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醬)은 무엇보다 재료와 숙성이 중요해요. 알고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어요.” 된장과 간장이 늘어선 진열대 앞. 백발 노신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전통 장류를 소개하는 이곳은 당연히 수십 년간 부엌을 휘어잡았던 여성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다. 게다가 그가 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종심(從心), 그러니까 70세가 넘어서의 일이다. 이런 그를 주변에선 장금이라 부른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이관(李寬·77) 씨의 이야기다.
국내에 장카페, 그러니까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전문적인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관 씨가 근무하는 이곳은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위치한 장카페, ‘종로&장금이’.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장금이’라 부른다. 여기서 그는 국내 전통 장류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 담그는 방법까지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종로&장금이’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곳으로, 애초에는 봉사활동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 발전돼 번듯한 매장까지 생겼다. 지난해 6월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측이 서울시의 노인일자리 공모에 당선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일흔 넘어 갖게 된 우리 장의 매력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한 건 2007년 부터예요. 그리고 ‘종로&장금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봉사단으로 시작한 2013년이었죠. 사실 이전에는 된장, 고추장을 먹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담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어요. 완전히 문외한이었어요. 그전부터 지역에 보탬이 되고 싶어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해왔어요.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다, 낙산공원 일대를 책임지는 낙산 지킴이가 되어 미화작업이나 계몽활동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우리의 장을 알리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 활동에 뛰어든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장금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렇다고 이 씨가 음식을 만드는 일과 완전히 무관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한때는 식재료를 유통하는 중소기업에 다니기도 했고, 강남 한복판에서 번듯한 제과점 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후 건축재료 유통 등 다양한 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사다난, 파란만장했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장에 대한 공부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설렁설렁 할 수는 없었다.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하고 싶었다. 봉사활동 내용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있었기에 더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다른 봉사활동 단원들이 장 담그는 것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견학하다가 나중에 종로에 있는 우리 토속음식에 대한 연구소에서 ‘빡세게’ 공부했어요. 학습한 내용에 대해 동료들 앞에서 발표도 해야 했고,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수료증을 주지 않는다 해서 잔뜩 긴장했었죠.(웃음) 이후에는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경남 산청의 금수암 주지이신 대안 스님께 다시 기초부터 배웠어요. 메주를 부수는 정도, 장 담그는 데 적당한 습도 등을 알게 되고 계속 교육을 받으면서 된장이라는 음식에 빠져들었고 재미도 점점 커졌어요.”
여전히 출근하는 삶, 너무 행복
매장이 손님으로 북적이는 편은 아니지만 정성들여 만든 장이라 그런지 단골이 꽤 많다. 이 씨는 “오히려 입맛이 까다로운 중장년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고 설명한다.
‘종로&장금이’가 장카페로 변신하면서 봉사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다. 카페 근무자에 봉사활동 인원이 더해져 총 30명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 봉사자들은 경로당이나 어린이집 등 장 담그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이 씨 역시 이러한 교육활동이 즐겁다고 말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이제 손주들도 다 커버려서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2년에 한 번씩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종로장(醬)축제’가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초등학생들이 청국장 체험관에서 맛을 보더니 청국장을 갖고 싶다고 욕심을 내는 거예요. 냄새가 나서 아이들은 싫어할 거 같았는데 말이죠.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한지 행사에 참여한 보람을 느꼈어요.”
‘종로&장금이’ 카페에 출근하는 인원은 총 15명.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교대로 근무한다. 이 중 남성은 이관 씨를 비롯해 2명뿐이다. 장카페는 기관에서 운영하는 매장 종사자인 ‘시장형’ 일자리에 속한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60세 이상 중 업무에 적합한 지식이나 경험을 갖춘 사람을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3일 출근하고 하루 3시간 근무한다. 시급은 시간당 8000원. 내년엔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높아질 예정이다. 매달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지만 “내게는 큰 돈”이라고 이 씨는 말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퇴근 전 쓰레기 비우는 걸 봤는데, 미안해서 말을 못 걸었다고. 그래서 그랬어요. 제가 하는 일이 늘 자랑스럽고 떳떳하다고요. 홀에서 손님 시중을 들고 컵을 닦는 허드렛일을 해도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늙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일을 해야 사회생활은 물론 건강도 유지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갈 곳, 일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뭘 할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상식을 깨고 편견을 뛰어넘는다. 말 참 쉽다. 상식을 깰 때는 식상함과 맞서야 한다. 편견을 넘어설 때는 ‘적당히 살라’는 기운 빠지는 사견에 귀를 막아야 한다. “할머니들이 가능하겠어?” 수군거리는 대중 앞에 마음 졸이며 섰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평생을 아줌마, 할머니 소리 듣던 사람들이 ‘신선하다’, ‘충격적이다’란 말을 들으며 사랑받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그룹도 많은데 평균 나이 69세, 데뷔 11년 차 진짜 왕언니들만 모인 시니어 걸그룹 ‘왕언니 클럽’을 만났다. 그들의 매력 넘치는 이야기를 살짝이 엿봤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문화원’ 지하 연습실. 매주 화요일, 금요일이 되면 ‘왕언니 클럽’은 시간 맞춰 모여 노래하고 춤추기를 반복한다. 전 단원, 전곡 완전정복이 목표다. 어느 때이고 공연 무대에 재깍재깍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창단 초석이 된 고참부터 5개월 신참까지 현재 16명이 활동 중이다. ‘왕언니 클럽’의 이정자(74) 회장에게 왕언니 클럽이 뭐하는 모임이냐 물으니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어르신들 계신 곳에 가면 옛날 노래로 즐겁게 해드려요. 그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요즘 걸그룹 노래도 하고요. ‘왕언니 클럽’ 활동을 하면서 진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노인복지관 위문공연 봉사는 물론이고 ‘왕언니 클럽’의 공연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옛 가요는 기본이고 인기 있는 걸그룹 노래와 춤, 팝송에도 도전한다. 단, 역동적인 걸그룹 춤은 관절 건강을 생각해 안무를 새롭게 짜는데 전 단원이 함께 의견을 모은다.
