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독일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소개한다.
고전음악만 틀어주는 다방에서 죽치며 지낸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일자무식 쥐뿔도 모른다. 오래되어 삐거덕거리는 좁은 나무 계단을 거의 매일같이 올랐다. 차 한 잔 값 내고 몇 시간씩 앉아 있어도 회전율 생각하는 주인 눈치 같은 건 없었다. 마음 둘 데 없는 청춘들의 헛헛한 눈빛들이 앉아 귀 열어두기 좋았던 곳. 이제는 그야말로 클래식이 되어버린 그 다방에서 어느 날 난데없이 귀에 꽂힌 음악이 있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일명 ‘크로이처 소나타’였다. 톨스토이가 이 곡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해 똑같은 제목의 소설을 썼다니 그 떨림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쨌든 베토벤은 젊은 나이에 청력을 잃어 유서까지 쓰고 꽤나 괴팍한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바이올린 소나타 9번’에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그의 성깔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803년 그는 ‘브리지타워’라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 곡을 헌정할 생각으로 함께 초연까지 했다. 사달이 난 건 훈훈했던 연주회가 끝난 뒤였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다가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베토벤이 격분하며 헌정 약속을 철회했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이 곡을 줘버렸다.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베토벤은 불같은 성격 때문에 망가진 관계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정신의학자들은 그의 상태를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의 증세로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그가 왜 불같은 성미에 고집불통으로 살았는지 짐작이 되는 부분도 있다.
빈으로 가다
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궁정의 악장, 가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웠다. 이 시기 아버지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어린 베토벤이 연주회 등에서 돈을 벌어오면 술값으로 탕진했던 아버지는 당시 신동으로 알려졌던 모차르트처럼 아들을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혹독하게 피아노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베토벤의 까탈스러운 성정은 이때 형성되었을 거라고 보는 이가 많다.
그는 모차르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재능을 인정받을 만큼은 되어 11세 때 궁정음악가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에게 사사, 음악의 기초를 제대로 배운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고 싶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더 심해진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1792년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빈으로 떠날 수 있게 된다.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그곳에서 저명한 음악가 하이든도 만나고 귀족들에게 연주를 해주면서 뛰어난 즉흥 연주 실력을 인정받는다. 특히 당시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던 카를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베토벤에게 매료돼 자신의 저택에서 지내게 하면서 얼마간의 후원도 해주고 사교 클럽에도 소개한다. 20대의 베토벤은 어느새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귀족들 언저리에서 연주나 하는 자신을 점점 못마땅해했다.
하루는 리히노프스키 공작이 지인들을 위해 부탁한 즉흥 연주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기분이 상한 공작이 충고를 하자 그는 의자를 집어 들고 바닥으로 내리치는 등 격분을 이기지 못했다. 이 일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후원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공작과의 관계는 영영 끝나버린다.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작가 괴테와의 불화도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황족 앞에서 모자를 쓴 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지나가는 자신을 괴테가 보고 나무라자 실망스런 표정으로 “당신과 나는 맞지 않나봅니다” 하고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베토벤은 거들먹거리는 귀족들을 보면 코웃음치곤 했지만 이중적인 면도 보였다. 그 일례로 사람들이 자신을 루트비히 판(van) 베토벤이 아닌, 폰(von) 베토벤으로 잘못 불렀는데 귀족을 상징하는 이 호칭을 그는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력을 잃어버린 ‘樂聖’
한창 기량을 발휘해야 할 젊은 시절, 베토벤은 귓병을 앓는다. 귀울림으로부터 시작된 병이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유서를 쓸 만큼 고통스러워했지만 결국 살아보기로 마음을 돌렸고 이때부터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교향곡 제1번’을 완성했을 때만 해도 평론가들은 “자신을 천재로 착각하는 촌뜨기”라며 혹평했다. 베토벤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1824년 그 유명한 교향곡 9번 ‘합창’ 초연이 빈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청력이 완전히 상실된 뒤였다. 마지막 4악장을 끝낸 후 베토벤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무대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를 청중석을 향해 잡아끈 이는 공연에 참여했던 가수였다. 베토벤은 그제야 돌아서 청중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음에서 또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불행은 이상하다. 그것을 말하면 점점 더 커진다” 등 그가 작품을 만들며 쓴 짧은 메모들은 다른 작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현악 4중주 제16번(op.135) 4악장 악보에는 ‘힘들게 내린 결심’이라는 부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악보 첫머리에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화두 같은 자문자답도 함께 남겼다.
그의 나이 57세,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된 장례식에는 무려 2만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자발적으로 ‘그래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싫은 소리를 퍼붓던 하숙집 주인, 집안일을 도와줬던 여인네들도 나와 베토벤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형부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 인터넷에 떠 있는 어느 열여덟 살 여고생의 글 제목이다. ‘처제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사실은 남자들에게) 묘한 연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나는 당연히 형부가 없고 처제도 없지만(ㅠㅠ), 왜 형부-처제 이야기만 나오면 얄궂고 야릇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 글이 인기인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여고생은 재작년에 한가족이 된 형부 땜에 미칠 지경이라고 한다. 잘생긴 데다 엄마 몰래 용돈을 잘 주어 처음엔 형부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 입으로 소리를 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파에 앉으라고 하면 “포잉~” 하고 앉는다. 장모가 부르면 왜 이제 부르냐는 듯 “띠용” 하고 달려간다. 차에서 내릴 때는 “호잇, 히얏!” 하는 소리를 낸다.
