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전부터 기부하는 단체가 세 곳이 있다.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은퇴 후 씀씀이가 팍팍해지고 있어 기부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마침 오늘 이웃들에게 미용 기술로 봉사하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지금이라도 뭔가 배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낡은 바이올린을 들고 템즈강 가에서 연주하는 노인이 있었다. 아무도 그 노인의 연주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모자에는 돈이 모이지 않았다. 그의 행색은 남루했고 바싹 바른 몸은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그때 그의 옆을 지나던 한 외국인 젊은이가 다가가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침 산책 중이라 돈은 없고 바이올린을 빌려주면 대신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노인은 곱은 손에서 바이올린을 그 청년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연주를 시작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지나갔던 사람이 되돌아오고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군중들이 알아보고 소리쳤다.
“파가니니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템즈강을 산책 중 가난하고 어려워 보이는 노인을 돕고자 그가 대극장에서 연주하려던 곡을 강가에서 먼저 연주한 것이었다.
군중들은 가난한 악사를 위한 그의 선행에 환호하며 노인의 모자에 돈을 던져 넣었다.
생각만 해도 멋진 장면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나치 치하에서 게토에서 죽어가던 유대인 아이들을 도와 2,500명이나 살린 간호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때로는 관 속에 넣어 또는 시체 사이에 끼워, 음식운반 차량에 숨겨 그 많은 아이를 살렸다. 그때마다 전쟁이 끝나면 부모를 찾을 수 있게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병 속에 넣어 숨겨두었다고 한다.
나치에게 발각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아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사형을 기다리던 중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그 후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 단체에 그 병 속에 적힌 이름들을 보냈고 아이들은 부모를 찾을 수 있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되었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 아니요. 섭섭하지 않아요. 도망쳤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그의 아이들과 같이 나를 찾아오고 손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인사합니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모든 사람이 위험과 공포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에 맞서려면 그보다 더한 가치를 느껴야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나보다 더 똑똑하게 잘살게 키우고 싶어 한다. 위험을 부모가 제거하고 힘든 일을 대신 해주며 아이들을 행복하게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며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웃이 생겨난다. 그보다는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취약계층, 사회적 패자들의 자활을 돕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이종수(63) 한국사회투자재단 이사장 겸 임팩트금융 추진위원회 단장, 남들이 ‘문제없다’를 외칠 때 그는 ‘문제 있다’를 외치며 우리 사회의 궁벽한 문제를 드러내고 찾아낸다. 그리고 해결을 도모한다. 철거민촌 소년이 글로벌 금융인을 거쳐 사회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진솔한 패자부활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별명이 소셜 디자이너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나요.
“패자부활전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격차와 갈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디자인한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빈곤의 사전 예방, 차단을 위해서는 단순히 퍼주기 식의 복지 지원이 아니라 한 사회 생태계 구성이란 전향적-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젠 고기 잡는 도구를 빌려주는 것까지 함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장을 만들고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까지 해야 합니다. 취약 계층 자활도 단순한 지원을 넘어 융자의 시대를 지나 이젠 사회투자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게 제 일입니다. 빈곤도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해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착한 금융 2.0은 복지 측면에서 개인 대상 직접 자금 지원이었다. 3.0은 사업 지원, 사업 아이디어 사전 자문과 사후 사업 멘토링까지 종합관리 시스템으로 패키지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4.0은 투자 생태계 마련, 즉 사회투자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업과 프로젝트를 발굴해 투자하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개인도 종합검진을 미리 하면 중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 빈곤, 취약 계층 발생도 사후 대책을 넘어 문제 요인을 사전에 진단, 예방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취지다. 이 이사장은 사회투자금융 활동의 선구자로서 늘 앞장서 각 단계마다 진화를 주도해왔다.
사회투자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선데요. 사회와 투자라는 용어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만.
“사회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합니다. 그러나 그 예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문제는 너무 복잡해 주는 복지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사회 문제가 경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 방식도 전통적인 복지에 금융경영 등과 같이 시장적인 방법을 융합해 해결해야 합니다. 사회투자는 재원의 선순환을 이루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주는 복지를 넘어 구조와 예방의 사회 인프라를 깔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회간접자본과 같습니다. 다리, 항만 부두 등을 건설하는 데는 당장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사회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패자부활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이고 예방적인 차원에서 지속가능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사업에도 투자하는 등 다층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사회금융기관은 일반 은행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반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수익과 담보를 본다면 사회투자를 지원하는 사회 금융기관들은 그 기업과 프로젝트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과 기업의 철학을 본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재무적 수치나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즉 장애인, 노숙자, 저출산, 고령화, 청년 일자리, 주거 문제, 환경 문제, 자살률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 투융자를 결정합니다. 돈의 회수 가능성을 본다는 점은 같지요. 공익적 개념이더라도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진행하려면 재원의 선순환이 필수이니까요.”
은퇴자들과 매칭 포인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설립한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시니어브리지라는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퇴하였거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하고 논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벌써 400명 이상의 시니어들이 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봉사가 가능합니다. 일정 교육을 받고 커뮤니티를 구성,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돈을 벌어 재무적 성과를 내는 재무적 가치, 사회적 의미를 두고 봉사하는 사회적 가치. 이 중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가치에 점점 더 무게중심을 두게 되더군요.”
당면한 사회 문제 중 심각한 게 양극화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부모의 가난이 새로운 연좌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요즘은 개천의 용을 보기가 힘듭니다. 개천에선 욕만 나오는 세태이지요. 싹수 있는 지렁이들의 신분상승 희망조차 개천 바닥 아래로 봉인돼버린 것입니다. 어느 나라이든 명문대 인재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존재해요. 영국의 이튼스쿨 출신,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 등. 우리 사회의 문제는 갈등과 적대감이지요. 리더들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 개선 등 따뜻한 개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이사장은 “실업, 저출산, 주거난, 장애인 문제 등이 곪아 터지면 결국 빈곤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져 사회적 비용이 더 크게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이라는 책에서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며 “경제적 능력주의 사고는 가난한 사람을 불운한 게 아니라 실패자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체제에선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고, 자선-복지-재분배-동정의 필요성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과연 빈곤을 그들만의 인과응보에 의한 책임으로 볼 것인가.
