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한 달 여행’ 시리즈는 ‘길 위에 오두막 별장 만들기’다. 한 달간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피레네 산맥을 등에 기대고 사는 프랑스 산간 마을, 생장피에드포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준비를 한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프랑스 페이 바스크의 아름다운 소읍, 생장피에드포르
프랑스의 남서부, 스페인과 이웃한 작은 도시가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다. 이 산간 마을의 이름은 페이 바스크(Pays Basque)다. 분명 프랑스령이지만 국가에 완벽하게 귀속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전통 색깔을 강하게 지켜나가는 바스크인의 영토다. 이들은 피레네 산맥 지역에 사는 소수 인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다. 1000년도 넘은 천년고도 ‘생장’에는 바스크 지방의 특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암 벽돌로 지은 바스크식의 아름다운 가옥들. 건물마다 이름을 새겨놓은 것도 바스크의 전통이다. 마을은 그림 같다. 성당의 종탑에서는 미사의 종소리가 울리고 맑은 니베 강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이 마을엔 사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야고보의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을 준비를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산티아고’까지 총 800㎞를 걷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필자가 머물던 숙소지기는 “완주하고 나면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는 말로 격려한다.
고산에 피어난 야생화에 고단함을 푸는 시간
‘생장’을 벗어나 ‘운토’ 마을에 이르면 넓은 호밀밭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 그림 같은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 이 지역은 고도여서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자연 조건이 좋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초기에는 유목민이었다가 서서히 정착생활을 해나갔다. 아름다운 고원의 풍경에 빠져 걷다 보면 첫 번째 사설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숙소)인 ‘오리손(Orison, 770m)’을 만난다. 올드 팝이 들리는 깔끔한 바다를 마주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의 휴식을 가진 뒤에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가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과 가파른 산길만 있다. 걷는 길이 힘겹지만 가끔 벗이 되는 것들이 있다.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 군락지다. 4월에는 주목나무 잎을 가졌지만 골담초처럼 노란 꽃을 피워내는, 가시 박힌 나무가 온 산하에 펼쳐진다. 벤타르테아 언덕(Collado de Bentartea, 1344m)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깜짝 놀란다. 한국의 깊은 산에서만 보던 얼레지와 흡사한 야생화가 피어 있기 때문이다. 피레네 산맥에 피어난 아름다운 보랏빛 꽃은 여린 꽃잎을 파르르 떨고 있다.
봄의 잔설과 약수터에 서린 ‘롤랑’의 전설
이 고갯길부터는 우측 능선이 확 트여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운무 자욱한 평원과 저 멀리 있는 고산의 산정엔 봄철까지 눈이 남아 하얗다. 넓은 초지 사이로 몇 채의 목장 건물이 들어앉아 있고 고원의 바람 따라 구름도 함께 춤을 춘다. 행여 산정을 못 넘는 순례자를 위해 바위 틈새에는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들고 휴식을 취하는 곳. 체하지 말라는 듯 ‘롤랑(Roland)의 샘’이 반긴다. 롤랑 백작이 이 산맥을 넘을 때 마셨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약수터 이름이다. 이 약수터를 기점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뉜다. 롤랑은 11세기(혹은 12세기 초)에 씌인 중세 유럽 최대의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이다. 롤랑은 프랑스 샤를마뉴(742~814) 대제의 군대를 이끌고 론세스바예스 요새로 가다가 미리 매복하고 있던 바스크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샤를마뉴 대제가 바스크족을 전멸했다는 게 이 서사시의 주요 스토리다. 이 작품이 전설인지 실화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롤랑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스크족의 요새,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약수터를 지나면 피레네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레푀데르 언덕(Collado de Lepoeder, 1430m)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고갯길을 조금 내려오면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지고 팻말이 나온다. 한쪽은 3km이고 다른 길은 3.6km. 어느 쪽을 선택하든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길은 일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힘겹다. 딱 봐도 롤랑 장군이 단련된 바스크족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고개를 내려서면 산맥의 협곡 깊숙한 곳에, 외따로 자리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이 있다. 여전히 요새와 같은 곳. 안내소와 두 동의 알베르게, 식당 두 곳, 서점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다. 어쨌든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일단 발을 뗀 이상 포기할 수도, 되돌아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오직 두 다리로 걷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변화무쌍한 이곳의 봄 풍치는 평생 기억에 남는다.
