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여름밤, 진하해수욕장에서의 남녀 신입사원들을 위한 캠프파이어는 현란했다. 어둠 속에서 익명성이 확보된 100여 명의 격렬한 댄스파티는 젊음의 발산 그 자체였다. 그중 열정적이고 현란하게 춤을 추어대는 한 여직원의 실루엣이 너무 멋있어 끝까지 따라가서 얼굴을 확인해보니 순박하고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익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실감했다. 그리고 이어진 장기자랑에서는 흥이 오른 젊은이들이 끼를 경쟁적으로 선보여 필자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필자도 용기를 내어 국통과 식기를 악기로 삼아 중모리 12박을 치며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목청껏 불러댔다. 개성적인 민요가락에 빠진 남녀 신입사원들의 호응으로 심사위원들은 1등상을 줬고 부상으로 큰 밥솥을 탔다.
어깨너머로 배운 민요와 북장단
필자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훨씬 전인 1954년 혹은 55년경으로 기억된다. 밤이면 외양간이 딸린 우리 집 사랑방으로 아버지 친구분들이 몰려오곤 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환담을 나누면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던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말라붙은 정서를 되살리는 수단으로 북장단과 민요와 창을 배우셨다.
국악 선생님 한 분을 초청하여 우리 집에 모시면서 밤이면 민요와 북장단을 상당 시간 배우셨는데 나는 어깨너머로 익혔다. ‘궁궁딱 궁또드락 똑딱 궁궁딱 궁궁궁’, 소위 중모리 12박 장단은 밤마다 배워도 어르신들은 많이 틀리셨는데 필자는 어렵지 않게 익히고 반복하곤 했다.
1000회에 가깝게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는 우리 한민족! 민중의 삶이 피폐하고 삶의 뿌리가 흔들릴 때마다 건전한 일상을 회복하고 즐거운 정서를 고양하기 위해 민요를 만들고 발전시켜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리랑만 해도 같은 3박 세마치장단에 300종류가 넘게 만들어져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고 2012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 것이리라.
우리 가락의 멋과 흥
대형 조선소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봄가을이면 대형 선박을 발주한 여러 나라의 해운회사들이 선박 건조 현장에 파견한 감독 혹은 검사원들을 야유회에 초청하여 한국의 산하와 문화유산을 보여주곤 했다. 동해안을 따라 울산에서 감포항으로 야유회를 가던 때 한국 민요의 장점과 특징을 설명할 기회를 가졌었다. 서양음악은 4분의 3박, 4분의 4박, 8분의 6박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한국의 민요는 훨씬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민족의 정한(情恨)을 표현함을 설명했다. 또한 한국인이 많이 부르는 아리랑만 해도 지역마다 달라 그 종류가 30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아리랑의 뜻이 무엇이냐는 외국 선주 감독들의 질문에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가락’ 혹은 ‘고난을 삭이고 승화시키는 가락’이라고 말해줬다.
어느 해 가을,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해 직장이 있던 동해안 쪽 울산에서 천리길을 차로 달려 서해안 쪽 고향 영광 집에 도착하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와 계셨다. 이내 부친과 두 분이 북장단에 민요를 교대로 부르기 시작하셨다. 민요장단을 익힐 좋은 기회여서 부친과 담임선생님이 민요를 부르실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모리와 중중모리 장단을 쳐드렸다. 북이 자꾸 발에서 빠져나가려고 해, 장단을 치며 북을 끌어안으려 애를 쓰니 두 분 모두 웃으시며 즐거워하셨다.
그 후 영화 가 나와 장님이 된 누이가 민요를 부르고 남동생이 북장단을 치며 서로 회포를 푸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민요와 가락을 익힐 기회를 더 엿보게 했다.
정년퇴직 후 달려간 민요교실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가까운 신당5동 주민센터에서 민요·장구를 가르치는 것을 알고 바로 등록했다. 남자보다 여자 회원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민요와 장구를 익히기 시작했다. 노랫가락,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 등 여러 박자들의 민요 7곡씩을 조합해 교본을 만들어 매번 반복해가니 익히기 좋았다. 2년 정도 하니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민요를 부르며 장구를 동시에 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모리 12박에 맞춰 부르는 금강산타령 등은 소리를 올리고 내리고 감고 꺾는 내용들이 악보에 없어 따라 하기 힘들었고 가사 또한 많은 분량이라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장구 치는 것은 북장단 익힌 경험이 도움이 되어 따라갈 수 있었다. 지금도 이곳에선 수요일과 금요일 2시간씩 민요·장구 배우는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있다.
민요·장구 모임도 결성해볼 테다
경기도 용인으로 생활의 터를 옮겨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가까운 곳에 노인복지관이 들어섰다. 약 60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민요·장구가 포함되어 있어 기뻤다. 가르치는 선생님에 따라 장점들이 다름을 새삼 느꼈다. 빠른 자진(잦은)모리장단의 경복궁타령과 잦은 뱃노래는 매우 흥겨웠고 굿거리장단 4박에 실린 창부타령의 가사들은 민족의 애환을 다양하게 담고 표출함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해 말에 60개 프로그램 단체공연을 할 때 10여 명이 무대에 나가 배운 민요들을 부르며 흥을 돋우어줬다. 청중석에서 나와 어깨춤을 추는 관중도 있어 민요의 힘과 전파력을 느낄 수 있었다.
