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 프리랜서 사회복지사
저는 노인복지를 전공한 사회복지사로, 20년 넘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인복지관과 노인대학 등에서 어르신들과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인생의 선배인 어르신들께 배운 ‘나이 듦의 기술(Art of Aging)’을 함께 나누기 위해 ‘시니어’라고도 부르는 중년 세대, 즉 베이비부머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시니어들과 수업을 하면서 각자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먹고살 걱정 없고, 소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여유와 한가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관계’가 들어 있고, 관계의 중심에는 ‘친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 있고, 건강하고, 심심하지 않을 만큼 일거리가 있고, 그래서 눈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해도, 인간관계에서 아무런 행복과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한 명 없다면 과연 우리가 꿈꾸는 노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 번 친구 관계를 살펴봐야 하는 까닭은 친구야말로 남은 인생길을 같이 걸어갈 동행이고 동지이고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수업 중에 나온 앞의 네 분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니어의 친구 관계를 몇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무엇보다 먼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일가친척들이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서로 돌봐 주었지만,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 시대인 요즘은 더 이상 가족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마저 독립해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걱정과 즐거움을 나눌 친구가 더더욱 소중합니다. 길고긴 노년의 시간, 갈수록 힘에 부칠 인생의 마지막 고갯길을 앞서거니 뒤서가니 함께 걸어가는 친구는 범상치 않은 인연이며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입니다.
둘째,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
친구 관계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간직하되, 맞지 않는데 억지로 붙잡고 있을 일은 아닙니다. 친구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아름답게 포장될 수는 없습니다. 일방적이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시간과 함께 관계의 질에도 변화가 와서 허울만 남아 있는 관계는 정리가 필요합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든지 아니면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나이 들면, 너무 늦지 않게 내 손으로 생활을 간소화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하는데 우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포용력 못지않게 옥석을 가려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친구와 함께 걸어갈 길이 아직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오랜 친구들의 끈끈한 정에 새로운 친구들의 신선함까지 더해진다면 생활이 풍성해질 것은 분명합니다. 흔히 가까운 친구 열 명 중 세 명 이상이 나이 차가 10년 이상이면 그 사람은 세대 차이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는 물론이고 성별도, 사는 지역도 친구를 사귀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친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정성을 기울이는 일입니다. 물이 깊어야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품이 넓고 속 깊은 사람이 되도록 나부터 먼저 노력해야겠습니다.
넷째, “정에서 노염난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소홀히 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우정의 담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것도 미처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후회막급이지만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친구 관계의 재건을 위한 절호의 기회입니다. 시니어는 바로 그런 나이입니다. 친구는 원래 가깝기 때문에 서운하고 기대가 있기 때문에 실망도 합니다. 남이라면 다시 안 보면 그만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속상하고 또 칼같이 끊어낼 수도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그러지기 시작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내 잘못부터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먼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과의 타이밍입니다. 우정을 포함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데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내일이면 늦으리. 그래서 모든 관계를 아우르는 이 말은 우정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자고요.
>> 유경(劉暻)
CBS 아나운서로 노인 대상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하다 노인 복지에 뜻을 세우고 프리랜서 사회복지사가 됐다. 저서로는 , 등이 있다.
최근 그림을 취미로 하는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 사이에 회자되었다. 배우 김혜수와 구혜선의 그림이 아트페어에 걸린 이야기가 화제가 되더니, 배우 하정우의 그림이 수천만원에 거래된다는 이야기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 논란으로 ‘아트테이너’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그림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유희’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젤을 세운다. 그리고 하얀 캔버스를 올려 조금씩 스케치를 한다. 아마 노후의 취미생활을 꿈꾸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 본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는 53.2%가, 60세 이상은 56.4%가 노후를 보내고 싶은 방법으로 취미활동을 꼽았다. 자원봉사나 종교활동 등 다른 활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실제 여유시간을 보내는 여가활동으로 50대의 72.2%가, 60대 이상의 81.2%가 가장 간단한 TV 시청을 꼽았다. 대다수가 이상과 현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은 3%도 되지 않았다.
심리적 장벽이 높은 취미 ‘미술’
미술은 시니어들을 위한 취미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분야 중 하나다. 시니어 대상 교육기관에서 미술은 빠지지 않는 단골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붓을 손에 쥐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선입견이라고 권인수 화백은 설명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에서 5년째 일반인과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화실 ‘아트담’의 대표이기도 한 권 화백은 회화나 미술에 대한 편견이 장벽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가 입시 교육에 집중하면서 학생들이 미술, 그러니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초등학교에서 멈춘 셈이죠. 잘 못 그리는 것이 당연해요. 그런데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에요. TV 프로그램 에 나오는 수많은 달인들을 보세요. 그들이 자기 직업에 대해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랜 직장생활과 노력 덕분이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선입견 중 하나는 그림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 그러나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도구만 따지면 결코 그렇지 않다. 화실 수업료를 제외하면 이젤과 물감, 붓 등의 구매비용은 25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사진이나 자전거 등에 비교하면 되레 저렴한 취미인 셈이다. 이나마도 캔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을 강습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교육기관도 있다.
학원…화실…본인에 맞는 곳 선택을
실제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주변에서 ‘스승’을 찾는 일이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회화 등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문화회관과 백화점 등이 운영하는 문화센터가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학원이나 화실 등이 있다.
