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구입하기
문체부는 1995년을 ‘미술의 해’로 정하고, 미술 관계 문화 단체를 통해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을 전개했다. 국민의 보편적 경제 능력은 향상되었는데 문화의 수준은 거기 못 미쳐서, 우선 여러 장르의 미술품 중 그림을 사다 걸자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그 후 해마다 5월이면 이 행사를 민간화랑 주도로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당시 국민총생산이 1만 달러를 넘으며 문화의 욕구도 상승되고 있어 중산층 국민들에게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자가용 승용차 구입하기, 레저 스포츠 즐기기와 더불어 비싸기만 한 줄 알았던 미술품도 잘 선택하면 한두 점 소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나 화랑들도 거품을 빼고 통상 거래 가격에 30%정도를 할인하여 특수층이 아닌 일반 중산층 소비자를 적극 공략하였다.
미술품 유통은 화랑이 독점하다시피 했으나, 1996년 , 1998년 , 2005년 이 설립되어 미술품 판매에 새 시대를 열어왔다. 이후 , , , , 등의 경매회사가 미술품 판매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화랑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던 미술품들이 도록과 전시를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고 가격도 떳떳하게 노출되었다.
경매회사별로 미술품 감정단을 두어 작품의 진위와 적정 가격을 산정하여 미술품 가치의 객관화에 기여하였다. 미술품 가격이란 것이 작가와 화랑 사이에서 내밀하게 형성되었고 같은 작가의 작품도 화랑별, 지역별로 각기 그 편차가 심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전시장이나 화랑에서도 가격을 표시하지 않아 도대체 작품을 팔기는 하는 것인지, 가격은 얼마인지를 몰라 묻기도 겸연쩍어 돌아나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경매회사에 회원 가입(연 회비 10만~20만원)하면 연간 경매도록도 받아보고, 인터넷으로 경매 미술품을 검색하여 작가와 가격이 합당하면, 전시 기간에 직접 실물을 확인하고 큐레이터에게 세세히 자문하며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매회사는 온라인으로도 경매를 진행하고 있어 집에 앉아서도 다양하게(회비 납부 안 하는 준회원 가입으로)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다.
경매는 항상 최고가를 입찰한 사람에게 낙찰되며, 실수로 낙찰을 받더라도 취소가 안 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낙찰이 되면 수수료로 작품가와 16.5%의 수수료(부가세 포함)를 지불하고 작품을 인수하면 경매 과정은 종료된다.
그러나 초보자에겐 작품을 선택하기가 어렵기만 할 것이다. 우선, 주변의 화랑이나 전시장을 찾아 미술품을 자주 보며 안목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미술품은 시각예술이므로 긴 시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의 감흥이 오고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그래도 미술품은 금전적 가치가 수반되는 동산(動産)이므로 장르별, 작가별 가격 추이도 잘 살펴보고 수집하길 권한다.
●미술품 보관하기
경매에서 낙찰받거나 화랑에서 구입할 때에는 반드시 영수증과 관련 도록(해당 미술품의 도록이 없으면 작가의 다른 도록이나 전시 인쇄물) 그리고 작품보증서를 꼭 받아서 함께 보관한다. 그림의 경우 대부분 유리 액자에 표구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화나 서예 등은 굵게 말아서 신문지로 싸둬도 무난하나 유화나 드로잉 판화 등은 반드시 유리액자에 표구하고 뒷면이 통풍되게 걸어두면 된다.
●미술품 팔기
최근 미술품 경매회사들의 소위 블루칩(blue chip) 작가(지명도 있고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들의 작품 가격은 연평균 23% 이상의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분석한 자료도 있다. 영구히 작품을 소장한다면 모르나, 여윳돈으로 한두 점 수집했다가 경매시장이나 화랑을 통해 판매할 때에는 계산을 꼼꼼히 해야 한다. 100만원이 작품가일 때는(낙찰가) 연회비, 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37만원 가까이 되므로 그 작품가 137만원과 판매위탁 수수료 11%(부가세 포함)를 더하여 150만원이상을 받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단기매매는 금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어, 미술품 시장도 꾸준히 성장할 뿐 아니라 경매회사의 낙찰률도 70%를 상회해 금년 상반기 경매시장에서 960억원이나 유입되었다. 여유자금만 있다면 노후를 대비, 긴 안목의 투자도 가능하다고 본다.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작고(作故)작가이고 작품가가 6000만원이상일 때 발생하게 되는데(세율 20%) 작품 소장자에게 80%의 기본 공제가 허용되어 우려할 바는 아니다. 6000만원에 구입, 1억원에 양도하면 차익 4000만원 중 3200만원이 공제, 800만원의 20%인 160만원만 세금이 발생하므로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사석원(史奭源, 1960~ )화가는 촉망 받는 인기 화가로 여기 소개한 작품 는 삼베 천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고 액자까지 손수 짠 멋진 그림인이다. 인사동에서 ‘한 집 한 그림 걸기’ 행사할 때 아주 싸게 구입한 작품이다. 1984년 ‘국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수집가들이 손꼽는 이 시대 걸출한 화가다.
유년기 포천의 외가에서 지내며, 숱한 동물들(염소, 당나귀, 올빼미 등)과 접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깔끔한 외모와 달리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방한 성품과, 두 권의 수상집(隨想集), 두 권의 기행록(紀行錄)을 펴낸 뛰어난 문장력은 만날 때마다 경외심(敬畏心)을 갖게 한다. 대작할 수 없는 나의 주량(酒量)이 야속할 따름이다.
이종구(李鍾九 1955~ ) 화가는 정부미 쌀 포대에 농민의 실경(實景)을 그리기로 유명한 화가다.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후학을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도 이 화가의 작품이다. 위의 그림 는 평소 이 화가의 소재인 농민, 소, 농기구(낫 삽 곡괭이)가 아닌, 북두칠성 아래 한 사발의 물을 그린 깊은 명상의 산물이다. 화랑 주인은 쌀 포대에 그린 시퍼렇게 날이 선 낫 그림을 권유했으나, 망설이다 이 그림을 택했다. 서재에 놓고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심상(心象)이 결곡해지기를 기원한다.