한 부모가 아이를 서울역으로 데려가 노숙자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산교육(?)을 했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다뤄진 적도 있지요.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만은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복잡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상황이 개인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국민총생산이 성장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외되고 낙오되는 사람들을 보듬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입니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 정신, 커뮤니티 정신이 기본적으로 중요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온통 효율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가 실현돼야 합니다.”
개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사장님도 흙수저 출신의 개천룡이십니다. 어떻게 글로벌 금융인이 되셨는지요?
“사당동 달동네의 철거민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서강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민주화운동을 하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이게 빨간 줄이 돼 국내 일반 직장에 취업이 안 되는 겁니다. 신원조회를 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친구가 권해줘서 우연히 응시한 미국 은행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더군요.”
민청학련 경력(?)이 인생의 장애물이자, 도약대, 두 가지 역할을 했군요.
“20대 때 세상의 불공평,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질풍노도 같았어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제 가난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화가 꾹꾹 쌓여 폭발 직전이었지요. 처음엔 독방에 수감됐는데 매일 고함을 치고 벽을 쳤어요. 3개월 후 잡범들과 합방을 하면서 비로소 제 마음속 억눌린 화가 풀리더군요.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가난이라고 불만을 가졌던 게 사치였던 겁니다. 비교도 안 되게 별별 힘든 사연이 다 있더군요. 그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생각을 했지요. 책으로 배운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그 결심으로 대학생활 내내 구로동 공단에서 야학을 열심히 했어요.”
그 후에도 초심을 잘 유지하셨나요. 젊은 시절의 결심은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요.
“하하. 웬걸요. 몇 번의 초심 재생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레드카펫 깔린 외국 직장에서 고연봉의 좋은 대우 받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7명이나 딸린 해외생활을 하면서 ‘그때 그 마음’이 바래버렸어요. 꿈은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힘들어요. 내 삶은 우연찮게 사건이 ‘사연’을 상기하게 만들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1996년 캄보디아에서 은행을 설립할 때인데요. 가난을 한탄할 틈마저 주지 않는 매정한 세상에 지친 서민들의 우울한 눈동자를 봤어요. 까맣게 잊고 있던,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예전 결심이 떠오른 겁니다. 내 삶을 돌아보게 됐고 사표를 냈지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하지만, 가슴에서 발까지의 결심이 더 힘들더군요. 이후 캄보디아 농촌 빈민을 위한 자활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농촌 빈민 직업 훈련 프로젝트 등 ‘가슴이 시키는 일’에 연달아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내전 등 내부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에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때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영감을 받아 귀국해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 국내에선 개념조차 없는 때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한국형 사회연대은행을 기초부터 공부해가며 시작해 실행까지 도맡아서 했다.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인 에이온코리아 사장으로 계시다 비정부 시민사회 단체인 사회연대은행 대표로 옮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10년간 양다리 기간이 있었습니다. 두 곳이 인근 건물이어서 상호 양해 하에 두 곳의 장(長) 역할을 왔다 갔다 병행했지요. 그러다 사회연대은행 운영이 어려워져 직원 급여도 못 주는 상황에 직면했어요. 3개월 월급 못 줄 땐 가시방석이었어요. 웬만한 직장에서 그랬다면 야단이 났을 텐데, 마이너스통장 쓰면서도 견디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 편하게 지내도 되나 갈등이 생기고, 인간적으로 모순 상황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에이온에 사표를 냈고 마음이 가는 바를 좇고 나니 편해지더군요. 온전한 헌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정한 이익과 불이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결정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버는 거야 옛날과 비교할 수 없게 줄었지만요. 막상 살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아요. 밥값 내던 시절은 잊고 빈대가 되고,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는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고….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조금 벌면 조금 쓰게 되는 게 사람 사는 이치더군요(웃음).”
사표를 쓴 당일에 스페인 산티아고로 직행, 혼자 도보순례를 하셨다면서요.
“모양만 좋은 ‘데코레이션 나’가 아닌 진짜 ‘내 안의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만나기 힘든 게 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요. 자신만이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나는 내 참모습과 일치하는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지지 말자고 결심했지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는 매일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이사장님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패자부활전, 초심 회복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그런가요. 격렬한 희망과 내려놓기, 그것이 제 나름의 인생 지혜입니다. 격렬한 희망이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 기회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하나하나 보면 실패였지만 돌아보니 그게 저수지가 됐어요. 감옥에 들어간 일이나, 젊은 시절의 방황이나 해외 돌아다니면서 은행을 설립한 일이나…. 또 하나는 내려놓기입니다. 돈뿐 아니라 일에 대한 욕심도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따라오더군요.”
이 이사장은 인터뷰 중 일어나더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을 펼쳐 한 대목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이다. 과거를 지움으로써 현재를, 지금을 버림으로써 미래를 들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른 것을 쥘 수 없는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내려놓음은 익숙함에 찍는 단정한 마침표다. 나를 타성, 관성, 습성에 젖게 했던 세상의 기준과도 이별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집에서 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 소셜 디자이너란 별칭처럼 ‘남이 디자인해준 집’에서 사는 것은 재미없기 때문이란다. 아버님(86)은 시력을 상실하시고, 어머님(85)은 치매이시지만 그는 이 역시도 문제로 보지 않는다. ‘노인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인 병환, 공양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 노인들이 어떻게 존엄한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단다. 타고난 소셜 디자이너 이종수 이사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주식을 사고팔고 있습니다. 주식투자가 위험한지를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습니다. 은행이자가 형편없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얼마간의 퇴직금을 은행에 예금하고 그 이자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노인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노년의 삶에서 건강과 경제가 행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 주위의 노인 분들도 자기 돈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자기 돈의 효용가치를 높이기위해서 경제신문을 읽고 방송의 경제 편을 열심히 듣습니다. 여기저기 경제교육에 귀를 쫑긋하고 찾아다닙니다.