Travel Data
교통편 파리로 입국하는 게 가장 좋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 역까지 테제베를 이용하고, 바욘 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가는 두 량짜리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
걷는 코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운토(Hunto, 5km)-오리손(Orison, 3km)-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17km). 총 25km.
현지 정보 ‘생장’에 도착해 ‘산티아고 협회’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순례자 증명서를 준다. 협회에서는 그날 묵을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도 정해준다. 피레네 산맥은 고지대라 거의 산행에 가까우므로 트레킹화보다는 등산화가 좋다. 해빙기 때는 눈이 남아 있고 길도 질퍽거리는 데다 기후 변화도 잦다. 또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빵, 음료 등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영 자신이 없다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이동한 뒤 순례를 시작하면 된다. 배낭은 절대적으로 가벼워야 하고 힘들 경우 배낭을 미리 보내면 된다.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의 길(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은 생장~산티아고까지 총 800km다. 완주하는 데 한 달 정도 예상하면 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카미노(camino)’ 한마디면 다 통한다.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road)’이라는 뜻이다. 카미노 여행의 매력적인 장점은 기간 대비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내 발로 걸으니 교통비도 들지 않고,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사용료도 매우 싸다. 이곳에서 취사, 세탁 등을 다 해결할 수 있다.
여행 적기 ‘산티아고 성인의 날’은 7월 25일. 이때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봄과 가을이 가장 좋다. 겨울은 절대 ‘비추’다. 많은 한국인이 준비 없이 떠나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스페인 친구가 전해주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이 여행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빨리 완주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속성이다. 욕망이 앞서면 결코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없다. 힘들면 코스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가장 좋은 10일 코스를 선택하고 스페인 일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페인은 한 달 이상 여행할 가치가 있는 나라다.
직장이나 일거리가 있어 일정한 소득이 발생하면 그 범위 안에서 쓰고 확실한 장래 수익이 예정되어 있으면 앞당겨 써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 새로운 수익이 없거나 적을 때, 저축하여 둔 돈에서 쓴다면 그 쓰임새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생각 없이 쓰다 보면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종종 경험한 일이다. 분수에 맞게 절약하는 일이 시니어 경제생활의 지혜다.
근래에 “Downsizing”이란 말이 많이 회자한다. 기업체를 비롯한 조직에서나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 맞게 쓰임새를 줄여야 함을 이른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수입이 줄어든다면 맞춰 생활해야 한다. 모아둔 돈을 쓰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이 나기에 십상이다. 금리가 바닥인 요즘엔 더더욱 그렇다. 우리 속담에 “곶감 빼 먹듯 하다”란 말이 있다. 달콤하여 한둘 먹다 보면 앙상한 꼬지만 남게 된다. 소득이 없거나 적은 경우엔 수입 범위 안에서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너무 옹색할 필요는 없어도 분수에 맞지 않은 지출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절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방법을 실천하는 일이다.
필자는 그런 일의 하나로 이발을 아주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이용한다. 고향 청학동 마을 어르신들이 상투를 틀고 지내는 것처럼 이발하지 않고 길게 기르는 방법도 있겠다. 그렇게 사는 분들을 주변에서 보기도 하여 그런 방법으로 머리를 관리해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필자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처럼 손질하기로 했다. 일반 이발소를 다니다 안사람의 권유로 미장원을 이용해왔다. 지난해 여름부터 머리 깎는 장소를 바꿨다.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이발관이다. 이 근처엔 이발관이 눈에 띄게 많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지역임을 참작해선지 3,500원을 받는다. 이발 솜씨도 양호하다. 이발사는 중.장년층으로 가위질에 빈틈이 없고 손님들이 대부분 만족해한다. 5천 원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 1천 원을 봉사료로 주기도 한다. 머리를 깎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필자는 이 근처에서 모임을 하는 기회가 많아 이곳에 들릴 때 시간을 내어 머리를 깎게 되기에 시간과 이발료를 절약한다. 종전에는 동네 미장원을 주로 이용하였고 1만원에서 12,000원을 주었다. 지금은 3,500원으로 해결하기에 1회에 8천 원 정도를 아끼는 셈이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나가면 이발을 하고 명화 한 편(인근에 있는 실버극장 입장료 2천 원)을 보고 시래기 해장국(2천 원)에 막걸리 한 병을 즐길 수 있다. 이발은 3개월에 4회 정도 하게 되므로 1년이면 128,000원이 절약된다. 절대 금액으로는 크지 않지만, 못 먹어 굶주리는 난민촌의 아이 한두 명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금액이다.
