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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기념일 '로즈데이'… 장미 색상별 꽃말은?
- 연인끼리 사랑의 표현으로 장미꽃을 주고받는 5월 14일 ‘로즈데이’를 맞아 색상별 꽃말과 기념일이 된 유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먼저 빨간 장미의 꽃말은 ‘불타는 사랑, 아름다움, 사랑의 비밀, 열정적인 사랑’이며, 주황색 장미는 ‘첫사랑, 수줍음’을 뜻한다. 분홍색 장미의 꽃말은 ‘행복한 사랑, 사랑의 맹세’, 흰색 장미는 ‘순결, 존경’, 보라색 장미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노란색 장미의 꽃말에는 ‘우정, 평화’라는 뜻이지만 ‘질투, 시기, 이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란색 장미의 꽃말 역시 ‘맹세, 기적, 희망, 포기하지 않는 사랑, 행복한 사랑’이지만 ‘얻을 수 없는 불가능함’의 의미가 있다. 로즈데이의 유래는 미국에서 꽃 가게를 운영하던 청년 마크 휴즈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장미꽃을 바치며 사랑 고백했다는 데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알려지기만 했을 뿐 실제로 파악된 것은 없다. 5월 14일을 로즈데이라고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심지어 로즈데이는 미국에서 밸런타인 위크의 첫날을 부르는 말이다. 2월 7일부터 밸런타인 데이인 14일까지를 부르는 밸런타인 위크는 ‘사랑의 주’라고 불리며 이 첫날을 사랑의 장미를 주며 기념하는 날로 여긴다. 이외에 매달 14일 기념일은 △2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4월 블랙데이 △5월 로즈데이 △6월 키스데이 △7월 실버데이 △8월 그린데이 △9월 포토데이 △10월 와인데이 △11월 쿠키데이 △12월 허그데이가 있다.
- 2020-05-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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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디슨 카운티 다리로 본 '부부의 세계'
- 요즘 여자들이 모였다 하면 빠지지 않고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이야기를 나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부터 시작돼 ‘밀회’를 거쳐 폭발한 김희애의 불륜 연기는 의사, 음악가 등 고스펙 불륜녀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이번 ‘부부의 세계’에서는 너무 완벽한 삶의 조건으로 균열 하나 있을 것 같지 않던 부부 사이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남편의 오래된 불륜으로 급격하게 돌기 해 부부의 삶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인생까지 소용돌이치게 되는 부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간통죄까지 폐지된 마당이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대미문의 불륜들이 우리 주위에 넘실댄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침없고 솔직한 불륜들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이제 정치적인 은유는 물론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나무란다'라는 뜻으로 청소년들까지도 사용하는 대중적 언어가 된 지 오래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중년 여성들에게 '불륜'이라는 단어가 은밀하게 회자하기 시작했던 건 아마 이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단아해 불륜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조용조용 속삭이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개봉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 가곡을 듣는 지적이고 단아한 가정주부, 메릴 스트리프(프란체스카)는 아내의 취향은 전혀 모른 채 큰 소리로 떠들고 문을 쾅쾅 닫아 프란체스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다. 엄마가 이탈리아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자녀들은 요즘 유행하는 팝송으로 재빨리 바꿔버려 집안에서 프란체스카의 자리는 없다.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은 서로 나눌 이야기도 없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침묵의 시간으로 변한 지 오래. 가족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그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부속품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에 찌들어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어느 날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바깥세상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을 동경하게 해주는 그런 남자가 불현듯 나타난다. 배경은 1965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의 조용한 시골 마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조만간 철거될 이 마을의 명물인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이곳으로 트럭을 몰고 온다. 낡은 청바지에 셔츠, 니콘 카메라를 메고 프란체스카가 동경하는 세상의 냄새를 풍기며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로즈먼 다리가 어디 있냐?’고 물어온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다.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나흘 동안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결혼 이후 처음 가족과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길을 묻는 그 순간에도 가족들의 빨래를 널고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지구를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지만 이 잡지는 지구의 자연을 보호하고 현대화로 사라지고 있는 옛것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놓는 전통의 잡지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격조 높은 잡지다. 그러니 전 세계를 다니며 오지와 천혜의 자연을 촬영하는 로버트라는 사진작가의 영혼이 얼마나 깊고 넓을지 쉽게 상상하고도 남는다. 결혼한 지 15년이 넘어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한 남자와 자식만을 위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세계의 풍물과 삶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는 로버트의 인생은 동경 그 자체였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사는 로버트가 부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와의 대화는 익숙하다 못해 더 이상은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문학과 여행, 음악과 미술… 그 자체로서 너무나 환상적인 감정이입의 순간들을 공유한다.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이 떨릴 듯 화면에 전해지던 장면이 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저녁에 초대해서 함께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감자 스튜를 만들어주기 위해 부산스럽기만 하다. 감자는 미국 중부를 상징하는 아이오와주의 대표적인 농산물. 프란체스카의 부산스러움을 느낀 로버트는 “제가 도와드릴까요?” 란 말로 그녀의 맘을 빼앗아 버린다. 너무나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의 생활에 익숙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요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요리를요?” “예… 요리를” “당근을 깎아주세요” “이거 말인가요” “예… 끝은 이렇게 다듬어야 해요” 짧은 단답식의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낯선 두 남녀가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세계를 향해 들어오는 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부엌에서 함께 채소를 손질하고 감자 스튜를 저으며 그렇게 완성해갔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다고 해도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날 수 있다. 