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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쓰고 게임하는 노인, 치매 발생 5년 늦어
- 노년에 책 읽기, 편지 쓰기, 카드게임 등 인지기능을 자주 활용하면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 연령이 평균 5년 정도 늦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러시(Rush)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로버트 윌슨 신경과학 교수 연구진이 러시 기억·노화 연구 프로젝트로 평균 7년간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과학뉴스 포털 ‘메드페이지 투데이(MedPage Today)’가 14일 보도했다. 연구진은 평균연령 79.7세로, 암이나 심장병 등 7가지 만성질환 중 하나를 갖고 있는 노인 1903명(여성 74.9%, 백인 89.1%)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연구에 참여한 노인들 소득 수준은 3만5000~5만 달러(약 4000만~5700만 원)였다. 연구진은 매일 읽는 시간과 연간 도서관 방문 횟수, 잡지 읽기, 책 읽기, 편지 쓰기, 게임(퍼즐, 카드, 보드 게임 등) 같은 특정 인지자극 행동 7가지를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노인들에게 점수를 매겼다. 인지자극 행동을 가장 많이 하는 노인들부터 순서대로 5점~1점 점수를 줬다. 전체 노인 중 연구 기간에 사망한 695명에 대해서는 뇌 조직 부검을 통해 신경병증 검사를 시행했다. 조사 기간 중 457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 진단 평균 연령은 인지 자극 행동 점수가 높은 그룹(4.0점)이 93.6세로, 점수가 낮은 그룹(평균 2.1점)의 88.6세보다 5년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교육 수준이나 성별, 기본적인 사회활동이나 고독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치매 위험을 높이는 변이유전자(ApoE-4)나 연구 시작 당시에 이미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노인들을 제외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인지 자극 행동이 알츠하이머 치매 자체를 예방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뇌세포의 비정상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가 인지 자극 행동 점수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교육수준이나 나이가 들기 이전에 했던 인지 자극 활동은 치매 발생 연령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구진은 나이가 들고 난 뒤에 행해지는 인지 자극 활동이 치매 발생 연령을 늦추는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윌슨 교수는 “80대부터라도 독서와 글쓰기, 퍼즐, 카드 게임 등으로 뇌 활동을 늘리면 치매 발생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 2021-07-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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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자 발표
- 신한은행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주최·주관하는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이번 공모전은 “나의 미래설계를 위한 브라보!!’라는 주제로 ‘인생이모작’, ‘앞으로 꿈꾸는 나의 모습’, ‘30년 전 나의 꿈’, ‘퇴직 후 1년의 생활’, ‘마침내 무한변신’ 등의 소재를 중심으로 지난 4월 15일부터 6월30일까지 접수를 진행했다. 글쓰기로 새로운 꿈과 희망을 주는 ‘50+신춘문예 시니어 공모전’ 수상자는 △대상 김영식(미니자서전), △최우수상 김귀순(시), 박도열(소설), △쏠드상 박상미(동화)이다. 우수상은 △산문 김영창, △시 이석재, △미니자서전 은정남, △동화 배홍숙, △단편소설 박상희 △동영상 김석철 이상 6명이다. 장려상은 △미니자서전(김명심, 이정희, 정지우, 김상문, 정승범, 양필숙, 이창대) △시(노재순, 김태형, 이생문, 조성연, 신강균, 조성숙) △산문(김호성, 문봉기, 이완호, 오미향, 박기호) △ 소설(허정애) △ 동영상(정영수) 이상 20명이다. 이번 공모전 심사는 6개 부문별로 나뉘어 작가, 시인, 소설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6명은 공모된 작품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에 참여한 한 작가는 “아주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짜임새와 울림이 있는 응모작과 부단한 습작의 흔적과 더불어 세월과 인생에 관한 담담한 관조가 담긴 수작들이 있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인생 후반, 50플러스 세대가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인생 전반전에 살아왔던 삶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아픔과 경륜, 체험은 소중한 글감이 되고 누구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니어는 삶의 코드에 열정과 변신의 에너지를 흘러가게 하는 열망이 본능의 힘처럼 강해진다. 이에 치유와 감동, 재미, 깨달음을 넘어선 시니어의 글쓰기는 계속 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당초 7월 26일로 예정돼 있던 시상식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격하게 확산함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완화 조치에 따라 수상자에게 시상식 날짜와 진행 상황을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 2021-07-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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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선택! 자서전 쓰기
- 일상 속 순간을 매일 기록하는 것이 일기라면, 자서전은 한 인간의 인생이 담긴 삶의 기록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명예로운 일을 한 위인들만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아니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지나간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서전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는 동시에 다음 세대와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마무리가 있을까? 자서전은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멋진 선택일지도 모른다. 자서전 쓰기 전 준비사항에 대해 알아보자! 공책과 메모 눈 밖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무수한 연습만이 실전에서 살아남는다. 글감이 없다면 책상에 앉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생각나는 사건과 떠오르는 감정을 놓치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공책에 메모하자. 주제와 시기별로 나눠라 평소에 글쓰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면 막막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 살아온 인생을 10대, 20대, 30대 등 시기별로 있었던 일을 정리하거나, ‘어머니’, ‘가족과 얽힌 음식’,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말하듯이 써라 일단 정리는 했는데 쓰려고 하니 마음이 심란하고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럴 때는 부담감을 버리고 평소 손주나 친구, 배우자와 대화하듯이 말하면서 써보자! 진짜로 그들을 옆에 앉혀놓고 서로 대화하면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2021-05-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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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를 위한 유산, 증여와 자서전
- 앞길이 구만리인 청년 세대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인생의 종착점이 다가온 시니어의 화두는 ‘어떻게 남길 것인가?’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무형 자산에 해당하는 증여와 자서전에 대해 살펴본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난 김증여 씨. 최근에는 손주 돌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귀여운 손주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재산을 증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바 세대 생략 증여를 결심했다. 세대 생략 증여는 절세 효과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국내 자산가들은 자산 이전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의 증여와 상속으로 자산을 이전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3.6%였다. 과반수가 동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원인은 그들도 윗세대로부터 받은 재산으로 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증여와 상속은 부의 원천 중 하나였다. 실제로 50억 원 이상 부자의 23.7%는 상속과 증여를 부의 원천으로 꼽기도 했다. 다만 상속의 대상이 점차 변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상속 및 증여 1순위 대상은 자녀였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10년 전과 비교해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2011년까지만 해도 손주는 상속과 증여 비중에서 9.2%에 불과했는데, 2020년 기준 약 3배 이상 증가하며 31.8%를 기록했다. 