한가로운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 우대로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지역이다. 시니어들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실버극장을 비롯한 볼거리, 값싸면서 질도 괜찮은 먹거리도 있어 나이 든 분들이 많이 모여든다. 필자가 다니는 이발관은 늘 손님이 대기하고 있다. 보통 하루에 30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필자의 머리를 손질한 이발사가 귀띔한다. 소득에 맞게 지출하려는 시니어 경제생활의 일면을 본다. 은퇴하고 난 직후는 과거의 생활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과거의 생활 방식에서 현실에 맞는 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절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는 것도 은퇴 후 지혜로운 경제생활이다.
노인의 나이기준이 65세다. 유엔이 정했다고 하지만 왜 하필 65세인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가 독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면서 지금 열심히 일하면 65세 이후부터는 국가가 연금으로 놀고먹도록 해주겠다고 설득한 나이가 노년의 기준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강력한 부국강병정책을 써서 1871년 독일 통일을 완성한 사람이다. 노인이 되면 국가가 책임진다면 구미가 당기는 말이지만 그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이 40대라고 하니 비스마르크 입장에서는 책임지지 못할 거짓말을 했다고 믿기도 어렵다. 아니 지킬 수 있는 약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명100세 시대에 아무리 젊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도 35년을 국가가 국민 전부를 책임져주기는 어렵다.
법이 정하는 노인의 나이가 되면 노인복지 차원에서 혜택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공도사'라는 별명이 있는 지하철 무임승차다.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아 전국의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특별히 마련된 경로석에 앉을 권리가 있다. 서울처럼 지하철 노선이 잘 발달된 지역에서는 교통비 걱정에서 거의 해방된다. 이 카드를 활용하여 노인들의 지하철 택배 직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전철을 타고 춘천에서 막국수도 먹고 온양에서 온천욕도 즐기는데 들어가는 교통비가 없다.
다음으로 국공립의 능원, 고궁박물관이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영화관에서도 활인요금이 적용 된다. 항공요금도 20%나 활인이 되고 이발소나 목욕탕에서 자율적으로 활인해 주는 곳이 있다. 추석이나 설날 등 특별한 날에 경로행사의 음식을 대접 받기도 하고 효행 음식점에서 할인된 가격의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점도 많다. 대표적으로 취업에서 대부분 배제되어 강제로 정년퇴직을 당해야 한다. 심지어 아파트 경비나 청소부도 개인면접이라는 좁은 구멍을 통과하면서 건강하다는 것이 보증되어야 취업이 가능하다.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국가나 지방단체에서 지원하는 무료 교육이나 재취업, 창업 교육에 대부분 참가자격이 박탈된다. 공공 근로에 있어서도 체력이나 인지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듣기 좋은 말로 ‘시간부자’라고 하지만 지루한 날의 연속이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다. 65세의 노인의 나이가 되면 신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오는가? 실제로 직접 겪어보니 65세가 되었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몸의 변화가 확 일어나는 것은 없다. 사람의 노화가 완만하게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수평을 유지하다가 계단식으로 주춤주춤 진행된다. 즉 어제와 오늘은 같지만 3년 전과 오늘은 다르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건강차이는 늙어갈수록 갭이 점점 더 벌어지는데 최고의 건강관리는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친구들이나 주위의 노인들을 보면 일이 있는 사람은 노화의 속도가 느리지만 모든 역할에서 배제되어 할 일 없이 공원을 산책하듯 배회하는 노인의 노화의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진다. 노인에게도 감당할 일거리를 주는 것이 직접적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튼튼히 한다. 건강해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도 65세 노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경로석으로 모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노인의 일감을 개발하여 개인으로는 소득을 창출토록 하여 소비대열에 서게 하고 국가적으로는 놀고먹는 사람을 줄여서 생산성을 높이는 대열에 건강한 노인을 편입시켜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노년의 기준 65세 그냥 기준에 불과하다.
