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햇볕 좋았던 지난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과 토요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은 유난히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경연 아닌 축제로 펼쳐진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에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여기는 어떤 부스예요?”
“스탬프 찍어주나요?”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 비즈로드 한켠에 자리 잡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찾은 이들의 질문이다. 매거진을 살펴보고 살가운 눈인사를 건넨 이들은 리플릿(전단)을 들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지역 명소를 그린 작품을 구경하고, 지역 특산물로 공예품을 만들고, 파크골프와 실버마불(야외 보드게임)을 체험하고, 공연 무대에 오르고, 또 공연을 객석에서 응원했다. 체험·전시, 공연, 포럼까지 전국 어르신 문화예술을 제대로 즐긴 시니어 2만 2126명(부스 참여 인원 포함)은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경쟁 빼고 재미 더하고
어르신의 대표 축제 ‘실버문화페스티벌’이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치러졌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으로 2015년부터 시작된 ‘실버문화페스티벌’은 8년 동안 총 2203팀, 14만 2387명이 참여해 주체적인 실버 세대의 문화예술 활동을 알렸다.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은 ‘실버 두잇: 꿈을 잇다! 문화를 잇다! 세대를 잇다!’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4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실버문화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기존 경연 대회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다양한 어르신 문화예술 활동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했다.
경쟁을 뺀 현장은 공기부터 달랐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27일부터 이틀간 참여자 5000여 명 모두가 축제를 즐겼다고 했다. “그동안 경연에 지나치게 경도된 경향이 있었어요. 성적에 매몰되고 상을 못 받으면 실망하고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축제였어요.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 참가팀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그동안 ‘잘하는 팀’을 선발했다면 올해는 ‘해당 지역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팀’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렇게 ‘샤이니스타한마당’이라 불린 무대에서 양일간 전국 16개 시·도 대표 어르신 단체가 무용, 패션쇼, 연극,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준우승 팀 ‘소리울’과 ‘다움’의 세대공감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각 지역 어르신 단체의 공연이 이어졌고, 트로트 가수 김수찬의 축하 공연,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우승 팀 ‘연제춤사랑’의 부채춤 공연까지 풍성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대표성을 가진 각 지역 활동을 볼 수 있는 장이었다고 돌아봤다. “강원도 팀은 평창아라리로 무대를 꾸몄고, 전남 팀은 호남좌도농악을 선보였습니다. 경북 팀은 삼국유사 향가와 민요를 불렀어요. 제주도 팀은 감물 염색한 옷을 입고 패션쇼를 했고요. 이전까진 각자 무대 준비에 바빴는데 이번엔 다른 지역 무대도 즐길 수 있었어요. 경쟁하지 않으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진정한 축제의 주인공으로
무대 밖은 한층 더 자유로웠다. ‘문화교류한마당’에서는 전국 각지 어르신이 직접 참여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전시·체험·이벤트 부스 60여 개가 이틀간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았다. 산책 나온 인근 주민부터 여의도 2030 직장인, 주변 어린이집 교사와 원생까지 폭넓은 세대가 부스에 관심을 보였다. 단연 주인공은 시니어였다. 그들은 부스 운영과 참여 주체로 축제를 만끽했다. 한 70대 어르신의 말이다. “축제의 구경꾼이 아닌 주인공이 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앞으로도 실버 세대를 위한 더 많은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참여자가 주체가 된 축제였다고 평했다. “기존에는 만들어진 축제에 어르신들이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축제를 직접 만든 것 같다”고 말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온 이도 참여자로 왔다가 주인공이 되어 돌아간다며 활짝 웃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네요. 내 또래들이 다양하게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실버 세대의 문화예술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는 것도 정말 보람되고, 이런 활동을 하는 스스로에게도 괜히 뿌듯해지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작은 연못에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등양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서 수박・가지・참외・고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38년 군 장교 복무를 마치고 귀농・귀촌을 꿈꾸다 도시농부 텃밭지원단에 참여한 정수완 씨의 작품이다.
농촌에서 자란 정수완 씨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38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고 육군 대령으로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으며 제대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 아직 할 일이 많은 때였다. 인생 2막을 위해 평소 꿈꾸던 귀농・귀촌 교육을 받다가 사단법인 육군협회에 취업해 4년 동안 사무국장으로 일했고, 60세에 다시 정년을 맞아 퇴직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일이 고팠다.
“국가보훈처에서 재취업을 도와주는데, 마침 보람일자리를 소개해주더군요. 군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사회로 나오면 선뜻 다른 직업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침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던 터라 보람일자리 중에서도 도시농부 텃밭지원단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어느덧 등양초등학교(강서구 등촌동)로 등교한지 4년째. 정수완씨는 이맘때면 해가 고개를 내밀기 전 아무도 없는 학교 문을 열고 노지 텃밭 50여 평과 상자 텃밭 20여 개를 가꾼다. 여름 끝자락에 애플수박・참외 등은 수확을 마쳤고, 가을을 맞이하며 배추・상추・쪽파・고구마를 심었다. 그 외에도 가지・고추・깻잎・메리골드・허브 등 다양한 작물을 키우고 있다.
