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각을 세웠던 그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그의 아들도 그랬다. ‘3대가 시위 투쟁 집안’이라는 기사까지 났다. 그랬던 그가 20년 넘게 모은 토기 1582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이후 모았던 토기들도 다섯 차례 더 기부했다. 토기가 부업이라면 청동 수저 수집은 취미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마저 모두 내놓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최영도(崔永道·77) 변호사를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하지만, 1971년 사법파동의 주역으로 찍혀 1973년 유신 때 재임명 탈락 전까지는 법복을 입고 판사로 활동했다. 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젊은이들을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민변의 창립발기인이자 회장을 맡았고, 참여연대의 공동대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까지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엮은 와 유럽 미술관들을 다룬 등 여러 저서를 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된 사건 중 하나는 2001년 평생 모아온 토기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일이다. 모두 6차례에 걸쳐 토기 1668점과 청동 수저 51점 등 도합 1719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기증실에 약 60여 점의 토기가 전시되어 있다. 수집 과정과 기증 후의 이야기까지 엮어 이라는 책도 냈다.
토기 박물관 만들자 결심해 수집 시작
그가 유물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해직판사가 돼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엔 백자 연적이나 유병(油甁)과 같은 도자기 소품을 모으다 고미술 시장에서 만난 후배의 권유로 토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가치 있는 토기들을 모아 박물관을 건립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즈음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투박한 토기는 청자, 백자 등 다른 유물들에 비해 박물관이나 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사들여 해외로 유출하고 있었죠. 그래서 토기들을 수집해 박물관을 차리고 싶었습니다. 판사복을 벗었으니 평범한 법률가로 남겠다 싶었는데 인생의 목표가 생겼던 것이죠. 아내가 대찬성을 해줘 즐겁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토기는 멀게는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오랜 기간 우리의 삶과 함께했다. 현재는 장례 때 많은 토기를 부장품으로 넣는 것이 유행했던 가야 때 것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장묘제도의 변천으로 부장품을 적게 넣어 출토가 적은 고려, 조선 시대 토기가 가장 보기 힘들단다. 그가 기증하기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도 고려, 조선 시대의 토기는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거의 없었을 정도. 수집가들의 기증문화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이러한 수집은 쉽지 않았다. 포기해야 할 것도 있었다. 라운딩 한 번 나갈 돈이면 저렴한 토기 1~2점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골프도 끊고, 술도 줄였다. 인사동과 장안평을 샅샅이 뒤지느라 1000원짜리 감자탕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많았고, 차에서 전투식량으로 요기를 하기도 했다.
유물의 해외 유출을 막기도 했다. 1983년 인사동에서 백제토기 ‘쇠뿔잡이항아리’를 만나 반했지만, 2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망설였다. 그러다 평소 눈독을 들이던 프랑스 외교관이 곧 사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마련해 갈 테니 항아리를 숨겨 두라고 부탁해 겨우 확보하기도 했다.
감정방법부터 관리방법까지 이론 익혀
초창기부터 박물관 건립을 고려했기 때문에 수집 형태도 남달랐다. 개인적 기호와는 무관하게 시대, 지역, 기형, 문양 등 4가지 기준을 놓고 학술적 가치까지 고려해 수집했다. 학술적 가치가 있다면 싼 것도 모았고, 상품가치가 없을 수 있는 파편도 사들였다.
수집을 위한 연구와 노력 덕분에 토기와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도 얻었다. 토기를 감정하는 나름의 7가지 방법을 터득해 진위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분류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토기를 보면 살짝 혀끝을 그릇에 대보는데, 진품인 경우 토기 내부에 다공층이 있어 혀가 잠깐 달라붙는다고. 그때 나는 기분 좋은 곰삭은 냄새는 즐거운 덤이다. 토기를 구입하면 경질토기와 연질토기를 구분해 각각의 특성에 맞게 세척하거나 건조하는 방법도 익혀야 했다.
실제로 그가 기증한 유물 1719점에 대한 초록을 제작할 때, 박물관 측과 유물 분석에 대한 수십 건의 이견이 있었지만 몇 건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2010년 발간된 이 은 그가 제안한 분류법대로 편집됐다.
그렇게 20년 이상 수집이 진행돼 고미술 시장에서 더 이상 사고 싶은 토기를 보기 어렵게 되자, 본격적인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서울 인근에 소박하게 아이들이 와서 보고 갈 수 있는 규모의 박물관이 되려면 300억 원 이상 필요하겠더라고요. 제 돈으로는 어림도 없어 대기업이나 정부에 모아놓은 것을 모두 무상 기증할 테니 토기 박물관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퇴짜 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끌어안고 고민만 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 여러 차례 요청이 와 기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증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모아놓은 토기들에 대한 걱정이 너무나 컸던 것도 있다. 혹시 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그 토기들이 어떻게 될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해외를 나갈 때, ‘내게 문제가 생기면 토기들을 국·공립 박물관이나 대학 박물관에 무상기증을 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반드시 남겨놨다고 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유서를 쓰고 찢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이러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토기들은 어떡하나 하고 똑같은 걱정을 반복하다, 아끼는 것일수록 박물관에서 오래도록 전시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증 결심이 섰다고.
오래 관리되고 기억되길 원해 기증 선택
기증처가 국립중앙박물관이 된 것은 그전부터 이어오던 인연 때문이다.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 토기 전시회에 44점을 찬조 출품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의 위치인 용산으로 이전을 계획할 때, 기증관 구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최영도 변호사 측에 제안해 기증이 이뤄졌다. 물론 다른 박물관에 비해 뛰어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관리, 전시 능력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이 과정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선택받았다”라고 표현했다.
2001년 기증 후에도 그의 토기 수집에 대한 습벽은 쉽게 멎지 않았다. 그만해야지 싶다가도 좋은 유물이 나타났다는 전화에 흔들리기도 했고, 궁금해서 일단 보면 지갑 열기를 멈추지 못했다. 아예 눈을 닫으려고 하면, 상인들이 토기를 들고 사무실로 들이닥쳐 외상으로 맡기고 갔다. 이렇게 토기들이 더 모여 몇 차례 계속 기증하길 반복했다.
