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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라이프] 중장년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 통해 화려하게 부활!
-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 2017-07-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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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이 오른다
- 왼쪽 무릎을 다쳤다. x-ray를 찍어 보니 연골이 찢어졌다.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고통지수를 100으로 가정하면 수술 후 완전히 전과 같지는 않단다. 무엇을 해도 40~50 정도의 고통은 남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해서 그나마 줄어드는 고통지수에 만족하게 한 다음에야 수술을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의 연골을 조금 뽑아 배양한 뒤 아픈 부위에 다시 집어넣는 자가연골배양술이 있는데 시술하면 좋아져야 하는데 실패율이 높아 권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관절 역시 남자들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모든 수술의 실패율이 높아 책임 회피 차원에서 수술을 잘 안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릎을 전처럼 사용할 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 한다. 아픈 무릎이 나을 때쯤이면 그동안 무리했던 다른 쪽 무릎도 탈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 무릎을 치료하면서 양 무릎을 오가는 고통의 악순환이 몰려올 거란다. 나빠지면 앉아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을 수도 있으니 그나마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6개월에서 3~4년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기계는 외국에 비해 수명이 매우 짧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서 그런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내려갈 때까지 혹은 올라갈 때까지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기계에 권투의 잽처럼 잔 충격이 누적되어 고장이 잦다는 설명이었다. 필자도 평소 많이 움직인 탓으로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빨리 좋아져야 한다는 욕심에 하루에 정형외과와 한방병원 두 곳을 매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는다. 두 곳 모두 환자가 많으면 대기시간이 길어져 3~5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루 일과 중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이로 인해 스케줄을 정확히 잡기가 어려워 일도 확 줄였다. 누군가 “기적이란 막대기로 바다를 가르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두 발로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실감이 난다. 한 번의 실수가 인생 스케줄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이 뇌에 오랫동안 기억되어 생기는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그저 흘려 듣기만 했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고민은 강력 소염 진통제를 먹다 보니 속이 쓰리고 어지러워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해주면서도 진통제 복용으로 고통이 없어지면 현재 아픈 상태인 무릎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니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는 참으며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걸으라 한다. 도대체 진통제를 먹으라는 건지 먹지 말라는 건지 헷갈려 반으로 잘라 먹으며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려니 약도 마음대로 먹지 못 하는 입장이 또한 스트레스다. 아내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면 바쁘게 강의 다니지 말고 그냥 쉬든지 앉아서 할 일을 찾아보란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취업이 어려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에 아재를 넘어 꼰대 나이가 된 사람을 누가 써준단 말인가. 잠자리에 누우면 스물스물 고통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필자에게 스스로 묻는다. “지금 바뀔래, 벼랑 끝에서 바뀔래?” 그러면서 약도 바짝바짝 난다.
- 2017-07-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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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도 더운데, 뭘 하지?” 오늘 ‘북캉스’ 떠나볼까요?!
- 지독하게 더웠던 2016년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도 그 끔찍한 시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무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도 책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알고 보면 근처 한 시간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북캉스’로 하루 보낼 곳을 기웃거려볼까. *북캉스: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TV, 영화 등 화려한 영상 문화와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책은 영상과 말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일상을 힐링하는 촉매로서 그 역할을 되찾고 있다.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도서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일상을 힐링하는 책의 공공기능적 역할을 간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백화점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히는 이른바 ‘북캉스’ 문화가 시니어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책 향기 그윽한 서점과 강연과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도서관은 무더위를 식히는 도심 속 정자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순화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길사 ‘순화동천’ 책 좀 읽었다는 시니어들에게 인문학 중심 도서들을 주로 펴낸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각별하다. 그 한길사가 오랜 준비 끝에 지난 4월 말에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의 문을 열었다.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했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만들어진 순화동천은 3만여 권의 책이 즐비한 550평 규모의 공간이며 책 박물관, 갤러리, 강의실, 회의실, 서점으로 구성됐다. 한길사는 오래전부터 독자가 중심이 된 ‘책 놀이터’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순화동의 ‘순화’와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인 ‘동천’을 더해 ‘순화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문·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평화를 순례하는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또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강의실과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은 각각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불린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8~15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 50~7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아트갤러리와 한길책방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져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걸린 아트갤러리로, 다른 쪽 벽은 한길사가 지난 40년 동안 펴낸 고품격 인문·예술도서가 들어찬 한길책방이다. 복도 중간에는 ‘카페뮤지엄’이 있어 커피와 함께 잠시 쉬며 책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자유,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코엑스 안에 초대형 도서관이 있다? 사실이다. 신세계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다. 회원카드도 따로 없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면적 2800㎡에 2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를 중심으로 소파형·계단형 등 총 200석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했다. 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해 개인 서재 분위기를 냈고, 곳곳에 콘센트와 USB 단자를 구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5만여 권의 장서와 600여 권의 잡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잡지 코너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고객들의 도서 기증도 받고 있기에 집에 보관해둔 책을 기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대출은 불가능하며 열람만 가능하다. 또한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이지만, 도난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구조다. 별마당 도서관은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해 만들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 일본 다케오 시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콘셉트로 2013년에 리뉴얼한 이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키덜트 겨냥한 예스24 ‘홍대던전’ 인터넷 서점들의 오프라인 서점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주로 중고서점 중심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예스24는 콘셉트 서점을 기획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서브컬처(하위문화) 복합문화공간인 ‘홍대던전’을 열었다. 