으로 나누었다. 그에게 향후 9개 권역으로 도시를 나눠 미래를 전망한 이유를 묻자 “관찰 결과 보고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관찰된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대중교통 답사를 하다 보면 교통망에 따라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거든요. 제가 대서울권이라는 말을 쓰는데 예를 들어 춘천, 원주, 홍성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서울로 직행하는 건 아니에요.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마치 체인처럼 연결되는 거죠. 그 체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봤습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기본계획’ 읽는 법을 꼭 숙지하길 당부했다. 도시기본계획은 지자체에서 향후 어디를 어떻게 개발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발표다. 실제로 개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어떤 발표를 했는지 알아두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지난해 발표한 서울 도시기본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5층 고도제한 완화’라는 화두였다. 다만 기본계획을 볼 때는 반드시 연도별 계획을 비교해서 봐야 한다.
“각 지역에 시사, 구지, 군지 등 지역 역사책이 있어요. 서울시사, 강동구지 같은 거죠. 시장이 바뀌거나 하면 책을 새로 내는데, 정파에 따라 있던 내용을 빼거나 더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꼭 이전 책과 새로 나온 책 두 개를 같이 봐야 해요. 도시기본계획도 그래요. 예를 들면 하남도시기본계획2020과 2040을 같이 보라는 거죠.”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 서울과 부산 등 분석에서 비교는 필수다. 부산은 서울이 부산 인구를 다 빼앗아 간다고 하지만, 부산은 울산의 인구를 빼앗아 온다. 어떤 지역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각 지역의 정치를 담당하는 지역구 의원이나 국회의원의 공약에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다.
“요즘 운하의 도시라고 하면 송도나 김포를 떠올리는데요. 원래 운하도시를 지향한 건 부천이었습니다. 부천 중동신도시를 1989년에 분할하려고 했고, 도시기본계획에 그 내용이 담겨 있었죠. 그런데 무산되면서 다음 기본계획에는 그 내용이 빠졌거든요. 앞선 도시기본계획만 보고 부천이 운하도시가 되겠다고 생각해 집을 샀던 사람들이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비교 분석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최근에는 내륙지역인 부천에 항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만약 누군가 이런 공약을 냈다면 과거 도시기본계획에 있었지만 사라진 내용이 다시 나온 거예요. 운하도시가 취소된 배경을 알고 있다면 부천에 항구 만드는 일이 허황되다는 걸 알 수 있겠죠?”
한국 도시를 기록하며
그의 도시 연구는 서울·경기와 그 외 전국 지역으로 나뉜다. 아무래도 서울·경기권에 사람이 많다 보니 이 지역에 대한 분석 요청이 많다. 그는 답사하며 기록한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삼프로TV_경제의 신과 함께’ 채널에서는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를 연재하고 있으며, 개인 유튜브 채널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에서는 답사하면서 관찰한 장소를 하루에 하나씩 올린다. 강릉의 안목해변이 아닌 화력발전소, 광양의 제철소가 아닌 농촌, 서울 1호선에 있는 머릿돌, 한강신도시 개발 예정지에서 본 벌판 등이 그가 올리는 영상의 주제다.
‘서울 선언’ 시리즈와 같은 답사·임장 책도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 선언’ 시리즈의 4편이 될 책을 탈고했다. ‘서울 선언’ 시리즈는 국제도서전에 출품할 예정이다. 더불어 1980년대에 나온 ‘한국의 발견’ 시리즈처럼 그만의 답사 책 시리즈를 만들고자 하는데, 향후 5~10년은 더 걸릴 거라고 봤다. 김 박사는 “현재의 1년은 과거 100년과 같다”며 “바뀌는 도시를 꾸준히 점검하고 업데이트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그의 답사는 걸을 수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시덕 박사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누가 좋다고 해서 샀는데 집값이 떨어진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어요. 반드시 지역에 가셔서 버스 한 정류장이라도 걸어보시고, 근처 카페에 앉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부동산 시장의 ‘카더라’보다 정확할 겁니다.”
“저보다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25년 동안 300채의 한옥을 지은 김장권 북촌HRC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한옥을 제일 많이 지었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럼에도 그는 지은 집의 수보다 실패해본 횟수를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김장권 대표는 ‘퍼스트 펭귄’으로 불린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누구보다 먼저 도전해 다른 이들을 뒤따르게 하는 개척자다. 각종 상을 받은 ‘채효당’, ‘#200’, ‘관훈재’, ‘가회동 L주택’에는 그의 도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옥은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그는 ‘한옥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했다. “한옥은 우리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가 버리고 방치했을 뿐. 그러니 한옥으로 들어가자”는 게 그의 뜻이었다. 김장권 대표는 한옥이라는 공간을 다루면서 ‘변화를 주어야 할 것과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을 늘 고민하고 강조한다. 본질과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지어진 한옥을 보면 형태나 구조는 한옥이지만 비례나 모양이 한옥이 아닌 변형된 집이 너무 많다고 했다. 복습과 답습만 해서 그렇단다. “카피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포스트 클래식’한 한옥을 주장한다. 본질을 지키되 현대에 필요한 것들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한옥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대인이 살기에 불편한 점을 하나씩 고쳐나갔다.