뒤늦게 사랑의 열병을 앓다 제자리에 도로 주저앉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운명적인 사랑을 따라 지금까지 가꿔왔던 자신의 세상을 박차고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리기도 한다. 대부분 우리는 순서가 잘못돼 '만났어야 할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 인생을 살고 있기보다 '스치고 지나갔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산다. 착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믿으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다. 이렇게 착각으로 쌓아 올린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안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쌓고 그 일상이 다시 모여져 삶의 결로 퇴적된다. 퇴적된 내 인생의 결이 어느새 작은 봉우리가 되고 제법 봉긋한 작은 산 하나 만들어질 때쯤 우리네 인생은 노년의 삶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는 아직 중년의 감성은 아니었기에 100% 감정이입을 못했지만, 육체적 관계의 선을 넘는 것이 아닌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선'을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그렇게 부산스럽게 타오르지 않는 사랑, 스튜처럼 오래 끓이며 뭉근히 재료의 맛을 우려내고 깊어지는 사랑. 하지만 ‘불륜’은 그러하지 못할 경우가 많으므로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속전속결로 잡아먹을 듯이 집안을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며칠간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대화하며 깊은 울림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흔히 남녀들이 하는 것처럼 세속에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프란체스카는 이 작은 마을에 남아 가정을 지키고 자녀에게 헌신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로버트의 유품이 프란체스카에게 도착한다. 로버트가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이 표지로 담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니콘 카메라,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남긴 다리 위의 쪽지. 프란체스카는 이 유품을 간직해오고 있다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긴다. “살아온 인생은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니 죽은 뒤에는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에 뿌려 달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로버트에 대한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영화도 연령대에 따라 감상했을 때 차이가 크게 난다. 예전에는 이 부분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죽은 후,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 위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말의 뜻이 이제 정확하게 이해된다. 프란체스카는 죽어서까지 가부장적인 가족의 굴레에 매여있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처럼 나도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딸아이에게 말했더니 눈을 살짝 흘긴다. 바다를 떠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난 또 어쩔 수 없이 엄마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난 연휴 주말 방영된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가 자신의 아들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할 수 없다며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는 전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언한다. 뒤를 이어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이미 헤어진 부부가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고 옷이 흐드러진 침대를 보여주면서 끝나 전국의 여성들이 갑론을박 난리가 났다. 한번 갈라진 부부의 길은 다시 합쳐지지 않는다. 잠깐 합쳐지는 듯하다가도 이미 다시 파국을 맞는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 스펙의 의사도 자신의 감정 다스리기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19의 극복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 혹은 가족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다 알아야 하고 간섭해야 하고 내 뜻대로 콘트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들이 의외로 많다. 내 눈앞에서 안보일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내 가시권 안에 있을 때는 완벽한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혜를 베푸는 모양새다. 흔히 똑똑하고 성공했다는 고스펙 여성들의 결혼생활은 평강공주 신드롬에 빠져 온달들을 관리하느라 부산스럽기 그지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부부 사이의 적정한 거리 두기는 결국 나에 대한 객관화로 이어져 보다 성숙한 자아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제발, 몰빵 하지 말 것이다. 사랑은 다 가질 수 없어 안타깝고 그래서 귀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시니어들은 감자 스튜 같은 뭉근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프라이팬에 와인을 부으면 불같이 일어났다가 금세 스러지는 그런 불꽃 같은 사랑을 꿈꾸나? 곰곰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 2020-05-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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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 이혼' 혜은이, 30년 부부인연 끝낸 진짜 속사정
- 데뷔 45년차 가수 혜은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된다. 오늘(29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는 무대에선 그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던 혜은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데뷔해 국민 여동생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혜은이는 2년 만에 ‘당신만을 사랑해’로 가수왕에 오르고, CF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혜은이는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이 가장이 됐고, 온갖 루머에 시달리며 가수생활을 이어왔다. 스승이었던 작곡가 고 길옥윤과의 수많은 루머로 은퇴까지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날 방송에서 혜은이는 50년 인연 전영록을 만나러 강원도 평창에 있는 전영록 박물관으로 향한다. 혜은이의 열혈 팬이자 절친한 두 동생인 가수 남궁옥분과 민해경과의 만남도 그려진다. 또 방송에서 혜은이는 지난해 7월 배우 김동현과 결혼생활 30년 만에 합의 이혼하게 된 속사정도 꺼낸다. 적극적인 구애로 재혼해 화제를 모았지만, 파경에 이르는 과정 등을 털어놓을 예정이다. 앞서 혜은이는 2017년 방송된 ‘마이웨이’에서 “남편 김동현의 사기로 빚 200억 원을 10년간 갚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동현은 억대 사기 혐의로 법정 구속돼 실형을 살기도 했다.