구청 문화회관이나 백화점 문화센터는 다른 취미와 병행이 쉽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교육 인원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강사가 1대 1로 지도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학원은 입시 미술을 겸하거나 정해진 강의 위주로 운영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화실은 1대 1 지도를 중심으로 수업을 한다. 미술학원은 대학 인근에 많고, 화실은 반대로 주거지역 주변에 많다. 수업 형태나 시간, 수업료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 충분히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본인에게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림이 시니어에게 주는 장점은 다양하다. 미술 수강생들은 운동에 비해 체력적으로 제한이 없는 취미이면서, 고도의 집중을 통해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11년째 송파에서 화실 ‘모노그라프’를 운영 중인 서양화가 김용일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시니어들에게 제공하는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 하나죠. 적은 비용에 비해 얻는 성취감도 크고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배우면 남에게 그림을 선물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서는데, 그 과정에서 얻는 자존감도 상당합니다. 그룹 전시회를 통해 본인의 그림이 남에게 인정받거나 팔리는 경험은 시니어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화실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를 통한 사회활동도 그림을 배우는 과정이 주는 매력 중 하나다. 앞서 소개한 아트담은 인근 구치소 면회자들을 위해 대기실에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고, 모노그라프의 경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그림 봉사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전시회 활동은 그림에 대한 욕구를 재충전하는 기회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일부 지역의 경우 화실은 체면을 내려놓는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고소득층 수강생들이 많은 한 화실의 관계자는 “재벌이나 정치인, 연예인 등이 신분을 숨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유난히 걸레질이나 설거지에 열중했던 한 회원이 지자체장의 부인이라고 밝혔을 때 주변에서 적잖이 놀란 적도 있어요. 사교를 위해 일부러 모인다기보다, 본인의 원래 모습을 찾아 순수한 문하생으로서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니 관계가 홀가분해지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기는 치매 예방에 큰 도움
그림은 심리적인 부분 이외에 실제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유명한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의 신경과 전문의 로즈버드 로버트는 지난해 발표한 연구 논문을 통해 “그림 그리기 등 노년의 미술 활동이 경도인지장애(치매의 전 단계)에 걸릴 가능성을 73% 낮춰준다”고 발표했다. 그는 4년간 256명의 85세 이상 노인을 관찰했는데, 미술 활동이 수공예(45%), 사교활동(55%), PC활용(53%)보다 인지기능 보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경도인지장애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미술 활동을 통해 마음과 정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손의 미세한 운동과 관련된 신경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자극들이 신경세포의 퇴화를 방지하고, 새로운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인지기능 유지에 사용되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일종의 신경가소성 효과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그림 창작활동은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시니어들의 전반적인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술 활동은 인지기능이나 창의력 향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추억 회상을 통해 의미있는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불어 의사 소통 능력도 향상시키죠. 자아감이나 자존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심지어 치매환자 간병인의 삶의 질까지 향상시킨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마포복지관에서 수채화를 가르치고 있는 류영선 강사는 “소질을 걱정하는 회원분들에게 관심이 곧 소질이라고 늘 말씀드려요.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니까요. 실제로 시작하고 나면 기대 이상으로 쉽게 적응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붓을 잡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연발하시는 회원분들을 보면 다른 분들도 주저하지 말고 빨리 시작하셨으면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다. 사랑을 주며 함께 놀아주던 ‘애완동물’의 시대가 가고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 ‘반려동물’의 시대가 왔다. 시대를 반영하듯 신조어도 생겨났다. 바로 펫팸족, 즉 반려동물을 뜻하는 ‘펫(pet)’과 가족이란 뜻의 패밀리(family)를 합쳐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로 반려동물을 생각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혼자 사는 인구의 증가가 불러온 문화현상. 시니어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식과 가족들이 떠난 자리, 반려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의 ‘혼남’ 신중년 주병진
펫팸족의 위상은 요즘 TV를 틀어 봐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타기 시작한 JTBC , 채널A 는 최근 펫팸족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다. 특히 의 출연자 중 주병진(56)은 혼남(혼자 사는 남자의 준말) 신중년 펫팸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주병진의 200평대 펜트하우스에 웰시코기 세 마리가 입양해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병진은 신중년 나이답게 서툴지만, 정성껏 반려견들을 돌본다. 입양에서부터 배변 운동, 강아지 발톱 깎기, 목욕하기 등 소소한 펫팸족의 일상이 지나간다. 무엇보다 관심가는 부분은 회가 거듭할수록 주병진과 집의 표정이 훈훈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 없이 사람 혼자 살던 집에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들어와 서로 교감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배운다’는 설정이 펫팸족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환상을, 펫팸족에게는 공감을 주고 있다.
시니어 펫팸족을 찾아서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거주하는 박성천씨(朴性天·78)는 말 그대로 펫팸족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개를 무척이나 좋아해 100평 단독주택의 방 하나를 개집으로 쓸 정도였다. 일본과 부산에 족보 좋은 미니어처 핀서가 있다기에 쫓아가 구매했다고. 유명한 명견대회에서 기르던 개가 챔피언을 해 전국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부업으로 강아지 분양도 하고 명견대회에도 틈틈이 참여하면서 개 없이는 못 사는 인생(?)을 살아왔다.
박성천씨는 작년 말 지금까지 개들을 키워온 실력을 바탕으로 양재동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반려동물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최연장자 반려동물 관리사 1호’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반려동물관리사는 집을 비우는 반려인들(반려견과 생활하는 사람)을 대신해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주는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도 박성천씨는 반려견을 관리하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박성천씨는 지금도 역시 반려견과 함께 산다. 이른바 시니어 펫팸족. 아내와 함께 15살 된 푸들 다다를 키우며 살고 있다. 아들, 딸들을 시집장가 보내고, 교수 만들고 나니 집에는 아내와 다다 그리고 박성천씨만 남았다. 그래도 집에 들어올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고 혹시나 아프면 안부를 물어오듯 핥고 바라봐주는 다다가 있어 즐겁고 행복할 따름이다. 박성천씨는 반려견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애완견이었지만 지금은 반려견이라고 불러요. 보살핌보다는 같이 사는 가족의 의미를 부여한 거죠. 그러니까 반려견과 함께 살려면 무조건 사랑하고 인내해야 해요. 그리고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유행이라고 마구 사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박성천씨는 반려동물을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왜 같이 사는지 묻고 싶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들이기 전, 자기와 가족 모두가 한 생명체를 책임질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먼저 판단하기를 당부했다.
