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홍합미역국
찬바람이 불 때 유난히 생각나는 홍합탕. 여기에 미역을 넣으면 색다른 미역국이 완성된다. 시원한 국물 맛은 물론 쫄깃쫄깃 씹히는 식감까지. 홍합에는 칼슘, 인, 철분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빈혈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되며 노화 방지에도 좋다.
재료
홍합 500g, 불린 미역 2컵, 물 8컵, 다진 마늘 1큰술, 국간장 2큰술, 후추 약간,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홍합은 껍질에 붙은 수초 등을 제거해 깨끗이 씻은 후 옅은 소금물에 해감한다.
2 홍합에 물을 넣고 충분히 끓인다.
3 익혀낸 홍합은 건져 껍질에서 살을 분리한다.
4 홍합을 끓이고 남은 물은 체에 밭쳐 냄비에 옮긴다.
5 국물에 불린 미역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마늘과 국간장, 후추로 간한다.
6 마지막으로 분리한 홍합살을 넣고 다시 한 번 끓인다.
홍합밥
10월의 홍합은 살이 올라 통통하고 신선해 요리하기 좋다. 뽀얀 쌀에 싱싱한 홍합살을 올려 밥을 지으면 바다 내음이 나는 홍합밥이 완성된다. 여기에 각종 해물, 버섯 등을 추가하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재료
홍합살 100g, 쌀 1컵, 야채국물 1컵, 느타리버섯 40g, 잣 10알
양념간장: 간장 3큰술, 참기름 1작은술, 깨소금 1작은술, 고춧가루 1작은술, 땅콩버터 1작은술, 실파 조금
채소 국물: 물 5컵, 무 ¼개, 양파 ¼개, 굵은 파 ¼대, 다시마 1장(10cmx10cm), 국물용 멸치 5마리
만드는 법
1 홍합을 깨끗이 씻은 뒤 살을 발라내 묽은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 물기를 뺀다.
2 쌀은 물에 담가 30분쯤 불린다.
3 채소 국물은 냄비에 분량의 재료를 통째로 담아 약한 불에 30분쯤 끓인다.
4 쌀 위에 홍합살을 얹은 뒤 느타리버섯과 잣을 올린다.
5 채소 국물을 부어 센 불에 올린다.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에 5분쯤 끓인 후 불을 줄인 뒤 1~2분 정도 뜸 들인다.
6 분량의 재료를 섞은 양념간장을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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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메뉴에 건강 밸런스까지 생각한 제철 사찰음식 한 상을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조계종 한국사찰음식전문교육기관 이수)
장소 협찬 키프레시(홍대점)
그릇 협찬 지승민의 공기
유익한 토종균을 섭취할 수 있는 청국장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에 탁월한 단호박을 매치했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저칼로리인 송화버섯 장아찌를 더하면 콜레스테롤 걱정 없이 소화가 잘되는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후식으로 말린 과일을 곁들여 비타민을 보충한다. 싸리나무차는 고혈압과 동맥경화 완화에 도움이 된다. 열이 나거나 맥이 약할 때 음을 보충하는 ‘보음식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호박, 토란, 버섯 등이다. 이들 식재료를 활용한 이번 한상차림은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지친 생체 리듬을 회복하고 기력을 더해줄 것이다. 염분과 열량은 줄이고, 영양과 맛을 올린 사찰식단으로 건강하고 활기찬 가을을 맞이해보자.
단호박 청국장 곤드레덮밥 곤드레 100g을 끓는 물에 10분간 연하게 삶아 물기를 꼭 짠다. 한입 크기로 쫑쫑 썰어 낸 곤드레에 진간장(2큰술)과 들기름(3큰술)을 넣어 밑간한다. 씻은 쌀(500g)에 준비한 곤드레와 물(쌀 부피의 1.2배)을 넣어 밥을 짓는다. 단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통째로 15분간 찐다. 찐 단호박에 파프리카(1/4개), 브로콜리(1/4)를 넣고 속 재료가 익을 때까지 끓이다 녹말물을 풀어 걸쭉하게 만든다. 소금이나 간장 대신 청국장으로 간을 하고 들기름을 넣어 고소함을 더한다. 완성된 곤드레밥과 단호박청국장을 카레라이스처럼 플레이팅한다. 기호에 따라 청국장을 더해도 좋다.
로즈메리 송화버섯 장아찌 송화버섯(500g)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뺀다. 다시마(1장), 멸치(50g)를 넣어 끓인 육수(50g)에 집간장(185g), 진간장(840g), 사이다(470g), 로즈마리(5g)를 넣고 팔팔 끓이다 준비된 송화버섯을 넣는다. 식성에 따라 청양고추를 더한다. 산해진미인 ‘솔잎 송로버섯 장아찌’에서 착안한 요리로 솔잎 대신 로즈메리를, 송로버섯(트러플) 대신 송화버섯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말린과일·김튀각 오렌지, 레몬, 파인애플 등 얇게 썬 과일을 건조시킨다. 과일의 수분감이 날아가며 과일 본연의 영양 성분이 농축돼 적은 양으로도 풍부한 영양 섭취가 가능하다. 여기에 바삭한 식감을 더해줄 김부각을 함께 낸다. 찹쌀가루(5g), 물(15g), 소금(0.5g)을 골고루 섞어 묽은 찹쌀풀을 만든다. 김밥용 김에 찹쌀풀을 반만 발라 반을 접고, 다시 반만 발라 접은 뒤 윗면에 찹쌀풀을 발라 통깨를 뿌려 말린다. 식용유(2컵)를 넣고 170℃로 달군 팬에 풀칠한 김을 바삭하게 튀겨낸다.
