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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나도 치매?" 美 환자가 느꼈던 징후들
- 나이가 들수록 깜빡깜빡하게 되고 인지 능력 등이 떨어지며 ‘혹시 내가 치매인가?’라고 의심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혹여 진짜 치매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실제 치매 환자 4명이 자신의 질환을 인지하고 인정하까지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네 사람은 “무엇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의 치매를 의심하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그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담아봤다. “왜 갑자기 멍해지고 둔해졌지?”(Deb Jobe, 56세) 고객서비스관리자로 일하던 뎁은 평소 하던 일이 어렵게 느껴졌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당시 50대 초반이던 그녀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멍하니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했다. 초반에 그녀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인 존 역시 그녀가 대화를 되풀이하고 기억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심상찮음을 직감했다. 결국 존의 권유로 그들은 병원을 찾았다. 뎁의 경우, 종종 일부 폐경 여성에게 나타나는 ‘브레인 포그’ 증상과 유사했지만 주치의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밀 검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스캔 검사 결과, 뎁은 공간 지각, 시각 처리, 계산 등을 담당하는 뇌에 영향을 미치는 희귀한 형태의 알츠하이머병인 ‘후피질 위축증’(PCA)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당시 했던 몇몇 검사 과정은 잊었지만, 진료실에서 최종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세상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속이 쓰라리고 울렁거리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라며 실감했다.” 그녀는 처음 6개월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막막했다.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된 친구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현재 뎁은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의 초기 단계 자문 그룹(Early-Stage Advisory Group)의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알츠하이머 협회가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치료와 더불어 내가 기대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고, 수표에 ‘0’을 하나 더한 적도 있지만, 치매는 그녀의 삶에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선사했다. 바로 예술적 능력이다. 뎁은 성인용 컬러링북을 시작으로 최근 더욱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스케치 작업도 하고 있다. 스스로 “얼마나 매혹적인 작품인가?”라고 감탄할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로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이들에게 당부한다. “조기 발견이 핵심이다. 이상 증상이 있을 때 꼭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라. 자칫 이 시기를 놓친다면 당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몇 년을 허비할 지도 모른다.” “그게 뭐더라? 그 단어가 생각 안 나.” (Clare Sulgit, 51세) 목사였던 클레어는 발병 초기 이상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들조차 그녀의 질환을 확진하지 못했다. 알츠하이머 협회에 따르면, 65세 미만 미국인 200만 명이 초기 검사에서 알츠하이머 확진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PET 스캔 등의 검사를 받고 난 뒤 올해 1월 51세 나이에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 장애 진단을 받았다. 클레어는 이상 증상을 느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지난 해 여름, 내가 원하는 단어를 찾아 말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가끔 혼란을 느꼈는데, 내겐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의식해 몇 번 의사와의 면담도 잡았지만, 이내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라 여기고 일정을 취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어 역시 아버지와 같은 ‘전두측두엽 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 진단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클레어는 “인생은 여전히 좋다. 나는 평생 치료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살아갈 이유가 많고, 사는 동안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길 희망한다”며 “목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믿음은 위안과 희망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최근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의 록펠러 신경과학 연구소의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새로운 의학적 치료를 받으며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길 바라는 한편,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치매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알파벳 K를 알지만… 어떻게 쓰더라?” (Daniel Miller, 59세) 조달분석가였던 다니엘은 은퇴 후 타이핑 작업에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난독증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주치의마저도 나이가 들며 발생하는 관절염 정도라 일축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한마디에 의사의 표정은 달라졌다. “알파벳 K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겠다. 또 K를 보면 그것이 K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K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 의사는 MRI(자기공명영상검사) 전문의에게 그를 보냈고, 결국 알츠하이머병의 하나인 ‘후피질 위축증’(PCA)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운전을 멈춰야 했다. 아내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해졌다. 다니엘은 이러한 일상의 변화를 ‘독립의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자신을 향한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알츠하이머의 단서를 찾았던 경험에서 비롯해 그는 당부한다. “자신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단호하게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진다면 병원 방문을 미루지 말라. 또, 의사를 만난다면 그런 자신의 상황을 가능한 한 아주 자세히 설명하라.” “왜 내가 엉뚱한 공항에 왔지?” (Bart Brammer, 72세) 자동차 제조업 30년 경력의 바트는 잦은 출장 업무로 보통 일주일에 3곳 정도 타 지역에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날짜, 호텔, 렌터카, 비행기 등 주요 정보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공항에 도착해있는가 하면, 예정된 일정보다 하루 일찍 나타나는 등 그 증상이 심각했음에도 그는 곧장 의사에게 가지 않았다. 그저 바쁜 일정 탓에 잠시 헷갈렸거나 스트레스가 과해 벌어진 일 정도로 여긴 것. 그러던 중 70세가 되던 해 뇌졸중을 앓게 됐고, 회복하던 중 말을 더듬거나 기억력이 감퇴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단순 뇌졸중 후유증으로 간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치의가 관련 검사를 진행했고, 바트에게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매 진단 후 그는 공허함이 컸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슬펐다. 가령 누군가 내년 7월 4일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것. 그는 “내가 그때는 그 사람 주변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자신의 상태를 비밀로 했는데, 치매 환자로 낙인찍힌 삶에 대한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홀로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 없었다. 결국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공유했고, 그 후로부터 삶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과거 치매를 앓기 전 그는 줄곧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다음은 무엇인가? 다음에 무엇을 할까? 다음에 어디를 갈까?” 그러나 이제 그런 질문은 불필요해졌음을 느낀다. 대신 “오늘을 위해 산다. 나는 그 순간에 있다”라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 2022-05-3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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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중장년의 '역지사지'
-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흔히 나누던 인사가 귀한 말이라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기에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로 넘쳐나도 우리 집은 무사하겠거니 안심했나 봅니다. 번갈아 가며 식구들이 확진되고, 자가격리 이후 일상 회복까지 몸소 겪으면서 그동안 확진 당사자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합니다. 이 심정을 담아 마음 미장공 다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그러십니다. 너도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요. 엄마의 엄마는 또 그러셨습니다. 너도 시집 가서 꼭 너 같은 새끼 더도 말고 하나만 낳아서 키워보라고. 그래야 엄마 맘을 알 테니까요. 부모 속 썩이던 그때는 모르던 것을 자식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고 나서야 아 그랬지 하고 겨우 알아차립니다. 깻잎 논쟁과 역지사지 몇 년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들려준 중년 가수 부부의 이야기가 일파만파 세대 불문 연일 화제였습니다. 부부와 아내 후배가 같이한 식사 자리. 하필이면 깻잎장아찌를 먹으려는 아내 후배. 때마침 붙어 있는 깻잎.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으로 떼어주는 남편. 사건 자체는 간단한데 논쟁은 그칠 줄 모릅니다. 김 여사 남편 역시 그게 왜 화낼 일이냐고 되묻습니다. 이때다 싶어 김 여사는 예를 들어 조곤조곤 설명합니다. “여보, 한번 상상해봐요. 우리 부부랑 당신 남자 후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후배랑 셋이 밥을 먹어요. 한창 당신이 신나게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그 후배란 녀석이 내가 쩔쩔매는 깻잎장아찌를 무심히 툭 떼어주는 거예요. 젓가락질 서툰 나를 지켜봤던 거지. 어때요, 기분이?” 입장을 바꾸자 바로 불쾌해진 남편. “그건 절대 안 되지!” 역지사지, 참 쉽죠? 