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과 모니카가 건강이 나쁜 손자 데이빗을 위해서 친할머니 대신 외할머니를 부른다. 많은 엄마들도 모니카처럼 친할머니 대신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자녀를 양육한다. 그런데 이 같은 결정은 과학적으로 보면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사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정이 발생한다. 이에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데이빗’과 여동생 ‘앤’을 돌봐줄 사람으로 한국에 있는 엄마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부른다.
데이빗은 처음 만난 낯선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고 투덜댄다. 게다가 다른 집 할머니들처럼 맛있는 쿠키를 구워주지도 않는다. 데이빗은 서툰 한국말과 영어로 외할머니가 싫다고 말하지만 순자는 반대로 알아듣고 기뻐한다. 갈수록 나빠지던 둘의 사이는 옷장 사고를 계기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순자가 외할머니가 아니고 친할머니였으면 어땠을까? 친할머니였다면 사이가 계속 나쁜 채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과학적으로 보면 손자는 외할머니가 친할머니보다 더 가깝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외할머니는 손자와 손녀와 비슷하게 가깝고, 친할머니는 손녀와 가장 가깝다.
실제 과학적인 연구에서도 손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손녀는 친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가장 높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레슬리 냅 교수 연구진은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이 유전자와 관계가 있다고 믿고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2009년까지 일본과 에티오피아, 감비아, 말라위의 농촌지역, 독일과 영국, 캐나다의 도시 지역 인구변화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2009년 10월 28일 국제학술지 ‘왕립학회보 B’에서 7개 국가의 인구변화 자료를 분석해 손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높고, 손녀는 친할머니와 함께 살 때 생존율이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XY성염색체를 토대로 조부모와 손주의 관계를 단순하게 분석해보면 손자는 친할아버지로부터 Y염색체를 받고,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로부터 X염색체를 받는다. 반면 손녀는 친할머니로부터 X염색체 하나를 받고, 나머지 X염색체를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로부터 받는다.
비율로 따지면 손녀는 친할머니와 X염색체를 50% 공유하고, 외할머니와는 X염색체를 25% 공유한다. 반면 손자는 외할머니와 X염색체를 25% 공유하고, 친할머니와는 관계가 전혀 없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체 유전자 중에서 X염색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8%에 얼마되지 않는다. 이처럼 X염색체는 전체 유전자로 볼 때는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손녀와 손자에게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일까? 과학적으로는 할머니가 손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할머니가 전해준 특정 유전자가 손주의 생존을 더 유리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X염색체에 지능처럼 생존에 아주 중요한 유전자가 있어서 생존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93년 6월 고려대학교를 출발한 자동차 한 대가 남산1호터널을 지나 한남대교, 올림픽대로, 여의도 63빌딩에 도착했다. 특별할 게 없어보였던 이 차는 운전자 도움없이 작동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핸들과 엑셀, 브레이크를 컴퓨터가 작동시켰다. 그리고 이 차는 1995년 8월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시험주행하는 데도 성공했다.
자율주행이라는 말이 매우 낯설던 1990년대에 한국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도심 자율주행에 성공해냈다. 그가 바로 한민홍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첨단차 대표다. 정년 퇴임 후에는 2000년 7월에 교내 벤처로 설립한 첨단차에서 자율주행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만79세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독일 법원 ‘오토파일럿’ 용어는 허위 광고 판결
자동차 자율주행에 대해 30년 넘게 연구한 전문가로써 바라보는 자율주행의 미래는 어떨까? 한 대표는 “완전한 자율주행은 아직 멀다”고 단언했다.
그는 “최근 테슬라 자율주행 차량이 사고를 내며 2명이 사망했다”며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 금방이라도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은 허위”라고 설명했다.
최근 독일 뮌헨 법원은 ‘오토파일럿’ 명칭 사용이 허위 광고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동안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나 ‘완전 자율주행’ 같은 용어가 운전자들을 기술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며 비판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완전한 자율주행은 언제쯤 가능할까? 한민홍 대표는 “외부환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나와야 한다”며 “당분간은 기술 발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속도로에서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괜찮은 편이지만 시내주행에 한계가 있고,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가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민홍 대표는 한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 자율잠수정 연구를 진행했다. 사람을 타지 않은 잠수정이 혼자서 적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연구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연구를 진행할 수 없어, 국방부와 탱크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했다. 그리고 1991년 군용 지프차를 개조하며 본격적으로 자율주행차 연구를 추진했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 해당 차량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율주행 2단계 수준이었으나 정부 프로젝트 탈락으로 상용화 실패
1992년에는 상용자동차로 차량을 바꿔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1992년 10월 고려대학교 캠퍼스 안에 500m 정도를 시험 구간으로 설정하고, 처음으로 자율주행 시험운행에 도전했다. 이 시험운행에는 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지켜보며 응원했다. 이 시험운행으로 문제점을 보완한 한민홍 대표는 1993년 6월 도심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한민홍 대표는 “진정일 교수 등 여러 교수들이 많이 응원해줬다”며 “재정 후원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고려대에 고마운 마음이 많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언급했다.