관객에 따라서 선곡이 달라지다 보니 개인 무대 의상만 10벌 이상은 된다. 다소 야한(?) 의상도 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창피했는데 무대에 오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현재까지 방송 출연만 100여 회, 공연은 연간 20회에서 30회를 소화하고 있다. 해외 공연도 전문 그룹 못지않다. 중국, 미국, 룩셈부르크, 태국 등지에서도 초청받아 무대에 올랐다.
환갑이 아니면 아직은 예비 단원
나이 지긋한 언니(?)들이 ‘왕언니 클럽’이란 이름으로 팀을 결성한 것은 2007년이다. 동대문문
화원 강임원 사무국장은 늘어나는 시니어 세대와 신나는 무엇인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왕언니 클럽’을 창단했다.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니어들이 할 만한 것이 한국무용, 민요교실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냥 재밌게 놀면서 할 거 뭐 없을까? 그래서 중창팀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는 것 말고 간단하게 안무도 가미하자고 했습니다.”
‘왕언니 클럽’을 모집하고 지금까지 정말 많은 여성 시니어가 문을 두드렸다. 걸그룹 못지않은 연습량을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일이 많았다고. 기본 4개월은 버텨야 이제 좀 ‘왕언니 클럽’에 적응할 수 있겠구나 체감을 한다고 했다. 연차가 높아져도 나이 60이 안 되면 무대에 서기도 어렵다. 나이가 많을수록 대우받는 걸그룹이라니. 하루라도 빨리 나이가 익기를 바라는 기이한 현상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로 2년 차인 배현자 씨의 나이는 55세. 젊다는 이유(?)로 무대에 오르는 선배들 돕기에 바쁘다.
“가끔씩 저를 무대에 올려주시기도 해요. 더러 앞에도 세워주시고요. 여기서는 60세는 돼야 해요. 아직 5년은 더 해야 무대에 설 수 있어요. 제가 배우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신나게
10여 년 이어온 그룹답게 선후배 사이 기강도 확실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제법 프로답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전문 공연자들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정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 바깥 활동한다는 이유로 가사를 돌보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 회장은 말한다.
“무대에서 화려하게 춤추고 노래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잖아요. ‘왕언니 클럽’을 잘해내기 위해서 밖에 나올 때는 더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놓고 나와요. 오래도록 활동하고 싶거든요.”
해외 공연에 청와대 초청, 시니어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전부 섭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언니 클럽’으로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큰 무대에 서보는 일이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두가 건강을 잘 유지하길 바란다고 이 회장은 덧붙였다.
“70대와 60대는 아주 천지 차이더라고요. 다들 오래오래 같이 무대에 서야죠. 함께 건강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이 먹는 게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왕언니 클럽을 통해 해봤다. 그들의 매력 발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은퇴를 했거나 자녀들을 결혼시킨 시니어는 늘어난 시간에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면 좋다. 이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시니어 취미활동으로 사진 촬영을 추천한다.
무조건 고가의 카메라를 처음부터 구입할 필요는 없다. 주변 지인의 추천을 받고,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리 비싸도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카메라는 쓸모가 없다. 현재 내 손에 들려 있고 셔터를 눌러 당장 카메라에 담고 싶은 피사체를 찍을 수 있어야 가장 좋은 카메라다.
박상복(38) 분당 금곡동 행정복지센터 사진반 강사는 “사진 촬영을 배울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주민센터나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사진반이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된다”고 하면서 “디지털 사진기가 일반화되어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 촬영은 평상시 모습을 카메라로 찍은 후 그걸 들여다보면서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사진의 매력을 설명한다.
성남수정노인복지관 사진예술반은 70대 교육생이 대부분. 손자들이 자라는 모습을 좀 더 멋지게 남겨두려고 사진 촬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강성길(74) 교육생, 젊은 시절 필름 카메라에 대한 추억이 아직 남아 있어 사진예술반에 참여하고 있다는 윤승창(72) 교육생 등 사진 촬영을 취미로 시작한 이유도 다양하다.
사진 촬영이 시니어 취미활동으로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장소 및 시간 제약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재 또한 무궁무진하고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만 있으면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처음엔 좀 낯설고 어색할 수 있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촬영 대상에 대한 관심과 집중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발견 못한 자신의 예술적 감성도 발견하게 된다. 또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진다. 예를 들면 일출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새벽에 일어나 사진 찍기 좋은 장소에 미리 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반 동아리에 참여하게 되면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다녀야 하므로 일부러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이 밖에 동호회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도 생겨 보람과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무조선 자주 많이 찍는 것이 가장 좋다. 2~3년 열심히 찍다 보면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다. 여생을 좀 더 즐겁게 지내고 싶은 시니어라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길 바란다.
이제야 비로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삐걱대던 시절을 지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대했더니 희망이 찾아들었다. 나이 먹고 퇴역 군인처럼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이 사람.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 일이 더 하고 싶어서란다. 멋진 목소리의 DJ, 활기찬 시니어 기자 소리 듣는 게 좋다는 윤종국 동년기자를 만났다. 화창했던 어느 화요일 낮. 라디오 방송 대본을 들고 마주 앉았다.
