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애(高光愛·80) 작가는 1958년 대학 시절 한국일보에 공채 1호 여기자로 입사하는 동시에 이화여대 18대 메이퀸으로 선발되며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로부터 1년 뒤,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영화평론가 임영의 아내로, 또 영화감독 임상수의 어머니로 불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은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가 50세가 되던 해, 우연히 읽게 된 폴 투르니에의 는 그녀의 인생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 , 등을 펴내고, 한때 적(籍)을 두었던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노년 전문 저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고광애 작가. 이제는 누구의 아내, 어머니라는 말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진 그녀다. 그런 고 작가에게 중·장년 세대를 위한 추천 도서를 묻자,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40년 전에 나온 폴 투르니에의 책이에요. 나는 그때 당시 종로서적에서 나온 라는 제목의 낡은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아마 지금은 찾기 어려울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나의 제2인생을 만들어준 책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다행스럽게도 2년 전, 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책이 나왔다. 그녀는 빛바랜 자신의 책과 기자의 새 책을 번갈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같지만 서로 다른(?) 책을 읽은 두 사람이 동시에 궁금해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회심(回心)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감명받은 게 바로 ‘회심’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동안 냈던 모든 책의 기본은 이 회심에 기초해서 썼다고 볼 수 있죠. 워낙 오래전에 번안된 거라 최근에 나온 것에는 어떻게 표현됐을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역시나 회심이네요.”
회심의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다
회심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작가는 50세가 되던 해를 떠올렸다.
“결혼을 일찍 한 편인데, 50세가 되니 큰아들은 장가가고, 작은아들은 군대 가고, 딸은 프랑스로 유학가고, 한순간에 아이들이 다 떠나가버리더라고요. 그때 같이 살던 친정어머니가 ‘얘, 저 사람(고 작가의 남편) 밥은 내가 해줄게. 너는 프랑스에 가서 딸내미 밥해주고 있어라’ 그러시는 거예요. 순간 드는 생각이 ‘내가? 나도 엄마처럼 자식 옆에 붙어서?’였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자식만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죠.”
포부는 넘쳤지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요즘처럼 중·장년을 위한 교육센터나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 막연한 우려 속에 지내던 중 폴 투르니에의 책이 그녀의 손에 들렸다.
“책을 딱 읽는 순간, 그냥 탁 하고 꽂혔어요. 여기에 모든 해답이 있더라고요.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회심이었어요. 노년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마음을 한번 돌려보는 태세 전환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살지 말고, 새로운 시선과 태도로 삶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때 내 상황에서는 회심이 절실했어요.”
책에서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며, 타고난 성향에 따른 결정론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훌륭한 조언과 단호한 결심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며 내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한 사건, 즉 결정적인 전환점이 바로 회심이라 설명한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더군다나 회심의 기회를 얻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의 조언을 들어봤다.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해야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회심이라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게 우선이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런 시기가 찾아왔을 때 더 빠르게 마음을 전환할 수 있어요. 나 역시 회심을 몰랐다면 고독했던 그 시간을 인생 1막의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삶의 전환기를 겪으며 그녀가 시도한 것은 ‘명령권자의 위치에서 내려오기’였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지시하고 충고하던 타성을 모두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노인으로서의 정서적 권위는 지키고자 했다.
“나이 들어 삶의 태도를 바꾸려면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강매하거나 존경심을 갈구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해요. 평범한 주부인 나조차도 아이들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입에 붙었더라고요. 그런 나를 자식들도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 저들이 아쉬워 먼저 찾아오는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야말로 우리네가 아껴두었던 그 무엇, 바로 정서적인 권위를 지닌 채 귀한 조언 몇 마디 건네는 거죠. 그렇게 했을 때 존경심은 자연히 스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죽음도 예습하면 두렵지 않아
회심의 순간을 맞이한 후, 그녀는 노년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며 틈틈이 글을 써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아들인 임상수 영화감독이 어머니가 쓴 글들을 발견하고는 책으로 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런저런 글을 메모지에 써놨는데 아들이 그걸 보더니 ‘어? 이거 재미있네? 책으로 냅시다!’ 그러는 거예요. 그때 처음 워드를 배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꼬박 12년 만에 가 나왔어요. 그동안 두 아이 결혼 치르고, 산바라지하고, 손주도 키우고 하느라 온전히 글에만 매진할 수 없었죠. 그래도 책이 잘 팔려 12쇄까지 나왔는데, 이제는 너무 오래돼서 더는 인쇄하지 않기로 했어요.”
첫 책이 나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당시 62세였던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죽는 나이를 77세라 언급했을 정도로 지금의 백세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책을 쓰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 죽음이 남더군요.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모임이나 ‘메멘토모리’라는 죽음독서회도 다니며 깊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노년 생활을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는 간단한데, 죽음은 거창하더라고요. 누구나 겪어본 적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영원한 암호와도 같은 죽음을 예습해본다는 심정으로 여전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과목도 예습을 해가면 더 수월하듯이, 죽음이란 무엇이고 어떤 마음으로 처신해야 하는지를 미리 준비하고 있기에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는 그녀다.