김 대표는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 말 정도에 지어진 집들이 우리가 이어나가야 할 한옥의 본질이라고 본다. 본질은 꼭 지키되 몇 가지는 현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에어컨, 냉장고, TV, 전화기 등의 가전제품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또 과거에는 사랑채, 안채 등 대지를 넓게 활용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불가능한 얘기다. 단열도 중요하다. 과거 조상들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흙을 소재로 집을 지었지만, 요즘에는 단열도 잘 되면서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가 많다.
“저는 한옥이 가지고 있는 ‘가구결구식’이라는 양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짜맞춤이죠.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한옥 지을 때 ‘못 하나 안 쓴다’는 말이요. 주먹장이라고 해서 한번 끼우면 빠지지 않고 서로 맞물리도록 설계된 게 한옥입니다. 이런 가구결구식이 한옥의 본질이라고 봐요. 원형은 존중하되, 현대 한옥에 맞는 작법을 담을 수 있겠죠. 요즘은 빗물 재활용이나 태양에너지를 덧대는 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을 담은 작품이 ‘관훈재’다. 21세기 한옥 트렌드를 고민했던 김 대표는 수직적 확장성이 다음 한옥의 트렌드로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 봤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시에서는 한옥을 2층으로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주지 않았다. 그의 설득에 서울시 지원을 받아 처음 2층으로 지은 한옥이 관훈재다. 그는 다음으로 3층 한옥을 만들자고 건축주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단다.
한옥이 가진 ‘공간의 힘’
그는 왜 25년 동안 한옥만 지었을까? 왜 한옥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게을러서 그렇다”며 겸손한 답을 내놨다. 당시만 하더라도 30~40층짜리 건물 하나를 지으려면 엄청난 비용과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김 대표는 사람이 사는 일반 주택을 짓고 싶었다. 요즘은 또 다르다지만 그때는 낭만도 있었다고.
“비 오면 건축주가 술 먹자고 했던 때죠.(웃음) 이사 들어올 집이 아니라 정주의 공간이기 때문에 서두르지도 않았고요. 어음이나 수표로 집 짓는 사람도 없었으니 도산 걱정도 없었죠. 목숨 걸고 하지 않는 일이라 좋았어요.”
일반 건축에 비해 한옥은 진입 장벽이 높은 건축물이었다. 당시에는 궁이나 사찰을 짓는 사람들이 주거용 한옥을 지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지 않는 궁이나 사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건축주에게 ‘살고 싶은 집’에 대해 묻는다. 한옥은 ‘맞춤형’ 집이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과 아파트를 비교하자면 아파트가 담보대출이 더 많이 나온다. 김 대표는 ‘집’이 또 다른 ‘화폐’ 역할을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같은 평수의 같은 형태의 아파트는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화로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은 집집마다 다르게 생겨 비교하기 어렵다. 건축주에게 물어보면 집이 아니라 터만 보고 샀다는 사람이 많았다. 지을 때는 아파트 리모델링보다 더 비싸게 드는 게 주택인데, 잘 팔리지도 않고 대출 담보력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한옥 주택이 아파트와 다르게 가질 수 있는 가치는 뭘까. ‘공간의 힘’이다.
“한옥에는 행태적인 요소가 들어갈 행간이 많아요. 행태라고 하면 문을 열 때 사람이 문고리를 잡는 방식에 따른 문고리 모양,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에 필요한 난간 모양 등을 고려하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지인이 영국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재래시장에 갔다가 울었다고 한다. 물건을 살 때 아주머니가 얹어준 ‘덤’을 보고 ‘아 그래, 이곳이 한국이구나’ 느꼈단다. 서양의 건축은 나무가 휘고 변형되지 않도록 집성을 한다. 하지만 한옥에는 굵은 나무도 있고, 균열이 간 나무도 있고, 문이 딱 맞지 않아 바람도 들어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무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이런 덤과 여백의 문화가 우리 민족성이라고 본다.
“한옥에는 쪽마루나 툇마루가 있어요.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에요. 우체부 아저씨가 오면 잠시 앉아서 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합니다. 덤 문화처럼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만의 요소가 휘어진 석가래, 비뚤어진 문, 마당에 담겨 있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생활 영역에 흔들림도 파장도 주지 않으면서 방문객을 대하는 유연함이랄까요. 한옥에는 그런 것들을 아우르는 공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살고 싶은 집을 물어요. 주거 공간은 건축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를 위한 건물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은 생활의 손때 묻은 시간과 삶의 흔적이 완성시키는 것이거든요.”
설계는 감각이 아니라 미학이다
김 대표는 어릴 때 문학 소년이었다. 지금도 소설가를 꿈꾼다. 그는 한옥에서 소설과 같은 매력을 느꼈다. 직유가 아닌 은유가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바람이 분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봤는데요. 거기서 비행기 설계에 관한 이야길 하면서 카프로니 백작이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에게 ‘설계는 감각이네. 감각은 시대를 앞서가지. 기술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거야’라고 했어요. 너무 멋진 말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본질을 더하고 싶어요. 저는 ‘설계는 미학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아름다움의 본질이 미학이잖아요.”