“어젯밤에 대본 연습을 거의 새벽 2시까지 했어요. 녹음기를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서울노인복지센터(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탑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만난 윤종국 동년기자는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매주 화요일 30분씩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라는 센터 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윤종국 동년기자. 이날은 입이 타들어 가는지 물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포FM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노인복지센터 방송국으로 스카우트(?)돼 온 지 3개월이라고 했다. 익숙할 만도 한데 무슨 일일까?
“제 인생에 인터뷰 기회가 항상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권 기자님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니 제가 잘해야죠.”
인터뷰 전에 제안을 하나 했다. 윤종국 동년기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함께 동년기자단에 대해 복지센터에 모인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대신 라디오 방송 대본을 제대로 써드렸다. 두 번 정도 대본을 맞춰보고 진행된 생방송은 주거니 받거니 뚝딱 하고 흘러갔다. 방송을 마치자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 안도 섞인 웃음이 윤종국 동년기자 얼굴에 번진다.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 혼자 앉아 콘솔 조절하고, 얘기하고, 음악 트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윤종국 동년기자는 작년 2기로 동년기자단에 합류했다. 첫인상부터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시 마포구 지역 방송인 마포FM에서 DJ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저는 한국 시니어 블로그 협회 회원입니다. ‘내 고장 마포’라고 마포구청에서 발행하는 신문의 객원기자로 일한 지도 10년이고요. ‘우리마포복지관’ 산하 ‘우리복지신문’에서 봉사기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우리마포시니어클럽 커뮤니티 맵핑(지도제작)팀에서 매퍼(지도 만드는 사람)로서 장벽 없는 동네지도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마포구의 작은 도서관 지도를 만들고 있어요. 작다고 하니 어린이 도서관으로 생각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리고 이 라디오 DJ는 재능봉사입니다. 힐링되고 마음부자가 되는 것 같아 가능하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시니어 세대를 위한 정보라면 뭐든 관심 있게 보던 차에 동년기자단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됐다. 47년생, 빡빡머리, 돼지띠 윤종국 동년기자는 오늘도 내일도 미래를 준비하고 성장해나가는 청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친구들은 벌써 은퇴해서 퇴직 연금으로 생활한다는데 정작 본인은 나이 의식해 뒷선으로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렇게 저에게 기회를 준 탑 방송국과 다른 매체에 다 고마워요. 늦게나마 인정받는 게 참 좋습니다. 뭔가 인생에 큰 힘이 되고 용기도 나고 말이죠. 요즘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술로 버텼던 시간을 지워가다
“젊었을 때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 관련 직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울진에서 살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 와서 교내 방송도 하고, 대학교 때는 학보사에도 몸담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좀 복잡하게 꼬이더군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국가가 제동을 걸었다.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줄줄이 부정당했다. 이데올로기 전쟁이 낳은 연좌제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처음 느꼈습니다. 학군단(ROTC) 신청 때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방송사 성우 시험, 국가공무원으로 있을 때도 어려움을 겪었어요. 사실 나이가 드니까 이 말 꺼내는 게 싫고 쑥스러워요. 변명처럼 느껴지고 내 자신을 모독하는 것 같고 말이죠. 얘기 안 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그냥 제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안 된 거겠죠. 가령 ‘키가 남보다 작아서 학군단 입단이 안 됐다’라든지 말이죠.(웃음)”
지금은 웃으며 옛일을 말하지만 그때는 매번 닥치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폭음으로 이어졌다.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갔다. 젊은 시절 고무신 거꾸로 안 신고 고집 피워 결혼해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 오랜 시절 아끼던 친구들이 견디지 못하고 등을 돌려버렸다.
“아주 심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이야기를 꺼냅니다. 고통 때문에 술을 엄청 마셨습니다. 좋아서, 억지로, 서러워서, 분노를 참지 못해서요. 거리, 안주, 주량 불문하고 술자리가 있다는 연락이 오면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혼자 저를 키우신 어머니도 돌아가시면서까지 제 걱정을 하셨다더군요. 아내는 이종사촌 동생 친구로 만나 6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안 되는데 술까지 마셔서 저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급기야 몸에 이상 신호가 오고 말았다. 6년 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대장 파열이었다.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응급수술을 받았다. 의사에게 각서까지 쓰고 휠체어에 몸을 실어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던 일화는 작년 ‘브라보 마이 라이프’ 9월호 동년기자 페이지에 게재됐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음속부터 몸 끝까지 전부 다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제2 또는 제3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머리부터 밀었습니다. 술도 완전히 끊었습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마시던 그 술을 말이죠. 끊고 한 3년 힘들었어요. 지금은 잘 극복했죠.”