>>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드라마에 한마디 명대사가 있다면, 책에는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글귀가 있다.
짧지만 감동을 주는 책 속 문장들을 살펴보고 공유할 수 있는 앱 ‘책 속의 한 줄’을 소개한다.
SNS 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책 속의 한 줄
앱을 이용하면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책 속의 한 줄을 확인할 수 있다. 카드 형태로 꾸며져 깔끔하고 읽기 편하다. ‘인기 한 줄’, ‘최신 한 줄’, ‘아침 한 줄’ 등 메뉴를 통해서 보거나 ‘맞춤’을 눌러 관심 키워드를 선택해 취향에 맞는 글을 골라 보면 된다.
2. 한 줄 알림 & 공유
앱에 올라온 ‘한 줄’들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글은 카드 아래 ‘담기’를 눌러 저장한다. 저장한 글들은 알림 설정을 통해 매일 원하는 시간에 한 개씩 다시 볼 수 있다. 괜찮은 ‘한 줄’은 ‘공유’를 눌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친구와 공유해 보자.
3. 한 줄 올리기
좋아하는 문장을 다른 사용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면 앱 화면 아래 ‘연필 모양’ 아이콘을 누른다. ‘한 줄 카드 꾸미기’ 화면이 나오는데, 원하는 문구를 치고 배경, 서체, 글꼴 색깔 등을 설정해 꾸밀 수 있다. 글의 출처가 되는 책도 검색 버튼을 눌러 관련 정보를 함께 넣는다.
4. 신간·베스트셀러 목록 & 책 구매하기
‘책’ 메뉴를 누르면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등의 리스트가 나온다. 관심 있는 책은 ‘관심 책’ 버튼을 눌러 ‘내 서재에 저장·관리 할 수 있다.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책 구매’ 버튼을 누르면 바로 교보문고 앱 화면으로 이어져 편리하다.
5. 문화강좌 및 기타 서비스
문화 관련 강좌 정보가 올라오는 ‘문화강좌’, 연재 중인 웹 소설을 볼 수 있는 ‘웹소설’ 메뉴가 있다. ‘광장’ 메뉴에는 책 속의 한 줄 외에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올리는 ‘자유글’, ‘창작글’ 코너도 있어 재미 삼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우리나라 집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인 서울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아래 편의점에는 경제서적과 재테크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재테크법도 산수나 국어처럼 배워야 하는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 에서 인용)
못생긴 사람보다 예쁜 사람이 화장을 더 많이 한다.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는 곳도 땅값 비싸고 부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의 강남이다. 학교 시험도 자신 있는 과목에서 틀리면 더욱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현상을 미루어볼 때 부자가 책을 더 많이 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부자들 중에는 ‘독서’가 첫 번째 취미인 사람이 많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도 보통 사람의 5배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빌게이츠도 자신을 독서 중독자라고 얘기했다. 독서를 가난한 사람의 돈 안 드는 취미로 얕잡아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이라고 예전부터 일컬어왔다. 공부는 학교 다닐 때나 하는 것이지 직장에 들어가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책과는 담을 쌓는 사람이 많다. 책을 보지 않는 사람의 미래는 없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양식을 먹지 않고 쓰는 글은 영양실조의 글이다.
성공한 사람의 서재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보충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서점에 한 달에 한 번은 가서 전공 분야의 새로운 책이 나왔나 점검한다. 변화되는 흐름을 알기 위함이다.
책읽기도 습관이다. 습관은 반복된 오랜 행동이다. 독서 습관을 위해 6개월 동안 4만 2,195페이지의 책을 읽기로 하고 동네 도서관과 약정을 한 뒤 독서마라톤에 출전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1만 5,600페이지의 책을 읽었다. 출퇴근 전철 이용시간 두 시간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읽은 결과다. 외출할 때면 작은 가방 속에 읽을 책 두 권을 꼭 넣고 다닌다. 책의 장르는 서로 달라야 지루하지 않다.
인생은 연습이고 훈련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진실처럼 믿고 있다. 독서 또한 반복 훈련을 통해 글 읽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낀다. 책 읽는 재미도 솔솔 느낀다. 저자는 혼신의 노력으로 책을 쓴다. 저자의 직접 경험 또는 지식을 간접으로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책이 가장 저렴하다.
필자는 일정 속도로 책을 읽지 않는다. 어느 부분은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읽는다. 저자의 서문과 목차는 적어도 두 번은 읽는다. 저자소개도 눈여겨본다. 대략의 내용을 미리 파악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다는 말이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이 가을 어느 풀밭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을 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도 높고 맑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책은 단순한 종이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책이라도 소장하고 있는 사람마다 그 책에 대한 애정과 추억은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철이 지나고 표지가 낡아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쌓여가는 책을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다. 인생의 보물과도 같았던 책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선택은 두 가지다. 보기 좋게 잘 정리해 보관하거나, 어디로든 떠나보내거나.
한국정리수납협회 수납전문 정영주 강사
◇ 서재 정리하기
100권 내외의 책을 정리하는 것은 단 몇 시간만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 욕심이 있거나 직업 특성상 책을 많이 두고 지낼 수밖에 없던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이들은 대개 개인 서재를 갖고 있는데,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온 가족을 총동원해도 며칠이 걸릴지 까마득할 정도라면 관련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추천한다. 인터넷에 ‘서재 정리’ 등 관련 키워드를 입력하면 전문가가 직접 서재 정리를 해 주는 업체를 찾을 수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서재 한 곳을 정리하는 데 30만~5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서재가 크고 정리해야 할 책이 많으면 인원이 여러 명 배치되는데, 이에 따라 금액이 좌우된다. 그래도 돈을 들이는 것보다 스스로 정리하는 편이 낫겠다 하는 이들을 위해 한국정리수납협회 정영주 강사의 조언을 담아 봤다.