식사 속도로 보는 역지사지 실험 그런데 역지사지하는 게 정말 쉬울까요? 이 실험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과 천천히 먹는 사람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아니면 연인, 친구, 동료까지. 얼마 전 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되어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식사 속도 문제. 일주일을 정해서 평소와 반대로 해보면 됩니다. 씹는 건지 삼키는 건지 모를 만큼 빨리 먹는 사람은 천천히, 밥알이든 맹물이든 꼭꼭 씹어 먹는 사람은 꿀떡 삼키듯 빨리. 식습관을 바꿔 해보는데, 보통 일주일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루 세 끼면 실험 효과는 충분합니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니까요. 그만큼 남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에 분명합니다. 바꿀 역(易)에 숨어 있는 비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서 ‘역지사지’ 뜻을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핵심은 바꿀 역(易)에 있습니다. 역(易)의 아랫부분인 말 물(勿)의 갑골문에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무언가를 쏟아내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담는 게 역지사지의 바탕입니다. 바꿀 역, 쉬울 이로 읽히는 이 글자(易)가 나아가서는 고치다, 새로워지다, 평안하다, 편안하다, 기쁘다, 기뻐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지(地)는 내가 딛고 있는 땅, 처지, 형편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思)는 뇌(腦)를 상징하는 밭 전(田)과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로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 지(之)는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나타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자원(字源)에 따라 풀어보겠습니다. 내 그릇을 비우고, 상대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당신에 대한 오해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고집이나 아집을 비우고,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는 것입니다. 맑고 깨끗해진 내 그릇에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깊은 뜻이 아닐까요. 술과 개는 나의 스승 ‘혼자 술 마시는 여자’라는 수필집을 낼 만큼 술을 사랑하던 제가 술을 끊은 경험도 애주가 입장과 그 반대 입장 모두 헤아릴 수 있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제가 ‘벼리’라는 푸들을 15년 가까이 키우면서 혐오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酒)님과 개님은 제게 역지사지를 뼈저리게 깨우쳐준 특별한 스승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게 되지 않아서 엄청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또 우리 인간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다툽니다. 아내와 남편이, 부모와 자식이, 형제자매가, 친구와 동료가, 손님과 주인이. 비단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사회, 국가 간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역지사지는 머리와 가슴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생각이나 입장에 서봐야 합니다. 나 좋을 대로 띄엄띄엄 아는 게 아니라 충분히, 제대로, 정성스레 헤아리는 것입니다. 역지사지 반대말은? 반대말을 살펴보기 전에 역지사지로 사행시 한번 지어볼까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합니다. 운을 띄워주세요! 역 - 역으로 지 - 지랄을 해줘야 사 - 사람들이 지 - 지 일인 줄을 안다 역 - 역으로 지 - 지랄해야 사 - 사람은 지 -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 진상을 부리는 고객이나 조직에서 갑질을 하는 상사에게 반대 자리에 서보라고 합니다. 그제야 겨우 자신이 저질렀던 지랄(갑질, 진상)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정서적·신체적 학대와 폭력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로 역지사지가 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희망적인 부류이긴 합니다. 안타깝게도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을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라 미화하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비난)이라고 합니다. 이제 뇌 영역별로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일 때 어떤 감정과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역지사지’하려면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처지에 자신을 놓는 감정이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고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때로는 후회로 마음이 아프고 회한도 몰려옵니다. 철딱서니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화해와 포옹으로 웃음을 되찾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로 가는 과정입니다. 갈등의 골을 사랑으로 메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내로남불’은 자기만 앞세우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왜곡된 이중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와 의견에 날을 잔뜩 세우고 방어와 공격에 주력하느라 안절부절못합니다. 세 번째 시즌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TV조선)에 나오는 등장인물 면면이 특히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의 전형이랄 수 있습니다. 아내 몰래 새로운 연인을 만나 이혼한 남자. 전처가 자기보다 어리고 능력 있는 연인을 만나자 질투와 분노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변명과 핑계는 기본에다 갈등 유발자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로지 내 편인지만 가리는 피아식별(彼我識別)에 혈안이 되어, 적이라 여기면 온갖 편법과 꼼수로 심술을 부리고 해코지하기에 급급합니다. 편안함과 기쁨을 되찾는 역지사지 지금 어떤 상처나 고통 속에 계십니까? 상대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결국은 내 마음이 편안하고 기뻐지는 것이 역지사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로 나, 내가 편안하고 기뻐야 내 주변과 상대도 편안하고 기뻐합니다. 인간관계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먼저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먹으면 어느 순간 그 사람도 내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역지사지는 동심(同心),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이 같은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이 역지사지의 좋은 목표, 도달점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로남불로만 산다면 역지사지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내 마음 그릇에 고인 물은 봄비에 흘려버리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공감하면서 보내면 어떨까요.
- 2022-05-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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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광고’에 젖어볼까… 전시 ‘광고, 세상을 향한 고백’
- 중장년층이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한다. ‘광고’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읽는 전시 ‘광고, 세상을 향한 고백(告白)’이다. 대중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광고는 그 시대의 소비문화, 유행 등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우리나라는 광고 문화가 특히 발달했다. 30초짜리 광고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문화를 주도했고, 세월이 지나도 광고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광고, 세상을 향한 고백’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광고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전시다. ‘고백’은 우리말로 ‘아룀’으로 우리나라에서 ‘광고’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이전에 사용된 용어다. 이 전시의 특별한 점은 ‘실감형 영상전시’라는 점이다. 전시는 아나몰픽 기법(특정 지점에서 착시효과로 입체감을 극대화하는 기법)을 활용했다. 벽면과 미디어 큐브 기둥에 영상을 투사해 광고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 1부와 2부 전시가 진행 중인데, 각각 상영 시간이 7분으로 소개돼 있다. 실감형 영상 전시이기 때문에 전시는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과거를 추억하면서 전시를 관람하게 되기 때문에 전시 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정도다. 먼저 전시 1부는 ‘광고합니다’로 광고에 담긴 시대별 소비문화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첫 번째 근대와 신문물 시대는 개항기 때로 광고를 보면 신문물의 도입과 함께 의약품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 국산 소화제 활명수 광고가 많았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당시 양복, 화장품, 조미료 등 소위 근대문물의 광고는 식민지의 소비 욕망을 자극했다. 1920~30년대에 외국의 영향을 받아 유행한 화려한 패션과 스타일 등을 광고를 통해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두 번째 광복과 재건 시대는 1950~60년대를 말한다. 광복과 6⸱25전쟁을 경험한 후 일상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최초의 국산 치약 광고가 나왔으며, 라면은 영양식품으로 소개됐다. 본격적으로 광고가 대중에게 친숙해진 때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1970년대에는 아파트의 대중적 보급으로 주거환경이 변화하면서 가전제품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라는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강조했다. 1970년대 말, 국산 자동차 광고는 당시에 유행하던 ‘마이 카(My Car)’ 문구로 샐러리맨의 욕망을 부추겼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초 광고는 개인·개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소비와 유행에 민감한 신세대의 문화가 반영됐다. 패션과 화장품, 삐삐와 휴대폰과 같은 품목들은 단순히 제품이 아닌 문화를 소비한다는 전략으로 신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 1990년 후반 신세대의 관심은 인터넷이 만든 사이버공간으로 옮겨졌고, 초기 인터넷 광고와 이동 통신 광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특히 1990년대 광고가 현재의 중장년층에게 익숙해서 반가움을 산다. 타키온, 걸리버 등 추억의 휴대폰 광고들이 등장한다. “같이 들을까?”로 유명한 SKY 광고도 나와 눈길을 끈다. 2부 전시 제목은 ‘그래, 이 맛이야!’로 시기별 식품 광고를 통해 대중의 음식 소비문화를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조미료 광고, 광복과 6·25 전쟁 이후에는 밀가루 광고가 많이 등장했다. 