홍대던전은 청소년에서 키덜트까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라이트노벨(가벼운 느낌의 장르소설)·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문화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과 아래위층으로 연결돼 있다. ‘홍대던전’에는 누구나 무료로 라이트노벨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피규어와 퍼즐 등 캐릭터 상품과 코스프레 전문용품을 모아둔 판매공간,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메뉴를 모티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 매점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지적 세계로의 여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현대카드는 ‘혁신’을 기업 이미지로 삼으면서 아날로그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꾸준히 지향했다. 서울 도심의 네 곳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세워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의 대표적 콘텐츠인 책에 주목한 현대카드의 또 다른 실험이다. 공연과 문화공간 등을 통해 컬처 브랜딩의 선두주자로 각인된 현대카드에서 책을 통해 지적 브랜딩의 출발점을 잡은 것이다.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과 함께 1950년대 이후에 나온 1만여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LP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LP를 통한 음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신사동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 관련 서적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 있다. 재료 카드를 사면 현장에서 요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서를 여행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1만5000여 권에 달하는 여행 관련 서적들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행을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네이버 라이브러리’ 분당구 정자동의 네이버 사옥 로비에 자리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결합시켜 책이 있는 공간의 장점들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과 IT에 특화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장서 1만7000여 권, IT 장서 7000여 권, 전 세계의 전문 백과사전 1300여 권, 국내외 잡지 250여 종이 준비되어 있다. IT 기업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는 특색을 살리면서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디자인과 IT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는 달리 ‘절대 정숙’ 문화가 아닌 대화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네이버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서는 시니어들이 맡고 있으며 안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를 만드는 회사 베어베터와 함께 운영되며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커피를 만든다. ◇ 도심 속 한옥 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16번째로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최초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공공 도서관이다. 지붕은 전통 방식의 수제 기와를 사용했고 담 위에 얹은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의 기와 3000여 장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야말로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청운문학도서관 1층은 한옥이며 지하는 반지하식 양옥 건물이다. 1층에서는 시, 문학 창작교실, 문화예술교육, 인문학 콘서트 등이 열린다. 지하층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자료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온돌식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한옥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통해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하니 냉방은 합리적인 현대기술을 이용했겠다. 도서관 같은 서점 인터파크 ‘북파크’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 총 2000㎡ 공간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북카페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 앉아서 책 읽기가 가능한 계단 등이 마련돼 있다. 독서공간의 분위기도 다락방 스타일, 테라스 스타일, 응접실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또 계단 밑이나 서가 뒤 숨은 공간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일곱 곳이나 있다. ‘보신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시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으니, 책의 구매 여부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점이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의 과학재단인 카오스재단이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카오스재단의 설립 목적인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지식의 공유’ 취지에 맞춰 총 10만여 권의 보유 서적 중 절반 정도가 과학 관련 책이다. 서점 안에는 35석 규모의 다윈룸과 8석 규모의 뉴턴룸 등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북파크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유명 맛집과 가깝고 공연장이 같은 건물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여름방학이 되면 손주 손을 잡고 다녀와도 좋겠다. 이밖에도 CJ CGV와 쉐라톤워커힐 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다. 금융계에서도 KEB 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차원에서 도서관을 개장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에는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식의 총량이 매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인생 경륜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자칫 뭘 모르면서 꼰대 노릇하는 걸로 비치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 나이 듦에 따라 정신과 지식의 세계도 변모하기에 품위 있게 늙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한 시니어에게 도서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다. 다시 찾아온 무더운 여름, 어디를 갈까 고민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 놀러 가보자.
- 2017-07-0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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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예찬
- 하짓날 새벽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제 저렇게 잔주름이 있었던가. 매일 매 시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많이 자주 본다고 자부하며 곁을 지켜왔어도 몰랐는데 갑자기 눈에 띄다니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바뀐다는데 혹시나 하고 발치로 옆구리로 옮겨 가며 바라봐도 보려고 해서 그런지 역시나 보인다. 가시덤불로 막아도 지름길로 온다는 흰 머리칼이 이겼구나. 오랜 연애 끝에 문서에 도장 찍고 맏며느리로 들어와 아이 셋 낳고 지지리 고생하는 자체를 아이 키우는 즐거움으로 퉁 치며 살았던 아내. 자신들이 좋다는 배필 토하나 달지 않고 승낙 해 아직 잡음 없이 무난한 삶 갖게 해줘 며느리 사위들에게 사랑 받으며 자주 찾아오는 휴일을 기다리는 엄마. 중학생 셋 초등학생 하나인 손자 손녀들에게 늘 공부하고 열심히 배우는 자세를 몸소 본이 되어주는 정신적 지주면서 절대 멘토인 스승 할머니. 두 식구 살면서 꼰대가 될 것이냐 어르신이 될 것이냐 물어보는 동반자. 친구들 연락에 순서 지켜 골고루 만나주고 함께 울어주는 듬직한 친구. 무엇하나 소홀한데 없이 묵묵히 중심 지키며 세상에 순응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삶의 표본인 아내. 모든 게 부족하고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잠시 누가 무얼 하면 좋다는 말에 귀가 팔랑대 한눈팔려는 기미만 보이면 아이들 다 키워 보낼 때까지만 참으면 그 다음은 마음대로 하라며 오로지 아이들 건사하기에 올인 한 엄마. 이제 모든 걸 다 해 줬으나 단 둘이 남아 정작 기운도 없고 우리 몫은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나를 못 찾은 것은 후회되지만 다시 그 일을 한다 해도 또 후회할 줄 뻔히 알아도 나는 다시 그 일을 하고 이렇게 후회하겠다는 아내. 인생의 정답이라는 게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잘 키웠지 않느냐 그거면 됐다 이 세상에 태어난 소명 중 내 일은 다 한 듯하다. 내 짧은 생각에 내게 또 다른 욕망은 욕심이니 가자 부르시면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는 아내. 내게는 아재나 꼰대가 아닌 어르신으로 사는 첫 걸음은 얼굴과 매무새가 정갈해야한다며 늘 양복과 넥타이를 추천한다. 시대를 리드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말수는 적게, 잔잔한 미소로 불치하문의 겸손을 갖추는 태도와 행동이 어르신일 것이란 확고한 개인소견. 상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경청해 주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잘 감지해 젊은이들 보다 한참 떨어지지 않도록 공부하며 어느 누구도 내가 아는 분야를 제외하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서지 말라. 아재 꼰대 어르신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에 대해 느끼는 것이니 답답하고 안타까워도 상대가 물을 때만 대답해 주도록 하라. 주름지고 쳐진 얼굴이야 흐르는 세월에 어쩔 수 없지만 그나마 가꿔야한다 나를 대신하는 게 내 얼굴이고 누구에게나 보여 지는 내 자신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의외로 나를 모르는 경우가 대단히 많으니 거울 앞에서 얼굴을 자주 봐라. 한번 보고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다른데 자주 볼수록 내 자존감이 커지고 보는 시간도 짧아진다. 찡그린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밝고 맑은 얼굴을 만들자 한다. 아내 얼굴에 잔주름이 생겼다. 거울을 자주 보니 본인이 먼저 알 텐데 그 흔한 주사 한 방 안 맞았다. 더 자주 바라봐야겠다.
