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으로 이끌었다.” 2019년 유행한 인터넷 밈으로,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AI인 ‘유튜브 봇’이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것을 말한다. 편리하지만 ‘가짜 뉴스’ 등의 무분별한 정보로 인해 편향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AI)은 알고리즘(Algorithm)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이란 주어진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 방법, 명령어 등을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AI 알고리즘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데, 일반 온라인 이용자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가장 자주 접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2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6700명 중 72%가 OTT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선호하는 채널 1위는 유튜브(66.1%)였다. 유튜브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의 집약체이다. 홈 화면에 뜨는 영상, 다음 볼 추천 영상 모두 알고리즘이 적용된 결과다. 유튜브의 최고 상품 담당자(CPO) 닐 모한은 2020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유튜브 시청 시간의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터 버블에 갇힐 우려
추천 알고리즘의 원리는 크게 ‘협업 필터링’과 ‘콘텐츠 기반 필터링’으로 나뉜다. 협업 필터링은 비슷한 성향을 보인 다른 사용자가 선호하는 항목을 추천하는 기술이다. 콘텐츠 기반 필터링은 이용자가 조회하거나 구매한 콘텐츠의 특성을 분석해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을 말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AI가 대신 찾아주기 때문에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따른다. 미국 시민운동가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가 제시한 개념인 필터 버블은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필터 버블은 더 나아가 확증편향을 불러온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필터 버블 현상은 뉴스 분야에서 나타날 때 가장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해 2019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성인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연구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저널리즘’을 내놨다.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를 통해 방송사·종합편성 채널 등 언론사 뉴스를 본다는 응답은 42.4%였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제작한 유튜브 뉴스를 본다는 응답도 42.4%로 나타났다.
유튜브 뉴스 보도 시청자에게 자기 자신, 주변 지인, 일반 여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물었을 때, ‘일치한다’는 응답자는 각각 30%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치 성향에 따라 분석했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매우 진보적인 응답자는 52.9%가 내 생각이나 의견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매우 보수적인 응답자도 40.0%가 내 생각이나 의견과 일치한다고 인식했다. 일반 여론과는 50.0%가 비슷하다고 답했다. 반면 중도 성향 응답자는 25.4%만이 내 생각이나 의견과 비슷하고, 30.6%가 일반 여론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한 필터 버블 현상이 극단적 정치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부 중장년층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극단적인 정치 성향이다. 즉 그들이 가짜 뉴스를 여과 없이 받아들여 진짜라고 믿을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스스로 ‘중년 가드’ 되어야
‘우리 아빠, 한동안 가짜 뉴스만 보길래 내가 날 잡아서 골든리트리버 영상만 세 시간 내내 보고 채널 구독해놨음. 요즘 자기 유튜브에 개밖에 안 뜬다고 어리둥절해했지만 전보다 행복해함.’
실제 2021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던 글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한 중장년층의 폐해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여행·육아·음식·동물 등의 채널을 일부러 구독해 부모님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바꾸는 방법이 유머처럼 나돌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부모님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일부러 바꾸는 20·30세대를 ‘중년 가드’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이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제어하려고 해도 효과는 미미하다. 지난해 9월 소프트웨어사 모질라(Mozilla)는 2만 2722명의 참가자와 5억 개가 넘는 동영상을 분석해 ‘이 버튼은 작용하나요?’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의 ‘싫어요’ 버튼은 원치 않는 추천을 12%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널 추천 안 함’의 효과는 43%였고, 시청 기록에서 지울 경우 효과는 29%에 불과했다.
본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유튜브는 이용자가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혀도 빈도를 조금 줄여줄 뿐 계속 추천한다”며 “이용자들이 실제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유의미하게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용자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AI의 통제를 이겨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미디어 독해력이라는 뜻으로, 미디어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분별력 있게 수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재, 미디어 교육 플랫폼 ‘미디온’ 활용도 추천한다.
‘시니어의 집은 곧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다. 바로 2022년 시작된 일본의 ‘어른의 생활 기분’ 캠페인이다.
캠페인을 시행하는 곳은 사단법인 ‘케어링 디자인’(Caring Design)이다. 디자인, 건축, 의료, 간호, 복지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50+세대를 대상으로 한 주거나 의료, 돌봄이 이뤄지는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고자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소고‧세이부 백화점에서 ‘라이프 디자인 살롱’이라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시니어 맞춤 주거 리모델링 사업 및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수천 건의 시니어 주거 관련 컨설팅을 진행한 케어링 디자인은 2020년 온라인 세미나 ‘100년 인생 생활의 디자인’을 열었다. 일본 유명 건축가인 아베 쓰토무(阿部勤)가 ‘중심이 있는 집’을 소개하는 영상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됐다.
그라데이션으로 다양성 주는 노후의 집
노후 인테리어와 관련해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그의 설명 중 ‘집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하기’, ‘부엌 집기들이 전부 보이도록 수납공간을 설계하기’이다. 그의 집은 이름처럼 내부에 중심이 되는 방이 있고, 벽 너머에는 3면에 창문이 있어 외부처럼 느껴지는 공간, 정원으로 구성돼있다. 그는 중심에서 바깥으로 넓어지는,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때와 기분에 따라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계단에는 모아둔 서적을 보관하고, 복도를 취미용 화실로 활용하는 식이다.
부엌 설계는 독신 남성이 나이가 들어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료 손질과 세척, 조리와 식사까지, 순서를 고려해 불필요한 동선을 없앴다. 또한 중심이 있는 집 부엌의 모든 집기는 전부 외부에 드러나 있는데, 이 역시 노화로 인한 특성을 고려한 부분이다. 노화로 인해 건망증이 생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집기는 사용하지 않게 되므로 집기들이 전부 보이게끔 부엌의 수납공간을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직접 지은 집에서 50년간 살고 있는 건축가가 ‘100세 시대에 집이 갖춰야 할 디자인’에 대해 소개하는 이 영상은 2023년 4월 기준 누적 조회수 28만 회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영상이 2022년의 ‘어른의 생활 기분’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모태가 됐다.
