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많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고려청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근래 들어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우리 곁에서 존재감이 부각되는 문화재가 있다. 바로 ‘달항아리[白瓷大壺]’다.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 역시 백자 달항아리 형상이었던 것을 보면 달항아리에 대한 전 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넓게 자리 잡고 있는지가 짐작된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주해: 1. 대호: 큰 항아리. 높이가 40cm, 폭이 40cm 이상이어야 한다. 2. 백자를 白瓷 또는 白磁로 표기한다. 白磁는 일본식 표기이며, 도자기가 중국에서 유래된 점을 감안해 白瓷로 표기한다)
공식 학명(學名)이라고 할 수 있는 백자대호(白瓷大壺)에 처음으로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을 붙인 분은 그 유명한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선생이다. 달을 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달항아리를 글과 그림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끌어안은 대표적인 인물은 화가인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선생이다.
수화 선생은 그 어렵던 1950년대 시절, 달항아리를 고미술상에서 구입하고 돌아오는 귀갓길에 흥겨워하던 모습을 글로 남겼다. 선생의 작품에 달항아리 모티브가 여러 차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달항아리를 무척 사랑한 것 같다. 그의 안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약 24억6000만 원에 낙찰된 달항아리는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자태에서 푸근함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비대칭에 살짝 기울어진 모습에 광채가 없는, 즉 무광무색(無光無色)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1964년, 우리의 백자 달항아리를 미술사학자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 1922~1993) 선생이 드라마틱하게 논한 시구(詩句)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백자대호(白磁大壺)_김원룡
조선백자(朝鮮白磁)의 미(美)는/ 이론(理論)을 초월(超越)한 백의(白衣)의 미(美)/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圓)은 둥글지 않고/ 면(面)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朝鮮白磁)에는 허식(虛飾)이 없고/ 산수(山水)와 같은 자연(自然)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白衣)의 민(民)의 생활(生活)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古今未有)의 한국(韓國)의 미(美)/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理論)을 캐고/ 미(美)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달항아리를 보면 무심(無心)의 예찬이 저절로 나온다.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평생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하나의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이들에게 두 번째 삶, 은퇴 후 인생설계는 그저 막막한 일일 뿐이다. “후배들에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잔소리했지만, 정작 회사 밖으로 나오니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어느 공기업 정년퇴직자의 소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퇴직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자사 임직원의 은퇴 준비, 노후 준비를 돕기 위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선명한 미래가 업무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 아닐까. 이런 기업 중 모범 사례로 꼽히는 포스코를 찾아 인생설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본지 제호와 비슷해 친숙하게 여겨지는 이 이름은 포스코의 퇴직 후 인생설계 프로그램명이다. 교육 참여는 50세 이상의 포스코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은 2001년부터 포스코인재창조원이 운영해온 정년퇴직 예정자 대상의 교육 과정인 ‘그린 라이프 디자인’이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교육 진행 과정 중 정부의 정년퇴직 연장 정책에 따라 2016년과 2017년에는 정년퇴직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면서 프로그램 운영에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준비기간’에 대한 의견도 반영됐다. 교육 시점이 정년퇴직 3개월 전부터 시작되어 인생설계에 제대로 반영하기엔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린 라이프 디자인 교육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약 30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여했다.
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그린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이 퇴직이 임박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제적으로 필요한 서류 처리나 연금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퇴직 후 생활에 대한 마인드 변화, 방향성 제고와 같은 포괄적인 부분이 중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래가 명확해야 근로의식 높아져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에 참여 예정 인원은 330명. 포스코의 주된 사업장인 포항과 광양의 임직원 300명과 서울 근무자 30명이 참여한다. 강의에 참여하는 인원만 13명. 포스코인재개발원의 교수 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외 강사들이 각 전문 분야의 교육을 담당한다.
포스코인재창조원 김일수 교수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50대를 넘어선 직원들이 퇴직 후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포스코에 몸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의 삶에 겁을 먹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회사가 나서서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생애설계와 퇴직 준비를 지원해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근로의식도 고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또 퇴직 후 삶의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고요.”
2016년과 2017년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총 7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본인의 생애설계에 대한 진단과 자산관리, 생애관리, 건강관리 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뤄졌고, 관심 분야와 관련한 현장 탐방과 체험 학습도 이뤄졌다. 참여자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평균 4.88점의 반응이 나왔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올해 변화를 줬다. 초기 프로그램이 1일 8시간 포괄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교육시간 부족, 교육 내용 전문성에 대한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직업형 트랙과 자산형 트랙으로 나눠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자산형 트랙의 경우 자산관리는 결국 부부 공동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임직원의 배우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원한다면 두 프로그램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재무관리 교육과 달리 특정 금융상품의 밀어주기가 없다는 점도 참여자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다.