밥 먹을 때 “푸욱” 하고 밥을 푸고, 무거운 거라도 드는 것처럼 깻잎을 “잇차 잇차” 하고 떼어 먹는다. 설거지할 때는 “달그락달그락”, 물을 따르면서 “쪼로록”, 냉장고 문 열 때 “추왕!”, 옷 벗을 때 “휘리릭”, 종이에 글씨를 쓰면서 “슥슥”….
의성어 의태어를 총동원해서 자기 행동을 일일이 예고하고 중계 방송해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만화를 너무 봤는지, 아니 지금도 만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래서 이 이상한 형부 때문에 학을 뗀 처제나 장모는 그가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데, 정작 마누라는 귀여워 죽는다고 한다. 아마 연하의 남자 아닌가 싶다.
이상한 사람은 또 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좌변기에서 응아 소리를 안 하면 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집에서든 공중화장실에서든 “응아, 응아!” 하고 자기를 응원해야 응가가 나온다.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설사를 할 때는 더하다(이건 잘 이해가 안 됨), 그는 SNS에 “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자꾸 뭐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데 옆 칸에서 제발 관심 끊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사람은 저마다 소리를 낸다.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을 인기척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니라도 사람은 무슨 소리든 내기 마련이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지 아니면 습관인지 하루 종일 큼큼거리는 사람을 봤다. 어떤 여성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채기를 크게 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어떤 남자는 웃음소리가 하도 커서 눈총을 받곤 한다.
이런 말을 하다 보니 나는 무슨 소리를 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남들이 기억하고 인식하는 나만의 소리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담배를 한창 피울 때는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는 게 첫 일과였지만, 지금 그런 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이 콕 집어 알려줄 때까지 내가 내는 소리는 접어두고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를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음력 10월, 이른바 소춘(小春)의 초입이다. 초동(初冬) 또는 맹동(孟冬)이라고 하는 음력 10월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해 ‘작은 봄’이라고 부른다. 그렇긴 해도 밤낮으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좀 늦었지만 가을엔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를 음미해야 한다.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데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오싹해져서 동자에게 알아보라 하니 동자가 대답하기를, “별과 달은 밝고 깨끗하며 밝은 은하수가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했다지? ‘추성부’는 이 나무 사이에서 나는 소리로부터 천지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일로 생각이 번져 스스로 탄식하는 고금의 명문이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명문이 있다. 그가 쓴 비슷한 글 ‘내가 사랑하는 소음, 음향, 음성들’은 세상과 사람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아, 한 잎 가랑잎이 살그머니 떨어질 때, 가슴 아프도록 지친 소리. 아직도 나무에는 여름이 달려 있는데 어느덧 한 잎이 떨어지고 있다. (중략) 정적의 소리야말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무위(無爲)로부터, 근원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심연의 흐름ㅡ바로 오르간의 음악 소리요, 조개껍데기의 소리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속을 흐르는 피의 음악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령 피천득의 명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으면 “다른 사람 없는 방 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의 말소리” 등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골목을 지나갈 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 젊은 웃음소리….”
한유(韓愈, 768~824)의 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의하면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에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되며,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움직여 소리를 내게 된다. 사람이 말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우는 것은 회포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편한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가 자연의 소리보다 더 자주 듣는 것은 인간의 소리이며 생활의 소리지만 들어서 좋기보다는 귀 막고 싶은 소음이 더 많다. 군소리, 헛소리, 흰소리, 허튼소리, 허드렛소리, 오만소리, 볼멘소리, 갖은소리, 왼소리, 입에 발린 소리, 그리고 개소리! 이 중 왼소리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 험하거나 궂은소리이며 갖은소리는 쓸데없는 여러 소리,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걸 다 갖춘 듯 뻐기며 하는 말을 뜻한다.
소리가 참 많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내 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은 입동(11월 7일)을 지나 소설(11.22) 대설(12.7)로 치닫고 있다. 한유의 말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되도록 평정을 얻어서 귀가 괴로운 소리가 적은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다.
백순실 관장은 반백년을 그림과 함께 살아왔다. 그렇게 해서 생산한 작품이 3000여 점. 몰입이 깊었으니 다작이 사필귀정이겠다. 창작으로 한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집념도 강했던 것 같다. “내겐 야망이 있었다”라 말하고 있으니. 이런 그가 미술관을 건립한 건 그게 사후까지 작품을 보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개관하고선 일이 많아졌다. 철따라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을 돌보는 일이야 오래 즐겨온 낙이겠지만, 이젠 아침마다 미술관에 딸린 카페에 나가 하루치 커피콩을 볶는다. 전시 기획을 비롯해 제반 운영문제는 운영실장을 맡은 딸 김은영 씨가 전담한다. 백 관장의 나이 올해로 칠순. 허공으로 흩어진 세월을 영탄할 만한 시절이다. 하지만 그는 무슨 허무감 같은 것에 사로잡히는 법이 없다. 그림이 여전히 길이고 꿈이고 삶이기 때문이겠지.
“충실하게, 정직하게 창작에 전념하며 살아왔다. 허영이나 허세가 없는 작품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도 갈증을 느낀다. 요즘은 교향곡을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100호 정도의 대작들이다.”
백순실 관장은 ‘동다송’ 연작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클래식 선율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20여 년간 그려낸 음악그림이 300여 점.
“자의로 시작한 작업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더라. 클래식을 새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좋았다.”
선율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거. 이는 추상을 그리는 작가에겐 탐나는 소재일 것 같다. 독일의 파울 클레 역시 음악을 미술로 조형하길 즐겼더군.
“선율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는 불가능하니 추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의 영혼까지 실린 음악그림이길 바라며 작업을 해왔다.”