싸리나무차 구황식물로 콩과에 속하는 싸리나무는 잎, 줄기, 씨앗 모두 식용으로 널리 쓰인다. 고혈압, 동맥경화 완화와 예방에 효과가 있다. 싸리나무 잎(100g), 감초(2개), 다시마, 연근, 당근을 넣고 끓인다.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1)의 요리교실 이름이다. 연희동 주택가 골목을 헤매다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가다 보면 2층 집 파란 대문이 보인다. 요리 스튜디오가 있는 그녀의 집이다. 이곳에 드나드는 수강생만 한 달에 200여 명, 대기자도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셰프의 딸로 태어나 독일과 스페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산 지 20여 년. 일본어 강사, 번역가, 기자로 활동했던 그녀가 지금은 요리를 가르친다.
순전히 사람들과 만나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두서없는 수다와 한숨, 투정까지 레시피가 되는 요리교실이 있다. 교실 주인은 나카가와 히데코. 우리말 독음이 ‘중천수자’라서 종종 ‘수자 언니’로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연희동 자택에서 10여 년째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고 있다. ‘Gourmet’는 프랑스어로 ‘미식가·식도락가’라는 의미이고, ‘Lebkuchen’은 세상에 다양한 맛과 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준 독일 과자 이름이다. 발음하면 구름이 연상되는 이 폭신 달달한 간판을 달고 그녀는 거의 매일 파티를 하듯 수강생들과 만난다.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있는 걸까. 1, 2년을 기다려가면서까지 그녀의 요리교실을 탐내는 사람도 많다.
첫 연락이 됐을 때 그녀는 영국에 있다 했다. 너무 바빠 보여 거의 포기 상태로 그녀가 출판한 책들을 읽으며 귀국 날짜를 기다렸다. 요리교실을 통해 만난 수강생들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다 보니 사람들이 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먹방 시대, TV만 켜면 수만 가지 레시피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카가오 히데코, 아니 수자 언니의 요리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식탁 위의 이야기’. 그녀는 각국의 특별한 요리를 가르칠 때마다 그날 참석한 사람들의 스페셜(?)한 인생 이야기도 식탁 위에 올린다. 모두의 스토리가 요리의 가장 빛나는 레시피가 되는 시간이다. 요리 배우러 와서 위로받고 마음 치유까지 하고 간다는 입소문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요리의 고수일 뿐만 아니라 마음을 녹이고 흔들어놓는 재주도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돌아오기 전 다행히 시간을 비워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한 날 그녀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얼마쯤 헤매어도 좋을,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길이었다. 도자기에 문어가 그려진, 그녀의 작은아들이 만들어줬다는 요리교실 간판은 2층 집 파란 대문 기둥 위에 앙증맞게 달려 있었다.
연희동의 ‘킨포크’
구르메 레브쿠헨 수강생들은 요리를 배우러 왔다가 그녀의 음식 철학에 반해 아예 친구가 되어버리곤 한다. 요리도 요리이지만 그녀에게 푹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교실은 어느새 연희동의 킨포크(kinfolk)로 불리고 있다.
“저는 셰프라는 호칭보다는 요리 연구가로 불러주는 게 좋아요. 푸드 디렉터, 연구라는 말에는 문화적, 인문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잖아요. 요리 기술만 가르쳤으면 힘들어서 벌써 그만뒀을 거예요.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만나 요리하고, 먹고, 마시고, 수다 떨고, 웃고, 눈물 콧물 빼는 시간을 사랑해요. 그 시간 속에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식재료를 사러 자주 들르는 ‘사러가 쇼핑센터’, 빵집, 도자기 공방, 한의원 등 동네를 오가며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오래 기억한다. 궁금해서 기웃거리고, 고마워서 감동하고, “밥 먹었어? 우리 밥 먹자!”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지인이 운영하는 화랑에도 괜히 들러보곤 한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도무지 사는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요리는 사랑이고 우주다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요리 셰프였던 아버지를 따라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지냈던 그녀는 코즈모폴리턴으로 살기를 원했다. 1994년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한국 남자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 벌써 24년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녀만의 철학을 실천하는 ‘구르메 레브쿠헨’ 안에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요리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어렸을 때 그녀는 아버지의 직업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현재 85세인 아버지는 프랑스 요리계의 대부 무라카미 노부오(村上信夫)의 제자가 된 후 78세까지 주방에서 일했다.
“부모님은 제가 대학에서 요리 관련 공부를 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 일이 싫었어요.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뜨거운 불 앞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만 봤거든요. 일본대사관 전속 요리장으로 있던 아버지가 독일에서 돌아와 고향 사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는데 갑갑하게 섬에 갇혀 사는 이유가 다 아버지 직업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어느 날은 화가 나서 ‘나는 정장을 입고 매일 출근하는 사람과 결혼할 거야!’ 하며 대들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그녀는 그러나 20대에 동독과 스페인에서 지내면서 요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방인의 심정을 헤아려 요리를 해주고 같이 나눠 먹는 친구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고, 음식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 관계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친구들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도 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 마음에 점점 중독(?)되어갔다. 결혼해서 살던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이유 중 하나가 언제든 바비큐 파티를 하고 싶어서였다니 참 대책 없이 귀여운 여인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때 경비실 인터폰이 울린 적도 있어요.(웃음)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죠. 마침내 단독주택을 샀을 때 마치 신한테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어요. 자그마한 정원과 별이 있는 밤하늘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요. 지인들을 불러 주말마다 파티를 열었어요. ‘그렇게 파티를 자주 하면 돈이 많이 들 텐데’ 하면서 걱정을 해주는 지인도 있었어요. 요리는 문화예요. 그리고 우주예요. 문화를 나누고 서로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그 신비스러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남편도 그녀 못지않게 파티를 즐기고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다. 일본어 강의를 하던 시절 한 수강생을 통해 알게 됐는데 첫눈에 미각도 있어 보였고 술을 좋아하는 남자라 금세 친해졌다.