어젯밤에는 ‘이자카야’ 데이트 나갔던 아들, 며느리가 들어오는 걸 모르고 잠이 들었다. 팔짝거리며 뛰어다니는 아기들 때문에 잠이 깼다. 17개월 된 손자가 누나가 하는 대로 따라서 뒤뚱뒤뚱 쫓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오늘도 역시 화창하고 환한 바깥 풍경이 감동을 준다.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그림같이 예쁘다. 가끔 뎅 뎅 종소리가 울리는 하얀 교회당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결혼식을 주로 한다는데 이곳에서 결혼한 부부는 평생 평화롭게 잘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옆으로 수영장과 맞닿은 곳의 너르고 푸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쉽기만 하다.
여행을 할 땐 미리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얻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호텔에서 외출할 때 문밖에 초록색 카드를 붙이면 방 정리만 원하고 청소는 안 하겠다는 에코 클린 표시라고 한다. 그러면 메이드는 방 정리만 해주고 호텔 측에서는 500엔짜리 쿠폰을 2장 준단다. 이 쿠폰으로 호텔 쇼핑센터에서 기념품 등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으니 좋다며 며느리가 웃는다. 알뜰하고 현명한 며느리가 예쁘다.
600엔짜리 작고 귀여운 수호신 ‘시사’를 3개 사면서 쿠폰을 사용했다. 초록색 ‘시사’ 하나는 내가 가졌다. 그들의 이런 작은 서비스가 고객을 즐겁게 하고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 같다. 여행 마지막 식사로 일본 가정식을 먹은 후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서는데 왜 그리 아쉬운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다음에도 여행을 한다면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 오키나와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매우 작은 차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 관광지만 다녀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거리는 깨끗했으며 도로 위의 차는 우리나라 티코 정도의 차들이 많았다. 본받을 만한 점인 것 같았다.
1시 반 비행기라 서둘러 나서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웠다. 렌트할 때 기름이 가득 차 있었던 만큼 돌려줄 때도 그만큼 채워서 반납해야 한다. 3박 4일 동안 300km 정도를 다녔고, 주유비는 3만원이 나왔다. 렌트비가 26만원이고 주유비가 3만원이니 교통비로 30만원밖에 안 드는 편리한 이동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를 반납한 후 셔틀버스로 ‘나하’ 공항으로 가니 우리가 탈 아시아나 비행기가 바람 때문에 연착해 1시간 정도 늦어질 거라고 한다. 오히려 잘됐다며 우리는 느긋하게 면세점에서 선물과 초콜릿 등을 사며 기다렸다.
오키나와는 일본 내에서도 여러모로 독특한 지역이다. 과거 존재했던 독립국 류큐 왕국이 일본에 포함된 지 채 200년이 되지 않아서 류큐 왕국의 유산, 독특한 문화, 그리고 남국의 자연 풍경 등 볼거리가 많아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원래 류큐 왕국의 중심지는 ‘슈리’ 로 ‘슈리 성’이 있기도 한데 일본에 병합된 후에는 ‘나하’가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오키나와 전투의 아픔이 있기도 하고 주일 미군기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도 한다. 어쨌든 오키나와에 대한 인상은 매우 좋았으므로 다음 기회에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어린 손자 손녀와 함께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께는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박 4일 동안 주차비는 하루 9000원으로 36000원이 나왔다. 집에 왔는데도 여행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참 즐겁고 편안했던 가족 힐링 여행이었다. 벌써부터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이번에 부산 노사발전위원회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사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강사료와 교통비는 준다고 했지만 과연 멀리 부산까지 가야한다는데 부담이 생긴 건 사실이다. 더구나 한창 휴가철이다. 거절할 명분도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처럼 멀리 부산까지 가는데 여름휴가 차 며칠이나 또는 일박이라도 할 생각도 했었다. 부산에는 지금까지 5번 정도 갔다 왔는데 그동안 많이 변해서 볼만한 곳도 많고 도시 자체가 휴양지라서 관심이 있었다.