- 2017-06-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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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언즈, 나도 돈벼락 맞고 싶다~
- 지난번 책정리를 하면서 아주 오래된 DVD와 CD가 제법 많이 나와서 일부 챙겨 두었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시간내어 몇 편 보게 되었는데 그 중 가볍고 부담없는 영화 한 편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요즘 필자는 영화든 음악이나 그림이든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거나 골치아프면 반갑지가 않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연일 들려오는 뉴스는 시원치가 않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마음 다스리기도 만만찮은데다가 지구 저편에서는 잇단 테러소식이 들려오고 어딜가나 세상 살기 어려운 이야기가 난무한다. 영화까지 무겁고 꼰대스러운 잔소리는 도움이 될리 없다. 이럴 때 하늘에서 10억원이 든 돈가방이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영화 밀리언즈 , 어느날 기찻길옆 들판에서 놀고 있던 어린 두 형제의 머리위로 돈가방이 떨어진 것이다. 언제나 성서 속의 성자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는 7살짜리 동생은 하느님이 착한 일 하라고 내려 보내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엄청난 돈이 생겨버린 동생은 만나는 사람들 마다 ‘가난하세요?’ 라고 묻는다. 그러나 돈의 힘을 알고 있는 영리한 9살짜리 형은 어른 흉내를 내며 돈의 위력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 천사표 동생과 형의 투자 마인드가 조금씩 엇갈리면서 가벼운 미소를 만들어 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돈은 영국의 화폐가 유로화로 통합되기 열흘전이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의 흐름이 또 하나 생긴다. 돈가방을 가지고 생기는 어린이 영화라면 그 돈을 노린 악당들과의 한바탕 숨가쁘고 빠른 전개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돈의 사용 때문에 골몰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가 일단은 우선이다. 물론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살짝 골치아픈 일이 일어나기에 갑작스러운 돈다발의 출현은 행복보다는 역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구나 싶긴 했다. 물욕에 치우쳐 사는 세상사람들의 돈타령을 놀려먹는 감독의 의도를 눈치챌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이는 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내세워서 영화 전면을 흐르는 환한 햇살과 음악, 그리고 동화적인 상상으로 유쾌한 한 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주근깨가 귀여운 두 아이의 활약 뒤에는 환하고 밝은 하늘과 들판이 있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밝은 기분을 이어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가방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랑, 열흘 후면 유로화로 통합되거나 아니면 휴지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라니 이 무슨 장난질 같은 이야기인가 싶다. 황당해 하면서도 마지막 화면에 올라가는 자막을 보면서 가뿐한 영화보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사는 일에 쫒기느라 때가 덜 묻었던 아득한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으니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허무맹랑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수 있는 만화나 동화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나름대로 즐거워진다. 사실은 내 머리가 깨져도 좋으니 내 머리 위에도 왕창 돈벼락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잠깐이라도 괜히 더 즐거워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2017-06-2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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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시작해본다, “라블리!”
- 한동안 BBC에서 제작된 이란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다. 개구쟁이처럼 생긴 그의 젊은 팔뚝에서는 청춘의 힘이 느껴졌고, 빠른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만 봐도 즐거웠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요리를 보면 당장이라도 따라 하고 싶어지곤 했다. 영국의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제이미는 영국 요리의 이미지 개선으로 국위선양을 한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또 요리사로서 영국의 어린 학생들의 학교 급식 개선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그의 직업적 사명감의 표현은 멋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요리 프로를 몇 번 보다가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가 틈만 나면 "라블리~!"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준비한 재료가 싱싱하면 “라블리~” 군침 돌게 잘 구워진 요리를 오븐에서 꺼내놓고는 “라블리~” 반죽 농도가 끝내준다며 “라블리~” 껍질이 잘 벗겨졌다고 “라블리~” 허브는 향기뿐 아니라 꽃도 예쁘다며 “라블리~” 옆에서 누군가가 요리 도구를 가져다주면 “라블리~” 처음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가 무척 귀여웠다. 그러다가 요리에 열중하느라 뜸하기라도 하면 '지금쯤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뭐하시지?'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었으니 듣기 좋은 말은 자주 하는 것이 역시 좋은가보다. 때때로 가슴속이 버석거릴 때면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 한 끼 식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 싶은 것이다. 저기압처럼 푹 가라앉은 기분이 들 때마다 스스로 이런 처방을 찾는 것은 기분 좋은 대화가 주는 위안이 크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때 꼰대식의 교훈이나 가르치려는 말 또는 어렵고 화려한 철학적 수식어의 말들은 의미가 없다. 충고나 조언은 집어치워야 한다. 그저 따뜻한 긍정의 말 한마디만이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된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가끔씩, 아니 습관적으로 착하고 순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라블리든 러블리든 한마디씩 기분 좋은 멘트를 한 번씩 날리는 것,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당장 시작해본다. "라블리~~!!"