- 2020-04-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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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한 파리지엥들의 지적인 토크를 보다
- 거실에 앉아 VOD로 영화보기를 했다. 가까운 지인들과 집안에서 멋진 대화를 나누던 ‘영화 논-픽션’을 택했다. 1년 전에 영화관에서 매혹되었던 이들의 지적인 토크, 특히 요리가 담긴 넓은 접시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대화를 나누던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다. 종이책과 e-Book간의 선택이나 문제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진행 중인 고민이다. 책이나 신문이 인터넷 사이트라는 시공간을 넘어 순간적으로 먼저 전한다. 이런 현실에 현대인들은 이미 익숙하다. 이 영화를 만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디지털화는 일어나고 있다. '논-픽션'은 그러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영화"라며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편집장 알랭이 작가 레오나르와 새 책 출판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알랭은 레오나르가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창작에 적용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대꾸한다. 그러다가 EU 정책에 대한 토론까지 나아간다. 편집장 알랭은 퇴근한 뒤에도 그런 시간이 계속된다. 영화배우인 아내와 친구 부부 등이 모여서 자신들만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한다. 블로그 조회 수와 책 판매에 관한 비교, 그리고 읽고 쓰는 사람들의 생각을 말한다. 각자의 무릎 위에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올려놓고 지적인 토크가 쏟아져 나오는 풍경은 생경하다 못해 경이롭다. 책을 중심으로 한 출판이나 정치와 문화 민주주의, 디지털화에 따른 대중의 취향과 그들의 삶에 대한 담론이 위트 있고 아름답다. 개운하고 유쾌하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이웃이나 친구들의 대화가 마냥 수다가 아니다. 비판이나 세상의 문제제기, 그리고 문제 해결에 따른 의견들이 담담하면서도 빛나는 사유의 언어로 나타난다. 영화의 모든 대사가 탄탄하고 시원하게 터져 나온다. 도서 출판계의 위기가 다가온 세상에 현재와 미래의 고민이 무겁고 지루할 만 한데 영화 보는 내내 시종일관 귀 기울여 경청하게 된다. 게다가 그들만의 각자의 연애가 유지되고 있음을 서로 눈치채고 있는 중이었다. 알랭의 아내 셀레나와 작가 레오나르가 오랜 연인 관계였다. 물론 알랭도 회사의 젊은 디지털 마케터 로르와 연애 중이다. 이런 아슬아슬하기만 한 일상이 복잡하게 얽히는 감정 씬 하나 없이 가볍게 해결해 나간다.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굳이 차단하지 않는다. 작가 레오나르가 부인에게 결국 고백한다. “사실 나 바람피웠어” 놀라운 이 말에 “알고 있었어. 당신 책도 순 그 얘기잖아”영화를 보는 사람이 더 놀라울 뿐이다. 우리의 보편적 정서로는 가능키 어렵겠지만 그들은 결국 공존을 택한다. 막장을 우아하게 승화시켰나 잠깐 시큰둥했지만 파리지앵들의 쿨한 감정 정리가 시원하기까지 하다. 완벽하게 쿨하다. 이 또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벗어나게 하는 유쾌한 장치가 되어준다. 특히 작가 레오나르가 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가와의 대화 장면이 있다. 독자와 작가와의 자유로운 비판은 간간히 가슴이 쫄깃해진다. 직설적이면서 촌철살인의 질문과 대답은 바라보며 멋지기까지 하다. 때로 영화 전편으로 음악으로 채운 듯한 작품을 볼 때가 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대화가 가득한 영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줄리엣 비노슈가 나온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초콜릿’을 떠올렸다. '세상의 모든 초콜릿'이라는 이름의 초콜릿 가게를 연 그녀에게 집시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조니 뎁이 나타나던 영화. 그때의 신비로운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인생의 내공이 조금 더 묻어나는 연기를 한 줄리엣 비노쉬가 반가웠다.