한눈에 반한 토기를 만나면 며칠이고 침대에 두고 끌어안고 잘 정도로 사랑이 남달랐던 그다. 때문에 시집보낸 딸처럼 토기들이 눈에 아른거릴 법도 한데, 기증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잘했다 싶단다.
“평생을 바쳐 모은 수집품들이 주인을 잃고 나서 허망하게 시장에서 뿔뿔이 팔려 나가거나,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사설 박물관도 후대로 넘어가면 초심이나 전문성을 잃는 사례가 있습니다. 때문에 기증문화의 발전은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중요합니다. 유물은 국가와 국민의 소유이고, 수집가들은 그것을 잠시 맡아 두는 창고지기일 뿐입니다.”
모든 토기를 기증하고 나서는 기쁨과 해방감을 함께 맛봤다고 말했다.
“무거운 관리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수집은 명예인 동시에 속박이라는 것을 느꼈고, 모두 다 기증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워졌습니다. 박물관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쉽게 기증 결정할 수 있게 제도 개선돼야
해외 미술관을 돌며 관찰해 이를 엮어 책까지 발간한 그이기에 기증문화에 대한 의견은 현실적이다. 특히 기증을 하는 것만큼이나 기증을 받는 쪽의 태도 변화도 절실하다고 이야기한다.
“학계나 관련 기관에서는 수집가나 고미술 상인을 낮춰보거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수집은 단순히 돈을 주고 가져오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신중한 과정을 거치는데,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만큼 수집품에 대한 지식과 애정 또한 상상 이상입니다. 그런 ‘귀한 자식’을 받아주는 일인 만큼 받는 쪽에서도 애정을 갖고 기증품을 다뤄줬으면 합니다. 전시 과정에서도 기증자에 대한 부각이나 배려가 고려된다면 보람도 느낄 수 있고, 기증에 대한 동기유발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증자들이 스스로를 박물관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경우 기증자의 이름이 잘 보이도록 크게 써 놓거나, 아예 액자에 새겨 넣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최영도 변호사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자 대표로 기증 후 몇 년간 추대 받아 활동하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기증과 관련한 강연 등의 요청이 와 이런 의견들을 밝힌 적도 있다고 했다.
최영도 변호사는 문화 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수집가라고 모두 다 엄청난 재산가는 아닙니다. 수집을 위해 평생의 재산을 바치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런 경우 기증 후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가 기증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때문에 수집가들을 위한 세제 혜택이나 연금제도의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세제 혜택 제도는 기증품에 대한 평가가 어려워 법까지 만들어 놓고 시행하지 못한다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특히 세제 혜택 마련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증품에 대한 가치평가와 관련해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관과 학계, 업계, 수집가들로 구성된 공동평가기구를 만들어 기증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된다면 세제 혜택뿐만 아니라 기증을 후원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글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 joonlee@empas.com
화가 김환기(1913~1974)와 화가 도상봉(1902~1977)은 유난히 달 항아리를 좋아했다. 김환기는 여러 점의 달 항아리를 수집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그림의 소재로 삼았고, 종이 오브제로 직접 달 항아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도상봉도 도자기를 좋아해서 아호를 도천(陶泉)으로 삼았다고 한다. 1950년대 많은 정물화에 도자기가 등장한다. 특히 직접 구입한 달 항아리를 그린 그림도 여러 점 전해진다. 시인 김상옥(1920~2004)은 조선백자를 평생 사랑하여 한때 인사동에서 고미술점 ‘아자방(亞字房)’을 직접 운영하며 수많은 조선백자를 수집하였고, 달 항아리도 여러 점 소장하여 백자를 주제로 한 주옥같은 시조를 남겼다.
‘조선백자 대호(大壺)’가 정식 이름인 달 항아리는 두둥실 하늘에 뜬 보름달과 같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고미술학자나 현대 도예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높이 40cm 이상이고 둘레가 120cm 이상의 구형(球形) 순백자에, 제조기법상 아래 위 반구형 두 개 결합해서 소성(燒成)하고 맑은 백자유를 시유해 1250도~1300도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대호라 이른다.
물레를 돌려 빚는다 해도 완성품보다 1.3배 정도 더 커야 하는 고로(번조 과정에서 약 30% 정도는 축소됨) 무게와 부피가 한 아름이 넘는다. 초벌구이 과정에서도 자체 무게 때문에 주저앉거나 파열되기 일쑤다. 이를 그대로 전승하고자 하는 도예가들도 열에 한두 점 완성품을 건지기 고작이다. 또한 전래품들은 술을 담거나 간장을 담는 등 생활용기로 사용했으므로 파손이 심해 남아 있는 수효가 극소수로 그 희소가치가 높다.
리움미술관 호림미술관 국립박물관 등과 지방의 전시회를 쫓아다니기 30여 해, 안복(眼福)은 누렸으나, 수집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백자를 꾸준히 연구하고 만들어 내는 현대 도예가들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여성도예가 김익영(1935~ )은 서울대 공대에서 화공학, 홍익대에서 공예미술을 전공한 뒤, 미국 뉴욕의 알프레드 요업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국민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길러냈다. 유학 중 영국 공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의 초청 강연에서 ‘한국의 조선백자가 현대인이 추구해야 하는 미의 세계’라는 열강을 듣고 감복, 백자를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순백자의 담백하고 고졸(古拙)한 멋에 젖어 여러 형태의 백자를 빚고 구워보았으나, 1960년대에는 도자 가마가 적어 백자를 시연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1965년 일본 전시를 비롯해 지금까지 30여 회 가까운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도자의 실용성을 강조해서 생활용기의 격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1975년부터 국민대 교수로 많은 제자를 길러내면서 태토(胎土)의 선별부터 가마의 과학적 제조, 특히 백자유약 데이터의 체계적 정리와 실행에 이르기까지 백자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1978년 개인 가마 ‘우일요’를 개설하고 그만의 개성 강한 도자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면 깎기’라는 고난도 작업으로 합(盒), 푼주, 제기(祭器)등 전통 조선백자에 근원을 두되 이를 재해석하고 변용한 도자를 빚었다.
