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은 올해 연세가 아흔이시다. 자식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 도심에 살림을 차리고 여든다섯의 장모님과 두 분만 남아 시골집을 지키신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막내 처제가 오십이 넘었으니 3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두 분이 텃밭에 참깨며 고구마, 그리고 배추를 심으셔서 가을엔 김장도 함께 모여서 하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자식들의 만류로 겨우 배추 몇 포기 먹을 것만 심으셨다.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사시는 편이 마음이 편하신지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셔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장모님이 기력이 쇠하면서 건망증이 심해지고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종갓집에 시집와서 조그만 체구에 10남매 모두 출가시킨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총명하시고 당당하셨는데 눈도 어둡고 몸도 약해 옛날 같지 않으니 우울하실 만도 했다. 당당하셨던 자신의 몸이 이렇게 망가지자 허무하고 한탄스러운 원망을 종종 장인어른에게 쏟아 부으시는 듯했다. 표현이 좀처럼 없으신 과묵한 장인어른은 안 되겠는지 가끔 딸들에게 전화해 다녀들 가라 해서 번갈아가며 시골에 다녀오곤 했다. 딸들이 내려가 말동무가 되어주면 장모님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조금은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장모님의 원망이 더 심해지셨는지 엊그제는 바람 좀 쐬고 싶다고 의사를 내비치셨단다.
급기야 4남매 중 3남매가 의기투합했고 휴가를 얻어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인어른이 여행하는 동안 장모님은 장녀인 아내가 모시기로 해 필자의 집으로 오셨다. 그렇게 장인어른을 위한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지는 장인어른이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사셨던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은 장인어른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광산을 따라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어서 제2의 고향 같은 마을이었다.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가끔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곳 이야기를 많이 하시곤 했다.
여행 첫날, 장인어른은 충청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을 찾았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그곳을 90이 다 되어 찾아보는 장인어른은 감회가 새로운 모습이셨다. 옛날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몇몇 기억나는 지인들을 찾으니 나이가 몇 살 아래인데도 모두 다 돌아가시고 아시는 분이 없으셨단다. 반겨줄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거라 기대를 했던 장인어른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추억의 고향을 떠나셨다. 그 모습이 참 안타깝고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일행은 동해안으로 방향을 잡고 속초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횟집에서 푸짐하게 회를 시켜 소주 한잔 기울이고 밤바다를 둘러봤다. 이튿날은 낙산사를 들려 절이며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하고 좋은 음식을 찾아 즐겼다. 마지막 날은 설악산 온천에 들려 온천욕을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장인어른이 동해안을 여행하시는 동안 필자의 집에서는 장모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불고기며 족발을 시켜 만찬을 즐겼다.
이제 다시는 가보지 못할 수도 있는 추억의 장소를 방문한 것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나이가 드셔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장소를 90이 되어 자식들과 찾아본 장인어른은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또한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과 푸른 동해를 보시고 참 만족해하시는 장인어른의 사진을 보면서 진즉 이렇게 모실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 너머로 노란 은행잎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마치 꽃 천지 같다. 두 분도 남은 삶을 저렇게 곱게 사시다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 나면 그 음식은 다르게 다가온다. 맛도 다르게 느껴지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음식인문학 여행’은 우리 땅, 우리 음식에 깃든 다양한 인문학적 의미들과 만나는 시간이다. 그 첫 번째로 강원도 음식을 만나러 간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막국수, 감자, 옥수수, 시래기는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다. 빈한했던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음식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빈한한 음식은 다이어트 음식이 되었고 강릉, 속초 등 바닷가의 신선한 해물들은 최고급 미식 재료가 되었다. 강릉, 속초를 거치며 가난한 음식, 풍성한 해물을 만난다. 강릉의 반가 음식도 만난다.
◇ 1박 2일 일정
1. 첫날 오전 9시, 강원도로 출발
20명 기준으로 ‘인문학 여행단’이 구성됩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씨로부터 여행길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인원을 20명 정도로 한정하는 이유는 조촐한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시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2. 첫날 오전 11시 30분~오후 1시, 인제군 용대리 백담사 입구, ‘백담갓시래기국밥’
용대리는 황태, 두부, 버섯이 유명합니다. 용대리 ‘백담갓시래기국밥’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두부, 버섯이 준비됩니다. 메인 음식은 ‘갓시래기국밥’입니다. 주인이 직접 음식을 마련하고 서빙합니다.
3. 첫날 오후 2시~3시 30분, 속초관광수산시장
속초관광수산시장을 돌아봅니다. 인솔 팀과 함께 다니셔도 되고, 자유롭게 다니셔도 좋습니다. 마른 건어물이나 젓갈 등 쇼핑도 가능합니다.