밀가루가 영양가가 높고 여러 용도로 활용 가능한 재료임을 알리는 데 광고의 초점이 맞춰졌다. 설탕과 분유는 영양식품으로 소개됐다. 1960년대는 밀가루 식품 광고가 본격화된다.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으로 밀가루 식품이 우리 식생활의 주류가 됐기 때문. 특히 국수와 국수 기계 광고 등에 혼분식장려 문구가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초 출시된 라면은 당시 혁명적인 식품으로 주목받았고, 카레라이스가 쌀의 대용식으로 떠올랐다. 1970~80년대는 경제성장과 함께 식료품의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조미료⸱제과⸱통조림과 같은 품목들이 가정의 식탁을 차지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CM송이 크게 유행했다. 오란씨, 롯데 껌, 브라보콘 CF 등이 이에 해당한다. CM송이 유행하면서 광고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광고 문화는 더욱 발전했다. 이어 서울올림픽(1988)과 해외여행완전자유화(1989)를 거치며 외국문화와 외식이 유행했다. 점차 선진국의 식생활과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추구함에 따라, 패스트푸드⸱베이커리⸱패밀리레스토랑 등의 외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국내 식품기업의 해외 진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의 음식도 세계 속에 확산되고 있다. 한편, 3부와 4부는 올 하반기 공개된다. 3부 '참 곱기도 하구나'는 패션과 화장품 광고, 4부 '기적인가 기술인가'는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은 전자제품 광고에 주목한다. 전시가 열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광화문 역 인근에 위치한다. 광화문 일대로 나들이를 갈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들러 추억 여행에 빠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 2022-05-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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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꾸리가 가져온 성공 귀촌 "늘 웃고 살아"
- 삶을 괴롭히는 요인이 한둘일까. 분명한 건 무슨 마귀가 우리를 함정에 밀어 넣는 건 아닐 거라는 점이다. 알고 보면 다 ‘내 탓’이지 않던가. 나를 밝은 쪽으로 데려가면 밝은 길이 열린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농부인 임채성(53, ‘순정씨네농장’ 대표)의 행장을 보면 ‘밝은 마음’이야말로 예찬할 만한 기풍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다소 기이한 종족이다. 농사로는 죽을 쑨 경험이 즐비하지만, 그의 영혼은 말짱해 방금 전 엄청 좋은 일이 생긴 사람처럼 웃고 사는 게 아닌가. 농사 실적으로 보자면 고뇌로 찌든 표정이 고여야 마땅할 안면에 재미있어 견딜 수 없다는 투의 웃음기가 정착해 차라리 신비할 지경이다. 임채성은 서울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하다 남원시 보절면 시골로 내려갔다. 귀농 제안에 반기를 든 동갑내기 아내 경순정을 어렵사리 회유해 대동하고서였다. 귀농 이유는 서울 생활에 진절머리가 나서였다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봉제공장을 다니며 밥벌이를 시작한 이래 갖가지 애환을 섭렵했던 게 아닌가. ‘아이고, 더 늦기 전에 서울을 떠나자! 한적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겨보자!’ 시골살이에 대한 오랜 동경을 더는 억누를 수 없어 서울 생활을 청산했던 거다. 여기 남원의 농촌을 귀농지로 선택한 건 일찍 작고한 형의 유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즉 귀농의 꿈도 이루고, 아울러 형수와 어린 조카들을 돌보는 일에서도 성과를 거두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 그는 후자의 목적만큼은 마침내 달성했다. 하지만 농사는 애석하게도 갈팡질팡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농사라는 게 실로 어렵더라. 뭐 하나 똑떨어지게 되는 게 없었다. 지난 7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꼴이다.(웃음)” 농사처럼 힘겨운 직업이 드물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7년이 통째 허송세월이었다? 아예 손을 놓고 지냈다는 얘기인가? “해볼 건 다 해봤다. 7년간 매달렸던 작물의 종류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거든. 오디 농사를 필두로 상추, 양파, 감자, 참깨, 포도 등등 갖가지 작물들을 차례로 편력했지만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귀농 첫해에 매입한 600평 규모의 하우스 오디농장에서 나온 연매출 1200만 원이 그간의 유일한 수입다운 수입이었다.(웃음) 그 오디 농사마저 바로 접은 건 연중 생산이 가능한 작목으로 활로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그마저 여의치 않더라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했으나 기술력, 마케팅 능력, 판로 등에 한계가 있어 자립하기 힘들더라. 나는 귀농 전에 별다른 준비나 구체적인 구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시골에 뛰어들었다. 이런 내게 돌아오는 건 매번 형태가 다른 난관이었을 뿐이다.” 준비 없는 귀농은 필패의 필살기가 아닌가? 농사 준비는 없었을망정 뭔가 믿었던 건 있었겠지? “시골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자신감. 내겐 그런 게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건 일단 내려가서 생각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귀농이었다. 물론 귀농 이후엔 최선을 다했다. 귀농기관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농가들 견학을 했으며, 내 농사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농사 또는 귀농 생활을 환상적으로 판단하진 않았을 테지만, 농업을 만만하게 봤던 건 아닌지? “뭘 모르면 더 용감하다지 않던가?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농사 물정에 어두운 채 무작정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대차게 덤벼들었으니까. 고백하자면 난 꽤나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 산에도 놀러 가고, 호박전을 부쳐 이웃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술을 즐기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농사를 짓는 나날을 머리에 밑그림으로 그려뒀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특히 내가 아무리 땀을 쏟아도 마땅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게 농사더라.” 텃세에 마을을 떠날 생각도 했지만 임채성은 농사와 더불어 인생의 오후를 유쾌하게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예단했던 셈이다. 하지만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은 없다. 농업은 더구나 용을 쓰고 진을 빼야만 지속이 가능한 직종이다. 그는 귀농 이후 상당한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농업의 실상을 인식하고 정신을 번쩍 차렸던 것 같다. 그러나 성과가 돌아오지 않기는 매한가지. 뭐랄까, 터무니없을 지경의 근면과 노동을 퍼부어도 농사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기차게 뚫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자 생계 문제가 화급해졌다. 이쯤에서 그는 농외소득 획득을 위해 뭐든 돈 될 만한 일을 찾아 밖으로 내달렸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노가다’를 뛰어 일당을 받았고, 양계장 일용직이나 산불감시원, 환경미화작업원 등으로 참여해 수입을 얻었다. 이런 생활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농사와 부업을 병행하는 거다. 사실상 농사보다 부업으로 올리는 수입이 더 많다. 아내는 요양보호사 일로 힘을 보태고 있고.”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무난한가? 흔히 텃세에 고심하던데. “농촌의 보수성은 보편적인 것이겠지만 이 지역은 좀 유난한 편이다.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더라. 이 마을엔 젊은이는 물론 귀농인도 드물다. 때문에 어르신들 중심의 폐쇄적 풍토가 한결 단단하게 고착, 유지되고 있다. 텃세를 일부러 부릴 리야 없겠지. 다만 일부 노인들께선 외지인에게 본능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느끼는 것 같더군. 나에게 대놓고 ‘당신은 아직 동네 사람이 아니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웃음)” 원주민의 불합리한 태도를 일단 너그럽게 포용하는 게 소통의 지름길이려나? 마을에 귀농인 하나가 등장하면 원주민들은 무대에 오른 배우를 주시하듯 은근히 면밀하게 지켜보게 마련이다. 저 외지인이 혹시 마을에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닐까 염려하며. 실제로 귀농인의 모난 처신이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난 서울에서 수십 년간 자영업을 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엔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지. 그러나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일부 주민들 앞에선 대책이 안 서더라. 오죽하면 동네를 떠날 생각까지 했겠나?” 결과적으로 그냥 눌러앉은 이유는 무엇인가? “마을 이장님이 극구 붙잡아서였다. 사실 일부 주민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한 사이로 지낸다. 여하튼 텃세 문제는 만만한 게 아니다. 충분히 마음을 다해도, 충분히 베풀어도 냉대를 당할 수 있으니까. 귀농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이 대목을 가장 심각하게 고려하라 말하고 싶다. 덜커덕 경솔하게 귀농 지역을 정하는 건 위험하다. 사전에 마을의 풍토를 제대로 파악해두는 게 좋겠다.” 미꾸리 양식으로 마침내 활로를 찾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꾸리 사업 역시 만만치 않아 홍역을 치렀다. 양식 개시 후 2년간은 매출이 거의 없었으니까.” 저런! 어쩌다 그런 일이? “대부분 폐사하고 말았다. 전문 농가에 문의했더니 미꾸리들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결국 양식 기술이 미숙했던 셈이지. 수질과 수온을 노련하게 관리하며 미꾸리들의 건강을 보살펴야 하는데 그게 부실했다.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결국 귀농 7년간 제대로 풀려나간 농사가 하나도 없었구나. 그럼에도 당신의 분위기는 밝고 의기양양하다. 수심이 깊어야 정상 아닌가?(웃음) “하하하! 이거 아시나? 농사 성적은 초라해 7년을 허송세월한 꼴이지만 나에게 농사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걸. 작물을 심어 성장하고 결실 맺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참으로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 농사라는 생각을 할 때에도 만족을 느낀다. 서울에서 장사할 때는 못 느꼈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기도 한다. 허리병도 생기고, 돈에 쩔쩔맬망정 농사가 재미있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낙천성이라는 정신적 체력 임채성의 농사 실적은 시원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암담할 지경으로 바닥에서 맴돌고 있다. 농땡이를 부리는 법 없이 노동력을 쏟고 공을 들였으나 현실이 그렇다. 그러나 그는 주눅 들기는커녕 그늘 없이 밝고 어디까지나 유유하다. 농사일이 노는 일보다 재미가 있다 하니 진정한 농사의 달인? 예사롭지 않은 개성의 소유자다. 농사 대신 일용직 근로로 생활비를 벌어 가족을 먹여살려 왔다는 점에서는 투철한 책임감을 장착한 인물이다. 단연 특별한 그의 미덕은 가혹한 세속 사회에서 보기 드문 도도한 낙천성에 있다. “‘당신은 도대체 왜 맨날 웃으며 살지? 그토록 밝은 에너지를 가졌으면서 농사는 왜 이렇게 부진하지?’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그렇다. 아내의 불안감을 이해하지만 난처한 상황에 처해도 내겐 별 괴로움이 없다. 긍정과 낙관으로 넘어서면 그만이라 생각하거든. 인생사 뭐든 이왕이면 즐기는 쪽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나?(웃음)” 지나친 낙관이 오히려 더 큰 난관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데? “준비가 없었던 데다 즉흥적으로 작목을 선정해 고난이 많았다. 그 모든 과정이 비싼 수업료를 치른 공부였다. 최근 나는 미꾸리를 비로소 본격 출하하기 시작했다. 곤달비를 넣은 미꾸리 추어탕 팩도 곧 시장에 나갈 것이고. 방향성이 잡힌 셈이다. 드디어 서광이 비친다는 거!” 아내 경순정에 따르면, 임채성의 낙천성과 긍정의 기질은 귀농 이후 한결 성장해 요즘은 무한긍정으로 치닫는단다. 그건 농사의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 희망을 발견한 조짐으로 보인다는 것이고. 임채성이 믿는 건 시퍼런 결기 같은 게 아니다. 낙천성이라는 정신적 체력이다. 이제 그는 마침내 어두운 터널의 끝에 이르렀다 자평하고 있다. 헛바퀴 돌던 날들과는 드디어 작별인가? 임채성 씨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자. 무작정 뛰어드는 건 그지없이 위험하다. 무엇보다 작물들에 관한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작목 선정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 수익은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라. 귀농인의 몸이 농사 체질로 바뀌는 데에만 2, 3년이 걸린다. •귀농 지역을 신중을 기해 선정하자. 마을의 인심과 문화, 농업의 현황 등을 미리 파악하라. 가급적 잠시 살아보고 결정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농토를 매입할 때 토질과 지가 외에 주a변 변수까지 고려하라. 인근에 태양광단지 같은 게 조성될 수도 있으니까.
