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와 소음이 들끓는 서울에서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와 매력도 많지만, 불편과 불안도 많은 게 도회다. 충분히 감정 이입할 만한 여가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점에 앉아 소주병을 쓰러뜨리는 걸로 위안을 삼는 게 고작이다. 대도시에 산다는 건 사실 부담스럽다. 뭐 좀 재미있는 곳이 없을까? 기대어 쉴 만한 언덕이 없을까? 이런 자문을 할 때 떠오르는 게 미술관이다. 수족관에 갇혀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따분한 일상에 재미와 생기를 부여하는 게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 중계동 중계근린공원에 있다. 공원 안에 있어 초록을 입은 미술관이다. 초록의 향연까진 아니지만 공원 녹지에서 흘러나온 초록 물이 밴 양, 외관 곳곳이 풀빛으로 청신하다. 이 미술관은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반면 문화 인프라가 빈약한 서울 동북권의 건조한 공기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예술을 만나라고, 미술과 교제하라고, 그렇게 해서 지루한 일상에 고소한 양념 같은 별미를 가미하라고 개관했다.
미술관 건립 때엔 숙고가 많았다. 공원 한편에 정해진 부지에다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지어 공원과 좋은 관계를 맺을지 고민했던 것. 수목들 늘어선 공원 풍경과 겉도는 형상의 미술관 건립만큼은 삼가야 했다. 그러잖아도 작은 공원의 면적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불러들일 수 있어서였다. 주민들의 쉼터인 기존 공원의 가치를 해치지 않을 아이디어 고안이 필요했다. 즉 독립된 개체가 아닌 공원의 일부로 녹아드는 건축이 요구됐던 거다. 이렇게 해서 동산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 건물이 출현했다.
사실 북서울미술관은 특이한 생김새로 일단 한몫을 한다. 보고 또 보고. 시선이 저절로 간다. 무심코 지나치기 힘든 형상이다. 원래 여기에 있었던 언덕을 파고 들어간 묘한 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애초 평지였던 지형에 상자를 중첩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한편, 인위적으로 언덕을 만들어 외벽을 빙 둘렀다. 무감동한 수직 벽과 창이 있을 자리에 솜씨 좋게 언덕을 구현했다. 언덕엔 잔디를 심어 녹지대를 연출했다. 계단을 설치한 여러 갈래의 동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언덕길은 자연스럽게 공원 산책로와 이어진다. 딱히 미술관에 볼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술관을 공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공원은 미술관을 통해, 미술관은 공원을 통해 상호 증식한다.
서울시는 2013년 ‘건축상 대상’을 북서울미술관에 주었다. 수준 높은 디자인과 시공 완성도를 인정해서였다. 설계자는 건축가 한종률. 그는 ‘과거의 흔적과 미래가 공존하는 건물을, 자연 친화적 건축을 설계해 왠지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을 기술적 영역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얘기도 했다. 창의력과 사회에 대한 윤리를 갖춘 장인정신의 산물로 보라 했다. 말하자면 공공성을 지닌 예술 장르의 하나로 건축을 보는 눈을 주문한 셈이다.
미술 작품은 빤한 생각과 진부한 감상으로는 나올 수 없다. 뛰어난 작가의 세계관과 상상력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고, 넘어설 수 없는 걸 넘어서는 게 미술이다. 창작으로 세상의 허구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게 작가다. 그들의 작품은 그래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다. 또는 한계를 초월해 비상하는 우주선처럼 전위적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 건물은 어딘가 좀 다르면 다를수록 구색이 맞는다. 세상의 배후에 관한 뉴스를 탑재하고 지상에 착륙한 소행성. 또는 감각의 제국. 미술관을 이렇게 읽으면 과한 공상일까. 아무려나, 미술관 건물은 밋밋하지 않을수록 미덕이다. 북서울미술관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을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하려면
미술관 로비로 들어선다. 널찍한 공간이라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다소 휑하지만 조도를 낮춘 조명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일부 벽면의 창과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들이친다. 하얀 칠을 입힌 벽과 층계 등 구조물들이 지닌 면과 선이 다양하게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기하학적 디자인 효과엔 방점을 찍을 만하다. 전시실은 1, 2층과 지하에 있다.
걸음을 옮겨 지하 1층에 있는 어린이갤러리로 내려간다. 이곳은 3개 층을 수직으로 개방해 천장 높이가 무려 17m다. 북서울미술관은 아이들을 중시한다. 아이들의 본성과 눈높이에 맞으면서 품격마저 구비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인 아동들에게 미술 체험 기회를 부여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봐서다. 이번 가을, 어린이갤러리에선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열렸다. 백남준,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서도호는 두 딸과 함께 점토로 만든 ‘아트랜드’를 선보였다. 관람객으로 온 아이들은 이 ‘아트랜드’를 기반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아트랜드를 집단 창작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신비하고 복잡한 생태계를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해 하나하나 조형했다. 전시 기간이 끝날 쯤엔 귀엽고 아름다운 대형 설치 작품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신바람 났으리라. 관람객이자 공동 창작자로서 설치 작업에 나서는 일이 흔할까 보냐. 점토를 조몰락거려 미술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오는 꽃처럼 활짝 피어난 건 상상력이었을 테다. 빙의와도 같은 도취의 순간도 경유했겠지. 어린이 특유의 선입견 없는 자유분방으로 즉흥과 충동과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며 즐겼을 것이다. 이 아이들 속에서 훗날 피카소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은 어쩌면 태어날 때 이미 예술가다. 성장하면서, 속세의 일원으로 각질을 두르면서 예술을 잃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술 체험이 필요하다. 자유의지와 상상력의 보유 기간을 늘려 삶을 조금이나마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서 누리는 휴식은 즐겁다. 싱겁고 머쓱한 일상에 의미와 재미를 붙여준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점을 비트는, 가령 전복과 파격을 담은 콘텐츠에 관객은 흥미와 동요를 느낀다. 미술관들은 이를 고려해 전시기획에 나선다.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특별한 전람회가 많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한 ‘유휴공간 프로젝트’ 역시 인상적이다.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는 관습을 깨는 프로젝트다. 지하주차장 외진 벽면, 물품보관함 작은 창문, 카페 주방 등 뜻밖의 장소에 작품을 숨기듯 슬쩍 갖다놓았다. 무대와 배경을 뒤바꿨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걷어냈다. 삶에 도입해볼 만한 역설적 상황에 흥미가 동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백기영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북서울미술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주민들에게 보다 풍성한 향유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미술을 낯설어하는 이들에겐?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시해 포용한다. 이를테면 미술관에 큰 관심 없는 시니어들을 유도하기 위해 ‘청춘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영화를 상영한 것.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미술 전람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백기영 운영부장의 얘기는 이렇다.