추상화는 좀 어렵다. 때로 머리 아프다. 감상법을 말해 달라.
“작가의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 장르이기에 난해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냥 보라.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떠오르는 느낌을 그냥 즐기면 된다. 그저 내 마음에 드는 색감 하나만 발견하는 것으로도 즐겁지 않던가. 차차 조형적 감각까지를 즐길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선생은 그림을 통해 ‘참자유’를 얻고 싶다고 했다. ‘참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단순함, 그 안에 참자유가 있다고 본다. 난 이제 어지간한 욕망은 다 놔버렸다.”
마침내 자유로워졌다는?
“미술 행위 역시 단순해질 수 있는 구도의 길임을 알겠더라. 게다가 내겐 신앙이 있어 기도처럼 삶을 산다. 얽매임 없이.”
그의 작업실은 미술관 뒤편 후미진 자리에 있다. 솔과 대, 청매가 숲을 이룬 고샅에. 작업실 내부는 첩첩 쌓인 작품들로 초만원이다. 그림에 홀려 산 한 여자의 광량(光量)과 깡이 비쳐 정신이 번쩍 든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고서 수준에 도달할 길이 없다.
내일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을 버텨낸 해의 마지막 계절이기도 하다. 올 한 해는 유난히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 겨울 만큼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포근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브라보 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의 온도를 녹여줄 90년대 로맨스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1993)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건축가 ‘샘’(톰 행크스)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 ‘조나’(로스 맬링거)와 시애틀로 이사한다. 그러나 샘은 이사한 뒤에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라디오 프로그램에 새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연을 보낸다. 한편 미국 반대편에 사는 신문 기자 ‘애니’(맥 라이언)는 약혼자 ‘윌터’(빌 풀만)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이 사연을 듣게 되고, 샘에게 강한 운명적 이끌림을 느낀다. 약혼자가 있지만 샘이 궁금해진 애니는 그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시애틀로 향한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미국 서부 끝에 사는 남자와 동부 끝에 사는 여자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낸 라디오 사연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셀린 디온과 클라이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주제곡 ‘웬 아이 폴 인 러브’(When I Fall In Love) 등 달콤한 OST와 겨울 시애틀의 낭만 가득한 야경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달군다.
2.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비엔나에서 파리로 향하는 유럽횡단 기차 안,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줄리 델피)은 시끄러운 독일 부부를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다 미국 남자 ‘제시’(에단 호크)를 만난다. 짧은 인사로 말문을 튼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빠져든다. 이대로 셀린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제시는 비엔나에서 함께 내리자는 돌발 제안을 하고, 두 사람은 늦은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짧지만 뜨거운 사랑을 펼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하루 동안 비엔나를 함께 여행하며 오랜 연인처럼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속편으로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이 있으며, 9년 간격으로 촬영해 풋풋한 20대 청춘 시절부터 중년이 된 셀린과 제시의 모습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비엔나, 파리,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이 감동을 더한다.
3.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My Best Friend's Wedding, 1997)
대학 시절 연인이었다 친구 사이가 된 ‘줄리안’(줄리아 로버츠)과 ‘마이클’(더모트 멀로니)은 28세가 될 때까지 짝을 찾지 못하면 함께 결혼하자는 장난스러운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기 전 마이클 앞에 아름다운 ‘키미’(카메론 디아즈)가 나타나고, 마이클은 줄리안에게 결혼할 상대가 생겼음을 고백한다. 소식을 들은 줄리안은 그제야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고, 마이클의 결혼식을 망치기 위해 엉뚱한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세 남녀의 엇갈리는 관계를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룬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줄리아 로버츠와 카메론 디아즈의 ‘리즈’ 시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음악 속 숨겨진 사연이나 명사의 말을 통해서 클래식에 쉽게 접근해보자. 아래의 인터뷰는 가상으로 진행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휘날리는 턱수염. 사진으로 봤을 때 그의 인상은 날카로웠다.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맥주를 앞에 놓고 집 앞 풍경을 바라보던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눈을 찡긋하며 물 대신 맥주잔을 건네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수더분한 동네 아저씨와 같은 모습에 다소 놀라웠지만, 곡이나 자신의 철학을 말할 때는 몹시 진지한 눈망울을 보였고, 사랑했던 그녀를 말할 때는 아련한 눈빛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Q. 최근에 선생님의 삶을 모티프로 한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됐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새는 이곳도 5G가 들어오면서 원활하게 소식을 듣고 있어요. 후대에 나를 모티프로 한 영화나 소설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후에 일이라서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영광인 동시에 부끄럽습니다. 곡이 널리 쓰이는 것은 좋지만, 제 얘기를 회자하는 것은 지금도 부담스러워요.
Q. 여기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슈만 선생님과 그녀도 여기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곳 관리자가 배려해준 덕분이에요. 그가 생전에 내 팬이었다고 해요. 그의 도움으로 여기서도 틈틈이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해요. 가끔 집에 놀러 오는 후배들과 함께 연주도 합니다. 어제는 굴드가 다녀갔어요. 까칠하고 괴짜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가 연주하는 곡은 정말 좋아요. 어제는 인터메조를 들려주고 갔는데, 한참 멍하게 듣고 있었어요. 가끔은 나보다 그 곡을 잘 해석하는 것 같아서 밉지만, 한편으로는 그 곡을 잘 연주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 같은 친구예요.
