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방황하는 치매노인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보호자로부터 떨어진 노인을 발견했을 때에는 경찰이나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없이 무작정 보호하면 노인복지법 위반으로 실형에 처해질 수 있다. 선의를 갖고 보호한다 할지라도 신고의무는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치매노인의 보호를 경찰에게 의지하는 정책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치매 질환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는 데다, 치안 기능 저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서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노인을 데려가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11일 진행된 ‘제3차 아셈 노인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에서는 이에 대한 싱가포르의 흥미로운 정책이 소개됐다. ‘지역사회에서 나이들기(Ageing in Place)’를 주제로 진행된 이 행사에 참여한 사브리나 룩칭엔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교수는 발표를 통해 자국의 ‘고 투 포인트(Go To Point)’ 정책을 소개했다.
고 투 포인트는 수퍼마켓 체인 등 일반인들이 쉽게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장을 치매 환자를 안내할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단지 시설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 투 포인트로 계약된 회사의 직원들은 치매 환자를 응대하고 보호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유통회사인 페어프라이스(FairPrice)와 쉥시옹(Sheng Siong)의 직원 1000명 이상이 지난해 7월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았다.
사브리나 룩칭엔 교수는 “고 투 포인트는 길 잃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치매환자에게 필요한 휴식과 음식을 제공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요양과 관련한 정보 제공의 기능도 있고, 24시간 운영되는 매장을 통해 돌봄 공백을 보완하는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는 지역에서 나이들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들이 논의됐다.
티티 맷슨 스웨덴 룬드대학교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나이들기가 스웨덴 돌봄 정책의 근간이나 돌봄이 필요해지는 노년의 후기에는 시설 돌봄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책 유연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에드가 리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연구원은 “지역에서의 나이들기가 반드시 살던 지역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시설 입주뿐만 아니라 거주지 이전도 고려 대상이어야 한다”면서, “다만 거주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산의 관리, 장소의 적절성, 노후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공간 확보 등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익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이사장은 “지역에서 나이들기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집에서 요양과 의료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택개조 지원이나 독신자 아파트 지원 등의 제도가 필요한데, 주택 개조의 경우 소요가 최소 200만 채 이상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행사는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주최로 12일까지 로얄호텔 서울에서 진행된다.
바야흐로 백세시대를 맞아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기능사를 시작으로 실무 경력을 쌓아 산업기사, 기사까지, 인생 2막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니어들이 다시 펜을 들고 ‘열공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시니어들이 자격증 취득에 힘쓰는 이유는 은퇴 후 재취업·창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900만 명을 넘어서며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자격증 취득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위한 중요 ‘스펙’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표한 ‘2022년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50세 이상 국가기술자격 취득자는 2021년 11만 9413명으로 2017년 6만 3795명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시니어들의 자격증 공부를 방해하는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필기를 하면 할수록 뻐근해지는 손목이다. 장시간 필기도구를 움켜쥐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이미 30여 년 동안 일하며 약해진 손목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이다.
이는 ‘손목터널증후군’과 같은 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약 71%(12만 716명)가 5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에서 다발하는 경향을 보인 만큼 자격증 시험 준비 등 손목을 자주 쓸 일이 있다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 내부에 뼈와 인대로 둘러싸인 수근관(손목터널)이 좁아져 그곳을 통과하는 정중신경이 눌리며 발생하는 질환이다.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까지의 저림과 무감각 등이 일반적인 증상이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악력이 떨어져 병뚜껑 따기와 문고리 돌리기 등이 힘들어진다. 증상이 더 심해지면 단추 채우기, 젓가락질과 같은 정교한 동작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전신의 뻐근함과 통증이 일상적인 시니어들에게 손목터널증후군은 단순한 근육통으로 오인되기 쉽다. 하지만 증상을 방치할 경우 치료 시기를 놓쳐 통증 강도가 심해지고 마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증상 발생 초기에 조속히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에 나서는 것이 좋다.
한방에서는 손목터널증후군 치료를 위해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을 병행하는 한방 통합치료를 실시한다. 먼저 열결혈, 경거혈, 내관혈 등 주요 혈자리에 침을 놓아 경직된 손목 주변 조직을 풀어주고 통증을 완화한다. 또한 순수 약재 성분을 정제한 약침 치료는 염증을 빠르게 해소하고 손상된 신경의 재생을 돕는다. 더불어 환자의 체질에 맞는 한약 처방을 병행해 손목 관절과 근육, 인대를 강화하고 재발을 방지한다.
실제 손목터널증후군에 대한 침·약침 치료 효과는 연구 논문들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대한한방내과학회지에 소개된 자생한방병원의 임상증례 논문에 따르면, 약침 치료를 받은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통증 숫자척도평가(NRS)가 매우 심한 통증에 해당하는 9에서 치료 3주 후 가벼운 통증인 1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한의학연구원과 미국 하버드 의대가 진행한 공동연구에서도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들에게 8주간 침 치료를 실시한 결과 통증 및 증상 평가점수가 25.1%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손목터널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목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생활 습관을 되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업무나 가사노동, 공부 등을 하며 장시간 손목을 사용했다면 충분한 휴식을 통해 손목에 쌓인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틈틈이 손목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손목의 움직임이 가동 범위를 넘어가지 않도록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격증 취득도 좋지만 건강한 신체는 훨씬 중요한 노후의 스펙이다. 은퇴 후 인생 2막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스스로 건강관리에 힘쓰도록 하자.
