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한 광채를 뽐내는 ‘오팔’은 밝은 에너지를 가졌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욕망을 풀어놓는 오팔의 의미를 보면 기운이 솟구친다. 기성세대보다 더 스스로를 가꾸고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에 적극적인 50~60대 시니어들과 닮았다. 그래서 이들을 ‘오팔세대’라 부르나보다.
사실 오팔세대의 오팔(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 글자를 딴 조어다. 동시에 베이비붐세대의 상징 ‘58년 개띠’의 오팔을 의미한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오팔세대는 이제 은퇴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장은 오팔세대인 50~60대 시니어 고객 모시기에 집중한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니어 비중이 커지는 만큼 기업들은 그들을 위한 서비스와 문화행사를 강화하며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저금리시대에 예대마진이 줄어들자 시니어에게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며 이들의 자산관리와 똑똑한 소비를 도와 수익창출을 도모한다. 자연스레 최우수고객(VIP) 대열에 합류한 시니어들은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며 화려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백화점: 할인 혜택과 문화행사 강화
50~60대 시니어가 백화점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신세계백화점의 최근 3년 실적을 분석해보면 50~60대의 매출 비중은 30~40대보다 낮지만 고객단가는 가장 높다. 비싼 상품에도 지갑을 잘 여는 우수고객이란 의미다. 이들 중 연간 2000만 원 이상 소비하는 VIP 비중이 일반고객보다 8배가량 높아 백화점으로선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고객이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이 시니어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풍성하다. VIP의 경우 등급별로 차등 적용된 할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에선 각각 5~10%, 현대백화점은 5% 할인된 가격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아카데미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문화센터 정규강좌 50% 할인, 신세계백화점은 학기별 강좌 1개 30% 할인~무료 수강, 롯데백화점은 1개 강좌 20% 할인~2개 강좌 50% 할인, 현대백화점은 5% 할인 혜택을 준다. 뿐만 아니라 기념일 축하선물과 항공권 할인, 발레파킹, 무료주차 등이 VIP 등급별로 차등 제공된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행사와 이벤트 초청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부터 예술의전당과 제휴를 맺고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VIP 전용 문화공연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을 연다. 그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피아니스트 조성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 세계 유수의 클래식 대가가 이 무대에 올랐다. 현대백화점도 매년 VIP를 위한 문화강좌인 ‘더 스튜디오 클래스’를 열고 있다. 연 4000만 원 이상 구매한 ‘쟈스민 클럽’ 회원만 참여할 수 있다. 요리,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강사로 나온다.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 명사가 직접 추천한 책, 공기정화식물, 난, 꽃 등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은행: 알짜 금융상품과 은퇴설계 지원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고객을 위한 금융상품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올해 1955년생이 65세로 고령자가 되고 1960년생 은퇴자도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은행들이 시니어 특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어 꼼꼼히 들여다볼 만하다.
KB국민은행은 KB골든라이프 ‘열두번의 행복’ 시리즈를 추천했다. 이 상품은 매월 찾아오는 월급날의 행복을 은퇴 후에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분할지급식 투자상품으로 ‘낮은 위험,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현재 펀드와 신탁상품이 있다. KEB하나은행은 ‘행복 노하우 연금예금’을 소개했다.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확보하고 매달 수령하는 원리금을 생활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돈이 많이 필요할 때는 많게, 그렇지 않을 때는 적게, 이자만 필요할 때는 이자만 수령할 수 있다.
노후설계에 대한 실질적인 어드바이스가 필요하면 각 은행의 시니어 혜택 플랫폼을 이용해보자. 신한은행은 ‘신한 미래설계’로 고객의 은퇴를 지원한다. 금융 서비스와 함께 비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은퇴설계전문가(ARPS) 등 금융 관련 전문자격을 보유한 645명의 미래설계 컨설턴트를 전국 영업점에 배치해 고객의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미래설계센터에서는 부부은퇴교실, 미래설계캠프 등 다양한 은퇴교육 프로그램이 열린다. 우리은행은 서울 신촌점과 명동점에 ‘우리 시니어 플러스 센터’를 열고 공간 대여와 맞춤형 금융정보 공유강좌, 은퇴설계교육 등을 진행한다. 자산관리와 연금 관련 세미나도 열린다. 이와 함께 시니어 맞춤 온라인 금융과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고객 전용 ‘시니어 플러스 홈페이지’도 운영 중이다.
카드: 똑똑한 소비 돕는 풍성한 혜택
시니어를 위한 똑똑한 카드 상품도 챙겨보자. KB국민카드는 ‘KB골든대로 체크카드’를 추천했다. KB골든대로 체크카드는 50~60대 고객의 생애주기에 특화된 업종 이용 시 결제금액의 5%가 포인트로 적립되는 중장년층 맞춤형 상품이다. 이 카드는 전월 이용 실적이 30만 원 이상이면 △병원, 약국 등 건강 관련 업종 △대형마트, 주유소 등 생활밀착 업종 △골프, 사우나 등 여가 업종 △생명·손해보험 등 보험료 결제 시 월 최대 2만 점까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신한카드의 시니어 계층을 위한 ‘신한미래설계카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카드의 주력 서비스는 의료비 할인 혜택이다. 병원·약국은 물론 동물병원에서 월 최대 1만 원까지 결제액의 5%를 할인해준다. 생활비 할인 혜택도 돋보인다. 4대 주유소에서 ℓ당 60원(월 최대 30만 원), 3대 대형마트에서 5%(월 최대 1만 원), 대중교통과 택시 이용 시 5%를 할인해준다.
VIP를 위한 프리미엄급 카드도 시니어의 현명한 소비를 돕는다. 롯데카드는 최근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장하며 ‘엘클래스 L60’을 선보였다. ‘프리미엄의 깊이를 경험하다’라는 콘셉트를 가진 엘클래스 L60은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의 VIP 멤버십 혜택을 제공한다.
KB국민카드의 탠텀은 해외여행을 할 때 사용하기 좋다. 페닌슐라 등 해외 유명호텔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객실 등급도 올려준다.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항공 마일리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도 ‘더 베스트’, ‘더 클래식’ 시리즈를 내놓았다. 여행과 레저,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른 프리미엄 카드보다 쉽게 바우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호텔·문화: 포인트 적립과 클래식 향연
호텔 회원으로 등록한 시니어라면 할인된 가격이나 포인트를 적립하며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신라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의 1~3%, 식음료 이용금액의 최대 1%가 적립된다. 또한 객실 업그레이드 서비스(연간 최대 5회)와 무료 세탁 서비스도 회원등급별로 적용해 지원한다.