많은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주택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사람들이, 먼 미래에 과연 한옥을 찾을까? 한옥의 ‘쓸모’는 미래에도 유효한가 물었다.
“건축은 시간 앞에 거짓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축들을 볼까요? 필요해서 남았나요? 버리고 싶은 건축물이라면 지워졌을 겁니다. 보존된 건물들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게 사회적 가치가 아니어도, 어느 개인에게 가치 있는 건물일 수 있죠. 그러니 건축이야말로 시간 앞에 가장 정직한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바로 보이는 인촌 고택이 100년 된 한옥인데, 이를 현대에 와서 똑같은 한옥으로 지었다고 봅시다. 어떤 집이 더 가치 있을까요? 100년 전에 지은 한옥입니다. 그 이유는 시간의 영속성, 그러니까 그 집에 담긴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러니 오래된 한옥은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본다. 김 대표는 또 다른 이유로 도시재생을 예로 들었다. 도시재생을 할 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앨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다시 ‘본질과 흔적’으로 돌아온다. 도시재생을 하는 방법으로 ‘멸실형’과 ‘수복형’이 있다. 멸실형은 기존 건물을 없애고 새로 짓는 방식이다. 수복형은 야금야금 본채를 수복하면서 고쳐나가는 방법이다. 아파트는 대개 멸실된다. 그래서 서울이 고향인 사람 중에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가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이들이 많다. 고향이 있지만 고향이 없는 셈이랄까. 그래서 그는 조금씩 수복하며 자리하는 한옥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도시재생이라고 본다.
“설계는 미학이라고 했죠. 그런데 문화가 변하잖아요. 당시에 미학이라고 본 것이 나중에 보면 아닐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을 다시 고쳐나갈 수 있는 게 우리스러운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옥이 가장 완벽한 본질에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옥스럽다’, ‘우리스럽다’고 하는 요소는, 역사와 문화 베이스를 담은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회한을 소급받는 공간, 한옥
김장권 대표는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요소를 담아줄 것이라 믿는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자신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한옥에는 나를 돌볼 공간이 있다. 아파트에는 장을 담글 공간이 없다. 햇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한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는 엄마나 아빠를 위한 공간도 없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묘지 들어가는 것도 경쟁하는 세대라고 했어요. 저도 이제 60이 넘었는데, 우린 여전히 활동해야 하잖아요. 미래에도 유효한 삶, 가치 있는 삶,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하죠. 마치 오래된 미래의 한옥처럼요. 우리는 지난 회한을 소급받고 싶어 하는 나이입니다. 그 회한이란 추억일 수도 있고, 향수일 수도 있겠죠.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공간적 요소가 한옥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곳에서만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한옥을 짓고 싶다고 했다. 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눈 내리는 것도 볼 수 있는, 건축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새와 구름이 공간을 채워주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 말이다.
“흔히 살아온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은 쓸 거라고 그러죠.(웃음) 굳은살투성이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후를 앞둔 우리의 경험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자존감 높은 삶을 살아가는 시니어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와도 견주지 않는 멋있는 삶을 위해, 내 지난 회한을 소급받고 싶은 마음을 받아주는 곳이 바로 한옥이지 않을까요? 치유하는 공간으로서 오래도록 한옥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팬덤에 관한 한 세대 차이나 문화 격차 문제는 잠시 넣어둬도 좋다. 시니어 팬덤은 K팝 아이돌 팬덤 문화까지 섭렵하며 시장에 넓게 손을 뻗치고 있다. 높은 경제 수준과 여유로운 시간으로 무장한 그들의 소비는 뭔가 다르다.
“좋다고 하길래 하루에 2포씩 먹고 있어요.”
2021년 2월 27일 방탄소년단(BTS) 정국의 한마디에 콤부차(차를 발효한 음료) 품절 대란이 빚어졌다. 개인방송 도중에 소개한 중소기업 티젠의 분말 형태 콤부차 한 달치 물량은 3일 만에 바닥 났다. 매출, 수출 모두 급증했다. 3월 첫 주 매출은 전주 대비 500% 증가했고, 수출도 전월 대비 800% 폭증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미(BTS 팬덤)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아미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웅시대’로 대표되는 시니어 팬덤의 화력도 못지않다.
자동차부터 죽까지 트롯맨 뜨면 동난다
“시니어 팬덤은 소비 단위가 달라요. 자동차 같은 고관여 상품도 구매하죠. 범위도 넓습니다. 우리 삶 전반에 관련된 제품 소비가 이뤄지고 있어요.”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미디어·엔터 애널리스트의 말처럼 시니어 팬덤의 소비는 단위와 범위 모두 남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쌍용차(현 KG모빌리티)다. 2020년 존폐 위기에 선 쌍용차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 1등 상품으로 ‘G4 렉스턴’을 제공하고 ‘진’(眞) 임영웅과 광고 계약을 맺으면서 기사회생했다.