은퇴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내 편이 없어.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라는 말이 딱이지.” 20년간 국회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김상호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하기만 하던 어느 날, 치과 의자에 누워 임플란트 시술을 받다 문득 생각했다. ‘요즘은 기술도 좋아졌는데, 이빨이 빠졌다고 옛날만 그리워하고 있을 게 아니라 임플란트를 해서 새 이빨로 힘차게 살면 되지 않나?’ 김상호 씨는 그렇게 유튜버 ‘임플란트 타이거’로 새롭게 태어났다.
임플란트 타이거의 ‘내편TV’는 정부의 제도, 복지정책 등 몰라서 못 받는 혜택을 쉽게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이다. 공문서에 쓰이는 언어에 익숙한 그로서는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전문 분야를 고른 셈이다.
“시니어나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은 유용한 정보를 모를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조차 몰라요. 게다가 은퇴 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부 정책이나 제도 관련한 용어를 읽기 어려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거 되겠는데’ 싶었죠.”
내편TV의 콘텐츠 제작은 영상이 주가 되는 타 유튜브 채널에 비해 간단하다. 조용한 환경에서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자료가 되는 문서를 캡처해 화면을 구성하고, 거기에 녹음해둔 음성을 붙여 컷 편집을 하면 끝난다. 귀찮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명 ‘귀차니즘’ 성향 덕분에 개발해낸 포맷이다. 영상용 촬영을 안 해도 되니 어디서나 영상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덕분에 언젠가 김 씨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한 달 살기를 한다 해도, 내편TV 콘텐츠는 계속해서 업로드될 것이란다.
내편TV의 성공 이후 포맷, 콘텐츠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유튜버가 왕왕 생겼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정보성 채널 1세대가 겪어야 할 숙명쯤이라 여기고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를테면 여행 기간 내 올라가야 할 콘텐츠를 미리 제작해 업로드 일정을 예약해두고 여행을 떠나는 식이다. 이때는 미리 만들어야 하니, 5월의 종합소득세 신고 관련 정보처럼 시기를 타는 정보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 위주로 영상을 제작한다.
“제 채널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이 사라지면서 역으로 수혜를 본 케이스죠. 그래서 당시에 우후죽순으로 내편TV의 형식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요. ‘처음이라 선례를 따라 해보는구나’라고 생각하죠.”
유튜브 코리아에서 선정한 유튜버 50인에 선정되었고, 내편TV 구독자 60만 명 달성을 앞두고 있는 김 씨는 새로운 정보 제공 채널 ‘어그래TV’를 지난 5월 개설했다. 그의 실제 지인들과 통화하며 나눈 음성을 따 영상화함으로써 생활 밀착형 언어로 생활 정보 혹은 시사 상식을 전달하는 것이 콘셉트다. 아직 성장세는 미미하지만 내편TV의 성공 경험을 믿고 꾸준히 운영해보려 한다. 조만간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가 부처의 국민소통실과 협업해 정책과 제도를 안내하는 영상을 만들 예정이고, 또 유튜버가 되는 방법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튼튼한 새 이빨을 갖춘 호랑이는 도전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초고령화 시대 진입과 1인 가구의 증가로 ‘안전한 나이 듦’은 중요한 문제가 됐다. 나이 들수록 신체적, 심리적 원인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국민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국가 기관과 기업은 다양한 주거 생활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양말 신기 보조기기, 손과 발을 이용한 손톱깎기, 전기 플러그 보조기기, 입술 마우스 등 노인·장애인이 자립 및 일상생활에 필요하지만 수요가 적고 산업화가 어려운 ‘적정기술 보조기기’와 점자 디스플레이, 가변형 욕실 화장실 등 국내외 시장 출시 가능성이 있는 ‘사업화 가능 보조기기’를 11종 선보였다.
기업들도 가정용 의료기기, 거주 공간 내 이동기기, 고령 친화 편리 장비 등을 개발하는 추세다. 네오에이블은 사용자 체형에 맞게 전동 쿠션부 조절이 가능한 작업 및 사무용 의자, 전동식 높낮이 조절 테이블 등을 선보였다. 전동식 높낮이 테이블은 높이 조절 시 데스크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멈추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
비트센싱은 비접촉 초소형 센서인 AI 웰니스 레이더를 개발했다. 생체신호 감지 레이더 기술로 호흡, 수면, 사지 움직임, 수면 중 낙상 및 무호흡 등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건강상태를 분석하고 수면의 질을 관리한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거나 질병을 예측하기도 한다.
한국과학기술원 기술출자회사인 로아이젠은 독거노인, 경증치매환자 및 1인 가구를 위한 소셜 로봇 ‘마이봄’을 소개했다.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를 적용했으며 약 복용, 식사 알림, 음악 설정 등 돌봄 기능을 수행한다.