- 2022-05-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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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처럼 화려해" 4월 문화 소식
- ●Exhibition ◇박래현, 사색세계 일정 4월 23일까지 장소 아트조선스페이스 “수많은 장벽에 부닥치고 가혹한 시련 앞에 몸부림치며 이를 넘길 수 있는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존의 권리… 봄이라는 뽀얀 계절은 때때로 나를 이런 부질없는 사색세계에 몰아버린다.” 한국 근대 화단의 대표 여성 미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 1959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하며 에세이 ‘봄이면 생각나는 일, 삶과 마주 섰던 계절’을 함께 기고했다. 에세이의 한 구절인 ‘사색세계’가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됐다. 에세이에서 그녀는 지난 몇 년간의 봄을 상기하며 식민국가의 운명 속에서 마음의 어두운 흔적과 불안한 감정을 더듬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봄은 아름다웠다고 술회했다. ‘박래현, 사색세계’ 전시는 ‘생동하다’,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1, 2부를 나누어 그녀의 작품세계를 돌아본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대적인 회고전 이후 선보이는 첫 전시로, 초기 대작부터 대표적인 추상 연작, 그리고 미공개 작품까지 80여 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아내로,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보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여류라는 굴레를 넘어 한국화의 현대화를 개척한 박래현을 만나볼 수 있다. ◇사빈 모리츠 : RAGING MOON 일정 4월 24일까지 장소 갤러리 현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일 여성 화가 사빈 모리츠(53)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사빈 모리츠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추상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작가다. 독일 추상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회화, 에칭 연작 등 50여 점을 소개한다. 동독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는 2015년부터 추상 회화로 ‘정신적 풍경’을 다뤘다. 과감한 붓질과 풍성한 색채로 완성된 매혹적인 추상의 이미지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Book ◇백만장자와 승려(비보르 쿠마르 싱·다산초당) 사찰을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존경받는 승려와 고급 호텔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해온 백만장자가 있다. 백만장자는 물질의 정점에, 승려는 정신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이 호텔에서 21일간 함께 머물며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간소한 삶은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다”, “명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라”,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등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넘나든다. 백만장자와 승려가 서로 배우며 깨닫는 인생의 본질을 통해 독자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비보르 쿠마르 싱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인도의 전통 명문인 셔우드대학과 스리람상경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재무회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금융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는 물질적 풍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 있는 삶이 주는 정신적 행복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맞추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행복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책은 인도에서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2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자가 아니라서, 마음이 공허해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책이다. ◇울다가 웃었다(김영철·김영사)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DJ이자 코미디언, 김영철의 웃픈 휴먼 에세이다. 그는 “나의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라고 고백하며 가족, 일상, 방송담을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깨달은 ‘웃음과 울음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페스트의 밤(오르한 파묵·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5년간 매진해 써낸 신작. 코로나 이후 최초의 팬데믹 소설로 역사소설에 미스터리를 결합했다. 소설은 1901년 오스만제국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며, 페스트로 인한 종교적·정치적 분열을 그린다. ◇쓸모 있는 음악책(마르쿠스 헨리크·웨일북) 저자는 독일에서 독창적인 음악 테라피를 통해 대중의 고민을 해결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왔다. 그는 음악을 제대로 들으면 더 나은 일상을 꾸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뇌 기능 활성, 창의력과 영감 자극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Stage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데스노트’는 2022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뮤지컬로,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던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이름을 쓰면 죽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전 세계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과 맞서게 된다. 각자의 정의를 위한 라이토와 엘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긴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갈등과 대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팝스러운 넘버가 시너지를 더해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번 시즌은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작품의 고유한 매력과 더불어 더욱 긴장감 넘치는 연출, 디테일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무대로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여기에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역대급 라인업을 자랑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몬드 일정 4월 2일 ~ 5월 1일 장소 코엑스아티움 연출 김태형 출연 문태유, 홍승안, 이해준, 조환지, 임찬민, 송영미, 김선경, 오진영, 유보영, 김태한 등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해외 20개국 출간, 국내 판매 90만 부를 돌파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동명의 소설(손원평 저)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월 뮤지컬 개막 소식이 알려진 후 202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아몬드’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광주 일정 4월 15일 ~ 5월 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이지훈, 조휘, 정동화,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효은, 최지혜 등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님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는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광주’는 2020년 초연됐으며, 2년간 공연 횟수만 총 74회, 관람객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 뉴욕 진출도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컬이자 아시아의 ‘레미제라블’로 극찬받고 있다.
- 2022-04-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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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삶이 풍요로워지는 신간!
- 백만장자와 승려 비보르 쿠마르 싱·다산초당 각각 물질과 정신의 정점에 있는 백만장자와 승려, 두 사람이 호텔에서 21일간 함께 머물며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극과 극의 두 사람의 대화는 행복한 삶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울다가 웃었다 김영철·김영사 “나의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라고 고백하며 가족, 일상, 방송담을 풀어놓은 코미디언 김영철. 그는 ‘웃음과 울음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5년간 매진해 써낸 신작. 역사소설에 미스터리를 결합했다. 소설은 1901년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며, 페스트로 인한 종교적·정치적 분열을 그린다. 쓸모 있는 음악책 마르쿠스 헨리크·웨일북 저자는 독일에서 독창적인 음악 테라피를 통해 대중의 고민을 해결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왔다. 음악을 제대로 들으면 더 나은 일상을 꾸릴 수 있다며 방법을 알려준다.