‘임영웅 효과’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간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한 청호나이스는 실적이 꾸준히 개선됐고, 죽 브랜드 본죽은 CF 영상이 2000만 뷰를 넘기고 쇼핑백이 중고 거래되는 등 전에 없는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임영웅이 시축과 공연에 나선 FC서울의 K리그1 6라운드 홈경기에는 올 시즌 최다 관중 4만 5007명이 들어서기도 했다.
콘서트는 말할 것도 없다.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 서울’은 대기자만 최다 60만 명에 달했고, 6일치 공연 티켓은 발매 즉시 매진됐다.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 횟수는 오랜 K팝 팬인 이현지 애널리스트도 놀랄 정도다. “임영웅 씨는 정말 대단해요. 정규 1집이 100만 장 넘게 팔렸거든요. 100만 장을 판 아이돌이 있긴 하지만, 사실 글로벌을 포함한 거예요. 임영웅 씨는 100만 장을 국내에서만 판 셈인데, 이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스트리밍은 글로벌 K팝 팬들도 견제할 수준이고요.(웃음)”
이현지 애널리스트는 시니어 세대가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찾았다고 분석했다. “시니어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요. 시간도 비교적 많고요. 그동안 쓰고 싶지 않아서 안 쓴 게 아니에요. 몰입할 대상이 없어서 못 썼던 거죠. 그런데 임영웅이라는 사람이 등장한 겁니다.”
이 몰입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비즈니스 성장 전략가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은 말했다. “고객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
연예인 쫓아다니는 자녀의 등짝을 때려 말리던 여성들이 변했다.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시니어 팬덤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곳엔 반짝 유행도, 반짝 스타도 없었다. 거대한 흐름이 된 시니어 팬덤의 형성 과정과 심리학적 이유를 추적했다.
“최종 보스 컴백 확정.”
“우리는 살았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컴백하는 그룹 너무 안타깝네요.”
“아, 이런….”
한 틱톡(동영상 공유 플랫폼) 게시물 속 글로벌 K팝 아이돌 팬들의 대화다. 누군가의 컴백 소식에 한 팬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또 다른 팬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세계 속 K팝 팬들을 웃고 울리는 이는 가수 임영웅이다.
임영웅 컴백 소식은 하나의 밈(Meme, 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한 오랜 K팝 팬의 말이다. “임영웅이 컴백하면 ‘숨스밍’(숨 쉬듯 스트리밍)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요. 보통 오후 6시에 음원이 나오잖아요? 첫날에는 아이돌이 1위를 하기도 하는데, 유지는 힘들어요. 어머니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요. 임영웅 팬덤의 존재요? 글로벌 K팝 팬들 다 알 거예요. ‘우리 아이돌 그때 컴백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걸요.(웃음)”
‘영웅시대’(임영웅 팬덤)로 대표되는 시니어 팬덤의 입지는 상상 그 이상이다. 견제 또는 의식의 대상이 된 그들은 빠르게 대중 시장 지형을 바꿔나가고 있다.
은퇴하는 오팔 세대, 트롯맨을 만나다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 Fanatic(퍼내틱)에서 따온 ‘Fan’과 영토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인 팬덤(Fandom)은 한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돼왔다. 백과사전에도 ‘어떤 대중적인 특정 인물이나 분야에 지나치게 편향된 사람들을 하나의 큰 틀로 묶어 정의한 개념’이라 실릴 만큼 인식은 형편없었다. 1990년대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며 노골적으로 비하받았던 이들에게 오랜 시간 쌓인 편견은 성숙한 팬 문화가 자리 잡고 팬덤 소비가 위력을 드러내면서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팬덤 문화에 시니어가 본격적으로 합류한 건 2020년 전후로 지목된다. 바로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이 방영된 시점이자 ‘오팔(OPAL) 세대’가 트렌드로 부각된 시기다.
오팔이란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로,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처음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와 발음이 같아,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5060 액티브 시니어를 지칭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오팔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탄탄한 경제력과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대. 2010년 즈음 노동 시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이들은 2020년을 기점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에서 고령층(65세 이상)으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막이 오른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은 시니어 팬덤이라는 전에 없던 문화를 만들어낸 기폭제가 됐다.
중장년 여성이 팬덤이 된 진짜 이유
시니어 팬덤이 써낸 기록은 역대급이다. 그중에서도 2020년 방송된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은 독보적이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아무도 넘지 못했던 ‘마의 시청률’ 30%를 깨며 최고 시청률 35.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38.5%에 달했다. 최종 결선 7인 중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문자 투표에는 773만 1781표가 쏟아졌다.
광풍은 식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임영웅은 새 디지털 싱글 ‘Do or Die’ 발매와 동시에 국내 차트를 석권했고, 김호중은 영화 ‘바람 따라 만나리: 김호중의 계절’로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장민호는 ‘호시절(好時節): 민호랜드[MIN-HO LAND]’ 서울 공연 티켓을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시켰다.