조은케어는 노인·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양변기 보조 기립 장치 ‘조은리프트’를 출시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화장실 사용을 도울 뿐 아니라 알람 기능이 포함돼 있어 화장실 밖에서도 내부 사항 파악이 가능하다. 더불어 방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변기통 가드를 설치할 수 있다.
한편, 더 자세한 정보와 노인·장애인을 위한 여러 보조기기는 국립재활원의 ‘보조기기 열린플랫폼’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문하시려면 터치해주세요.”
‘터치? 왜 메뉴가 없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렀더니 그림과 글자가 나왔다. “매장에서 식사... 테이크 아웃...” 포장해서 가려고 했는데, 포장 버튼이 안 보인다. 하나는 매장에서 먹는 것이고 하나는 쇼핑봉투 그림이 있으니까 이게 포장인가? 답답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확대하듯 늘려보려고 모니터에 손을 댄 순간 화면이 전환됐다. 더 작은 그림이 여러 개 등장했다. 글씨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왜 화면이 전환됐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문을 해보기로 한다. 불고기를 찾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갑자기 메뉴가 사라지고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화면이 뜬다. ‘오늘 안에 주문이 되는 걸까,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직원은 없는지 둘러본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가 흔히 겪는 일이다. 이제는 디지털에 익숙해졌다는 중장년도 메뉴를 찾을 때 종종 애를 먹는다. 음식점, 쇼핑몰, 주민센터, 심지어 약국까지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키오스크(kiosk)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정보 단말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키오스크의 도입은 더욱 빨라졌지만, 이용자들의 불편함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디지털 약자인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키오스크는 큰 산이다. 키오스크 문턱을 낮추기 위해 키오스크 및 가전제품의 접근성 표준화에 나선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이성일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 이용 중 불편 또는 피해를 경험한 적 있다’는 질문에 46.6%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주문 화면의 작은 글씨가 불편하다는 답이 많았다. 2022년 2월 키오스크 KS표준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이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업종이나 브랜드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소비자원이 공공·민간분야 키오스크 중 20대를 조사한 결과 70%가 KS 표준에서 규정한 글씨 크기보다 작았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는 접근성에 관한 공식 인증기관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인증을 해주는데, 현재는 웹 접근성 품질 인증에 관한 제도뿐이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전기·전자 제품과 가전제품, 키오스크를 포함한 지능 정보화 제품의 접근성을 평가한다. 고령자,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이 제품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제품 개발을 돕고, 접근성 평가 기준과 표준화 방안 등을 연구한다. 접근성 공식 인증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전 정보화지능원)에 접근성 표준을 제시하고 기준을 함께 만들고 있다.
연구원은 10여 명의 국내 표준화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 2022년 8월 발기했다. 이성일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이사장은 “제대로 된 접근성 시험평가 방법을 만들어 보고 싶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이자 국가기술표준원의 전문위원으로 ATM 표준부터 애플리케이션 설계 표준까지 국내 표준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왔다. 함께 모인 이들은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의 표준화와 접근성을 만들어온 전문가들이다.
그동안 키오스크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표준화 기준을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었다. 표준 자체가 국가 표준이 되려면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이 키오스크 표준화를 따를 만한 지침이나 법적 의무도 없었다.
정보화기본법에는 장애인과 고령자가 지능정보 제품에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하 장차법)에서도 서비스와 제품 접근성을 갖추도록 하는 지침이 실려 있다. 최근에는 장차법에서 시행령을 통해 키오스크 접근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다만 시행은 2025년부터다. 이에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위한 움직임이 먼저 시작됐다. 이성일 이사장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가 필요하다는데 깊이 공감했다.
“키오스크 어려워하시는 분들 많죠. 사실 고령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요즘은 공항에서도 모바일 체크인이라고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골프장도 키오스크로 계산해요. 중장년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주민 센터 수영 강습 등록도 키오스크로 바뀌었더라고요. 주민 센터 같은 경우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많은데, 등록할 때마다 자녀들을 데려오신다고 해요. 키오스크나 가전제품은 복잡해서 인터페이스도, 사용자 조작 방식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동안 학교, 기업, 정부와 함께 프로젝트를 통해 평가 방법론 등을 만들어 시범 평가를 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을 만들게 되었어요.”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 발효 시기에 맞춰 시험 평가 방법론 등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웹와치와 함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키오스크 평가기관으로 선정됐다.