한민홍 대표가 1990년대에 선보였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한 대표는 “현재 자동차에 탑재되는 자율주행 2단계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생명보험도 들지 않고 시험운행에 나설 정도로 당시 기술과 안전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안전벨트 규정도 까다롭지 않던 시기여서 그는 시험운행 중에 안전벨트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잊혀진 기술이 됐을까? 한 대표는 “프랑스에서 관심을 보여 초기 기술을 제공했다”며 “폭스바겐에서는 업무협약(MOU)까지 제안했으나 국내 기술을 지키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술경쟁력을 높이려고 외국 기업과의 협력을 거부한 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 상용화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산업기술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탈락하면서 상용화의 꿈은 사라지고,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79세에도 재밌고, 기여할 수 있어서 좋다”
완전 자율주행에 한계가 있다면 자율주행 분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한민홍 대표는 “농기계와 항만과 같이 교통법규를 받지 않는 분야가 있다”며 “여기는 사람이 타지 않거나 속도가 느려서 혹시라도 사고가 나더라도 상대적으로 매우 안전하다. 이런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이 현재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배송 차량이나 로봇을 이용한 자율배송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최근 65세 이상 고령자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율주행이 고령자 운전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한 대표는 운전대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졸 정도로 자율주행을 과신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나이가 들면 순간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장시간 운전이 어려워지므로 이에 대해서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보조받는 수준에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팔순을 코 앞에 두고 있는데 활동에 어려움은 없을까? 한 대표는 “건강이 비실비실해 악으로 버티고 있다”며 “하지만 재미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기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침에 일어날 때 할 일을 떠 올릴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설명이다.
한민홍 대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에게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그냥 지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족이나 사회에 계속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헌터 아담스, 앨런 튜링, 기타와 바비타 자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실존 인물의 극적인 삶을 담은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패치 아담스 (Patch Adams, 1998)
루돌프 코 장식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온 방안을 풍선으로 가득 채운 채 시를 읊는 남자. 레크리에이션 강사인가 싶지만, 병을 고치는 의사다. 그의 이름은 헌터 아담스, 정신병원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은 인물이다. 미국 늦깎이 의사 헌터 아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패치 아담스’는 자살미수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헌터가 의사의 꿈을 품고 두 번째 삶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병원 수감 시절, 헌터는 환자를 단순 ‘정신 이상자’로 취급하며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의사의 태도에 실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소통한다. 허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 룸메이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맞서 싸워주고, 손가락 4개를 8개라고 주장하는 환자의 숨겨진 뜻을 이해한다. 진심의 힘을 믿는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환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며 웃음을 전파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헌터가 보여준 가슴 따뜻한 인류애는 바람직한 의료인의 자세뿐 아니라 각박한 사회에 공감과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헌터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의 푸근한 미소와 연기가 여운을 남긴다.
2.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 기계가 ‘지능’을 가진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이미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상한 두뇌로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군의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석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애니그마는 24시간마다 암호가 바뀌어 연합군 사이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암호기다. 이에 튜링은 하루마다 달라지는 암호를 해독하는 대신 애니그마 체계의 근본을 분석하는 기계를 발명한다. 인공지능의 뼈대가 되는 튜링 머신이다. 튜링의 아이디어는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당시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그의 비극적인 삶을 극적인 과장 없이 담담하게 묘사한다. 화려한 액션신이나 총격전은 없지만, 치밀한 두뇌 전쟁이 시선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3. 당갈 (Dangal, 2016)
“당갈! 당갈!” 흥겨운 힌두풍 리듬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내 거칠게 몸을 풀고 모래판 위에서 힘을 겨루는 남성들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오프닝 장면만 보면 영락없는 남성 레슬링 영화다. 그러나 ‘당갈’은 국제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딴 인도 여성 레슬링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딸을 대회에 내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하비르는 딸들이 태어나기 전 아들을 간절히 바란다. 남성만이 레슬링에 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래 남자아이들에 힘으로 뒤지지 않는 두 딸의 모습을 본 마하비르는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두 딸에게 대회 준비를 시키기 시작한다. 영화는 “남자든 여자든 금메달은 금메달”이라는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레슬링을 남성의 전유물처럼 묘사한 오프닝 장면을 반전시킨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뭉클한 가족애, 레슬링의 박진감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신나는 음악이 흥을 더한다.
청년의 취업과 실업은 사회적 문제로 늘 언급된다. 하지만 출생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면 고령자 취업과 실업 문제를 마냥 두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은퇴가 노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령화가 우리보다 빨리 진행된 해외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해외의 중장년 취업 지원 제도를 살펴보자.