>>STEP 1 마음을 먼저 비우자
책을 폐·휴지 버리듯 막 대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미련’이라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책, 작가의 사인이 적힌 도서 등 다시 읽어 보지 않더라도 그 책은 이미 그 값어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몇 가지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아쉬움 없이 책을 정리하기로 스스로 약속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막상 그렇게 다짐해도 잊고 지냈던 책을 발견하면 다시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그래도 기준을 정했다면 과감히 놓아주도록 하자. 마음을 비울수록 서재는 더욱 가벼워진다.
>>STEP 2 서재의 레이아웃을 파악하자
서재를 정리하려면 먼저 내 서재에 수용할 수 있는 책의 양을 파악해야 한다. 책장에 책을 얼마나 넣을 수 있느냐를 알면 얼마를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대략 한 칸에 들어가는 책 수를 헤아려 칸 수만큼 곱하여 계산해 볼 수도 있겠고, 책장 바깥에 놓아둔 책 수를 어림잡아 짐작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STEP 3 서재의 80%만 채우기
전문가들은 보통 서재에 있는 책을 몽땅 꺼내 한꺼번에 정리하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버거운 작업이다. 그보다는 ‘책장의 80%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20% 정도 책장을 비운 상태로 시작해 보자. 공간을 비운 상태로 정리해야 책을 옮기기도 수월하고 나중에 액자나 상패 등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책으로만 가득 채운 서재보다는 빈칸이 더러 있어야 보기 좋고 여유가 생긴다.
>>STEP 4 분류하기
시, 소설, 에세이, 과학, 자기계발서 등 자기 기준에 따라 책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버릴 것’, ‘기증할 것’, ‘보관할 것’, ‘사용할 것’으로 나눈다. 기증하거나 판매할 책은 따로 모으고 보관하고 사용할 책의 자리를 잡아 준다. 책의 소장 가치가 모호하다면, 헌책방에 가져가 따져 보고 분류하는 것이 좋다. 책이 많을 경우, 책 이름·저자·발행연도·출판사 등 간략한 정보를 적어 리스트를 가져가 대략적인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STEP 5 위치 정하기
사용빈도, 책의 크기 등에 따라 책의 위치를 정한다. 자주 보는 책은 눈높이에 맞게 배치하고, 자주 보지 않는 책은 맨 위나 아래 칸 등에 꽂아 둔다. 가벼운 책은 위로, 무거운 책은 아래로 넣는다.
>>STEP 6 보기 좋고 건강하게 보관하는 팁
고서나 추억의 책들은 먼지가 많이 나고 자주 꺼내 보지 않기 때문에 유리문이 달린 책장에 보관하면 좋다. 곰팡이 등에 의해 생기는 호흡기질환을 예방하고, 책을 보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능하다면 책 높이와 색상을 맞춰 넣어 보기 좋게 정리한다. 대부분 책이 앞코가 맞지 않아 들쑥날쑥한데, 책장 끝에 맞추는 것보다 책 앞코에 맞춰 진열하면 더 깔끔해 보인다. 크기가 작은 책은 이중 수납을 하면 효율적이다.
>>STEP 7 유지하기
‘책장의 80%만 채운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책의 총량을 컨트롤해야 한다. 1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날을 잡아 조금씩 책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가령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권의 책을 새로 산다면, 매달 10권의 책은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해 균형을 맞춘다.
◇ 책 팔기
서재를 정리하며 팔거나 기증하기로 마음먹은 책들을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가까운 헌책방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온라인 사이트나 스마트폰 앱 등을 이용하면 보다 편리하게 중고 책을 팔 수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 ‘예스24 바이백’, ‘인터파크 중고서점’ 등에 대해 알아봤다.
>>간단하게 인터넷 중고서점에 책 팔기 ‘알라딘 원클릭 팔기’
알라딘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알라딘에 중고팔기’ 메뉴로 찾아 들어가 ‘원클릭 팔기’를 선택한다. 한 권씩 일일이 바코드를 입력하지 않고 박스 수량(1박스에 20권까지, 10kg 이내)만으로 신청 가능한 서비스다. 발송 방법(지정 택배사 또는 편의점), 판매권 수, 박스 수량, 주소를 입력하면 바로 접수 가능하다. 접수 후 번호가 나오면 프린트하거나 직접 적어 해당 박스에 넣어두면 된다. 매입 가능한 도서는 3~4일 내에 계좌 또는 예치금으로 받을 수 있고, 매입 불가한 도서는 폐기처리하거나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특별하게 책을 판매하는 방법 ‘한 평 시민 책 시장’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는 ‘한 평 시민 책 시장’은 서울 시민과 중소 헌책방, 소규모 출판사가 함께하는 중고 책 장터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펼쳐지는 행사로, 지난해에는 총 20회에 걸쳐 8만4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헌책방과 소규모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판매 부스와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헌책방 운영자들을 위한 위탁 판매의 장도 마련돼 있다. 일반 시민도 참여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며, 신청자들은 한 평에 해당하는 자리를 배정받아 직접 가져온 책들을 판매 또는 교환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과 참가신청은 서울도서관 홈페이지(lib.seoul.go.kr) 또는 한 평 시민 책시장 홈페이지(www.seoul-bookmarket.com)에서 확인할 수 있고, 전화(02-2133-0209)로 문의하면 된다.
◇ 책 기증하기
책을 파는 것보다는 기부를 통해 의미를 더하고 싶다면 다음 두 곳을 추천한다.