인생 삼모작, 또 다른 청춘을 꿈꾸다
여든의 나이에도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관리한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달력에는 하루하루 일정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한 일들로 채워온 덕에 풍요로운 인생 이모작을 지낸 그녀는 요즘 인생 삼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인생 이모작 끄트머리쯤 와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글을 쓰는 게 예전보다 버거울 때가 있어요. 이제 칼럼을 쓰는 일이나 모임에 나가는 활동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지 싶어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지혜로운 노인이 아니겠어요? 괜히 부여잡고 젊은이들 곤란하게 하면 안 되죠.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혼자 영화를 보든 무엇을 하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요.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관심 밖 인물이 된 건데, 거기서 오는 자유도 대단해요. 차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완전한 해방, 자유를 누릴 때 인생 삼모작이 시작됐다고 봐야죠. ‘노년기란 젊음의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 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는 들뢰즈의 말처럼, 나 역시 새로운 청춘을 창조하는 중입니다.”
시니어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나이 들어서도 얼리어답터임을 내세우며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고 이 대열에 끼지 못하는 다수의 노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무엇이든 잘하는 것은 젊으나 늙으나 좋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스마트폰에 중독되다시피 푹 빠져 있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다.
맛 집에 초대되면 진짜 이집이 맛 집이 맞는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실례를 범하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랑스러워하면 스마트폰 중독자다. 이건 초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모욕을 주는 것임에도 본인은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누구도 이런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능수능란한 스마트폰 사용에 부러움을 보내는 모습이 못 마땅하다. 한번만 물어보면 제대로 찾아갈 길도 사람에게 묻기보다 스마트폰에 물어본다. 도심에서도 길을 묻는 사람 보기가 점점 드문 것은 잘 정비된 건물주소 덕이 아니라 스마트폰 덕이다. 반면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사람과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어 사람 사는 냄새가 없어진다.
스마트폰이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있어야하고 길을 걸을 때도 주머니 속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회의 중이거나 대화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열어서 카톡이나 문자왔는지를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앞에서 강사가 열심히 강의 하는데 죄책감 없이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스마트폰 중독자가 점점 늘어난다. 특별히 할 일 없는 노년이 될수록 이런 스마트폰에 대한 몰입도가 강해지고 심지어 취미로까지 발전시켜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경계한다.
스마트폰 중독은 정신적 육체적 황폐를 불러오고 나이 들수록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첫 번째가 정신적 황폐다. 가족들의 즐거운 외식자리에서도 식구들끼리 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남들과 문자 대화를 한다. 몸은 가족과 같이 있지만 마음은 딴대가 있다. 생일 같은 기념일에 축하 말을 보낸다고 인터넷이나 카톡방에 좋은 말들을 복사하여 죄의식 없이 날린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글로 표현해서 보내주면 좋으련만 남의 글을 내가 쓴 것처럼 도용하고도 시치미를 뚝 뗀다. 스마트폰의 전자파 위험도 있지만 인간과의 진솔한 감정 소통 부족으로 치매의 싹을 키운다.
두 번째는 육체적 황폐다. 머리나 손톱은 잘라도 다시 자라지만 인체의 오감을 느끼는 세포들은 한번 망가지면 재생이 어렵다. 스마트폰의 작은 글씨를 보려고 눈을 혹사한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할 시력이 점점 떨어진다. DMB를 통해 연속극을 보면서 귀에 꽃은 이어폰이 얼마나 청력세포를 망가지게 하는지 통 관심이 없다. 머지않아 보청기가 노인의 필수품이 될 것이다.
세번째는 사고력의 저하다. 스마트폰의 즉문즉답에 익숙하다보니 사고력이 줄어든다. 대학을 나왔어도 계산기 없으면 여럿이 먹은 밥값을 합산과 분배를 못해 쩔쩔맨다. 곱셈나눗셈은 구구단이 가물거려 붓셈으로 언제 풀어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남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면전에서 스마트폰의 인터넷기능으로 즉각 검색하여 상대를 머쓱하게 한다. 모든 정보는 내 손안에 있다고 인터넷 정보를 맹신하지만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거짓정보와 참 정보의 변별능력이 부족하여 헛똑똑이가 될 가능성도 많다.