민요·장구도 좋은 취미로 익히고 만들려면 역시 지속성과 성실성이 필요하다. 집 가까운 노인복지관에서 경제논리로 폐강이 된 후 집에서 좀 멀지만 다른 지역의 주민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선 금요일 초급반과 월요일 중급반으로 2시간씩 운영되어 좋았고 선생님은 또 다른 개성과 장점이 있었다. 특히 굿거리장단의 다양성을 익히도록 매번 반복하여 민요를 부르고 장구를 힘껏 쳐대면 일주일의 피로가 풀리며 심신 건강을 위한 보약을 먹은 기분이 된다.
1996년 부친을 위한 칠순잔치 때 국악인을 불러 부친과 고향 친구분들을 즐겁게 해드렸다. 내년 필자의 칠순 날이 오면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을 불러 노래와 한민족의 영원한 고향노래인 민요들을 같이 불러볼까? 이를 위해 작년 말에 어떤 모임에서 불렀던 중모리장단의 ‘한오백년’ 과 처가 마을에 가서 담 쌓는 봉사를 하면서 목청 돋워 불렀던 ‘창부타령’을 즐겁게 다듬어 가보자! 그리고 전 직장동료들 취미모임인 산악회, 역사문화탐방회, 바둑회, 독서문학회에 이어 민요장구회 결성도 건의해보자.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어르신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9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치매 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개인과 가족이 떠안았던 고통을 국가가 나눠지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관심이 치매 치료에 대한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의료계 안팎에서는 벌써 정부의 ‘동기부여’가 효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먼저 지난 9월 발표된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국에 47곳밖에 되지 않았던 치매지원센터의 확대다. 그동안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설치가 집중됐지만, 다음 달부터는 전국 252곳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센터에서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상담과 조기 검진부터 관리, 의료·요양 서비스 연계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 받은 상담 내용은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돼 환자와 가족들이 이사를 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든 연속적으로 관리된다. 센터 안에는 치매 환자 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도울 카페와 인지·신체 활동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단기 쉼터도 만들어진다.
기저귀 구매비용도 지원
중증 치매로 인해 이상행동 증상이 심해 가족이나 일반 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환자는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전국 34개소에서 1898병상이 치매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요양병원은 다음 달부터 79개 병원 3700개 병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위해 정부는 올해 추경에서 2023억원을 이미 집행했으며, 내년 예산안에도 3500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인해 지난 10월부터 중증 치매 환자도 산정 특례 적용을 받게 됐다.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4대 중증질환과 같은 수준인 10%로 경감됐다. 복지부 계산에 따르면 연간 20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지불했던 입·내원일 수 52일 정도의 환자는 앞으로 77만원만 내면 된다.
그동안 신체기능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경증 치매 환자도 장기요양서비스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기요양 5등급을 확대하거나 6등급을 신설해 경증 치매 노인에게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해 시설의 식재료비나 기저귀 구매비용을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 음악, 원예 등을 이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66세 이후 4년마다 받는 인지기능검사 주기도 2년으로 짧아진다. 치매안심마을 조성 사업과 치매 파트너즈 양성 사업도 확대된다.
한의학계, 치매 분야에 높은 관심
치매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의학계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방 치매 치료의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는 데 애쓰고 있다. 최근 부산시 한의사회는 초기 치매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로 판정된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 중 80.5%(161명)이 인지기능개선 효과를 보였고, 환자 중 82%가 치료 재참여를 희망했다.
또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는 ‘한방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노년기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다.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과는 서울시와 함께 ‘어르신 한의학 건강증진사업’을 통해 한방 치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한의학계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치매 국가책임제에) 한의사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에 대한 관심 증가는 치과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치매 구강건강정책 테스크포스팀을 통해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책 제안서 제작을 결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도 치매 다뤄
최신 IT 기술도 치매 진단과 치료에 나서고 있다. 류호경 한양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팀은 최근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은행 ATM, 대중교통 이용 등과 같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하고, 참가자의 움직임 분석을 통해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방식은 진단 과정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기존 진단 방법은 설문 문항을 시험지처럼 작성하는 방식인데, 질문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인공지능 ‘왓슨’과 유사한, 치매를 치료하는 인공지능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가천대 길병원은 뇌 질환 진료지침 정밀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일종의 뇌 전문 인공지능 의사로 디지털 뇌 영상 빅데이터를 구축해 암 치료에만 적용됐던 개인 맞춤형 정밀의학을 뇌 질환 치료에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치매의 조기진단이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가천대 길병원은 지능형 뇌과학연구센터·뇌과학연구원·가천뇌건강센터를 설립해놓고 기술 개발에 대한 역할 분담과 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조선대학교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등과 함께 딥러닝 기술과 컴퓨팅 인프라, 뇌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뇌 영상 분석 인공지능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간한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은 1년 동안 413잔의 커피를 마셨다.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4년에 비해 30% 이상 성장한 6조441억원 규모다. 이렇게 시장이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니어들도 커피를 기호식품이 아닌 사업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심 걱정도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카페가 즐비한데 인생 후반전의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커피는 신맛이 나면서 약간 과일 향도 느껴지네요. 먼저 마신 것과 완전히 달라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 현장. 한 참가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평가한다. 같은 원두로 내린 커피인데 로스팅(수확한 커피콩의 맛을 내기 위해 열을 가하는 과정)과 분쇄에 따라 달라진 맛을 보고 감탄한다. 이들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막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이다.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은 최초의 시니어 대상 커피교육 과정으로 꼽힌다. 2010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지금은 이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활동하는 카페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의 첨병 역할
이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니어 커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교육기관인 50플러스센터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관이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육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도 시니어 대상의 커피교실을 개최한 적이 있다.
