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나의 삶에서 얼마나 ‘참[眞] 나’로 살아왔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과 모자람을 애써 부여잡고 진짜 나를 뒤로하지는 않았던가.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책과나무)의 저자 신아연은 그런 이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과 고통의 경험을 말미암아 그 고유함이야 말로 내면의 자산이 되어 삶을 넉넉하게 해주리라 이야기한다.
Q.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펴내시게 된 계기와 소감 부탁드립니다.
7년 전, 옷 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났습니다.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둑시근한 신림동 고시촌 방에서 어떤 날은 라면 하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며 주야장천 글을 썼습니다. 3년 전부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글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냈습니다. 삶의 질곡에서 글을 붙잡았고, 삶이 또한 글을 잡아주었습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 언저리에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싶습니다. 그러한 자각과 구체적인 자기 훈련의 결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네요. 이혼 후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단단해진 동시에 한 꺼풀 벗는 느낌도 있습니다. 내 삶의 마스터키를 쥔 것 같고, 소명이랄까, 본래 음성이랄까, 살아갈 의미랄까 이런 것들이 좀 더 분명해진 듯합니다.
Q.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껴안아 버리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약점과 실패와 좌절과 붙잡힌 발목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놓아지지도 않는 그 부족함과 모자람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지금 이 자리가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안고 살아가십시오.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아집디다.
Q. 자생한방병원 사이트에 ‘영혼의 혼밥’이란 타이틀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글 300편 가운데 100편을 엮은 책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글을 추리셨나요?
‘인생은 목차다’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하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글 내용은 저절로 정리가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뒤섞이고 모호하게 흩어져 도무지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을 때는 인생을 목차로 나눠보는 겁니다.
책에는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이란 긴 부제가 붙어있는데, 인생 중반의 목차와 같은 거지요. 참 자기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처지가 녹록하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남은 삶은 더욱 명료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함 그대로 남은 생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 그러니까 50 쯤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옵니다. 제 경우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그게 제 현실인 걸요.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와 여정으로 가야지요. 이번 책은 제게 후반 인생의 새로운 목차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목차마다, 100개 제목마다 감회가 새롭고 남은 생에서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이혼 후 삶의 어떤 부분에서 ‘본래 자기(참 자기)로 산다는 것’을 체감하시는지요.
25년 동안 매 맞는 아내로 살았습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을 갔고, 좁은 교민사회에서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만 급급해 서서히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됐고, 남편의 폭력 수위는 점점 높아져 이러다 맞아 죽겠다 싶어 맨 몸뚱이로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후 수순처럼 절박한 가난이 찾아왔지만 이는 오히려 저의 정신을 맑혔습니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는 인식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차츰차츰 일어서며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14/감(感)]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면요?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남 다른 재능을 발휘하거나 각별한 사회적 성취를 거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령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이 고유한 자기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통해 배울 게 있고 정신적, 영적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겠지요. 인생의 모든 면에서 남에게 설명할 수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그런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남을 흉내내거나 부러워하면서 나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는 혼자 견딘 세월이 저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년간 아무도 안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곰이 웅녀가 됐듯이,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내면 자산이 되었고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넉넉하게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Q. [46/삶의 농도를 더 짙게 하려면]에서 새해가 될 때마다 죽음 생각이 나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살아있는 한 ‘죽음 그 자체’는 경험할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관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죽음을 자주 말합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삶을 그만큼 공고히 다진다는 의미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죽는 것이 무서웠어요.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죽으면 다 끝인데 해서 뭐하나. 피땀 흘려 해냈는데 그 다음날 죽으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았으니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해야 하나요? 죽음은 두려워할 일은 확실히 아니지요. 준비해야 할 일일 뿐. 최근 죽음학 연구자 최준식의 저서 ‘죽음 가이드북’을 읽었는데,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할 적절한 나이까지 가이드 합니다. 40세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지요. 많은 사람이 죽음 준비에 이미 늦었을 수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죽음의 준비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Q. [65/좋은 글을 쓰기 위한 딱 한 가지]에서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라는 것을 명심하고, 죽을 때까지 정말 누구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지 말라 조언하셨지요. 스스로도 그러한 글을 쓰시는지요?
이 말을 한 데에는 글이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지요. 글은 그럴듯하게 쓰지만 실제 삶과의 괴리가 크거나 위선적인 사람도 있지요. 저도 예외가 아닐 테고요. 그 이유는 식당 음식처럼 내다 팔기 위한 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조미료를 쳐서라도 억지로 맛을 내야 하는 겁니다.
반면,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 뿐’이라면 ‘집밥’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정성어린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제게 그런 시도는 호주에 사는 두 아들에게 편지 쓰기와 묘비명 쓰기가 될 것 같아요. 최근에 제 묘비문(文)을 이따금, 그러나 정기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묘비에 새기고 말고와 관계없이 그 글만큼은 진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발로인 거지요. 한 생이 완전히 문을 닫는 죽음 앞에서까지 거짓된 글을 쓴다면 생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의미이니까요. 묘석의 글은 살아서는 오직 나만을 독자로 함과 동시에, 죽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진실한 글이 되겠지요.
Q. 호주에 사는 두 아들은 아직 어머니의 글을 읽지 못했다죠. 그동안 출간해온 책 중 한 권이 번역본으로 나와 자녀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고 싶나요?
한국으로 돌아온 2013년 이후 총 5권의 책을 냈는데, 그때마다 책머리에 “나의 두 아들 진원과 규원을 믿고 사랑하고 기다리며 이 책을 냅니다. To my lovely sons, Jinwon & Kyuwon”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 글을 읽지를 못해요. 아주 어릴 때 이민을 가서 한글 독해력이 부족해서지요. 그런데 그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만약 아이들이 제 글을 읽었다면 글 속 엄마와 자신들이 아는 엄마가 달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제 책이 영문으로 출판될 수 있다면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독도를 까맣게 덮을 만큼 그 수가 많았으나 일본 강점기 때 멸종된 독도 강치 이야기로, 무자비한 도륙과 처참했던 대학살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어린 강치 한 쌍이 천신만고 끝에 호주 연안에서 구조되고, 일생을 동물원에서 보낸 후 아들 강치를 고향 독도로 돌려보낸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한국의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고, 해외 동포들의 애환을 강치를 통해 비유적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신들의 처지와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Q. 책에서 ‘노자’ ‘장자’, ‘공자’ 등 성현들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새기는 문장이 있다면요?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를 들고 싶네요. 노자 도덕경 56장 첫 구절입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데 현실은 그 반대지요. 저는 특히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말과 글로 노상 업을 짓고 있습니다. 무심코 휘두른 혀로 영혼의 각을 뜬 적도 있었을 테고, 독을 묻힌 글 끝으로 누군가의 심장을 찌른 적도 있었을 겁니다. 존재의 참 모습과 실재는 언어적 표현 너머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요. 쉴 새 없이 나불대며 다 아는 것처럼 굴수록 실상과 진상에서는 점점 멀어집니다. 오히려 입을 다무는 순간 바른 이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Q. 아울러 독서를 통해 인생의 면역력을 올리고 계십니다. 헌데 독서 근육이 없어 책 읽기가 힘들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들에게 독서에 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독서 근육’이란 말이 재미있네요. ‘마음 근육’이란 말도 있더군요. 마음에 근육이 있으면 인생에 면역력이 생깁니다. 마음의 근육은 독서 근육에서 키워질 것 같고요. 지난 7년 간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로 인해 마음의 공허함과 의존심이 시나브로 메워졌고 여간해선 상처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에 없던 자긍심도 생겼고, 분별없이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독서는 한 마디로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줍니다.