“‘청춘극장’의 인기가 꽤 높았다. 한 해에 1만 명 이상이 영화를 관람했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영화 관람과 미술 전시회 감상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다.”
젊은 층 관람에는 어떤 경향이 있나?
“과거보다 진지하게 관람하며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미술관 체류 시간이 길어졌고, 미리 전시 작가 정보를 찾아 사전지식을 지닌 채 작품과 만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우 긍정적인 추세 변화라 본다.”
그간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주요 전시회를 꼽는다면?
“2019년에 열린 ‘한국 근현대 명화전’을 꼽을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심혈을 기울인 전시회였다. 최고의 예산을 투입했으며, 3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갖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화 관람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 전시회였다.”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 딸린 미술관 중 하나로 2013년에 개관했다. 아직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클로드 모네, 윌리엄 터너, 제임스 터렐 등 거장 43인의 작품 다수를 보여준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의 성황은 물론, 양질의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 거둔 성과다.
어린이들이 공동 창작자로 참여한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인상적이다. 어린이 미술 교육 콘텐츠를 가동하는 미술관은 많다. 그런데 ‘아트랜드’전은 새롭다.
“기존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분히 소비적이고 획일적이다. ‘아트랜드’전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부여했다. 미술관은 화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곳이라고만 알았던 아이들에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스펙터클과 기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전체를 상상하며 코끼리를 만들어내는 식의 조형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발현된 창의성과 상상력이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서도호 작가에게도 이런 유형의 이벤트는 처음이라지?
“새로운 시도였고 성과는 커서 서도호 작가에게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미술관으로서도 어린이 프로그램 기획의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더 있다. 해외 미술관에서 ‘아트랜드’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마도 이게 확산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설치 작품은 이제 어떻게 되나? 수장고로 들어가나?
“우리 미술관에 영구 소장하면 좋겠지. 그러나 영구적인 재료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고민 중이다. 안전한 소장이 가능한 특정 장소를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췄다. 자유롭게 개방된 화랑유원지 내부에 위치해 우선 접근이 용이하다. 자작나무 군락 등으로 조경한 공원과 호수가 있어 전원의 맛을 풍기기도 한다. 웅장한 건축물 안팎에 구현한 디테일도 볼거리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 옹골진 게 많은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난항을 겪었다. ‘마스크프리 세상’이 머잖은 요즘은 상황이 밝아졌다. 강민지 큐레이터에 따르면, 최근 관람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싶게, 흔히들 해방감을 느끼며 사적 활동을 늘리는 추세와 함께 미술관 방문자 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을 애호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미술관이 있는 화랑유원지엔 새벽부터 밤까지 운동과 산책을 하는 시민들이 실로 많다. 하지만 정작 미술관에 입장하는 사람은 적다. 미술관 안과 밖의 온도차가 여실하다. 숙고할 대목이다.”
대중은 문턱 낮고, 즐겁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미술관을 원하는데.
“더 친근하고 더 재미있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한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시회의 품질 향상은 물론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얼마 전 경기관광공사와 함께 미술관 앞마당에서 버스킹을 펼쳤다. 휴게 공간 강화도 필수다. 이제 미술관은 복합 휴식 공간으로 가야 한다.”
당신은 젊은 큐레이터다. 요즘 청년층이 미술관을 향유하는 경향은 어떻다고 보나?
“작품 감상보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것 같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를 알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도 많다. 예술에 호기심을 가진 이도 많다. 이들을 만족시킬 문화공간이 지방 곳곳에 산재하는 현상도 고무적이다. 상당히 긍정적인 징후가 읽힌다.”
전시실을 주로 2층에 배치했다. 반면 너른 1층 공간엔 작은 전시실 하나뿐이라 다소 썰렁하다.
“간척지에 조성한 미술관이라 습기를 면밀하게 고려해야 했다. 전시 작품이 높은 습도에 훼손될 우려가 있어 주 전시장들을 2층으로 올린 것이다. 수장고를 지하층이 아닌 1층에 마련한 이유 역시 습기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약간 허전한 느낌을 주는 건 맞다. 그래서 1층 로비 바닥에 전시 작품을 깔기도 한다.”
기획전 기간을 길게 잡았더라. 가령 현재 진행 중인 ‘소장품으로 움직이기’전의 전시 기간은 자그마치 1년이나 된다. 안일한 방식은 아닐까?
