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 거리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인 가을 인사동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국으로 돌아왔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덕수궁 돌담길, 인사동, 삼청동, 남산 가리지 않고 걸어 다녔던 내 젊은 시절의 거리들이 오늘 하루 종일 행복 세포를 일깨우며 알알이 기억을 일깨웠다. 늦은 밤까지 스산한 거리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따스한 차 한 잔 앞에 놓고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재클린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 Jacqueline’s Tear)을 듣고 있다.
유독 가을이 좋다. 형형색색 화려한 옷을 갈아입은 자연을 보는 순간만큼은 걱정도 괴로움도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더 흐느적흐느적 돌아다니고 싶다.
얼마 전 공주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다 문득 마곡사 표지판을 보는 순간 그곳의 가을을 보고 싶어 운전대를 돌렸다. 지난해 겨울바람 불던 어느 날, 마곡사 대웅전 옆 돌계단 위에 가만히 앉아 바람에 부딪혀 ‘찰랑찰랑’거리던 풍경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풍경소리를 듣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정지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적막함과 평안함도 그대로 말이다. 오래된 사찰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내 취미의 시작은 아마도 산사의 풍경소리에 매혹됐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산사의 풍경소리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면, 화려한 연등은 의외로 흥을 돋운다. 적막함 속 고요한 산사와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고색창연한 기와에 화려한 연등은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며 품격을 더해준다.
그래서 삶에 지친 이들이 산사에 가면 위안과 평안함을 얻고 그곳에서 잠시 평화를 얻은 후 돌아갈 곳에서의 인연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찾은 마곡사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마곡사의 가을 사진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워낙 전통 있는 사찰이라 많이들 알겠지만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한때 출가해 승려 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해 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다 하은당 스님 제자로 출가해 원종이란 법명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이 묵었던 전각은 ‘백범당’이라 불리고 있다. 백범당 바로 옆에는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인 1946년, 50여 년 만에 다시 마곡사를 찾아,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들과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당시 김구 선생은 마곡사의 대법당인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주련은 사찰이나 서원 또는 한옥의 기둥이나 바람벽 등에 장식으로 붙이는 글씨를 말하는데 이 기둥에 시구를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고 부른다. 불교사, 서예사,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산사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말씀이나 고승들의 말씀 등을 적어 걸어놓는다.
마곡사에 가면 대법당 대광보전 주련에서 이 문구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싶다. 김구 선생이 감개무량했다는 주련 문구가 마곡사 표지판에 소개돼 있다.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
발걸음 닿는 곳 구석구석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이 땅. 한국의 가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지겨운 이, 오늘 당장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을 사각사각 밟아보자. 가을을 품에 가득 안는 것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날, 우리 인생의 앞날에 그 무엇이 무서울까? 무서울 게 없다.
분노사회’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세상이다. 특히 한국 중장년의 경우 ‘한이 많은 세대’라 불릴 만큼, 노여움과 울분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이가 대다수다. 누군가는 화를 참지 못해, 또 누군가는 화를 내뱉지 못해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이다. 이러한 화가 자칫 ‘분노증후군’이나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진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분노도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흔히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으로 잘 알려진 ‘분노증후군’은 오랜 시간 축적된 화를 표출하지 못해 생기는 증상이다. 이와 반대로 ‘분노조절장애’는 느닷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는 등 화를 분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분노조절장애의 경우 지하철에서 학생에게 시비를 거는 노인이나 묻지마폭행을 가하는 중년남성 등이 표면적 이슈가 되어 이러한 증상을 가진 시니어가 많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억압받으며 생계와 가정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온 한국 중장년의 특성상 분노증후군을 겪는 이가 훨씬 많다(분노조절장애는 해외에서, 또 청소년이나 청년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타남). 다만, 가족도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드러나는 증상이 거의 없어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조증상이 덜한 암일수록 늦게 발견돼 치료가 어렵고 위험하듯, 분노증후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엄마의 울화
# 70대 여성 A 씨는 젊은 시절의 사회 분위기와 가정 사정 등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한을 자녀 교육을 통해 풀고자 했고, 온갖 정성으로 아이들은 고학력에 좋은 직장까지 얻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자녀들은 번번이 어머니의 무지(無知)함을 들먹이며 무시를 일삼았다. 이에 A 씨는 소외감과 우울함으로 지난 세월을 한탄했고, 급기야 극단적 시도까지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중장년 여성들은 자기 뜻과 다르게 학력 단절을 겪거나 사회 참여 기회를 박탈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전업주부로서 소임을 다했고,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펼쳐줄 자녀들에게 헌신하며 살았다. 그러나 장성한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의 공(功)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식수준과 비교하면서 종종 무시하거나 소외시킨다. 물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본의 아니게 내뱉은 말 등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중장년이 박탈감을 갖게 되고 비참한 심정이 되어 분노하게 된다고 한다(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다). 여기에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번아웃증후군(소진증후군)까지 겹치면 심한 우울 증세가 나타나고, 상태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시도까지 감행한다.
