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고용통계국(BLS)은 2030년까지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 15선을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해당 직업들의 종사자 평균 연령이 모두 50세 이상이라는 것. 이에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지난 19일 향후 8년 간 중장년 고용이 가장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직업에 순위를 매겨 소개했다.
미래 중장년 일자리 ‘운전 기술’이 드라이브
1위부터 3위까지 상위 직종은 모두 운전 기술을 요하는 직업들이 차지했다. 이들 직업의 경우 2030년 예상 고용성장률이 15%로, 평균 시급은 14~23달러(한화 약 1만7000~2만9000원대)다. 순위권 내 타 직업들에 비해 시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여가 선용을 위해 파트타임을 일자리를 선호하는 중장년에게는 인기가 높다고. 운전 관련 직군을 비롯해 예상 고용성장률 10%이상인 직업들은 다음과 같다.
[1위] 운전사 및 셔틀 운전사
-평균 연령: 56.2세 -평균 시급: $14.42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5% 증가
미국고용통계국은 위 직업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내다봤다(Bright Outlook). 아울러 수십 년 운전 경험을 무기로 교통 체증과 도로의 지름길을 잘 이해하는 노인들에게 유리할뿐더러, 유연한 근무 시간도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2위] 스쿨버스 운전기사
-평균 연령: 55.6세 -평균 시급: $18.23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5% 증가
이미 오랜 세월 고령 근로자에게 인기 있는 직종 중 하나였다. 등하교 시간대인, 아침 또는 오후 몇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파트타임 일자리가 많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또, 중장년 운전자 중 많은 사람이 아이들을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3위] 대중교통 버스기사
-평균 연령: 53.3세 -평균 시급: $23.37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5% 증가
셔틀 운전사, 스쿨버스 운전기사 등과 비교해 급여가 더 높고, 상근 및 주말, 교대 근무 등의 옵션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단, 고령자의 경우 나이, 체력 등의 이유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4위] 횡단보도 경비요원
-평균 연령: 57.6세 -평균 시급: $15.12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3% 증가
전체 직업 중 평균 나이가 가장 높은 직업이다. 중장년 고용자 대부분이 학교 근처의 혼잡한 교차로에서 일하기 때문에 스쿨버스 운전사와 비슷한 시간대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즉, 등하교 시간을 제외한 정오 전후에는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5위] 세탁 및 드라이클리닝 작업자
-평균 연령: 50.4세 -평균 시급: $13.63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2% 증가
사실상 코로나19 영향으로 해당 분야의 많은 노동자가 자리를 잃었다. 재택·원격 근무가 늘어나며 주로 세탁시설에 맡기는 오피스룩에 대한 수요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리며, 일상 회복과 함께 해당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6위] 의료비서 및 행정보조
-평균 연령: 50.3세 -평균 시급: $18.01 -2030년 고용 성장 전망: 10% 증가
미국고용통계국은 장차 사무비서의 취업 기회는 줄어들고, 의료비서의 수요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인구 고령화가 가속되는 만큼 노령 환자의 병원 예약이나 보험 양식 등을 관리해주는 의료비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밖에 순위에 올라간 직업은 △7위 시설관리자 △8위 최고경영자 △9위 기차 정비 기사 및 보일러 작업자 △10위 가사도우미 및 청소 감독자 △11위 여행중개사 △12위 부동산 감정사 △13위 심사위원 △14위 성직자 △15위 종교인 등이다.
이중 가장 시급이 높은 직업은 ‘심사위원’으로 평균 시급은 61.88달러(약 7만7000원)에 달했다. 다만 본인 희망에 의해 직업을 갖기는 어렵고, 특정 전문분야에 대한 공적이 있는 이들에 한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반면 ‘시설관리자’나 ‘엔지니어’ 직군은 특별한 학위가 필요 없고 자격증을 통해 취업이 가능하다는 이점과 더불어 시급도 타 직업에 비해 적지 않아(약 3만~5만원대)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안뿐만 아니라 사무실, 호텔 등의 공유시설의 위생 환경에도 신경을 쓰며 ‘가사도우미 및 청소 감독자’에 대한 전망도 밝아졌다. 한때 수요가 높았지만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여행중개사’, ‘부동산 감정사’ 등도 근래 빗장이 풀리며 다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韓 중장년도 ‘운전’ 관련 자격증 취득 인기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간한 ‘2021년 국가기술자격 통계 연보’에 따르면, 50세 이상 남성이 가장 많이 취득한 국가기술자격 상위는 지게차운전기능사(1만 616명), 굴삭기운전기능사(6205명)였다. 장비 조작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해당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취업으로 연결이 용이해 중장년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지게차운전기능사의 경우, 올해부터는 과정 평가형으로도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대게 중장년의 경우 검정형 시험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관련 분야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100세 시대에 정년 이후 일할 수 있는 기술 전문직이 점점 우대받고 있다. 특히 미래 전망이 밝은 기술 전문직 중 하나가 바로 전기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전기기능사는 자격 제한이 없어 중장년이 은퇴 후 재취업으로 도전하기 좋은 직업이다. 실제로 2021년 국가기술자격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50대 이상 남성이 많이 취득한 국가기술자격증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기기능사는 전기에 필요한 장비 및 공구를 사용해 회전기·정지기·제어장치 또는 빌딩·공장·주택 및 전력시설물의 전선케이블, 전기기계 및 기구를 설치, 보수, 검사, 시험 및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전기기능사는 전기 분야 기술사, 전기기능장, 전기기사, 전기산업기사가 되기 위한 첫 단계이다. 비전공자거나 경력이 없어도 누구나 자격증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전기기사나 전기산업기사는 시설 분야의 경력이 없거나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바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시설·전기 관련 분야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전기기사는 전기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후 시설·전기 분야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제2의 직업으로 전기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중장년들은 먼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더불어 아파트 및 빌딩에서는 중장년 전기기능사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전망이 밝다.
전기기능사 중장년에 좋은 이유
전기기능사는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인정받는 자격증은 아니다. 전기 관련 업계에 처음 발을 디디는 사람이 따는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증이 없어도 건축 현장 등 일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전기공사 업체들도 정직원을 뽑을 때는 최소 전기기능사 이상을 요구한다.