“한두 달 전시를 하고 작품을 철거하는 방식엔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다. 단기간 전시에 따른 폐기물 발생, 인력 낭비, 비용 등에 문제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가급적 최대한 소모를 아끼자, 미술관끼리 소장품을 공유하자,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게 요즘 미술관들의 고민이며, 전시 기간 확대는 그 실천 대안의 하나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꽃’으로 불린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재미있는 직업이다. 전시회 소개 글을 통해 나름의 생각과 메시지를 타인에게 전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다. 글을 쓰다가도 중단하고 벽에 못을 박으러 달려가야 하는 식으로.(웃음)”
요새 큐레이터가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냐고 묻자, 독일 작가 팀 아이텔을 꼽는다.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시키는 그의 등 돌린 인물 그림이 야기하는 울림이 깊어서라고.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녹색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산책로가 있다. 안산시 외곽 개활지에 있는 화랑유원지다. 시월 한낮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산책 삼아 한가하게 거니는 이들이 많다. 이름은 유원지지만 왁자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안락하다. 경기도미술관은 화랑유원지 안에 있다. 자리 한번 기차게 잘 잡았다. 풍경과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니.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입지이기도 하다.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미술관 관람의 목적을 호주머니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소란스러운 세상을 생동감 넘치는 감성으로 수용하는 눈을 얻을 수 있는 게 미술관이다. 하지만 따분하고 난해하다는 선입견으로 외면한다. 미술관 운영자들은 이런 현실이 야속하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살 수 있을까. 오나가나 골똘히 고민하는 문제가 그렇다.
얼마 전에 종료됐지만, 경기도미술관을 찾아간 날엔 ‘미술관의 입구: 생태통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고민의 한 결과물이다. 미술관의 진입장벽을 낮춰 관람객을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해 꾸린 기획전이니까. 유원지를 가로지르는 통행로이기도 한 미술관 야외 길에 설치작품 다수를 전시했다. 하나같이 쉽고 재미있었다. 미술은 어렵다는 통념이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미술이 지닌 위계와 경계를 철거해 관람객들을 포용하고자 했다. 사람들에게 한결 친절하고 살갑게 다가가고자 하는 미술관 측의 선한 의도가 완연해 인상적이었다. 환경 악화로 고립된 동물들의 활로로 쓰이는 ‘생태통로’처럼, 외부 전시물 전체가 공감과 소통의 가교로 기능하고 있었다.
경기도미술관은 2006년 경기도가 설립했다. 운영은 경기문화재단이 맡았다. 공립미술관답게 건물 규모부터 크고 훤칠하다. 안산시에 사는 미술 애호가들은 언제든 찾아가 무료로 손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 형성에 반색했겠다. 나는 경기도미술관에 관한 작은 기억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 미술관은 세월호 침몰 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안산 단원고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결 절절한 애도 분위기에 이끌린 건 그래서였을까. 세월호 2주기인 2016년 4월, 경기도미술관 측은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사월의 동행’ 전을 열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 문제 등을 놓고 두꺼비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립미술관도 아닌 공립미술관이 앞장서서 추모 전람회를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학계에서는 추모시가, 음악계에서는 추모곡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술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지근하던 때였다. 따라서 경기도미술관의 추념 미술전이 야기한 반향이 작지 않았다. 햐! 미술관이 진정 아름다운 레퀴엠을 헌정했구나! ‘사월의 동행’ 전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눈앞에 있는 현상과 형상을 넘어 무한으로 달려가는 게 예술이다. 그러나 현실의 거대한 아픔과 슬픔에 무디다면? 눈치를 보고 공기만 살핀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정치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사월의 동행’전은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전람회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들은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세상에 만연한 모순과 고통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졌던 셈이다.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해
미술관 건물 입구로 다가가자 최정화의 설치작품 ‘꽃꽂이’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플라스틱으로 꽃들과 열매를 만들어 설치한 작품이다. 원색의 붉은 인조 꽃떨기가 밤에 쓴 성급한 연애편지처럼 격정적이라 강렬하다. 최정화는 한국에서 요즘 가장 바쁜 화가다. 자칭 ‘설치작품으로 설치는 사람’이다. 그는 플라스틱 폐품 등 ‘눈부시게 하찮은 것들’을 모아 이를테면 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외적 형상을 조형한다.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저급한 모방’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메시지를 지체 없이 수신한다. 최정화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 그럴까? 플라스틱도 제2의 자연 아닐까?” 그는 아까 얘기한 세월호 추념 전시회에선 10m 높이의 대형 설치작품 ‘검은 꽃’을 선보였다. 공기주입기로 작품에 공기를 넣어 꽃잎이 피었다 졌다 반복하게 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활을 기원했다.
먼 과거에 경기도미술관 일대는 바다였다. 이후 바닷물을 밀어낸 간척지였다. 지금도 호수가 있지만 원래 물이 머문 자리였던 것. 이와 같은 역사성과 장소성에 착안해 물 공간을 디자인 요소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하고 건축 설계를 했다. 미술관의 남쪽과 동쪽 면에 사각의 대형 수조를 만들어 물을 채움으로써 저만치에 있는 호수 경관과 연계성을 갖도록 했다. 나아가 건물을 통째 물 위에 뜬 배로 간주하고 심벌을 입혔다. 거대한 철골 프레임에 유리판을 끼워 돛대 형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예술을 싣고 삶의 대양을 항해하는 중?