우선 누구랑 같이 내려가는 방법이 있는데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남자들은 아직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일을 빠질 수 없다. 놀고 있더라도 마침 휴가철이라 이미 휴가를 즐기고 있거나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또 남자들은 지나치게 과음을 해서 아침에 깨고 나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몸도 무겁고, 속도 안 좋고, 머리는 아픈데 서울 올라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해진다. 여자의 경우는 남자랑 일박 여행을 할 만한 여자를 구하기는 어렵다. 구한다 해도 방을 따로 잡자니 경비가 2배이고, 같은 방을 쓰자니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혼자 내려가서 부산의 지인들을 만나는 계획도 생각해 봤다. 그간 부산에 내려 간 것은 대부분 일 때문에 내려갔는데 그 때는 내가 갑이었다. 당연히 대접 받을 자격이 있었으므로 잘 먹고 거기서 끝난다.
그런데 지금 부산에 사는 지인들은 갑을 관계가 아니다. 부산 내려 왔다고 하면 반갑게 맞아 줄 사람들은 몇 명 있다. 저녁에 해변 횟집에서 바닷바람 맞아가며 술이라도 곁들이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서울 올라와서 내게 연락하면 나도 신세를 갚아야 한다. 돈 들어가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 사람이 연락해 왔을 때 내가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입장이 난처해진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난다고 하면 대단히 섭섭해 할 것이다. 더구나 내가 부산에 내려 갈 일보다는 그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 올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혼자 부산 여행을 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은 관광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지도 한 장 놓고 목적지를 정하고 전철 타고 가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폭염 속에 고생하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포기했다.
숙박업소를 찾는 것도 휴가철이라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사시사철 외국 관광객들로 넘치는데 더구나 휴가철 아닌가. 숙박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혼자 비싼 호텔에서 청승을 떨 생각을 하니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잠들면 그만인데 숙박료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회사 다닐 때 경비 처리 될 때와도 다른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바람처럼 내려갔다가 혼자 올라오는 것으로 정리했다. 모처럼의 기회를 몸만 피곤하게 당일로 갔다 온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최선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전혀 부담 안 주고 나도 홀가분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소득이다. 계절적으로 이렇게 너무 덥지만 않았다면 다음에는 혼자 여행 계획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강의 요청이 없더라도 부산에 일부러 여행 계획을 잡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하다 보면 다음에는 먼저 나서서 꼭 같이 가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갑자기 생긴 일이라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서 그렇지, 나도 일부러 관심을 갖고 사람을 찾아보면 같이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비 일체를 내가 댄다는 조건을 내걸 것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장마는 사라지고 연일 태양이 작열한다. 열대야로 잠을 재대로 잘 수 없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뒤척일 수 있어 그런대로 길고 더운 여름밤을 버텨낼 수 있다.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히지만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거실 구석에 하나 서 있고 안방 벽에 하나 걸려있지만 몇 년 째 가동한 적이 없다. 전기세가 문제가 아니라 여름엔 땀을 흘려야 된다는 논리로 가동을 못하게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워낙 필자의 고집이 강경하므로 다들 선풍기로 버티고 있다. 이제 입추도 지났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하니 모두 어이없어 한다.