집은 곧 인생의 표현 방식
어른의 생활 기분 다큐멘터리는 미래 시니어 주거의 본보기가 될, 50대 이상의 ‘멋진 어른’들의 생활을 소개한다.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집을 꾸미고, 생활환경을 구현한다. 노후에는 살기 편하고 안전한 거주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고, 삶의 색깔을 구현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
다큐멘터리는 현재 총 3편이 공개된 상태다. 191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현대적인 디자인의 민박집으로 개조하고 찾아오는 세계인들과 꾸준히 교류하고자 하는 여성, 집 근처에 오두막과 허브 정원을 조성한 여성과 자연 속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짓고 자택 겸 작업실로 활용하는 작가 부부의 삶과 삶이 묻어나는 집을 조명한다.
3편의 영상은 모두 평생 숙성시켜온 삶의 방식을 완성하는 곳이 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당 캠페인을 소개한 책 ‘뉴그레이’에서는 ‘시니어의 거주지가 단지 안전한 상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미디어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케어링 디자인 편집부는 향후에도 취재를 이어나가 100세 시대를 맞이할 현대의 어른을 위한 롤모델들을 계속해서 다큐멘터리로 소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어로 제작돼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노후의 집을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웃 나라의 50+세대들이 벌이고 있는 실험적인 시도들을 눈여겨 봄 직하다. 유튜브 자막 생성 기능을 활용하면 한국어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Exhibition
◇나탈리 카르푸셴코 : 모든 아름다움의 발견
일정 5월 7일까지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나탈리 카르푸셴코(Natalie Karpushenko)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환경운동가다. 해양과 고래 보호에 관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카르푸셴코는 자연, 사람, 동물 등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르푸셴코가 세계 각지의 섬과 바다를 누비며 기록한 사진 200여 점을 만날 수 있으며, 6개의 존으로 구성됐다. ‘Intro’ 존에서는 아티스트와 사진전 전반을 소개한다. ‘Ocean Breath’는 작가의 대표 프로젝트명이며, 해당 섹션에서는 대자연과 환경에 대한 직관적인 메시지가 투영된 작품을 볼 수 있다. ‘Angel’ 존에는 ‘물’에 대한 원초적인 형상을 주제로 한 작품, ‘Rising Woman’ 존에는 자연과 여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사진이 전시돼 있다. ‘Wild Breath’ 존에 전시된 작품에는 야생 동물과 인간의 교감 순간이 포착돼 있다. ‘Natalie’는 작업 활동 비하인드와 인간 ‘나탈리 카르푸셴코’를 조명한 섹션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김윤신 : 더하고 나누며, 하나
일정 5월 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을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이다.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반영한 김윤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김윤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해나갔다. 그는 자신의 조각 작품에 대해 나무에 정신을 더하고(합), 공간을 나누어가며(분), 온전한 하나(예술작품)가 되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번 전시는 김윤신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철학에 집중해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 한국에서의 신작 등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Stage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18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이영미, 장은아, 서경수, 장지후 등
뮤지컬 ‘데스노트’는 지난해 5년 만에 새로운 시즌으로 개막했다. 이전과 달라진 참신한 연출과 무대 미술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인기에 힘입어 8개월 만에 앙코르 공연된다. 홍광호, 김준수 등 티켓 파워를 입증한 주연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한다.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름을 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줍게 된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의 양보할 수 없는 두뇌 싸움을 긴장감 넘치게 그렸다.
◇폭풍의 언덕
일정 4월 23일 ~ 6월 18일
장소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성종완
출연 김수로, 강성진, 이정화, 문경초, 김아론, 강혜인 등
영국 여류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1847년 발표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이번 공연은 2021년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초연 당시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남자 ‘히스클리프’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연기력과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히스클리프 역에는 문경초, 김아론이 캐스팅됐다. 초연에서 히스클리프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줬던 김아론은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문경초는 뮤지컬 ‘히드클리프’에서 히드클리프를 연기한 바 있어 기대를 모은다.
◇친정엄마
일정 3월 28일 ~ 6월 4일
장소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정경순, 김서라, 별(김고은), 현쥬니, 신서옥, 김형준, 김도현, 이시강 등
누적 관객 40만 명을 동원한 뮤지컬 ‘친정엄마’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힐링극이다. 1950년대 열여덟 말괄량이 봉란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경험하고, 딸 미영을 낳아 엄마가 된다. 어느덧 성장한 미영이 결혼하자, 봉란은 무식한 자신 때문에 미영이 시댁 눈치를 볼까 봐 전전긍긍한다. 미영은 봉란의 마음을 엄마가 되고서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로 4년 만에 돌아온 ‘친정엄마’는 이야기와 무대가 업그레이드됐다. 초연부터 출연 중인 김수미를 비롯해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대거 출격해 이목이 집중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월 30일 월요일, 기대하던 박스를 받았다. 식물 똥손도 어엿한 ‘식집사’로 거듭나게 해준다는 신비한 화분, LG 틔운 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LG 틔운 미니(Tiiun Mini)는 햇빛을 닮은 LED 조명으로 식물을 키우는 스마트 화분의 일종이다. 틔운 오브제 컬렉션에 비해 크기가 작아 책상에 올려두고 공간을 밝히는 스탠드로도 쓸 수 있다.
채소는 약 4주, 허브는 6주 후 수확할 수 있고, 꽃이 피기까지 8주 걸린다. 전용 씨앗 키트를 사야 하는데, LG전자 베스트샵 오프라인 매장과 LG전자 홈페이지, LG ThinQ 앱 내에서 구입 가능하다. 현재 틔운 미니용 씨앗 키트 패키지로는 메리골드(노랑, 불꽃노랑), 쌈추, 청경채, 청치마상추, 루콜라, 비타민, 청경채가 있다.
구매 페이지의 상세 설명을 보면 루콜라의 발아율은 70%, 성장 기간은 약 5주(온도 22℃, 상대습도 60% 조건 기준)다. 촉박하지만 우선 키워보기로 한다.
기계가 놓일 곳은 회사 탕비실 커피머신 옆 빈 공간. 벌레가 유입되지 않는 환경에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포장 테이프를 모두 제거하고, 전원을 연결했다. 재배할 씨앗 키트로는 취향을 반영한 루콜라 당첨. 비닐 포장과 투명 플라스틱 커버를 제거한 후 키트를 제품에 넣고 물을 주면 끝이다.