경제 전문가는 말합니다. ‘지금은 저축의 시대가 아니고 투자의 시대입니다. 투자는 위험성이 따릅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꼼꼼히 살펴 안전한 장소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백번 들어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인가를 강사는 말하지 않습니다. 강사는 수준 높은 재무 교육을 했다고 몇 십 만원의 강의료를 받아갑니다. 듣고 싶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교육을 합니다. 한때는 주식의 간접투자인 펀드를 권유하다가 본전 까먹는 펀드가 늘어나자 요즘은 파생상품 권유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경제 잡지를 보니 은행에서 거액 예금자를 상대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주는 금융 포트폴리오 전문가 즉 PB(Private Banking)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강남에서는 금융 자산이 최소 10억 원은 넘어야 PB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급 관리센터라고 하면 보통 50억 원은 넘는 고급 고객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은행에 가서 대기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고객이 아닙니다.
일반 서민들은 이런 곳의 PB는 당연히 실력이나 세계의 글로벌 경제를 보는 눈도 대단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PB들도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PB전문가들도 이럴 진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적은 액수의 자산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혼자 끙끙 앓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은행이나 보험회사에 근무한 것도 아니고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스스로 투자처를 찾아서 피 같은 자기 돈을 굴린다는 것은 지뢰밭에서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위험합니다. 부동산에 투자해서 월세를 받는 방법도 향후 부동산경기는 물론 지금의 제세공과금과 수익성을 비교해 봐야하고 월세를 제대로 내지 않는 악성 세입자 관리도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이만큼 세상을 살아 왔으니 기업체의 부침(浮沈)도 많이 봐 왔습니다. 공중 분해된 xx그룹이나 몇 만원 하지 않던 삼성전자의 주식이 100만원을 훌쩍 넘는 모습도 지켜봤습니다. 투자시장의 대표적인 곳이 주식시장입니다. 내가 그런대로 알만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어느 기업의 주식을 여유 돈으로 사서 몇 년간 묵혀두면 효자 노릇할 주식이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콘텍트 렌즈를 찾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그런 주식을 찾기로 했습니다. 책으로 공부도 하고 각종 지표를 보는 법도 터득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확신에 찬 종목을 발견하고 주식을 샀습니다. 며칠간은 잘 올라갔습니다. 은행이율은 비교할 수 없도록 높은 수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과 중국경기의 악화와 환율이 요동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 쳤습니다. 유가는 내려가면 좋은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어 하는 동안에 본전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주식 시세를 인터넷으로 조회하면서 일비일희 합니다. 오르는 날은 기분이 좋지만 내리는 날은 밥맛이 싹 달아납니다. 주가의 변동에 따른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분석하고 내가 믿은 기업이니 두 눈 딱 감고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와 모든 통계는 과거를 반영한 것이지 미래를 보증하지 않은 것이므로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주식투자를 하면서 얻은 교훈은 주식의 주가는 변한다는 진실과 일반인이 주가를 예측한다는 것은 녹녹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주식 전광판의 색깔을 뒤흔듭니다. 주식을 사고파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경제적 동물입니다. 사람 사이의 인정도 돈이 개입되어야 확실히 느낍니다. 돈을 우습게 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도 사회생활 과목에서 경제교육 편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지식이 부족한 노인이 관리하는 돈을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우굴거립니다. 독거노인의 50%가 극빈자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노인의 삶의 매사가 여유롭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 오전’을 거쳐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 존 쿠퍼 포우어스는 노년에 어느 정도의 품위와 행복을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철학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생 오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냐를 찾는 것이 아니고 바람직한 모습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반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이었다면 후반의 삶은 거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전을 사는 어른들은 후배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조언을 한다. 그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후반전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그분들의 삶은 그분들 자신뿐 아니라 젊은이들과 우리 사회에 영향과 축복이 되고 있다. 후배들에게 하는 보배로운(?) 행동이 힘이 되고 후배들은 근사하고 당당하게 여생(餘生)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마중물을 찾게 된다. 은퇴한 고등학교 교장이 정년퇴직한 다음 날부터 학교 청소원으로 나타난 경우가 있었다. 하루에 2시간씩 복도 청소, 쓰레기 줍기 등 청소를 해주는 봉사로 아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을 전해주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일을 할 때, 열심히 할 때 그 일을 사회의 나눔과 봉사에 접목을 하면 더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알기에 남은 삶을 학생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교장선생은 오래 사는 것보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이 간절했기에 그리고 나눔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기에 청소원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
후반전, 이제는 그냥 오래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래 살면서 무언가 배우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나누고 베풀면 배우게 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인생은 무위자연, 스스럼없이 살아가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는 것이 인생 후반부의 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우리는 나눔과 비움의 지혜를 배우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보낼 수 있는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나눔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마음, 웃음, 지식, 말, 손길 등 다양합니다. 나를 위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내가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즉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가진다면 나누는 길이 열릴 것이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와 나눔이 습관이 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손욱 회장은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신이 알고 쌓아 온 것들을 나누고 기부하면 기쁨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많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걸 확인하고 무리한 욕심을 안 부리고 만족할 줄을 알게 되죠.”