- 2022-04-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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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외로움에 대하여
- 또 시작이다 - 연결되기 싫다가 연결되고 싶다가 알아주기 싫다가 알아주고 싶다가 전화하기 싫다가 전화하고 싶다가 이해하기 싫다가 이해하고 싶다가 안아주기 싫다가 안아주고 싶다가 글 올리기 싫다가 글 올리고 싶다가 몇 해 전 제가 SNS에 올렸던 글로, 마음 미장공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까? 확실합니까? 암요, 당연하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관심받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예, 맞습니다. 외로움과 관종 사이 : 시선의 감옥 “세상에는 큰 관종과 작은 관종, 그리고 자신은 아니라고 우기는 관종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종 중의 관종입니다.” 스스로를 ‘관종’이라 고백한 제게 어떤 분은 자신을 ‘관종인 듯, 관종 아닌, 관종 같은 관종’이라고 유행가 가사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관심종자’(關心種字)라는 말을 줄여서 흔히 ‘관종’이라고 말합니다.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병적인 상태에 이른 사람을 부르는 이 말이 처음에는 비하나 조롱을 의도했다면, 요즘에는 누구나 내면에 갖고 있는 당연하고 정상적인 욕구나 욕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로 관종이라고 놀리거나 흔쾌히 관종임을 인정하며 웃음바다를 만드는 장면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머리를 자르거나, 평소에 안 입던 치마를 입거나, 염색을 하거나, 또는 인터넷에 글을 새로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 마음일까요?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친구 수도 훨씬 많고, 좋아요 같은 공감 숫자가 몇 배, 몇 십 배 많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이 샘솟고, 자신을 탓하고 자학하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빠집니다. 외로워서, 연결되고 싶어서, 관계를 맺으려고 시작한 그런 행위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위축시킵니다. 관심을 받고, 공감을 얻고, 위로와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한 일에서 정작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고, 살아 있는 유령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타인이라는 ‘시선(視線)의 감옥’에서 우리는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 뭔가를 바꾸고, 새로 꾸미고, 주저리주저리 자기 담벼락이든, 남의 공간이든, 심지어 뉴스 기사 댓글로라도 답을 달면서 도대체 왜 이러고 살까요? 외로움은 디폴트다! 바로 외로움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미치도록 외로운 탓입니다.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우리는 외로움을 디폴트(Default)로 살아갑니다. ‘채무 불이행’을 뜻하는 경제용어가 아니라, 여기서는 컴퓨터 사용할 때 시스템이 자동으로 적용하는 미리 정해진 값이나 조건을 말합니다. 인간인 이상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기에 외로움은 디폴트요, 미리 정해진 운명 같은 상수(常數)라 하겠습니다. 몇 해 전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유명 연기자가 세상을 등졌는데, 그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에서 연예인으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외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외로움의 끝은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기와 명예, 사랑을 받았던 사람도 이 넓은 세상에 내 편이 한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에 질식되고 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느낄 때 실제로 우리 뇌에서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내 영혼과 육신을 갉아먹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로움을 대하는 법 수선화에게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중에서 시인 정호승이 노래한 수선화의 외로움은 뭘까 생각해봅니다. 그 수선화가 우리 인간일 테니까요.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린 나르시스가 결국 물속에 몸을 던지고 그 뒤 피어난 꽃이 수선화입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는 방법은 외로움을 뛰어넘어 극복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외로움에 골몰하다가 접한 이 시에서 저는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현대 인류는 나르시스로 상징되는 자기애(自己愛, Narcissism)가 결핍되었기에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것은 아닐까요. 정신분석학 용어인 자기애는 크게 병적인 인격 장애와 건강한 나르시시즘으로 구분됩니다. 외로움 처방전으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건강한 자기애를 말합니다. 이것은 ‘고독’이란 말과 긴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가요? 우리는 어렸을 때 특히 사춘기에 인생에 대해 심오한 뭔가를 깨달은 양, 멋을 부리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너 뭐하고 있어?” 이렇게 동무가 물을라치면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 “짜식, 나 고독을 씹고 있지” 이렇게 대답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이자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음을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혼자 있는 고통이 외로움(Loneliness)이라면, 스스로 택한 혼자됨의 즐거움이 고독(Solitude)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상실에서 비롯되기에 필연적으로 빈 가슴이 됩니다. 친구나 연인, 팬, 지지자 등 잃어버린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하는데도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소외가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타인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홀로 두는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내가 원해서 확보한 시간을 내 의지로 채우는 즐거움이 고독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상태인지, 즉 ‘자발적’인지 아닌지가 외로움과 고독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결국 (외로움을) 피할 수 없으면 (고독으로) 즐겨야겠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행복하기 위해 말입니다. 법정 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역설한 것도 외로움보다는 고독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태어날 때, 세상을 뜰 때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지만, 그러면서도 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바로 우리지만 홀로 있을 때 진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자기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고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시, 그림, 음악 같은 예술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처절한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꾼 데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괴테가 말한 것처럼요.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외로움과 고독을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철학적·심리학적·실존적으로 구분될 뿐입니다. 앞의 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안고 살아야 하는 외로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떠오를 거라 믿습니다. 자발적 고독은 나에 대한 사랑 바야흐로 혼술, 혼밥, 혼영(혼자 영화 보기) 등 뭐든 혼자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우리 인류는 더욱더 혼자 먹고, 혼자 마시고, 혼자 놀고, 혼자 여행하는 ‘호모 얼로니우스’(Homo Aloneus, 외로운 인간)가 되어갑니다. 이제 외로움을 넘어 스스로 존재가 환하게 빛나는 ‘홀로움’, 참다운 고독을 맞이할 때입니다. 타인에게 휘둘리는 ‘시선의 감옥’에 갇혀 있는 외로운 나를 구원해야 합니다. 허공에 부딪혀 흩어지는 자조 섞인 독백 대신 ‘내면의 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방치하고 무심했던 ‘진짜 나’에게 말을 걸어보십시오. 많이 기다렸다고, 어서 오라고, 그때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너를 지켜보며 사랑할 거라고 얘기해줄 것입니다. 내 삶의 노예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주인으로 당당히 우뚝 서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 같이 하실까요? 외로움에 발 벗고 나선 영국과 일본 2018년 영국 정부는 한발 앞서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 엄밀히는 외로움부)를 만들고, 다양한 캠페인과 가이드라인을 두어 민관이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국가적 과제로 삼아 대응한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소외, 고립은 우울이나 무기력 같은 감정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해치는 극단적 상황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 상황에서 자살률이 상승하고, 이로 인한 손실과 상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막대한 신체적 손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정서적 유대와 인간관계가 훼손되고, 외로움과 고립감이 만성화되면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전반에도 막중한 피해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고독, 외로움은 연령과 성별을 뛰어넘는 인간 고유의 심리 상태라지만 경제적·신체적 환경이 곤란할수록, 특히 갑작스런 퇴직이나 은퇴를 맞은 중장년 세대일수록, 사별이나 이혼 등 가족 관계가 단절되거나 상실될수록 그 영향은 심각할 수 있습니다. 소외와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소통 부재는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기 쉽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 되면서 외로움에 대처하는 일은 단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수준에서 사회와 국가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과제로 부상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2022-02-2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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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사랑, 쉬운 밀당은 중죄!