진짜 나는 책이 안 읽힌다, 도저히 못 읽겠다면, 하루에 한두 쪽씩만 읽어보면 어떨까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천권 책도 한 쪽씩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그 첫 책으로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권합니다. 농담이지만 이유는 있어요. 이 책은 한 제목 당 두 쪽으로 구성돼 있거든요. 부담 없이 금방 한 권을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줄 겁니다.
Q. ‘백세시대 글쓰기 모임’을 하고 계십니다. 모임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글쓰기는 ‘마음 기경’과 같습니다. 오래 방치해서 딱딱하게 굳고 척박해진 땅이나, 거꾸로 무리한 경작으로 기운이 고갈된 땅에 파종해 봤자 될성부른 싹이 올라오기 어렵지요. 백세시대의 글쓰기는 전반 인생을 살면서 굳고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을 기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끄는 글 모임은 정직한 내면 돌아보기, 담담히 인생 회고하기 등으로 마음을 닦고,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글을 도구로 마음을 기경하는 방식이지요.
지난 반평생은 외부의 것으로 살아왔지만, 남은 반평생은 자신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롯이 자신의 덕과 정신력으로 인생 백세를 채워야 하는데, 제 생각엔 글쓰기가 가장 파워풀하다고 봅니다. 생애 대부분을 고난에 치여 왔고 앞으로도 빈곤과 고독 가운데 살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면 인생 후반전은 글쓰기를 권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노후가 펼쳐질 것입니다.
Q. 말씀처럼 글쓰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려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권하고 싶나요?
요즘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요. 무슨 차이일까요. SNS에 쓰는 글과 내가 본래 쓰고 싶은 글이 다르다는 의미 아닐까요? 자랑, 맛집, 여행기, 남의 이야기 등이 넘치지만 이는 자기 성찰이나 삶의 정리와는 거리가 멀지요. 이런 글로는 자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보여주기 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니, 보여주되 벌거벗은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빤스’ 정도는 걸쳐도 되지만 갑옷으로 무장해서는 안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용기를 요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나의 내면에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Q. 연기를 배운다고 하셨지요. 이렇듯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책은 거울이지요. 타인의 관점, 객관적 시각, 보편적 사유 등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지요. 나라는 개별자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드러날 기회입니다. 반면 글쓰기는 내시경이랄까요?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내는 작업입니다. 글이 정직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의 내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치유하는 겁니다.
연기를 배운 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를 감추고서는 연기가 되질 않아요. 흔히 연기란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다른 사람이 곧 자신이더란 말이죠. 결국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아가 뒤섞이면서 ‘우리’로 태어나는 것이 연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무엇을 새로 배우고 경험한다면 이렇듯 인간으로서 성숙할 계기가 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로 독자와 만나고 싶으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성과 감성이 주 역할을 하지요. 현대는 둘 중 정서지능, 감성지능을 우위에 두고 있고요. 글도 정보나 지식적인 것보다 마음에 울림이 있는 글을 더 좋아하지요. 이처럼 지성보다 감성이라면, 감성보다는 무엇일까요? 네, 영성이지요. 앞으로 제 글의 방향은 영성지능에 공명을 일으키는 쪽이 됐으면 합니다. 영성이 개발되면 ‘참 나’를 만날 수 있고, 자의식이 아닌, 참 나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을 깨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신아연 소설가·칼럼니스트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등을 펴냈다.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고 있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이곳 동네 책방 한쪽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가슴속 묻어뒀던 작은 행복 하나가 ‘똑똑’ 심장을 두드리며 응답한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행복한 삶’이 좋다. 오늘 당장 떠날 것, 가까운 동네 책방으로!!”
“책방도 사업입니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 문 닫아야죠.”
어? 이 사람 ‘찐’이다. 소위 공트럴파크(공릉동+센트럴파크), 옛 경춘선 철길 따라 조성된 노원구 시민공원 한쪽 2층에 위치한 동네 책방 ‘책인감’. 이곳에 위치해 있던 책방 ‘51페이지’를 인수해 간판을 바꿔 단 지 2년 9개월 됐다.
이제 막 전업 3년 차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기업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동네 책방 운영자, 1인 출판사 사장 및 출판 기획자, 저자, 강연자, 콘텐츠 기획자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세포분열 중이다.
이철재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 18년 동안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조금씩 직책이 높아지고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단다. 합리적이지 않은 상사의 지시, 몇 차례 설득과 설명을 해도 돌아오는 건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싫었다. 부하 직원에게 자신 역시 똑같이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고 업무 성과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됐을 때 인생 2막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어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 마음먹고 동네 책방 쪽을 알아보게 됐단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사업체 인수가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51페이지’와 계약을 하면서 미련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딱히 책을 열렬하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단다. 자전거 타고 전국을 누비며 여행을 하다가 동네에 자그맣게 자리한 동네 책방들을 만나게 됐고 콘텐츠로서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나와 새로운 인생의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만 ‘바깥은 전쟁터’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를 실감하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 출신이 운영하는 동네 책방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인장 ‘이철재’를 궁굼해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정답은 없지만 계속 도전하는 이유
현재 이철재 대표는 꾸준히 책 관련 콘텐츠 기획을 하며 외연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부터 동네 책방 운영만이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 ‘책인감’을 통해 ‘이철재’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책을 출간하고 싶은 이들과 협업으로 세 권의 책을 더 세상에 선보였다.
이 대표의 저서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은 서점 주인만을 대상으로 펴낸 책이 아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가게 운영자들이 꼭 알아야 할 A부터 Z까지의 노하우를 담았다. 경영학도답게 1년간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시장분석을 통해 스스로를 컨설팅하고 전국의 동네 책방까지 컨설팅해준다.
이 책이 동네 책방에서 판매되고 지역 서점조합의 주문도 받게 되면서 종종 서점조합이나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 강연자로 초대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동네 책방 업계에 ‘이철재’라는 세 글자를 알리게 된 셈이다.
그런데 책 출간 방식이 기존 출판사 문법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책을 먼저 판매한 뒤 출간을 진행한다. 지난해 3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펀딩에 나섰고 220명으로부터 531만3800원의 후원을 받았다. 그 뒤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이 출간됐다.
이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두 번째 책은 ‘제주 힐링 여행 가이드’. 대한민국 자전거길 국토 완주 그랜드 슬럼을 달성할 만큼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볐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제주 토박이와 관광객으로 이분화돼 있는 제주의 숨은 여행지와 맛집 등을 중간자적 입장에서 소개한 안내서다. 역시 텀블벅 펀딩으로 79명으로부터 164만 원의 후원을 받아 출간됐다.
‘책인감’ 이름으로 펴낸 세 권의 책은 모두 책방 고객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 출간됐다. 서울시민정원사회가 펴낸 ‘서울시민정원사가 들려주는 가드닝 이야기’, 시와 꽃 동인들이 펴낸 시집 ‘꽃씨한톨’, 간호사 김미정 씨가 펴낸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 등이다.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갖거나 자주 방문하는 고객들이 토로한 출판의 어려움을 듣고 시작된 프로젝트들이다.