즉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전기 관련 경력은 없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격증이다. 더불어 전기산업기사나 전기기사 응시 자격을 갖추는 기본이 되기 때문에 자격증을 취득하면 정년이 더욱 보장된다.
전기기능사 자격을 갖게 되면 아파트나 빌딩의 전기 안전관리원이나 전기공사 시공업체, 전기기기 생산업체 등 다양한 곳으로 진출이 가능하다. 특히 중장년층은 아파트 시설관리 분야 중 하나인 기전직(기계+전기)으로 많이 진출하는 추세다.
기전직은 보통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로 근무한다. 한 달에 15일 정도 일하는 셈으로, 처음 시작할 때 평균적으로 월 250만 원을 벌 수 있다. 경비 관련 업무와 비교해 노동 강도가 높지 않고 보수가 훨씬 좋은 편이다. 더욱이 주민들의 갑질 문제에서도 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적다.
특히 전기안전관리자로 선임되면 70대까지 일할 수 있다. 전기 설비 용량이 1000kW 이상인 건물이나 산업 현장에는 ‘반드시’ 전기안전관리자를 두어야 한다. 이를 선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전기기능사는 선임이 될 수 없고, 상위 등급인 전기산업기사부터 가능하다. 그러므로 전기기능사 자격증 취득 후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해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자. 또한 주택관리사,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하면 몸값이 더욱 뛰고, 일할 수 있는 선택의 폭 또한 넓어진다.
전기기능사 자격증 취득법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국가공인자격증이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시험으로 나눠져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해 실기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필기와 실기시험 모두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겨야 하고, 각각 1년에 네 번 시험을 볼 수 있다.
필기시험은 전기이론, 전기기기, 전기설비 세 과목이다. 필기시험 합격률은 평균 30%대로 경력이 없거나 문과 전공자라면 시험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까다로운 수학 계산 문제가 1/3 정도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수험생이 많다.
실기시험은 약 5시간 동안 전기설비 작업을 평가한다. 필기시험은 독학으로도 가능하지만, 실기시험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전문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은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는 여성, 중장년층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은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 배우면 잘 따라 하고 합격률이 높다고 한다. 중장년층은 노안 때문에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잘 안 보이거나 손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올바른 학습과 철저한 준비가 더욱 요구된다.
중장년 위한 배움터 활짝
가장 쉽고 보편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자격 취득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등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하면 저렴하게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특히 중장년에게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국책 특수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을 추천한다. 남인천캠퍼스에는 신중년특화과정 스마트전기과가 있다. 만 40세 이상의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비, 식비, 기숙사비까지 전액 국비로 운영된다. 1년에 두 번, 각각 25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전공 이론 수업은 물론 실무 양성 교육도 진행한다. 전공 실무인 기초전기에서부터 전기설비, 시퀀스제어 실무 교육을 받으며, 전기기능사 실기시험 준비와 수배전설비 실무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직업훈련 교육을 실시하는 서울남부기술교육원에도 전기학과가 있다. 전기 관련 자격증뿐만 아니라 승강기기능사, 공사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다. 실제로 전기학과는 2년 연속 서울남부기술교육원 우수 취업학과로 선정되면서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꽃이 필 즈음의 이른 새벽, 쪽을 잘라내 하루이틀 물에 우려낸다. 자연산 굴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섞고, 잿물을 부어 발효시켜야 준비가 끝난다. 손등이 파랗게 물들 때까지 커다란 천을 쪽물에 담갔다 빼는 과정은 고된 빨래를 연상시킨다. 지난한 과정이 꽃피운 쪽빛은 탄성을 자아낸다. 철 따라 탈바꿈하는 자연 풍광, 20년 넘게 이어지는 장인의 열정 앞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감탄 말이다. 쪽 염색에 대해 묻자 푸른 산에 흐르는 물(靑山流水)처럼 애정과 자부심이 쏟아졌다.
홍루까 하늘물빛 전통천연염색연구소 대표는 20년 넘게 전통 천연 염색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쪽 염색을 활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한국 천연 염색 백서 2017’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인 쪽염 보존을 위해 힘썼다. 현재는 쪽 염색 체험, 천연 염색 자격증 강좌 및 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쪽 염색의 전통과 미래를 잇고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더라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여름 휴가철에 어머니인 조일순 전통매듭 장인이 매듭실 염색할 때 도와드렸을 뿐이다. 천연 염색에 대한 열정을 지핀 것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천이 펄럭이는 장면이었다.
“염색이라는 게 빨래나 다름없어요. 색이 제대로 날 때까지 염색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헹구고, 다시 넣었다가 헹구는 과정의 반복이거든요. 그걸 다 도와드리고 쉬려고 평상에 누웠는데, 그날따라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도 어머니를 도와드렸지만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나 봐요.”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자연 색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들어온 화학 염색이 제아무리 다양한 색을 뽑아낸대도, 자연의 빛에 견줄 수는 없었다.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에선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동대문 원단 시장을 가득 채운 원단들을 본다고 해서 감탄하는 사람은 없잖은가.
염색 경력만 스무 해를 훌쩍 넘는다. 한창 때 응했던 인터뷰 기사의 제목 ‘나는 아직도 미쳐 있다’가 과장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람에 날리는 천이 아른거렸다. 눈에 담는 모든 색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통염색에 대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문헌을 뒤지며 전통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열정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의 열정을 논할 때 어머니 조일순 장인을 빼놓을 수 없다. 화학 염색에 밀려나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쪽을 다시 살려낸 데에는 조 장인의 역할이 컸다. 1년생 풀인 쪽은 염색에 쓰이지 않으면 잡초나 다름없었고, 1970년대 당시 쪽 염색을 할 줄 아는 이도 전무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직접 구해온 쪽 씨앗을 전라남도 나주에 심었다. 현재 나주 문평읍, 당시 문평마을에서는 찬물염색이라 불리던 쪽염이 마을 단위로 행해지곤 했다. 그는 어머니가 윤병운 인간문화재와 쪽염을 재현해내기까지 갖은 노력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대로 쪽염을 성공한 게 1980년대 초반이었어요. 어머니는 ‘이 기술을 무조건 살려야 한다. 꼭 살려내서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하셨죠. 윤병운 어르신이 염색 분야에서 최초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당신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우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최초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남에게 주느냐고 아까워했는데, 어머니는 ‘나는 매듭 장인일 뿐, 염색 전문가는 아니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고 대답하셨어요. 확고한 면모가 정말 존경스럽죠.”