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나이 든 사람의 사랑이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편한 게 있다면 뭘까?” “음… 내 생각엔 서로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뭐라고? 밀당을 하지 않는다고? 밀당은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해. 밀당이 빠진 사랑은 김빠진 맥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맥주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거든.” “너 말 잘했다. 그거야말로 맥주의 거품 같은 거라고 생각해. 밀당은 거품이라고. 사랑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카페 옆자리의 중년 여자 둘이서 아침나절부터 사랑 타령이다. 이달 원고를 마감하고 브런치로 모처럼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들의 대화가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밀당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밀당할 에너지가 딸리는 거겠지.’ 속엣말로 슬그머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밀당이 뭔가? 새삼스레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연인이나 부부,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네이버 사전이 알려준다. 밀당이 사랑 잡네 ‘미묘한 심리 싸움’, 이게 얼마나 에너지를 축나게 하는 일인가. 그러니 중년의 나이에 사랑을 하려거든 밀당을 포기할 수밖에. 문제는 연인 둘 다, 양쪽 모두 안 하면 별 상관이 없는데 한쪽이 기어코 밀당을 하려고 든다면 다른 한쪽이 말려들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사랑의 주도권을 잃고 을로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즉 밀당으로 인해 예상치 않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까짓것 을이 되면 어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이 되고 나는 영원히 을이 된다면 차라리 그게 더 좋겠어”라고 맘 넓은 척 굴다간 밀당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밀당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니까. 무슨 소리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 차이게 된다는 거지. 대저 연애 심리, 남녀 사랑의 공식은 나이 불문하고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보지 않았나. 거기에는 이른바 서툰 밀당이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밀당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사람을 덜 좋아하면 된다.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하고 내가 상대를 덜 좋아하면 저절로 되는 게 밀당이다. 아니면 좋아하는 마음을 자제할 줄 알거나. 그런데 말이야 쉽지. 그게 된다면 ‘밀당의 기술’이란 말이 왜 있을까. 기술이란 배워서 연마해야 할 기량이며,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여지가 항상 깔려 있는 난이도 높은 그 무엇이 아닌가. 단적으로 말해 밀당에 성공하는 사람은 연애의 고수이자 동시에 사랑의 쟁취자이니, 밀당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계륵 같은 게 아니라 성공적인 연애의 핵심이다. 이러니 밀당에는 나이가 없을 수밖에. 밀당의 요령 그렇다고 밀당을 난공불락 요새처럼 두려워하거나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령 카톡을 받았을 때 바로 답하지 않기, 상대가 보낸 메시지 분량보다 짧게 회신하기, 전화도 한 번쯤은 안 받기, 그러다 상대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면 바빠서 나중에 하려다가 그만 잊어버렸다며 별로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시큰둥하게 답하기. 세 번 요청에 한 번꼴로 데이트에 응하기, 데이트할 때는 평소에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별 이유 없이 빨리 헤어져서 상대를 이따금 실망시키기, 스킨십 때도 안으려고 하거나 손을 잡으려고 할 때 슬쩍 몸을 뺀다거나 딴청 하기, 잠자리 횟수 조절하기 등등, 그때그때 상황 따라 상대를 안달나게 하면 된다. 좋게 말해 상대의 욕망을 내 쪽에서 조절하고 절제시켜주는 거라 할까. 역시 쉽지 않다고? “과연 그럴까? 사랑을 왜 하는데? 사랑을 하면 젊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왜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일수록 사랑을 할 때 여자는 더 여자로 대접받고 싶고, 남자는 더 남자다워지려고 하잖아. 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지. 나이 든 사람일수록 연애할 땐 더 유치해지는 법이야. 젊은 애들이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욕망인 거지. 그런 기분, 그런 감정을 즐기고 싶어서 연애하고 사랑하는 거 아냐? 그런데도 밀당이 필요없다고?” 다시 들리는 옆자리의 대화. 약간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나. 밀당은 상대에게 불안을 주어 자신 옆에 붙들어두려는 전략이다. 두려우면 더 매달리는 사람 심리를 이용한. 하지만 잘못 사용했다간 진정한 사랑을 잃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위험하다 못해 치명적인. 밀당하다 망한 여자들 밀당 하면 떠오르는 문학 작품이 있다. 스탕달이 1830년에 쓴 ‘적과 흑’에서 줄리앙을 대하는 마틸드의 태도는 밀당의 전형이자 원조다. 결론부터 말하면 밀당 좋아하다 망한 여자가 마틸드다. 밀당에 중독된 이런 부류들은 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멀리 달아나버린다. 아니 달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싹 없어져버린다는 게 문제다. 제 꾀에 제가 빠진다고 할까. 목적은 상대가 자신을 더 좋아하게 하고 더 끌리게 하려는 것인데 결론은 그 사랑을 잃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런 마틸드를 줄리앙이 사랑스럽게 느낀 순간이 있는데, 마틸드가 솔직하고 꾸밈없는 마음을 언뜻 비쳐 보였을 때다. 결국 그 사랑은 누가 차지하는가. 레날 부인이 아닌가.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은 유부녀였지만 순수한 사랑에는 밀당 따위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튕기고 안달나게 하는 애인에게 지쳐 다른 연인을 만든 것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의 새 연인이 옛 연인의 절친이라면? 밀당하는 애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 나머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비위를 맞출 수 있는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고 의논하다 그만 둘이 정이 들어버렸으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밀당은 사랑의 촉매제, 조미료는 될 수 있지만 사랑의 몸통, 원재료는 될 수 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사람일수록 조미료로 맛을 내려고 하는 것처럼 밀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 없는 사람이 집착하는 치사하고 졸렬한 전략이다. 재료의 품질이 높고 신선하다면 조미료 따위에 의지해 맛을 낼 필요가 없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깊고 그윽한 풍미를 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요리의 달인이 아닌가. 조야한 음식은 한두 번만 먹어도 물리는 법. 중년의 사랑, 사람이 먼저다 그럼 중년에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밀당하지 않고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 내가 아는 올해 69세 된 어떤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 성적 능력이 거의 사라져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성욕과 성 능력이 왕성할 땐 여자가 성적 대상으로만 보이고, 게다가 한 여자에게 만족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또 다른 성적 대상에게 눈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모든 남자를 대변한 말은 아니겠지만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으로 들린다. 성적 욕망 충족이 곧 사랑은 아니라는 ‘철든 생각’처럼도 들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 남녀는 사랑을 놓고 동상이몽에 있었다는 뜻이니 허탈하기도 하다. 물론 여자라고 해서 성과 사랑을 전혀 별개의 자리에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할까. 사랑을 쌓고 키워가는 토대의 문제라고 할까. 사랑을 통해서, 내 앞의 그와 그녀를 통해서 홍안의 소년 소녀가 되고 싶은 거지, 실제로 소년 소녀는 아니다. 밀당을 하고 싶어도 할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밀당은 일종의 치밀한 기술이자 계략적 전술 전략이다.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그렇다면 전략 없이, 계략 없이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으면 될 터이니, 그것은 곧 인간애가 아닐까. 여자가, 남자가 더 이상 여자가, 남자가 아닐 때 참사랑을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할까. 말하자면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다. 너무 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에 중년의 사랑, ‘뭣이 중헌디?’라고 물으신다면 먼저 사람 되는 것이 중하다, 사람 냄새가 먼저라고 답하리라.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사랑하지 말고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일평생 사랑이라는 이미지에 속은 것으로도 모자라, 여전히 속고 있다. 이제는 그런 사랑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밀당은 그런 사랑의 망상이 빚는 헛그물질이다. 거기에 걸려드는 물고기 역시 인조 물고기일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 아니지만 너무 재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과만 해야 한다. 그 사이에 잔꾀나 사랑의 이미지를 삽입하지 마시라.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당당해야 한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그러고는 사랑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랑을 한다. 좋은 사람은 밀당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속이는 것은 나쁜 것이기에. 밀당은 상대를 중독에 빠지게 한다. 사랑중독자가 되게 만든다. 중독은 나쁜 것 아닌가. 더구나 사랑중독자라니. 사랑 중 밀당은 유죄다. 특히 중년의 사랑에서 밀당은 중죄다. 사랑을 제대로 해볼 시간도 기회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아까운데 밀당할 시간이 어디 있나.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2022-02-1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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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든 여자의 혼자 남겨진 사랑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2021년 12월,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그렇게 떠났다. 그와 내가 사귄 지 10년째 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의 지난 한 해는 벽두부터 그의 병간호로 시작됐고, 소생과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떠나며 한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해가 희망 없이 밝았다. 