“동네 책방은 왜 대박을 기대하면 안 되죠?”
이렇듯 이철재 대표는 동네 책방을 기반으로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두번째 외연 확장은 마을공동체 및 서울시, 공공기관의 다양한 지원사업 도전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는 뚝딱 만들어내던 기획서 작성 능력을 바탕으로 공공기관의 다양한 수행 사업을 실행 중이다. 특히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책방 공간을 활용한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그림을 배우거나 기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장소이자 ‘책인감’을 널리 알리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동네 책방의 단골 이벤트라 할 독서모임도 눈길을 끈다. 과학책 읽는 모임인 ‘과학강좌’와 ‘여행강좌’,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금요와인’ 등이 있다. 과학에 관심이 많고 여행과 와인을 좋아하는 주인장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Mini interview '책인감' 이철재 대표
현재 텀블벅 프로젝트 3탄을 준비중이다. 책방 운영하랴… 공공 지원사업 신청하랴… 부족한 시간 가운데에서도 세번째 책 집필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철재 대표가 회사 생활할 때 ‘엑셀의 신’으로 불렸던 본인의 꼼꼼한 엑셀 활용법을 복기하면서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담을 예정이다. 엑셀의 무한한 활용을 꼼꼼하게 전수할 실용서에 회사 생활의 애환을 함께 담는 실용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집필 시간이 너무 부족해 월요일 하루였던 책방 휴무를 화요일까지 이틀로 늘렸을 정도다. 이전 텀블벅 프로젝트보다 훨씬 대중적인 분야라 모금액이 더 많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안에 출간하는 것이 목표란다.
남들이 안 하는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는 질문에 이철재 대표는 아래와 같이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답은 없지만 이런 시도를 계속하는 건, 그래야 발전하니까요.”
‘책인감’ 서울 노원구 동일로 182길 63-1, 2층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로 1년 중 어느 때보다 먹거리가 풍부해 맛집 여행을 떠나기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하지만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이번 가을도 모두의 발길을 꽁꽁 묶어놓아 ‘방콕’ 여행을 하게 만들고 있다. 풍요로운 가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쉽다면, 넷플릭스로 식도락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입맛을 돋우고 군침이 돌게 만드는 요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을 준비하던 '혜원'(김태리)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온다. 매일 편의점 재고로 끼니를 때우던 혜원은 오랜만에 친구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함께 밥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행복을 느끼고, 다쳤던 마음을 치유해나간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사계절을 보낸 혜원은 어느 날 자신이 고향을 찾은 이유를 깨닫고, 다시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각박하고 치열한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아카시아꽃 튀김, 배추전, 크림 브륄레, 말린 곶감, 팥 케이크 등 계절별로 등장하는 제철 음식과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이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2. 아메리칸 셰프 (Chef, 2014)
어느 날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기고 유명 음식 평론가에게 혹평을 들은 일류 레스토랑 셰프 '칼 캐스퍼'(존 파브로)는 홧김에 SNS로 욕설을 보내버린다. 이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인터넷 스타로 떠오른 칼은 결국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푸드 트럭 장사에 나선다. 쿠바 샌드위치로 도전장을 내민 칼은 길 위에서 셰프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일류 셰프 칼 캐스퍼가 푸드 트럭에 도전해 아들과 함께 미국 전역을 일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속 '칼 캐스퍼'의 실제 모델은 한국계 미국인 셰프 로이 최로, 그의 실제 성공담과 마케팅 노하우, 개발한 음식 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멕시코 음식과 한국 음식을 접목한 퓨전 타코 등 남미의 향이 물씬 풍기는 요리와 신나는 라틴 음악이 식욕과 흥을 동시에 돋운다.
3. 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 2009)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 주부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는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현지 요리에 도전한다. 이후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로 거듭난 줄리아는 자신의 비법이 적힌 요리책을 남긴다. 그로부터 50년 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공무원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은 줄리아의 요리책을 보며 1년간 524개의 요리법에 도전하고,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는 시대를 달리하는 두 여인이 요리를 통해 자아를 탐색해나가는 이야기로, 1950년대 프랑스 파리와 2000년대 미국 뉴욕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두 주인공의 서사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대표 요리인 뵈프 부르기뇽(부르고뉴산 와인을 넣은 쇠고기 찜)을 비롯해 솔 뫼니에르(버터에 구운 가자미) 등 정통 프랑스 요리들이 미각을 자극한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 맛집 중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고 망설여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보고 싶지만 시간이 한정돼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는 게 정말 아쉽다. 그런데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가스트로투어’는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
가스트로투어란 음식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미식여행이다. 제천 가스트로투어는 2시간 동안 도심의 약선거리와 전통시장을 걸으며 5~6가지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많이 드시고 싶은 분을 위한 A코스’와 ‘적당히 드시고 싶은 분을 위한 B코스’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나와 친구들은 최근 TV에서 본 덩실분식이 포함돼 있는 B코스를 선택해 문화해설사 안내에 따라 최고의 맛을 찾아다녔다.
화로에서 구워주는 ‘대파불고기’는 불맛에 대파 향이 더해진 인상적인 메뉴였다. 고기를 재울 때 황기를 사용한다는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역시 황기의 고장답다고 생각했다. 흰민들레에 대추, 표고버섯 등을 넣은 ‘하얀민들레밥’도 근사했다. 돌솥밥에 흰민들레를 넣은 것도 색달랐고, 주인이 직접 담근 장에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약선도시의 특징을 살린, 건강 약재가 들어간 건강 밥상이 특별하고 좋았다.
도심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요즘 핫한, 덩실분식의 찹쌀떡도 맛보았다. 줄을 서도 사기 힘들다는 찹쌀떡은 오전 물량이 이미 다 팔린 상황이었지만 가스트로투어 참가자들은 미리 확보해둔 수제 찹쌀떡을 맛볼 수 있었다. 배는 이미 불렀지만 전통시장에서 먹는 제천의 명물 빨강오뎅과 향기로운 커피 한 잔까지 맛보며 2시간 내내 즐거운 발걸음이었다. 우리 일행 4명이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2인분씩 식사가 제공되어 양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배가 불러왔다. 빨강오뎅을 먹을 때는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한 입 베어 먹으니 또 먹고 싶어지는 맛이어서 다시 꼬치를 집어 들었다.
제천 가스트로투어는 100%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참가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제천 시티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4인 이상이면 수시로 예약 가능하다. 사전예약을 하면 문화광광해설사가 나와 안내도 하고 음식에 깃든 스토리도 들려준다. A코스는 1인 18000원, B코스는 1인 14000원. 가격도 혜자스러워 대만족이었다.
가을 제천은 참 아름답다. 모노레일이나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에 올라 청풍호의 가을을 감상하고, 관광유람선에 올라 청풍호의 수려하고 멋진 풍광과 옥순봉의 비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저절로 펴진다. 하루 또는 1박 2일, 가스트로투어로 제천의 다양한 맛과 재미를 만끽하면서 깊어가는 가을도 감상하는 언택트 여행을 제안해본다.