Q. 언급하신 ‘그녀’는 100 마르크화 지폐에 나온 그분을 말하는 걸까요?
웬만하면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으면 합니다. 그녀를 존경하는 동시에 존중하고, 나로 인해서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Q. 그렇다면 슈만 선생님은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스무 살 때 친구랑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났어요. 말이 연주 여행이지, 떠돌이처럼 독일의 곳곳을 유랑했어요. 우연히 하노버에서 요하임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어요. 그 친구가 소개해준 분이 슈만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에게는 참 고마워요. 당시 선생님은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만들고 계셨는데, 저의 재능을 높이 사시고 극찬하는 평론을 써주셨어요. 아마도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인터뷰를 못 했을지도 몰라요. 운이 참 좋았어요.
Q. 스무 살 이전의 브람스는 어땠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문학 소년이었어요. 어머니가 주신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특히 시에 심취했어요. 독일의 시인들이 쓴 시집을 많이 읽었어요. 이런 것이 곡을 쓰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했어요.
Q.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음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음악은 진입 장벽이 높은 예술이잖아요. 하지만 제게는 일종의 놀이처럼 다가왔어요. 아버지께서 시립극장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시는 분이었어요. 덕분에 악기를 접할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어요. 아버지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요. 악기를 연주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서 즐거웠어요. 코셀이나 마르크젠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들에게 음악도 배웠어요. 그 시기에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의 곡을 배우면서 음악적 소양을 쌓았어요.
Q. 그 시절에 음악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움이 있었죠. 예술가들은 돈 얘기를 하고, 반대로 은행원들은 예술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예술가의 삶이 곤궁해요. 저도 뼈저리게 느꼈어요.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어요.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그때부터 안 했던 일이 없어요. 학교도 그만두고 시립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인형극의 반주를 했어요. 교회에 나가서 오르간도 연주하고, 밤에는 술집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정말 바빠서 밤낮없이 살았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이론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음악적 감각을 많이 키웠던 것 같아요.
Q. 곡을 쓸 때는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으시나요?
독일 민요와 독일 시를 곡에 담으려고 노력해요. 민요는 예로부터 입으로 전해오는 선율이라 독립적이고 명확한 선율을 갖고 있어요. 스스로 여기서 음악적 가치를 발견했고, 민요를 저만의 방식으로 곡에서 해석했어요. 제가 시를 좋아해서, 곡에도 시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어요. 괴테가 쓴 유명한 시부터 무명의 시인이 쓴 시까지 다양한 시를 곡에 썼어요. '시가 얼마나 음악을 풍성하게 해줄 것인가?' 곡을 쓸 때 그런 것을 고민했어요. 시를 고를 때 시에 담긴 정서적 분위기도 많이 살펴봐요.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면 감정적으로 절제된 시를 좋아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인정신이에요. 장인정신이 없다면 영감은 바람 속에 부는 갈대에 불과해요.
Q. 말년에 작곡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어떤 마음으로 쓰셨나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제 인생을 따라다니는 화두였어요. 시와 성경에 심취했던 것도, 이 주제를 깊게 다루는 영역이라서 끌렸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도 죽음을 목격했지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건 슈만 선생님의 죽음이에요. 제자로서 죄책감과 동시에 미안함이 컸어요. '선생님을 그렇게 몰아넣었던 것이 무엇일까?' '삶은 괴로운 걸까?'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한편 선생님 곁을 지키던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무척 괴로웠어요. 동시에 존경했던 그녀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더 커졌어요. 물론 좋아지는 만큼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심적인 거리는 더 멀어졌어요. 후에 아내와 누이를 먼저 보내면서 삶이 허무해졌어요. 외로운 날들이 많았어요. 죽음은 허무하고 비참한데, 깊어지는 사랑은 더 달콤했어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죽음의 허무함과 삶을 다시금 일으키는 사랑. 그 곡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썼던 것이에요.
Q. 동시대 작곡가 보다 작품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빨리 먹는 것과 천천히 먹는 것의 차이예요.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죠. 습성의 차이일 뿐. 속도가 느려도 감당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다른 분이 무책임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나름의 호흡과 스텝에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에요. 곡을 개수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이듯 작업을 할 뿐이에요.
Q.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나요?
글쎄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저는 민망하지만 브람스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Q. 이유는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동물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면 억울할 것 같아요. 이왕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 안에서는 늘 음표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물론 다시 음악을 한다면 슈만 선생님과 그녀 곁에서 하고 싶어요.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해 또다시 괴로워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프로이트가 그랬죠. ‘사랑하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하라.’ 제게 사랑의 시련, 죽음의 허무함이 없었다면 곡을 못 썼을 거예요.
앞서 그가 몇 차례 언급한 그녀와 이성적인 교제는 없었지만, 그녀를 늘 존경했고 슈만이 떠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를 이어갔다. 말년에 쓴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죽음이 임박한 그녀를 생각하며 쓴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람스는 그녀와의 관계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화가인 막스 클링거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그가 그녀의 이름을 끝내 인터뷰 내내 밝히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세상은 불륜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지만, 그가 보여준 마음은 진실했고, 행동은 신사답게 했다. 스승에 대한 신의와 각자의 가정이 있는 상황 속에서 브람스는 선을 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는 그녀였고,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은 곡에 남아서 지금 이 시각에도 흐르고 있다. 브람스의 말대로 장인정신이 없는 영감이 한낱 바람 속 갈대에 불과한 것처럼, 그의 애절한 사랑을 빼고 그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여인을 위한 한 남자의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쌀쌀한 바람 불어오는 날이면 따끈한 차 한 잔 하며 여유를 부리고 싶다. 추석 연휴 동안 쌓인 피로도 풀 겸 가을을 맞아 호텔에서 마련한 애프터눈 티 세트와 객실 패키지를 즐겨보자.