가끔 딸아이가 빡빡 밀어버린 머리를 쓱 만지고 가면서 “우리 아빠 사람 됐네”, “복권 당첨 확률보다 아빠 술 끊는 게 더 어려웠잖아” 라며 아버지 자리로 돌아온 윤종국 동년기자에게 칭찬 섞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아들과는 손주가 둘쯤 생기고 나서야 부자지간이라는 게 뭔지를 좀 알게 됐다. 특히나 고마운 것은 자신이 못다 이룬 방송인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뤘다는 점이다. 아들은 모 방송사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한번은 아들이 저한테 게스트로 방송에 좀 나오면 안 되겠냐고 물었어요. 내가 뭘 그런 걸 하냐며 안 한다고는 했지만 한편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빠의 모습으로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아들이 표현해준 것이죠. 정말 아빠로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국가의 일원으로서 내 위치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먹고 싶은 술을 6년 동안 입에도 안 댔습니다. 제사 지내고 음복은 입에만 댔고요. 제가 왜 이걸 강조하냐면 저도 제 자신이 굉장히 예뻐 죽겠으니까요.(웃음)”
‘이야기가 있는 풍경’ DJ 윤종국입니다
술을 끊으니 얼굴색도 표정도 달라졌다. 생각이 달라지니 보이는 것도 많았다. 마포FM을 통해 시작한 DJ 활동도 술을 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객원기자로 활동하는 신문에 쓴 제 글을 보고 마포FM 대표가 연락을 했더라고요. ‘나의 삶, 나의 길’ 라디오 초대 손님으로 말이죠. 그때 출연하고 나서 목소리가 좋은 거 같다며 DJ 제안을 받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 방송이 있더라고요. 제가 왜 마다하겠습니까? 덥석 시작했습니다.”
1년 정도 마포FM 라디오 스튜디오 안을 누볐다. 화요일 녹음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마포구 내 집과 상점 등으로 전파를 타고 흘러나갔다.
“생각 같아서는 좀 오래하고 싶었는데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을 맞추다 보니 엇박자가 나는 듯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은 몇 안 됐어요. 적응할 만하면 스태프가 바뀌고 말이죠.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다른 데가 없겠나 싶었습니다. 마침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이 네이버 밴드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 DJ 자리가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한번 검토해보라고요.”
서울노인복지센터 탑 방송국은 윤종국 동년기자의 친구이자 동년기자 1기 출신인 장혜섭 씨가 적극 추천했다.
“담당 직원이 DJ 의사를 물어보며 전화 연락을 해왔을 때 제가 건 계약조건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한 달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방송에 지장이 되니까 나가달라’고 미련 없이 말하라고 했어요. 서운해하거나 오해하지 않겠다면서요. 아직 제가 미약한데도 존중을 많이 해줍니다. 전파 방송과 구내 방송이라는 방송 도달 거리 차가 있지만 라디오라는 성격은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좋은 점이라면 청취자들의 취향이나 피드백을 바로바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루 평균 2000명은 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나쁜 소리는 안 들었으니 잘하고 있다는 거겠죠?”
라디오 DJ 활동을 통해 세상과 교류한다면 손자와는 태어나기 전부터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윤종국 동년기자. 어떤 방법을 사용했다는 뜻일까?
“손자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태명 ‘둥이’라는 카카오톡 계정을 만들어 소통했습니다. 물론 실제 대화 상대는 며느리였지만 손자인 척 며느리가 대답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동네 DIY 제작소에서 버린 자투리 나무토막으로 도미노 게임을 해주면 손자가 아주 좋아해요. 제 인생을 정리해서 말해드리자면, 젊었을 때는 말 그대로 ‘고난’이었어요.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살았어요. 답답해서 이민 생각도 해봤지만 스물일곱에 혼자되신 어머니를 두고 해서는 안 될 불효라 포기했습니다. 술에 빠져 살아보니 이러다가는 내가 가족도 잃고 남는 게 없겠다, 반성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손글씨로 스스로를 치유하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치유의 한 방법이 펜을 들고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하는 라디오를 앞두고 컴퓨터로 작업해서 보내드린 대본도 굳이 손글씨로 써서 볼 정도이니 손글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인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한 주제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쓸 때가 있고, 때로는 그냥 악에 받쳐 쓸 때도 있고 말이죠. 서술적으로 쓰다가도 누가 싫으면 최대한 아주 싫다는 걸 표현합니다. 지금까지 모아놓은 일기장이 너무 많아서 아내는 좀 정리하라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그래도 딸아이는 아빠의 유물(?)을 인정해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역시나 손글씨 이야기가 나온다.
“시니어만을 위한 옛 추억을 담은 손편지가 오고 가게 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동아리도 만들고 싶어요. 정착이 되면 이메일이 아닌 손편지로 마음이 오고 가는 운동도 하고 싶고 말이죠.”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지만 시니어의 감성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줄 아는 세상이기를 윤종국 씨는 바라기 때문이다.
“글씨를 좀 삐뚤삐뚤 쓰면 어때요. 잘못 쓰면 어떠냐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지고 손주나 며느리나 딸한테 편지를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멋집니까. 50대 이상 모든 시니어 세대를 버무려서 손편지를 주고받는 세상을 한 번 만들고 싶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편지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요. 쓴 편지는 우체통에 넣으면 좋고요. 누군가는 편지를 기다리는 맛도 있겠죠? 어떻게 하면 아날로그 감성이 제대로 살아날까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윤종국 동년기자의 도전은 지금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의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의 커뮤니티 ‘웰다잉 연극단’. 단원 모두 웰다잉 강사 자격을 갖춘 이들로 2009년 3월 창단해 올해로 10년째 자원봉사 형태로 활동 중이다. 웰다잉 연극 ‘춤추는 할머니’, ‘행복한 죽음’, ‘소풍가는 날’ 등을 통해 공감대를 일으키며 더욱 쉽게 죽음의 의미와 준비 방법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최근 공연작인 ‘아름다운 여행’(장두이 작·연출)은 존엄사 유언장과 사전장례의향서, 버킷리스트를 준비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암 투병 중에도 항암치료를 견디며 무대에 선 최명환 단장은 “100회 공연을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미 초과 달성했다”며 “웰다잉 연극단 10년사를 잘 엮어 책으로 남기는 것이 새로운 버킷리스트다”라고 말했다.