“사실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디자이너들도 내가 접근성이 높은 제품을 잘 만든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소송할 때 판사의 판단 근거로써 필요하기도 하고요. 이런 수요들을 반영해 접근성 인증 시험 평가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지침에 띠라 키오스크가 잘 만들어졌는지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UX, UI를 테스트합니다. 평가를 종합해 과학기술정통부에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에서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받은 기업은 조달청 키오스크 납품 우선 선정 대상이 된다. 연구원은 키오스크 접근성 설계 표준에 맞게 키오스크가 잘 만들어졌는지를 본다. 또 실제 디지털 취약계층을 섭외해 조작을 테스트한다. 어느 지점에서 머뭇거리는지, 조작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기록한다. 평가가 끝나면 결과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전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선구매 대상 추천 여부를 결정하면, 최종 승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한다.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받으려는 기업들이 많지는 않다. 연구원 평가를 받으면 정부에서 인증을 주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들기 때문. 이에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민간 인증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생각보다 가전제품에서 접근성 인증 수요가 많습니다. 미국에는 ADA라는 접근성에 관한 표준법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수출 자체가 안 됩니다. 강제성이 있고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법이에요. 이와 관련한 소송도 많습니다. 유럽에도 접근성 표준에 관한 법이 있어요. 그래서 수출을 해왔던 기업들은 접근성 인증을 받고 싶어 합니다. 저희도 2000년대 초반 정보화 지침, 접근성 지침 등을 내놓았는데, 역시 비용 문제 등이 있어서 국내에서는 강제화하지 않는 쪽으로 추진되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의뢰를 받아 가전제품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전제품 접근성 인증 모델과 프로세스 평가를 위한 규격 표준을 실험하고 있다.
접근성 평가와 인증을 위한 표준화 작업은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일 이사장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함께 현금자동인출기(ATM)의 접근성을 개선해 전국 은행으로 보급한 주인공이다. 고령자가 사용하기 쉽게 화면 아이콘 크기를 키우고, 시청각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점자 자판, 이어폰 슬롯 등을 적용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시도가 각 분야에서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장차법에서 키오스크, 애플리케이션 등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걸 시행령으로 이번에 넣었죠. 애플리케이션은 의식주 관련해 기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많아요. 최근에는 요양이나 장례 서비스와 같이 고령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이용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으니 제품이나 환경 자체가 그에 맞춰 변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UX, UI 접근성 평가의 길을 연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이다. 이성일 이사장은 점차 디지털 약자의 디지털 접근성이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
“접근성 인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모델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체계화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심사평가 검증 기준을 제대로 갖춘 결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흔히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영어를 사용하고, 사회적 인프라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며 부동산 투자가 활발한 점 등을 들어 은퇴자를 위한 해외 이주 정보를 다루는 미국 매체 ‘인터내셔널 리빙’에서 ‘은퇴자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로 여러 차례 추천된 바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6.5%이다. 그러나 5년마다 장노년 인구가 약 2%씩 증가해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노인을 위한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2020년 열린 온라인 포럼 ‘고령친화도시: ’MyAgeing™‘과 함께 가꾸는 미래의 삶’에서는 은퇴자, 연금 수령자, 노인을 위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시니어 주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패널들은 말레이시아의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새로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은 채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으로 쫓겨난 시민들이 나이가 들어 필요한 때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나중에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
노인들 또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Aizan Hamid 연구교수는 포럼에서 “말레이시아의 노인 약 77%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늙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노인들이 연령이나 소득, 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의 지역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페락(Perak)주 타이핑(Taiping)시
페락 주 서부의 타이핑은 고원 휴양지인 라루트 언덕을 비롯, 녹지가 많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에 타이핑 시는 노인에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지역 이니셔티브를 조성하고,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GNAFCC)에 가입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는 이동 시 진동을 최소화한 고령자 및 장애인 친화적인 중형 전기버스(EV-Bus)를 운행하고 있다. 도시 개발을 위한 ‘페락2030비전’ 중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도 포함돼 최근 관광지를 경유하는 노선을 신설했으며, 시범 운행 이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는 할인된 가격에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을 예정이다.
또한 노인과 장애인 등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타이핑 시의회와 말라야 국립 대학교는 2017년 ‘마치노에키 프로젝트’를 타이핑에 도입했다. 마치노에키란 일본의 쇠퇴한 도시 중심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된 프로젝트다. 지역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해 화장실이나 휴식 공간 등의 시설이나 지역에 대한 지식, 안내를 제공한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고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굴러가는 이 프로젝트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마을 환경 정비로 인한 보행성 개선으로 주민들이 차를 타는 대신 걷게끔 이끄는 효과까지 수반한다. 타이핑 시의회는 이러한 정책들과 그로 인해 축적한 지식들을 푸트라자야시 노인 협회에 공유하며 고령친화도시 조성 프로젝트에 있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페낭(Penang) 주정부와 페낭2030비전
페낭주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의료관광지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은퇴 이민지 중 한 곳이다. 또한 페락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으로, 2020년 60세 이상 인구는 14.9%이나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6.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는 2018년 ‘페낭2030비전’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활동적인 노후’(Active aging)가 중요 요소로 포함됐다. 페낭학회(Penang Institute)에 따르면, 주정부는 이를 위해 고령친화적 인프라를 강화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등의 형태로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페낭2030비전이 제시하는 장노년 친화도시 정책’ 보고서가 소개하는 내용에 의하면 페낭 주정부는 ‘안녕 디지털’(#Dah Digital)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클리닉’(Digital Clinic)에서는 동영상 편집기술이나 구글렌즈 사용법, 스캠, 피싱 등 사이버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등을 무료로 교육한다. ‘디지털 페낭’(Digital Penang)의 2022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캠페인으로 2022년 101개의 강좌가 개설됐으며 총 2465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다.
