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 명절이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맞는 ‘집콕 명절’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부터 앞선다. 밖으로 돌아다니기도 찜찜하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놀이를 하며 돌보자니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며칠 더 남은 추석 연휴, 지루하게 보내지 않을 방법 없을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어린 손주와 시니어들이 모두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찰리와 초콜릿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2005)
초콜릿에 숨겨져 있는 황금 티켓을 찾은 어린이들이 세계 최고 초콜릿 공장인 '윌리 윙카 초콜릿 공장'에 방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찰리'(프레디 하이모어)와 그 외 4명의 어린이가 황금 티켓의 주인공이 돼 기상천외한 모험을 경험한다. 1964년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동화 같은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초콜릿 폭포, 설탕 보트 등 소설 속 초콜릿 공장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재현해 영상미를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천의 얼굴’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이 신비로운 공장 주인 ‘윌리 윙카’ 역을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더한다.
2. 페어런트 트랩 (The Parent Trap, 1998)
아주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 외동딸인 줄 알고 살던 쌍둥이 자매 '할리'(린제이 로한)와 '애니'(린제이 로한)가 어느 날 여름 캠프에서 자신과 똑 닮은 친구를 만나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다. 따로 사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 집을 바꿔 돌아간 주근깨 소녀들의 깜찍한 작전이 미소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1949년 발표된 독일의 아동 소설 ‘쌍둥이 로테’를 원작으로 하며, 영화는 기존의 유쾌한 서사에 발랄하고 톡톡 튀는 디즈니 특유의 색채가 더해져 한층 더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쌍둥이 자매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린제이 로한이 맡아 1인 2역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으며,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던 린제이 로한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최고의 아역배우로 거듭났다.
3. 파퍼씨네 펭귄들 (Mr. Popper's Penguins, 2011)
성공한 사업가 ‘파퍼’(짐 캐리)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남극 펭귄을 유산으로 받아 뉴욕 한 가운데서 여섯 마리의 펭귄과 함께 생활하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1938년 발간된 앳 워터 부부의 소설 '파퍼씨와 12마리 펭귄들'을 원작으로 하며, 원작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펭귄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펭귄으로, 펭귄의 생활환경을 맞추기 위해 촬영 현장을 영하로 유지하고 짐 캐리가 바지와 신발주머니에 생선을 넣고 다녔다는 비화도 전해진다. 코믹 연기의 대가 짐 캐리와 귀여운 펭귄들의 '환상 케미'가 돋보이며, 우연찮게 시작된 펭귄과의 동거로 잃어버린 동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되찾는 파퍼의 모습이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사회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변화의 파도가 속이 울렁거릴 만큼 거세고 빠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사람 간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조직 속에서 부대끼며 일상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는 그간의 방식을 모두 지워버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투명한 벽을,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세웠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다면 그래도 온기를 느낄 구석이 있지만, 혼자 사는 이는 안팎으로 교감할 이가 없어 배로 고독하다. 모니터 앞에 모여 건배를 하고, 온라인으로 못다 한 소통을 이어가는 등 각자 여러 방법으로 애쓰고 있지만, 근본적인 우울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온기를 채울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말은 못해도 조용히 곁을 내주는 식물이 오히려 따뜻한 처방이 되기도 한다.
식물을 키우며
식물을 키운 지 만 4년 정도 됐다. 미세먼지가 한창 극성을 부렸을 무렵 200개의 식물을 집 안으로 들였다. 실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식물은 깨끗한 공기 외에도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존재 자체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었고, 더 나아가 잠재된 창의성을 깨워주었다. 이렇게 식물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일을 하게 된 것도 식물이 준 활기차고 건강한 기운 덕이다.
건강한 ‘기운’이라고 했지만, 과학적으로도 식물은 인간의 신체에 도움을 준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뿜는다. 그 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유기화합물을 제거하고, 우리 몸에 필요한 음이온을 생성한다. 음이온은 혈액을 정화하고, 통증을 완화하며, 저항 능력을 증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 세포의 부활을 촉진하고, 자율신경 조정 능력도 원활하게 한다.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
식물은 신체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건강해지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유선형을 좋아한다. 잎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선을 볼 때 뇌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또 식물의 상징인 초록색을 보면 뇌가 알파파 상태(뇌가 가장 안정된 상태)로 변해 집중력이 높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때 유행했던 ‘엠씨스퀘어’가 바로 뇌를 알파파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기기였다.
식물과의 동거가 낯선 당신에게
식물이 주는 이로움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선뜻 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상과는 달리 키우는 족족 죽거나 아파서 처치 곤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 본인이 그런 ‘마이너스 손’에 해당되는 것 같다면 앞으로 소개할 세 가지 식물만 기억해도 도움이 된다. 이 삼총사는 바람이 없고 빛이 부족한 곳에서도 뿌리를 물에 담가주기만 하면 별 탈 없이 잘 자란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스킨답서스다. 실내에서 키우기 가장 쉬운 식물로 알려져 있고, 나사의 공기정화식물 순위 12위에 올라와 있을 만큼 공기정화 능력도 뛰어나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단, 약간의 독성이 있어 반려동물에겐 위험할 수 있다. 필자와 함께 사는 반려묘는 스킨답서스를 알아서 건드리지 않지만, 개체마다 성격이 다를 수 있으니 어느 정도의 주의는 필요하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식물은 실내에서 백조 같은 하얀 꽃을 피우는 스파티필럼이다.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아름답고 실용적인 식물이다. 스파티필럼 역시 나사의 공기정화식물 리스트 10위에 올라와 있다. 이 식물은 꽃가루가 있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조금 주의하는 편이 좋다. 하얀 불염포 가운데 우둘투둘한 돌기가 있는 부분이 꽃인데, 꽃이 보이자마자 잘라주면 꽃가루를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접란을 추천한다. 나사가 선정한 공기정화식물 순위 38위에 올라와 있다. 물컵에 꽂아놓기만 해도 뿌리를 내리며 잘 자란다. 이 식물은 러너를 뻗어 작은 새끼 접란을 틔우는데, 그걸 잘라 다시 컵에 꽂으면 또 잘 자란다. 반려동물에게도 안전한 식물이다. 필자의 접란은 반려묘가 뜯어먹어 까까머리가 되었다. 세 가지 식물 모두 뿌리를 물에 담가만 주면 잘 자란다.