네 번째는 마음의 안정을 못 찾는 불안증세가 걱정된다. ‘카톡’하는 소리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참지 못한다. 수시로 스마트폰을 열어보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혼자 스마트폰의 인터넷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혼자 고립화된다. 스마트폰과 친하다보니 사람과 사귀면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점점 부담스러워져 외톨이가 양산된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을 때 하지 않던 스마트폰에 덜 익숙한 것이 당연하다 노년에 새로운 정보에 좀 어둡고 뒤 처져도 큰일 날 일이 별로 없다. 스마트폰을 들고 혼자서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출발전에 PC로 갈 곳을 대충 검색하고 목표지점에서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는 옛날 방식을 쓰면 된다. 남들이 맛 집이라 하면 그렇다고 믿어주고 남의 말에 검색까지 하면서 일비일희를 하지말자. 나이 들수록 느리게 살고 더듬거리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교통사고 무서워 자동차를 타지 않는다면 바보다, 조심해서 운전하고 적당히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로 적절하게 사용만 한다면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좋지 않다. 특히 나이 들어 지나친 사용을 경계해야 한다.
어느 날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삶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책상 앞에 앉았다. 펜을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볼까? 하지만 손에 들려진 펜은 곡선을 그리다 갈 길 몰라 방황한다. ‘그것참, 글 쓰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에 도전했다. 생활의 활력이 생기더니 내가 변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성장하는 감동 스토리도 하루하루 글로 쌓여갔다. 이웃들의 정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부천 글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원미동으로 향했다. 마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방송사 드라마 세트장 방문만큼이나 기대됐다. 양귀자의 소설 의 배경이 된 이곳에서 글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부천시 원미 2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반. ‘글쓰기 모임’ 강좌가 열린다. 강좌가 이어져온 지도 어언 6년. 수필집도 5권이나 출간했다. 등단한 회원, 부천 지역신문 시민기자가 된 회원, 이 강좌에서 공부한 것이 바탕이 돼 뒤늦게 대학 공부를 하는 회원도 생겨났다.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길을 찾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보다 빛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부천시 글쓰기 모임은 부천시 평생학습센터 특화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는 강좌 중 하나다. 원미동 글쓰기 모임 외 시(市)의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강좌는 몸을 움직이고, 발산하는 활동 프로그램. 글쓰기 모임을 6년간 이끌고 있는 박창수(52) 작가는 이 모임이 꽤나 희귀하다고 설명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6년 동안 모임이 이어져오는 것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19명의 회원이 글쓰기 모임의 문을 활짝 열었다.
노년의 글쓰기는 힐링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등단보다는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문학에 도전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는 데 의미를 둔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의 기본 바탕은 ‘힐링’이라며 방점을 찍는다.
“글쓰기는 힐링 단계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글로 쓰는 연습을 하면서 풀어나가요. 그다음이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죠. 우리 수강생들 중에는 사실 상처받으신 분들도 많아요. 다 큰 자녀가 죽었다든가,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치유하고 가슴을 여는 것이죠.”
글쓰기를 하고 50세가 넘어서야 대학 공부에 도전한 회원도 여섯 명이나 된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 회원 개개인의 수필집 발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등단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박창수 작가는 “열심히 글을 쓰고 또 부쩍 글쓰기 능력이 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며 “제대로 된 방법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mini interview
류인록(부천글쓰기모임회장·71)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선물받다
이제 글 쓴 지 5년 됐습니다. 살면서 타자기 한번 못 만져봤습니다. 62세가 돼서야 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습니다. 독수리 타법 면한 지는 오래됐어요. 그리고 포토샵(사진편집 프로그램)과 파워포인트도 배웠어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오면 포토샵 스위시로 사진들을 꾸밉니다. 사별하고 저 혼자 산 지 꽤 됐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까 세상 지루한 줄 몰라요. 지금은 우리 원미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해요. 글쓰기 교실도 다니고, 주병률 시인에게 시를 배우러 다닙니다. 취미생활이 또 하나 있어요. 여행을 다니는 겁니다. 작년에 홍도에 다녀왔고, 제주도, 안동 이육사 문학관, 영월에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글감이 나오더라고요. 기행문 쓰는 게 좋아요. 제 입장에서 쓰기가 좀 쉽더라고요. 그것도 갔다 와서 일주일 안에 써야지 지나가면 금세 잊어버려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원래 운동신경이 안 좋아서 다른 건 별 흥미가 없었어요. 글쓰기를 선택했고 버틸 만했어요. 첫 글을 쓰고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6년 전 먼저 간 마누라에 대한 글이었거든요. 그 글이 실린 책은 우리 마누라 납골당에 넣어두었어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몇 편이라도 더 써서 수필집도 내고 싶고, 시집도 내고 싶어요. 시도 쓰는데 현재 68편을 썼어요. 시집도 하나 내고 싶습니다.
이양순(요양보호사·61) 올 가을에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옵니다
글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기록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2005년도에 요양보호사가 된 뒤 만나게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보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이셨는데,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억은 고스란히 안고 계셨어요. 제가 그 일에 대해 당시 글을 써놓았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집회를 TV로 접하다 제가 쓴 글이 생각나서 라디오 방송에 냈어요. 그런데 그게 방송으로 나오더라고요. 2013년도였어요. 방송에 채택된 뒤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거 행복합니다. 제 재능에도 놀라고 기억력은 한계가 있는데 글로 기록해놓으면 안 잃어버리니까 좋고요. 요즘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글감이 좀 많거든요. 아직 미흡해서 걱정입니다. 가을쯤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온다고 하는데 고민됩니다. 물론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광이지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대도 됩니다.