특히 50억 원 이상 부자의 경우 10년 전과 비교하여 상속과 증여 대상에서 자녀 비중이 6.3% 감소했으나, 손주의 비중은 23.8% 증가했다. KB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여전히 자녀의 비중이 높지만, 손주의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세대 생략 증여의 절세 효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자녀 세대를 건너뛰고 미성년 손주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세대 생략 증여도 늘고 있다. 지난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부모에서 미성년자 손주에게 증여된 재산 총액은 2015년 3054억 원에서 2018년 7117억 원으로 3년 만에 133% 급증했다. 1건당 평균 증여액도 1억5693만 원에서 1억7886만 원으로 늘었다. 특히 부동산을 통한 손주 증여액은 2015년 1296억 원에서 2018년 3653억 원으로 182%나 뛰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세청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직계존비속 증여 재산 가액이 30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세대 생략 증여로 절세 증여세의 세율은 금액에 따라 5단계 구조로 나뉜다. 해당 구간의 초과 금액만큼 최소 10%에서 최대 50%까지 세율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1억 원의 경우에는 10%에 해당하는 1000만 원을 증여세로 내면 된다. 하지만 3억 원이라면 계산이 달라진다. 1억 원일 경우 내야 하는 1000만 원과 더불어 1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인 2억 원의 20%에 해당하는 4000만 원을 합해 총 5000만 원을 증여세로 낸다. 세대 생략 증여는 최소 30%에서 최대 40%까지 가산된다. 법규상 손주에게 증여할 경우 기본적으로 30%가 가산된다. 미성년 손주에게 20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증여할 경우 40%를 가산한다. 다만 아들이 사망한 후 손주에게 증여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대 생략 증여의 절세 효과는 아예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순차적으로 증여를 한다고 가정하면 조부모는 자녀에게 한 번, 자녀는 손주에게 한 번 해서 총 두 번의 세금을 낸다. 반면 세대 생략 증여는 손주에게 증여하면서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예를 들어 조부모가 1억 원의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면 10%의 증여세를 내고, 자녀가 그 재산을 손주에게 물려주면 다시 10%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총 20%에 해당하는 2000만 원의 증여세를 내는 것이다. 반면 조부모가 손주에게 1억 원을 증여하면 할증 과세로 30%가 붙더라도 총 1300만 원의 증여세만 내면 되기 때문에 확실히 절세 효과가 있다. 또한 세대 생략 증여는 상속세를 줄인다. 상속세는 사망 당시 남긴 재산의 가액에 따라 세금이 결정된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리 증여를 통해 사망 후 남길 재산을 줄이는 것이 낫다. 다만 법에서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 가액이 있거나 5년 이내에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증여한 재산 가액이 있는 경우에는 과세 가액에 가산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결국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살아야 가산을 피할 수 있고, 손주에게 증여하는 경우는 5년 이상 살아야 과세 가액에서 배제된다. 황혜린 NH투자증권 세무사는 “세대 생략 증여는 할증 과세를 내야 하지만, 상속세를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시니어는 자서전을 남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천국의 중간역 ‘림보’에서 일하는 PD다. 그의 역할은 천국으로 가기 전 각자가 가진 소중한 기억을 선택하게 도와주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첫사랑과의 만남, 디즈니랜드에 처음 간 일, 어린 시절 오빠 앞에서 춤을 멋지게 춘 일 등 각자가 추억하는 삶의 명장면이 달랐다. 물론 택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표현했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바로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살아온 시간 중 삶의 순간을 선택하고 조립하여 만든 결과물이다. 일상 속 순간을 매일 기록하는 것이 일기라면, 자서전은 한 인간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삶의 기록이다. 현시대에 유행처럼 일어난 현상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자서전에 대한 갈망은 과거에도 꾸준히 있었다. 서양에서 이러한 일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몽테뉴 백작의 ‘수상록’ 등이 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명예로운 일을 한 위인들만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아니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지나간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글쓰기는 다른 것에 비해 준비물이 간소하다. 펜과 그 펜을 쥘 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시절의 추억과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알맞은 단어와 문장으로 편집해서 그럴듯한 글로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에 큰 각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시니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서전을 쓰고 있을까? 지난해 코로나19가 불어닥친 악조건 속에서도 서대문구청이 진행한 ‘행복 타임머신’ 사업에 참여하여 자서전을 쓴 시니어들이 있었다. 올해 4년 차에 접어든 해당 과정은 대학생과 함께 자서전을 써나가는 수업인 동시에 시니어에게는 학교나 다름없었다.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선택 코로나19 이전에는 함께 교외로 나들이를 나가고, 대학교 내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 대학생과 비슷한 생활을 했다. 실제로 참여했던 분 중에 주위 지인에게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수업을 통해 글쓰기 이론을 배우며 실제로 써보기도 하고, 자신의 글을 남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저마다의 고달픈 사연으로 인해 발표 시간은 늘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생과 함께 적어나간 삶의 얘기들은 ‘안산자락에 살으리랏다’라는 제목을 달고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은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참여 동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삶의 순간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던 차에 주위의 권유와 안내 책자를 보고 호기심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서전 쓰기는 그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업 이후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정표가 생겼다. 수업에 참여한 이상각(75) 씨는 “가끔 수업에서 시 낭송을 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하며 “자서전 쓰기는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동시에 나의 소중함을 알려줬다”라고 밝혔다. 엄신자(78) 씨는 “자서전 수업을 통해서 낭비와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라고 밝히며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서 틈틈이 글을 적고 있는데,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산문집을 한 권 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자서전 쓰기 수업을 진행한 이성림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는 “자서전은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정리하는 동시에 내 삶의 정체성을 기록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자서전 쓰기는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인 동시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는 일이다.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신 분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만큼 각자의 얘기에 공감하고, 서로를 다독였다”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자서전은 후손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 수업에 참여한 김옥원(85) 씨는 “내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자서전이 훗날 손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밀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쓴 자서전에 내용을 덧붙여 USB 형태로 손주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순철 한국기록연구소 대표는 “자서전은 책이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다”라고 말하며 “노인들은 자서전을 통해 이야기를 건네면서 자기위로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들을 이해하는 미디어다”라고 설명했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동시에 다음 세대와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마무리가 있을까? 자서전은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멋진 선택일지도 모른다.
