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그 특별함이 실감 난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이야기와 맞물려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때론 누군가를 살리는 힘을 발휘하는 음악의 저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음악이 없었다면
이런 상상을 해본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무녀의 후예들이 K-POP 걸 그룹이 되어 악령과 싸우거나, 데몬과 헌터의 피를 둘 다 물려받은 루미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기까지 갈등하는 이야기가 사뭇 심심했을 게다. 그 서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음악이 아닌가. 정체를 숨긴 채 살아왔던 루미가 자신의 속내를 ‘골든(Golden)’이라는 곡에 담아 음악으로 전했기에 그 절절한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유령 같았던 나. 혼자서 어두워진 앞길 속에’ 있던 루미는 당당해지고 싶은 마음을 노래에 담아 이렇게 선언한다. ‘더는 숨지 않아. 찬란한 나. 이게 내 모습이야.’
음악은 이처럼 설명적일 수 있는 서사를 좀 더 감정적이고 감성적으로 전해주는 힘을 발휘한다. 똑같은 글귀라도 노래에 담긴 가사는 듣는 이들에게 정서적인 울림을 만들어내고, 단 몇 분도 되지 않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최근 종영한 SBS 발라드 오디션 프로그램 ‘우리들의 발라드’는 음악이 가진 감성적인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우승자가 된 제주 소녀 이예지가 첫 무대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르자, 관객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눈물을 흘렸다. 이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 건 이 곡이 가진 절절한 감성과 가수의 호소력 짙은 가창력 덕분이지만, 노래를 부르기 전 했던 이예지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택배 일을 하는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함께 등교하면서 항상 듣던 노래라는 설명이 이 노래를 새롭게 했다. 아버지 옆에서 노래를 듣는 어린 예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녀의 이야기는 관객들이 그 노래를 온전히 이예지의 서사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마법을 걸었다. 그래서 ‘너를 위해~’라는 가사가 아버지 혹은 예지의 마음을 담은 가사로 들린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음악과 스토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강력한 효과를 일찍부터 활용해왔다. 국내 최초 대국민 오디션으로 등장했던 ‘슈퍼스타K’는 무대를 선보이기 전 가창자의 짤막한 사연을 덧붙이는 방식을 시도했다. 시즌2 우승자 허각이 신드롬까지 일으킨 데는 그가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하며 노래방에서 연습했다는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감성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과 이야기의 시너지는 최근 등장한 ‘싱어게인’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무명가수전’이라는 부제에서 보이는 것처럼, 무명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 기간을 뚫고 나오는 이들의 노래와 사연이 어우러져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음악이 가능하게 하는 세대의 소통
‘우리들의 발라드’는 ‘기억 속 매 순간 함께했던 우리의 인생 발라드를 1020 세대의 목소리로 새롭게 부른다’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문세와 신승훈 같은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젊은 시절 들었을 음악을 1020 세대 참가자가 다시 부르는 식이다. 그래서 음악을 중심으로 세대가 소통하는 장이 된다. 중장년 기성세대는 명곡들을 들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1020 세대 출연자가 지금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몰랐던 명곡을 발견하게 해준다. 여기에 ‘뉴트로’ 감성이 더해진다. 즉 옛것이 주는 복고 감성과 더불어, 재해석이 만들어낸 세련된 새로움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최근 음악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오디션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룬 건 바로 세대를 통합한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옛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르는 기본 형식을 갖고 있다.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은 트로트 열풍을 만들어냈다. 이 프로그램은 트로트에 젊은 감성을 더하면서 그 저변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구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에 중년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까지 팬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임영웅이나 영탁, 김호중 같은 가수의 힘과 정통 트로트에 팝, 발라드, 성악, 록 같은 새로운 장르를 접목한 ‘모던 트로트’의 세련됨 덕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결집한 신중년 팬덤에게 트로트가 음악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은퇴를 앞두거나 자녀를 독립시켜 ‘빈둥지증후군’ 같은 허탈함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임영웅 같은 가수를 향한 몰입과 팬 활동은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임영웅의 팬덤 ‘영웅시대’에는 그래서 ‘다시 살게 됐다’는 팬들의 간증이 넘쳐난다.