- 2020-04-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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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빈 작가,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물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딸이 백혈병으로 그의 곁을 떠났고, 28년을 같이 살았던 사람과 헤어졌고, 아들은 해외에 있어 자주 만날 수도 없다. 게다가 자신이 쓴 분신 같은 책들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올 1월 이다빈 작가(55세)가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들’에서 고백한 이야기다. 힘들었던 시기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써내러 간 그의 책을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1996년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작가, 글쓰기 강사, 출판편집자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동안 동화집 ‘모자 선생님’, 시집 ‘문 하나 열면’, 인터뷰 에세이집 ‘길 위의 예술가들’, 세계문학기행집 ‘작가, 여행’, 국내 테마여행기 ‘소소여행’ 등의 책을 썼다. 작년에는 24년 동안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만난 아이들의 글쓰기 치유기 ‘말하지 않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선보였다. 그런데 작년 말 배본사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던 책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잠시 삶의 여행을 멈추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생각해 보니 잃어버린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짐이 그동안 늘어난 모양이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온통 결핍 덩어리들이었다. 그 결핍 때문에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이별을 했다. 이제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위해서 기억과도 이별을 하려 한다.” 1부 ‘잃어버린 나’에는 저자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글을, 2부 ‘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해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네서점에서 이다빈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 일을 하느라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의 아버지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는 오로지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후 학생회 일을 하면서 사회 모순에 대해 탐구를 하고 편집장으로 활동을 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10년 가량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고, 잡지사에서 기자와 주간으로도 활동했다. “서울에 와서 소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죠. 남편의 직업상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평생 일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사단법인 부설단체를 운영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모자 선생님’은 당시 가르치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화집으로 문예창작기금을 수상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글을 발표하고 기자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한국문예신문’을 발행하고, 폭넓은 글쓰기를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국내외 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들이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7년 전부터는 고양, 성남, 인천, 서울 등 시민대학이나 도서관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치유 글쓰기, 시 쓰기, 여행 에세이 쓰기, 자서전 쓰기 등 다양한 강의를 했어요. 강의하고 책을 쓰면서 저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국내 다섯 개 도시를 배경으로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곧 출판할 거예요.” 이다빈 작가에게 책 쓰기는 그리 어려운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생각만 하고 주저하는 이들이 보기에 그는 추진력이 대단해 보인다. 강의를 한 후 일반인들에게 매번 책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뭘까. “책 쓰기를 하면 암 덩어리처럼 제 안에 뭉쳐 있던 고민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뭐든지 고이면 딱딱해지고 병이 되기 때문에 흘려보내야 해요. 혈액도 생각도 뭐든 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은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많은데 내보내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책도 내보내는 것이니 누구든지 책 쓰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글쓰기나 책 쓰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기를 권해요.” 그는 누구나 시인이며 작가이자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코로나19도 이기고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는 뭘 하든지 간에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편이에요. 멋있지도 않은데 멋있게 쓰려고 하면 독자들도 부담스럽죠. 저는 진지한 편이어서 가볍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독자들은 무거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실수투성이고 완벽하지 않잖아요?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생각이 흐르다가 고이는 것을 담아내면 책이 되지요.” 여행과 글쓰기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다빈 작가는 여행이나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는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함께 책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 2020-04-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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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증'이 뭐길래?··· 나이 들수록 유병률 높아져