4. 첫날 오후 4시 30분~6시, 교산 허균의 호가 된 ‘교산’과 주문진항, 사천진항
‘도문대작’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식객으로 평가받고 있는 허균. 그의 호 ‘교산’은 외갓집인 강릉 ‘교산’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버지 초당 허엽은 삼척부사 시절 ‘초당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교산’과 ‘도문대작’ 그리고 초당두부와 방풍나물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인근의 주문진항, 아름다운 사천진항을 돌아봅니다.
5. 첫날 오후 6시 30분~9시, 강릉 교동 ‘기사문’의 저녁식사
동해안 해산물을 자유롭게 사용해 수준급의 해물요리를 내놓는 ‘기사문’에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회, 튀김, 조림 요리, 한국식 초밥, 볶음 등등 동해안 해산물을 이용한 풍성한 해물 요리를 만납니다. 와인, 증류 소주, 강릉 ‘버드나무 블루어리’의 수제맥주 등 주류도 제공됩니다. 메뉴는 11월 동해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6. 첫날 저녁, 프리미엄 펜션에서 1박
바다와 산이 보이는 럭셔리한 펜션에서 강원도의 밤을 맞습니다. 1인 1실이 원칙이나 부부, 친구 등 원할 경우 2인 1실로 마련합니다. 숙소 관련 참고. www.pinehill.kr
7. 둘째 날 오전 8시 30분~10시, ‘기사문’의 아침 해장국
아침 해장은 ‘기사문’의 셰프가 마련한 ‘생선누룽지탕’입니다. 시원한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출발.
8. 둘째 날 오전 10시 30분~12시, 강릉 ‘선교장’ 방문
‘열화당’ 등 의미가 있는 한옥, 정자 등이 많습니다. 반가의 전통이 살아 있는 ‘선교장’에서 산책을 합니다. 역시 인솔 팀과 동행도 가능하고 자유로운 산책도 가능합니다.
9. 둘째 날 12시 30분~오후 2시, ‘서지초가뜰’의 점심식사
창녕 조씨 가문의 음식입니다. 반가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못밥, 질상 등의 이름을 가진 독특한 음식입니다. 깊은 산골의 반가 음식을 만납니다.
10. 둘째 날 오후 2시, 서울로 출발
서울 도착 오후 6시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간단한 간식이 마련됩니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열풍(熱風)’이라는 단어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까지 전 세계를 강타하는 지구촌 광풍(狂風)이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이용자가 함께하는 문화현상이자 사회적 신드롬이다. 닌텐도 주가가 1주일 사이 93%나 폭등하는 등 천문학적 이윤과 부가가치를 창출한 경제적 사건이다.
구글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시작해 독립한 나이앤틱이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와 손잡고 7월 6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선보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다. 포켓몬 고는 서비스 국가를 속속 확대하며 지구촌 열기를 고조하는 동시에 증강현실의 실체와 잠재력을 수많은 사람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포켓몬 고는 출시되자마자 하루만에 앱 스토어 매출 1위를 차지했고 포켓몬이 출현하는 장소나 거리, 지역은 사람들이 몰려 교통이 마비됐다. 포켓몬 고가 서비스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포켓몬이 출현하는 강원 속초 일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속초시 등 일부 지자체는 관광객 유치 홍보전에 포켓몬 고를 활용하는가 하면 여행사들은 관련 상품을 내놓는 발 빠른 마케팅을 전개했다.
포켓몬 고는 이용자의 현실 공간 위치에 따라 모바일 기기상에 출현하는 가상의 포켓몬을 포획하고 대결하고 거래도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포켓몬 고 앱에 로그인한 후 성별, 피부색, 머리 모양 등을 선택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든다. 아바타가 생성되면 이용자가 위치한 주변 지역의 지도가 나타나고 포켓몬 체육관 등이 지도에 표시된다. 이용자가 공간과 지역을 이동할 때 아바타 역시 게임의 지도를 따라 움직인다. 이용자는 세계 각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포켓몬을 찾아 포획한다.
이용자가 포켓몬을 발견할 경우, 증강현실(AR) 모드에서 실재(實在)처럼 보이는 배경과 함께 포켓몬을 보게 된다. 이용자는 포켓볼을 던져 포켓몬을 포획한다. 이 게임의 궁극적 목적은 포켓몬을 포획하고 진화시켜 포켓몬 도감을 완성하는 것이다.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과 위치기반정보(GPS), 그리고 지도를 활용한 게임이다. 게임 이용자의 위치를 파악해 주변에 몬스터를 뿌리기도 하는데, 능력이 많은 몬스터는 특정 위치에 서식하므로 그걸 잡기 위해 이용자가 이동한다.