일・운동・힐링・사회공헌 일석다조를 얻다
정수완 씨는 보람일자리가 60세 넘어서도 사회에 참여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특히 도시농업이 귀농・귀촌이라는 새 삶을 모색할 발판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의 기대대로 보람일자리는 많은 것을 얻게 해줬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여름이면 하루만 지나도 잡초가 무성해져 어지간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쉽지 않은 게 텃밭 관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에 기여하면서 50평 규모의 텃밭을 가꿔볼 수 있다는 건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에게 무척 좋은 경험이 된다. 정수완 씨 역시 귀농・귀촌 교육보다 노지 텃밭을 직접 가꾸면서 농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농사는 보통 해가 뜨기 전 일과를 마쳐야 합니다. 아침 일찍 나와 땀 흘리며 밭을 개간하고 나면 체력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또 농사 지식도 활용할 수 있어요. 토마토와 허브를 섞어 심으면 허브가 물기를 빨아들여 토마토가 더 잘 자랍니다. 토마토는 물이 많으면 열과 현상이 생겨 터질 수 있거든요. 벌써 일거양득이 되죠. 그런데 밭을 일구는 일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하면서 즐겁기도 합니다. 1석 3조예요.”
밭을 일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하나둘 등교한다. 등양초 노지 텃밭에는 학년별 구역이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 자신의 작물을 하나씩 심은 뒤 관찰하고 수확하는 체험학습을 한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내가 심은 작물이 잘 자라고 있나 보고, 체육 시간에 이동하면서 헐레벌떡 뛰어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보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한다.
“친환경으로 작물을 키우기 때문에 땅이 무척 기름집니다. 구더기・굼벵이・지렁이 같은 벌레도 많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벌레를 보고 놀라는데, 이 벌레들이 작물이나 흙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려주면 신기해하면서 나중에는 익숙해집니다. 도심에서 이런 친환경 교육을 어릴 때부터 경험하면 정서적으로도 좋을 거예요. 고추 수확할 때 더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들을 보며 순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텃밭 뒤편에는 학교 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다니는 통로가 있다. 일하다 보면 주민들이 그곳에 서서 텃밭 구경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본다. 특히 70~80대 노인은 1960~70년대 시골 생활을 한 사람이 많아, 텃밭에서 나는 작물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단다. 주민들이 텃밭이 잘 가꿔지고 있다 칭찬하고, 인근 학교에서도 학교 텃밭을 견학 오기도 하니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고. 교직원과 아이들, 주민들이 텃밭을 보며 힐링하도록 사회공헌도 하면서 용돈도 벌어갈 수 있으니 일석다조라 할 만하다.
사심을 버리면 신뢰를 얻는다
오랜 시간 사회에서 일했어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있다. 정수완 씨는 은퇴 후 사회에 나왔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게 대인관계라고 했다.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한다. 정수완 씨도 처음 도시농부 텃밭지원단으로 왔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 교내에서 역할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환경미화 영역까지 다양한 업무 요청을 받았다. 군에서 경험한 시스템을 떠올려 학교 담당자,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담당자와 함께 도시농부 텃밭지원단의 교내 역할을 정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를 쌓는 일이었다.
“50대가 넘어 새로운 일자리에 가면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겁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신뢰를 쌓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정직입니다.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여기서 내가 돈을 좀 벌어야겠다든지, 편하게 일하다 가겠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면 티가 납니다. 진심을 다해 정직하게 일하면 사람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교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농사는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시간만 보내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면 안 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묵묵히 일했기 때문일까. 정수완 씨는 보람일자리 참여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학교 측의 요청으로 4년째 일을 이어가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보람일자리 정년인 67세까지 계속하고 싶단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신청해도 되지만, 4년 동안 등양초등학교에서 일하며 학교와 합을 맞추고 시스템을 만들고 정도 들어 고민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등양초등학교에서 보람일자리 정년을 마치게 된다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듯이 “명예 졸업장을 받고 싶다”고 했다.
“한 달에 57시간, 이틀에 한 번 나와 일하고, 일 끝나면 친구들도 만나고, 일하면서 사회 참여 기회도 얻고, 체력도 증진하고,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는 데다, 사회공헌으로 보람도 챙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경험과 취미를 가진 중장년 세대가 보람일자리로 지속적인 사회 참여 기회를 얻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며 활력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재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자생 엔젤박스’ 100개(1000만 원 상당)를 기부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전달식에는 우인 인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 임경임 만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비롯한 양 기관의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자생 엔젤박스는 위생용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복지 사각지대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건강 키트로서 박스당 1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여성용 위생용품이 담겨 있다. 이날 기부된 100개의 자생 엔젤박스는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지역 내 여성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전달식 이후 인천자생한방병원과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은 건강 증진을 위한 업무 협약식도 진행했다. 협약에 따라 인천자생한방병원은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의 한방 주치의로서 복지관을 찾는 청소년 및 노인들에게 척추·관절 질환 정보를 제공하고 실질적인 치료에도 앞장설 방침이다. 또한 양 기관은 적극적인 상호 협력을 통해 앞으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함께 펼치기로 했다.