롯데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에 따라 3~6%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포인트는 롯데호텔앤리조트 객실, 식음업장을 비롯해 롯데면세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세탁 서비스 10~20% 할인, 식음료 5~10% 할인, 객실 업그레이드, 1박 무료숙박권 등의 혜택도 회원등급별로 제공한다.
풍요로운 문화생활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의전당의 노블회원(70세 이상·무료가입)이라면 공연 40% 이상 할인, 무대리허설 관람, 음악감상강좌 30% 할인, 월간 ‘노블N’ 발송 등의 혜택이 따라온다. 유료회원일 경우에는 공연·전시 5~40% 할인(최대 5매), 선예매 서비스, 음악회 초청, 아카데미 수강료 5% 할인, 제휴매장 및 우대 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세종문화회관의 회원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무대 위의 몸짓, 오래된 명화의 감동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연회비는 5만~10만 원으로 공연당 4~6매를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세종예술아카데미 할인과 공연 프로그램북 등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유료회원가입이 제한된 상태. 향후 개선된 서비스를 다시 제공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대중부유층의 57%는 노후 예상소득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지만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중부유층은 중산층보다는 부유하면서 기존의 PB서비스 대상 고액자산가보다는 자산이 적은 계층을 의미한다.
우리금융그룹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자산관리 고객 분석 보고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간한 ‘대중부유층의 희망 노후생활과 준비현황’, ‘대중부유층의 자산 포트폴리오와 자산관리 니즈’ 보고서에서 이 같은 조사결과를 17일 공개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가구 연소득 6800만~1억2000만 원(세전)인 가정을 대중부유층으로 정의하고 이 기준에 해당하는 전국 4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8~9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자의 평균 총자산은 6억5205만 원으로 이 중 77.3%(5억3295만 원)가 부동산자산이며 금융자산은 1억150만 원(19.4%)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57.0%는 노후 예상소득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중부유층이 응답한 노후의 월 필수생활비는 가구 기준 225만원이다. 필수생활비를 포함한 여유생활비는 374만원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91.5%는 예상소득으로 필수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고 57.0%는 여유생활비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상소득이 여유생활비보다 적은 응답자를 대상으로 노후준비가 부족한 사유를 조사한 결과 교육비 지출(23.8%), 높은 주택구입 비용(20.4%) 등이 답변으로 나왔다.
노후준비 정도를 자가평가한 ‘노후준비 스코어’는 5점 만점에 평균 3.5점으로 대중부유층은 노후가 ‘보통’ 정도 준비됐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인 반면 경제적 준비에는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 경제, 관계, 건강, 자아실현 중 경제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반면 스스로의 경제적 노후 준비 정도는 3.4점으로 4가지 요소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 가족·사회적 관계에 대한 준비 정도가 3.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자아실현과 건강에 대한 준비 정도는 3.5점이었다.
대중부유층의 노년기 희망 라이프스타일은 경제형, 레저형, 자기개발형 순으로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공식적인 은퇴 후에도 능동적인 생활을 희망했다. ‘본격적인 은퇴 이후에도 여력이 닿는 한 경제활동을 지속하겠다’(경제형, 35.3%)는 응답자가 ‘취미나 문화생활을 즐기겠다’(레저형, 32.4%)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삶(자기계발형, 15.6%), 전원 등에서 편하게 쉬는 삶(안식형, 11.6%), 손자녀 양육이나 사회 봉사활동에 주력하는 삶(봉사형, 5.3%)은 다소 낮은 선호도를 보였다.
노후 예상 소득의 원천으로 연금(공적, 개인, 퇴직, 주택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으며 연금 중에서는 공적연금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공적연금 의존도 60.9%, 주택연금 15.3%, 개인연금 15.2%, 퇴직연금 8.7%를 차지했다. 44.9%의 응답자는 노후에 주거용 부동산을 주택연금에 가입해 활용하겠다고 답변했다. 응답자들은 3~5년 내에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금융자산 중에는 연금, 저축성보험 상품의 비중 증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대중부유층의 자산형성 목적은 노후준비와 현재의 여유 있는 소비, 자녀에 대한 지원이며 응답자의 77.6%가 연 3~7%의 수익률을 기대했다. 자산 관리의 목적으로 노후준비를 답한 비율이 31.4%로 가장 높았으며 생활비의 여유 있는 지출이 25.2%, 교육 등 자녀를 위한 지원이 21.0%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대 수익률로 3~4%대를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38.9%, 5~7%대를 답한 응답자가 38.7%로 현재 금리 수준과 응답자들의 안전자산 위주 포트폴리오 고려 시 가능한 수준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의재 (四宜齎)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죽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그늘이 되어주시던 주상이 승하하시고 나니 이 한 몸 간수할 곳이 없구나. 주상이야말로 나에겐 꽃이셨네. 꽃 잎인 한 분 형님은 순교하시고, 다른 한 분 형님은 따로 떨어져 다른 곳으로 유배되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의 창이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정약용은 그의 형들과 함께 신유사옥(1801년) 때 유배를 당한다. 그는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가 강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절망이었다. 유배가 그렇듯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다. 그의 나이 40세.
그는 길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닌 마음의 길, 인생의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그가 선택한 것은 미친 듯이 걷는 것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헤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패라는 상실감이기도 했고, 끝나버린 인연의 아픔을 곱씹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치밀하게 준비했던 인생 계획표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진에 온 정약용의 초기 생활을 지켜보던 주막의 나이 든 주모가 어느 날 그에게 한마디 했다.
“어찌 그냥 헛되이 살려고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그는 변했다. 스스로 생활의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사소한 기대를 통해 우선 현실을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은 의미 부여와 노력을 통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태도를 바꾼 순간 다산은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때부터 4년 동안 그는 그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삶의 의미를 철저하게 현실 속에서 찾은 다산에게 이 시기는 민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묵묵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해서 본인이 묵은 방을 ‘생각을 맑게, 용모를 단정히, 말은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라는 의미로 ‘사의재(四宜齋)’로 지었다.