만족할 줄 알게 된다는 것,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은 나이 듦에 대해 그렇게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놀 줄 아는’ 멋진 어른이다? ,
“나이 든 분들이 기껏 한다는 게 모여서 골프 가거나 등산하거나, 고스톱 친다든가 하는 정도면…. 사실 우리나라의 현재 은퇴자 문화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하는 놀이가 별로 없어요. 경제적인 발전에 비추어 문화적인 면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백 교장은 은퇴 후 분당FM방송에서 동호인 클럽과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4년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백 교장은 음악애호가로 시작하여 드럼, 피아노, 클라리넷, 콘트라베이스 등 직접 악기를 배우고 밴드를 만드는 것까지 시도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놀지 못한다는 말은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성싶다. 악기는 ‘놀 줄 아는 멋있는 어른’,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은퇴자들이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백 교장은 설명했다. 그리고 제대로 노는 법은 ‘어른다움’을 배우는 일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어른의 길을 가느냐 노인의 길을 가느냐의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잖아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 사회적 어른이 부재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의미 있는 일로 ‘인생의 오후’를 만끽하고 싶다
백 교장은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르비트가 밝힌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세 가지 필요한 것들’의 균형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먹고 살기 위한 수입, 두 번째는 재미있는 일, 세 번째는 의미 있는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가 부족하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되는 것이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과 재미있는 일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고 백 교장은 지적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손 회장은 “노인은 자기만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반면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게 되죠”라고 최고의 노년을 보내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이 좋아하는 건 뭔지를 물어 보세요. CN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가 여가 시간에 TV만 본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모르기에 TV를 보게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저작물을 하나 남기는 것도 모두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노인이 되지 않고 어른이 되는 길, 거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부단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라고 백 교장은 덧붙였다.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가꾸고 노력해야 한다. 오래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서ek
태어나 관계 맺고 살다 죽는 인간의 삶의 경로는 변치 않고 우리는 대체로 엇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간다. 그래서 인지 생의 새로운 국면, 삶의 이정표 앞에서도 우리는 흔한 일상으로 당연시하며 무심히 넘기기 일쑤다.
성공적인 제2인생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다가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가다보면 보람, 나눔, 행복, 소통, 활동, 일, 공부, 참여, 관계, 건강, 취미, 문화, 배려, 승계, 후배교육, 인생 마무리 준비 등 지극히 평범했던 생의 순간들이 어느 새 ‘의미’있는 삶으로 변환되며 인생이 새로운 가치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제2인생을 맞이하려거든 보람, 열정, 관리, 여유, 준비라는 5대 키워드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신중년의 행복은 건강과 취미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하다. 거기다 성찰과 관리를 잘하는 친구와 어울려야 활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즉, 철저한 자기관리와 열정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세상만사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가 비움의 미학을 문화로 채우는 가치 있는 삶으로 발효되기 때문이다.
제2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나 긍지를 갖는 것이다. 학생 때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좋은 학생이고,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의 결정이 옳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베스트 사원이었다. 그러나 정년 후에는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소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오후’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후반전이 낙원이라면 가치 있는 삶을 좇을 필요도, 성찰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일수록 자기를 낮추고 공감하고 배려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공적인 제2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믿음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행복하고 멋진 제2인생이 찾아올 것이다.
‘예술가란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자다. 예술을 나타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의 아름다운 구절은 꼭 인용하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글을 쓰기 전 그 빛바랜 책을 들고 있으면 정말 빛이 난다고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창조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이루어졌다.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행복한 예술가’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상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현대문학의 어머니 故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작가. , 등 따스한 작품들로 사랑받아온 그녀도 작가이기 전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박완서와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이가 있으니, 그녀의 맏딸 호원숙(扈源淑·61)씨다. 호씨가 말하는 어머니 박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다.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신 나의 어머니
1970년 마흔 살의 나이에 소설 으로 등단한 박완서 작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호씨는 어머니가 세상에 알려진 그날이 ‘혁명’과도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화려한 혁명이 휩쓸고 간 다음 날의 허전함처럼, 그녀도 남모를 상실감에 마음을 앓아야 했다.
“예전부터 ‘나는 박수근에 대한 글을 쓸 거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아 올 것이 왔다’ 생각했죠. 이미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어머니였지만, 어쩌면 그 이상일 거란 막연한 예감이 들었어요. 을 읽고 ‘이건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소설일 뿐’이라는 건 알았지만, 도리어 그것이 ‘이제는 어머니가 우리만의 어머니가 아닌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셨다’는 깨달음을 줬죠. 그 깨달음이 저에겐 상실감을 안겨줬고, 어머니가 전과 다르게 행동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식구들의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언덕을 오르내리셨죠.”
가장 평범하고도 가장 비범했던 어머니
박 작가는 한 강연에서 “마흔 살까지의 보통 여자의 삶의 경험을 지금도 파먹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쓰지 않고 보통으로 산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평범한 엄마로 살아온 넉넉한 경험들이 녹아나 그녀의 작품에 온기와 생명력을 더한 것이다.
“어머니는 40세에 글을 쓰셨고, 이미 다섯 아이의 엄마였어요.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 시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갑자기 그런 생각들을 하신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쓰려고 했던 인물이나 소재, 모티브 등을 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해 두셨어요. 어머니는 어쩌면 태생적인 작가였을지도 몰라요. 만나는 이웃이나 집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층을 두지 않고 모두 인격적으로 대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따뜻한 만남을 가졌던 인물들의 캐릭터가 모티브가 돼 문학 속에서는 특별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 거죠.”
엄마의 말뚝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작품은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을 일깨워주는 보드라운 각성제와도 같았다. 호씨는 문학에 대한 어머니의 강한 소명의식이 일궈낸 산물이라 말했다.
“어머니는 40년 동안 단편, 장편, 수필 등을 끊임없이 글을 내시면서 당시의 화제작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요. 항상 시대상을 읽으면서 쓰셨기 때문이죠. 그 시대의 아픔이나 갈등, 문제점, 인간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나치지 않고 어떠한 형태로든 글을 쓰셨어요. 신문 연재소설도 쓰셨는데 산업화 과정에서 피폐해지고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하신 분이셨죠.”
에서 어머니는 딸에게 ‘신여성’이 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를 말하는데, 그녀 역시 교육을 통한 자존감 확립에 가치를 두었다.