아름답게 연출하려면 세 가지를 기억해두면 편하다. 첫째, 식물을 모아 작은 화단을 연출한다. 식물은 모여 있을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물질을 주고받으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 이때 허리를 굽히지 않는 높이에 두면 관리도 훨씬 편해진다. 둘째, 기왕이면 높낮이를 달리 배치해본다. 조금 더 예쁘게 연출하고 싶다면, 비정형 삼각형을 상상하고, 그 삼각형의 꼭짓점마다 화분을 배치해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잎의 색상이나 질감이 다른 것들을 다양하게 길러본다. 마치 꽃꽂이를 보듯 오랫동안 만족감을 주는, 심미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플랜테리어가 될 것이다.
식물에게는 언제나 ‘때’가 있다. 번호표가 매겨져 있는 것처럼 순서대로 싹을 틔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내내 초록색 이파리만 뽐내다 떠날 것 같은 식물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힘에 부칠 때면, 잠깐 시선을 베란다로 돌려보자. 어떤 시련이 와도 뿌리를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내는 생명 하나가 조용히 응원의 열매를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정재경
공간 디자이너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더리빙팩토리’ 대표. 에세이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을 펴냈다.
안녕, 시골아, 드디어 내가 너에게 왔노라! 그에겐 그렇게 흐뭇한 인사말을 읊을 겨를이 없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사업을 하다 귀농한 김열홍(60) 씨. 그의 귀는 얇은 귀였나? 그는 “농지며 집이며 거저 쓸 수 있으니 몸만 오라”는 지인의 달짝지근한 권유를 받고 설레어 달려 내려간 참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상황이 영 달랐단다.
믿었던 사람에게 된통 당한 셈이다. 그러나 열홍 씨는 부아를 가라앉히고 얌전히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속인 건 지인이지만 홀린 건 나 자신이지 않은가, 내가 나에게 속은 꼴이지 않은가, 남 탓할 것 없다! 그냥 그렇게 여기고 후루룩 상황을 넘어서기로 했던 모양이다.
약간 요상한 귀농 시발이었다. 진즉부터 시골살이에 뜻을 두었기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왕 내친김에 한바탕 열심히 뛰어보기로 다짐하자 새삼 흥미가 동했던가보다. 한 방 얻어맞고서야 귀농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렸던 거다. 이렇게 뒤늦게 엄청 진지해진 열홍 씨, 일단 도시에 있는 부동산을 싹 처분해 7억 원쯤의 귀농자금을 만들었다. 그건 그가 믿을 만한 가장 유력한 ‘실탄’이었다.
돈을 일컬어 ‘요물’이라고도 하고 ‘웬수’라고도 하지만, 그는 비장하게도 ‘실탄’이라 부른다. 내가 쥔 자금이 떨어지면 성벽을 넘어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세파의 기총소사에 대응할 길이 없다는 인식에서다. 그래 실없이 실탄을 낭비하지 않고 가급적 효율적이고도 참신한 전투에 임하기로 결심한 병정처럼, 열홍 씨는 최대치의 슬기를 발휘해 자금을 잘 운용하기로 하고 귀농열차를 집어탔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농 10여 년이 흘렀으나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건 그의 목숨이 다하는 날에 따져볼 사안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귀농생활에 인생의 모든 것을 쏟기로 결정했으며, 실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고 자부하기 전에 도출되는 대차대조표는 잠정적인 결과물에 해당하거나 무의미한 문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3도 화상을 입으며, 또는 자주 뒤집어지며 익어가는 빈대떡과 이웃사촌. 용을 쓰더라도 엎치락뒤치락, 삶이란 굴곡과 파란으로 점철되는 꽤나 허무맹랑한 레이스라는 걸 그도 잘 알지 않겠는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리라! 이게 열홍 씨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추세라는 게 있을 텐데, 한마디로 오랫동안 주로 죽을 쑤었다.
“귀농에 만족하느냐고 내게 묻지 마라. 그 답을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웃음) 때론 만족스럽다가도 때론 힘겨워 불만스럽다. 이곳에 자리 잡은 게 11년 전인데 5~6년 동안은 수익이 아예 나질 않더라고. 해마다 적자였지. 그럼에도 투자를 계속해왔다. 규모를 키우는 게 난관을 돌파할 길이라 판단하고서였다. 그러면서 ‘실탄’을 꽤나 허비했다. 다행스럽게도 4~5년 전부터는 ‘똔똔’이거나 약간의 흑자가 나고 있다.”