본래 경세제민을 실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이때의 시간이 그의 명저 ‘목민심서’를 구상하는데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강진군에서는 다산의 뜻을 기리고자 그가 유배를 와서 초기에 머물렀던 사의재를 복원하여 한옥 체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사의재가 있는 위치가 강진읍의 중심지여서 걸어서 ‘영랑 생가’와 ‘세계 모란공원’도 둘러볼 수 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함과 함께 마루 턱에 앉아 고즈넉한 가을밤 달구경 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다산의 삶의 지혜가 울려오는 밤이 된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 윤씨로, 어머니가 문인인 윤선도의 딸이다. 학문을 중시하는 외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강진으로 유배를 왔지만, 외가인 해남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다산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남의 외가에는 자체적으로 장서를 수집해 보관해 놓는 만권당이라는 장서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배기간에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는 외가에서 마련해준 이곳 다산초당에서 1808년부터 유배가 끝나는 1818년까지 지냈다.
다산은 유배를 온 신분의 한계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기존 제도의 개정을 논하는 ‘경세유표’, 지방관이 부패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목민심서’, 공정한 재판을 논하는 ‘흠흠신서’ 등 실학과 조선 유학, 법의학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썼다. 그의 생애 업적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그에게 학문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다. 기본이 유학자이다 보니 먼저 자기 성찰과 세계 인식의 기준이 성리학에 바탕을 둔 실학이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토록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던 것이다.
다산의 유배 생활로 인한 세상과의 단절을 메꿔준 이는 벗이자 스승이며 제자인 ‘혜장선사’였다. 그들은 대화하고 공감하며 화합하기 위해 초당 뒤 만덕산 백련사 가는 오솔길을 무수히 걸었다. 제한된 세상과의 통로였지만 소나무 숲길, 동백꽃 길, 차 밭으로 이어진 이 길을 걸으며 그는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터득했다.
가두어진 하루하루는 생의 의미를 사라지게 하는 물리적 장치다. 하지만 다산은 초당 지붕 끝에서 흘러내리는 가을비 소리에 번뇌를 멈추고, 약천(藥泉)에 달인 차로 속기(세속의 기운)를 씻으며 스스로 인생의 격조를 올렸다. 그가 위대한 이유다.
다산초당은 노후화되어 붕괴한 것을 1957년 복원한 것이다. 소나무 뿌리가 뒤엉킨 소나무 숲 ‘뿌리의 길’을 800m 정도 올라가면 고적한 유배 생활의 정취가 서려 있는 초당이 나타난다.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 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茶竈 ㆍ 차 달이는 부뚜막)’ 등을 초당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초당으로 가는 숲속 길에서부터 절제되고 제어된 기운이 느껴진다. 다산초당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다산 학문의 핵심과 통하는 것이다.
가을이어서 그런지 벌써 겨울이 기다려진다. 아마, 동백꽃 핀 다산초당 숲길을 걷고 싶어서 그런지 모른다.
백운동 원림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의 감옥과 유배 생활을 마친 후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Notes from a dead house)”이라는 장편 소설을 썼다. 그는 감옥과 유배 생활을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집’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유배의 시간은 고통이고 지옥 같은 생활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본인 문학의 화두로 삼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배 생활을 통해 무엇이 모든 죄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을까? 그것은 ‘단절’이었다. 단절은 고립이고 대립이며, 증오와 이기주의의 시작이다.
유배지의 폐쇄적 환경인 단절을 벗어나기 위해 다산이 선택한 길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실천적 사랑과 공상적 사랑으로 나뉜다. 유배지에서 다산의 실천적 사랑은 후학 양성과 학문 탐구다. 공상적 사랑은 초의선사, 이시헌 등과의 교류와 월출산 줄기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의 만남이었다.
다산이 제자들과 함께 강진의 자연을 만난 곳이 백운동 원림(園林)이다. 백운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불린다.
17세기에 이담로가 조성한 이곳은 자연과 인공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균형 잡힌 조화를 보이고 있다. 집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인공적으로 끌어들여 마당의 상지와 하지를 거쳐 아홉 굽이 휘돌아 나가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의 구조를 갖추었다. 화단에는 소나무, 대나무, 국화, 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다산은 그림을 잘 그리는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스스로는 12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칭송하는 시를 읊어 시와 그림을 묶은 ‘백운첩’을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12곳이 ‘백운동 12 승경’이다. 1경: 옥판봉 (절경의 월출산 산봉우리) 2경: 산다경 (원림입구 동백나무 숲길) 3경: 백매오 (집 주변 언덕의 매화나무) 4경: 홍옥포 (대문 앞 단풍나무와 작은 폭포) 5경: 유상곡수 (마당의 여섯 굽이 물굽이) 6경: 창하벽 (다산이 붉은 먹으로 쓴 푸른빛 석벽) 7경: 정유강 (언덕 위, 용 비늘처럼 생긴 소나무) 8경: 모란체 (본채 아래 3단의 화단) 9경: 취미선방 (고즈넉한 세 칸의 초가 사랑채) 10경: 풍단 (창하벽 위 단풍나무) 11경: 정선대 (창하벽 위 정자) 12경: 운당원 (왕대나무 숲)
강진의 자연을 정원에 담은 이곳에서 다산은 견뎌냈다. 유배지에서의 견뎌냄은 사랑의 힘이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백운동 원림에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 옆에 있는 소나무와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늘 그렇듯이 숲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신선한 자연의 공기가 온몸을 깨운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하얀 가을 햇살이 눈 부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대문 앞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서려 있는 녹색 이끼는 자연의 시간이다. 낮은 담벽을 타고 올라오는 넝쿨은 수줍은 듯 여행자를 훔쳐본다.