후기청년기에 들어선 40·50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다. 120세까지 산다는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또래의 명예퇴직 소식이 들려오고, 50세가 되기 전 은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는데,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후기청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김병숙(75)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150세까지 살 테지만, 기자님은 170세까지 살 거예요. 지금부터 10년에 한 번씩 직업을 8번 바꿔도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남은 50년은 뭐 할 거예요?”
순간 멍해졌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설마 그때까지 살겠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기자를 보며 “설마가 현실이 되는데, 다들 내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는 김병숙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40·50세대의 이야기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150세 시대 준비하려면
김병숙 이사장은 40여 년간 직업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경기대학교에 직업학과를 설치해 교수로 활동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한국직업상담협회를 설립했다. 책을 25권 집필했으며, 은퇴 후에는 4050을 위한 전직 지원 등 직업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 65세의 나이로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김병숙 이사장은 150세 인생 계획을 선언했다. 75세까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정시 근로를 하고, 95세까지는 시간제로 일하고, 100세까지는 봉사활동을 하고, 150세까지는 화가로 살겠노라고. 그리고 3년 뒤 계획을 바꾸었다. 95세까지 정시 근로를 하겠다고. 김 이사장은 2012년 ‘은퇴 후 8만 시간’이라는 책을 쓸 때부터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5~2019년 우리나라 최빈사망연령(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실제로 사망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은 남성이 85.6년, 여성이 90년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기대수명은 평균 83.6세지만, 사고 등으로 조기 사망하지 않는다면 평균 85세 이상 산다는 말이다.
“90세 가까이 살다 간다면 지금 40·50세대는 앞으로 최소 40~5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50년 뒤면 2073년이죠?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20세기에 이미 ‘2050년이면 인간 수명은 150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30년이 지나면 2050년이네요.”
150세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60세, 80세, 100세를 각각 20세, 40세, 60세로 봐야 한단다. 40·50세대라면 한창 청년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프라임 시기에 일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가 47세입니다. 2~3년 내에 43세까지 낮아질 거예요. 최근 은행권에서 명예퇴직한 사람 중에는 20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주된 일자리 은퇴 연령이 40대고, 노동시장에 굿바이를 외치는 시점은 73세입니다. 연금을 65세부터 받는다고 하면 47~65세까지 18년을 더 일해야 합니다. 이때 노동시장에 나가서 경제생활을 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150세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린 낀 세대
2023년 현재 40·50세대를 사는 이들은 X세대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린 첫 번째 세대’라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이자 신(新)인류’라고 불리곤 했다.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취향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은 세대로 평가받지만, ‘낀 세대’인 이들은 정작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안에서 40·50세대는 ‘낀 세대’죠. 최고의 생산량을 내는 시기에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요. 윗세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들처럼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없습니다. 아랫세대인 MZ세대는 어때요? 30대는 주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하고 20대는 월급만큼만 일합니다. 그 사이에서 인적 관리를 해야 하는 40·50세대는 위아래로 치여 참 어려워요.”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지만, 사회와 조직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데다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장 힘든 시기에 직장에도 적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보통 60세까지는 사회,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혹은 은퇴하고 나를 위한 삶을 찾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와 보니 퇴직금은 3년이면 사라져요. 앞으로 50년은 더 일해야겠는데, 직업 세계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으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별안간 ‘너 뭐 좋아해? 좋아하는 거 해’ 하니까 방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나이를 먹으며 40대, 50대를 산다. 후기청년기는 누구나 거치는 시기다. X세대라고 불린 지금의 40·50세대는 120세 시대를 맞아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첫 세대가 됐다. 김 이사장은 조직에 젖어들다 보면 누구든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직업을 8번 바꾸며 살 것을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기존의 조직을 벗어나는 것도 좋다는 조언이다.
“누구든 후기청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해요. 어느 날 삼성전자 수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 회사에서 그동안 인공지능(AI)을 공부하라고 했는데 하기 싫어서 안 했대요. 이제 모든 곳에 AI가 쓰이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거예요.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삼성전자 직원도 그럴진대, 우리는 어떻겠어요? 퓨처 타임 퍼스펙티브(Future Time Perspective). 미래 시간 전망을 길게 하세요. 미래 시간을 길게 보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
우리나라에는 7번의 진로 분기점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갈 때,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 등이다. 김병숙 이사장은 이 진로 분기점에 도달해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본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 3년 차에 이직하고 싶어질 때에야 닥쳐서 생각한다는 것. 40대 후반에는 또 한 번 분기점이 온다. 이때 어떻게든 버텨서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면,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40대 후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분기점에 섰을 때 고민하면 늦어요. 프라임 시기 이후에는 돈을 적게 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급여 하락세가 달라질 거예요. 10년을 분기점으로 두고 3년은 새로운 역량을 키워내는 공부를 하고, 5년은 키운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는 식으로 다리를 놔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청년 지원 정책이나 노인 일자리 지원 정책 등 여러 정책을 쏟아놓지만, 정작 중장년을 위한 정책은 많지 않다. 50세에 은퇴하고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퇴 후 퇴직금으로 창업하는 건 내 돈으로 내 직업을 사는 셈이다. 바야흐로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다. 김병숙 이사장은 고령화 시대에는 기업들도 점차 50대 이상의 인력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하죠. 인력이 없다는 뜻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이 든 사람을 써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대신 나도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 해요. 요즘은 융합 시대입니다. 세 가지 영역을 알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해요. 배움을 축적하면 나의 자본이 되는데요. 40·50세대에는 여가가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그냥 산에 올라 정상에서 ‘야호’ 외치고 내려오는 여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등산하면서 보는 주변 식물에 관심을 두다가 내가 직접 키운 차나무로 차를 내려주는 찻집을 구상한다든가 하는 식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후기청년기는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다. 김 이사장은 이때 집에서 편하게 쉬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40·50세대의 재취업은 80% 이상이 지인 추천으로 이뤄진다. 매일 출근하듯이 차려입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기술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은데, 관련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면 나에게 말해달라’며 나를 홍보하라는 팁이다. 더해서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타령을 너무 많이 해요. ‘이 나이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디 호기심을 잃지 마세요. 인생 40년 살아보고 직장 20년 다녀보면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해 모두 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건강, 재무, 여가, 사회망, 인간관계에 관해 150세 시대를 계획해보세요.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입니다.”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세 번째 순서로 ‘주택관리사’에 대해 알아봤다.