심리학자 김은주 박사는 이를 “일대 특이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배우 배용준이 이끈 2000년대 초중반 한류 붐)과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평행이론처럼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김 박사는 그 기저에 중장년 여성들의 복합적인 심리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오팔 세대 여성들은 희생의 아이콘과 같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가 되기까지 그들 역시 엄청난 공을 세웠어요. 남성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은 육아를 담당했지요. 아무리 뛰어난 여성이라도 대개는 가정에서 살림을 담당해야 했던 게 지금의 60대 여성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아이도 키우고, 부모 봉양도 마치고 나니 ‘빈집 증후군’ 같은 게 생긴 겁니다. 뒤돌아보니 사회적 권리도, 힘도, 소속감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인생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치열하게 살아온 뒤 남은 주름진 얼굴과 아무도 몰라주는 헌신. 그 우울과 불안 그리고 헛헛함을 마주했을 때 등장한 것이 장르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음악을 하는 스타라고 김은주 박사는 분석한다. 중요한 건 ‘트로트’가 아니라 ‘스타’라는 것이다. 시니어 팬덤이란 사회적 통념에 맞춰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욕구를 스타를 통해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박사는 시니어 팬덤이 자체 미디어 교육을 통해 조직적으로 스타를 지원하고, 아예 팬덤 이름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했다. “시니어 팬덤은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길러냅니다. 1등을 만들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지요. 그렇게 생애 첫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동안 희생만 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거예요. 심리학적으로는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3단계(애정과 소속의 욕구), 4단계(존중 욕구)가 함께 충족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김은주 박사는 시니어 팬덤 활동이 결국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5단계(자아실현)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임영웅 팬을 자처하는 그는 부친을 잃은 슬픔을 신간 ‘영웅앓이’를 집필하며 이겨냈다고 했다. 김 박사의 말이다. “사실은 다 스스로를 위해 하는 행동이에요. 행복해지기 위해서요.”
배우 변희봉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변희봉은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한 끝에 18일 사망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변희봉은 앞서 지난 2018년 방송된 tvN ‘나 이거 참’에서 “지난해 ‘미스터 션샤인’ 캐스팅 요청을 받으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때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며, 이후 관리를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밝힌 바 있다.
변희봉은 1963년 DBS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데뷔했으며, 이후 1966년 MBC 2기 공채 성우로 이적했다.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드라마 ‘욕망’ ‘질주’ ‘1%의 어떤 것’ ‘늑대’ ‘위대한 유산’ ‘하얀거탑’ ‘공부의 신’ ‘울랄라 부부’ ‘오로라 공주’ ‘불어라 미풍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한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에 그는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다.
변희봉은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로 제21회 백상예술대회 TV부문 인기상을 받았으며, 영화 ‘괴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대중문화 각계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발인은 오는 20일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배우 이필모가 FA 시장에 나왔다.
이필모는 12일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현재 FA 상태가 맞다. 좋은 소속사를 만나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케이스타글로벌이엔티와 전속계약이 만료된 그는 혼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필모는 앞서 본지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6월호 표지를 장식하며 근황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는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 장신유(로운 역)의 아버지 장세헌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필모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1998년 영화 ‘쉬리’로 데뷔한 후, KBS 2TV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MBC ‘빛과 그림자’, MBC ‘가화만사성’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또한 그는 2018년 TV조선 ‘연애의 맛’에서 만난 서수연 씨와 2019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필모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크게 느끼며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작품에 불러주시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 편이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전한 바 있다.
더운 여름을 서늘하게 보내고 싶다면 OTT에서 볼 수 있는 공포 영화, 드라마는 어떨까?
유전(2017)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심리적인 공포와 기괴함이 가득한 영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령을 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31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수상작.
킹덤(2019) 넷플릭스 시청 가능
기이한 역병에 걸린 왕을 둘러싸고 조선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조선판 좀비 드라마 속 어둠에 뒤덮인 백성들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미티빌 호러(2005) 왓챠, 티빙 시청 가능
마을에 온 가족이 처참하게 몰살당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인 동기는 다름 아닌, 알 수 없는 목소리. 실화 바탕인 공포 이야기가 시작된다.
링(1998) 왓챠 시청 가능
어떤 비디오를 보면 1주일 뒤에 죽는다는 소문을 취재하던 레이코. 켜지도 않은 TV에서 혼령 사다코가 나오면서 저주가 시작된다.
장화, 홍련(2003) 왓챠, 넷플릭스, 티빙 시청 가능
22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한국 공포 영화.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된 첫날부터 집안 곳곳에서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Exhibition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
일정 7월 16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남해를 앞에 둔 지리적·문화적 특성을 가진 전남도립미술관은 ‘아시아’의 예술을 생각하며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전을 열었다. 과거의 바다가 지역의 경계로서 위치했다면 ‘또 다른 바다’는 시공간을 넘어 각기 다른 아시아의 지역을 공유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전시는 말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연계한 전시로, 아시아의 바다를 주제로 16명의 한국과 대만, 일본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파(波), 바다의 파동’, ‘몽(夢), 바다와 꿈’, ‘초(超), 바다 너머’, ‘경(境), 바다와 경계’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전남 신안 출신인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과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전통 수묵을 현대화한 대만 수묵화의 거장 리이훙(1941~)과 일본을 대표하는 표현주의 현대미술 작가 나카무라 가즈미(1956~)의 신작도 공개된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남도의 남해와 이어진 아시아의 동서남으로 향해 서양과 동양, 어제와 오늘의 바다를 돌이켜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일정 7월 2일까지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 전시1관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진행되는 전시다.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역사’로 통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60여 점을 포함해, 영국의 대표 팝아티스트 14인의 오리지널 작품, 판화, 사진, 포스터, 영상 등 1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의 부제인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사회적·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영국 런던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광고, 영화, 사진 같은 대중문화 요소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은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영감을 준다.