곧게 뻗은 대나무 사이로 청정한 가을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앞마당이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 다산처럼 건너편 차 밭에서 실려 오는 가을내음을 맡으면서 자연과 통(通)하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보다 더 화려한 등장이 또 있을까. 건강미 발산하는 젊음의 무대를 요즘 말로 제대로 씹어 먹었다. 그저 걷게만 해달라는 심정으로 체육관 문을 두드렸을 뿐인데,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소박한 소망을 빌었을 그녀는 15cm 유리구두 위에서도 위풍당당했다. 제25회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 피규어 38세 이상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임종소(林鍾昭·75) 씨를 만났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시작하는 살맛나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송을 보면 유명인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살을 뺀다거나 피트니스대회에 나가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는 모습을 종종 접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때 잠시뿐. 화제성은 쉽게 가라앉고 만다. 하지만 지난 5월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이하 WBC)에 출전했던 75세 보디빌더 임종소 씨의 인기는 각종 매체를 타고 꾸준하게 전파되고 있다. 환한 미소에서 건강한 에너지와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제 모습이 저 처녀 때 성격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활달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거든요. 아버지가 부평에서 상업을 하셨는데 둘째 딸이었던 제가 장사를 거들었어요. 저 시집갈 때 친정에 가게를 사주고 온 사람이라니까요. 75세,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싱그럽고 통통 튀는 목소리를 가진 매력녀가 불과 몇 달 전 관중들 앞에서 멋진 근육을 드러내며 완벽한 포즈를 취하던 임종소 씨다. 그녀를 만난 시간은 오후 3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하고 왔어요. 주중 3시간씩 오전 11시 40분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요. 그 이후에는 체육관에 와서 운동하거나, 오늘같이 인터뷰가 있으면 약속 잡거든요. 저는 하루에 딱 3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별거 없어요. PT(개인강습) 비용 내려고 다니는 거니까요.”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네 집에서 생활한다는 임종소 씨는 자녀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싫어서 돈 쓸 데가 생기면 필요한 만큼 벌어서 쓴다.
“처음 일하러 갈 때 나이를 살짝(?) 속였어요. 한 달쯤 되어 세금 정산을 한다고 해서 신분증을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당황하시더군요. 그래도 한 달 동안 좋게 봐주셨나봐요. 1년 넘게 다니고 있으니까요.”
될성부른 보디빌더 알아본 관장님
그녀가 피트니스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허리 협착증 때문이었다. 맷돌을 다리에 맨 것처럼 몸이 늘 무겁고 힘들었다.
“땅에 발을 디디면 미칠 듯이 아프더라고요. 뼈가 내려앉으니까 못 걷는 거예요. 제가 에어로빅을 35년 했어요. 강사증만 없을 뿐이지 안 해본 동작이 있겠어요? 그렇게 활동적인 사람이 잘 걷지 못해 집에서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봐요. 삶이 끝난 거잖아요. 진지하게 전동 휠체어를 사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병원을 다녀도 잠시만 반짝 좋아질 뿐이었어요.”
담당의는 근육이 약해졌으니 근육강화운동을 해보라며 권했다. 마침 에어로빅 학원에 가던 길에서 봤던 체육관 입간판이 떠올랐다.
“예사로 쳐다보고 다녔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맞춤운동, 재활운동이라는 문구가요. 곧장 체육관으로 가서 의사와 했던 얘기를 박용인 관장님께 했어요. 의사와 같은 생각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자리에서 등록했어요. 그날 오전 11시쯤 체육관으로 들어갔는데 PT 받을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더군요. 두 시간 기다려 바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정말 절실했어요. 이거 아니면 죽는다, 여기서 못 고치면 절름발이가 되거나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관장이 권하는 훈련을 믿고 했다. 협착 증세는 한 달 만에 좋아졌다.
“휠체어를 타는 상상까지 하며 막막했는데 좋아졌잖아요. 정말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운동했어요. 일주일에 3회 받던 코칭을 2회로 줄이고 한 3개월쯤 됐을 무렵, 관장님이 ‘보디빌더 한번 해보세요’ 하더라고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며 웃어넘기려 했는데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작년 8월쯤이었어요.”
박용인 관장은 보디빌더 경력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각종 대회 심사위원 등으로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임종소 씨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는 뜻이다.
“관장님이 저처럼 근육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어요. 제 근육이 예쁘대요.(웃음) 저는 옆에서 부추기면 진짜 그런가 하고 또 따라요. 시니어 부문에 출전하면 무조건 입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입상을 떠나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여러 사람들한테요. 나이 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장님도 진짜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비키니는 잘못 없다
집중적으로 근육운동을 하면서 대회 준비를 하는데 비키니가 말썽이었다. 대회에 비키니를 입고 출전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비키니를 입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관장님이 부천시장기 제7회 부천보디빌딩 및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한다고 이미 등록을 해버렸더라고. 비키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어요. 보석이 박혀서 그런지 50만 원에서 70만 원이나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거 살 능력 안 된다고 대회 출전 못하겠다고 했더니 예전에 출전했던 분의 옷을 빌려오셨어요.”
살아생전 입어볼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본 비키니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서야 했다. 옷을 가져다 놓고 안 입겠다고 이틀을 실랑이했다.
“출전할 만큼 몸이 다져졌으니 나가보면 절대 후회 안 할 거라고 관장님이 그랬어요. 등록도 해버린 상태이고, 그 상황에서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대신 15cm 유리구두는 제가 샀습니다. 집에서 비키니를 입고 연습했어요. 우리 손녀가 하나는 대학교 2학년이고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인데 ‘할머니 멋쟁이’라고 ‘예뻐 죽겠다’고 해요. 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빠가 계시면 어림도 없어’ 하더라고요. 그래도 어차피 시작했으니까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줬어요.”
첫 대회는 자유포즈와 지정포즈를 도대체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떨리는 마음으로 치렀다.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가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인터뷰를 하자고 했어요. 어떻게 나오시게 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관장님이 권유해서 나왔고, 무엇보다 나이를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입상은 못했는데 인기는 좋았어요. 그러고 나서 20일 후에 WBC대회에 또 참가했어요. 이미 벗은 거 한 번 더 못 벗겠느냐고 했죠.(웃음)”
규모가 큰 대회이기도 했고 첫 대회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만회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자유포즈는 인터넷을 검색해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개성 있는 포즈로 만들었다. 자다가도 연습할 정도로 자세를 외우고 집중했다. 그 결과 한창 젊은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2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금이 가장 화려한 시절
WBC대회 이후 각종 매체에서 임종소 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특집 다큐를 제작하고 보도를 이어갔다. 영국 BBC에서도 70대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건강한 한국 시니어 여성이라며 소개했다. 대회 이후 그녀는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매체와 만나 영상을 찍고 인터뷰에 응해주는 일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도 식당에 잠깐 나가 용돈을 벌고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관장님이랑 운동하고, 토요일에는 모델 워킹 연습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사실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 더 있어요.”
임종소 씨는 35년간 했던 에어로빅을 나이 더 먹으면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교댄스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4~5년 정도 됐어요. 에어로빅은 격렬하잖아요. 다리 아파서 못 뛰게 되면 찬찬히 할 수 있는 춤을 춰야지 싶어서 배우고 있습니다. 왈츠, 탱고, 자이브 등을 춥니다. 함께 배우는 친구들이랑 소셜 모임에도 가고요. 남녀가 함께 추는 거라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우리들은 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노후를 즐겁게 보내자 했습니다. 저는 왈츠가 좋아요. 제일 멋있는 거 같아요. 매일이 즐겁고 바빠요.”