장례를 치른 후, 간호를 하느라 1년 동안 함께 지냈던 그의 대전 집을 나와 다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돌보는 도중 간간이 들러 옷가지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내 집 풍경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칫솔이나 면도기 등 내 집에 두었던 그의 소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이제는 영원히 주인 잃은 것들, 그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와 나는 20년 전 어느 기업인 모임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나름 단단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이혼한 상태였지만 10년을 서로 바라만 보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썸을 탔냐고? 그건 아니고 좋은 사람이니까, 좋아 보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겠거니 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12월 중순의 첫눈 내리던 날, 첫눈치고는 늦었고 첫눈치고는 제법 눈송이가 실했다. 모임이 끝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연히도 그와 나의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와 그렇게 가까이 마주한 것도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천년의 사랑이 시작되고 다소 어색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기울여 그가 먼저 나가도록 손짓을 해 보였다. 그는 또 그대로 내게 먼저 차를 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서로 그렇게 배려의 몸짓을 하다가 내가 먼저 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선까지 느껴져 더 당황스러웠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내게, 무슨 일인지 잠시 지켜보던 그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별수 있나.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한 데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니 내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두고 그가 나를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깜깜한 밤하늘에 흰 눈이 별처럼 쏟아졌다. 우리 만남의 서곡이자 팡파르처럼. 나란히 함께 차를 타고 오던 시간이 의외로 편안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천생연분이란 촌스럽고 진부한 표현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이혼 후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만난 그 사람, 이제야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짝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와는 모든 것이 잘 통했고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가치관, 취미, 식성, 관심사, 대화는 물론,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몸까지 잘 맞았다고 솔직히 고백하리라. 국내는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에는 자유로이 해외여행을 다녔고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섭렵했다. 전시, 공연, 독서 등 문화생활도 알뜰히 했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각자 둘씩 있었지만 모두 독립해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 문제로 신경 쓸 일도 없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관계였다. 느긋하게 나이 들어갔고 다가올 노후를 함께 설계하며 행복한 노년을 꿈꿨다. 사랑의 보험이 깨지고 그러던 그와의 화려했던 세상이 불과 10년 만에 흑백의 암전을 맞았고 그는 영원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랑은 떠나도 삶은 지속되는 거라지만, 환갑도 한참 지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가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두망찰 길을 잃었다. 그가 없는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혼자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와 나는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성혼 선언문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견고한 우리 사랑 한가운데 죽음이 끼어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젊지 않은 나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미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가 없는 나의 노년, 그 막막한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다. 지난 1년간 그의 병간호로 쇠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사랑을 잃은 슬픔과 삶의 막막함 때문이리라. 홀로 늙어감,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이 든 여자의 사랑은 사랑을 하는 중에도 버겁다. 더구나 우리는 동갑이 아니었나. 여자로서, 그것도 젊지 않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의 남자에게 위축되지 않는다면 약간은 거짓이리라. 내 경우 역시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관하게 문득문득 내 나이를 의식하곤 했다. 아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고 해서 그와 나의 사랑에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그와 만나는 동안엔 오히려 내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가 가고 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혼자 남겨진 ‘나이 든 여자’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할 상대를 찾는다는 뜻이란다. 더는 다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성실한 보험 납세자처럼 꼬박꼬박 애정을 쏟고, 서로를 챙기다 보면 보험의 만기가 도래하듯 안온한 노후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들린다. 노년의 원만한 부부가 전형적인 그 모습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정성스레 부어가던 보험이 중간에 깨져버린 것 아닌가. 새로 들 가능성, 새로 들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없다. 탈 수 있는 보험금 없이 홀로 노후를 맞는 대열에 내가 동참한 것이다. 만날 사람을 다 만났다면 어느 종교계 방송에서 환갑이 지나면 인생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라 할 때 소위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되면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배우자가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맺어져 있는 인연을 일부러 끊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혹여 기존 관계에서 자리가 비어 새 인연을 들인다 한들, 관계 맺기를 통한 성장판은 이미 닫혔다는 의미다. 마치 빠진 치아 자리에 임플란트나 틀니를 해 박는다 해도 치아 본연의 성질과는 무관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성장하고 누리고 진화할 수 없다면 더는 살아도 산 게 아니란 의미일까. 물론 그건 아닐 테지. 이제 저 너머의 존재, 신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겠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알아도 제약적이며 한계가 있었던 관계의 장막을 거둬내고 영성에 눈을 떠야 한다는 의미겠지. 그래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실상은 그러한 성장이 참 성장이라는 의미일 테지. 세속적 희로애락 속에서 울고 웃던 나를 관찰자, 주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교정하고 회복되도록 하는 과정일 테지. 내 경우라면 그의 빈자리를 하나님 혹은 부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일 테니 교회나 성당, 절에 나가 위로를 구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그 얼마나 진부하고 맥 빠지는 소린가. 나는 지금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간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외로움에 애간장이 녹아내릴 지경인데, 눈에 그 존재가 보이지도 않고 귀에 그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신을 통해 위로를 구하라는 말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공기를 뻐끔거리며 배를 채우라는 소리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위로받기는 고사하고 왜 그를 내게서 빼앗아갔냐고, 이제 겨우 64세, 아직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나이의 그를, 자기 분야에서 드물게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를, 무엇보다 나와의 변함없는 애정으로 행복의 절정기를 누리던 그를 무슨 이유로 데려가야 했냐고 따지고 대들고 싶은 심정이다. 신도 질투를 하냐고, 그렇다면 신도 아니지 않냐고. 차라리 그와 혼인을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아내였다면 세상 떠난 그를 대신해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가족 내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감당할 역할들로 사별의 아픔을 추스를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껏’ 그의 연인이 아닌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그 상실감과 무력감만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다. 다시 빛을 찾아서 슬픔에 겨워 탈진하는 하루하루 중에도 간간이 빛을 느낄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평안과 내적 안온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실은 나는 그가 떠난 이후 성당에 다닌다.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 공부도 한다. 신앙심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그저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왠지 성당에 가면 영혼이나마 그가 내 옆에 앉아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올해로 나는 65세가 되었다. 10년 전 55세에 만난 그가 떠나고, 2022년의 출발선에 혼자 오도카니 섰다. 혼자라고 하지만 어쩌면 내 옆에는 신이 서 계실지도 모른다. 신은 무언의 침묵을 통해 나와 동행할 채비를 하고 계시는 걸까. 왜 신은 굳이 내 옆자리에 서려고 하시는지. 나는 그 사람 하나로 행복했건만. 하긴 연일 눈물로 어룽져 시야가 흐려진 내 눈엔 생의 완주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신의 손길에 의지해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인도가 절실하다. 그러나 앞서 방송 내용처럼 나 또한 이제 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반자를 구하고 싶지 않다. ‘사람 대신 신’이란 결단에서가 아니라 또다시 그 존재를 잃고 슬픔의 늪에 빠져 허둥대거나 흐느적거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생 한 번으로 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과 그리움, 그것은 너무나 혹독하기에.