3대 진미와 곁들이는 로열하이티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로비 라운지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담은 ‘로열하이티’를 마련했다(11월 30일까지). 미국 명품 차 브랜드인 ‘스티븐 스미스 티메이커’의 시그니처 티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대추, 사과, 홍시 등 제철 로컬푸드로 만든 디저트는 물론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 등 3대 진미로 만든 메뉴도 맛볼 수 있다(2인 기준 7만5000원).
가을, 한 모금 패키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한국 전통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와 함께 ‘가을, 한 모금’ 시즌 패키지를 출시했다(11월 22일까지). 객실 타입에 따라 디럭스, 이그제큐티브, 스위트로 나뉘며 투숙객에는 ‘광주요 소리잔’을 제공한다(가을 한정, 20만 원부터). 더불어 라운지에서 조식과 애프터눈 스낵 등도 서비스로 즐길 수 있다.
어텀 브리즈 애프터눈 티 세트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은 10월 31일까지 ‘파노라마’ 라운지에서 가을을 테마로 한 ‘어텀 브리즈 애프터눈 티’ 세트를 선보인다. 독일 프리미엄 티 브랜드 로네펠트의 컬렉션 11종을 비롯해 다양한 디저트와 티 푸드를 즐길 수 있다(2인 기준 6만5000원). 특히 ‘해피니스’와 ‘진저어페어’는 국내에 처음 판매되는 메뉴로, 가을에 잘 어울리는 허브티다.
초콜릿&네스프레소 애프터눈 티 파크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는 달콤한 오후를 위한 ‘초콜릿&네스프레소 애프터눈 티 세트’를 준비했다(12월 6일까지).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와 협업하여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세이버리와 디저트를 제공한다. 애프터눈 티 아이템은 특별 제작한 3단 도자기 트레이에 담아 더욱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티 타임을 즐길 수 있다(1인 4만8000원).
어텀 겟 어웨이 패키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가을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어텀 겟 어웨이 패키지’를 10월 5일부터 출시한다. 단풍으로 물든 남산자락이 창 너머로 보이는 객실에서 피자와 맥주 등을 즐기며 피로를 풀기 좋다(55만 원부터). 아울러 투숙객에게는 환절기 피부 고민을 덜어줄 ‘이영애 리아네이처’ 제품 4종을 선물로 제공한다.
스위트 어텀 애프터눈 티 세트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라운지 카페 ‘갤러리’는 가을맞이 ‘스위트 어텀 애프터눈 티 세트’를 11월 30일까지 선보인다(5만 원부터). 홍차, 녹차를 비롯한 카페 음료와 배, 밤, 무화과 등 제철 과일로 만든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같은 기간 ‘더 스파’에서는 환절기 피로를 풀어줄 ‘바이탈 트리트먼트 패키지’를 운영한다(주중 29만7000원, 주말 31만9000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 명절이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맞는 ‘집콕 명절’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부터 앞선다. 밖으로 돌아다니기도 찜찜하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놀이를 하며 돌보자니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며칠 더 남은 추석 연휴, 지루하게 보내지 않을 방법 없을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어린 손주와 시니어들이 모두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찰리와 초콜릿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2005)
초콜릿에 숨겨져 있는 황금 티켓을 찾은 어린이들이 세계 최고 초콜릿 공장인 '윌리 윙카 초콜릿 공장'에 방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찰리'(프레디 하이모어)와 그 외 4명의 어린이가 황금 티켓의 주인공이 돼 기상천외한 모험을 경험한다. 1964년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동화 같은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초콜릿 폭포, 설탕 보트 등 소설 속 초콜릿 공장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재현해 영상미를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천의 얼굴’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이 신비로운 공장 주인 ‘윌리 윙카’ 역을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더한다.
2. 페어런트 트랩 (The Parent Trap, 1998)
아주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 외동딸인 줄 알고 살던 쌍둥이 자매 '할리'(린제이 로한)와 '애니'(린제이 로한)가 어느 날 여름 캠프에서 자신과 똑 닮은 친구를 만나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다. 따로 사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 집을 바꿔 돌아간 주근깨 소녀들의 깜찍한 작전이 미소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1949년 발표된 독일의 아동 소설 ‘쌍둥이 로테’를 원작으로 하며, 영화는 기존의 유쾌한 서사에 발랄하고 톡톡 튀는 디즈니 특유의 색채가 더해져 한층 더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쌍둥이 자매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린제이 로한이 맡아 1인 2역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으며,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던 린제이 로한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최고의 아역배우로 거듭났다.
3. 파퍼씨네 펭귄들 (Mr. Popper's Penguins, 2011)
성공한 사업가 ‘파퍼’(짐 캐리)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남극 펭귄을 유산으로 받아 뉴욕 한 가운데서 여섯 마리의 펭귄과 함께 생활하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1938년 발간된 앳 워터 부부의 소설 '파퍼씨와 12마리 펭귄들'을 원작으로 하며, 원작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펭귄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펭귄으로, 펭귄의 생활환경을 맞추기 위해 촬영 현장을 영하로 유지하고 짐 캐리가 바지와 신발주머니에 생선을 넣고 다녔다는 비화도 전해진다. 코믹 연기의 대가 짐 캐리와 귀여운 펭귄들의 '환상 케미'가 돋보이며, 우연찮게 시작된 펭귄과의 동거로 잃어버린 동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되찾는 파퍼의 모습이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피부생리학에 기반을 둔 화장품을 만들고 있는 유용기 대표는 무분별한 제조사와 무책임한 판매자들로 인해 화장품 시장이 난잡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피부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매년 놀랍도록 훌륭한 화장품 성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민감하고 예민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유가 뭘까? 피부와 화장품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건강한 피부로 돌아오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유랍 유용기 대표의 K뷰티 견해를 들어봤다.