국내 미술관 가운데 거의 최초로 시도된 자동 개폐식 천창(天窓) 시스템도 비범하다. 전시실에 자연광을 뿌리기 위한 채광 장치다.
설계자는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다. 일찍이 30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설계해 세계 건축계에 표나게 데뷔한 인물이다. 국내에도 이미 이름난 사람이다. 경기도미술관 건물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건축에 자연 요소를 적극 융합한다. 세련된 기술로 추상적인 건축 언어를 발신한다.
지하 공간으로 건축을 끌어들인 데다 ‘빛의 계곡’까지 구현한 ‘이화여대 캠퍼스센터’(ECC)는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에 착공한 지하 건물 ‘영동대교 광역복합환승센터’도 페로의 작품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초대형 라이트 빔을 쏴 지하 깊은 곳까지 자연광을 배급하는 시스템이라니 흥미롭다.
전시 공간은 2층에 있다. 방문 당시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디지털 문명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욕망을 무한 소비하는 풍속을 돌아보게 하는 전시회다. 경기도미술관의 컬렉션 중에 ‘감각적인 작품’ 22점을 골라 선보이는 ‘소장품으로 움직이기’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재미있기론 지구 곳곳에 이름을 알린 강익중의 대형 벽화 ‘오만의 창, 미래의 벽’이다. 미술관 1, 2층 벽면 한쪽을 통째 점유한 가로 72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벽화다. 전국의 어린이 5만 명이 3×3인치짜리 나무판에 그린 그림 5만 점을 모둠으로 엮은 대작이다. 강익중은 뉴욕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습작을 했다. 퇴근길 지하철이 유일한 작업실이었으며, 지하철에서의 짧은 이동시간 중에 그림을 한 점씩 그렸다. 그렇게 해서 강익중표 ‘3×3인치 미니 캔버스 작품’이 나오게 됐다. 그는 5만 어린이들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뿜는 웅장한 에너지에 심취했나? 동어 반복적인 벽화 작업을 연달아 해왔다. 작은 그림들이, 작은 꿈들이 모여 삼라만상과 우주를 이루는 장관을 보라! 강익중의 메시지가 그렇다. 그는 백남준이 제자로 인정한 유일한 화가다. 명성과 감흥은 겉돌지 않는다.
팔복예술공장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복합문화공간이다. 쓸모를 잃고 버려진 폐공장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일으켜 세운 이색 예술 공간이다. 폐공장 시절은 길었다. 25년간이나 방치되었으니까. 그러니 형상이 오죽했겠는가? 무너지거나 으스러지거나 널브러진 것들이 태반이었다. 용케 남은 건물들도 금이 가거나 비가 샜다. 뒤숭숭하기가 흉가와 맞먹었다. 이렇게 공장의 한 생애가 종을 쳤다. 갈 길을 잃은 유령들의 비밀 집회소쯤으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앰뷸런스를 타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달려와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꺼진 숨을 되살렸다. 전주시 팔복동 제1일반산업단지 안에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2년에 걸친 사전 작업과 공사,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한 시범운영을 거친 뒤 2018년에 개관했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다. 개관 첫해에만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젠 재생 문화 공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헌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대신, 헌것을 싹 갈아엎고 새뜻한 새것을 건설하는 대신, 헌것에 잔존하는 쓸모를 재료로 삼은 재생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대단하다. 폐허를 폐허로만 볼 일 아니다. 폐허 속에 역사와 인간사의 숨결이 서려 있다. 헌것을 헌것으로만 볼 일 아니다. 헌것 안에 새것 뺨치는 예술과 미감이 박혀 있다.
폐공장의 재생 설계를 주도한 총괄기획자는 건축가 황순우. 인천시의 근대건축물을 본때 있게 재생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실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그는 팔복예술공장 설계에 나서기 전 한동안 뜸을 들였다. 폐공장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숙고했던 셈이다. 그는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봤다. 따라서 1년 동안 설계를 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기 위한 작업부터 했다. 지역주민, 지역 예술가들과 수시로 만나 폐공장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부터 했다. 물리적인 작업은 맨 마지막에 했다.” 그는 단순한 형식적 구조 변경을 구사해 후루룩 단숨에 예술 공간을 설계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폐허에 남은 옛이야기를, 스러져가는 건물들이 간직한 기억을, 퇴락한 풍경의 이면에 감추어진 은유를 옹골차게 발굴해 공간 구축의 질료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팔복예술공장은 크게 보자면 본관에 해당하는 A동, 아동과 청소년의 예술 놀이터인 B동, 그리고 야외 공간으로 구성됐다. A동은 외벽에 붉은 칠을 해 도드라진다. 벽면 일부엔 통유리창을 냈고, 옥상 난간의 프레임도 산뜻하다. 낡을 대로 낡은 원래 건물의 취약한 구조를 부분적으로 보강해 기능성을 살린 공간이다. 로비엔 폐공장을 남기고 사라진 카세트테이프 생산업체 ‘썬전자’의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아카이브 섹션이 있다. ‘썬전자’는 이곳에서 1979년에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나 CD(Compact Disk)라는 신종 기록 매체에 밀려 1991년에 문을 닫았다. 공장의 이런 굴곡진 역사와 애환의 기억들을 예술로 재생함으로써 존재 증명을 하는 게 팔복예술공장이다.