“공부를 해서 자존감을 찾고 자유로운 여성이 되는 것이 곧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그렇다 해서 ‘공부해라’라고 말씀은 안 하셨어요. 늘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셨죠. 저에겐 공부하라는 말 대신 을 읽으라 하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저는 그 장면을 상상하다가 그것을 보기 위해 두껍고 글씨가 촘촘히 박힌 책을 읽어냈어요. 그렇게 책을 읽고 나면 ‘아 해냈다’는 승리감이 들기도 했고, 어머니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죠.”
웃음 뒤에 가려진 어머니의 쓸쓸함
유난히 밝게 웃는 사진이 많은 박완서 작가. 푸근한 미소로 기억되는 그녀지만, 호씨는 시간이 흐른 뒤 읽는 어머니의 글에 숨어 있는 슬픔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했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가슴 아픈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의 외로운 감성은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언젠가 을 보는데, ‘아 어머니께서 그때부터 벌써 외로움을 예견하셨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때는 우리 에게 슬픈 일이 생기기 전이었는데도 그런 외로운 글을 쓰셨더라고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이미 70대 노인의 쓸쓸함이라든가, ‘빈 둥지 증후군(자녀 독립 후 부모가 경험하는 슬픔)’ 같은 걸 먼저 느끼신 것 같아요. , 등을 봐도 노년, 중년 이후의 외로움에 대해 많이 쓰셨어요. 근데 그때는 어머니가 외로움에 대해 글을 써도 어머니는 외롭지 않다 생각했었어요. 글은 글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버지와 남동생이 떠난 뒤 찾아온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 작가의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 사람이 슬픔을 극복하고 글로 승화시켰다’는 반응을 보였다. 야속하기만 했다.
슬픔이 가시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호씨는 뼈마디가 녹는 듯한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신의 아픔을 쓴 글이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가 밥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셨어요. 요즘 어머니 작품을 볼때 그 시점을 먼저 봐요. 이 글을 언제 쓰셨는가 보면 그땐 무슨 일이 있을 때였다는 걸 알게 되죠.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그때는 몰랐던 어머니의 감정을 많이 느껴요.”
어머니는 평등주의자
사소한 것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박완서 작가의 통찰력. 세상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봤던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에서 태어난 문학은 삐뚤어지고 모난 우리의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주었다.
“하찮은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대단함, 대단한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하찮음을 단순하게 쓰진 않았어요. 그런면에서 보면 어머니는 평등주의자예요. 잘난 사람도 약한 구석이 있고, 약한 사람도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고, 실제로 발견해내는 분이셨죠. 그 발견이 곧 어머니의 문학이에요.”
‘박완서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지만 늘 겸손을 잊지 않았던 그녀다. 젊은 작가들과 소통하면서도 그들을 거느리려 하지 않았고, 상석보다는 함께 둘러앉아 대등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혼자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으셨어요. 그 겸손함이 과장된 낮춤이 아니라 진실된 느낌이었어요. 자존심을 세울 때는 당당하게 행동하시면서도 항상 다른 이를 존중 하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태도가 제 인생에 가장 큰 교훈이 됐어요.”
문학과 일치했던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생활과 떨어진 문학을 하신 분이 아니셨어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고, 그걸 가장 중요시하셨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셨고, 겪지 않았더라도 작가의 모습과 생각을 바탕으로 상상하셨어요. 그래서일까 어떤 인물도 악인도 아니고 완전한 선인도 아니게 쓰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 작품을 봄으로써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어머니의 작품이 주는 큰 가르침이죠.”
호씨는 “나는 박완서 작품을 읽으며 성장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머니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거고, 같이 느끼고 고민 한 모든 것들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 주셨던 거죠. 어머니의 작품은 그대로 어머니의 역사가 되었고 우리의 역사가 된 거예요.”
어머니와 함께한 행복의 나날들
박완서 작가가 평생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이는 그녀의 맏딸인 호씨였다. 호씨는 그런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담아 책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전에 나왔던 호씨의 책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이야기와 개인적인 글들이 많았던 반면 이번 책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느낀 그리움이 주를 이룬다.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 마당을 같이 가꾸고, 피어나는 꽃을 보며 즐거워했던 거예요. 제가 꽃을 사오면 함께 심고, 그 꽃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그런 날들이 가장 행복했어요. 또, 어머니께서 제가 해드린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해주셨을 때도 참 행복했고요.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거. 그랬던 나날들이 당시에도 굉장히 소중하고 행복해서 깨질까 봐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항상 같이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셨으니까요.”