염색 0.5세대의 열정
‘염색 0세대’ 어머니의 열정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가 닿았다. 천연 염색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그는 쪽염을 최초로 시작했고, 무늬를 내어 염색하는 문양염 기법을 최초로 개발한 염색 전문가이며, 찹쌀풀을 이용해 산수화를 최초로 그린 작가다. 자연에서 새로운 염색 재료를 발굴해내 소개하거나, 인도나 일본 등 해외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리는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1세대보다는 앞서 염색을 시작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염색 0.5세대라고 칭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한 번씩 해외도 꼭 나갔어요. 원래 쪽빛, 즉 남색이 인도에서 온 푸른색이라 영어로는 Indigo Blue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건데, 세계 천연염색 심포지움(ISEND)이나 자연염색교류전으로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한국 등지의 작가들이 모여서 교류하곤 했어요. 염색된 색상을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년째 모임을 못 갖고 있죠. 일본도 자주 갔어요. 쪽염이 마치 제 것인 양 특화를 잘 시켜뒀더라고요. 쪽은 독초과에 속하는데, 어떻게 한 건지 쪽으로 차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더라니까요. 여러모로 빨리 하늘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열정으로 덮지 못하는 어려움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연구소를 옮겼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 그것도 북촌 한가운데 한옥에 있다 보니 환경이 항상 아쉬웠다. 마당이나 밭이 있었다면 천도 널어놓고, 염료 식물도 매일 관리하며 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었을 테니까. 특히 쪽이나 염료 식물을 재배할 때는 새벽에 잡초를 뽑아줘야 하는데, 그나마 가진 땅에 심자니 짬 내서 들러도 잡초만 어마무시하게 자라 관리하기 어려웠다. 쪽이 열대 식물인지라 나주나 김천에서 자리를 잡을까도 고민했다. 결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버텨왔지만, 어려움을 견뎠기에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어렵게 연구를 이어나가면서도 그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시회에 작가로 참여해 열 필의 천을 전시해두고 그 앞을 지킬 때였다. 관람객 서넛이 다가오더니 천 앞뒷면을 한참 번갈아 보더란다.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느냐 묻자 색상이 어쩜 이렇게 균일하냐, 정말 천연 염색한 것이 맞냐고 도리어 되물었다. ‘천연 염색 작품이라고 플래카드 걸어두고 거짓말을 하겠나, 그러니 전문가가 아니겠느냐’ 하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열 번이든, 그 이상이든 반복하는 고집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카프만 한 크기든 20m에 달하는 천을 염색하든 다르지 않다.
“처음 염색한 천을 보면 균염(均染)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햇볕에 널어두고 보면 군데군데 물이 덜 들어서 빈 곳이 보이거든요. 그러면 염색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저는 기본 열 번은 해요. 그러니까 10년이 지나도 색이 안 바래고 그대로인 거죠. 물론 천연 염색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어머니만 해도 얼룩이 있어야 천연 염색이 아니겠느냐고 하셨고요. 주먹구구식이던 예전과는 염색 방법이 달라졌으니 그 영향도 있겠죠.”
이제는 원칙을 지켜야 할 때
쪽의 매력은 고운 빛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경오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화학 염색과 달리 친환경적인 천연 염색은 패션업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천연 염색된 옷을 사거나 직접 염색을 배우는 등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쪽으로 염색된 천은 방충, 방균, 방염 성능을 지니고 있다. 쪽 염색된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피부의 상처나 아토피 같은 질환이 완화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일본의 한 교수가 쪽 성분을 분석해, 여드름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 항균 기능이 있다는 걸 밝혀내기도 했으니 검증까지 된 셈이다. 게다가 쪽염된 옷은 여름철 높아진 체온을 어느 정도 낮춰주는 ‘쿨링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부르던 노랫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다.
중년들이 특히나 천연 염색을 자주 찾는다. 자연의 빛에 부쩍 관심이 많아질 나이인 데다, 눈 번쩍 뜨일 효능에 반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천연 염색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걸 원치 않는다. 천연 염색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흔들리는 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천연 염색한 옷을 판매하는 분들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일부러 같은 옷을 팔더라도 훨씬 싼 값에 내놓죠. 항의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당당하게 그래요. ‘작품하고 상품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껏 만든 옷이 안 팔리면 그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냐’고요.”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천연 염색 체험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염색하고서 끝났다고 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에겐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천연 염색을 배워 창업하려는 중년들에게는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유가 된다면 디자이너와 계약하거나, 의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전통문화산업 지원 사업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연
염색 일은 앞으로 5년 정도나 더 할까 싶다. 다만 문화재 보존과학과 염색을 동시에 전공한 전문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스스로 선구자가 되어 후학을 이끌고자 산업대학원 섬유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문화재보존과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출토복식특별전 및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분석해서 바느질 기법, 원단 종류를 밝혀내는데 염색에 대해선 전문가가 없어 추측만 하는 현실이 아쉬웠던 탓이다. 지금은 마음을 접었지만, 전통염색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문가가 꼭 생기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내심 바라고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최근에는 염색에 대한 애정 뒤편으로 숲 해설가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자라났다. 염색밖에 모르던 외골수의 도전이다. 하던 일과 대단히 다른가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숲 해설가는 자연휴양림, 유아숲체험원, 숲길 등에서 국민이 산림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설하거나 지도하는 직업이다.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 이야기, 나무나 식물에 대한 지식, 숲에 얽힌 역사, 숲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풀만 보면 ‘저걸로 염색하면 무슨 색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죠. 자연에서 난 재료를 다루긴 했지만 평생 염색만 하고 살았는데, 직접 숲속에 들어와 보니 훨씬 좋더군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에 직접 나가 해설사 강의를 듣고 있어요. 어떨 땐 배를 잡고 웃고, 어떨 땐 감동받기도 해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공부 좀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석 달 뒤에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경쟁률이 만만찮아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하려고요.”
돌고 돌아 자연이다. 쪽빛으로 물든 손과 흙 잔뜩 묻은 등산화가 전혀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먹은 것은 이뤄내는 끈기와 열정이 뒷받침되기에 그럴 것이다. 그의 한결같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가득 핀 오월의 봄 거리가 그렇듯.