>>책다모아 (www.nl.go.kr/sun)
읽지 않는 책들을 모아 ‘책다모아’를 통해 기부하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은 자료는 영구 보존하고, 이미 소장된 자료는 작은 도서관이나 문고 등 필요로 하는 소외 지역 도서관에 전달한다. 일반도서 외에 학술도서, 연구보고서, 정기간행물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시청각 자료 등도 기부할 수 있다. 기증한 자료에는 기증자 명을 기록해 놓는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고,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우편, 택배 등을 통해 책을 보내면 된다. 문의 02-590-0700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 (www.booknanum.org)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 병사들에게 독서와 문화생활의 기회를 선사하기 위한 운동이다. 여러 단체와 개인이 기부하는 책이 전국 76곳의 병영 도서관에 채워지고 있다.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 사이트에 회원 가입 후 도서 기부를 신청할 수 있다. 문의 02-465-5417
책 속에서 사람이 난다는 말도 있다. 책과 함께하는 습관은 남달라 보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인생을 우지 좌지 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본다. 예전처럼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다. 음악이 살아있고 비싼 커피와 분위기가 있어야 더 머릿속에 잘 들어가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나 카페 빈 같은 카페에는 누구나 노트북을 지니고 홈 워크(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널려진 책들의 현주소
어느 집이나 책들과의 전쟁이다. 이사할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부부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박스 속으로 다소곳이 들어간다. 당연히 책이 들어간 박스가 가장 무겁다. 책에 대한 넘치는 욕심이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한 권 두 권 쌓이는 책들이 수없이 짐이 되어갔다. 사전에서부터 학습서, 각종의 어학 책, 문학 책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책들이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했다. 물론 서재 방을 만들어 한 곳으로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필자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와, 음악과 커다란 스크린이 함께하는 감상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책은 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니 가난이 무섭지 않았고, 음악은 듣고 있으면 마음을 치유해주니 더 없는 삶의 약이었다. 또 하나, 그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중한 바람이었다.
이사를 다니고 결국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동안 간직해온 수많은 책들을 시댁에 맡기고 떠났다. 거기에는 고급 오디오 세트와 그 옛날의 레코드 원판, 엘피 판 그리고 백판 등 몇 트렁크를 고이 모셔놓았다. 필자의 남편도 음악에는 조회가 깊어 취미가 같았고, 집에만 들어오면 음악을 틀어 감상하는 것이 생활의 시작이며 공동의 관심사였다.
*북 카페로 변신을
오랜 세월 후 고국으로 돌아와보니 모든 것들이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필자가 직접 관리를 못했으니 어디 하소연을 할 데도 없다. 미국에서도 이삿짐을 싸면서 미국에서 사온 오디오 세트와 가장 먼저 귀한 책들을 챙겨왔다. 지금은 나름대로 간직한 책들과 구형 오디오, 흘러간 메모리 음악이 담긴 CD들이 필자의 소중한 재산이다.
아이들이 남겨놓은 책들과 필자의 책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다. 거실의 한쪽에 다행히도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오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거실 옆으로 빈 공간에 책방을 만들었다. 음악과 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언제라도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멋진 북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남편과 함께 한쪽 벽면에 선반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장르별로 책들을 분리하며 정리를 했다. 예를 들면 여행에 관한 책들은 한 곳으로 몰아놓아 언제라도 꺼내어 볼 수 있는 간편함이 있도록 했다. 그 옆에는 여행을 하면서 수집해온 소품으로 군데군데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창가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소파도 마련해놓았다. 영락없는 카페가 되었다. 언제든지 책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넘치는 북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제 모든 것들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세상이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은 충동적 분위기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곳이 가장 먼저 발길을 유혹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꾸며 놓은 책들과 소품들이 마치 훌륭한 카페 같다며, 이 책 저 책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모두가 최고라고 했다.
분위기가 흐르는 필자의 북 카페에서는 오늘도 은은한 음악과 함께 마음의 글을 써 내려간다.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의자는 빈 채로 덩그마니 앉아 있다.
◇마음 가다듬기
나이가 어른이라고 마음도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의자’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종종 상처 입은 동물처럼 나의 동굴로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서재의 한쪽 구석진 공간에 방석을 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긴다. 촛불을 밝히면 더 좋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를 주로 생각한다.
그리곤 마음을 좀 가라앉힌 뒤 훌훌 털고 일어나 차를 꺼내 향하는 곳이 있다.
◇고향 같은 곳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 언제나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차를 세우고 강가를 걷는다. 습기 머금은 바람이 마른 폐 속에 자양분처럼 틀고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말없이 일렁이는 강을 바라보고 섰으면 수많은 얘기를 품고도 저렇듯 조용한 강의 의연함과 인내가 느껴진다. 파도에 떠밀리며 자신을 맡길 뿐 무심한 듯, 유심한 듯.
수심에 찬 얼굴을 위로라도 하듯 빛나는 향연을 펼치는 물고기들의 도약은 생동감을 준다. 싱싱한 비늘에서는 쇳소리가 날 것 같다. 수평선은 종종 안개로 뿌옇다.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기분은 더 상큼해진다. 아픈 가슴에서 흘리는 눈물 같아서다.
◇인내와 관용
얼마나 작은 일에 집착하고 마음을 상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좌절과 실망에도 맞설 힘을 주며 기나긴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선물처럼 안겨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상한 가슴을 꺼내어 강물에 씻고 바람에 내어 말려 말끔한 기분으로 되돌린다. 속을 비우고 자족하며 흘러가는 것을 잔잔한 눈빛으로 보내주는 관용을 들고 돌아오게 된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인내를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배가 고파지기 마련이다. 메뉴 짜느라 냉장고의 문을 몇 번씩 열었다 닫으며 보글거리는 찌개를 상상하곤 한다.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씩씩하게 다시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재준(아호 송유재)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시조시인과의 인연은 19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처녀시집인 을 구하기가 어려워 혹여 선생께선 몇 부 갖고 계실 듯해서 어렵게 전화로 여쭈니, 당신께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복사한 것만 갖고 있다며, 꼭 구했으면 하셨다.
1947년 ‘수향서헌’에서 10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 이 책은 한지 바탕에 편집, 문선, 조판, 장정, 인쇄, 제본까지 저자 혼자 손수 한 출판 역사상 유일한 책이라 그 가치는 상당하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봉선화’ ‘청자부’ ‘백자부’ 같은 빼어난 시조들은 그 가치를 더욱 높인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서점가를 발로 뛰어 다니며 수소문하였다. 몇 달 후 진주와 대전의 고서점에서 과 동시집 을 구해 우편으로 보내 드렸다. 선생의 시조를 읽으며 어휘와 음률에 대해 전화로 여쭈면 늘 반가워하시며 작품의 제작 동기와 발표 과정 등을 자상히 알려 주는, 길고 긴 시조강의(?)를 듣곤 하였다.