몇 년째 창덕궁 담 옆의 ‘우일요’를 드나들며 여러 기물을 보고 만지고 연적, 필통, 벼루 등을 사 모으던 중이었다. 달 항아리를 왜 안 만드시느냐고 여쭙자, “전에 몇 점 만들어 보았는데, 이제 무릎이 안 좋아 힘에 부치고 완성품을 얻기가 어려워 망설인다”는 노도예가의 진솔한 대답이었다. 조카따님을 졸라 2008년 여름에야 김익영의 달 항아리를 만날 수 있었다. 설백(雪白)의 유현(幽玄)한 유약의 흐름과 당당한 자태에 반해 덥석 끌어안고 말았다. 이 달 항아리 앞에선 그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나주 반닫이 위에 앉히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서너 시간 들으며 몰아의 경지에 젖었다.
아키야마 준(秋山 潤·1970~ )은 일본인으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도자에 매료돼 10여 년 공방을 찾아다니며 도자 공부를 한 뒤에 조선백자의 연원을 찾아 2002년에 한국에 왔다. 한국 부인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경남 창원에 스스로 가마를 짓고 조선백자를 잇는 순백자를 굽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도예가들을 찾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백자 도예의 길을 정진하였다. 그 첫 결실로 2006년 드디어 인사동에서 백자전을 열었다. 그 이듬해에는 경북 청도로 옮겨 현재까지 백자를 굽고 20여 회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극도로 절제되고 유약이 너그러운 인사동 전시작품이 눈에 어려, 그의 가마를 찾고 싶어 알아본 끝에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다. 2008년 봄날에 그의 초대로 청도의 공방을 처음 방문하였다. 그의 작품처럼 검소하고 정갈한 작업실을 거쳐 내실로 들어서면서 그의 달 항아리를 만났다.
수십 점을 소성해 보았으나 겨우 두 점만 얻었다며 망설이는 부부를 설득하여 한 점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열차로 운송하기가 어렵다며 며칠 후 서울의 집까지 손수 가져다주었다. 다른 일본 예술인 두 명과 함께 자리한 우리 거실에서 조촐한 다과와 함께 소리꾼 장사익의 절창 ‘허허바다’를 음반으로 듣던 순간이 선연히 떠오른다. 지금은 침실에 두고 밤을 함께하고 있다. 그의 백자유약은 난백(卵白)으로 부드럽기 그지없다. 흰빛이 너무 차가워 색을 바꿔 보았다고 하지만, 고국에 대한 향수가 녹아든 것이리라.
오늘날에도 많은 도예가들이 조선백자를 전승하거나, 모티브로 삼아 달 항아리를 만들고 있다. 그 무슨 마력이 그 힘들고 경제성 없는 고단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일까?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진흙을 반죽해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의 쓰임이 있다’고 하였다.
김익영도 “용(用)이라는 공예의 사회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쓰임으로 보면 달 항아리는 경제성이 취약하다. 적지 않은 돈(이,삼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주고 사다가 간장 된장을 담고, 술을 담아 사용하겠는가. 귀하게 모셔놓고 완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텅 빈 공간에 애틋한 마음을 가득 채우고 허리를 두 팔로 안아보면, 어느새 휘영청 밝은 달은 심신을 정화해 주거늘, 어찌 세속의 시선이 두려우리요.
>>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제2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며 입소문을 타는 골목이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에 위치한 일명 ‘방배사이길’이다. 소박하지만 즐기는 재미가 쏠쏠한 방배사이길 사이사이를 둘러봤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1. 꽃향기가 솔솔 나는 편집숍 ‘세그먼트(Segment)’ & ‘키마(Kimma)’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조금씩 들여놓는 여느 편집숍과는 다르게 세그먼트는 한 브랜드의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다양하게 선보이는 게 특징이다. 세그먼트의 한쪽에는 100년 전통의 스웨덴 브러쉬 브랜드 이리스 한트베르크의 제품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그 벽면을 지나면 이곳의 또 다른 공간 ‘키마’가 연결된다. 키마는 잡지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정기적으로 꽃을 배송해주는 플라워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796-27
문의 (세그먼트) 02-533-2012, www.segment.kr (키마) 070-7644-1413, www.kimma.kr
2. 흰 우유 아이스크림과 하얀 도자기의 만남 ‘방배목장’& ‘세라워크’
나만의 도자기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방 세라워크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방배목장이 함께 있는 숍인숍(shop in shop) 매장이다. 초벌한 도자기 위에 연필로 스케치해 안료를 채색한 뒤 1250℃의 가마에 굽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도자기가 탄생한다. 세라워크 공방에서는 일일체험부터 60여 가지 세라워크의 고유 디자인을 마스터할 수 있는 정규 취미반, 전문가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한 생일파티나 이벤트 체험 신청도 가능하다. 방배목장에서 판매하는 천연우유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진한 우유 맛이 일품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42길 11
문의 02-796-4498, www.ceraworkcafe.com
3. 한 땀 한 땀 힐링이 되는 가죽공방 ‘알라맹(a la main)’
불어로 핸드 크래프트라는 뜻의 ‘알라맹(a la main)’은 그 이름답게 가죽 가방과 각종 소품을 전부 가죽을 이용해 수공으로 만들고 있다. 가죽 클래스를 신청하면 가죽 선택부터 실, 내피 그리고 재단과 바느질까지 전 과정을 손수 해내게 된다. 매주 월·수·목·토요일에 진행되는 수업에 오는 이들은 가죽 공예를 배우는 것과 더불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소박한 즐거움을 만끽한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42길 20
문의 070-8832-7735, blog.naver.com/jimy0003
4. 나만의 향기를 찾는 공간 ‘향수공방(GN Perfume Studio)’
국내 1세대 조향사가 설립한 향수공방은 150여 가지의 조합향료와 향수베이스, 20여 가지의 천연향료를 이용해 나만의 향수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시향해보고 맞춤향수 설문지, 심리테스트지 등을 작성한 뒤 퍼퓸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향수를 제작할 수 있다. 체험 비용은 완성된 향수(50ml) 한 병을 포함해 5만 원이다. 일반 향수 가격대에 질 좋은 재료로 직접 원하는 향을 골라 첨가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42길 24