- 2022-01-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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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작가가 밝히는, 부자의 돈 버는 비밀
- 사실 흔쾌히 하고 싶은 인터뷰는 아니었다 고백하고 시작해야겠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신분 확인이나 팩트 체크가 어려울 수 있고, 독자의 신뢰를 얻기도 힘들다. 게다가 상대는 작가.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상대는 실력을 겨루는 느낌까지 들어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그를 모시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연구해온 부자가 되는 방법이 궁금해서다. 카메라 앞이 아닌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부자들이 고백한 돈 버는 비밀 말이다. 명칭에서 느껴지듯 유령작가, 즉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는 흔한 직업이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이나 정치후원금 등의 이유로 출판기념회가 필요한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성공담, 기업공개를 앞둔 기업가의 자서전 등의 출판물을 집필하는 이름 없는 작가를 말한다. 출판사의 기획의도나 의뢰인의 목적에 맞게 대신 글을 써주고, 본인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 대필 작가이기 때문에 고스트라이터라 불린다. 출판업계의 이름난 구원투수 이 유령작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터뷰 후 그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해야 했다. 사진 속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겠지만, 사실 그는 꽤 번듯한, 막 중년이 된 사내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의 팀장으로 활동 중이며, 출판계에서는 꽤 이름난 작가로 본인 이름으로 낸 자기계발서도 10권이 넘는다. 그가 고스트라이터가 된 것도 출판사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괴팍한 부자 의뢰인의 등쌀에 못 이겨 다른 작가들이 연이어 쓰러졌을 때 편집자가 그를 찾았고, 단시간 내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글솜씨와 친화력, 빠른 일처리 등의 장점이 그를 곤란할 때마다 찾는 업계의 대표적인 ‘구원투수’로 만들었다. 의뢰인의 성향이나 과거의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습관을 따라 하거나 등장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고집스러움은 그를 롱런하게 했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최근 출간한 한 권의 책이다. ‘히든 리치’란 제목 그대로 숨겨진 부자들을 만나 부를 형성한 과정과 현재 자산의 정도에 대해 노골적으로 물어본 책이다. 그는 과거 유령작가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집필 노트를 오랜만에 들여다보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직장인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저 역시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은 이 세계에서 가정을 지키고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인데, 직장에서의 소득은 충분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니까요.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손에 쥔 것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방법이 있을지, 어떻게 시드머니를 준비할지 고민하던 중 본가에서 대필 작업할 때의 노트를 발견했고,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있게 내용을 엮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지 과거의 노트를 요약해 끄적인 책은 아니다. 과거 대필해주었던 책 속 주인공이나 그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을 다시 찾아 노크했다. 그러고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현재 자산은 얼마입니까”, “처음 시작할 때 수중에 얼마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자산가가 될 수 있었습니까”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정성껏 대답해주진 않았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성심껏 취재에 응해준 24명의 이야기를 자산 형성의 유형별로 구분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는 책에서 부자의 유형을 일단 아끼고 보는 ‘고전형’, 위험을 무릅쓴 ‘전투형’, 자신의 전문 분야를 기반으로 한 ‘안전형’, 천재에 가까운 ‘변칙형’, 물려받은 자산을 늘린 ‘보수형’, 감을 갈고 닦아 수단으로 삼은 ‘천리안형’으로 분류해 설명했다. 뻔하지만 따라 하기 힘든 비결 그는 이 책을 부자가 되고 싶은 대중을 위한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이야기했는데, 읽어본 소감을 더하자면 부자가 된 사람들의 세밀한 사례집에 가깝다. 그들의 자산 형성 과정이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나온다. 더 매력적인 것은 다양한 부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자산의 규모로 보면 상대적으로 수수한(?) 백억대 부자에서부터 수천억대 자산가의 이야기도 다룬다. 직업이나 자산 형성 과정도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공통점은 바로 ‘돈에 대한 욕망’이었다. 모두 남에게 쉽게 지지 않을 만한 욕망의 소유자로 느껴졌다. 작가도 동의했다. “책 속에 등장한 한 분이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얼마면 무릎을 꿇을 수 있냐? 1만 원? 10만 원? 쉽게 대답하지 못했죠.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라면 1원에도 꿇는다. 돈이 생기는 일인데 무릎 꿇는 것이 무슨 대수냐며 말이죠. 그럼 절을 한다면 얼마를 주겠냐고 되묻기도 했어요. 저울질 따위는 필요 없죠. 다만 작은 돈과 큰돈이 있을 뿐이죠. 돈에 대한 욕망을 바탕에 둔 실용적 사고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기기 힘들어요. 아마 그 과정에서 비리나 부정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겠죠.” 아끼고, 발품 팔고, 돈을 놀게 놔두지 않고,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돈 버는 기본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덕목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부자가 되는 비결은 이 기본기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니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사실 책 속 부자들의 자산 모으는 방법은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이에요. 하지만 부자들은 그 뻔한 방법 중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실천했다는 점이 다르죠. 실제로 만나보면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민감성이나 실천력의 차이가 매우 커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도 ‘나도 도전해야겠다, 나도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길 바랐어요.” 빚투 그리고 재테크 작가는 복권이나 코인에 매달리는 청춘들에게도 조언을 전했다. 최근 경제지를 중심으로 MZ세대라 불리는 20~30대들이 직장을 통한 자산 형성을 기대하지 않고, 코인이나 주식에 매달리는 ‘빚투 열풍’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20대의 복권 구입 비용은 코로나 이전보다 300% 넘게 증가했단다. 그러나 실제 부자들을 만나보면 월급쟁이 부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회가 계층화되고 고착화되었다는 분석이 많죠. 사다리가 치워져 젊은 세대가 계급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를 길이 잘 안 알려져 있을 뿐이에요.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은 젊은 직장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어요. 사실 이런 첨단 분야는 전통적인 부자들이 접근하기 힘들죠. 정보를 가지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일반인은 호재가 있을 때 삼성전자에 투자하지만 기술과 공정, 소재를 이해하는 사람은 관련주에 투자해 더 큰 이익을 얻기 마련이죠. 마치 용의 머리는 작게 움직이지만 꼬리는 크게 휘청이는 것과 같아요. 기술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능력은 회사 생활에 전념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죠. 또 그들이 근무하는 판교나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어떤 회사가 망해 나가고, 빈자리에 어떤 회사가 들어오는지, 주변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투자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옛날처럼 큰 시드머니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최근의 투자 트렌드이기도 하고요. 갈수록 기회도 많아지리라 생각해요.”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마음만은 청년’인 시니어들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의 책을 자세히 보면 직업상담사나 창업 컨설턴트들이 하는 이야기와 맥락이 닿는다. “은퇴 후 평생 직업이었던 분야를 접고 새로운 분야를 찾아 도전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하지만 성공 확률은 대단히 낮죠. 부자가 되는 방법도 비슷해요. 본인이 직장 다닐 때 잘 알던 해박한 분야에서 더 공부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노력이 더 유리해요.” 흔히 몇 차례 소심한 시도가 실패하는 경험을 하면 재테크 무용론자가 되기 십상인데, 이 책에는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된 여러 사례가 등장한다. 각종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재테크의 전형 같은 부자도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부자가 목표는 아니더라도 재테크는 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큰돈을 벌지 않더라도 재테크는 누구나 해야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부는 팽창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조금씩 부자가 되고 있어요. 모두 다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만 멈춰진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조금씩 가난해지고 있다는 뜻이 돼요. 사회가 부유해지는 것에 맞춰 재테크를 통해 나의 재산을 조금씩 늘려야 소득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요. 재테크는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일이 된 셈이죠. 과거에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의 흐름만으로 연공서열에 따라 월급이 오르고 집값이 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흐름에 맞춰 함께 달려줘야 해요.” 뒷조사까지… 부자들의 ‘면접’ 각 분야의 성공한 명사들을 취재하다 보면 첫 만남은 ‘테스트’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을 상대하는 기자의 능력이나 이해도가 어느 수준인지 궁금해한다. 일종의 면접이다. 작가는 “부자들 중 대부분이 그런 테스트를 즐기고, 상대가 대필 작가라면 그 강도는 훨씬 세진다”고 말했다. “간단히 훑어보거나 몇 마디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테스트’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도 흔해요. 감당 못 할 만한 행동을 던지고 반응을 보는 경우도 있어요. 약속 시간에 늦는다거나,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하는 식이죠. ‘이거 하면 얼마 버냐’며 묻기도 하고. 또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단답형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부자도 있었죠. 제 뒷조사를 몰래 한 분도 있었어요.” 그 까다로운 면접들을 어떻게 통과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뿐 다른 비결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저 비굴해 보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난 부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작가는 간단히 유형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부자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은 오히려 만나기 힘들다고 그는 설명한다. “최근에는 젊은 부자들이 많아져서, TV 속 회장님 같은 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자린고비 같은 타입이 있는 반면, 설렁설렁 있는 대로 벌고 쓰고 하는 사람도 있죠. 애써 공통점을 찾자면 본인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에요.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가족을 위해 애쓰셨던 분이에요. 흔히 부자가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과 등을 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가난한 부모에 가정사가 행복하지 않은 분이었는데, 부자가 된 뒤 가족에게 베풀면서 사시더라고요. 흔히 알고 있는 부자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분이셨죠.”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작가는 부자가 되었을까?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 어떤 길을 가고자 할까? “아직 부자가 되진 않았죠. 많은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배우려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의 비법이나 투자 방법 등을 서슴없이 알려주는 분도 많아요. 부자들은 자기 비법을 숨긴다는 것도 옛말이죠. 그렇다고 당장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회사원 신분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책의 구분법으로 설명하자면, 지금은 ‘고전형’과 ‘안전형’의 방식을 따르는 정도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를 바탕으로 기회를 엿보는 중입니다. 다만 부자들과 함께하면서 저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곁에 있다 보면 그들에 대한 대접을 저에 대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거든요. 그저 삶의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게 유지해나가고 싶습니다.”
- 2022-01-05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