‘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것까지
직업형 트랙은 1인 창업이나 프랜차이즈 창업의 특징과 차이점, 창업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위험 요소, 재취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구직 목표 설정, 자격증 취득 등과 같은 현실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자산형 트랙은 수익형 부동산이나 부동산 경매 또는 공매에 대한 정보, 세금과 관련 법률에 대한 소개, 각종 금융상품이나 상속·증여와 관련한 교육도 실시한다.
또 각 프로그램에선 즐거운 여가를 위한 본인의 여가 유형 진단에서부터 여가 활용 방법과 건강관리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 등도 함께 소개한다.
프로그램의 구성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흥미로운 부분. 포스코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이렇게 주제가 넓어진 것에 대해 “직원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임직원들의 관심이 많은 건강과 재무, 인간관계, 여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한 재테크 활동뿐만 아니라 정년퇴직 후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재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나 준비사항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개인별로 성격검사와 적성검사도 실시한다. 여기에 직원에게 재취업 장애요인은 없는지 체크한다.
오프라인 교육과 별도로 사이버학습을 사전학습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다. 인생설계, 창업, 귀촌과 같은 커리어 디자인과 재무 디자인, 라이프 디자인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은퇴 대비에 ‘눈치 보기’는 없어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의 참석률은 전체 대상자의 20% 정도. 은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년퇴직을 10년 앞둔 임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고려하면 꽤 높은 편이다.
혹시 회사가 먼저 나서서 ‘퇴직’에 대해 논하는 것이 사측에서 퇴직을 권하는 것처럼 비춰지진 않을지, 또 프로그램 참여가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지 의문을 가졌지만 참가자들은 “사내 분위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갖는 의문”이라고 일축한다.
한 프로그램 참석자는 “포스코라는 기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정년 때까지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런 문화 때문에 정년퇴직 후 생애설계에 대해 논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사내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15세기 ‘분청자기’ … 크리스티서 33억 원에 낙찰”이라는 한 국내 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몇 년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된 분청자기(粉靑瓷器)를 본 한 미술 애호가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헤드라인이 떠올랐습니다.
“수세기 전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 현대성을 말하다.”
이는 반세기 전인 1962년, 한국의 문화유산을 처음 유럽 대륙에 대규모로 전시했을 때, 이를 본 파리지앵들이 남긴 감탄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들은 “분청자기에서 현대미술적 감각을 보았고, 한국에는 500년 전에 피카소(Pablo Picasso)가 있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2017) 참조, 위의 내용은 2016년 2월 본지에 실린 내용과 일부 겹침을 밝힙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고려청자나 조선시대의 청화백자를 두고 말한 게 아닙니다. 15~16세기 이 땅에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분청자기에 대한 논평입니다. 분청자기를 보고 눈을 크게 뜬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관람자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홀렸던 것입니다.
고려자기나 중국과 일본의 도자 예술품이 보여주는 한결같은 완벽성, 그래서 냉기마저 감도는 고매(高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도자기를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인의 숨소리와 손길이 숨김없이 전해오는 순박한 정감을 그네들도 느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파리지앵과 뉴요커들은 암흑시대와도 같던 15~16세기의 틀을 벗어난 그 자유분방함에서 과감한 현대성을 목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네 문화예술에 깊숙이 빠진 서구인들이 “한국인은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이 풍부하다”고 예찬하는 데는 이처럼 오랜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5300억 원 규모의 록펠러 소장품… 세기의 경매 열린다.” 며칠 전 국내 한 일간지에 실린 헤드라인이다. 기사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1905)라는 작품도 실려 있었다.[사진1] 순간 머리에 한 가지 장면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보름 전 ‘2018 아트바젤홍콩(Art Basel Hong Kong 2018)’이 개장되자마자 몇 작품이 팔렸는데, 그중 한 작품인 피카소의 동판화 ‘검소한 식사’(1904)를 홍콩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사진2]
이와 관련해 필자는 옥션(Auction)이라는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파리, 뉴욕, 런던 같은 큰 도시에서는 아트페어(Art Fair)라는 이름의 미술품 시장이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가을 개최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도 그중 하나다. 행사에 참여하는 화랑에서 내놓는 작가의 작품을 미술 애호가들이 구입할 수 있는 ‘큰 장터’다. 그래서 아트 페어에서는 경쟁적으로 좋은 작품을 구입하는 개인 수집가도 있지만, 각국 미술관 구매 담당자들이 작품을 경쟁적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수집가들이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수장하며 ‘숨겨온’ 작품을 팔기 위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트페어는 구매자들에겐 좋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한편, 일반 애호가들에겐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전시장은 항상 수많은 애호가로 북적인다.