시니어들의 이 뜨거운 커피 열기를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관계자들은 청년들의 관심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리스타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서울남부기술교육원 관계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니어 입장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카페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리가 나면 취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카페를 창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또 반드시 직업이 아니더라도 모임이 많은 노후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죠.”
시니어 대상 커피 교육이 활성화된 데에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커피를 유용한 노인 일자리 대책의 한 분야로 판단한 것도 영향을 줬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강한 근력을 요구하지도 않고,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많다. 실제로 부산시나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에는 시니어 바리스타를 고용한 ‘실버 카페’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공공기관에도 커피를 마시려는 수요가 존재하고 카페는 큰 예산 마련 없이도 어렵지 않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 지역 내 사회복지관 등 교육기관과 연계해 시니어 바리스타를 수급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건물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한 문화재 시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카페 창업 전망은 어떨까
시니어에게 카페 창업은 취미와 직업이 결합된 로망 중 하나로 꼽힌다. 매장이 클 필요도 없다. 가져가는 손님만 상대로 하면 그만이다. 꼭 대로변 임대료가 비싼 곳일 필요도 없다. 동네 단골이 생기면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해보인다. 최근엔 장비 값도 내려가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식당이나 술집에 비해 노동 강도도 낮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있는 카페를 유지해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유럽의 바리스타 교육관이자 시험 감독관인 신림 마티스커피 심병준 대표는 두 번 세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많은 시니어에게 카페 컨설팅 의뢰를 받는데 대부분 쉽게 생각하고 찾아와요. 커피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죠. 처음에 익히는 것이 힘들지, 알고 나면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매우 쉬워요.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고, 이미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내려간 상태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창업 자본을 까먹기에 딱 좋죠.”
커피가 시니어들에게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고객층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인형뽑기방이나 빨래방처럼 장비만 놓으면 그만인 분야와는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니어들도 커피를 많이 즐기지만, 카페의 실질적인 고객층은 20~30대예요. 그런데 이들 입장에서 접객인이 나이가 많으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바리스타를 고용할 때 청년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 시니어가 운영하는 카페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에요. 따라서 ‘내가 어른인데’ 하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시니어가 가진 강점을 개발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커피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카페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공부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커피시장이 시니어에게 틈새 없는 레드오션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커피시장이 만들어낸 일자리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퇴직 전 근무하던 분야가 무역과 관계되는 일이었다면 커피를 거래하는 일에 뛰어들어도 된다. 커피는 원유와 함께 선물시장에서 취급되는 주요 상품 중 하나다. 또 해외에서는 커피머신을 전문적으로 세척, 수리, 세팅하는 엔지니어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커피머신의 조정 값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예 커피콩을 직접 키워볼 수도 있다. 온난화하는 기후 탓에 국내에서도 커피콩 생육을 시도해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 어떻게 배워야 할까
커피를 배우는 과정은 워낙 다양해 꼭 집어 무엇이 옳다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커피시장을 이끌었던 유명 바리스타들의 학원식 교육과정도 있고, 대학 교육과정도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커피를 배울 수도 있다. 단국대학교에는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가 운영 중이다. 학교가 부담스럽다면 앞서 설명한 각 지역 50플러스센터나 기술교육원,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강의를 찾아 들어도 된다. 일부 문화센터도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커피 관련 자격증 중 국내 자격증은 모두 민간 자격증이기 때문에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취업을 하거나 카페를 창업하는 데 필수도 아닌 데다, 업계에서도 자격증에 따라 크게 대우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바리스타를 중심으로 바리스타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 추출 실력이나 자신만의 원두를 혼합한 블랜딩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계기로 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도 있고,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이런 대회는 시니어 바리스타 상대로도 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노인고용 주간을 맞아 ‘시니어 바리스타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커피를 어디서 배우느냐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계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쉽고, 커피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커피와 함께 고객을 유인할 상품이나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치열한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그녀들은 신인 걸그룹 같았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기 장기를 펼쳐 보인다. 뭘 그리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기 바쁘다. 만화 그리기에 푹 빠져 결국 그룹을 결성해버렸다는 시니어 만화 창작단 ‘누나쓰’. 잠깐 동안의 취미거리로 잊혔을지 모를 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으로 알게 됐다는 만화. 이제는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으로 만화가 자리 잡았단다. 당돌, 저돌, 돌격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니어 걸크러시와 한바탕 떠들었다.
요즘 내가 제일 잘나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카툰캠퍼스 사무실. 만화를 매개로 한 교육 사업을 하는 이곳은 ‘누나쓰’가 만화를 배우고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최근 ‘누나쓰’ 멤버의 활동상이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디어와의 접촉도 많아졌다. 취재가 있었던 8월 중순에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팀이 다녀갔다. 카메라 앞이 낯설 법도 한데 곧바로 이어지는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이 전문 만화작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나쓰’는 그럼 어떤 시니어가 모여 탄생했을까?