기나긴 코로나19 대유행으로부터 벗어나는 5월, 단계적 일상회복에 발맞춰 다양한 전시의 개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어제와 오늘, 근현대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예술 작품과 기록물, 이맘때에만 꽃을 피우는 북한 식물들부터 독서와 국가무형문화재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준비돼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은 오는 22일까지 ‘기록으로 보는 청와대’ 기록전을 개최한다. 현장과 온라인에서 동시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대통령기록관 야외공간에 방문하거나,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이기록 그순간’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현장 전시관에는 총 114건의 기록물이 전시돼있다. 1부 ‘청와대의 시간’, 2부 ‘청와대 공간’, 3부 ‘기록으로 보존하는 청와대’로 구성돼, 청와대의 변천 과정, 경내 건축과 본관의 각 실, 그리고 그 공간에 있었던 대통령의 사진들이 함께 공개된다.
1부 청와대의 시간에서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청와대의 변천 과정을, 2부 청와대의 공간에서는 청와대 본관, 영빈관, 상춘재 등 청와대 경내 건축의 특징과 용도를 소개한다. 3부 ‘기록으로 보존하는 청와대’에서는 현재 대통령기록관에서 관리·보존하고 있는 청와대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온라인 콘텐츠 ‘청와대’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청와대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사진, 문서 등 6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1991년 개최된 청와대 준공식과 신본관에서 치러진 행사 기록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기록물이라 눈길을 끈다. 콘텐츠 원문은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속 ‘기록컬렉션-이기록 그순간’에서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예술원은 한국근현대미술사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지난 1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예술원 1층 전시실에서 ‘2022년도 대한민국예술원 소장작품전’(이하 예술원 소장작품전)을 개최한다. 1954년 예술원 개원 당시 초대 회장을 지낸 춘곡 고희동 선생을 비롯한 작고 회원 51명과, 미술 분과 현 회원 15명 등 총 66명의 작품 66점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예술원은 1974년부터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미술 분과 회원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이중 일부를 소개하는 ‘예술원 소장작품전’을 격년으로 열고 있다. 올해는 고(故) 송영방 회원의 (2015년 작)와 고 김병기회원의 (2018년 작), 고 한도용 회원의 (2018년 작), 최의순 회원의 (1964년 작), 정상화 회원의 (2014년 작)를 처음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북방계 및 북한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원도 양구군 소재 ‘DMZ자생식물원’의 북방계식물전시원이 오는 17일부터 이달 31일까지 특별 개방된다.
DMZ자생식물원은 9개의 전문전시원으로 구성돼 있다. 비무장지대 분포식물의 61%인 1100종을 보유하고 있다. 해마다 이 시기에는 함박꽃나무, 가침박달, 설앵초, 갯활량나물, 애기자운, 물앵도나무 등이 피어 있으며, 이번에 특별 개방된 북방계식물전시원에는 너도개미자리, 백두산떡쑥, 흰양귀비, 오랑캐장구채, 만병초 등이 방문객들을 반길 것이다.
산림청 측은 “봄은 늦게, 여름은 일찍 찾아오는 비무장지대 특유의 기후 특성 때문에 이 시기에만 꽃을 피우는 북방계 및 북한 식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특별개방을 2주간 진행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마루 3층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작은 전시 를 지난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작은 전시는 책마루의 문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서가 곳곳에 전시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무형유산 관련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다.
이번 전시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라는 주제로 다양한 전통 기술을 통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나전서류함(나전장)’, ‘은입사 차합(입사장)’, ‘화관(자수장)’ 등 국가무형문화재 10종목의 보유자, 전승교육사, 이수자들의 작품을 모았다. 더불어 작품에 활용된 국가무형문화재의 기록화 영상과 도서를 준비해 방문객들에게 더욱 깊이 있게 무형유산을 소개할 예정이다.
라키비움 책마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공휴일에만 휴관한다. 도서 열람 및 대출 외에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등 지역민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2급 치유농업사 양성 교육 과정’에 40명을 선발한다.
치유농업이란 농업 소재와 자원을 활용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농업 활동이다. 치유농업사는 △치유농업 프로그램 개발 △치유농업 교육 △치유농업시설 운영 등에 대한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2급 치유농업사 교육은 6월 2일부터 7월 29일까지 매주 2회 실습과 견학으로 진행한다. 교육내용은 △치유농업과 치유농업 서비스의 이해 △치유농업 자원의 이해와 관리 △치유농업 서비스의 운영과 관리 등의 과정으로 운영된다. 치유농업사 양성과정 수료자(교육 80% 이상 참가 및 이수시험 통과자)에 한해 오는 9월 예정인 2급 치유농업사 국가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2급 치유농업사 양성교육 과정은 5월 17일까지 서울 공공 서비스 예약 홈페이지에서 신청받은 후 무작위 추첨을 통해 총 40명을 선발한다. 신청 자격 등 모집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고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조상태 서울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치유농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치유농장을 조성하여 시민에게 보다 수준 높은 치유농업 서비스를 제공해 치유농업 발전과 정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숙(52)은 세계스마트시티기구 WeGO의 사무총장이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다면 아마 방송인으로 활동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아침방송을 비롯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MBC 드라마 ‘대장금’에 중전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녀를 떠나게 만들었을까. 방송인에서 행정가가 되기까지, 도전과 변화를 거듭한 박정숙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0년대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라는 굵직한 역사를 썼다. 냉전 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동시에 해외 진출의 길이 열렸다. 당시 영국의 팝, 일본의 만화 등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생 박정숙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던 것 같다.
어린 박정숙은 아나운서 출신 김연주를 롤모델로 삼았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우정의 사절단’ 홍보대사를 맡고, 이후 전문 MC의 길을 걷는 그녀의 행보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박정숙은 1993년 KBS에서 선발한 대전엑스포 홍보대사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엑스포와 대한민국을 알리는 외교사절단으로 활약을 펼쳤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죠. 대학생 홍보대사 선발 과정은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KBS에서 방송됐어요. 지원 조건은 준수한 외모에 외국어 두 가지 이상 할 줄 아는 대학생이었죠. 총 300명 정도 지원했던 걸로 기억해요. 최종 세 명이 뽑혔고, 그중 한 명이 저였죠. 해외에서 온 기라성 같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EBS에서 학생 리포터를 한 방송 경력이 있어 운 좋게 선발됐어요.”