불변의 성소와 새로운 장치 사이
오디션 열풍처럼 모든 음악이 현시대에 맞게 변주돼야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마음을 잡아끄는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 같은 음악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인 KBS는 다양한 세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마땅히 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아니라도, 변함없는 무대와 그곳으로 소환된 옛 가수들의 음악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어느 한 지점이 존재한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랄까.
정반대로 JTBC의 ‘싱어게인’처럼 익숙한 서사를 깨는 새로운 장치로 힘을 발휘하는 음악 프로그램도 있다. ‘싱어게인’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포화 상태로 쏟아져 나오면서 식상해진 서바이벌 서사 구조를 ‘무명’이라는 장치를 통해 분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다시금 음악에 주목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름이 아닌 30호, 64호 같은 번호로 호명된 가수들의 한판 대결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배경, 실패한 과거, 잊힌 명성 같은 편견을 지우고 오직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여기서 음악은 ‘다시 부른다’는 제목의 의미처럼 ‘구원의 서사’를 담게 된다. 실력은 있지만 아예 기회를 얻지 못한 ‘재야의 고수’들이나,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잊혀간 ‘슈가맨’, 그룹 활동에 가려져 개인 기량을 보이지 못한 ‘홀로서기’ 가수들이 다시 노래를 부르는 기회를 얻는다. 음악은 이제 인생 역전의 휴먼 드라마 성격을 띤다.
같은 노래라도 다른 성격의 음악 프로그램이면 달리 들릴 수밖에 없다. 그 차이는 지향점이 다르다는 데서 나온다. 즉 과거와 추억, 복고를 지향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 현재와 재탄생을 지향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물론 ‘불후의 명곡’처럼 레전드 가수가 직접 출연하고 또 그의 음악을 재해석해 부르는 현세대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은 물론 공간까지 바꾸는 마법
음악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음악은 과거로 우리를 보내주거나 현재로 되돌리기도 하고, 끊어진 듯 보이던 시간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마법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은 아름다운 노래와 음률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특정 시간대의 기억 버튼을 음악이 눌러주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를 불러 모은 MBN의 ‘언포게터블 듀엣’은 치매를 앓는 가족과의 듀엣 무대를 통해 잃어가는 기억을 소환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음악의 힘은 공간을 바꾸는 마법을 일으키기도 한다. 귀에 리시버를 꽂고 거리를 활보하며 음악을 듣다 보면 그 공간의 느낌 자체가 다르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래서 특정 공간에서 부르는 음악을 직접 듣는 건 스튜디오에서 만든 음악을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JTBC의 ‘비긴어게인’은 이런 음악의 마법을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외국 거리에서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펼치는 버스킹은 공간까지 바꿔버린다. 낯선 거리 위로 즉석에서 부르는 음악이 흐르고, 현장에 모인 행인들이 그 음악에 빠져드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그 공간 자체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역만리에서도 음악으로 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친밀함이랄까. 코로나 시기에 거점 병원이나 텅 빈 경기장, 공항을 찾아 벌인 ‘거리두기 버스킹’은 음악이 바이러스와 공포로 무너진 일상을 지탱하는 ‘정서적 백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은 노래, 연주, 퍼포먼스 등을 결합하는 예술이지만, 때론 예술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메마른 감성을 자극해 촉촉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단절됐던 세대를 연결하기도 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여행은 물론이고, 삭막한 공간을 따뜻한 정서로 채우기도 한다. 음악 프로그램은 이 마법 같은 힘을 저마다의 독특한 장치를 통해 꺼내놓는다. 그래서 이들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대중이 가진 갈증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때론 울고 싶고, 때론 과거가 그리우며, 때론 함께 공감하고 싶고, 때론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고 싶은 마음이 그 음악 프로그램들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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