우인 인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추워진 날씨로 건강 관리가 어려워지는 요즘,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과 노인에 관한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앞으로 만월종합사회복지관과의 지속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공헌 활동의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자생한방병원은 보건복지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부터 3주기 연속 인증을 받은 인천 지역 유일한 한방 척추 전문병원으로, 목·허리디스크, 퇴행성 관절염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 치료를 위해 한·양방 협진 및 통합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 가정 청소년을 위한 희망 드림 장학금 전달, 지체 장애인 의료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의료사업 수익의 사회 환원과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에 앞장서고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보기 좋다. 비경이 펼쳐져서가 아니다. 새파란 하늘과 금빛으로 일렁거리는 가을 논,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초록 산….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지만 안락감을 불러일으키며 눈에 살갑게 다가온다. 여긴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다. 오가는 이도, 차량도 드물어 종일 고즈넉한 시골에, 조막만 한 동네에 모던한 카페라니. 대체 무슨 묘한 역발상에 이끌려 차린 찻집일까? 다들 눈을 끔벅거리며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카페 주인은 2020년에 이 지역으로 귀촌한 이지영(66, ‘카페 산이다’ 대표)이다. 지난 5월 개업했다. 그러니까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장사는 잘되나? 잘된다. 이지영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호조다.
이지영에게 시골은 낯설지 않다. 그는 서울에서 주로 살았지만 한때 남편과 함께 전북 무주군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했다. 부부가 합심해 산골에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서였다. 남편 김경남 목사는 교장직을 맡았고, 이지영은 조역처럼 뒤에서 거들었으며 때로는 농부처럼 논밭에서 일했다. 그러다 불운이 닥쳤다. 2019년 김경남 목사가 심혈관 질환으로 타계한 것. 이지영의 고통이 자심해 더 이상 무주에 머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에 사는 자식들은 어머니를 불러들여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오랫동안 해온 일을 지속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본을 드나드는 걸로 전환점을 삼았다. 일본은 그에게 익숙한 나라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란 사회운동이다. 그는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섰던 김경남 목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노동, 인권, 복지 분야 활동가로 활약했다. 일본 여성 활동가들과 연대해 위안부 문제나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일본을 빈번히 드나들었던 거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가로막혀 일본행이 어려워졌고, 그는 숙고 끝에 이곳 괴산 땅을 정처로 삼아 무주에 이은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숱하게 생긴 좋은 인연들
“괴산 소수면엔 귀촌을 원하는 지인들의 공동체 단지가 이미 마련돼 있어 이주가 쉬웠다. 집터에다 집을 짓기만 하면 됐으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김경남 목사가 만든 ‘들꽃마을 협동조합’ 멤버들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로, 귀촌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둘 이곳에 내려왔다. 현재 11가구가 거주한다. 앞으로 더 늘어나 30가구가 모여 살게 될 것이다. 난 3번 타자로 입주했다.”
공동체라면 입주자마다 지켜야 할 기본 룰이 있겠지?
“하나가 있다. 집에 대문과 담장을 설치하지 말자는 거. 나머지는 다 자유롭다.”
귀촌 직후엔 어떤 일을 했나? 살아온 이력으로 보면 산골에 홀로 산다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낼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바쁘게 살았다. 그게 성향에 맞는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공동체에 먼저 들어온 아낙들이 있어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더라.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이제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웃음) 그들과 함께 텃밭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는 했다.”
사별의 아픔은 깊은 곳에 새겨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짝을 잃은 상심은 대부분 오래간다.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고, 원망도 생기고, 심란한 게 있긴 했다. 반면 뭔가 새로운 기분에 들썩이기도 했다. 왜 사람에게는 이런 거 있지 않나?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여행가방 하나 들고 떠돌이처럼 살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떠돌이 대신 텃밭을 택했다? 처음엔 텃밭 농사를 즐길 만하지만 시간이 가면 귀찮아질 수 있다. 늘 풀을 뽑아야 하니까.(웃음)
“내겐 여전히 즐겁다.(웃음) 지난봄엔 강낭콩 씨앗 3000원어치를 사다 심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수확이 나와 놀랐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더라. 야, 이거야말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구나! 속으로 찬탄했다. 그런데 텃밭 농사는 일상의 일부일 뿐 내겐 더 분주한 스케줄이 있었다
어떤 일을 했기에?
“평생학습매니저 자격증을 딴 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학습과 상담 활동을 했다.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를 통한 공부 역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대학 어르신들까지, 2년여 동안 참 많은 이들에게 강의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괴산 전역을 샅샅이 알게 되었고. 더 즐거웠던 건 좋은 인연이 숱하게 생겼다는 데 있다.”