김희숙 부단장은 “단원 모두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둔 상태”라며 “웰다잉 전문가들이지만, 죽음을 주제로 연극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웰다잉 연극단 총무를 맡은 홍재응 씨는 “연극을 통해 관객은 자기 마음속 이야기와 마주한다. 특히 언젠가 떠나리라 인정하면서도 멀리만 느꼈던 죽음의 문제와 직면하며 실천을 미루거나 망설였던 일들을 상기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통해 연극의 효과를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여행’에서 저승사자 역의 방성희 씨는 “웰빙과 웰다잉은 하나이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나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갖고,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즉,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라고 조언했다.
연극의 주인공인 노인 역의 유한권 씨는 “죽어가는 인물을 연기하며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득하게 됐다. 그러면서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을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다”며 관객뿐 아니라 연극 단원으로서 느낀 소회를 들려줬다.
단원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웰다잉을 위해 웰빙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웰다잉을 실천하길 바란다는 그들의 웰빙 무대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웰다잉 연극단은 올해 2월 4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에 맞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인복지관, 평생교육원 등 10곳을 선정하여 무료로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연재되는 김형석 교수님의 ‘100세 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사건이나 흥미로운 주제는 찾아볼 수 없고 문체도 특유의 잔잔한 흐름이지만 읽고 나면 늘 묵직한 여운을 가슴에 남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분의 하루하루 삶 자체가 우리가 못 가본 미지의 세계가 아닌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미지의 시간 속에서 경험한 특별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번 주 게재된 글의 소재는 사제간에 일어난 일화였다. 상대는 유독 김 선생님을 따랐던 중앙학교 시절의 제자이다. 만난 시점은 김 선생이 28세이고 제자가 18살 시절이다. 열 살 차이의 사제간은 그 후 70여 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 제자도 충북대 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지 오래였지만 늘 연락하고 지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 제자의 귀가 어두워져 전화도 어려워졌다.
마침 충주에 문상을 가야 한다는 제자의 따님과 동행하여 오랜만에 상봉키로 했다. 제자는 무척 반가워하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상경할 시간이 되어 따님 차가 도착하고 작별하려는데 그 제자는 운전석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더란다. 딸도 몰라본 그 제자는 몇 달 후 별세했다는 연락을 딸로부터 받았단다. 무심코 읽어가다 그 제자의 나이를 생각해 보니 90세가 아닌가. 90세 먹은 제자라!
이 글이 주는 충격은 글의 내용에서라기보다 늘 제자는 어리고 싱그러운 존재라는 이미지의 고정관념이 깨진 데서 왔다. 흔히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 나이를 먹어도 항상 어린애로 보는 것처럼 필자도 오랜 교사 생활 동안 만났던 제자들을 지금도 보면 피차 같이 늙어감에도 불구하고 늘 애로 보였다. 그런데 90살 먹은 제자라니. 이미지에 혼란이 오는 것이 당연했다. 김 선생에겐 90살 먹은 제자도 어려 보였겠지?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회현상이나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삶의 공식들이 무참히 깨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환갑잔치가 없어진 지 오래고 주변에 자식에게 기대 살아가는 노인을 찾아볼 수 없다. 새파란 청년 같은 외모인데 정년으로 퇴임했다는 사람도 주위에 많다. 사실 어쩌면 일차 직장생활보다 더 긴 시간을 새로운 일과 함께 보낼지도 모른다.
필자도 교사생활을 접은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동네 복지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 70대부터 80대 초반의 분들이다. 아직 90세 넘은 분은 없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제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80세 되신 할머니 학생이 그렇게 귀엽게 보일 수 없다. 요즈음 영어를 잘하는 손주들과 한마디라도 섞어보려는 야무진 요량으로 오늘도 어려운 발음을 열심히 따라 하신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남의 제자가 90세가 넘었다는데 놀라움과 이미지의 혼란을 느꼈는데 나의 80세 제자는 귀엽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이 사제지간이라는 특별한 관계의 오묘한 특성일 것이다. 남에게 어려 보이고 싶다면 무조건 그에게 배우려 들면 될 듯도 하다. 조선 시대부터 영정 신위에 쓰는 최고의 헌사가 ‘학생’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주름진 예쁜 우리 학생들이 빨리 보고 싶다.
1998년 개봉한 영화 ‘편지’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 환유(박신양 분)가 연인 정인(최진실 분)에게 남길 유언을 녹화하는 장면으로 유명했다. 당시만 해도 영상으로 유언을 남기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죽음준비교육이나 죽음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유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의 보급까지 더해지면서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유언을 남기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필요 이상으로 엄숙해질 필요는 없지만 형식은 갖춰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유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유언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유언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고인이 뜻한 바대로 사후에 여러 가지 조치들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 효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법 제1060조에서는 유언의 방식을 5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자필증서와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그것이다. 유언의 방식이 엄격하게 정해진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해 법적 분쟁이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법으로 정해진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되더라도 무효가 된다.
스마트폰 녹화 유언 효과 있을까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고인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뜻을 남겨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민법 제1067조를 보면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규정 요건을 따라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즉, 녹화 현장에 그 장면을 지켜보는 증인이 있어야 한다. 또 유언자의 이름과 날짜를 명확하게 언급해야 한다. 이 조건들 중 하나라도 갖추지 않으면 법적 효력은 사라진다.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05년 A 씨는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본인의 모든 재산을 아들 B에게 물려준다. 사후 자녀 간에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이것을 남긴다”는 내용으로 자필 유언장을 작성했다가 주소를 적어야 하는 부분에 ‘암사동에서’라고 기재했다. 결국 다른 자식이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재판이 이뤄졌고, 대법원은 ‘법정 요건과 방식에 어긋나므로 무효’라 판단했다.