문의 070-4521-7737, blog.naver.com/diyperfume
5.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명품 디저트의 조화 ‘카페 라리(Cafe La Lee)’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앤틱 가구들이 돋보이는 카페 라리는 고품질의 원료를 사용한 100% 냉장 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다. 냉동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 일품인 치즈케이크는 단골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디저트 중 하나다. 계절별로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과일 치즈케이크를 선보이는데, 7월에는 체리의 풍부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체리치즈케이크와 달콤 상큼한 오렌지치즈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42길 3
문의 02-3477-7223, www.lalee.com
6. 마음을 담아 굽는 프랑스 빵집 ‘리블랑제(Lee Boulanger)’
제빵용 첨가제, 인위적 팽창제, 광택제, 저급 제과점용 가공유지 등을 사용하지 않고 신선하고 정직한 재료만을 사용하는 베이커리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보이는 오픈 키친에서 매일 정성껏 소량의 빵을 만들어 판매한다. 때문에 일반 빵집에 비해 진열된 빵이 적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직한 맛으로 승부하는 만큼 인기 있는 빵은 금세 동나기 때문에 시간대를 잘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다. 주로 빵이 나오는 시간은 오후 1시께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42길 46
문의 02-532-6410
전통 한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ㆍ화ㆍ담의 메뉴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명 도예가의 작품에 담긴 음식은 식용 꽃과 야생화로 장식되어 오감을 자극하고, 계절마다 제철 최상의 식재료로 차려진 자연음식은 사계절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건물 외관과 갤러리를 옮겨놓은 듯한 품격 있는 인테리어는 격조 있는 음식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한 점의 예술 작품을 보고, 읽고, 맛보다
“내 생애 최고의 만찬이다.”, “음식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시·화·담을 다녀간 국빈급 외국인, 정·재계 인사 등 VIP 고객들의 찬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기념 국빈 만찬을 담당했던 시ㆍ화ㆍ담은 청와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만찬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레스토랑 최초 세계 최고급 럭셔리 호텔·레스토랑 연합 릴레샤또(Relais&Chateaux)의 멤버이기도 하다. 시·화·담은 럭셔리 콘셉트의 파인다이닝 이태원점과 레스토랑 인사동점이 있다. 이태원점은 모두 예약제로, 특별한 혜택과 예우를 받을 수 있는 멤버십 제도를 운영한다.
점심 메뉴인 ‘한 줄의 시(11만원)’을 비롯해 ‘그림 한 폭(16만 5000원)’ ‘즐거운 이야기(27만 5000원)’ ‘미식가들의 만찬(38만 5000원)’ 등 10~18개의 메뉴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음식은 조선시대 골동사발을 비롯해 유명 도예가들의 최고급 작품에 담긴다. 건강 주전부리 메뉴는 도자기 위에 슈거파우더 아트로 원하는 사진이나 글을 표현해주는 독특한 서비스가 함께 제공된다. 라운지에서는 Hans J. Wegner의 미들센츄리 오리지널 작품 가구들과 로비엔 이인진, 이헌정, 한애규 등 현대 도예작가들의 설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경리단길 방향으로 100m지나 알제리대사관 옆에 위치해 있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알제리대사관’, ‘필리핀대사관’ 또는 ‘이태원동 5-5’로 입력하면 편리하다. 시·화·담 이태원점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이(異) 길에 답이 있다”
이 한마디에 협업(Collaboration)의 핵심이 담겨 있다. 다름과 만나 세상을 보라, 그리고 미래를 열라는 뜻이다. 두 개 이상 개체의 결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은 비단 기술에 인문학을 입힌 애플의 성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상생과 동반성장이 화두가 된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결이기도 하다. ‘협업은 축복이다’라며 협업 문화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윤은기(尹殷基)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을 지난 1월 7일 만나봤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윤 회장은 협업을 대학병원에서의 협진을 예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전공의들이 만나야 협진이 이뤄지는 것처럼, 앞으로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융·복합돼야 협업의 가치가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그는 다름이 아니면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지내서 동지, 동포, 동료, 동창생 등 같은 것에는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교도, 이문화, 이단, 이민족 등 다른 것은 가차없이 배척했다. 이에 중앙공무원 교육원 원장을 역임한 윤 회장은 한국사회의 운명을 바꿀 만한 의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협업’에 주목했고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해 사람들을 만나 협업에 대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1달에 보통 10번에서 많게는 20번가량 강의했고 그러다보니 처음엔 협업이란 단어를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포털사이트에 협업 관련 콘텐츠들이 꽤 많아졌고 ‘협업’검색에도 그의 이름이 상당히 등장하게 됐다.
그와의 일문 일답이다.
지난해 매우 바쁘게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2015년은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하고 한해 동안 협업문화의 원년으로 삼고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015년은 협업문화 확산의 해로 정해서 더 활발히 활동할 생각이다. 1월 말에는 직접 쓴 협업관련 도서도 나올 예정이다. 번역서는 있지만 한국인이 협업에 대해 쓴 첫 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셈이다.