●Stage
◇리어왕
일정 6월 1 ~ 18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시번
출연 이순재, 권민중, 서송희, 지주연, 최종률, 박용수, 임대일 등
2021년 첫선을 보인 연극 ‘리어왕 : KING LEAR’(이하 ‘리어왕’)이 2년 만에 돌아온다. 이순재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리어왕’ 역을 단독으로 맡아 무대를 책임진다. 88세인 그는 한국 연극사상 최고령 배우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리어왕을 연기한 배우 중 최고령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리어왕’ 제작사는 이순재를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신청할 예정이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리어왕 연기를 펼치는 이순재는 “나의 필생의 작품”이라며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베르나르다 알바
일정 6월 16일 ~ 8월 6일
장소 국립정동극장
연출 변유정
출연 정영주, 한지연, 강애심, 김희정, 홍륜희, 장보람 등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한다. 스페인 남부를 배경으로 권위적인 여성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억압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알바의 다섯 딸이 품은 욕망을 열정적인 플라멩코 춤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 지난해 재연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초연부터 출연하고 있는 정영주와 함께 오디션을 통해 새로 합류한 한지연이 주인공 알바 역을 연기한다.
◇모차르트!
일정 6월 15일 ~ 8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이해준, 수호, 유회승, 김희재, 선민, 허혜진, 황우림, 민영기 등
뮤지컬 ‘모차르트!’는 볼프강 모차르트의 천재 음악가로서의 운명과 그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은 그의 고뇌를 그린다. 국내에서 2010년 초연됐으며, 이번에 7번째 시즌을 맞는다. 주인공 모차르트 역에 이해준, 수호, 유회승, 김희재를 캐스팅하며 세대교체를 꾀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 역으로 주목받은 이해준은 오디션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 아이돌인 수호와 유회승은 안정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며, TV조선 ‘미스터트롯’ 출신인 김희재는 이번에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이필모(49)는 결혼과 함께 배우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5년 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슬하에 둔 그는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 역할을 연이어 연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덧 ‘중년 배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이필모는 이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배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필모는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 출연한다. 인터뷰 당시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었던 그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번에 새롭게 보여줄 모습을 묻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점이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 중 주인공 로운의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는 이필모. 재벌 캐릭터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2021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연모’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 연기를 펼친다. ‘연모’에서는 이휘(박은빈 역)의 아버지 혜종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이게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감정이 들어요. 이제 주인공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어 조력자 역을 맡게 된 것이니까요. 물론 모든 역할이 중요하고, 이전과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중년 배우가 됐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전과는 다른 제 나이에 맞는 새로운 연기를 하게 되겠죠. 중년의 로맨스 연기를 할 수도 있겠고요.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배우 인생이 기대됩니다.”
데뷔 25주년 필모그래피
1998년 영화 ‘쉬리’로 데뷔한 이필모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타고난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노력형 배우다”라고 자평했다. 중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저는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나마 중학생 때 키가 178cm였으니, 키가 크다는 게 특징인 정도였죠. 별다른 꿈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홍콩 누아르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전문 용어로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을 그때 느낀 거죠. 그리고 그날부터 제 꿈은 배우가 됐습니다.”
이필모는 데뷔 후 연극에 주로 출연했던 터라 인지도가 낮았다. 대중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를 무명 시절로 여겼다. 노력해도 빛이 나지 않는 무명 시절. 많이 힘들었지만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이필모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다”면서 빛을 볼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2006년 KBS 2TV ‘아줌마가 간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아침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이 2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어 그는 200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하게 된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4.2%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필모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극 중 솔약국집 둘째 아들이자 소아과 의사 송대풍 역을 연기했다. 이필모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연기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딱 그 시절 나올 수 있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배우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창 방영 중일 때예요. ‘솔약국집 아들들’은 54부작인데, 30~40회가 방영 중일 때 가장 행복했어요. 가장 바쁠 시기이기도 한데, 대중의 반응이 느껴지니까 힘이 나는 거죠. 그런데 40회가 넘어가면 그 행복한 순간도 끝나요.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아쉬워지는 거죠.”
‘솔약국집 아들들’ 외에도 이필모의 가슴에 오래 남은 작품들이 있다. 가장 먼저 그는 MBC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다. 극 중 악역 차수혁을 연기한 이필모는 캐릭터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까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MBC ‘가화만사성’에서 뇌종양 환자 연기를 펼친 것, tvN ‘응급남녀’에서 냉철한 의사 연기를 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셋째 계획 가진 필연 커플
이필모에게 작품 선정 기준을 묻자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가리지 않는다”는 겸손한 답을 했다. 특히 가장이 된 현재 그는 가족을 위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이필모는 2019년 인테리어 전문가 서수연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첫째 담호는 2019년, 둘째 도호는 2022년에 각각 태어났다.