“제 인생이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이런저런 지루함도 밀려와 그만 일본으로 돌아가자 마음을 먹었어요. 가서 학위도 따고 그동안 못한 효도도 좀 하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때 운명처럼 남편이 나타난 거예요. 서로 술을 좋아하다 보니 처음부터 만나는 게 어색하지 않았어요. 자주 자리를 함께하며 음식을 즐기고 대화를 나눴죠. 자연스럽게 이성의 감정이 싹트더군요. 그래서 함께 같은 음식을 즐기는 것은 중요한 일 같아요. 이유도 모른 채 애인과 헤어진 사람은 그(그녀)와 즐겁게 먹었던 음식이 뭐였는지 한번 검토해볼 일이에요.(웃음) 남편은 제가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해주고 때로는 가혹한 조언도 해줍니다. 물론 제 지인들과도 잘 어울리고요.”
한국 음식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한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스페인 요리 파에야를 가르쳐준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그녀의 요리교실. 수강생 연령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여자 수강생이 대부분이지만 남자도 꽤 있다. 4년째 요리를 배우는 60대 교수님도 있고, 한 치과의사는 캠핑을 다니다가 요리에 관심이 생겨 그녀의 교실을 찾았다.
“남자분들이 요리 배우는 걸 그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어요. 그분들은 특별한 요리를 배우러 오시는 게 아니에요. 꽈리고추멸치볶음 같은 아주 소박한 가정식 요리를 원해요. 나이가 드니까 뭘 먹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하기가 점점 구차하다는 거예요. 괜스레 아내 눈치를 보시는 거죠.(웃음) 간단한 안주 요리에 대한 관심이야 다들 뜨겁죠.”
최근, 은퇴 후 혼자 지내는 남자들을 위한 요리교실을 기획하고 있다는 그녀는 한국의 내림 음식들은 매우 훌륭한데 제대로 된 레시피가 없어 국제화하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매력적인 한국 음식은 양념장이에요. 간장에 마늘과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넣어 맛을 낸 양념장은 어느 나라에서도 맛보지 못한 음식이에요. 결혼 후 시어머님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이거 조금 넣고 저거 조금 넣으면 된다’ 하시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한국 궁중음식연구원에 가서 공부도 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음식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때로는 프랑스 요리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 나카가와 히데코, 아니 수자 언니답게 ‘요리의 관계학’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호로록!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차갑게 얼어 있던 몸을 녹여준다. 면을 힘껏 빨아올리자 국물이 얼굴을 때린다. 조금 튄 국물이 대수인가. 통통한 면발을 한입 오물거리다가 삼키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쫄깃하고 깔끔한 우동을 맛보고 싶다면 ‘카덴’을 추천한다.
‘카덴’은 JTBC 에서 얼굴을 알린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우동 가게다. 일본 유학 시절 관심을 갖게 된 우동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 서교동 본점에 이어 연희동에 2호점이 생길 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레스토랑 가이드북 ,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 안내서인 에 등록된 맛집으로 맛은 이미 보장된다고 할 수 있겠다. 가격은 6500원~1만2000원 사이로 부담스럽지 않다.
정성이 담긴 우동 한 그릇
일본 우동은 지역에 따라 육수를 내는 방법과 면의 종류가 다양하다. 가가와의 사누키 우동, 아키타의 이나니와 우동, 군마의 미즈사와 우동이 일본의 3대 우동으로 꼽힌다. ‘카덴’은 오사카 쪽으로 오면서 발달한 관서지방식 우동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사누키 우동과 비슷하지만 좀 더 부드러우면서 떡처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면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물, 소금으로 반죽한 뒤 4시간 정도 1차 숙성을 거친다. 이후 발로 치대면서 반죽을 하는데 이때 체중이 실린 발이 반죽 속 공기를 최소화시켜 탄성을 높여준다. 이 반죽을 다시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눠 12시간 숙성시키면 진정한 ‘카덴’의 면발로 탄생한다. 여름에는 10분, 겨울에는 13분 정도 삶아내는 과정을 통해 면발의 식감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우동은 국물의 맛 또한 중요하다. 카덴은 멸치, 고등어, 가다랑어를 우려낸 육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완도산 다시마와 말린 밴댕이 디포리를 사용해 진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우스구치(국간장)를 사용해 간을 맞춘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가키아게 우동(7000원)을 주문하면 우동과 가키아게가 따로 나온다. 정호영 셰프는 “튀김을 국물에 넣어두면 눅눅해지기 때문에 따로 내놓는다. 튀김을 어느 정도 먹다가 국물에 넣어 먹으면 튀김의 맛과 기름이 섞여 농후한 우동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색다른 맛의 매력, 자루우동
자루우동(7000원)은 고이구치(진간장)와 육수를 섞어 만든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우동으로 따뜻한 국물에 담겨 나오는 우동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실파, 생강, 간 무를 입맛에 맞게 소스에 넣고 면을 살짝 담갔다 먹으면 된다. 얼음물에 헹궈낸 쫄깃한 면발에 짭짤한 소스와 건더기가 달라붙어 감칠맛을 낸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73
예약 및 문의 02-337-6360
운영시간 평일 11:30~22:00 (15:30~17:30 브레이크타임) 토요일 11:30~21:30 일요일 휴무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향과 달큼하면서도 짭짤한 맛, 마지막에 느껴지는 쌉싸래한 여운까지. 멍게는 노화를 방지하는 타우린을 함유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주기 때문에 당뇨병에도 좋다.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멍게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11년째 멍게 요리를 하며 이름을 알린 ‘목포명가’에서 그 진수를 확인해보자.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앞으로 쭉 펼쳐진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너면 크고 작은 음식점이 모여 있는 먹자골목을 만난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니 파란색 간판이 인상적인 ‘목포명가’ 건물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증샷’ 액자가 맛집임을 증명하듯 벽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음식을 시키면 본 메뉴가 나오기 전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밑반찬들이 제공된다. 멸치볶음, 어리굴젓, 홍어무침 등에서 목포가 고향인 주인의 손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멍게 껍질과 함께 끓여져 나온 미역국 또한 시원하고 맛이 깊다. ‘목포명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는 멍게비빔밥(1만원)과 물회(1만5000원). 두 메뉴의 공통점은 멍게가 들어간다는 데 있다.