◇ 주택관리사, 왜 유망할까?
2020년 4월부터 주택관리사 의무채용이 확대가 되어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공인중개사와 비슷하게 응시자격 제한이 없고, 나이 70세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김경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장
아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관리하고, 주민들이 결정한 일을 진행하는 관리자다. 최근 공인중개사와 함께 꾸준히 인기가 있는 직업으로, 안정적인 고정 급여가 장점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시 이해 갈등 조정 능력이 요구되며, 유사 업무 경험이 있다면 유리하다. 여성 주택관리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흔히 ‘아파트관리소장’ 등으로 알려진 ‘주택관리사(보)’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을 운영 관리하며 입주민들의 생활에 편의를 제공한다. 시설 관리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 직원 관리, 민원 해결 등 다양한 소양과 업무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사회 경험이 많은 중장년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공동주택, 아파트, 빌딩의 관리소장 또는 공사 및 건설업체의 운영·관리 책임자로 취업하거나 합동사무소나 주택관리업체를 창업하는 형태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정년 없이 활동 가능한 덕분에 제2직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업무는 크게 행정 관리와 기술 관리로 나뉜다. 먼저 행정 관리의 경우 예산 편성 및 진행, 관리비 산정 및 징수, 물품 구입 등 회계 관리를 비롯해, 사무(문서 작성 및 보관), 홍보(화보 발간), 인사(관리사무소 행정 및 기술 인력) 등을 이른다. 여기에 입주자 관리까지 담당하게 되는데, 일반 민원 처리는 물론 입주자대표와의 논의 등을 진행해야 하기에 소통 능력이 요구된다. 기술 관리는 건물의 유지 보수, 소화 설비, 안전 교육, 전기·가스·배수 및 승강기 설비 등의 업무를 아우른다.
장비 관리 및 유지 보수 등을 통해 입주민들의 안전 보장과 더불어 주택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커리어넷 직업정보에 따르면 주택관리사는 리더십과 통솔력, 책임감, 공정함 등을 갖춰야 한다. 입주민들 간의 각종 이해관계와 요구사항들을 조화롭게 중재하여 해결하는 합리적 사고방식과 문제해결능력, 대인관계능력도 필요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전현국 대리는 “관리사무소장(주택관리사)은 공동주택을 전문적이고 계획적으로 관리하여 입주민의 생활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행정·기술 등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다. 책임자로서 근무의 어려움이 따르지만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활기찬 성향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동주택의 증가와 의무 관리 대상 아파트 및 주택관리사 의무 채용 확대 등으로 주택관리사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의무관리대상 아파트란?
해당 아파트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자(주택관리사)를 두고 자치 의결기구를 의무적으로 구성하여야 하는 등 일정한 의무가 부과되는 아파트를 말한다(규제「공동주택관리법」 제2조제1항제2호). 의무관리대상 아파트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규제「공동주택관리법」 제2조제1항제2호 및 규제「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조).
△300세대 이상의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된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서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지역난방방식을 포함)의 아파트 △규제「건축법」 제11조에 따른 건축허가를 받아 주택 외의 시설과 주택을 동일건축물로 건축한 건축물로서 주택이 150세대 이상인 건축물 △1.부터 4.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공동주택 중 전체 입주자등의 3분의 2 이상이 서면으로 동의하여 정하는 아파트
◇ 주택관리사, 나도 될 수 있을까?
주택관리사가 되려면 먼저 국가자격인 ‘주택관리사보’를 취득해야 한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 합격 후 일정 기간 실무 경력을 쌓으면 ‘주택관리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택관리사보는 응시 자격 제한이 없으며, 시험은 1차, 2차로 나뉜다. 1차는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 민법, 2차는 주택관리 관계법규 및 공동주택관리에 대한 내용이다. 응시생들의 합격률을 살펴보면 2차보다 1차 합격률이 저조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차 시험 합격률은 평균 15.5%로 타 자격시험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같은 기간 2차 시험 합격률은 평균 70.9%로 1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택관리사로 경력 인정 받으려면?