물은 씨앗 키트를 끼워둔 채 물탱크 커버 경사면을 따라 흘리듯이 줘야 한다. 그래야 부표를 통해 물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탱크를 따로 분리해 물을 채워서 들고 왔다가 양을 한 번에 맞추지 못하면 난감할 수 있다. 참고로 적정량은 1L이며, 부표의 높이가 물탱크 커버 면과 같은 상태여야 한다. 부표가 더 낮으면 물이 부족한 상태, 높으면 물이 너무 많은 상태다.
꼴라루
품종: 루콜라(rucola), 생후 44일(3월 14일 화요일 기준)
장점
LG ThinQ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 앱에 기기를 연결하면 기기 주변 온도가 재배에 적정한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조명 밝기와 지속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데, 재배에 적정한지 아닌지에 대한 안내 문구가 함께 있어 재배에 도움을 준다. 푸시 알림 메시지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관리 할 수 있다는 점이 초보 식집사에게 특히 유용했던 부분. 3주 동안 물탱크 청소 주기 안내, 기계가 껐다 켜졌을 때 ‘조명 제공 시간이 초기화됐다’는 내용의 알림을 받았다. 또 날짜별로 사진과 함께 160자 분량의 식물 일기를 쓸 수 있다.
커뮤니티 앱을 통해 ‘LG 틔운 공식 카페’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개발 중이거나 출시 전인 씨앗이 담긴 비밀 키트를 키우는 ‘가틔’, 포토 리뷰 이벤트 등 카페 운영진이 진행하는 깜짝 이벤트에도 참여 가능.
단점
디지털 방식 농가나 화훼단지에서 화분을 사고 흙에 물을 주는 전통적 방식에 익숙하다면 처음에는 조금 헤맬지도 모른다. 7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는 것 외에는 신경 쓸 부분이 없어서 되레 허전함을 느낄 정도다. 스마트폰 조작이 미숙하다면, 앱에 기기를 연동하기 위해 틔운 기기를 와이파이에 연결하는 단계부터 헷갈릴지도 모른다.
일회용 키트 한 번 쓴 씨앗 키트는 재활용이 안 돼 버려야 하는 점이 아쉽다.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관련 소비를 아끼지 않는 ‘셀프메디케이션’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 맞춤형 조제 건강기능식품과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처럼, 영양제를 만들어 먹는 시대가 왔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성장한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6조 1429억 원으로 추정된다. 2019년 대비 25% 넘게 성장한 규모다. 2021년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건기식 구매는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건기식 주요 고객층은 50~60대 중장년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조사에 따르면 5060의 구입 금액 점유율은 35%로 1위였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의 제품도 함께 구매하며, 한번 선택한 성분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10대 이하 자녀를 둔 30~40대 워킹맘도 28% 점유율을 차지하는 주요 소비층으로 꼽힌다.
개인 맞춤형 건기식 뜬다
셀프메디케이션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영양제를 알아보고 맞춤형으로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발맞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2020년 7월부터 개인 맞춤형 건기식 소분 및 판매를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건기식을 소분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필라이즈’는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영양제를 분석해 추천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먹고 있는 영양제를 등록하면 분석 리포트도 제공한다. 과다하거나 부족한 영양 성분, 건강 상태나 복용 의약물에 따라 부작용 위험이 있는 성분, 더 먹으면 좋은 성분 등을 알 수 있다. 복용 중인 영양제 분석 기능 이용 건수는 출시 직후 2만 회에서 8개월 만에 33만 회로 급증했다. 건강검진 기록이 있다면 더 자세한 분석을 제공하며, 먹고 있는 영양제를 등록하면 알람을 통해 가장 효과가 좋은 섭취 시간을 알려준다.
풀무원건강생활은 ‘퍼팩’(Perpack) 매장을 열고 소속 전문 영양사와 대면 상담 후 건기식을 소분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개인맞춤영양’ 앱을 출시, 39가지 설문조사에 답하면 개인에게 맞는 건강식품을 추천해준다. 그중 원하는 영양제를 고르면 1개월 분량으로 배송되며, 정기 배송도 가능하다. 개인맞춤영양의 재구독률은 70% 이상이다.
한국암웨이는 개인 맞춤형 건기식 소분 판매 서비스 ‘마이팩’을 선보였다. PMAS(분변으로 장 환경을 재현하는 복제 장 기술)로 개인별로 유익한 미생물 등을 분석해 프로바이오틱스 6종 중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케어나우’ 앱을 출시했다. 미국 국립보건원과 식약처 등으로부터 수집한 2730만 건 식품 바이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과 영양 성분 사이의 연관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건기식을 제공한다. 케어나우의 건강 설문은 대학 임상의학연구팀과 개발한 것으로, KCI 학술지 ‘대한임상건강증진학회지’ 최신호에 게재되는 등 임상학적 근거를 인정받기도 했다.
영양제 정기 구독으로 하루 한 팩
개인에게 맞춤형 건기식을 추천하는 서비스들이 속속 나오는가 하면, 추천을 바탕으로 영양제를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앱을 통해 개인 맞춤형 분석은 물론 상담, 관리 방법 등 스스로 관리하며 영양제를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함께 제공된다. 구독 서비스는 한 달분이나, 하루분씩 소분해 복용 편리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모노랩스의 ‘아이엠’은 AI를 기반으로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맞춤형 건기식을 제공한다. 온라인에서는 20여 문항의 설문을 진행하면 맞춤형 건기식을 추천해준다. 전문 영양사와의 카카오톡 채팅 상담을 통해 그중에서 꼭 필요한 영양제를 고를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약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설문 진행 후 약사와 상담할 수 있다. 추천받은 영양제를 구매하면 하루치씩 소분해 매달 정기 배송해준다. 또한 정해진 시간에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을 보내고 리워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섭취 관리도 돕는다.
투비콘의 개인 맞춤 영양제 구독 서비스 ‘필그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결과와 복용 중인 약 정보를 취합해 영양제를 추천한다. 국내 10개 생명보험사가 사용하는 지능형 언더라이팅 ‘H-health’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필그램이 보유한 약품·건기식 관련 데이터는 2만 200개 이상이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AI가 주의해야 할 성분과 추천 영양 성분을 고려해 정보를 제공한다. 각 영양제별로 복용 시기와 권장량을 안내하며, 영양상담사와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또한 한 영양소당 여러 제조사의 제품을 준비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앱을 통해 설문을 거치면 정기 배송을 통해 하루에 먹을 영양제를 모아 하루분씩 소분한 제품을 받을 수 있다.