에어로빅과 사교댄스를 배웠다는 얘기에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렸다. WBC대회 영상 속 임종소 씨의 동작이 유연하게 리듬을 타면서 연결되는 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 그저 1년 준비해서 갑자기 등장한 반짝 스타가 아니라 꾸준하게 관리해온 자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댄스를 위해 운동했지. 그래요, 맞아요. 건강을 잃으면 댄스고 뭐고 뒷방 늙은이 되는 거예요.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제가 좀 스타의식이 있나봐요. 많은 사람이 저한테 집중한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야.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즐겼습니다.”
임종소 씨는 결혼한 뒤 아이들과 남편, 가족만 생각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다.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지, 누가 대신 안 챙겨주잖아요. 효자, 효부가 있어도 대신 아파줄 수는 없어요. 그리고 나이 먹었다고 꿈을 접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감 잃지 말고, 뭐든 할 수 있으니 도전하자,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열심히 사는 모습,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됐다. 생활을 편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여가 도구의 역할도 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스마트폰의 기능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카메라 기능도 셔터만 누르기 일쑤다. 사진 취미 활동에 도움이 되는 다른 기능을 알고 익히면 어떨까? 남다른 사진을 만들 수 있고 더 재미있는 취미로 거듭날 것이다. 알아 두면 좋은 사진 촬영 기능을 살펴보자.
첫째는 ‘파노라’촬영모드다
파노라마는 사전적 의미로 360°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를 가리키는 말. 한 컷으로 담을 수 없는 넓은 풍경을 한 장에 담는 방법이어서 여행사진에 유용하다. 카메라를 열면 화면 아래쪽이나 숨겨진 메뉴에 나오는 “파노라마” 항목을 선택하면 된다. 일반 사진 촬영은 셔터를 한 번 누르면 완성되나 이 기능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시작점에서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여 끝나는 지점에서 셔터를 다시 누르면 된다. 기다란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된다. 방향은 좌우 가로형과 아래위 세로형으로 찍을 수 있다.이 기능을 응용하면 한 장의 사진에 같은 인물을 두 군데 넣을 수 있다. (아래 사진 참조).
둘째는 ‘하이퍼랩스(타임랩스)’와 ‘슬로 모션(슈퍼슬로 모션)’ 촬영 모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동영상 기법이다. 잘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재미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사용 방법은 해당 모드를 선택하고 셔터를 누르면 촬영이 시작되고 다시 눌러야 끝난다. 실제보다 빠르거나 느린 동영상이 된다. 하이퍼랩스는12초 정도 돌아가는 영상을 1초로 단축한다. 예를 들어 흐름을 잘 볼 수 없이 서서히 움직이는 하늘의 구름을 삼각대를 세우고 하이퍼랩스로 촬영하면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다. 풍력발전기를 찍으면 서서히 도는 날개가 선풍기 날개처럼 움직인다. 장면을 빠르게 돌리는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슬로 모션은 하이퍼랩스와 반대다. 실제 움직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인다. 운동선수의움직임을아주느린순차적동작으로보여주는텔레비전장면처럼찍을수있는기능이다.손주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이 기능으로 촬영하면 슬로 비디오가 된다. 여행에서 만나는 폭포도 우아한 모습으로 담긴다. 슬로 모션은 촬영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삼성 갤럭시의 경우 4분 30초로 이 시간이 지나면 촬영이 자동으로 중단되고 필요한 시점에서 셔터를 누르면 끝난다. 슈퍼슬로 모션은 실제 속도의 영상에 덧붙여 슬로 기능을 중간마다 넣을 수 있다.
나는 61살에 사진을 배웠고 노후 여가를 즐기는 핵심 취미가 됐다. 9년 전에 함께 사진을 배웠던 대부분 사람은 사진활동을 그만두었다. 일상적 사진에 머물러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능 활용에 도전하고 응용하면 무덤덤 하던 사진 취미가 더 재미있게 돼 오랫동안 할 수 있다. 새로운 기법들을 활용해 남다른 사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뒹구는 10월, 가을의 중턱에 읽을 만한 신간을 소개한다.
◇ 취미로 직업을 삼다 (김욱 저ㆍ책읽는고양이)
일흔의 나이에 안락한 노후를 뒤로하고 취미였던 독서를 밑천 삼아 밥벌이를 시작한 늦깎이 번역가의 생존분투기를 그렸다. 저자는 젊은 시절 문학인이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신문기자의 길을 택한다. 퇴직 후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쫄딱 망해 남의 집 묘막살이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는 잠시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펼쳐보기로 한다. 그렇게 일흔이 넘어 시작한 제2직업을 통해, 15년 동안 무려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고 ‘폭주 노년’,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등의 저서를 펴내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는 모두 미지의 존재”라며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재능은 나이 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풍성해진다”고 용기를 갖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길 조언한다. 더불어 사회적 운명에 휘둘리며 보낸 과거를 벗어나 이제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길 강조한다.
◇ 죽음의 에티켓 (롤란트 슐츠 저ㆍ스노우폭스북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죽음의 전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그리고 저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각기 다른 죽음의 방식을 보여주고, 현재 삶의 의미를 고찰하게 만든다.
◇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임운석 저ㆍ시공사)
돈, 시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들을 위한 짧은 걷기 여행 팁을 담았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부터 빈티지 감성 골목길, 수도권 인근 바닷길 등 다양한 콘셉트에 따라 사시사철 걷기 좋은 40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 품위 있는 삶 (정소현 저ㆍ창비)
2019 이효석 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비롯한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다. 예기치 못한 죽음, 또는 준비된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외면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 대한민국 요즘 여행 (옥미혜, 서준규 공저ㆍ알에이치코리아)
각종 빅데이터를 활용해 약 3년간 공들여 찾아낸 국내 여행지 32개 도시, 738개 장소를 명소, 맛집, 카페, 숙소 등으로 나눠 정리했다. 22가지 테마 여행 콘텐츠를 비롯해 휴대용 ‘베스트 150 지도’까지 담겨 있어 실용적이다.
시니어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행복지수 개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지수 10점 만점 기준에 30대가 6.56으로 가장 높았고 20대는 6.36, 40대는 6.34, 50대는 6.25로 나타났다. 60대는 6.05로 가장 낮았다. 시니어의 행복지수는 왜 낮은 걸까. 그 이유를 ‘행복의 조건’에서 찾아봤다.