앞의 신문기사에서 언급한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서는 미국의 부호이자 소문난 미술 애호가인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3세(1915~2017)의 소장품이 나온다니 전 세계 미술계의 눈들이 경매장으로 쏠리고 있다. 여기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가 얼마에 낙찰될지도 관심사이지만, 그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수많은 애호가가 행복해하고 있다. 미술 시장의 두 가지 다른 순기능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화가가 그린 진짜 그림과 AI(인공지능) 화가의 그림을 구분하기 힘들다. 4자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이 지킬 수 있는 분야는 사람의 감정을 활용하는 창작이라고 여겨왔다. 그 판단이 흔들리고 있다. 개인이 평생 갈고닦은 재주를 인공지능(AI)이 너무나 쉽게 모방할 뿐만 아니라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현실에 놓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을 위로하는 감정 로봇도 발전하고 있음에 충격은 더 커진다. AI 인공지능, 창작도 접수해 가고 있다.
2월 초 한 언론사 기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취재한 내용을 담은 “테크 트렌드 2018” 북 콘서트에 참여했다. IT 기술 분야에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필자는 시대 흐름을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서다. 아홉 가지 트렌드를 적시했다. 첫째 디지털 식스 센스 시대, 혼합현실, 둘째 뇌와 컴퓨터의 연결, 뇌-기계, 인터페이스, 셋째, 인간을 위로하는 도라에몽, 감정 로봇, 넷째, 의학. 약학에 생명공학을 더하다, 레드바이오, 다섯째,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 포스터 후먼, 여섯째, 장인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생성적 적대 신경망, 일곱째, 절대 뚫을 수 없는 철옹성, 양자암호, 여덟째, 본토로 돌아가는 생산공장,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 그리고 아홉째로 실리콘밸리에서 부활한 마르크스, 기본소득을 들고 있다. 그중에서 “장인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이 사진작가인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창작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분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화가 “Deep Dream”이 그린 고흐 풍의 그림을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려낸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경매에서 딥드림이 그린 그림 29점이 약 1억 1천만 원에 경매됐다. 앞에 실린 그림은 인공지능 화가(딥드림)에게 고흐 화풍을 배우게 한 뒤 광화문을 그리게 했다. 고흐 화풍대로 그렸다. 시인이 쓴 시와 AI가 쓴 시를 65%가 분간하지 못했다. 의료분야도 마찬가지 현실에 접어들었다. 하버드대 도신호 교수가 인터뷰에서 “신장결석 등 비교적 잦은 질병을 판별하는 AI 시스템의 경우 정확도가 99.9% 수준에 달했다”고 적고 있다.
세상의 화두가 온통 “4차 산업혁명”인 듯하다. 그 변화의 물결이 빠르게 다가옴을 느낀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을 가리켜 “빅도미노”라 이르기도 한다. 순식간에 무너지는 거대한 도미노와 같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쓰나미와 같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세상을 바꾼 일들이 대중화하는 데는 적잖은 세월이 걸렸다. 텔레비전은 10년, 스마트폰은 5년이 걸렸다.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공지능과 관련한 스피커, 로봇 등의 발전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빨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서 전시된 자율주행 자동차와 인공지능 스피커, 인공지능 로봇,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 등이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업체의 광고를 비롯한 전반부문에서 급격히 나타난다.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고 있음이다. 강 건너 불구경으로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모든 일자리를 뺏기게 될 것이라 우려하듯 인공지능을 경쟁 상대로 보며 걱정을 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어떻게 대응함이 바람직스러울까? 환경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경쟁하는 사회가 아닌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는 전자가 경쟁에서 이기게 된다. 그렇기에 걱정을 하기에 앞서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노 시인(老詩人)은 우이동 솔밭공원을 거닐며 청여장(靑黎杖, 지팡이)을 한 손에 꼭 부여잡고, 시 한 수를 낭송했다.
시공 속에 있으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오 물방울
너 황홀히 존재하고 있음이여
소멸 직전에 아슬아슬함을 지니고 있건만
거뜬히 너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하나로 꿰뚫린 빛과 그림자
소멸과 생성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이 번갈아 이어지는
유무상통의 존재의 비의(秘儀)
그것을 투시하는 눈이 있는 한
너의 아름다움은 늘 영롱하고
신선할 수밖에 없다
박희진(朴喜璡, 1931~2015) 시인 댁을 자주 왕래하던 2011년 초봄 최근 습작한 시라며 ‘팔순을 넘긴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 소묘’ 두 장의 습작 노트를 보여준 일이 있는데 위의 시는 ‘물방울 소묘’다.