시니어의 두뇌 스포츠라고 하면 대략 화투, 장기, 바둑이 있는데 이중 으뜸이 바둑이라 생각한다. 화투는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작용하고 장기는 차나 포와 같이 멀리가고 힘이 센 놈이 있는가 하면 졸과 같이 한 칸씩만 움직이는 그야말로 졸이 있어서 민주적이지 못하다. 깜박 실수로 차나 포가 떨어지면 급격하게 전세가 기울고 만회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해 바둑은 가로세로 19줄 361점 어디에도 착수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지금 전세가 불리해도 역전시킬 기회가 많다. 바둑의 수 또한 무궁무진하여 지금까지 인류가 두어진 수천만판의 바둑판 중 처음부터 끝까지 똑 같은 판은 한 판도 없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두뇌스포츠다.
필자의 바둑 역사는 고등학교 때 형님으로부터 배웠으니 이제는 40년이 훌쩍 넘었다. 기력으로 아마 6단이다. 통계수치가 저장되는 인터넷 바둑에서만 총 만 번 이상 대국을 했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바둑 재능은 없는가 보다. 바둑 대국을 만 번으로 잡아도 한번 대국에 1시간이라고 치면 밤낮 417(10,000/24)일을 바둑으로 보낸 날들이다.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바둑을 신선놀음이라 하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성과물을 내는 노동을 해야지 바둑처럼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것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계의 말이다. 하지만 바둑 두는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고 두뇌에게 휴식과 단련의 양면을 준 시간들이라 생각하고 프로 바둑기사가 치매로 고통 받았다는 말도 못 들었지만 일반 바둑 애호가도 두뇌관련 질환환자도 못 봤다.
바둑의 장점은 정신통일이다. 살다보면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생긴다. 그냥 잊으려고 하면 생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때 바둑을 두면 바둑의 무아지경에 몰입하고 세상 걱정거리는 잠시 잊어버린다. 세상과 단절된 다른 세계인 바둑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할 때 생각이 멈춰 더 이상 진전이 안 될 때 머리를 싸매고 낑낑대봐야 효과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아주 다른 세계인 바둑을 한판 두면 엉켜있던 생각들을 지우개로 지우고 말끔히 생각을 리셋 하는 효과가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머리도 쓰지 않으면 녹이 쓴다. 바둑이야말로 노년의 두뇌스포츠로 최고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나와 비슷한 실력의 상대를 만날 수 있다. 늦은 밤도 좋고 일요일도 좋다. 서울서 부산 사람하고도 대국을 하고 멀리 중국 사람하고도 바둑을 둔다. 인터넷으로만 접속하니 복장도 신경 쓸 필요 없고 별도의 비용도 없다. 이런 장점 때문에 동네 기원들이 영업부진으로 대부분을 문을 닫은 것은 안타깝지만 세상의 변화를 받아드려야 한다.
조치훈 프로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고 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와 나라의 명예가 있다. 나아가 상금이 걸려있으니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바둑을 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생업과 거리가 먼 일반 시니어는 바둑 두는 것을 즐기면 된다. ‘바둑 돌 죽지 사람이 죽나’하고 대마가 죽어도 허허 웃을 여유만 있으면 된다.
바둑은 인생과 달리 복기(復棋)가 가능하다. 바둑판이 끝나면 처음 바둑돌 착수부터 행적을 되돌아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은 수많은 조건들이 겹쳐서 한 과정을 만들기 때문에 나 혼자 잘해서 될 수 없고 악연도 자신도 모르게 맺어진다. 하지만 바둑은 나 혼자 잘하면 된다. 패자는 변명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니 정리가 깔끔해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바둑에도 체력이 중요하다. 프로기사도 나이가 들면 승률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랭킹1위 박정환9단은 93년생 24세이고 세계랭킹1위 중국의 커제9단은 약관 19세이다. 과거의 일인자가 지금은 랭킹이 한참 뒤에 랭크되어 있어 안타깝지만 늙고 쇄약은 자연의 이치로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타계하셨지만 우리나라 초대국수 조남철 선생의 말에 의하면 나이가 들다보니 30수 이상 수를 세다가 중간에 깜박 놓치거나 잊어버린다고 한다. 승률이 떨어지면 체력을 되돌아보게 되니 건강진단의 또 다른 바로미터로 바둑이 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빠릅니다. 참 빠릅니다. 어느덧 또 새해입니다. 지난 설이 어제 같은데 또 새 설입니다. 날이 빨리 지나기를 손가락 세며 기다려도 더디기만 했던 어렸을 적 새해맞이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세월 흐름의 빠름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그 느낌 주체인 내가 지극히 정태적이지 않으면 지닐 수 없는 일입니다. 세월은 흐르는데도 나는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 따라 내 삶이 흘렀다면 흐름의 빠름을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흐름을 좇지 못하는 더딤이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기다림은 어쩌면 그때 그 어린아이의 삶이 세월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내달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더디어 견딜 수 없어 어서 세월이 내 삶을 좇아오라고 손가락을 꼬박꼬박 꼽았을 것입니다.