그는 처음 한동안 고추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를 보고 2000평 규모의 사과농장을 조성해 공을 쏟기 시작했다. 10여 마리에 불과했던 한우도 70여 마리로 늘려 사육하고 있다. 실로 모처럼 쏠쏠한 흑자를 본 작년의 경우, 사과로 올린 매출액이 5000만 원 정도. 이 가운데 60%쯤이 순수익이란다. 한우 사육에서도 비로소 자금회전이 시작되고 있다.
“뭐 하나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자칫 적자를 보는 일에 도통하기 십상인 게 농업이다. 그렇다고 꼭 그러라는 법이 있겠나. 매사가 썩 이상하게 돌아갔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성난 얼굴로 현실을 돌아보길 거듭했으며, 활로를 찾기 위해 몸과 머리를 아낌없이 써왔던 것 같다. 염소 털처럼 허옇게 쇤 그의 턱수염은 분투의 소산일 게다. 그 결과 서광이 들이쳤나?
“이제 웬만히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애환이 많았다.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나날들이었지. 공연히 거액의 자금만 날리기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귀농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내려왔다는 데에 있다.”
준비한 건 오직 자금뿐이었나?
“그렇다. 호밋자루 한 번 손에 쥔 경험이 없는 문외한이 겁 없이 농사에 덤벼든 꼴이었다. 뭐든 잘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 이게 오산이었다. 기술 없이 농사에 뛰어들었으니 노력을 해본들 쉽게 풀릴 일이 아니더라. 뒤늦게 농업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1년 과정의 한우대학도 수료했다.”
귀농은 왜 했지? 목적이 뚜렷했다면 사전 준비도 부실하지 않았을 거 같아 묻는 얘기다.
“조용한 시골에 나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낭만적인 꿈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 원하는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농사 노동으로 떳떳한 시간을 보내고, 가끔 하루 이틀쯤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뭐 그런 소박한 기대가 있었으나 아직 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사실 인간사에 낙원이 어디 있겠나. 감상적으로 살 일이 아니더라.”
농사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도시를 떠나지 않았겠지. 사업이 괜찮게 돼 가만 있어도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인생에는 돈벌이보다 중한 게 있지 않던가? 내 마음이 흘러가는 곳에 살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게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난 귀농을 통해 한결 나은 삶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귀농보다 귀촌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텃밭 농사 정도나 하며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귀촌 말이다. 당신은 독신이다. 7억 자금이면 놀면서 슬슬 까먹어도 평생을 살 수 있을 게 아닌가.
“아하. 특정한 직업 없이 지내는 무위도식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 일과 맞부딪쳐 뭔가 보람을 끌어낼 게 없는 생활에 무슨 활기가 있겠나, 무슨 재미가 있겠나.”
비록 고행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농업이 지닌 매력과 흥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더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에겐 피땀 흘려 생산한 사과가 팔리지 않아 숭숭 썰어 소 사료로 주는 식의 환장할 만한 혼선이 잦았다. 그러나 농사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유 직종이라는 것, 이상과 자질을 마음껏 실험하고 교정할 수 있는 인생교실이라는 것, 게다가 정년이 없어 무기력한 노년을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등, 열홍 씨는 농사가 지닌 긍정적 속성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가령 농산물이 안 팔리더라도 남 탓을 할 게 없다. 모든 게 나의 능력, 기술, 전문성의 여부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지. 그러고 보면 농사란 가장 자립적인 형태의 직업이다.”
그는 ‘모든 게 나의 문제’라는 걸 자주 자신에게 세뇌하며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자기학습의 효과는 커 그를 좀체 실의에 잠기게 하지 않는다. 농사로 맞닥뜨리는 난관이 이를테면 어떤 외부의 흉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한숨과 낙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는 힘과 깡을 끌어내는 것 같다. 저 잘난 농업정책의 협찬이나 선한 이웃의 과도한 헌신을 기대하는 따위도 그의 본성에 맞지 않아 남세스럽게 여길 따름이다.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
그런데 열홍 씨가 직면한 넘어야 할 산은 농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해야겠다. 그의 콩팥은 좀 서러운 콩팥이다. 기능을 상실한 탓에 그는 1주일에 사흘은 신장 투석을 한다. 월, 수, 금, 3일간은 거의 종일 병원에 누워 혈액을 걸러낸다.
“나이 들면 누구나 한두 가지 질병은 다 가지고 산다. 그저 내 복대로, 내 팔자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병원에선 의사에게 맘 편히 투석을 맡기고, 집에선 몸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일에 묻혀 산다.”
동네 이웃들은 당신을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라 칭찬한다.
“무슨 그런 과한 얘기를.(웃음) 남들은 수백 마리의 소도 기르고, 수만 평 규모의 사과밭을 경영하기도 한다. 난 그 반의반도 못 따라가고 있잖은가. 농사일에도 아직 서툴러 사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콩팥에 문제가 생긴 건 언제부터?
“40대 초반에 이상이 왔다. 플라스틱을 다루는 공장을 운영한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 한동안 일을 놓고 쉬었으나 결국은 신장이식을 받게 되었지.”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중한 병을 고친 이들도 있다.
“귀농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식받은 콩팥을 달고 산 지 12년 만에 완전히 망가지더군. 투석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게 형제 하나가 콩팥을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했다. 나 좋다고 형제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시골에 들어와 병을 고친 사례는 나도 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병은 좋아질 병이 아니거든. 계속 끝까지 투석해야 하고 식이요법도 충실해야 한다.”
그런 건강 상태로 열심히 농사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강철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군.