- 2021-05-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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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경력 판매합니다” 중장년의 ‘재능마켓’
- 중장년 일자리, 재취업과 창업만이 대안일까? 최근 ‘긱 잡’(Gig Job, 정규직 대신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는 일자리)이 늘어나면서 능력을 거래하고 판매하는 ‘재능마켓’이 구직난 속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이 알아야 할 재능마켓을 소개한다. 자료 탤런트뱅크, 클래스101 제공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희망퇴직자가 늘어나면서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고(高)스펙·고학력을 갖춘 중장년들이 고용 시장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30~40년 경력과 전문성을 보유했음에도 알맞은 직장을 찾지 못해 전혀 다른 직무로 임금을 낮춰 재취업하거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중장년 일자리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지자 재능마켓을 비롯해 ‘긱 잡’을 활용한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한 사람과 해당 능력을 보유한 개인을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2025년까지 긱 잡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 프리랜서 시장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통합 금융 솔루션 기업 페이오니아 코리아가 지난해 발표한 ‘2020 글로벌 프리랜서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프리랜서 노동 인구의 70%가량이 18~3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55~64세는 3%, 65세 이상은 1%에 불과했다. 실제로 ‘크몽’, ‘숨고’ 등 재능 매칭 플랫폼 이용자도 대부분 젊은 세대다. 반면 수입은 55세 이상이 젊은 세대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특히 55~64세 프리랜서의 평균 시급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36달러로, 전 세계 프리랜서 평균 시급보다 15달러 많았다. 경력이나 스펙에 따른 임금 체계가 프리랜서 시장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재능마켓은 수십 년간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의 장이다. 나이가 들면서 1일 8시간 소위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이들에게도 솔깃한 대안이다. 기업에 소속되어 임금을 받는 근로 형태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다면 트렌드에 편승해 기회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 시니어 경력, 중소기업이 산다 ‘탤런트뱅크’ 최근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을 겨냥한 인재 매칭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의 ‘탤런트뱅크’가 대표적이다. 탤런트뱅크는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시니어 전문가’를 기업의 요구 사항에 맞게 매칭하고 필요한 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신상품 출시를 위해 해당 분야에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일정 기간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전문가는 전문 분야에 맞는 일자리와 경력에 따른 높은 임금을 얻고, 기업은 특정 기간만 업무를 맡겨 채용 및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3000명의 시니어 전문가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두 중소기업 임원, 대기업 팀장 이상 등 한 분야에서 15년 이상 경력을 쌓은 고스펙 인력이다. 직업은 프리랜서가 가장 많지만, 기업에 재직 중이거나 사업을 운영하며 전문가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일회성 단기 자문부터 월 단위의 중·단기 프로젝트, 아웃소싱 등의 형태로 업무를 수행한다. 가장 많이 의뢰한 분야는 △마케팅 △경영전략·신사업 △영업·구매·유통 △IT △엔지니어링 △재무·투자 △인사·총무 순이다. 시니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원자가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후 기업과 전문가를 중개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지원자의 전문성을 검증하고, 1:1 인터뷰를 거쳐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해당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능력과 인품을 겸비했는지도 확인한다. 탤런트뱅크에 따르면 현재까지 8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성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업의 재의뢰율이 60%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회계·재무·관리 부문에서 6개월간 자문을 수행하면서 획기적인 매출을 달성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임원으로 채용된 사례도 있다. 단기 프로젝트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개인과 기업 모두 윈윈(Win-win)하는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공장환 탤런트뱅크 프로젝트 매니저는 “플랫폼 노동자라고 하면 단순노무직만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도 긱 경제를 활용할 수 있다”며 “고용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난 만큼 중장년층도 새로운 고용 형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탤런트뱅크의 시니어 전문가, 이렇게 일했다! 단기 자문 실버 사업을 준비 중인 금융 대기업 A사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전략 등 제반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자문이 필요했다. 이에 신사업 경험이 풍부한 S대 MBA 출신 전문가는 단기 자문을 통해 사업 계획, 비용, 수익 최적화 모델 등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전반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다. 진행 방법 보고서+1시간 설명회 비용 50만 원 프로젝트 전화 응대 과다 및 데이터 부재 등 업무 비효율이 발생한 콜센터 B사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IT 보안 업체 총괄 및 시스템 개발 등의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를 매칭했다. 전문가는 콜센터 데이터 분석, 운영 방안 제시 등을 통해 기업 내 경영 이슈를 해결했다. 기간 2개월 근무 형태 30회 방문 컨설팅 비용 총 900만 원 아웃소싱 C사 경영관리팀은 팀 내 분야별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등 조직 내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 3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경영관리를 담당한 전문가를 아웃소싱 형태로 고용했다. 전문가는 재무·인사 등 분야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총망라하고, 직장 내 교육을 병행해 전문지식을 전수했다. 진행 방법 5개월 풀타임 비용 월 500만 원 ◇ 중장년 크리에이터 도전, ‘클래스101’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 비법 등을 기업이 아닌 불특정 대상에게 전수하는 방법도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서다. 대표적으로 MZ세대에게 각광받고 있는 ‘클래스101’은 기존 온라인 교육 시장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통해 크리에이터와 수강생을 연결하고 있다. 음악·미술·운동 등 취미 관련 강의부터 부업·재테크 노하우, 업무 능력 향상 등 일 잘하는 방법, 인문·사회·예술을 비롯한 교양 강의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2021년 2월 기준 1200개가 넘는 클래스가 개설되었으며, 누적 크리에이터 수는 7만5000명이 넘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N잡러’(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회의 땅 같은 곳이다. 수강생은 평소 관심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해 부업이나 창업을 도모할 수 있고, 크리에이터는 한 분야에서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부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를 통해 얻는 수익은 꽤 쏠쏠하다. 클래스101에 따르면 강의 개설 첫 달 크리에이터의 평균 수익은 약 650만 원이며, 그중 가장 인기 많은 크리에이터 3인의 월 평균 수익은 무려 1억6000만 원에 달한다. 온라인을 활용한 플랫폼인 만큼 20~30대 크리에이터가 대다수지만, 중장년 크리에이터도 분야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6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한 재테크 카페 운영자 송창희 대표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직접 투자 공부를 하며 자산을 불렸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부동산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년간 방송작가로 일한 이윤영 작가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갱 와인 디렉터, 오중석 사진가, 이양지 요리연구가 등 각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이들이 크리에이터로 활약 중이다. 강의는 연령과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만들 수 있다. 강의 개설은 두 달 정도 걸린다. 먼저 제작하려는 강의가 얼마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일주일간 수요 조사를 진행해 반응을 살핀다. 이후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일주일 동안 실제 판매 추이를 분석해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 계약 기간에 꾸준히 수익을 정산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강의를 개설하는 것이다. 해당 과정을 거쳤음에도 수익을 얻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은 클래스101 측에서 지불한다. 은퇴 후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이라면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강의를 수강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며느리가 만든 브이로그 영상을 보며 ‘작은 영화’ 같다고 느낀 60대 이나경 씨는 클래스101을 통해 영상 편집 강의를 수강하고 시니어 유튜버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재능이 돈이 되는 시대, 수십 년의 관록으로 빚어낸 중장년의 전문성과 지식은 긱 잡 시장에서 탐날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그 규모와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은퇴 후에도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재능의 값어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PLUS+] MZ세대 인기 프리랜서 마켓 ‘크몽’ 2012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재능 프리랜서 마켓 ‘크몽’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MZ세대의 놀이터다. 전문가로 등록하면 디자인부터 IT·프로그래밍, 영상·사진·음향, 마케팅, 통·번역, 문서·글쓰기 등 무형의 재능을 판매할 수 있다. 또 사주와 궁합까지 사고팔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전자책’ 출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책은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를 글로 작성한 뒤 PDF 파일로 공개하는 것으로, 한 번의 출간으로 소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은 대략 1000원부터 3만 원까지 다양하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안구건조 이겨내는 노하우’, ‘하루 생산성 극대화하는 방법’ 등 자신만의 비법을 담은 이야기도 전자책으로 만들 수 있으니,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도전해봐도 좋다.