노력으로도 쉬 얻을 수 없는 게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이지영에겐 인연이 자주 맺어진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후원을 받은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사교성으로 상대를 일거에 무장 해제시키나? 그의 얘긴 이렇다. “내겐 왠지 사람이 잘 꼬인다.” 괴산뿐만이 아니라 좋은 지인들이 멀고 가까운 곳에 원래 많단다. 그는 24평짜리 집에 산다. 집 앞으로 냇물이 흘러 졸졸졸 명랑하게 노래한다. 기분이 밝아지는 집이다. 하지만 그는 좀 후회스럽다. 왜 더 작은 집을 짓지 않았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급적 단순하게, 가급적 소박하게, 가급적 실용적으로 살자 했건만 다소 오버해서 집을 지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집엔 작은 방이 여럿이다. 화장실도 두 개다. 이건 지인들의 방문을 고려한 구성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좋은 배려가 좋은 삶의 비결이라고 여기는 이지영의 신념이 반영된 집인 셈이다.
그는 귀촌의 날들을 웃음과 함께 느긋하게 누리고 있다. 이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타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선의로 자연스럽게 거둔 결실일지도 모른다. 그가 카페를 차려 단기간에 일군 안정적인 상황도 평소의 좋은 인간관계가 데리고 온 행운의 산물일 테다. 지인이 측근이 되고, 조력자가 되는 법이며, 그들은 어떤 일에든 관심과 지지를 보내 힘을 실어주지 않던가. 그런데 카페를 차린 연유가 궁금하다.
“이곳 소수면 소재지엔 지난날 다방이 네댓 개나 있었다지만 주민 수가 급감하면서 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뭔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카페 운영을 구상했다. 나에게도 좋고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마침 한 식품회사 건물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오래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중심에 둔 건 아니었나?
“수입원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장사가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기대를 걸진 않았다. 뭐든 머리 싸매고 궁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모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잘 돌아가지 않더라.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처음 두어 달에 그친 부진이었을 뿐이다. 뜻밖에도 손님이 늘면서 석 달째부터 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셈이다.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난 현재는 직원 두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소수면 인구는 겨우 2000여 명에 불과하다. 괴산군청 소재지는 멀리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어떤 이들이 카페에 오나?
“대부분 면내 주민들이다. 동네 중년과 노년들이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다. 요즘은 읍내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입소문이 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시골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한 청년이 혼자 들어와 노트북을 펼치고 커피를 마시더라. 그건 내게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웃음) 머잖아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여
이지영은 카페의 매력과 개성을 돋워 문화공간으로 가꿔나갈 참이다. 시골 사람들도 문화 향유 욕구가 강하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이미 두 차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스크린도 설치했다. 미술 전시회나 북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공예품 등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채널로 카페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판이 커질 조짐이 완연하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이루고 함께 걸어가는 일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지영은 카페의 활력에 힘입어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귀촌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 만족은커녕 귀촌을 통해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까지 있지만 그는 차원이 다르다.
시골에 적응하지 못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귀촌인들도 있다. 원주민과 불화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아 고통을 겪기도 한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자세를 좀 낮추면 된다. 내가 먼저 낮추면 상대방도 낮추게 마련이다. 이건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내 경험으로 보면 시골의 인심엔 여전히 순박성이 깔려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단순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독신 여성의 귀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위험요소가 적지 않은데.
“상황을 헤쳐나갈 강한 의지가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심사숙고하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지인이 있는 곳으로, 또는 친구나 선후배와 동반 귀촌을 하는 게 한결 안전하다.”
물신을 주님으로 섬기는 세상이다. 이건 시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흔히 소박한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만, 믿을 만한 자금력이 없을 경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적은 소유로도 좋은 시골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뭘까.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든가,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난 물질이든 욕망이든 덜 가지고자 했다. 그게 정직하게 사는 방법이라 믿는다. 내겐 오랫동안 통장과 휴대폰이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대책 없이 사는 엄마’라며 걱정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아하, 내가 너무 허당으로 살았나? 이건 좀 그렇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웃음) 하지만 이미 몸에 붙은 생활방식이다. 적게 가진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능력도 생긴 것 같고.”
이미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해 진땀 빼다가 무너지는 게 인생이다. ‘모름지기 소박한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게 어떤가?’ 이지영의 얘기를 난 그런 제안으로 들었다.
이지영이 주는 귀농•귀촌 Tip
•낭만적인 전원생활에 관한 동경은 버려라. 시골 역시 냉정한 삶의 현장이다.
•귀농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풍부한 자금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귀농보다 귀촌을 하는 게 현명하다.
•귀농•귀촌지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후보지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해야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한 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시골살이의 물정부터 익히는 게 필요하다.
•귀농•귀촌에 따른 사전준비는 철저할수록 정착이 쉬워진다. 특히 귀농의 경우엔 농산물 유통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게 중요하다.