빨간 네모. 흰색 재생 버튼. 중간 광고. 이런 용어로 간단하게 설명만 해도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유튜브’다
페이팔 출신 공동창업자 3명이 파티 영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던 유튜브는 이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KBS 2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등장인물 윤지후는 “하얀 천이랑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천과 바람 대신 유튜브만 있다면 세계 어디든, 그것이 무슨 분야든 상관없이 구경할 수 있다. 이제 건너뛰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외계인이 우리 지구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구글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유튜브를 보여줄 것이다.” 유튜브 문화·트렌드 총괄 케빈 알로카(Kevin Alloca)가 저서 ‘유튜브 컬처’ 서문에 쓴 문장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세계 인구 3명 중 1명은 지금 이 순간 유튜브를 보고 있다. 전 세계 유튜브 사용자는 20억 명에 육박하고, 하루에 10억 시간을 유튜브에서 소비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유튜브를 얼마나 소비하고 있을까? 지난 4월 KT그룹의 디지털 미디어랩 나스미디어가 발표한 ‘2020 NPR 인터넷 이용자 조사’(중복 응답)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동영상 시청채널 순위에서 유튜브는 93.7%로 1위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네이버(43.1%), 넷플릭(28.6%), 인스타그램(26.4%), 페이스북(24.1%) 순이었다. 특히 OTT 플랫폼 넷플릭스는 전년 대비 16.7%P 증가했다. OTT를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눈에 띄지만, 아직은 유튜브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관심 있는 카테고리는 연령대별로 달랐다. 전체 카테고리별 선호도는 요리·음식·맛집(39.4%), 유머·예능(36.9%), 게임(36.8%), 일상생활(35.2%), 운동·헬스·건강(28%) 순이었다. 비중도 조금씩 달랐다. 10대와 20대는 게임과 유머·예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30대와 40대는 요리·음식·맛집과 유머·예능에 관심이 많았다. 50대는 요리·음식·맛집과 운동·헬스·건강 콘텐츠를 주로 소비했다. 60대는 요리·음식·맛집과 일상생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연령대별 관심사를 잘 알 수 있게 해준 대목이다.
유튜브 사용 목적도 달랐다. 동영상 시청이 90%로 1순위였다. 그다음이 채널 구독(67%), 음악 감상(65.1%), 궁금한 정보·내용 검색(55.3%), 공감·비공감 클릭(29.5%) 순이었다. 정보 검색은 전년 대비 10%P 이상 증가했다. 유튜브가 단순히 동영상 시청용이 아니라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처럼 정보 검색 창구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이 검색되는 키워드는 ‘영화’, ‘게임,’ ‘연예인·아이돌’, ‘여행’, ‘맛집’·푸드’였다. 특히 영화가 34.8%로 가장 높았다.
더 나아가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을 할 때도 유튜브를 이용했는데, 단순한 정보 검색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모바일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취미생활·자기계발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유튜브를 이용하는 경우가 54.3%로 가장 많았다. 실제로 유튜브에 ‘취미’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다양한 영상이 나온다. 십자수, 라탄공예, 유화 그리기 등 다양한 분야의 취미를 영상에서 추천한다.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 실내에서 주로 할 수 있는 취미를 추천하는 영상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런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을 때 유튜브 내의 영상 콘텐츠(4.0점)가 오프라인 학원·아카데미(3.87점)나 서적(3.54점)과 같은 오프라인 채널보다 높았다.
유튜브는 생물처럼 진화하고 있다. 영상 공유 사이트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되더니 이제는 검색 엔진의 자리를 엿보고 있다. 유튜브는 새로운 시대의 빅뱅이다. 빅뱅이 새로운 우주를 만든 것처럼 유튜브도 이제껏 보지 못했던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알로카의 말처럼 미래에는 외계인에게 유튜브를 소개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날(?)을 위해서 알아두면 쓸모가 있거나, 무해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유튜브 채널을 다음 호부터 소개한다.
바람이 서늘해지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인가보다. 지인들과 서울 곰탕 맛집 정보를 공유하다 멀리 나주곰탕 이야기로 흘렀다. 꿀꺽 군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주곰탕, 돼지국밥처럼 향토색 강한 음식은 타지역에서 먹으면 왠지 그 맛이 안 난다. 곰탕 먹으러 나주에 갈 거라는 내 말에 지인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나주곰탕 포장 부탁해.” 말은 이래도 그들도 안다. 나주곰탕은 나주에서 먹어야 제맛인 것을.
3味로는 부족한 맛의 고장
나주가 호남 물류 중심지였던 호시절이 있다.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나주평야와 뱃길 교통이 편리한 영산강을 품은 지리적 여건 덕이었다. 100여 년 전 영산강 나루터에는 특산물과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사람이 몰려드는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 문화가 ‘나주 3味’라 불리는 ‘나주곰탕’,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로 이어졌다.
나주곰탕은 우시장에서 나오는 머리 고기와 뼈, 내장 등을 푹 고아낸 장터국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부터 조선시대 관아인 금성관 앞에 큰 장이 섰다는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과 구경꾼들이 밥에 고깃국을 말아 후루룩 먹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군납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나온 소 부산물로 국을 끓인 것이 나주곰탕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시초가 무엇이든 맛있는 곰탕을 지금 시대에도 맛볼 수 있으니, 식탐 많은 나 같은 여행자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주 사는 지인이 “나주에 오면 곰탕보다 홍어를 먹어야죠” 하며 홍어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이다. 나주 3味에 연탄돼지불고기까지 야무지게 맛볼 생각이었다.
나주 여행의 시작은 곰탕으로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나주행 KTX를 타면 아침 식사로 곰탕을 먹을 수 있다. 나주역에서 구도심의 나주곰탕거리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다. 많은 곰탕집 중에서 주로 가는 곳이 하얀집, 노안집, 남평할매집이다. 하얀집은 개업한 지 110년이나 되었고, 노안집과 남평할매집은 60년 정도 되었다. 동네 주민에게 최고 맛집을 물어도 똑 부러진 대답을 듣기 어렵다. “어느 집에서 먹어도 맛있어요. 다만,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서울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고, 나주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어요” 한다. 결국 직접 맛을 보고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주곰탕은 설렁탕과 달리 국물 색이 맑다. 나주곰탕과 설렁탕 모두 소뼈와 고기를 푹 고아내는 방식은 같지만, 나주곰탕은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밥은 말아져 나온다. 밥이 담긴 뚝배기에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몇 차례 토렴한다. 밥알에 짭조름한 간이 배고, 뚝배기가 뜨끈해지면 살코기, 달걀지단, 대파를 올려 손님상에 낸다.
곰탕 맛은 국물 빛깔처럼 맑고 개운하다. 다진 양념을 풀면 칼칼해진다.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기는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곰탕 맛을 북돋는 김치도 중요하다. 숟가락 위에 밥, 고기, 잘 익은 배추김치 또는 깍두기를 올려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다. 노안집의 배추김치는 감칠맛과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다. 사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김치 담글 때 여러 가지를 섞은 잡젓을 넣어요. 봄배추를 싹둑싹둑 썰어서 잘 익힌 김치가 최고 맛있지요. 봄에 또 오세요.”