최근 분노조절장애(충동조절장애)로 인한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아버지도 경찰 범죄심리분석관의 범죄 행동분석 결과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에도 충동조절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병을 앓던 50대 남성이 식당에서 흉기를 들고 ‘묻지마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과연 이 충동조절장애는 무엇일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
흔히 일반적으로 분노조절장애 혹은 분노충동조절장애라고 부르는 이 질병을 의학계에서는 충동조절장애라고 이야기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방화, 절도 등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려는 충동을 자제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 해결하는 경우가 반복될 때 충동조절장애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충동조절장애는 이것보다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단일 질환이 아닌 자기 조절의 어려움이 많은 대부분의 경우를 포함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파괴적 행동을 반복하거나, 각종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등 행동이나 정서적으로 자기조절이 어려운 경우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생물학적, 사회 심리적 요인 등 복합적으로 작용
그렇다면 충동조절장애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현장의 의료진은 충동조절장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공통적으로는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하는 정도다.
생물학적으로는 뇌의 변연계와 안와전두엽 부위의 기능장애, 세로토닌 신경전달이 감소한 경우가 흔히 원인으로 거론된다. 또한 과거의 뇌 손상, 두부 손상, 뇌염 등과도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환경적, 사회심리적으로 볼 때는 아동기에 알코올중독, 학대와 방임, 부모 간의 불화 등이 많았던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이 장애가 더 흔하게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실제로 초등학생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 역시 아동기에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벌을 많이 받았다고 진술했다.
지속적인 음주, 충동조절장애 유발할 수도
노화와 충동조절 장애는 상관이 있을까?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김선미 교수는 “노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지만, 술과 같은 독성물질을 만성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발병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라고 설명하고, “섭취 기간이 늘어날수록 뇌의 기능 저하를 일으키면서 충동조절장애의 유발인자로 작용할 수 있어 위험합니다”라고 경고했다.
치매 등의 퇴행성 뇌 질환에서도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노인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서 우울감과 함께 분노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중에서도 전두측두엽치매는 기억력 저하보다 충동과 행동조절의 어려움, 성격변화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초기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런 증상이 의심되면 진단도구로 신경인지검사와 함께 뇌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 단층촬영) 등의 뇌 영상 촬영이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중독도 충동조절장애 증상
충동조절장애의 증상으로는 단지 화를 참지 못하는 것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나 적대 행동도 증상 중 하나고, 폭력 행동이나 파괴적 행동, 방화, 도둑질도 이에 속한다. 특히 병적인 도박은 충동조절장애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로, 도박중독의 치료 역시 충동조절장애 치료에 기반을 둔다.
최근에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터넷 중독이나 컴퓨터 중독, 게임 중독, 쇼핑 중독 등도 의학계에서는 충동조절장애로 보고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충동조절장애를 진단하는 특이한 검사법은 딱히 없는 상황. 다만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혈액검사, 뇌파검사, 뇌 영상 검사(MRI), 심리평가, 고위인지기능검사 등이 진단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방방법 역시 딱히 알려진 것은 없다.
충동조절장애의 치료는 질환별로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인지행동치료, 분석적 정신치료, 지지치료, 상담 등)를 병행하는 방법이 가장 흔히 이용된다.
때에 따라서는 약물치료도 겸하게 되는데, 우울감이나 분노, 충동성 등을 조절하기 위해 항우울제, 기분 조절제, 항정신병 약물 등의 다양한 약물이 치료에 이용된다.
활발한 활동이 정신건강 유지 비결
김선미 교수는 이러한 정신건강의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활동이 좋다고 조언한다.
“시니어들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질병, 퇴직으로 인한 경제력 상실, 배우자의 죽음, 신체적 능력 저하 때문입니다. 또한, 신체적 노화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자아존중감이 상실되며, 가정, 사회에서의 역할 상실로 인해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자원봉사, 종교생활, 평생교육, 재취업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삶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인대학이나 복지관 등의 시설을 이용해 꾸준히 평생교육을 받거나 취미, 운동, 종교,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며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복지전문가 이호갑(李鎬甲, 59)씨는 이렇게 자기를 소개한다. “10년 삼성의료원 짓고, 10년 삼성 노블 카운티 짓고, 10년 운영했습니다.” 간단하지만 한 문장에 30년 노하우가 들어 있다. 그런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곳은 또 다른 노인복지의 실험장이 되는 강남시니어플라자다. 30여 년 노인복지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이호갑 관장과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인연은 7년 전, 강남구가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자문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관장은 삼성생명 공익재단 상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강남구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남은 모든 게 달라야 할 것이다. 다른 지역 노인복지관이 경로잔치를 열어주는 등 혜택만 주는 서비스를 해왔다면, 강남은 노인 나름대로 재능을 펼치고 활동적인 노후를 위해 즐길 수 있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자문역할을 해줬던 시설이 이 관장이 몸담은 강남시니어플라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오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삼성생명 공익재단 상무 자리에서 물러나고 6개월 뒤인 2014년 8월 14일. 강남시니어플라자 관장으로 첫 출근했다.
“처음 왔을 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일 큰 문제가 타성에 빠져 있는 운영방식이었습니다.”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설립 목적은 노인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활동적인 노후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운영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근 첫날 이 관장 눈에 보였던 것은 융통성 없는 사무실 배치였다고.
“조그만 건물에 사무실이 세 개였습니다. 첫날 오자마자 벽을 부숴 사무실을 트고 세 개였던 사무실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소통이 빨라졌죠. 회원들에게도 눈에 보이는 변화를 드린 겁니다.”
“왜 난 자꾸 대기 번호에서 밀리는 거요?”