- 2021-03-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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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초성 위인열전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어린이 여러분, 우리나라 위인 알아맞혀 보세요. ㅇㅅㅅ은? 이순신, ㄱㅈㅎ은? 김정희, ㅈㅇㅇ은? 정약용…, 한글 자음 초성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퀴즈를 주고받으면 재미있어. 초성놀이는 활용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 애정을 담아 건네는 농담이나 군색한 처지의 변명에도 효과적이잖아. 어떤 남자가 짝사랑하는 여자한티서 이런 문자를 받았대. “ㅊㄲㅃㅇㅇㅅㅅㄱㄱㅍㅌㄷㅈㅌㅂㅎㅅㅅㅇㅅㅊㅊㅈㅍㅋㅇㅍㄲㅈ.” 드디어 내 맘을 받아들였구나 싶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뜻을 알 수 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니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였대. 한동안 유행하던 패스트푸드사의 CM송 가사였다는군. ㅋㅋㅋ. 이걸 죽여, 살려? 2020년을 보내면서 나도 그 여자 본받아 초성 위인열전을 만들려 함. 근데 뛰어나고 훌륭한 위인(偉人)이 아니라 일 저지른 위인(爲人), 즉 장본인들이여. 선정기준은 많아. 아시타비(我是他非) 금시작시(今是昨是)라고 난 항상 옳고 넌 틀렸다는 자, 손 뒤집어 구름 만들고 손 엎어 비를 만드는 번운복우(飜雲覆雨, 두보의 시에 나오는 말)의 사기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이건 정경심 교수 재판부가 한 말) 위인, 공개념도 없이 공직을 맡고 있거나 탐내는 가짜, 불량품 재고 창고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 다리를 뻗으면 누울 자리가 생긴다는 신념과 지조로 세상을 사는 얌체, 품위는 개뿔, 뭐든 마구 써대거나 내뱉는 막말 양아치, 아무리 뜯어봐도 한마디로 왕싸가지…. 이렇게 기준이 많지만 사실은 내 맘대로여. 내가 경멸·타기하는 자들. 남녀 불문, 여야 불문에 안주 불문이여.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한 건디, 매국노 이완용은 ㅇㅇㅇ이더군. 그러니까 “응응응” 하다가 나라를 팔아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듦. 아무리 초성만이라도 사람은 이름을 닮는 게 아닐까. 아니야. 나는 알다시피 ㅇㅊㅅ인디 그러면 내가 서울시장 나온다는 안철수여, 축구선수 이천수여? 다 안 맞잖아. 하여간 가나다의 역순, 다나가 순으로 한번 위인들 열병(閱兵)을 해볼까. 여기 실명이 등장하는 분들께는 한사코 죄송·미안하지만 대의를 위해 한번 눈감아주셨으면 함. △ㅎㅇㅎ=현재 국회의원이여. 똑같은 ㅎㅇㅎ 초성자에 개그맨 황연희가 있지. 요즘은 활동이 뜸하지만 잘 웃기고 재치가 좋아. 근데 이 의원님은 다른 방식으로 웃기고 있음. △ㅎㅈㅍ=빨간색을 디게 좋아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주특기. “이 사람과 한 번 틀어지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기억력도 좋고 집요해. 누가 이 사람과 맞서면 ‘안 싸우는 게 상책’이라고 말린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더라. △ㅊㅁㅇ=단연 2020년의 대스타. 정호승의 시처럼 ‘산산조각’이 난 꼴이 되긴 했지만, 이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인기가 대단해.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가 뭘 칭칭 감아댈 덩굴인지 알 수 없어. △ㅊㄱㅇ=없는 일을 있게 만드는 달인. 재판 받다가 다른 일정 있다고 조퇴를 시도할 만큼 국사에 충실한 사람,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최기영 전 과기부장관도 ㅊㄱㅇ인디, 이 사람도 나중에 장관 되는 거 아녀? △ㅈㄱ=이름이 외자인 사람은 노출되기 쉽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선생도 ㅈㄱ이긴 하지만 내가 뽑은 위선자와 달리 이분들은 학문 연구와 직언으로 유명했어. △ㅇㅎㅊ=50년 집권론을 부르짖은 사람이야. ㅇㅎㅊ 중에 유명한 사람은 이환천이라는 시인인데, 시가 재미있고 촌철살인이여. 다음은 그의 작품 ‘문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다음이/뭔지아니?/답은‘하야’” 이건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쓴 거지만 지금도 착용감이 좋아. △ㅇㅈㅁ=싸움닭같이 전후사방 안 싸우는 사람이 없어. 참 바빠. 신경림의 시에 ‘목계장터’라는 게 있는디, 이곳은 牧溪(목계)지만 나는 木鷄(목계)라는 장터에 보내주고 싶어. 이 목계가 뭔지 궁금하면 찾아보셔. 아니 검색하지 말고 사색부터 해보셔. △ㅇㅇㄱ=불량품 창고가 우리나라 도처에 있다는 걸 잘 알려준 사람. 이걸 다 빨리빨리 처분해야 하는디 참 걱정이야, 그치? ㅇㅇㄱ ㅇㄴ, 이게 뭐어게? “어이가 없네”야. 하는 짓이 정말 어이가 없어. △ㅇㅁㅎ=와인의 아름다운 향기를 잘 아는 국회의원. 할머니들한테 참 유명한 사람. 이름을 일본어로 읽으면 미카인데, 원래 일본에서 온 이름인지 우리 고유의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어. 프로골퍼에도 ㅇㅁㅎ이 있지. △ㅇㅅㅁ=이세민? 당 태종의 이름도 아니고 영세민과도 무관해. 검찰의 은행계좌 추적 정보에 일가견이 있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해박, 아니 각박한 사람이여. 나는 해박(該博)을 각박(刻薄)으로 읽곤 하거든. 아는 게 많으니 곡학아세, 사기 치기도 유리하겠지. △ㅅㅎㅇ=목포는 항구라는 걸 잘 아는 전직 국회의원. 남동생이 죽었을 때 어디까지나 침착 냉정을 잃지 않는 차분함이 참 인상적이었어. 내 한국일보 입사 동기에 손홍익(孫鴻翼)이 있었는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지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도 잘 있겠지? △ㅂㅊㅎ=국토는 좀 아는디 교통은 몰라. 모르는 거 또 있어. 너무 바빠서 자동차 압류되는 것도 모르고 세금도 못 냈지. 야당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된 스물여섯 번째 장관님. 못사는 사람이 미쳤다고 장관하려 하겠어? 혼자 다 해요. △ㄱㅇㅁ=초성만 같을 뿐 사실은 두 사람이여.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회의원 되려다 실패했어.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 개그맨 강유미는 인터뷰 잘하던데, 이 두 사람은 입만 열면 시끄러워져. △ㄱㅇㅈ=머리는 감고 사나? 난 화가 수필가 미술사학자였던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의 글을 좋아하고 한문학자인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를 잘 알지만, ㄱㅇㅈ이라는 초성이 참 아까워. 왜곡과 억지로 언론인 행세를 하니, 에구 쯧쯧. △ㄱㄴㄱ=ㅈㄱ, ㅊㅁㅇ의 똘마니라지? 똘마니는 서럽지만 더 빛을 볼 날이 있을 거야. 똘마니니까 짧게 쓰자. 이 밖에 ㄱㅌㄴ, ㅈㅊㄹ, ㄱㄷㄱ, ㄴㅇㅁ, ㅇㅇㅈ, 이런 정계 인사들과 ㅇㅅㅇ, ㅅㅈㅊ, ㅈㅎㅇ, ㅈㅈㅇ, ㅂㅇㅈ, 이렇게 장래가 촉망되는 검사들이 제제다사(濟濟多士)야. 인물이 너무 많아 다 못 쓰겠음. 천자문에 나오는 대로 ‘준예밀물 다사식녕(俊乂密勿 多士寔寧)’, 재주와 덕이 뛰어난 사람들이 힘써 일하고 많은 인재가 있어 나라가 편안한 상황 아니겠어? 근데 어떤 기자가 쓰기를 “내 평생 검사(檢事) 이름을 이렇게 많이 알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지? 장·차관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평생 검사랑 맞닥뜨릴 일 없는 사람들이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여러 명의 이름을 알게 되다니. 초성만 써놓고 봉게 나도 누가 누군지 정말 헷갈린다. 그나저나 이놈의 컴퓨터는 왜 한글 자음만 치면 무조건 영어 알파벳으로 돌아가지? 한글이 알파벳의 종속 문자냐? 글쓰기 불편해서라도 내년엔 이런 거 좀 안 썼으면 정말 좋겠구나야.