어제 부모님 댁에 들어서는데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저층 연립주택에 사시는데 앞뒤 동 간격이 좁고 저층이라 집안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다. 선풍기가 몇 대 돌아가긴 했지만 엄청 더웠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두 분이 더위로 고생하시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더니 전혀 문제없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침 드시고 나서 근처 중랑천 변 그늘로 가신다고 했다. 그곳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로 오전시간을 보내신 후 오후에는 복지관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저녁까지 지내시다가 들어오신다고 했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특별한 피서를 하고 계셨다. 그것은 ‘무료 전철피서’ 아주 긴 노선을 택해서 하루 종일 시원한 전철 여행을 하고 계셨다. 우선 아버지 혼자 하는 여행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한다. 중랑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 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탄다. 한 시간 이상 걸려서 수원에 도착하면 인천 행으로 갈아타고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소래포구 시장 구경을 하고 인근 다리 밑 그늘에서 쉬고 도시락을 드신다. 다리 밑에는 의자를 많이 설치 해 두어서 편하고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가실 때는 전철 1호선을 타고 온양까지 가신다고 했다. 온양 온천에는 전국에서 모여 든 노인들이 점령했다고 한다. 온천 후 점심 드시고 시장 구경도 하시고 느긋하게 전철타고 서울에 도착하면 저녁. 하루 여행으로는 제격이고 가고 오는 동안 시원한 전철에서 피서할 수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가끔 복지관 친구 두 분과 전철여행을 하신다고 했다. 일산에 사시는 분이 계셔서 일단 종로3가에서 모인다. 오전 열시쯤 만나서 서울 역으로 이동한다. 서울 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인천 계양까지 가서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탄다. 원인재 역에서 오이도행 열차를 갈아타고 가다가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시장에서 우럭 두 마리를 구입해서 식당에 가져가면 매운탕을 끓여준다. 막걸리 한 병 놓고 식사하신 후 시장 구경하고 노선을 거꾸로 타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1인당 회비는 이만 원인데 몇 천원이 남는다고 한다.
전철피서의 하이라이트는 춘천 행 열차를 타는 것. 춘천 역에 내리면 인근에 닭갈비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신다. 식사 후에는 닭갈비집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승합차를 타고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유명한 박사동네, 소양강 처녀동상, 소양호를 두루 구경한다. 구경 후에는 춘천 역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준다는데 이 모든 서비스가 공짜란다. 단, 일행이 여섯 명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한다. 그래서 춘천에 가실 때는 여러 명이 모여서 간다고 하셨다.
65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전철 무료서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노인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교통비 부담 없이 시원한 피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노인들의 정신과 육체건강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쇼핑하는 아내를 따라다니는 것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의 스트레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중국 어느 백화점에서 쇼핑광 애인을 따라다니던 청년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살한 일이 있었다. 양손에 쇼핑백을 잔뜩 든 채로 몇 시간 동안 따라다니다가 난간에서 몸을 날린 사건이었다.
필자는 결혼 초부터 아내와 쇼핑을 나갔다가 온전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온 기억이 거의 없다. 쇼핑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성질이 대폭발해서 심지어 따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뭔가 사려고 마음먹고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가면 그 제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서 오면 된다. 그런데 아내는 곧바로 필요한 제품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것을 보고 다닌다. 심지어 필자 와이셔츠를 사러 가자고 해 놓고 여자 옷 코너를 다 돌고 가전제품, 가구, 화장품 코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나서 마지막에 와이셔츠매장으로 간다. 와이셔츠도 행사상품 매대에서 한참 동안 고른다.
그나마 저렴한 제품은 이 정도의 과정으로 구입하나 조금 가격이 나가는 제품을 아내가 사는 과정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일단 이 경우도 목적한 제품이 있는 층으로 곧바로 가지 않는다. 여기저기 상관없어 보이는 제품을 둘러 본 후에 해당 제품을 보러 간다. 그리고는 꼼꼼하게 살핀 후 그냥 집으로 온다. 집에 와서 여러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동일 제품의 가격을 비교한다. 그러고 나서 백화점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사이트에서 제품을 구입한다.