“아침에 까치가 입에다 뭔가를 물어서 둥지의 새끼들한테 갖다주는 모습을 보고,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새끼 새들을 위해 알아서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숙해지거든요.”
이필모와 서수연 씨는 ‘필연 커플’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2018년 TV조선 ‘연애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부부로 발전했다. 첫 만남부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그들을 향해 대중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부부의 근황에 대해 이필모는 “아내의 장점은 털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내한테 늘 고마워요. 담호, 도호를 예쁘게 낳아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저희 부부도 여느 부부와 똑같아요. 가끔 싸울 때도 있죠. 저는 오히려 부부가 안 싸우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죠. 한두 가지만 맞아도 잘 맞는 것이고, 나머지 여덟 가지는 맞추면서 사는 거예요.”
필연 커플의 2세인 담호와 도호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필모는 두 아들의 장래에 대해 “연예인은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힘든 연예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연예인은 아버지가 이미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또한 이필모는 셋째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내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부분이라고. 그는 “옛날부터 아이가 셋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삼 남매로 자라서 그런지 둘은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특별한 이유를 전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애들이 방에서 뛰어나와 아빠를 반겨주는 것이 저의 로망이에요. 사실 예전에 여자아이 옷을 사놓은 게 있습니다. 최근 딸을 갖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어요. 병원에서 제일 많이 본 장면이 무엇이냐면, 중년 여성이 아버지를 케어하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딸아이가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담호, 도호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딸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죠.”
모친상, 건강의 중요성 깨달아
부모가 되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닮아간다고 하지 않나. 이필모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그는 “현재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요양병원에 계신다”라고 말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이필모는 부모님의 케어를 담당했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의 주치의·간병인과 소통하는 것도 모두 그다. 지난 3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차마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4일 후 아버지가 골절상을 입으셨어요. 아버지는 현재 거동을 못 하시고, 귀가 거의 안 들리는 정도예요.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요. 아버지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하지 못했죠.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간병인분이 ‘혹시 3월 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를 뵈러 가니까 이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필모의 어머니는 쓰러진 후 3개월간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힐링이 필요할 때 찾는 제주도에서 어머니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지만,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뷰 당시 이필모는 영정 사진으로 쓰인 어머니 사진을 기자에게 공개하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서울장미축제에서 그가 직접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어머니는 유난히도 밝게 웃고 계신다.
“장미축제에 같이 갔을 때 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좋은 곳에 많이 못 모시고 다니고, 못 해드린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는 자식만을 위해 살았는데 말이죠. 어머니는 우리나라 격동기를 이끈 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위해 뭘 했다는 게 아니라 모든 힘듦을 묵묵히 견뎌내고, 자식을 잘 키워내셨으니까요. 어머니 덕분에 배우 이필모도 있는 것 같아요.”
이필모는 어머니를 보내고 ‘건강’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가족이 무탈하고 건강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운동한다. 건강을 유지해 오래 일하며, 아버지로서 역할도 다하고 싶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이필모는 “색다른 향기를 내뿜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연기 참 잘했던 배우로 기억해줬으면”이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어요. 어려움과 힘듦의 정도 차이가 있는 거겠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이겨내면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위해 이겨낼 거예요.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100번째 발행을 맞이해 귀중한 손님을 초대했다. 특별한 기념일 파티에 초대받은 스타는 트로트 가수 정다경(30). 이번 촬영으로 그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통해 소개된 수많은 스타 중 ‘최연소’ 타이틀을 가져가게 됐다. 국내 트로트 열풍의 기폭제가 된 2019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1’)의 막내에서, 이제는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어엿한 스타가 된 그의 매력을 만끽해보자.
정다경은 ‘미스트롯1’에서 최종 4위를 차지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미스트롯1’ TOP5 중 나이가 제일 어린 그는 당시 유일한 20대였다. 가창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막내다운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해 중장년 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다경은 “팬들께서 딸, 손녀딸처럼 대해주신다. 저도 살갑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팬들이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다경은 지난해 발매한 디지털 싱글 ‘좋습니다’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밝은 색으로 염색해 스타일 변신을 꾀했다. 통통했던 젖살도 빠져 미모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정다경은 “머리가 길었을 때는 차분하고 참한 느낌이 강했는데, 머리를 자르고 나니 발랄해 보여서 이전보다 친숙하게 느끼시는 것 같다. 많이 귀여워졌다고 칭찬해주신다”라고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제 팬들은 연령층이 다양해요. 30대가 제일 많고요.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80대 팬도 몇 분 계세요. 현장에서 어르신 팬이 ‘지난번에는 몸이 좀 안 좋아서 못 왔다’고 하시면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트로트 가수들은 팬들의 연령층이 높다 보니 ‘건강이 최고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팬들은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는 법이 없어요. 반말도 절대 안 하시고요. 저한테 ‘다경 아씨’라고 존칭을 써주신답니다. 팬들께서 저를 많이 예뻐해주시고 존중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항상 감사해요.”