뉴트리원의 맞춤 영양제 구독 서비스 ‘마이퍼즐’ 역시 자체 설계한 건강 설문과 전문가 상담을 통해 하루분씩 소포장한 맞춤 영양제를 30일에 한 번씩 정기 배송해준다. 한 팩을 구성하는 영양제는 추천 리스트에서 원하는 제품만 선택해 최소 2알에서 최대 10알까지 구성할 수 있다. 팩을 구성할 때 처음 1회는 오프라인 매장 혹은 화상 전화를 통해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케어위드의 건기식 정기 구독 플랫폼 ‘필리’는 개인 식습관 등의 설문을 통해 건기식을 추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필리는 영양제별로 한 달분을 소분해서 보내준다. 또한 필요한 영양 성분이 어디에 효과적인지도 간략하게 제공해 잘 알지 못하는 성분도 기능을 알 수 있다. 영양제 섭취 빈도를 체크할 수 있고, 알람 등록으로 먹는 시간을 안내받을 수도 있다. 현재 축적된 건강 설문 데이터는 약 91만 건이며, 누적 구독자는 5만 명에 달한다.
커피처럼 내려 먹는 영양제
개인 맞춤형 영양제 분석과 구독 서비스를 넘어 커피머신으로 홈 카페를 만드는 것처럼, 집에서 영양제를 만들어먹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양제 기계로 매일매일 다른 컨디션에 맞춘 영양제를 조합하는 것.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IoT 영양관리 가전 ‘뉴트리션 엔진’을 통해 구현되는 실시간 영양관리 솔루션 ‘나스’(NaaS, Nutrition-as-a-Service)를 선보였다. 사용자가 그날의 몸 상태를 선택만 하면 기존에 저장된 건강 정보를 토대로 헬스케어 AI가 지름 4mm 알갱이 형태의 영양제들을 맞춤형으로 배합해 한 잔에 제공한다. AI에는 자체 연구시설의 의약사 연구진이 3년 간 개발한 초정밀 건강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있다. 알고케어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2021년 ‘헬스&웰니스’부문, 2022년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 2023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으로 3년 연속 혁신상을 수상했다.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간편인증으로 건강검진 기록, 복용중인 약, 진료 내역 역시 자동 반영된다. 애플·삼성 헬스 등의 기관으로부터 활동량 데이터(라이프로그)도 받는다. 사용자가 선택하는 몸 상태에는 감기, 몸살과 같은 질병 증상과 더불어 우울, 피로 등 감정 및 컨디션 역시 포함된다. 알고케어는 ‘알고케어 앳 워크’라는 형태로 나스를 기업에 먼저 제공한다. 오는 3월부터 사전 예약한 기업을 중심으로 오피스 영양관리 솔루션이 제공된다. 오는 9월에는 ‘알고케어 앳 홈’을 통해 일반 사용자를 만날 예정이다.
셀프메디케이션 시장은 건기식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식약처는 규제샌드박스에 이어 맞춤형 건기식 소분·판매의 제도화 방안을 찾고 있으며,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는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판매업’ 신설 및 ‘맞춤형 건강기능식품관리사’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소비자 안전 확보를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시범사업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겠다”며 “맞춤형 건기식이 소비자의 건기식 섭취·구매 편의성을 높이고 건기식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도록 법령 정비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스페인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불평등 노령화 예방 보고서’(Preventing Ageing Unequally)에서 스페인의 65세 인구 비율이 2050년에 40%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초고령화시대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 고령층 건강 대책을 시행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노인복지청(IMSERSO)을 정부 부처 내 독립 부서로 두고 국민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복지청의 사업으로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령자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스페인 관광지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지난 2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의 보도에 따르면 여행 상품과 여행지를 다양화해 스페인 내 52개 지방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은 문화나 자연 경관을 선호하는 노인의 요구에 근거해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회인권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용 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지난해 연금 인상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스페인 대학들은 55세 이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험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를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접근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학 내에서 사회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하고 △노인이 아닌 다른 집단에게도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인문학, 과학, 사학, 예술 분야 등의 강의를 제공하는 이곳의 이름은 노인을 단지 나이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외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주 도시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드리드, ‘영원한 현역’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
스페인에는 기업의 전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중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세콧’(SECOT)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는 스페인 내 도시 외에도 유럽 연합(EU) 22개국의 조직이 모여 30세 미만의 실업자 혹은 실직자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45세 이상 중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콧 회원은 창업, 마케팅,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무 관리 방식 등에 대한 강의를 무급 자원봉사로 제공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전 직장과 업무를 고려해 업무를 배당한다. 또한 실전 강의를 나가기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의 모의 강의에서 통과해야 기업에서 강의할 수 있다.
마드리드 내 자치지역인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에서는 지난해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와 공원 내 벤치, 횡단보도 등을 점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60세 이상 지역 주민 50명이 직접 18개 구와 2개 공원의 GPS 사진을 수집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웃에게 이동 편의나 접근성에 대해 직접 확인하는 등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서 1인 고령가구 챙기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2017년 말 기준, 총인구 160만 명 중 65세 이상 30만 명이며 이중 4분의 1은 홀로 거주한다. 시 정부는 홀로 거주하는 노인을 위해 ‘빈끌레스바르셀로나’(VincleBCN)와 ‘내 나이가 어때서?’(Soc gran, i que?) 프로그램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빈끌레스바르셀로나는 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관계를 형성, 강화하고 노인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됐다. 행정상 바르셀로나에 주민으로 등록된 65세 이상 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는 곳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노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는 프로그램과 이름이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가족과 친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커뮤니티 구성원과 일상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스마트 기기가 없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시에서 기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앱은 노인의 사용 편의를 위해 메시지를 텍스트 외에 음성으로도 입력할 수 있고,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일정을 기록해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등의 기능이 탑재돼있다. 2021년 10월부터는 청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 연동 기능을 추가했으며, 수화가 가능한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행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블로거다’(soy blogger).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아동‧청소년‧노인 서비스국의 노인 홍보부서에서 추진하는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르셀로나 노인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시니어 시민을 위한 시 웹사이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자원봉사 기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이들은 활동 전 디지털 및 저널리즘 교육을 사전에 이수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오늘날 자주 쓰이는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직접 도시에 얽힌 콘텐츠를 취재해 제작하고, ‘시니어 웹’(Web de la Gent Gran) 블로그와 바르셀로나 시립 SNS 계정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이 운영 중이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남편의 장례식에 그 여자가 왔다. 경황이 없던 터라 옆에 있던 친구가 “혹시 저 여자 아니냐?”며 귀엣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주에게 인사를 건네기는 고사하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개처럼 스며들어 소리 없이 조문을 하고는 그림자처럼 홀연히 자리를 떴으니. 나중에 부의금을 챙길 때도 그 여자 것은 없었다. 철저히 존재를 감춘다는 것이 오히려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할지. 다녀간 걸 알고 나니 부의금을 내지 않은 이유가 짐작되면서, 꽁꽁 감춘다고 감춘 것이 티를 낸 꼴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남편 장례식에 그 여자의 등장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이제 와서 좋다 나쁘다 할 게 뭔가. 이미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두 여자의 심리적 줄다리기도 남편의 사망으로 맥없이 끝이 나버렸으니. 한쪽 줄은 남편과의 내연 관계인 그 여자가, 다른 쪽 줄은 아내인 내가 잡고 있던 줄다리기.