아내의 이런 쇼핑 행태는 필자를 극도의 스트레스로 몰아간다. 특히 이해 가지 않는 것은 백화점이나 할인점을 돌아다닌 시간과 교통비 등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바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면 시간도 줄이고 교통비도 절약하는 효과가 있을 텐데 시간, 돈 낭비하면서 굳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내는 이상하게도 쇼핑갈 때마다 필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과 마지막에는 서로 얼굴을 붉힌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매번 쇼핑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럴 때마다 따라나서는 필자가 더 이상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몇 년 전 그날도 아내가 옷 하나를 살 게 있다면서 쇼핑을 가자고 했다. 할인점 하나를 통째로 다 돌고 나서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면서 다른 할인점을 가자고 할 때부터 필자는 이미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다른 할인점도 여기저기 다 구경하고 나서 옷 코너로 가더니 통로에 놓인 매대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면서 감정을 자제하고 있던 필자는 그날 드디어 득도[得道]하게 되었다. 할인점에서 옷 하나 고르는 데도 저렇게 신중하고 따지고 하는 여자. 그러고 보니 그동안 쇼핑 나와서 다툰 것이 모두 아내의 그런 신중함과 꼼꼼함 때문이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심장에서 ‘징’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평생 반려자로 필자를 택하려고 했을 때는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까. 그날 이후 아내와 쇼핑하러 다니는 것이 더는 필자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말을 하는 한, 그 우리말에 한자어가 들어 있는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새기려면 한자의 어원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린 상형(象形)을 비롯해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른바 육서(六書)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할 때 쓰이는 孝라는 글자는 老[늙을 로]와 子[아들 자]를 합쳐서 만든 회의자라고 합니다. 글자 자체에 아들(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10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자녀 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는 위정(爲政)편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에 말하는 효는 봉양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 개나 말들도 집안에서 봉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개나 말들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던데, 공자의 시대에도 벌써 이렇게 ‘요즘 세태’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효도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효의 전통이 무너진 지 오래이고 효도를 하려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효도는커녕 부모를 버리는 걸 넘어 살부 살모의 존속살해 범죄가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5월 1일부로 강제적인 ‘효도법’이 발효됐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나쁘게 매겨 집을 사거나 도서관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부모가 불효자식을 고소할 수 있고 양로원이나 요양원 노인들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양로원·요양원 측이 장기간 부모를 방기하는 자식들에게 찾아오라고 연락하는 것도 의무화했습니다.
베이징(北京)과 광둥(廣東)성 장쑤(江蘇)성 등은 이미 2013년부터 노인권익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정기적으로 찾아뵙지 않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들을 고소하거나 정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대 국회에 효도법(이른바 ‘불효자 방지법’) 법안 2건이 제출됐다가 국회 폐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는 자녀에게는 상속세 증여세를 경감해주고,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그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 민법 556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없다’(민법 558조)는 조건도 달려 있지요.
하지만 사실상 부모가 자녀의 범죄·패륜 행위나 불효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원이 이미 작성되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 계약을 중시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의된 개정안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물론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까지 포함해서,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미 증여한 재산도 전부 회수할 수 있도록 보완했는데, 사실상 민법 558조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인 셈입니다.
또 형법상의 존속폭행죄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때는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 조항을 삭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정서상 부모가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처벌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어 현행 법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증여 해제권 행사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해제 원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또는 증여한 날부터 5년’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은 부모에 대한 배신이나 배은망덕한 행위가 있을 때 부모가 증여한 재산을 1년 이내에 돌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답니다.
이런 ‘불효자 방지법’은 내년이 대선의 해이므로 노인층의 표를 겨냥한 정치권이 다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더 활발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효도법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지요. 땅 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경우 부모를 자주 찾아뵙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가 봅니다. 비행기나 열차 교통비 마련은 둘째 치고, 며칠 이상씩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비를 받고 대신 찾아가주는 ‘부모님 방문 서비스’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영리하니 새 법이 발효되면 이런 것들보다 한층 더 기발한 ‘효도사업’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의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효자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전남 담양에 살았던 전우창(全禹昌)의 효행을 읊은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 “상분도천(嘗糞禱天) 못 다하야/단지용혈(斷指用血) 하는구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운명하려 하자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옛 글에 나타난 효행 중 대표적인 것은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엔 문안(問安)을 드리고, 동온하정(冬溫夏凊), 겨울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병이 나시면 상분도천, 단지용혈로 간병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삼년시묘(三年侍墓)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정성에서 우러나고 자발적인 효심으로만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孝는 본받는다는 ‘效(효)’이면서 가르친다는 ‘敎(교)’일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걸 내 자식에게 보여줘야 나도 나중에 그렇게 효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돼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실제로 그렇게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면 글에 실속이 없고 거짓과 과장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썼습니다.