박정숙은 대전엑스포 홍보대사부터 Wego의 사무총장까지, “가장 트렌디한 조직에서 일할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진 것 같다”면서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엑스포 홍보대사 활동으로 세계를 돌아다녔고, 그 다음에는 아침방송을 10년 동안 했죠. 사실 아침방송이 그전까지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저는 아침방송이 완전히 꽃을 피울 때 진행자를 맡은 거죠. ‘대장금’도 우연히 한 건데 그 즈음 한류가 꽃피었고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한국 대표, Wego의 사무총장도 중요한 시점에 맡았다고 생각해요.”
‘대장금’과 한류 전도사
박정숙은 KBS 엑스포 특별 생방송 진행을 잘 소화해낸 덕에 SBS 특채 MC가 됐다. 이후 그녀는 SBS ‘출발 모닝 와이드’, MBC ‘아주 특별한 아침’ 등 아침방송을 10년 넘게 진행했다. 단아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문적인 진행 실력을 뽐내 아나운서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그녀의 목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끝내주는 모닝 쇼 호스트’였다.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고 진행자로서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때, 박정숙을 힘들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MBC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의 MC를 맡게 되면서다.
박정숙이 합류하면서 원래 30분짜리였던 프로그램이 2시간짜리 프로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당시 방송환경 탓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프로그램 제목에 올릴 수 없었다. 제작진은 그녀를 파격적인 대우로 캐스팅했지만, 박정숙은 여성 MC로서 한계를 느꼈다. 그녀는 방송인으로서 성공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자괴감만 느끼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자포자기 심정으로 진행을 하고 있을 때, 박정숙은 이병훈 PD로부터 ‘대장금’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녀의 단아한 이미지가 문정왕후 역할에 딱 맞다고 이 PD는 생각했다. 박정숙은 경험 삼아 연기를 하게 됐는데, ‘대장금’은 시청률 50%를 돌파하고 한류 드라마로 등극했다. 드라마의 인기는 그녀가 방송계를 떠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드라마를 잠깐 한 6개월 했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는 그냥 원 오브 뎀(One Of Them), 그 많은 연예인 중 하나가 돼 있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삶의 터전을 스스로 바꿔버린 거죠. 제가 꿈꾸던 MC로서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너무 힘들었고, 연예계를 떠나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장금’을 안 했다면 유학을 안 갔을 것 같아요.”
2004년은 ‘대장금’이 종영한 때이면서 박정숙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해다. 당시 그녀 나이 34세. 박정숙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 그녀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관계와 미디어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장금’의 파워는 실로 대단했다. 외국에서 박정숙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고, 그녀는 한류를 몸소 느꼈다. 이에 박정숙은 문화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전달됨으로써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2007년에는 가수 박진영과 하버드대학교에서 한류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고, 미국 PBS에서 방영된 김치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한류 전도사로 우뚝 섰다.
백신에서 스마트시티로
박정숙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정숙은 2008년부터 대학교 강단에 섰다. 2010년에는 TBS 교통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박정숙의 오늘’을 통해 5년여 만에 방송 활동을 재개했으며, YTN, EBS 등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교수 겸 방송인이 된 박정숙. 더불어 그녀는 2008년 다문화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후원 단체 호프키즈를 창단해 10년 넘게 운영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국제기구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한국 대표로도 활동했다. 박정숙은 팬데믹이 올 것을 예상했다고.
“GAVI는 빌 게이츠가 주도적으로 만든 조직이고, 다보스 포럼에서 만들어졌어요. 그걸 보면서 이제 국제기구는 더 이상 UN 같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나 어젠다(Agenda, 의제)를 통해 움직이겠구나 느꼈어요. 제가 GAVI의 한국 대표를 10년 동안 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최초의 백신 공여국이 되었는데, 기뻤죠. 아쉬운 점은 접촉성 전염병에 의해 팬데믹이 올 것이라는 신호가 계속 있었는데 우리의 관심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그런 걸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박정숙은 방송 활동 덕에 언론과 홍보에 능한 한편, 세계백신면역연합 한국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룬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9월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WeGO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해 세계 도시 및 기업 간 스마트시티 협력과 교류를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0년 9월에 창립한 국제 협의체다. 창립 당시 50개 도시로 출발해 현재는 200개 넘는 도시, 기관,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무총장이 된 지 6개월이 지난 박정숙은 업무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제기구이다 보니 회의 시간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할 일이 정말 많다고 한다. 더불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WeGO의 사무총장이 된 그녀는 자긍심과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제 임기는 3년이지만, WeGO가 10년 후에는 스마트시티의 UN 같은 단체가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코로나19로 대면은 못 했지만 스마트 기기로 해외 각국과 자주 소통했어요. 해외의 많은 분들이 스마트시티에 대한 지식 공유라든지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저를 찾는데요. 그런 면에서 큰 가능성을 본 6개월이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울이 스마트시티로서 굉장히 앞서 있고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총장으로서 박정숙의 목표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어젠다 세터(Agenda Setter, 의제 설정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편리한 세상을 만들고 싶고, 효율적인 스마트 행정을 많이 해서 WeGo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모든 게 스마트화됐고, 스마트시티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6년 전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너무 준비 없이 갑자기 우리에게 닥쳐버렸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생겨나는 부작용으로 디지털 소외도 있고, 딥페이크, 피싱, 디지털 성범죄 등의 범죄 문제도 있는 거죠. 그래서 WeGO 사무국에서는 윤리, 규범 등이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정책이 필요하죠.”
워킹맘, 그리고 미래
다른 나라는 여성 리더가 국제기구를 맡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박정숙은 “사무총장이 여자라고 하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매우 좋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박정숙은 사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무총장이 될 때 제약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남편 이재영이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박정숙은 2012년 5살 연하의 이재영과 결혼했다. 사실 이재영은 박정숙이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 정치계를 떠나 교수도 하고 스타트업도 운영하고 있지만 말이다.
“제 경력이라면 WeGo의 사무총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국회의원 출신이니까 누구의 부인이라서 선발됐다는 얘기가 나온 거죠. 저는 또 박정숙이 아닌 이재영의 아내가 된 거예요. 소문낸 그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었지만, 조직의 장으로서 조직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참았죠.”