- 최근 ‘미운우리새끼’에 출연 중인 가수 홍진영의 언니 홍선영과 ‘미스터트롯’ 장민호가 ‘이석증’을 앓고 있다고 밝혀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12일 방송된 SBS TV ‘미운우리새끼’에서 홍선영은 “나 10kg 정도 찐 것 같다. 저번에 맞았던 옷들이 안 맞는다. 이석증 때문에 운동을 못했다”고 고백했다. 또 지난 8일 MBC TV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장민호는 “어린 시절부터 단순한 어지럼증으로 알고 있던 증상이 ‘미스터트롯’ 촬영 중 ‘이석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석증은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 얹어진 미세한 돌(이석)이 떨어져 나와 신체를 움직일 때마다 어지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대부분 특별한 원인 없이 나타나며, 간혹 두부외상이나 이과적 수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피로,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석증은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는 물리치료법 ‘이석취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한다. 보통 몇 차례 반복해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예방법은 없으나 머리의 두부외상 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물리적 충격을 피하는 것이 좋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5년간 이석증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질환으로 요양기관을 방문한 환자는 2014년 30만 명에서 2018년 37만 명으로 연평균 4.8% 증가했다. 이석증 환자는 고령층에서 집중적을 나타났다. 연령대별 10만 명당 진료인원으로 보면 전 국민의 0.7%가 진료를 받았고, 70대 환자가 1.9%로 인구 대비 환자가 많았다. 특히 50세 이상 여성의 1.8%, 40대 여성의 1.0%가 이석증으로 진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돼 중·장년 여성환자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정준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이석증 환자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최근 고령층과 여성환자가 많은 것은 노화나 폐경기 후 호르몬 변화와 골밀도 감소로 골다공증이 많이 발생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 2020-04-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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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홍신 “미워하지 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자”
-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성공적인 의정 활동을 수행한 국회의원, 그리고 감사와 봉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 김홍신의 다양한 삶의 여정은 여러 가지 명칭들로 지칭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그는 무엇보다도 다시 만년필을 잡고 원고지와 마주한 작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외부 활동이 불가해지자 그는 멈췄던 장편소설과 수필집을 완성하기로 했다. 1970년대 초를 배경으로 ‘빨갱이’로 몰려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장편소설 ‘적인종’의 집필, 그리고 ‘월간 에세이’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수필집 출간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나 코로나19 여파로 역경의 연속인 삶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울림을 들어봤다. 방송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 김홍신 특유의 인자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외모는 여전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바이지만, 그의 삶은 그런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저 김홍신 인생이 순조롭다고 여기실 테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 또한 순탄하지는 않죠. 모든 삶이 순조롭다면 지구가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죽음이 있고 고통과 고뇌가 있고 실수와 우여곡절이 많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죠.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신화와 역사가 될 수 없고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법이니까요.”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감동도 없다 그는 원래 의대를 가고자 했지만 떨어지면서 재수를 해야 했다. 그때 느낀 울분과 절망은 스스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결국 재수를 해서 들어간 건국대학교 국문과. 취업도 안 되고 할 일이 없다 하여 타과 학생들이 ‘국물과’라고 부르는 학과였다. “그때 집안이 망해서 휴학까지 했죠. 그래서 데뷔도 늦었어요. 그나마 당시에 가장 권위 있던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했지만 날 이끌 사람이 없었어요. 종합대학 중 문인 숫자가 가장 적은 학교가 건국대였으니까요. 내 소설이 뛰어났다면야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죠. 신춘문예에도 여러 번 떨어지니 ‘다 지들끼리 해먹는다’ 싶었고…. 물론 그게 아니지만 그렇게 핑계를 대야 내가 견디잖아요? 유명한 소설가들을 비판하면 비평력이 있다고 착각하던 때였죠.” 절망의 청춘을 지나 성숙해지다 그의 날선 비판 대상에는 당대의 대표 소설가였던 최인호도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야인으로 살던 시절 끝에, 마침내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순식간에 인기 작가가 된 그는 이제 다른 사람 작품의 심사까지 맡게 됐다. “그때 최인호 형과 같이 심사하게 됐는데, 너무 괴로운 거예요.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판했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으려니까요. 그래서 ‘선배님, 고백할 게 있습니다’라고 먼저 말했죠.” 최인호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김홍신은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다 털어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배님을 비판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나를 끌어안는 거예요. ‘내 앞에서 최인호를 비판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용서해 달라고 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너무 고맙다’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을 반성하고 속죄하고자 한 김홍신이나 그런 모습을 보고 기탄없이 받아들인 최인호나 둘 다 넉넉한 인물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식사 때 서로 돈을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의형제를 맺는다. “그때 인호 형이 한 얘기가 ‘지금 김홍신을 시샘하는 사람이 많다. 그걸 견뎌야 한다. 그리고 유명해질수록 바른 걸음으로 걸으며 세상과 너무 타협하지 말라’는 거였죠. 나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나도 그랬는걸(웃음). 온갖 협박 공갈에 편할 날이 없었어요.” 우리 어딘가에 있는 의인들을 도와줘야 그의 고난은 작가 생활을 거쳐 국회의원 시절로도 이어진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2000년에는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계속 주변과 싸워야 했다. 15대 국회에서는 ‘이틀만 근무하는 5월에 한 달 치 세비를 받는 건 혈세 남용이라며 세비거부 운동을 벌여 동료 의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2003년에는 당 지도부에 의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강제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치권에서 배척받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자신의 진심이 닿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15, 16대 연속 의정 활동 1위 국회의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이 증거였다. 그는 정치에 대해 싸울 때는 침묵하지 않고 자신만의 할 말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몰아내고 영웅이 될 만한 사람들을 쳐냈어요.” 왜 그렇게 된 걸까? 그는 힘 있는 자들의 횡포라고 진단했다. 