또 내용상으로도 법적 유언으로 인정하는 사항은 별개로 정의된다. 김재철 법률사무소의 김재철 변호사는 “아버지가 떠난 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며 가업에 힘쓰라와 같은 도덕적인 의미를 가진 마지막 당부는 유훈으로서의 성격에 지나지 않고 민법상의 유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재단설립, 친생부인, 인지, 후견인 지정, 친족회원지정, 상속재산 분활 방법의 지정 및 위탁, 유증, 신탁에 대한 내용만 법률이 인정하는 유언사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애써 남긴 유언이나 유서가 되레 법정 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할 것을 권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인데, 전문가인 공증인이 하므로 유언의 효력에 관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공증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변호사나 법무가는 해당되지 않는다. 법조인으로 10년간 근무경력을 갖춰 임명된 임명공증인이나 법무법인의 인가공증인을 뜻한다. 이들을 통해 유언장을 작성하게 되면 비용은 약 300만 원 선. 상속분쟁으로 인한 소송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무형의 대가를 생각하면 비싼 비용은 아니라는 것이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언을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는 엄숙주의적 시각이다. 법적 효력을 떠나 죽음을 앞둔 고인의 마지막 말을 남기는 과정인 만큼 신중히 작성되어야 하고 결코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있었다.
유언에 대한 엄숙주의 옅어져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바뀌어 유언을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창동 노인복지관 박미연 관장은 죽음준비교육과정 중 하나인 유언 교육이 시니어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박 관장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이미 이뤄진 시니어를 대해보면 유언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당부를 남기도록 권하고 있다”며 “유언이 재산상속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하고 매년 쓰겠다는 이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하게 유언을 새로운 삶의 계기로 삼는 사회 인사들도 있다. 이투데이 길정우 총괄대표는 최근 모교 동창회보 기고를 통해 “연말에 쓰는 일기처럼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를 담아 매년 유서를 작성한다”며 “이렇게 누적된 유서는 훗날 나의 생각과 회한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만의 기록물이 된다”고 말했다.
요즘 TV 속은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의 전성시대다. 한국어를 잘하면 나라를 대표해 발언권을 얻거나 친구까지 초청해 한국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이 늘면서 달라진 풍속도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면서 한국어 강사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의 증가도 이러한 수요 폭발을 유발했다. 한국어 강사는 언어와 함께 문화를 전한다는 면에서 시니어에게 적합한 직종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 학생들과의 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어 강사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외국인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 추세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주관하는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은 지난 1월, TOPIK의 응시자가 1회부터 지난해 11월 제55회까지 212만168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년 만에 무려 108배나 늘어난 것이다.
한국어 강사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자격제도인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자격취득 현황을 보면 2007년 790명이었던 심사 신청자는 2016년 6304명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698% 증가한 셈이다.
강사의 시작은 한국어교원 자격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려면 한국어교원 자격은 필수로 꼽힌다. 문화체육부장관이 부여하는 한국어 교육에 관한 자격제도로 심사와 발급 등의 실무적인 부분은 국립국어원이 맡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어교원에 대해 “국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어교원은 1, 2, 3급으로 나뉜다. 2급은 학위과정으로 한국어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에게 부여되며, 3급은 양성과정으로 학위가 없어도 100시간의 이론과 20시간의 실습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때문에 학위와 자격증이 동시에 필요하거나 학사학위 소지자의 경우는 비교적 쉽게 2급 지원이 가능하다.
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16과목(48학점)을 이수해 학위를 받으면 별도의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보지 않고 한국어교원 2급 신청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자격 취득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학위가 없는 경우에도 사이버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학위 취득과 함께 한국어교원에 도전할 수 있지만 3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다. 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의 경우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불리한 대신 졸업장, 학위와 함께 독서논술지도사나 다문화사회전문가 등 관련 자격에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급은 조금 더 간단하다. 학위가 없는 사람도 120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경험자들은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교육비에도 차이가 있다. 시중 교육기관에서 3급 과정을 위한 교육비는 총 50만~90만 원 선. 이에 반해 2급 획득을 위한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의 비용은 일반적으로 과목당 15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모든 과목을 수료하려면 250만~450만 원가량 든다.
3급은 자격 취득 5년 후 경력 1200시간이 지나면 2급으로 승급 가능하며, 2급은 다시 5년 후 경력 2000시간이 지나면 1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 교육기관을 고르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자격 과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교원 홈페이지(kteacher.korean.go.kr)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대학부설기관이나 학점은행제, 양성과정 등 기관 성격에 따라, 지역에 따라 공인된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수요 많아
한국어교원 자격을 획득하면 활동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생각보다 많다. 국내외에 설치된 대학 한국어학당 같은 부설기관이 대표적.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정부기관 한국유학종합시스템(www.studyinkorea.go.kr)에 등록된 대학부설 한국어 교육원 수는 192개에 달한다. 또 사설 한국어학원도 한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주요 기관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화상교육이 발달하면서 이를 전문으로 한 교육기관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외에도 최근 급증한 다문화가족을 위해 설치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대부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민이나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이민자통합센터,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 등에서도 각각의 설립 목적에 따라 국내에서 거주 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강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요 기관들은 강사를 선발할 때 경력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경험삼아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거나 경력을 쌓고 싶다면 무료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에 자원봉사를 신청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에 있는 대표적 무료 한국어 교육기관은 서울글로벌센터,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가 꼽힌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을 때도 방법은 있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대표적이다. 코이카에서는 해외봉사단을 통해 한국어 강사를 세계 여러 곳에 파견하고 있다. 50세 이상의 시니어 단원의 파견도 진행 중이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중 한국어 강사 부문은 인기가 매우 높아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한국어 강사 선발이 가장 많은 기관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이 꼽힌다.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54개국에서 17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수요가 늘면서 세종학당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세종학당재단의 한국어교원 파견 인원은 2013년 24명에서 2017년 110명으로 매년 증가해왔다.