이 관장의 파격적인 행보는 부임 일주일 뒤에도 이어졌다. 바로 강남시니어플라자 회원들과 가진 간담회였다.
“이곳에서는 회원이 즉 고객인데 고객의 소리를 종합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더군요. 180개 강좌의 반장과 총무 등 60여 명이 모여 그간 필요했던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것 빼고 웬만한 의견은 수용했다. 간담회 이후 이 관장의 집무실도 회원과 소통을 위해 개방했다.
“회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수업 등록 대기자 관리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다른 지역에서 온 노인이 ‘하모니카가 배우고 싶은데 세 번이나 밀려서 배우지 못했다’면서 삿대질을 하고 막 화를내시더라고요. 강남구민은 정회원, 다른 지역 구민은 준회원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비율이 각각 85퍼센트와 15퍼센트입니다. 정회원 우선으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하고 대기자 관리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강좌 등록을 몇 번 해도 수강이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대기자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이용할 수 있는 교실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였다. 생각보다 이 관장이 제시한 방법은 간단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주변 카페나 기타 공간들을 찾아 비어 있는 시간에 시니어들을 위한 교실로 이용했다.
“회원들의 소리를 최대한으로 반영해 드렸어요. 그랬더니 회원들도 ‘뭔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구나’ 생각하시더라고요.”
두바이에서 찾아낸 ‘강남스타일 에이징’
30여 년 노인복지전문가로 살아온 이호갑 관장. 삼성을 나온 이후에도 노인복지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취임 한 달 뒤인 2014년 9월,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열린 메디컬시티 국제상업학술대회에 초대돼 ‘고령화 현상과 한국의 사례, 삼성 노블 카운티’에 관한 연설을 하게 됐다.
“관장 취임 전에 초청됐고 발표자여서 꼭 가야 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40분 동안 영어로 발표했습니다. 영어가 늘 쓰는 언어도 아니고 말입니다. 발표하고 나서 바로 질문받기 전에 무대에서 나오려는데 한 사람이 ‘I have a question.(질문 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터번을 두른 아랍사람이었다. 당황도 잠시,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한 뒤 질문을 이어나갔다.
“한국의 장기요양보험에 관해 물어봐서 답을 해줬더니, ‘감사합니다’라 말하고 앉는 겁니다.”
한국어로 질문했던 사람은 알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병원장이었다. 그는 한국인 수간호사 두 명과 함께 일하는 것도 모자라, 아침마다 한국어로 회의한다고 했다.
“그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강남시니어플라자라는 노인시설 CEO고, 강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강남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학술대회 끝나고 나왔더니 나를 다 알아봐요. ‘강남 스타일’이라며 말입니다. ‘강남 스타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문득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노인종합복지관의 선두주자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념을 ‘강남스타일 에이징’이라 부르고 이 안에는 ‘나눔, 봉사, 참여’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쉽게 말해 강남스타일로 늙어가려면 나누고, 봉사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남시니어플라자에는 사회에서 득을 크게 본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든지 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거죠. 나눔을 실천해야 그게 진정한 행복입니다.”
‘강남스타일 에이징’을 확립하고 강남시니어플라자 홍보를 시작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최근에 은퇴한 60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복지관은 7, 80대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60대 은퇴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가 그 소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이 관장은 ‘관장님과 함께하는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매월 회원들과 가깝게 만나고 있다.
“지난번에는 회원 7명과 함께 영화 을 봤습니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첫마디가 ‘Love and work, work and love. That's all there is’입니다. 은퇴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여행하고, 자원봉사 다니는 겁니다. ‘일’은 활동을 하는 거죠. 이렇게 시니어들의 노후에는 그런 사랑과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이 보여주더군요. 그게 바로 나눔, 봉사, 참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관장은 강남스타일에이징에 걸맞은 사업을 펼치기 위해 작년 3월 ‘강남스타일시니어봉사단’을 만들었다.
“회원 수가 1만 명이 넘는데 봉사하는 인원은 100명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강남스타일시니어봉사단’입니다. 그리고 버스 두 대를 대여해서 음성 꽃동네 견학을 갔습니다. ‘자원봉사를 진짜 이런 마음에서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음성 꽃동네 견학 이후 봉사단 배가운동을 펼쳐 지금은 봉사단원이 300명에 달한다. 또한 자원봉사단 규모를 1004명까지 늘리자는 의미에서 ‘1004 프로젝트’도 펼치고 있다.
“물론 별 관심 없는 분들도 있고 관장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루아침에 될 문제가 아니고 서서히 의식을 바꿔드리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시니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확실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봉사단을 300명으로 늘려놓기는 했는데 봉사할 곳을 개발해야 한다. 이곳 강좌에서 배운 능력으로 다른 곳에서 가르치는 것 또한 봉사다. 봉사의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요즘 큰 관심사라고 이 관장은 말했다.
롤모델은 언제나 아버지, 아버지
이 관장 주위에는 이렇게 노후에도 자원봉사와 꾸준한 사회 참여로 건강한 삶을 사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버지다. 이 관장의 아버지 이형재(李衡在, 90)씨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꾸준히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자원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교사 시절 좋아하던 술도 끊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관장은 아버지께 용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들이 삼성 상무였는데 말이다.