- 2020-12-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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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면 전화로 원고를 불렀다
- 왕년 전성기에 누렸던 최고의 영웅담이나 에피소드. 시간을 되돌려본 그 시절, 우리 때는 이것까지도 해봤어, 나도 그랬어, 그랬지!!라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추억 속 이야기를 꺼내보는 마당입니다. 성탄절 분위기로 거리가 술렁거릴 때면, 오래전 세모의 귀성열차가 떠오른다. 4·19 학생혁명이 일어난 1960년 12월 31일, 내가 타고 온 열차는 6·25 피란열차 같다 했다. 그걸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지붕 위까지 사람과 짐으로 빼곡한 사진들을 보면, 거기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객차 안은 사람이 지나다닐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입석 승객이 꽉 들어찼다. 객석에는 예외 없이 세 사람씩 앉았고, 무릎에 어린아이를 앉힌 사람도 많았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짐을 올려두는 선반까지 차지하고 누웠다. 연말 귀성 인파였다. 그런 혼잡 속에 화장실 가는 사람, 사이다 맥주 파는 홍익회 판매원, 역마다 밀고 들어오는 승객들, 검표원, 차장 등이 수시로 인파를 헤치고 다녔다. 비켜 달라, 발 밟지 마라, 사이다 한 병 달라, 조용히 해라…. 말과 말이 부딪치고, 억양에 감정이 묻어나고, 더러는 상소리도 오갔다. 추운 날인데도 사람의 체열과 난방 열기로 객차 안은 후덥지근하여 창을 열어야 할 정도였다. 열차가 터널을 지날 때는 쾅쾅쾅 마치 총소리 같은 경음이 귀청을 때렸다. 일제히 차창을 내리는 소리였다. 창을 닫지 않으면 기관차 연기가 객실로 쏟아져 들어와 기침들을 해댔다. 창가에 팔을 올리고 있다가, 내리치는 창틀에 맞아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고…. 정오 무렵 제천 역을 떠난 열차는 그런 혼잡과 소음을 싣고 청량리역에 닿았다. 저녁 8시, 정선 화암면을 떠난 시간이 새벽 4시였으니 서울까지 16시간 넘게 걸린 셈이었다. 역사를 빠져나오는 내 귀청에 울린 멜로디가 묘한 감흥을 일깨웠다. 가수 손시향의 히트곡 ‘이별의 종착역’이었다. 처음 타보는 전차 차창 밖 종로 거리 풍경은 놀라움과 경탄의 연속이었다. 세상에! 책방이 저렇게나 많다니… 저렇게 밤거리가 밝다니… 사람들은 왜 저리 많지? 그렇게 나를 달뜨게 했던 1960년은 저물었고, 중학교 시절도 끝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꿈에도 그리던 서울 학생이 되어서는 신기한 것, 갖고픈 것이 너무 많았다. 제일 신기했던 건 스케이트였다. 날렵한 가죽 신발에 반짝이는 스케이트 날은 겨우내 마음속에만 있었다. 그 비싼 걸 사 달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원효로 전차 종점 마을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것을 빌려 처음 타본 날의 기분은 지금도 어제 일 같다. 펄펄 날아갈 것 같았다. 무거운 통나무 스케이트에 비하면 얼마나 가볍고, 얼마나 안정적이고, 얼마나 빠른가! 원효로 앞 한강 스케이트장이 좁은 게 한이었다. 인도교를 지나 광나루까지 씽씽 달려가고 싶었다. 이토록 스케이트에 혹한 것은 시골에서 내가 타던 것과 너무 달라서였다. 현대 문물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산골 소년들은 통나무를 갈라 만든 대장간 스케이트를 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앉아서 썰매를 지치는 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통나무 스케이트를 장만해 서서 타야만 체면이 섰다. 나는 동네 형에게 ‘겨우내 누룽지 제공’을 약속하고 스케이트를 장만했다. 발 넓이에 맞는 통나무를 반원형으로 가르고, 양옆에 못을 촘촘히 박아 노끈을 매도록 하는 데까지는 내 손으로 했다. 문제는 스케이트 날인데, 그건 내 능력 밖이었다. 대장간에서 철판을 스케이트 날처럼 벼리고 날을 갈아서, 통나무 밑에 튼튼히 박아 넣어야 했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그걸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겨울방학이 늘 즐거웠다. 노끈으로 발을 칭칭 동여매면 발이 아프고 시렸지만, 달리는 재미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신발 위로 묶으면 헐거워 양말만 신은 맨발에 묶었다. 안정감은 좋았지만 대신 발이 아팠다. 고통을 참고 땀이 나도록 얼음을 지치고 나면 감각이 마비될 정도였다. 강가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발을 녹이고 나서 또 달리러 나갔다. 허기가 질 때까지 그렇게 즐기다가 집에 들어가면 야단을 맞았다. 볼이 빨갛게 얼고 코를 훌쩍이며 들어서니 얼마나 애처로웠을까. 그렇게 스케이트와 친해진 덕에, 나는 퇴직 후 10년 동안 인라인 스케이트 가방을 메고 한강공원으로 출퇴근했다. 지금 내 오른손 중지 마디에는 구덕살이 박혀 있다.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처음에 선배들이 전화로 불러주는 기사를 많이 받아 적은 탓이다. 컴퓨터도 팩스도 없었던 1970년대 초반의 글쓰기는 모두 볼펜 육필이었다. 출입처 기자실이나 현장에 나간 선배들의 송고 수단은 언제나 전화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받아쓰기가 일이었다. 속필로 쓰려고 볼펜을 꽉 쥐고 그 일을 하고 나면, 귀가 멍멍하고 손가락이 저렸다. 전화 송고에 얽힌 이야기의 백미는 연재소설 받아쓰기다. 작가 사정으로 연재가 중단되면 독자들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간혹 자유분방한 작가들이 그런 사고를 치곤 했다. 내가 몸담았던 신문사에서는 작가가 전화로 불러주는 소설 원고를 받아쓰는 일이 잦았다. 지방에 체류 중인 작가들은 대개 우편이나 고속버스 편으로 며칠 분의 원고를 보내오곤 했는데, 더러 그걸 빼먹는 작가가 있었다. 전화로 독촉하면 작가는 전화로 소설 원고를 불러줬다. 잘못 받아 적으면 작가와 기자 간에 책임 소재로 다투는 일도 일어났다. 기자들의 송고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대하소설감이다. 누구에게나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나도 다급한 송고난을 여러 번 겪었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취재를 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취재도 어려웠지만, 제일 고생스러웠던 것은 송고였다. 