간호사와 환자로 만나 결혼
위암 판정을 받은 남편은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세상을 떠났다. 47세였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잦아 소화제로 버티다 못해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암이었다. 남편은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치료는 하되 아울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도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니까요” 하는 말로 대꾸했을 뿐이었다. 문학청년, 아니 문학장년다운 말이었다고 할지.
감정적 동요를 거의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이이가 이 정도로 담대한 사람이었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아니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실감을 못 하는 건가?’ 하고 놀란 건 되레 나였다. 아니면 본인이 진단받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의연함을 가장하는 건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남편의 암 진단 후에도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겠나. 현실은 더 힘들어졌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야속했던 건 남편이 아니라 오히려 나였던 것 같다.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일을 결혼 후 아이 출산하고 산후조리 때 잠깐 쉬었을 뿐 20년 넘게 해오면서, 막말로 죽을 날 받아놓은 남편이건만 그때조차 옆에 있어 주질 못했으니. 남편을 떠나보낸 지금, 만약 옆에 있어 주느라 생활비에 치료비도 감당하지 못했다면 그나마 1년 투병도 채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간호사다. 3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해 경력 따라 연륜 따라 52세인 지금은 중간급 병원의 수간호사로 근무 중이다. 남편은 나의 환자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로맨틱한 설정의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간호사와 환자 관계에서 부부가 된 경우였다.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무난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무난함을 지탱해준 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내가 가지고 오는 일정한 수입이었고. 결혼 후 지금까지 돈을 벌어본 적 없는 남편이 묵묵히 가사와 살림을 꾸려온 것도 우리 결혼의 무난함에 일조했음을 물론 인정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녀의 전통적 역할을 바꾼, 바깥일하는 아내 집안일하는 남편 구도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다만 남편은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또 하나의 아내처럼 의지하며 지냈고, 나는 그런 두 사람 관계를 묵인한 채 결국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렇다. 무난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처음부터 결코 무난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이었음을 인정한다. 애초 우리의 결혼은 세 사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문학폐인 단짝이 내연녀로
그해 추석 명절 연휴 마지막날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밤늦게 병원에 온 30대 후반의 남자. 그날 나는 야간 근무 중이었다. 미혼인 데다 뒤늦게 간호학을 전공한 나이 많은 새내기 간호사였던 나는 명절마다 당직이나 야간 근무에 배정됐다. 가정을 가진 선배 간호사들을 대신해 당연한 양보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불만도 없었다. 명절이라 봤자 갈 곳도 없었기에 더욱.
오빠 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친정은 이미 친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연이어 돌아가신 지 2년, 3년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라 명절에 간다고 해도 눈치나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오빠는 몰라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올케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 교회에 다녔던 우리 집은 차례도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차례 핑계를 대고 찾아갈 명분도 없었다. 세상 아래 피붙이라곤 오빠와 나 남매뿐이었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으니 부모님이 떠나신 마당에 새삼 가까이 지내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명절 근무는 갈 곳 없는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연휴에는 환자가 많을 때도 있고 아주 없을 때도 있다. 그야말로 환자 마음. 그해 추석 명절은 환자가 없는 편에 속했다. 밤 11시경 응급처치를 받은 그 남자, 미래의 내 남편은 장염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다음 날 정식으로 치료를 받고 며칠 입원하는 정도로 회복되었는데, 그 며칠 사이에 그와 나는 상당히 가까워져서 1년 만에 결혼을 했다. 내 나이 40을 넘긴 때였다.
내가 남편 내연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결혼 후 5년 만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 연인 중 한쪽이 결혼을 하자 둘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결혼하지 않은 여자 쪽이 내연녀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남편은 애인이 있는 남자, 그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결혼한 남자였던 것이다. 둘은 왜 결혼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의 무능력 탓이었다. 돈 벌 재주가 없었던 사람, 어쩌면 돈 벌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니 두 사람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쪽에서도 돈 벌 능력이 없었을 테고.
두 사람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둘 다 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중에 어느 문학 단체에서 만났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갔지만 두 사람 모두 글은 써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서로 간의 연민과 공감대가 깊어갔을 것이다. 고시폐인, 공시폐인 등 폐인증후군 중에서 이른바 ‘문학폐인’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경제력 있는 내가 남편 눈에 띄었고 남편은 운 좋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다. 물론 그는 결혼과 동시에 그 여자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됐을 뿐. 나는 병원 일로 정신없다 보니 남편의 정서적 빈자리는 풋풋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그 여자가 메워주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관계 정리
만약 남편이 자기 일이 있었다면,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이 있었다면 결혼과 함께 그 여자와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했다. 마흔 살이 넘으면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고, 그럴수록 그 여자와의 유대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 여자로선 어차피 결혼 상대가 없을 바에야 남편만큼 편한 사람이 또 있으랴. 내가 번 돈이 그 여자한테로 쏠쏠이 넘어갔을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 때가 있지만 그 또한 다 지나간 일이다.