- 2017-05-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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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승 전 iMBC 대표 “‘내 일’이 없으면 내일(來日)이 없습니다”
-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브런치, 맘대로 시간을 쓰고 배울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한발 먼저 호흡해야 하는 눈치, 3치의 삶이란다. 그의 3치의 삶에 1치를 덧붙이고 싶다. 재치! 고전의 인용과 고급 유머의 재치를 적재적소 활용하는 활용하는 그에게선 자유인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그는 거듭되는 사진 촬영 포즈 요청에도 ‘Sure’, ‘OK’를 연발하며 경쾌하게 응했다. 또 ‘흑모백모(黑毛白毛) 가리지 않고 아쉬운 중년의 머리숱이니 정수리 부분의 사진 촬영은 피해 달라’는 유머로 분위기를 경쾌하게 띄웠다. 퇴직 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른바 전직의 ‘잉크’가 쏙 빠진 티가 역력했다. 메고 오신 백팩의 끈이 ‘나달나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닳았습니다. 바꾸지 않고 사용하시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독일 속담에 ‘가방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할 때 직원들이 선물해준 것입니다. ‘그간 고생했으니 새로운 설레는 이야기를 담아 가져와달라’는 당부를 담아서요.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제가 일생 뜨겁게 일하던 열정, 후배와 동료들이 준 사랑 등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긴 가보예요. 그 직원들의 바람과 기대를 생각하면 열심히 뛰게 되지요. 중요한 자리에도 가능한 한 이 가방을 메고 간답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빈티’ 가방을 ‘빈티지’ 가방으로 보면서 감동받더군요. 이 백팩과 운동화는 스토리 노마드로서의 프로 의식과 현장 의식을 잊지 않겠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는 제 다짐이 담긴 인생 2막 필수 장비(?)입니다.”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조직의 후광, 즉 타이틀이 없어지는 상황에 멘붕이 되시더군요. 선생께선 어떠셨습니까. “타이틀 앞에 전(前), ex라는 말이 붙는 것보다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죽어라 하고 치달린 인생이 A4 용지 발령장 하나로 흔들리지요. 자기 인생을 찾으려면 명함의 타이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과거는 선용 하면 자산이지만, 매달려 있으면 부채입니다. ‘내가 누군데’ 하며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실패합니다. 허세를 빼야 실세가 됩니다(허허). ex를 잊어야, 인생 전반전에서 exit해야 인생 후반전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예전 CEO를 할 때도 늘 엑시트 플랜이 없는 프로젝트는 결재 보류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20년 이상 일했으면 나중에 어떻게 엑시트할지 상정해놓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경영자는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를 당한다. 최고의 수치는 강판당하는 것, 그만두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경영자 시절 “매일 주가, 실적, 매출, 수익 등의 수치와 싸워야 했다”며 “나쁜 수치는 강판을 시키지만, 좋은 수치가 자리를 보호해주지는 않는 게 현실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그늘조차 위트를 담아 말하는 모습이 스토리 노마드다웠다. 조직에 있으면서 출구 전략을 미리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뭘 원하는지, 잘하는지 자신과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세월과 나이가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퇴직을 속절없이 당하느냐, 의지를 갖고 맞이하느냐는 차이가 큽니다. 코앞의 일이 급하다고 미루다 보면 늦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어도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한 사람은 퇴직 때 자괴감과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멈추면 더 위험하고 부상도 크게 당하지 않습니까. 준비 없이 갑자기 조직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그와 같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책 없는 ‘퇴직’과 대책을 생각해둔 퇴직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의 50플러스 세대는 물심양면에서 퇴직 이후가 가장 준비되지 않은, 낀 세대”라며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충 해도 잘살았어 하며 퇴직 이후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선생께선 2013년 퇴직 후 괴테의 궤적을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셨지요. “과거에는 일에 미쳤지만, 이젠 한량이 되어 내가 미칠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심리스(seamless), 말 그대로 30년을 재봉틀 박음질하듯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에 완전 지쳤다고나 할까요. 번아웃(burn out)된 내 인생에 갭 이어(gap year), 안식년을 줘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혹자는 ‘먹고살 만한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대학 다니는 애들도 둘이나 있고요. 독일 여행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느라 새 자리와 기회, 제안 등을 놓쳤지요. 하지만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일, 내일’ 하며 미루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다 보면 ‘매일 책임질 일’은 계속 이어지고 평생 헤어나오질 못해요. 여행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요.” 그의 여행 궤적은 이라는 책으로 나왔고, 마법처럼 제2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퇴직 후 일반적 설계는 크게 버킷리스트의 로망형, 생활형 구직으로 크게 나뉘는데요. 각각의 유형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자기탐색입니다. 버킷리스트를 남, 책, 영화에서 나온 대로 따라 하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맞춤 프로그램을 세워야 합니다. 속절없이 시간보내기를 하면 후회합니다. 계획을 세웠으면 도전해야 합니다. 못할 이유를 찾으면 백 가지도 더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 조급한 구직 역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나는 이치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랫동안 일할 커리어 로드맵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프리랜서로 2막을 시작하신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드셨지요. 전반전과 후반전의 룰은 무엇이 다릅니까. “인생 전반전은 남이 정해진 룰을 익히는 타율의 적응학습이라면, 후반전은 자기주도 학습이에요. 전반전이 패키지여행이라면 후반전은 자유여행이에요. 당연히 전술과 전략이 달라야 해요. 남이 보기 좋은 옷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옷, 내게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남의 답안지 훔쳐보면서 인생을 허비할 시간이 이젠 없어요. 또 주인공에서 벗어나 조연, 심지어는 카메오 역할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관점을 전환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다 가끔 주인공 역할 맡게 되면 또 감사한 것이고요.” 인생 전반전은 앞서가기 위해 최고에 역점을 뒀더라도, 2막은 최적을 택해, 오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빛 좋은 개살구’보다 ‘뚝배기보다 장맛’의 내용, 즉 자기 적합성 여부를 따져야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말하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꼰대는 과거에 갇혀 있고, 어른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꼰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며 장광설만 늘어놓고 실천은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른은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영광, 기억에 머물러 있으면 ‘옛날 타령’만 하게 됩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하는데 꼰대일수록 doing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려는 것, 그것이 조직 밖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자 어른으로 존경받는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職)과 업(業)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직(職)은 조직에 있어야만 유지되는 직책, 직장이지요. 