“언젠가 서울역 근처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방송인 송해씨와 아버지가 스쳐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도 BMW(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삶, B 버스, M 지하철, W 걷기)를 실천하며 사시잖아요. 매일 일하고 자원봉사하니까 90세가 되어도 정정하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노인이 돼서 일하고 자원봉사하는 게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구나, 집에서 느끼는 거죠. 물론 내가 노인복지에 관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산 모델이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이 관장은 강남시니어플라자 관장 자리에서 내려와서도 노인복지와 실버타운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실버타운 건설과 운영에 관한 전문 서적을 집필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분야가 노인복지 분야가 아닌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노인복지현장을 누빌 이호갑 관장의 미래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드리는 바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암환자의 투병 수기를 보면,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더니 암 판정을 받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힘든 암 투병 과정과 함께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 사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만큼 암은 무서운 질병이니까. 하지만 간혹 해피엔딩도 나타난다. 첨단 기술과 의료진의 노력, 거기에 약간의 운이 작용하게 되면 이상적인 결과를 나타낸다. 분당차병원에서 만난 김주항(金周恒·63) 교수와 그의 환자 강옥선(康玉善·60)씨의 이야기가 그랬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암 판정을 받고 나서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해왔던 미용실도 그만두고 곧 죽을 텐데 다 무슨 소용인가 했습니다. 그렇게 8년을 춤추고 노래만 하면서 시간만 보냈습니다.”
논산에 살고 있는 강옥선씨가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2004년 6월의 일이다. 그해 2월 15일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이다. 처음엔 주위에서 낯빛이 안 좋다, 목소리가 변했다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6월 4일 병원을 찾아 일주일간 검사를 받았고, 폐암 4기를 선고받았다.
다른 환자와 다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는 정말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폐암은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뉘는데, 그중 비소세포폐암은 조직형에 따라 선암과 편평상피세포암, 대세포암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강씨가 걸렸던 폐암은 선암(腺癌)으로, 통계에 따르면 선암 4기의 일반적인 생존기간은 6개월이고, 5년 생존율은 2%에 불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장 바로 뒤쪽에 자리 잡은 종양은 주변 장기에 영향을 줬다. 이미 림프절과 간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처음 찾았던 지역 종합병원에서는 무조건 수술부터 하자고 했죠. 하지만 수술하면 숨을 못 쉬는 것 아닌가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주변에서 좀 더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해서 집에서 먼 거리를 감수하고 통원치료를 시작했어요. 항암치료라는 걸 시작한 거죠.”
하지만 항암치료는 쉽지 않았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짧게 잘라야 했고, 온몸이 붓기 시작해서 주위에서 못 알아볼 정도였다. 물론 치료제가 투약될 때마다 따르는 통증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2년간 14번의 항암제를 맞았지만 고통의 감수에도 불구하고 차도는 거의 없었다. 또 한 번 실의에 빠져야 했다.
기적처럼 만난 표적치료제
그때 김주항 교수가 제안한 것이 표적치료제다. 당시만 하더라도 표적치료제는 학계에서도 대중화하기 전이었고, 당연히 임상 시험 중에 있었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김주항 교수는 ‘종양선택적 살상 아데노바이러스’의 개발 등 새로운 항암 치료에 대한 업적으로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까지 수상한 이 분야의 권위자. 생소했던 이 치료제를 강씨가 치료받을 수 있었던 것도, 예후가 좋았던 것도 행운이 따랐던 셈이다. 물론 이 정도 행운으로 이겨내기에 암치료는 만만한 것이 아니지만, 다행히 조금의 행운은 더 있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 행운은 이렇다.
“강씨에 투여된 표적치료제는 모든 환자에게 잘 듣는 특효약은 아니었습니다. 폐암 중에서도 선암 환자에게만 잘 듣고, 그중에서도 아시아계, 즉 황인종이어야 했습니다. 또한 여성이면서 비흡연자여야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약이었는데, 바로 강씨가 딱 들어맞는 환자였던 것이죠. 게다가 표적치료제의 경우 1년 정도 투약하면 저항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10년 이상 저항성 없이 복용할 수 있었던 것은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어머니의 투병 때문에 두 딸은 모두 의료계 종사자가 됐다. 어머니의 투병을 돕기 위해 큰딸은 늦깎이 약대생이 되어 지금은 약사로 활동 중이고, 막내딸은 작업치료사가 됐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은 포기하다시피 했었지만, 두 딸은 어떻게든 공부를 가르쳐야겠다고 맘먹었죠. 다행히 두 딸도 제 뜻을 잘 따라 다른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물론 제 건강도 두 딸이 살뜰히 챙기고 있습니다.”
지금 강씨의 폐 속에는 단 하나의 암세포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그렇게 얻은 새로운 삶을 그녀는 봉사하는 데 보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들을 돕고자 하는 생각에서다. 사실 이런 새 삶을 사는 데는 딸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현실에서 도피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노래가 또 다른 인생의 키워드가 된 셈이다.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간암 판정을 받고,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될 줄 알고 8년을 지역 복지관에서 노래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기만 했는데, 큰딸이 그렇게 노래가 좋다면 강사가 되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노래해야 살 수 있다고. 그래서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 노래강사 지도학과를 수료하고 2013년부터 지역에서 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 강옥선씨는 살고 있는 논산의 행복마을 희망복지관에서 지역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매주 두 번씩 노래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노래교실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지역 노인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을 모아 악보를 함께 보며, 노래방 기계의 힘을 빌려 강의를 진행하는 형태다. 하지만 강씨 스스로 요즘 노래들을 다른 곳에서 배워 와 강의할 정도로 열정은 대단하다.
투병 통해 긍정적 사고 중요성 깨달아
“노래를 하고 있으면 쌓인 것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주변에서도 노래할 때 가장 얼굴이 환해진다고 하고요.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노래와 투병생활을 함께 하다 보니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죠. 죽는다는 생각만 했을 때는 그야말로 지옥과 다름없었거든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똑순이처럼 오늘이 최고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김주항 교수는 강옥선씨 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폐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흔히 폐암은 흡연으로 인해 생긴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선입견이 되레 환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죠. 강옥선씨와 같은 폐의 선암 환자는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인데, 매연이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적 요인 때문이 아닌가 추측할 뿐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편인데, 1~2기 정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약 70%는 완치할 수 있지만, 실제로 초기에는 발견이 매우 어렵습니다. 폐암의 조기발견을 위해서는 매년 한 번씩 저선량 흉부 CT를 촬영해 검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금연해야 합니다.”