#연극
죽음을 동경하는 열아홉 소년과 자유로운 영혼의 팔순 노인의 범상치 않은 러브 스토리
콜린 히긴스의 소설 를 원작으로, 자살을 꿈꾸며 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80세 할머니 ‘모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두 사람 사이의 우정, 사랑을 다뤘다. 소년과 노인의 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 유발을 위한 엽기적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다루면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과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되짚어보게 한다.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9일 ~ 2월 28일
가격: VIP 6만원, R석 5만원, S석 3만원
주최: ㈜샘컴퍼니, 국립극장
출연: 박정자, 강하늘, 홍원기, 우현주 등
연출: 양정웅
제작: 돌꽃컴퍼니
문의: 02-6925-5600
#연극
사랑, 그 진실을 찾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불륜’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갈등과 우리사회 ‘사랑’에 대한 본질
“당신은 실수일지 몰라도 나는 운명이에요.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행복해보고 싶어요.”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공연기간: 2014년 12월 31일 ~ 2015년 2월 15일
가격: 지정석 5만원, 자유석 3만5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이다엔터테인먼트
출연: 박원상, 배해선, 홍은희, 최대훈 등 연출 장유정
문의: 02-580-1300
#뮤지컬
전 연령대가즐길 수 있는 영웅이야기
왕위를 둘러싼 끊임없는 음모 속에서, 정의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혁명이 시작된다.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공연기간: 2015년 1월 23일 ~ 3월 29일
가격: VIP석 13만원, R석 11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주최: SBS
출연: 유준상, 서영주, 이건명, 홍경수, 엄기준 등
연출: 왕용범
문의: 02-764-7857~9
#뮤지컬
시간으로 지워지지 않을 명작의위대한 울림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네 연인의 운명과 사랑의 대서사시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9일 ~ 2월 15일
가격: R석 14만원, OP&S석 12만원, A석 8만원, B석 5만원
주최: ㈜쇼미디어그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유)
출연: 바다, 서현, 주진모, 김법래 등
연출: 유희성
문의: 070-4489-9550
#뮤지컬
가혹한 운명, 진실한 사랑을 통한 구원
시대의 운명에 의해 거세당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성공을 이루어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이야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17일 ~ 1월 25일
가격: R석 7만 7000원, S석 5만 5000원, A석 3만 3000원
주최: ㈜HJ컬쳐
출연: 고유진, 루이스초이, 안유진, 이준혁 등
연출: 김민정
문의: 02-588-7708
#뮤지컬 내한공연
1482년, 파리를 뒤흔든 욕망과 사랑 이야기
에스메랄다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콰지모도, 집착의 프롤로, 욕망의 페뷔스. 한 여인을 향한 이들의 엇갈린 사랑
장소: 세종문회화관 대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15일 ~ 2월 27일
가격: VIP석 20만원, R석 15만원, S석 12만원, A석 9만원, B석 6만원
주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출연: 맷 로랑(Matt Laurent), 리샤르 샤레스트(Richard Charest), 로베르 마리엥(Robert Marien)
연출: 질 마으(Gilles Macheu)
문의: 02-541-6236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 입안자들이나 사회복지 연구자들은 노인을 인구통계학적 인식 대상으로 본다. 성별로 나누고 소득수준으로 가르며 돌보미 유무를 파악해, 어떤 대상을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으로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노인은 언제나 보이는 대상으로 물성화될 뿐,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의 저서 ‘퇴적공간’의 일부다. 그는 우리 사회 노인들을 ‘시대의 강물에 떠밀려 잉여의 존재로 퇴적공간에 쌓여 있다’고 표현했다. 한때는 사회의 주역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던 그들이 이제는 ‘잉여’로 전락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 ‘잉여’로 남아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전문가들의 견해와 조언을 들어봤다.
글 ‘퇴적공간’의 저자 오근재 교수
지금의 우리나라 노인문제는 국부창출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경제개발계획이 낳은 사생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노동가치가 바로 교환가치인 돈이 된다. 그들이 노동 현장의 중심에 있을 때 그들의 힘, 시간, 아이디어, 웃음과 친절 등 경제 가치로 치환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팔았다. 그러나 해고되거나 정년이 되어 노동시장으로부터 은퇴한 뒤에 남게 되는 것은 환금가치가 없는 찌꺼기일 뿐이다. 노동시장에서 이루어진 일은 인간가치가 아닌 오직 노동 가치만이 환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찌꺼기들은 강 하류에 쌓아 만들어진 델타처럼 퇴적공간에 쌓여 있다. 그러나 이 퇴적물들이 단순한 쓸모를 다 한 사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노인문제다. 말하자면 이들은 ‘돈 없는 인간’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이고 인간으로서의 설자리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스스로 소외된 존재다.
이것이 오늘의 사회문제를 야기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두 주체가 있다. 그것은 문제의 당사자인 노인들이고 또 하나는 정부다. 노인들 각자가 자신의 노후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져야할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정부가 산업화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사회문제를 거시적 차원에서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예측 가능한 일을 배려하기 전에 산업화의 성과가 먼저 드러났다. 정부가 부조리한 사실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퇴적공간에 잉여인간의 무더기가 쌓여있음을 발견했다.
정부는 뒤늦게 노인복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 성과는 기대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노력 없이 쌓아만 놓아도 불어나는 자본, 부동산 소득, 천연자원이나 물, 공기 등 각종 공공재를 자원삼아 얻어진 이득은 정부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여 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분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복지다. 복지는 정부가 국민 개개인에게 주는 시혜가 아니며 정부가 해야 할 지상의 책무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될 때 노인 문제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갈 것으로 예측된다.
산업화가 소화 가능한 속도로 진행된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으면서도 노인문제가 우리나라에서처럼 심각하지 않다. ‘고인쿄상(ごいんきょさん, ご隱居樣)’이라는 오래된 습속은 노인의 문제를 존경과 안정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잘 정착된 은퇴제도다. 일본인은 대게 전통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가지고 있다. 이들 가게는 가족중심으로 몇 대에 걸쳐서 운영되어 독특한 노하우를 가진다. 오뎅국물은 적어도 3대에 걸쳐 내려와야 드디어 진국으로서의 맛이 난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전통에서 내려온 이야기다.
한 가족의 가장은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딸의 경우 데릴사위)에게 기술과 경영 일체를 전수한다. 시기는 일정하지 않고 형편에 따라 60대 또는 70대나 80대에 전수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들에게 전수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가장의 은퇴 시기다. 이렇게 은퇴를 한 사람을 ‘고인쿄상’ 즉, ‘은퇴하신 어르신’이라 말한다.
은퇴가 결정되면 그때까지 상석에 앉아서 회의를 주제하던 가장은 물러나고 아들(혹은 사위)가 상석을 차지한다. 이때 가장은 회의는 참석하되 평석을 차지한다. 그때부터 모든 의사 결정권은 상속자가 갖는다. 그러나 평석에 앉았다고 해서 해고당한 노동자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예우를 다해 존경하며 의견을 묻고 이를 존중한다.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상왕처럼 예우하고 모신다는 것이다.