글쎄요. 늙어감을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그랬더군요. 몸이 회복 불가능하게 퇴행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 노화(老化, aging)라고요.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떨지요. 세월을 좇을 수 없이 삶이 더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노화라고요. 새해가 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나이 들며, 해를 넘기며, 어쩌면 세월은 흐르는데 삶은 쌓여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흐르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소용돌이에 빠져 허덕이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늪에서의 침잠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새해를 맞으면서 일상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온갖 회한이 새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문득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지난 세월을 마디마디 되새겨보게 되는 것은, 그러다가 참 세월이 빠르다고 읊조리는 것은, 세월을 좇아 흐르지 못하는 내 삶의 무게 탓인 듯한데, 삶이 이렇다는 것을 서서히 곱씹으면서 마침내 나는 늙음의 마디에 깊이 스며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렇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더뎌집니다. 초조하기는 한데 서둘지는 못합니다. 되 지을 수 있다면, 한꺼번에 세월을 뒤집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내 몸이 먼저 내게 전해줍니다. 지난 삶은 그것대로 귀하지 않은 까닭이 없으니 그것을 내 자존(自尊)의 바탕으로 삼아 의연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걸음은 전진도 아니고 후진도 아닌 다만 게걸음의 궤적을 남기고 있음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압니다. 마지막 발견한 감동스러운 황혼의 아름다움조차 기려 오래 그 찬란함에 머물고 싶지만 세월을 좇을 수 없어 내 삶은 그저 그 아름다운 황혼의 끝자락도 잡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곧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은 빠른데 삶은 왜 이리 더딘지요.
가끔 시간을 계측(計測)한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시간 안에 있으면서도 시간에 예속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던 인간이 마련한 시계에서 역(曆, calendar)에 이르는 ‘온갖 시간을 재단하여 이를 관리하고자 했던 묘책’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세월의 빠름과 삶의 더딤이 빚는 황당한 당혹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러한 삶이 없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만 전통적인 아프리카 문명에서는 캘린더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 나이를 헤아린다는 사실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시간과 삶은 더불어 진행합니다. 그 둘이 따로 놀 까닭이 없습니다. 물론 세월을 헤아리는 어떤 ‘단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시간 계측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달이나 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내가 장가를 든 다음에…”라든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라든지. 연대기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마디’들을 그렇게 일컬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과 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더딘 삶도 없고 빠른 세월도 따로 없습니다. 흐르는 세월과 쌓이는 삶이 삐거덕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단절하여 끝이라 하고 또 시작이라 하면서 삶을 기막히게 경영하여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 것은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해는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하면서 새해를 기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삶을 다시 짙게 채색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뜩이나 퇴색이 짙은 노년에게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축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축복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길 만큼 빠른 세월과 더딘 삶에 시달린다면, 참 많은 경우 그러한데, 우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을 좇아 시원하게 함께 흐르면서 더디고 빠른 계측을 아예 넘어서면서 내 삶이 펼쳐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문명이 남겨준 흔적처럼 그런 시간 계측의 단위를 마음에 두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연대기에 의해 침윤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이런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올해 만난 사람들, 오늘 만난 사람들을 전에 전혀 만난 일이 없는 새 사람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요? 모든 일들도 그렇게 부닥치면 어떨지요? 그리고 이 처음 해와 처음 날을 더 다시없는 마지막 해로, 끝 날로 삼을 수는 없을까요? 내일이, 또 다른 새해가 없듯이요.
그럴 수 없는 저리게 아쉬운, 지난 또는 기다리는 세월과 삶이 있으시다면, 그것 여전히 붙들고 조금은 더디지만 게걸음으로라도 세월 따라가며 살겠다고 하시면,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귀하고 귀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처음 만남의 황홀한 신비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다면, 그래서 내일 다시 만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오늘 한껏 행복했다면, 오늘 새날에 옛날 만났던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만나는 일을 한번 감행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렇게 황홀하게 하루를, 한 해를 마음껏 지내시면 혹시 세월이 삶 속에 스미어 스스로 빠름을 누그러트리면서 내 삶을 받쳐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세월이 빠르든 삶이 더디든 노년은 길지 않습니다. 맞는 새해가, 새날이, 모두입니다. 실은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것이 노년의 하루입니다. 감히 고백하건대 저는 올해, 한 해 동안 주어진 날들을 ‘그날만’으로 삼아 황홀하게 살고 싶습니다. 쌓이는 앞뒤 아무것도 없이요.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
1937년생인 정진홍(鄭鎭弘)은 종교학을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가 은퇴했다.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울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 , , , ,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글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2017년 정유년(丁酉年)의 새해가 밝았다. 힘찬 닭 울음소리로 새해를 희망차게 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닭띠 연예인들이다. 닭띠생은 지능과 지모에 뛰어나고 앞을 내다보는 예견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날카롭고 단정하며 체계적이고 결단력도 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 때문에 연예인 스타 중에는 닭띠가 유독 많다.