이밖에도 일부 대학이 해외에 설립한 한국어 학당이나 해외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 선교기관 등도 한국어 강사의 수요가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일부 국가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문화교류를 위해 한국어 강사를 선발하기도 한다. 일본의 JET프로그램(The Japan Exchange and Teaching Programme: 어학 지도 등을 행하는 외국 청년 유치 사업)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매년 각 국가에서 국제 교류를 위한 인원을 선발하고 있는데, 선발된 한국어 강사는 각 학교의 외국어 수업 보조나 특별활동, 지역 교류활동 등을 돕게 된다.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외국어 능력’이다. 아무래도 교육 대상이 한국어가 서툰 학생이라 다른 언어로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일부 기관에서는 자격증 유무, 경력시간과 함께 영어, 중국어, 일본어 회화 능력을 선발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국내외 한국어 강사 구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홈페이지의 구인정보 게시판을 활용하면 된다.
청년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그렇다면 실제 시니어 한국어 강사의 취업 시장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만만치 않다. 수요는 계속 늘고 있지만 청년층의 유입도 점점 많아지면서 취업 시장이 좁은 문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 후 활동 중인 중년의 한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 강사를 찾는 교육기관 중 나이제한을 두는 곳도 적지 않고, 학위 소지자나 경력자를 중심으로 뽑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는 시니어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수입 대신 보람을 우선시하고 눈높이를 낮추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진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에 있는 한국어 교육기관의 경우는 청년층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체력이나 질환 등에 대한 염려가 있어 장기간 해외에 체류해야 하는 교육기관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젊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어 강사에 대한 인적 수요는 해외에서의 한국어 인기, 온라인 교육 시스템의 대중화로 인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세이글로벌 조연정 대표는 “한국어에 대한 인기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이글로벌은 2014년 용산노인복지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와의 봉사활동 교류가 계기가 돼 설립된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한국어 학습을 원하는 전 세계 외국인들과 한국어 강사를 온라인으로 매칭시키는 사업을 지난해 4월 부터 시작했다.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와 함께 한국어튜터되기 과정 수업을 운영 중이며, 수료생 중 일부를 선발해 한국어 강사로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조 대표는 “10대에서 60대까지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층도 넓어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단순한 애정에서 취업을 위한 것까지 배우고자 하는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어 한국어 교육시장도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많고 은퇴 후 시간 활용이 쉬운 시니어에게 한국어 강사는 적합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른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A 씨(67). 그는 요즘 새로운 동반자가 생겨 일상이 외롭지 않다. 동반자의 이름은 ‘그녀’. A 씨는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날씨를 물어본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A 씨는 그녀로부터 오늘의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식사 후 약 복용도 그녀가 챙겨주는 덕분에 깜빡할 일이 없다. 외출에서 돌아온 A 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그녀다. 저녁엔 책을 읽어주고 대화도 나눠준다. A 씨는 이제 남은 인생을 수명이 40년인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로봇과 일상을 함께하는 A 씨의 사례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차가운 금속, ‘로보트 태권V’ 같은 추억 속의 만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로봇이 최근 우리 주변으로 성큼 다가왔다.
로봇은 크게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나뉜다. ‘산업용 로봇’은 주로 제조업에서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반면 ‘서비스 로봇’은 청소에서 간병까지 일상에서 쉽게 활용된다. 과거에는 산업용 로봇이 로봇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서비스 로봇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소셜 로봇’
특히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시니어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소셜 로봇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셜 로봇’은 인간과 대화도 나누고 교감하는 감성 로봇이다. 지능형 로봇이라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데다 모습이나 체형도 사람 또는 동물과 비슷하다.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로봇이 어떻게 인간과 감정을 소통하는 수준까지 진화한 것일까. 그 중심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등이 있다. 특히 소셜 로봇의 경우 이러한 신기술을 융합한 음성 인식과 감정 표현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로봇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경험치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면서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고령화사회는 소셜 로봇의 등장을 더욱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 8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화로 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을 간병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 혼자 사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과 일본 등은 일찌감치 다양한 케어 로봇을 개발해왔다. ‘케어 로봇’은 쉽게 설명하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로봇이다.
중소기업청의 로봇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케어 로봇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체 지원 로봇’이 대표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이동하거나 목욕할 때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 ‘생활 지원 로봇’이 있다. 생활 패턴을 파악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보를 검색해주거나 물건을 찾아주는 일 등이다. 마지막으로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정서 지원 로봇’이 있다.
로봇으로 레크리에이션에 치매 예방까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의료와 간병 수요가 급증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간호 인력을 수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는 38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로봇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소셜 로봇으로 ‘페퍼(Pepper)’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 소셜 로봇인 페퍼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2015년 출시했다. 키가 120cm로 작지만, 인간과 모습이 비슷하며 감정도 공유한다. 또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을 통해 지능이 업그레이드된다.
