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나 일거리가 있어 일정한 소득이 발생하면 그 범위 안에서 쓰고 확실한 장래 수익이 예정되어 있으면 앞당겨 써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 새로운 수익이 없거나 적을 때, 저축하여 둔 돈에서 쓴다면 그 쓰임새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생각 없이 쓰다 보면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종종 경험한 일이다. 분수에 맞게 절약하는 일이 시니어 경제생활의 지혜다.
근래에 “Downsizing”이란 말이 많이 회자한다. 기업체를 비롯한 조직에서나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 맞게 쓰임새를 줄여야 함을 이른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수입이 줄어든다면 맞춰 생활해야 한다. 모아둔 돈을 쓰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이 나기에 십상이다. 금리가 바닥인 요즘엔 더더욱 그렇다. 우리 속담에 “곶감 빼 먹듯 하다”란 말이 있다. 달콤하여 한둘 먹다 보면 앙상한 꼬지만 남게 된다. 소득이 없거나 적은 경우엔 수입 범위 안에서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너무 옹색할 필요는 없어도 분수에 맞지 않은 지출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절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방법을 실천하는 일이다.
필자는 그런 일의 하나로 이발을 아주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이용한다. 고향 청학동 마을 어르신들이 상투를 틀고 지내는 것처럼 이발하지 않고 길게 기르는 방법도 있겠다. 그렇게 사는 분들을 주변에서 보기도 하여 그런 방법으로 머리를 관리해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필자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처럼 손질하기로 했다. 일반 이발소를 다니다 안사람의 권유로 미장원을 이용해왔다. 지난해 여름부터 머리 깎는 장소를 바꿨다.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이발관이다. 이 근처엔 이발관이 눈에 띄게 많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지역임을 참작해선지 3,500원을 받는다. 이발 솜씨도 양호하다. 이발사는 중.장년층으로 가위질에 빈틈이 없고 손님들이 대부분 만족해한다. 5천 원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 1천 원을 봉사료로 주기도 한다. 머리를 깎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필자는 이 근처에서 모임을 하는 기회가 많아 이곳에 들릴 때 시간을 내어 머리를 깎게 되기에 시간과 이발료를 절약한다. 종전에는 동네 미장원을 주로 이용하였고 1만원에서 12,000원을 주었다. 지금은 3,500원으로 해결하기에 1회에 8천 원 정도를 아끼는 셈이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나가면 이발을 하고 명화 한 편(인근에 있는 실버극장 입장료 2천 원)을 보고 시래기 해장국(2천 원)에 막걸리 한 병을 즐길 수 있다. 이발은 3개월에 4회 정도 하게 되므로 1년이면 128,000원이 절약된다. 절대 금액으로는 크지 않지만, 못 먹어 굶주리는 난민촌의 아이 한두 명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금액이다.
한가로운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 우대로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지역이다. 시니어들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실버극장을 비롯한 볼거리, 값싸면서 질도 괜찮은 먹거리도 있어 나이 든 분들이 많이 모여든다. 필자가 다니는 이발관은 늘 손님이 대기하고 있다. 보통 하루에 30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필자의 머리를 손질한 이발사가 귀띔한다. 소득에 맞게 지출하려는 시니어 경제생활의 일면을 본다. 은퇴하고 난 직후는 과거의 생활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과거의 생활 방식에서 현실에 맞는 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절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는 것도 은퇴 후 지혜로운 경제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