한국에는 포켓몬 고가 공식적으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강원 속초와 양양 일부 지역에서 포켓몬 고가 구동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 포켓몬 잡기에 나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포켓몬 고는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데, 한국 지도가 구글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한국 법으로 금지돼 있으므로 포켓몬 고의 한국 서비스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켓몬 고는 한국에 출시되지 않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지만, 게임 개발사가 구분해놓은 독특한 영역 구분 때문에 강원 속초 일대에서 게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몬스터만 잡을 수 있고 이용자를 상징하는 아바타 주변의 실재 공간이 나타나지 않는다.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을 이용해 실제 눈앞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현장감과 실재감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실재 공간을 찾아다니며 게임을 하므로 이용자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기업과 사람들이 포켓몬 고 광풍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증강현실(AR)에 눈을 돌린다. 증강현실은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과 함께 가장 각광받는 새로운 정보기술로 세계 각국과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증강현실과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혼동한다. 증강현실은 실재와 허구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혼합하는 반면 가상현실은 100% 허구 세계를 구축하는 점이 차이다. 가상현실은 이용자와 배경·환경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 반해, 증강현실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 주기에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고도 한다. 증강현실은 실재세계와 가상세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LG경제연구원 서기만 수석연구위원은 “증강현실은 기본적으로 현실 정보에 약간의 가상 정보를 덧입힌 형태를 말한다. 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보조 정보를 현실 정보 위에 추가로 표시하기 위해 이용된다”고 설명한다.
게임의 경우, 게임의 주체가 가상이냐 실체냐에 따라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구분된다. 가상현실 게임은 이용자를 대신하는 가상 캐릭터가 가상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을 펼치지만, 증강현실 게임은 ‘포켓몬 고’처럼 현실 속의 내가 미국 뉴욕이나 강원 속초라는 현실 공간에서 가상의 적(포켓몬)과 대결을 벌인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보다 현실감과 실재감이 높다. 또한, 공간 증강현실(SAR· Spatial AR)의 경우에는 이용자가 특별한 장치를 손에 들거나 착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린이나 나이가 든 사람들도 증강현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증강현실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지도와 위치 검색은 물론이고 내비게이션, 청소기 등 가전제품부터 게임, 스포츠 중계, 일기예보를 비롯한 방송, 영화 등 문화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탈’이 최근 발표한 ‘AR· VR 리포트’에서 2020년 가상현실 시장 규모는 300억달러(약 34조원), 증강현실 시장 규모는 1200억달러(약 13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까지는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증강현실 시장보다 크지만, 2017년 이후부터는 증강현실이 성장을 주도하며 역전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증강현실이 현실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으므로 시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퀄컴, 알리바바, 워너브라더스 등 세계적인 기업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증강현실 기술과 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청소기에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았는가 하면 SK텔레콤은 증강현실 솔루션 ‘T-AR’를 출시했다. 한빛소프트는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 ‘오디션’을 개발했다.
새로운 기술은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특정한 문화적 제도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증강현실은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출하면서 사람들의 인식과 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증강현실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초래한 문화와 현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다. 또한, 젊은 세대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이해의 폭도 좁아진다.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조차 거세게 일고 있는 포켓몬 고 광풍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지구촌에 거세게 일고 있는 포켓몬 고 신드롬은 단순한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선다. 포켓몬 고 신드롬에선 증강현실이라는 신기술이 초래한 새로운 사회와 문화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에 관해 관심이 없고 이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포켓몬 고를 외면하는 대신 눈길 한번 주자. 그 눈길은 바로 증강현실을 비롯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몰고 오고 있는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세대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뜨거웠던 8월, 강원도 정동진으로 향했다.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1995년 안방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의 주제곡 ‘백학’이 울려 퍼지는 곳. 그런데 8월의 정동진에는 바다 말고 기다리는 것이 또 있다. 이 작은 마을에 벌써 올해로 18회째 열리고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이다. 조용하던 동네에 알 만한 영화감독과 배우가 속속 모이고 함께 어울리며 영화를 보고 즐긴다. 천국의 느낌 같은 영화제라고나 할까? 관객도, 영화를 만든 사람도 신나고 즐거웠던 그곳에 흠뻑 취해 봤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18년 동안 어김없이, 변함없이 관객들과 영화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요일과 장소도 변하지 않는다. 8월 첫째 주 금·토·일, 정동초등학교 운동장. 이때 운동장은 영화제를 위한 유일한 상영관이 된다. 독립 단편영화와 장편영화가 상영된다. 함께 여행 온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상영되며 모든 영화 관람은 무료이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관객도 관객이지만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제다. 1년에 한 번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만 만나서 ‘밥하는 특급 팀’이 있을 정도다. 2박3일 동안 열리는 영화제에는 독립영화인은 물론 알 만한 얼굴의 배우와 감독도 찾는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제는 애초에 영화인들이 재미있게 보는 독립영화를 더 많은 관객과 함께 보고 싶어서 기획한 것”이라며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영화인도 재미있게 준비하고 놀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하는 영화제”라고 말했다. 2박3일 동안 이곳에 머무르는 배우 등 영화인들은 정동진 해수욕장에서 연례행사처럼 자장면을 시켜 먹고 바다 수영을 즐긴다고.