흔히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법을 캐치볼에 비유하곤 하는데, 논산 복지관의 노래교실에서 강씨의 수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 캐치볼이 생각났다. 공을 주고받듯 노래 한 마디, 한 소절을 주고받는 그녀의 모습은, 투병의 절망을 벗어나 희망이 담긴 이웃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보였다.
“이 더위에 슈트차림하고 나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아마 눈에 확 띌 겁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정갈한 슈트차림에 중절모와 나비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중년신사가 유유히 걸어온다. 시원하게 쭉 뻗은 다리와 꼿꼿한 자세, 힘 있는 걸음걸이는 그야말로 모델포스가 넘친다. 그의 말대로, 아니 그의 말보다 더 확실히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한해 시니어 모델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라 9편의 광고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뽐낸 곽용근(76)씨다. 남다른 표현력과 연기력으로 광고뿐만 아니라 가수 이효리와 김완선의 뮤직비디오, 각종 영화와 연극 등에 출연하며 그 누구보다 활기찬 인생2막을 살고 있는 그다. 얼핏 보면 유머러스한 생김새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그도 수년간의 연습과 노력 끝에 지금의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고. 젊은 모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만의 끼와 열정으로 경쟁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한양대 화공과를 나와서 어엿한 기업의 임원자리 까지 올랐었다. 이후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어디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서 일하자 해서 일했는데, 거기도 환갑이 다 돼가니 나가라더라. 그래서 뭐라도 시작하려면 컴맹은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서 노인복지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모델 수업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준비해서 2004년에 처음 보험 회사 지면광고를 찍게 됐다. 정말 내가 이렇게 살 줄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다.”
현재의 모습이 이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
“모델일 자체나 하는 과정에서 힘든 것 보다 이 일을 결정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환갑이 지나서 ‘내가 무얼 할까’, ‘제2의 인생으로 태어나면서 어떻게 태어날까’하고 생각이 많았다. 긴 고민 끝에 ‘이 길로 가야겠다’고 목표를 정한 뒤에는 연극을 처음 시작했다. 당시 또 한 가지 힘들었던 점은 집에서도 반대했다는 거다. 말 안 하고 있다가 방송에 나오면 놀라곤 했다. 처음에는 창피하게 그런 일을 한다고 마누라가 나무라면 ‘그래도 이렇게 살아야 내 인생은 즐겁고 행복해.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지 당신 체면 차린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냐’라고 했지. 자식들도 사돈댁에서 알까봐 부끄러워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
‘시니어 모델’이라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
“나는 내 몸이 자산이다. 내 몸이 망가지면 모델일도 연기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몸 가꾸는 일은 게을리할 수 없다. 보통 광고를 찍게 되면 여름 제품을 겨울에 찍는 경우가 많아 추운 날씨에도 얇은 반소매 차림에 촬영을 하고 나면 자칫 감기에 걸리고 드러눕기 십상이다. 나이 든 모델은 평소 체력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모델’로서 가장 노력하는 점
“당연히 ‘몸매 관리’다.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하고 등산, 스포츠댄스도 한다. 나이가 들면 등이 굽고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젊은 모델보다 배로 신경 쓰고 노력해야 지금의 몸매와 골격을 유지할 수 있다. 워킹연습도 꾸준히 해야 걸음걸이가 좋아진다. 저기 저 청년보다 내 몸매가 훨씬 낫지 않나?”(웃음)
연기 생활 신조
“두말할 것 없이 ‘감독에게 절대 복종’이다. 광고나 연극은 감독이 그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동선 하나하나를 전부 계산해서 나오기 때문에 내가 끼 부리고 잘난척하면 작품을 망치고 감독의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아무리 젊은 감독이고 나보다 어리더라도 그의 주문대로 하는 것이 좋다. 내 기분이나 상태는 배제해야 한다. 난 그의 주문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오디션 or 캐스팅
“요즘은 감독들이 나를 먼저 찾는다.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섭외 1순위 요소다. 하지만 현재의 캐릭터로 인정받기까지 7년여간 연극 활동을 해오며 안면 표정을 연습해왔다. 물론 오디션에도 떨어져 봤다. 모델로 등단하기 위해 오디션은 필수다. 모델의 끼가 있나 없나, 해당 작품에 어울리는지 여부 등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 특성상 오디션에 떨어질 수도 있는 데 이에 연연하거나 낙담하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짧든 길든 무명시절이 있듯 그 무명시절 속에서도 자신을 가꾸고 준비해야만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영광을 안을 수 있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말처럼.”
촬영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
“이 나이에 어디 가면 대접받겠지만 촬영장에 가면 보통 100여 명의 스태프가 모두 바삐 움직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 하여 나를 특별히 생각하거나 따로 더 챙겨주는 이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어른대접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모두가 함께하는 작업이니까 참아야 한다. 굳이 꼽자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촬영장에서 아직은 매니저나 코디 등 보조 인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고충이 있기는 하다.”
가장 희열을 느낄 때
“단편극 중의 단편극이 광고다. 사진 한 장 또는 30초짜리 영상만을 통해 상대방을 웃기고 감동을 준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흡입력 있고 단숨에 감동을 선사하는 데는 모델의 역할이 크다. 때문에 나 역시 다채롭고 깊이 있는 표정연습에 주력한다. 그렇게 내가 연기한 광고를 통해 많은 사람이 웃고 즐거워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되고 뿌듯하다.”
도전하고 싶은 역할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놓친 역할이 있다. 요즘 ‘명량’으로 뜨고 있는 최민식이 연기한 충무공 이순신 역할이다.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수염도 길러봤는데. 하하하. 전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대 역적 역할을 맡은 적 있다. 그런 것도 좋고 왜적장수 역할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안 해본 연기가 거의 없다. 연극을 통해 기본기와 안면표정, 제스처 등을 연마했기 때문에 어떤 배역을 하게 되도 자신 있다.”