협업 전도사로서, 협업을 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를 꼽는다면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서로 협력을 해야 협업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는 ‘동’의 시대였지만 앞으로는 ‘이’의 시대라고 본다.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문화 자체가 달라지는 이 시대에서는 ‘포’자 붙은 두 가지가 있으면 지혜롭게 살 수 있다. 포옹력(抱擁力)과 포용력(包容力).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끌어안아주는 포옹력, 서로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포용력이 필요하겠다. 혹시 엉뚱한 데 가서 포옹하는 건 성희롱이니 조심하고.(웃음)
올해 64세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시고 있다. 100세 시대,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첫째는 건강, 둘째는 적절한 경제력, 셋째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친구, 선배, 후배 상관없이 격의 없이 속마음을 나누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삶의 동반자는 있어야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이유는
매력적인 시니어가 없는 사회는 선진 사회가 아니다. 닮고 싶은 시니어가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일거다. 60이 넘어서부터 진짜 인품이 나타나는 것이고 진면목이 보여지는 시기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멋지게 나이 먹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우 유쾌하시다. 즐겁게 나이 먹는 비결이 있나
보통 청소년기 꿈을 이루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나는 그때 꿈이 소설가였다. 심리학과도 그래서 갔고, 비록 현재 소설가의 길을 가고 있진 않지만 단 한 번도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70세 전까지는 전업작가로 데뷔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어서 늘 소설가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또 한국문단의 대표적 작가인 ‘객주’의 김주영 선생도 꾸준히 만나 뵈면서 꿈을 가꿔나가는 중이다. 물론 연애소설은 이미 틀렸겠지만(웃음), 아마 자전적 소설을 쓰게 되겠지. 워낙 다양한 분야에 몸담아왔던지라 쓸 게 많지만 그냥 사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로 다듬을 생각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꿈, 그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
보물 1호가 있나
내가 가장 많이 가진 물건은 책이다. 하지만 가보 1호는 따로 있다. 내가 5개월 훈련받고 만 4년간 공군장교로 근무했는데, 그때 입었던 정복 한 벌은 지금도 깨끗하게 손질해 보관하고 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소중히 챙겨가지고 다니니 아내도 의아해한 적이 있는데, 나는 공군장교 시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서, 그때 입었던 이 군복이 내 정신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침 지난해에는 내가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는 국방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정복을 입어봤는데 다행히 20대 때 입던 게 잘 맞아서 입은 채 출연할 수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아, 언젠가 KBS에서 방송작가가 연락이 와서 가보를 묻길래, 이 정복 얘기를 했더니 진품명품이라며 당혹스러워하더라, 그런데 이 정복이 나에게는 몇 천만원짜리 도자기보다 더 소중하다.
그러고보니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 위원장, 명강사 등 워낙 다양한 길을 걸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학계, 재계, 관계, 문화예술계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봤다. 안 해본 건 정치인데, 지금도 정치는 안 하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안 해봐도 좋은 게 있는데, 나에겐 그게 정치다.
늘 청춘처럼 왕성하게, 나이를 잊고 도전하시며 살아오신 것 같다
진짜 간단하게도, 아내의 말이 부드럽게 들릴 때, 내가 진짜 어른이 됐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강의하고 책도 쓰고 심리학도 공부했고 그러다보니 젊었을 땐 이론적으로 따지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서로 누구 말이 맞느냐 논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아내 말이 들릴 때가 있더라. 내 말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그 말을 하는 심정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영역에서는 OX나 사지선다형이나 과학적 정답 같은 걸 뛰어넘는데 그 말들이 들릴 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모르던 세계가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책이 있다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나는 그 책을 읽고 다니던 종합무역상사를 그만두고 여행 다니다가 정보전략연구소(?)를 차렸으니까. 남들은 그냥 재밌다하고 말았는데 나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아내가 1주일간 여행을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중년 남성들의 로망인데
내 서재에 책이 한 천 권 이상쯤 있는 것 같다. 종종 정리해서 줄이는데도 그 정도. 평소에는 그중에서 경영, 심리학 관련 책들을 주로 본다. 만약 아내가 여행을 간다면 소설책을 꺼내 쭉 읽게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소설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니까.
자녀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인지 궁금하다
나는 아주 담백한 아버지다. 엄하지도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고 살갑지도 않은, 그냥 수채화나 담담한 가을날 같은 아버지다. 내가 밖에서 너무 교육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심리학, 경영학하고 대학 총장에 방송에 강의도 많이 했으니까. 근데 집에서도 그러기 시작하면 이건 부자관계가 아니라 사제관계가 돼버리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는 절대 스승노릇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좀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가장 평범한 부자관계, 부녀관계를 맺고 싶다. 그리고 유수의 심리학자들도 실수하는 게 있는데, 심리학에서 배운 걸 그대로 자식에게 적용하는 것, 대개 망친다. 우리나라 성공한 사람들도 가정에서는 비슷한 실수로 관계를 망친다. 그냥 아들, 딸이 보고 알아서 느끼면 좋겠다. 나는 철저하게 스승 사절, 존경받는 아빠도 사절이다. 그냥 인간적으로 멋있게 살다 간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살다보면 무수한 선택들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선택은
일단 심리학과에 진학한 것, 심리학을 원해서 지원했고 여전히 좋다. 또 공군장교 된 것과 현재 아내와 결혼한 것. 내 아내는 멋있는 사람이다. 부드럽고 여성적이면서도 매우 정의롭고 바른 길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건 당신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나를 설득해준다.