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권해효, 조은지 등 배우와 이해영, 변영주, 김조광수 감독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는 배우 문소리가 의 감독으로 참여해 동전으로 투표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유일한 상인 ‘땡그랑동전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상금으로 약 24만원을 받았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신상옥 감독의 (1961)이 컬러 영상으로 상영됐다. 영화와 함께 판소리 를 곁들인 공연으로 꾸며져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최고령 참가자 안학섭(86)씨. 다큐멘터리 영화 (김동원 감독·2003)에 출연했던 비전향 장기수다. 영화 출연 이후 줄곤 영화제를 찾았는데 부산에 사는 6년 동안 영화제 방문을 잠시 접어 뒀었다. 재작년 인천시 강화군으로 이사해 작년부터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안학섭씨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해 “독립영화는 사회발전의 동력인데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한 일이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소리 감독이 ‘땡그랑동전상’을 거머쥐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10세에서 12세 정도 되는 관객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이 영화가 마지막일 것 같다”더니 관객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받은 동전 24만원을 영화제에 쾌척할 뜻을 밝혔으나 영화제의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그 돈은 가져 가고 다른 방법(?)으로 후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화제의 밤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뛰놀던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은 넓은 야외 상영관으로 변한다. 영화도 보고 금방 쏟아져 내릴 듯한 별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간이 의자에 돗자리, 텐트형 모기장을 준비해 와 영화를 감상한다.
에 “고지대 사람은 장수하고 저지대 사람은 수명이 짧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세계의 장수 마을은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 일본 알프스의 나가노 현(長野縣) 같은 고산지대나 일본 오키나와(沖繩), 전북 순창군, 제주도 등 해안가에 있다.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은 해발 6000m가 넘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소량은 16.5%, 습도 50%로 건강에 좋은 조건이다.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은 해발 4000~5000m의 카프카스 산맥으로 이어진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지역을 말한다.
일본의 나가노현은 일본 지역 중 남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2000~3000m 고산으로 둘러싸여 ‘일본의 지붕’이라 불린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은 일본 지역 중 여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따뜻한 해안가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서울대 조사에서 해발 200~600m의 산간 지대와 해안가에 장수 마을이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장수하시는 분들을 조사해 보면 남성 장수자는 강원도 산간 마을에 많고, 여성 장수자는 전남 해안가에 많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역시 장수 마을인데, 평균 해발 700m의 산악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르데냐의 산악지역인 누오로에서는 100만 명당 244명이 100세 이상이다. 그리고 남성 장수자가 여성 장수자보다 많다. 높은 산골에 가서 하룻밤을 자면 남자들은 새벽 발기가 더 잘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남성들에게는 산이 맞고, 여성들에게는 바닷가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음양의 이치가 바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조깅을 하면 가슴을 움직여 거친 숨을 내쉬는 데 반해, 등산을 하면 아랫배를 움직이며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산을 오르다 보면 산소가 엷어지면서 숨이 가빠지는데, 우리 몸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흉식호흡에서 복식호흡으로 바꾼다. 아랫배가 후끈해지는 복식호흡은 단전호흡이나 단전에 뜸을 뜬 효과를 내서,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아랫배는 뜨겁게 한다. 기본적으로 상열하한(上熱下寒)증을 치료한다.
티베트 수도인 라사로 여행 간 적이 있다. 처음 며칠은 고산 반응으로 머리가 아프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차만 타면 멀미와 구토... 그런데 움직이지 않던 아랫배가 며칠 지나면서 저절로 들쑥날쑥 복식호흡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고산 반응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때 위장의 연동운동 또한 활발해지며 소화도 호전되었다.
‘신선 仙’자가 ‘산[山]’에 ‘사람[人]’이 붙어 있는 모양을 한 것은 등산과 고산지대 생활이 복식호흡을 도와서 도 닦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네팔의 셰르파족과 구르카 용병이 고산에서도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은 고산에 적응해서 복식호흡이 잘 되어 폐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고차원 티베트 불교가 융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산이란 일교차와 바람이 심한 곳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은 북극곰처럼 피부가 야물고 단단해야 한다. 천지운기에서는 “중국의 서북지방은 지대가 높고 건조한데, 그 곳 사람들은 추워서 병이 들어도 대부분 땀이 없다”고 했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주로 붓고 뭉치는 병이 생기며, 땀을 내거나 설사시켜서 치료한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피부가 단단해져서 몸의 근본 구성 요소인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가 잘 갈무리되어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고산에는 항암 효과가 뛰어난 약초가 많다. 중국 육상선수단 ‘마군단’과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늘 복용해서 유명해진 동충하초, 티베트의 4대 약재라고 하는 홍경천, 설련화, 남미 고산의 아가리쿠스 등이 있다. 곡기생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겨우살이도 높은 산의 참나무 윗부분에 기생한다. 이들은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산소를 잘 빨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세포의 산소 결핍증인 암을 치료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사람 또한 고산에서는 산소를 더 잘 빨아들이도록 변화하기 때문에, 암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등산을 하면 산소 흡취력을 높여줘서 도시 생활에만 익숙해져 약해진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워 준다.