박 시인은 1990년에 발간한 수상집 ‘투명한 기쁨’의 표지도 김창열(金昌烈, 1929~) 화백의 물방울 그림으로 장식한 바 있다.
“1972년 파리 근교의 마구간에 살 때, 작업하다 뒤집어놓은 캔버스 위에 튄 물방울,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져 햇빛에 반사되는 순간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었어요. 나는 그걸로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평생을 살아왔어요. 가끔 그 물방울이 영혼과 닿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지요.”
노 화백은 술회하고 있다. 물방울 화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의 화업 50여 년은 영롱한 물방울 태어남과 스러짐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유년기부터 익혀온 한학과 접목하여 캔버스나 한지에 한자를 쓰고 그 위에 물방울을 얹은 ‘회귀(回歸)’ 시리즈로 작품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주옥같은 작품 220점을 제주도에 기증,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을 제주시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착공, 2016년 9월 개관했다.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물방울 그림’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10호 이내의 소품이 아주 귀해서 그 희귀성이 작품가를 올려놨다. 최근 경매에서 1975년에 그린 3호 작품이 무려 47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작품[사진]은 10여 년 전, 인사동 경매에서 700만 원에 낙찰받았다. 13개의 크고 작은 물방울이 X자로 배열되어 긴장감과 역동성을 주고 있다. 얼룩진 물 자국 위에 맺힌 방울방울에 빛이 부서져 아련한 그림자를 만들고, 가슴 가득 푸르른 영혼이 일렁이게 한다.
형진식(邢鎭植, 1950~) 화백은 일반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나, 예술인들과는 깊은 연고를 맺고 있는 분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후 모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1976년부터 2006년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을 길러냈다.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즘에 반대해 무심사 미술전람회로 통칭되는 ‘앙데팡당(independent)’ 전에 출품함으로써 정형화된 그룹 활동을 벗어나 자유로운 추상의 세계를 지향했다.
“호흡하는 공간 속에서 자연을 자연답게 인식하는 일, 순수함에 환원되어지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작업이 아닐까, 얼음은 투명하고 맑아야만 얼음이 아닐까. 그것은 마치 불투명한 대상을 세척 정화하는 순수함만이 남기 위한 인식인 것이다. 뭉친 가운데서 흐트러짐, 널려져 있는 가운데서의 일관성, 입체에서의 평면적 접촉, 평면 속에서의 입체적 구조의식, 이러한 것은 서로 묶여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애매한 속성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열려진 상황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체의 지향성만 표상화되는 것이다.”
이 작가는 보여주거나 알려주는 작가가 아니라 제시하는 작가란 생각이 든다. 몇 회의 개인전에서 종이 위에 연필, 크레용 등으로 손 가는 대로 그려 낸 드로잉을 보면, 활기찬 생기(生氣)의 리듬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선 하나하나가 마치 충전(充電)된 것처럼 공(空)을 가로지르며 또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지며 그 공을 긋는 행위의 궤적을 흰 종이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시인이며 미술평론가 이일(李逸, 1932~1997) 선생이 개인전 머리말에 쓴 글이다.
이 그림[사진]은 13년 전 ‘아름다운 가게 미술품 경매’에서 낙찰받은 작품인데, 같은 크기의 네 작품이 한 세트로 나와 바로 구입했다. 장방형의 캔버스 중앙에 파란 유화 물감을 떨어트리고, 자연스런 반동으로 물감이 튄 상태에서 최소한의 드로잉으로 마무리했다. 마치 만년필에서 푸른 잉크가 흩뿌려진 것처럼 자연스런 무늬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 네 작품을 한데 모으거나 종횡(縱橫)으로 늘어놓아도 그 또한 아름답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의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은 기교나 힘을 뺀 아이들의 붓장난 같아서 순진함이 배어나왔다고 하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말년 작품들도 ‘아이들의 손짓 같다’고 한다. 순수로 회귀하려는 마음이 저절로 예술로 승화된 것이리라.
물방울처럼 금방 소멸되어도, 찰나의 순수가 영혼을 빛나게 한다.