30년 커리어를 무시당한 기분을 느꼈다는 박정숙은 “심지어 아들을 임신했을 때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강조했다. 2013년 낳은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일과 가정을 분리하고 싶지만, 아들과 연락이 안 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워킹맘의 고충이다. 더불어 학구열이 높은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사교육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를 학원에 많이 보내지 않아요. 다만 영어, 체육, 코딩은 열심히 배우게 하고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아이가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자신감만 있다면 세상이 별로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실은 특별히 사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유학도 서른 넘어서 갔지만 아이비리그에 갔고, 지금 국제기구에서 일하잖아요. 자신감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박정숙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니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이전에 세계백신면역연합의 한국 대표를 맡았고, 석사 전공을 보면 스마티시티가 도래할 것을 예견한 것만 같다. 이처럼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진 박정숙. 그녀는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며 윗세대는 창직을, 젊은 세대는 창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와 같은 50대가 세상의 메커니즘을 캐치하고 자신의 경험치를 발휘한다면 최고의 경쟁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요. 윗세대가 창직을 하는 리드 그룹이 된다면, 젊은 세대는 창작을 해서 새로운 걸 구현해내는 거죠. 메타버스 하면 우리는 어렵게 느끼지만 젊은 세대는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스마트시티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새로운 직업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그냥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래서는 앞서가기가 어렵다는 거죠.”
박정숙은 참 솔직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움으로 채워나갔다.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그 자신감을 놓지 않고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그 경험이 모여 현재의 여성 리더까지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정숙.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궁금하다.
취직이 안돼 자영업을 시작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로 인해 20~40대의 신규 자영업자가 늘었는데, 여전히 자영업자는 중·장년층이 많은 상황이다. 이는 50대 이후 자영업자에서 임금 근로자로 전환이 쉽지 않은 노동 환경 때문이다. 이에 직업 훈련 등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6일 발표한 ‘KDI 포커스-자영업자까지 포괄하는 고용안전망 구축방향’에서 “코로나19 이후 기존 고용안전망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며 “정규직 임금근로자 위주로 설계됐던 기존의 구직급여나 고용유지 지원 등은 비정규직, 특고·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 등을 포괄하지 못해 충분한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위원은 통계청의 종사상지위 분류상 비임금근로자를 근거로 지난해 연간 비임금근로자 수가 약 652만 명인데 이 중 자영업자가 551만 3000명, 무급가족종사자가 100만 7000명이라고 집계했다. 그는 “2002년 비임금근로자가 800만 명, 자영업자가 621만 명에 달해 자영업자 과잉이 큰 문제로 인식됐으나 이후 인구구조가 변하고 최저임금과 종합소득세율이 상승하며 자영업자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영업자 중 중ㆍ고령층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규 자영업 진입자의 경우에도 중ㆍ고령층의 비중이 높다는 인식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신규 자영업 진입자의 대부분은 20~40대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현재의 전반적 상황에서 자영업으로의 비자발적 진입은 결코 많지 않다. 신규 자영업 진입자 중 “임금근로로 취업이 어려워서” 진입했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인 2019년의 12%에 불과했다. 자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이유로는 자신만의 사업체 경영, 근무시간의 재량성, 독립적인 업무 처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일부 집단에서는 비자발적 진입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비공식 자영자의 경우 비자발적 진입 응답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연령대나 성별로 살펴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시기 남성과 출산ㆍ육아 시기 여성의 경우 예외적으로 경기 악화 시 자영업 유입 증가가 관찰됐다.
그럼에도 자영업의 과밀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퇴장 측면과 관련 있다. 한번 자영업에 발을 들이면 분야를 바꾸더라도 계속해서 자영업을 영위하는 경향이 존재하므로, 자영업 비중은 연령에 따라 계속 증가한다. 앞서 30~40대에 비해 50대 이상의 자영업 유입은 감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영업 비중이 증가하는 이유는 이러한 지속성 때문이다. 특히 단독자영자의 경우 50대 이후의 자영업 지속성이 높게 나타난다.
자영업 진입 후 생각보다 낮은 소득이나 개인 상황의 변화 등으로 임금근로로의 재취업을 원할 수 있다. 그런데 단독자영자의 경우 특히 50대 이후에 임금근로로의 재취업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지는데, 세부 형태별로는 특수고용직 내지 비공식 자영자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50대 이후 괜찮은 일자리로의 재취업이 어려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을 반영한다.
한 연구위원은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고용안전망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자영업자 고용보험 의무화 필요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사업자등록이 안 된 자영업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소득이나 자산의 의미가 자영업자마다 달라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를 더 내실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도입된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고용보험기금과는 별도의 국가 재정을 투입해 취업 경험이 있는 구직자에게 6개월간 월 50만 원의 구직촉진수당과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원 대상은 중위소득 60% 이하, 순자산 4억 원 이하 저소득가구 구직자다. 모든 취업자가 기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되고, 주로 저소득층의 경제적 위험에 초점을 맞춰 지출금액의 효과성이 높다.
구체적으로 한 연구위원은 국민취업지원제도에서 제공하는 취업지원 서비스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계유지를 위한 단순 소득지원을 넘어서 시장성 있는 직업훈련과 일 경험 기회를 제공해 현재의 폐업, 재창업 지원과 구분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생애 주 일자리 퇴직 내지 출산ㆍ육아기 이후 임금근로로의 재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임금근로로의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려면 취업지원 서비스만으로는 족하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분단적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 예컨대 직무와 성과를 반영하는 보상체계의 확산도 필요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한 연구위원은 실업부조 강화를 주장했다. 그는 “6개월의 수급기간은 국제적으로도 짧은 편”이라며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새로운 숙련 형성에 필요한 충분한 기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민취업지원제도 지원을 받기 위한 소득과 자산 기준도 지금보다 완화해 사각지대를 줄일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의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을 위해 정부는 일자리와 예산을 매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은 5060 퇴직 전문 인력에게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민간 일자리로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사업 참여 대상은 만 50세 이상 70세 미만 미취업자 중에서 전문 자격이나 소정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올해 고용부는 118개 자치단체 518개 사업을 선정해 연말까지 3437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활동 기간은 2022년 12월까지이며, 근무 기간 중 4대 사회 보험 가입 및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가 지급된다.
참여 분야는 취약계층 주거 환경 개선, 중소기업 경영 컨설팅, 장애인 학생 교육, 공사 현장 산업안전 컨설팅, 관광 약자 여행 지원, 플랫폼 노동자 직업 상담, 농업 기술 전수 서비스 등 다양하다.