△50세대 이상 500세대 미만의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장으로의 근무 경력 3년 이상 △50세대 이상 공동주택관리사무소의 직원(경비원, 청소원, 소독원은 제외함) 또는 주택관리업자의 직원으로서 주택관리업무에의 종사경력 5년 이상 △한국토지주택공사 또는 지방공사의 직원으로서 주택관리업무에 종사경력 5년 이상 △공무원으로서 주택관련지도·감독 및 인·허가 업무 등에 종사경력5년 이상 △주택관리사단체와 국토교통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공동주택관리와 관련된 단체의 임직원으로서 주택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력 5년 이상 △앞에 언급된 경력을 합산한 기간 5년 이상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73조)
이에 전현국 대리는 “주택관리사(보) 1차 시험 과목은 민법,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으로 평소에 접할 일이 없는 내용이라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차분히 습득하길 권한다. 2차 시험은 공동주택 관련 법규, 공동주택관리실무로 1차보다는 공동주택의 관리업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아파트에 거주하시거나, 평소 관리사무소와 단지의 상황을 관심 있게 봐뒀다면 좀 더 쉽게 접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응시 현황을 살펴보면 전 연령대 중 50대 응시자가 가장 많다. 합격자 수도 마찬가지다. 가령 2022년의 1차 시험의 경우 50대 합격자는 1482명으로 20대(48명) 합격자의 30배가 넘는 수치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수치가 실제 50대 주택관리사의 수요가 높은 현상을 보여주는 결과라 해석했다. 전 대리는 “주로 40~50대 쯤 퇴사를 하는데, 정년이 없다는 장점 덕분에 주택관리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일찍이 주택관리사를 선택하는 젊은 세대도 늘어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정년이 없는 것과 더불어 자격증 취득 후 취업으로의 연결이 용이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자격증 취득 후 주택관리사(보)가 되면 법규상으로는 500세대 이하의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제 막 자격만 취득하고, 주택관리에 대한 경력이 없다면 즉시 현장에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되기란 쉽지 않다. 대한주택관리자협회 관계자는 “매년 2차 합격자 발표가 날 때 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위탁사(주택관리업자)들은 공채를 모집한다. 이 시기를 잘 활용하면 취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관리사무소장 배치 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교육·안전 홈페이지를 통해 의무교육을 미리 받아두거나, 협회 산하 각 시도회에 문의해 취업 관련 오리엔테이션 등에 참여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Interview] 정우석 주택관리사 “정년 없이 워라밸 지키며 일할 수 있어 만족해”
2018년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정우석(42) 씨는 현재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체로 50~60대가 선호하는 직업이었던 주택관리사에 일찍이 관심을 보이게 된 건 친구 어머니의 조언 덕분이었다.
“친구 어머니께서 주택관리사 일을 하셨어요. 정년 없이 능력이 되는 한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 진입 장벽도 높지 않다며 추천해주셨죠. 그런 설명이 제겐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2018년에 자격증 시험 준비를 시작해서 그해에 취득했습니다. 이전에 부동산 관련 일을 했었는데,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시험 과목이 유사해 공인중개사와 연달아 준비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정우석 씨는 자격증 시험 합격 후 한 달 여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는 시험 준비부터 취직까지 탄탄대로 흘러간 셈. 그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격 취득 후 구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1년 이내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취업 후 업무 환경과 강도는 어떨까? 주택관리사 6년차, 정우석 씨는 현재 하는 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기본적으로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보장되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나 대체 휴일 등이 잘 이뤄진다는 게 주택관리사의 장점인데요. 사실 어떤 사업장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업무 환경이나 강도는 다를 수 있어요. 저도 예전에 일했던 곳은 업무 강도가 센 편이었죠. 이 또한 어느 정도는 구직자가 선택적으로 조절 가능하다고 봐요. 만약 업무 강도가 세더라도 주택관리사로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수입도 올리고 싶다고 하면 그에 맞는 사업장에 지원하면 되고, 아니라면 규모가 작고 월급이 적더라도 좀 수월한 곳을 찾으면 되니까요.”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정우석 씨가 체감하는 주택관리사의 주요 덕목은 대인 관계와 소통 능력이다. 아무리 행정과 관리 업무를 잘해도 입주자나 입주자 대표와 마찰이 생기면 업무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입주민과의 다툼으로 쫓겨나듯 해고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때문에 이런저런 민원을 응대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택관리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계나 운영 관리는 물론이고 법령에 대한 정보나 기술적인 부분도 숙지해야 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입주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봐요. 아무리 작은 단지라 해도 150세대고, 많게는 2000세대도 관리해야 하는데,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응대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정서적 노동 강도가 적지 않은 편이죠. 대인 관계가 어렵거나 이러한 감정 노동을 원치 않는 분이라면 이 일이 힘들 수도 있어요.”
정우석 씨 역시 입주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주택관리사로서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체력이 되는 한 이 일을 오랫동안 해나갈 계획이다.