옥수동에서 압구정동, 그리고 이태원동으로 주소를 옮기셔도 통화는 이어졌고, 아내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라고 하셨으나 왠지 문인으로 등단한 후에나 뵙는다는 치기로, 그리하지 못했다. 2001년에야 이태원동 청화아파트로 찾아뵈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한낮부터 설핏 가을 해가 기울 때까지 문학, 고서화에서 시작된 말씀은 조선백자 예찬으로 장강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서재 곳곳에 놓인 문방사우며 책들도 일일이 꺼내어 살펴보게 하셨다. 탁자에 놓인 벼루에 먹을 갈아 드리니, 준비해 가져간 책에 붓으로 서명을 하고 관지까지 해 주셨다. 선생이 지으신 책 중에 두 권을 빼고는 다 수집해서 소장하게 되었다. 그 후로 세 번 정도 찾아뵈었는데, “바쁠 터인데 이리 자주 오지 마라.” 단호하셔서 어렵기도 하고 문하(門下)가 아니라서 그리하시나 야속하기도 하였다. 그 어름에 합죽선(合竹扇)에 ‘성덕대왕 신종 명(銘)’을 전서(篆書)체로 써주셨고 구작(舊作)인 ‘벽도도(碧桃圖)’의 합죽선도 함께 주셨다.
千年碧桃如大斗 천 년 만에 열린다는 푸른 복숭아 큰 말같이 커서
仙人摘之以釀酒 신선이 이를 갖고 술을 빚어
一食可得千萬壽 한 번 마시면 천 년 만 년 산다네
庚戌春夜 於洌上 白瓷丹硏之室主人 艸丁 塗人掃毫 경술년(1970) 봄 밤, 한강 상류 ‘백자와 단계벼루가 있는 집’ 초정 그리는 사람이 붓을 쓸다.
중국의 시를 빌려 그림을 그리고 화제(畵題)를 썼다. 신선이 먹는다는 벽도 세 개와 무성한 푸른 잎사귀를 그리되 화제가 합죽선 끝을 따라 전서와 행서(行書)로 어우러져 가히 문인화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부채고리에는 은으로 된 팔각의 선추(扇錘)가 끈에 매달려 있었는데, 펴서 부칠 때 바람 따라 흔들리는 그 운치가 그만이었다.
이 인연이 합죽선을 수집하는 계기가 되어 한때는 여러 문사(文士)나 서화가의 글, 그림을 합죽선에 받아 100여 점을 갖고 있었으나, 은사님이나 선·후배 동호인에게 선물하고 30여 점만 남았다. 선추는 옥이나 은, 호박, 나무로 깎은 장신구들을 사북이라 부르는 합죽선 손잡이 고리에 매다는 것인데 침통이나 나침반 향갑 등 다양하지만 희귀해서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기록들에 의하면 쥘부채라고도 부르는 합죽선은 고려 때부터 실용되어 중국인들이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도 합죽선을 만들기는 했지만 대나무의 부챗살이 40~50개나 되게 만든 180도로 펼쳐지는 합죽선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물이다. 조선조에는 전주와 안동에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扇子廳)’을 설치, 부채를 진상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대나무와 질기고 우수한 한지의 생산에 근거했을 것이다.
합죽선을 만드는 스물네 공정은 까다롭고 세심해서 수백 번 장인의 손길이 공력을 들여 보름이 걸려야 한 자루가 완성된다. 단오 때가 되면 임금이 합죽선에 경구(警句)를 써서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옥 같은 백선에 좋은 글귀나 그림을 그려, 손에 들고 다니며 수시로 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마음의 뜻을 전하는 격조 높은 선물이었다.
국악의 소리꾼들은 꼭 합죽선을 들고 창을 한다. 격정적인 장면에선 접은 부채를 손에 탁탁 치기도 하고 부채를 180도 확 펴기도 한다. 이 소도구 하나만으로 아취가 있다. 한량(閑良)들의 춤사위는 이 합죽선이 더해져 완성도를 높인다. 반원의 합죽선이 허공을 가르며 추파를 일으킨다.
녹음 짙푸른 한여름, 정자에 앉아 선추 흔들며 시조 한가락 유장하게 뽑으면 가히 선인의 정취가 아니겠는가.
명실공히 현대 수채화의 제일인자라 칭하는 강연균(1940~ ) 화백의 그림들은 늘 사실적인 것에 기저를 둔다. 멀리 있는 것, 허구적인 것, 환상적인 것은 그의 그림에는 없다. 태어나서 자란 남도의 가난한 이웃들의 고단한 삶과 스산하고 보잘것없는 자연 풍광을 탁월한 스케치로 표현했다.
그가 수채화에 전념하게 된 것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비싼 유화 물감을 살 수 없는 아픔에 연유 되었다. ‘그가 겪어온 슬픔과 번민과 분노가 맑은 빛깔로 응결되어 있다. 그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아픔, 근원적인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파악하려 한다.’고 1981년 봄호에서 평하기도 하였다.
1982년 누드 수채화만의 전시 작품이 모두 판매되는 등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수채화에 스며든 진실성을 모두가 아끼고 사랑한다. 백자 제기에 놓인 석류나, 눈 내린 좁은 비탈길, 광주리를 이고 초라한 굴뚝 옆을 지나는 아낙, 소녀의 비감어린 눈빛 등의 수채화를 수집하고 있던 중 인사동 경매에서 이 합죽선에 그린 ‘우시장(牛市場)’을 낙찰 받았다.
팔러 나온 소 서너 마리가 서거나 앉거나 한 사이로 함지박을 인 아낙이 지나고 촌로들이 소 값을 흥정하고 있으나 긴장감은 없다. 참외 수레 옆에는 팔려는 촌부나 강아지 두 마리도 졸고 있는 한가로운 여름, 시골 장터 한 모퉁이가 부챗살 따라 펼쳐져 있다. 전주의 부채 장인이 만든 이 큰 합죽선에 쌍어문(雙魚紋)의 대추나무 선추를 매달아 보았다.