둘 사이를 알게 된 것은 소설을 쓴답시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인터넷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내가 퇴근하기 직전까지 둘이 속닥거리다가 미처 컴퓨터를 끄지 못한 상태에서 들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병원에 있는 낮 시간 동안 두 사람은 SNS나 전화로 늘 교류해왔던 것인데, 핑곗거리로도 얼마나 좋은가. 글에 관한 대화 중이었다고. 자기들 스스로도 단지 글 이야기를 하는 거라며 관계를 합리화했을 테고. 돌이켜보면 남편이 그 오랜 세월 묵묵히 살림을 맡아 꾸려준 것도 내가 출근한 사이에 가지는 그 여자와의 밀회 덕이었으리라.
내가 알게 된 이상 두 사람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정리되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쪽에서 그 여자를 만나 헤어져달라고 말한 것도 정리에 대한 경고의 몸짓은 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혼하지 않는 이상 어쩔 것인가. 남편을 믿을 수밖에. 그러나 내 쪽에서 다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다. 그랬다. 나는 묵인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3년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안 후에도 두 사람이 계속 만났는지, 아니면 관계를 정리했는지 나는 모른다.
남편이 떠난 지금 남편과의 추억을 그 여자와 나눠 가진다고 해서 억울할 것도 없다. 다만 추억의 부피로나 깊이로나 나보다 그 여자의 것이 훨씬 두껍고 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쓰라리게 한다. 그의 아내는 내가 아니라 그 여자이고 내 인생은 두 사람을 먹여 살리느라 흘러간 게 아닐까 하는 자학적 망상에 빠져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세 사람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 나게 됐으니….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산바람이 맵차다. 그러나 설경이 눈부셔 추위를 녹인다. 접때 내린 눈발, 그대로 겹겹 쌓여 발목에 휘감긴다. 해발 600m 산협 사이 오지다. 설원에 나는 새 한 마리 없다. 산마루 양달에 선 소나무들 점점이 푸르지만 오롯이 적막하다. 산정 아래론 일망무제한 설경. 적요를 넘어 적멸이다. 그러니 심오하게 아름답다 할 수밖에. 여기는 유산양(乳山羊) 목장(괴산 하늘목장)이다. 눈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라고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게 산양의 습성이지만, 눈이 쌓여도 너무 쌓였다. 축사 안에 들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이 목장은 눈에 뒤덮이지 않더라도 오가기가 쉽지 않다.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고선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방문자들이 많다.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구경 삼아 찾아온다.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산세는 자못 묘하고 깊어 세속 도시를 잊게 한다. 3만 평이나 되는 너른 목장의 초지를 뛰놀며 풀을 뜯는 산양들의 모습은 충분히 목가적이다. 마음에 평화와 낭만을 안겨준다.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풍광이다. 입장료 같은 건 없다. 목장 주인 김운혁(61)은 성가시지 않을까? 불시에 문득 들이닥치는 외지인들로 인해 일에 방해가 될 텐데. 그러나 그는 생각과 처신에 경계를 두지 않고 산다. 오는 사람 굳이 막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목장 둘레에 꽃길과 돌담길을 만들어 산책자들의 정취를 북돋아준다. 살림집까지 개방, 응접실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차 대접하기를 관습으로 삼았다. ‘그대여! 어차피 오셨으니 근심일랑 내려놓고 맘 편히 쉬어가시라!’ 아마도 이게 그의 메시지. 이건 일종의 보시(報施)?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양들이 놀라지 않도록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언제든 방문자를 환영한다. 요즘 농업의 트렌드로 부상한 치유농업을 내가 추구하지는 않지만 농업 체험의 치유 효과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따라서 도시를 벗어나 이 오지 목장까지 찾아온 이들이 편하게 쉬어가도록 자그만 배려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일단 찾아온 이들이 해가 저물어도 좀체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웃음) 어떤 이들은 산자락에 텐트를 치고 야생의 밤까지 즐기고 돌아간다.”
선택 작목이 무엇이든 농사란 자칫 사람 망가지게 하는 고행을 닮았다. 농업이라는 고도의 난제에 매달려 살다 보면 멀쩡하던 성격과 정신마저 거칠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김운혁은 정반대 길을 간다. 방문자를 대하는 그의 양상엔 너그러운 이타심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이는 그의 목장 사업이 이미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반증이거니와, 아울러 수신(修身)을 부업으로 하지 않았을망정 탁 트인 마음 여유까지 보유하게 됐다는 징표로 보인다.
구제역 이후 ‘동물복지’ 실천하다
물론 귀농 초기엔 어지럽고 괴롭고 서러웠다.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커리큘럼으로 하는 농업 수련기를 길고 깊게 섭렵했다. 귀농 전 그는 도시에서 잘나가는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아내와 함께 귀농열차를 잡아타고 이 꽉 막힌 오지에 도착했다. 이곳이 진정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인생의 참다운 종착역이거니 하고.
“건설업이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직원은 많았고, 따라서 사고도 잦았다. 여러모로 견디기 어려웠다. 정신적·육체적 고생이 심했으니까. 이건 아니다, 쉬엄쉬엄 살아야겠다,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릴 적 꿈이었던 목장을 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귀농을 했다.”
처음엔 산양 아닌 염소를 길렀다지?
“원래 이곳엔 한우를 방목하다가 포기해 방치된 목장 부지가 있었다. 그걸 사들여 흑염소를 입식, 염소목장을 가동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찻길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지게로 자재를 져 날라 축사 보수 등 필요한 작업을 해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염소 사육 기술이 없어 실패를 거듭했다.”
사육 교육조차 받지 않고 뛰어들었나?
“딱히 기술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덤벼들었던 셈이지. 비교적 수월한 게 육용 염소 기르기라고 알려졌지만 질병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 난감했다. 첫해에 150마리를 길렀으나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폐사하고 말았다. 차마 예상하지 못한 가혹한 실패였다.”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대책을 찾아낼 수 있었나?
“실패가 곧 공부였다. 서서히 사육 기술을 터득하게 됐고, 치료 방법에도 요령이 붙어 직접 약을 만들어 쓸 만큼 발전했지. 하지만 시련이 잦았다. 날이면 날마다 종일토록 축사에 매달려 사는 식으로 공을 들였지만 뜻밖의 복병엔 속수무책이더라.”
가장 큰 시련은 어떤 것이었을까?
“(침울한 어조로) 2011년에 발생한 구제역 파문 때였다. 전염병이 우리 목장까지 덮쳤다. 기르던 염소 350마리 전체를 매몰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겪은 당시의 참변을 잊을 수 없다. 너무도 가슴 아팠다. 경악스러웠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염소들을, 가족과 다름없는 아이들을 땅에 파묻었으니까. 우리 내외의 상처가 컸지만 자금 손실도 막대했다.”