“난 어릴 때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고난을 겪었다. 먹을 게 없어 사나흘씩 굶기를 자주 했고, 심지어 20일간 물만 마시며 견디기도 했지. 아마 그런 경험들이 나를 꽤나 강하게 만들고 독립적인 근성을 길러준 게 아닐까. 난 지금도 알몸으로 어디에 던져져도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웃음)”
자신을 완벽하게 통치하는 인간 유형? 열홍 씨는 차돌처럼 야무지다. 불편한 몸 상태에 희한하게도 거의 무심하거나 태연하다. 간혹 표정이 딱딱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사람의 버릇일망정 병세에 상심하는 징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피로, 두통, 요통 등 신장투석에 따르는 불편이 자심할 터이지만, “난 그런 거 몰라!” 하는 투로 유유한 게 아닌가.
그는 신장 투석을 시작하며 유능한 일손 하나를 고용했다. 축사며 과수원을 혼자 건사하기엔 역부족이라 동원한 인력이다. 도시에서 내려온 이 일손은 귀농 지망생으로 향후의 귀농을 위한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셈이다. 열홍 씨로선 신통치 않은 재무구조에 월급이 나가 부담이야 되겠지만 한숨 돌릴 수 있었을 게다. 이렇게 그는 동갑내기 직원과 둘이 5년째 동거하며 일을 한다. 오직 끔벅거리는 눈으로 언어를 발하는 소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사과나무들이 간혹 청원하는 민원을 접수해 해결해준다. 그 와중에 그가 남몰래 해온 일이 또 하나 있다. 과수 농가들에게 쓸모가 많을 그 뭔가 새로운 도구들의 개발에 열을 내왔던 것인데 2017년, 마침내 ‘가지 유인(誘引) 철 클립’을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과수 농사에서 가지 유인 작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다. 가지들을 적절히 늘어뜨리거나 구부려줘야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 그동안 흔히들 콘크리트로 만든 추(錐)나 플라스틱 물병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아 유인을 해줬다. 내가 만든 ‘철 클립’은 획기적으로 간소하고 효율적이다. 현재 농가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창의(創意)의 산물이구나.
“도시에서의 오랜 전공이 기계설비였다. 농사를 짓더라도 전공을 살려 만든 장비나 기구를 도입하자는 생각이었지. 내겐 다종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나름 연구를 해왔다. ‘가지 유인 철 클립’은 개발이 실현된 한 가지일 뿐이다.”
‘철 클립’ 매출액은 어느 정도?
“출시 이후 약 3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제 막 알려지고 있는 과정이라 차후의 매출 상승을 예감한다. 소비자들과 만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특허를 내고 홍보를 하는 등 그간 1억 정도를 투자했지만 충분히 회수가 가능할 거라 본다.”
당신의 귀농 역시 결국은 안정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편이겠지?
“소들의 순한 눈망울, 새벽이슬을 매단 사과나무, 눈부신 아침 햇살, 이런 것들이 주는 짜릿한 전율이 행복의 감정일까. 한 사람의 월급을 주고, 나 먹고살 형편은 되고, 이 역시 행복이겠지. 그러나 행복은 순간에 왔다가 순간에 사라진다는 걸 안다. 과욕 없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다. 몸 아픈 사람들에겐 시간이 한결 귀하다.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난 그쯤의 인간이길 바란다.”
비록 시련이 많지만, 지금 살아가는 방식,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홍 씨는 별 유감이 없다. 아까운 시간을 선용해 현재보다 더 나아가고자 하는 갈증. 이건 뜨거운 목마름이다. 그렇기에 건강상의 한계나 노동의 과중함마저 그는 곧잘 무시하는 것 같다.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처럼.
김열홍 씨가 주는 Tip
•귀농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자. 기술 습득 없이 농업에 나섰다간 십중팔구 실패하기 때문이다. 시골 농가에 일꾼으로 1~2년쯤 취직해 살며 농사를 익힌 뒤 귀농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똑똑한 인재다.
•집부터 먼저 잘 지을 거 없다. 자금을 아껴 써야 살아남는다. 근사한 집을 지었더라도 나중에 팔 일이 생겼을 경우엔 낭패를 볼 수 있다. 좀체 팔리지 않는 게 전원주택이니까.
•깊은 산골의 집성촌으로 귀농하면 텃세에 시달릴 수 있다.
•귀농을 하면 일단 베풀며 어수룩하게 처신하라. 술자리, 회의자리 등에 적극 동참해 사교를 하라. 잘만 사귀면 원주민들이 결국엔 귀농인의 조력자가 된다.
정부의 부동산대책과 세법 강화로 다주택자의 고민이 커졌다. 부동산에 대한 세금이 늘어나고 다주택자의 중과세 부담이 증가하면서 걱정이 많아진 것이다. 이처럼 세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현명한 절세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일단은 양도할 주택이 조정대상지역 내에 있더라도 기본세율(6~42%)로 과세하는 경우가 있으니 확인해보자. 우선 1세대 3주택 이상 중과제외 주택의 경우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도권과 광역시, 특별자치시 외 지역(광역시, 특별자치시 소속 군 및 읍·면지역 포함)의 양도 당시 기준시가가 3억 원 이하인 주택(중과여부 판단 시 보유주택 수 계산에서도 제외)은 1세대 3주택 이상 중과제외 대상이다.