해안가도 장수 마을이 많다. 일본 오키나와, 우리나라 전북 순창군과 제주도가 그렇다.
해안가에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짜고 강한 해풍을 맞고 산다. 짠맛은 생명체 속의 물을 빼앗아서 말라죽게 하고, 강한 바람도 생명체 속의 물을 증발시켜 말라죽게 한다. 해안가 식물들은 이런 생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바람을 이기고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동백나무처럼 잎 표면이 코팅 처리(큐티클 층)되어 있거나, 수분을 많이 머금기 위해 다육식물로 변하거나, 퉁퉁마디처럼 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염분을 머금고 있다.
사람도 비슷하게 해풍에 대응한다. 해안가 식물이 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진화하듯, 해안가 마을 사람들은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를 잘 갈무리하도록 진화한다. 그래서 피부가 더 억세지는 것이다.
해조류(미역, 김, 파래, 톳, 다시마)가 물을 정화하는 힘은 인체 내에서는 피를 정화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해조류는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은 높이며, 고혈압을 내리고, 미네랄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식이섬유가 많아 대변을 잘 보게 해서 독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해조류는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 일본 오키나와와 전남 바닷가, 제주도가 장수 마을로 유명한 것도 해조류의 영향이 크다.
고산과 해안가가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는 없다. 그렇게 척박한 곳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것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약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고, 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고산에서 적응하기 전에 병이 심해질 수 있고, 피부가 약한 사람은 해안가에 적응하기 전에 해풍과 자외선에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고산과 해안가가 장수에 좋다는 것은 어느 정도 면역력, 적응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예방 주사가 좋지만, 너무 약한 사람에게는 무리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해발 고도를 완만히 높여 가거나, 해풍이 적당한 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좋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방비엥. 작은 시골 마을은 여행자들로 넘쳐났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여행자들 사이로,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바지에 쪼리를 신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리를 산책하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튜빙이나 카약 등 액티비티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여행객들은 길거리 상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음날 즐길 거리를 예약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유럽의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있던 방비엥은 지난해 ‘꽃보다 청춘’ 방영 이후로 한국사람들에게도 인기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거리에 나가보니 ‘꽃보다청춘’이 다녀간 곳이라는 글이 여기저기 보였다. 한국 관광객은 물론, 한국어로 쓰여진 간판과 메뉴판 그리고 한국여행사 등 여기가 강원도 어디 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툭툭이를 타고 방비엥의 첫 번째 숙소인 ‘리버뷰 방갈로’로 가다 보니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들이 쏭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있었다. 굳이 리버뷰를 예약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리버뷰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객실에 누우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야호!’를 외쳤다. 여기가 낙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관광지지만 여유롭고 한적했다. 소박한 미소를 가진 라오스 사람들과 시원하게 흐르는 쏭강, 그 강 뒤의 석회암 산들을 바라보며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새벽녘에는 물안개가 잔뜩 핀 강가를 바라보며 라오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진한 맛과 단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라오 커피를 마시자 마치 내가 신선계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아침 9시는 방비엥의 러시아워였다. 액티비티를 예약하면 툭툭이가 숙소까지 손님을 태우러 온다. 대부분 여행객들이 액티비티를 즐기러 가기 때문에, 거리에는 머리 위에 카약이나 튜브를 가득 싣고 님을 태우러 다니는 툭툭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툭툭이마다 손님을 가득 싣고 떠났다.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방비엥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블루라군은 소리치고 뛰어들고 싶은, 방송에서 본 그대로였다. 비트있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연신 나무 위에 올라 다이빙을 했다. 잘 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쏠렸다. 나무 아래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다이빙 하는 사람들을 응원했다. 무서워서 망설이던 사람들도 구경꾼들의 응원을 받아 푸른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놀이동산 가면 바이킹도 못타지만 충동적으로 나무 위에 올랐다. 막상 올라 가니 발이 바들바들 떨리고 물이 까마득히 아래도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중국인 여행객이 웃으며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에이 모르겠다’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말을 안들었다. 움찔 하며 주저앉았다. 웃음과 박수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코를 쥐었다. 그리고 한 발을 허공에 내딛었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블루라군에선 70세 할아버지도 다이빙을 하고 10살 꼬마도 문턱이 닳도록 나무 위를 오르내린다. 파란 하늘 아래 어린 아이도 어른들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싱그러운 청춘이 됐다.