“한때는 이 일로 어떤 경지까지 올라가겠다, 돈은 얼마를 벌겠다는 포부도 있었는데요. 요즘은 그런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일 이외의 삶에도 충실하려고 해요.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이라고도 하죠. 한 20~30년은 능력이 닿는 한 이 일을 하면서, 제 일상을 돌보고 싶습니다. 그런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는 게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이 갖는 메리트이기도 하죠. 한편으론 그런 점에서 현역 때보다는 더 유연한 직업을 원하는 퇴직자들이 주택관리사를 선호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자료 제공 및 도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지난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으로 주목받는 기업재난관리자는 예측불허로 일어나는 기업의 각종 재난을 최소화하고 이에 대응한다. 지난 1월 본지가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 전망에서도 해당 분야의 발전을 밝게 점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료 수집이나 데이터 활용, 계획 수립 등의 업무에 자신 있는 중장년이라면 체력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효성그룹, 웅진그룹 등 굵직한 기업에서 30년간 근무 경험이 있는 봉영권(63) BCM협동조합 대표도 기업재난관리자에 도전장을 내밀어 재해경감 컨설팅을 주업으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그는 과거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퇴직 이후를 대비해나갔다. 초반에는 준비의 일환으로 지인들과 교류하며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컨설팅이나 외부 강의를 조금씩 진행했다.
“경영 컨설팅과 더불어 산업안전 컨설팅도 준비했어요. 산업안전 컨설팅은 제조업체 사업장의 산업안전을 지도하고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죠. 그러던 중 2013년에 국내 재난 안전 관리 분야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행정안전부에서 관련 교육과 자격 취득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저 또한 눈여겨보던 산업 안전 쪽과 연관 있고, 전망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국가자격 취득, 대행분야가 고비
기업재난관리자 시험 및 교육 과정은 크게 재해경감활동 실무분야, 재해경감활동 계획 수립 대행분야, 우수기업인증 평가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맞는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해당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실무분야-대행분야-평가분야 순으로 취득해야 다음 단계 응시가 가능하다. 봉영권 대표는 2014년 실무분야 취득 후 2018년 대행분야, 2019년 인증분야까지 섭렵했다.
“실무, 대행, 인증 과정 각각 교육 수료, 시험 단계를 거쳐야 해요. 실무는 35시간 대행은 70시간, 인증은 35시간 교육을 수료해야 시험 자격이 주어지죠. 다른 조건은 따로 없어요. 실무 분야 시험은 객관식이라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교육 과정만 따라가면 취득이 용이한 편이라고 봐요. 고비는 대행 분야입니다. 5과목으로 이뤄지는데 주관식으로 단답과 기술형 출제가 있어서 집중적으로 충분히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어요.”
인증분야의 경우 대행분야를 취득하면 비교적 쉽게 합격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인증과정의 경우 기업재난관리사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안목과 시스템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는 단계라고. 그는 직장에 다니는 경우라면 교육기관에 따른 수강 시간을 고려해 일정 계획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 기관마다 시험에 대한 팁들을 잘 주기 때문에, 교수분들과 소통을 하면서 시험 대비를 하면 좋습니다. 취득 이후에는 컨설팅 대행기관이나 인증기관에 연락하셔서 본인 상황에 맞는 역할을 찾아가길 추천 드려요. 제 경우엔 자격증 취득 후 대행기관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재해경감활동계획수립사업이 공공기관 중심으로 많이 전개되고 있고, 2021년 하반기부터는 민간 기업들에도 확대돼 컨설팅 대행기관들이 이 일들을 담당하는 상황이에요.”
젊은이 거의 없어, 노련한 중장년이 적합
기업재난관리 컨설팅 완료 후 해당 시스템이 적정한 것으로 검증되면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서를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검증 역할을 인증 대행기관에서 진행하는데 이때 인증분야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대행기관에 상임이나 비상임 위원으로 등록하면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봉영권 대표 또한 인증 대행기관의 비상임으로 소속돼 수시로 활동 중인 셈. 국가자격 시행 10년, 초창기부터 관련 분야에 몸을 담아온 그에게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 취득이 중장년에게 유리할지 물었다.
“현재 기업재난관리 분야 관련 학과가 많이 없는 편이라 젊은 인력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종합적으로 기업을 지도해주고 시설의 요구 사항을 해결해주려면 사회경험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여러 기업에서 실무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중장년들에게 유리한 분야라고 판단됩니다.”
현재 그는 재해경감 컨설팅 대행기관에서 여러 기업들의 재난안전 대응 관련 컨설팅과 시스템 인증평가원 업무를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근래 코로나19 등 감염병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재난안전 분야는 계속해서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그에 반해 현재 관련분야 시장이나 시스템 마련은 초기 단계인 상황. 역으로 그만큼 재난안전관리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유추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봉영권 대표 또한 남다른 자부심과 열정으로 관련 업계 성장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이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재난 안전 대비나 연속성 계획 수립의 요구는 향후에 더욱 심화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더 늘려 나가야 하고, 시스템 수준도 고도화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관련 분야 생태계를 담당하는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협회, 컨설팅 대행기관들이 각자 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끄는 BCM협동조합 또한 이러한 부분에 이바지하고 기업의 안전문화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해나가는 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