곰탕 먹고 나주읍성 산책
곰탕거리 일대에는 고려시대 초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호남의 중심지였던 ‘나주목’의 사적지들이 모여 있다. 조선시대 객사이자 나주목의 중심 관청이었던 금성관, 나주 관아의 정문 정수루, 나주목을 다스렸던 목사들의 살림집 목사내아, 고려시대 때 세운 나주향교 등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왜구 방어를 위해 축조한 고려시대 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문과 성곽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1993년부터 나주읍성 사대문 복원 사업을 추진, 2018년 완공해 나주읍성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최근 나주향교 옆에 ‘39-17마중’이 들어서 구도심에 활기를 더한다. 39-17마중은 카페&와인바, 게스트하우스,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나주 의병장 난파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1939년에 어머니를 위해 지은 난파 고택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이 집을 한 젊은 부부가 매입해 ‘1939년의 근대문화를 2017년에 마중하다’라는 뜻을 지닌 39-17마중을 조성한 것이다. 부부의 눈에는 한·일·양의 건축 양식이 결합한 근대 건축물과 마당의 아름드리 금목서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고 한다. 영화 세트장 같은 난파 고택은 게스트하우스로, 마당의 큰 창고는 벽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카페로 탈바꿈해 손님을 맞는다. 향교 담장이 카페 창가에 앉아 나주산 농산물로 만든 음료를 마시노라면 진짜 나주 여행하는 것 같다.
홍어 튀김 먹을 줄 알아야 홍어 고수
“홍어앳국 드셨나봐요.” 택시기사가 딱 알아본다. 홍어앳국 첫 경험을 이야기하자 “제대로 만든 홍어앳국을 드셨네요. 홍어 숙성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손님이 드신 앳국이 가장 많이 삭힌 등급 같아요. 나주 사람들은 그 정도 삭힌 걸 좋아해요. 앳국에는 4~5월에 나는 여린 보리 순을 넣어야 제맛이 나죠”라며 거든다.
홍어앳국은 홍어 뼈 육수에 된장을 풀고, 삭힌 홍어 내장과 보리 순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홍어 애는 홍어 간이다. 생 홍어 애는 연두부처럼 부드럽고 고소해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삭힌 홍어 애를 넣은 홍어앳국은 암모니아 향이 매우 강하다. 알싸한 냄새에 막혔던 코가 뻥 뚫린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먹기 힘들지만 후각이 조금 마비되면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삭힌 홍어가 나주의 별미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고려시대 말 공민왕 때 왜구 침략을 피하고자 흑산도 사람들을 나주 영산포로 이주시킨 적이 있다. 흑산도 사람들이 생선을 잡아 배에 싣고 며칠 동안 나주로 건너오는 사이 생선들이 상하고 말았다. 그런데 상한 생선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고 맛있는 생선은 홍어뿐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영산포에 정착한 사람들이 홍어를 삭혀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산포는 곰탕거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영산포 선창가에 40여 개의 홍어 식당과 홍어 판매장이 자리해 있다. 거리에서부터 홍어 삭히는 냄새가 풍긴다. 홍어요리 전문점에서 홍어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삼합, 홍어튀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전 등이 한 상 차려진다. 삭힌 홍어는 열을 가할수록 향이 강해지므로 차가운 음식부터 나온다. 홍어무침, 홍어삼합, 홍어전, 홍어찜, 홍어앳국, 홍어튀김 순으로 먹어야 삭힌 홍어 맛에 차차 적응할 수 있다. 마지막에 등장한 홍어튀김은 홍어 고수라고 자부했던 내게 굴욕감을 안겼다. 한입 먹었을 뿐인데 입천장이 까져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심 가득한 나주 4味 연탄돼지불고기
영산포 선창가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구진포 장어거리가 있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던 곳이라 민물장어가 흔했다. 당시에는 장어 식당 열댓 채가 성업했다. 지금은 다섯 채 정도만 남아 장어거리의 명맥을 유지한다. 구진포 장어 원조집으로 알려진 신흥장어도 이제는 타지역 장어를 사용하지만, 오랜 내력의 깊은 손맛은 여전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나주 3味에 별미 하나를 추가한다면 송현불고기집의 연탄돼지불고기를 손꼽는다.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맛집이다. 8년 전 송현불고기집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길가 허름한 식당 안에 손님이 많아 놀랐고, 주인이 연탄불 앞에 앉아 석쇠 위 삼겹살을 쉴 새 없이 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고기 맛이 바뀌었을까봐 걱정했는데, 고기 표면에 기름이 번드르르하고, 달고 짭조름한 맛은 그대로다. 가위로 고기를 직접 잘라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맛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싼값에 배불리 한 끼 먹었으니 가성비와 가심비를 다 잡았다.
◇ 이색 명소 & 맛집 ◇
나주목사내아(금학헌)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 최고 수장인 목사의 살림집이다. 건물 이름이 금학헌이다. 1825년에 건립된 ‘ㄷ’자형 전통한옥으로서 내아 1동과 행랑채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사 의복 무료체험과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성정을 베푼 목사들의 이름을 딴 온돌방에는 옛집에 걸맞은 전통가구와 침구가 갖춰져 있다. 나주시에서 운영해 숙박료가 저렴한 편이다. 나주시 금성관길 13-8, 09:00~18:00 관람료 무료, 061-332-6565
영산강 황포돛배와 영산포등대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농수산물을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가 사라졌다가 30여 년 만에 관광용으로 부활했다. 영산포 선착장을 출발해 다시면 회진리 천연염색문화관 앞 풍호나루터까지 약 5km 구간을 왕복 운항한다. 영산포등대는 내륙 하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등대다. 지금은 등대 기능을 상실했지만, 밤마다 불을 밝혀 옛 추억을 되살려준다. 나주시 등대길 80, 10:00~17:00 월요일 휴무, 영산포 선착장 매표소 061-332-1755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와 도래한옥마을 산포수목원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는 명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 수목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풍산 홍 씨 집성촌인 도래한옥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홍기응 가옥과 홍기헌 가옥,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유산 제4호로 선정된 도래마을옛집 등 조선시대 양반집이 많다. 나주시 산포면 산제리 산23-7, 09:00~17:00 입장료 무료, 061-336-6300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막겠다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발표되면서 개인의 행동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틈틈이 즐겨 찾던 헬스장과 테니스장도 문을 닫았다. 아니 모든 체육시설이 문을 닫았다. 9시 지나면 밥 먹을 곳도 마땅히 없다. 꼼짝달싹 못하게 울타리에 갇힌 기분이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일상사의 지루함을 피해 한강변에 돗자리를 들고 모여든다고 방송에 소개되었다. 문제는 마스크도 제대로 안 하고 옹기종기 모여 먹을거리를 먹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예방의 한 축인 면역력을 높이려면 운동이 필수라는 걸 아는데 딱히 운동할 곳이 없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충실히 따르면서 운동하려면 사람들이 없고 맑은 공기와 햇볕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데를 찾아야 한다. 그런 곳에서 등산도 하고 걷기를 할 수 있으면 딱이다.
걸을 때는 혼자 걷기보다는 두 세 명이 함께하면 좋다. 서로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해도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 두 명과 ‘서울둘레길’ 157km을 함께 완주해보자며 의기투합해 실천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9시에 출발지에서 만나 10km 정도 걷는 것으로 대략적인 얼개를 짰다. 이미 몇 개 코스는 실천했다. ‘서울둘레길’은 총 8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시니어에게는 하루에 한 구간 걷기가 벅차다. 한 구간을 다시 세분해 각자 체력에 맞게 걸으면 된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해 접근하므로 지하철역을 기점으로 구분해 걷는다.