공간 곳곳에 음미할 만한 서사 있어
A동 로비부터 시작되는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재래식 변기가 하나씩 놓인 화장실 4칸이 나온다. 많게는 500여 명에 이르렀던 ‘썬전자’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변기가 달랑 4개뿐이었다니. 과거 노동 환경이 얼마나 거칠었나를 변기들이 구슬픈 톤으로 비가를 읊어 웅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예술이고 예술인이다. 화장실 구역이 통째 전시 작품인 건 배설 욕구조차 참아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표현한 작가들의 글과 벽화가 이곳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미술관들은 저마다 특유의 전시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기획전을 펼침으로써 미술관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팔복예술공장도 마찬가지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전시를 추구해왔다. 탄소중립 등 환경문제를 환기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산 전시회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전’을 꼽는다. 현재 2층 전시장에서는 ‘공존 : 호모 심비우스의 지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란 생물학자 최재천이 제기한 용어로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생태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재천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은 결국 환경문제를 화두로 던지는 셈이다. 24개국 8팀 77명의 환경예술 작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시각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작품을 볼까? 손정은의 ‘강요’는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인간의 탐욕을 힐난하는 설치 작품이다. 유리병에 닭의 실제 사체를 욱여넣은 작품도 있다. 엽기적이지만 통렬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사온 식자재에서 채집한 씨앗이나 뿌리를 포장 용기에 심어 발아시킨 식물들의 정원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 ‘홈플러스 농장 2002’를 전시했다. 김유정의 ‘소리 없는 산’도 식물 설치 작품. 뿌리가 없는 채로 공기 중의 수분과 양분만으로 생존하는 식물 수염틸란드시아에 뒤덮인 폐가전제품들을 산의 형상으로 조형했다. 문명 이전 혹은 이후의 공존과 상생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현덕의 ‘아름다운 소멸’ 역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작가마다 선명한 환경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자연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소비사회의 광기에 사려 깊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자연의 생존권을 침탈하는 일상의 풍속에 예리하거나 유려한 반론을 제기한다.
A동에서 컨테이너를 엮어 공중에 설치한 통로를 따르자 B동 2층에 닿는다. 이곳엔 아동들을 위한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과 청소년들이 예술을 주제로 맘껏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꿈터 마루방’이 있다. 1층의 내부와 외부 역시 예술 놀이터다. 흥미로운 건 B동 구역에서 비로소 손질과 땜질을 거의 하지 않은 폐공장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낡고 삭아 추레한 폐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디자인 요소로 살려냈다. 따라서 이곳에선 과거로 잠시 회귀한 듯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반짝이는 사물들로 채워진 세상의 이방과 이면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폐허란, 그 미련 없는 분위기란 차라리 하나의 유적이다. 새것과 날것으로는 좇아갈 수 없는 우수와 정취가 깊어 감정이입이 쉽다. 세월의 풍상에 누추하게 구겨진 저 오래된 사물이 뿜는 아련한 빛에 문득 직관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나여! 인간이여! 너의 몸을 스친 풍상은 한 조각 빛이라도 남겼더냐?
공간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커피 생각이 난다. 마침 A동에 카페가 있다. 여공(女工) 이미지를 조형한 대형 인형 ‘써니’를 심벌로 조성한 찻집이다. 조명구도 탁자 일부도 공장 시절의 용구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곳은 ‘썬전자’ 노동자들이 407일 동안 전개한 노조사수투쟁의 센터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복예술공장 곳곳에 반추할 만한 기억이, 음미할 만한 서사가 담겨 있다.
종로구 탑골미술관(관장 희유)은 22일(목)부터 10월 15일(토)까지 탑골미술관 첫 미디어아트 기획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No time to spare)를 개최한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한 전시로, 미디어 아티스트 5팀의 작품을 통해 ‘시간’을 주제로 어르신의 축적된 삶의 서사를 재조명한다.
탑골미술관은 디지털 매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문화 예술 향유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감각할 수 있는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복합적인 전시를 향유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예술적 가능성을 찾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삶의 여정으로서 개인이 갖는 ‘시간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노인 혹은 노인 주변부에 머무른 이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감각을 살피고자 한다. 미디어를 매개로 미디어가 갖는 매체성, 그를 둘러싼 개인의 서사, 몸이 품고 있는 시간을 재조명함으로써 전시의 시간이 경유하는 길로 관객을 유도한다.
전시 제목인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생애 마지막 선집 ‘No Time to Spare’를 참고했다. 우리의 삶에서 할 일이 없는 시간이란 없고, 그 때문에 남겨둘 시간도 없다는 책의 표현에서 늙고 스러지는 대신 끈기 있고 명료한 삶의 시간을 보내는 노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이 겹겹이 쌓여 몸의 지식을 갖고 있는 노인에게 남겨둘 시간은 없다. 전시는 이러한 ‘이야기의 시간’을 경유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축을 만들고 있다.
전시는 인공지능 로봇, AR, 인터랙션 설치 등 노진아, 다프네 라이트(Daphne Wright), 무진형제, 아르동(남기륭), 우박 스튜디오 총 5팀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을 과거 흔적의 시간과 현재의 이야기로 나눠 소개한다.
노진아와 다프네 라이트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관객과 감정적으로 교감하며 현재의 이야기를 담는다. 노진아의 시간이 쌓여 학습된 인공지능 로봇 ‘나의 기계 엄마’는 상황에 맞는 표정과 말을 인간과 유사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작가와 엄마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현실과의 연결 관계를 만든다.
이와 달리, 다프네 라이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낯선 외모와 순서를 뒤바꾼 발화 방식을 택해 몰입을 위한 관계를 끊어낸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소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감정적 공감을 현재로 이끌고 있다.