‘목포명가’는 멍게 맛이 가장 좋다는 5월에 살이 잘 오른 3년산 통영 멍게만 받아 사용한다. 잘게 다진 멍게 살에 된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멍게소스’는 이 집만의 특별한 요리 비법이다. 신선한 야채에 아낌없이 올린 멍게소스가 멍게비빔밥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최정임 사장은 “비빔밥에 초장을 많이 넣으면 단맛만 강해져요. 저는 초장은 살짝 넣고 멍게소스만으로 감칠맛을 내지요. 돌김에 싸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라며 자신 있게 멍게비빔밥을 추천한다. 물회는 바지락과 야채로 기본 육수를 내고 초장, 식초, 설탕을 가미한다. 마지막으로 멍게소스를 한 숟가락 넣어주면 ‘목포명가’만의 멍게 향이 은은하게 나는 물회 육수가 완성된다. 여기에 싱싱한 활어회, 문어, 해삼 등 각종 해산물과 함께 메밀국수가 들어가니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가을 바다의 주인공 전어의 귀환
제법 선선해진 가을바람과 함께 바다에서 군침 도는 풍어의 소식이 들려온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어는 가을에 꼭 먹어봐야 할 별미다. 뼈째 먹으면 칼슘을 다량 섭취할 수 있고 DHA와 EPA 등 불포화지방산이 혈액을 맑게 해줘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목포명가’도 가을을 맞이해 계절 메뉴로 전어세트(5만5000원)를 판매한다. 매일 아침 가락수산시장에서 공수해온 전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신선한 전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100길 23-22
예약 및 문의 02-558-9412
운영시간 11:30~22:00
한 극장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힘없는 연극인들은 도시 개발, 상권 확장에 쉽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극장만도 헤아릴 수 없는 요즘, 부산의 가마골소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소극장의 옛 추억을 간직한 시니어 세대와 무대를 지키고 싶은 젊은 연극인의 꿈이 담겨 있는 공간 가마골 소극장에 다녀왔다.
오늘도 내일도 극장문은 활짝 열린다
지난 7월 7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조용했던 마을에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낯익은 배우가 박자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고 모두의 얼굴은 상기돼 기쁜 모습이었다. 한산했던 시골 동네에 부산 연극의 중심이던 가마골소극장이 들어섰다. 6층짜리 화려한 건물 안에는 공연장을 비롯해 주점, 카페 등 연극인과 시민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졌다. 1986년 부산 광장동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가마골소극장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산실을 담당하던 곳이다. 연희단거리패의 활동 무대가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졌을 때도 꾸준히 실험연극을 비롯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중앙동과 광안리, 다시 광복동을 거쳐서 거제리로 무대를 옮겨 다니면서도 다수 공연의 매진 행렬과 최대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한 내실 있는 극장이었다. 그러나 시대 기류에 못 이겨 폐관이 기로에 서기도 했다. 결국 길고 길었던 셋방살이 30년에 종지부를 찍고 100년 길이 남을 극장으로 기장군에 세워졌다.
역사와 추억을 품다
“현재 부산 기장군에 신축 중인 6층짜리 가마골소극장의 건물 1층은 포장마차로, 2층은 카페 오아시스로 꾸밀 생각이라고 한다. 위층은 극장과 극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2017년 7월호 브라보가 만난 사람, 연극연출가 이윤택 인터뷰 中)
가마골소극장에 관한 계획은 작년 7월 연희단거리패의 꼭두쇠 이윤택 인터뷰를 통해 본지에 소개된 바 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을 극장 건립을 통해 보여준 것. 1층에는 목로주점 양산박이 있다. 이윤택이 신문기자이던 시절 한 시인을 돕기 위해 부산일보 기자 네 명과 함께 출자해 부산시 광복동 입구에 차렸다던 ‘양산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2층은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클래식 음악 카페 오아시스의 향수가 묻어나는 곳으로 꾸몄다. 이윤택이 20대이던 시절 당시 돈 80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악 듣고 시 쓰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곳이 바로 카페 오아시스였다고. 그때처럼 LP판은 아니지만 지금의 카페 오아시스도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천장에는 지금까지 연희단거리패가 공연했던 작품의 포스터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극단과 극장의 세월을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콘서트, 세미나, 북콘서트를 통해 시민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할 계획이다.
2층에는 가마골소극장과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연출가였던 故 이윤주의 기념관과 북카페 ‘책굽는 가마’가 함께 자리했다. 2015년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꽃같이 사라진 배우이자 연출가 이윤주를 기리는 이윤주기념관에서는 그녀 연극생활의 시작과 끝을 만날 수 있다. 가마골소극장의 대표로서 서울보다는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왔던 이윤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몸짓과 목소리를 가졌던 배우이자 연극쟁이였다. 아동극 연출과 연극 에서 배우를 마지막으로 영영 사라진 그녀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북카페 ‘책굽는 가마’에는 연희단거리패가 지금까지 출판했던 도서와 연희단거리패 연극 200선을 구비해놓고 판매도 한다. 조용히 책을 읽고 차를 마시기에 좋다.