시니어가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것은 첫째 건강(96.4%), 둘째 일(89.1%), 셋째 관계(87.3%) 순으로 나타났다. 노후의 행복을 ‘건강, 일, 관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일자리도 부족해지고 관계의 폭도 좁아진다. 특히 노후 생활의 4대 고통(돈이 없다. 외롭다, 아프다, 무료하다) 중 하나인 외로움은 건강이 나빠질수록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부부 관계와 자녀와의 소통도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대부분 만족스러운 형편이 아니다. 게다가 일거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현실. 시니어가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니 당연히 행복할 리가 없다.
시니어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노후 생활비 마련과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다. 평생을 생업에 매달리며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노후생활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60대 이후의 세대는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을 합해도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니 행복한 노후를 기획하고 즐길 겨를이 없다. 걱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건강을 잃기도 한다. 생활 형편이 어려워 가족 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한 시니어의 고민이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건강도 지키고 일자리도 찾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잘하며 지낼 수 있을까.
우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해놓은 시니어 일자리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해결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노인인력개발원에서 대행하는 ‘시니어 인턴십 지원제도’도 활용해봄직하다. 그래도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면 대책을 찾아봐야 한다. 하나의 방안으로 주택연금 가입을 권하고 싶다. 정부가 보증하는 제도인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내면서 주택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노후 생활비가 부족한 시니어의 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65세에 7억 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사망할 때까지 매월 169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더하면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면 노후 생활은 당당해진다. 부부와 자녀 관계도 좋아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생업으로 미뤄둔 꿈이나 취미 활동도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취미를 즐기면서 지내면 삶의 의욕도 높아진다. 건강을 더 챙기려는 의지도 생긴다. 행복지수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2013년 이근후(李根厚·85) 이화여대 의과대 명예교수가 펴낸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4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당시 책의 서두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했던 이 교수. 그러나 최근 저서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서는 시력이 나빠져 컴퓨터를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상실감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늘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냈다.
이근후 교수는 오래전부터 삶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상기했다. 눈을 씻고 찾아보면 어떤 고통의 상황에도 그것을 견뎌낼 만한 즐거움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었다.
“컴퓨터로 해오던 일이 너무나 많았는데, 시력이 떨어져 이제는 못하게 됐어요. 청탁받은 원고들도 있던 터라 난감했죠. 할 수 없이 대학생 손주들에게 내가 구술한 것을 타이핑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아르바이트로 시급도 챙겨줬고요. 손주들은 용돈벌이이든, 할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어서든 나름의 이유로 오겠지만, 그 핑계 삼아 아이들과 대화하니 좋습니다. 시력의 상실은 고통스럽지만, 그 슬픔을 손주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즐겁게 달래고 있어요.”
이 교수는 삶의 즐거움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토로하는 중장년 세대의 경우 ‘즐기는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곤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교수는 ‘야금야금 실천하기’를 권했다.
“우리 중장년 세대는 삶의 의미를 직업을 통해 찾아왔기 때문에 은퇴와 함께 큰 혼돈과 상실을 경험하게 되죠. 이때 덜 휘청거리려면 다채로운 취미를 갖는 것이 좋아요. ‘이 나이에 뭘 하나’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도 여든이 넘어 시작한 취미가 꽤 있어요. 뭐든 좋아하는 만큼만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부담이 없죠. 취미를 찾고도 실천이 없으면 초조하고 머리만 복잡해지잖아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야금야금 실천해보세요. 가랑비에 옷 젖듯 점차 즐거운 일들이 눈에 띌 겁니다.”
노여움과 원한에서 벗어난 자유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펴낸 후 이 교수는 줄곧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살았느냐?”는 질문을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언제 즐겁게 살았다고 했나,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지”라고 답했단다. 비슷한 편견(?) 중 하나는 그를 ‘무한 긍정의 아이콘’으로 바라보는 것. 이 교수는 “누구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게 마련”이라며 “다만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크게 노여워 않고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이중적인 게, 나이 든 거 몰라주면 서럽고, 노인 대접받기는 싫고 그래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나이 들수록 ‘노여움’이 생기게 되죠. 가능한 한 즐거운 쪽으로 상황을 만들어가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화내고 후회하며 사느라 인생의 격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잖아요. 노여움에 갇혀 있는 상황은 자신을 애먹이는 일이에요.”
이 교수는 ‘노여움’과 더불어 나이 들수록 털어내야 할 감정 중 하나로 ‘원한’을 꼽았다. 흔히 원한은 ‘타인을 용서함’으로써 해결되리라 여기지만, 그는 진정한 용서란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이뤄진다고 말했다.
“남을 용서하는 건 반푼어치 용서입니다. 한 지인이 자신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았는데, 다 용서했다고 말하더군요. 학창 시절 어머니가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자신에게 소홀했다는 게 이유였죠. 저는 그건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고 했어요. 어머니에 대한 용서로 끝나는 것이 아닌, 어머니를 미워하는 맺힘이 내 마음에 있었다는 그 자체까지 용서하고 미안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었죠. 온전한 용서는 곧 자유를 줍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돼야 비로소 편안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고요.”
마지막 밥 한술처럼, 맛나게 살기
이 교수는 노여움, 원한 등 부정적인 감정을 슬기롭게 승화하는 방법은 ‘유머’라 일컬었다.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 소개된 그의 ‘팔순 기념일’ 일화에서도 그의 유머러스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80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생일 하루만 챙기기엔 아깝더라고요. 사람들 불러놓고 비싼 밥 먹으면서 형식에 얽매이는 잔치는 더욱 의미 없다고 느꼈고요. 팔순 핑계로 1년 내내 소중한 사람들을 따로 만나 함께 추억하고 감사를 나누고 싶었죠. 그렇다고 ‘팔순이니까 만나자’ 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헤어질 즈음 ‘사실 오늘이 내 팔순이야’라고 얘기했어요. 그 해가 내 팔순인 건 맞으니, 거짓은 아니잖아요.(웃음) 살면서 돌, 결혼, 환갑, 칠순… 그렇게 따져보니 나를 위한 잔치가 얼마 없네요. 몇 안 되는 기념일까지 지루하게 보내지는 마세요. 찾아서 누리려 하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늘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그가 계획하는 다음 기념일은 또 어떤 모습일까? 이 교수는 아직 뚜렷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상상 중인 일이 있다고 귀띔했다.