무진형제, 아르동(남기륭), 우박 스튜디오는 시간의 과거, 흔적을 발견하는 데 주목한다. 먼저 아르동(남기륭)은 사물 간의 관계를 묘사하며 과거 시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애장품이 갖는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사물의 시간성을 눈과 귀, 몸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무진형제는 오랜 시간 개인의 몸과 언어로 기억되는 장소를 자연스럽게 담아 삶의 흔적을 살피고, 그 순간을 함께하길 제안하며, 시간의 감각과 물성을 연결하여 흔적을 발견하고 퍼내길 반복한다. 끝으로 우박 스튜디오는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자체에 주목하며 과거 시간의 쌓임을 신체 데이터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주름, 목소리 등 수집된 신체 데이터는 나를 증명하는 고유한 인증서로 발급된다. 이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이며, 작품의 시간 또한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 수 있게끔 구성하고 있다.
전시는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주변 참여적 시선을 함께 갖고, 전시의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2일에는 몸에 새겨진 흔적을 찾아 디지털 인증서로 발급하는 우박 스튜디오의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10월 14일(금) 오후 2시에는 아르동 작가와 함께 애장품에 얽힌 스토리를 공유하고, 이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이미지로 바꾸기) 해보는 ‘애장품의 대화’가 준비돼있다. 10월 15일(토) 오후 1시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전시의 디자인을 맡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들과 디자인 자문을 맡은 ‘일상의실천’이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실천을 위한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탑골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희유스님은 “이번 탑골미술관의 첫 미디어아트 전시를 통해 그동안 서울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이 미디어아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작품을 느끼고 감각하며 다양한 예술 경험을 향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탑골미술관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한다.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한다.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박춘순 관장의 올해 나이 76세. 하산을 준비할 때다. 그렇다는 건 흔히 그런 통념을 가져서 하는 얘기다. 그러나 나이와 열정의 크기가 반드시 비례할 리가. 해든뮤지움을 설립하고 운영해온 박 관장의 행장을 보면 열정은 나이를 초월한다. ‘해야만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승선한 이에겐 무릇 난항조차 버겁되 굴복하지 않는다. 그에겐 서울 압구정동에서 16년간 갤러리를 운영한 커리어가 있다.
“갤러리를 할 때 상업적 능력은 부족했다. 그러나 미술품 보는 눈은 좀 열렸던 것 같다. 이건 해든뮤지움을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돼주었다. 전시 기획과 작품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미술관 일의 거의 모든 걸 직접 처리한다. 조경도 손수 했다. 그게 보람차다. 운영난이라거나 뼈아픈 고통을 피할 길 없는 게 사립미술관이지만.”
절반 이상이 지하로 들어간 미술관 건물이 이채롭다. 어떤 의도가 있었나?
“원래 지형의 경사도가 상당히 심해 경관을 해치지 않으려면 지하로 들어가는 게 합리적이었다. 설계를 맡아준 배대용 건축가에게 몇 가지 부탁한 게 있다. 관람객이 내부에 갇혀 뱅글뱅글 도는 식의 갇힌 공간 구조는 배제하고,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 등 자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출콘크리트 건물도 피하기로 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봐서.”
건축에 예술성을 가미했으나 차후 기능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더라. 개관을 해놓고 예기치 못한 개보수 작업을 하는 미술관을 드물지 않게 봤다.
“다행히 별 문제 없었다. 배대용 선생은 미술관을 설계한 적이 없는 분이지만 나와 생각이 잘 통해 안심하고 의뢰했다. 그는 ‘역작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의도대로 완결됐다.”
미러가든의 대형 거울 앞에 관람객 발길이 잦겠지? 생소해서 호기심을 느낄 테니까.
“많은 고심 끝에 거울 벽을 도입했다. 주변에 있는 산야를 거울로 끌어들이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미술관 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포토존이 됐다. 단점도 있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들었고, 관리도 힘들다. 거울이 변질되기도 하고, 혹한엔 깨지기도 한다.”
좋은 미술관이란 어떤 유형을 말하나?
“기획전의 내용에 달린 거 아닐까. 대중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이벤트 중심으로 흘러 기획전의 질에 소홀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거운 콘셉트 기획만이 좋은 것도 아니다.”
미술품 감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다고들 한다.
“예전보다 사람들의 욕구 충족 기대치가 크게 높아진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미술관들이 대중의 다변화한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다. 운영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예술이 사람의 삶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술을 통해 감성을 일깨우고 지혜까지 얻을 수 있다. 희열과 행복감도. 다시 말해 삶을 좀 윤택하게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예술을 모른다고 삶이 피폐해질 리 없다. 예술보다 자연에서 숨 쉬는 사람이라면 이미 예술과 만나고 있는 것이고. 자연보다 훌륭한 예술이 있던가?”
박 관장의 음성은 나직하고 생각엔 겸양이 배어 있다. 정신엔 강철이 들어 있나? 그는 70세에 동양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화도 바다가 보인다. 썰물에 쓸린 오후의 싯누런 바다가 개펄 너머에서 굼실거린다. 쏟아지는 가랑비가 따가운 양 잔등을 실룩이며 수평선엔 오선지에 매달린 음표처럼 즐거운, 점점이 흩어진 작은 섬들. 섬에 왔으니 해안도로를 달려 해변 풍경부터 눈길에 쓸어 담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목적지는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해든뮤지움이지만 한동안 해변에서 해찰한다. 바다도 보고, 미술관도 보고. 흥취가 겹일 테니 애초 그러려 했다. 다시 말하자면 해든뮤지움은 바다를 덤으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미술관이다.