>>이재준(李載俊)
아호 송유재(松由齋). 1950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고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달과 6펜스', '사랑과 인식의 출발'을 읽고, 붉은 노을에 젖은 바닷가에서 스케치와 깊은 사색으로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90년부터 개인 미술관을 세울 꿈으로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면 37살에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작품으로 유화 에니메이션이라는 특수한 기법이라 주연 배우가 없다. 예매 순위는 높지 않으나 네티즌 평점이 거의 만점에 가깝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흐가 죽고 난 후 1년이 지나고 고흐의 친구였던 우체부가 아들을 시켜 고흐가 마지막으로 머물었던 프랑스 남부에 가서 고흐의 죽음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고흐의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 그리고 고흐와 가까웠던 가셰 박사의 딸, 고흐가 묵었던 호텔 주인 등의 증언을 통해 고흐가 자살한 것인지 타살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흐는 말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 결혼도 못 했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사람들과 충돌하는 등 괴팍한 행동을 일삼으니 마을에서도 추방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에서도 아이들이 고흐를 미치광이라며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다. 자살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가셰 박사 얘기로 우울증에 걸려 있었고 고흐 자신이 자살을 시도했다 말 하니 그렇게 믿어질 수밖에 없다.
고흐는 살아생전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기 때문에 무명화가 취급을 받았다. 그랬으니 그의 경제적 궁핍은 상상할 만 하다. 동생 테오가 생활비를 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은 인정은 받았던 모양이다. 10년 만에 1,000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다작이다. 고국인 네덜란드보다 픙광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남부 프랑스에 정착한 것도 특이하다. 제대로 된 그림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짧은 기간 동안 그림 공부를 했으나 미술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그 스승과도 싸우고 결별했다는 것이다. 싸운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성격이 원만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주치의 가셰 박사도 원래는 화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포기하고 고흐의 재능을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화가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가셰 박사는 고흐가 죽고 나서 치료비 명목으로 고흐의 작품을 걷어 갔는데 그 후에 고흐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나타냈다. 죽고 난 후에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작품 중에는 무려 수천만 달러에 경매되기도 했다.
영화는 유화 에니메이션이라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만들었다. 고흐의 잘 알려진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아를의 침실‘, ’가셰 박사 초상화‘, ’해바라기‘, ’귀를 자르고 난 자화상‘ 등 눈에 익은 작품들이 마치 동영상처럼 살아 움직인다.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그림은 평범한 사람이 볼 때 하늘은 그저 파란 도화지 같을 뿐인데 고흐는 공기의 흐름까지 븟 터치로 그려냈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고흐의 붓 필치가 원래 생동하는 듯한 강렬함이 있는데다가 그것을 100여명의 실제 화가를 동원해서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니 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에니메이션의 특성 상 눈이 어릿어릿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천재 작가의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정도는 넘어갈 만 하다.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벼루[硯], 먹[墨], 붓[筆], 종이[紙]를 말한다. 예로부터 선비나 문사(文士)들 곁에는 이 네 가지가 늘 함께 있었다. 벼루에 먹을 갈고 붓에 먹물을 적셔 종이에 글씨를 쓰면 서찰(書札)도 되고 시(詩)도 되고 서화(書畵)도 되고 상소문(上疏文)도 되었다. 보조기구로는 벼루와 먹을 넣어두는 연상(硯箱)이 있고 종이를 말아서 보관하던 지통(紙筒), 붓을 꽂아두는 필통(筆筒)도 있으나 역시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연적(硯滴)이라 할 수 있다. 토기나 도자기 혹은 놋쇠로 만들어진 연적은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아두는 작은 기물이다.
그런데 그 기형이 다채롭고 격이 높아 선비들의 호사(豪奢)가 되기도 했다. 서울이나 지방의 고미술 상점을 지날 때마다 연적에 눈이 쏠려 만져보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서예 수업이 있어서 준비물로 문방사우와 연적을 갖추긴 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조악한 품질의 것들을 팔았으나, 연적은 없어서 컵이나 주전자에 물을 준비해 조금씩 따라 먹을 갈았다. 그래도 열서너 명은 집에서 어른들이 쓰던 사기 연적을 갖고 왔는데 청채(靑彩)의 붕어 모양이 제일 많았다. 나는 형이 쓰던 푸른 문양의 사각형 사기 연적을 갖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만들어 팔던 ‘왜사기’였다.
그들은 우리나라 도자기에 매료되어 그것들을 수집하려고 부산 등지에 현대식 사기 공장을 크게 짓고 밥그릇, 국그릇, 종지, 접시, 요강, 연적들을 만들어 방방곡곡을 누비며 우리의 청자, 백자, 분청자기와 바꿈질을 했다. 그래서 오지의 초가 구석에 있던 간장종지까지 산뜻한(?) 왜사기로 바뀌게 되었다. 시골 장날이면 우리의 민속품이나 도자기들은 바리바리 일본 상인에게 들려 바다 건너로 사라졌고 흔하던 붕어연적도 씨가 마를 정도가 되었다.