“여기 하루 더 있으면 안돼요?”
블루라군에서 형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바로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필자가 딱 그 심정이었다. 아름다운 강변 레스토랑이 눈길을 끈 호텔로 가서 1박을 더 예약했다. 해질 무렵 강가에 앉아 영화에서처럼 멋진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업주부 사이구사 하쓰코의 열렬 한국 사랑 “아직 배울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아요”
인터뷰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한국 사극 보고 역사책 읽고
“한국 여행안내 책자에 없는 일본의 멋진 곳을 구석구석 안내하고 싶어요.”
똘망똘망,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지닌 사이구사 하쓰코(三枝初子, 1956년생)는 유홍준 교수의 일본편을 꺼내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어 번역판이 아닌 한국에서 구입한 우리말 책으로, 아스카(飛鳥)문화와 교토(京都)유적에 대한 유 교수의 구수한 이야기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한·일 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빠트리지 않고 덧붙였다.
“고대 도래인(渡來人)이 가져온 문화가 일본 각지에 영향을 주었고, 거기서 일본적인 것이 싹트고 자라온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갈수록 관심이 적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소 역사를 좋아하는 하쓰코가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은 흔히 말하는 한류 드라마가 계기가 되었다. 그것도 2009년께부터 봤다는 과 같은 사극이었다. 드라마의 재미에서 시작된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 역사 관련 서적을 두루 읽게 되었고, 그러다가 한국어가 일본어와 어순이 비슷해 공부해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행동하라 그리고 즐겨라
한글을 외우고 싶어서, 아니 혼자 배우는 독학의 재미보다는 다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가 좋아서 그녀는 2011년 12월 동아리를 만들었다.
2012년 첫 한국 여행으로 제주도를 선택한 하쓰코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국 사랑으로 바뀐 자신을 발견했다. 서슴없이 “도와 드릴까요?” 라고 말을 걸어오는 한국인, 알지도 못하는 어느 아줌마가 “어디 가세요?”라며 요구르트를 건네는 등 일본에서는 사라진 인정(人情), 그 따스함에 흠뻑 빠져들었다.
“정말 신기했죠. 일본인들이 잊고 살았던, 정이 넘치는 한국 사회를 직접 경험해 보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 한국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어요.”
그 뒤로 한국어 공부 동아리 사람들과 2012년 가을 서울 인사동, 한국 민속촌, 경기도 수원 화성 등을 돌았으며, 2013년에는 경북 경주, 안동 화회 마을, 부산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끽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혼자서 4박 5일 동안 중부내륙 순환열차를 이용해 강원도를 비롯해 지방을 여행하고 판문점도 찾아 남북 분단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2015년에는 친정 아버님의 병환과 별세로 한국에 가지 못했고, 2016년 4월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전남 진도와 목포를 돌며 남도의 예술 향기와 맛깔스러운 음식에 흠뻑 취했다.
그녀는 여행 후에 일정과 정보, 유적 설명,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꼼꼼하게 정리해 파일로 남겼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전업 주부, 결코 평범하지 않다
“5만원권에 등장하는 신사임당 생가에 가고 싶어요”라고 밝히는 하쓰코는 두 아들의 엄마, 직장인 남편의 아내인 평범한 전업 주부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1층이라 앞에 건물이 보여 답답한 것도 있고 해서, 산책과 트레킹, 특히 경관이 탁 트인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그녀는 15년 전 사진 찍기를 시작해 DSLR 카메라와 300㎜ 렌즈를 배낭에 넣고 한적한 산에 올라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온갖 꽃들을 담고 있다.
물론 등산에 필요한 체력은 스포츠센터를 다니며 단련했지만, 역시 경치가 없어서 금방 질려 버린다며 신선한 공기와 푸른 자연이 있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전업 주부인 그녀가 길지는 않지만 회사를 다닌 적이 있다.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해 캠퍼스 생활을 누릴 때, 늦깎이로 컴퓨터와 제작 실무를 배워 후지쓰(富士通)와 가와사키(川崎)시의 재단법인에 각각 2년쯤 근무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경험은 한국어 공부와 한국 여행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제195회째 공부 모임을 마친 요코하마(橫浜) 한국어동화 독서회를 꾸려가며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카톡과 라인 등 SNS를 이용해 모임 소식과 정보 공유, 그리고 회원들의 감상문 제출 등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후는 나를 위한 욕심쟁이로
액티브 실버, 한마디로 파워 넘치고 활기 찬 인상의 사이구사 하쓰코에게 꿈을 물어 봤다.
“꿈이 아니다. 희망이다.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아서 그 풍부한 표현이 매력적이라 앞으로도 계속 공부해 유홍준 교수의 문화답사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한국어 안내를 맡을 생각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말을 통해 마음이 서로 이어지고, 마음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그 자리에 나 자신이 함께하고 있고,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흥분된다.”