특급 호텔에 묵었는데도 해외 전화선이 두 회선뿐이라, 송고 중 자주 전화가 끊겼다. 한 사람이 통화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배들에게 배운 ‘궁즉통’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치사한 방법이지만 소임을 다하려면 도리가 없었다. 호텔 아케이드에서 여성 스타킹을 사 들고 전화 교환실 문을 두드렸다. 내 사정을 말하고 방 번호를 일러줬다. 즉각 효험이 났다. 아무리 오래 전화기를 잡고 있어도 끊어지지 않았다. 뉴스 기사와 해설까지 200자 원고지 15매 분량을 송고하려면 최소한 30분 이상, 한 시간도 걸렸다. 텔렉스는 있었지만 우리말 로마나이즈(로마자 표기)가 까다로워 다들 꺼렸다. 취재의 어려움도 덜하지 않았다. 호메이니 독재 시절이어서 해외 언론에 대한 이란 정부 서비스는 아무것도 없었다. 애써 찾아가봐야 발품만 아까웠다. 제휴 언론사인 일본 신문 특파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도 라디오로 BBC 방송을 듣고, 미국과 유럽 신문을 참고한다고 했다. 1990년대 초, 도쿄 특파원 시절 선배 특파원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다. 늘 오전 일찍 하네다 공항발 대한항공 비행기를 이용해왔는데, 하루는 전철을 놓쳐 택시를 탔다. 공항으로 가다가 고가도로 위에서 트래픽 잼에 걸렸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다 보니 비행기 출항 시간이 촉박해 택시에서 내려 뛰었다. 넥타이를 펄럭이며 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신사의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터진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렸더니, 소나기 맞은 사람 같더라나…. 도쿄 시절 일본 총리 수행 취재를 갔다가 프레스룸에 우리 신문 전용 송고 부스도 있어, 느긋하게 기사를 보낸 일이 있었다. 나중에 사무실로 날아온 전화료 청구서 액수를 보고 크게 놀랐다. 부스까지 설치해줘 서비스인 줄 알았더니…. 그때 내 사무실에는 팩스와 사진 전송기까지 있었지만, 막 부임한 모스크바 특파원에겐 그게 없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어 기사가 폭주하는데 송고 수단이 없다고 그는 늘 나에게 원고 팩스를 보내왔다. 아직 서울과 팩스 송수신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송고 중개업’도 해봤다.
- 2020-12-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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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가는 결국 뮤지엄을 꿈꾼다
- 코리아나미술관은 공동관장 체제로 돌아간다.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주이자 현직 회장인 유상옥(88) 관장, 그리고 그의 딸 유승희 관장, 이렇게 두 사람이다. 아버지는 미술관을 총괄하고, 딸은 실무를 전담한다. 유상옥 관장의 사무실은 미술작품 다수가 진열돼 훤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 이우환의 대형 단색화가 눈길을 끈다. 그는 소문난 미술품 콜렉터다. 그렇다면 미술에 눈 밝아 조예와 견해도 많을 것이다. 그래 탁자 위에 미술 얘기가 비처럼 쏟아질 걸 예상했지만 정작 그는 지나온 인생 역정을 주로 털어놓는다. “내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그릇 크기를 알아 과욕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작은 기업이나마 이만큼 키워낸 것에 만족한다. 미술관과 화장박물관 설립으로 기업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에 부응했다는 점에도 보람을 느낀다.” 그는 동아제약 사원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드링크제 ‘박카스’를 동아제약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데에 주도적인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다 쓰러져가는 라미화장품을 인수해 회생시켰으며, 1989년 코리아나화장품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성장가도를 달렸다. 직업 활동 외에 미술품과 골동품 수집에도 열성을 다해 몰두했다. 미술품 수집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중년에 접어들던 즈음, 지식보다 중요한 게 감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업을 위해서도, 삶을 위해서도 민감한 감성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거다. 그래 인사동 화랑을 찾아다니며 미술을 만나기 시작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취미활동을 통해 감성의 폭을 넓히고 싶어서였다. 그게 계기였다.” 처음 수집한 미술작품을 기억하시나? “소정 변관식 화백의 산수화였다. 당시 동아제약 월급쟁이로 일했는데 연말 보너스를 봉투째 내주고 그 그림을 샀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산수화라서 깊은 정이 든 작품이다” 유 관장의 미술품 수집 취미는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 화장 관련 유물 수집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가 모은 화장 유물은 자그마치 8000여 점. 이 막대한 물량은 화장박물관 설립의 재료로 충분했다. 수집 열정에 비례에 안목도 높아져 수집 유물 한 점이 국보로, 두 점이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치 바보처럼 무작정 많이 모은 면이 있었다. 이제 이 많은 걸 어쩌나, 근심이 생기더라. 그때 미술관과 박물관을 착상했다. 수집가는 결국 뮤지엄을 꿈꾸게 마련이다.” 수필집을 많이 냈더라.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내 인생의 모토가 ‘소탈한 문기(文氣)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글쓰기는 그 추구의 방편이며, 남들에게도 문기가 옮아가길 바라며 책을 냈다. 미술과 문예가 삶에 결부되면 인생은 더 소중해진다.”