3층과 4층이 바로 가마골소극장이다. 120석 규모의 극장은 작은 무대이지만 높이와 경사각이 깊어 무대가 답답해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5층과 6층은 배우들의 숙소와 연희단거리패의 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도 마련돼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직접 만들고 운영까지 하는 곳
가마골소극장에는 남다른 시스템이 있다. 바로 극단의 모든 구성원이 운영 주체다. 1층과 2층의 주점과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배우들과 스태프다. 분장을 하고 커피를 만들거나 서빙을 하고, 셔틀버스를 운행한 배우가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극장의 무대, 조명, 음향, 객석 등 사람들이 오가는 곳곳에도 극단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서려 있다.
연희단거리패 조명감독 겸 가마골소극장 대표인 조인곤씨는 “가마골소극장은 연희단거리패와 극단가마골, 가마골소극장의 역사 저장창고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장에는 미역도 있고 멸치도 있고 해수욕장도 있다. 그리고 가마골소극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4월 초순경, 장고항 어부들의 몸짓이 부산하다. 실치잡이를 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실치가 적을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지만 많을 때는 수시로 바다에 나가 바쁘게 작업을 해야 한다. 흰 몸에 눈 점 하나 있는, 애써 눈여겨봐야 할 정도로 작은 물고기인 실치가 작은 몸집 흐느적거리면서 장고항 앞바다를 회유한다. 실치는 장고항 봄의 전령사다.
지형이 장고의 목처럼 생긴 어촌 마을
해돋이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오전 6시가 채 못 돼 부스스 일어나 장고항 우측 끝자락의 노적봉과 촛대바위가 잘 보이는 위치를 찾는다. 마치 뫼산[山] 형태의 기암은 장고항의 지킴이다. 오랫동안 먼 바다에 조업 갔다 오는 어부들의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계절, 기암 사이로 멋지게 떠오르는 해돋이를 기대하진 않는다. 단지 장고항을 대변해주는, 육지 끝자락에 있는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물이 빠져 갯벌이 다 드러나는 서해에서 바라보는 일출. 동해에서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아침 햇살은 빠르게 사위를 밝게 해준다. 서둘러 장고마을로 들어선다. 장고항은 ‘지형이 장고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장고목’이라 불리다가 후에 장고항 마을로 개칭되었다. 이외에도 가낭골, 당산 마을이라는 이름이 있다. 여행자들도 바닷가 마을만 한갓지게 배회한다. 서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인 장고항이 특히 유명해진 것은 ‘실치’ 덕분이다.
‘실치’로 이름 알린 장고항
장고항 사람들은 1970년대 초, 실치잡이가 본격화되면서 다들 실치포를 말렸다고도 한다. 실치잡이가 성행할 때는 150여 가구가 소위 멍텅구리배로 불리는 무동력 중선으로 실치잡이를 해왔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연안에서의 실치잡이 어선이 자취를 감춘다. 지금은 인근 앞바다에서 개량 안강망 그물로 실치를 잡는다. 2000년 초부터는 장고항 실치회 축제를 만들어 ‘실치회의 원조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을 안쪽 건조대에서는 실치포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샅 건물 벽에 씌인 손글씨를 따라 실치포 작업장을 찾아낸다. 아주 오랫동안 실치포를 만들어왔음이 느껴지는 작업장이다. 실치포 만드는 작업은 눈으로 봐도 힘겨워 보인다. 마치 김 한 장 만들 듯, 물그릇 담긴 실치를 그릇으로 적당량 떠서 사각 나무틀에 쏟아 납작하게 모양을 잡는다. 연륜이 깊고 숙련된 사람일수록 실치의 양을 정확히 가늠하고 평평하게 할 수 있다. 발에 붙은 실치는 신기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 몇 시간 해풍을 맞으며 건조되면 실치포가 완성될 것이다. 두껍고 살색이 흴수록 좋은 실치포라는 상식을 알게 된다. 기꺼이 실치포 몇 묶음을 산다.
젓가락으로 건져낼 정도로 아주 작은 물고기
건조대를 지나 마을 끝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수산물유통센터가 나온다. 2012년 4월 28일, 제9회 축제를 맞춰 개장한 곳으로 7209㎡의 부지의 1153㎡의 1층 건물에는 20여 곳의 횟집이 들어서 있다. 난전, 포장마차를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간판을 달고 한곳에서 영업하고 있다. 싱싱한 활어는 물론이고 실치와 간재미 등이 지천이다.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일까? 바닷물을 가득 담은 고무 대야에 살아 있는 실치들이 헤엄치고 있다. 흰 몸에 점이 하나 있는, 마치 실처럼 가는 물고기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 살아있어요” 하는 듯하다. 횟집들마다 부산하게 실치를 씻으며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 없다. 실치 씻는 방법도 아주 특이하다. 튀김을 건져낼 때 사용하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실치들을 휘휘 저어댄다. 젓가락에 실치가 걸쳐지면 소쿠리에 담아내는 일을 반복한다. 워낙 작은 물고기라서 손품이 많이 필요하다.