정유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겠다는 닭띠 연예인은 누구일까. 대중과 만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2005년생 12세 아역 스타 김유빈에서부터 1933년생 84세 원로가수 명국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예인이 닭띠다.
가장 어린 2005년생 12세 닭띠 연예인에는 아역 스타 김유빈, 김지영, 홍화리와 리틀 싸이 황민우 등이 있다. 1993년생 24세 닭띠 연예인은 드라마 , 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보검, 가수와 연기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이유·정은지, 국민 남동생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펼치고 있는 유승호가 있다. 이 밖에 1993년생 닭띠 연예인에는 힙합 스타 비와이, 최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디오,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로이킴과 백아연 등이 있다.
1981년생 36세 닭띠 연예인 중에는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톱스타들이 아주 많다. 요즘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드라마 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나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톱스타 전지현, 등 수많은 영화에서 강력한 흥행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최고 미남 스타 강동원,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여성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조인성이 대표적인 36세 닭띠 연예인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드라마 OST 여왕으로 등극한 거미와 린,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목소리 하나로 대중을 감동시킨 9연승에 빛나는 록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 매력적인 목소리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박효신과 케이윌, 여자 힙합 뮤지션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윤미래, god 출신으로 시원한 가창력이 강점인 김태우 등이 36세 닭띠 가수들이다. 원조 걸그룹 SES의 요정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유진, 드라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유진,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는 송지효, 강렬한 연기로 존재감이 확실한 김래원, 부드러운 감성을 드러내는 이상윤, 훈남 이미지의 이동욱은 36세 닭띠 연기자이고 개그맨 허경환도 1981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1969년 48세 중년의 나이에도 대중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닭띠 연예인도 적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코믹 연기는 물론 중후한 연기까지 해내며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소화하고 있는 김승우, 작곡가·가수·예능 프로그램 MC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윤종신과 주영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선도하는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 모델 출신 연예인 이소라, 높은 인기를 누리며 연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하희라, 신애라, 윤유선이 48세 닭띠 연예인이다.
신세대 스타를 능가하며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1957년생 60세 닭띠 연예인도 많다. 최근에도 신곡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노사연과 최진희, 이용, 김수철, 팔색조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송승환, 김갑수, 강석우, 김보연 등이 대표적인 60세 닭띠 연예인이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무대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1954년생 72세 닭띠 연예인은 조영남, 임현식, 선우용녀, 현철, 이상해, 박인환, 박인희, 박일남, 장용, 최주봉, 김도향, 서유석 등이고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무대에 서는 원로가수 명국환,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 등은 1933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2017년 정유년, 자신의 해를 맞은 닭띠 연예인들의 새해 포부는 무엇일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와 방송에 계속 출연하겠다.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가수로서 열정과 노래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팬이 존재하는 한 노래를 부르겠다. 2017년에는 닭띠 해인 만큼 더 많이 활동하겠다.” 원로가수 명국환의 새해 포부다.
조연 연기자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수많은 드라마에서 감초 연기로 빛을 발하고 있는 중견 스타 임현식은 “1969년 MBC 공채 1기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연기를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지난 48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와 관객들을 만난 것처럼 올해도 드라마 등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싶다. 특히 올해는 노년의 사랑을 멋지게 소화하는 멜로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며 새해 바람을 피력했다.
여전히 청춘스타의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60세의 강석우는 “나이 들어가면서 더 절감하게 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는 라디오 DJ와 드라마 활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이 갖고 싶다. 연예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세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48세의 신애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히즈 유니버시티에서 밟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충실하게 공부하고 싶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미국에서 부모를 잃는 한인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한인들이 입양해서 맡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미국의 많은 한인들이 부모가 없는 한인 청소년들을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해 목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왕성하게 펼쳤던 사랑 나눔을 미국에서도 여전히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2월 출산해 아이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36세의 전지현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새해 목표다”라고 말했고 여성 팬뿐만 아니라 남성 팬도 많은 조인성은 “올해는 이전과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나 작품을 선택해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중년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남동생 박보검은 “새해에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국내외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닭띠의 해인 2017년 정유년의 가장 큰 목표다”라며 원칙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해를 맞은 수많은 닭띠 연예인들이 2017년 정유년에 어떤 활동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았다. 격동의 시기 경쟁사회에서 주어진 틀에 맞춰 살다 보니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다. 정답과 정해진 틀이 있다 생각하며 살았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고 세속적 성공에 집착해 살다 보니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기로 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살핀다. 너무 편하고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 바로 실행하기
남을 우선으로 배려하다 보니 자신의 일은 미룰 때가 많았다. 이제는 자신한테 쓰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 일이나 취미활동도 열심히 하겠다. 얼마 전에 산림치유지도사, 바리스타, 고미술 감상 등의 과정을 이수했다. 해외여행도 1년에 한두 번을 간다.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에게 선물도 주고 투자도 하겠다. 나 자신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다. 자꾸 “다음에” 하면서 순서를 늦추다 보면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바로 실행하자.