참고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난해 일본은 법 개정을 통해서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 종업원들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노력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올해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실제로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점 ‘노지마’(Nojima)는 근로자의 고용계약 상한 시기를 65세에서 80세로 연장했다. 65세가 된 근로자의 건강 상태와 근무 태도 등을 고려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정년 연장을 통해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숙련된 노동자를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정년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정년이 연장되는 원인은 고령화 때문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실제로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대부분의 중위연령은 40세 이상이며,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 등은 50세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된 상태다.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중위연령이 56.4세로 급격히 상승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고령화를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출산율 하락을 겪고 있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도 인구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느 국가도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고용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지난 10년간 OECD 평균적으로 55~64세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가별로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네덜란드의 경우 18%P 이상 증가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의 경우 소폭 감소했으나 평균 80% 이상을 유지하며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종합하면 은퇴 이후에도 중장년의 취업은 세계적으로 활발한 상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은퇴자의 역량을 활용한 취업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각 나라에서는 중장년을 위해 어떤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까? 고령화 정책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 미국
미국은 중장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역사회 고용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일로써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이를 위해서는 이제껏 쌓은 역량을 발휘하여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삶의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학습 기회를 준다.
중장년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앙코르 이니셔티브’(Encore Initiative)을 운영한다. 50세 이상 예비 창업자를 위해 온라인 수업, 워크숍, 업무 관련 네트워킹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특히 중장년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한다. 예를 들어 50세 이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제 및 마케팅 지식, 자영업 상식과 관련된 교육을 한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는 교육 수준이 높은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 성과로 발생한 새로운 일자리는 삶의 의욕을 고취하고,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 활동 인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말했다.
앞서 본 예와 같이 취업이나 창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역량을 발달시키거나 삶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교육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백투워크 50플러스(Back to Work 50+)와 로드 스칼라(Road Scholar)다. 전자는 새로운 역량 개발에 해당하고, 후자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백투워크 50플러스는 미국의 5곳의 전문대학에서 진행되며, 중장년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워크숍, 개별 코칭 세션, 컴퓨터 교육, 노후 재정 관리 등을 가르친다. 로드 스칼라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여행 프로그램이다. 야외 모험 활동, 테마 여행, 세대 간 프로그램, 여성 특화 프로그램 등 40여 가지 유형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매년 10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니어의 학습 욕구를 교실이 아닌 여행을 통해 구현하는 사업 모델이다. 김 교수는 “로드 스칼라는 일반 여행에 학문적 깊이가 더해진 프로그램이다”라고 설명했다.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 일본
‘노인들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일본이 28.4%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핀란드(22.6%)가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8%로 44위를 기록했다. 고령자의 비율만큼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도 높았다.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노동 시장 참여율은 약 25%다. OECD 평균이 약 15%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이렇게 참여율이 높은 이유는 경제적·사회적 참여 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63.6%의 고령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노동 시장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중장년은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70세 이상도 건강 문제가 없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70% 이상이었다.
일본은 앞으로도 고령화가 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들을 경제 활동의 주축으로 보고 있다. 고령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민간과 지역 복지기관들이 연계해 다양한 취업과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고령 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보조하는 정책을 계속 확대할 전망이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이 바로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과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도쿄일자리센터에서 주관하며, 대기업 및 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쌓은 5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직무 유형은 7가지 직종(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으로 구분된다. 취직에 성공한 시니어 중 시니어의 전문성이 직종에 합치된 경우는 약 70%이며, 비전문 영역으로 취직된 경우는 30%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의 보수는 근무 시간, 주간 근무 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주 5일 기준으로 25만 엔(약 264만 원)에서 30만 엔(약 317만 원) 사이다.
한편 민간 영역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도쿄에 소재한 민간 주식회사 ‘퀼리티오브라이프’(Quality of Life)가 2006년 11월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대기업 전문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조언자로서 경영지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50세 이상을 ‘생애 프로페셔널’로 임명한다. 이들은 고문 또는 어드바이저로서 기업의 여러 경영 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생애 프로페셔널은 2가지 효과가 있다. 일단 시니어 전문가의 경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근무 형태로 고문 소개 서비스를 활용하면 주 1회 등 은퇴 후 유연한 방식의 근무가 가능하다. 시니어 비즈니스 관계자는 “은퇴 후 역량을 보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시니어는 기업이 탐내는 인재가 될 수 있다. 국가와 더불어 기업이 상호 보완적으로 일자리 지원에 참여하면 시니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해외의 민간에서 적용하고 있는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와 기관을 살펴보자.
해외의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 및 기관
시니어 네트워크
50세 이상 실직한 고령자로 구성된 비영리 사회혁신 조직이자, 덴마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네트워크 단체다. 실직한 고령 근로자가 네트워킹을 통해 노동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로 지역 내 잡센터(Job Center)와 협력하여 구직을 원하는 실직 고령자와 구인처를 연계하는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리스타트 프로그램
50세 이상의 구직자 중 6개월 이상 실업수당을 수령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 보조금 정책이다. 일주일에 최소 30시간 이상 일하는 중장년 근로자 1인 고용에 2년 동안 최대 1만 달러의 급여를 보조하는데, 최초 6개월과 12개월에 각 3000달러, 그리고 18개월과 24개월에 각 2000달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제3기 인생대학
전일제 고용에 속하지 않는 고령층의 학습 고취를 위해 만들어진 전국 단위 학습 조직이다. 고령층 인구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관심사를 나누기 위한 연결망이다. 시험이나 과제 등은 없다. 대신 정규 수업과 스터디 그룹을 통해 흥미가 있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 및 지식을 공유한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속에서 즐겨볼 수 있는 여행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일상 속 여행. 홀로이 걸어서 다녀오기, 또는 자전거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이 대세인 요즘이다. 마이크로 투어라는 산뜻한 형태로 가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나서는 기분도 가볍다.