업은 남이 뺏을 수 없는 본인의 경쟁력, 경륜입니다. 퇴직 후의 대책 하면 흔히 경제적인 것과 이직을 위한 타이틀 등 유형자산만 생각합니다. 저는 업, 경험과 지혜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준비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도 종잣돈이 필요하듯, 인생 2막에 키워나갈 수 있는 종자 경험이 업입니다. 전문성, 네트워크, 경험 등의 총합인 내 일[業]이 없으면 내일(來日)은 없습니다.” 그는 “직은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지만 업의 힘을 베를린 특파원 시절에 길렀다”며 “혼자 지낸 고독력이 그 비결”이라고 털어놓았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 혼자 하는 여행. 웅덩이가 있어야 물이 고이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야 창조적인 것들이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파워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시는데요. 선생처럼 베를린 특파원, CEO, 교수 등 화려한 경력과 해외탐방의 이색 경험이 없는 분들도 가능합니까. “내 이야기야말로 삶의 무궁무진한 무형자산이에요. 각각 자기의 파워스토리는 다 갖게 마련이지요. 스토리텔링이란 성공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극복 스토리예요. 백퍼센트 성공담과 실패담은 재미와 의미가 없어요. 시련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 그것을 담아내는 반전에서 스토리의 파워가 나옵니다. 나를 스토리텔링할 줄 아는 게 경쟁력 있는 셀링포인트예요. 덕장, 지장보다 앞서는 게 운장이라고 하는데요. 그보다 상수가 담장(談將), 즉 스토리장이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그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비밀의 열쇠는 현직 시절 틈틈이 적어놓은 수첩이다. 이순신에게 남아 있던 ‘12척의 배’처럼 12권의 수첩이 그를 소생시켰다. 책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인생 2막의 시침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 심지어는 영감을 얻은 식당의 영수증까지 노트에 꼼꼼히 붙여놓는다. 그것이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된다. 이른바 ‘손빠’를 가지실 만큼 강연 및 저술로 프리랜서계에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자신의 저서 에서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 바 있지요. 프리랜서가 명심해야 할 생존법은 무엇입니까. “자유직업, 프리랜서의 다리는 조직인의 다리와 달라야 합니다. 뭍사람의 다리와 뱃사람의 다리가 다른 것처럼요. 뭍사람은 배를 타면 작은 파도의 출렁거림에도 일을 못합니다. 반면 뱃사람은 균형감각을 잡아 폭풍우 속에서도 일을 하지요. 프리랜서는 뱃사람처럼 심리적으로 굳건한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고체가 돼선 안 되고 액체가 돼 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요.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프리랜서력(力)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상대를 설레게 할 정도의 섹시한 제안 능력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기 위해 생자료를 가공자료로 바꿔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하고, 그러다 역제안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전직을 내세워 고위관계자와 직통하려 드는 것. 필패하게 돼 있다는 조언이다. 둘째는 상시 준비력이다. 언제 어떤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알파에 베타까지 덧붙여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준비력이다. 평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 상시 근무체제와 같은 의미다. 셋째는 탄력 회복성이다. 숱하게 거절당하거나 좌절당할 일이 있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회복하고 돌아봐 스스로를 성장시킬 계기로 삼는 능력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죠. 손 선생에게 현재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마음 설레는 일을 갖는 것입니다. 쓰고 싶은 글거리가 줄줄이 머릿속을 채우고 맴돌 때의 희열, 그것 이상의 행복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인터뷰 후 연거푸 제안서 미팅이 있다며 낡은 백팩, 아니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서둘러 일어섰다. 파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5-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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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철없는 아빠들’, 꼰대요? 우리 인생 사전에는 없습니다!
- 매주 목요일 저녁. 기타 가방을 메고 드럼 스틱을 든 남자 다섯이 남양주의 한 대형 가구 상점에 출몰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에 모여든 기간만 5년째,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같은 목적으로 수도 없이 만나왔다. 이들 중에는 40년이 더 된 사이도 있다. 으슥하고 인적 드문 곳에 자꾸 모여드는 이유는 철들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매주 같은 시간, 조건반사처럼 만나 연주하고 노래한다는 5인조 밴드 ‘철없는 아빠들’이다. 연습이 시작되면 철없는 아빠가 아닌 20대 꽃미남 밴드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철없을 때 만난 친구들입니다! 하나, 둘 매장 셔터가 내려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남양주 가구거리에서 기타 튜닝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철들 생각 없는(?) ‘철없는 아빠들’이 모인 곳은 베이스 기타 장시영씨가 운영하는 가구 매장. 이곳에 ‘철없는 아빠들’만의 전용 연습실이 있다. 머리가 하얗고 배가 나오고 손자까지 본 할아버지들이지만 연습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이는 숫자놀이에 불과하다. 드럼 치는 김영석(55)씨를 제외한 네 명은 58년 개띠로 김종민(리드기타), 한동호(보컬·기타), 이인섭(건반), 장시영(베이스)씨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군대 친구, 와이프의 대학 후배까지 제대로 얽히고설키다 밴드까지 만든 멤버다. 장시영 원래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예요. 기타 치고 음악 하는 거 좋아해서 갓 스 무 살 때부터 다들 밴드 경험이 있죠.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건 인생이 너무 지루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김종민 술 먹고 밴드 불러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저희도 잘할 거 같더라고요. 차라리 우리가 모여서 밴드를 하자! 그때가 아마 서른세 살이나 서른네 살이었을 거예요. 아내들이 돈 안 벌고 맨날 음악만 하니 철없다고. 그래서 팀 이름이 ‘철없는 아빠들’이 된 겁니다. 김종민씨가 다시 기타를 잡게 된 건 장시영씨 때문이었다. 김종민 이 친구(장시영)가 원래 군대 선임이었어요. 제대하고 8년쯤 지났을 때 저에게 게리무어(Gary Moore)의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를 들려줬어요. 그걸 듣고 정말 나자빠진 느낌이었습니다. 없는 형편에 게리 무어가 쓰던 기타를 샀어요. 심취해서 계속 기타를 치고, 그전보다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다 그룹을 만들겠다 했을 때 인섭이가 합류했습니다. 지금은 건반, 관악기, 퍼커션에 코러스까지 담당하는 이인섭씨. 밴드에 들어올 당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건반을 치더니, 플루트에 코러스까지 넣을 줄 아는 밴드 알짜배기로 성장했다. 이인섭 피아노 전공자처럼 할 수는 없어요. 주로 기타 코드를 보고 연주하고 전주곡 같은 것이 있으면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거죠. 어린 시절 만난 사이이다 보니 각자의 직업도 다양하다. 보컬 담당 한동호씨는 부동산임대업을, 기타 치는 김종민씨는 외국계 자동차 회사 이사다. 베이스 장시영씨는 얘기했다시피 가구업을 하고, 건반 이인섭씨는 성형외과 의사, 드럼 치는 김영석씨도 개인사업체 대표다. 매주 모여 연주 연습을 하다 보니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다들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장시영 흔히 얘기하는, 고리타분하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꼰대 성향은 없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과 대화하고 항상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 거거든요. 생활이 힘들다거나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서로 대화하지 않아요. 이들의 전용 연습실은 방음 시설과 장비 면에서 전문 밴드의 것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장시영 집사람은 제가 여기서 연주하는 걸 좋아해요. 아내는 음악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에 음악이라면 긍정적이죠. 연습실 만들 때 배려를 많이 해줬습니다. 한동호 그 전에는 돈을 주고 연습실을 빌려서 사용했어요. 