다양한 길을 걸어오셨다. 마지막으로 성공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세상은 넓다. 한 우물만 파지 마라. 많이 싸돌아다녀라.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면 먹고 산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많이 싸돌아다니고 시야를 넓혀라. 60세 넘어서 제일 안타까운 모습이 맨날 노인정만, 청계산만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가면 춘천도 남해도 동남아도 있다. 나이 들어서 가장 멋있는 건 많이 싸돌아다니는 거다. 아내에게도 그런 거 제한하지 않는 편이라, 다음주에는 친구랑 베트남에 간다고 하더라. 가라고 적극 지원해줬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평등이다. 비록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평등은 제약이 있겠지만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선영 미래미술관 관장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감탄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나이를 지워버리는 젊은 아우라에. 전업주부였지만 자기계발을 거듭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예술을 즐기고 배우면서도 내조를 잘하는 한국적 마담의 이상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처음 나온 질문이 ‘브라보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이냐’는 건 그러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그대로 나온 결과였다. 스타의식과 끼 넘치는 그녀에게 삶을 즐기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 시간을 보내면 보람을 느끼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뭔가 결여된 것이다. 결여는 대개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온다. 그러나 오선영 미래갤러리 관장은 주변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부러워 한 적 한 번도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해도 인컴(수입)이 없는 생활을 계속 했기 때문에, 어느 날 나도 인컴(수입)이 있는 일을 해봤으면? 하는 걸 느낌 적은 있어요. 그래서 강남시니어플라자의 CF 모델을 신청하려고요. 10월에 오디션이 있다고 해서 도전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워킹연습도 하고 있고, 워킹은 그 순간도 행복하고 건강에도 좋아요. 나이가 들면 건강해야 해요.”
예술은 인생을 살찌우게 하는 것
그녀가 하고 싶은 분야 또한 지금까지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지만, 미술 저변 확대를 위해 그림 자체를 감상을 못하거나 시간이 안되서 못하는 시니어들,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홍보해주고 티켓을 지원해주는 활동들을 하고 싶다는 것. 시니어들이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 안에서 봉사도 가능하게끔 하고 싶다는 게 오 관장의 생각이었다.
“생각이 들게끔 하려면 기회를 통해 두루 두루 감상과 경험을 해야 하는 거죠. 문화적 감성과 식견을 키워주고 싶은 욕심에 시니어들에게 미술관 활동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요.”
자랑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오 관장은 수줍게 말했다.
아울러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등 예술 저변의 확대를 추구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포부였다고.
혹시 남편이 그녀의 삶에 간섭한 적은 있을까? 배우자의 삶에 관여하는 배우자는 종종 자기계발의 동인이 되기도 하지만 부부 갈등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궁금해서 남편이 권하는 취미가 있는지를 물어봤다.
“권유가 전혀 없어요.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제게 뭐를 했으면 하고 말한 적 없어요.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스타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이해 못하죠. 그런데 우리 가족은 알아요.”
처음부터 금슬 좋은 부부였을까?
“제가 사랑할 만한 조건을 갖춘 게 아니라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짝이 되면 누구나, 누구든지 남편의 옆 자리에 있으면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사랑받을 조건을 갖춘 아내여서가 아니라 아, 이 남자는 내가 아니라도 다름 사람에게 동반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인생 후반전이 돼서 알았어요.”(웃음)
그녀는 남편과 맞선을 통해 결혼해서, 결혼 전에 남편에 대해 아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해보니 남편이 예술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파트와 일치하는 거야, 그게 제게 너무 행운이었어요. 남편은 형편이 안 되지만 능력이 있는 작가들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요. 돈이 될 거다 싶어서 그림을 사는 게 아니에요. 마땅히 도와줘야 할 작가라면 거리낌 없이 구입하죠. 남편은 그러한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문화와 철학이 있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에요.”
오 관장의 말 속에서는 남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며 그 자체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점을 가장 존경스러운 점으로 꼽았다.
이쯤에서 티격 태격하는 중년부부들에게 도움 줄 만한 말을 꺼냈다.
“당신은 왜 그래?” 같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중년 부부는 상처받기 쉽잖아요. 따라서 역지사지 자세로 배우자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배우자의 말을 경청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 것 같아요.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감에 상처를 주는 일은 금물이죠. 이러다 말겠지,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지하며 배우자의 감정들을 무관심할 게 아니라, 상대가 겪는 증상을 서로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스스럼없이 그녀는 “부부를 강하게 이어주는 방법 가운데 대화만큼 효과적이고 간단한 것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긍정심이야말로 젊음을 유지시키는 비결
오 관장의 말 속에서는 끊임없는 긍정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답지 않은 외모의 비결로도 긍정심을 들었다.
“제가 편안하게 사니까 긍정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긍정적이에요. 제 친정 오빠도 그렇게 얘기해요. ‘너는 지게꾼 아내가 되었어도 행복하고 흥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당연한 거 같아요. 저는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해본 적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름다움과 칭찬하는 말을 원체 좋아하고, 남을 흉 보는 말은 듣는 것조차도 지루하고 괴로워요. 혹시 친구가 대화를 하면서 누군가에 대한 나쁜 말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릴 거 같다면 다른 상대를 찾는 게 낫겠다고 말하곤 해요.”
주위에 친구들은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자랑하러 그녀에게 온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답고 품위를 좋아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는 그녀는 블랙톤으로 옷을 입고 나왔다. 혹시 그러한 패션 감각 또한 그녀의 캐릭터일까?
“비가 온다, 그러면 밝은 기분으로 코디를 해요. 장화를 신는다던지. 되도록 밝게, 하지만 때와 장소와 목적에 맞게끔 입는 편이에요. 봄이면 봄과 함께 걷고 가을이면 가을과 함께 걷는 듯한 옷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시니어들이 옷을 입는 것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 체형이 바뀌게 되어 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몸체를 그대로 드러나게 입는 것은 시니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매너라고 보죠. 저는 옷을 제2의 인격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몸이 안 되는데 억지로 입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몸에 맞지 않는 그런 옷차림은 추하고 천해 보여서 격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거든요. 예쁘다는 옷을 젊게 입는다고만 해서 젊어지진 않습니다.”
그녀는 옷을 입을 때 컬러가 최소 세 가지를 넘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세 가지도 많고 두 가지 선에서 끝내라는 게 패션에 대한 그녀의 철칙. 색을 절제함으로써 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마음의 넉넉함입니다. 우리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그랬지만(웃음). 내면의 멋이 있어야 해요. 그 사람이 고스톱을 치는데 혈안이 된 사람이라면 내면이 모두 고스톱일 텐데 멋있을 수가 있나요. 그런데 문화를 겸하지 않으면 지성미는 불가능해요. 중년의 멋은 과거가 만드는 거니까요. 체득화되어야 해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렇게 못했으면, 지금이라도 문화와 예술을 접하려고 많이 노력해야 지성미 있는 얼굴에 남게 됩니다. 지성미 있는 시간을 할애해야 가치가 내재화된다는 말이 있어요.”