이제 3월이다. 3.1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함께 떠올려 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늘 그래 왔다. 언제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거리가 멀다고 핑계 댔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도 있었고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이 있다 해서 밀려나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에 들른 적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그들의 자세가 신뢰를 갖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현재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역사 왜곡에 안간힘을 다하는 일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렇게 역사를 잊지 않고 개방하여 널리 알리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까지 가보았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눈앞의 것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정신을 가끔씩이라도 기려볼 일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의 목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만 달리면 김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서 가까이서 쉽게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많이 다르다. 그뿐 아니다. 독립만세를 불렀던 천안의 아우내 장터와 같은 김포 오라니 장터에 만세운동의 현장이 있다.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 양촌리의 오라니 장터와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시절 탓인지 독립운동기념관은 한적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아주는 멋진 영상의 선명한 태극기가 반갑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와 전시실을 묵묵히 오가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만세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캐릭터들이 첨단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준다.
독립운동기념관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 사료열람실, 영상실, 로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을 재조명해 볼 기회다. 2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북카페 등은 코로나의 현실로 지금은 열리지 않지만 1층의 전시실만으로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포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과 항일의병활동, 그 배경과 특징, 발발 과정을 음성이 포함된 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포는 독립운동가와 항일의병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김포 전 지역에서 주민들의 3.1 만세운동이 전개될 만큼 큰 규모로 투쟁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는데 3.1 독립운동 참여 인원이 2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댔던 순박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 모든 역사의 흔적들이 성실히 모아졌다. 당시 일본군들의 야만적이고도 처참한 만행을 볼 수 있고 독립군들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전해진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멋지게 조성해 놓은 기념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고 지냈다니 이런 무심함이 어디 이뿐일까만.
독립의 함성이 느껴지는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특히 1910년 안중근 의사가 32세 나이로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 앞에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죽음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글이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서신이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런 기념관 관람만으로도 잊고 지냈던 시간을 되짚어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저절로 호국과 애국의 DNA를 되살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기획전시실은 매 주기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1 만세운동의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이다. 독립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준 태극기의 다양함이 펼쳐진다.
‘역사가 담긴 태극기’ 전의 기획전시실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태극문양의 의미, 독립운동의 간절함을 담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태극기 목판 등 저마다의 의미가 담긴 태극기들, 역사와 용도가 다양한 태극기의 면면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흥미롭다. 한 점 한 점 아프고 묵직한 의미를 담은 태극기들과의 조우가 독립을 향한 당시 우리 국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절절히 전한다.
기념관 주변 언덕 위로 조성된 공원이 다시 찾은 평화로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3.1 운동 기념비와 위령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항거했던 이들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기념관은 소박하지만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하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오라니 장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가 열린다.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3.1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그렇게 3.1 운동 100년의 기억을 되살린다. 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을 모두 함께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포의 독립운동기념관과 주변으로는 산성이나 돈대, 다양한 갤러리와 문화시설이 포진해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소풍삼아 찾아볼만 하다. 조용한 하루나들이 코스로, 역사여행으로 의미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가볍게 나서보아도 좋을 듯. 한나절이면 된다.
주변 볼거리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 & 김포 인삼쌀맥주 갤러리
백제 고대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추측하는 김포 모담산 운양동 자락에 위치한 김포 아트빌리지, 그곳에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아트센터가 있다. 쾌적하고 모던한 현대식 예술공간에서 감상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고퀄리티다. 훌쩍 떠나온 하루 외출에서 품격 있는 시간 획득이다.
아트센터 앞의 너른 야외 공간과 전통놀이체험마당, 주변의 전통한옥 숙박시설, 맛집 등 누구나 언제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요금 무료, 주차무료.
품질 좋은 쌀과 인삼의 특산지인 김포, 김포의 6년근 인삼과 김포쌀로 빚은 인삼쌀맥주와 인삼 전시장도 둘러볼만하다.
전문가들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일자리 창출 전망은 긍정적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당사자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 조직, 기업 등이 함께 고민하고 발전을 도모할 때 서로 힘을 얻고 성공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다. ‘50+일자리 특별포럼’의 세 번째 세션 ‘대전환 시대, 50+세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50+와 기업의 상생 대응 전략을 알아봤다.