또 세무서 사업자와 구청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8년 이상 임대, 2018년 3월31일까지 등록한 민간매입임대주택은 5년)도 중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매입임대주택은 수도권 기준시가 6억 원 이하, 비수도권은 3억 원 이하 주택이 해당된다. 건설임대주택은 대지 298m² 이하, 건물 연면적 149m² 이하, 기준시가 6억 원 이하 주택을 2호 이상 임대하는 경우다. 다만 2018년 9월 14일 이후 취득(계약)하는 주택은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더라도 중과제외 대상 혜택이 미적용 된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양도소득세 감면주택은 미분양주택이나 신축주택 등이 해당된다. 또 10년 이상 특수관계자 제외 종업원에게 무상 제공한 장기사원용 주택이나 5년 이상 운영한 가정어린이집은 실질폐업 후 6개월 안에 양도할 경우 중과제외 주택으로 분류된다.
세법상 5년 안에 양도하는 상속주택이나 저당권 실행 또는 채권변제를 위해 취득한 주택으로 3년 내 양도의 경우 문화재주택도 1세대 3주택 이상 중과제외 주택에 해당된다.
또한 1세대 2주택 중과제외 주택은 앞서 설명한 3주택 이상자의 대상 주택과 취학, 근무상 형편, 질병 요양 등의 사유로 취득한 수도권 밖 주택 및 다른 시·군 소재 주택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취득 당시 기준시가 3억 원 이하, 취득 후 1년 이상 거주하고 사유 해소 후 3년 이내 양도하는 경우 1세대 2주택 중과제외 주택에 속한다.
혼인으로 인한 합가일로부터 5년 이내 양도하는 주택, 부모 동거봉양 합가일로부터 10년 이내 양도하는 주택,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소송결과에 따라 취득한 주택으로 확정판결일로부터 3년 이내 양도하는 경우 등도 중과세를 피할 수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신규 고령층 확진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어 치명률 상승이 우려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7일 서울지하철 시청역에서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고령자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그동안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인 2호선 시청역에서 승객들이 위험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해왔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시청역 안전관리요원 확진자 3명 중 경기 부천시 송내동에 거주하는 환자(부천 149번)가 15일 가장 먼저 확진됐다. 그는 12일부터 기침과 근육통 등 증상이 나타나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감염 경로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사는 81세 남성(안양 52번)은 16일 접촉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았고 17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안양시는 해당 확진자의 동거 가족 1명에게 자가격리를 지시하고 검사를 받도록 했다. 17일에 확진된 나머지 1명은 경기 성남시 거주자로 알려졌으나, 상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서울지하철 시청역 신규 확진자 발생에 앞서 서울 도봉구 소재 노인요양시설인 성심데이케어센터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대거 나타났다. 총 38명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약 일주일 만에 30명 넘게 확진됐는데, 대부분 고령층이다. 이곳에서는 17일 하루에만 10명이 넘게 늘어났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어르신들이 좁은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식사나 간식 등을 섭취하시고, 또 그런 요인들이 감염률을 더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모임이나 행사 등을 통해 수도권 집단감염이 언제든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으니 항상 주의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령자 관련 시설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고위험군 요양 대상자들의 추가 감염이 우려된다.
서울 도봉구는 12일 오전 도봉1동 성심데이케어센터에서 1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성심데이케어센터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을 낮 동안 돌보는 요양시설이다.
도봉구 관계자는 “최근 센터를 방문한 주민은 보건소에 즉시 연락해 코로나 검사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안양시는 동안구 관양2동 대도아파트에 거주하는 A(58·여) 씨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시 보건당국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5일에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보였으나 닷새가 10일 동안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다음날 오전 확진됐다.
A 씨는 관양 1동에 있는 재가 장기요양기관(방문요양)인 '나눔재가센터'의 센터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시 보건당국은 나눔재가센터 서비스를 즉시 중단시켰으며 A 씨와 함께 활동한 센터소속 요양보호사 18명에 대해서는 자가격리 상태에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A 씨의 정확한 감염경로, 요양보호사들과 접촉한 요양 대상자도 파악 중이다. 또한 A 씨의 동거가족 3명에 대해서도 자가격리 조처를 한 후 검체 검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 오전에는 A 씨 자택에 대한 방역을 시행하고 그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으로 이송했다.
먹고살 만한 일을, 그리고 한 잔의 커피와 낭만적인 음악을 즐길 여유만 있다면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마음이 지극히 평온할 땐 그런 가상한 생각이 찾아든다. 그러나 ‘평온’은 흔전만전하기는커녕 희귀종에 가깝다. 위태로운 곡예를 연상시키는 게 생활이지 않던가. 광장시장의 빈대떡처럼 수시로 뒤집어지는 게 일상이다. 이 난리법석을 피해 흔히 주점을 찾아 소주병을 쓰러뜨린다. 그게 용한 대책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미술관으로 피난을 간다. ‘피난’이라 썼지만 정확하게는 충전을 위한 행차, 또는 옹골찬 감성여행이다.
미술관은 창고에서 태동했다. 과거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해 창고에 쟁이길 즐겼다. 이 저장공간은 개인전시실로 진화했으며 뮤지엄(museum)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자체가 뮤지엄이었다. 이후 절대왕정의 붕괴와 산업혁명으로 상층부가 몰락하면서 뮤지엄은 시민사회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근엄한 권위를 칭칭 두른 왕궁 루브르가 대중적인 뮤지엄으로 전환된 게 또렷한 사례다. 뮤지엄은 원래 박물관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미술관의 유전자도 뮤지엄에서 유래했다.