경력 무관 단기 일자리 논란도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은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특수 자격증이나 높은 수준의 전문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장점과 함께 단점이 존재한다.
지난 2020년 한 매체는 2019년도 '신중년 사회공헌활동지원 및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예산이 259억 원이었는데, 경로당 안마서비스·운영지원, 1인 가구 안부 확인, 가사 정리 등 경력과 무관한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2019년은 60개 자치단체에서 199개 사업을 시행했으며, 일부 자치단체는 지역 내 수요를 반영하여 1인 가구 양육 코칭 등을 시행했으나 대부분 사업은 자격 기준을 갖춘 고령 퇴직 전문 인력이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반박했다.
기사에 인용된 안마서비스는 1개, 1인 가구 돌봄 등은 2개로 전체 사업의 1.5%였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기사에서 말한 경로당 안마제공 사업의 경우 특수학교에서 병리, 해부생리, 안마·마사지 등 1000시간 이상 교육 이수 또는 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안마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수련과정을 마친 경우 획득할 수 있는 안마자격증 보유자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용부는 2020년부터 고령화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고령 퇴직 전문 인력들의 지역 내 사회활동 참여 활성화를 위해 참여자의 경력 및 자격 요건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관련 경력 보유'가 '관련 분야 3년 이상 경력 보유'로 개정됐다. 자격 또한 '국가기술자격 국가전문자격·국가공인민간자격증 등 보유'에서 '국가기술자격법 상 산업기사 또는 서비스 분야 2급 이상 자격 등 보유'로 강화됐다.
요구되는 경력 높아졌지만…
올해 일자리 사업 운영 지침도 확인해 보면, 일자리 기준 부분에 '자치단체(위탁 등의 경우 수행기관)는 참여자에게 자신의 경력․전문성을 활용하여 수행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등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해당 업무와 관련된 경력 3년 이상 등의 전문성이나 직무 능력이 필요한 일자리일 것', '일회성 또는 일시적인 단기 일자리가 아닐 것'이라고 강조되어 있다. 요구되는 경력의 수준이 높아진 셈이다.
이번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의 대표 중 하나인 제주도의 '트래블헬퍼'를 예로 들어보자. 트래블핼퍼는 장애인과 고령자의 관광을 돕는 일이다. 지원 가능 대상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만 50세 이상 70세 미만의 미취업자 중 사회복지사(2급 이상), 요양보호사, 활동 지원사 자격증 또는 여행업 경력(3년 이상)이 있는 경우다. 트래블헬퍼로 채용 되면 직무 교육 후 현장에 투입된다.
요구되는 경력은 높아졌지만 지원되는 임금 수준은 큰 변화가 없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은 '사회공헌' 개념이 강해 생활임금 수준의 급여만 지원된다. 2019년에는 2천여 명이 참여했고, 예산은 89억 원, 월평균 105만 원이 지급됐다. 2020년에는 2천 3백여 명이 참여했고, 예산은 168억 원이었으며, 월평균 124만 원을 지원했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장점은 퇴직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경력을 요구하지만 업무에는 전문성의 한계가 드러나고, 임금이 낮은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다. 퇴직 신중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전문 경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고용안정성과 소득을 더욱 보장해주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유망 직업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아파트 관리소장은 우리가 상주하는 아파트, 상가 등 전체 건물의 관리인을 말한다. 중장년층 채용을 선호하는 직업으로, 보수가 높아서 각광받고 있다. 아파트 관리소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택관리사가 되어야 한다. 주택관리사는 대통령이 정하는 주택관리 실무 경력, 그밖에 주택 관련 경력을 갖춘 자로서 시·도지사로부터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발급받은 자를 말한다.
주택관리사는 공동주택 및 아파트 관리소장, 아파트 관리실 행정관리자, 대형건물 관리자, 공공건물 관리책임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 300세대 이상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아파트에서는 주택관리사 채용이 필수기 때문에 주택관리사의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하면 사무, 회계, 대외업무 관리 등의 행정 관리부터 시설, 안전, 환경 등의 기술 관리까지 담당하게 된다. 또 입주민 간의 민원 및 분쟁을 조정하고 사무, 주차 관리, 청소 등 다양한 직종의 직원들을 지휘 감독한다. 여기에 노인정, 놀이터, 주차장 등 공동시설까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주민들이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가장 선호하는 연령대는 평균 53세로 나타났다. 사회적 경험을 두루 갖춘 중장년층을 선호하는 것. 더욱이 아파트관리소장은 정년이 없어 70대에도 근무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 수입이다. 집합건물 관리기업 ‘우리관리’에서 소속 관리소장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관리소장의 월평균 급여는 380만 원, 평균 연봉은 4555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증 취득 방법
주택관리사 자격증의 정식 명칭은 주택관리사보(Housing Manager)다.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증이다. 자격 시험과 관련된 정보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웹사이트 큐넷(q-net.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1차, 2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올해 1차 시험은 7월 9일(토), 2차 시험은 9월 24일(토)로 예정되어 있다.
1차 시험은 민법, 회계원리, 공동주택 시설개론 총 세 과목이다. 민법은 총칙, 물권, 채권 중 총칙, 계약 총칙, 매매, 임대차, 도급, 위임,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에 대해 다룬다. 공동주택 시설개론은 목구조, 특수구조를 제외한 일반 건축구조와 철골구조, 공기조화, 냉동설비, 홈네트워크를 포함한 건축설비 개론 및 장기 수선계획 수립 등을 위한 건축 적산이 포함된다.
1차 시험은 객관식 5지 선다형이고 과목당 5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1차 시험은 절대평가로 매 과목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 각 과목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득점 시 합격이다.
2차 시험은 주택관리관계 법규, 공동주택관리 실무 두 과목을 본다. 공동주택관리 실무는 시설 관리, 환경 관리, 공동주택 회계 관리, 입주자 관리, 공동주거 관리, 이론·대외업무, 사무·인사 관리, 안전·방재 관리 및 리모델링 등에 대한 실무적인 내용을 다룬다.