【50+】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주)의 이철종 대표는 다가올 시대에 중장년 근로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겸손한 마음과 포용적 태도를 꼽았다. 특히 디지털·그린 뉴딜과 함께 늘어날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기업 등 소규모 조직에서의 활동을 원하는 시니어라면 더욱 필요한 요소라고. 아울러 이들에겐 자칫 대기업이나 큰 조직에서 성공했던 1모작의 경험이 괴리감과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소기업에게 필요한 건 중장년이 한때 성공했던 경험이 아니라, 현재의 부족한 생산력에 하나라도 보태어줄 수 있는 실무 능력이다. 또 대기업에서 상용되던 기술이 그들에겐 별로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즉 소기업이 활용하는 업무 매뉴얼을 배우고, 그 안에서 생산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타트업 청년 리더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50+세대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으로 젊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다시 신입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실무를 배우고 실행함으로써 필요한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작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는 50+세대가 스타트업과 소기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래 경력 위한 경제참여형 디지털 업스킬링”
세계경제포럼(2016)에서는 디지털·그린 사회에 요구되는 역량으로 ‘복잡한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대인관계(관리)’ 등을 전망했다. 황윤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이러한 역량 가운데 복잡한 문제해결력이나 대인관계 등은 50+세대가 경험을 통해 이미 보유하고 있어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창의성이나 뉴미디어 문해력, IT 활용력 등은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황 센터장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비롯한 평생교육기관과 일자리지원기관 등에서 저마다 50+세대 진로 재설계를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시니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변화는 노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특히 디지털 활용 능력이 관건이다”라며 “메신저, SNS 활용이나 교통, 지도, 은행, 행정 서비스 이용 및 제품 구매 등 생활 기반의 50+세대 디지털 활용 능력은 우수하다. 반면 정보생산 및 공유, 경제참여 기반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격차가 벌어진다. 특히 긱 플랫폼 시대에 경제 참여 및 활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 역량이 필수인 만큼, 이에 대한 자가진단과 학습이 필요하다. 즉 미래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으로 남을 것인가, 업스킬링으로 무사히 전환할 것인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기업】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 위해 앞장서야”
50+세대가 갖는 불확실성에 대해 기업은 어떤 입장일까? 손승우 유한킴벌리 대외협력본부장은 “개인이 불안하듯 기업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소비자가 줄거나 변화해 정확한 미래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2010년부터 고령화 속도에 맞춰 시니어 비즈니스를 주요 사업으로 편입, 발전시키겠다는 계획하에 바지런히 혁신을 감행해왔다. ‘시니어가 자원이다’를 내 건 액티브 시니어 캠페인도 그 일환이다.
손 본부장은 “기대여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인데, 언제까지 생산연령인구를 64세로 한정해야 할까? 이를 재정의해 우리가 더 역동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고령자, 어르신, 노인 등의 호칭은 50+세대를 경제활동을 떠나 부양이나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10년간 회사의 공유가치창출(CSV) 활동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역동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중장년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사회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경험과 지혜를 양질의 비즈니스로 연계한다면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기업은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기업을 지원·협력하고, 시니어의 창의적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며 “시니어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인식하에 복지와 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적절한 구분과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겐 복지가 아닌 산업 차원의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는 시니어도 많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직장에서의 다양한 학습과 경험이 요구된다. 기업에서는 구성원이 은퇴 후 지역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자원봉사자로, 일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지역 커뮤니티나 NGO 활동 등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사전에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일자리 외에도 시니어 벤처기업 등이 생겨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앙코르 펠로우십, 기업과 50+, 사회가 윈윈”
황 센터장 역시 손 본부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향후 노동시장은 긱 워커, 프리랜서 등의 노동유랑민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환경 변화를 개인이 주도하기엔 어려우니 결국 회사나 제도적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독일의 유급학습휴가 및 청년을 위한 일·학습 병행제 등을 50+세대를 위해 변경,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역량 개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미국 앙코르닷오르그의 ‘앙코르 펠로우’ 프로그램은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다. 한 기업에서 퇴직을 앞둔 조직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좋은 일을 하도록 비영리단체 등에 파견하는 형태다. 사회적기업 등은 늘 사람이 부족하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데, 그런 어려움을 기업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퇴직자에게는 점프업 기회와 동시에 공익활동 경험을 선사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기능한다. 현재 50여 기업에서 활용 중이고, 지난 평가에서 약 95% 이상의 기관이 만족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사례에 착안해 사회공헌도 하고 퇴직자도 지원하면 좋겠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의 끝이 보이는 걸까? 여러 종의 코로나19 백신들이 허가되기 시작했다는 뉴스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백신이 나왔다고 이 전쟁이 바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백신이 코로나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보이려면 인구의 70% 정도가 접종되어야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접종은 우선순위를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접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코로나19는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계속 전파될 것이다. 백신 접종의 희망적인 소식들이 들려오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부터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 있다. 바로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면역력이다. 그리고 유산균이 면역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유산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면역력과 유산균