유랍 화장품의 에이지리스(Age-less)와 리페어 뷰티 사이언스(Re pair Beauty Science) 의미는?
인체생리학을 알면 노화의 원인들을 알 수 있다. 노화된 피부는 첫째, 피부장벽을 튼튼하게 재구성해야 하고 둘째, 부족한 단백질들을 보충해줘야 한다. 셋째, 노화로 인해 몸속에서 잠자고 있는 단백질의 기능을 깨워줘야 한다. 넷째,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충분한 휴식과 균형 있는 영양 유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지막 다섯째는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 근력이 무너지면 노화로부터 몸을 절대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근육은 피부 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피부장벽이 건강해지면 안티에이징, 10년 아니 그 이상의 훨씬 젊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유랍은 국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화장품의 본질과 피부생리학에 기초한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는데 고객들이 이를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피부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제품의 효능·효과를 높이려 노력해왔고, 그 효과를 믿어주는 마니아층이 굳건하게 형성되었다. 초기의 목표는 세계 최고 안티에이징 화장품 개발이었는데, 최근에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보습과 재생을 아우를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스위스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 ‘유랍’을 만들게 된 계기는?
사회생활 첫 시작이 독일의 화장품을 수입해서 한국의 피부관리실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피부를 더 잘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공부로 이어졌다. 그때가 1991년.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에 남자 피부관리사는 없었다. 내가 1호가 된 셈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피부관리실 원장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피부관리에 대해 강의를 했다. 내가 공부한 것을 기반으로 한 정보 전달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유럽의 화장품 제조사 대표들과 피부관리 전문가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런데 아는 게 많아질수록 당시 내가 취급하고 있는 화장품이 자꾸만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계기가 되었다. 독일 화장품인데도 불구하고 피부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문제점들을 발견할 때마다 개선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 이름을 건 진짜 좋은 화장품을 만들자고. 이론과 실제가 맞아떨어지는 화장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에 내가 에스테틱 업계에서는 좀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명감도 컸다.
준비는 2006년부터 했고 2011년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에 화장품 제조사 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스위스 정부에서 화장품 제조사 법인을 설립한 한국인은 내가 최초라고 했다. 스위스를 택한 이유는 유럽 화장품 원료들 중 최상의 원료들이 대부분 스위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스위스인의 피부 타입이 비슷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리고 바이오산업이 가장 발달한 국가라는 것도 나를 이끌었다.
나는 30년 동안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화장품들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리고 그 특성들을 연구한 결과 내가 추구하는 것과 스위스 화장품이 가장 잘 맞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확실한 효과와 안전성, 최신 성분들, 여기에 최첨단 바이오산업을 결합한 것까지. 지금까지 내가 추구해온 것들을 현실화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나는 곳이었다. 여기에 한국인의 끝없는 도전정신과 정직성, 그리고 철학을 담으면 세계 최고의 화장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국내 시장에 대한 차별화 전략은?
화장품은 피부에 바르는 것이다. 피부가 건강해야 노화도 늦게 온다. 피부가 예민하고 민감하면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과 잡티가 생긴다. 피부 노화가 빨리 찾아오면 활력과 자신감이 없어진다. 건강도 그렇지만 피부도 늙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피부 상태를 보면 대부분 예민해져 있다. 원인을 알기 위해 연구도 많이 했다. 잘못된 피부 상식과 잘못된 화장품 사용이 문제였다. 소비자가 피부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피부를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조언하기 위해 유튜브와 페이스북도 활용한다.최선을 다해 홍보하려고 한다.
완벽한 안티에이징을 위한 연구 결과가 궁금하다.
화장품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피부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키고 가꾸려면 좋은 화장품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계속 느껴왔다. 화장품과 피부관리의 종착점은 결국 안티에이징이다. 피부 노화를 최대한 늦춰주는 안티에이징의 제일 기본은 보습이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외적 젊음은 바로 피부다. 그 피부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건 화장품이다. 그래서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안티에이징의 핵심은 단백질인데 종류가 매우 많고 가격에도 큰 차이가 있다. 1g에 1억 원이 훌쩍 넘는 것도 있고 몇만 원짜리도 있다.
15년 전부터 단백질과 단백질을 또는 단백질과 다른 물질을 결합해 파워를 월등하게 키운 합성단백질도 개발되고 있다. 단백질 성분이 피부와 잘 어울리고 효능을 보일 수 있도록 화장품에 접목시키려면 단순 화학반응에 대한 이해가 아닌 피부생리학, 세포생리학 그리고 면역학까지 공부해야 한다. 피부 나이 10년 늦추기는 꿈도 허상도 아니며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지금의 모습을 10년 아니 단 5년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들을 하지만 유랍 화장품이 추구하는 안티에이징 목표는 10년 그 이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유랍 화장품을 더 알아주는 이유는?
해외에서는 화장품을 과학으로 인정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저 향과 텍스처에 치중한 브랜드도 많다. 그에 반해 유랍은 철저하게 생리학을 기본으로 탄생한 화장품이다. 나는 유랍을 눈 딱 감고 한 달만 사용해보라고 한다. 틀림없이 피부가 응답해줄 것이라고. 유랍은 노화가 진행된 40대 피부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화장품의 최종 목표는 안티에이징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20~30대도 사용하길 권한다.