향리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였다. 이미 그 세월도 50년이 넘었다. 몇 해 전 이러구러 소원하였던 옛 친구에게 ‘심월상조(心月相照)’라 서예가가 써 준 합죽선을 보냈다. 작은 은방울 선추를 매달아서...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속엔 서로 달이 비춘다는 고승(高僧)의 고상한 경지를 빌려보고 싶어서였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을 통해서 말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2008년 이 전 장관이 출간한 에서 그가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담긴 책이 바로 이다. 단순 명료한 책 제목만 보아도 이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책을 낸 것은 아니다. 은 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자 사명감, 후세대를 위한 바람이 담긴 ‘인생작’과 같다.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다”며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다.
“2005년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준비했던 책이 입니다. 번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역사, 정책, 문화적 상황에 따라 설명했어요. 그 책을 쓰면서 꼭 그에 대한 결론을 내는 책을 쓰고 죽겠다고 결심했었죠. 한 10년쯤 후에 쓸까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보다 훨씬 앞당겨 쓰게 됐어요.”
그가 예상보다 책을 일찍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다. 번영학은 신자유주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 논리와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를 바탕으로 한다. 리먼브라더스 사건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이 왜곡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무너뜨렸다. 갑작스러운 경제 상황의 변화로 그는 하루라도 일찍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위적인 통화 공급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무너져버렸죠. 여러 가지 발전 전략이나 가치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신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이 경쟁이거든요. 발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 수 있죠. 신자유주의의 경쟁체제를 가지고 개발도상국 시대의 발전의 의지를 접목하자.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조금 확대돼야 한다는 게 번영학의 기본이자 의 결론과 같아요.”
모두 다 한번 잘살아 보세~
번영(繁榮)이란 번성(繁盛)과 영화(榮華)를 이른다. 번성은 객관적으로 번창하고 풍성한 상황, 즉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한 경제적 풍요를 의미한다. 영화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화로움과 영예를 뜻하는데, 객관적인 경제적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의 주관적 상황과 개인의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번영이란 경제적으로 풍족한 조건과 더불어 개인의 영예, 행복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거기에 현재의 번영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내가 현재 연간 소득이 1억원이라 하면, 10년 후에도 1억원이면 되겠어요? 현재보다 발전한 소득수준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이 많다고 행복한가? 그 돈이 영예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도둑이 훔친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고 하면 소득 수준에는 문제없겠지만 내 가족이나 이웃에는 떳떳하지 못하잖아요. 나를 번창하게 하는 그 돈이 영예로워야죠.”
그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래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 우리는 너무나도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는데, 그런 내가 삼시 세 끼 챙겨 먹으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소위 절대빈곤 타파라 하는데, 그저 세 끼 먹는다고 만족할까요? 매일 채소만 먹는 것보단 고기반찬도 먹고 해야 좋을 거 아녜요. 그게 생활의 질이에요. 그러면 내가 좋은 반찬을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할까요? 이웃도 잘 먹고 잘살게끔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죠. 그래야 ‘저 사람 참 훌륭하다’는 인정도 받고 개인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 행복 조건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현재 삶의 행복 점수, 70점
행복 가치 추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그에게 자신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70점 정도”라고 대답했다. 이 전 장관은 현실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30에 연연하기보다는 소소하게 채워진 70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을 쓰는 일도 행복하고, 손주를 보는 것도 즐겁죠. 다들 그런 재미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집 근처에 서재를 마련했으니 글을 쓰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것도 행복해요. 이번에 책을 내고 동료들이 의견을 내서, 실제 관련 일을 했던 이들 중심으로 한국번영학회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6월에 시작하는데, 내가 일을 벌였으니 학회장을 맡았죠. 근데 뭐 그게 일인가요. 이제 나이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일종의 놀이인 셈이죠. 아주 즐거워요.”
아쉬운 30점에 대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돈을 좀 더 잘 모아둘 걸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랬다면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봉사나 기부도 그렇고요. 그런데 내가 재벌이나 기업가도 아닌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 되겠어요?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평가거든요. 본인이 기준을 잘 설정해서 만족하고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얼마나 많겠어요.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고맙게 생각해야죠. 나름의 기준은 있어 점수를 매길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 나이에 그것에 좌지우지되거나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현재의 삶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는 인터뷰 중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인터뷰 전 날이 바로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해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챙겨드릴 부모님이 이제는 안 계시다는 것이 못내 허전하다고 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그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어머니는 100세를 사시고 금년 1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1990년대에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오셨어요. 그때부터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는 여의도에 집을 마련하시고 생활을 하셨죠. 아마 두 분이 계속 시골에 사셨더라면 부모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적었을 것 같아요. 근처에 사시니 매일 보고 이야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진정한 은퇴 라이프의 시작
3년을 투자한 끝에 출간한 . 자기만족만을 위해 썼다면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며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 후손들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리라는 바람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로 대학교 4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도 참 보람 있고 좋았어요.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무관부터 시작해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계획에 참여했다는 거예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 더 많았죠. 다른 점에서 볼 때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안 되지만, 그만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서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했던 일도 아니니 후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남겨야죠. 그들이 보고 ‘과거의 경제 계획은 이랬구나. 이러한 이론이 있고 상황은 어떠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자신은 잠시도 가만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일을 할 때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했고,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겼으며, 요즘도 중국어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3년간은 해외 일정이나 모임 등을 자제하고 원고 작성에만 몰두했다.
“책 출간하느라 바빠서 운동도 잘 못 다니고 해외도 거의 못 나갔어요. 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흔히들 말하는 은퇴 라이프가 다소 건조하긴 했죠.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충만하게 하고 즐거움을 줬는지도 모르겠어요. 최근까지는 원고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요. 정말 죽기 전에 꼭 하자 하는 것을 이뤘으니, 이제 죽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지내려고 해요.”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라
그가 지금까지 낸 책은 모두 경제와 관련된 전문서적들이다. 그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남들이 선망할 만한 일을 많이 해왔는데도 자서전을 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노년기 삶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 그런 데에는 아내의 조언이 한몫했다.