노영자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서 ‘시니어 만화창작교실’이라는 수업을 받았어요. 기초반 3개월을 거쳐서 심화반 3개월, 총 6개월이요. 처음에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선생님들 열의가 대단하셨어요. 수업에 빠진 적도 없어요. 수업이 다 끝나고 나니까 너무 아쉬웠어요. 그림 좀 그릴 만하고 관심이 좀 싹트려 할 때쯤 과정이 끝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와서 사정을 했어요. 우리 버리시지 말라고요. 옷자락 붙잡고 사무실까지 쫓아갈 거라고 했어요(웃음). 만화는 아직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뭐든지 상상만 하면 꿈도 그릴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2014년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카툰캠퍼스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했던 만화 자서전 교육이 ‘누나쓰’가 생겨난 배경이 됐다.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눠 체계적인 만화 그리기 작업을 2년간 진행했다. 만화자서전을 넘어 창작 영역에도 재능을 보이는 시니어를 발굴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후원으로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 교육의 장을 옮겨와 6개월 과정의 교육을 이어갔다. 만화 교육을 다 마치고 못내 아쉬웠던 열혈 시니어가 카툰캠퍼스 사무실로 찾아와 만화를 배우고 싶다며 애원을 했다. 새로운 세상에 눈뜬 시니어를 외면할 수 없어 카툰캠퍼스는 자체적으로 만화에 관심 있는 시니어 7명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왁자지껄 개성 강한 시니어 카툰 걸크러시 ‘누나쓰’가 지난해 7월 15일 결성! 카툰캠퍼스도 ‘누나쓰’를 만나면서 시니어 교육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 있단다.
김경자 작년 10월에는 빼꼼공원(경기 부천시 역곡동)에서 ‘누나쓰가 간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 캐리커처를 그려드리기도 했어요. 12월에는 작품집 을 냈고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전시회도 했어요. 아동센터, 복지관, 노동복지관 등에서도 캐리커처 봉사를 했어요. 다문화 가정 엄마들 얼굴을 그려줬는데 제 생각에는 타국에 와서 가족들이랑 떨어져 사니까 외롭잖아요. 일부러 입술도 빨갛게 그려주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려줬어요. 얼굴을 더 화사하고 밝게요.
‘누나쓰’ 인생에 색깔을 입히다
‘누나쓰’는 7명으로 구성됐다. 7명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과 꿈을 담아 만화 작업을 한다. 퇴직 교사인 김옥순 작가는 만화를 통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오래오래 보면서 자식으로서 보답을 했지만 아버지께는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한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취재 날 개인 사정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춘자 작가는 천재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만화작가로 성장했고 한 은행 사외보에 인터뷰도 실렸다. 서영희 작가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병을 알리고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나가고 있다.
서영희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요. 2010년도에 발병했는데 육십이 좀 넘어서 발견했어요.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떨리기 시작했어요. 이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요. 고치지 못하는 병이구나 했어요. 제가 처음 파킨슨병 약을 먹으면서 겪었던 얘기를 만화로 그렸어요. 약을 3개월 먹으니까 얼굴이 커지더라고요. 너무 독해서요. 잠만 자고요. 그 이후 약을 또 먹어야 하는데 약만 받아놓고 먹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다리도 떨리고 가족들이 속상해 난리가 났어요. 우울증도 생겼고요. 그러다 큰 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하고 약을 바꿨더니 괜찮은 거예요. 어차피 치료받을 생각이면 마음을 바꾸자! 치료를 받으면서 감사의 씨앗을 찾고, 울고불고하면서 짜증내고 화내는 대신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했어요.물론 재활을 염두에 두고 하는 활동은 만화 외에도 많아요. 합창, 핸드벨, 우쿨렐레, 난타 등이요.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만화를 그리는 동안 제 손이 떨리지 않아요. 밤 9시면 자던 사람이 새벽 2시고 3시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해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평온이 찾아오는 느낌이거든요. 요즘에는 음식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 레시피를 모아서 만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누나쓰’ 멤버에 들어온 이영희 작가와 차영순 작가 또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영순 작가의 경우 5년간 다져온 사진 촬영 실력으로 멤버들의 사진을 도맡고 있다. 누나쓰 멤버들은 처음 시작할 때의 작품과 지금 작품을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한 모습에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만화 박람회에도 나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또 박람회에 온 관객들 얼굴도 그려주고 봉사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누나쓰’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하고 있다. ‘누나들의 밥상’이라는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 인터넷에 연재 중이다. 시니어가 살아온 옛 추억이 담긴 이야기도 실리고 있다. 격주로 누나쓰 멤버가 한 작품씩 쓰고 있고 10월에는 이 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아직은 그저 색을 칠하고 자신의 얘기를 하는 정도라 말하지만 시니어 세대가 관심 가져볼 만한 무한의 장이 만화가 아닐까. 아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는 시니어의 입을 통해야만 그 맛이 나고 한결 담백하다.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만화 영역에는 늘 시니어의 따뜻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누나쓰’라는 이름을 걸고 시니어 프로만화가로 제대로 거듭날 그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발표한 노인 관련 공약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지난 4월 발표된 ‘어르신을 위한 문재인의 9가지 약속’이라는 공약을 보면 기초연금 매월 30만원으로 인상, 치매 환자 국가 관리, 틀니 임플란트 본인 부담금 절반으로 절감,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 보청기 비용 보험 확대, 경로당을 생활복지관으로 리모델링, 농산어촌에 100원 택시 도입, 어르신 일자리 확대 및 수당 인상, 독거노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 9가지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초연금은 하위 소득 70%여야 하는데 거기에 못 낀다. 