그런데 왜 이곳으로 왔냐면 저희가 매번 전문 연습실을 사용했던 것이 아니거든요. 방음이 안 돼 있으면 시끄러우니까 장소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여기는 방해가 안 되니까 좋죠. 김종민 에피소드가 있어요. 송파의 한 지하 연습실에서 연주를 하는데 교회에서 예배 보던 분들이 찾아와서 시끄럽다며 저희더러 마귀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곳에 교회가 있는 줄 몰랐어요. 드나드는 길이 달랐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정말 웃겼어요(웃음). 남양주 연습실에 온 이후로는 누구 눈치 볼 일 없이 음악에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까지 철없는 아빠들이 연주했던 음악은 약 150여 곡.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 연주 실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올 가을쯤 장시영씨의 처제가 소속해 있는 밴드와 같이 공연할 계획이라고. 장시영팀은 자작곡도 있고 해서 10월이나 11월 초에 공연할 생각으로 공연장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연주할 수 있을까? 장시영씨는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고 한다. 그때 한 생각은 밴드 중 누군가가 흥을 잃을 때 연주가 멈출 것 같다고. 장시영 우리가 언제까지 이 흥을 유지할까. 우리 중 누군가가 흥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어떠한 계기가 됐건 흥을 잃을까봐요. 독려를 많이 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그 ‘흥’이라는 것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지금 그들의 흥이라면 70이 돼도 80이 돼도 끄떡없을 것 같다.
- 2017-05-2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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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년 개띠 아버지와 88년 용띠 아들의 용기백배 세계 일주
- 세계 일주 여행을 위해 긴 고민 끝에 32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 퇴직한 아버지 정준일(59)씨. 포병장교 전역 3개월 전, 갑작스런 아버지의 세계 일주 제안에 진행 중이던 취업 전형까지 중단하게 된 아들 정재인(29)씨. 가장으로서, 취업준비생으로서 장기 여행은 많은 것을 내려놓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무언가를 잃지는 않을까? 후회는 없을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떠난 200일의 세계 일주에서 돌아와 부자는 알게 됐다. 그때의 근심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 아버지 정준일 32년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문득,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회의감에 평소 꿈꿔왔던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현재는 기타 연주, 맛집 탐방 등 건강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 아들 정재인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꼰대’ 아버지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세계 일주를 시작한다.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언젠가 본인도 미래의 아들과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기획 중이다. ◇ 정준일·정재인, 우리 부자의 여행은? 준비 기간 2개월(이후에는 여행지에서 그때그때 준비) 여행 루트 서유럽-터키-동유럽-북유럽-북/중/남미-오세아니아-동남아시아-인도-아프리카 여행 콘셉트 친해지길 바라! 역할 분담 아버지) 경비 총무와 숙소정리, 아들) 아버지의 보좌관이자 안전책임자 여행 경비 약 6000만원 (아버지 퇴직금 + 아들 장교복무 봉급) 다음 여행 내년에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가 함께하는 이집트 여행 계획 Intro>>우리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Q. 세계 일주 여행 파트너로 아내나 친구가 아닌 ‘아들’을 꼽은 이유 아버지: 친구나 아내, 딸과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지만 장기간 여행할 수 있는 체력과 외국어 실력을 겸비한 아들과 함께하는 게 가장 마음 편하리라 생각했죠. 주변 사람들을 보면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마찰로 평생 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아들과 함께라면 혹여나 그런 서운한 감정이 생기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여행을 가기 전 아내는 명예 퇴직을 반대했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고생했다면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Q.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 아들: 처음 아버지의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 끝에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가장 친한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와 소주 한잔을 하게 됐죠. 후배는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많다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다음 날 바로 아버지께 함께하겠다고 말씀드렸죠. Q. 여행을 앞두고 기대했던 점과 우려스러웠던 점 아버지: 여행 전, 그동안 영상과 책으로만 접했던 전 세계의 자연환경과 건축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죠. 막상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난다 생각하니 건강이 우려스럽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쫄쫄 굶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더라고요. 여행 중 이탈리아에서 더위를 먹어 앓아눕고, 페루 쿠스코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크게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처음엔 현지 음식만 먹겠다 다짐했지만,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니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 음식점을 애용했죠. 아들: 모두가 한 번쯤은 꿈꾸는 세계 일주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지만, 아버지와 여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과 어색함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초기에는 아버지와 특별히 할 말도 없었고, 아버지의 잔소리에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터키 파묵칼레의 노천 온천탕에서 아버지와 오랜만에 목욕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Travelling>> 어리기만 했던 아들, 어느새 든든한 버팀목이 되다 Q. ‘역시 아들이랑 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낀 순간 아버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외국인 포함) 대부분이 아들과 세계 일주를 하는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각종 예약, 교통 티켓, 경로를 알아서 잘 짜는 아들이 참 든든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들이랑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Q. 중년 여행복의 상징인 아웃도어가 아닌, 아들이 코디해준 옷을 입고 다녔다는데 아버지: 아들 덕분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옷들을 마음껏 입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그런 옷들이 너무나 어색하고 남사스러웠는데, 이왕 여행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보기로 한 이상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아들이 권하는 옷들을 입어봤어요. 사람들이 멋지다며 엄지를 치켜 올려줬고, 사진으로 봐도 괜찮은 제 모습을 보며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그때의 패션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가벼운 여행을 할 때면 헌팅캡을 쓰곤 합니다. Q.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이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들 아버지: 내게 아들은 늘 어리게만 보여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인 것인데 오히려 그것을 잔소리로 여겼는지 참견하지 말라 해서 좀 서운했습니다. 결국 아들을 자기주도적인 결정 아래 책임을 질 줄 아는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하고 모든 걸 믿고 맡기기로 했죠. 아들: 예전의 권위적인 모습 속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와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 측면에서 문제들이 많았어요. 