나는 향리에 갈 때마다 옛 벗들에게 붕어연적을 탐문했으나 구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인사동의 고미술상에 있는 연적들은 희귀하고 예술성이 높은 것들이라 값이 비싸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말마다 황학동 일대의 벼룩시장, 답십리 고미술 상가를 훑고 다녔지만 옛것을 모방한 현대의 것들뿐, 조선조 말기의 것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 출장 중에 골동품점에서 처음 청채 연적을 구입했다. 붕어라기보다는 잉어에 가까웠는데, 구부린 자태며 비늘과 수염까지 정교한 데다 은은하고 맑은 코발트 유약이 일품이고 수구(水口)며 밑 처리도 깔끔해 얼른 지갑을 열었다. 그 뒤로 인사동 도자기 경매장에서 여러 형상의 연적들을 구입했다. 개중에는 중국을 통해 북한에서 흘러온 것들도 있었다. 한 30여 년 수집하다 보니 조선조 중기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100여 점 되고, 현대 도예가들에게 부탁해 빚은 연적이 300여 점이나 있다. 언젠가는 소장한 연적으로 작은 전시회를 꾸밀 계획이다.
지금은 물건이 귀해져 값이 만만치 않지만, 내가 연적을 마음에 두고 수집하기 시작할 때는 다른 도자기(항아리, 다완, 주병 등)에 비해 가벼운 편이었다. 팔각(八角) 국화문이나 풀 무늬의 것[사진 1]은 선이 비뚤고 각(角)이 아홉인 것도 있다. 지방 가마에서 이름 없는 도공이 무심히 빚고, 우리 땅에서 나는 탁한 토청(土靑)을 바른 그 소박함이 좋다.
고미술상에는 도자기는 물론 석물(石物), 목물(木物), 서화 등 그 구색이 다양한데 고졸(古拙)한 멋의 책상이나 소반, 반닫이, 목판 따위에 밀려 한 귀퉁이에 박혀 있는 문짝에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대부분의 문짝들은 구옥(舊屋)이 헐리면서 수습된 것이기에 그 짜임도 지방 따라 다양하고 목수 솜씨에 따라 품질이 각색이지만, 연대가 깊지 않아 가격이 저렴하다. 20~30cm의 작은 문짝들도 그 짜임이 조밀하고 문살도 가지런해 조형미가 그만이다. 다락방 들창이었거나 고방(庫房)의 환기창으로 소용되었을 문짝 한 쌍을 벽에 걸고 보면, 벽 너머 푸른 하늘이 열릴 것 같은 아련한 환상에 젖는다.
우리나라 문화를 사랑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우리의 목기를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고 손으로 툭툭 다듬은 것처럼 비뚤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균형 잡힌 든든함’이라 칭송했다.
창살 모양에 따라 완자문(卍字門), 아자문(亞字門), 격자문(格子門), 정자문(井字門), 용자문(用字門) 등 그 이름이 다양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백미는 ‘꽃창살문’이다. 일반 사가(私家)보다는 사찰 문에, 일일이 꽃 모양을 깎아 맞추고 단청으로 장엄(莊嚴)한 문을 바라보면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전북 부안의 ‘내소사(來蘇寺)’ 법당 문의 꽃창살은 1633년에 창건된 법당과 함께 만들어졌다. 긴 세월 비바람에 단청마저 퇴색되었으나, 색을 덧바르지 않고 나무의 속살 그대로를 드러낸 채 속계(俗界)와 선계(禪界)의 통로가 되고 있다. 연꽃, 국화, 모란의 꽃들이 사선으로 혹은 나란히 연결된 채 500년 가까이 침묵의 고태미(古態美)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법당 문의 문창살을 이토록 정교하게 빚어낸 것은 형태와 빛깔 그 자체가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理事無碍法界]라는 저 화엄(華嚴)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석지현(釋智賢, 1946~) 승려 시인의 말이다.
문짝[사진 2]은 지리산 산록에 거주하며 옛 목기들을 정성스레 재현하고 있는 한 목수의 솜씨다. 1 대 2의 비율로 문틀을 짜놓고, 사선으로 문틀에 꽉 차게 두 종류의 꽃 모양을 조각한 문살을 끼웠다. 뒷면에 창호지를 바를까 하다가 공간의 멋을 즐기려 그냥 서재 책장 옆에 걸어두고 있다.