해든뮤지움은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 있다. 숲 가장자리에 있다. 그래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이 사위에서 범람한다. 푸르기는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너른 야외 정원 역시 초록을 흩뿌리고 있으니. 미술관 건물은 외견상 주역이 아니다. 절반 이상 지하로 스며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풍경은 다소 휑한 맛을 풍긴다. 그래서 좀 고즈넉하나, 사실은 군더더기 없이 시원해 첫눈에 수려하다.
이와 같은 풍광은 그저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면밀한 구상과 지향을 오롯이 구현한 결과물이니까. 설계 콘셉트 자체가 모든 구조물이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부터 있었던 자연스러운 지형을 뭉개거나 변형하는 걸 최대한 자제했다. 해든뮤지움을 보며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나오시마 섬에 지은 지중미술관을 연상하는 이들이 있다. 지하에 미술관 건물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불쑥 솟은 건축을 할 경우 주변 풍경을 망칠 수밖에 없다. 과격한 인위로는 자연을 제압하는 결례를 범하기 마련이다. 해든뮤지움은 차라리 겸손하게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군사용 벙커도 아닌 것이, 은밀한 마약 제조 공장도 아닌 것이 마냥 땅속에 폭 파묻힌다면 어떻게 흥미를 주겠는가? 이 미술관은 지형을 기술적으로 활용해 통유리창을 벽면 일부에 설치함으로써 숨통을 틔웠다. 유리창을 통해 빛을 끌어들여 전시장에 공급한다. 투명한 유리벽으로 외부의 숲 경관을 끌어들인다. 모르긴 몰라도 난이도 높은 건축 기법이 적용되었을 테다. 개관한 해인 2013년, 이 미술관은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뽑혔다. 설계자는 건축가 배대용. 자연환경을 고려해달라는 설립자의 주문을 고스란히 반영한 설계로 예술품에 맞먹을 미술관을 귀결한 그의 변은 이렇다. “미술관의 속성을 유지하면서, 자연 파괴 없이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건물 설계에 중점을 두었다.”
경사로를 따라 지하 1층에 있는 미술관 입구로 내려간다. 출입문 앞에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HOPE’가 있다. ‘H’, ‘O’, ‘P’, ‘E’ 4개의 알파벳을 사각형 격자 모양으로 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딱히 뜯어볼 것도 없이 밋밋해 보인다. 단순한 알파벳 조형이다. 그나마 특징이 있다면 ‘O’자를 살짝 기울여 따분함을 다소 누그러뜨렸다는 점일 뿐이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이와 유사한 작품 ‘LOVE’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 팝아트의 거장으로 부상했다. 남들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걸 하라! 평범한 걸 비틀어 비범해 보이게 하라! 이건 팝아트의 본령이다. 인디애나는 누구나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으로,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던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예가 온전하지는 못했다. 상업주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세상 떠날 때까지 붙어 다녔으니까.
거울로 산야를 끌어들여
6개로 이루어진 전시장 전관에서는 ‘메타·화양연화전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김창겸, 이이남, 장 샤오타오 등 6인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기획전이다. 이 시대 한국의 미디어 아트가 매우 전위적인 행진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전시회이기도. 미술관 중정엔 베르나르 브네의 ‘두 개의 불확실한 선’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9년 전 개관한 이래 해든뮤지움은 일반 관람객은 물론 미술 전문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기획전을 다수 펼쳤다. 개관전인 ‘현대미술의 거장’전은 설립자 박춘순 관장의 컬렉션을 내건 전시회였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망라돼 호응을 끌어냈다. 2018년에 치른 ‘샤갈’전 역시 대형 전시회였다. 몽환적인 색채와 비현실적 공간 구성으로 샤갈의 진품 다수를 전시해 커다란 반향을 야기했다.
이제 미술관을 나와 정원을 거닌다. 탁 트인 정원이라 저만치의 숲도, 저 위의 하늘도, 구름도, 새소리도 사뭇 가깝게 다가온다. 이 충만한 자연은 모든 진리의 압축 파일이다. 상처투성이 마음을, 초라한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자비의 손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치유의 정원? 이름이 붙어 있다. ‘미러가든’이다. 이는 해든뮤지움의 시그니처 구조물이다. 미감을 살려 배치한 초대형 거울 여러 점이 단박에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어 맨다.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이색이다. ‘거울 셀카’의 촬영 명소다.
맑은 거울 앞으로 다가가자 누군가 거울 속에서 멈칫거린다. 바로 나 자신이다. 별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별것 아닌 몰골로 거울 속에 있다. 나의 이미지를 객관화하고, 심지어 속내까지 투명하게 까발리는 거울의 불심검문에 켕길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성찰 능력은 거울이 만들어지면서 한결 발육했을지도 모른다. 해든뮤지움은 거울 벽이 끌어들이는 자연 풍경을 보라고, 자연의 일부인 나를 보라고 거울을 조성했지만, 사람들은 대개 반짝이는 거울 앞에서 사진 찍기를 즐긴다. 행복은 그런 여흥의 언저리에 감도는 법이다.
거울 벽 앞에는 브론즈 조각 한 점이 놓여 있다. 머리와 두 팔이 잘려나간 상반신을 조형한 데다, 비스듬히 기운 품새라 처연해 보이지만 웅장한 맛을 풍긴다. 빨아들이듯 눈길을 당기는 작품이다. 폴란드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이카루스의 토르소’다. 이카루스는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으나 밀랍이 녹아내려 지상으로 추락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해서 ‘이카루스의 날개’는 흔히 광활한 자유를 갈구하지만 결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빗댄 은유로 쓰인다.