이렇듯 위험한 병이지만, 안타깝게도 자가 확인이 쉽지 않아 예방이 어렵다. 몇 가지의 체크리스트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단순한 심리·정신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예방책은 자녀들 손에 달렸다. 보통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과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러나 이럴 때 자녀가 따뜻하게 공감해주고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부모의 울화는 조금씩 누그러진다. 시니어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묻어둔 고충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게 좋다.
내가 왜 화를 냈지? 분노 컨트롤이 어려워
#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 B 씨는 최근 들어 자괴감이 많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들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자주 역정을 내곤 한다. 심할 땐 욕설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희한할 만큼 기분이 가라앉는데, B 씨는 분노조절이 안 될 때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몰려와 괴롭기만 하다.
분노조절장애는 뇌신경이나 호르몬 등의 문제로 스스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 뜻하지 않게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마치 조울증처럼, 심하게 화를 냈다가 이내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곤 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면 본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마음을 다스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특히 과거에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았거나 파킨슨, 치매 등 뇌 질환 환자인 경우는 분노조절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또,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뇌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망가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때로 분노조절장애가 지속되다가 우울증이 오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한 주변과의 소통 단절을 겪어 분노증후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중장년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증상이 더 심해지므로 환절기나 추운 계절엔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낸다면(주변에서 점검해주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보고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길 권한다.
법주사를 지나 ‘세조길’을 한참 걸어들면 세심정이다. 여기서부터는 조붓한 등산로가 시작된다. 상고암까지는 약 2km. 만만한 코스는 아니지만 암자에 오르면 찬탄하게 마련이다. 산상암자의 품격과 풍광이 빼어나서다. 이런 암자가 드물다. 암자 북편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너럭바위에선 속리산 연봉의 수려한 풍치를 일거에 조망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미더운 것은? 산이다. 늘 그 자리에서 높고 진실하고 초연하다. 산의 속성을 낱낱이 알아낼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리라. 퇴계를 만든 건 산이기도 했다. 그는 산을 보는 게 아니고 읽었다. 경전으로 섬겨 읽었다. 산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세속의 진흙탕에서 무리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속진(俗塵)에 찌든 마음엔 산이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 속리산(俗離山, 1058m)이라, 풀자면 ‘속세를 떠난 산’이다. 세속의 옹졸함을 일갈하는 은유일까.
세심정 구역을 지나자 바야흐로 속리산의 진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온갖 형용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계곡에 들어앉아 미를 겨룬다. 바위의 허연 살색은 밝아 숲을 밝히고도 남는다. 길차게 자라 하늘을 가리는 나무들. 그럼에도 빈틈을 비집고 들이치는 햇살. 티 없이 순수한 물과 나직한 물소리. 수정으로 빚은 세공처럼 투명한 물고기들. 산에 있는 경물마다 고매해 끌어안고 싶다. 저 유정한 것들, 오늘은 그저 여념 없이 누려보련다.
10월의 산길은 어느새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폭삭하다. 털북숭이 강아지들 우르르 달려 나간 자리처럼 마냥 포근한 기분을 안겨주는 낙엽길이다. 여름 내내 푸르디푸르게 약동한 잎들이 어느덧 낙엽 신세라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없다지만, 볼 장 다 봤다는 투로 추연하게 말라붙은 채 시치미를 떼는 낙엽의 종신(終身). 거기엔 통절한 게 있다. 방하착(放下着)이다. 다 내려놨다. 삶이란 천신만고한 레이스라지. 그렇게 소동을 치르면서도 종국엔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다는 진실을 기억하고 살기 어렵더라.
길은 이제 계곡을 버리고 능선 비탈로 이어진다. 가파른 길이라 아예 길에 업혀간다.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솔바람이 이마를 씻어주니 상큼하다. 바윗돌에 걸터앉아 쉬며 풍경을 보노라면 온통 나무요 바윗덩이다. 특히나 하늘 괸 기둥처럼 장엄한 석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사는 동안 갖은 잔재주를 다 부려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천년만년 의연한 큰 바위는 너무도 거룩하다. 봐라, 꽉 찬 보름달만 눈부시랴. 날고뛰는 수고 없이도 말안장처럼 시간을 타고 앉은 채로 묵연한 저 바위보살. 저것의 무설 법문이 환해 눈부시다. 애면글면 살 거 없다. 휘둘리지 않으면 거기가 도솔천이다.