치매는 아직 염려할 나이가 아니다. 틀니보다는 임플란트가 더 효과적이니 틀니는 아예 해당 없고 임플란트는 아직 대상 치아가 없다.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는 스스로 정기검진을 받고 있고 온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을 비울 때가 대부분이라 역시 해당 사항이 없다. 보청기도 아직 해당이 안 된다. 경로당에 갈 나이도 아니다. 농산어촌 100원 택시는 도시민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어르신 일자리 확대 및 수당 인상은 해당이 되지만 아직 변화가 없고 두고 볼 일이다. 독거노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제공도 아직은 이르다. 그러므로 필자에게는 대부분 해당이 안 되는 정책들이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실제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 돈이 들어가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숙제다. 이렇게 노인복지를 확대하자는 데 한편으로는 지하철 노선이 적자라고 애꿎게 노인 무임승차가 그 원인이라며 경로우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호스피스 재택 방문 서비스, 독거노인 피부양자 제도 등의 개선이다. 빠르게 진전되는 것 같다. 노인일자리는 현재 지킴이, 도우미, 돌봄이 범주에서 벗어나 직무 중심의 민간 일자리 확보가 바람직하다. 방향도 복지와 함께 직무 중심의 시장형 노인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발표로 작년 노인 일자리 사업의 67.7%가 공익활동인데 보수가 12년째 월 20만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간 분야 일거리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포털 사이트 회사에서 노인들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하는 인터넷 회사는 매출이 급증했다는 등의 좋은 사례를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급격히 인상된 최저 임금제의 역습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아파트 경비원 감원 등도 문제로 보인다.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인생 3모작’을 들고 나온 것은 귀 기울일 만하다. 인생 2모작은 이미 광범위하게 퇴직 후의 인생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인생 3모작은 새로 나온 용어로 65세 이상의 노인도 생산 가능 인구의 범주로 보고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50~60대를 ‘신중년’으로 보고 취업성공 패키지의 사각지대에 있던 중위소득 초과 ‘신중년’을 대상으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중년 인생 3모작 패키지’를 내년부터 신설한다고 한다. 노인도 실업수당의 대상이 되며 노인을 고용할 경우 장려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사회공헌에서 재능기부도 자원봉사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하고, 정부로부터 받는 소액의 활동수당도 사회공헌형 일자리와 공익형 노인일자리를 확대하기로 했다. 공익형 노인일자리 수당은 올해 22만원에서 2020년 최대 40만원까지 높인다고 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렇게 급속한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수명연장의 측면도 있지만 출산율 감소도 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고령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침체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그동안 건축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니어들에게 주거문제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시니어들 중에는 70대 어르신도 있다. 요즘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교육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시간 많고 배움의 열정이 있는 시니어들에게 아주 적절한 실질적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움직이고 전공과 다른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평생 일했던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시니어들은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즐겁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34년 개띠이시니 올해 만으로 83세가 되셨다. 미술을 전공하셨지만 생계문제로 평생 나염공장에서 도안 일을 하셨다. 주로 여성옷의 다양한 문양 디자인을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미 문양이 많았다. 큰 도화지에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장미꽃을 가지런히 반복해서 그리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공장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작업실 벽에는 아버지께서 그리신 꽃문양 그림이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미대를 지망하려 하자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때는 원망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염 공장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 되었지만 아버지는 칠십대 초반까지 일을 하셨다. 그만큼 나염 계통에서는 도안사로서 유명하셨고 다행히 시력도 좋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칠십대 중반에 퇴직하시고 나서는 실버택배 일을 하셨다. 소득은 많지 않지만 매일 만보이상 걷게 되므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셔서 반대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폭우로 계단에서 미끄러지셨고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셨다.
그 후 동네 노인 복지관에서 일본어, 수채화, 동양화, 서예 등을 배우신다고 하셨다. 서양화를 전공하셨으니 기본이 잘되어있어서 수채화 반 선생님 밑에서 조교 활동을 하셨다. 그러다가 수채화 선생님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선생님 공모를 하게 되었다. 그 때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추천하였고 아버지는 조교에서 선생님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 때 아버지 연세가 80이셨다.
노인복지관의 취미 반은 어떤 분위기일까 늘 궁금했었다. 특히 아버지가 가르치시는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림 그리는 열기가 대단하다. 대부분 할머니 학생이다. 선생님 아들이 왔다고 박수도 쳐 주시고 커피도 타 주시고 토마토도 썰어주신다. 벽에는 학생들이 그린 작품을 빽빽하게 붙여두었다. 저건 내 그림이다, 저건 누구 그림이다 하면서 자랑을 하신다. 반 이름이 그냥 수채화 반이라고 해서 ‘민들레 반’으로 이름을 지어드렸더니 다들 좋아하셨다. 필자가 도화지에다가 민들레 그림을 그리고 민들레 반 학생들의 건강기원 글을 캘리그라피로 써 드렸다. 그림을 그리는 필자 주위로 할머니 학생들이 몰려들어 “부전자전 이네” 하신다. 필자의 그림도 벽에 걸렸다. 참 오랜만에 수채화 붓을 들어보았다.