골동품을 수집하려면 주변의 민속품에 먼저 눈길을 줘보자. 아직은 값이 싼 실패, 골무 등 규방의 것부터 홀대받고 있는 작은 문짝들까지 모으다 보면 5~6년 후엔 값도 많이 오를 것이고 심미안도 높아져 ‘우리 것을 지킨다’는 자긍심이 저절로 우러날 것이다. 청채의 붕어, 해태, 나비 모양 연적도 눈에 띄거든 주저 말고 수집할 일이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로 농촌의 하루는 일의 연속이다, 논일로는 벼를 베고 말려야하고 수매에 대비해야한다. 밭일로는 들깨나 참깨를 털어야 하고 말려야 한다. 고추와 고춧잎을 마지막 수확하고 고추 대를 뽑아 묶고 말린다. 콩을 뽑아 말린 후 도리깨질로 때려서 콩깍지에서 콩을 뽑아내야 한다. 마늘 심을 준비를 위해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결혼식은 봄가을에 밀집해 있다 보니 이웃이나 친척 결혼식 참석도 해야 한다. 결혼식은 모두가 대도시에서 이루어지니 하루가 몽땅 소비된다. 얼마나 바쁘면 '가을의 농촌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의 농촌사정을 말해준다.
칠순의 중턱을 넘어서는 처남과 처남댁이 농사일을 도와달라고 SOS를 보내왔다. 특히 5백 평에 심은 고들빼기 수확에 힘을 보태달라는 전화다. 마음속으로 귀농을 꿈꾸고 있는 입장이니 체험삼아 일을 해주기로 했다.
고들빼기는 잎과 뿌리 전체를 먹는 채소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수확하기위해서는 쇠스랑(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 풀 무덤 따위를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 쇠로 서너 개의 발을 만들고 자루를 박아 만든다.)으로 고들빼기 전체를 떠서 힘을 가해 떨어트리면 흙과 고들빼기 뿌리가 분리된다. 이후 고들빼기 잔뿌리에 묻어 있는 흙을 털고 누렇게 변색된 떡잎을 떼어내면서 다듬는데 모두가 사람손이다. 4kg 들이 종이 박스에 차곡차곡 잘 담아서 농산물 경매시장에 내어 놓기 위해 자동차에 실어주면 그다음부터는 경매를 거쳐 팔려나가고 돈은 통장으로 입금되는 구조다.
쇠스랑을 이용하여 삽질 같은 작업을 하기 때문에 오래하면 허리가 아프다. 쪼그리고 앉아서 고들빼기를 다듬다보면 허벅지 근육이 욱신거리고 아프다. 오랜만에 농사일을 하면 안 쓰던 근육을 쓰기 때문에 고통이 더 심하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못한다. 칠순의 중턱을 넘긴 분들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해 나가는데 하루 일하면서 엄살 부리는 것 같아 참고 일한다.
게으른 농부 밭고랑만 세고 있다고 줄지 않는 고들빼기 밭만 눈으로 가늠하고 셈하고 있다. 일당 일군을 사면 새참을 줘야하지만 식구들끼리 하면 시간절약을 위해 빵이나 물만 새참으로 먹으며 일한다. 오후 5시경 야간 경매장으로 가는 차량이 떠나야하기에 4시 반에 일을 마쳤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일한 고들빼기 상자를 모두 들어서 길 밖으로 옮겨서 차에 올려 줘야 한다. 오늘만 120박스를 수확했다.
저녁은 고생들 했다고 삼겹살 파티를 했다. 금방 뜯어온 상추에 살짝 데쳐 무친 고들빼기가 밥상에 올라왔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밥맛이 좋다. 저녁을 먹고 이웃집에 선물할 고들빼기 두 박스를 얻어 차에 싣고 돌아왔다. 농산물 선물이 돈으로 따지면 1~2만원에 불과하지만 서로 부담이 없어서 좋다.
몸이 참 피곤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다 아프다. 여기저기가 쑤시고 걸음 걷는 것이 어기적거린다. 삭신이 다 아픈 것 이 이삼일은 걸려야 완전히 몸이 회복할 것 같다. 이런 일은 농촌에서는 일상사다. 매일을 이렇게 힘들게 농사짓는 농촌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먹을거리를 얻는다. 단 하루지만 바쁜 농촌 일손 돕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뿌듯하다. 하지만 귀농해서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의 미술품 시장은 화랑과 경매 회사로 양분되어 있다. 물론 작가가 직접 개인적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개인전 기간에도 작가는 화랑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술품은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인의 정신세계가 투영되기에, 각각의 개성이 다르고 장르가 다르므로 공산품이나 생필품처럼 쉽게 살 수가 없다. 제아무리 저명한 작가의 예술품도 내 보기에 탐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작가가 서명한 미술품에는 나름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집약돼 있으므로 오랜 시간 작품과 교감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의 침체 속에서도 미술품 경매시장은 나름 활기를 띠어 2017년 전반기 경매회사를 통한 미술품 거래액만도 989억원으로 2016년 상반기 964억4000만원보다 2.5%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국내 12개 경매회사를 잘 관찰하면 미술품 시장의 흐름뿐 아니라 거래된 장르별, 작가별 가격의 추이를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매회사는 현장경매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미술품 판매를 하므로 집에 앉아서 편하게 인터넷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보는 작품 이미지와 짧은 설명이 미흡하면 경매사에 방문해 전시된 실물을 직접 살펴본 후 구매를 결정하면 된다.