정신 일깨우는 감각의 제국
미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봤는가. 미술관이 없는 공공사회를 생각해봤는가. 그런 게 없더라도 지구는 돌고 인간의 삶은 무사히 흘러가겠지만, 미감을 누릴 성좌 하나가 사라진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술관이란 우리의 둔한 정신을 일깨우는 ‘감각의 제국’이지 않던가.
삶은 일쑤 속되고 진부하지만, 미술관의 작품들은 사람의 감성을 슬쩍 흔들어 잠시나마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에 카오스로 미만한 세상에서도 미술관을 찾는 발길은 더욱 늘고 있다.
미술작품이 봄날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고 믿는 애호가들의 향유 욕구. 이에 부응한 미술관의 진화와 변신은 이미 하나의 추세가 됐다.
이제 미술관은 미술품을 소장하고서 그저 작품 감상의 기회만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듯 바지런히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야외공간을 확보하거나 다양한 부대시설을 만들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은 물론, 자못 우아한 휴식공간의 역할까지 도맡고자 하는 것 같다. 듣자 하니 예전 미술관의 전시공간과 부대공간의 비율은 9대 1이었지만 요즘은 1대 2로 역전됐다는 게 아닌가. 도서관, 체험관, 교육장, 카페, 식당, 아트숍 등을 설치해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 건축 자체를 예술적으로 기발하게 디자인하고 있으며, 정원 조성에도 공을 들인다. 도시의 안통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미술관도 많다. 이른바 전원형 미술관이다. 자연이라는 모티브만큼 매력적인 호객 매체가 다시 있겠는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
나는 지금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시 엑스포공원 안에 있는 솔거미술관에 와 있다. 경주시에 열린 첫 공립미술관이다. 한국화의 거장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76)이 평생토록 그린 작품 830점을 기증하면서 건립에 착수, 2015년에 개관했다.
기부문화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소산의 화통한 쾌척은 의표를 찌른다. 어차피 작품들을 등에 짊어지고 내생으로 떠날 방법은 없는 법. 그간에 신세진 세상에게 돌려주는 게 순리라 여겼으리라.
솔거미술관은 전형적인 전원형 미술관이다. 야트막한 야산이 푸근하게 늘어뜨린 치맛자락을 거머쥔 미술관이다. 토함산 슬하의 막내둥이에 속할 야산의 이름은 대덕산. 1921년, 당시 남한 땅에 생존했던 마지막 호랑이가 이 산 갈피에서 사람들에게 잡혔다고 하니 애석하다. 그것이 생명이건 무생명이건,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의 모든 ‘마지막’은 애잔한 기분을 일으킨다.
미술관 뒤편 산 아래엔 자그마한 자연호수 아평지(阿平池)가 있다. 옷을 훌훌 벗고 늘어선 호숫가의 겨울나무들이 물에 드리워진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역시 그림이라 눈길이 한참 거기에 머문다.
초록빛 수면을 노니는 물오리들은 오늘도 기쁜가. 생동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쯤이면 미술관에 입장하기 전에, 또는 미술관 관람을 마친 뒤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라고 미술관을 산자락 호숫가에 들어앉힌 게 아니겠는가.
‘빈자의 미학’ 스민 건축
“어눌한 게 달변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나를 광야로 추방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비판자로 살겠다”고도 했다. 건축가 승효상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삶과 건축을 구현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인간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존재로 봐 모두가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집다운 집은 어떤 것인가. 그가 말하는 요점은 ‘가짐보다 쓰임을, 더함보다 나눔을, 채움보다 비움을 중시해 지은 집’을 짓고 사는 게 척박한 삶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데 있다.
승효상의 설계로 지어진 솔거미술관을 보면 그의 건축적 지향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산자락 초목들을 곁에 둔 미술관의 외관은 들썩이는 구석 없이 수굿하다. 건축과 자연이 서로 눈짓을 하며 말없는 말을 두런거리나? 숲은 묵연하고 미술관은 겸손해 불화 없이 조응한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세운 벽과 벽 사이엔 나무쪽을 켜켜이 채워 콘크리트의 투박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누그러뜨렸다. 나무도 콘크리트도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비와 바람과 햇볕에 마모되고, 색이 바래고, 티끌과 이끼가 틈서리마다 배어 세월이 흐를수록 음영이 짙어지겠지. 마침내 잘 늙은 집으로 변모할 게다. 깊은 운치를 풍기며 미술관의 역사를 웅변할 게다.
미술관 내부 역시 승효상의 철학을 느끼게 한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회랑엔 계단과 함께 슬그머니 휘어지는 경사로를 조성해 물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했다. 미로에 들어선 것 같은 흥미마저 자아낸다.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년층 관람객을 위한 섬세한 배려일 수도 있겠다.
전시공간마다 적절히 배분된 자연광과 인공광. 싱그럽게 자란 대나무와 열린 허공으로 흐르는 구름이 보이는 중정(中庭). 차경(借景, 외부 자연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기)을 위해 제3전시관의 벽을 뚫어낸 통유리 프레임의 이채. 전시작품이라는 주체를 효과적으로 북돋우는 객체들의 조합과 질서가 정교하다. 전시관의 천장이 매우 높은 건 미술관의 방장에 해당할 소산 선생의 어마어마한 대작들을 고려한 방책이다.