아울러 하쓰코는 3년 뒤 남편이 정년 퇴직을 하면, 첫 부임지로 가족이 함께 살았던 센다이(仙台)를 잊을 수 없어서 다시 그곳에서 당시의 생활을 천천히 음미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망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정말 애쓰고 열심히 살아온 남편이랑 크루즈 세계여행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도전이야말로 다이나믹한 노후를 보내는 그녀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에 활력을 심어 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도 더욱 깊어지고 뜨거워질 것이다.
그런 욕심쟁이는 너무 멋져요. 아름다워요. 파이팅 하쓰코 !
언젠가부터 태극기를 아끼자는 캠페인으로 국경일엔 꼭 태극기를 달자는 운동이 있었다. 지난 현충일 뉴스엔 어느 고층 아파트에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내 걸은 태극기를 보여 주었는데 보는 마음이 뿌듯했다.
수십 층 되는 아파트에 줄지어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한마음으로 국경일을 기리며 뜻을 모아 태극기를 단 그 아파트 주민들이 돋보였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여 3.1절을 삼 점 일절이라 읽었다는 뉴스도 있었던 터라 나라 사랑이나 애국심 고취에 어른들이 좀 더 앞장서서 우리 태극기 사랑까지 가르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든 다 고유의 국기가 있고 각각의 디자인과 색상이 다르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심플하게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고 별 달 모양을 그려 넣은 나라도 매우 많다. 국기는 각 나라마다 뜻하는 바가 있어 표현된 모양일 것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참으로 독특하고 예쁘다. 세계 여러 나라 대부분 국기가 심플한 디자인인데 우리 태극기는 건곤감리 복잡하기도 하고 하나하나 가진 뜻도 심오하다.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라 필자는 우리 태극기가 참 좋다. 항일 운동 때 독립투사들이 품속에 소중히 지녔다든지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과 불굴의 나라 사랑이 깃들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표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아파트도 통장님이나 반장으로부터 국경일엔 태극기를 꼭 달자는 의논이 있었다. 아파트는 베란다 중앙이나 왼쪽에 달아야 한다는 정보도 들었다. 5층에 사는 필자는 5.6.7. 층을 맡은 아파트 반장이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우리 구의 소식지를 집집의 우체통에 넣어주거나 아파트 일로 주민 의견을 물어야 할 때 앙케이트 받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반장이 아닐 때도 국경일에 태극기 다는 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 현충일 점심 무렵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베란다 뒤편을 산책하다가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웠다며 댁의 태극기 아니냐고 하셨다. 베란다에 가보니 우리 태극기가 없었다. 아침에 분명히 내걸었는데 고정받침이 없어 리본으로 칭칭 동여매 놓았던 게 바람에 풀어졌나 보았다. 아주머니가 떨어진 태극기를 들고 올려다보니 우리 집과 두어 집이 태극기가 없더라고 하셨다. 한 집씩 찾아다니려 했다며 웃으신다. 우리 태극기 맞는다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이번엔 좀 더 꽁꽁 베란다 난간에 동여매었다. 땅바닥이 말라 있었던지 다행히 더럽혀지지는 않았다.
몇 년 전까지 우리 가족은 동해안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름이나 겨울 휴가철엔 꼭 동해안을 찾았다. 우리나라 어디든 다 아름답고 멋진 곳이 많은데 우리 아이 아주 어릴 때부터 놀러 다녀서인지 휴양지하면 동해안이 먼저 떠올랐다. 매년 다녔기 때문에 가는 길도 익숙했고 어쩐지 고향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동해안은 우리에게 멋진 곳이었다. 동해안 설악산 가는 곳 모두 경치 좋고 공기 맑은 훌륭한 도시지만 언젠가의 기억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서울에서 인제 원통을 통해 설악으로 가는 길이었다. 거리 곳곳에 국기 게양대가 있고 태극기가 걸렸는데 너무나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태극기의 하얀 바탕은 이미 더러운 회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해 보여 안타까웠다. 차라리 저렇게 방치할 바엔 달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며 강원도 지자체 어디에 신고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땐 좀 젊었고 놀다 보니 잊어버리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걱정만 하고 오게 되었었다. 아마 할머니가 된 지금이면 필자는 분명히 신고했을 것이다. 어디에 더럽혀진 태극기가 있으니 새것으로 교체하고 관리 좀 잘하라고 쓴소리 깨나 했을 것 같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국기가 걸려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요즘은 대체로 다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태극기가 보이면 당장 지자체에 전화해서 호통을 치려 한다. 거리에 펄럭이는 깨끗한 우리 태극기를 보면서 강원도 그 자리의 태극기도 지금은 깨끗하고 힘차게 휘날리고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손주와 떠나는 역사 여행 지침서
박세준, 양정임, 엄문희, 이인영 공저·혜지원
친구나 배우자와 여행을 갈 때와는 다르게 손주와 여행을 떠나면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생긴다. 바로 ‘교육성’이다. 즐겁고 신나는 여행도 좋지만, 어린 손주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고 유익할 것이다. 은 제목 그대로 아이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 도서다. 여행 작가, 관광대학 교수, 미술작가 등이 합심해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책을 엮었다.