- 2020-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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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연 소설가, 고유한 나로 살게 하는 글로써 숨 쉬는 삶
- 7년 전, 신아연(57) 소설가는 옷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나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국에 돌아왔을 땐 그야말로 맨몸뚱이뿐이었다. 월세 36만 원짜리 고시촌에서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때우며, 그녀가 허비 없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글쓰기였다. 수행처럼 글을 닦자 이윽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무의식이 샘솟았고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의 질곡에서 붙잡았던 글들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내놓았다. 신아연은 스스로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사람이라 말한다. 마치 젓갈이 절여지듯 독서에 푹 잠긴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고. 그런 그녀가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려는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따금 내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부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 길, 그러한 운명을 가는 자신을 보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이고,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약점이나 모자람 등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한다는 걸 깨달을 때 지금의 처지도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제목처럼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아버리자는 거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 그녀가 삶에서 나아지지 않지만 껴안아야 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시국사건에 연루된 무기수였기에 가족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억눌려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불현듯 한국으로 돌아온 까닭도 그러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 가, 20여 년을 매 맞는 아내로 살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 좁은 교민사회에서 위로는커녕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 급급해 스스로 고립된 채 자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다시 자기 인생을 찾기 위해 택한 이혼, 그 후 수순처럼 따라온 건 절박한 가난이었다. “아픈 가족관계가 제겐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인정하고 살아갈 수밖에요. 그런데 그 아픔은 깨진 항아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길을 촉촉이 적시며 오종종히 꽃을 피우듯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한국에 돌아와 겪은 가난 역시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고 현실을 직시하게끔 도왔습니다. 방세를 내면 식비가 없어 굶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벼랑 끝 순간들 덕분에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요.”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인정하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고, 차츰차츰 일어설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났다. 그녀는 그렇게 꿋꿋이 홀로 견뎌낸 세월이 자신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라는 걸 명확히 인식해야 해요.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해보세요.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부러워하며 내 모습이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웅녀가 된 것처럼, 저는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어요. 그 지난한 시간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제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유함을 키우기 위해 신아연은 3년 전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자처했다. 자칫 고독한 행보로 여겨질 수 있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녀에겐 오히려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작용했다. 수행의 산물과 같은 이번 책은 ‘영혼의 혼밥’이라는 주제로 자생한방병원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나눈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제게 글은 숨쉬기와 같습니다. 살아 있는 한 써야 하고, 써야만 살아지니까요. 또한 혼자 살아가는 자신을 다잡는 수행의 방편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야 합니다. 가령 한 편의 글에서 글쓴이는 80%의 수고를 하고, 나머지 20%는 독자들이 채웁니다. 소통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지요. 고맙게도 이메일, 문자, 댓글 등으로 피드백을 자주 보내주셔요. 저 또한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게 참 많습니다.” 중년, 인생의 목차를 정리할 때 독자와 함께 일군 300편의 글 가운데 100편의 글이 책 속에 담겼다. 자신의 지난 글을 다시 읽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을 터, 어떤 기준으로 글을 갈무리했는지 궁금했다. “‘인생은 목차’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나누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내용은 저절로 정리돼요. 삶도 마찬가지죠. 뒤섞이고 흩어져 있을 때는 길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럴 때 인생을 목차로 나눠 보면 삶은 더욱 명료해집니다. 또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중년이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오죠. 저는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현실인 것을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 다른 여정으로 가야겠죠. 이번 책은 제게 혼자 가야 하는 후반생의 새로운 목차와 같습니다. 스스로 정리한 목차이기에 여생의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그녀의 2020년 목차는 무엇으로 채워졌을지, 또 2021년을 채우게 될 목차는 무엇일지 물었다.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 ‘코로나19’죠. 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요. 어차피 글을 쓰고 책 읽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으니까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면서 코로나19와의 거리두기가 저절로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의 목차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두 축으로 한 고독과 가난, 치유와 인내가 되겠네요. 남은 12월은 마무리와 시작이 맞물리니 잘 해냈고,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생채기 난 것들의 회복이라 하겠어요. 2021년엔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존중, 인간 간의 연민과 연대가 중요하리라 봐요. 개인적으로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독자들과의 우정, 두 아들과의 이해 어린 사랑, 저 자신에 대한 용서, 창의, 자유 등을 새해 목차로 삼고 싶습니다.”
- 2020-12-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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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이후 비로소 내 삶의 마스터키를 쥐었습니다"
- 그동안 우리는 나의 삶에서 얼마나 ‘참[眞] 나’로 살아왔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과 모자람을 애써 부여잡고 진짜 나를 뒤로하지는 않았던가.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책과나무)의 저자 신아연은 그런 이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과 고통의 경험을 말미암아 그 고유함이야 말로 내면의 자산이 되어 삶을 넉넉하게 해주리라 이야기한다. Q.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펴내시게 된 계기와 소감 부탁드립니다. 7년 전, 옷 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났습니다.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둑시근한 신림동 고시촌 방에서 어떤 날은 라면 하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며 주야장천 글을 썼습니다. 3년 전부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글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냈습니다. 삶의 질곡에서 글을 붙잡았고, 삶이 또한 글을 잡아주었습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 언저리에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싶습니다. 그러한 자각과 구체적인 자기 훈련의 결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네요. 이혼 후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단단해진 동시에 한 꺼풀 벗는 느낌도 있습니다. 내 삶의 마스터키를 쥔 것 같고, 소명이랄까, 본래 음성이랄까, 살아갈 의미랄까 이런 것들이 좀 더 분명해진 듯합니다. Q.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껴안아 버리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약점과 실패와 좌절과 붙잡힌 발목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놓아지지도 않는 그 부족함과 모자람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지금 이 자리가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안고 살아가십시오.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아집디다. Q. 자생한방병원 사이트에 ‘영혼의 혼밥’이란 타이틀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글 300편 가운데 100편을 엮은 책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글을 추리셨나요? ‘인생은 목차다’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하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글 내용은 저절로 정리가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뒤섞이고 모호하게 흩어져 도무지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을 때는 인생을 목차로 나눠보는 겁니다. 책에는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이란 긴 부제가 붙어있는데, 인생 중반의 목차와 같은 거지요. 참 자기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처지가 녹록하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남은 삶은 더욱 명료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함 그대로 남은 생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 그러니까 50 쯤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옵니다. 제 경우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그게 제 현실인 걸요.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와 여정으로 가야지요. 이번 책은 제게 후반 인생의 새로운 목차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목차마다, 100개 제목마다 감회가 새롭고 남은 생에서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이혼 후 삶의 어떤 부분에서 ‘본래 자기(참 자기)로 산다는 것’을 체감하시는지요. 