이윽고 상고암(上庫庵)에 닿는다. 법주사에 딸린 산내암자들 가운데 가장 높고 외진 곳에 자리한 암자다. 뜰에 서자 저 아래 어딘가에 박혀 있을 사바세상이 꿈처럼 아득하다. 산중까지 침투한 도로교통으로 요즘은 대웅전 옆댕이까지 차가 닿지 않는 절이 별로 없다. 후미진 암자에까지 한사코 찻길을 낸다. 상고암은 여기에서 예외다. 땀 흘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서야 당도할 수 있는 산문이지 않은가.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고적하다. 새소리 바람소리만 드나들며 간혹 정적을 깬다. 그러하니 이 절의 스님은 오붓하여 쾌재를 부를 테다. 짬짬이 조는 외에 부처 공부를 하는 일 말고 무엇을 더 하랴.
수행이란 목숨을 거는 일이라 했다. 굶주린 승냥이 울음소리로 마음의 벗을 삼고, 주린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더라도 밥 구할 생각을 말라 했다. 밝은 것이 오면 밝은 것을 쳐부수고,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을 쳐부수라 했다. 그러자면 빙하도 녹일 뜨거운 결기가 필요할 테다. 절체절명의 고독 속으로 나를 밀어 넣어야 할 테고. 해서 수행자들은 가급적 뭐가 잡아가도 모를 산중유벽한 곳을 찾기를 습으로 삼았다. 절이 산으로 간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외로운 산상 암자 상고암에서 부처의 목을 벨 기세로 냅다 덤벼들어 도통을 갈구했던 이가 한둘이랴. 이렇게 보자면 이 암자는 저 아름다운 풍색보다 수행 가풍으로 한 가락 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뭘 모르는 이 멍청이는 마냥 풍경에 취한다. 극락전, 산신각, 영산전 등 하나같이 단아한 전각들과 고색창연한 돌계단들. 늙어 현명할 거목들과 여치처럼 애잔한 산국(山菊)들. 발아래 저 멀리서 출렁거리는 산군(山群)들, 또는 한눈에 잡혀오는 속리산 주봉의 바위 성채들. 다들 발군이며 심히 오묘하다. 게다가 시나브로 짙게 물들어가는 홍단풍의 교태라니. 녹아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앎’에 대한 강박으로 ‘모름’이 주는 자유를 뒤로한 채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정재현(鄭載賢·64)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는 ‘모르고 사는 것’ 못지않게 ‘살고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미 모름을 벗하며 살아왔으니, 더 좋은 내가 되겠노라, 더 열심히 가꾸겠노라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으로 우리의 삶을 넉넉하게 해줄 성찰들을 모아 ‘인생의 마지막 질문’을 펴냈다.
종교철학 분야 교수로 활동한 지 어언 30년. 정재현 교수는 개인의 삶과 전공의 현실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한 글을 엮어나갔다. 그렇게 삶에서 일어나는 물음들에 대한 통찰을 추려 ‘인생의 마지막 질문’에 담았다. 제목 속 ‘마지막 질문’이 지니는 속뜻이 남다르리라 여겨졌다.
“우리는 살면서 맞는 수많은 물음을 피할 길이 없는데, 이에 즉답하려고 안달하거나 강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그 물음을 모으고 모아 더 큰 물음으로 만들어간다면 이전의 물음들은 작은 물음이 되거나 더 이상 물음이 되지 않죠. 이러한 삶의 오묘한 생리를 나누고자 ‘마지막 질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질적으로 깊이를 아우르는 통찰을 지향한다는 취지로 새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마지막’이라는 말은 시간적 최후가 아니라 ‘대답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물음’, 즉 ‘삶의 궁극적인 물음’을 가리킵니다.”
몸이 나를 살고, 마음을 다스린다
정 교수는 책에서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살아가는 것’이며, 생명(生命)이란 ‘살라는 명령’과도 같다고 했다. 흔히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는 요즘, 그는 오히려 ‘인간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우리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시작한 생명인데, 정작 난자나 정자의 주인도 그것을 소유한다기보다는 빌려주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러니 주도권은 생명 자체에 있는 셈이죠. 즉 생명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거꾸로 나를 이루는 존재이고 사건이라는 겁니다. 너무도 당연한데, 우리는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대전제를 슬며시 잊어버리고 어느덧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소외와 억압을 겪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체성은 필요하다. 그러기에 주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고 자율일 테다. 정 교수는 “그 또한 소중한 가치이지만 우리 삶에서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강조하며 “이를 망각하면 주체는 인간에게 과잉된 자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그러한 관념에 지배당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것이 바로 주체의 모순이고 자유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내가 갖는 알량한 앎으로 모든 삶의 무게를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지만요. 그러니 삶이 나를 산다는 깨달음은 자기강박과 자기기만을 벗어나게 하는 해방구입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방종으로 가자는 건 아녜요. 혹시 내가 삶을 산다면 방종할 수 있겠지만 삶이 나를 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거든요.”