•시골 생활은 당당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노포에는 그곳만의 정서가 있다. 간판, 차림표, 의자, 그릇, 음식 그리고 주인과 오랜 단골들까지. 곳곳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루아침에 꾸며낼 수 없는 세월의 내공을 자랑한다. 이처럼 희로애락을 머금고 삶의 내공을 지닌 한국 노인의 초상(肖像)에 주목한 이가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화가 아론 코스로우(Aaron Cossrow, 37)다. 그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그리며 켜켜이 쌓인 개인의 추억을 나누고, 그 속에서 가장 한국다운 문화를 발견해낸다.
15년 전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0대 청년 아론 코스로우는 영어 강사로 일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예술가의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그림을 놓아본 적은 없었다. 벽화, 아크릴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해나갔다. 그는 한때 ‘소주킹’(Sojuking)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창작했는데, 독특한 그림체로 누리꾼들 사이에 알려지기도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니 기분 좋은 성과로 받아들일 만한데도, 아론 코스로우는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 그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 유화를 시작했다. 도통 그림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하는 나날도 많았지만, 차분히 자신을 수련해나갔다. 동시에 초상화 모델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비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눈에 흥미로운 피사체가 포착됐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자 첫 유화 작품의 주인공인 ‘신당동 대장장이’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제겐 예술가로서 기회도 없었고, 기술도 부족했어요. 그러나 예술가가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죠. 유화를 처음 시작했을 땐 너무 어려웠어요. 몇 년을 해도 늘지 않아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포토샵으로 디지털 페인팅을 하면서 조금씩 갈피를 잡았고, 작품을 해도 좋겠다 싶었죠. 당시 모델이 필요했는데, 신당동 대장장이가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4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장인이셨죠.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아내분께 대신 부탁드려 허락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첫 작품 이후 열흘에 한 명꼴로 새로운 인물을 그렸고,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곳곳에 어린 영감, 한국은 거대한 미술학교
아론 코스로우는 2021년 1년가량 그린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 ‘얼굴을 보이다: UNMASKED’를 열었다. 같은 해 두 번째 전시 ‘초상화 2021: Portraits’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20여 점의 초상화 작품을 망라해 ‘탑골공원의 소년들: The Guys in the Park’로 관람객을 맞았다. 전시는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탑골공원 인근,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탑골미술관에서 한 달간 진행됐다. 탑골공원에 모여 매일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소년의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를 안내한 실버 도슨트 최명락(70) 씨는 “아론이 ‘한국은 나에게 거대한 미술학교와 같았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그만큼 한국에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요소가 많다는 거였다. 관객들도 그런 작가의 작품에 감탄하고 여운을 많이 느낀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이태원 거리의 구두닦이, 불광동의 목재상, 을지로4가의 점심식사 배달부, 그리고 탑골공원에서 장기 두는 노인들까지. 특유의 색감과 질감 덕분에 인물의 정서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정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 사실적인 요소들의 묘사가 가득해 단조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림의 대상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배경과 디테일이다. 아론 코스로우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한 흥미로운 장소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인물일 때 모델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는 대략 100가지 디테일이 담겨 있다고 보는데요. 가령 ‘한남동에서의 치킨 파티’ 같은 그림을 보면 술자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 테이블 위의 소주병, 껍질을 까놓은 귤과 옛날통닭까지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세부적인 것들로 그림을 가득 채웠을 때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종종 제 작품을 본 분들이 어떤 공통된 경험을 말하거나 추억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그런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사라져가는 장인들의 초상을 기록하다
그동안 한국에 살며 그가 흥미를 느낀 배경은 이태원, 인사동, 을지로, 종로 등이다. 특히 을지로에서는 꽤 의미 있는 작업도 진행했다. 바로 ‘을지로3가의 장인들’ 프로젝트다. 아론 코스로우는 최근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지역민들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고, 작품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대형 유화를 그렸다. 그림에는 총 23명의 을지로 장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그는 을지로 골목에서 팝업 전시를 열고 주인공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국적을 떠나 따뜻한 정을 나누고, 그들의 상황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기존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게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그런 개발이 진정한 개발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기존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를 들여놓는 게 과연 유익할까요? 프로젝트 당시 저는 100년 넘은 인쇄기를 보기도 했고, 수십 년 세월 숙련된 장인들도 만났습니다. 그런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사실 역사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그들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들은 아직 존재하잖아요. 나중에 진짜 역사로 남게 된다면,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이곳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되새겼으면 해요. 아마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특별함을 깨닫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 거리가 흔하디흔한 카페와 뷰티숍 등으로 뒤덮이는 순간, 과거의 활기찼던 문화를 그리워할 테죠.”