미토라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작업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삶의 드라마를 친숙한 형상으로 빚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카루스의 토르소’는 비루한 삶에 휘둘리면서도 날아보고 싶은 열망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재미있는 건, 등짝에 조형해 붙인 메두사의 머리 위에 이카루스의 날개가 자그맣게 달려 있다는 점. 메두사로부터 이렇게 페가수스가 태어난다. 페가수스는 이제 곧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를 것 같고. 숨은 그림처럼 실린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다. 해든뮤지움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강종권(67) 관장은 미술을 좋아하는 취향에 추동돼 자하미술관을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경치 좋은 인왕산 기슭에 살림집 한 채 짓고 싶었단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꿔 미술관을 지었다. 그의 전직은 회사원. 기업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니 미리 길러둔 미술에의 조예와 경륜이 깊었을 리 없다. 뒤늦게야 미술과 미술관의 물정을 파고들었을 텐데, 평소의 공부 습성을 기반으로 실력을 키웠던 것 같다. 즉 출발은 다소 무모했지만, 이후의 행보는 견고해 뜻을 이루었다.
“회사 다닐 때 즐겨 찾기 시작한 곳이 미술관이었다.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으로 미술관보다 나은 게 없다는 걸 알고 더 자주 미술관을 다녔다. 이게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동인이다. 남들도 나처럼 위안받기를 바라며. 그게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건물 설계시 모델로 삼은 곳이 있나?
“건축을 구상하기 전에 100여 권의 건축 관련 책부터 읽었다. 그러고 내린 결론이 안도 다다오(노출콘크리트와 자연 채광을 건축에 끌어들인 일본 건축가)의 기법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안도 다다오가 나오시마 섬에 지은 지중미술관을 보고 착상한 게 좀 있었다.”
입지의 자연 풍광이 빼어나다. 서울 도심이 지척인데 깊은 맛을 주고.
“미술 작품과 산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다들 강렬한 인상을 받는 것 같더라. ‘높고 외진 곳에 관람객이 오기나 하겠어?’ 처음에 숱하게 들었던 얘기가 그랬다. 그러나 기우에 가까운 소리였다. 적다고만 할 수 없는 관람객들이 찾아오니까.”
명산 인왕산 기슭인 데다 북한산과 북악산이 전면에 펼쳐져 수려하다. 덕분에 전시 작품은 뒷전이고 풍광에 더 관심 갖는 이들이 많을지도.
“작품으로 다 채우지 못한 갈증을 자연경관으로 보충할 수 있어 양수겸장이라 봐야 하겠지. 재미있는 건 이곳의 풍수 여건이다. 절묘한 터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실제 인왕산은 애니미즘의 센터였다. 이에 착안해 샤머니즘을 주제로 기획전을 펼친 적도 있다. 그러나 샤머니즘에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자연의 물상을 신앙으로 바라보는 건 성향에 맞지 않아서.”
그럼 당신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느껴진다. 사람이 만든 미술 작품이 제아무리 걸작이라도 자연을 넘어설 수 있겠나? 인간의 예술이냐 자연이냐, 그 우월성을 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웃고 만다.”
전시 작가 선정엔 어떤 기준을 두나?
“개성적인 자기 세계를, 실험적 표현 기법과 형식을 구현하는 작가를 우선시한다. 콜라주 작가나 여성주의 작가,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들도 선호한다. 일단 배제하는 건 상업주의에 물든 작가다.”
배고픈 작가가 태반이다. 사립미술관들도 형편이 열악하다. 영혼까지 팔아서야 안 되겠지만, 예술도 장사가 돼야 지속 가능한 게 아닐까?
“사립미술관만 말하자면, 영리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엔 딜레마가 있다. 사립미술관이야말로 ‘적자 창고’니까. 기부 문화의 확산으로 문제를 푸는 게 가장 정당한 해법이다. 요원하지만.”
그는 요즘 한국 최초의 여성 화가 나혜석 연구에 한창이다. 나혜석 기획전을 준비하는 것. 남도의 섬에 미술관을 꾸릴 구상도 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제주 웰니스 힐링 여행 상품 기획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기획전은 제주를 웰니스 여행목적지로 브랜딩 하고자 만든 것으로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과 함께 추진했다.
웰니스란 웰빙(Well-being)과 건강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균형을 추구하는 활동을 말한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 웰니스 여름 기획전은 지난 7월 7일 오픈 이후 한 달간 총 800건이 판매됐다. 기획전 중 인기가 많은 상품은 ▲오션뷰 요가 클래스 ▲편백숲길 승마 ▲패들보드·패들요가 ▲숲 해설·힐링 트래킹 ▲숲속 프라이빗 요가 ▲그림 명상·컬러 요가 등으로 제주의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숲 치유’, ‘힐링·명상’, ‘만남·즐김’ 등 3가지 테마로 구성된 웰니스 여름 기획전에는 총 70여 개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추가될 예정이다. 이번 기획전은 9월까지 이어진다.
제주관광공사는 8월 19일부터 9월까지 기획전을 구매하는 이용자에게 후기 리뷰 이벤트를 통해 제주 왕복 항공권, 에어팟 맥스 등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은숙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호스트와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고, 웰니스를 통해 건강 증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전은 의미가 깊다”면서 “웰니스 호스트인 ‘힐러’를 지속 발굴해 지역 주민 소득 창출과 웰니스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