“아는 선배 교수가 출판기념회에서 ‘와주셔서 고맙다. 내가 여러분에게 살아생전에 받는 문상으로 이해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죽으면 나는 모르는 거잖아요. 해외 TV 프로그램 중에 주변 사람에게 가짜로 자신의 부고를 알리고, 장례식을 몰래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런저런 반응을 보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에서 착안한 건데, 아직 말은 못했지만, 친한 선배에게 서로 조문을 써서 한 번씩 읽어주자고 하려고요. 죽은 사람은 들을 수 없으니 그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살아 있을 때 잘하자 이거예요.”
그는 끝으로 “여생이 짧다고 느낄수록 현재의 소소한 재미를 마음껏 누리길” 당부했다.
“힘들었던 일도 ‘지나보니 즐거웠어’라고 느끼곤 하죠. 그러나 그건 젊을 때 이야기예요. 나이 들수록 ‘지나보니’가 어려워요. 그래서 그날그날 재미를 찾아야 합니다. 죽음은 당연히 두렵죠. 그러니 그 불안을 이겨낼 정도의 즐거움이 있어야 해요. 젊어서는 쌀 한 가마니 가득한 듯한 인생을 살았는데 그 쌀을 아무 생각 없이 퍼먹다가 이제 바닥이 보이니까 ‘아차’ 싶은 거죠. 우리가 마지막 밥 한 숟가락 조금씩 아껴서 맛있게 먹을 궁리 하는 것처럼, 남은 인생도 맛나게 잘 나눠 먹는 재미를 찾아보세요.”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낮아지는 소득 수준과 부담해야 할 집세, 건강으로 좁아지는 생활반경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연금삭감 논의와 함께 노후자금 부족에 대한 경고등까지 켜지면서 불안감도 생기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나 고령자를 위한 여행 방법에 대한 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서점가에선 ‘탈출노인’ 인기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는 신간 ‘탈출노인(脱出老人)’이 인기를 얻고 있다. 논픽션 작가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가 쓴 이 책은 집세도 내기 어려운 부족한 연금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방사능 걱정이 없는 필리핀으로 이주한 부부에서부터, 90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여교사, 필리핀에서 만난 24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전직 경찰관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평균적인 무직 60~65세 노인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외에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더욱 조명받았다. 이 논란은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일본 국민의 시위까지 불러일으켰다.
필리핀은 물가가 낮고 체류가 쉬워 일본인들에게 노후를 보내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의료 인력도 풍부해 일본인 대상의 실버타운도 조성됐다. 일본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필리핀 체류 일본인 수는 1만6570명에 달한다.
‘탈출노인’은 인기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후지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토쿄 한복판 실버타운 입주비용은?
일본의 고급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8월 1일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새 실버타운이 문을 열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실버타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참·케어(cham·care) 코퍼레이션의 ‘참 프리미어 그랑 쇼토(松濤)’다.
이 회사가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하며 건립한 이 실버타운은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갖췄다. 지상 3층 지하 1층에는 36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입주자를 위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입주자와 직원 비율은 1.5대 1로 직원이 바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는 셈이다. 의대 협조를 통해 치매 개선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재활전문 의료법인과의 제휴로 다양한 재활 서비스도 이뤄진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일식과 양식 이외에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매일 직원들이 입주자의 산책을 돕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야외 활동도 지원한다.
문제는 입주비용. 월 30만2400엔에서 95만2400엔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330만 원에서 10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교통 약자 위한 ‘여행개조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내 여행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말 그대로 교통 약자가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
지난 6월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간호여행서포터즈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여행사, 대학, 의료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령자나 장애인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방안 마련 논의를 했다. 이들은 노인과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개선뿐만 아니라 ‘간호 여행’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단체는 노인과 장애인의 여행을 돕는 도우미인 여행개조사(旅行介助士) 제도를 민간자격증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여행자의 보행 상태나 건강 등을 파악한 후 여행 기획부터 응급상황을 대비한 조사활동을 펼치고 몸이 불편한 고객의 여행 동행자 역할도 한다.
그에게 정원은 놀이터다. 아침마다 커피 한 잔 들고 문을 나서면 그만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오감이 천천히 깨어나면서 확장된 시간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마음속 풍경은 매일매일 꽃사태다. 이 놀이를 제대로 한번 즐겨보고 싶어 도시 탈출을 감행한 건 40대 중반 무렵. 김형극(金炯克·66) 씨는 마치 특별 초대장을 받아든 사람처럼 성큼성큼 자연 속으로 입장했다. 정원에 빠져 산 지 어느새 23년째. 그 사이 서른두 평 아파트와 맞바꾼 폐가는 ‘들꽃의 향기가 머무는 뜰’로 다시 태어났다.
소확행(小確幸)이 메가트렌드가 된 세상. 그러나 실행은 쉽지 않다. 시계추 같은 일상을 탓하며 시간을 어이없이 흘려버리거나 또 다른 욕망으로 허둥대다 기회를 놓쳐버리곤 한다. 저지르듯 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김형극 씨는 잘 알고 있었다. 은퇴가 아직 먼 나이였지만 그의 결단은 신속했다. 다 쓰러져가기는 해도 감나무 다섯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안성의 한옥도 다행히 마음에 들었다.
“도시에서 살 때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산으로 강으로 떠났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지낼 바엔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요. 당시 중학생이었던 딸아이는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니느라 밤 12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오더라고요. 공부는 해야 하지만 어린 딸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안쓰러웠어요. 자식들 출세를 위해 모두 서울로 가던 시절 저는 과감히 시골로 내려왔죠.”