기암 촛대바위가 멋진 해안
수산센터를 지나 방파제로 가는 길목에서 멀리서만 봤던 기암을 가까이서 조우한다. 붓을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바위가 촛대바위다. 양쪽으론 기암이 감싸고 있다. 바다 쪽, 높은 바위를 노적봉이라 부른다. 바다 쪽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석굴(해식동굴)이 있다. 용천굴이라고 부르는데 으레 그렇듯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천장이 뻥 뚫려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이곳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전설도 있다. 200여 년 전, 나라에 큰 정변이 일어나서 사람들은 피난을 갔단다. 그때 한 아이가 이 동굴에서 7년을 공부해 장원급제를 해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동굴을 신성시해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올망졸망 배들이 매어 있는 선착장으로 가 본다. 조업을 마친 배들이 들어오고 몇 팀의 낚시꾼들은 부산스럽게 배를 타고 떠난다. 한편에서는 남편의 고깃배가 들어오는지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는 아낙도 있고 일찍부터 막걸리 한 사발로 술추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물망에 걸린 실치 작업에 한창인 어부를 만난다. 이들은 실치 철이 끝날 때까지 자주 바닷가에 나가 작업을 한다. 실치가 적게 잡힐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고, 많이 잡힐 때는 수시로 그물을 털 것이다. 내겐 볼거리이지만 어부들에게는 생계의 그물이자 돈 줄 아닌가.
씹힐 틈 없이 살살 녹는 실치회
이제는 ‘당진 8미(味)’ 중 하나로 꼽히는 실치회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실치회 한 접시를 시킨다. 아주 작은, 흰색의 물고기가 무더기로 뒤섞인 접시 위로 깨소금, 참기름, 파 등의 양념이 흩뿌려져 있다. 여기에 오이, 깻잎, 쑥갓, 당근 등 갖은 야채에 고추장 양념이 더해지면, 함께 쓱쓱 버무려 입에 넣기만 하면 된다. 실치가 미끄러워 반드시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 한입 먹어본다. 작은 물고기라서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는 식감이 일품이다. 아욱을 넣어 끓여낸 고소한 실치 국에 실치 전, 실치 계란찜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실치라는 물고기가 어떤 놈인지 궁금해진다. 실치는 일반적으로 뱅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도라치’라는 이름도 있다. 서해에서는 흰베도라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실치는 ‘흰베도라치의 새끼’란다. 꽤 긴 이 이름을 외우려면 시간깨나 걸리겠다.
초봄 한 달간 ‘잠깐’ 먹을 수 있는 요리
첫 그물에 걸려드는 실치는 너무 연해서 회로 먹기는 어렵다. 3월 말부터 4월 초순경 적당히 몸집이 커져야 횟감으로 먹을 수 있다. 6월 말까지 잡히지만 4월 중순이 넘으면 뼈가 굵어져 맛을 잃는다. 그래서 실치회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약 한 달간으로 눈 깜짝할 새다. 실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얼마 안 가 죽어버린다. 당연히 먼 곳까지 운반할 수 없다. 산지에나 와야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 이후부터 잡히는 물고기는 실치포를 만든다. 멸치처럼 데쳐서 말리는 실치포는 칼슘이 풍부한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 돌아와 장고항에서 구입한 실치포로 밑반찬을 만들어본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낸 포를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르면 된다. 밥하고 같이 먹으면 바삭바삭 과자 같은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과장 없이 놀라운 맛. 장고항의 바다 향이 어느새 따라와 있다.
Travel Data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송악IC→38번 국도를 타고 대산 방향으로 진행→석문방조제를 지나 615번 지방도로→5㎞ 정도 직진→장고항으로 우회전.
추천 별미집 용왕횟집, 고향나루 횟집 등을 비롯해 다수의 맛집이 있다. 미식가라면 우렁이 박사는 꼭 들러야 한다. 또 당진 시내의 장춘 닭개장도 유명하다. 장어구이를 먹고 싶다면 옛날돌집장어구이, 원조장어구이를 찾으면 된다.
주변 여행지 삽교천도 좋지만 당진 시내 탐험을 해보자. 봄철 당진 장날(5일, 10일)의 장터 풍경이 정겹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실컷 들을 수 있는 색다른 여행 체험이다. 충남에서는 1위를 차지한 명품 쌀에 쑥이 어우러진 왕쑥송편, 기름을 바르지 않은 호떡을 사들고 남산 건강공원으로 가보자. 산이라기보다는 마치 구릉 같다. 그래도 당진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어 눈앞이 시원하다. 봄철에는 꽃 천국이다. 왕벚꽃이 만발한 봄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당진향교(충청남도기념물 제140호), 의인, 역대 현감, 군수 등의 선덕비, 공적비, 기념비 등 비석문화재 21점의 유적도 있다.
시장에 나가보니 단골 생선가게에 가지런히 쌓인 가자미가 눈길을 끌었다.
가자미는 손질하여 소금 뿌려두었다가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도 맛있고 매운 양념장 끼얹어 찜을 해도 맛있는 생선이다.
또한, 가자미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슬로푸드도 있다.
가자미식해인데 이북의 음식으로 알려져있는 이것은 손이 많이 가고 만들기도 번거로워 자주 하지는 않지만, 워낙 남편과 필자가 좋아해서 가끔씩 실력발휘를 해 보곤 한다.
필자의 시부모는 이북이 고향이시다. 시어머니는 또순이로 유명한 함경도 분이신데 음식 손맛이 뛰어나셨다.
결혼 후 어느 날 어머님이 만들어 삭힌 가자미식해가 상에 올랐을 때 그 맛에 반해버렸다.
친정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것인데 식혜라면 시원하고 달콤한 감주로만 알고 있던지라 매콤짭짤하니 아삭한 무와 어우러진 가자미의 쫄깃한 살이 너무나 맛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요리에 관심이 없었던 필자는 배울 생각은 안 하고 해 주시기만 기다리며 맛을 즐겼었다.
분가를 한 후 가자미식해를 직접 만들어 보았다.