최근 다시 떠오른 유산균의 강자가 있다. 바로 김치 유산균이다. 사실 김치에 있는 유산균이 건강에 특별한 기능을 한다는 것은 과거부터 익히 들어온 얘기다. 코로나19로 유산균의 힘이 재조명받으면서 김치에 대한 연구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그런데 의외로 김치 유산균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은 코로나19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유럽에서부터 들려왔다. 프랑스 몽펠리에대학 장 부스케 명예교수가 이끄는 폐 의학 연구팀은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연구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발효된 배추를 먹는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와 한국, 대만이 코로나19 사망률이 낮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발효된 배추의 유효 성분이 효소 ACE2(안지오텐신 전환 효소2)를 억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ACE2는 사람 세포막에 존재하는 효소인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ACE2와 결합해야 세포 속으로 침투, 병을 일으킬 수 있다. 즉 ACE2가 일종의 매개체가 되는 것인데 발효된 배추가 그 역할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김치는 코로나19 감염을 억제하는 식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효능 외에도 김치의 다양한 기능은 과거부터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우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능이 2014년에 확인되었다. 당시 한국식품연구원에서 항바이러스 효능이 있는 김치 유산균 3종을 발굴했다. 김치 유산균을 먹인 쥐가 신종플루 및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시 생존율이 40~50% 더 높은 결과와 김치 발효가 진행될수록 바이러스 감염이 더 억제되는 현상도 확인됐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아토피피부염 예방과 증상 개선에 효과적인 김치 유산균 와이셀라 사이바리아(Weissella cibaria) WiKim28과 락토바실러스 사케이(Lactobacillus sakei) WiKim30을 찾아냈다. 연구를 맡은 최학종 박사팀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분석을 통해 아토피와 장내 공생 미생물 간의 상관관계를 구명하고, 김치 유산균이 장내 공생 미생물의 군집 변화를 조절해 아토피를 개선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용어로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과 그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이 미생물군이 질병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밝혀지면서 바이오 업계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앞으로 127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치 유산균이 마이크로바이옴의 대표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보적인 미생물 신균주 순수분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코엔바이오는 우리의 발효 김치에서 세계 최초로 유산균 중 하나인 류코노스톡 홀잡펠리(Leuconostoc holzapfelii Ceb-kc-003)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균주에 대한 안전성 및 사용 기준이 적합하다고 인정되어 2020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원료의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인정서’를 취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류코노스톡 홀잡펠리 균주는 유산균 음료 닥터홍구르트와 닥터홍프로에 함유되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됐다.
유익균, 유해균, 중간균
면역력을 키우려면 ‘장’(腸)이 건강해야 한다. 장에는 체내 면역세포의 약 70%가 분포해 있어 미생물이나 미생물의 부산물, 독소 등이 혈류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다.
장내에는 100조 개 이상의 균이 살고 있는데, 이 균들은 장에 유익한 ‘유익균’, 장에 유해한 ‘유해균’, 때에 따라 유익균도 유해균도 될 수 있는 ‘중간균’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대표적인 유익균인 ‘유산균’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유산균은 직접 면역력을 높여주는 게 아니고 면역 세포가 가장 많은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유익균이든 유해균이든 중간균이든 넘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유산균은 작은 즐거움이 행복으로 전환하도록 삶의 생생함을 길어 나르는 최고의 무기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 불려야 할 세상에서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치가 바이러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음식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선조가 후손에게 남긴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해외시장을 열어갈 김치 유산균의 무궁무진한 미래가 기대된다.
2021 상장 기업 업종 지도 (박찬일 저·에프엔미디어)
2100여 개 주식 종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마인드맵 형식으로 소개한다. 새로 주목해야 할 5가지 테마와 25개 대표 업종을 정리해 주식 시장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마르타 자라스카 저·어크로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타 자라스카가 600여 건의 논문 분석과 50여 명의 전문가 인터뷰,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노화와 장수에 관한 궁금증을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저·현대문학)
노년에 접어드는 언어학자가 한 여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편지로 쓴 서간체 소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서도 소속감을 찾는 주인공을 통해 외로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평 반의 행복 (유선진 저·지성사)
어느 80대 노부부의 인생 회고록. 2015년 갑자기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틈틈이 적은 글을 산문집으로 엮었다. 남편을 향한 미안함과 사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김인선 저·나무연필)
1950년에 태어나 한 여성과 함께 독일에 사는 70대 여성의 일대기. 48년간 겪은 타지 생활 경험부터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황헌 저·시공사)
와인을 사랑하는 언론인 출신 저자가 와인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한다. 와인의 뿌리부터 포도 품종, 라벨 문화의 기원까지 와인에 대한 지식을 다방면으로 제공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음악 속 숨겨진 사연이나 명사의 말을 통해서 클래식에 쉽게 접근해보자. 아래의 인터뷰는 가상으로 진행했다.