원체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가 숙소에 들어올 때마다 어엿한 성인인 제게 잔소리(빨래, 양치질, 정리정돈 등)를 해대셔서 방을 따로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남들과 여행할 때보다 두 배 세 배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매일 밤을 새워가며 아버지에게 적합한 여행 일정을 짜드리곤 했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쳤지만, 좋든 싫든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아버지와 여행하려니 힘들지? 고생이 많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큰 힘이 됐죠. Q. 아들이 아버지에게 의지했던 부분은? 아들: 저는 성격이 급하고 계획적이라 무언가 일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곤 해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속인 배낭여행에서 제가 초조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아버지께서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라며 정신적으로 안정시켜주셨죠. 청결하신 아버지께서 늘 위생에 신경 쓰신 덕분에 깨끗한 숙소에서 묵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Outro>> 아들에게 아들이 생긴다면? 세계여행 강추! Q. 만약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버지: 여행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과 고집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히 ~해야지’, ‘무조건 ~다’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성격으로 변했죠.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겪는 우울감을 느꼈을 거예요. 여행을 다녀온 후 태어나 처음으로 책도 써보고, 인터뷰도 해보고, 방송도 출연하고, 그렇게 새로운 경험들과 연계해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꿈만 같은 일들입니다. 아들: 우선 아버지가 굉장히 편해졌습니다. 예전의 수직적인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해서 어떤 대화도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편해지니 예전엔 ‘꼰대’라고 생각했던 아저씨들의 행동과 말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됐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취업 빙하기인 요즘, 아버지와의 세계 일주를 좋게 봐주신 인사 담당자 덕분에 좋은 직장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부자간의 관계도 예전처럼 서먹했을 테고, 취업도 어찌 됐을지 모릅니다. Q. 처음은 늘 아쉬운 법!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아버지: 너무 체면을 차리느라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지 못했고, 액티비티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다시 여행을 간다면 나이와 체면 생각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들과 소통하고 투어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아들: 계획을 너무 타이트하게 짜서 여행 중 여유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휴식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요가체험, 템플스테이 등)을 갖고 싶습니다. Q. ‘아들도 아들의 아들과 여행하길 바란다’고 말한 아버지, 그때의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버지: 아들이 나중에 손자를 낳아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들에게 부족한 아버지였지만, 아들은 손자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멋진 아버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나는 가정을 위해서 나부터 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대가 변했기에 아들은 아이와 더 많이 소통하는 아버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이고 아들은 늘 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내 기준으로만 자식을 바라보지 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 2017-05-0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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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낙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지인들이 부르면 불원천리, 산 넘고 물 건너 달려가요”
- 미술을 애호하는 의사? 의료활동을 가끔 하는 미술 전문가? 이성낙 가천의과대 명예총장(79)을 지칭할 때 헷갈리는 이름표다. 베체트병 최고의 권위자인 그는 가천의과대 총장 퇴임 이후 일흔의 나이에 미술사 공부를 본격 시작했다. 의학 박사이자 미술사학 박사로서 그는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한편, 다양한 매체에 문화 관련 칼럼을 기고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젠 문화인으로서의 명성과 활동이 의료인의 경력을 압도할 정도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인터뷰를 약속한 날, 그는 최근 한 달여 유럽 미술관 전시회를 혼자 순례하고 왔다며 문화의 향취에 젖은 표정이 역력했다. 사진 촬영을 생각지 못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와 어쩌냐고 걱정을 했지만 중절모에 세련된 비즈니스 캐주얼, 적당히 손때 묻은 가죽가방을 멘 차림은 단아한 문화인 그 자체였다. 퇴임 후 미술사 공부를 시작,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취미로 즐기셔도 될 텐데 굳이(?) 박사학위에 도전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한국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연구, 이것은 한국에서 저 말고는 할 수 없는 분야란 절박감과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간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내가 책임지고 반듯한 논문으로 남겨야 국내외로 인용될 것 아닌가’라는 사명감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2008년 총장직을 사임하고, 사석에서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관련 자료가 많은데 어떻게 넘겨줄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때 좌중에 있던 유홍준, 이태호 교수가 ‘대학원에 들어와 연구’를 하라는 조언을 하더군요. 그 말이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사명감을 부추겼다고나 할까요.” 그가 피부과 교수로서 초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뮌헨의과대학 졸업 종강강의 ‘예술작품에 나타난 피부병’을 듣고부터다. 당시 청년 의사 이성낙은 ‘예술을 의학적 시각에서도 접근할 수 있겠구나’ 하고 비로소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 미술관을 다니며 자료 수집을 하고 틈틈이 공부도 해왔다. 그 열매가 50여 년 만에 맺어진 셈이다. 피부병변을 통해 밝힌 한국 초상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선비문화의 정직성입니다. 죽기 전 영정에 해당하는 초상화들을 보면 중국,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정직성입니다. 자료를 본격 수집하기 전엔 우리나라 초상화에는 피부병이 나타나 있지 않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관찰해보니 우리나라 초상화의 83%에서 피부병이 확인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단지 17%만이 정상적인 피부란 이야기인데요. 예컨대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살짝 곰보였습니다. 이는 전기 등엔 안 나오는 사실이지요. 초상화들을 보면 곰보 자국, 여드름 자국, 다모증 등 실물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시의 초상화는 수염을 그리지 않았지요. 다시 말해 그리는 사람이나 초상화를 요청한 사람이나 담담하게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그리게 한 것이지요. 피사체가 장바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상위층 양반 그룹이라 지시를 통해 그리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담담하게 다 드러내 그리도록 한 것이지요. 조선 선비정신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희열을 느꼈습니다.” 일흔의 나이에 전혀 다른 분야, 늦깎이 공부에 도전하셨습니다. 취미로 하셨다 해도 녹록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이나 교수진이 부담스러워하진 않던가요? “퇴직하고, 2009년에 명지대에서 미술사 석·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지요. 공부도 힘들고, 주위의 눈길도 신경 쓰이긴 했지요. 또 뭘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한 번 읽었다면 지금은 두세 번 반복해 읽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요(하하). 입학 전부터 전직(前職) 명함의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고, 그런 뒷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했어요. 