만들면서 어머님에게 좀 더 자세하게 배워놓을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어깨너머로 보기만 했던 터라 그 맛이 나려는지 매우 걱정스러웠는데 어머님께 전화도 여러 번 해가면서 만든 결과 그래도 여태까지 만든 필자 작품도 칭찬받을 만큼 성공하기는 했다.
지난번 만들 때 가자미 손질이 힘들었다. 가시가 억센 부분을 자르는데 칼 닿는 부분의 손가락에 빨갛게 물집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엔 꾀를 내어 생선가게 주인에게 가자미를 세로로 잘라달라고 주문했다.
보통 가자미는 가로로 토막을 내 주는데 식해용으로 잘게 토막을 내려면 세로로 잘라오면 손에 물집 잡힐 정도의 수고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서였다.
아저씨는 “뭘 만들려고 그러시나?” 하면서 깨끗하게 손질해 주었다.
가자미식해의 재료로 비늘 벗겨 손질한 가자미와 무, 파, 마늘, 생강 그리고 좁쌀(기장)을 준비했다.
조는 꼭 메조를 써야 한다던 어머님 말씀이 있었는데 차조는 찰기가 있어 풀어지니 땡글땡글 알이 살아있으려면 메조가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지난번 만들 때 메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차조는 있는데 메조는 퍽퍽한 맛으로 수요가 없으니 안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메조와 비슷한 기장으로 밥을 해서 만들었는데 모양이나 맛에 별 차이가 없었고 꼭 필요한 재료가 없으면 대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시장과 마트를 돌아봐도 메조 파는 곳이 없어서 기장을 사 왔다.
비늘을 벗겨 온 가자미는 깨끗이 씻어서 이번엔 손쉽게 토막을 내었다. 세로로 잘라온 보람이 있었다.
토막 낸 가자미에 소금을 뿌려 24시간 절인 다음 채반에 건져 물기를 빼준다.
무도 채 썰어 소금에 절이는데 지난번 얇게 채를 쳤더니 너무 가늘었던 게 생각나 이번엔 손가락만큼 좀 굵게 썰었는데 그래야 씹는 맛이 더 좋지만, 각자의 기호에 따르면 될 것이다. 무는 서너 시간 정도 소금에 절인 후 물기를 꼭 짠다.
기장은 씻은 후 조리로 몇 번 일어준다. 조나 기장 같은 곡식에는 아직도 돌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장으로 밥을 하는데 물은 적게 잡아 고슬고슬 지어야 한다. 노란색 기장밥이 아주 맛있게 보인다. 밥은 펼쳐서 식혀 놓는다.
커다란 그릇에 소금에 절인 후 물기 뺀 가자미와 꼭 짠 무채, 식힌 조밥 (기장밥도 가능),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멸치액젓 약간을 넣어 버무린다.
장독 항아리에서 삭히면 좋겠지만 필자는 글라스락 유리통에 넣었다.
유리통 가득한 가자미식해를 보니 뿌듯하고 기분이 매우 좋다. 이제 일주일쯤 지나면 잘 익은 가자미식해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삭아삭 무채와 쫄깃쫄깃 구수한 가자미 맛이 떠올라 자꾸 침이 고인다.
맛있고 귀한 향토음식을 전수해 주신 고마우신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지난해 담가두었던 김장 김치가 맞춤하게 익어가는 때다. 잘 익은 김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새콤한 맛이 살짝 도는 포기김치에 두툼한 생고기를 넣고 푹 쪄낸 김치찜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요리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재료와 김치만으로 맛을 내는 김치찜 맛집 ‘더 김칫독’을 찾아갔다.
모던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김치찜의 깊은 맛
김치찜은 김치찌개, 된장찌개처럼 부담 없이 즐겨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꼭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차림표에 올리는 가게가 많다. 간혹 전문으로 하는 맛집을 찾아가 보면 대개 오래된 식당이라 정겨움은 더할 수 있지만, 깔끔하다는 인상을 느끼기는 어렵다. 경기도 일산 킨텍스(KINTEX) 인근에 자리 잡은 ‘더 김칫독’은 소박하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더 김칫독의 뚜껑을 연 지는 이제 3년 차이지만, 그 맛만큼은 시골 할머니의 손맛처럼 깊고 진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더 김칫독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맞이한다. 곳곳에 뒤주나 도자기 소품 등이 현대식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낸다.
더 김칫독의 김치찜은 100일간 숙성한 김치를 사용하고 국물이 넉넉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묵은지를 사용해 자박하게 조리하는 김치찜과 비교했을 때, 한눈에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묵은지를 쓰게 되면 신맛과 짠맛이 강하기 때문에 물에 여러 번 헹구거나 설탕을 많이 첨가해 자극적인 맛을 줄이게 된다. 충청도식으로 절인 이곳 김치는 평창 고랭지 배추에 양념을 적게 넣어 짠맛이 덜하고, 100일 동안만 숙성하기 때문에 신맛도 강하지 않다.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는 김치에 8년 숙성한 오미자 효소와 설탕을 넣지 않고 자연 발효시킨 감식초, 우리 콩으로 빚어 만든 된장·간장, 국내산 멸치·꽃새우·다시마 등으로 간을 맞춘다. 설탕을 비롯한 인공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차별화를 뒀다.
여기에 제주산 돼지고기(삼겹·전지·등갈비)가 들어간다. 처음부터 김치와 고기를 넣고 한꺼번에 끓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재료를 따로 삶고 손님상에 내기 전 육수와 함께 부어서 내놓는다. 육수를 넉넉하게 넣고 서서히 끓여가며 먹는데, 초반에는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나고 육수가 졸아들수록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게에서 직접 들기름에 구운 김 반찬이나 계란말이, 두부부침 등을 곁들여도 좋고 떡, 라면, 만두 등 사리를 넣어도 된다.