언제까지 모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년 1월에 이태리에 갈 거다. 국내에서도 열린 적 있는 세계양복맞춤협회가 주최하는 런웨이가 이태리에서 열리는데 그 무대에 서기로 했다. 여러 나라 사람들도 올거고 젊은 애들도 많이 올 텐데 내가 거기서 좀 뻐기고 와야 하지 않겠나. 매일 워킹연습하고 체력도 키우고 있다. 꼭 그 무대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 몸이 따라주는 그 날 까지는 일을 계속 해 나갈 거다. 죽는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만큼 나는 내 일에 취해있고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시니어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열과 성을 다하면 성공하기 마련이지만, 모델일은 그 무엇보다 ‘끼’가 중요하다. 끼가 있어야 연기도 더 개성 있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의 끼를 발견하고 그 끼를 남들에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체력관리도 해야 하고 워킹연습, 대사연습, 표정 연습... 연습 또 연습해야 한다. 이 일의 장점은 ‘자유직업’이라는 것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더 많은 역할에 도전해 볼 수 있고,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 ‘이 일로 얼마를 벌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어떠한 역할에 대한 도전정신과 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수입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돈이나 캐스팅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 이 일을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곧 행복을 낳는 거위다.”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 입안자들이나 사회복지 연구자들은 노인을 인구통계학적 인식 대상으로 본다. 성별로 나누고 소득수준으로 가르며 돌보미 유무를 파악해, 어떤 대상을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으로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노인은 언제나 보이는 대상으로 물성화될 뿐,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의 저서 ‘퇴적공간’의 일부다. 그는 우리 사회 노인들을 ‘시대의 강물에 떠밀려 잉여의 존재로 퇴적공간에 쌓여 있다’고 표현했다. 한때는 사회의 주역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던 그들이 이제는 ‘잉여’로 전락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 ‘잉여’로 남아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전문가들의 견해와 조언을 들어봤다.
글 한국노인상담연구소 김은주 소장
어느 시군이나 노인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공원이 있다. 종로 탑골공원, 청주 중앙공원, 인천 자유공원, 안산 화랑유원지, 수원 장안공원 등엔 특히 건강한 남자 노인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 제36조에 의해,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저소득이거나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 외에 건강한 노인을 위한 여가시설인 노인복지관이 없는 일본이나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경로당에 대해서 경외롭다고 외치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놀라울 만큼 건강한 노인들을 위한 많은 여가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든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우선, 아무리 많은 여가시설을 설치해도 현재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에서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젊은이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노인들도 또 젊은이들도 원치 않는다. 마치 장애인들과 섞이는 것을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도 서로 원치 않는 것처럼. 우리는 현재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계층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순식간에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만 65세 이상으로 구분하여 서비스 제공의 자격을 구분하는 법과 제도가 많을수록 우리는 노인을 우리와는 다른 계층으로 분리시키게 된다. 노인복지법이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경과 특별대우를 제도화 할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지원제도가 좋아져도,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외국에서는 ‘노인’이라는 기준과 용어를 없애고 ‘senior citizen(선임시민)’으로 시민으로서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분된 노인이 아닌 통합된 시민으로서 자연스럽게 마을주민들, 젊은이들, 아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를 활성화 할 제도가 필요하다. 마을 단위에서 노인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지원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과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인은 다른 계층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우리자신의 모습이다. 노인이 행복해야 우리의 내일이 행복하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금 노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덧붙여,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여가복지시설들이 지나치게 일원화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노인복지관은 여가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길 원하는 다수의 여성노인들이 중심이 된다. 소극적이고 대인관계에 서툰 남성노인들에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복지관 분위기는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꺼려진다. 누구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특화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발적인 커뮤니티센터 등 노인복지법의 노인여가시설이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비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간다. 배움은 먹고 살 수 있는 기회와 기술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삶의 보람이자 유희로서도 기능한다. 이러한 배움의 기능은 노년기에 속한 이들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을 일한 분야에서 나와야 하는 그들로서는 먹고 살 경제활동을 하려면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또한 퇴직금과 안정된 연금 디자인으로 경제적 문제가 없는 시니어라 할지라도, 교육은 그들의 삭막할 수 있는 나머지 삶의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노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한국에서 평생교육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더위보다 뜨거운 배움의 열정 ‘인생학교’
일이든 취미든 스스로 삶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시니어의 모습은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롤모델이 된다.
여전히 가슴 뛰는 열정으로 꿈꾸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과 우리나라에서 배움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 어디일까? 입시에 모든 걸 걸고 있는 학원가?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배움은 제도에 적응하기 위한 강제적인 행위인 경우가 많다. 진정 배움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정말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뜨거운 열망을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닌 ‘평생교육의 장’ 노인복지관이다. 그러나 현장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보건사회연구원 통계지표가 보여주는 65세 이상 시니어들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7%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황남희 인구정책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요인은 개인의 경제 수준 및 교육 수준, 다른 사회참여 활동으로 확인됐다. 인구사회학적 요인을 통제한 후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요인을 살펴보면, 월평균용돈 및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평생교육 참여가능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교육 참여자의 1인당 연간 투자비용이 평균 21만 원으로 소액이다.