만남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진다
오 관장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남’을 선택했다.
“만남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음악과의 만남, 그림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을 보면, 가족과의 만남이 있고 인생을 살찌게 만드는 사람과의 만남이 있기 마련이죠. 문화와 예술과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문화와 예술을 접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종교의 중요성도 말했다.
“살면서 종교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종교가 있으면 쉽게 해결 안 되는 고민도 해결되요. 큰일이 닥쳤을 때 작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버킷리스트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시원시원하게 단도직입적이었던 그녀의 대답은 마지막까지도 분명했다.
“난 성악가가 되고 싶어(웃음).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렸을 때만 해도 ‘평범하게 살려면 너가 평범해야 한다’는 아버님 말씀이 있어서 그렇게 못했거든요.”
엔터테인먼트 끼가 가득하다. 오 관장의 인상, 그리고 시, 도자기, 꽃꽂이 등 다재다능한 재능에는 그러한 예상을 짐작케 하는 강한 힘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무반주로 부른 그녀의 노래 실력은 깐소네, 샹송을 넘나들고 있었다. 대한민국 중년여성이 멋지게 산다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었다.
벌어지는 입을 닫을 수 없다. 피곤한 하루를 마친 태양. 잠에 들려는 듯 바다 속으로 사라지며 물결을 빨갛게 물들인다. 그 순간 잡념은 사라지고 도시에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어떤 이들은 그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어떤 이들은 아무 방해도 받기 싫다는 듯 멍하니 그 장관을 음미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시칠리아. 영화 대부, 시네마 천국, 그랑블루 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될 만큼 그 자연 풍광과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독일 문학의 상징 괴테도 말했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시칠리아 안에서도 괴테가 세계 최고도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곳이 있다. 북부에 위치한 팔레르모다.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 곳에는 ‘4개의 모서리’를 뜻하는 콰트로 콴티(Quattro Canti)와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이 있다. 콰트로 콴티는 예술작품으로 꾸민 3층 건물 4채를 말한다. 1층은 사계절 여신들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 2층은 시칠리아를 지배한 왕들, 3층에는 성녀의 모습이 담긴 조각상이 있어 콰트로 콴티만의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1184년 팔레르모 대주교에 의해 세워진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에서는 다양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성당은 팔레르모를 지배한 여려 세력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섞여있다. 외부는 고딕 양식, 남쪽 현관은 카탈로니아 양식, 돔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혼합돼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내부에 있는 왕들의 무덤과 보물을 구경하는 것도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을 즐기는 색다른 요소다.
◇ 시네마천국의 배경 ‘체팔루’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가 데이트를 하던 낭만적인 해변 마을을 기억하는가. 유럽 왕족과 유명 인사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체팔루다.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건물과 해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준다.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 보다는 작지만 그보다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는 체팔루 두오모 성당과 페스카라 문도 으뜸이지만, 무엇보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절경을 빼놓고 체팔루를 얘기 할 수 없다. 해안가 따라 이어진 다소 이탈리아 정서의 소박하고 낡은 건물과 고즈넉한 해변이 드넓은 바다와 조화를 이뤄 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는다. 한 폭의 그림. 환상적인 도시. 그 이상의 수식어를 더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체팔루다.
◇ 시칠리아 최고의 휴양지 ‘타오르미나’
시칠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휴양지 타오르미나. 영화 ‘그랑블루’ 배경지이기도 하다. 타오르미나 절벽 위에 세워진 그리스극장은 이 도시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기원전 3세기 때 지어진 이 야외극장은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여름에는 발레나 음악회 등이 열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기자기한 상점이 들어서 있는 움베르토 1세 거리는 저녁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예쁜 도자기와 기념품, 장식품을 전시하는 상점이 많아 유쾌함 넘치는 곳이다.
◇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
거리 자체가 중후한 멋을 뽐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두오모 광장, 아레투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강의 신’ 알페오스가 샘에 뛰어들어 스스로 강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아레투사의 샘, 1만6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리스 극장부터 검투경기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로마원형 경기장까지. 이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고대 그리고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다. 거리의 야경이 유난히 빛나는 시라쿠사는 낭만과 역사가 공존한다.
◇ 유럽 최대의 활화산이 있는 ‘에트나’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에트나산(3350m). 기원전 2700년부터 화산활동을 한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화산답게 최근까지 그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 신’ 불카누스의 대장간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에트나 화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됐다.
투어2000에서는 시칠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8박 9일 일정의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 여름 지중해의 보배, 시칠리아의 낭만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지.
사진 : 투어2000 / 문의 : 투어2000(02-2021-2000)
오는 7월부터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이 적용됨에 따라 75세 이상 노인들은 현재의 절반 비용으로 어금니 또는 앞니에 대해 평생 2개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된다.
그러나 연령 조건이 맞다 해서 모든 노인이 임플란트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은 치아 수, 보철 재질 등에 따라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임플란트 보험 적용의 주요 조건에 대해 알아봤다.
Q)임플란트 부위별 제한은
A)위·아래 잇몸에 상관없이 평생 2개의 어금니 또는 앞니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다만 앞니 임플란트의 경우 치조골 등의 문제로 어금니 임플란트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 어금니 임플란트가 가능한데도 앞니에 임플란트를 하려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진료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한다.
Q)남은 치아 수와는 관계가 없나
A)일부 치아가 남아있는 '부분무치악' 환자만 건강보험 급여로 임플란트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정책 측면에서는 임플란트를 '부분틀니'를 대신하는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혀 이가 없는 '완전무치악'의 경우 몇 개 임플란트로는 '씹는(저작) 기능' 회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효용성 측면에서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이 경우에는 '전체 틀니' 시술이 권장된다.