’액티브(Active) 5060’. 사회 활동과 소비 활동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행동하는 5060세대를 이르는 말로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5060세대와 그 이상을 겨냥해 서비스와 상품을 쏟아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니어 산업. 그 중심에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있다. 이들은 자산과 소득이 높고, 능동적으로 소비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활동적이면서 건강한 소비그룹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들을 겨냥 하는 것에 군침을 흘릴 만하다.
2006년과 2011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가계자산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의 순자산이 2006년 평균 2억6381만원에서 2011년 3억1116만원으로 18%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베이비부머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시니어 산업의 전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산업의 전망도 밝다.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국가 중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83.8세로 6위(2009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시니어 산업의 수요자가 많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도 시니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한양사이버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김신영 교수가 발표한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 2010년부터 시니어산업이 성장하는 시기로 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소득이 은퇴 이후 활발한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도 희소식이다. 선진국의 경우, 시니어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니어산업의 규모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2011년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 실버세대보다 높은 경제력을 지닌 베이비부머가 65세에 진입하면 국내 시니어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향후 10년간 연평균 14.2%씩 시니어산업이 성장할 것이며, 2020년에는 2010년(약 33조원)의 3.8배인 약 125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치로 본 시니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국내 기업들의 시니어 층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둘씩 이 산업에 발을 들이미는 이유다.
◇ 시니어 산업의 깃발을 선점하려는 기업들
국내 최대 인구집단. ‘베이비부머’는 동시에 가장 큰 소비력을 가진 집단으로 통한다. 잠재적인 거대시장의 기회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여러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는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열었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시니어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시니어들의 불편사항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상품에 반영·생산한다.
GS샵의 시니어 전문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도 지난 해 4월 문을 열었다. ‘오아후’는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의 상담,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GS샵은 ‘오아후’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경제력을 지닌 50대 젊은 시니어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내의 전문 기업 쌍방울도 시니어 시장에 발을 들였다. 쌍방울의 시니어 기능성 속옷 브랜드 ‘올쏘(ALSSO)’는 18일 대구 대백프라자를 시작으로 30여개 품목이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
기능성 속옷 올쏘는 요실금이 있는 시니어를 위해 강력한 흡수성과 빠른 건조 능력을 갖췄다.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으로 옷맵시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공략할 계획이다.
쌍방울은 최근 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이 향후 시니어 기능 제품의 수요로 이어 질 것으로 판단했다. 시니어 속옷에 힘을 쏟아 올해 전체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내 시니어 산업의 한계,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니어 산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한 깃발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시니어를 겨냥한 산업이 건강 보조 용·식품, 생활 보조 용품 등 시니어 용품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일본과 미국의 성공사례는 국내 시니어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 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량, 사용 시간 등을 IT기술로 체크해 자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준다. 나눔 지원 비즈니스도 있다. 일종의 재능 기부 형태다. ‘경영지원 NPO클럽’에서는 평균연령 70.5세의 은퇴한 대기업 간부 160명을 구성해 중소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 하고 있다. 시니어 세대의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은퇴 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수개월을 예약·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헌츠먼 월드 시니어 게임즈’(Huntsman Wolrd Senior Games)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목적 분명 여가 상품을 개발했다. 테니스, 골프 등을 올림픽처럼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약 4천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이러한 해외 성공 사례는 국내 시니어 산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니어 산업을 창조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시니어 산업, 시니어 커뮤니티와의 연계 필수
시니어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사업적으로 뚜렷하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 LG 경제연구소 고은지 연구위원은 자료를 통해 시니어 산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고령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이해 부족이다. 고 위원은 다수의 기업이 고령화를 통한 사업 기회를 당장의 화제가 아닌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시니어 시장의 수요나 구매력에 대한 분석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시니어 소비자의 양면성이다. 시니어 중 어떤 사람도 ‘올드(Old)’라고 표기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육체적인 노화로 발생하는 독특한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셋째, 잘못된 의사소통이다. 고 위원은 시니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 방법이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방법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위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 커뮤니티와 연구기관, 관련 협회단체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시니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티 활동이 많은 시니어 소비자들을 겨냥해 기업들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소비자 저변을 넓히는 활동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산업의 리딩 컴퍼니(Leading Company)] 시니어가 곧 미래다 - 유한킴벌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지만.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닻을 올린 기업이 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 킴벌리이다.
유한 킴벌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물은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통해 실현됐다. 골든프렌즈가 기존의 시니어 브랜드와 차별화 된 것은 시니어를 능동적인(Active) 주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영한 것이 골든 프렌즈의 대표상품 ‘디펜드 스타일 요실금 팬티’다. 요실금 팬티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불편사항을 받아들여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난 요실금 팬티를 고안했다.
오프라인 매장도 2012년 10월부터 2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종로와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내부의 골든프렌즈 매장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기능성 신발, 가스차단기, 요실금 팬티 등 시니어들의 활동적인 생활을 도와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유한킴벌리는 고령화 문제 해결과 시니어사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니어 기금’을 조성하고, 소기업 육성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와 시니어 비즈니스를 창조한다는 계획이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는 인터뷰에서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된다. 결국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은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자녀와 떨어져 따로 노인 혼자 또는 노인 부부가 사는 쪽으로 한국 노인가구의 형태가 급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녀와 한집에서 같이 살진 않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자녀와 자주 연락하거나 직접 만나고 자녀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가족관계 기능을 상당 부분 유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보건사회연구원 이윤경 부연구위원의 ‘노인의 가족형태 변화에 따른 정책과제: 1994~2011년의 변화’란 연구보고서를 보면, 국내 노인의 외형적 가족형태는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급격하게 변했다.
이 위원은 1994~2011년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해 노인의 가구형태 변화를 살펴봤다.
분석결과,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노인가구 형태는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자녀동거유형에서 노인 혼자 또는 노인 부부만 사는 노인 단독가구 형태로 바뀌었다.