지난주에는 제7코스 첫 번째 구간인 가양역에서 출발해 증산역까지 7.7km를 걸었다. 오늘은 제7코스 두 번째 구간인 증산역에서 출발해 봉산(209m)과 앵봉산(235m)을 넘어 구파발역까지 갔다. 총 9.3km다. 중간에 앵봉산이 있어 힘든 구간이다. 안내도는 예상시간을 4시간 20분으로 잡고 있다. 이번 코스는 여성분 한 명이 우리 모임에 참가해 천천히 걷기로 했다.
계절의 변화는 정확하다. 불과 일주일 차이인데 8월과 9월의 날씨가 다르다. 바람이 선선해져서 반바지를 입었던 사람도 오늘은 전부 긴바지를 입고 왔다. 지나는 길에 있는 증산체육공원이 보였다. 평상시라면 족구하는 사람들로 붐볐을 텐데 ‘출입금지’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코로나19’의 위력이 산 중턱 야외 체육시설까지 미쳤다.
산행 중에 말을 하면 숨이 가쁘다.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과욕하지 않는 시니어의 산행 기본이다. 역시 폐활량이 좋은 젊은이들은 걷는 속도가 빠르다. 빠른 걸음으로 잽싸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에게 길을 비켜줬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있고 좀 느리게 걷는 사람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거리두기 2m가 유지된다.
잠깐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는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고구마, 감자, 토마토, 커피 등 각자 준비해온 음식물을 조금씩 먹는다. ‘코로나19’ 사태로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싸와 야유회 온 것처럼 즐기던 모습도 사라졌다. 이 또한 변화라면 변화다.
옛날에 나라가 위급할 때 봉홧불을 올리던 산을 올랐다. 209m의 봉산이다. 두 개의 봉수대가 등산객을 반겼다. 생각보다는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자 서오릉고개의 ‘숲속무대’가 보였다. 세 사람이 거리를 두고 악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이다. 음정과 박자가 다소 불안했지만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연주자들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곤 칭찬에 고무되었는지 더 큰 소리를 내며 연주를 했다.
길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사람을 물지 않는 개는 절대 없다”고 방송에서 개 전문가가 말했음에도 실천이 안 되고 있다. 개를 밖에 데리고 나올 때는 입마개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를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서오릉고개에 차도를 가로지르는 녹지연결로가 있다. 동물들의 통로도 되고 사람들이 도로를 건너는 위험도 없앴다. 여기에 작은 북카페가 있다. 많지 않은 책이지만 가득하다. 산속 도서관이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고 아름다운 시들이 눈길을 끈다.
이제부터 앵봉산(235m)을 넘어야 한다. 계단으로 이어진 길이 가파르다. 숨이 찬다. 숨이 목에 차서 깔딱거린다는 깔딱 고개가 맞다. 같이 간 여성분이 더 이상 못 걷겠다고 드러눕는다. “이제 다 왔다. 요기만 올라가면 끝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쉬엄쉬엄 올랐다. 꾀꼬리가 많아 앵봉산이라 이름을 지었다는데 꾀꼬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앵봉산 주위에는 군사용 벙커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관리가 잘 되었겠지만 남북화해 시대가 되면서 관리를 하지 않아 거의 폐허가 된 분위기에 흔적만 남아 있다. 그렇게 역사는 흐른다. 영원한 적도 없고 친구도 없다.
앵봉산을 넘으면 내리막길이다. 구파발역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보니 점심시간이 훨씬 넘은 오후 2시였다, 무려 5시간이나 걸었다. 구파발역 주위에는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연신내역으로 갔다. 체력이 고갈되어 힘들어했던 여성분이 맛집을 안내했다. 음식이 맛있고 푸짐했다. 걷기를 포기하려 했던 여성분은 찬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브라보를 외치며 맥주 한 잔씩 하고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백제고도 부여에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백제 유적지 말고는 이렇다 할 관광 콘텐츠가 없어 아쉬웠다. 2년 전 규암면 규암리 자온로에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마을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첫 단추가 독립서점 ‘책방세간’이었다. 호기심을 안고 찾아간 시골 책방은 꽤 신선했다. 지금 그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다시 가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을 재생 프로젝트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 규암리로 향했다. 시내에서 차로 고작 5분 정도 떨어진 마을인데 딴 세상인 듯 고요하다. 규암 나루터 인근 골목에서 ‘책방세간’을 다시 만났다. 2년 전 모습 그대로 있어주어 고마웠다. 시골에서 책방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책방 주인도 그런 사정을 잘 알 텐데, 이곳에 책방을 연 이유가 궁금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는 박경아 씨는 “부여에 제대로 된 서점이 없어요. 규암리에 가장 필요한 문화공간이 책방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방세간이 전통문화를 알리고,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그가 시골집에 책방을 차린 사연은 규암리의 전성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암리는 해방 전후만 해도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규암장터가 열리면서 규암나루터에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마을 거리에는 선술집과 여관이 즐비했다. 극장과 백화점도 있었다. 규암리의 전성기는 1968년 백제교가 놓이면서 막을 내렸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나루터가 제구실을 못하게 됐다. 상권은 부여읍으로 옮겨갔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붐비던 장터 국밥집, 부여에 처음 세워진 극장, 양조장 등이 폐허가 되었다. 집주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도 늘어갔다.
약 20여 년 전 부여전통문화대학교 재학생이었던 박 대표가 규암리의 방치된 근대건축물들을 눈여겨본 것이 자온길 프로젝트의 바탕이 됐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규암면의 버려진 공간들을 개조해 전통문화 예술마을로 꾸미는 마을재생사업이다. 빈집과 상가들이 차근차근 전통공예 작가의 작업실과 쇼룸, 로컬푸드 레스토랑, 카페, 책방, 한옥 스테이, 북 스테이 등의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책방세간이다.
임 씨네 담배 가게가 책방이 된 사연
책방세간은 원래 ‘임 씨네 담배 가게’로 불렸다. 담배와 잡화를 팔던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책방으로 개조할 때 외벽과 내부 구조물을 최대한 헐지 않았다. 천장 위에 숨어 있던 서까래와 내벽 속 나무 문을 찾아내 복원했다. 임 씨가 잡화를 팔던 공간은 책방세간의 메인 공간이 되었다. 담배를 팔던 옆 공간에는 책장과 테이블을 두었다. 책장은 사실 담배 진열장이다. 벽면에 은박 벽지를 발라 담배 속지를 표현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카운터는 지붕을 덮었던 함석판과 담배 가게의 금고로 꾸몄다.
임 씨 가족의 거주 공간은 카페로 개조했다. 벽장이 있는 작은 방에는 동화책과 전통 놀이 도구를 넣어 키즈존을 만들었다. 이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벽장에 숨어 책을 읽는다.
책방세간만의 특징이라면 전통공예가 대중의 일상에 시나브로 스며들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책방 구석구석에 표현돼 있다는 것이다. 공예·디자인 서적의 비중이 높으며, 책과 전통공예품을 함께 배치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책방세간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전통공예품 숍 ‘편지’가 문을 열었다. 우체국이었다가 전파사로 사용됐던 건물을 고쳐 생활소품, 의류, 생활도자기 전시·판매장으로 사용한다. 도자기 판매장 유리창에 붙은 ‘전파사’ 글자가 그 흔적이다. 삼각 지붕을 얹은 회벽 건물은 단박에 적산가옥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규암리에는 일본이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여지소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수탈한 쌀을 규암나루터에서 배에 싣고 백마강을 건넜다고 한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편지’를 에워싼 아름드리 밤나무, 보리수나무, 향나무는 싱그럽게 자랐다.