“아내에게 매일 듣는 말이 ‘노인네가 되면 안 돼요. 어르신이 돼야 해요’입니다. 상당히 좋은 충고라고 생각해요. 노인네가 된다는 게 뭐겠어요. 목소리 높이고 잔소리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 사람 참 잘 늙었구나’해야 어르신이 되는 거죠. 전에는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서 정부가 뭐를 한다 그러면 언론에 글도 쓰고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그런 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떠들어봐야 늙은이 잔소리니까요.”
그는 최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관한 글을 읽고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사위가 쓴 글이었는데, ‘장인어른은 가족 문제나 자식 일에 대해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자식이나 손주의 일에 가능한 한 나서지 않고 간섭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 생각하는 게 늘 나라 경제 운용에 대한 것이니까, 물론 얘기야 하고 싶죠. 내가 볼 때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나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현재의 장관이며 총리며 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처럼 바뀌겠어요? 아니거든요. 결국 잔소리거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에 담았어요. 거기에 그동안 살면서 쌓은 경험, 지식, 조언 등이 담겨 있으니 자서전과 다름없지요.”
‘도랑 치고 가재 잡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하다 보면 곁들여 또 다른 좋은 일이 겹쳐진다는 의미다. 늦깎이로 시작한 사진 취미가 바로 그런 예가 되었다. 60세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사진취미가 바탕이 되어서 KBS 1TV ‘아침마당’ 출연을 비롯한 방송활동, 강사, 기자, 저자로 인생이 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용돈도 벌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가를 어떻게 쓸모가 있게 보내느냐를 고민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상황은 많아지게 마련이다. 퇴직하면 매일이 일요일인 셈이다. 직장을 다닐 땐 대부분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게 되고 동료나 선후배, 관련 기관이나 거래처의 고객과 어울리며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낸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에는 그런 인간관계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리고 일상이 따분해진다.
수명은 날로 늘어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다. 머지않아 120세에 이른다고 예측한다. 은퇴 후 보내야 할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진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발표로는 60세에 은퇴하여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였을 때도 하루 여가가 11시간으로 따져보면 잔여 시간이 8만 시간에 달한다. 그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취미생활이다.
그래서 취미활동의 하나로 사진을 택했었다. 나이 60세, 그러니까 2010년 7월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인들과 같이 자동모드로 예전에 사진을 찍기는 하였으나 사진에 대한 지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는 처음이었다. 필자가 사는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진행한 사진교실에 참가한 것이다. 6개월 과정이고 한 달에 1시간 반씩 세 번의 학습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진에 대한 기초지식을 익혔다.
물론 카메라는 큰아들 녀석이 인터넷 쇼핑몰을 할 때 사용하던 작은 콤팩트 카메라를 얻어 사용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이 취미활동에 끝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공인 사진작가가 되기 위하여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개월 후부터 도전하였다. 사진작가 명함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전국사진공모전 수상을 통하여 당해 협회의 정회원이 되는 길이다.
필자는 그 길을 택하고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첫 번째로 응모한 제1회 너브내감성사진전국공모전에서 작품 '형상I'이 동상에 입상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동상의 경우 사진작가로 등록하기 위한 점수가 3점에 불과하다. 입선의 경우는 2점이다. 지금은 규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점수의 합계를 50점을 넘겨야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꾸준히 응모하였다. 입선이 잘 안 되어 포기할까도 수없이 망설인 적도 많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나태해지는 마음을 재차 다스리며 또 도전하고, 도전하기를 반복하였다. 수도 없이 낙선되었다. 필자의 서재에는 당시에 낙선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지금 다시 그 사진을 살펴보면 역시 낙선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목적을 이루긴 하였어도 그 과정에는 수많은 고뇌를 반복하였다.
늘 카메라를 손에 놓지 않고 사진에 대한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사진 관련 서적도 꽤 쌓였다. 찍은 사진도 500기가 용량의 외장 하드가 6개를 넘어서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한 명소로의 촬영여행은 잘 가지 못하여도 이른 아침부터 거의 매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한 재능기부와 봉사도 곁들인다. 사진강의와 촬영지도를 하며 사진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사 시니어조선의 사진 명예 기자로도 활동을 한다.
물론 작품을 사진대전을 비롯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공개적인 평가를 받기를 좋아한다. 2013년에는 사진의 국전인 대한민국사진대전에 '무한질주'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같은 해 10월에 부산일보사가 주최한 제21회 부일전국사진대전에 '닭장'을 출품하여 우수상을 받은 것도 그런 과정이다.
이러한 사진에 대한 도전과 취미활동은 의 생활에 더없는 보람과 즐거움을 준다.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카메라 장비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한 동안 필자는 똑딱이라고 칭하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 다음에 며느리가 사용하지 않는 캐논 400D 구형 카메라를 주기에 사용하다가 50만원을 주고 산 중고 500D를 지금도 사용 중이다. 물론 렌즈도 번들형에 가까운 저가형이다.
필자 카메라 장비를 보고 사진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장비로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드느냐고 되묻는 눈치다.
좋은 카메라는 촬영자를 편하게 한다. 카메라 장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필자의 경우는 다른 사람이 겪는 노력의 몇 배를 하여야 한다. 쉽게 말하여 몸으로 때워간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생활이 노후를 편하게 한다. 뱁새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필자 방식대로, 내 형편대로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진은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주변에 사진을 무료로 배울 기회와 공간이 많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비도 무척 편해졌다. 스마트폰이 그 중에 하나이지 싶다. 침팬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신문의 기사로 뜬 적이 있듯이 사진 촬영이 손쉬워졌고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아니 되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사진 촬영 경험을 많이 했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음이다. 다만 사진이론적 측면에서 몇 가지만 가미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여러 사람과 또는 자연과 어울리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 취미는 노후에 한번 도전해 볼만한 취미다.