“죽음은 쓰라린 고통이지만,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죽음만큼 힘든 건 없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요절의 비애를 표현한 말이다. 역사적으로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처럼 화려한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는 천재들이 있었다. 이렇게 요절한 천재를 비운의 천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그도 마찬가지다. 31세에 요절한 젊은 천재는 생전에 1000곡 이상을 작곡했고, 음악적 수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세상을 떠났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만나 삶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슈베르트 씨.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반가워요. 먹을 것이 좀 있나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힘이 없네요. 좀 먹고 나서 인터뷰를 합시다.
오는 길에 간식거리로 챙겼던 비스킷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정말 며칠 굶은 사람처럼 소량의 간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왜소했다. 왜소한 체구와 더불어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는 간식을 먹은 후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생전의 삶과 지금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달마다 용돈을 받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금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개인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친구 중에 법에 밝은 친구가 있는데, 그가 나를 대신해서 신청했어요.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물론 받은 금액을 늘 까먹어요. 매달 얼마씩 오는지 잘 몰라요. 그냥 내키는 대로 쓰다 보면 돈이 없더군요. 며칠 전부터 돈이 바닥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가끔 나를 위해서 집 앞에 빵을 놓고 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도 요 며칠은 바쁜지 안 보여요. 말하고 나니 나의 삶은 생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군요.
이곳에서도 모임을 하고 있나요?
물론이죠. 생전에는 시대적 상황 탓에 밖에서 뭘 하기가 꺼려졌어요. 대신 그냥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수다나 떨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그런 소모임이 당시 유행이기도 했고요. 친구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 덕분에 그곳에서 연주도 하고, 춤도 추면서 흥겨운 파티를 열었죠. 저는 기분이 좋아서 그 파티에 가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곤 했지요. 그래서 얼마 없던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그때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서 여기서는 계모임을 하자고 하더군요. 예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회비를 내고 만나고 있어요.
폰 슈파운과 쇼버, 둘은 당신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폰 슈파운은 동지고, 쇼버는 친구예요. 오선지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을 때, 슈파운이 내게 오선지를 사줬어요. 그는 똑똑하고 유능한 고위 관료였고, 법에 밝았어요. 앞서 내게 용돈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친구가 그예요. 생전에 소모임도 그의 집에서 자주 열었어요. 이 소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어요. 덕분에 당대의 예술가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어요. 그가 없었다면 작곡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쇼버는 나의 마음을 잘 아는 친구였어요. 마음이 잘 통해서 많이 어울려서 놀았어요. 내가 가곡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건 쇼버 덕분이에요. 그 친구는 독일 문학에 참 능통했어요. 내게 좋은 시도 많이 알려줬고요. 그의 문란한 사생활과 사상을 좋아하지 않던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그를 많이 아꼈어요. 내 안에 감춰진 천재성을 일깨우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했어요. 그도 나를 참 많이 좋아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어요.
곡에서 괴테의 시를 많이 인용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 시인이죠. 괴테는 시를 쓸 때 콧노래를 부르면서 쓴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버릇이 반영되는 것인지 몰라도, 노래로 쓰기에는 아주 적합한 시가 많아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그의 시를 노래로 썼죠. 저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괴테에게 곡을 보냈지만, 그분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죠. 후일에 듣기로 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극찬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는 내 시에 곡을 붙인 게 아니라 시 자체를 노래했고, 그는 내 시를 훔친 거야”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생전에 그와 마주 보며 그런 말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베토벤은 만나고 오셨죠?
조금만 늦었으면 거기서 못 뵙고, 여기서 인사를 드릴 뻔했어요. 이곳으로 오시기 일주일 전쯤 인사를 드리고, 제 곡의 악보를 보여드렸죠. 다른 이들은 제 곡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은 보시고 칭찬하셨어요.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거라고 할까요? (웃음) 물로 저도 그 당시 죽음에 가까운 시기였던 탓에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제가 좀 더 건강한 상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이곳에 와서는 늘 그런 상상을 해본답니다.
그때 쓰신 곡이 ‘겨울 나그네’인가요?
그렇죠. 그 시기 즈음 쓴 곡이에요. 세상에 남긴 나의 유언 같은 곡이에요.
이 곡을 쓴 이유가 있나요?
‘겨울 나그네’는 뮐러의 시를 바탕으로 쓴 곡이에요. 그 시를 볼 때마다 나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못생기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내가 사랑한 여자들에게 버림받았고, 나의 모든 것을 쏟았던 곡들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지요. 존경하는 괴테 선생님도 사후에 나를 인정하셨어요. 모임에서 나와 어울렸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난 외톨이였어요.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그걸 뿌리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가난한 음악가로서 곡을 쓰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나그네였어요. 말년에는 이런 삶을 청산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썼어요. 궁정의 부악장 자리였는데, 큰 기대를 했지만 결국 탈락했어요. 정처 없이 방황했지만 정착하지 못한 삶, 그게 내 모습이에요.
뮐러의 시와 다른 점이 있나요?