민들레 반 학생들을 보면서 고령사회를 사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더 멋진 삶을 살고 계신다. 여학생들이 삶의 에너지 지수를 엄청 올려줄 것이다. 민들레 반 분위기를 어머니가 보시면 상당히 질투심이 생기실 것으로 우려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아니, 그 많은 할머니들한테 뭔 점심까지 다 사주고 그러냐!”
어느 날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삶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책상 앞에 앉았다. 펜을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볼까? 하지만 손에 들려진 펜은 곡선을 그리다 갈 길 몰라 방황한다. ‘그것참, 글 쓰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에 도전했다. 생활의 활력이 생기더니 내가 변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성장하는 감동 스토리도 하루하루 글로 쌓여갔다. 이웃들의 정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부천 글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원미동으로 향했다. 마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방송사 드라마 세트장 방문만큼이나 기대됐다. 양귀자의 소설 의 배경이 된 이곳에서 글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부천시 원미 2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반. ‘글쓰기 모임’ 강좌가 열린다. 강좌가 이어져온 지도 어언 6년. 수필집도 5권이나 출간했다. 등단한 회원, 부천 지역신문 시민기자가 된 회원, 이 강좌에서 공부한 것이 바탕이 돼 뒤늦게 대학 공부를 하는 회원도 생겨났다.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길을 찾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보다 빛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부천시 글쓰기 모임은 부천시 평생학습센터 특화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는 강좌 중 하나다. 원미동 글쓰기 모임 외 시(市)의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강좌는 몸을 움직이고, 발산하는 활동 프로그램. 글쓰기 모임을 6년간 이끌고 있는 박창수(52) 작가는 이 모임이 꽤나 희귀하다고 설명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6년 동안 모임이 이어져오는 것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19명의 회원이 글쓰기 모임의 문을 활짝 열었다.
노년의 글쓰기는 힐링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등단보다는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문학에 도전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는 데 의미를 둔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의 기본 바탕은 ‘힐링’이라며 방점을 찍는다.
“글쓰기는 힐링 단계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글로 쓰는 연습을 하면서 풀어나가요. 그다음이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죠. 우리 수강생들 중에는 사실 상처받으신 분들도 많아요. 다 큰 자녀가 죽었다든가,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치유하고 가슴을 여는 것이죠.”
글쓰기를 하고 50세가 넘어서야 대학 공부에 도전한 회원도 여섯 명이나 된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 회원 개개인의 수필집 발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등단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박창수 작가는 “열심히 글을 쓰고 또 부쩍 글쓰기 능력이 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며 “제대로 된 방법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mini interview
류인록(부천글쓰기모임회장·71)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선물받다
이제 글 쓴 지 5년 됐습니다. 살면서 타자기 한번 못 만져봤습니다. 62세가 돼서야 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습니다. 독수리 타법 면한 지는 오래됐어요. 그리고 포토샵(사진편집 프로그램)과 파워포인트도 배웠어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오면 포토샵 스위시로 사진들을 꾸밉니다. 사별하고 저 혼자 산 지 꽤 됐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까 세상 지루한 줄 몰라요. 지금은 우리 원미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해요. 글쓰기 교실도 다니고, 주병률 시인에게 시를 배우러 다닙니다. 취미생활이 또 하나 있어요. 여행을 다니는 겁니다. 작년에 홍도에 다녀왔고, 제주도, 안동 이육사 문학관, 영월에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글감이 나오더라고요. 기행문 쓰는 게 좋아요. 제 입장에서 쓰기가 좀 쉽더라고요. 그것도 갔다 와서 일주일 안에 써야지 지나가면 금세 잊어버려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원래 운동신경이 안 좋아서 다른 건 별 흥미가 없었어요. 글쓰기를 선택했고 버틸 만했어요. 첫 글을 쓰고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6년 전 먼저 간 마누라에 대한 글이었거든요. 그 글이 실린 책은 우리 마누라 납골당에 넣어두었어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몇 편이라도 더 써서 수필집도 내고 싶고, 시집도 내고 싶어요. 시도 쓰는데 현재 68편을 썼어요. 시집도 하나 내고 싶습니다.
이양순(요양보호사·61) 올 가을에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옵니다
글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기록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2005년도에 요양보호사가 된 뒤 만나게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보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이셨는데,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억은 고스란히 안고 계셨어요. 제가 그 일에 대해 당시 글을 써놓았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집회를 TV로 접하다 제가 쓴 글이 생각나서 라디오 방송에 냈어요. 그런데 그게 방송으로 나오더라고요. 2013년도였어요. 방송에 채택된 뒤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거 행복합니다. 제 재능에도 놀라고 기억력은 한계가 있는데 글로 기록해놓으면 안 잃어버리니까 좋고요. 요즘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글감이 좀 많거든요. 아직 미흡해서 걱정입니다. 가을쯤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온다고 하는데 고민됩니다. 물론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광이지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대도 됩니다.