보상금이 적었나?
“남들은 대단한 금액을 받았다고 오해하지만 축산 농가들의 실질적 피해는 컸다. 목장 복구엔 보상비의 두 배쯤 되는 자금이 들어갔다.”
애지중지하던 염소들을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구제역의 참극은 김운혁의 생각을 일깨워 목장 운영 방식을 일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염소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전염병균은 고도로 지능이 뛰어나 바람처럼 침투했지만, 그걸 슬기롭게 미리 차단하지 못한 김운혁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던 것 같다. 그래 친환경 사육법을 도입했다. 나아가 동물복지를 구현함으로써 한결 단단한 단속을 했다. 사육 환경을 청결하게 개선하고, 염소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은 물론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게 이전보다 한결 적극적으로 배려했다. 염소들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걸 또렷이 인식했다.
“오랫동안 수익성을 중심에 두고 염소들을 길렀다. 어쩌면 마구잡이로 사육했다. 그러다 보니 염소나 사람이나 쌍방이 다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불완전한 사육 방법으로 염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병에 걸리면 나 역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이치를 비로소 알아차렸던 것이다. 결국 염소들이 행복하게 살아 건강해야 나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진실을 구제역 직후에야 이해했던 셈이다.”
단지 ‘마음 부자’를 지향했다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뼈아프게 인식하고 생각을 바꾸어 실천하자 목장 운영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염소들이 건강하게 자라 단 한 마리도 병들어 죽는 경우가 없었다. 잘 키운 염소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팔려나갔지만 산 아래에 차린 염소 요리 식당을 통해서도 수익을 거두었다. 2018년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염소 사육을 청산하고 뉴질랜드에서 들여온 유산양으로 목장을 채웠다. 야심에 찬 새 출발이었다. 현재 산양 사육 두수는 300여 마리.
“염소와 달리 산양을 통해서는 젖을 판매해 수익을 거둔다. 아들이 동참한 덕분에 분업 시스템도 구축했다. 우리 부부는 사육과 착유를 하고, 아들은 판매와 마케팅을 전담한다. 이렇게 분업화되자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오전 두어 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이후엔 한가한 편이다.”
젖을 이용한 가공 상품도 생산하나?
“전량 젖 그대로 판매한다. 가공 필요성이 없어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니까.”
염소와 산양의 생태는 어떻게 다른가?
“염소는 야생성이 강해 사람을 경계한다. 염소 사육법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분리해 사육하는 산양은 나를 거의 어미로 여긴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는 걸 아는 동물로 보이기도 한다. 강아지 못지않은 친화력을 가지고 사람을 잘 따른다. 그러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축사에 들어갔다가 놀랐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산양들이 거침없이 다가와 스킨십을 해서. 게다가 조잘거리듯 주둥이로, 표정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것 같아 흥미롭더라.(웃음)
“알고 보면 아주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다. 민감한 눈빛과 행동으로 욕구와 요구를 표현한다. 심지어 사람이 하는 짓을 따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단지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자주 오해하는 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여긴다는 점이지 않을까? 풀 한 포기를 비롯해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인간보다 못한 자질을 가진 존재가 얼마나 될까 싶다.
“산양의 생태에서 느끼는 게 많다. 온순하고 다정해 가축이라기보다 가족으로 느껴진다. 귀농 이전 도시에 살 때 난 비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성급한 성격대로 화를 품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산속에서 순수한 동물들과 함께 살며 나도 모르게 순한 인간으로 바뀐 거다. 스트레스에 찌들어 옹색했던 사람에서 꽤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했다.”
당신의 최대 난적이었던 스트레스를 귀농으로 처리했다? 그렇다면 귀농은 널리 장려할 만한 최선의 행위라 보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도시에서 몸에 밴 물질적 욕구를 다 내려놓지 않고선 지속하기 어려운 게 시골 생활이자 농업이다. 특히나 시니어의 서툰 귀농은 금물이다. 다 까먹기 십상이니까. 주변에서 많은 사례를 봐서 하는 말이다. ‘난 귀농하길 참 잘했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경쟁을 축으로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은 괴롭고, 외롭고, 지겨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부른 귀농으로 활로를 찾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충실한 귀농교육과 자금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단다. 더 중요한 건 세속적인 욕망 덜어내기다. 돈의 추구보다 자연 내지는 작물과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소소한 행복감이 방문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내가 귀농 이후 지향한 건 ‘마음 부자’다. 이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산중에서 아내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행복감. 이보다 나은 삶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운혁이 주는 귀농 Tip
•농업 관련 공부를 사전에 충실히 하라.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애와 결혼이 다르듯이 귀농의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농촌에서 최소 한 달만이라도 살아보고 결정하라.
•순소득이 아닌 매출액을 내세워 성공담을 전달하는 매체들의 미화된 정보에 현혹되지 말자.
•귀농 교육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달콤한 얘기를 다 믿지 마라. 농업 현장을 통해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 가령 과수농가의 경우 잘나가는 농가와 실패한 농가를 답사, 비교 분석해보라.
•자금력만이 다는 아니다. 끈기와 용기도 필수니까.
•산양목장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권하고 싶지 않다. 소규모로 한다 해도 시설 구비와 허가 등에 자금이 너무 많이 든다. 산양 관리에 얽매어 여가를 즐길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세상은 늙음을 가리켜 ‘지루하고 멋지지 않다’고 말한다.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패션은 오롯이 젊음의 몫인 양 분리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의 무언가를 칭할 때 ‘Old-fashioned’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여기에 젊은 작가가 반기를 들었다. 김동현(30) 사진작가는 노인 ‘스트리트 패션’을 필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접하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참 멋있다.’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이다. 젊은 세대의 유행에서 시작되는 영역이라, 수많은 잡지를 장식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는 옷차림에 신경 쓴 청년들이 가득했다. 노인과 묶어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동현 작가는 2019년 동묘에서 우연히 그럴 기회를 얻었다. 가볍게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멋진 할아버지를 찍게 된 것. 그는 젊은 멋쟁이 사진을 찍던 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시니어의 스트리트 패션을 주구장창 찍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국내에선 단발성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그가 최초다.