노인 중 자녀세대와 동거하는 비율은 1994년 54.7%였지만, 2004년 38.6%, 2011년 27.3%로 뚝 떨어졌다.
이에 반해 노인 부부가구는 1994년 26.8%에서 2004년 34.4%, 2011년 48.5%로 약18년 동안 21.7%포인트 증가했다.
노인 독신가구도 1994년 13.6%에서 2004년 20.6%, 2011년 19.6% 등으로 늘어나는 등 2004년 이후 노인의 20%가량은 혼자서 가구를 형성하는 노인 독신가구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위원은 “노인부양 인식 등 가족 가치관 변화와 경제수준 및 건강상태 양호한노인증가 등의 영향으로 2000년 이후 노인의 일반적 가구형태가 노인 부부, 노인 독신 등 노인만으로 구성된 가구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녀동거노인은 줄고 노인 단독가구는 느는 등 한국노인이 비록 자녀와 공간적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같이 살지 않는 자녀와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자녀와 동거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가족관계를 지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1년 조사결과 자동차로 30분 이내 거주비율이 24.1%, 도보 30분 이내 거주비율이 20% 안팎으로 나오는 등 1998년 조사결과와 마찬가지로 노인의 절반 이상은 가까운 거리에 자녀가 살고 있었다.
또 2011년에 비동거 자녀와 주 2~3회 만나거나 전화 등으로 연락하는 빈도도 1994년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증가했다.
2011년 노인가구형태에 따라 자녀로부터 정서적 지지와 도구적 도움, 수발, 정기 현금지원 등을 받는 현황을 조사해보니, 자녀의 정서적 지지를 받는 노인 독신가구와 노인 부부가구는 72.4%와 71.7%로 자녀동거노인(64.8%)보다 다소 높았다.
자녀로부터 시장보기나 가사 등 도구적 지원을 받는 비율도 노인 독신가구가 53.6%로 자녀동거노인(59.2%)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수발을 받는 비율도 노인 독신가구가 59.0%, 노인 부부가구가 50.9%로 자녀동거노인 62.3%와 거의 비슷했다.
자녀로부터 정기적 현금지원을 받는 비율도 자녀동거노인은 40.8%에 그쳤지만, 노인 독신가구는 50.6%였으며, 노인 부부가구도 38.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7월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은 현재의 절반 비용으로 어금니 또는 앞니에 대해 평생 2개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된다.
또 인공성대삽입술, 표적 항암제 사용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 등도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추가돼 환자 본인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4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 상대가치 점수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만 75세이상 노인의 어금니나 앞니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평생 2개의 임플란트에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본인 부담률은 50%이다.
임플란트 행위에 대한 수가(의료서비스 대가)가 1개당 약 101만원, 식립치료재료는 13만~27만원 수준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종전에는 임플란트 시술 환자는 139만~180만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기준) 정도를 내야 했지만 보험적용을 받게 되면 1개당 약 60만원 대로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다만 75세이상 노인 가운데 일부 치아가 남아있는 '부분무치악' 환자만 건강보험 급여로 임플란트를 받을 수 있다. 이가 없는 '완전무치악'의 경우 몇 개 임플란트로는 '씹는(저작) 기능' 회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효과가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 이같은 조건을 달았다.
앞니 임플란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도 어금니 임플란트가 불가능한 예외적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 치조골(잇몸뼈) 이식이 필요한 임플란트도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복지부는 이번 임플란트 건강보험 시행으로 올해에만 약 4만명이 혜택을 받고, 최대 476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복지부는 임플란트 보험 급여 대상을 2015년에 만 70세이상, 2016년에 만65세이상까지 연령폭을 낮출 방침이다. 틀니(완전·부분) 대상 연령도 임플란트 연령과 맞춰 함께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날 건정심에서는 암· 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계획도 논의 됐다.
복지부는 인공성대삽입술 등 10개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또 척수강내 약물주입펌프이식술 등 3개 항목에 대해서는 선별급여로 결정했다.
후두암 등으로 후두가 절제된 환자의 발성기능을 회복해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인공성대삽입술'이 6월부터 보험급여로 전환된다. 이렇게 되면 환자 부담이 94만원에서 13만원으로 근 폭으로 줄어든다.
고가의 표적항암제가 암환자의 유전자 타입과 맞는지 여부와 항암제의 효과를 판별하는데 필수적인 '유전자 검사' 8종도 6월부터 보험적용을 받는다. 환자 부담금은 종전 14만~34만원에서 2만~6만원으로 낮아진다.
부정맥 환자의 심장 내 병변부위를 고주파로 절제하는 '삼차원 빈맥 지도화(3D 매핑)'를 이용한 시술도 6월부터 급여로 바뀌면서 249만원 가량 하던 환자 부담금이 앞으로는 27만7000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복지부는 △척수강내 약물주입펌프이식술 △뇌 양전자단층촬영 △뇌 단일광자단층촬영 등은 선별급여 방식을 적용해 보험혜택이 없는 비급여 치료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되 환자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오는 8월부터 선택진료비를 평균 35% 축소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선택진료·상급병실료 개선 추진 경과도 이날 건정심에 보고됐다.
건정심은 이밖에도 이미 건강보험 항목에 등록돼있는 8개 성분·89개 약품의 임상적 유용성 평가 결과도 심의·의결했다.
그 결과 소화성 궤양치료에 쓰이는 설글리코타이드 등 4개 성분 59개 품목의 건강보험 급여 자격은 유지됐지만, 나머지 칼레디노게나아제(1개 성분 1개 품목)와 아르테미시아 아시아티카 추출물(1개 성분 1개 품목)의 경우 유용성 입증 실패 또는 포기로 해당 효능에 대한 급여가 삭제(취소)됐다.
이에 따라 특히 동아에스티의 대표 제품인 만성위염 치료제 '스티렌정'(아르테미시아 아시아티카 추출물)이 지금까지 받아온 수 백억원의 건강보험 급여를 반환해야 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