해외에서는 피부를 연구하고 과학에 기초해 만든 화장품을 많이 인정해주는 편이다. 특히 스위스는 바이오산업이 발전한 나라이고 유럽 국가들 중 화장품 법률 적용이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그래서 스위스 브랜드가 더욱 신뢰를 얻는 것 같다. 영국, 독일 사람들도 스위스 하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유랍 화장품 비즈니스를 하며 얻은 인생 철학이 있다면?
정직하면 망한다. 이것이 내가 느낀 점이다.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 잘 살고 성공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향과 색소가 없고 실리콘 성분이 없어야 좋은 화장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막상 그렇게 만들면 향이 어쩌니 색깔이 어쩌니 발림성이 어쩌니 하면서 구입을 안 한다. 결국은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 확립이 관건인 것 같다. 신뢰가 생기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화장품 상식들을 충분히 커버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고객들에게 다양한 방면에서 지속적인 신뢰를 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유 대표님이 생각하는 안티에이징과 나이 듦의 기준은?
노화에는 정신적 노화, 사회적 노화, 생리학적 노화가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철학도 공부하고 공중보건학과 생리학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생리학도 인문학의 중심에 세우려고 한다. ‘생리학적 건강이 곧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으로 연결될 수 있다.’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조화롭게 추구해야 건강한 세상이 되고 인생이 즐겁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손은 밖으로 나와 있는 뇌”라고 했다. 그만큼 손은 중요한 부위라는 의미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손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손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주부는 물론 컴퓨터나 기계 등을 많이 다루는 직장인, 스마트폰과 노트북, 필기 등으로 손 쉴 틈 없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다가오는 추석 기간 고향을 찾는 발길이 좀 줄어들 전망이지만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은 아직도 여성들에겐 손이 고생하는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 손목의 반복된 사용이 주원인
흔히 손바닥과 손목의 연결 부위인 신경이 눌려 손목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손목터널증후군’이라 부른다. 이 증후군은 손목의 반복된 사용으로 정중신경이 압박을 받을 때 흔히 일어난다. 주요 증상으로는 손과 손가락의 저림, 통증, 감각 저하 등이 일어난다. 특히 증상이 심할 경우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엄지 근육이 위축돼 납작하게 되기도 한다.
손목의 손바닥 쪽에는 피부조직 밑에 근육의 힘줄과 신경이 지날 때 위에서 덮어주는 막이 존재한다. 이를 가로 손목 인대(횡수근 인대)라고 하고, 이 인대와 주변 조직에 의해 둘러싸인 공간을 수근굴 또는 수근관이라고 한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수근굴 내의 압력이 증가해 이 굴을 지나가는 구조물 중 하나인 정중신경이 압박을 받아 발생한다. 정중신경은 엄지손가락과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의 감각 절반과 엄지손가락의 운동 기능의 일부를 담당한다.
가로 손목 인대가 두꺼워지거나 근육의 힘줄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돼 자극되고 염증이 있으면 힘줄을 둘러싸는 막이 두꺼워지고 붓게 된다. 이때 수근굴(수근관) 내 구조물의 부피가 증가해 상대적으로 공간이 좁아지면서 정중신경이 눌리게 되면 손목터널증후군이 발생한다. 또 감염이나 손목의 골절로 인한 변형, 관절 탈구, 종양 등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 여성과 중장년층이 다수
여성과 중장년층 중에서 손목터널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7년 18만920명, 2018년 17만9177명, 2019년 17만7066명으로 나타났다. 2017년 18만 명을 넘어 정점을 찍은 이후 조금씩 감소 추세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수가 손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진료 인원의 75%를 여성이 차지했고, 이 중 78%는 40~60대 중장년층이었다.
아울러 직업적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많이 사용하거나 포장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 잘못된 습관 등 반복적으로 손목을 구부리고 펴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발생 빈도가 높다. 그 외에 비만, 당뇨, 류마티스관절염, 갑상선 기능 이상이 있는 사람에서도 많이 생긴다.
이상욱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최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거나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주부들에게서 손목터널증후군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이 낮은 자세로 작업하는 것에서 대부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컴퓨터 작업을 할 때도 손목과 손가락을 피아노를 치듯 평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증상 심하고 지속된다면 수술 고려
손목터널증후군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경타진 검사, 수근굴곡검사, 정중신경 압박검사를 진행한다. 좀 더 정확한 손상 부위를 알아보기 위해 방사선 검사나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시행해 확진할 수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자세를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교적 증세가 가벼운 경우 손목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것을 자제한다. 소염제 복용이나 수근관 내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해 일시적으로 증세를 완화할 수 있지만 재발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치료에도 계속 아프거나 증상이 심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이 계속 무감각하고 무지구(엄지손가락 근육 부위)의 근육위축이 있다면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수술 방법은 횡수근 인대를 잘라줘 수근관을 넓혀주는 것으로 수술 시간은 10분 정도, 당일 입‧퇴원도 가능해 치료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상욱 교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은 초기 증상이 미미해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신경조직이 상해 만성화가 되거나 근육의 위축이 진행돼 운동 기능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날 경우 전문의를 찾아 상담 및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왜 그렇게 늘 싸우면서 살까?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데, 정말 그렇게 크려고 그러는 걸까? 이 사람 저 사람과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1952년에 발표된 노래 ‘통일행진곡’(김광섭 작사, 나운영 작곡)이 떠올랐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공산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공산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자유의 인민들 피를 흘린다/동포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해/손잡고 백두산에 태극기 날리자.”