방송이나 잡지들이 꿈의 도시 제주에 자리 잡은 일반인과 연예인을 앞다투어 취재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수시로 걷는 사람, 특수과일농사로 일하면서 비용 창출하는 사람,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맛있는 제주특산물로 식사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특히 제주의 예쁜 바다 색깔을 보면 마음이 상당히 흔들릴 때도 있다. 사는 도시에서 뻔질나게 쏘다니던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면 서울은 배울 곳도,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매우 많다. 나이 든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가족이나 지인들이 근처에 있는 것에 편안함과 기존에 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느끼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장수 예상 나이의 규정하는 것 중에는 화장기없는 얼굴로 슬리퍼 끌고 나오라 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냐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큰 제주이주는 꿈도 못 꿀 내용이라고 여긴다.
죽기보다 싫은 출근을 여행 다녀와서 바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난번 날씨 때문에 제주국제공항이 마비된 사건 이후로는 제주지하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제주는 기후가 나쁜 곳이다. 여행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거기 산다? 주저하는 사람 투성이일 것이다.
교통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제주 사람이 서울에서 모임 있을 때 와서 몇만원 짜리 저녁 식사하면서 15만원 짜리 밥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가항공을 주 중에 노리면 비행기 항공료가 저렴하다고 하나 제주 사람이라고 항상 주 중에만 다닐 수 없는 거 아닌가.
IT도사? 필자에게 이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견 필자는 IT도사일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먹고사니 나름 IT도사 아니겠는가?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인생을 사는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은 과거의 특수한 경험이나 트라우마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퇴직하면서 이 말대로 삶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살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필자는 1999년 40대 중반에 은퇴하고 인생 2막을 준비하려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3년 정도 열심히 팠는데 상담으로는 2막을 시작하기 쉽지 않았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필자는 교육받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그래서 기관마다 회원으로 가입해 교육이란 교육은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다. 여성능력개발원, 구청 사이트, 문화원 등등.
그리고 그중엔 고용센터에서 취업 전략으로 교통비와 식비까지 주면서 무료로 하는 강의도 있었다. 필자는 이를 통해 ‘쇼핑몰 제작과 운영과정’을 배웠다. 그 과정 안엔 포토샵, 일러스트, HTML, 플래시 등 과목이 있었다. 난 사진작가이기에 포토샵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할 줄은 몰랐고 다른 것은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처음 교육이 시작된 날 책을 보니 그 난이도가 ‘심오’ 그 자체여서 아차 싶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듣기로 했다.
첫 시간이 끝나자 필자의 뇌리에 남은 단어는 ‘멍’하고 ‘우왕좌왕’.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젊은 친구들에게 체면 불고하고 물어댔다. 그런데 문제는 40대 여성 한명도 계속 묻는다는 것. 필자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짜증났겠는가? 강의실 뒤에서 짜증 섞인 소리가 들리고, 들린 듯하다. 마침 앞에 앉은 아가씨가 착해 그 아가씨를 무척이나 귀찮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나고 나니 눈치가 보여 묻는 것을 줄이고 집에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는 그런대로 할 수 있었으나 플래시는 조금만 잘못 클릭해도 전혀 진행이 안 돼 무척 고전했다.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수업 땐 잘되다가 집에만 가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독자 학습은 포기하고 다음 날부턴 다시 앞에 앉은 아가씨를 괴롭혔다. 밥을 사줘 가면서….
많은 시니어는 잘못될까 봐 기계 만지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잘못되면 돌아가면 되고 잘못되면 까짓 서비스센터에 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하니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014년 회원 가입된 여성능력개발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서울시에서 은퇴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당연히 원서를 냈고, 사진작가로서 인터넷을 할 줄 안다는 스펙으로 합격해 홍보팀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곳에서 모 기업 동우회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 이 사람을 통해 해당 동우회에서 일하게 됐다. 만약 컴퓨터를 못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동우회에서 사무자료 작성을 제대로 하려면 엑셀 능력이 필요해 퇴근 후 고용센터 내일배움카드로 학원에서 엑셀을 무료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한 덕에 사무자료 작성, 소식지 편집, 행사 사진 촬영, 홈페이지 사진 관리 및 편집을 전혀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