2차 시험은 과목당 50분으로 1차와 동일하지만 주관식 문제가 있다. 더욱이 2020년부터 2차 시험은 상대평가로 바뀌어 고득점을 받아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시험이 1차, 2차로 나뉘어 있어 시험 준비부터 취업까지 빠른 경우 1년 만에 가능하다. 그러나 연령이 높고 시험 합격에 자신 없는 수험생이라면 1차는 올해, 2차는 내년에 합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짜고 천천히 준비하는 것도 좋다.
자격증 취득 후 아파트 관리소장 되는 법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바로 주택관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500세대 미만 아파트에서 근무 가능하다. 여기서 3년의 경력을 채워야 정식 주택관리사 자격이 주어진다. 정식 주택관리사가 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으로 취업할 수 있다.
자격증 취득 후 취업하는 방법은 공채와 사채 두 가지가 있다. 공채는 위탁 관리업체에서 공개 채용으로 뽑는 것이고, 사채는 인맥 등으로 빈자리가 났을 때 들어가는 방법이다. 보통 공채로 많이 취업한다. 공채는 대부분 10~12월에 진행된다. 때문에 주택관리사로 첫발을 딛는 사람이라면 2차 시험 합격 여부를 예상해 취업 준비를 바로 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다. 더욱이 아파트 관리소장이 맡는 업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요구되는 능력도 다양하다. 먼저 경리 업무가 가능한 관리자를 선호한다. 업무 자체가 경리겸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리실무, 전산회계 같은 회계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전기·소방·위험물·보일러 기사 또는 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친환경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 조경과 관련된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플러스 요인이 된다
◇“안정적인 월급, 정년 없어 좋아”
황보반 아파트 관리소장
황보반(63) 관리소장은 원래 응급의료기기 납품을 하는 사업가였다. 사업이 어려위지면서 2011년 일을 접게 됐고, 아내의 추천으로 아파트 관리소장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10여 년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황보 소장은 “내가 돈을 제대로 못 버니까 아내가 강력하게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라고 했다. 그동안 아내를 고생시켰으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 일을 하기로 했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그해부터 그는 아파트 전기기사로 일했다. 동시에 주택관리사보 자격증 준비를 했다. 2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했고, 2014년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전기기사 경력에 자격증까지 취득한 뒤 정식으로 아파트 관리소장이 된 것은 2016년 1월 1일이다.
황보 소장은 자격증 취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대해 “기술자 입장에서 1차 시험 과목인 회계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도 아파트 관리소장은 경리나 회계와 관련된 업무가 많다 보니 그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하기에 더 좋은 직업 같다고 짚었다. 덧붙여 황보 소장은 아파트 관리소장의 장점으로 안정적인 월급과 정년이 없는 점을 꼽았다.
“사실 우리 나이대에 일정하게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다는 게 어렵잖아요. 300만~4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트 관리소장의 장점이죠.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은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반대로 단점도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관리소에서는 공용 부분만 관리하는데, 입주민들이 전유 부분도 관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 예로 아파트 유리창은 전부 전유 부분입니다. 난간대만 공용이에요. 그런데 그 유리창 청소를 관리비로 하재요.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또 그거를 공동구매 개념으로 하자고 해서 일을 진행해주면 꼭 악성 민원이 발생해요. 청소가 잘못됐다든지 같은. 직원들이 전유 부분이라서 안 해줘도 되는 것을 도와줄 때도 있어요. 그러면 고맙다고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당연히 여기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될 때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보람도 느낀다. 황보 소장은 “우리 일은 총괄적인 관리를 하는 거다. 기술, 행정, 조경까지 모든 것을 한다”면서 “3년에 한 번씩 법적인 절차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제는 전기 검사를 했는데 무사히 잘 마쳤다. 그럴 때 안도감과 또 하나의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입주민들에게 “서로 상식과 순리가 통했으면 좋겠다. 아파트가 새것이라도 결국에는 점점 낡아지지 않나. 관리와 보수를 잘해서 오래 유지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15년 전 상조회사에 입사해서 내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장례 절차도 염습 기술도 아닌 ‘노자 멘트’였다. 염을 다 하고 관에 모신 직후 유족들을 모시고 염습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마지막 인사를 시킨다. 그러면서 시신 위에 저승 가시는 길에 마지막 용돈을 드리라고 ‘멘트’를 친다. 멘트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치느냐에 따라 그날 노잣돈 액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노자 멘트는 매우 중요했다. 그 시절 노자 멘트는 대부분 보조팀장들이 했는데, 노잣돈이 적게 나오는 날에는 고참에게 욕을 들어먹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도 염습 장면을 참관하면서 아버지의 관 안에 노잣돈을 넣어드렸다. 마지막 ‘천판’(관 뚜껑)을 덮고 결관하여 다시 안치실에 모실 때까지도 나는 장례지도사들이 노잣돈 빼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지막 천판 닫는 순간 유족에게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드리라고 하는데 그 순간 빼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잣돈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간은 영혼이 사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생사관을 바탕으로 영혼이 사는 세계에서도 재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죽은 사람의 몸이나 무덤 속에 재물을 넣어주는 문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순장(殉葬)이라는 형태까지 생겨났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런 풍습은 점점 사라졌다. 이후 국가별·종교별로 다른 생사관이 생겨났고, 그에 따른 죽음 의례도 발전해왔다.
우리 전통 장례에서는 노잣돈 놓는 절차를 찾아볼 수 없다. 비슷한 절차로는 습(襲)1)의 단계에서 ‘반함’(飯含) 의례가 있다. 반함은 시신의 입에 쌀과 엽전 혹은 구슬을 물려 입안을 채우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에 대한 예(禮)로 행하는 것인데, ‘예서’에는 ‘반함을 하는 이유는 차마 입이 비어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맛있고 깨끗한 물건을 채우는 것’이라 나와 있다. 저승 가서 쓰라고 드리는 노잣돈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내가 염습을 할 때는 주로 불교용품점에서 판매하는 지전(紙錢, 가짜 돈)을 준비해서 유족에게 미리 나누어드리고 노잣돈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잣돈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죽은 이에게 5만 원 지폐를 가득 넣어드린다고 해도 유족들 마음에 미움과 원망이 가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지전이라 하더라도 가족들 마음에 공경과 사랑이 가득하다면 10억 원, 100억 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담아 저승으로 보내드리자.
1) 유교 상례 절차의 두 번째 단계로 고인을 목욕시키고 습의(襲衣)를 입히는 절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