황 연구위원은 노년층이 중요한 인적자원이라는 공동인식을 갖고 노년기 평생교육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복지법과 평생교육법에 의해 정부 주체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 분리되어 있어 노년기 평생교육은 여가복지만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분리되는 교육기관에서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교육부의 평생교육법에서는 대상이 법조항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혼선 때문에 실무적으로 노년층은 평생교육법에 의한 평생교육의 대상이 아니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시니어 관련 분야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은퇴자나 명예퇴직, 베이비부머세대들은 기존의 주교육 대상인 청년층과는 다른 특성이 있으며, 특히 생애주기 특성상 신체적 건강수준과 교육에 대한 심리상태, 관심영역 등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및 지원, 교육하는 자에 한해 시니어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과목의 추가이수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황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인생학교를 통해 평생교육이 반드시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
“학창시절 즐겨 부르던 팝송노래를 배우면서 친구도 사귀고 건강도 챙기니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만난 김복순(71)씨는 셔틀버스로 이곳에 와 각종 건강·복지 프로그램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김씨는 “하모니카, 생활영어, 요가 등을 배우고 물리치료를 하거나 야외에서 조깅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분당에 사는 이모(76)씨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몇몇 친구들과 매일 이곳에서 만나 놀고 밥먹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별로 운영하는 시니어건강복지센타는 병의원과 협약을 맺어 신경과·정형외과·치과·안과 ·한의원 등 진료 과목별 정기검진 시스템도 구축됐다. 무료 건강검진 혜택부터 인생과 세무·법률·재테크 등 전문분야별 상담도 펼쳐진다.
전주에 있는 꽃밭정이 노인복지관에는 요가, 라인댄스, 근력강화운동 등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사교성을 높이는 활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탁구장과 당구장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전북에만 특성화되어있는 순환운동(맞춤식 운동법)과 본인에게 맞는 맞춤 운동법으로 6개월 동안 집중관리를 해주는 프로그램 등이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미 마을의 모임터로 자리매김한 복지관은 무언가를 배우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지난 해 베이비부머의 행복한 내일 만들기를 돕는 ‘내일행복학교’를 열었다. 내일행복학교는 은퇴 후 새로운 배움을 통해 흥미롭고 설레는 노년을 기획하고자 한다거나, 지난 평생을 일과 가정에 몰두한 자신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휴식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를 꿈꾸는 베이비부머를 위한 교육과정이다.
내일행복학교는 연간 총 5기가 진행될 계획이며, 각 기수별로 총 5개 과정(노년설계아카데미, 창업아카데미, 직업전문아카데미, 창의직업아카데미, 힐링아카데미)이 포함되어 있다. 바리스타 교육, 설문조사원 교육, 영상제작 교육, 소자본창업 교육 등 각 과정은 중복 수강도 가능해, 다양한 경험을 희망하는 베이비부머에게는 희소식이다.
워킹, 요가, 바리스타, 네일아트, 색소폰, 요리교실, 도슨트 등 평생교육은 다각화 중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인 여가복지시설인 노인복지관·복지센터가 7곳으로 가장 많은 강남구는 총 현재 340여개의 노인 여가·학습 프로그램이 분기별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 강남시니어플라자는 강남구의 고학력, 고소득 노인들이 복지관 이용에 가지고 있던 기존 선입견을 없애고자 2011년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로 개관해, 노인복지관 최초 실비이용과 프로그램 질적 수준 업그레이드 등을 시도했다.
운영 초기에는 실비이용에 대한 거부감 등 주민들의 민원제기가 빈번했으나, 개관 3년 만에 이용회원이 7000명이 이르는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다.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복지관을 넘어서 도서관에서도 제공되고 있는 양상이다. 관악구에서는 2011년부터 노인 자서전 발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24명의 자서전을 발간해 도서관에 비치했다. 그 외에도 도서관은 인생이모작의 기회로도 역할하고 있다. 구로구는 지난해 시범 운영을 거쳐 지역 복지관까지 확대해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서 들려주는 옛이야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개설한 ‘이야기활동 전문가 3급’ 과정은 55세 이상 노인 3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최근 평생교육의 커리큘럼은 생활영어, 팝송, 요가, 바리스타, 네일아트, 댄스, 동화 구연 등등 다종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평생교육이 단순히 소비만 이뤄지는 소비의 장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도와주는 생산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다.
이처럼 평생교육의 효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평생교육이라는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우선 성별로 보면 여성, 소득 수준 및 건강 상태가 좋은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이는 노년층 평생교육의 중요한 조건에 생활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연령집단별로는 65~69세가 7%, 70~74세가 8%, 75~79세가 7%, 80~84세가 5%, 85세 이상이 2% 수준.
교육 참여빈도는 주 2~3회가 4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이 주 1회로 37%였다. 노년층의 평생교육은 생활의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운영되는 경우의 호응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 제공기관은 노인복지관 46%, 시‧군‧구민 회관/동‧읍‧면 주민센터 18%, 종교 기관 16%, 사설문화센터 및 학원이 5% 순이었다. 각 지역의 노인복지관은 지역에서 기업이나 종교 기관에게 수주를 줘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맡는 곳의 성향에 따라 노인복지관의 운영하는 양상도 달라진다.
참여 프로그램은 여가 및 취미가 43%로 가장 많았고, 일반 교양 21%, 건강 관리‧운동 20%, 정보화 13%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육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향후 평생교육 정책 개선에서는 노년층의 교육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는 지난 26일 용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사 임직원과 배우자, 자녀들이 함께하는 ‘가족봉사캠프’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80여명의 녹십자 가족 봉사단은 이날 캠프에서 동그랑땡, 메추리알 어묵조림, 오이소박이 등의 밑반찬을 만들어 용인에 거주하는 100여명의 독거노인에게 직접 배달했다.
이번 봉사캠프에서는 녹십자의료재단 의료진이 참가해 노약자를 대상으로 혈압, 골밀도, 청력, 복부초음파 검사 등의 건강상태를 검진하는 의료봉사도 진행됐다.
한편 녹십자는 1992년부터 불우이웃돕기의 일환으로 매년 연말에 ‘온정의 바자회’를 개최해 오고 있으며, 연 12회의 ‘사랑의 헌혈’ 행사, 폐교 위기에 처한 ‘신갈야학’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