은퇴한 시니어들이 집을 줄인 것을 후회할 때는 명절이다. 아이들이 많은 딸네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아들 식구는 건너방, 그리고 부부는 서재에서 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며칠 간의 명절을 위해 예전의 집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장난감들이 가득한 손자들만의 방을 꾸며 자식들의 방문을 살짝 유혹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늘날 3대가 같이 자고 먹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여름휴가철은 시니어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자식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 시기를 선택하고 그들이 선정한 장소로 출발하여 그네들이 운전하는 차에 얹혀 돌아오는 휴가는 뭔지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번 여름만큼은 스스로가 휴가계획을 짜서 애들을 소집하는 호기를 한 번 부려보고 싶어진다.
사실 휴가란 자식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바쁜 직장, 가정 생활 속에서 휴가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모시지 못 하는 있는 부모님들도 눈에 밟힌다. 이럴 때 한 번쯤은 시니어들이 주도하는 휴가여행을 제시하고 진행한다면, 그네들도 그리 싫지만은 않으리라는 상상도 해 본다. 물론 숙박 경비정도는 지불할 각오는 돼 있어야 하지만.
먼저 자식들의 휴가 일정을 대강 파악해 부담이 가지 않도록 그네들의 일정 중 1박 2일 정도만 할애하도록 유도한다. 사실 2박 3일 이상은 비용과,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위험부담이 크다! 말을 꺼내면서 ‘숙박은 내가 예약을 하고 경비도 지불한다’고 하면 대개‘ 마침 저희도 휴가 중 부모님들을 모실 계획이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라는 효자성 멘트가 날아온다. 만약 애들 사정으로 못 가게 되더라도 필자는 일단 어른으로서의 폼은 다 잡았다. 이 무산된 필자의 성의는 그네들에게 계속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결코 밑질 게 없다.
일정이 확정되면, 어디로 가 어디에서 묵을까를 직접 정해야 한다.
먼저 장소다. 그런데 손자들은 무조건 바닷가다. 그러면 바다는 다른 일정에 그네들끼리 가라고 해야 한다. 필자와 떠나는 1박 2일만큼은 계곡이나 휴양림지역이라는 것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어린 아들, 딸을 데리고 갔던 젊은 시절의 바닷가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광대한 바다에서의 안전사고 위험, 세찬 바닷바람, 젊은이들의 소음, 온몸과 음식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그 모래들…. 그래서 애들을 계속 씻기고 수영복 빨래한 후, 햇볕에 익은 살갗에 연고를 발라주던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이 나이에 파라솔에서 식구들 짐 지키며 햇볕, 모래와 싸우고 싶지 않다.
다음으로는 묵을 곳이다. 그러면 호텔과 콘도가 먼저 떠오른다. 모두 각종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또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휴가철의 비싼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예약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에너지로 계속 들락날락대는 손자들에게 자연을 만끽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제외하고 싶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펜션으로 넘어간다. 최근의 숙박 형태에 대한 한국관광학회 연구보고서(2013년)도 전체 숙박시설 중 펜션, 서비스드레지던스 등의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선호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펜션의 장점은 먼저 취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콘도에서도 취사가 가능하지만, 넓은 야외 바비큐장이나 독립된 베란다에서 고기를 직접 굽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복층펜션이나 독립된 방갈로식 펜션의 경우, 다세대가 함께 숙박하면서 한 집 식구라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콘도의 경우는 어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주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데 반해 펜션은 문만 열면 마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펜션들은 마을 속에 함께 자리잡고 있어 해당 지역의 문화를 만끽할 수도 있다. 식사 후 동네 어귀 구멍가게의 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 잔하며 동네이야기를 푸근하게 들을 수 있어 좋다는 얘기다. 또, 펜션을 운영하는 이들은 거의 다 시니어들이다. 그래서 같은 세대의 공감대와 하룻밤을 묵는 정을 바탕으로 그 지역의 유기농 특산물이나 좋은 식당들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새로 지은 펜션의 경우는 베란다에 야외욕탕들을 마련한 경우도 많아 하늘의 별을 보며 온몸을 담글 수 있는 한 여름밤의 낭만도 맛볼 수 있다. 다만 부대시설이 미흡하고 소음에 취약하지만, 아직도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시니어가 아니라면 펜션을 이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펜션들 중, 제대로 된 펜션을 고르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시니어의 경우 원거리는 배제하고 2-3시간 거리의 지역을 선택한 후 ‘떠나요닷컴’이나 ‘ 우리펜션’ 등의 펜션관련 사이트에서 실시간 빈방 검색을 한다. 다음으로 풀빌라펜션, 수영장펜션, 월풀, 독채형 등의 유형을 정해 예약을 진행하면 된다.
선정 시엔 먼저 ‘펜션정보’에서 건립연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최근에 생긴 펜션을 우선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문적인 관리를 하지 못하는 펜션들의 특성상, 호텔이나 콘도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급하게 시설이 낙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 보이는 펜션들의 사진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야간 조망사진은 너무 낭만적이라 혹하기 쉬운데, 그 조명발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 그리고 주인들의 셀프댓글들이 많으니 칭찬 일색의 사용후기들도 유심히 봐야 한다. 특히 ‘주인이 직접 재배하신 상추에 삼겹살을 주인 식구들과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글을 보고 그런 상황을 기대하면 마음에 상처만 얻는다. 숙박비는 보통 10만~20만 원 대이지만 대부분 휴가철에는 성수기요금을 따로 책정하고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특급호텔보다도 훨씬 비싼 최고급 펜션들도 많아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구매 후 의심’을 버려야 한다. 직접 선택한 것들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 아버님이 펜션 잡아 주셔서 다녀온 휴가’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함께 먹고 자며, 며느리 민낯 보는 게 어찌 예사로운 일인가! 이런 자신를 대견스럽게 여기며 이런 선택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말자! 사실 겁이 살짝 나기는 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