자기가 역사에 남고 존경받으려면 남을 칠 수밖에 없다는데, 그건 상대를 존중해야 자기도 존중받음을 잊어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적은 일궜는데 기쁨을 잃었어요. 배고픔은 해결했는데 배아픔은 해결 못하고 있죠.” 그래서 그는 시대를 이끄는 현자와 의인들은 시대가 만들어주고 옹호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구석구석에 계십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끝까지 진실을 향해 항해하는 사람. 우리 사회 곳곳에 계세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대구의사협회장의 호소문에 응답하는 의사들의 모습도 그런 것이었다고 봐요.” 굴곡 많은 시련을 어떻게 견뎌왔나 얘기가 자연스럽게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로 들어가게 될 시점이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끝나기는커녕 미국과 유럽 등지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 거대한 역병의 파도에 쓸려 심신이 고달프고 막막하며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처럼 굴곡진 삶에서 김홍신은 누구보다도 그런 상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히 지옥 생활이라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소설 ‘대발해’를 쓸 때였다. 시작은 법륜 스님의 권고였다. “국회의원, 장관 열 번 하는 것보다 발해 역사를 알리는 게 할일 아닙니까”라는 말에 동의하며 시작된 ‘대발해’ 집필은 2004년 말부터 3년간 두문불출하고 글만 쓰며 피폐하게 살게 만들었다. 그때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점도 그를 힘들게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아와 눈, 허리에 문제가 생겼죠. 불면증도 생겼어요. 자다가 단어 하나가 떠오르면 메모해놓고 잠을 자야 했으니까요.” 소설은 마침내 2007년 여름에 발표됐다. 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요로결석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스카프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사연이 있어요. 소설을 쓰면서 밖을 안 나가다 보니 햇볕 알레르기가 생겨서, 햇볕에 노출되면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더군요. 얼굴은 약을 바르면 됐는데 목은 치료가 안 돼서 스카프를 두르게 된 거죠. 그리고 지금도 가끔 손에 마비가 와요. 원고지 만이천 장을 썼으니까요. 교정만 7개월을 봤고요.” 우리는 역경을 거치면 반드시 더 강해지는 민족 김홍신은 ‘대발해’를 발표한 후 7년 동안 소설을 못 썼다. 소설 집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려고만 하면 또 아프다 쓰러지는 것 아닐까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대발해’로 소설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끝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대로 가다간 죽을 때까지 소설을 못 쓰겠다’는 두려움이 집필에 대한 부담감보다 더 커지기 시작했다. “고민을 하다 그동안 사회비판소설, 역사소설을 주로 썼으니 사랑 이야기를 쓰면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쓴 게 ‘단 한 번의 사랑’이었죠. 그 이후에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쓸 수 있었어요. 덕분에 지금은 ‘적인종’을 집필할 수 있게 된 거죠.” 소설을 쓰다 죽을 뻔한 경험을 치른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도 깊은 친분이 있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108배를 하며 세상, 민족, 평화, 북한 동포, 인도 불가촉천민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 자신이 기도한다고 세상이 변할까마는, ‘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와 같은 희망의 마음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품앗이 정신이 대단한 민족이에요. 대구만 봐도 모여드는 의사, 간호사, 봉사자들 보세요. 대구 달구벌과 광주 빛고을이 달빛동맹으로 교류하는 걸 봐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보려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걸 보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토록 남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안도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 반드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DNA가 있잖아요.” 나를 존중하고 세상을 존중하라 그는 잘 늙으려면 스스로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존중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물, 공기, 풀, 햇빛을 사랑하고 그 존엄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과 세상을 위해 깨달은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고 말한다. 이는 김홍신 자신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를 사랑 못할지언정 그에 대한 미움은 없어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면 내 전생의 어머니였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려 하면 내가 편안해져요.” 그에게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개인적 사연이 있다. 과거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그를 잡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재작년에 사망했다. 그는 그의 부고 소식이 실린 신문을 스크랩해서 노트에 붙여놓고 그 옆에 그와 자신의 사연을 썼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 방향을 향해 108배를 했다. 생전에, 그는 김홍신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죄를 구했다. 김홍신은 그런 그를 보며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문이 있었다. ‘내가 과연 그를 용서한 걸까?’ 그래서 108배를 해보며 계속 되물었다. 답은, 용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의 평화를 만드는 마음의 다짐 “지금 제가 찬 시계는 흔들어줘야 가는 오토매틱 시계예요. 이틀 가만 놔두면 죽어요. 이 시계처럼 인생도 자꾸 흔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남한테는 ‘흔들어주세요’라고 말해놓고 자신이 안 하면 안 되겠죠. 몸을 흔드는 게 아니라 마음을 흔들어야 해요. 명상과 기도, 고맙다는 감사 등이 그 방법들이에요.” 그는 요즘 모두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집에 있는 진달래, 홍매화도 스승이다. 자신을 기쁘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운 사람이 생겼다고 쳐요. ‘에휴…’ 하다가도 ‘내가 미워하면 안 되지. 잊어버리자’ 하며 다잡습니다. 그리고 저녁기도할 때 ‘내가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반성합니다. 그러면 내가 편해져요. 그러니까 그 사람도 제 스승인 거죠.” 물론 무조건 다 그의 말처럼 살 수는 없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계속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깨달음과 평화가 있음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김홍신이란 이름을 부를 때 기뻤으면 좋겠어요. 아주 기쁘진 않더라도, 싫지 않고 밉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려고 하니까 힘들게 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그걸 해내는 게 기쁨이 될 수 있는 거죠.” 마음 한쪽이 아련히 아팠다. 그렇지만 그와 이야기하면서 지금 ‘장총찬’이 절실한 이 시대에 김홍신이라는 문인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무릎을 탁 치며 늙음과 낡음이 명확히 깨달아지는 축복이 스며들었다.