며칠 전 77세의 집안 형님과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형님은 77세이지만 신체 건강하고 노인복지관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문 등 *쉼 없이 공부도 하는 신세대 노인입니다. 지혜도 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고 평소 생각했던 분인데 술이 취하자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나이 탓인지 술 탓인지 애매하지만 필자는 나이 탓이 더 크다고 봅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너무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날 일어난 일은 대략 이렇습니다. 누구나 술을 먹다가 시간이 흐르면 소변이 마렵습니다. 그날 형님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음식점에서 공동 화장실 열쇠를 받아 나갔습니다. 화장실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건물 경비를 만났다고 합니다.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자 70대의 경비가 “찾아보세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경비의 태도에 형님은 참지 못하고 화가 폭발했습니다. “이 XX 너 임무가 뭐냐? 고객이 물어보면 성실히 대답을 해야지 뭐? 찾아보라고?”, “뭐? 이 XX? 야! 임마! 저기 화장실이라고 쓴 글씨 안 보이냐? 눈XX은 뭐하러 달고 다니냐!” 하고 서로 주먹다짐이 오가는 걸 내가 뛰어가서 겨우 뜯어 말렸습니다.
고객은 화장실을 처음 물어보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들락거리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상가 경비원 입장에서는 똑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받다 보니까 짜증도 났을 겁니다. 경비원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 ‘화장실’이라는 붉은 글씨입니다. 그러나 알면 잘 보이지만 모르면 앞에 두고도 찾는 법입니다.
직업이 안내 겸 경비원이니까 누가 백번을 물어봐도 백번 대답하겠다는 심정으로 처음에는 입사했을 겁니다. 또 형님도 찾으라니 찾아보지 뭐! 하고 한 번 더 둘러보면서 화장실을 찾았으면 아무런 문제 없었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자주 들고 옳다고 생각하면 목소리를 높여 지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생각이 싸움까지 할 정도로 분노를 일으킵니다.
나이 들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제일 큰 문제가 상대가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 알아 들는 제스처를 취하면 멈춰야 하는데 항복문서를 받을 것처럼 계속 야단을 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젊은이가 새치기를 합니다. 나이 드신 분이 새치기하지 말라고 한마디했습니다. 젊은이는 고개를 숙이며 급해서 이 버스를 타야 된다는 간절한 눈빛으로 사정을 합니다.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넘어가면 좋았을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이 내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상대가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하니 만만하게 보고 이럴 때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큰 소리로 싸가지가 없는 놈이라고 막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내가 언제 새치기했느냐고 덤벼듭니다. 궁지에 물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든다고 지나친 질책이 지나쳐 역으로 봉변을 당합니다.
자기 잘못은 잘 모릅니다. 내가 좀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보통 수준의 생활입니다. 말로는 남의 얘기에 경청하고 좋은 말하고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나이 들수록 점점 꼰대가 되어갑니다. 점점 완고해지는 내 모습에 나도 깜작 놀랍니다. ‘유하게 살자’ 늘 다짐합니다.
우리나라가 초 고령화 사회로 곧 진입한다고 '어쩌면 좋아!' 하는 식의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다년간 복지관에 근무한 관장님이 연사로 나오는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발표를 들어보면 학술 발표장이고 노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발장(場)이였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성공적 노화란 질병과 장애를 피하고 높은 수준의 인지적,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며 활기찬 인간관계 및 생산적 활동을 통하여 삶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목청 높여 주제를 발표 합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노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는 들으나마나 뻔한 소리고 공허하게 들립니다. 나는 속으로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노인복지관에 오시는 노인 분의 평균 연령이 79.3세라고 합니다. 복지관 관장님이 이 분들의 모습을 말하는데 나이든 내가 그 자리에 있기가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노인들이 경로식당 줄서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경찰을 부르고 행사기념품을 받고 다시 줄서서 또 받으시고 서로 싸우고 복지관 바둑알 가져가시고 없다고 새로 사 달라 하신답니다.