‘미스트롯1’과 트로트 가수
정다경은 “20대 초반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트로트 가수뿐 아니라 연예계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다경은 한국무용 전공자로 한길을 파왔다.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무용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 재학 중이다.
“무용만 하고 살다가 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 정다경. 예상하지 못했던 트로트 가수의 길은 우연히 열렸다. 대학교 4학년 때 댄스 스포츠 선생이 아는 기획사 대표에게 그를 연습생으로 추천했다. 정다경은 워낙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넘치는 끼를 선생이 알아본 것. 그렇게 들어간 기획사는 가수 남진과 전국 투어 콘서트를 10년 동안 한 공연 기획팀이었다. 정다경은 남진과 함께 공연하러 다니면서 무대에서 무용도 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트로트의 매력을 깨달았다.
“원래는 트로트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노래방에서 몇 곡 부르는 정도였죠. 기획사에 들어가서 트로트를 부를 일이 생기면서 노래 연습을 하게 된 거죠. 어떻게 부르는지도 몰라서 선배님들의 창법을 무작정 따라 했어요. 그러면서 트로트에서 필요한 보컬 테크닉을 습득하게 됐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게 느껴지니까 뿌듯했죠. 무엇보다 제가 느낀 트로트의 매력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장르여서 효도하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에요. 제 무대를 통해 그분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고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정다경은 트로트 가수로서 운이 좋았다고 자평한다. 그는 2017년 10월 디지털 싱글 앨범 ‘좋아요’를 발매하고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1년여의 세월이 흘렀을 때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1’이 열렸고, 경연에 참가했다. ‘미스트롯1’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대한민국의 트로트 열풍은 ‘미스트롯1’ 전과 후로 나뉘고, ‘트로트 가수 정다경’도 ‘미스트롯1’ 전과 후로 나뉜다. 그에게 ‘미스트롯1’의 의미를 묻자 “정다경을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답이 돌아왔다.
“데뷔를 하고 1년 뒤 ‘미스트롯1’에 나갔는데 사실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죠. 2019년 당시에는 젊은 트로트 가수가 많지 않았고, 트로트 오디션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어요. 이렇게 프로그램이 잘 될지 몰랐고, TOP5 안에 들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스트롯1’ 덕분에 무명 시절도 1년으로 짧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점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데뷔 6년 차인 트로트 가수 정다경. 트로트 가수로 전국 무대를 누비며 필요하다고 느낀 자질은 무엇일까.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중장년 팬분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신선한 답을 들려줬다.
“트로트 가수는 너무 소심해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를 많이 상대하기 때문에 살갑게 대하거나 대화를 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느낌, 여유로움이 필요한 거죠. 저도 평소에는 조용한 편인데 일할 때는 텐션을 올리려고 많이 노력한답니다.”
‘외유내강’ MZ세대
벌써 4년이 흘렀지만 정다경의 ‘미스트롯1’ 결승전 무대는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인생곡 미션에서 그는 송대관, 전영란의 ‘약손’을 불렀다. 정다경의 청아한 목소리는 노래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여기에는 정다경의 개인적인 스토리도 한몫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정다경은 자신의 끼를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에어로빅 강사로 일했고, 그림도 잘 그리는 등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정다경은 “어머니께서 한국무용 입시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 많이 힘드셨을 것”이라면서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 저를 키워주셔서 늘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희생하신 만큼,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노후를 책임져드리고 싶어요. 손재주가 많은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매일 저보다 바쁘게 지내고 계세요. 최근에 바리스타 1급 자격증도 따셨고, 취미 생활로 제과·제빵도 하시고, 캘리그래피도 하시거든요. 나중에 카페를 하고 싶다고 하시면 제가 차려드릴 겁니다. 저는 제 스스로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도 홀로 계시고, 남동생은 저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거든요. 가장으로서 어머니와 동생을 더 챙길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죠!”
정다경과 얘기할수록 그가 ‘외유내강’ 캐릭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정다경. 장녀라는 책임감이 클 뿐 아니라 무용 입시를 치르면서 경쟁사회에서 살다 보니 성격이 단단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이 일찍 들어버렸다. 그는 “이제는 스트레스나 힘듦을 잘 못 느끼는 무던한 성격이 됐다”고 말했다.
정다경은 트로트 가수로서 힘든 점은 없지만,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 겪는 불편함은 있다고 털어놓았다. 크고 작은 소문이 늘 따르는 연예계이기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조심스러워진다고. 그는 “점점 사람을 믿기도 어려워졌다. 조금이라도 가식적으로 느껴지면 불편해진다”면서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집에만 있게 된다. 연예인들이 왜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람들과 달리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도 덧붙였다.
정다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MZ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MZ세대답게 똑소리 나고,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중장년 팬이 많은 만큼 그들과 소통도 잘되고 사랑받는 법도 안다. 젊은 트로트 가수답게 ‘세대 통합’이라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정다경의 목표는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무용과 트로트를 접목한 공연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듯이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어요. 올라가는 중에 뭔가가 잘 안 되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전공 분야나 일을 못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트로트 가수로서, 한국무용가로서 누가 봐도 ‘잘한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