정 교수는 비슷한 맥락으로 “몸이 나를 살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인문·철학서를 보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강조하지만, 그는 ‘몸의 소리를 듣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연 모든 일이 마음먹기 나름이던가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나요? 물론 마음도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인 양 여기면 오히려 부담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몸으로 가죠. 마음과 몸은 불가분리인데 마음만 부추기면 그것은 결국 ‘앎’으로 쏠리게 됩니다. 이에 비해 몸은 ‘모르고도’ 사는 삶의 터이며 곧 삶이죠. 나는 몸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잖아요. 바로 몸의 그러한 역할과 의미에 주목해 삶의 생리를 따르자는 겁니다. 마음을 구실로 몸을 혹사해온 것이 문명세계를 사는 우리의 현실이라면 이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건강관리도 결코 부차적인 게 아니죠. 오히려 마음을 다스릴 몸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코로나19, 숨과 쉼 필요해
정 교수는 책을 통해 앎과 모름, 있음과 없음, 지식과 지혜 등 대조적인 두 단어에 대해 깊이 통찰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름의 모름’에 다가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모른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앎은 모름을 없애는 걸 목표로 하지만, 모름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모름을 안다는 것은 한 단계를 뛰어넘는 거죠. 그런데 이는 막연합니다. 모름이 무엇인지 얼마나 넓고 큰지 알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한 번 더 뛰어넘어야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모르는 단계까지 말이죠. 모름의 앎이 그저 ‘앎’이라면, 모름의 모름은 ‘삶’입니다. 무슨 대단한 경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 모름으로 에워싸인 삶에 보다 진솔해지자는 겁니다. 늘어나는 앎 속에서도 삶이 더 힘들어진다는 점에 견주어본다면 모름의 모름이 주는 편안함은 소중한 통찰이죠.”
정 교수는 삶을 편안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문제 대신 즐기기’를 제안했다.
“문제를 해결한 뒤 삶을 즐기겠다는 건 일종의 완벽주의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문제 대신 즐기라는 건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옆에 두고서라도 즐길 방법을 찾으라는 거죠. 살면서 씨름할 문제들은 ‘해결’로 종결되기보다 ‘해소’로 흩어집니다. 앞서 말한 ‘물음’처럼 더 큰 문제를 만나면서 지금의 문제가 작아지고 결국 문제가 아닌 것이 되며 해소되는 셈이죠.”
최근 인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무증상감염자는 자신도 모르게 남을 감염시킨다. 이렇듯 없음과 모름이 에워싼 형국에서 한 줌밖에 안 되는 인간의 ‘앎’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정 교수는 이러한 위기 속, 기도를 통한 ‘숨’과 ‘쉼’이 절실하다고 이야기했다.
“백신은 없는데 감염됐을지도 모르는, 없음과 모름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놓아야죠.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는 바로 이렇게 놓는 길에 다가서는 몸짓입니다. 있음과 앎만을 붙잡고 삶을 헤쳐갈 수 없으니 이제 할 일은 없음 앞에서 숨을 고르고 모름 앞에서 쉬는 것입니다. 더불어 자연에게도 쉼을 주어 스스로 숨을 쉬게 해야 할 테니까요. 인간과 자연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숨과 쉼의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법주사를 지나 ‘세조길’을 한참 걸어들면 세심정이다. 여기서부터는 조붓한 등산로가 시작된다. 상고암까지는 약 2km. 만만한 코스는 아니지만 암자에 오르면 찬탄하게 마련이다. 산상암자의 품격과 풍광이 빼어나서다. 이런 암자가 드물다. 암자 북편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너럭바위에선 속리산 연봉의 수려한 풍치를 일거에 조망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미더운 것은? 산이다. 늘 그 자리에서 높고 진실하고 초연하다. 산의 속성을 낱낱이 알아낼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리라. 퇴계를 만든 건 산이기도 했다. 그는 산을 보는 게 아니고 읽었다. 경전으로 섬겨 읽었다. 산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세속의 진흙탕에서 무리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속진(俗塵)에 찌든 마음엔 산이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 속리산(俗離山, 1058m)이라, 풀자면 ‘속세를 떠난 산’이다. 세속의 옹졸함을 일갈하는 은유일까.
세심정 구역을 지나자 바야흐로 속리산의 진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온갖 형용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계곡에 들어앉아 미를 겨룬다. 바위의 허연 살색은 밝아 숲을 밝히고도 남는다. 길차게 자라 하늘을 가리는 나무들. 그럼에도 빈틈을 비집고 들이치는 햇살. 티 없이 순수한 물과 나직한 물소리. 수정으로 빚은 세공처럼 투명한 물고기들. 산에 있는 경물마다 고매해 끌어안고 싶다. 저 유정한 것들, 오늘은 그저 여념 없이 누려보련다.