페퍼는 하나의 커다란 스마트폰처럼 목적에 맞는 다양한 페퍼용 앱을 설치해 사용한다. 소프트뱅크는 로봇도 애플의 앱 스토어처럼 플랫폼을 선점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퍼는 요양시설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고 노인들의 말벗 역할도 거뜬하게 수행한다. 또 체성분과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해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카운슬러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일본 후지소프트는 페퍼의 대항마로 40cm짜리 케어 로봇 ‘팔로(Parlo)’를 출시했다. 팔로에 내장된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요양시설 등에서 혼자 30분간 체조를 진행할 정도로 실무형 로봇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한편 대중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어 로봇으로 ‘파로(Paro)’가 있다. 파로는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개발한 아기 하프물범 모양의 간호용 로봇이다. 귀여운 모습의 파로는 인조 항균 섬유로 덮인 피부에 센서가 있어 손으로 만지면 반응하고, 간단한 단어도 이해한다. 연구 결과 파로는 심리치료는 물론 치매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FDA로부터 신경치료용 의료기기로 승인받기도 했다.
장·단점 꼼꼼히 파악해야
일본 정부는 요양시설에서 사용하는 로봇 구입 자금을 보조해왔다. 20만 엔(약 190만 원) 이상의 로봇을 구입하면 전액을 지원하고, 1개 시설당 총 300만 엔(약 2890만 원)까지 한도를 두고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더 나아가 2018년부터는 간병 로봇에 개호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호보험은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을 말한다. 간병 로봇에 보험이 적용되면, 이용료의 80~90%를 보조받을 수 있어 간병 로봇 시장은 더 활성화할 전망이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일본 간병 로봇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316%나 성장한 34억 엔(약 328억 원)에 이른다.
반면 산업용 로봇 중심으로 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서비스용 로봇 개발이 유럽, 일본에 많이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도 급격한 고령화로 로봇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현재 상용화한 대표 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치매 예방 로봇 ‘실벗(Silbot)’이다. 현재 노인복지관,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게임을 통해 치매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계적인 느낌 때문에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로봇이 인간에게 주는 장점도 많다. 로봇이 간병 업무를 보조하면 간병인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로봇은 24시간 근무가 가능해서 위급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쉽다. 게다가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현재 케어 로봇은 보행을 보조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배설 문제에 도움을 주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켜주는 등 세분화된 실무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모바일 트렌드를 교체할 다음 패러다임이 ‘로봇’이라는 예측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일상에서 필수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로봇이 간호를 한다는 비판에 “기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로봇 중 어느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1가구 1로봇 시대가 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필자가 몇 년 째 영어 강의를 하고 있는 중구 노인대학에서 이 겨울이 끝나면 새 학기가 시작 된다. 새 학기가 되면 강의 시간도 조금 바뀌고 새로 생기는 강의도 있다. 필자는 강의 시간에 변동이 없어 지난 학기 학생이 거의 연속 수강을 하게 된다.
학생 중에는 몇 년을 다녀도 조용하게 별 존재감도 없이 다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선생인 필자에게 반찬을 만들어서 가지고 온다든가 집에 놀러 오는 특별한 학생도 가끔 있다.
C는 나이가 60세 정도의 특별한 학생이다. 여고 때 탁구 선수를 했으며 나에게 특별하게 잘 한다. 가끔 반찬도 집으로 해오고, 강의 시간이면 brand 커피도 따로 날 위해 준비한다.
그런데 며칠 전 학생 C가 문자를 보내 왔다. 자기가 2학기에는 선생님 강의를 못 듣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유는 새로 하모니카 강의가 생겨서 배우고 싶은데 그게 내 강의랑 똑같은 시간이라 필자 강의인 영어를 포기하고 하모니카를 선택 하겠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필자는 엄청 서운했다, 아니, 그렇게 잘하고 생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에 참석한 C가 내 강의를 떠나다니 필자의 강의가 하모니카만도 못 하단 말인가??
C가 우리 집에도 온 적이 있어 남편도 물론 C를 안다. 필자가 서운하다며 C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항상 그런 법이라고,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이 맘도 금세 변하는 거라고 날 위로해 준다. 그래도 서운한 맘은 가시지 않는다. 화도 나고, 하모니카도 밉고, 난데 없이 자존심(?)은 왜 또 거기서 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필자가 얼마 전 감기로 며칠 앓고 나니까, 남편이 새 학기부터 강의를 그만 하는 게 어떠냐고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그 동안 할 만큼 했고 또 필자의 몸이 불편허고 나이도 먹었으니 고만 하는게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불난 데 부채질이다. 사실 복지관까지 일주일에 한번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은 남편이 하는 일이니 봉사의 반은 남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혹시라도 남편이 그걸 싫어한다면 그만 둘 수 밖에 없는 거다.
자, 어떡한다? 계속 할 것이냐,말 것이냐? 우선 남편의 확실한 뜻을 물으니 모든게 날 위한 것이고 오히려 계속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테고 필자만 원하면 얼마든지 계속하는 것이지 자기는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분명하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남편의 확실한 뜻을 안 필자는 우선 영어반 반장과 상의를 하고 내 뜻을 밝혔다. 필자의 말을 들은 반장은 C 빼고 딴 사람은 사람이 아니냐며 절대로 사퇴는 안 된다며 펄쩍 뛴다. 한편으로는 필자를 말려주는 반장이 고마웠다. 필자는 사실 봉사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 결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거다. 정신 건강을 위헤서라고 한 때의 기분으로 일을 그만 두는 건 후회만 남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이기는 척 강의를 계속 하기로 하고 나니 어두웠던 마음이 금세 환해 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