아론 코스로우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쌓여 세월이 묻어난 것들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 요소들이야말로 가장 꾸밈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짙은 아름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델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성실히 자신의 삶을 꾸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가 살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제가 그려온 노인 대부분은 지난날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매일매일 신발을 고치는 구두수선공, 새벽부터 지하철 역사를 깨끗이 치우는 청소원,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 주인. 모두가 멋진 삶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며, 저 또한 좋은 삶을 위해 평생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곤 해요. 제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고 발전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길 바랍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그에게 꼭 필요한 마중물이 있다. 바로 그림의 모델이 될 인물이다. 끝으로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그리고 주인공이 될 한국의 어르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제 경우에는 작품 하나만으로 의미를 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두 아울러 종합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봐주시면 좋겠고, 그 속에서 공유되는 어떤 메시지가 전해지길 원하죠. 제가 만나온, 만나게 될 분들의 삶을 관통하는 ‘모두의 기억’을 포착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제가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듣도록 허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제 작품 의뢰에 응해주시고 관대하게 대해주신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지금의 실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겐 여러분이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입니다.”
취재 협조 탑골미술관
세계적인 카지노 및 리조트 운영사인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 수석 부사장 론 리스(Ron Reese)는 최근 마카오 런더너 코트 호텔에서 진행된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에 대규모 투자 의사를 밝혔다.
리스 수석부사장은 “2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부동산을 매각한 샌즈는 지금까지 마카오와 싱가포르에 집중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 지역에 2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어, 엄청난 관심을 지도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도 관심이 많다”며 부산을 지목했다.
리스 수석부사장은 “지난 수년 동안 수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관한 관심을 이어갔고, 한국에서의 사업 확장을 위해 부산의 지방정부, 부산대 등 몇몇 대학 등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호텔을 짓고, 국제적인 행사를 열고, 훌륭한 식당을 운영하는 일들이 외국인 여행객 유치는 물론,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리스 수석부사장은 서울이 아닌 부산 투자를 계획하는 것에 대해 “서울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며 “부산은 금융과 비즈니스가 갖춰져 있지만, 통합 리조트 시설 등이 부족해 이곳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리조트를 조성한다면 고용과 관광객 유치에 매우 강력한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는 수석부사장은 “부산은 세계적 해양 도시로 기업들이 오고 가며 많은 아이디어가 현실화하고, 사업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은 지난달 23일 마카오 베네치안 리조트 호텔 등에서 ‘샌즈 골프데이’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민지와 이민우 남매, 세계랭킹 10위 리디아 고, 세계프로골프(PGA)투어 조조 챔피언십 우승자 콜린 모리카와 등이 참석했다.
리스 수석부사장은 “유명 스타가 참여하는 스포츠 행사가 마카오의 부와 관광 자원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마카오 관광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론 리스 부사장은 “(샌즈 그룹은) 마카오와 부산 모두에서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관광 및 레저 산업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3 시니어 라이프 스타일 박람회’가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SETEC(세텍) 전관(1·2·3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박람회는 전국 7만여 개 경로당과 400만 명의 회원을 관리하는 대한노인회가 주최·주관하는 첫 시니어 전문 박람회다.
약 1000만 명의 고령 인구 및 시니어 세대를 위한 박람회로 생활 속 시니어 제품 및 서비스부터 실버 산업 관련 정보들을 둘러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약 150여 개 사 300여 개 부스가 마련된다. 약 2만여 명의 방문객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현장에서 활발한 네트워킹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출품 품목은 실버용품과 실버재활용품, 메디컬, 금융·보험·재테크, 건강관리기, 장례문화 등 일상에서 필요한 서비스들이다. 또 지역홍보·스마트 경로당 특별관과 시니어 채용관, 실버 스포츠 체험관도 선보인다.
대한노인회는 이번 박람회에서 ‘스마트 경로당 표준화 모델’을 선보인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을 위해 특별 체험관이 마련된다. 체험관에서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
다채로운 부대 행사도 열린다. ‘노인복지대상’과 ‘취업 우수사업체 시상’ 등으로 시니어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기리는 행사가 진행된다. 또한 ‘전국 경로당 예술제 프로그램 발표대회’와 ‘제1회 전국 시니어 트롯 가요제’도 열린다.
박람회가 열리는 11월 23일부터 25일 동안 전시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행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세텍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 모두 행복하기를 꿈꾸며 사회·복지·의료 분야에서 평생을 달려왔다.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자리에서 퇴임한 뒤에도 그 꿈은 여전하다. 여유 부릴 새 없이 이듬해 전문가들과 함께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를 설립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김용익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지역사회 의료에 관해 무수한 경험을 했다. 의료봉사회에 들어가 본과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주 주말마다 판자촌 진료를 하고, 방학 때는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환자들을 보살폈다. 당시에는 아파도 가까운 시설이 없어 치료받지 못해 증세가 심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의료 취약계층을 줄이려면 제대로 된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의사 등 의료 종사자들이 환자를 찾아다니며 병원 밖에서 진료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선친께서도 시골에서 왕진을 다니던 의사였어요.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의학을 전공하게 됐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는 주로 자전거로 마을 곳곳을 다니셨습니다. 종종 옛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나를 살렸다’는 말을 듣기도 해요. 현재는 방문 진료가 몇 가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라진 상태예요. 2008년 장기요양보험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문 형태가 생겼지만, 왕진이 다시 활성화돼 이동 기능이 약화된 노인이나 장애인을 돕는 의료와 요양 서비스를 연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정 환경과 관련 봉사활동은 행보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전공하는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했다. 1980~90년대에는 보건복지 운동에 참여했다. 의료보험의 통합일원화, 의약분업 등을 추진하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보건의료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회·경제 정책을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정 활동을 했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4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복지 체계를 정립하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면밀한 토론, 모색을 거쳤다.