‘나만 찍을 수 있다’는 확신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다.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간다.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넨다. “저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선생님 사진을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둔 사진 중 피사체로 점찍은 분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라 보여드린다. 운 좋게 허락이 떨어지면 신중히 촬영을 한다. 촬영 후에는 초상권 사용 허가와 출판에 대한 동의를 무조건 받는다. 혹 촬영한 다음이라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진은 폐기한다.
그의 연장은 필름 카메라다. 필름 위에 사진 36장을 다 찍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생각이다. 필름 카메라 사진의 투박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멋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다. 인화한 사진은 선물하거나, 사진 파일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다. 이 모든 과정이 사진 촬영의 과정이자 소통이라고 생각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는 촬영 날짜와 ‘디올 어머님’, ‘힙스터 아버님’, ‘부족장 아버님’ 같은 별칭으로 기록된 멋쟁이 노인들이 빼곡하다. 가끔은 ‘오늘 옷을 멋지게 입었는데 촬영하러 나오지 않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2021년에 유명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에서 연락을 받고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작업했어요. 걸어 다니는 그 잠깐 사이에 피사체를 놓칠까봐 자전거를 타고 다녔죠. 동묘앞역에서 시작해 남대문, 청계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사거리를 매일같이 다녔어요. 마땅한 벌이가 없던 때라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200번 거절당하면 10장은 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거리에 나갔어요.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죠.”
이렇다 할 경력이 없던 그가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고난의 길 그 자체였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동대문 창고에서 짐을 날랐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촬영하는 데 썼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에게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사진을 ‘나만큼 노력해서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워가는 결과물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사진 몇 장으로 동묘가 한순간 ‘힙’의 성지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금 확신을 얻었다. 2018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동묘의 어르신들 사진 몇 장과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best street in the world)라고 적어 올리자 언론이 해당 소식을 일제히 퍼 날랐다. 그렇게 동묘는 새로운 패션의 성지로, 노인의 패션이 ‘힙’한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동묘는 ‘고루한 노인들만 모여 있는 동네’이고, 그곳의 패션은 ‘멋지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낯선 거리를 흥미롭게 여겼던 유명한 외국인의 게시글 하나로 인식이 한순간에 뒤집혔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나도, 내 작업물도 언젠가 빛을 보겠구나.”
3년이 넘어가는 요즘도 운이 좋아야 하루에 서너 명의 어르신을 찍는다. 주말 내내 사진 한 장 못 건질 때도 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특성상 처음 보는 일반인을 붙들고 사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탕 치는 날이 많다. 하지만 김동현 작가는 굴하지 않고 서울의 멋쟁이 노인들을 찾아 주말마다 거리로 나선다.
젊음은 따라 할 수 없는 ‘멋’
그가 피사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젊은 사람도 공감 가능한 스타일(왼쪽 사진)이거나 스타일에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질 때(중간 사진), 혹은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면(오른쪽 사진) 섭외를 시도한다. 세 번째는 스타일만큼 성격이나 주관이 단단한 분들이 많다. 맷집과 시간을 무기로 내세우는, 수천 번 거절당해본 김 작가도 섭외하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대 시도하지 않을 천연색 정장, 과감한 단청 무늬 티셔츠 차림은 작가로서 가장 욕심나는 피사체다. 또 한 번 거절당할 각오를 하며 명함을 내밀 수밖에.
젊은 사람 눈에도 멋있어 보이고, 누가 봐도 신경 썼음이 느껴지는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거울 앞에서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지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어떤 양말을 신을지’, 혹은 ‘오늘 입은 옷에는 어떤 형태의 모자를 써야 좋을지’. 웬만한 20대보다 옷 잘 입는 어르신들을 수두룩하게 만난 그로서는 나이 듦으로 멋의 유무를 구분 짓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나이 듦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하는 어른을 존경한다. 그래서인지 6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옷에 대한 태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추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멋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당당한 자세를 취한 노인들의 사진은 공연한 걱정을 지운다. 멋짐은 나이가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제 사진 속 어르신들은 지금보다 힘든 시절에도 옷차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분들이에요. 지금보다 패션을 등한시하던 시대, 남들과 다르면 눈총을 받던 시대를 살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거죠. 그건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에요. 젊은 사람은 옷을 똑같이 따라 입는다 해도 따라갈 수 없죠. 옷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반평생 패션에 진심인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3년, 6000장의 멋, 그 이상을 위하여
그는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패션 세계를 개척해나갔던 친할머니 덕분이다. 김동현 작가의 친할머니는 ‘교통비를 아끼려 2km를 걸어 다니더라도 고급 모피 코트를 사서 입을 줄 아시는 분’이었다. 작은 돈은 아껴도 옷은 좋은 것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이르던 멋진 할머니 덕분에 옷을 챙겨 입는 즐거움을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미디어는 노인을 지루하고 추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항 없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김동현 작가가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과 달랐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반박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가장 젊다고 여겨지는 영역인 패션 산업을 이끄는 건 나이 든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수장, 디자이너들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이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명품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어요. 우리는 젊은 사람이 입는 옷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옷은 나이 든 사람이 디자인한 결과물이에요. 그런데도 패션은 젊음의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누가 봐도 멋있다고 느낄 사진을 찍었다. ‘멋’(mut_jpg)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짤막한 대화를 갈무리한 글과 함께 사진을 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노인이 멋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찾는 사람들, 사진의 좋아요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해 5월 그는 첫 사진집 ‘멋’(MUT : the fasion of Seoul)을 냈다. 2019년부터 3년간 촬영한 약 6000장의 사진 중 400여 장을 추려서 책으로 출판했다. 사진집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였다.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김동현 작가의 목표가 반영된 것. 책을 제작하기 위해 한 달간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액인 200만 원을 훌쩍 넘긴 2225만 원이 모였다. 책을 내고 나서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영국 ‘가디언’지가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취재해 갔고, 지난 11월에는 영국 TV 방송사 채널5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우리나라의 시니어 패션을 직접 알리기도 했다.
그의 꿈은 현대 패션사(史)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의 사진과 ‘멋 작가’를 알리기 위해 모든 인터뷰에 응했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해에는 해외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올해 안에 ‘멋’ 사진집을 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시니어 헤어스타일 아카이빙 북 제작을 위한 촬영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동묘 스타일’에 세계가 반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