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관련 소비를 아끼지 않는 ‘셀프메디케이션’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 맞춤형 조제 건강기능식품과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처럼, 영양제를 만들어 먹는 시대가 왔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성장한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6조 1429억 원으로 추정된다. 2019년 대비 25% 넘게 성장한 규모다. 2021년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건기식 구매는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건기식 주요 고객층은 50~60대 중장년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조사에 따르면 5060의 구입 금액 점유율은 35%로 1위였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의 제품도 함께 구매하며, 한번 선택한 성분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10대 이하 자녀를 둔 30~40대 워킹맘도 28% 점유율을 차지하는 주요 소비층으로 꼽힌다.
개인 맞춤형 건기식 뜬다
셀프메디케이션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영양제를 알아보고 맞춤형으로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발맞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2020년 7월부터 개인 맞춤형 건기식 소분 및 판매를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건기식을 소분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필라이즈’는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영양제를 분석해 추천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먹고 있는 영양제를 등록하면 분석 리포트도 제공한다. 과다하거나 부족한 영양 성분, 건강 상태나 복용 의약물에 따라 부작용 위험이 있는 성분, 더 먹으면 좋은 성분 등을 알 수 있다. 복용 중인 영양제 분석 기능 이용 건수는 출시 직후 2만 회에서 8개월 만에 33만 회로 급증했다. 건강검진 기록이 있다면 더 자세한 분석을 제공하며, 먹고 있는 영양제를 등록하면 알람을 통해 가장 효과가 좋은 섭취 시간을 알려준다.
풀무원건강생활은 ‘퍼팩’(Perpack) 매장을 열고 소속 전문 영양사와 대면 상담 후 건기식을 소분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개인맞춤영양’ 앱을 출시, 39가지 설문조사에 답하면 개인에게 맞는 건강식품을 추천해준다. 그중 원하는 영양제를 고르면 1개월 분량으로 배송되며, 정기 배송도 가능하다. 개인맞춤영양의 재구독률은 70% 이상이다.
한국암웨이는 개인 맞춤형 건기식 소분 판매 서비스 ‘마이팩’을 선보였다. PMAS(분변으로 장 환경을 재현하는 복제 장 기술)로 개인별로 유익한 미생물 등을 분석해 프로바이오틱스 6종 중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케어나우’ 앱을 출시했다. 미국 국립보건원과 식약처 등으로부터 수집한 2730만 건 식품 바이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과 영양 성분 사이의 연관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건기식을 제공한다. 케어나우의 건강 설문은 대학 임상의학연구팀과 개발한 것으로, KCI 학술지 ‘대한임상건강증진학회지’ 최신호에 게재되는 등 임상학적 근거를 인정받기도 했다.
영양제 정기 구독으로 하루 한 팩
개인에게 맞춤형 건기식을 추천하는 서비스들이 속속 나오는가 하면, 추천을 바탕으로 영양제를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앱을 통해 개인 맞춤형 분석은 물론 상담, 관리 방법 등 스스로 관리하며 영양제를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함께 제공된다. 구독 서비스는 한 달분이나, 하루분씩 소분해 복용 편리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모노랩스의 ‘아이엠’은 AI를 기반으로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맞춤형 건기식을 제공한다. 온라인에서는 20여 문항의 설문을 진행하면 맞춤형 건기식을 추천해준다. 전문 영양사와의 카카오톡 채팅 상담을 통해 그중에서 꼭 필요한 영양제를 고를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약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설문 진행 후 약사와 상담할 수 있다. 추천받은 영양제를 구매하면 하루치씩 소분해 매달 정기 배송해준다. 또한 정해진 시간에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을 보내고 리워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섭취 관리도 돕는다.
투비콘의 개인 맞춤 영양제 구독 서비스 ‘필그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결과와 복용 중인 약 정보를 취합해 영양제를 추천한다. 국내 10개 생명보험사가 사용하는 지능형 언더라이팅 ‘H-health’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필그램이 보유한 약품·건기식 관련 데이터는 2만 200개 이상이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AI가 주의해야 할 성분과 추천 영양 성분을 고려해 정보를 제공한다. 각 영양제별로 복용 시기와 권장량을 안내하며, 영양상담사와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또한 한 영양소당 여러 제조사의 제품을 준비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앱을 통해 설문을 거치면 정기 배송을 통해 하루에 먹을 영양제를 모아 하루분씩 소분한 제품을 받을 수 있다.
뉴트리원의 맞춤 영양제 구독 서비스 ‘마이퍼즐’ 역시 자체 설계한 건강 설문과 전문가 상담을 통해 하루분씩 소포장한 맞춤 영양제를 30일에 한 번씩 정기 배송해준다. 한 팩을 구성하는 영양제는 추천 리스트에서 원하는 제품만 선택해 최소 2알에서 최대 10알까지 구성할 수 있다. 팩을 구성할 때 처음 1회는 오프라인 매장 혹은 화상 전화를 통해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케어위드의 건기식 정기 구독 플랫폼 ‘필리’는 개인 식습관 등의 설문을 통해 건기식을 추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필리는 영양제별로 한 달분을 소분해서 보내준다. 또한 필요한 영양 성분이 어디에 효과적인지도 간략하게 제공해 잘 알지 못하는 성분도 기능을 알 수 있다. 영양제 섭취 빈도를 체크할 수 있고, 알람 등록으로 먹는 시간을 안내받을 수도 있다. 현재 축적된 건강 설문 데이터는 약 91만 건이며, 누적 구독자는 5만 명에 달한다.
커피처럼 내려 먹는 영양제
개인 맞춤형 영양제 분석과 구독 서비스를 넘어 커피머신으로 홈 카페를 만드는 것처럼, 집에서 영양제를 만들어먹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양제 기계로 매일매일 다른 컨디션에 맞춘 영양제를 조합하는 것.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IoT 영양관리 가전 ‘뉴트리션 엔진’을 통해 구현되는 실시간 영양관리 솔루션 ‘나스’(NaaS, Nutrition-as-a-Service)를 선보였다. 사용자가 그날의 몸 상태를 선택만 하면 기존에 저장된 건강 정보를 토대로 헬스케어 AI가 지름 4mm 알갱이 형태의 영양제들을 맞춤형으로 배합해 한 잔에 제공한다. AI에는 자체 연구시설의 의약사 연구진이 3년 간 개발한 초정밀 건강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있다. 알고케어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2021년 ‘헬스&웰니스’부문, 2022년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 2023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으로 3년 연속 혁신상을 수상했다.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간편인증으로 건강검진 기록, 복용중인 약, 진료 내역 역시 자동 반영된다. 애플·삼성 헬스 등의 기관으로부터 활동량 데이터(라이프로그)도 받는다. 사용자가 선택하는 몸 상태에는 감기, 몸살과 같은 질병 증상과 더불어 우울, 피로 등 감정 및 컨디션 역시 포함된다. 알고케어는 ‘알고케어 앳 워크’라는 형태로 나스를 기업에 먼저 제공한다. 오는 3월부터 사전 예약한 기업을 중심으로 오피스 영양관리 솔루션이 제공된다. 오는 9월에는 ‘알고케어 앳 홈’을 통해 일반 사용자를 만날 예정이다.
셀프메디케이션 시장은 건기식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식약처는 규제샌드박스에 이어 맞춤형 건기식 소분·판매의 제도화 방안을 찾고 있으며,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는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판매업’ 신설 및 ‘맞춤형 건강기능식품관리사’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소비자 안전 확보를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시범사업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겠다”며 “맞춤형 건기식이 소비자의 건기식 섭취·구매 편의성을 높이고 건기식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도록 법령 정비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