“학자로서 이론과 현장성을 두루 갖출 수 있는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여러 노력을 했고, 퇴임하고는 방법을 바꿔서 돌봄과 관련한 사회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세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죠. 역대 정부가 저마다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붓고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어요. 각각의 요소들은 넓은 교집합을 갖고 여러 고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같이 풀어나가야 해요. 돌봄과 미래를 창립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돌봄의 더 나은 미래
돌봄과 미래는 이론적 연구를 기반으로 대안을 개발해 지역사회 돌봄이 확대·강화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만든 사회운동 단체다. 김 이사장은 돌봄 문제가 워낙 큰 의제인 까닭에 여론 조성과 정책 제안,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을 돌볼 책임은 그 가족 혹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는 개인이 돌봄 노동과 비용의 짐을 떠안지 않도록 방문 서비스, 주·야간보호 서비스, 주택 지원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전국민돌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 재난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노인 인구와 생산가능 인구가 동시에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반비례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돌봐주거나 돈을 낼 사람이 없는데, 돌봐야 할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돌봄 체계의 실상은 15년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보호자의 책임과 부담, 도움이 필요한 이의 죄책감을 함께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이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고, 그 외 공백은 주·야간보호센터를 설립해 채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요. 더불어 건강한 생활을 돕는 주택 지원 및 개조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거 환경까지 개선하는 겁니다. 그렇게 시설 입소 인원이 줄어들면, 신체 상태가 악화돼 정말 시설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오랜 시간을 들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면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거예요.”
유종의 미 거두고 인생 3막 향해
학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정책가로 일하는 동안 많이 체험하고 가슴 아파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쉬이 흘러가진 않았어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정책의 완벽한 대안이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만큼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자녀들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죠. 누군가에게 주례를 부탁받으면 모두 거절했습니다. 스스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결혼해서 잘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10년이 흘러 80세가 되면 ‘진짜 은퇴’하려 해요. 돌봄과 미래 활동을 마무리하고 나면 가족과 함께 일상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도서관에서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실컷 읽고, 산책도 즐기면서요. 그 전까지는 제 노력이 사회정책의 새로운 담론을 세우는 데 작은 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2023년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 치매 환자도 함께 늘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인지훈련을 통한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기억산책’은 기관 종사자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어르신의 인지훈련을 도울 수 있도록 통합 관리 솔루션을 제시한다.
기억산책은 씨투몬스터(C2MONSTER)에서 제작한 통합형 인지훈련 프로그램 관리 솔루션이다. 씨투몬스터는 디지털콘텐츠 제작분야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에서 왜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훈련 콘텐츠를 만들었을까?
이야기가 있는 인지훈련
“암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규명되어 치료법도 있는데, 치매는 다양하고 원인 규명이 어려운 데다 한번 발병하면 죽을 때까지 회복이 안 되잖아요. 치매 예방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공공성이 매우 높은 일이더군요.” 최진성 기억산책 공동대표는 9년 전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치매 예방 인지훈련 콘텐츠 개발을 처음 제안받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때만 해도 선진국에서 들여온 치매 진단 프로그램이 많이 사용됐는데,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가 있는 게임처럼 음악과 미술적 요소를 더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억산책의 인지훈련 콘텐츠는 여러 의료기관과 함께 연구를 통해 탄생했다.
기억산책의 대표적인 인지훈련 콘텐츠는 메타360, 청춘만세, 행복한일주일이다. 콘텐츠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데이터 용량을 줄이고자 세 가지 콘텐츠를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누었다. 훈련을 한 번 할 때마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정도의 데이터만 사용한다. 젊은이들과 달리 사용 가능한 데이터 용량이 많지 않은 어르신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개발한 것이다. 씨투몬스터에서 시작한 기억산책은 2023년 2월 독립 법인으로 새로이 설립됐다.
체계적이고 꾸준한 인지훈련
시중에 나와 있는 인지훈련 콘텐츠는 다양하다. 그런데 콘텐츠가 디지털 기기에 접목됐을 때 어르신들의 훈련 유지가 쉽지 않다. 기억산책은 종합병원, 치매안심센터, 노인종합복지관, 요양병원 등 기관 종사자들이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어르신들의 인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통합 관리 시스템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개별 사용자의 인지훈련 결과, 분석 결과 등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별도의 기기를 구매할 필요 없이, 기관 혹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기기로 사용할 수 있다.