치조골(잇몸뼈)이 많이 없어졌거나 약해서 뼈 이식이 먼저 필요한 임플란트 시술도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학적으로 75세이상 노인에게 효용·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골이식 임플란트가 권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Q)임플란트 재료 재질에 따라서는
A)치과 임플란트 시술에 사용되는 재료는 크게 세 가지로, 치조골에 심는 뿌리 역할의 나사모양 고정체(FIXTURE)·고정체 위에 붙이는 기둥 역할의 지대주(ABUTMENT)·고정체를 덮는 치아 모양의 보철(크라운) 등이다. 고정체와 지대주의 경우 개별 제품별로 건강보험 목록에 등록되고, 표면처리 방식 등 재료 특성에 따라 가격(수가)이 13만~27만원 수준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보철(크라운) 재료의 경우 금속 위에 도자기 재질을 덧씌운 'PFM 크라운'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외 금이나 금 위에 도자기를 씌운 PFG, 지르코니아 등의 재료로 만든 크라운은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다.
Q)건강보험 적용되면 환자 부담이 얼마나 줄어드나
A)건강보험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받을 때 본인 부담율은 절반인 50%이다. 의원급을 기준으로 임플란트 행위에 대한 수가(의료서비스 대가)가 1개당 약 101만원, 치료재료(고정체·지대주) 수가는 약 18만원 선에서 결정될 예정이기 때문에, 환자는 전체 수가 119만원(101만원+18만원)의 절반인 6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예를 들어 아래턱 어금니 1개가 없는 77세 할머니가 동네 치과의원에서 PFM 크라운 재질의 임플란트 1개를 심는다면, 지금까지는 전액 건강보험 비급여로서 약 139만원을 할머니가 내야했지만, 7월부터는 79만원 적은 60만원(139만원의 50%)만 지불해도 임플란트를 받을 수 있다.
Q)만 75세 이하 노인들은
A)정부는 우선 만 75세이상 노인들의 임플란트에 대해 7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한 뒤 2015년 7월에는 '만 70세이상', 2016년에는 '만 65세이상'으로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연령을 낮춘 이후에는 현재 2개인 건강보험 적용 가능 임플란트 개수도 점차 늘려나갈 방침이다.
수원문화재단이 오는 5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화성행궁 상설한마당 개막공연’을 진행한다.
이번 개막공연이 재단이 연중 진행하는 ‘무예24기공연’, ‘장용영 수위의식’, ‘광장상설공연’, ‘토요상설공연’, ‘정조대왕 거둥행사’ 등의 시작을 앞두고 한자리서 펼치는 자리다.
개막식에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의 상징인 수원화성 행차가 담긴 ‘정조대왕 어가행렬’과 ‘군악대·의장대 퍼레이드’, 라퍼커션, 무동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가 선보인다.
특히 어가행렬이 화성행궁 광장에 도착하면 정조대왕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장용영수위의식’, 정조시대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 실전 무예인 ‘무예24기 시범공연’ 및 마상재를 펼쳐 보인다.
이번 공연은 현대적 감각의 무대를 연출한다. 쌈바퍼레이드 라퍼커션이 화성행궁 광장에서 전통적인 모습과 다이내믹한 모습이 그려져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마련했다.
또 수원 출신의 소프라노 이영숙, 미모의 실력파 퓨전 크로스오버 그룹 더 홀릭, Y-Kick 태권 마샬아츠 퍼포먼스, 드라마 ‘신돈’, 영화 ‘미인도’ 주제곡 OST 부른 국악인이자 대중가수인 이안 등이 출연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무대를 펼친다.
이와 함께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화성행궁 내에서는 왕, 왕비체험, 갑주체험, 떡메체험, 한지 만들기, 도자기 체험, 구슬공예, 장용영 갑주체험, 민속놀이(투호, 고리던지기 등) 등의 상설체험마당이 진행된다. 문의 (031) 290-3632
[기사제휴: 경기일보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27일 진행된 서울옥션 3월 경매가 낙찰률이 82%(150/123), 낙찰총액이 36억 8600만원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경매는 2007년 이후 열린 메이저 경매 가운데 최고 낙찰률을 기록했다.
서울옥션 이학준 대표는 “김환기·이우환·이대원·오치균 등 2007년 미술시장 분위기를 이끌었던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 이는 미술시장 회복을 알리는 청신호로 보인다.”고 경매 소감을 전했다.
이번 경매 최고가는 김환기의 1960년대 작 ‘섬’으로 6억 1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대원의 작품은 총 5점이 출품돼 4점이 낙찰됐다. 이중 2억 4500만원에 낙찰된 ‘과수원’이 최고가를 기록했다. 오치균·이우환의 출품작은 매진됐다. 오치균의 ‘여름 싼타페’는 1억 1500만원, ‘감’은 5000만원, ‘빌라’는 3300만원에, 이우환의 ‘점으로부터’는 1억 6300만원, ‘동풍’은 1억 1500만원에 낙찰됐다.
이번 경매에서 고미술 분야의 낙찰률은 약 88%를 보였고, 유복렬의 소장작과 도자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등 다양한 작품이 출품돼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가운데 최고가는 1억 8000만원에 낙찰된 ‘목조해태상’이다. 최고 경합을 이끌었던 작품은 나전함의 ‘이왕가미술공장 근제 나전대모선문함’으로 추정가 500만원에서 1000만원에 출품돼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금액인 5200만원에 낙찰되는 영광을 안았다.
박정희의 휘호 ‘자조, 자립, 자위’는 5000만원으로 현장 응찰자에게 낙찰됐으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국무총리에게 보냈던 편지는 650만원에 낙찰됐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안중근 의사 유묵 ‘경천’은 유찰됐다.
제8회 화이트 세일은 출품된 57점이 모두 낙찰돼 낙찰률 100%를 기록했다. 특히 50만원부터 시작한 부샹파이의 ‘풍경’은 가장 열띤 경합을 일으키며 시작 가보다 10배 높은 500만원으로 전화 응찰자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