◇내면이 이끄는 대로 살기
바쁘게 살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느리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면 된다. 이제 세속적 지위에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높이 올라가도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깊다. 기회가 주어지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 내면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자.
◇실수 두려워하지 않기
실수가 두려워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다. 누구든 실수를 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이제는 실수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부담을 덜어내면 의외로 뜻밖의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시도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실수를 해도 그것을 빨리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면 된다. 절창 앞에서 노래도 불러보고 고수 앞에서 재주도 부려보자. 배짱 좀 부려보면 어떤가.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수도 처음부터 고수는 아니었다.
◇나만의 양탄자 짜기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일이다. 인간관계에서 원칙을 지키느라 쓰라린 고통도 당하고 손해도 많이 봤다. 남에게 피해를 주느니 차라리 필자가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니 이제는 충분히 사랑받고 배려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책은 그만두자. 자기 긍정이 중요한 나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잘나가는 상대를 모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의 양탄자를 짤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을 비우니 너무 편하다.
사계절마다 특색이 있듯 인생의 각 시기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중년과 노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겉은 비록 낡아가도 보이지 않는 속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다.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지속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관조와 여유는 젊은이들이 흉내 낼 수 없다. 쉬지 않고 공부를 하며 내면을 가다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정진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자신감과 여유가 아름답다. 멋있게 나이가 들고 주어진 시간 최대로 즐기면서 이 세상 여행을 마치고 싶다.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희미한 여명(黎明)이 창문을 통해 침실로 스며들면서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늘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로 나가 50여 년 세월을 살다 보니 그 소리를 잊고 산 지 꽤나 오래되었다.
필자는 도회지의 어둠을 회색빛 어둠이라고 표현한다. 가로등 불빛, 집 안 곳곳의 스위치에서 꺼지지 않는 빛, 그리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박명(薄明).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완벽한 어둠’을 빼앗겼다. 가끔은 완벽한 어둠이 그리워진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도 느껴보고 싶다.
필자는 2014년 말에 정년퇴직했다. 헤아려보니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었다. 직장생활 43년 만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 세월 속에서 필자 인생 절반 이상은 훌쩍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깨알 같은 시간이었다. 텅 빈 세상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던 시간, 정녕 내 자신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정년퇴직 직전에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퇴직 후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자신을 되찾고 싶어 세 가지를 준비했다. 그 첫째는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만화책을 좋아했던 필자는 책 읽는 취미가 붙어 학급문고에 비치되어 있던 동화책들을 몽땅 읽어치웠다. 독서를 많이 해서였는지 작문(作文)에도 소질을 보여 교내외 백일장을 나가면 꼭 상을 타곤 했다. 퇴직 후 시간이 생기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그 간절함으로 2009년 11월에 수필가로 등단을 하고 2013년에는 두 권의 수필집까지 출간하게 됐다.
두 번째는 ‘서예’ 공부였다. 고향집 사랑방은 필자의 큰아버님께서 운영하시던 서당이었다. 어린 시절, 천자문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집에서 살았던 필자는 그 영향을 받아 서예에도 관심이 많았다. 퇴직하기 5년 전부터 강포 김상용 선생님을 만나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가던 2013년 11월 어느 날, 필자는 인사동에서 그동안 틈틈이 갈고 닦으며 쓴 서예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턱없이 부족한 필력(筆力)이었지만 까마득히 높은 선배 문우들과 함께하는 전시회가 좀 더 정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겁도 없이 명함을 내밀었다.
세 번째는 양지바른 고향 언덕 위에 소박한 집 한 채를 짓고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이번만큼은 필자 의지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고 정년퇴직을 하던 해에 고향 친구를 통해 우선 집을 지을 만한 조그마한 땅을 한 필지 사두었다.
퇴직 후 1년의 세월을 보내고 난 후, 필자는 세 번째 목표를 위해 큰 결정을 했다.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와버린 것이다. 우선 친구 집에 방을 하나 얻어 숙식을 하면서 공항 물류 단지 내에 있는 반도체 제조공장에 취직을 했다. 또 정신없이 살다 보니 고향에 내려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나마 연착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으로 내려오자 도시의 회색빛 어둠은 사라지고 완벽한 어둠이 침실을 점령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자연의 밤인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밤벌레 소리, 가끔씩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교교한 달빛이 필자를 설레게 한다. 잃어버렸던 감수성을 되찾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또 긴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매일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이 육십을 넘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으니 다소 늦은 감이야 없지 않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이제 세 번째 목표를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매일 향긋한 묵향(墨香)에 취해 나른한 오후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1971년 크리스마스이브.