초등학생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국 유적지 정보와 역사 이야기, 코스별 여정 등을 담았다. 여행지마다 지도, 교통편, 역사적 배경, 여행 팁, 배울 거리, 먹거리, 숙박 정보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관광지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예상한 일정표가 수록돼 있어 스케줄에 알맞게 움직이며 계획적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역사적 장소를 직접 가서 보면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현장학습 시간이 될 것이다.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을 아우르며 선사 시대·삼국 시대부터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 30곳을 소개했다. 각 파트 마지막 장에는 ‘아이가 알아야 할 역사 포인트-아이가 질문할 경우 이렇게 대답하세요’라는 페이지가 나온다. 아이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질문 몇 가지와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 미리 읽어 보고 여행을 떠나면 손주와 대화를 수월하게 나누는 데 도움이 된다.
◇ 나카지마 교코 저·예담
한 지붕 아래 4세대, 8명 식구가 갑자기 모여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소설이다. ‘제발 오늘만은 무사히!’라고 바랄 정도로 각자의 불행을 안고 사는 이들이지만, 세상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결국 가족만이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 임지선 저·미래의창
서울 및 근교의 매력적인 에어비앤비 숙소 11곳을 소개했다. 작가,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예술적 감각을 지닌 호스트들이 낯선 여행객들과 집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삶의 변화와 그들이 운영하는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에어비앤비 숙소 정보를 함께 제공한다.
◇ 로빈 모건, 아리엘 리브 저·예문사
두 명의 저자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 48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었다. 그 시대의 주역들이 말하는 1963년대 대중문화를 이야기한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 음악인들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57점의 사진을 수록했다.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나의 자식들’이라 부르던 작품들만 덩그러니 남기고 52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지 42년, ‘자식들’을 품은 곳이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권진규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던 조각가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고등보통학교(춘천공립중학교, 현 춘천고)와 일본 무사시노(武藏野)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석조(石造), 테라코타(점토(를 구운 것), 건칠(옻칠 기법)을 사용해 주변 인물을 모델로 수많은 초상과 자소상 등 작품을 제작 한국과 일본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 초대전을 여는 등 살아생전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권진규. 그의 작품 세계를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권진규미술관은 춘천의 옥 생산업체인 대일광업(옥산가)이 지역사회 공헌사업으로 2015년 12월 말 건립했다.
권진규미술관은 4개 층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1층에서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내려오면서 관람한다.
2층이 권진규 전용 전시실이고 3층과 4층은 장난감 박물관과 고서 자료실로 꾸며져 있다.
4층에는 아이언맨, 헐크 등 대형 피규어를 비롯해 , , 등 헐리우드 영화 캐릭터, , 등 일본 지브리사 대표 캐릭터들을 감상할 수 있다.
4층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잡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청오 차상찬 잡지기념관’도 볼거리다.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 , 등 잡지를 실물로 볼 수 있다.
청오(靑吾) 차상찬(車相.1887~1946)은 일제강점기 꾸준하게 잡지를 펴냈던 최고의 잡지 발행인이다.
3층은 일본 만화 캐릭터와 오래전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완구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조립식 장난감과 종이인형 등이 한 층을 가득 메우고 있다. , , , 등 일본 TV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이 바로 주 전시실인 권진규 미술관이다. 취재를 갔을 때는 개관기념전인 ‘권진규와 연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현재는 ‘또 다른 권진규전’이라는 이름으로 권진규의 작품 31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권진규의 첫 사랑 오기노 도모를 모델로 한 ‘도모’와 권진규가 일본에서 귀국한 뒤 음식 수발을 들던 박영희를 모델로 한 테라코타 작품 ‘영희’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기획전은 오는 11월말까지 계속된다.
※권진규미술관 관람 정보
주소 강원도 춘천시 동면 금옥길 228 (옥광산 내)
관람시간 하절기 10:00-19:00 / 동절기 10:00-18:00
관람료 성인 1만원 / 학생 5000원(학생증 제시)
전화 033. 243. 2111
대중교통정보 시내버스 66번 남춘천역 9:00, 13:00, 17:00 출발 – 한림대 경유 – 옥광산 도착 1시간 소요 / 시내버스 65번, 75번 춘천 명동 10:20 ~ 20:00 (2시간 간격 배차) – 팔호광장 경유 – 옥광산 도착 45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