10월의 산길은 어느새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폭삭하다. 털북숭이 강아지들 우르르 달려 나간 자리처럼 마냥 포근한 기분을 안겨주는 낙엽길이다. 여름 내내 푸르디푸르게 약동한 잎들이 어느덧 낙엽 신세라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없다지만, 볼 장 다 봤다는 투로 추연하게 말라붙은 채 시치미를 떼는 낙엽의 종신(終身). 거기엔 통절한 게 있다. 방하착(放下着)이다. 다 내려놨다. 삶이란 천신만고한 레이스라지. 그렇게 소동을 치르면서도 종국엔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다는 진실을 기억하고 살기 어렵더라.
길은 이제 계곡을 버리고 능선 비탈로 이어진다. 가파른 길이라 아예 길에 업혀간다.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솔바람이 이마를 씻어주니 상큼하다. 바윗돌에 걸터앉아 쉬며 풍경을 보노라면 온통 나무요 바윗덩이다. 특히나 하늘 괸 기둥처럼 장엄한 석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사는 동안 갖은 잔재주를 다 부려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천년만년 의연한 큰 바위는 너무도 거룩하다. 봐라, 꽉 찬 보름달만 눈부시랴. 날고뛰는 수고 없이도 말안장처럼 시간을 타고 앉은 채로 묵연한 저 바위보살. 저것의 무설 법문이 환해 눈부시다. 애면글면 살 거 없다. 휘둘리지 않으면 거기가 도솔천이다.
이윽고 상고암(上庫庵)에 닿는다. 법주사에 딸린 산내암자들 가운데 가장 높고 외진 곳에 자리한 암자다. 뜰에 서자 저 아래 어딘가에 박혀 있을 사바세상이 꿈처럼 아득하다. 산중까지 침투한 도로교통으로 요즘은 대웅전 옆댕이까지 차가 닿지 않는 절이 별로 없다. 후미진 암자에까지 한사코 찻길을 낸다. 상고암은 여기에서 예외다. 땀 흘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서야 당도할 수 있는 산문이지 않은가.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고적하다. 새소리 바람소리만 드나들며 간혹 정적을 깬다. 그러하니 이 절의 스님은 오붓하여 쾌재를 부를 테다. 짬짬이 조는 외에 부처 공부를 하는 일 말고 무엇을 더 하랴.
수행이란 목숨을 거는 일이라 했다. 굶주린 승냥이 울음소리로 마음의 벗을 삼고, 주린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더라도 밥 구할 생각을 말라 했다. 밝은 것이 오면 밝은 것을 쳐부수고,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을 쳐부수라 했다. 그러자면 빙하도 녹일 뜨거운 결기가 필요할 테다. 절체절명의 고독 속으로 나를 밀어 넣어야 할 테고. 해서 수행자들은 가급적 뭐가 잡아가도 모를 산중유벽한 곳을 찾기를 습으로 삼았다. 절이 산으로 간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외로운 산상 암자 상고암에서 부처의 목을 벨 기세로 냅다 덤벼들어 도통을 갈구했던 이가 한둘이랴. 이렇게 보자면 이 암자는 저 아름다운 풍색보다 수행 가풍으로 한 가락 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뭘 모르는 이 멍청이는 마냥 풍경에 취한다. 극락전, 산신각, 영산전 등 하나같이 단아한 전각들과 고색창연한 돌계단들. 늙어 현명할 거목들과 여치처럼 애잔한 산국(山菊)들. 발아래 저 멀리서 출렁거리는 산군(山群)들, 또는 한눈에 잡혀오는 속리산 주봉의 바위 성채들. 다들 발군이며 심히 오묘하다. 게다가 시나브로 짙게 물들어가는 홍단풍의 교태라니. 녹아날 수밖에 없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와 사락사락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비슷하게 들려서일까. 아니면 쌀쌀한 날씨,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독서가 그 자체로 운치 있어서일까. 평소에는 바쁜 일상에 독서를 멀리하다가도 가을이 되니 괜히 먼지 쌓인 책장이 눈에 띈다. 한동안 책장 근처를 얼쩡대다 큰 맘 먹고 한 권을 집어 든다. 하지만 지적 욕구로 충만한 마음과는 달리 첫 장을 피는 순간 졸음이 쏟아지고, 하품이 난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이다.