내 전직이 무엇인지 다 아는데,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답니다. 설렁설렁 한다고 할까봐 강의 15분 전에 출석하고, 강의가 끝나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등 성실한 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100퍼센트 출석은 물론이고요. 무엇보다 큰 기쁨은 강의를 통해 그간의 부분적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구슬이 한 줄로 꿰어지는 기쁨에 비유할 수 있어요. 늘 가르치던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으로 돌아가 젊은 30대들과 동료가 된 재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주대 의대 학장과 가천의과대 총장으로 지내던 시절, 예술·인문·문화학을 정규 강좌로 개설해놓고 의학도들에게 의무적으로 듣도록 하셨습니다. 인문학을 이처럼 앞장서 강조해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문학은 공감학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 성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요. 공연, 전시회, 책을 보며 우린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돌아보고 경계하게 됩니다. 영국에선 유명 연극배우에게 ‘Sir’라는 칭호를 줍니다. 정치가, 기업인보다 높이 평가하는 거지요. 배우는 황제, 살인자, 거지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을 펼쳐 보이며 다양한 인격을 구현해냅니다. 또 문학 서적을 읽으며 그 안에서 비겁한 사람도 보고, 정의로운 사람도 보고, 용감한 사람도 봅니다. 그들의 갈등을 제3자의 눈으로 보며 경계하고 배울 것이 무엇인지 의식을 갖게 하는 것, 그것 때문에 예술과 인문학이 중요하지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의료인에게도 특히 필요한 학문입니다.” 실제로 총장님 삶에서 인문학과 예술이 문제해결의 마스터키로 작용한 적이 있는지요? “(하하) 네, 제가 독일 유학을 갔을 때입니다. 1950년대 말이니 한국인 유학생이 흔치 않을 때였지요. 기숙사 룸메이트가 저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늦은 가을 기숙사로 들어가는데 룸메이트가 베토벤의 을 듣고 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베토벤!’ 하고 탄성을 질렀지요. 그날 그 말을 들은 친구와 밤새도록 베토벤 얘기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한 달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이였는데 말이죠. 문화 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한 덕분이지요.” 인문학은 세대, 국가, 민족을 넘어 소통과 공감의 가교로 자리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진정한 교육은 잘난 사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명문대 진학률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현행 입시체제는 잘못됐다, 사람의 아픔에 연민을 느끼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인문학적 교육 인식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흔히 십년지기(十年知己)라는 말도 있듯이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를 오래된 인연이라 표현합니다. 총장님을 안 지 저도 십 년 이상 됐는데요. 뵈면 ‘70년지기’ 유치원 친구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인연을 오래 유지하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살아보니 사람에게 복 중의 최고 복은 인복(人福)이더군요. 돌이켜보면 친구, 학교 은사 등 제 주위엔 늘 인간적으로 훌륭하신 분이 많았습니다. 천운이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행복해져요. 이들과의 귀한 인연을 돌이켜보니 공통점은 지속성입니다.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가꿔나가야 합니다. ‘이 사람이 유용하다, 아니다’라는 계산에서 탈피해 순수하게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우정 유지 방법입니다.” 그는 마르부르크대 의예과에 들어가 처음 만난 독일 친구와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하고 2014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부부가 함께 한국까지 일부러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는 신록의 연둣빛에 감탄해 “문득 네가 생각났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니 바로 “어디에서든 우리에겐 봄소식이 들려온다”고 답장이 왔단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큰 행운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 나눔에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신세대에게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신세대는 ‘꼰대의 잔소리’로 거부감부터 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총장님의 세대 간 소통의 지혜는 어떤 것인지요? “한마디로 역지사지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입장을 바꿔 미리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되도록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지나가는 말처럼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지요.” 이외에도 이 총장이 잘 쓰는 세대 간 소통 방법은 시사 현안을 갖고 그때그때 간단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는 손녀와도 현안에 관한 미니토론을 카톡으로 소소하게 나누곤 한다. 얼마 전 마네의 그림 를 패러디한 을 국회의원회관에 전시한 것이 문제됐을 때도 “예술에 있어서 역지사지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등을 생각해보면 좋겠구나” 하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간단히 코멘트를 해주며 손녀와 대화를 했다. 일방적인 주입보다는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도하는 식의 대화 방식이다. 자제, 제자분들에게 평소 강조하시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정직입니다. 제가 의미하는 정직은 자기관리를 솔선수범해 실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퇴직할 때 ‘대과(大過) 없이 마쳤다’란 말을 관용어처럼 쓰지 않습니까. 그러나 혼탁한 현실에서 막상 이를 실천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부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대과 없이 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소극적으로 들리지만 적극적 행동강령이에요. 운도 정직에서 비롯되고, 불운도 정직하지 못한 데서 온 것입니다. 예전에 선현들은 무첨(無添), 즉 선조에게 죄를 더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고리타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살수록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조, 가족,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사는 것, 그것 이상이 있을까요. 담담해야 당당할 수 있고 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이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제일 먼저 강조한 것도 돈에 대한 정직이었다. 그것의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현금을 수금할 때 당일 보고, 당일 입금’을 실행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혹시라도 먼저 입사했다고 친구들에게 밥 살 일 있으면 쩨쩨하게 굴지 말고 아버지 이름 대고 밥 사라’고 자신의 단골식당을 아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일일이 인사시켰다고. 마지막으로 현역 프리랜서로서 ‘인생의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조언을 들려주시겠습니까? “호기심과 활력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힘들다, 어렵다, 귀찮다 생각하면 도태되고 배제돼요.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사고반경, 사람반경도 좁아집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인들이 부르면 불원천리, 산 넘고 물 건너 달려가고요. 지하철에선 되도록 자리를 양보받지 않아요.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서 있으면 오히려 균형력 강화에 좋습니다. 휴대폰은 신제품 출시 소식이 나오면 즉시 바꾸는 얼리어답터입니다. 지금 편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해요.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힙니다. 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새로운 공부, 도구, 환경에 도전하세요.”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4-28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