뮐러의 시와 개수는 동일하지만 순서가 조금 달라요. 처음 발표한 곡은 뮐러의 12개 시로 마무리를 했는데, 이후 그가 추가로 시를 발표하면서 곡의 구성을 조금 다르게 했어요. 뮐러의 경우 고난 끝에 결국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 나그네가 여행을 떠나지만, 나의 곡은 더 큰 절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 삶에는 절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까스로 찾아온 희망이 있었다면, 내가 죽은 해에 참가했던 연주회가 다예요. 그것마저 이어갈 수 없었죠. 처음으로 내 소유인 피아노가 생겼지만, 제대로 쳐볼 시간도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이 곡은 4원소설을 기반으로 한 곡인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요. 하나의 감정이라고 해도 비추는 거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가령 사람마다 ‘슬픔’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애인의 배신일 수도 있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시험, 반려견의 죽음 등 하나의 감정이 개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물론 이 곡에 제가 특정한 이미지를 담은 것은 아니에요. 다만 31년 삶을 살면서 축적된 슬픔이란 감정을 이 곡에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지독한 가난과 불행, 외로움, 사람으로부터 배신, 절망, 육체적 고통. 저를 괴롭혔던 수많은 일을 곡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본인에게 음악이란?
삶의 이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태어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닌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곡을 쓸 때였다. 어느 때는 곡을 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곡의 왕이란 별명이 무색할 만큼, 생전에는 인기가 없었다. 그의 말처럼 소모임을 하는 친구가 그에게 전부였다.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버림받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은 그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의 삶은 처절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그는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자연스럽게 고통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살았다. 콤플렉스 덩어리였지만, 오히려 그 콤플렉스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 안에 있던 감정을 음악에 녹여낼 수 있었다. 나그네처럼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그 자유로움이 곡을 쓰는 데 하나의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가 좋아했던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그의 방황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숱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최선은 여전히 곡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외손자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날 때 정상적인 분만으로 고통을 느낀 딸이 이번에는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하기를 원했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직역한 말이다. 즉 ’황제‘의 의미를 갖는 ’카이저‘와 ’자르다‘의 뜻을 지닌 ’슈니트‘가 합해진 합성어라고 한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수술로 태어난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외손자가 이런 수술로 태어나다니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때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호기심을 느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의 네 간지(干支), 곧 사주(四柱)에 근거해 그 사람 인생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전래됐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주학의 깊이는 전문가들이 보면 아주 보잘것없어도 가족들은 내 실력을 어느 정도는 믿어준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제왕절개로 생년, 생월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생일, 생시는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달렸다. 딸은 유명하다는 명리학(命理學) 전문가로부터 태어날 손자의 좋은 사주를 받고서 의사와 제왕절개 시간을 상의했다. 의사는 그 시간에는 긴급한 용무가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다른 시간대를 제안했고 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눈치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 출생한 시간이 오히려 좋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나무는 강한 바람을 홀로 이겨내다가 죽기도 한다. 운명적으로 가장 좋은 시간대에 태어나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만큼 세상 사람의 질투도 받아야 한다. 한 단계 낮은 시간대에 태어나 겸손하게 살면서 운이 아닌 본인이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차근차근 성공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요지로 딸을 설득했다. 예쁘게 보면 다 예쁘다. 세상사를 좋게 보고 그렇게 믿으면 결과도 좋은 법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신비가 밝혀지고 있다. 수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어 난자와 결합해 생명이 탄생되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수만 배로 자라면서 사람의 형태로 점차 발전되는 모습은 신의 영역이라 볼 만큼 경이롭기까지 하다. 식구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생명의 소중함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나 기뻐하고 있다.
나는 시골의 농사짓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혼자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아들과 딸을 얻었다. 식구가 네 명으로 불어났다. 아들을 품에 안고 산부인과 병원을 나설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다. 둘째인 딸을 안고 나올 때는 아빠에게 재잘거리며 앙증맞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냥 행복했다.
이렇게 키운 자식들이 부모 품을 떠나 제 짝을 찾아가더니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친손자 하나에 친손녀가 둘, 그리고 외손자도 둘이나 태어났다. 손주들만 다섯이다. 명절날 집에 다 모이면 나를 정점으로 식구가 열한 명이다. 축구 한 팀의 숫자와 같다. 하나에서 출발해 세월이 열한 명을 만들어주었다. 성이 다른 친손주, 외손주 구분 없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이번에 태어난 외손자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눈매는 아빠 닮고 입꼬리는 엄마 닮았다고 하다가 나를 슬쩍 보고는 외할아버지인 나를 꼭 빼닮았다고 수다를 떤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 싫지가 않다.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기가 힘들다고 푸념하는 며느리에게도 딸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해줬다. “그래도 인생에서 품 안에 자식을 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가며 뭘 먹일까 생각하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보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해줬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를 향해 방긋 웃어주고 예쁜 짓 하는 것만으로도 효도의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손녀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돕겠다고 어설픈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아! 우리 딸이 제법 컸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며느리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아이들은 가정을 건강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아이들 잘 키워라.”
자식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 해줄 자식이 있다는 것, 또 그 자식의 자식이 있어서 대물림의 정점에 내가 있는 오늘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