제대 후 복학하고 처음 맞는 성탄절이다. 통행금지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의기투합해 생일을 따져 의형제를 맺은 동갑내기 형과 아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각자 장래를 약속한 여인들까지 여섯이서 만났다. 어쩌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성탄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른 시간에 만나 함께 온종일 몰려다녔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라 부처님이 외로우시겠다며 안국동에 있는 조계사로 가서 조용한 경내를 돌며 새해 소망의 기도를 올렸다. 비원에서는 앙상한 가지를 보며 별별 희한한 대화를 나눴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호텔로 들어가서는 구멍가게에서 사온 술과 안주를 놓고 각자 앞으로 계획한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새웠다. 되돌아보니 그때 계획한 삶대로 거의 비슷하게 살아온 듯싶다.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잠시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데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호텔 직원들은 “근처에 화재가 발생해 거리가 혼잡하오니 투숙객께서는 서둘러 체크아웃하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며 다녔다.
알고 보니 22층의 그 유명한 대연각 호텔이 불타고 있었다. 우선 각자의 집에 전화부터 넣었다. 왜 이제야 전화하냐고 역정을 내시면서도 안심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죄송했다. 나중에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세계 최대 호텔 화재였단다. 기가 막힌 건 160여 명이 사망했는데 여력이 없어 피해 보상금은 놀랍게도 ‘0’.
일찌감치 소풍 끝내고 우리 함께 살 좋은 터 미리 잡으러 간다며 미소 띠고 이승 떠난 형과 자녀들이 있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형수, 대기업에서 전무로 정년을 마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막내와 제수씨 그리고 뒤늦게 공부에 미쳐 강사생활은 하늘에서 소명으로 주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돌아다니는 나.
나이 듦이 고마운 이유는 삶은 절대 별게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다.
50대 후반까지도 인생을 헛되이 살아왔음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송나라 때 학자인 주신중(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생계(生計).
둘째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기 위한 신계(身計).
셋째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기 위한 가계(家計).
넷째 멋지고 보람 있게 늙기 위한 노계(老計).
다섯째 아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한 사계(死計).
이 중 60대에 들어선 후에야 그나마 겨우 챙기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인 신계인데, 이미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기회가 있는 분들을 위한 참고사항으로 자세하게 글로 남기고 싶다. 50대 중반부터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나타났으며, 60대에 들어서면서 시력도 점차 나빠지고, 청력도 한쪽 귀가 난청으로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난처한 경우가 가끔 생기곤 하며, 치아도 못쓰게 된 이가 많아 임플란트 시술로 시간과 돈을 꽤 들여야만 하는 실정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해서 과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40대 이후 회사의 간부로 근무하면서 술 접대를 하거나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늦게까지 폭음과 폭식을 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술을 좋아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지나친 과음은 삼가고 있다. 40~50대 때 1년에 한두 번은 술자리 후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의식을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최근 10여 년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안경을 두 개씩이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 원인은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 약 4년 동안 매주 주말마다 울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주로 오후 시간대 고속버스를 이용하면서 버스 안의 흐린 불빛에 의존해 오랜 시간 책을 본 것이 주원인으로 짐작된다. 요즘에는 흔들리는 차 속에서는 가능한 한 장시간 독서는 안 하고 있다. 약 한 달 보름 전에 노안과 난시 교정까지 치료된다는 다초점 렌즈를 삽입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밝은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있다.
귀가 나빠진 원인으로는 30대 초반 기업체에 종사할 때, 일본어 회화를 공부한다고 출퇴근 시 등 시간만 나면 리시버를 귓속에 꽂고 일본어 회화 테이프를 자주 들었던 때문인 듯하다. 귀에서 이명 현상이 생겨 울산의 종합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확실한 원인이 파악이 안 되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진단 하에 거의 방치된 상태로 지냈다. 5년 전에 약 400만원 정도 들여 보청기를 구매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사용하고 있지만 번거롭고 효과도 별로 좋지 않아 여전히 애로사항이 많다.
치아가 나빠진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 겨우 한 번 이를 닦고 이런 나쁜 습관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먹은 후에는 무조건 이를 닦아야 한다고 알고 실천했으나, 이미 많은 치아가 심한 손상을 입은 후라서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후 약방문이 돼버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바보 같은 습관으로,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없고 주변으로부터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은 필자가 약 10년 전부터 꾸준히 시행해오고 있는 새벽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선후배와 동년배인 장·노년 분들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1. 이목구비와 두피 마사지
2. 복부, 발, 발바닥 마사지
3. 괄약근 및 회 음부 근육 운동
4. 전신 관절, 척추 근육 이완 운동
이런 운동을 새벽 6시부터 약 40~60분 동안 매일 꾸준히 해오고 있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챙기는 법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는 PPT로 만들어져 있어 원하는 분께는 개인적으로 나눠드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