- 2020-04-0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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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 미스터트롯 4인방 폭로전에 시청률 터졌다
- ‘미스터트롯’ 4인방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됐다. 지난 1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는 TV조선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활약한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게스트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임영웅과 장민호의 폭로전이 벌어져 큰 웃음을 자아냈다. 먼저 임영웅은 ‘미스터트롯’ 출연 당시 장민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동료 가수들의 ‘미스터트롯’ 출연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도 장민호는 ‘무조건 안 나간다’고 했다고. 하지만 장민호는 “진짜 많이 고민했다”며 “얘들이 나간다고 하더라.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얘들이 송가인처럼 잘 되는 꼴을 못 볼 것 같았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MC 김국진은 “그런데 결국 이들이 송가인처럼 잘됐다”고 말하자, 장민호는 “제가 그 밑에 바짝 붙어 있다. 격차가 많이 났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방송에서는 ‘미스터트롯’으로 단숨에 유명해진 미스터트롯 4인방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도 공개됐다. 임영웅은 하루에도 수백 통의 전화와 메시지를 받고 있고, 배우 김영옥까지 임영웅 어머니 가게를 찾아와 ‘찐팬’ 인증사진을 올렸다고 전해 놀라움을 더했다. 또 임영웅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고구마 장사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전했다. 무대 순서가 비일비재하게 밀리거나, 관객 1~2명 앞에서 공연하는 등 무명 시절의 일화도 공개했다. 영탁은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의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이날 쌍꺼풀 수술 고백과 더불어 ‘스타킹’, ‘히든싱어’ 등 다양한 방송 출연 경험으로 다져진 예능감을 뽐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찬원은 트로트 신동으로 다양한 오디션과 노래 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밝혔다. 이찬원은 홍진영의 남동생 가수를 찾는 오디션 ‘홍디션’에 참가했지만 빠르게 탈락했다고 밝혔다. 이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전국 노래자랑’에 4차례 나가 수상한 비법을 소개했다. 맏형인 장민호 역시 최근 인기를 실감한다며 “방송 후 2주 만에 완전 다른 인생이 됐다. 마트를 갔는데 뒤를 봤더니 어머님들이 카트를 끌고 88열차처럼 따라오시더라”고 말했다.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지금까진 핸드폰 요금 내기도 빠듯한 삶이었다. 꿈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젠 결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임영웅과 영탁은 어려운 시절 장민호가 용돈을 주거나 의상을 물려주는 등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며 자신들 역시 이찬원에게 도움을 갚는다고 말해 끈끈한 우정을 드러냈다. 한편 2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일 방송된 ‘라디오스타’ 시청률은 1부 9.3%(이하 전국 기준), 2부 10.6%를 기록했다. 2016년 10월 16일 방송된 강수지, 김완선, 박수홍, 김수용 출연편이 기록한 10.4% 이후 4년 만에 나온 두 자릿수 시청률이다.