집의 거실이나 서재, 침실 등에 그림 한 점 걸고 싶으면 우선 예산을 정하고 화랑이나 경매 회사를 찾아가 예산 범위에 맞는 미술품을 선별해본다. 작품 가격이 예산에 맞는다면 작가의 경력이나 전시 이력, 작품평 등을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다. 또 그 작가의 최근 작품 가격 추이도 살펴본다.
천칠봉(千七峯, 1920~1984) 화가는 전북 전주에서 출생해 국전 특선 수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화가다. 남녘에서는 경매 시 언제나 인기를 누리는 작가다. 는 4호의 소품이지만 농염한 붉은 빛이 명품인 작품이다. 인사동 화랑끼리 모여서 하는 경매에서 35만원에 낙찰받았다. 천 화가는 중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업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히 빨간색의 처리는 가히 초일류급이란 평을 듣는다. 석류 알이 곧 쏟아질 것 같은 긴장의 순간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실 빈 벽에 이 한 점만 걸어도 공간을 충분히 채운다.
공석순(孔錫洵, 1944~) 화가는 서라벌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국전에 입선했으나 화장품 회사 등에 근무하다 50대에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격조 높은 작품을 표출하고 있다. 몇 해 전 인사동에서 함께 점심식사 후 골동품 가게에서 연꽃 모양의 소반을 사서 그곳에 꽃 그림을 부탁했더니, 보름 후 그림을 완성했다. 이 작품 또한 30만원 미만의 가격이 소요되었다.
철우(鐵友)란 아호를 쓰는 서각인(書刻人) 곽금원(郭錦元, 1955~)은 우리나라 각자장(刻字匠,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 철재(鐵齋) 오옥진(吳玉鎭, 1935~2014)의 수제자로 30여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명인이다. 어찌어찌 연결이 되어 그분의 작품을 하나둘 장만하게 되었다. 나의 캐리커처도, 서실의 현판도 그분의 작품이다. 오옥진 선생은 문하생들과 경복궁 흥례문 회랑에서 전시회를 가져왔는데, 곽금원 선생이 무늬 좋은 느티나무 판재로 짜 맞춘 를 출품했을 때 30만원을 주고 가져왔다. 표면에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선생의 푸른 대나무 그림을 새겨 품위와 운치를 더하고 있는 작품이다.
원로 화가 김숙진(金叔鎭, 1931~)은 홍익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모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분으로 국전 문공부장관상, 예술원상을 수상한 관록의 화가다. 1호의 이 조그만 그림 속에는 ‘이상향(理想鄕)’이 꽉 차 있다. 바다 혹은 강가에 복숭아나무가 줄기를 늘어뜨리고, 사이사이에 분홍빛 복숭아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파란 물 위 하늘은 오색 빛으로 휘황하고 꼬리에 초승달과 보름달을 매단 새 두 마리가 힘차게 날고 있다. 덧없는 세월의 여정이 물결 따라 느리게 지나간다. 이 작품은 온라인 경매 당시 작가를 잘 인지하지 못해 입찰자 없이 15만원에 낙찰받았다.
한 포기의 히아신스를 맑고 투명한 수채로 그린 홍종명(洪鍾鳴, 1922~2004)은 평양에서 출생,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제주도를 근거지로 활발한 미술활동을 한 분이다. 특히 문명세계를 초월하는 시원(始原)을 향한 그리움과 두고 온 고향, 평양에 대한 향수를 승화시킨 시리즈와 시리즈의 작품들은 이분의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2호 사이즈의 이 수채화는 8만원에 낙찰받았다.
이렇듯 예술성과 인생의 경륜이 조화된 원로 화가의 작품 석 점과 집 안 어느 공간에 두고 봐도 좋을 장미꽃 소반, 서각 명인의 공예품을 모두 118만원에 구입했다. 예술작품을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모순이다. 미술품을 바라보고 애호하고 한두 점씩 수집하면서 겪게 되는 개개인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술품에는 예술가의 푸른 영혼이 깃들어 있어, 정서를 함양하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미술품 수집은 30만원에서 시작하되 50만원, 100만원으로 상향한다. 그 안에서도 언제든 빼어난 명품을 만날 수 있다. 부지런히 화랑가와 미술품 경매 현장을 드나들고 꼼꼼히 살피어 예향(藝香)에 젖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