카페 수월옥의 사연도 만만찮다. ‘빼어난 달’이란 뜻을 지닌 수월옥은 술과 음식을 팔던 요정이었다. 한 세대를 건너 카페 수월옥으로 다시 태어났다. 폐가와 다름없던 건물이 부여 핫 플레이스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을 주민들은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은 건물에 손님들이 많으니 신기해한다. 수월옥은 건물이 두 채인데 한 채는 내벽 콘크리트를 드러내 모던한 분위기를 살렸고, 한 채는 한옥 느낌을 살려 좌식으로 꾸몄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가구와 소품은 색동무늬 방석, 소반, 골무, 도자기 등의 전통공예품을 사용했다.
수월옥은 차 주문법도 독특하다. 선반에 놓인 청자, 백자, 진사, 분청사기 등의 찻잔을 고를 수 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하고 주문하니 바리스타가 말차라떼 빛깔과 비슷한 청자 잔에 차를 내준다. 꽃봉오리 모양 청자 잔과 말차라떼의 조화가 찰떡궁합이다. 수월옥은 SNS 사진 맛집으로 소문났지만, 사실 차 맛집이었다.
활기를 되찾는 규암리
옛날 국밥집은 ‘웃집’이라는 이름의 독채 숙소가 되었다. 전통공예품 쇼룸과 숙소가 결합한 형태로 꾸며졌다. 한옥스테이 이안당은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접목한 100년 된 근대 한옥이다. 옛 자온양조장 건물에 딸린 살림집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너른 마당에는 깊은 우물이 있고, 마당에서 양조장 굴뚝이 보인다. 주인이 사용했던 자개장, 경대, 항아리, 도자기 등의 세간살이가 세월을 안은 채 그대로 있다.
오래된 건물은 고쳐 사용하는 것보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수월하다고 한다. 박경아 씨에게 도시 재생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옛집을 허물고 똑같이 다시 짓는다고 해도 그 옛집이 아니잖아요. 세월을 재현할 수 있나요. 문화재를 똑같이 만들 수 없듯 옛집도 그런 것 같아요. 비록 문화재적 가치가 낮은 서민들의 근대 가옥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역사이니까요.”
자온로를 산책하며 옛것의 가치와 도시 재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도시 재생은 죽어가는 건물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생명을 이어주는 작업이 아닐까. 쇠락했던 규암리가 사람들의 온기로 다시 따듯해지길 기대해본다.
◇ 이색 명소 & 맛집 ◇
궁남지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1400여 년 전인 백제 무왕 때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연못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중앙에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한 섬을 만들어 왕궁의 정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궁남지는 무왕의 잉태지였다. 여름에는 연꽃이 가득 핀 풍경이 장관이며, 야간산책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중앙의 정자와 다리에 조명을 켜놓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4시간 개방, 입장료 무료.
부여서고 책방세간 바로 옆에 있는 수공예품 편집숍이다. 책방처럼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부여서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동남아에서 수입한 라탄소품, 가방, 모자, 의류, 머플러, 도마, 문구, 조명 등의 생활 잡화와 천연염색 소품을 판다. 우리나라 작가가 만든 상품도 있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자온로 84
장원막국수 구드래나루터 근처에 있는 오래된 가게다. 허름한 시골집의 작은 방에 앉아 막국수를 먹노라면 할머니 댁에 놀러온 듯하다. 메뉴는 메밀막국수와 편육 두 가지뿐이다. 메밀막국수 면발은 조금 가늘고 쫄깃하다. 시원한 육수는 새콤달콤한 편이다. 돼지 목삼겹살로 만든 편육에 막국수를 감아 먹어보길 권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62번길 20, 11:00~17:00, 메밀막국수 7000원
코로나19 때문에 올여름 휴가는 건너뛰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번 휴가의 테마는 힐링호캉스라면서 강릉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해수욕하고, 소나무 숲 거닐면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한 잔 어떠냐는 말에 심신의 피로를 풀기에 강릉만 한 곳도 없지, 하며 동의를 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은 경포대 옆 강문해변에 위치한 호텔을 골랐다. 강릉 하면 경포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강문해변은 덜 알려진 덕분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요즘 같은 때에 휴가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해변은 아담하고 깔끔했다. 생각처럼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여느 해와 달라진 게 있다면, 해수욕장을 출입할 때 정해진 곳으로만 입장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열을 재고 QR코드를 찍고 손목밴드를 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물론 마스크는 필수다. 핫팬츠나 비키니에 마스크를 쓰고 QR코드를 찍는 모습이 매우 낯설었지만 휴가객들은 모두 방역지침을 잘 따랐다. 전염병으로부터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된 것을 여행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국에 해수욕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은 괜한 우려였다. 모래 위에 일정하게 꽂아놓은 파라솔로 거리두기가 저절로 됐다. 해수욕장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파라솔은 하루 종일 빌리는 데 1만 원이다. 파라솔 아래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동해 바닷속으로 뛰어드니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해변가 소나무 숲을 산책했다.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는데 2018년 평창올림픽이 열리면서 호텔이 세워지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았던 만큼 넓은 구역에 소나무 숲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휴식을 제공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되도록 줄였다. 예전이었다면 강릉의 이름난 곳을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찾아 다녔겠지만 호텔 밖으로 나가는 걸 되도록 삼갔다. 객실에서는 오션 뷰를 즐길 수 있어 침대에 누우면 발밑에서 동해바다가 넘실댔다. 문을 열면 파도소리도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식사는 대부분 호텔에서 해결했다. 모든 걸 호텔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호텔이어서 부족함이 없었다. 미국 남부식 해산물 요리도 맛보고 호텔 마당에서 바비큐도 즐겼다. 1층에 있는 카페는 여행지의 낭만을 즐기기에 좋았다. 맥주나 하와이안 음료를 시켜놓고 저녁노을을 보며 여기가 분위기 맛집이라며 감탄했다.
이채로웠던 건 반려견을 동반한 여행객들이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호텔이어서인지 여행객들 중에는 애견과 함께 휴가를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았다. 애견놀이터는 물론 호텔 안 식당에서는 개모차도 빌려주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밥 먹는 애견인들을 보니 반려견 동반 펫캉스가 여행의 새로운 풍속도임을 알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강릉에서 잘 쉬고 잘 놀았다. 호텔을 나서면 소나무 숲, 그 너머는 아름다운 해변이어서 힐링호캉스를 제대로 즐겼다. 인피니티 풀과 해변을 번갈아 다니며 강릉의 푸른 바다를 만끽하고 올여름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런 여행은 우리 가족도 처음이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렵게 되자,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가 주목받고 있다. ‘바다 위의 식물 낙원’이라 불리는 경남 거제도의 외도 보타니아도 그중 한 곳이다. 사실 외도 보타니아의 인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1995년 개장 이래 누적 방문객 수가 2000만 명이 넘는 거제 대표 명소이니 말이다. 나만 해도 그 방문자 수에 ‘4’를 더했다. 이번 방문 때는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의 섬 여행도 꽤 낭만적이었다.