19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잘 아는 노래다. 교과서에 실렸던 이 노래는 여학생들의 고무줄놀이에도 꼭 등장했다. 가사 중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가 내게는 이 지사의 모습과 연결된다. 나는 바둑을 둘 때 “에에라 끊자!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아녀?”라는 식으로 그 가사를 잘 써먹었다. 남을 훈수할 때도 그렇고, 좌우간 뭔가 중요한 결단이 필요할 때 쓰는 유행어이기도 했다.
이 지사의 싸움 중에서 특히 내 주의를 끈 것은 그릇 논쟁이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강하게 비판한 이 지사에게 “그릇이 작다”고 직격하자, 이 지사는 “소수 기득권자가 다수 약자의 몫을 빼앗는 큰 그릇 사발이 되기보다는 다수 국민이 기본적 삶의 조건을 보장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작은 그릇 종지의 길을 택하겠다”고 반박한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싸우는데, 언어가 천박하고 금도(襟度)와 아량은커녕 상대를 인정하는 여유도, 승복하는 일도 없어 시정잡배들의 이전투구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논리는 뒷전이고 말꼬리 잡기 싸움 일색이다. 그에 비하면 그릇 논쟁은 그래도 좀 영양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은 오래된 발상법이다. 그릇이 큰가 작은가는 사람을 판단하고 임용하는 주된 기준이었다. 그릇의 크기는 그 사람이 군자냐 소인이냐로 직결된다. 이 지사와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설전에서도 분노조절장애니 소인배니 하는 말이 오갔다. 요즘 어떤 기자들은 대인배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까지 마구 쓰고 있지만, 남을 소인배라고 칭하는 것은 서양식으로 하면 결투 신청감이다.
그릇은 원래 비어 있어야 제 구실을 하는 법. 클수록 담을 수 있는 게 많아진다. 하지만 용도에 따라서는 큰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거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는데,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는 공자의 말도 잊으면 안 된다. 군자는 형태가 고정된 그릇과 같지 않아서 모든 분야에 두루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이니 그릇의 크기를 뛰어넘는 개념이다.
그릇을 뜻하는 ‘器’에는 존중하다, 중시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기경(器敬, 재능 있는 이를 존경함), 기대(器待, 신임하여 예우함), 기망(器望, 기량과 명망) 기애(器愛, 중하게 여기고 사랑함), 기사(器使) 또는 기임(器任), 상대의 재능을 헤아려 걸맞게 부리거나 중요한 자리에 임명하여 씀, 이런 말에 그릇 기 자가 등장한다. 인재를 가려 뽑는 기인(器人), 일체중생이 거주하는 세계 기세간(器世間)에도 그릇이 나오니 놀랍다.
기국(器局, 사람의 도량과 재간), 기도(器度, 식견과 도량), 기량(器量, 덕량과 재능), 기략(器略, 기능과 계략), 기망(器望, 기량과 명망)… 그릇 기 자의 쓰임새는 많기도 하다. 그래서 천자문의 ‘신사가복 기욕난량’(信使可覆 器欲難量)은 “약속은 몇 번이고 되풀이 실천할 수 있게 하고, 도량은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를 추구하라”고 해석되나보다.
예부터 인물을 평가할 때는 이런 여러 개념을 잣대로 적용했던 것 같다. 최치원의 기록에는 당 태종이 김춘추를 국기(國器, 나라를 다스릴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라며 찬탄했다는 말이 나온다. 반남 박씨와 기계 유씨의 오랜 반목을 해소한 것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환재 박규수인데, 환재는 향시(鄕試, 지방 과거시험)에 장원한 15세 소년 유길준을 집으로 초대해 화해할 때 그가 국기임을 알아보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부마 후보로 올라온 소년을 눈여겨보고는 “이 아이는 참으로 국기가 될 만하다”고 평하고, 후일 재상이 되게 하는 게 좋겠다며 일부러 사위로 뽑지 않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가 과연 국기인지 향기(鄕器)에 그칠지 아니면 그것도 아니라 실은 가기(家器)에 불과한 그릇인지는 알 수 없다. 독일 속담에는 “접시의 가장자리 너머를 보라”(Über den Tellerrand schauen)는 말이 있다. 그릇 안의 음식만 보지 말고 그릇 너머를 살피라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사물의 현상만 볼 게 아니라 본질적 이면을 폭넓게 통찰하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그릇 싸움’이 ‘도토리 키 재기’(어떤 사람은 ‘벼룩 장판 뛰기’라고 하던데)에 그치면 의미가 없다. 그릇을 겨루면서 서로 커가는 다툼이라야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릇은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기구라는 명사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잘못되는 것을 말하는 부사도 된다. 그릇은 만들 때 잘못되거나 사용할 때 깨지기 쉽고, 사람이라는 그릇도 그릇되기 쉽다는 함의가 있는 게 아닐까 내 맘대로 생각해본다. 그래서 더욱더 사람은 좋은 그릇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릇 싸움’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1)코로나 발열 여부를 측정하는 기계처럼 사람이 그 앞에 서면 바로 “당신은 군자(또는 소인)입니다”, “당신은 그릇이 큽니다(또는 작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2)그래서 그릇이 작은 사람이 그릇이 큰 사람과 싸우면 작은 인형이 큰 인형 속에 쏙 들어가는 마트료시카 러시아 인형처럼, 물 위의 큰 파문이 작은 파문을 휩싸는 것처럼 큰 사람 속에 파묻혀 군말 없이 입 꾹 닫고 살게 하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누가 이런 걸 좀 발명해보라. 세계적으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발명품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