관람 인원 해마다 급증
경주의 핫 플레이스로 이미 두둥실 떠올랐다. 인기 작렬! 솔거미술관 말이다. 개관 5년 차 신생 미술관이지만 관람 인원이 해마다 급증했다. 어느 하루는 자그마치 2000여 명이 관람했단다. 서울에 있는 유명 미술관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라니 통쾌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솔거미술관의 매력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경관과 동거하는 미덕, 그리고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강점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매혹은 소산 선생의 작품이 뿜는 아우라. 전시관 벽에 걸린 선생의 수묵화 앞에 선 심취한 표정들을 보라. 거무튀튀한 건 먹빛이요, 허연 건 화선지 맨살이구나, 그저 그리 여겨 심드렁히 스쳐 지날 것만 같은 젊은 관람자들이 눈을 끔벅이며 골똘히 그림을 들여다본다. 와우! 그런 찬탄을 터뜨리며.
전시장에 가득한 소산의 수묵화들은 실로 압권이다. 자유자재한 작풍으로 먹의 향연을 펼쳤다. 바위를 후벼낼 듯 거침없는 운필로 산수를 그리고 화조(花鳥)를 찍어냈다. 10m 너비의 대작을 예사롭게 그려내는 괴력으로 예술혼을 불사르는 거장의 진면목을 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서양화에 밀려 푸대접을 받는 게 한국화다. 수묵화단의 체면이 이거 말이 아니다. 서양화의 진격에 맥을 놓고 있다. 이 와중에 소산이라는 거목이 떠억 버티어 현실을 일갈하고도 남을 수작들을 그려냈다.
미술관을 나서자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 장쾌한 수묵 세례를 받아서겠지, 마음 기슭에 밝은 달덩이 하나 떠오르는 이 기분은.
솔거미술관 탄생시킨 소산 박대성 화백
“나에게 작업실은 유배지와 마찬가지요!”
소산 선생 말하길, 예닐곱 살 때부터 붓을 노리개 삼았더란다. 집안 제사 때면 펼쳐지는 사군자 병풍, 그걸 보고 그림이라는 걸 끼적이기 시작한 게 외골수 화업(畫業) 인생의 싹눈이었다. 마냥 붓질을 놀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들일을 해야 했으니까. 뒷산에 뛰어올라 땔감을 져 나르거나, 똥장군 짊어지는 일도 소싯적의 다반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는 일찌감치 양친을 잃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어머니는 병으로, 아버지는 끔찍한 변고로 타계했다.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이 아버지를 반동 지주로 몰아 낫으로 살해했다니 참혹하다. 당시 겨우 네 살배기 어린애였던 그의 몸에도 낫날이 들어와 팔 하나를 앗아갔다. 현재 소산의 왼팔은 의수다.
어린아이 때부터 겪었을 시련과 캄캄한 고독을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붓을 내던지지 않았다. 외팔로 삶에 가담해 밥을 벌기엔 그나마 지필묵이 상책이라 본 친척 어른들의 독려 덕이기도 했다.
“몸에 핸디캡이 있으니 어느 한 가지 쉬운 게 없었지. 그러나 불편한 조건들이 결과적으로 내겐 복이었어요. 부족함과 불편함이 오히려 행운이었던 거요. 나를 무쇠처럼 담금질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예전 작업실엔 ‘불편당’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었다. 불편이 차라리 길이라는 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는 걸, 불편을 통해야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걸, 수묵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높이도 불편과의 동행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걸 당호로 다짐했던 셈이다. 이 ‘불편의 사제’의 붓놀림은 성정처럼 쾌활해 일필휘지에 능란하다. 깊고 아득한 먹색이 내려앉으면 그윽한 산경이 화폭에 아롱진다. 분출하는 화산의 기세로 묵을 써 화선지를 한바탕 희롱하고 나면, 거기에 웅장한 대자연이 꿈틀거린다. 정밀한 필선의 운용에 물이 올라 극사실화로도 이미 극치에 이르렀다. 서예는 또 어떻고? 김생과 추사를 진즉에 섭렵한 소산의 서(書)는 빼어나, 듣느니 늘 명필 소리다. 이렇게 그의 예술 생태계는 다중변주로 비옥하다.
“동양의 필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완벽한가. 소필, 중필, 대필로 구분되는 필(筆)을 좌우사방, 맘대로 돌려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서양화 붓은 이게 안 되거든. 우리의 필은 자유로워 걸림이 없지. 대 그림자가 물에 스치듯 평화롭단 말여.”
830점의 작품을 기증한 이후 소산은 고향의 외진 산속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전보다 작품량은 더 늘어났고, 대작을 그리는 습(習)도 깊어졌다.
“내게 작업실은 유배지와 마찬가지요. 산고(産苦)와 다르지 않은 창작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으니.”
“전에 이런 얘기를 했지요. 추사를 때려잡겠다!”
“하하핫! 선문(禪門)에 전해오길,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추사는 성인 반열에 오른 분인데 감히 넘볼 수 있을까. 그러나 추사는 했는데, 나는 못한다? 그럴 리가. 내가 필묵을 닦기를 추사 못지않을 만큼은 하고 있소.”
소산에게 추사는 서화의 이상적 아이콘을 상회하는 존재다. 그는 선지식으로서의 추사를 타넘고 싶은 것이다.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 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해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해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를 청소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64세의 중고년(中高年)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 명을 합치면 115만 명이나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인 나라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교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은 성인이 되면 독립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 통계에서도 5000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 명, 미국에는 100만 명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 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 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인 데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으로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농수산성 차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 ‘히키코모리’의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전직 정부 고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일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해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반 이상이 중고년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 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500명 이상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중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 일본이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 추산이라면서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인구수가 약 31만 명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황경춘 칼럼니스트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파란 하늘 아래 걷고 싶은 계절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2019 서울 빛초롱 축제
일정 11월 1~17일 장소 서울 청계천 일대
매년 11월, 매해 다른 콘셉트로 청계천 일대에서 오색찬란한 등(燈)을 밝히는 서울의 대표 축제다. 올해는 ‘당신의 서울, 빛으로 꾸는 꿈’을 주제로 청계광장부터 수표교까지 약 1.2km 구간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등불을 감상할 수 있다.