- 2020-04-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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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스타' 영탁, "연애하고파" 솔직 고백
- ‘미스터트롯’ 선(善) 영탁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연애하고 싶습니다!”라는 솔직 발언으로 주목 받고 있다. 또한 함께 출연한 임영웅, 이찬원, 장민호의 현재 연애 상태도 공개돼 관심이 집중된다. 다음달 1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오늘은 미스터트롯’ 특집으로 꾸며진다. 영탁은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막걸리 한 잔’, ‘추억으로 가는 당신’, ‘찐이야’ 등 엄청난 가창력과 리듬 감각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탁걸리’, ‘리듬탁’ 등 다양한 별명으로 인기를 얻었고 최종 선(善) 자리까지 올랐다. 방송에서 영탁은 ‘미스터트롯’의 인기 때문에 꿈이 산산조각 났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꿈이 무엇이었을지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김구라가 “시건방진 꿈이네!”라고 말해 큰 웃음을 줬다는 후문. 영탁은 ‘미스터트롯’ 대박의 숨은 공신이 자신이라고 밝혀 궁금증을 더한다. 과거 ‘스타킹’, ‘히든싱어’에 출연한 경험으로 시청률이 잘 나오는 비법을 터득했다는 그는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특별한 행동을 실천했다고 말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영탁은 “연애하고 싶습니다!”라는 솔직한 발언으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영탁을 포함해 임영웅, 이찬원, 장민호가 출연하는 ‘라디오스타’는 다음달 1일 밤 11시 5분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2020-03-3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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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퇴계 이황의 유별했던 매화 사랑을 소개한다.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자발적 격리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의 매너가 되어버린 이 봄, 아직 상춘(賞春)할 여력은 없지만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만화방창 소식에 자꾸 엉덩이가 들썩인다. 더욱이 매화 암향으로 가득해질 계절 아닌가. 예로부터 매화를 사랑한 이는 많았다. 추운 겨울에도 매화 소식이 들려오면 술을 꿰차고 길을 나섰다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과 ‘매처학자’(梅妻鶴子·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다)라는 별호로 불릴 만큼 매화를 좋아했던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무릇 선비라면 매화의 맑은 자태를 감상하고 붓과 벼루와 술을 준비해 시 한 편씩 짓기를 원했으니,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기개와 품격을 너도나도 흠모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화를 ‘兄’이라 불렀다 우리의 옛 선조들도 이 도도한 꽃에 빠져 지낸 이가 한둘이 아니다. 강희맹, 박제가, 이덕무 등이 그랬고,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목이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도 매화의 포로가 됐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는 말을 남겼다니 그의 매화 사랑은 거의 순애보 지경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퇴계연보’에는 1570년(선조 3년) 12월 8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날 아침 (선생은) 눈을 감은 채 말씀하시기를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했다. 오후 5시 무렵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 하셨다. 부축해서 일으키니 앉은 채로 조용하게 떠나셨다.” 한번은 고향 안동에 사는 지인이 매화를 보여주겠다며 퇴계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임금의 소명이 내려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매화를 보지 못한 아쉬운 회포를 네 편의 시로 읊어 지인에게 보냈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매화가 나를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매화를 저버렸으니 그윽한 회포를 서로 펼 길 멀어졌네 멋스런 풍치가 도산 절우사에 없었다면 심사가 여러 해 전부터 또한 다 무너졌으리 梅不欺余余負梅 幽懷多少阻相開 風流不有陶山社 心事年來也盡頹 평소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 부르며 ‘혹애’(酷愛,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그는 요즘 말로 매화 마니아, 매화 덕후였다. 61세 봄에는 도산서원 동쪽에 절우사(節友社)라는 화단을 조성해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 매화를 애지중지했던 퇴계는 어느 날 시를 쓰다가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아꼈다는 도연명을 언급하면서 “매화 형은 어찌하여 거기에 끼지 못했습니까(梅兄胡奈不同參)”라고 묻기도 했다. 그가 30여 년간 쓴 매화 시는 모두 107수. 이 중 91편은 매화시첩으로 엮어 남겼다. 두향과의 로맨스는 출처 불분명 그가 단양 군수로 지내던 시기(1548), 관기였던 두향과 매화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두 사람이 만난 기간은 9개월 남짓. 이황이 얼마 뒤 풍기 군수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이후 두향은 그리움 속에서 지내다가 이황의 임종 소식을 듣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데, 그녀의 묘를 이황의 제자 후손과 지역민들이 관리해주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은 이 러브 스토리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의 문헌 어디에도 두향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없을 뿐더러, 과연 그녀가 이황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인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정비석(1911~1991) 소설가가 발표한 작품 ‘명기열전’에 소개된 이야기를 출처 확인도 없이 사람들이 사실로 믿게 된 것이라 보는 이도 있다. 실제로 단양 지방과 이황 후손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야사를 근거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소설가의 고백도 있었다. 당시 이황이 처한 입장은 을사사화, 정미사화 등이 연이어 발생한 정치적 난국 속에서 한가롭게 기생과 정담이나 주고받을 만큼 자유롭지 않았다. 어지러운 정계를 피해 도피하듯 외직을 청했고 겨우 얻은 자리가 단양 군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아내와 아들과 형을 잃는 불행한 일들이 그즈음 있었다. 퇴계는 임금에게 신망 높은 인물이었으나 관직을 사퇴하거나 임관에 응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 자연에 파묻혀 지내는 걸 좋아했던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50대에 조기퇴직(?)을 했고, 제자를 가르치고 글 쓰고 꽃나무 심는 일을 즐거워했다. 풀 한 포기에도 이름을 지어주며 의미 부여를 했다. 또 늙어 병이 들자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매화분을 옮기라 할 정도로 사물에게도 예의를 차렸다. 생이 다할 때까지 격물(格物)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도산서원에는 올봄에도 매화 향이 한가득 퍼질 것이다. 그러나 이황이 도산서당 주변에 직접 심고 키웠다는 고매(古梅)는 죽어버려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서운하다.
- 2020-03-30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