빼곡한 글자 앞에서도 잠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책과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내용에 흥미를 붙여야 한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올 가을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 브라보 독자를 위해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2010)
안정적인 직장과 번듯한 남편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는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정해진 인생의 행로를 벗어나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로 이어지는 여정 동안 말 그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내면을 풍요롭게 채워나가는 리즈의 모습을 통해 행복이 그리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적인 연기와 더불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 여행지의 아름답고 찬란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 빅피쉬 (Big Fish, 2003)
다니엘 월러스의 원작 소설로, 아들 '윌'(빌리 크루덥)이 병상에 누워있는 노쇠한 아버지 '에드워드'(알버트 피니)의 허풍 가득한 영웅담을 듣고, 아버지가 떠나기 전 그의 진짜 모습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의 모험담을 추적하는 윌의 또 다른 여정을 통해 가족 앞에서 영웅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가슴 찡한 진심을 그린다. 괴짜 감독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아 에드워드의 드라마틱한 모험 장면을 환상적이고 동화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촬영 당시 700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6개의 서커스단, 150여 마리의 동물, 1만 송이의 수선화 등을 투입하는 등 시각적 요소를 극대화 했다.
3. 지니어스 (Genius, 2016)
유력 출판사의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가 무명작가 '토머스 울프'(주드 로)의 원고를 보고 그의 가능성을 발견해 세기의 소설가로 키워낸 이야기를 담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천재 작가로 평가 받는 토마스 울프의 실화 바탕으로, 울프의 4대 장편소설 중 첫 작품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탄생 비화를 그려낸다. 스콧 버그의 책 '맥스 퍼킨스: 천재 편집자'를 원안으로 완성됐다. 연출가 겸 배우인 마이클 그랜디지가 감독을 맡아 1920~30년대 미국 뉴욕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재현했으며, 콜린 퍼스와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합류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35년간 암을 연구해온 암 과학자 김규원(金奎源·68) 서울대학교 약대 명예교수. 그는 2006년부터 투병해온 암 환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에게 암은 한때 동료처럼 친근했지만, 하루아침에 어둠 같은 존재로 돌변했다.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자 몸과 마음이 공명하기 시작했고, 육체적 상실은 정신적 자유로 승화했다. 아직 암은 완치되지 않았지만 그는 ‘미로 속에서 암과 만나다’를 통해 어둠 속 암에 작은 희망의 등불을 비춰보고자 한다
단순 비염으로 여기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던 김 교수. 얼마 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비강상악동 미분화암종’이라는 희귀 암 진단을 받은 것. 암 연구자답게 그는 관련 문헌부터 찾아봤다. 자료에 따르면 극히 희귀한 암으로, 증식 속도가 매우 빨라 판정 후 생존기간이 수개월에 불과하며 뚜렷한 치료법도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암들은 치료 방식이 확립돼 있어 대부분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제 경우엔 워낙 희귀 암인 데다가 몇 개월 안에 사망한다니 무척 막막하더라고요. 그동안 쌓아온 암에 관한 지식도 그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관념적으로만 대해왔던 암과 실제는 천지차이였죠. 온통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휩싸였고 모든 게 다 멈춰버린 듯했어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딸과 아내에게 유서도 미리 써둘 정도로 불안했었죠. 당시 딸아이가 고1이었는데, 대학 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더라고요.”
몸과 마음의 공명으로 찾은 평안
다행히 그는 투병생활을 잘 견뎌냈고, 간절했던 소원도 이뤘다. 또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저서 ‘미로 속에서 암과 만나다’도 펴냈다. 같은 처지의 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더 빨리 선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간 두 번이나 재발이 됐고 후유증 치료를 하느라 시간이 부족했어요. 중간에 전공 관련 서적을 출간하긴 했지만, 이번 책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 쓴 거라 의미가 다르죠. 전반부에는 당시 수기로 적어뒀던 투병일지를 실었고, 후반부에서는 항암제와 암의 역사를 짚어봤어요. 제 경험을 통해 공감과 위로의 말씀도 드리고자 했지만 암 연구가 나아갈 길을 논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희망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만큼 의연해진 모습이지만, 김 교수 역시 처음엔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사라질 수 있게 하는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는 공포가 가장 컸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에 힘을 얻기도 했지만, 충격의 나날들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동료나 제자들이 와서 긍정적인 말을 해주면 잠시 기운이 나요. 그러다 혼자일 땐 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마주하곤 했죠.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느 누구도, 가족조차도 내 앞에서는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어요. 저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던 거죠. 초반엔 죽음만 떠올리면 마음이 확 얼어붙었어요.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 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면서부터였죠.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다 죽는다,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생성된 모든 것은 변화와 소멸을 겪는다, 나도 마찬가지, 암도 마찬가지…. 명상을 통해 그런 생각들에 집중하다 보니 차차 덤덤해지고 편해지더군요. 그렇게 얼어 있던 마음이 녹아 흘러가고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안을 되찾으려 애쓰고, 명상으로 마음이 아물어갔지만, 몸 곳곳엔 암이 휩쓸고 간 흔적이 뚜렷했다. 후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 대부분을 상실했고, 괴사가 일어난 얼굴엔 눈에 띄는 구멍까지 생기고 말았다. 2년 5개월에 걸친 11차례의 성형수술 끝에 구멍은 다행히 메웠다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터. 혹시 외적인 변화로 인한 상실감에 우울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상실감이 컸죠. 암이 제일 큰 원인이지만 노화로 인한 변화도 있었어요.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생성된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기니 당연히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건강하던 젊은 시절에 매여 있는 건 집착이죠. 몸의 흐름에 마음이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달라져가는 모습에 상실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내면의 소리에 따라 몸과 마음이 공명하면 금방 적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는 암과 약
김 교수는 몸소 암을 겪으며 외부 대상에만 비췄던 연구의 관점이 자연스레 스스로를 향하기 시작했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에 따른 감각, 감정의 흐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더불어 고통을 겪는 환자 등 주위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의 폭도 넓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투병 과정을 통해 암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재까지의 암 연구는 세분화에 집중해왔어요. 크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않고, 암 세포나 유전자 등 세밀한 영역으로만 파고들었던 거죠. 가령 암 분야에서 가장 해결이 안 되는 게 ‘전이’입니다. 암이 전이되려면 림프계나 면역계, 순환계 등을 거쳐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우리 몸의 시스템이 전이가 가능하게 놔두는 것인지, 몸속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어떻게 암세포와 상리 공생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데,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면 암을 조금 멀찍이 두고 봐야 한다는 거죠.”