화장실 LED등을 빼가지고 집에 가져가시고 물통을 배낭에 담아 오셔서 복지관 정수기에서 물 받아 가시고 복지관 화장실용 휴지를 통째로 들고 가시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초복 날 식당 대기 줄에서 새치기 막는 여직원 빰을 때리고 복지관 바자회 물품 모아놓은 것 가져가시기도 한답니다. 이를 듣는 대다수 40대의 중장년의 청중 표정에서 어쩜 노인들이 그럴 수가 있어 !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조소의 비웃음이 번져 갑니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이란 연극이 인기몰이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청중으로써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져서 내가 말했습니다. 노인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 노인 발표자가 없는 것을 우선 시정 건의 했습니다. 노동문제를 다루는데 노동자 없이 사용자끼리 공청회 하는 형국입니다. 노인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는 노인을 한 사람 정도는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꼭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유아원 아이도 싸우고 학교폭력도 있고 승려나 목사님들도 서로 싸웁니다. 노인이라 하여 전부 성인군자 같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노인 복지관 평군 연령이 79세라면 절반은 80이 넘은 사람입니다. 이 분들은 6.25를 겪으며 산업현장에서 조국 근대화에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 입니다. 가난해서 물자절약이 몸에 배인 분들입니다. 본능적으로 무엇을 챙기려하고 가벼운 치매증상도 있을 수가 있는 나이 입니다. 우리가 보듬어 주어야 할 노약자들이지 손가락질 하며 흉볼 대상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지하철 공짜에다 고궁이나 문화제 관람 공짜 극장 할인 등 살판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낸 세금으로 노인들이 복지라는 이름의 버스에 무임승차 한다고 세대 간 갈등 운운 합니다. 나는 좀 달리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의 집에 세 들어가면 매월 일정액의 월세를 내야 합니다. 지금의 근대화된 집을 만든 기성세대에 젊은 세대들이 세 들어 살고 집세를 낸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난민들을 보면 우리의 선배님들이 고생으로 이 만큼 만들어 진 집에 우리는 편안하게 세 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먹여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자식이 봉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이 다 못하니 개인은 세금을 내고 국가가 대신 하는 것이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OECD국가 중 노인 자살률1위 노인빈곤 1위가 우리나라입니다. 이제 갓 68세가 된 중학교 교감 출신 여성분이 있습니다. 남편의 병 치례로 전 재산을 다 날리고 가정형편상 계속 일 하기를 원합니다. 컴퓨터와 외국어를 잘 하여 보수는 적어도 취업할 곳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번번이 서류 불합격, 면접 불합격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 합니다. 심지어 정부지원 교육을 받으려 해도 65세가 넘었다고 퇴자를 놓는다고 울상입니다. 나이 65세가 넘으면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고 이방인 취급당하고 바보를 만드는 세상이라고 울먹입니다.
사실 나이가 75세가 넘으면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복지관이나 공원의 벤치로 몰려나오는 노인 분들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봉사활동도 75세가 넘으면 다칠까봐 도와주는 것도 고맙지 않다고 손 사레를 칩니다. 75세가 넘으면 눈과 귀는 노화되고 허리는 굽고 몸은 굼뜨고 판단은 흐려집니다. 생산대열에 참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고 놀고먹는다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우선 노년의 신체 변화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너의 젊음이 네가 잘나 받은 훈장이 아니고 나의 늙음이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는 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장마는 사라지고 연일 태양이 작열한다. 열대야로 잠을 재대로 잘 수 없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뒤척일 수 있어 그런대로 길고 더운 여름밤을 버텨낼 수 있다.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히지만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거실 구석에 하나 서 있고 안방 벽에 하나 걸려있지만 몇 년 째 가동한 적이 없다. 전기세가 문제가 아니라 여름엔 땀을 흘려야 된다는 논리로 가동을 못하게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워낙 필자의 고집이 강경하므로 다들 선풍기로 버티고 있다. 이제 입추도 지났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하니 모두 어이없어 한다.
어제 부모님 댁에 들어서는데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저층 연립주택에 사시는데 앞뒤 동 간격이 좁고 저층이라 집안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다. 선풍기가 몇 대 돌아가긴 했지만 엄청 더웠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두 분이 더위로 고생하시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더니 전혀 문제없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침 드시고 나서 근처 중랑천 변 그늘로 가신다고 했다. 그곳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로 오전시간을 보내신 후 오후에는 복지관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저녁까지 지내시다가 들어오신다고 했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특별한 피서를 하고 계셨다. 그것은 ‘무료 전철피서’ 아주 긴 노선을 택해서 하루 종일 시원한 전철 여행을 하고 계셨다. 우선 아버지 혼자 하는 여행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한다. 중랑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 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탄다. 한 시간 이상 걸려서 수원에 도착하면 인천 행으로 갈아타고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소래포구 시장 구경을 하고 인근 다리 밑 그늘에서 쉬고 도시락을 드신다. 다리 밑에는 의자를 많이 설치 해 두어서 편하고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가실 때는 전철 1호선을 타고 온양까지 가신다고 했다. 온양 온천에는 전국에서 모여 든 노인들이 점령했다고 한다. 온천 후 점심 드시고 시장 구경도 하시고 느긋하게 전철타고 서울에 도착하면 저녁. 하루 여행으로는 제격이고 가고 오는 동안 시원한 전철에서 피서할 수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가끔 복지관 친구 두 분과 전철여행을 하신다고 했다. 일산에 사시는 분이 계셔서 일단 종로3가에서 모인다. 오전 열시쯤 만나서 서울 역으로 이동한다. 서울 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인천 계양까지 가서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탄다. 원인재 역에서 오이도행 열차를 갈아타고 가다가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시장에서 우럭 두 마리를 구입해서 식당에 가져가면 매운탕을 끓여준다. 막걸리 한 병 놓고 식사하신 후 시장 구경하고 노선을 거꾸로 타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1인당 회비는 이만 원인데 몇 천원이 남는다고 한다.
전철피서의 하이라이트는 춘천 행 열차를 타는 것. 춘천 역에 내리면 인근에 닭갈비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신다. 식사 후에는 닭갈비집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승합차를 타고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유명한 박사동네, 소양강 처녀동상, 소양호를 두루 구경한다. 구경 후에는 춘천 역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준다는데 이 모든 서비스가 공짜란다. 단, 일행이 여섯 명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한다. 그래서 춘천에 가실 때는 여러 명이 모여서 간다고 하셨다.
65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전철 무료서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노인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교통비 부담 없이 시원한 피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노인들의 정신과 육체건강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