바깥 섬이 식물의 낙원이 되기까지
거제도 남쪽 외딴 섬 외도(外島)는 미운 오리 새끼였을까. 마음 심 자를 닮아 ‘지심도’, 보배에 비길 만한 풍광을 지녀 ‘비진도’라 불리는 거제도의 다른 섬들에 비하면 이름조차 초라한 섬이었다. 그랬던 외도가 부침개처럼 운명이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50여 년 전 이창호(1934∼2003) 씨가 낚시하러 외도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에 걸쳐 외도를 매입한 것이다.
이창호 씨와 그의 아내 최호숙 씨는 1969년부터 외도를 해상식물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무시로 닥치는 태풍과 거친 파도에 맞서며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웠다. 외도는 기후가 따뜻하고 물이 풍부해 종려나무, 야자나무, 선인장 같은 아열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했다. 첫 삽을 뜬 지 26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외도 보타니아를 선보일 수 있었다. ‘보타니아’(botania)는 ‘botanic’과 ‘utopia’의 합성어로서 바다 위 ‘식물의 낙원’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외도는 ‘보타니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것처럼.
국내 최초 해상식물원의 인기는 개장한 지 25년째인 지금도 여전하다. 외도행 유람선 선착장이 거제도에 7곳이나 있으며, 유람선이 매일 여러 차례 외도 보타니아를 왕복한다. 바람의 언덕과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2019~2020 한국관광 100선’에도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해금강 유람선 타고 바다 위 정원으로
외도 선착장 7곳 중에 도장포를 애용한다. 도장포 가까이에 외도 보타니아와 인기 쌍벽을 이루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가 있어서다. 외도로 가는 길에 즐기는 해금강(海金剛) 유람은 덤이다. 선실 밖으로 나가 출렁대는 유람선에 몸을 맡기고,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해금강은 강이나 바다가 아닌, 바다 위로 솟은 바위섬이다. 금강산처럼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바다 위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해금강 해안 절벽 위에는 거센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노송들과 석란, 풍란 같은 희귀한 난초들이 자생한다. 절벽 아래에는 파도가 오랜 세월 조각해놓은 십자동굴, 부엌굴 등의 해식동굴이 있다.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해금강의 기암을 바라보면 사자, 촛대, 기도하는 소녀처럼 보인다.
30분가량의 해금강 유람이 끝나면 외도 보타니아에 도착한다. 외도 모양을 형상화한 빨간 등대가 맨 먼저 반긴다. 선장이 1시간 반 뒤에 유람선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순환형 산책 코스대로 걸으면 되므로 관람시간 90분이 턱없이 부족하진 않다.
유럽식 정원과 건축물로 꾸민 외도
외도 보타니아 관광은 아치 모양의 작은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계 각국 방문객을 맞이하는 외도 광장에는 한글·영어·한자로 쓴 ‘외도 보타니아’ 조형물들이 장식돼 있다. 광장을 지나면 향나무 여러 그루를 연결해서 한 몸처럼 다듬어놓은 나무 작품이 보인다. 이곳의 인공미를 대표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나무는 눈이 부리부리한 뿔 달린 도깨비 또는 기세등등한 불꽃을 닮았다. 산책로 입구에 턱 버티고 서 있어 사찰의 사천왕상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선인장, 알로에, 용설란 등이 자라는 선인장가든을 지나면 외도 보타니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비너스가든이 나온다.
지중해풍의 건축물과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은 정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세워진 하얀 비너스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호숙 씨가 영국 버킹검 궁의 뒤뜰을 모티브로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공간이라고 한다. 비너스가든 끝에 있는 유럽식 사택 ‘리하우스’는 KBS 드라마 ‘겨울연가’(2002)의 마지막 촬영 장소였다. 외도 보타니아를 전국에 소문낸 일등 공신이다.
이탈리아어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을 지닌 벤베누토정원은 사계절 꽃이 피는 꽃동산이다. 철따라 튤립과 양귀비, 수국, 동백 등이 피고 진다. 이 꽃들은 관람객들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꽃길을 걷다 보면 짙푸른 동백숲길과 대숲길이 나타난다.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가 늘어선 ‘천국의 계단’을 내려서면 야자수 산책로가 기다린다. 프랑스식 연못과 조각상을 배치해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외도 보타니아는 구석구석 아름답다. 귀부인이 그려진 화장실 이정표마저 예쁘다. 화장실 벽 둥근 창으로 보이는 해금강과 외도 등대는 또 어떻고.
바람의 고향 도장포
외도 관람을 마치고 도장포로 돌아와 바람의 언덕에 오른다. 하늘이 맑으면 언덕 아래에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췻빛 바다가 일렁인다. 바람의 언덕은 바다로 돌출한 곶이라 늘 세찬 바람이 분다. 풀들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일제히 누워 있다. 언덕 위의 풍차는 신나서 춤추듯 바람개비를 씽씽 돌린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도 시원한 바람이 그저 반갑다. 만약 이 언덕을 ‘도장포 잔디공원’이나 ‘도장포 민둥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면 얼마나 낭만이 없었을까.
풍차 왼쪽, 숲속 계단을 오르면 호젓한 동백숲길이 나온다. 이 숲길이 도장포마을 윗길로 이어진다. 윗길에서 굽어본 도장포마을 전경도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장관이다. 마을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도장포마을 남쪽 바닷가에는 신선이 머물렀다는 신선대가 있다. 부안의 채석강과 지형이 비슷하다. 책을 포개놓은 듯 가로지층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태곳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공룡 발자국 같은 작은 웅덩이도 수없이 많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는 파도가 으르렁대며 들락거린다. 신선대를 본 사람들이 웅장한 기암절벽과 절벽 아래 몽돌해변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색 명소&맛집◇
매미성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 때문에 바닷가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 씨가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16년 동안 혼자 쌓아 만든 성벽이다. 처음에는 시멘트 벽돌로 쌓아 볼품이 없었다. 점차 네모반듯한 화강암을 쌓고 시멘트로 메우는 방식으로 바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유럽 중세시대의 성을 연상케 해 이국적인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풍경보다 사진에 담았을 때 더 멋지게 보여 인생사진 명소로 유명해졌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복항길
외도널서리 외도 보타니아 설립자인 최호숙 씨가 구조라해변에 유리 온실 콘셉트 카페인 외도널서리를 개장했다. ‘널서리’(nursery)는 ‘묘목을 기르는 땅’이라는 뜻으로 외도 보타니아와 통하는 면이 있다. 유럽풍으로 지어 외국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같다.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빛깔 고운 구조라에이드 한 잔 어떨까. 계절에 상관없이 초록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게 큰 매력이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로4길 21, 매일 10:00~21:00
예이제게장백반 거제도에서 이름난 무한리필 게장 백반집이다. 본점은 도장포에 있다. 바람의언덕점은 도장포와 가까워 외도 관광 전후에 들르기 좋다. 메뉴는 게장백반 한 가지다. 메인 요리인 간장게장과 꽃게장을 비롯해 불볼락구이, 간장새우, 충무김밥, 조개미역국 등 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온다. 작은 꽃게를 사용하지만, 살이 제법 차 있어 먹을 만하다. 쫀득한 맛이 일품인 간장새우도 리필된다.
경남 거제시 남부면 해금강로 132, 매일 10:30~21:00, 게장백반 1인분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