김 교수는 2017년 정년퇴임 후에도 서울대학교 약대 명예교수 겸 석좌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제2인생에 대한 계획을 묻자 그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전공의 연장선에서 일궈나갈 생각이라고 답했다. 스스로 지은 아호 ‘약산’(藥山)처럼 그야말로 약학 분야의 외길을 걸어가는 셈이었다. 그런 그가 향하는 약산의 정상은 어떤 모습일까.
“약학 분야에서 큰 공적을 쌓아 산을 이루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산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서 보면 약학 분야를 좀 더 넓고 깊게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호도 그리 지은 거죠.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항생제는 10~20%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농축산물이나 어류 양식장 등에 쓰이죠. 그런 항생제의 남발로 지구상의 수많은 미생물과 생태계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 우리는 인간 중심적으로만 약을 대해온 것 같아요. 이제 약의 용도가 뭔가를 죽이고 박멸하는 기능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의 지평을 넓혀가야만 현재 인류가 겪는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에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이란 책을 발간했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평균 49.5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40대 후반~50대 초반이다.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는 시점까지는 평균 12.5년이 걸린다. 이 상황을 소득 크레바스(crevasse)라고 한다. 크레바스는 히말라야 등정을 하는 산악인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 지점을 말한다. 얼음과 얼음 사이에 틈이 벌어져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는 낭떠러지다. 우리 삶에도 크레바스가 있다.
퇴직은 소득 중단을 의미한다. 매월 들어오던 급여가 어느 날부터 뚝 끊어진다. 가정은 일정한 소득이 들어오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아도 매달 필요한 기본경비가 있다. 상황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의식주에 들어가는 기본경비는 만만치 않다. 한 달에 두세 번 마트를 갔다 오면 아내는 볼멘소리를 한다. 먹는 데 들어가는 식료품비가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사계절이 있어 옷도 가끔 사야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통신비는 또 어떤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각자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필수다. 정부에서 조사한 바로 1인당 생활비는 170만 원이라 한다. 그러니 부부가 생활하려면 월평균 생활비는 최소한 250만 원 이상 되어야 한다. 퇴직자에게 매월 250만 원은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퇴직자의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에만 있지 않다. 돈이 있어도 할 일이 없으면 고통이다. 돈도 없으면서 할 일이 없다는 건 더 지옥이다. 은퇴 후에도 치열한 생활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 때문에 노후의 생을 낭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은퇴 전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자신의 삶도 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마음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 연습이 필요하다. 마인드컨트롤도 하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행복은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고 숨 쉬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철따라 형형색색 피는 꽃과 향기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풀벌레 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도 즐겨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조그만 동산이 하나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고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노랗고 붉게 꽃을 피운다. 가을엔 노란 은행나무 잎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얼마 전 은퇴 기념으로 지리산에 숙소를 얻어 열흘을 지내고 왔다. 조용한 숲속에서 아침을 맞아 커튼을 열자 온갖 새소리가 들렸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집 베란다를 열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지리산에서 듣던 새소리가 앞동산에서도 들려오는 것이었다.
“지리산에서는 그렇게 새소리가 잘 들렸는데 여태껏 왜 집에서는 새소리를 듣지 못했지?”