◇ 호이 랑
일정 11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고전 ‘일사유사’에 등장하는 효녀 부랑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발레극. 국립발레단의 신작으로 강수진 예술감독과 강효형 안무가를 비롯한 국내외 베테랑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 패왕별희
일정 11월 9~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동명 경극을 원작으로 춘추전국시대 초한전쟁에서 패하고 자결한 영웅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사랑을 노래한다. 시각 중심의 경극과 청각 중심의 창극이 만나 특유의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 인테리어즈
일정 11월 15~17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노벨문학상을 받은 상징주의 대표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인테리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부각했다. 마치 집 안을 들여다보는 듯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 아이다
일정 11월 16~2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한국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아이다’가 올해 무대를 끝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아이다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더욱 아련하게 펼쳐진다.
◇ 감쪽같은 그녀
개봉 11월 27일 출연 나문희, 김수안
70대 철부지 할머니 말순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10대 손녀 공주의 좌충우돌 동거를 그렸다. 말순 역의 나문희와 공주 역의 김수안은 65세의 나이 차이를 초월하는 연기 호흡을 통해 유쾌한 웃음과 훈훈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A(72) 씨는 크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 맨손으로 일으켜 탄탄하게 키운 사업체를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A 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남부러울 것도 걱정할 일도 그다지 없는 A 씨이지만 아내가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져 신경이 쓰인다. A 씨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지만, 요즘 들어와 부쩍 기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업체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현 법령과 제도는 부(富)의 대물림에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어 그 문턱이 상당히 높다. 대가 없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 법률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에는 ‘증여’ 아니면 ‘상속’이 된다. 세법(稅法) 측면에서 보는 ‘증여’는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 형식, 목적 등에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것(현저히 낮은 대가를 받고 이전하는 경우 포함)을 의미한다. ‘상속’은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를 일정한 사람(상속인)에게 포괄적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이라 해도 취득에 들어간 자금의 출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부모가 증여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망한 사람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는 사유로는 앞서 설명한 ‘상속’이 대표적이지만, 유언으로 유산을 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유증’도 있고, 증여자가 생전에 증여 계약을 체결한 뒤 사망했을 때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死因贈與)’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증여세’와 ‘상속세’는 다른 세금에 비해 세율이 높다. 증여 또는 상속되는 재산 가액이 커질수록 세율도 높아지기 때문에(이를 ‘누진세율’이라 하는데 증여, 상속되는 재산이 30억 원이 넘으면 세율이 50%에 이른다), 합리적이고 치밀한 절세 전략이 필요하다.
증여세를 줄이려면 먼저 증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부분, 즉 공제(控除)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10년 이내에 증여한 금액의 합계액이, 배우자는 6억 원, 부모 또는 성년 자녀는 5000만 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 원까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증여를 할 경우 반드시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증여한 돈 또는 그 돈으로 얻은 재산 가치가 불어났을 때 늘어난 재산까지 증여 금액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액 공제가 되는 범위 내에서 증여하더라도 증여세를 0원으로 해 신고를 하거나, 소액의 증여세만 낼 정도의 금액을 증여해, 언제 누구로부터 증여를 받아 얼마를 증여세로 냈다는 근거를 남겨두는 게 좋다.
고령자가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처분해 현금을 수령하거나 재산이 수용되어 보상금을 받으면, 국세청에서는 일정 기간 당사자와 가족의 재산 변동 상황을 지켜보다가, 배우자 또는 자녀가 재산을 취득했을 때 취득자금 소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처분대금 사용처나 취득자금 출처에 대한 입증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이밖에 부동산을 증여할 때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되지 않는 한 공시지가나 기준시가 고시일 이전에 증여하면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부채를 상환할 때, 미성년자 명의로 재산을 취득할 때는 그 상환자금이나 구입자금 출처 조사에 대비해 증빙 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 또 손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처럼 세대를 건너뛰는 증여는 할증된 세액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기억해두면 좋다.
상속세를 절약하려면 먼저 공제 항목을 잘 알아둬야 한다.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이고 사망자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상속공제를 받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상속재산이 많아 상속세가 과세될 경우에는 배우자 상속 공제(최대 30억 원까지 공제 가능)를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세 부담의 차이가 클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금융재산상속공제, 동거주택상속공제 등의 상속공제 항목도 잘 살펴야 한다.
한편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 가액이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과세가액에 포함된다(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증여한 경우는 5년 이내 기준). 10년이 지난 증여는 합산되지 않는다. 10년 이내 증여라 해도 그 가액은 과세 시점이 아닌 증여 당시의 가액으로 평가되므로, 증여 시점을 잘 선택해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 사망일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피상속인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점,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공제되는 피상속인의 채무를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 건물을 상속할 때는 월세보다 전세가 많은 상황이 유리하다는 점, 사망하기 전 재산을 처분하거나 예금을 인출할 경우 사용처에 대한 증거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는 점, 상속인이 상속 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자진신고하면 세금의 3%를 공제해준다는 점(증여세의 경우는 3개월 이내) 등을 알아두면 절세에 도움이 된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