25년 동안 매 맞는 아내로 살았습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을 갔고, 좁은 교민사회에서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만 급급해 서서히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됐고, 남편의 폭력 수위는 점점 높아져 이러다 맞아 죽겠다 싶어 맨 몸뚱이로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후 수순처럼 절박한 가난이 찾아왔지만 이는 오히려 저의 정신을 맑혔습니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는 인식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차츰차츰 일어서며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14/감(感)]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면요?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남 다른 재능을 발휘하거나 각별한 사회적 성취를 거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령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이 고유한 자기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통해 배울 게 있고 정신적, 영적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겠지요. 인생의 모든 면에서 남에게 설명할 수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그런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남을 흉내내거나 부러워하면서 나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는 혼자 견딘 세월이 저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년간 아무도 안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곰이 웅녀가 됐듯이,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내면 자산이 되었고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넉넉하게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Q. [46/삶의 농도를 더 짙게 하려면]에서 새해가 될 때마다 죽음 생각이 나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살아있는 한 ‘죽음 그 자체’는 경험할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관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죽음을 자주 말합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삶을 그만큼 공고히 다진다는 의미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죽는 것이 무서웠어요.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죽으면 다 끝인데 해서 뭐하나. 피땀 흘려 해냈는데 그 다음날 죽으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았으니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해야 하나요? 죽음은 두려워할 일은 확실히 아니지요. 준비해야 할 일일 뿐. 최근 죽음학 연구자 최준식의 저서 ‘죽음 가이드북’을 읽었는데,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할 적절한 나이까지 가이드 합니다. 40세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지요. 많은 사람이 죽음 준비에 이미 늦었을 수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죽음의 준비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Q. [65/좋은 글을 쓰기 위한 딱 한 가지]에서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라는 것을 명심하고, 죽을 때까지 정말 누구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지 말라 조언하셨지요. 스스로도 그러한 글을 쓰시는지요? 이 말을 한 데에는 글이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지요. 글은 그럴듯하게 쓰지만 실제 삶과의 괴리가 크거나 위선적인 사람도 있지요. 저도 예외가 아닐 테고요. 그 이유는 식당 음식처럼 내다 팔기 위한 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조미료를 쳐서라도 억지로 맛을 내야 하는 겁니다. 반면,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 뿐’이라면 ‘집밥’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정성어린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제게 그런 시도는 호주에 사는 두 아들에게 편지 쓰기와 묘비명 쓰기가 될 것 같아요. 최근에 제 묘비문(文)을 이따금, 그러나 정기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묘비에 새기고 말고와 관계없이 그 글만큼은 진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발로인 거지요. 한 생이 완전히 문을 닫는 죽음 앞에서까지 거짓된 글을 쓴다면 생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의미이니까요. 묘석의 글은 살아서는 오직 나만을 독자로 함과 동시에, 죽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진실한 글이 되겠지요. Q. 호주에 사는 두 아들은 아직 어머니의 글을 읽지 못했다죠. 그동안 출간해온 책 중 한 권이 번역본으로 나와 자녀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고 싶나요? 한국으로 돌아온 2013년 이후 총 5권의 책을 냈는데, 그때마다 책머리에 “나의 두 아들 진원과 규원을 믿고 사랑하고 기다리며 이 책을 냅니다. To my lovely sons, Jinwon & Kyuwon”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 글을 읽지를 못해요. 아주 어릴 때 이민을 가서 한글 독해력이 부족해서지요. 그런데 그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만약 아이들이 제 글을 읽었다면 글 속 엄마와 자신들이 아는 엄마가 달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제 책이 영문으로 출판될 수 있다면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독도를 까맣게 덮을 만큼 그 수가 많았으나 일본 강점기 때 멸종된 독도 강치 이야기로, 무자비한 도륙과 처참했던 대학살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어린 강치 한 쌍이 천신만고 끝에 호주 연안에서 구조되고, 일생을 동물원에서 보낸 후 아들 강치를 고향 독도로 돌려보낸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한국의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고, 해외 동포들의 애환을 강치를 통해 비유적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신들의 처지와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Q. 책에서 ‘노자’ ‘장자’, ‘공자’ 등 성현들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새기는 문장이 있다면요?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를 들고 싶네요. 노자 도덕경 56장 첫 구절입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데 현실은 그 반대지요. 저는 특히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말과 글로 노상 업을 짓고 있습니다. 무심코 휘두른 혀로 영혼의 각을 뜬 적도 있었을 테고, 독을 묻힌 글 끝으로 누군가의 심장을 찌른 적도 있었을 겁니다. 존재의 참 모습과 실재는 언어적 표현 너머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요. 쉴 새 없이 나불대며 다 아는 것처럼 굴수록 실상과 진상에서는 점점 멀어집니다. 오히려 입을 다무는 순간 바른 이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Q. 아울러 독서를 통해 인생의 면역력을 올리고 계십니다. 헌데 독서 근육이 없어 책 읽기가 힘들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들에게 독서에 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독서 근육’이란 말이 재미있네요. ‘마음 근육’이란 말도 있더군요. 마음에 근육이 있으면 인생에 면역력이 생깁니다. 마음의 근육은 독서 근육에서 키워질 것 같고요. 지난 7년 간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로 인해 마음의 공허함과 의존심이 시나브로 메워졌고 여간해선 상처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에 없던 자긍심도 생겼고, 분별없이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독서는 한 마디로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줍니다. 진짜 나는 책이 안 읽힌다, 도저히 못 읽겠다면, 하루에 한두 쪽씩만 읽어보면 어떨까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천권 책도 한 쪽씩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그 첫 책으로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권합니다. 농담이지만 이유는 있어요. 이 책은 한 제목 당 두 쪽으로 구성돼 있거든요. 부담 없이 금방 한 권을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줄 겁니다. Q. ‘백세시대 글쓰기 모임’을 하고 계십니다. 모임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글쓰기는 ‘마음 기경’과 같습니다. 오래 방치해서 딱딱하게 굳고 척박해진 땅이나, 거꾸로 무리한 경작으로 기운이 고갈된 땅에 파종해 봤자 될성부른 싹이 올라오기 어렵지요. 백세시대의 글쓰기는 전반 인생을 살면서 굳고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을 기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끄는 글 모임은 정직한 내면 돌아보기, 담담히 인생 회고하기 등으로 마음을 닦고,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글을 도구로 마음을 기경하는 방식이지요. 지난 반평생은 외부의 것으로 살아왔지만, 남은 반평생은 자신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롯이 자신의 덕과 정신력으로 인생 백세를 채워야 하는데, 제 생각엔 글쓰기가 가장 파워풀하다고 봅니다. 생애 대부분을 고난에 치여 왔고 앞으로도 빈곤과 고독 가운데 살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면 인생 후반전은 글쓰기를 권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노후가 펼쳐질 것입니다. Q. 말씀처럼 글쓰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려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권하고 싶나요? 요즘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요. 무슨 차이일까요. SNS에 쓰는 글과 내가 본래 쓰고 싶은 글이 다르다는 의미 아닐까요? 자랑, 맛집, 여행기, 남의 이야기 등이 넘치지만 이는 자기 성찰이나 삶의 정리와는 거리가 멀지요. 이런 글로는 자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보여주기 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니, 보여주되 벌거벗은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빤스’ 정도는 걸쳐도 되지만 갑옷으로 무장해서는 안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용기를 요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나의 내면에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Q. 연기를 배운다고 하셨지요. 이렇듯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책은 거울이지요. 타인의 관점, 객관적 시각, 보편적 사유 등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지요. 나라는 개별자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드러날 기회입니다. 반면 글쓰기는 내시경이랄까요?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내는 작업입니다. 글이 정직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의 내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치유하는 겁니다. 연기를 배운 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를 감추고서는 연기가 되질 않아요. 흔히 연기란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다른 사람이 곧 자신이더란 말이죠. 결국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아가 뒤섞이면서 ‘우리’로 태어나는 것이 연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무엇을 새로 배우고 경험한다면 이렇듯 인간으로서 성숙할 계기가 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로 독자와 만나고 싶으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성과 감성이 주 역할을 하지요. 현대는 둘 중 정서지능, 감성지능을 우위에 두고 있고요. 글도 정보나 지식적인 것보다 마음에 울림이 있는 글을 더 좋아하지요. 이처럼 지성보다 감성이라면, 감성보다는 무엇일까요? 네, 영성이지요. 앞으로 제 글의 방향은 영성지능에 공명을 일으키는 쪽이 됐으면 합니다. 영성이 개발되면 ‘참 나’를 만날 수 있고, 자의식이 아닌, 참 나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을 깨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신아연 소설가·칼럼니스트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등을 펴냈다.
- 2020-10-27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