40대 중반에 감행한 도시 탈출
가족과의 의견 충돌은 없었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을 제안이었지만 아내와 딸은 잘 따라줬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텃밭은 오랫동안 가꾸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고 기와집은 비가 샐 정도로 엉망이었다. 마당은 여기저기서 갖다 버린 쓰레기들로 넘쳐났다. 더구나 서초구청 공무원이었던 그는 매일 왕복 200km나 되는 거리를 오가야 했다.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일산, 양평, 용인 등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사람하고 집은 연분이 닿아야 한다잖아요. 여러 집을 봤는데 포도 산지인 안성이 고즈넉하고 마을 사람들 인심도 좋아 보였어요. 특히 이곳에서 본 한옥이 자꾸 눈에 밟히더군요. 100년도 더 된 집이었는데 폐가와 다름없었어요. 그 집을 산 뒤 뜯어 고치고 어른 키만 하게 자란 풀 뽑아내고 정리하느라 몇 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출퇴근도 난제였죠. 지금이야 도로가 뻥뻥 잘 뚫려 있지만 그 시절은 안성에서 서울 가려면 네댓 시간은 족히 걸렸어요. 눈 내리는 겨울에는 서울에 오피스텔을 얻어놓고 회사를 다녔어요. 빙판길 운전이 엄두가 안 났거든요. 혹여나 시골 좋다고 내려가더니 출근시간도 제대로 못 지킨다는 소리 들을까봐 도시에서 살 때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어요. 그렇게 몸은 고됐어도 꽃 심고 나무 심을 때는 마냥 좋더라고요.(웃음)”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 꾸며댄 정원을 감상하는 것처럼 따분하고 심드렁한 일이 없다. 뜬금없이 웅장함을 자랑한다거나 아무렇게나 불쑥불쑥 화려한 색을 들이미는 곳에서는 감흥이 작동하지 않는다. 정원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한 정원을 지향한다는 김형극 씨는 2015년 경기농림진흥재단(현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경기정원문화대상’ 동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은 그의 정원에 대해 “소박하고 순수하다.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안 간 데가 없다. 이 사람은 정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평가했다. 화이불치는 아니어도 검이불루의 뜻은 펼친 셈이다.
“지인이 ‘경기정원문화대상’ 공모를 알려주면서 ‘당신 정원은 틀림없이 상 받을 거다’ 하더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를 해봤죠. 그때 정원 이름을 ‘들꽃의 향기가 머무는 뜰’이라고 지었어요. 실제로 들꽃을 많이 심었거든요. 그런데 심사가 꽤 까다롭더라고요. 1차 심사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했고, 2차는 전문가, 3차는 전문가와 일반인이 같이 와서 꼼꼼히 둘러봤어요. 주로 제가 좋아하는 꽃들을 심고 소박하게 가꿨는데 운 좋게 상까지 받았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좋다
이 공모전을 계기로 재단에서 지원하는 일본 정원 견학 기회도 얻어 수상자들과 함께 다녀왔다. 3박 4일 머무는 동안 공통 주제 하나로 친구가 된 일행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들의 정원에서 한 발짝씩 걸어 나와 함께 멍석을 깔았다. 민간정원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기로 뜻을 모아 ‘정원문화대상수상자모임(정수모)’을 결성한 것. 그는 회장으로 추대됐다.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우리 역할을 찾아보고 전국적으로 정원 문화를 전파하는 데 힘을 보태자는 제안을 하자 다들 좋다고 하더군요. 각자의 정원을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공유 정원’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최근 우리 모임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꽤 알려진 모양입니다. 수상자들의 정원을 보고 싶다는 단체 견학 문의가 종종 옵니다.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또 한 번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모’ 회원은 14명. 두 달에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만나 친목도 다지고 정원 관련 정보도 나눈다. 가을이 되면 각자의 정원에서 돌아가며 음악회도 여는데, 이 근사한 계획은 김 회장 머리에서 나왔다. 사실 그는 서초구청이 개장한 충남 태안 서초휴양소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위해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 이력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사람들을 모아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그게 시너지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수모’ 음악회도 회원들을 기쁘게 해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고 지금은 정기적인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58세에 퇴직을 했으니 올해로 벌써 8년이 됐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사진 찍기, 도자기 빚기, 수석 수집, 통기타 연주 등 취미와 재주가 많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간다. 그래도 매일 그를 설레게 하는 건 역시 정원이다.
“저는 모과가 달려도 첫눈 올 때까지 절대로 따지 않아요. 노랗게 익은 모과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모습을 꼭 봐야 하거든요. 정원은 영원한 풍경이 없어 더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래요. 계절마다 얼굴을 바꾸고 매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요. 정원에서는 눈도 꽃으로 보여요. 봄에는 꽃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새싹들을 자주 들여다봅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꽃잎에 반할 수밖에 없고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들이에요.”
그의 정원에는 200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그들에게 물 주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요즘 겨울 정원을 구상하느라 잔뜩 들떠 있다. 텃밭에 가식(假植)해놓은 몇몇 주인공들이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꽃과 나무들에게 배우는 것들
은퇴한 사람들에게 일과를 물어보면 아침에 일어나 김밥과 물 싸들고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전부라는 사람이 많다. 딱히 갈 데가 없어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의 지인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퇴직을 같이한 한 친구는 평생 취미활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 어쩌다 동창들 만나 약주 한잔씩 하는 게 전부라고 한다. 은퇴 후의 단조로운 일상에 대해 들려오는 얘기들을 듣다 보면 일찍 시골로 내려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든다.
“제가 지금도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면 여전히 정원에 관한 로망에 젖어 있을 겁니다. 주말마다 자연을 찾아 떠났을 테고요. 안성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하루 종일 풀이나 뽑으면서 왜 그 고생을 하냐?’고 물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은근히 저를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부러워하면서도 여전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해요. 다른 삶을 펼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기 때문이죠. 돈이 무서운 이도 있어요. 물론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경제활동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모을 줄만 알지 한번 손에 넣으면 도무지 꺼낼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결국에는 다 놓고 갈 것들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좀 쓰고 살아도 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노후 준비는 50대부터 준비하는 게 맞다고 조언한다. 중요한 건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이나 일을 먼저 찾는 것. 은퇴 후에 어떤 사람은 이런 삶을 살더라, 저런 삶이 멋져 보이더라 하면서 흉내를 내면 얼마 못 가 한계가 오고 그 삶을 즐길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어느 날 친구 따라 밤낚시를 갔어요. 밤새 깜깜한 곳에서 낚싯바늘에 지렁이를 끼웠죠. 새벽에 보니 손톱 사이로 지렁이 살이 잔뜩 끼어 있고 말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친구는 그 손을 대충 닦고 밥을 먹더라고요. 낚시하는 동안은 수염도 못 깎고 행색이 엉망이 됩니다.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게 다 극복이 되고 본인은 행복한 거 아닐까요?”
올해도 그의 정원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그러면 또 감 따는 핑계를 대고 지인들이 와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축제 같은 열기 속에 흠뻑 빠졌다 갈 것이다.
그는 날마다 정원에서 배운다. 아름다움을 이해할 때 인간의 삶이 제대로 보이고 행복을 두드려 깨운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