단골 사이에서 김치찜(1인분 1만원)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갓김치찜(1인분 1만2000원)이다. 포기김치와 마찬가지로 100일 동안 숙성한 전남 여수 갓김치가 들어가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삶은 우거지를 넣는다는 것인데, 보들보들하게 익은 우거지에서 구수한 맛이 우러나 국물 맛이 더욱 깊다. 김치찜을 주문하면 밑반찬과 함께 쌈 채소가 나온다. 두툼하게 잘라 넣은 우수한 품질의 제주산 돼지고기를 김치와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쌈을 싸서 먹으면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맛 좋은 한식에는 밥맛 또한 중요하다. 국내산 햅쌀과 흑미를 사용해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밥을 지어 최대한 갓 지은 밥맛을 선사하고자 노력한다는 주인장이다.
김치찜을 끓이는 냄비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전골냄비가 아니라 한국 전통의 방짜유기를 사용한다. 녹이 슬지 않게 닦고 관리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그만큼 음식 맛을 좋게 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김치찜의 쿰쿰한 냄새가 옷에 배지 않도록 옷장을 따로 마련한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호수로 838번길 8-4
문의 02-334-6856 (매일 10:30~23:00)
점심시간에 가면 돼지고기김치찌개를 비롯해 참치김치찌개, 꽁치김치찌개 등의 찌개류를 맛볼 수 있고, 저녁에는 숙성한 제주산 오겹살, 목살, 앞다릿살 구이류를 즐길 수 있다.
김진 세계문학사 편집장
비로소 편안해졌다
20대, 30대의 소위 결혼 적령기를 지나 40대에 이르도록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남자’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고, 나는 원하지 않는 대답을 강요받아야 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지? 그래도 결혼은 할 거잖아.”
40대에는 심지어 내가 아무 남자라도 만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결코 내가 원하지 않는 만남을 주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자리를 만들거나 모임을 만들어서 슬쩍 남자를 끼워 넣어서는 강제로 짝을 맞춰주는, 그들의 호의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둬!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사람과 할 테니까!’
이런 외침을 수도 없이 했다.
나는 물론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불안을 나 자신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우를 많이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50대가 되자 그런 일들도 거의 사라졌다. 50대쯤 되면 이젠 어떤 변화라든가 새로운 시작을 꾀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비로소 편안해졌다.
마냥 자유롭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먼저 음악을 틀고, 느긋하게 저녁 준비를 한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은 않는다. 그때그때 마음에 달렸다. 어떤 날은 국수를 삶는다. 멸치육수를 내고, 호박과 양파 등을 볶고 달걀지단을 부쳐 고명을 만들어 근사하게 먹을 수도 있고, 그냥 삶은 국수에 간장을 휘휘 뿌리고 참기름 둘러 슥슥 비벼먹기도 한다. 어떤 날은 삼겹살을 굽는다. 그리고 어떤 날은 햇반을 돌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먹어도 된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무렇게나 먹기도 하고, 성찬을 차려 먹기도 한다. 식구가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식구들의 취향도 생각해야 하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고, 예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자유롭다. 무엇을 하든 내 맘 대로다. 멍하니 있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다.
혼자 사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로움이다. 행동에 걸림이 없다.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게을러질 자유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름을 ‘불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게으름이야말로 최대의 자유이고 정신의 빈 공간이며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무한한 여백의 공간이기도 하다. 게으름은 혼자 있을 때만 완벽하게 가능하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게으름이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우주의 물질이 가진 총 질량은 물질이 변화를 가져와도 변하지 않는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흔히들 이를 빗대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삶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고통이나 기쁨, 즐거움, 외로움, 두려움 등등은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그것은 인생 어느 때든 주어진 양만큼은 꼭 채운다는 것이다. 그저 재미있는 농담처럼 만들어진 이 말은 사실은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총량의 법칙으로 헤아려보면 삶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질적으로 많이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 혼자 살거나 가족과 살거나 총량의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혼자 사는 나의 두려움은 지금보다 더 늙고 병들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문득문득 그런 고민에 가슴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몇 년 전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면서 몹시 아팠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러다가 혼자 죽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생긴 고민이다. 아플 때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죽음 앞에서 사람이 있든 없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가라앉히곤 한다.
외롭지 말고 고독하라
“외롭지 않은가.”
혼자 사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다. 물론 외롭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적인 정서다. 오욕칠정처럼 밑바닥에 있는 감정이다.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다. 관계 속에서 소통을 해 외로움을 해소하고 위로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외로움은 괴로움으로 변질이 되고 만다. 부처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인 외로움이 혼자 산다고 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때때로 나는 외로움보다는 고독하기를 즐긴다. 외로움은 타인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고독은 스스로의 힘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고독은 내면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고독할 때만이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성찰할 수 있다. 인간은 성찰을 통해 성숙해진다. 고독의 공간이 넓을수록 삶은 평화롭고 고요하고 아름다워진다.
최상의 노후는 미니멀리즘으로
백세시대라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수명의 연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사는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사유와 성찰을 하며, 삶을 살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진 삶을 위한 가장 큰 요건은 경제적 문제이다. 수명의 연장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정년까지 근무해서 벌어놓은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이에 반해 삶의 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차츰 삶의 규모를 줄이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로 했다. 일단 새로운 물건은 가급적이면 구입하지 않는다. 사실 물건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갑자기 소유한 물건을 줄이려면 그것도 큰 비용이 든다. 지금부터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소유한 것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정신의 여백은 넓어지고, 보다 풍요롭고 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