아내가 놀라워했다.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그만큼 집중을 못해 듣지 못한 것이었다. 새벽부터 출근하랴 일상에 쫓기다 보니 새소리 들을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좀 내려놓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행복은 결과보다 과정”이란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아내랑 말다툼을 했다. 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내 방으로 와 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싸움의 원인은 별것 아니었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시간이 필요했다. 기분이 나쁘면 TV를 켜거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 기분도 더더욱 아니다. 이럴 때 나만의 비법이 있다. 인터넷으로 바둑 게임을 한다. 바둑을 두는 시간만큼은 몰입이 되어 잡념은 포맷되고 머리는 리셋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에 다니던 형님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당시 형님 실력은 8급 정도 됐던 것 같은데 나는 4점을 놓고 뒀다. 둘 다 걸음마 단계의 초보 기력으로 꼼수도 두고 잡히면 물려달라고 떼도 썼다. 어떤 때는 대범하게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 하면서 큰소리치기도 하고 상대 바둑돌 잡는 재미를 즐기며 서로 배웠다. 그 시절이 벌써 40여 년 전이다. 군대생활을 할 때는 바둑 좀 둘 줄 안다고 하늘같은 상관인 대대장과도 수담을 했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바둑을 매개로 폭넓은 교류를 맺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바둑 좀 둔다 하면 좋은 바둑판과 바둑돌을 세트로 준비해놓고 집으로 손님들을 초청했다. 동네 기원도 늘 벅적였다. 바둑 관련 추억의 하이라이트는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구내식당에서 남들보다 밥을 빨리 먹고 바둑판이 비치된 휴게실로 달려갔다. 도착하는 순서로 상대를 찾고, 한발 늦으면 구경꾼이 되어야 했다. 구경꾼들이 훈수를 두면 동네 바둑판이 되어 멀쩡히 살아 있는 돌이 죽기도 하고 죽은 돌이 살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훈수 덕택에 묘수가 만발했다. 직장에는 바둑동호회가 있었고 정기대회 때는 푸짐한 상품이 걸리기도 했다. 전철을 타면 바둑 책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과거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직접 만나 바둑판을 앞에 놓고 바둑을 뒀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으로 인해 바둑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바둑을 둘 때는 바둑돌과 바둑판이 필요 없다. 대적할 상대를 찾는 방법도 간단하다.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같은 급수의 명찰을 단 선수들이 즐비하다. 살고 있는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접속을 해온다. 밤낮이 없다. 새벽 1시에 접속해도 상대를 찾을 수 있다. 다들 환호하며 맞아준다. 휴일도 없다. 365일 언제나 접속이 가능하다.
나이 들어갈수록 바둑을 잘 배워뒀다는 생각을 한다. 바둑은 머릿속으로 변화의 수를 읽으며 최선의 수를 찾는 게임이다. 치매 예방에 딱 좋다. 골치 아픈 일에서 잠시 해방되고 싶을 때나 할 일이 별로 없는 시간부자들에게도 맞춤 취미다. 조치훈 프로기사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고 했지만 아마추어인 일반인들은 그냥 재미로 두면 된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도 여럿 있다.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어 배우기도 쉽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어 좀 일찍 배워두면 더 좋다. 잠시 넋을 놓고 바둑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시니어의 또 다른 낭만이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고 너무 빠지지는 말자.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서 사망한 '천안아동학대사건'과 4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창녕아동학대사건'은 국민들로부터 “부모가 자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공분을 샀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생후 3개월 된 아들이 운다고 유아용 손수건을 말아 입에 넣고 방치해 아기가 사망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도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는 친부가 단순히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손수건을 집어넣은 채 방치한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단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이런 행위를 했다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이 아버지인 20대 남성은 7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대에 7년 형기라면 젊은 시절은 다 가고 만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옛날 대가족 사회에서는 아기 양육을 도와줄 할머니 할아버지나 고모 삼촌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핵가족 사회에서는 오직 부모밖에 없다.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부모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준비나 아이를 양육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보니 축복받고 자라야 할 아기가 귀찮은 존재, 천덕꾸러기가 된다.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성인이 되면 또 다른 불행의 싹이 된다.
자기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아기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 집에 가보면 책상 위에 육아에 관한 책들이 꽤 있다. 젊은 부부들이 육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육아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학교 교육을 받을 때부터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둘 익힌다면 어떨까. 젊을 때 한 공부라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영유아기는 신체, 인지, 언어, 정서, 사회 등 발달의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는 민감한 시기다. 생애 최초의 교사인 부모의 양육 태도와 가치관은 아이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은 절대적이며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모두 밝혀졌다. 영유아기 때 부모가 알고 있어야 할 육아 상식은 한둘이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학대하거나 문제를 야기한 부모를 색출해 처벌하는 것만을 능사로 해서는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다. 결혼과 육아 문제를 결혼 전에 충분히 학습해 육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물심양면으로 성숙한 사람이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남학생들에게도 육아교육을 받게 한다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와 대화할 줄 아는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을 통해 좋은 부모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국가에서 출산장려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건전한 부모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 지금도 지자체별로 부모교육 강좌가 있기는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간이 짧고 대상 인원도 너무 적다.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정규 강좌로 편성해 실시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