박종호 씨투몬스터 차장은 “기억산책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사용자별로 관리자가 문제 유형과 회차를 지정할 수 있고, 같은 유형의 문제를 푼다면 유형은 같지만 개인이 푸는 문제는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수업 프로세스를 관리자가 직접 설정할 수 있다는 게 기억산책의 차별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개인별 훈련 결과도 데이터로 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주 훈련을 했는지, 현재 훈련 진행도는 몇 %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정답률, 문제 풀이 수, 문제 푸는 시간 등이 기록되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관리도 가능하다. 만약 진행률이 미진한 어르신이 있다면 연락해 훈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다. 기억산책은 10월부터 ‘콘텐츠 라이브러리’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SK텔레콤의 음성 AI 스피커 ‘누구 네모2’에도 기억산책이 적용돼 더 많은 어르신과 만날 수 있다.
일본 히로시마의 12만 5000명이 사는 어촌 소도시 오노미치는 청바지와 자전거로 유명하다. 이런 상품이 지역 특산물이라는 의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템을 매개로 지역 혁신과 이주 유입을 활성화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바지 산업
원산지가 미국으로만 알려진 청바지가 일본의 몇 개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지역 아이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오카야마부터 그 인근에 위치한 오노미치도 청바지 산업으로 유명하다.
염색이나 직조 기술 등 전문기술이 필요한 청바지 산업이지만, 오노미치 청바지는 산업 확산을 위해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시도해 주목받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오노미치 데님(청바지)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에게 두 벌의 새 청바지를 나눠주고 1년 동안 입게 한 뒤 다시 수거해 이를 재판매한다. 지역의 장인들은 수거한 청바지의 흔적을 최대한 살려 재가공해 판매한다. 이 프로젝트를 최초로 기획한 지방 부흥 회사 디스커버링크 세토우치는 일상생활에서 입어 낡은 중고 청바지를 지역 산업 발전과 연결하고자 한다. 오노미치 청바지는 히로시마의 오노미치 데님 숍에서 해당 청바지가 어떻게 상품화되는지 스토리를 들은 후에 구입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오노미치 데님 숍을 지어 사람들이 청바지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2015년에는 ‘여행하는 청바지’라는 콘셉트로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독일, 과테말라, 스리랑카 등)를 여행하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장인의 스토리를 엮었다. 시간을 들여 좋은 물건의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과의 인연을 형성한 것이다.
복합문화공간
‘Cycle, Travel and Good Things’라는 테마로 운영되는 상업 시설 U2는 자전거 숍, 잡화점, 레스토랑 등을 운영한다. U2에는 라이더들이 묵을 수 있는 ‘호텔 사이클’이 있다.
연간 전 세계 사이클 라이더 30만 명이 오가는 지역에 위치한 오노미치는 라이더에게 특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베터 바이시클(Better Bycle) 서비스를 통해 자전거 대여뿐 아니라 지역에서 가볼 만한 코스와 캠핑 정보도 제공한다.
공유공간으로 탄생한 빈집
한 귀향자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비영리단체 ‘오노미치 빈집 프로젝트’는 커뮤니티를 통해 빈집을 재생한다. 커뮤니티 직영으로 20여 곳의 빈집을 게스트하우스, 카페, 다목적 공간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주자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고, 이사할 때는 주민들이 돕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 건축가 등이 힘을 합쳐 빈집 개조를 지원한다.
빈집 개조 과정에 참여하는 모두가 합숙하면서 빈집을 재생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모두의 시간이 헛되지 않고 의미 있다는 것을 알린다.
빈집 개조를 통해 만들어진 공유공간 오노미치 셰어는 바다와 산 사이에 위치하며, 일하기와 놀기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지역 공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이주자를 위해 호텔 컨시어지처럼 이주 상담을 진행한다. 공간 대여뿐 아니라 카페와 자전거 렌털 서비스, 회원을 위한 택배 수령 서비스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장’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교류를 낳고 거기에서 새로운 기획과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지역에서 만드는 삶
좋은 지역에 산다는 것은 좋은 삶을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좋은 지역에 산다는 것은 우수한 시설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에 직면한 지역 현실에서는 일단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적절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인구가 감소한다면 몇 명으로 늘어나는 게 좋을까, 초고령화가 문제라면 고령자들에게 좋은 지역 조건은 무엇일까에 대해 먼저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는 의견 합의를 통해 지역의 좋은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좋은 지역의 조건은 이미 정해져 있다. 좋은 사람, 좋은 주거지, 좋은 학교와 교육, 다양한 일 방식과 일자리, 부와 자원이 유출되지 않는 것, 안전한 삶, 마지막으로 풍부하고 개방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정부의 세금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지역의 조건을 잘 아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시도하는 노력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형성될 수 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겠지만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절망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능성을 생각하며 하나의 아이템이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려한 말잔치와 공허한 이벤트의 반복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